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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2년간 ‘38선 횡단’ 부부의 마지막 도전

    32년간 ‘38선 횡단’ 부부의 마지막 도전

    “한반도에 전쟁이 없는 평화의 봄날이 오기를 온 국민과 함께 바랍니다.” 32년간 한반도 38선을 횡단하며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 온 유대지(76)·이순필(76)씨 부부가 6·25 전쟁 발발 76주년을 맞아 비무장지대 동서 횡단에 나선다. 1994년 시작된 38선 횡단의 93번째 도전이자 마지막 여정이다. 이 부부는 24일 경기 성남 자택을 출발해 25일 강원 양양 하광정휴게소에서 ‘마지막 38선 횡단 대국민 성명’을 발표한 뒤 임진각까지 약 400㎞ 구간을 차량으로 이동할 예정이다. 두 사람은 북한의 ‘서울 불바다’ 위협 발언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던 1994년 강원 고성에서 백령도까지 휴전선을 따라 약 250㎞를 도보 이동하며 핵무기 반대와 평화를 호소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모두 92차례 38선을 횡단했다. 2000년에는 6·25 전쟁 50주년을 맞아 미국 북위 38도선을 따라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약 4000㎞를 자동차로 횡단하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해외에도 알렸다. 이런 활동을 인정받아 2013년에는 경기도로부터 ‘38선 최다 횡단 경기도민’ 인증을 받았다. 유씨의 부친인 고 유귀용 경위는 1949년 경북 경주경찰서 안강지서장으로 재직 중 공비와 교전하다 27세의 나이로 순직했다. 유복자인 유씨는 어린 시절 어머니마저 여의고 할머니 손에 자랐다. 아내 이씨 역시 친오빠가 6·25 전쟁 참전 중 왼팔에 장애를 얻는 아픔을 겪었다. 유씨는 “100번째 횡단까지 이어 가고 싶었지만 고령으로 더이상 쉽지 않다고 판단했다”며 “아버지를 잃은 고통은 세월이 흘러 용서할 수 있게 됐지만 전쟁만큼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 땅에서 다시는 총성이 울리지 않고 또 다른 유복자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소망을 밝혔다.
  • 제주 4·3 추념식 간 김동연, “아픔을 같이하고 경기도민과 함께 뜻 기리겠다”

    제주 4·3 추념식 간 김동연, “아픔을 같이하고 경기도민과 함께 뜻 기리겠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3일 제주시 제주4·3평화공원에서 거행된 제77주년 4·3추념식에서 4·3사건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김 지사는 지난해 제76주년 추념식에도 참석한 바 있다. 추념식을 마친 후 김 지사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강기정 광주광역시장과 함께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등 생존희생자 및 유가족 40여 명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김 지사는 간담회에서 “작년에도 뵙고 올해 또 뵙는다. 작년에는 현경아 할머님 오셔서 사연을 들려주셨다. 스물다섯에 두 딸과 또 유복자가 배에 있을 적에 스물아홉 되신 남편분 돌아가신 사연을 들려주셔서 가슴이 먹먹했다”면서 “오늘은 동영상에 김희숙 선생님 자손분들께서 DNA로 유골을 찾으시는 모습을 아주 감명 깊게 보고 가슴이 먹먹했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이어 “경기도는 4.3 관련해서 재작년 유가족분들을 DMZ에 초청했고, 오늘 경기도청과 북부청에서 4.3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아픔을 같이하고 그 뜻을 1,420만 경기도민이 함께 기리겠다”며 “아무쪼록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빨리 통과되기를, 또 다음 달에 제주4.3사건 기록물 유네스코 등재도 잘 되기를 기원하면서 유가족 여러분들 건강하시고 또 기운 차리시기를 바란다”라고 덧붙였다. 간담회에 이어 김 지사는 오영훈 제주도지사, 제주도 간부 공무원들과 함께 제주 4.3평화공원을 찾아 희생자 추모를 위한 헌화와 분향을 했다. 김 지사는 4.3평화공원 내 위패실에 비치된 방명록에 ‘제주의 아픈 역사와 작별하지 않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한편, 경기도와 제주도는 지난 2023년 9월 경기도청에서 경기-제주 상생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탄소중립·기후테크 분양 정책교류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공동 대응 등 9개 과제에 대해 긴밀한 협력을 하고 있다. 협약에 따라 도는 지난해 8월 경기도 기후 콘퍼런스 기간경기-제주 정책교류회를 개최한 데 이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진행 상황 공유, 고향사랑기부제 활성화를 위한 상호 기부, 2023년 12월 경기-강원-제주 합동 관광설명회 등 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 딸이 아버지 시각으로 그려낸 ‘삶과 죽음’ 향한 찬사

    딸이 아버지 시각으로 그려낸 ‘삶과 죽음’ 향한 찬사

    1964년 콩고 반군 인질극 사건 바탕외교관이었던 부친 시점으로 서술 “그들이 날 처형대로 끌고 간다. 시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고, 매초가 앞선 초보다 한 세기는 더 오래 지속된다. 내 나이 스물여덟이다.” 소설 ‘첫 번째 피’의 첫 문장이다. 한 편의 연극 무대를 보는 듯하다. 콩고 반군의 총구 앞에 선 파릇한 청년은 벨기에의 외교관 파트리크 노통브다. 1500명이나 되는 인질과 자신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그는 결국 죽음 앞에 서게 됐다. 자신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십수정의 총구가 겨눠지자 지나온 삶의 풍경들이 반추되기 시작했다. 파트리크는 “불손한 기쁨”이란 아이러니 속에서 태어났다. 이른바 유복자, 그러니까 아버지의 죽음과 맞바꾸듯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기억 속에 가장 괴이하고 강렬했던 시기는 자신처럼 스물다섯 나이에 군인으로 죽음을 맞은 아버지가 자란 곳, 바로 노통브 가문 소유의 퐁두아성에서 보낸 유년 시절이다. 가장 나이 많은 이가 가장 많은 음식을 차지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먹을 것을 두고 사냥개처럼 싸워야 하는 “괴팍하고 기이한 다윈주의 속”에서 그는 살아남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다시 현재. 평생 말수가 적었던 그가 이번엔 ‘말’이 무기인 외교관으로 부임해 반군에게 끊임없이 ‘말’을 반복하며 참극을 막아야만 하는 아이러니와, “반군들의 모진 학대에서 제외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반군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착각하는 마조히즘의 쾌감”을 느낀다는 아이러니에 직면하고 있다. 그중 가장 강렬한 아이러니는 총구 앞에서 “삶을 향한 애정이 팽창”한다는 것이다. 책은 2021년 프랑스 4대 문학상 중 하나인 ‘르노도상’을 받았다. 20세기 최대 인질극이라 불리는 ‘1964년 콩고 반군 인질극’ 실화가 모태다. 벨기에 태생인 저자가 ‘아버지가 되어’, 그러니까 1인칭 관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시트콤 같은 기묘한 에피소드와 짜임새 있는 구성으로 서른 권이 넘는 저자의 작품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벨기에는 19세기 후반부터 1960년까지 콩고를 식민 지배했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 재위 시절엔 1000만명으로 추정되는 콩고 국민이 국왕 소유의 고무 농장에서 노역에 시달리다 숨졌다. 콩고가 저지른 인질 사건은 결코 옹호해선 안 되는 만행이다. 다만 인질 사건 이전에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아프리카 식민지에 저지른 악독한 만행 중 하나로 꼽히는 벨기에의 식민 지배가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알아 두면 좋을 듯하다.
  • [나태주의 풀꽃 편지] 컴퓨터 먹통, 나를 깨웠다

    [나태주의 풀꽃 편지] 컴퓨터 먹통, 나를 깨웠다

    지난주 금요일 밤의 일이다. 밤늦은 시각까지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컴퓨터 바탕화면이 새까매지면서 바탕화면에 저장해 둔 한글파일이며 사진들이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지금껏 한 번도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정신이 아찔, 온몸에 진땀이 흘렀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한글파일이 그대로 바탕화면에 남아 있었는데 그것들이 깡그리 날아가 버린 것이다. 편집 중인 책 원고 한 권. 시집 원고 한 권. 산문집 원고 또 한 권. 그리고 자잘한 메모들. 결국은 며칠 동안 동동거리며 새 컴퓨터를 사들이고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들을 찾아서 복구하는 일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실은 나는 한 달도 넘게 우울증 비슷한 정서 상태에 매여 살았던 것이다. 그동안 고향에 계시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또 한 분 선배가 소천을 받으신 것이다. 거기에도 내 잘못과 실수가 있었다. 우선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인 지난 5월 22일, 나는 한국에 있지 않고 캐나다에 있었다. 작년부터 예정된 문학강연을 하기 위해서 캐나다로 갔다가 아버지 소천 소식을 들었던 것이다. 그때의 막막함이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으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그런대로 꼬인 부분을 바로잡기는 했으나 이미 저질러진 잘못은 되돌릴 수 없었고 다만 후회와 비애만 남았다. 2019년도 어머니 소천 때와는 달랐다. 아직 아버지가 계시니 그런대로 버틸 만한 언덕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던가 보다. 그런데 이번은 아니었다. 아버지의 생존 자체가 고향 집의 건재요 고향 집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였는데 그 모든 믿음이 와르르 무너진 느낌이었다. 게다가 내 나이도 이제 80세 앞.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닐뿐더러 집안의 맏이이고 보니 이제는 내 차례가 아닌가 싶은 생각조차 들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허우적거리며 지내던 차에 또 한 사람 소중한 분이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6월 28일. 나로선 고등학교 4년 선배 되는 분이고 한 시절 교직 동료로 살았던 분. 1979년도 내가 충남 공주로 교직을 옮겨서 살 때부터 가까이 지내던 분이다. 그분은 마음이 순후하고 인자한 분이었다. 특히 그분은 아버지 노릇을 참 잘하는 분이었다. 나 자신 아버지 노릇이 힘겹던 시절이라 그분을 찾아가 어떻게 하면 아버지 노릇을 잘할 수 있느냐 조언을 청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분의 대답이 놀라웠다. 자신은 애당초 아버지를 보지도 못한 유복자였다는 것. 그래서 주변에 아버지 노릇을 잘하는 사람들을 살피고, 좋은 점들만 본받았다는 것. 이래저래 나는 오랜 세월 그분과 더불어 삶의 외로움을 달래며 살았다. 그런데 그분의 사모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2년 조금 넘게 혼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말년의 삶이 불행했다. 실명에다가 귀까지 먹고 치매까지 겹쳐 삼중고 속에서 살아야만 했다. 자주 찾지도 못했다. 도통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니 만남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정작 상가에 갔을 때 그분 자녀들로부터 특별한 말 한마디를 전해 들었다. 그분이 세상 떠나던 날 아침 간병인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나태주가 왜 오지 않느냐’였다는 것이었다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정신이 아뜩해졌다. 아버지에 이어 두 번째의 불찰을 내가 저지른 것이다. 아, 비록 사람을 못 알아보더라도 자주 찾아가 손이라도 잡아드리고 이야기라도 나눌 것을! 역시 지나간 잘못은 바로잡을 길이 없다. 그런 뒤로는 내가 더욱 무기력에 빠지고 침울해졌다. 어쩌면 내가 그분을 따라 죽음의 세계로 한발 들어가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던 차에 컴퓨터가 먹통이 된 것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 컴퓨터는 연필이고 원고지다. 컴퓨터가 먹통이 된 뒤로는 내가 또 젖 떨어진 아이처럼 되고 말았다. 오히려 정신이 화다닥 들었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정신 차려서 무슨 일이든 다시 새롭게 하고 열심히 해야지. 그러면서 한동안 깊이 빠졌던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쩌면 컴퓨터가 먹통이 된 일이 먹통이 된 나를 건져 준 셈이다. 나태주 시인
  • “엄마 나 살고싶어”…막내딸·전 남편 시신 옆에서 큰딸 잡고 5시간 인질극 벌인 계부[전국부 사건창고]

    “엄마 나 살고싶어”…막내딸·전 남편 시신 옆에서 큰딸 잡고 5시간 인질극 벌인 계부[전국부 사건창고]

    계부 김상훈, 아내 ‘외도’ 의심 인질극경찰 신고 알고 흥분해 막내딸 살해 “남편이 딸들을 붙잡고 인질극을 벌이고 있어요.” 2015년 1월 13일 오전 9시 50분쯤 전화 한 통이 경기 안산상록경찰서에 걸려왔다.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자 김상훈(당시 47세)이 흉기를 들고 의붓딸 등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 신고자는 김씨 아내 최모(당시 43세)씨였다. 인질극은 최씨의 전 남편 박모(당시 49세)씨가 사는 다세대주택 3층에서 벌어졌다. 그 집에는 최씨와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고교생 큰딸 A(당시 17세)양과 막내딸 B(당시 16세)양, 박씨와 그의 동거녀 C(당시 31세)씨 등 4명이 갇혀 있었다. 인질극이 끝났을 때 박씨와 막내딸은 김씨에게 죽임을 당한 상태였고, 큰딸과 C씨는 손발이 결박돼 있었다. 30일 서울신문 취재와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김씨는 별거 중인 최씨가 “변호사를 선임했으니 이혼하자”는 문자를 보내고 연락도 끊자 ‘외도’를 의심하고, 아이들이 피신한 박씨 집을 찾아가 참혹한 살인·인질극을 벌였다. 김씨는 인질극 하루 전인 12일 오후 4시쯤 자택에서 흉기를 들고 박씨 집으로 갔다. C씨만 있었다. “박씨 후배인데, 물건만 놓고 가겠으니 문 열어 달라”고 했다. 그는 집 안에 들어가자 C씨를 위협, 결박하고 작은방에 가뒀다. 이어 오후 10시 15분쯤 박씨가 귀가하자 집 안쪽으로 유인했다. 서로 잘 알았다. 박씨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밖에서 술이나 한 잔 하자”면서 나가려고 했다. 김씨는 곧바로 흉기를 휘둘렀다. 박씨는 얼굴과 목 등을 10여차례 찔려 숨졌다. 김씨는 그의 시신을 화장실에 숨겼다. 40분 차이로 막내딸과 큰딸이 차례로 귀가하자 흉기로 위협해 넥타이와 신발끈으로 묶어 작은방에 감금했다. 아내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받지 않았다. 최씨는 김씨의 전화번호를 ‘수신거부’로 해놓고 있었다. 김씨는 이튿날 오전 9시 20분쯤 큰딸 휴대전화로 아내에게 전화했다. 받지 않았고 곧바로 최씨한테 걸려왔다. 그는 아내에게 “두 딸을 인질로 잡고 있다. 경찰에 신고하지 말고 와서 잘못을 말해라”고 요구했다. 최씨는 현장으로 오면서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는 아내와 계속 통화하는 과정에서 신고한 사실을 알고 극도로 흥분해 날뛰었다. 그는 결국 막내딸을 흉기로 찌르고 양손으로 코와 입을 막아 살해했다.큰딸 “경찰 들어오면 나 죽어”눈앞서 친부·동생 피살에 실어증 큰딸은 김씨가 넘겨준 엄마 최씨와의 통화에서 “(김씨가)목에 칼을 대고 있다. 경찰이 들어오면 나도 죽인다고 했으니, 제발 경찰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딸은 “엄마, 나 살고 싶어”라고 수차례 말했다. 그는 막내딸 시신 옆에서 경찰과 대치하면서 아내에게 “잘못을 얘기하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인질극을 중단해라” “네가 집 안으로 들어오라”. 날카로운 신경전이 오갔다. 김씨는 욕설을 마구 퍼부은 뒤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순간 건물 옥상에 있던 경찰특공대원들이 박씨 집 유리창을 깨고 들어갔다. 그는 저항하지 않고 체포됐다. 이날 오후 2시 30분쯤, 대치 5시간 만이었다. 집 안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박씨는 시신으로 발견됐고, 막내딸은 병원에 이송했으나 숨진 상태였다. 부검 결과 김씨는 막내딸을 인질로 잡으면서 성폭행까지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휴대전화로 알몸도 촬영했다. 그는 2012년 5월에도 막내딸을 성폭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전력이 있었다. 김씨는 경찰에서 “아내가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아 외도를 의심해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큰딸 A양은 “엄마와 삼촌(김씨)이 통화를 하면서 심하게 싸우다 전화가 끊어졌다. 삼촌이 다시 통화를 시도했으나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자 극도로 흥분해 곧바로 동생을 (흉기로)찔러 죽였다”고 말했다. 최씨는 장기간 심리치료를 받았다. 눈앞에서 친부의 주검과 동생이 살해되는 것을 본 A양은 실어증 증세까지 보였다.흉악 범죄가 급증합니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직시하고 아우성치지 않으면 나아지지 않습니다. 사건이 단순 소비되지 않고 인간성 회복을 위한 노력과 더 안전한 사회 구축에 힘이 되길 희망합니다.검거 후에도 김씨의 반성은 없었다. 같은달 15일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경찰서를 나서며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취재진에 “나도 피해자다. 경찰이 지금 내 말을 다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막내딸 죽은 건 경찰 잘못도 크고, 애 엄마 음모도 있다. 철저히 수사해달라”고 말했다. 영장이 발부된 뒤에는 취재진에 “(경찰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고 흥분시켜 막내딸이 죽었다”고 했다. 경찰 조사 후 호송 경찰관에게 “탈옥하고 싶다. 나가서 아내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말도 했다. 19일 현장 검증에서는 최씨의 아들(당시 21세)이 “김상훈 이 ×××야. 엄마를 그렇게 괴롭히고 싶었냐”고 하자 “네 엄마 데려와. 이 ×××야”라고 되레 호통쳤다. 그리고 활짝 웃었다. 현장의 주민들은 “저런 죽일 놈” “사형시켜라” “사지가 벌벌 떨려요. 무서워 저녁에 여길 못 다녀…”라고 분노했다. 검거 후에도 “경찰이 날 자극했다”웃으면서 “네 엄마 데려와, ×××야”전문가 “38점 유영철보다 더 높을 것” 대학 경찰학과 교수와 변호사 등 전문가들은 “상대방의 고통을 기쁨으로 느끼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로 볼 수 있다. 유영철이 40점 만점에 38점 나왔는데 김씨는 만점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은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사회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있다”고 김씨의 얼굴과 신상공개를 결정했다. 김씨는 1990년대부터 숨진 박씨와 의형제를 맺는 등 친밀하게 지냈지만 박씨가 이혼하자 그의 아내였던 최씨와 2007년 혼인했다. 최씨의 딸들은 그를 ‘삼촌’이라고 불렀다. 그는 특정한 직업이 없었고, 최씨가 보험상담원을 해 먹고 산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부부 갈등은 갈수록 커졌다. 사건 5개월 전부터 별거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인질극 일주일 전인 1월 7일 밤 0시 30분경 상록구 모 카페에서 아내를 위협해 자기 집으로 끌고가 같은날 오후 5시 30분까지 17시간 동안 감금하고 일본도로 허벅지를 찌르고 칼집으로 때리면서 “(가족을) 다 죽이는데 1분이 걸리겠나. 몇 초면 된다”고 협박도 했다. 최씨는 이튿날 오후 경찰서에 찾아가 “남편에게 허벅지를 흉기로 찔려 다쳤다”며 구속시켜달라고 했으나 경찰은 “현행범이 아니어서 즉시 구속은 어렵다”고 고소 절차만 안내했다. 최씨는 더 이상 상담하지 않고 딸들을 집 근처 모텔 등으로 피신시켰다가 친부인 박씨 집으로 잠시 보낸 사이에 참변을 당했다.김씨는 1심에서 선고받은 무기징역이 대법원까지 이어져 확정됐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도 어이없는 말을 늘어놨다. 막내딸 성폭행은 “강간이 아니라 합의 하에 이뤄진 성행위다”, 최씨를 감금하고 허벅지를 찌른 건 “의도하지 않은 실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이 진행될수록 ‘반성 모드’로 태도가 달라졌다. 김씨는 1심 결심공판 때 최후의 진술에서 “깊이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고, 죽을죄를 지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딸과 전 남편을 잃은 최씨 등 유족은 “그냥 사형시켜 달라. 저 인간은 사람도 아니다. 반성도 모른다”고 눈물로 호소했다. 재판 진행되자 “죽을죄 지었다”1심~대법원, 무기징역“교화 가능성 남아 있다” 1심을 맡은 수원지법 안산지원 제1형사부는 2015년 8월 “김씨는 말다툼 끝에 아내가 집 나가 화를 참지 못해 저질렀고, 잘못을 반성하고, 성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고, 유복자로 태어나 불우한 성장기를 거쳤다”며 “김씨는 여생을 참회하면서 피해자와 유족에게 사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학창시절 따돌림을 많이 당했고, 고교 때 여자친구와 성관계한 게 알려져 퇴학을 당한 후 호프집 등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적 혼인만 4차례, 동거까지 합하면 총 6차례 가정을 꾸렸다. 항소심을 진행한 서울고법 제11형사부는 2016년 1월 “김씨의 불우한 성장 환경 등 여러 사정을 살펴보면 개선 및 교화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며 “생명을 박탈하는 사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할만한 객관적 사정이 부족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하더라도 사회방위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4명 재심서 무죄···사건발발 75년만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4명 재심서 무죄···사건발발 75년만

    여수·순천 10·19사건(이하 여순사건) 당시 무고하게 희생당한 민간인들이 75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재판장 허정훈)는 19일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고 박채영·심재동·박창래·이성의 씨에 대한 재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과거사위원회의 진실규명결정서에 기재된 내용에 의하면 여순사건 당시 군경에 의한 민간인들에 대한 체포·감금이 일정한 심사나 조사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졌고 그 후 조사 과정에서 비인도적인 고문이 자행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또 희생자들에게 당시 적용됐던 포고령 제2호에 대해 “적용 범위가 넓고 포괄적이어서 통상의 판단 능력을 갖춘 국민이 법률에 따라 금지된 행위가 무엇인지 예견하기 어려워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돼 위헌·무효다”고 밝혔다. 재판장의 ‘무죄’ 선고에 엄숙했던 법정 안에 박수 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재판부는 유족들에게 “그동안 심적으로 많이 고생하신 것으로 안다. 무죄가 선고됐으니 그간의 원한을 푸셨으면 한다”며 “형사보상 등을 신속하게 신청해 주시면 절차에 따라 조치하겠다”고 당부했다. 이들 희생자는 1948년 여순사건 당시 14연대 군인 등에 동조해 공중치안과 통치 질서를 교란하고 폭동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영장도 없이 체포·수감됐다가 처형당했다. 고 이성의 씨의 딸 이정순(75) 씨는 “태어나기 직전 아버지가 여순사건으로 끌려가 돌아가시면서 유복자로 태어났다”며 “아빠를 불러보지도 못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해줘 감개무량하고 지금 이 순간 아버지가 너무 보고싶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번 재판은 2019년 대법원이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재심 개시를 결정한 뒤 내려진 네 번째 무죄 판결이다. 2020년 1월과 6월 철도기관사이던 고 장환봉 씨, 순천역 철도원으로 근무했던 고 김영기 씨와 대전형무소에서 숨진 농민 김운경 씨 등 민간인 희생자 9명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지난해 1월 대전시 산내동 골령골에서 희생된 김중호 씨 등 민간인 희생자 12명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 “똑똑! 새해 인사 드려요” 금천주민 다독다독[현장 행정]

    “똑똑! 새해 인사 드려요” 금천주민 다독다독[현장 행정]

    “난방비가 5000원밖에 나오지 않아 다행이네요. 지원금이 이미 적용돼서 적게 나왔을 겁니다. 추가 지원금도 나오니 요금 걱정하지 말고 따뜻하게 지내십시오.” 추위가 한풀 꺾인 지난 6일 오후. 유성훈 서울 금천구청장이 독산4동 황모(83) 할머니의 집을 방문했다. 황씨는 남편과 사별한 뒤 정부 보조금으로 홀로 생활하고 있다. 골다공증 등으로 거동이 불편해 요양보호사로부터 매일 오전 돌봄서비스를 받는다. 황씨는 작은 주방과 방 한 칸이 딸린 반지하 집에 살고 있다. 집에 들어서니 침대와 TV, 소형 냉장고, 벽걸이형 에어컨, 옷장, 간이 식탁 등 단출한 세간살이가 눈에 들어왔다. 비교적 잘 정돈된 상태였다. “집이 깨끗하다. 평소에 잘 정리하시나 보다”라고 유 구청장이 말을 건네자 황씨는 미소 띤 채 “복지사분이 자주 와서 끼니도 챙겨 주고 청소도 해 준다”고 답했다. 유 구청장은 이어 “어제(5일) 대보름 부럼은 잘 드셨냐”고 물었고, 황씨는 “동사무소와 복지사분이 나물이나 오곡밥 등을 잘 챙겨 주셨다. 어느 자식들이 그렇게 하겠냐. 항상 감사하다”고 말했다. 황씨는 “시아버지가 유복자라 친척이 별로 없어 외로웠는데 구청 분들이 잘 챙겨 주신다”며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다. 유 구청장은 황씨의 두 손을 꼭 잡은 채 “겨울이 끝날 때까지 건강 잘 챙기시고, 더욱 정정한 모습으로 올 한 해 잘 지내셨으면 좋겠다. 다시 찾아뵙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유 구청장의 일정은 ‘찾아가는 새해인사회’의 하나였다. 동주민센터 강당에 모여 진행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의 생활 속에서 지역 현안을 살피고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7일까지 지역 10개 동의 경로당과 복지관, 문화센터 등 주요 시설을 방문했다. 황씨와 같은 홀몸 어르신이나 모자 가정 등 소외된 이웃을 직접 방문하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유 구청장은 이날 독산4동 주민센터를 찾아 스포츠댄스와 헬스 등 자치회관 프로그램 수강생들에게 일일이 인사했다. 주민자치분과회 회의에도 참석했다. 주민들은 헬스장 등의 시설 개선과 마을 축제 활성화 등을 건의했다. 유 구청장은 주민들에게 “토끼는 귀가 커 다른 이들의 말을 잘 듣는다. 소통을 잘하는 구청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정심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께 새해 인사도 했다. 유 구청장은 “현장을 찾아 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이야기를 들으면 풀기 어려운 지역 현안도 해법이 보이기 마련이다. 주민들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이고 소통하는 금천구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 카불 자폭테러 희생 병사의 딸 무사 출생…아빠 이름 물려받아

    카불 자폭테러 희생 병사의 딸 무사 출생…아빠 이름 물려받아

    카불 자살폭탄테러로 목숨을 잃은 미국 해병대원의 유복자가 무사히 세상에 나왔다. 14일 뉴욕포스트는 ISIS-K의 자폭테러로 숨진 라일리 매콜럼(20) 일병의 아내가 딸을 출산했다고 보도했다. 고 매콜럼 일병의 아내 지엔나 크레이튼은 13일 새벽 2시쯤 캘리포니아 캠프 펜들턴 미 해병대 기지 군 병원에서 체중 3.68㎏의 건강한 딸을 출산했다. 남편 매콜럼 일병이 자폭테러로 순직한 지 18일 만이다. 크레이튼은 “세상에 온 걸 환영한다 내 사랑스러운 아가. 온 마음으로 널 사랑한다”며 딸의 탄생을 알렸다. 아기는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았다. 크레이튼은 죽은 남편 이름을 따 딸의 이름을 레비 ‘라일리’ 로즈 매콜럼이라 지었다. 아버지 얼굴 한 번 못본 채 살아갈 딸이지만 아버지의 존재를 잊지 않았으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담았다. 크레이튼은 딸에게 바치는 시에서 “아버지는 널 항상 지켜보고 계신다. 아버지는 널 너무나도 사랑한다. 언제든 네 옆에 있는 아버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 사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는 아버지의 얼굴이 새겨진 인형 옆에서 새근새근 잠에 빠져들었다.고 매콜럼 일병은 지난달 26일 ISIS-K가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에서 벌인 자살 폭탄 테러로 사망한 미군 13명 중 한 명이다. 2019년 와이오밍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올해 2월 아내를 만나 결혼했다. 아내가 임신한 상황에서 미군 철수 작전이 개시되면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전출됐는데, 이번 임무가 매콜럼 일병에게는 첫 해외 파병이었다. 10월 미국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던 예비아빠 매콜럼 일병은 그러나 아내의 출산 예정일을 3주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테러 당시 매콜럼 일병은 공항 검문소를 관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매콜럼 일병과,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자라날 아기 생각에 유가족 가슴은 미어진다. 매콜럼의 어머니 캐시는 지난달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아들을 죽게 만든 무책임하고 치매에 걸린 쓰레기”라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한 분노를 드러내기도 했다. 매콜럼의 누나 로이스는 지난달 29일 카불 테러로 사망한 미군 병사 유해 13구가 델라웨어주 도버 공군기지에 도착했을 때 직접 운구 행렬을 맞은 바이든 대통령이 매콜럼 일병의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계를 확인했다고도 주장했다.철군 과정에서 벌어진 테러 공격으로 미군 13명이 목숨을 잃자 현지에서는 이와 같은 비판 여론과 철군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됐다. 13일 철군 완료 후 처음으로 열린 관련 청문회에서도 미 하원 외교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사이에 팽팽한 공방이 이어졌다. 화상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블링컨 장관은 ‘섣부른 철군’이었다는 지적에 대해 “우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로부터) 철군 시한을 넘겨받았다”고 반박했다. ‘철군은 항복한 것과 같다’, ‘철군 때문에 아프간이 탈레반에 넘어갔다’ 등의 질타에 대해선 “(단순히 인수인계받은 철군이었더라도) 미군이 아프간에 더 오래 주둔한다고 아프간 정부군이 자립할 수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포토] ‘70년만에’ 아버지를 만난 아들

    [포토] ‘70년만에’ 아버지를 만난 아들

    20일 오전 여수시 국군묘지에 안장된 아버지(김득천 일병)의 무덤 앞에서 아들 김씨(70)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아버지가 전사할 당시 유복자였던 김씨는 “아버지의 묘를 찾기 위해 어머니 생전에 여수에 내려와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는데, 이렇게 찾게 돼서 꿈만 같다”며 “내일이 제 생일인데 아버지를 만나게 된 오늘이 태어나서 가장 의미 있는 생일선물인 것 같다”고 감격스러워했다. 2021.8.20 여수시 제공·뉴스1
  • ‘동백꽃 필 무렵’ 병원서 마주친 고두심, 강하늘♥공효진 적신호?

    ‘동백꽃 필 무렵’ 병원서 마주친 고두심, 강하늘♥공효진 적신호?

    ‘동백꽃 필 무렵’ 공효진, 강하늘, 그리고 그의 엄마 고두심이 원치 않았던 곳에서 대면한다. 이들의 사랑에 또 적색 신호가 켜질 듯하다. 지난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 연출 차영훈, 강민경, 제작 팬엔터테인먼트)에서 동백(공효진)에게 결혼하자 청혼한 용식(강하늘).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선 넘어야할 산이 있다. 바로 이들 사이를 반대하는 용식의 엄마 덕순(고두심)이다. 하지만 그 산은 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잘 보여도 모자랄 판에 용식이 병원에 실려 올 정도로 다쳤기 때문. 심지어 동백을 불구덩이 안에서 구하려다 부상을 당했으니 덕순의 입장에선 그녀가 점점 더 마음에 안들 수밖에 없다. 오늘(31일) 공개된 스틸컷에는 용식이 다쳤다는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온 덕순의 모습이 담겼다. 아들의 부상 소식에 세상이 무너질 것 같은 얼굴의 덕순. 인생이 ‘범죄와의 전쟁’인 용식 때문에, 이런 상황을 많이 겪었음에도 매번 그녀의 가슴은 덜컥거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백 때문이다. 어느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도 곱게 받아드릴 수 있을까. 동백을 향한 덕순의 매서운 눈빛이 이를 말해준다. 방송 직후 공개된 예고영상을 보니 덕순을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신을 잡는 동백의 손을 단칼에 내치며 매몰차게 대한 것. 게다가 “까불이 쫓아댕기다가 이 지경이 된 거였니”라며 동백의 팔자에 까불이까지 얽힌 사실을 알게 돼버렸다. 덕순의 반대가 극심해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덕순이 이렇게 용식을 유독 지극히 여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3형제 중 막내 용식은 유복자로 태어나 유일하게 아빠의 품을 느끼지 못한 아들이다. 덕순에게 용식이 아픈 손가락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는 바. 그 안엔 또 어떤 가슴 맺히는 숨겨진 사연이 있을까. ‘동백꽃 필 무렵’ 제작진은 “오늘(31일) 사랑이 굳건해진 동백과 용식이 ‘모성’이라는 큰 산과 마주하게 된다”고 예고했다. “이들에게 덕순이 어떤 입장을 보일지, 용식을 더욱 끔찍이 키울 수밖에 없었던 덕순의 사연은 무엇일지 오늘(31일) 밤 방송을 통해 지켜봐달라”고 덧붙였다. 한편, KBS2 ‘동백꽃 필 무렵’은 31일 오후 10시에 방송된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이틀 뒤 71주년… 국회서 잠만 자는 여순사건특별법

    이틀 뒤 71주년… 국회서 잠만 자는 여순사건특별법

    2000년 특별법 제정된 4·3사건과 달리 2001년부터 4차례 발의… 여전히 낮잠 96세 할머니 “남편 묘라도 좋게 썼으면” 유족연합회 “진상규명 유족 한 풀어달라”“스물다섯 살 때 남편이 성님 대신 끌려가고 나서 영영 끝이었제. 여순사건 원망 많지만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할 거여. 이왕 돌아가신 거 나라에서 시신이나 좋은 자리에다 묻어 주면 더는 소원이 없겠어.” 1948년 남편이 경찰에 붙들려 간 후 대전형무소에 있다 6·25전쟁 때 무더기로 죽임을 당한 희생자 가족이 된 홍순례(96·순천)씨는 16일 서울신문과 만나 “남편만 보고 오늘날까지 살았는데 남편 묘나 좋게 써서 그 자리에 같이 누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여순사건이 오는 19일로 71주년을 맞는다. 여순사건은 1948년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명령에 반발, 국군·미군에 맞서는 과정에서 여수·순천 등 전남 동부권 주민 1만 1131명(1949년 집계)이 희생당한 일이다. 그동안 수차례 여순사건의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여전히 아무런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여순사건의 발발 원인이 제주 4·3사건이어서 두 사건은 ‘쌍둥이’로 불린다. 하지만 2000년 ‘제주 4·3사건 특별법’이 제정된 것과 달리 ‘여순사건특별법’은 지지부진하다. 여순사건특별법안은 모두 4차례 발의됐다. 2001년 16대 국회를 시작으로 18, 19대에도 올랐으나 보수 정권의 반대와 견제로 자동 폐기됐다. 20대 들어서도 2017년 4월 정인화 의원 등 여야 의원들이 대표발의한 5개 법안이 국방위원회 반대에 부딪혔다. 이들 내용은 2년여 만인 지난 6월 상임위를 행정안전위원회로 바꾼 뒤 다시 심의가 시작됐다. 여순항쟁유족연합회는 “제주 동포를 학살하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고 분단체제를 강요한 외세와 이승만 정권에 대한 민중적 항거로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에 나서 유족의 한을 풀어 달라”며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잃은 박성태(72) 보성군 여순항쟁유족협의회장은 “살아남은 유족들은 빨갱이란 낙인에, 연좌제와 갖은 사회적 차별, 학대로 가족 해체의 고통과 억울함을 참으며 고난의 생을 살았다”며 “유복자 중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이 71세로 많은 유족이 연로해 그 한을 풀지 못한 채 눈을 감고 있다”고 통탄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동백꽃’ 강하늘, 까불이 잡았나? 궁금증 폭발 엔딩 “시청률 11.5%”

    ‘동백꽃’ 강하늘, 까불이 잡았나? 궁금증 폭발 엔딩 “시청률 11.5%”

    ‘동백꽃 필 무렵’ 강하늘이 공효진을 위해 까불이를 잡겠다고 나섰고, 용의자인 듯한 인물을 잡았다. 이에 연쇄살인마 검거에 성공했는지 궁금증을 폭발시키며, 시청률은 대폭 상승했다. 9.3%, 11.5%를 기록하며 전채널 수목극 1위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2049 타깃 시청률도 상승, 4.6%, 5.8%를 나타냈다. (닐슨코리아제공, 전국가구 기준) 지난 2일 방송된 KBS 2TV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극본 임상춘, 연출 차영훈, 강민경, 제작 팬엔터테인먼트)에서 “나는 필구든 동백 씨든 절대 안 울려요”라던 용식(강하늘)의 진심 어린 고백에 썸의 기운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러나 동백의 아들 필구(김강훈)는 둘의 달달한 모습에 심기가 불편했다. 엄마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매번 그녀를 곤란하게 했고, 도움을 필요로 할 때는 그저 지켜보기만 했기 때문. 그런 필구가 대견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용식은 “팔세인생에 고춧가루는 되지 않겠다”며 필구를 어르고 달랬다. 하지만 용식의 엄마 덕순(고두심)은 필구보다 더 막강한 상대였다. 용식을 “유복자로 낳아 도가니가 나갈 정도”로 힘들게 키웠던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더 이상 힘들게 살지 않았으면 했다. 동백과 자신 중에 양자택일을 하라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용식은 “나는 동백 씨한텐 빼박이야”라며 그녀에 대한 사랑을 굽히지 않았다. 동백에겐 이보다 더 큰 위기가 찾아왔으니, 바로 홍자영(염혜란)의 등장이었다. 남편 노규태(오정세)가 향미(손담비)와 수상스키를 타러 갔다가 외박을 했고, 이에 단단히 오해한 자영이 “나는 어제의 홍자영일 수 없었다”며 동백을 찾아간 것. 그리고 계약이 끝나면 까멜리아를 빼달라는 강수를 뒀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동백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지만, 자영은 “난 아무것도 모른다는 그 표정이 제일 거슬려”라며 연타를 날렸다. 덕순도, 집주인도 자신을 안 좋아한다며 시무룩해진 동백은 용식에게 자신을 좋아하는 맘을 접으라고 말했다. “동백이를 누가 좋아하겠어”라는 진리를 이미 어릴 때 깨달았고,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것. 첫사랑 강종렬(김지석)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종렬의 엄마는 고아인 자신을 병균덩어리 취급하며 그와 헤어지라 했다. 이런 상황에 자신의 편을 들며 같이 욕해주고, 화내주고, 공감해 줄 ‘엄마’라는 존재가 없었던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그러려니”였다. 용식은 이에 더 불타올랐다. 가뜩이나 누군가가 동백을 지켜보고 있다는 정황을 발견하고 불안했는데, 그녀마저 풀이 죽어 있으니 “불안의 싹을 파내야죠. 잡아서 알려줘야죠. 지가 감히 누구를 건드린 건지”라며 자신이 까불이를 잡겠다며 선포한 것. “눈깔이 또 왜그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화르르 타오른 용식. 그 길로 동백의 집을 향해 뛰어갔고, 또 다시 누군가의 시선을 감지했다. 용식은 도주하는 그를 거침없이 뒤쫓아 손목을 낚아챘다. 순간 동공이 떨릴 정도로 놀란 용식이 목격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동백꽃 필 무렵’ 11-12회, 오늘(3일) 목요일 밤 10시 KBS 2TV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北 ‘첨단 전술무기’로 美에 저강도 시위…군 “도발로 평가 않는다”

    北 ‘첨단 전술무기’로 美에 저강도 시위…군 “도발로 평가 않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 개발한 첨단 전술무기’ 시험을 지도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6일 보도했다. 조선중앙방송 등은 이날 “(김 위원장이) 국방과학원 시험장을 찾아 새로 개발한 첨단전술무기 시험을 지도하셨다”며 “우리 당의 정력적인 영도 아래 오랜 기간 연구개발되어온 첨단전술무기는 우리 국가의 영토를 철벽으로 보위하고 인민군대의 전투력을 비상히 강화하는 데서 커다른 의의를 가진다”고 밝혔다. 매체는 무기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거명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군 관계자는 “북한 발표를 보면 ‘(김정일이)생전에 직접 종자를 잡아주고’, ‘유복자 무기’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건 김 위원장 이전에 지시돼 현재 개발이 진행중 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일부에선 이 무기가 신형 장사정포일 것이란 추정도 나왔다. 군 관계자는 “한·미 정보당국은 나름의 테이터를 갖고 분석 중”이라며 “무기를 시험한 날짜는 ‘최근’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매체가 언급한 무기 시험이 발사를 의미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기사에도 ‘발사’란 언급은 없었다”며 “엔진 시험할 때도 출력만 보듯 말 그대로 ‘시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포탄 등이 실제로 발사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군 당국은 평안북도 신의주 인근에서 첨단전술무기 현지지도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신의주 인근 바다와 가까운 지역에 국방과학 시험장이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 매체는 같은 날 김 위원장이 신의주시 건설 총계획도와 도시 건설 전망 모형 등을 검토하며 북·중 접경도시인 신의주를 ‘현 시대의 요구에 맞게’ 개발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이 북한군의 무기 시험을 현장에서 지도한 것은 지난해 11월 29일 보도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5형’ 발사 이후 1년 만이다. 김 위원장의 군사 행보 재개는 미국에 대한 저강도 시위의 일환으로 보인다. 보도에서도 이 시험이 또다른 군사적 ‘도발’로 비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수위 조절을 한 흔적이 묻어난다. 군 관계자는 “북한 매체가 첨단전술무기 시험이라고 공식 발표한 것을 두 가지 의미로 분석할 수 있다”며 “‘첨단’은 대내용으로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군사 강국을 중단없이 지향한다는 의미이고, ‘전술무기’는 대외용 무력시위는 아니라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우리 군이 도발로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이뤄진 이례적인 군사 행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중단없는 대북제재’를 강조하며 북한을 미국 페이스대로 끌고 가려는 트럼프 행정부를 향해 ‘협상이 결렬된다면 다시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정치적 시위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협상의 주도권은 미국에 뺐겼어도 휘둘리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내 가족과 이웃에게 나는 익숙한 존재일까

    내 가족과 이웃에게 나는 익숙한 존재일까

    타인에 대한 믿음이 불가능해진 사회 모른다는 사실 인정이 ‘관계’ 첫걸음 모르는 사람들/이승우 지음/문학동네/248쪽/1만 3000원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는 가장 쉽고 위험한 방법은 이해할 수 있는 것만 이해하는 것이다. 가장 쉽지만, 이것은 사실은 이해가 아니라 오해하는 방법이기 때문에 이해하지 않는 것보다 위험하다.”(21쪽 ‘모르는 사람’)잘 알지도 못하면서 때때로 우리는 타인을 잘 안다고 믿는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남을 이해할 리 만무하다. 나와 타인의 간극을 좁힐 수 없는 한 우리는 영영 그의 진심에 가닿을 수 없을 터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이해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오해하며 산다. 신과 인간, 죄와 죄의식, 구원과 초월 등 생의 근원적인 문제를 심도 깊게 다뤄 온 소설가 이승우가 이번에는 타인에 대한 무지와 그로 인한 관계의 피상성, 타인에 대한 믿음을 불가능하게 하는 세상의 면면을 짚어냈다. 2014년 봄부터 올해까지 3년간 발표한 8편의 단편을 모은 소설집 ‘모르는 사람들’에서다. 소설 속 인물들은 대부분 타인에 대해 무지하거나 타인을 불신한다. 자신이 태어났다는 M시에 근무한 뒤 30여년 전 부모가 결혼하고, 자신이 유복자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복숭아 향기), 자신과 한국 이름이 같은 말레이시아인 찰스가 자신의 삶을 파고드는 게 신경 쓰이는 대학교수 김철수(찰스),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위해 매일 밤 자신의 집 근처를 배회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의심하는 그녀(넘어가지 않습니다) 등 타인을 이해하는 것의 난해함과 고단함을 깨닫는 군상들의 내면을 작가는 깊숙이 들여다본다. 특히 타인이라고 하기엔 오랜 시간 살을 부비며 살아온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피할 수 없는 오해를 마주한 순간 화자들은 아연해지고 만다. ‘모르는 사람’에서 ‘나’의 아버지는 11년 전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러시아 국적 보잉 747 비행기가 유럽의 한 도시에 추락한 날이다. 어머니는 그날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버지가 그 항공기에 타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또 탑승자 명단에서 아버지 회사 광고 모델로 출연한 한 여배우의 이름을 본 어머니는 비논리적인 이유를 붙여 아버지의 부재를 단정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고는 11년 만에 뜻밖의 장소인 아프리카 레소토에서 들려온다. 낯선 이에게 듣는 아버지의 지난 11년은 믿기 어려운 일들로 가득하다. 아버지는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자 ‘가장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는 그저 허망할 뿐이다.‘강의’에서 나는 아버지가 빚을 갚기 위해 돈을 빌렸던 ‘금융 백화점’에서 그가 돈 때문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게 된다. 평소 아들인 자신에게 생활의 결핍이나 부족함을 느끼게 한 적이 없었던 아버지는 사실 퇴직금을 담보로 퇴직금보다 많은 돈을 빌리면서 가정을 지탱하고 있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오자 아버지는 ‘이젠 지쳤다’라는 말과 함께 숨을 거뒀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와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하는 것으로 그의 형편을 알아채지 못한 자신들의 무신경함을 대신한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투명해 보이던 아버지야말로 우리가 가장 모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말이다. 작품 속 화자들은 타인에 대해 자신이 지닌 기억의 불완전함을 깨닫고 이내 자신 역시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과거의 기억을 돌이키며 자신을 내내 반성하는 작품 속 화자들은 결국 작가 자신이자 우리 모두일 터다. ‘모르는 사람들’은 ‘끝내 우리는 상대방을 알 수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우친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타인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또 다른 첫걸음이라는 사실도.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백승종의 역사 산책] 실학자 성호 이익과 눈먼 암탉

    [백승종의 역사 산책] 실학자 성호 이익과 눈먼 암탉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은 열심히 닭을 쳤다. 양계는 그의 생계에 적잖은 도움이 됐다. 틈만 나면 이익은 닭의 습관이며 행동거지를 꼼꼼히 관찰했다. 놀랍게도 거기에 인간이 나아가야 할 길이 있었다. 이익은 눈먼 어미 닭의 삶에서 부모의 도리, 또는 정치의 올바른 이치를 깨달았다. 이익은 자신의 소감을 ‘할계전’(瞎雞傳) 곧 ‘눈먼 어미 닭의 전기’에 담았다(‘성호전집’ 제68권). 글의 본모습을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소개해 볼 생각이다. 외눈박이 암탉은 오른쪽 눈이 멀었다. 그나마 성한 왼쪽 눈은 사팔뜨기였다. 자연히 이 암탉의 행동은 둔하고 부자유스러웠다. 늘 겁먹은 표정으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었다. 이익의 집안 식구들은 이 닭은 암탉 구실을 못할 거라고 입을 모았다. 내 가슴속에는 가난하고 병약한 이익의 젊은 시절이 외눈박이 암탉과 자꾸 중첩된다. 그런데 말이다. 외눈박이 암탉도 때가 되자 알을 품었고, 병아리들이 깨어났다. 이익은 그 병아리들을 건강한 다른 암탉에게 넘겨 주고 싶었으나, 외눈박이의 신세가 너무 가여워 그만두었다. 동병상련이었을까. 이익은 근심 어린 눈으로 외눈박이를 관찰했다. 그러고는 뜻밖의 결과에 놀랐다. 보통 암탉들은 새끼를 잘 키우지 못했다. 병아리의 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외눈박이는 단 한 마리의 새끼도 죽이지 않았다. 가장 약한 어미가 가장 훌륭한 성과를 내다니, 어찌 된 것일까. 농가의 상식에 따르면 어미 닭에게는 두 가지 능력이 필요했다. 첫째, 새끼들에게 먹이를 잘 공급해 주는 어미라야 했다. 둘째, 뜻밖의 재난이 닥쳐도 어미가 방비를 잘해야 했다. 어미 닭은 유달리 건강하고 사나워야 했다. 우리도 세상살이는 그렇게 다부져야 잘하는 줄로 믿지 않는가. 병아리를 거느린 어미 닭들은 흙을 파헤쳐 벌레 잡기에 분주했다. 날카롭던 부리와 발톱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들은 새끼를 먹여 살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하늘에는 천적인 까마귀와 솔개가 있고, 집 안에는 고양이와 개가 호시탐탐 병아리를 노렸다. 이놈들이 불시에 쳐들어오면 어미 닭들은 사생결단하고 두 날개를 퍼덕이며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 이런 필사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병아리의 6, 7할은 저세상으로 갔다. 이익의 외눈박이 암탉은 달랐다. 몸이 굼떠 멀리 나갈 수 없어서였을까. 그 암탉은 식구들의 보살핌이 있는 마당을 줄곧 떠나지 않았다. 제 힘으로는 새끼들을 제대로 먹여 살릴 수 없음이 미안해서였을까. 외눈박이는 틈만 나면 새끼들을 따뜻하게 품어 주었다. 그러자 새끼들이 알아서 제 먹이를 찾아냈다. 가난한 가장의 길이 여기에 있고, 힘없는 회사며 약소국 정치가의 나아갈 길이 여기에 있다. “자식을 기르고 보호하는 방법은 먹이를 주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중략) 양육의 요점은 잘 거느리고 정성껏 돌보는 것이다. 암탉이 새끼들을 기르는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나는 사람을 기르고 살리는 법을 알게 되었노라.” 눈먼 닭을 통해 이익은 살육이 난무한 당쟁의 시대를 헤쳐 나가는 법을 깨쳤다. 알다시피 그는 당쟁의 와중에 유복자가 됐다. 믿고 의지하던 형까지도 잃었다. 그는 한평생 소외된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이익은 날마다 책을 읽고 힘써 닭을 치며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 자신의 처지를 직시하고 매사에 삼갈 것. 지극한 마음으로 가족과 이웃을 사랑할 것. 하늘의 뜻에 부응하는 삶이 거기 있었다.
  •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으니

    [양진건의 유배의 뒤안길]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으니

    초여름이 되면서 여러 꽃들이 만발하다. 특히 장미가 화려하다. 여섯 살 연상의 이혼녀였던 조세핀은 나폴레옹의 열렬한 구애로 결혼을 하지만 황위를 이을 후계자를 낳지 못해 이혼을 하게 된다. 이후 조세핀은 장미 향기가 가득한 말메종 성에서 살지만 가시울타리에 갇힌 위리안치의 유배인 같은 신세였다. 나폴레옹이 엘바섬에 유배를 가자 조세핀은 그와 함께 가고자 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조세핀은 디프테리아에 걸려 눈을 감는다. 엘바섬을 탈출한 나폴레옹은 말메종을 찾아와 죽은 그녀를 그리며 눈물을 흘린다. 나폴레옹은 2차 유배지였던 세인트헬레나섬에서 그녀의 초상화를 보며 운명을 한다. 화려한 장미 뒤에 이런 슬픈 이야기가 있다. 권력은 화려해 보이지만 장미가 필 때와 질 때가 다르듯 그 종말은 대개 슬프고 처참하기까지 하다. 황제의 권력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사람의 좋은 일은 10일을 넘지 못하고, 붉은 꽃의 아름다움도 10일을 넘지 못하는데, 달도 차면 기우니 권력이 좋다한들 10년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장미 외에 작약이 곱게 눈에 띈다. 작약은 꽃이 아름다워 옛날부터 관상용으로 널리 아낌을 받아 왔다. 모란이 꽃의 왕이라면 작약은 꽃의 재상이라 불렸다. 그러나 ‘앉으면 모란, 서면 작약’이라는 말처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그런데 작약을 우리말로는 함박꽃이라고 부른다. 작약(芍藥)과는 관련 없지만, 크게 소리 지르고 뛰며 기뻐한다고 할 때 환호작약(歡呼雀躍)한다고 한다. 요즈음 문재인 대통령이 사람을 기쁘게 한다. 그래서 환호작약하고 싶지만 그럴 순 없어 다만 함박꽃처럼 함박웃음만은 아끼지 않고 크게 지어 본다. 작약이 곱게 핀 요즈음 특히 어울리는 웃음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가장 듣기 좋았던 소식은 스승의 날에 대통령이 행한 세월호 기간제 교사에 대한 순직 인정이다.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산성을 사수하다가 청나라에 함락되기 직전 남문에 올라가 분신 자결한 23살의 김익겸도 세월호 기간제 교사들과 비슷하게 어렸다. 김익겸은 후일 영의정에 추증되는데 이렇게 예우를 하자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 둘은 자부심으로 크는데, 특히 김만중은 최초의 한글소설을 쓰는 등 큰일을 한다. 꽃다운 나이에 순직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안하고 감동적이었음에도 그동안 국가가 예우 문제에 왜 그렇게 인색했었는지 모르겠다. 이런 답답함과 억울함을 일거에 해결해 주었으니 어찌 함박 웃지 않을 수 있을까. 스승의 날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이 계셨는데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하면서 서울엘랑 가지를 말라고 간청을 했더니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끝내 가지 않으셨다는 원로 가수 이미자씨가 전해 주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5월 스승의 꽃은 카네이션이 아니라 해당화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혜원 절간 마당에 꽃이 곱게 피었지만 다른 꽃들에 가려져 아무도 알아보지도 않고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 것을 보며 황주에서 유배살이 하던 소동파가 자신의 신세와 닮았다고 탄식했던 꽃이 바로 해당화이기도 했다. 아무도 알아보지도 않고 귀하게 여기지도 않지만 그러나 가장 귀한 것이 스승의 길이기에 스승의 꽃이야말로 해당화가 아닌가 여겨진다.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는 김춘수의 시 ‘꽃’처럼 여러 가지 꽃들이 제각각 의미 있게 다가오는 계절이다. 모두에게 참 좋은 시간들이다.
  • [열린세상] 통일한국은 세계 5대 경제대국/이호열 고려대 언론대학원 AMP 주임교수

    [열린세상] 통일한국은 세계 5대 경제대국/이호열 고려대 언론대학원 AMP 주임교수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138일에 걸쳐 453시간 45분 동안 생방송으로 이산가족 찾기 특별 프로그램이 진행된 적이 있다. 이 방송을 통해 1만 189명의 이산가족이 상봉했고 무려 78%라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후 32년이 지난 2015년 10월 20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1년 8개월 만에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렸다. 이번 상봉을 통해 결혼 7개월 만에 헤어진 남쪽의 이순규 할머니는 유복자인 65살의 아들을 대동하고 북한의 남편이자 아들의 아버지인 오인세 할아버지를 65년 만에 처음 대면했다. 6·25전쟁에 나가면서 울며 매달리는 딸들에게 “꽃신 사 주마”라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팔순이 다 돼 가는 딸들의 꽃신을 가슴에 품고 찾아간 98세의 구상연 할아버지 사연도 있었다. 이산가족이 생긴 배경은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이다.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전쟁’(Korean War)이라고 부른다. 필자의 부친도 6·25에 참전해 큰 부상을 당한 1급 상이용사다. 필자는 상이용사인 아버지가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탓에 경제적인 어려움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상의 후유증 등으로 고생하시다가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슬픔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객지에서 고학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다. 6·25에 참전해 부상을 당한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들의 슬픔과 함께 전몰 유가족의 슬픔이나 65년 만에 상봉해 며칠간 얼굴만 본 채 기약 없이 헤어져야 하는 이산가족의 슬픔은 모두 우리 민족만이 가지고 있는 아픔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바로 남북 통일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단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천문학적인 분단 비용을 치러야 하는 통일 문제에 관해 관심을 잃은 젊은이들이 많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통일 이후 독일 정부는 동서 간 경제 격차를 줄이려고 25년간 2조 유로(약 2680조원)를 투입했다고 하니 걱정이 되는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통일 비용이 통일 후 10년 동안 남한 국내총생산(GDP)의 7% 내외인 반면 통일 이득은 같은 10년 동안 남한 측만 별도로 놓고 볼 때 매년 11% 내외로, 획기적인 경제성장을 얻어 낼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다. 통일한국의 GDP가 2050년까지 독일, 프랑스, 일본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하는 2009년 골드만삭스의 보고서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1월 6일 기자회견장에서 ‘통일 대박’을 언급하고, 3월 독일 방문에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드레스덴 구상)에 따라 비(非)정치적 분야에서부터 남북 간 교류·협력 확대를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을 재확인한 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통일한국에 대한 긍정적 경제전망과 통일대박론은 북한의 지하자원 활용과 평화정착에 따른 국제 경쟁력 및 국가 신인도 상승에 따른 거시경제적 승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된다. 게다가 인적자원이 우수한 우리나라는 고부가가치 미래성장 동력의 가장 큰 엔진인 콘텐츠 산업을 비롯해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등 첨단산업에 대한 잠재력이 있다. 콘텐츠 산업이 성장하려면 1억명 이상의 시장 인구가 뒷받침돼야 한다. 단순 계산하면 남북한이 통일되더라도 통일한국의 인구는 7500만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남북한이 통일돼 중국과의 국경이 군사적으로 대치돼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북한 지역과 인접한 중국 동북 3성의 인구도 우리나라의 경제권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3억명의 시장이 형성된다. 우리나라의 강점인 콘텐츠와 IT 산업이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 생기는 것이다. 동족상잔의 비극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경험하지 못한 우리의 아이들이 성장해 세계 5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통일한국에서 살게 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 정치가 무엇인가. 국민의 마음을 읽고 국민의 아픈 곳을 어루만지며 치유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세계 무대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도록 국민적 자존심을 세워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열심히 연구하고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고달픈 육백리 끝에… 마중 나온 가을

    고달픈 육백리 끝에… 마중 나온 가을

    가을이 왔나 싶었습니다. 어서 오시라며 버선발로 뛰어 나가 맞고 싶었습니다. 한데 아직 일러 가을은 오지 않았고 대신 초가을 풍경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외씨버선길’이라고 부릅니다. 경북의 오지 ‘BYC’(봉화·영양·청송)와 강원 영월을 잇는 트레일을 일컫는 말입니다. 초가을 정취 내려앉은 그 길을 걸었습니다. 정확히는 경북 영양과 봉화를 잇는 ‘치유의 길’ 구간이었습니다. 고달팠던 여름을 털고 치유의 가을을 맞기에 이만한 곳도 없지 싶습니다. ●선비들이 숨어 살기 좋은 곳… 승무 같은 산길·숲길·들길 영양은 나라 안에서 대표적인 오지 중 하나로 꼽힌다. 구주령과 황장재, 창수령 등 사방을 둘러친 높은 산마루 안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영양의 옛 지명이 ‘선비들이 숨어 살기 좋은 곳’이란 뜻의 고은(古隱)이었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외씨버선길 ‘치유의 길’ 구간은 이처럼 험한 영양 땅을 두루 거친 뒤 봉화로 넘어간다. 외씨버선길은 봉화·영양·청송의 영문 이름 첫 글자를 딴 ‘BYC’와 영월의 두메마을들을 연결하는 트레일이다. 13개 테마코스와 2개 연결코스를 합해 전체 길이가 240㎞나 된다. 청송 주왕산 입구에서 시작해 영월 관풍헌에서 끝난다. 이번에 걸은 외씨버선길은 일곱번 째 길이다. 영양 쪽 월악산자생화공원이 들머리, 봉화 우련전(雨蓮田)이 날머리다. 길이는 8.3㎞. 체력이 달린다면 봉화에서 시작해 영양에서 마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영양 쪽 구간과 달리 봉화 쪽에선 2㎞ 남짓 오르막이 이어지다 줄곧 내리막이다. 외씨버선길 이름은 조지훈의 시 ‘승무’ 중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올린 외씨보선이여” 구절에서 따왔다.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조붓한 산길, 보일 듯 말 듯 휘어지고 돌아가는 숲길과 들길, 움직이는 듯 마는 듯 보는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승무의 춤사위 같은 길이 바로 ‘외씨버선길’이다. 오이씨처럼 볼이 조붓하고 갸름해 맵시가 있는 버선이 바로 외씨버선 아니던가. 길의 형태도 외씨버선을 닮았다. 이름의 모티브가 된 ‘조지훈 문학길’은 외씨버선길 여섯번째 구간으로 조성됐다. ●전국 최대 일월자생화공원… 일제강점기 선광장 유적에 세워 들머리는 일월자생화공원이다. ‘전국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야생화 공원’이란 자찬보다, 공원 뒤편 산자락에 흉물스럽게 남아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눈길을 확 잡아 끈다. 1939년 일제강점기 때 일월산에서 채굴한 금·은·동·아연 등 광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용화광산 선광장’이다. 나라 안에서 유일하게 남은 일제강점기 선광장 유적으로, 2006년 근대문화유산(제255호)으로 등록됐다. 1976년 폐광된 이후 독성 강한 물질들을 내뿜다가 2001년에야 밀봉됐고, 2004년부터 자생화를 심어 공원으로 꾸몄다. 광산 주변으로 목재 데크를 조성했다. 계단을 오르내리며 광산 위편에 남아 있는 탄차까지 조목조목 살필 수 있다. 용화2리는 아랫대티와 윗대티로 나뉜다. ‘대티’란 영양에서 봉화로 넘어가던 일월산 ‘큰 고개’를 뜻한다. 윗대티에서 칡밭목까지 4㎞ 가까운 그윽한 산길이 이어진다. 2009년 사단법인 생명의 숲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길’ 공모에서 ‘보전해야 할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길이다. 오래전 이 길은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재산면을 잇는 번듯한 31번 국도였다. 안내판은 “일제강점기에 일월산에서 캐낸 광물을 봉화 장군광업소로 옮기기 위한 수탈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적고 있다. 해방 이후 한동안 쓸모없이 버려졌던 도로는 1960년대 들어 일월산과 영양 지역 국유림에 대한 대대적인 산판(벌목)이 활기를 띠면서 다시 분주해졌다. 한국전쟁 판에서 흘러나온 이른바 ‘제무시’(GMC사 트럭)가 곧고 미끈한 육송을 가득 싣고 이 도로를 쉴새 없이 넘나들었다. 당시 삶의 애환과 땀방울이 조붓한 산길에 고스란히 서려 있는 듯하다. ●접신의 땅 일월산… 음기가 모여 있는 용화선녀탕 석굴 길은 일월산 기슭을 따라간다. 일원산은 무속인들이 ‘접신(接神)의 땅’이라 부르는 영험한 산이다. 계곡 곳곳에 돌탑, 기도처 등 치성의 흔적을 쌓아뒀다. 대티골은 그 가운데 무속인의 본거지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일반적으로는 용화선녀탕이 ‘기가 센’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옥황상제를 맞기 위해 선녀들이 머물던 곳이라는데, 작은 폭포가 오랜 세월 흘러내리며 만든 욕조 모양의 소(沼)가 인상적이다. 현지 무속인들이 정말 기가 세다고 믿는 곳은 따로 있다. 선녀탕 위쪽의 석굴이다. 언제,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석굴 앞에 서면 뒷목이 서늘해지고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하다. 숲길 주변에선 가을철 송이버섯이 많이 난다. 길목마다 송이 도둑을 잡기 위해 주민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킨다. 실수로 송이버섯 하나라도 채취했다간 크게 욕볼 수 있다. 간혹 입산이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영양군 일월면’과 ‘봉화군 소천면’ 경계를 알리는 옛 국도 표지판을 지나면 시멘트 포장길이다. 종착지인 우련전까지 이어진다. 시멘트길은 다소 볼썽사납지만 주변 낙엽송숲은 깊고 아늑하다. 영양엔 은근히 볼거리가 많다. 영양의 명소 두들마을에서 5㎞쯤 떨어진 곳에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933) 지사의 생가가 있다. 남 지사는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전지현 분)의 실제 모델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1895년 남편이 일본군과 싸우다 전사하자 유복자를 키우며 의병활동을 지원하던 남 지사는 1933년 일제의 무토 노부요시 만주국 전권대사를 암살하려다 중국 하얼빈에서 체포돼 그해 8월 순국했다. 입암면 산해리 강가엔 봉감모전오층석탑이 홀로 서 있다. 국보 제187호. 탑은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기단의 모습과 돌을 다듬은 솜씨, 감실의 장식 등이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정연한 축조방식 덕에 균형 잡힌 자태와 장중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청송에 ‘꽃돌’이 있다면 영양엔 ‘폭포석’이 있다. 검은 현무암 사이에 석영 등 흰빛의 광물질이 섞인 돌로, 실제 폭포를 보는 듯하다. 오래전 화산 폭발 때 용암과 섞여 올라온 석영 등이 식으며 형성됐다고 한다. 입암면 선바위관광지 안의 분재수석야생화전시관에 다양한 형태의 폭포석이 전시돼 있다.영양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이 두 곳이다. 감천 측백수림(천연기념물 제114호)은 측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 측백나무가 중국에서 도입됐다는 학설을 부인하는 중요한 학술적 증거라는데, 현재 오토캠핑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석보면 주남리엔 시무나무, 비술나무숲(천연기념물 제476호)이 있다. 시무나무 최고수령은 350년 정도다. 글 사진 영양·봉화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 서안동나들목으로 나와 34번 국도를 따라가다 안동시내, 임하호를 거쳐 청송군 진보에서 31번 국도로 갈아타고 곧장 가는 게 일반적이다. 중앙고속도로 풍기, 영주 나들목으로 나와도 비슷하다. 5번 국도를 따라 영주 거쳐 36번 국도를 타고 직진, 춘양 들머리 지나 31번 국도 만나 우회전해 일월·영양 쪽으로 간다. 봉화터널과 영양터널을 거푸 지나면 용화2리 자생화공원이 나온다. 경북북부연구원 외씨버선길 탐사팀 683-0031. ▲ 맛집 영양에선 흑염소 전문집들을 종종 본다. 흑염소 한 마리를 통으로 잡아 1박 2일 여행기간 동안 먹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맛보다는 보신에 가까워 보인다. 영양보양탕(682-9924)은 1인분 단위로 흑염소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집이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맛집이기도 하다. 흑염소 수육도 좋지만 맑게 끓여낸 탕이 일품이다. 읍내 끝자락에 있다. 한울가든(682-7300)은 가자미찜, 다슬기국 등 시골밥상을 내는 집이다. 영양군청 앞에 있다. ▲잘 곳 두들마을 석계종택(682-1480), 영감댁·병암고택(682-8050) 등에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모텔 등 일반 숙박업소는 읍내에 몰려 있다. 가족 단위라면 한화리조트 백암온천을 권한다. 영양에서 구주령 넘어가면 나온다. 온천과 숙박을 겸할 수 있다. 787-7001.
  • [단독] [광복 70주년] “폭탄 던지고 손가락 자르고… 항일투쟁엔 여자가 더 치열했다”

    [단독] [광복 70주년] “폭탄 던지고 손가락 자르고… 항일투쟁엔 여자가 더 치열했다”

    “그때는 남자, 여자라는 게 없었지. 나라 찾는 게 한시가 급한데, 그런 거 따질 여유가 어딨어. 그때는 남자보다 더 용감한 여자도 얼마나 많았는데.” 오희옥(89) 지사는 지난 7일 경기 수원시 장안구 보훈복지타운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 지사는 국가보훈처가 인정한 여성 독립유공자 248명 가운데 생존해 있는 4명 중 한 명이다. 1939년 중국 류저우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한국광복군의 전신)에서 활동했다. 할아버지인 오인수 선생은 경기 용인의 의병장, 아버지 오광선 선생은 독립군 장군이었다. 항일 독립운동가 신규식 선생의 외손녀이자 임시정부 김구 주석의 비서를 지낸 민필호 선생의 차녀인 민영주(94·여) 지사, 박기은(미국 체류) 지사, 유순희 지사 등도 생존해 있지만 3명 모두 고령으로 병석에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오 지사와 민 지사의 아들 김홍규(69)씨를 통해 항일 여성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따라가 봤다. 같은 날 서울 종로구 명륜동 집에서 만난 김씨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나오던 시대이긴 했지만 나라를 잃은 비상시국에 남녀가 어디 있었겠느냐”며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가 그리 많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은 실제로 여성들의 참여가 적었다기보다 후대 사람들이 그만큼 발굴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씨의 부친, 즉 민 지사의 남편은 ‘학병(일본군) 탈출 1호’ 독립운동가인 김준엽(2011년 별세) 전 고려대 총장이다. 신규식 선생의 부친인 의병장 신용우 선생부터 4대째 이어진 독립운동가 집안이다. 보훈처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체 독립유공자 수는 1만 3940명이다. 이 중 여성은 248명으로 1.8%에 그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여성의 삶은 어느 때보다 진취적이었다는 증언이 곳곳에서 나온다. 올 1월 보훈처가 발굴한 여성 독립운동가는 1931명이다. 그중 12.8%에 해당하는 248명만이 포상을 받았다. 입증 자료 부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최고훈장을 받은 여성은 단 1명인데 그나마도 외국인이다. 전 대만 총통 장제스의 부인 쑹메이링 여사다. 하지만 생존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은 다르다. 최근 8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암살’의 주인공 ‘안옥윤’처럼 저격수로 활약한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실제로 역사에 존재한다. 오 지사는 여자 안중근으로 불리는 남자현(1873~1933) 지사를 지칭하며 “여자들도 손가락 잘라서 천에다 혈서를 쓸 정도로 용감했다”고 강조했다. 남 지사는 독립을 염원하며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고 단지의 붉은 결의를 새겼다. 의병 전투로 남편을 잃은 남 지사는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유복자를 데리고 만주로 건너갔다. 1933년 일제 만주국 전권대사 무토 노부요시를 처단하려고 탄약을 품었지만 미행하던 일본 형사에게 체포됐다. 혹독한 고문에도 단식투쟁을 벌이다 그해 8월 순국했다. 남 지사는 국내 여성 독립운동가로서 유일하게 대통령장을 받은 인물이다. 안경신(1888~미상) 선생은 1920년 임신부의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투척했다. 함흥으로 피신했으나 이듬해 일본 경찰에 체포돼 최초로 사형선고를 받은 여성이다. 3·1운동 때 대한애국부인회를 조직해 애국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광복군(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규군)에 가담한 여성 독립운동가도 적지 않다. 오 지사는 “여성들도 나이가 차면 광복군에 들어가 활동했다”고 증언했다. 광복군은 국방부의 모태다. 민영주 지사는 광복군 제2지대 이범석 장군의 비서 및 경리로 활동했다. 민 지사 아들 김씨는 “외조부(민필호 선생)와 막역한 사이였던 이범석 장군이 ‘자네 자식이 내 자식이니 한 명을 빌려다오’ 해서 어머니가 제2지대 재무 담당으로 일하셨다”고 설명했다. 무장투쟁에 앞장선 여성 독립운동가 못지않게 후방을 책임진 여성들도 지금껏 가려져 있었다. 오 지사는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한 아버지가 상하이 임시정부의 암살 요원으로 베이징에 파견되면서 어머니 홀로 평생 우리 3남매를 돌봤다”며 “하루에 12가마의 밥을 지어 독립군들을 먹여 살렸다”고 했다. 이 밖에 1919년 2월 만주의 지린에서 발표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1335자, 도산 안창호 선생 미국 자택에서 발견, 독립기념관 보존), 1913년 평양에서 결성된 송죽회(독립군 자금 지원 등) 등 다양한 항일 독립 활동에서 주축은 여성들이 담당했다. 하지만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우리 여성 독립운동의 뜨거웠고 맹렬했던 역사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씨줄날줄] 손편지/황수정 논설위원

    종이 만드는 기술은 조선 전기에 절정을 맞았다. 그래도 종이는 늘 귀했고 비쌌다. 여염집에서 부담 없이 쓰기가 쉽지 않았다. 국립한글박물관에 가면 그 생생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의 특별기획전 ‘한글 편지, 시대를 읽다’에서 눈이 번쩍 뜨이게 하는 건 430년 전 경북 안동의 ‘원이 엄마’가 부쳐온 사부곡(思夫曲)이다. “어째서 나를 두고 먼저 가십니까. 당신은 내게 어떤 마음을 가졌었고 나는 당신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가졌나요. 이런 마음으로 내가 어떻게 자식을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 세상에서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원이 엄마는 이름 없는 필부다. 1998년 안동시내 택지 공사를 하느라 고성 이씨 집안의 묘를 이장하던 중 관 속에서 그의 편지가 발견됐다. 무덤의 주인은 이응태(1556~1586년). 유복자를 남긴 채 서른 살을 갓 넘기고 떠나는 남편의 마지막 길에 애끓는 마음을 전했던 것이다. 머리칼을 베어 신을 삼는다는 옛말은 그저 언표인 줄 알았다. 원이 엄마는 제 머리카락을 섞어 삼은 미투리 한 켤레도 편지 옆에 나란히 두었다. 종이가 귀했던 옛날에는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편지지 한 장에 모든 사연을 담아야 했다 한다. 한정된 지면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으니 편지쓰기 요령이 따로 있었다. 우선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려가면서 글자를 앉히되 내용이 혼동되지 않도록 글을 써내려가는 방향도 제각각 달리 잡아야 했다. 종이 한 장 위에 입추의 여지 없도록 한 글자라도 더 적으려 애태운 원이 엄마도 그렇게 썼다. 430년 전에 발신된 편지 앞에 오래 붙들려 있었다. 세상에 그 어떤 연서가 저렇게 간곡할 수 있을까. 무한 리필 되는 이메일, 카톡 같은 소통공간 하고는 애당초 댈 게 못 되는 얘기다. 지울 수 없는 먹글씨였으니 한 글자 한 글자에 온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그렇게 들어간 심력은 또 얼마나 크고 높았겠나. 18년을 귀양살이로 보낸 다산 정약용에게 편지가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강진 귀양살이 10년째 되던 해 다산은 멀리 부인에게서 낡은 치마 다섯 폭을 전해 받았다. 누렇게 빛바랜 천을 종이 삼아 아들에게 훈계의 편지를 적어 보냈다. 시집간 딸에게는 화목을 기원하는 시화 편지를 보냈다. 그 아들딸은 차마 삶을 비뚜로 살지 못했을 터다. 일상에서 글을 읽어 이해하는 능력이 문해력(文解力)이다. 문맹과는 다른 개념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01년 조사에서 우리나라 비문해 인구가 이미 전체 성인의 24.8%였다. 이후 공식 조사가 없었다. 액정 속에서 비문(非文)의 파편들로 소통하는 지금 우리의 문해력은 어디까지 떨어졌을지 알고 싶지도 않다.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근원적인 능력의 싹이 손편지에도 있다면, 과장일까.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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