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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산강을 허리에 두른 채 ‘뿌리 깊은 고을’ 지켰다[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영산강을 허리에 두른 채 ‘뿌리 깊은 고을’ 지켰다[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나주는 고려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줄곧 호남을 대표하는 도시의 하나였다. 나주는 내륙도시이면서 동시에 해양도시라는 독특한 성격을 가진 고을이기도 했다. 영산강이 나주를 풍요롭게 만든 것이다. 일찍이 마한이 영산강 유역 평야지대를 배경으로 발전했음을 보여 주는 반남고분군도 이 고장의 깊은 역사를 증명한다. 이제 ‘나주읍성 살아 있는 박물관 도시 만들기’로 그 진면목이 살아나고 있어 반갑다. 동점문, 영금문, 남고문, 북망문 등 나주성의 4대문이 모두 제모습을 찾았다. 자연스러운 질감을 연출하는 읍성의 석물들이 뿌리가 깊은 고을의 분위기를 제대로 보여 준다. 나주는 홍어와 곰탕의 고장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나주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곰탕을 먹는 것이었다. 나주관아 객사인 금성관 주변엔 솜씨 좋은 곰탕집이 몰려 있다. 역사관광도시로 나주가 ‘버킷 리스트’에 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양과 지형 닮아 ‘소경’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나주는 그 지형이 한양과 닮아 예부터 소경(小京)이라 불렀다’고 했다. 영산강을 한강, 금성산을 북한산에 대입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위성사진으로 실제 지형지물을 보여 주는 ‘구글 어스’를 열면 나주성은 절묘한 입지에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산강이 북동쪽에서 흘러들어 읍성을 휘감으며 남서쪽으로 흘러나간다. 나주성의 진산인 해발 450m의 금성산과 그 줄기는 서쪽과 북쪽으로 읍성을 감싸고 있다. 나주성을 이 자리에 지은 것도 천혜의 방어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행정구역의 이름이자 지역의 정체성인 전라도(全羅道)라는 이름은 고려 현종 9년(1018)에 처음 생겼다.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전라도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에서 한 글자씩 따온 땅이름이다. 그런데 통일신라 시대만 해도 이 지역에선 무주(武州), 곧 지금의 광주가 9주의 하나로 중시됐다. 나주가 대표성을 가진 고을로 발돋움한 이유가 궁금하다. 나주읍성의 동문인 동점문은 일제강점기 훼철됐다가 2006년 복원됐다. 문루에는 정도전의 ‘등나주동루유부로서’(登羅州東樓諭父老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나주 동루에 올라 지역 어르신들에게 드리는 글’쯤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정도전은 알려진 대로 조선의 개국 공신이지만 1362년(공민왕 11년) 문과에 급제하며 고려 조정에서 먼저 벼슬을 했다. 다음과 같이 시작하는 정도전의 글은 나주 역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도전의 언사(言事)가 재상에게 거슬러 회진현으로 추방되어 왔다. 나주의 속현인 회진현에 가려면 나주를 거쳐야 하는 만큼 동루에 오르게 됐다. 발걸음을 옮기며 사방을 살펴보니 산천이 아름답고 인물이 많은 고장으로 풍요로워 많은 백성이 모여 사는 남방 일대의 큰 항구다. 나주가 주(州)가 된 것은 국초(고려 초기)로 또 공로가 있는 고장이었다.’ 나주, 고려·조선시대 호남 대표 도시마한도 영산강 평야 자리 잡고 발전내륙과 해양도시 특성 동시에 지녀정도전 “산천 아름답고 인물이 많아”이 글에서도 ‘남방 일대의 큰 항구’라는 대목이 눈에 띈다. 나주는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며 바다로 나가는 길이 막혔다. 하지만 나주는 홍어거리가 있는 영산포의 존재에서 알 수 있듯이 전라도 남부의 대표적인 항구도시였다. 흑산도 홍어로 홍어거리가 생겼을 만큼 서남해안 수산물이 나주에 모였고 다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수운이 퇴조하고 육운이 득세하면서 물류 수송로와 기지로 영산강과 나주는 힘을 잃었다. 영산강이라는 물길의 이름과 영산포라는 땅이름을 두고도 학계에서는 흑산도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고려사에는 ‘흑산도 사람이 뭍에 나와 남포 강변에 터를 잡으면서 영산현이라 불렀다. 1363년(공민왕 12년) 군으로 승격했다’는 대목이 보인다. 남포는 나주성이 멀지 않은 영산강 북안 포구를 가리킨다. ‘영산’이라는 명칭이 역사책에 처음 등장한 사례라고 한다. 영산강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흑산현이 아니라 영산현이라고 한 것도 과거 흑산도가 영산도라고 불렸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나주성, 동남쪽은 남산의 능선 활용서북쪽은 금성산이 둘러싸고 있어 동점문 등 4대 문 모두 제모습 찾아첨단 기술과 공존하는 역사 도시로●후삼국 쟁투 때 태조 왕건 손 들어줘 나주의 농업 생산력이 뛰어났던 것은 일찌감치 마한 세력이 자리잡았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나주는 해양 교역과 어업의 핵심기지이기도 했으니 당연히 일대의 경제권을 장악했을 것이다. 나주는 고려왕조가 창업하는 과정에도 크게 힘을 보탰기에 지역 발전이 가속화됐다. 정도전은 앞의 글에서 ‘우리 고려 태조가 삼한을 아우를 때 모든 고을이 평정됐는데 오직 후백제만이 항복하지 않았다. 이때 나주 사람들은 역(逆)과 순(順)을 밝게 인식하고 솔선해 찾아와 귀부했다. 태조는 후백제를 취하는 데 나주 사람들의 힘이 컸으므로 친히 이 고을에 납시어 목(牧)으로 승격시키고 남쪽 여러 고을을 통솔하게 했다’고 적었다. 나주가 후삼국의 쟁투 과정에서 고려 태조 왕건의 손을 들어 준 전설이 담긴 유적이 완사천(浣紗泉)이다. 영산대교로 가는 나주시청 앞 길가에 자리잡고 있다. 왕건이 물긷는 여인에게 물 한 그릇을 청하자 버들잎을 띄워 주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왕건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니 곧 장화왕후 오씨다. 오씨가 낳은 아들이 고려의 제2대 왕 혜종이다. 왕건은 장화왕후를 위해 흥룡사를 지었는데 최근 절터가 확인됐다. 국립나주박물관에 있는 높이 3.3m의 당당한 나주 서성문 안 석등은 흥룡사에 세워졌던 것이라고 한다. ●나주목사 김계희, 대대적 확대·정비 나주성은 사실상의 평지성이다. 다만 동점문과 남고문 사이 동남쪽 일부는 해발 42m 남산의 능선을 활용해 성벽을 쌓았다. 읍성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방어 목적을 가진 읍성의 필요성은 일찍부터 부각됐을 것이다. 나주성의 존재는 1237년(고종 24년) 고려사에 처음 등장한다. 열전에 ‘김경손이 1237년 전라도지휘사로 부임했는데 초적 이연년 형제가 주변 무뢰배를 모아 나주성을 포위했다’는 대목이다. 조선 시대가 되면 태종실록에 1404년(태종 4년) ‘나주와 보성에 성을 쌓았다’는 기사가 보인다. 1451년(문종 1년)에는 ‘나주목 읍성은 내부 민호가 많아 성터를 다시 7000척으로 고쳐 정했다’고 했다. 당시 읍성을 대대적으로 확대·정비한 사람이 나주목사 김계희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나주성 복원도 그가 완성한 둘레 3.7㎞ 읍성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나주성이 제모습을 찾으려면 갈 길이 멀다. 관아 터는 아직 공터로 남아 있고 성벽도 대부분 복원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관아 터는 연차적으로 복원하되 성벽은 상징성을 되찾는 수준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제강점기 훼철된 이후 성벽이 있던 자리엔 건물이 들어찼다. 주민의 생활권을 당장 갈라놓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읍성에서 영산포에 가려면 영산대교를 건너야 한다. 40곳 남짓한 전문식당이 몰려 있는 홍어거리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나주 명물이다. 5월이면 ‘영산포홍어축제’도 열린다. 홍어거리에 내걸린 ‘가슴 후비는 어울림의 한 판이자 입안에 꽉 찬, 이 야만적인 충만감. 머릿속에 일곱 무지개가 떠올랐다’는 작가 문순태의 ‘홍어 삼합’에 눈길이 간다. 나주성 복원을 비롯한 역사도시 만들기 사업은 흔히 나주혁신도시라 불리는 ‘광주전남공동혁신도시 빛가람’으로 옛 도심의 공동화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옛 도심은 역사문화, 혁신도시는 첨단기술로 역할을 분담하는 토대가 마련됐다. 개발 압력에 시달리는 다른 고도(古都)와 달리 역사도시로 가꿔가는 데 오히려 좋은 여건이 마련된 것이다. 그럴수록 나주혁신도시가 ‘에너지산업 중심의 산학연 클러스터’라는 조성 목적에 걸맞게 하루빨리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마침 혁신도시의 한국에너지공과대(KENTECH)가 2026년 대입 정시에서 뜨거운 경쟁률을 기록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혁신도시의 성공은 나주 옛 도심을 수준 높은 문화도시로 가꿔 가는 경제적 기반도 제공할 것이다. 글·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 영산강 죽산보, 8년 만에 결국 해체

    영산강 죽산보, 8년 만에 결국 해체

    전남 나주의 영산강 죽산보가 건설 8년 만에 결국 해체된다. 광주 승촌보는 상시 개방하기로 했다. 영산강유역환경청은 28일 영산강·섬진강유역관리위원회(유역관리위원회) 본회의를 열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혔다. 유역관리위는 이를 국가물관리위원회에 제시했다. 국가물관리위는 이를 심의한 뒤 조만간 해체 또는 상시 개방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유역관리위의 결정은 지난해 2월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기획위가 제시한 방안과 같다. 앞서 금강유역물관리위는 지난 25일 세종보 해체, 공주보 부분 해체, 백제보 상시 개방이라는 금강 3개 보 개선 방안을 의결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건설된 금강·영산강 수계의 일부 보들이 해체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해당 보 인근 주민과 환경단체 등은 각각 존치와 전면 해체를 놓고 격돌, 갈등이 지속될 전망이다. 영산강뱃길복원 추진위와 영산포홍어상인회원·농업인 등으로 구성된 ‘죽산보철거 반대 투쟁위’는 앞서 지난 25일 전남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금강수계의 세종보 등을 포함해 철거 대상 3개 보의 건설 및 해체 비용이 2700여억원에 달하는 등 국민 혈세 낭비가 예상된다”며 “농업용수 이용과 관광객 유치 등을 위해서라도 죽산보를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광주전남지역 20여개 환경·시민단체로 구성된 ‘영산강재자연화시민행동’은 이날 유역관리위가 열린 나라키움광주통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죽산보와 승촌보 모두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함평·나주 등 수계 인근 일부 주민도 “최근 폭우로 문평천이 범람했는데, 이는 죽산보 때문에 본류의 물이 원활하게 유통되지 못하면서 피해가 발생했다”며 보 철거를 요구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중심 나주·충주 르포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중심 나주·충주 르포

    경기 부양을 위한 한강, 금강, 영산강, 낙동강 등 4대강 정비사업이 지난 연말부터 시작됐다. 대운하 사업의 단초가 아니냐는 논란 속에 착공된 이 사업은 치수와 예산 조기집행을 통한 일자리 창출과 지방경기 활성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지 주민들은 “침체된 지역경기가 살아날 수 있는 호재”라고 반기면서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4대강 정비사업의 첫 단추를 낀 전남 나주시 영산강과 충북 충주의 새해 주민 표정을 살펴봤다. ■나주 새해 첫날,나주배로 이름난 전남 나주시는 들뜬 분위기였다.영산강 개발 기대 심리가 곳곳에서 묻어났다.도로와 영산강변에는 ‘영산강 르네상스 시대를 열자.’는 등 여망을 담은 플래카드가 나부꼈다.지난 29일 열린 ‘영산강 살리기’ 기공식에서는 2011년까지 국비 1조 6000억원 투입이 발표됐다.옛날 영산강 선착장으로 번성했던 영산포 일대는 개발 진앙지답게 주민들 열기가 느껴졌다.흑산홍어로 돈을 움켜쥐었던 이 일대 홍어 도·소매점과 식당 등 40여곳은 영산강이 다시 한 번 살길을 열어 줄 것이라고도 확신했다.1976년 영산강 하구둑으로 뱃길이 막히기 전 영산포는 남도 잔칫상의 백미로 꼽히던 흑산 홍어 집산지로,서울로 가는 교통 요지로 흥청거렸다. ●국내 유일 영산포 내륙등대 영산교에서 200m쯤 내려오면 바다에서 보던 하얀 등대가 서 있다.영산포 등대다.육지에 세워진 유일한 등대로 하루 20여척씩 드나들던 어선의 길잡이였다.등대 인근 선착장에는 홍어 전문점과 식당들이 즐비하다.김정대(60·영산동) 금일홍어 주인은 “영산강에 배가 뜨면 환경이 좋아져 관광객도 늘 것으로 본다.”고 점쳤다.인근 홍어 상가 주인들은 “영산포에서 홍어를 파는 40여곳에서 연간 매출액을 200억원대로 보는 데 모두들 이를 두 배로 늘려 잡을 꿈에 부풀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건희(60·영산동) 영산포홍어연합회장은 “영산강은 1989년 대홍수 이후 퇴적토로 강바닥이 높아져 지금도 영산포 주민들은 상습 침수피해에 떤다.”고 강조했다.나주시는 선착장 일대 현존 건물 70%가 일본식 건물이라는 점을 활용해 관광자원화하고 이곳에 홍어 음식문화 집적화단지 조성,영산강변 마한시대 고대문화권 개발 등으로 관광 나주시대를 진행 중이다.정윤기(60·대기동) 영산포발전협의회장은 “지금 인구 2만명도 안 되는 영산포는 1960~70년대 인구 10만명이 넘던 영화시대를 모두들 잊지 못한다.”며 “영산강 뱃길이 막혀 영산강 때문에 피해를 보던 주민들이 이제 뭔가 살길이 열리지 않겠느냐는 기대로 부풀어 있다.”고 전했다.민물장어로 유명했던 영산포 구진포 나루쪽 식당들도 “제발 장사좀 잘됐으면 한다.”고 영산강 살리기에 남다른 기대감을 표시했다. ●영산강 시대가 오는가 이를 반영하듯 지난 29일 가진 영산강 살리기 기공식에는 쌀쌀한 날씨에도 주민 1000여명이 행사장 안팎을 메웠다.일부는 돼지 머리고기를 가져와 행사장 한편에서 축원 고사를 지내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1989년 꾸려진 ‘영산강뱃길복원추진위원회’의 양치권(59·영산동) 회장은 “영산강 치수사업으로 홍수 예방은 물론 물길이 나 배가 다니게 되면 물류와 관광객이 늘어 지역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편 전남도는 4~5급수로 떨어진 영산강 수질 개선과 뱃길 복원을 골자로 하는 ‘영산강 프로젝트’에 속도를 높인다.2015년까지 국비 등 8조 5500억원을 투자한다.영산강 유역권인 나주·무안·함평·화순·장성·담양·목포·영암 등 도내 8개 자치단체장도 영산강 살리기에 힘을 모으기로 다짐했다. 글 사진 나주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충주 ‘뚝딱 뚝딱.’ 2009년 기축년 새해 첫날 충주시 금가면 탄금대 인근 하천에서 신탄금대교 공사가 한창이다. 현재 하천제방 주변에는 자전거도로가 있는 게 고작이지만 2011년 12월이 되면 축구장,피크닉장,야생화단지,물놀이장,산책로,정수식물 군락지 등이 조성된다. 또 하천 수질과 생태환경이 개선되고 홍수 위험도 낮아진다. ●충주댐 건설 이후 가장 큰 공사 충주가 정부의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 선도사업 도시로 선정되면서 오는 2월부터 이곳에서 ‘충주지구 하천정비사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사업 구간은 충주시 목행동에서 충주시 금가면 탄금대 일원 7.19km로 설계비를 포함해 총 228억원이 투입된다. 사실 이 사업은 대전지방국토관리청이 추진하다가 예산확보가 안 돼 백지화 위기를 맞던 와중에 정부가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극적으로 재추진됐다. 충주시민들은 이번 사업을 호재라며 반기고 있다. 하천정비 사업을 환영한다는 플래카드를 볼 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사업내용을 묻는 시민들의 전화가 충주시청에 걸려오고 있다. 윤정진 충주시 지역개발과 하천관리담당은 “이 사업에 지역건설업체들이 투입되고 일자리가 창출되면 충주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며 “하천정비 사업을 통해 주변에 휴식공간도 조성돼 시민들의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윤 담당은 “이 사업과 별개로 5월에 정부가 한강종합개발 계획을 발표하면 충주에서 진행되는 하천정비사업 구간이 대폭 늘어나게 된다.”며 “아마도 충주댐 이후 가장 큰 공사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기대했다. 이번 하천정비는 충주 현안사업인 유엔평화공원 조성과 2013년 세계 조정선수권 대회 유치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도 꿈틀… 일부선 곱잖은 시선 두 사업을 위해 시 예산을 들여 탄금대 주변 하천 일원을 정비해야 하는데 정부가 하천정비사업을 추진해 따로 돈을 쓸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충주에선 하천정비가 확대돼 대운하로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 또한 크다. 신순철 충주시의원은 “충주시민들의 80% 이상이 아직도 대운하를 희망하고 있다.”며 “많은 사람들이 하천정비사업을 통해 대운하사업이 시작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4대강 정비사업 발표 이후 땅값 상승이 예상되면서 침체됐던 부동산업계도 모처럼 활기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 환경단체는 하천정비사업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일선 충주환경연합 대표는 “정부가 강을 건드려 성공한 적이 없다.”며 “하천정비를 잘못했을 경우 홍수범람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이번 사업이 대운하로 확대되면 반대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충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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