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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천군, 월남 이상재 선생 ‘대한민국장’ 서훈 재평가 본격화

    서천군, 월남 이상재 선생 ‘대한민국장’ 서훈 재평가 본격화

    충남 서천군이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의 최고 훈격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서훈 재평가를 위한 학술적 기반 마련에 나섰다. 27일 군에 따르면 26일 학계 전문가와 관계자 등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월남 이상재 선생의 독립운동과 역사적 의의’를 주제로 전문가 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 이후 새롭게 발굴된 사료와 축적된 연구 성과 등을 토대로 선생의 독립운동 공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됐다. 포럼 참석자들은 공적조서와 첨부자료의 객관성과 신뢰성을 높일 방안과 대한민국장 서훈 재평가를 위한 향후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군은 포럼에서 논의된 학술 검증 결과와 현재 진행 중인 추가 공적 발굴 자료를 종합하고 서명운동 결과 등을 토대로 국가보훈부에 서훈 재평가를 신청할 방침이다. 선생은 1896년 서재필 등과 독립협회를 창립하고, 조선기독교청년회연합회 회장과 조선교육협회장으로 활동하면서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그는 일제에 맞서 민족교육운동을 펼쳤으며, 1927년 신간회(新幹會) 회장에 취임하여 민족 지도자로 활동했다.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추서받았다. 하지만 독립운동과 민족 계몽, 근대화에 기여한 공적과 위상에 비해 서훈 등급이 낮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군은 선생의 서훈을 1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격상하기 위해 ‘월남 이상재 선생 서훈 상향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범국민 서명운동도 전개했다. 유승광 서천군수는 “이상재 선생의 독립운동사적 위상과 공적을 충실히 규명해 그에 걸맞은 평가를 받도록 대한민국장 서훈 재평가 추진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 광무황제 강제양위 맞선 강준선…서울 출신 독립운동가 540명 발굴

    광무황제 강제양위 맞선 강준선…서울 출신 독립운동가 540명 발굴

    서울시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서울 출신 독립운동가 310명을 새롭게 발굴했다. 지난해 발굴한 230명을 포함하면 2년간 찾아낸 독립운동가는 모두 540명이다. 서울시는 지난 20일 서울시청에서 ‘서울 출신 독립유공자 포상신청 설명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독립유공자 발굴사업 최종 성과를 발표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사업은 광복 80주년을 맞은 지난해 시작됐다. 독립운동에 참여했지만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서울 출신 인물을 찾아내 국가유공자로서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국가보훈부 포상 신청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시는 당초 500명 발굴을 목표로 했지만 이를 넘어 2년간 540명을 찾아냈다. 발굴 작업은 독립운동 전문 연구기관인 국립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가 지난해 5월부터 진행했다. 연구진은 판결문과 형사사건부, 집행원부, 수형인명부, 일제가 작성한 감시 대상 인물카드 등 국내외 자료를 조사해 독립운동 행적과 공적을 확인했다. 조사 대상은 국가보훈부의 독립유공자 포상 기준에 따라 1895~1945년 독립운동에 참여한 인물로 정했다. 지역은 당시 행정구역을 기준으로 한성부(1895~1910년)와 경성부(1910~1946년), 서울특별시(1946~1951년) 출신을 대상으로 했다. 이번에 새롭게 발굴된 인물 가운데는 1907년 정미7조약 체결과 광무황제 강제 퇴위에 반대해 투쟁한 강준선 지사가 있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길원봉·주종의 지사와 비밀결사 활동을 펼친 강수성·노사석 지사 등도 포함됐다. 시는 설명회에서 서울시장 명의의 포상 신청서를 국가보훈부에 전달했다. 행사에는 서울시와 광복회 관계자, 서울지방보훈청 관계자, 독립운동가 후손 등이 참석했다. 발굴 연구를 총괄한 이태룡 국립인천대학교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은 독립유공자 포상 신청 절차 등을 설명했다. 이번 발굴이 곧바로 독립유공자 포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보훈부가 제출된 자료를 검토하고 심사를 거쳐 최종 포상 여부를 결정한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국가보훈대상자의 시립병원 장례비를 지원하고 보훈수당 지원 확대를 추진하는 등 국가유공자와 유족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고 있다. 정진우 서울시 복지실장은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시작한 서울 출신 독립유공자 발굴사업을 통해 2년간 총 540명의 독립운동가를 새롭게 발굴했다”며 “이번에 발굴된 분들이 국가보훈부의 심사를 통해 독립유공자로 합당한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후속 절차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김좌진 증손’ 송일국 “친일파가 오히려 가정적” 무슨 뜻?

    ‘김좌진 증손’ 송일국 “친일파가 오히려 가정적” 무슨 뜻?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인 배우 송일국이 “친일파들은 오히려 가정적이었다”고 언급한 과거 발언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독립운동에 모든 것을 바친 이들의 가족은 생계와 교육에 어려움을 겪은 반면 친일파 자손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취지다. 송일국은 지난 5월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 출연해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살아오며 느낀 책임감과 가족사를 털어놨다. 송일국은 김좌진 장군에 대해 “밖에서는 영웅이지 않느냐”면서도 가족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상황이 달랐다고 말했다. 그는 “홍성에 99칸짜리 대저택에 사셨다. 지금으로 치면 웬만한 중견기업 대표”라며 “그런데 하루아침에 재산을 다 처분하고 나눠주고 집은 학교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족들은 떵떵거리고 살다가 갑자기 길에 나앉게 된 것과 똑같은 상황인데 본인은 만주로 가셨다”며 남겨진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송일국은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처했던 현실을 친일파 후손들과 비교했다. 그는 “아이러니한 게 그러다 보니까 친일파들은 오히려 가정적이었다”며 “그래서 교육을 잘 받고 유학도 보내고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정작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공부는 고사하고 먹고살기도 힘들었다”며 “우리가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잘해야 하는 이유가 그래서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송일국은 자신 역시 김좌진 장군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주는 책임감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삼둥이 아들들이 조상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아직은 잘 모른다. 저도 사실 30살이 넘어서 그런 것에 대한 의미를 알게 됐다”고 답했다. 이어 “‘적어도 할아버지 이름에 먹칠하는 행동은 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며 자신도 아들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밝혔다. 결혼 후 장모와 함께 국립현충원을 찾았던 일화도 소개했다. 송일국의 장인은 6·25전쟁 당시 전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일국은 장모가 작은 묘비 앞에서 자신의 아버지라고 소개했다며 “김좌진 장군님 같은 영웅도 있지만 이름 모를 수많은 병사가 있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걸 잊지 말라고 하셨는데 전율이 일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의 희생으로 우리나라가 생겼는데 우리는 제 할아버지 같은 영웅들만 생각한다”며 “그 밑에 이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희생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몽준 이사장, 전태일이소선재단에 5억 기부

    정몽준 이사장, 전태일이소선재단에 5억 기부

    정몽준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장이 노동운동가 전태일(1948~1970) 열사와 어머니 이소선(1929~2011) 여사의 뜻을 잇는 장학사업에 사재 5억원을 기부했다.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은 지난 11일 정 이사장으로부터 장학기금 5억원을 기부받았다고 19일 밝혔다. 재단은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여사의 뜻을 이어 매년 장학생 약 15명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번 기부는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 전순옥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 이사가 지난 2월 아산재단의 장학증서 수여식에서 축사한 것을 계기로 이뤄졌다. 전 이사는 당시 “장학금은 단순한 학비 지원을 넘어 한 사람의 삶에 보내는 응원”이라며 전태일이소선장학재단의 설립 취지와 활동을 소개했다. 이에 정 이사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는 아산재단 설립 취지가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여사가 강조한 사랑·연대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보고 사재 출연을 결정했다고 장학재단은 설명했다. 
  • 홍지민 “아버지, 16살부터 독립운동…알려지지 않은 어린 독립운동가 너무 많다”

    홍지민 “아버지, 16살부터 독립운동…알려지지 않은 어린 독립운동가 너무 많다”

    뮤지컬 배우 홍지민이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 홍창식 선생을 향한 진한 그리움과 존경심을 표했다. 최근 유튜브 채널 ‘지금당장 홍지민’을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홍지민은 최근 진행된 KBS 2TV ‘불후의 명곡’ 광복절 특집 녹화를 떠올리며 “이맘때쯤 되면 친정아빠 생각이 많이 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부친이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을 한 사실을 언급하며 먹먹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이를 키워 보니 어떻게 16살 때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싶다”며 “아버지가 16살 때 백두산회라는 독립운동 단체에 가담하셨다. 일본으로 향하는 군수 물자를 폭파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셨다”고 설명했다. 홍창식 선생은 1942년 백두산회에 가입해 함경북도 성진 일대에서 항일 활동을 전개하다 1943년 일제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아 김천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고문을 버텨 내고 감옥에서 마침내 해방을 맞이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 바 있다. 홍지민은 부친이 해방 이후 중풍으로 왼쪽 신체가 마비됐음에도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을 위한 헌신을 이어 갔다고 전했다. 그는 “왼쪽이 다 마비됐음에도 쓸 수 있는 오른손으로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의 서류와 자료를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작성하셨다”며 “독립운동을 했지만 자료를 제출하지 못한 분들이 많았다. 글씨를 모르는 분들도 많고”라고 안타까웠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며 “너무나 자랑스럽고 위대하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내가 20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너무 어려서 그 위대한 업적의 의미를 깊이 알지 못했다”며 “‘우리 아빠가 너무 자랑스럽다, 멋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더 많이 해 드리지 못한 것이 늘 아쉽고 속상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살아 계셔서 내가 방송하고 공연하며 여우주연상을 받는 모습까지 다 지켜보셨다면 정말 좋아하셨을 텐데”라고 말하며 “아빠가 너무 그리운 광복절이다. 아빠 보고 싶고, 사랑하고, 너무 자랑스럽다”고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홍지민은 “너무나 많은 분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평범한 일상이 허락된 것”이라며 “그저 얻어진 것이 아님을 기억하며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며 영상을 마무리했다.
  • 동대문구, 가족과 함께 배우는…양성평등 기념행사

    동대문구, 가족과 함께 배우는…양성평등 기념행사

    서울 동대문구는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다음달 5일 구청에서 ‘2026년 양성평등주간 기념행사’를 개최한다고 19일 밝혔다. ‘다름을 잇다, 함께 빛나다’를 주제로 열리는 행사는 가족관계 속 양성평등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 가족 구성원이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에 함께 참여할 기회를 제공한다. 1부에서는 동대문구 소년소녀합창단의 공연에 이어 가족뮤지컬 ‘우리집 체인지업(Change-up)’을 선보인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의 역할을 바꾸면서 겪는 좌충우돌과 그 과정에서 상대를 이해하는 모습을 초등학생 아들의 눈높이로 그린 어린이 창작 뮤지컬이다. 2부에서는 아버지합창단과 여성합창단의 공연과 양성평등주간 기념식이 열린다. 기념식에서는 지역사회의 양성평등 문화 확산에 기여한 유공자 8명에게 구청장 표창을 수여한다. 이어 이호선 교수가 ‘나와 가족을 위한 양성평등’을 주제로 명사 특강을 진행해 가정 내 양성평등의 필요성과 일상 속 실천 방법을 소개한다. 이와 함께 국립여성사박물관 순회 전시 ‘역사 속 여성인물’로 독립운동가·화가·변호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한 여성들의 삶과 활동을 조명한다. 범죄 예방 캠페인, 캘리그래피, 키캡 꾸미기, 페이스 페인팅, 풍선 아트 등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가족뮤지컬과 명사특강 참여 신청은 동대문구 홈페이지의 온라인접수 메뉴에서 할 수 있다. 잔여 좌석이 발생하면 행사 당일 현장 접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최동민 구청장은 “이번 행사가 양성평등의 가치를 일상에서 함께 생각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5주년 현충원 참배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5주년 현충원 참배

    - 광복 81주년 맞아 국립대전현충원 방문…“독립 영웅 숭고한 뜻 계승해야”- 2021년 유해 봉환 특사단장 인연…우원식 기념사업회 이사장 주관 행사 참석 최근 과거사와 역사적 진실에 대한 시민들의 자발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평생을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도 극심한 가난과 척박한 삶을 감내해야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청렴 정신이 새삼 주목받는 가운데, 5년 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직접 모셔 온 황기철 전 국가보훈처장(더불어민주당 진해지역위원장)이 광복 81주년을 맞아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장군의 숭고한 독립운동 정신을 기렸다. 황 위원장은 지난 15일 우원식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주관으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범도 장군 귀환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홍범도 장군 묘역을 참배했다. 황 위원장은 국가보훈처장이던 2021년 대통령 특사단장을 맡아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 안장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광복절인 8월 15일 국내로 봉환한 주역이다. 이국땅에서 극장 수위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 가면서도 오직 조국 광복만을 좇았던 장군의 애국과 청렴의 생애는, 올바른 역사를 찾으려는 시민들에게 깊은 성찰을 안겨 준다. 이날 참배를 마친 황 위원장은 “오늘은 광복 81주년이자 2021년 홍범도 장군님을 카자흐스탄에서 대한민국으로 모셔 온 지 5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라며 “당시 특사단장으로서 국민적 환영 속에 장군님을 모시고 왔던 벅찬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이국땅에서 평생의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헌신하신 장군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며 “최근 시민들께서 스스로 역사적 진실에 관심을 가지시듯, 우리 후손들이 장군의 청렴하고 숭고한 뜻을 올바르게 기억하고 이어 가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제30대 해군참모총장 출신인 황기철 위원장은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을 지휘해 피랍 선원 전원을 무사히 구출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실종자 구조를 위해 소신 있게 통영함 투입을 지시했으며, 이후 통영함 납품 비리 혐의로 기소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2016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으며 제복의 청렴성을 입증했다.
  • “친일파가 내 조상이라니”…하영 ‘증조부 논란’에 검색했다가 ‘화들짝’

    “친일파가 내 조상이라니”…하영 ‘증조부 논란’에 검색했다가 ‘화들짝’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이 증조부 안상호(1872~1927)의 ‘친일 의혹’에 대해 공식 사과한 가운데, 자신의 조상 중에 친일파와 독립유공자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이트가 등장해 네티즌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17일 정보기술(IT) 업계 등에 따르면 한 개인 개발자가 만든 ‘친일파 스캐너’라는 사이트는 이용자가 자신의 성과 본관을 입력하면 조상 중에 있는 친일반민족행위자와 독립유공자를 검색해 보여주는 기능을 제공해 네티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사이트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이 보유한 독립유공자 공적 정보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보고서에 수록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1006명)을 기반으로 한다. 또한 이들 인물의 구체적인 신상과 독립운동 업적 또는 친일 행위, 정부 서훈 등도 정리해 보여준다. 배우 하영의 성과 본관인 ‘순흥 안씨’를 입력하면 도산 안창호 선생과 안중근 의사 등 독립유공자 25명과 함께 친일반민족행위자로는 하영의 증조부인 안상호와 애국가를 작곡한 등 3명이 검색된다. 다만 같은 본관이라도 해당 인물과 이용자 간의 직계 혈연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사이트 측은 설명했다. 사이트 측은 “하나의 본관에는 수십만 명 이상의 구성원이 있을 수 있다”면서, 연좌제를 금지한 헌법의 취지에 따라 “조상의 행적은 후손 개인의 책임과 무관하다”라고 강조했다. 해당 사이트에서 자신의 성과 본관을 검색한 뒤 결과를 공유하는 네티즌들도 적지 않다. 회사원 권모(43) 씨는 ‘친일파 스캐너’에 자신의 성과 본관인 ‘안동 권씨’를 검색했다가 ‘을사오적’ 중 한 명인 권중현(1854~1934)을 비롯한 친일반민족행위자 5명의 이름을 발견했다. 권중현은 1905년 농상공부대신으로 을사조약 체결에 앞장섰으며,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고 중추원 고문 등으로 활동했다. 다만 ‘한국인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상해임시정부 등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권기옥(1901~1988) 여사 등 독립유공자 30명도 동시에 검색됐다. 권 씨는 “을사오적 중 한 명이 조상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역사책에서 봤던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또한 내 조상이라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하영의 ‘증조부 논란’ 이후 광복절과 맞물려 독립유공자 후손 연예인 등이 재조명되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조상 찾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네이버 데이터랩에 따르면 하영의 증조부를 둘러싼 의혹이 점화되기 직전인 지난 9일과 비교해 광복절 당일인 지난 15일 네이버에서의 ‘조상찾기’ 검색량은 100배 급증했다. ‘친일인명사전’은 76배, ‘족보’도 5배 증가했다. 유료(1만원) 앱인 ‘친일인명사전’은 이달 들어 150건 이상 다운로드됐는데 이는 전월 대비 140% 넘게 증가한 것이다. 성씨와 본관, 조상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홈페이지 ‘뿌리를 찾아서’는 지난 15일 네티즌들의 접속이 몰려 한때 마비되기도 했다.
  • 교육 독립운동가 유적지 탐방 안민석, ‘현장 체감형 역사교육 비전’ 선포

    교육 독립운동가 유적지 탐방 안민석, ‘현장 체감형 역사교육 비전’ 선포

    안민석 경기도교육감이 11일부터 15일까지 진행한 만주 및 연해주 일대의 교육 독립운동가 유적지 탐방 여정을 마치고 ‘역사교육 대전환’을 공식 선포했다. 경기도교육청 역사 탐방단은 1일 차 하얼빈 안중근 의사 기념관 방문을 시작으로 2일 차 ‘백산 안희제 선생’ 발해농장 유적지, 3일 차 ‘페치카 최재형 선생’ 유적지와 고려인 학교, 4일 차 ‘보재 이상설 선생’ 유허비와 신한촌 기념비 등을 찾아 국외 교육 독립운동가의 숨은 거점들을 답사했다. 탐방을 마무리 짓는 자리에서 안 교육감은 이번 여정의 주요 성과를 정리하고, 탐방에 참가한 교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수집한 자료와 소회를 바탕으로 향후 역사교육의 구체적 추진 방향을 논의했다. 탐방을 통해 확보한 현장 독립운동 유적지의 기록과 영상, 현장 데이터는 향후 학교 역사교육 현장에서 활용할 역사교육 아카이브 구축에 활용될 예정이다. 또한 현지 고려인 학교 등과 구축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학생과 교원 대상 역사 탐방 및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확대 추진할 계획이다. 안민석 교육감은 “하얼빈에서 연해주 신한촌까지 이어진 4박 5일간의 여정은 단순한 유적지 탐방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한 새로운 역사교육의 이정표를 세우는 과정”이라며 “독립운동가들이 꿈꿨던 교육의 가치를 현장 중심의 역사교육에 반영해 아이들이 올바른 역사관과 민족적 자부심을 가진 인재로 성장하도록 역사 교과서와 역사교육의 대전환을 이뤄내겠다”라고 밝혔다.
  • 밤하늘에 독립운동가

    밤하늘에 독립운동가

    제81주년 광복절인 15일 부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수백 대의 드론이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밤하늘에 수놓고 있다. 이날 광안리에서는 ‘광복절, 대한민국의 빛을 되찾은 날’을 주제로 ‘드론 라이트쇼’가 열렸다. 부산 연합뉴스
  • 빽가 “외증조부, 진희창 선생”…22년만에 밝힌 이유

    빽가 “외증조부, 진희창 선생”…22년만에 밝힌 이유

    그룹 코요태의 멤버 빽가가 독립운동가 진희창(1874∼1933) 선생의 후손이라고 소개했다. 2004년 데뷔 이후 22년여 만이다. 빽가는 제81주년 광복절인 15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빽가언니’에서 “독립운동가 경림 진희창 선생이 나의 외증조부”라고 밝혔다. 그는 진희창 선생에 대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상하이에 있을 때 재정과 운영을 뒷받침하셨던 중요한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백범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 하권에 외증조부의 이름이 나온다. ‘진희창 같은 가까운 동지들이 미운 밥을 주지 않고 나를 도왔다’고 쓰여 있다”고 전했다. 진희창 선생은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나라를 되찾기 위해 1911년 상하이로 망명했다. 영국인이 운영하던 전차회사의 감독으로 일하면서 고국에서 일제를 피해 상하이로 건너오는 독립투사들에게 비밀 거처, 자금 등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뒤, 같은 해 4월 10일 상하이에 모인 애국지사들은 제1회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를 열어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임시헌장을 선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했다. 진희창 선생은 1920년 상하이대한인거류민단에서 의사원으로 활동하면서 교민 사회를 지원하고, 1926년 임시정부경제후원회를 조직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빽가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로 한다는 역사적인 첫 출발에 외증조부께서 함께하셨다. 밤낮없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을 뒷바라지하다가 결국 광복을 보지 못하고, 1933년 2월 상하이에서 순국하셨다”고 부연했다. 2004년 데뷔한 빽가가 외증조부에 대해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빽가는 “(방송에서) 우리 외증조부께서 독립운동가라며 자랑거리로 삼기에는 그 헌신이 너무나도 크고 무거웠다. 외증조부님의 업적에 혹시라도 얹혀가는 느낌이 들까 봐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그동안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부터 독립운동가 후손분들이 경제적으로 어렵게 산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예전에는 내가 누구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있게 됐다”며 “독립운동가 후손 중에 형편이 어려우시거나 도움이 필요하신 분이 계시면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 “친일파 후손에 자리는 없다”…소재원 작가, 하영 저격 후 파격 선언

    “친일파 후손에 자리는 없다”…소재원 작가, 하영 저격 후 파격 선언

    배우 하영의 ‘증조부 친일 행적’ 논란이 연예계를 달군 가운데 이를 공개 비판했던 소재원 작가가 파격적인 선언을 내놨다. 앞으로 자신의 작품에 독립운동가 후손을 우선 캐스팅하겠다며 친일파 후손과의 명확한 차별화를 공언하고 나선 것이다. 소 작가는 지난 1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국민배우 최불암을 언급하며 독립운동가 후손에 대한 예우를 강조했다. 그는 “최불암 선생님의 아버님은 독립운동가 최철 선생님이시다. 명문 가문의 자손답게 국민 아버지로 오랜 시간 우리 곁에 계셨다”며 “선생님의 마지막 드라마 출연작이 제 작품이었고, 직접 모셔 왔던 기억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앞으로 제 작품에는 무조건 독립투사 후손분들이 출연하실 것”이라며 “적어도 후손들이 ‘조상 덕 봤다’는 이야기는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독립투사 후손들에 대한 당연한 예우와 존경은 친일파 후손들과 반드시 차별돼야 한다”고 했다. 소 작가의 이번 파격 선언은 최근 배우 하영을 향한 일갈 이후 나왔다. 앞서 하영은 한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고 밝혔으나, 증조부가 일제강점기 친일 단체인 대정친목회 평의원으로 활동한 의사 안상호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소 작가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집안 자랑”이라며 “살다 살다 친일파 조상 자랑질까지 보게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한편 소 작가는 소병호 화백의 손자로, 영화 ‘터널’, ‘소원’, ‘비스티보이즈’의 원작 소설을 집필하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 10만원권 나오면 진짜 안중근 의사?… 광복절에 다시 떠오른 ‘화폐 도안’ 제안

    10만원권 나오면 진짜 안중근 의사?… 광복절에 다시 떠오른 ‘화폐 도안’ 제안

    광복절을 맞아 고액권 지폐 도안 인물을 독립운동가로 바꾸자는 논의가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다시 불붙고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이 광복절인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한 시민의 게시물을 별다른 설명 없이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게시물에는 10만원권 도안에 각각 유관순 열사와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합성한 이미지가 담겼다. 게시물 작성자는 “광복 81주년, 신사임당이 어떤 위대한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게 더 맞지 않나 싶다”며 현행 화폐 도안 인물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독립운동가를 화폐 도안에 담자는 주장은 새로운 이슈가 아니다. 2007년 한국은행이 5만원권과 10만원권 화폐 도안 인물 후보를 선정할 당시에도 백범 김구 선생과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등 주요 독립운동가들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그러나 당시 한은은 양성평등 의식 제고와 여성의 사회 참여를 촉진한다는 이유 등으로 5만원권 인물로 신사임당을 최종 확정했다. 이후 10만원권 발행 계획은 정부 논의 과정에서 무산된 바 있다. 이를 두고 시민들과 누리꾼 사이에서는 찬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광복의 의미를 고려하면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헌신한 독립운동가가 고액권의 얼굴이 되는 것이 타당하다”며 호응을 보였다. 반면 일각에서는 “이미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정착된 화폐 도안을 정치적 메시지나 소셜미디어 이슈에 맞춰 매번 바꾸는 것은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과 혼란을 초래한다”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광복절마다 반복되는 화폐 도안 인물 논란은 단순한 인물 교체 요구를 넘어,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역사적 가치와 상징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 “광복은 새로운 출발”…천안시·독립기념관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

    “광복은 새로운 출발”…천안시·독립기념관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

    충남 천안시는 15일 독립기념관에서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을 열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천안시와 독립기념관이 공동 주최한 이번 경축식에는 장기수 천안시장과 김희곤 독립기념관장을 비롯해 보훈단체 회원, 시민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경축식은 자료 기증자 감사패 전달에 이어 기념사, 경축사, 대표 학생들의 ‘미래세대의 다짐’, 천안시립무용단의 경축공연, 광복절 노래 제창,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됐다. 이날 독립기념관은 광복 81주년을 맞아 복합전시공간으로 새롭게 조성한 제7관 ‘기획전시관’을 15일 재개관했다. 장기수 시장은 “광복은 굳건한 신념과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헌신이 맺은 결실이자 새로운 출발이었다”며 “유관순 열사와 이동녕 선생을 배출한 애국충절의 고장으로서 독립의 가치를 천안의 미래로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김희곤 독립기념관장은 “대한민국이 거둔 광복은 치열하게 펼친 독립운동의 고귀한 결실”이라며 “올해 광복절 문화행사 주제를 ‘나의 소원, 평화의 문화’로 정하고, 제7관을 다시 열면서 ‘백범의 생각과 뜻, 온 세상을 비추다’ 제목으로 선생의 겨레 사랑 정신을 그려냈다”고 강조했다.
  • “끼니 걱정하고 단칸방서 홀로 사망”…송혜교·서경덕 주목한 어느 독립운동가의 지독한 삶

    “끼니 걱정하고 단칸방서 홀로 사망”…송혜교·서경덕 주목한 어느 독립운동가의 지독한 삶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배우 송혜교가 제81주년 광복절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박자혜 지사의 일생을 다룬 다국어 영상을 새롭게 선보였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시리즈의 일곱 번째 작품이다. 서 교수는 15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자신이 기획하고 송혜교가 후원한 4분 분량의 영상을 전 세계 누리꾼에게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한국어와 영어 내레이션을 함께 수록해 국내외 시청자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영상은 박 지사의 숨은 희생을 상세히 담아냈다. 어린 시절 궁에 입궐해 조선의 마지막 궁녀로 살았던 박 지사는 1910년 궁을 나온 뒤 신식 교육을 받고 조산사 자격을 취득하며 주체적인 신여성으로 성장했다. 이후 1919년 조선총독부의원 간호사로 재직하던 중 3·1운동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민족의 현실에 눈을 떴고, 간호사 독립운동 단체인 ‘간우회’를 조직해 본격적으로 투쟁에 나섰다. 중국으로 망명한 박 지사는 단재 신채호 선생과 결혼하며 독립운동가의 아내이자 동지로서 고난의 길을 함께 걸었으며, 고국에 돌아와서도 의열단 나석주 의사의 동양척식주식회사 폭탄 투척 의거를 뒤에서 도우며 독립을 향한 의지를 이어갔다. 그러나 현실은 혹독했다. 일제의 집요한 감시 탓에 운영하던 산파원 문을 닫아야 했고, 당장 한 끼를 걱정해야 할 만큼 극심한 생활고가 이어졌다. 남편의 옥중 순국과 자식의 죽음이라는 잇따른 비극 속에서도 독립에 대한 절절한 염원을 품었던 박 지사는 결국 단칸방에서 홀로 생을 마감했다. 서 교수는 그동안 정정화, 윤희순, 김마리아, 박차정, 김향화, 남자현 등 대중에게 생소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다국어 영상으로 알리는 작업을 이어왔다. 그는 “앞으로도 더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에 관한 다국어 영상을 시리즈로 제작해 국내외에 꾸준히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편 서 교수와 송혜교는 지난 15년 동안 세계 대한민국 독립운동 유적지 40여곳에 한국어 안내서와 한글 간판, 독립운동가를 새긴 부조 작품 등을 기증하는 활동도 함께 펼쳐왔다.
  • 日에 ‘진정성’ 언급한 李대통령 “새로운 60년을 일본 정부와 함께 열어가길 기대”

    日에 ‘진정성’ 언급한 李대통령 “새로운 60년을 일본 정부와 함께 열어가길 기대”

    이재명 대통령은 광복절인 15일 “한층 두터운 신뢰 위에서 보다 ‘가깝고도 먼 이웃’이 아니라 ‘가깝고도 또 가까운 이웃’으로서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60년을 일본 정부와 함께 열어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 공존이 선택이 아닌 의무인 것처럼 앞마당을 같이 쓰는 이웃과의 미래지향적 관계 역시 세계 무대에서 더 큰 책임과 역할을 해내는 것으로 시작하겠다”며 이처럼 말했다. 이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반성을 직접 언급하기보다는 피해자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진정성’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년 동안 한일 양국은 활발한 셔틀 외교를 이어가며 신뢰의 기반을 다져왔다”며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의 성과가 흔들림 없이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두 나라 국민 간의 굳건한 신뢰가 필요하다”며 “신뢰란 상대의 아픔을 이해하고 서로에게 공감하는 진정성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까지도 과거의 상처와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계시다”며 “한일 관계의 역사에는 갈등도 있었지만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처럼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진정성을 토대로 미래를 함께 열고자 했던 노력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한일 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우리가 만들어 갈 새로운 한일관계의 빛은 역사의 그늘 속에서 여전히 아픔을 감내하고 계신 분들께 따뜻한 온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저는 이 자리에서 북의 체제를 존중하고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으며 일체의 적대 행위를 하지 않겠다”고 밝힌 이 대통령은 ▲서로를 존중하는 포용적 평화 공존 ▲싸울 필요가 없는 안정적 평화 공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책임 있는 평화 공존 등 한반도 평화에 대한 3가지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남과 북이 서로를 존중하고 불필요한 대결을 멈춰야 한다”며 “서로가 인식과 규범, 제도에서부터 적대성을 하나씩 줄여 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또 “한반도 주변의 안보 상황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며 선제적이고 지속적인 평화 조치를 취해 나가겠다”며 “북측의 호응을 이끌어 안정적인 한반도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핵 없는 평화를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전쟁을 종식하고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평화 체제로 바꾸는 여정에 나서겠다”며 “서로에 대한 상호 위협 의사를 내려놓고 아주 오래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당사자들 간의 논의를 시작하자”고 했다. 이어 “이를 통해 북의 핵 능력 고도화를 멈출 실효적 방안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예우를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생존 애국지사와 독립유공자들을 더 각별하게 예우하고 미서훈 독립운동가에 대한 발굴과 포상을 더욱 확대해 나가겠다”며 “독립운동의 가치가 우리의 일상에 더 깊이 뿌리 내리도록 국내외 독립운동 기념 시설을 적극 조성하고 자랑스러운 역사의 발자취를 반드시 미래 세대에 더 널리 전하겠다”고 했다. 또 지난 6월 2일 공포된 ‘친일재산귀속법’을 언급하며 “친일 반민족 행위자가 부당 축적한 재산을 조사·환수해 역사에 대한 확실한 책임을 반드시 묻겠다”고 했다. 이어 “국가에 귀속된 친일 재산을 더욱 책임 있게 관리해 그 재원이 독립유공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와 지원에 온전히 쓰일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타협과 공존의 정치를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안의 장벽부터 허물어야 한다”며 “차이가 적대가 되어선 안 되고 증오와 배척, 갈등이 국가의 전진을 가로막게 해서도 안 된다”며 “세계 경제의 지형이 뒤바뀌는 국가대항전 앞에서 국민과 정부, 중앙과 지방, 기업과 노동자 모두 원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주권정부부터 타협과 공존의 정치에 앞장서겠다”며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공동의 해답을 찾고 경쟁하면서도 국가의 미래 앞에서 힘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이날 광복절 경축식에는 독립유공자 유족과 국가 주요 인사, 정당·종단 대표, 주한외교단 및 시민과 학생 등 3000여명이 함께 했다. 이 대통령은 광복절 포상 대상자로 선정된 283명 가운데 여성 계몽과 임시정부 지원에 힘쓴 백범 김구 선생 부인인 고 최준례 여사를 비롯한 독립유공자 다섯 분의 후손에게 직접 포상을 수여했다.
  •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해” 김선태 직접 찾은 후손의 집…1천만원 기부 [이슈픽]

    “독립운동 하면 3대가 망해” 김선태 직접 찾은 후손의 집…1천만원 기부 [이슈픽]

    공무원 ‘충주맨’ 출신 유튜버 김선태가 광복절을 앞두고 독립운동가 후손을 직접 찾아가 이들의 어려운 현실을 조명하고 1000만원을 기부했다. 14일 김선태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독립유공자 후손 홍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 김선태는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충북 충주시 항일독립운동역사관을 찾았다. 이날 충북북부연합지회 윤경로 광복회장은 자신의 조부가 독립운동가 윤주영 선생이라고 밝히며 “1919년 충주 신니면 용원장터에서 3·1 만세운동을 전개한 주동자의 한 분이다. 사실상 증조할아버지 윤인구가 주동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서당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태극기를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가져오게 했다. 1919년 4월 1일 용원장터 장날 면민 200명이 모인 가운데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면서 “총 9분이 일제에 의해 감옥생활을 하셨다. 수없이 고문을 당해 병을 앓다가 41세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전했다. 보상금에 대해 묻자 “독립운동에 서열이 있다.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건국포장, 대통령 표창 등 7단계로 돼 있다”면서 “대통령 표창의 경우 한 달에 98만원을 받는다”고 밝혔다. 김선태는 “조금 약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윤 광복회장은 “그걸 가지고 생활하기에는 어려운 분도 많이 계시고 (1유공자 1유족 원칙 등으로 인해) 그나마도 못 받는 분도 많이 있다”면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처한 현실을 언급했다. 이어 “제가 관할하는 6개 시군에 96명의 광복회원이 있는데 그중에 10명이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 등급자가 계시다”면서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어렵게 산다”고 전했다. 그는 “나라를 위해서 희생했거나 헌신하신 분들에게는 예우를 더 확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태는 실제 어려운 상황에 놓인 후손의 사례를 물었고 윤 광복회장은 “유인석 의병대장의 고손이자 유제함 의병의 증손이 충주시 엄정면에 살고 있다”면서 “이분은 집이 없어서 파옥된 남의 집을 수리해 93세 어머니와 1급 장애 여동생과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를 들은 김선태는 “그분을 직접 찾아뵙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도움을 드리고 싶다”며 충북북부연합지회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이어 김선태는 윤 광복회장이 언급한 유인석 의병대장의 고손인 유해규씨의 집을 찾았다. 김선태는 “죄송스럽고 감사하다”면서 자신의 사비로 준비한 현금을 전달했다. 유씨의 집을 나선 김선태는 “되게 훌륭한 일을 하신 건데 단순히 어려운 것만 부각이 될까 봐 죄송하다”면서도 “제 판단에는 도와드리는 게 더 낫다고 생각을 했다. 꼭 금전적인 것뿐만 아니라 뜻을 기리는 의미로 드렸다”고 강조했다. 해당 영상에는 독립유공자 후손들이 처한 현실을 조명한 김선태의 행보에 공감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아울러 국가를 위해 희생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보훈 지원을 확대하고 예우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 “독립운동가 후손, 가난 대물림”…하영 ‘집안 자랑’에 “비통해” 토로한 女아나운서

    “독립운동가 후손, 가난 대물림”…하영 ‘집안 자랑’에 “비통해” 토로한 女아나운서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이 증조부 안상호(1872~1927)의 ‘친일 의혹’에 대해 공식 사과한 가운데,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곽민선(34)이 하영의 ‘집안 자랑’에 “비통하고 먹먹하다”라고 토로했다. 곽민선의 증조부는 애국지사 곽병도(1880~1968) 선생이다. 곽민선은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글에서 “최근 한 방송에서 누군가의 후손이 증조부를 자랑스러워했다는데, 비통하고 먹먹한 마음이 들었다”라고 털어놓았다.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하영이 최근 방송에서 “고종을 진료했다”며 증조부 안상호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것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크면서 알게 된 게 있다. 독립유공자 또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라며 “내 증조부는 전 재산을 군자금에 쓰고 독립운동을 이어가다 투옥되셨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남은 가족들도 재산을 몰수당하며 일제의 감시와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고 한다”면서 “어릴 적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왜 가난해 아버지에게 짐 같은 존재로 남으신 건지, 잠시라도 생각했던 적이 있다”라고 토로했다. 곽민선은 “그녀와 다른 마음이었던 내가 죄스러워 한참 눈물이 났다”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두 딸에게 최선을 다하셨고, 우린 운 좋게도 사랑 속에서 행복하게 자라났다”면서 “오늘날 누리는 이 삶 역시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님을 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광복절을 앞두고 여느 때와는 다른 슬픔과 죄책감을 느낀다. 특히 잘못된 부끄러움을 지녔던 과거의 내가 부끄럽다”면서 “선조들이 지키고자 했던 뜻을 마음 깊이 새기며 살아가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곽병도 선생은 1910년대 전국 각지에서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펼치다 일제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19년에는 조선13도총간부에서 군자금을 모으는 임무를 맡아 활동하다 재차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으며, 2002년 10월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됐다. 곽민선은 e스포츠와 축구 등 스포츠 분야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유명세를 쌓아왔지만, 그간 자신이 독립유공자의 후손임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는 지난해 12월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송민규(FC서울)와 결혼했다.
  • ‘친일파의 버려진 후손’ 고백한 가수…“이완용 통역관이었다”

    ‘친일파의 버려진 후손’ 고백한 가수…“이완용 통역관이었다”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이 증조부 안상호(1872~1927)의 ‘친일 의혹’에 대해 공식 사과한 가운데, 앞서 스스로 ‘친일파 후손’임을 고백한 밴드 ‘양반들’ 보컬 전범선(35)이 가문의 내력을 알게 된 뒤의 심경을 회고했다. 14일 가요계에 따르면 전범선은 전날 유튜브 채널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지난 4월 유튜브 채널 ‘뮤지엄피’에 출연해 자신이 한국 최초의 신소설인 ‘혈의 누’의 작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인직(1862~1916)의 5대손임을 밝혔다. 이인직은 대한제국 시기 일본 유학을 한 뒤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 통역관을 맡았고, 이후 경술국치(1910년)를 전후해 이완용(1858~1926)의 통역관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친일 행적을 이어갔다. 대학 때까지 자신이 친일파 후손임을 몰랐다는 전범선은 고등학생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강원 횡성군 소재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한 곳인 다트머스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데 이어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다트머스대 재학 시절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선교사와 독립운동가, 외교관 등으로 활동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에 대해 알게 됐고, 이후 귀국해 헐버트 박사 관련 활동을 하던 중 어머니로부터 가문의 내력을 알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어머니, ‘친일파 후손’ 숨겨오셨다”“트라우마 극복하려 역사서 집필”그는 “어머니가 ‘역사 공부하는 건 알겠는데, 네 출신 성분을 알고나 해라’라며 내가 ‘친일파 후손’이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네 조상은 이인직’이라고 하셨다. 이인직은 ‘혈의 누’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친일파인 것까지는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어머니가 ‘그냥 친일파가 아니라 대단한 친일파였다. 이완용의 통역관이었다’라고 하셨다”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그 행위에서 통역을 했던 사람이 내 5대조부, 외할머니의 증조부였다”라고 말했다. 전범선은 “어머니는 그때까지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안 하셨다. 부끄러웠던 거다”라면서 어머니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다만 친일파 후손으로서 떵떵거리면서 산 것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이인직은 조선인 아내를 버리고 일본인 여성과 재혼해 살다 1916년 경성(서울)에서 사망했는데, 조선인 아내의 후손인 탓이다. 그는 “이인직은 일본인 여성에 새장가를 들며 저희 가족을 사실상 버린 셈”이라며 “혜택을 누린 건 전혀 없다. 어머니도 숨기고 살아오셨다”라고 덧붙였다. 홍대 인디신에서 활동하던 전범선은 다트머스대 졸업 후 귀국해 2014년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을 결성했다. 2016년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앨범 ‘혁명가’가 호평을 받았고,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수록곡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최우수 록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현재는 밴드를 ‘양반들’로 재정비하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역사서(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도 저술했는데, 친일파 후손으로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 중구와 되새기는 ‘광복 81주년’

    중구와 되새기는 ‘광복 81주년’

    서울 중구가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보훈가족부터 어린이, 주민까지 모두가 함께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13일 밝혔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14일 광복회 회원들과 만난다. 서윤환 광복회 중구지회장과 회원 6명을 초청해 ‘포토모자이크 태극기’를 전달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포토모자이크 태극기’는 안중근의사기념관에서 제공한 태극기에 구의 독립유공자와 애국지사·순국선열의 얼굴, 덕수궁 앞 만세운동 현장, 구에서 발견된 광복군 관련 문서 등의 사진을 붙여 완성했다. 어린이들도 만들기 체험으로 광복의 역사와 의미를 배웠다. 지난 12일 초등돌봄센터 곳곳에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광복절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흥인초센터에서는 어린이가 손도장을 찍어 대형 태극기를 완성했고 봉래초센터에서는 무궁화 클레이로 한반도 지도를 만들었다. 손기정키움센터에서는 김 구청장이 어린이 14명과 ‘태극기 식빵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식빵에 크림치즈로 하얀 바탕을 그리고 딸기잼과 블루베리잼으로 태극 문양을, 초코시럽으로는 건곤감리를 표현했다. 김 구청장은 광복절 퀴즈를 내며 아이들이 광복절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는 독립운동가 이야기 등을 들려주며 어린이들이 선조들이 지켜낸 나라에서 큰 꿈을 품고 자라기를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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