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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머스크의 절대권력, 한국의 성과급 갈등

    [서울광장] 머스크의 절대권력, 한국의 성과급 갈등

    미국은 주주자본주의의 본산이다. 경영진은 철저히 주주의 감시를 받는다. 그런데 상장을 추진 중인 스페이스X는 정반대의 지배구조를 내놓았다. 차등의결권을 통해 일론 머스크가 85%가량의 의결권을 쥐는 방식이다. 이를 두고 “머스크를 해고할 수 있는 사람은 머스크 본인뿐”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스페이스X는 한술 더 떠 소송권과 주주제안권까지 제한하는 ‘독재적’ 모델까지 제시했지만 투자자들은 오히려 몰리고 있다. 더구나 이 방식이 향후 기업공개가 거론되는 오픈AI와 앤트로픽 등 인공지능(AI) 기업들의 본보기로 번질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제왕적 지배구조라는 꼬리표에도 시장은 머스크의 절대권력보다 그가 만들어 낼 미래 가치에 베팅하는 셈이다. 우주 개척이나 AI처럼 천문학적 투자와 긴 호흡이 필수적인 신산업은 분기 실적과 단기 주가에 얽매이면 제대로 진행하기 힘들다. 불확실한 길을 오래 밀고 가야 하는 미래 산업에서는 창업자의 비전과 결단을 일정하게 보장하려는 요구가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견제받지 않는 오너의 절대권력이 특권으로 변질될 리스크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혁신의 싹을 조급한 이해관계에서 사수하려는 미국 자본시장의 치열한 문제의식만큼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의 국가 전략산업은 정반대의 거센 압박에 직면해 있다. 과거 오너에게 권한이 집중된 성장 방식과 불균형한 분배에 대한 반작용으로 최근 산업 현장에서는 이익을 나누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가까스로 타결된 삼성전자 노사의 임금 협상은 사상 초유의 총파업 위기까지 불렀다. 경쟁사 SK하이닉스가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으로 나누는 방식도 삼성전자 직원들을 자극했다. 물론 이번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국가적 병폐인 ‘의대 쏠림’ 현상이 극심한 가운데 이공계 핵심 인재에게 파격적인 보상을 안겨 주는 것이 우수 두뇌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유인할 현실적 타개책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첨단 기술로 올린 막대한 이익을 땀 흘린 인재와 확실히 나누는 것은 장기적인 산업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기계적으로 할당하라는 요구가 공식처럼 굳어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극심한 사이클 산업이다. 이익이 날 때 나누는 것만큼이나 대규모 손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위험을 누가 분담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불투명하다. 위기 때의 고통 분담은 모르쇠하고 호황의 과실만 기계적으로 나누려는 것은 자칫 황금알을 낳는 성장의 모태를 갉아먹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삼성의 노사합의가 던진 파장은 개별 기업을 넘어서서 구조적 국면 전환마저 예고한다. 정보기술(IT), 조선, 방산 등 주요 산업 현장 곳곳에서 이익 배분의 ‘미투 요구’가 잇따르고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막강한 교섭력을 무기로 막대한 성과급을 독식할수록 그 사다리 아래에 있는 중소 협력사 및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격차는 회복하기 힘든 선으로 벌어진다. 노동의 몫을 키운다는 도덕적 명분이 도리어 우리 사회의 임금 격차를 심화시키는 이중 구조를 고착화하는 역설을 낳는 것이다. 호황의 단비가 산업 생태계 전반을 적시지 못하고 소수 기업 내부에 갇히는 셈이다. 스페이스X의 극단적 선택 이면에는 혁신을 지키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반면 우리는 해마다 성과급 갈등과 파업 리스크에 국가 전략산업이 흔들릴 지경에 놓여 있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은 숨 고를 틈 없는 전쟁이다. 눈앞의 파이를 가르는 내부 갈등에 발목이 잡힌다면 경쟁국에 주도권을 헌납할 수밖에 없다. 성과급 배분이라는 과제는 이제 개별 노사를 넘어서서 국가적 현안으로 부상할 만큼 중차대해졌다. 오너의 독점도, 노조의 일방적 요구도 정답이 될 수 없다. 장기 투자의 동력을 유지하면서도 산업 경쟁력을 잃지 않는 배분적 정의의 룰을 마련하는 일에 정치와 정부가 묵직한 책임을 다해야 할 때다. 박상숙 논설위원
  • “초기업 교섭, 노동 양극화 완화” “2차 하청업체는 끼기 어려워” [노동의 분화, 무너진 연대]

    “초기업 교섭, 노동 양극화 완화” “2차 하청업체는 끼기 어려워” [노동의 분화, 무너진 연대]

    산별 노조·사용자 단체 조율 방식영세 사업장 노동자도 성과 공유‘동일 임금’ 효과… 생산성도 고려업종 간 성과 불평등 사라지지 않아산업 단위로 파업하면 경제 휘청다원화된 보상·투명성 확보 필요 최근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급 잠정합의안을 도출하면서 노조의 총파업이 유보됐다. 반도체가 이끄는 한국 경제도 ‘100조원 손실’이 예상된 파업 리스크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성과급 형평성 문제를 비롯한 크고 작은 노노 갈등은 앞으로 노사 교섭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노조의 분화로 무너져가는 연대를 회복하려면 ‘초기업 교섭’(산업별 교섭)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다원화된 보상 체계를 확립하고 교섭의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이 동시에 나오고 있다. 노동자들의 차별 없는 보상을 보장할 대안으로 노동계는 ‘초기업 교섭’을 거론한다. 개별 기업 단위를 넘어 산별 노조와 사용자단체가 노동조건을 함께 협상하는 방식이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관계자는 24일 “노조 설립이 어려운 영세사업장 노동자들도 교섭 성과를 공유할 수 있어 노동시장 양극화를 완화할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방향성에는 공감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 방안으로 ‘초기업 교섭 활성화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노동부 관계자는 “초기업 교섭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단계”라고 전했다. 학계에서도 초기업 교섭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완화할 대안 중 하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 단위 교섭은 사용자와 노동자가 단기 이윤 배분을 두고 충돌하기 쉽지만 초기업 교섭은 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물가 등을 함께 고려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했다. 특히 초기업 교섭은 임금 격차가 크지 않은 유럽 선진국을 중심으로 일상화돼 있다. 하지만 초기업 교섭에도 부작용은 있다. 1차 하청은 교섭의 혜택을 볼 수 있지만 조직력이 없는 2·3차 영세 하청업체 노동자는 초기업 교섭 연합체에 끼기 어렵다. ‘원청과의 직접 대화’를 목표로 도입된 노란봉투법의 본질이 흐려지는 역설도 발생한다. 초기업 교섭이 ‘획일성’을 강조하고 ‘일괄 타결’을 지향한다는 점이 노란봉투법이 추구하는 개별 원청과의 교섭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 개선 등 미시적인 요구사항은 거대 담판에 묻힐 가능성이 커진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초기업 교섭을 해도 불평등이 사라지지 않는다. 생산성이 높은 반도체 산업과 낮은 서비스업 간 또 다른 성과 차별이 더 커질 수 있다”면서 “그럴 때마다 ‘새로운 교섭 방식’이라며 정부가 개입하면 한국 기업이 한국에서 경영할 이유가 사라진다”고 지적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별 노조는 세계적인 표준에 맞춰 달라고 요구할 텐데 그 협상을 기업이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며 “교섭의 일상화로 산업별 파업 예고가 잦아지면 삼성전자 파업과는 비교할 수 없는 파급력에 국내 경제 상황 전체가 휘청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산업노동정책연구소장은 “지금 배분의 원칙이 없는 상황이다 보니 사회 환원 논의가 제기되는 것”이라면서 “앞으로 이해관계자들과 어떻게 이익을 나눠갈지 논의를 시작할 때”라고 진단했다.
  • “두 정상국가로서 교류 확대… 남북 평화 돌파구 열린다” [월요인터뷰]

    “두 정상국가로서 교류 확대… 남북 평화 돌파구 열린다” [월요인터뷰]

    남북관계 돌파구는 北축구단 방한 통해 정상국가 강조헌법 개정에서도 적대적 표현 제외 ‘다른 외국’처럼 평범한 관계로 대응 두 국가 통해 평화 더 빨리 올 수도이재명 정부의 외교정책 실용·스마트·매력 외교 정책 추진 트럼프 회담서 핵잠수함 등 성과각국 정상들과 인간적 관계도 구축엄혹한 정세 속에서도 관리 잘 해와한미관계 전망정동영 구성 발언 문제? 이해 안돼 과도한 정치화… 실체 있는지 의심 미국도 한국 주도 재래식 방어 원해한미 대등한·건설적 동맹 향하는 중최근 남북 관계는 ‘바늘구멍’ 찾기도 힘들 정도로 꽉 막힌 형국이다. 이재명 정부는 적극적으로 북한에 대화를 손짓하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오히려 ‘적대적 두 국가’ 기조를 강화하면서 남한을 밀어내고 있다.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 정세마저 요동치면서 우리 외교는 험난한 시험대에 올랐다. 역대 모든 남북 정상회담에 관여했던 문정인(75)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국내·외 국제정치학계의 대표적인 학자다. 외교가에서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와 영향력을 가진 그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1년의 절반가량을 해외에서 보내며 한국 외교의 활로를 찾고 있다. 문 교수는 지난 19일 서울 종로구 동아시아재단에서 진행한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북한을 현실의 ‘정상국가’로 인정하고, 두 국가 간의 일반적 관계로 담담하게 접촉을 늘려야 오히려 평화의 돌파구가 열린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어떻게 지내고 있나. “싱크탱크 회의들이 많아 바쁘게 지내고 있다. 지난주에는 중국에서 현대국제관계연구원과 사회과학원을 방문해 현안을 논의했다. 7월 초에 또 중국에서 회의가 있다.” -이재명 정부 1년 외교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나. “이재명 정부 외교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국익에 기초한 ‘실용 외교’다. 특히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을 두 차례 만나면서도 핵추진잠수함 등을 얻어내며 잘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음은 ‘스마트 외교’다. 옆에서 지켜본 이 대통령은 준비를 철저히 하는 사람이다. 외교 사안에 대한 이해가 빠르고 수사에서 군더더기나 실수가 없다. 마지막으로는 ‘매력 외교’다. 정상 간의 관계를 정립할 때는 인간적 매력도 중요한데 이 대통령은 상대방의 긴장을 풀어주는 모습이 눈에 띈다. 그런 점에서 1년은 엄혹한 국제정세에서도 외교가 잘 관리됐다” -이스라엘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에는 우려도 있는데. “실용 외교를 강조하다 보면 자칫 원칙을 저버릴 수도 있다. 실용주의와 기회주의는 종이 한 장 차이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평화라는 원칙에 대해서는 흔들리지 않고 지키고 있다. 이스라엘이 나포한 우리 국민 2명을 곧바로 석방한 것도 기본 원칙을 포기하지 않은 성과라고 본다.” -정부 대북 정책의 핵심은 뭔가. “철저한 현실주의에 입각하고 있다. 정부는 중단·축소·폐기라는 장기적 관점의 핵 없는 한반도를 제시했다. 장기적인 목표를 뒀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는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하겠다는 것이다. 그 사이 국제사회와 우리의 노력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시키고 핵무기 숫자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관계 회복의 길은 보이지 않는데. “남북 관계는 당분간 냉랭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북한이 ‘정상국가’로서의 접촉은 피하지 않는 것은 희망적이다. 북한 내고향여자축구단의 방한이 그 예다. 오히려 축구단을 보내지 않으면 비정상 국가가 되는 셈이다. 북한이 최근 개정 헌법에서 한국에 대한 적대적 표현을 뺀 것도 긍정적이다. 헌법에서 특정 국가를 적대국으로 표현하는 국가는 없다. 북한은 지극히 정상국가의 궤도로 가는 중이다.” -북한을 대하는 우리의 시각도 달라져야 하나. “다른 외국처럼 똑같이 대하면 된다.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특별한 의미 부여 없이 평범하게 대응하는, 두 정상 국가 간의 그런 일반적인 관계다. 오히려 두 개의 국가로 갈라서는 게 남북의 평화가 더 빨리 찾아온다는 역설성이 있다. 정상국가로서 접촉이 많아지고 이해와 소통의 공간이 더 넓어지면 거기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통일부가 제시한 ‘평화적 두 국가’가 논란인데. “헌법 제3조 영토 조항에 대한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 헌법 3조는 1948년 제헌 헌법을 만들 때 우리의 희망을 나타낸 것이다. 지금 북쪽에는 유엔 회원국인 주권 국가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헌법은 우리 영토를 불법 점유하고 있는 행위자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적 감정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국제법적인 준거에 따르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본인들이 독립 국가라고 얘기하고 국제사회가 인정하는데 우리가 그걸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다시 만날까. “이번 미중 정상회담에서는 이란 전쟁 등 트럼프 대통령이 벌려 놓은 것들이 많아 북미 대화가 이뤄지지 못했다. 오는 11월 중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또 다른 기회로 보고 준비해야 한다. 다만 김 위원장은 확실하지 않으면 나서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러시아라는 새 우군을 얻었기 때문에 과거처럼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가 절실한 것도 아니다.” -미국의 대북 접근법은 어떻게 가야 하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제시한 3단계 비핵화 구상을 받아야 한다. 과거 미국은 비핵화가 끝나면 북한과 수교를 해주겠다는 입장이었다. 김 위원장을 만나주는 것만으로 북한에 엄청난 인센티브를 주는 것이란 생각으로 접근하면 진전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첫 단계에서부터 수교를 선물로 줄 필요가 있다. 북한 적대시 정책을 해소하는 최고의 방법은 수교다. 거기에 더해 북한에 대한 금융 제재를 풀어주고, 한미 연합훈련을 조정해 나가는 등 전향적 조치를 하는 것이 대화의 첫걸음이다.” -정부 내 ‘자주파’와 ‘동맹파’의 불협화음이 있다는데. “외교 안보 정책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의 문제다. 남북 관계를 한미동맹보다 우선시하느냐, 남북보다 한미 관계를 더 중요시하느냐의 차이다. 행정 부처 사이에 갈등과 대립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정부가 건설적이고 건강하다는 증표다. 지금까지는 이 대통령이 중심을 잡고 조율을 잘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대북 정보공유 중단이 논란이 됐다. “한 편의 초현실주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국회에서 한 언급은 구체적인 정보가 하나도 담기지 않았다. 북한 구성시의 원심 분리기 개수나 농축 우라늄 숫자 등을 언급했으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단지 구성이라는 두 글자를 썼다고 미국에서 문제 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 장관을 흔들기 위해 외부로 문제를 노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과도하게 정치화된 부분이 있다. 정말 실체가 있는 사건인지 의심스럽다.” -올해 초 탄생한 ‘한미 대북정책 협의체’가 과거 ‘워킹그룹’을 답습할 것이란 우려도 있다. 대북 정책에서 한미는 보조를 어떻게 맞춰야 하나. “사안마다 미국과 협의가 필요한 일이 있을 수 있다. 미국은 관료 정치 때문에 북한과 교류 사업을 하려면 국무부, 재무부 등 다양한 부처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우리가 미국 행정 부처들과 개별적으로 접촉해 승인을 받으려고 하니 복잡하고 시간이 걸려 워킹그룹에 한데 모은 것이다. 물론 협의 과정에서 미국이 우리에게 따질 건 따지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미국의 주장에 안 붙들리면 되는 문제다. 협의 기구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소신을 갖고 주체적으로 운영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청와대가 책임을 지고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이란 전쟁은 한반도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한반도에서 전쟁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미국이 북한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를 수 없다. 또 북한은 이란이 아니다. 북한은 핵을 가졌고 이란은 핵을 가지지 못했다. 이란은 국내 정치적 동요가 컸고 체제 전환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이 전쟁을 일으켰지만 북한은 김정은 지도 체제가 확실하다. 다만 이란 사태를 학습한 북한은 군사력이나 방어력에 더 많은 대비를 할 것이다. 그러면 한반도 문제를 푸는 데 더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 2기에서 동맹의 양상이 변해가는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동맹 정책은 기존 미국 공화당 주류의 동맹관과 확연히 다르다. 트럼프식 접근은 철저한 거래주의에 가깝다. 이제는 동맹국들이 그만큼 더 많은 방위비를 부담하고 경제적 기여를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미동맹도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 -앞으로 한미동맹은 어떤 방향으로 갈까. “정부가 먼저 미국에 의존하는 안보 구조에서 주도적인 재래식 방어 체제로 전환하려는 방향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핵우산 제공은 계속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원하는 답을 전향적으로 먼저 제시해버린 셈이다. 그러니까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여러 차례 국제 사회에 한국을 배우라고 얘기한다. 한미 동맹은 대등한 동맹, 더 건설적 동맹으로 가는 중이다.” ■문정인 명예특임교수는 1951년생으로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인 ‘햇볕 정책’과 ‘평화번영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을 방문했다.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에도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에 임명돼 2018년 판문점 정상회담과 평양 정상회담에 깊숙히 관여했다. 현재는 외교 관련 영어 계간지 ‘글로벌 아시아’의 편집인으로 외교·안보 담론에 꾸준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 AI로 광주일보 만들어 5·18 왜곡…도 넘은 5·18 가짜뉴스에 경찰 수사

    AI로 광주일보 만들어 5·18 왜곡…도 넘은 5·18 가짜뉴스에 경찰 수사

    최근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논란을 틈타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려는 시도가 도를 넘고 있다. 급기야 인공지능(AI) 기술을 동원해 지역 언론사의 제호를 도용한 가짜 신문 이미지까지 유포되면서 경찰이 강력한 수사에 착수했다. 광주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5·18 관련 가짜 신문 이미지의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를 추적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문제의 이미지는 1980년 5월 20일자 ‘광주일보’의 형식을 빌려 제작됐다. 해당 기사에는 ‘북한군이 광주에 투입되어 무기고를 탈취하고 있다’는 허위 사실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역사적 왜곡이자 조작이다. ‘광주일보’라는 제호는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에 따라 전남매일신문과 전남일보가 강제로 통합된 후인 1980년 12월 1일에야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다. 즉, 1980년 5월에는 ‘광주일보’라는 신문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짜 뉴스가 지목한 1980년 5월 20일은 역설적이게도 광주 언론인들이 신군부의 검열에 맞서 처절하게 저항했던 날이다. . 당시 광주일보의 전신인 전남매일신문 기자들은 “우리는 보았다. 사람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단 한 줄도 싣지 못했다”는 비장한 사직서를 지면에 남기고 집단 제작 거부에 나섰다. 시민의 고통을 기록하지 못하는 자괴감에 펜을 꺾었던 그날의 아픔을, 오늘날의 AI는 북한군 침투설이라는 악의적인 허위 사실로 둔갑시켜 유린하고 있는 셈이다. 피해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관련 자료 분석을 통해 해당 이미지가 AI 기술 등을 활용해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임을 확인했다. 현재 경찰은 이미지의 확산 경로를 파악하는 한편, 조직적인 유포 세력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제호를 사칭당한 광주일보 측 역시 “언론의 신뢰도를 이용해 역사를 왜곡하는 행위를 묵과할 수 없다”며 허위 이미지 생성 및 유포자들에 대해 강력한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임을 분명히 했다.
  • 구자욱 아버지는 김부겸, 형은 추경호 지지…“대구시장 선거 현주소”

    구자욱 아버지는 김부겸, 형은 추경호 지지…“대구시장 선거 현주소”

    KBO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구자욱(33)의 부친이 6·3 지방선거에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를 지지한 가운데 구자욱의 친형은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유세차에 올랐다. 한 가족 내에서 지지하는 후보가 서로 다른 풍경이 이번 선거 대구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6·3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21일 대구 중구 현대백화점 앞에서 열린 추 후보 출정식에는 주호영, 신동욱, 유영하, 권영진 의원 등 지역 국회의원 대부분이 참석했다. 이날 특히 눈길을 끈 지지자 중에는 구자욱 선수의 형 구자용씨와 같은 팀의 원태인 선수의 형 원태진씨가 있었다. 구자용씨는 유세차에 올라 “추경호 후보님을 응원합니다”라고 지지를 보냈다. 원태진씨도 “저는 경제 전문가 추경호 후보님이 만들어가는 대구에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구자용씨와 다르게 구자욱 선수의 부친 구경회 전 대한축구협회 초등축구연맹 부회장은 지난 18일 김부겸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대구 지역 원로 축구인 40여명과 함께 김부겸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구 전 부회장은 원로 체육인들의 지지 선언문을 대표로 낭독하기도 했다. 원로 체육인들은 “전국 야구장 가운데 ‘라팍’(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이 암표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면서, 암표까지 구해 가면서 대구 시민들이 야구장으로 향하는 현상이 역설적으로 대구 시민들의 팍팍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후보야말로 희망차고 새로운 대구를 만들 수 있는 지도자”라면서 “집권 여당의 힘 있는 후보만이 현재 봉착해 있는 대구의 경제 위기와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두고 과거 선거에서 대체로 보수 정당의 후보에게 지지가 쏠렸던 때와 다르게 한 가족 내에서도 지지하는 후보가 엇갈린 모습이 이번 대구시장 선거 판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KBS대구방송총국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대구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800명에게 16~20일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활용한 전화면접조사를 진행한 결과 김부겸 후보 40%, 추경호 후보 39%로 팽팽한 접전을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률 19.2%,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5%포인트) 적극투표층 조사에서도 김부겸 후보 44%, 추경호 후보 43%로 접전 양상이었다. 자세한 여론조사 내용은 KBS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 [차현진의 박람궁리] 달러화 패권 지킨다며 제 발등 찍는 미국

    [차현진의 박람궁리] 달러화 패권 지킨다며 제 발등 찍는 미국

    세금과 죽음은 언젠가는 분명히 닥친다. 다만 그때를 모를 뿐이다.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이다. 만일 그가 요즘에 살았다면, 세금과 죽음에 기축통화의 쇠락을 추가했을 것이다. 프랭클린의 시대에는 영국 파운드화가 세계경제를 움직였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미 달러화에 그 지위를 넘겼고, 지금은 달러화도 빛을 잃고 있다. 성급한 사람들은 달러화의 종말이 이미 시작됐다고 말한다. 1974년 체결된 ‘페트로 달러’ 협정이 2024년 만료된 것을 이유로 삼는다. 미국이 안보를 보장하는 대신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 수출 대금을 미 달러화로만 받겠다는 비밀 약속이다. 최근에는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세를 달러화가 아닌 위안화로 받는다. 하지만 소위 ‘페트로 달러’ 협정은 헛소문에 가깝다. 진실은 1973년 중동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전쟁하는 동안 사우디아라비아는 가격이 폭등한 석유를 미국에 수출해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그 돈을 미국 국채에 쟁여 두자니 곤란한 문제가 생긴다. 미국 정부로 흘러간 돈은 결국 아랍 국가들과 전쟁 중인 이스라엘을 돕는 데 쓰이기 때문이다. 이적 행위다. 그래서 비밀이 필요했다. 미국 정부가 국채를 발행할 때 사우디아라비아에는 몰래 따로 발행하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 ‘페트로 달러’ 협정의 실체인데, 그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 운용을 위한 배려였다. 석유 수출 대금을 달러화로만 받는다는 따위의 언급은 없었다. 그러니 달러화 패권과는 무관하다. 물론 달러화 패권도 언젠가는 끝난다. 세 가지 조건이 맞물려서 퍼펙트 스톰을 만들 때다. 첫째는 미국 경제력의 쇠퇴다. 유엔과는 달리 IMF에서는 오직 미국만 비토권이 있다. 그래서 IMF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미국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 1971년 미국이 달러화와 금의 교환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했을 때 다른 나라들이 한마디도 못 꺼낸 이유가 여기에 있다. IMF에서 비토권을 가지려면 쿼터 비중이 15% 이상이어야 한다. IMF 설립 당시 미국의 쿼터는 32%였지만, 지금은 16.5%에 불과하다. 그동안 세계경제가 미국보다 빨리 성장한 결과다. 만일 중국 등의 성장 속도가 미국을 앞서면, 미국의 쿼터는 15% 아래로 낮아지고 달러화의 독보적 지위도 사라진다. 둘째 군사력 퇴조의 확인이다.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작은 사건으로도 촉발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1931년 9월 15일 발생한 항명 파동이 결정적 계기였다. 월급이 25%나 줄어든 수병들이 승선과 출항을 거부했다. 영국 정부는 넬슨 제독 이래 이어져 왔던 ‘세계 최강 해군’의 명성을 유지하는 것이 힘겹다고 느꼈다. 당면한 대공황 해결에만 매진하기로 하고 기축통화국의 자존심도 버리기로 했다. 금본위 제도의 폐기다. 프랑스와 미국은 물론 식민지인 인도보다도 빨랐다. 그날부터 파운드화와 달러화의 서열이 완전히 뒤집혔다. 셋째 도덕적 설득력 상실이다. 지금 미국은 금융 제재를 통해 러시아와 이란을 옥죈다. 미국 주도로 설립된 국제금융통신망(SWIFT)이 ‘금융의 호르무즈 해협’ 역할을 하고, 러시아와 이란의 자본이 그 안에 인질로 잡혀 있다. 이집트 출신 경제학자 이브라힘 오와이스가 이미 50년 전 그런 일을 예측했다. 미국이 급해지면 ‘인질 자본’의 시대가 열린다는 것이다. 자유시장 원칙을 강조하는 미국이 자본을 인질로 삼는 것은 역설이자 현실이다. 미국 주도의 금융 제재는 그나마 다른 나라들이 협조하기 때문에 유효하다. 그런 국제 공조는 미국의 요구가 설득력을 갖출 때만 유효하다. 지금까지의 추세라면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비중이 15% 이하로 하락하는 시점은 30~40년쯤 뒤다. 미국이 주도하는 인공지능(AI) 투자 때문에 좀더 늦춰질 수도 있다. 경제력이 아닌 다른 조건들이 먼저 충족될 듯하다. 이란과 전쟁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엉뚱한 우방국들에 지원을 압박한다. 방위비가 벅차다는 자백이자 비명이다. 관세정책은 이미 미국 안에서도 설득력을 잃었다. 달러화 패권을 뒤흔들 퍼펙트 스톰은 중동이나 중국이 아닌 미국에서 시작된다. 차현진 호서대 디지털금융경영학과 교수
  • 섞이고 불타고 다시 세워지고… 전쟁의 상처 새긴 ‘치유의 섬’

    섞이고 불타고 다시 세워지고… 전쟁의 상처 새긴 ‘치유의 섬’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슈리성’화재와 전란 등으로 쓰러지길 반복2019년 정전 전소… 복원 공사 한창1945년 봄 ‘철의 폭풍’ 몰아쳤던 섬땅 아래 아직 불발탄 1900t 남아 있어한국인 8000명 강제로 전쟁 끌려와美군정 거치며 하와이 문화 등 유입대표 음식 참프루 … ‘섞는다’는 의미일본 오키나와에 도착한 첫날, 잠깐 해를 봤다. 딱 그뿐이었다. 장마가 보름 일찍 찾아왔다. 낮게 깔린 구름, 쉼 없이 내리는 비, 쌀쌀해진 바람. 에메랄드빛 바다는 온데간데없다. 체류 기간 내내 어제와 오늘이 다르지 않은 풍경이 이어졌다. 그런데 오키나와 남부에선 그 비가 퍽 잘 어울렸다. 북부가 햇살과 바다와 원시림의 섬이라면, 남부는 다른 결의 땅이다. 류큐 왕국의 영광이 남은 돌담, 오키나와 전투가 할퀴고 간 동굴과 절벽, 그 모든 시간을 버텨온 사람들이 만들어낸 음식. 파란 하늘 아래보다 잿빛 하늘 아래에서 더 또렷이 보이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 옛 류큐 왕국의 궁성 ‘슈리성’ 오키나와는 섞이고, 지배받고, 불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그 모든 시간이 이 섬의 자연과 음식에 남아 있다. 오키나와를 여행한다는 건 바로 그 시간의 층위를 천천히 읽어내는 일이다. 남부 여정의 들머리는 슈리성이다. 현청 소재지인 나하 시내 가장 높은 언덕에 터를 잡은 옛 류큐 왕국의 궁성이다. 슈리성의 ‘만국진량’(‘세계 여러 나라를 잇는 가교’란 의미)이란 종에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류큐 왕국은 남쪽 바다 아름다운 나라이며 조선, 중국, 일본 사이에 있고, 배를 이용해 만국의 가교 역할을 하며 무역을 통해 번영한 나라이다.” 이 글을 쓸 당시엔 몰랐을 것이다. ‘만국의 가교’라는 지리적 여건이 훗날 이 왕국을 붕괴시키고, 현 지구 행성 유일 초강대국의 동북아 전진기지로 ‘강점’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슈리성의 역사는 기구하다. 13세기 말~14세기 초 류큐 왕국이 세우고, 일본 사쓰마번이 점령했고, 메이지 정부가 병합했고, 전쟁이 불태웠고, 미군정이 그 위에 대학을 세웠고, 화재가 다시 무너뜨렸다. 그 모든 시간을 견디고 지금 다시 세워지고 있는 곳이 슈리성이다. 류큐 왕국 당시 판자 지붕이었다가 회색 기와 건물로 바뀐 슈리성이 화재와 전란으로 쓰러지길 반복하다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된 건 1992년이다. 2000년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러다 2019년에 화재로 또다시 정전이 전소됐다. 현재 복원 공사는 마무리 단계다. 가을쯤 다시 문을 열 예정이다. 비 내리는 오키나와 남부 표정은 북부와 사뭇 달랐다. 짙푸른 숲이나 에메랄드빛 해변의 숫자는 적어도, 완만한 구릉과 키 낮은 건물들이 잇닿은 풍경은 꽤 평화로워 보였다. 하지만 이 땅 아래에는 아직 1900t가량의 불발탄이 남아 있다. 그러니까 오키나와에서 땅을 판다는 건 과거의 뇌관을 건드리는 일이다. 1945년 봄, 오키나와는 ‘철의 폭풍’ 속에 있었다. 하늘과 바다에서는 폭탄이 쏟아졌고, 땅에서는 탄환과 포탄이 터졌다. 앞서 1944년 10월 10일엔 미군 공습으로 나하 시가지의 약 90%가 사라졌다. 이듬해 4월 1일 미군이 상륙했고, 이후 83일에 걸쳐 지상전이 벌어졌다. 민간인과 군인을 합쳐 24만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확인된 것만 그렇다. 오키나와 주민 4명 중 1명이 사망했다. 전쟁은 군복 입은 사람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오키나와 전투 이전부터 주민들은 이미 전쟁에 끌려 들어가고 있었다. 밭 갈고, 학교 다니던 남자들이 먼저 불려갔고, 이후 15세에서 45세 사이 남녀 전체가 전쟁에 동원됐다. 이른바 ‘네코소기 동원’, 그러니까 섬이 뿌리째 동원됐다. 집도 밭도 전쟁의 기반시설이 됐다. 슈리성 아래엔 일본군 총사령부 지하 참호가 들어섰다. ‘가마’라 불리는 마을 곳곳의 석회암 동굴들은 야전병원이나 탄약고가 됐고, 피난처가 됐다. 그리고 마침내 무덤이 됐다. 오키나와 본섬에만 약 2000개의 가마가 있다. 그 하나하나가 전쟁의 기억을 품고 있다. 전쟁에 동원된 여학생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이토만시 히메유리 탑 아래 있는 가마다. 히메는 여자(姫), 유리는 백합을 뜻한다. 오키나와현 여자사범학교와 제1고등여학교 학생들이 교지(校誌)에 붙인 이름이다. 이 예쁜 이름도 전쟁 앞에선 달아날 재간이 없었다. 교사와 학생 약 240명이 일본군 육군병원 보조 인력으로 동원됐다. 이들이 배치된 곳이 현 ‘히메유리 탑’과 기념관 등이 있는 동굴(가마)의 야전병원이었다. 어둡고 좁고 습한 가마 안에서 이들은 붕대를 갈고, 피를 닦고, 시신을 옮기고, 마취 없이 진행되는 수술을 보조했다. 간호복을 입었지만 그들이 들어간 곳은 병원이 아니라 전장이었다. 비극의 역사인 건 분명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 입장에선 잠깐 멈춰서 돌아봐야 할 지점이 있다. 히메유리를 소녀들의 비극으로만 묘사하는 순간, 보다 중요한 질문이 지워지기 때문이다. 히메유리 탑 옆의 평화기념자료관에 이 내용이 담겨 있다. 왜 미성년자가 전장에 동원됐는가. 이들은 국가총동원 체제가 학생의 몸과 감정과 노동을 군사 목적으로 사용한 결과였다. 전쟁은 아이들에게 총만 쥐여주는 것이 아니었다. 간호와 돌봄, 노동과 충성을 통해서도 학생을 전장으로 끌어들였다. 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은 바로 이 생존자들이 오랜 침묵을 깨고 자신의 기억을 내놓아 만든 공간이다. 자료관 곳곳에 새겨진 이들의 증언은 단순히 개인의 회고가 아니다. 국가가 어린 학생에게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역사의 심판이다. 남쪽 해안가의 마부니 언덕 위엔 평화기념공원이 있다. 오키나와 전투 최후의 격전지에 조성된 기념 공간이다. 각종 자료관, 조형물 등이 60만평에 달하는 너른 공간에 세워져 있다. 절벽 끝자락의 ‘평화의 초석’이 인상적이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오키나와 전투 때 희생된 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졌다. 2019년 현재 24만 1500여명 정도라고 한다. 한반도에서 온 462명의 이름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돼 오키나와로 끌려온 이들이 8000명에 달했다(서울신문 2017년 8월 15일 자 16면)는 언론 보도 등에 비춰보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한국인 이름 옆은 빈 공간이다. 아직 확인되지 못한 이름들을 위한 자리다. 전쟁은 1945년에 끝났어도 상처는 아직 회복되지 못했다. 한 식탁에서 느껴지는 美中日 이제 한 그릇에 담긴 역사, 오키나와의 음식을 돌아볼 차례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냄비는 계속 끓었다. 왕국이 무너지고, 포탄이 쏟아지고, 점령군이 들어와도 사람은 먹어야 했다. 오키나와의 식탁은 그 모든 시간의 기록이다. 숟가락을 드는 순간, 중국의 향기가 나고, 일본이 보이고, 어딘가 미국의 흔적도 섞여 있다. 오키나와 음식은 단순한 향토 요리가 아니다. 이 섬이 살아온 방식의 연대기다. 우선 오키나와의 대표 볶음요리인 참프루부터. ‘섞이고 어울려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알려줄 음식이다. 참프루는 오키나와말로 ‘뒤죽박죽 섞는다’는 뜻이다. 류큐 고유 문화를 기반으로 일본과 중국의 문화가 다양한 형태로 정착했고, 한국이나 동남아의 요소도 섞였다. 근현대에는 미국, 하와이, 남미 지역 문화도 들어왔다. 팬 위에서 여주와 두부와 달걀이 뒤섞이는 그 장면은, 이 섬의 역사가 요약된 축소판이다. 참프루 하면 흔히 고야참프루를 떠올린다. 씁쓸한 고야(여주)에 두부, 달걀, 고기(스팸·삼겹살)를 함께 볶아 만든다. 오키나와 어디서든지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다. 돼지고기 관련 요리도 많다. 그네들 표현처럼 돼지는 ‘울음소리 빼고 다 먹는다.’ 그중 독특한 것이 ‘치마구’다. 오키나와 북부 나키진무라의 후미진 길 옆에 ‘치마구’라는 작은 식당이 있다. 동네 할머니 다섯이 운영하는 토속 식당이다.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인기 높은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도 등장한 집이다. 이 식당의 대표 메뉴는 가게 이름과 같은 치마구 정식이다. 치마구는 오키나와 사투리로 돼지 발가락 부위를 뜻한다. 흔히 ‘족발’의 의미가 담긴 ‘테비치’보다 더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 식당에선 근육, 연골 등으로 이루어진 ‘치마구’를 삶은 뒤 다시 튀겨낸다. 달면서 짜고, 냄새나 기름기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흐물거릴 정도로 익혀서 씹을 것도 없이 넘어간다. 채소참프루도 인상적이다. 밀기울을 뭉친 ‘후’(麩)를 사용해 만든 참프루인데, 쓰디쓴 고야참프루보다 거부감이 훨씬 덜하다. 오키나와 소바는 이름부터가 역설이다. ‘소바’라고 불리지만 메밀이 한 톨도 들어가지 않는다. 밀가루로 뽑은 굵은 면에 돼지 뼈와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로 우린 국물, 그 위에 소키(돼지 갈비) 한 점이 올라간다. 중국의 면 문화와 일본의 다시(육수) 문화, 그리고 오키나와 돼지 요리가 한 그릇에 합쳐진 결과물이다. 오키나와 사투리로 ‘스바’라 불리는 오키나와 소바가 ‘소바’라는 명칭을 얻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소바(메밀) 가루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1970년대 일본 정부가 ‘소바’ 명칭의 사용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당시 농림성 등을 상대로 거세게 반발했고, 마침내 1978년 10월 17일 오키나와에 한해 ‘소바’란 명칭을 쓸 수 있다는 예외 규정을 얻어냈다. 다만 ‘오키나와 소바’, ‘소키소바’ 등으로 본토의 일반 소바와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다. 이날이 바로 ‘오키나와 소바의 날’이다. 현 전역에서 소바를 기념하는 행사가 이어지고, 단골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한 그릇을 다시 확인한다. 돼지 뼈를 끓인 국물에 돼지 갈비라니. 언뜻 느끼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예상만큼 기름지지는 않다. 오히려 개운하게 느낄 만큼 걸쭉한 편이다. 100년 노포가 수두룩한 본토와 달리 오키나와에는 노포가 많지 않다. 태평양전쟁으로 도시가 거의 궤멸했기 때문이다. 1905년 개업한 모토부초의 ‘기시모토 식당’, 1912년 문을 연 나하야, 1923년 나고시 신잔소바 등이 100년 노포로 알려졌다. 오키나와 소바는 단품으로도 먹지만 ‘주시’를 곁들여 먹는 게 보통이다. 주시는 일종의 볶음밥이다. 어렸을 때 ‘빠다’(버터)로 밥 비벼 먹은 기억이 있는 이들은 단박에 이 맛을 알 터다. 이 음식이 필경 미군이 전한 군용 식량 ‘C 레이션’에서 비롯됐을 거란 걸 말이다. 우리 부대찌개와 비슷한 경로로 탄생한 주시 역시 ‘디테일의 일본인’답게 퍽 감칠맛 나는 음식으로 변모시켜 놨다. 라프티는 중국의 동파육과 비슷하다. 간장과 흑설탕, 오키나와 전통 증류주 아와모리로 달콤하게 조린 돼지 삼겹살 요리다. 왕의 연회상에 오르던 요리가 수백 년을 거쳐 서민의 일상식이 됐다. 불신·비하의 상징 ‘A사인’ 미국의 음식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상륙에서 반환까지, 미군정 27년은 오키나와의 식탁을 확 바꿔놓았다. 그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말이 ‘A사인’이다. 미군정이 인증한 일종의 자격증 같은 것으로, 맥도널드와 같은 미국 기업 외에 미군이 출입하는 오키나와의 모든 업소는 ‘A사인’을 발급받아야 했다. 오키나와 사람들에 대한 불신과 비하의 의도가 명백한 제도였지만, 이후 A사인을 받아 살아남은 식당들은 현재 오키나와의 명소가 됐다. 나하 시내 사카에마치 시장에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 층위가 숨어 있다. 이 시장은 전쟁 전 히메유리 학도대의 학교 건물이 있던 자리다. 전쟁으로 학교는 사라졌고, 재건 기간 동안 “이 지역이 다시 번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카에(栄·번영) 마을’이 탄생했다. 낮에는 시장, 밤에는 작은 술집들이 불을 밝히는 독특한 공간이다. 잔파곶의 야외 매점인 ‘킨죠 파라’를 덧붙이자. 이동식 버스 매점으로, 아이스크림과 젠자이 등을 판다. 본토에선 단팥을 묽거나 뻑뻑하게 조린 걸 젠자이라 일컫는데 오키나와에선 달큰하게 조린 강낭콩을 올린 빙수를 뜻한다. 잔파곶은 높이 30~40m로 융기한 산호초 절벽이 2㎞에 걸쳐 이어지는 곳이다. 일대가 산책로와 잔디밭 등 공원으로 꾸며져 하루 종일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 김태흠 “능력과 자질 검증된 진정한 일꾼”…첫 선거운동 ‘보수결집’

    김태흠 “능력과 자질 검증된 진정한 일꾼”…첫 선거운동 ‘보수결집’

    김태흠, 박찬우 천안시장 후보 등 첫 유세“4년 밑그림, 위대한 충남으로 만들겠다”현충사 참배 “몸 바치겠습니다” 필승다짐 김태흠 국민의힘 충남도지사 후보가 21일 천안시청 앞 사거리에서 합동 유세로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합동 유세에는 국민의힘 박찬우 천안시장 후보와 홍성현 충남도의원 후보 등 유세단 약 300명이 집결했다. 김 후보는 “제일 먼저 충남 수부도시인 여러분과 함께한다”며 “이번 지방선거는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이 검증된 진정한 일꾼을 뽑는 선거”라고 강조했다. 이어 “4년 동안 도정을 이끌면서 ‘힘쎈 충남’ 밑그림을 그렸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충남으로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삼권분립 국가. 이번에 지방 권력까지 이재명 정부에게 넘어간다면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의 국가가 아니고 공소취소특검 등 이재명 독재 국가로 가는 것”이라며 지방선거에서 집권여당에 대한 견제 기능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천안 합동 유세를 마무리한 김 후보는 유용원 국회의원, 김민경 아산을 국회의원 후보, 맹의석 아산시장 후보 등과 함께 아산의 현충사를 찾아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에 분향·참배하며 지방선거 승리 의지를 다졌다. 그는 현충사 방명록에 ‘이순신 장군의 애국·애족 헌신을 기리며 충남과 대한민국에 몸을 바치겠습니다’라는 글귀를 남겼다.
  • 서로 “친구”라고 부른 시진핑과 푸틴…중·러 결속 과시

    서로 “친구”라고 부른 시진핑과 푸틴…중·러 결속 과시

    중국과 러시아 두 정상이 미중 정상회담이 열린 지 닷새 만에 베이징에서 20일 만나 중동 분쟁 종식을 촉구하며 협력을 다짐했다. 시진핑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로 친구라고 부르며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과 확대회담, 차담 등을 이어갔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정상회담에서 “중동과 걸프 지역 상황이 전쟁에서 평화로 전환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며 “전면적인 전쟁 중단은 한시도 미룰 수 없고 전쟁 재개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협상을 견지하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전쟁이 조속히 진정되는 것은 에너지 공급과 국제 무역 질서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역설했다. 시 주석은 또 “현재 국제 정세는 혼란과 변화가 뒤엉켜 있고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의 역류가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세계는 정글의 법칙으로 퇴행할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러한 국제적 배경 속에서 중러의 우정과 협력이 두드러진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을 ‘친애하는 친구’라고 칭하면서 “중동 위기 속에 러시아는 중국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원”이라고 강조했다. 또 지난해 5월 러시아를 방문했던 시 주석을 내년 국빈으로 초청했다. 러시아의 대중국 석유 수출은 지난 10년간 계속 증가했지만,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증가세는 소폭에 그쳤다. 이는 중국이 러시아에 에너지 공급을 의존하는 것을 경계한 탓이다. 중러 정상은 공동 기자회견이나 합의문 발표가 없었던 미중 정상과 달리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문서 서명식을 개최해 오래된 밀착 관계를 과시했다. 이날 무역 및 기술 협력, 철도 건설, 에너지 등 20개 문서에 두 정상이 함께 서명하는 행사가 열렸다. 한편 중국 상무부는 중러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도중 미국과 관세 및 희토류 문제를 협의한 결과를 발표했다. 상무부는 미중 양국이 서로 상호 관세를 300억 달러(약 45조원) 이상 내리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미국 백악관이 지난 17일 발표한 팩트 시트에 없었던 내용이다. 중국은 미중 관세 전쟁이 진정되면서 양국 무역이 확대되고 세계 시장도 더욱 개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관세 전쟁에서 효과적인 무기로 활용했던 희토류에 대해서도 “미국의 우려를 공동으로 연구하고 해결할 것”이라며 백악관 발표보다 더 발전적인 자세를 보였다. 중국이 러시아와의 정상회담 도중 미중 무역 협상 결과를 발표한 것은 미중러 삼각관계에서 중심점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 “그리웠어요” 트럼프 가자마자 ‘보란 듯’…시진핑·푸틴 동맹 과시 [중러정상회담]

    “그리웠어요” 트럼프 가자마자 ‘보란 듯’…시진핑·푸틴 동맹 과시 [중러정상회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일 중국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열고 중러 전략 협력 강화를 재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직후 같은 장소에서 중러 정상회담이 열리면서, 미중 회담 이후 국제질서 재편을 둘러싼 중러 공조가 부각됐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과 러시아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전 11시 5분쯤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만나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소인수 회담과 확대회담을 잇달아 진행했다. 두 정상의 대면 회담은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 열병식 이후 8개월 만이다. 이번 회담은 지난 14일 미중 정상회담 이후 불과 엿새 만에 열렸다. 미국과 러시아 정상이 같은 달 잇따라 중국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시진핑, 고전 시구까지 언급하며 중러 우호관계 역설시 주석은 회담에서 “중러 관계가 오늘날의 높은 수준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정치적 상호 신뢰와 전략 협력을 지속적으로 심화했기 때문”이라며 “각 분야 협력을 확대하고 국제 공정과 정의를 함께 수호해온 결과”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중국 고전 표현도 잇달아 인용했다. 그는 ‘수많은 시련과 타격 속에서도 더욱 굳건해진다’는 뜻의 ‘천마만격환견경’(千磨萬擊還堅勁), ‘한층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는 의미의 ‘갱상일층루’(更上一層樓), ‘거센 먹구름이 몰아쳐도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뜻의 ‘난운비도잉종용’(亂雲飛渡仍從容)을 거론하며 중러 관계의 안정성과 전략적 의미를 강조했다. 시 주석은 “현재 국제정세는 혼란과 변화가 뒤엉켜 있고 일방주의와 패권주의의 역류가 횡행하고 있다”며 “평화를 추구하고 발전을 도모하며 협력을 촉진하려는 것은 여전히 민심의 방향이자 시대의 흐름”이라고 했다. 이어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관점에서 더 높은 수준의 전면적 전략 협력을 통해 각국의 발전과 부흥을 도와야 한다”며 “더 공정하고 합리적인 글로벌 거버넌스 체계 구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양국관계 전례없는 절정기…다극질서 형성중” 푸틴 대통령도 중러 관계가 “전례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화답했다. 그는 시 주석을 “친애하는 친구”라고 부르며 “양국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와 전략적 협력은 현대 국제관계의 모범”이라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는 여러 차례 시험대에 올랐지만 변함없이 안정적이었다”며 “양자 관계뿐 아니라 국제 무대에서도 협력을 계속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시 주석에 대한 친근감도 중국 고사를 빌려 표현했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에는 ‘우리가 만난 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치 세 번의 가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는 말이 있다”며 “당신을 만나 진정으로 기쁘다”고 말했다. 하루가 세 해처럼 길게 느껴질 만큼 그립다는 뜻의 ‘일일여삼추’(一日如三秋)를 인용한 발언이다. 푸틴 대통령은 다극화 질서 구축도 강조했다. 그는 “모든 참여국의 이익 균형을 바탕으로 한 다극적 세계를 형성하는 복잡한 과정이 진행 중”이라며 “중국 친구들과 함께 문화와 문명의 다양성을 수호하고 각국의 주권적 발전을 존중하며 보다 공정하고 민주적인 세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경제·에너지 협력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푸틴 대통령은 “불리한 외부 요인 속에서도 양국의 협력과 경제 관계는 여전히 긍정적”이라며 “긴장이 지속되는 현재 국제 상황에서 양국의 긴밀한 협력이 특히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5년간 양국 교역액은 30배 이상 증가했고, 최근 수년간 꾸준히 2000억 달러를 넘어섰다”며 경제 협력 성과도 부각했다. 같은달 미러 정상 방중은 처음…에너지 안정 강조이날 회담에서는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중국으로 공급하는 ‘시베리아의 힘-2’ 가스관 프로젝트를 비롯한 에너지 협력, 미중 정상회담 결과, 이란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정상은 회담 뒤 ‘다극화된 세계 질서와 새로운 유형의 국제 관계 수립에 관한 선언문’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 강화, 에너지·경제 협력 등을 포함한 약 40건의 문서에 서명할 것으로 전해졌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내년 러시아 방문을 요청했다. 또 중국이 올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의장국으로서 오는 11월 선전에서 개최하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 [이광호의 어찌보면] 독서국가는 어떻게 오는가

    [이광호의 어찌보면] 독서국가는 어떻게 오는가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 지금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급박하고 현실적인 이유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이렇게 답한다. 누구에게나 삶은 상실과 실패, 병과 죽음 앞에서 근원적으로 취약하다. 그 취약함과 함께 살면서 무너지지 않을 내면을 만드는 것은 독서라고, 절망하지 않고 맹목이 되지 않으려면 읽어야 한다고. 작가 알베르토 망겔은 인간을 ‘독서하는 동물’로 규정하면서, 독서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서 온 메시지를 되살리고,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비밀스러운 공간을 창조하며, 한 페이지의 힘만으로 우주를 재정의하고 불공정함에 저항할 수 있다.” ‘한 페이지의 힘’은 한 사람이 우주를 재정의할 수 있게 한다. 한국 사회의 독서율은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3월에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1년 동안 한 권 이상 읽은 성인의 비율은 38.5%였다. 2023년보다 4.5% 포인트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월간 독서율 평균은 4.6권인데, 한국은 0.8권이다. 부끄러운 최하위권이다. 독서율 하락에는 복합적이고 문명사적인 요인이 있다. 검색 엔진과 인공지능(AI)의 활성화, 쇼츠 시청 등 정보와 교양의 습득이 디지털 콘텐츠 중심으로 변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의 독서율은 심각한 수준이다. 디지털과 AI 영역에서 한국이 보여 주는 약진은 세계 최하위 독서율이라는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AI 시대는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고 내재화하는 비평적 사고 능력이 필수적이다. 디지털과 AI가 만드는 범람하는 정보에 대한 비판적인 독해력은 독서를 통해서만 길러질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텍스트힙’이 한국문학과 독서에 대한 인식을 끌어올린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노벨문학상이 한국문학 독서의 다양성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텍스트힙도 젊은 세대에게 책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지만, 근본적으로 상황을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이른바 ‘셀럽’들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현상은 독서계로서는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셀럽들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베스트셀러 목록을 지배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건강한 독서 생태계라고 볼 수 없고, 출판계가 얼마나 내구성이 약한지 보여 줄 뿐이다.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에는 한국어 독서 시장 자체의 협소함이 있다. 시장이 너무 작기 때문에 단행본 시장의 핵심 가치인 다양성은 고갈되고, 하나의 이슈에 쏠리면 양극화는 심화된다. 지난 1월 국회에서 열린 ‘독서국가 선포식’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시민들의 문해력 수준은 한 국가의 문화적·사회적 역량의 핵심적인 기반이다. 지식과 창의성은 국가의 핵심 자본이며, 독서력은 그 나라 소프트파워의 원천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뭔가를 ‘선포’한다고 해서 목표가 자동으로 이뤄지진 않는다. 독서를 국가와 사회가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업이다. ‘독서권’은 문화적 기본권의 하나이기 때문에, 국가는 독서와 출판을 시장의 논리에 따라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반도체나 AI 산업에 지원하는 규모의 극히 일부만이라도 독서 생태계를 위해 지원한다면 ‘독서국가’는 현실이 될 수 있다. 초중고 교육과 연계한 독서교육의 제도화를 채택하고 독서 진흥 프로그램, 지역 서점과 공공도서관에 대해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 출판계의 오랜 숙원인 제작비 세제 지원 혜택에 아직도 출판이 적용되지 않고 있는 것은 독서국가 인프라 구축의 중요성에 대한 몰이해를 증명할 뿐이다. 작은 지역서점에서만 통용되는 도서 바우처 사업이나 문화 소외계층과 젊은이를 위한 도서 구입비 지원 사업, 도서관 대출 시 저자와 출판사에 보상이 갈 수 있는 ‘공공대출보상권’을 위해 도서관 예산을 확충하는 것 등은 정책 의지만 있다면 실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국가가 독서를 지원하는 것은 단순히 시민들의 교양 수준을 올리는 명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창의성과 감성 지능은 독서를 통해서만 길러진다. 독서 생태계가 무너지면 AI 역량과 K콘텐츠 산업의 기반 자체가 힘을 잃는다. 독서는 다양한 타자의 목소리들을 환대하는 훈련이고 민주주의적 다원성을 배우는 공간이다. 독서 공동체의 소멸은 민주적 소통 문화의 종언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의 극심한 혐오와 적대는 독서를 통해 이념의 맹목성을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다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는 인간이 아름다운 것은 타인의 언어와 사유를 통해 삶을 디자인해 나가는 내면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은 내가 원하던 것만을 보여 주지만, 독서는 지금과는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독서는 혼자만이 할 수 있는 고요하고 고독한 행위다. 세상은 다정하지도 않으며, 때로 무의미하고 잔인하고 덧없다. 어떤 가족도 친구도 유용한 정보도, 내 삶의 고독한 시간 자체를 대신해 주지 않는다. 어떤 절망적인 순간이 오면 인간은 결국 ‘혼자’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 독서는 일인칭의 내적 삶을 지탱하는 마지막 힘이다. 이광호 문학과지성사 대표
  • 구자욱 부친 “김부겸 지지”…‘삼성 팬’ 김부겸은 “계 탔다”

    구자욱 부친 “김부겸 지지”…‘삼성 팬’ 김부겸은 “계 탔다”

    KBO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의 프랜차이즈 스타 구자욱(34)의 부친이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삼성 라이온즈의 팬으로 알려진 김 후보는 “계 탔다”며 환호했다. 19일 정계에 따르면 전날 대구 달서구에 있는 김 후보 선거사무소에서는 대구 지역 원로 축구인 40여명이 모여 김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고문, 김영균 전 대한유소년축구연맹 고문, 김형진 대구조기축구연합회 회장 등이 선언문에 이름을 올렸다. 구자욱의 부친으로 대구시민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구경회 전 대한축구협회 초등축구연맹 부회장도 자리를 함께했다. 구 전 부회장은 이날 원로 체육인들의 지지 선언문을 대표로 낭독했다. 원로 체육인들은 “전국 야구장 가운데 ‘라팍’(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이 암표 거래가 가장 활발하다”면서, 암표까지 구해가면서 대구시민들이 야구장으로 향하는 현상이 역설적으로 대구 시민들의 팍팍한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로 체육인들은 “대구의 경제적 어려움이 체육계를 포함해 사회문화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희망찬 새 대구를 만들 역량과 위기관리 경험을 갖춘 지도자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후보야말로 희망차고 새로운 대구를 만들 수 있는 지도자”라면서 “집권여당의 힘 있는 후보만이 현재 봉착해 있는 대구의 경제 위기와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시민들로 붐비는 라팍, 팍팍한 현실 보여줘”이에 김 후보는 “체육은 시민 통합과 도시 활력을 이끄는 중요한 자산”이라며 생활체육과 엘리트 체육, 유소년 스포츠의 균형있는 성장을 약속했다. 이어 “체육계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 시민 누구나 스포츠를 즐기고 건강을 누릴 수 있는 대구를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삼성라이온즈의 열혈 팬으로 알려진 김 후보는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구 전 부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계 탔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반가운 심정을 드러냈다. 김 후보는 “선거로 바쁜 와중에도 삼성 경기 결과는 한 번씩 챙겨본다. 팀이 주춤할 땐 마음이 쓰였고, 다시 살아나는 모습 보면 괜히 제가 다 힘이 났다”면서 “특히 구자욱 선수는 참 든든하다. ‘삼성 왕조’ 시대의 막내가 팀을 이끄는 주장이 됐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 싶다”고 썼다. 이어 “식전에 잠시 짬을 내어 구경회 선생과 따로 사진을 찍었다”면서 “눈빛이 참 맑으신데, 구자욱 선수의 또렷한 눈동자가 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돌이켰다. 김 후보는 또한 한 어린이로부터 ‘대구FC를 도와달라’는 부탁을 들었다고 전하며 “삼성라이온즈도, 대구FC도 단순한 스포츠 팀이 아니라 시민들에게는 추억이고, 자부심이고, 우리 도시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이 ‘나는 대구 사람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데 힘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 “IBK가 키워 놓으면 시중은행에서 데려가”… 생산적 금융시대, 중기 대출의 씁쓸한 역설 [경제 블로그]

    “예전엔 기업은행에서 대출받던 회사들이 어느 순간 시중은행 기업 창구에서 상담받고 있더라.” 생산적 금융 확대 분위기 속에 시중은행들이 성장 가능성이 높은 중소·중견기업 공략에 적극 나서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고민이 커진 곳이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중기금융 시장 점유율(MS)이 높았던 IBK기업은행입니다. 공들여 관리해온 고객들을 다른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노리고 있어섭니다. 특히 인공지능(AI)·반도체·로봇·방산 같은 생산적 금융 핵심 업종 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런 분위기가 두드러진다고 합니다. 자금 여력이 큰 시중은행들이 더 낮은 금리를 앞세워 “갈아타라”고 손짓하는 건데, 흥미로운 건 기업은행 거래 이력 자체가 일종의 ‘검증 마크’처럼 통한다는 점입니다. 원래 중소기업 대출은 은행 입장에선 쉽지 않은 영역입니다. 실적이 급변할 수도 있고 산업 변화에 따라 회사 운명이 흔들릴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업은행이 오랜 기간 거래하며 자금을 공급해왔다는 건 그만큼 회사 상황을 꾸준히 들여다봤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셈입니다. 은행권 안팎에선 “기업은행이 키워놓은 기업을 시중은행들이 데려간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기업은행 입장에서는 고민이 적지 않습니다. 단순 금리 경쟁으로 대응하기엔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미 중기대출 금리 수준 자체가 낮은 편인데다 정책금융 역할까지 수행해야 해 추가 금리 인하 여력과 수익성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설명입니다. 시중은행들이 이미 검증된 기업을 데려오는 데 집중하기보다, 더 큰 자본력과 전문 심사역 조직을 활용해 새로운 성장 기업을 직접 발굴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대신 기업은행은 최근 ‘관계 금융’을 더 강조하는 분위기입니다. 기업이 어려울 때 먼저 자금을 지원했던 경험과 오랜 거래 신뢰 자체가 경쟁력이라는 논리입니다. 실제 기업은행은 일자리 지원과 경영 컨설팅, 수출 지원, 거래처 연결 같은 비금융 서비스 역량을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단순히 대출만 해주는 은행이 아니라 기업 성장 과정 전체를 함께하는 파트너 역할을 강화해 고객 이탈을 막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 김호겸 경기도의원 “초고령화 시대, 평생교육 차원의 노인교육 활성화해야”

    김호겸 경기도의원 “초고령화 시대, 평생교육 차원의 노인교육 활성화해야”

    경기도의회 교육기획위원회 소속 김호겸 의원(국민의힘, 수원5)이 지난 15일 수원시 팔달 노인대학을 찾아 ‘노인 평생교육 정책’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고,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시간을 가졌다. 제11대 경기도의회 교육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인 김 의원은 지난 4년간의 의정활동을 통해 다각적인 평생교육 정책 대안을 제시해 왔다. 특히 어르신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한편, 노인들의 풍부한 지혜와 경험을 학교 현장에 접목해 학생들의 인성교육에 활용해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이날 강연에서 김 의원은 대한민국이 저출산·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맞이하게 된 ‘건강 100세 시대’의 도래를 짚어보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경기도와 경기도의회 차원의 주요 정책 및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상세히 설명했다. 그는 “저출산 초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의 경험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다”라고 강조하면서, “노인들에게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최선의 복지 실천이다”라고 정책 대안을 제시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냈다. 또한 한국과 일본의 노인 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 사례를 비교 설명한 김 의원은 “경기도와 정부가 초고령화 사회 진입에 걸맞은 교육 프로그램 설계와 운용, 이를 통한 노인 맞춤형 일자리를 창출하여 노인 인구가 절대적 빈곤층으로 진입하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라고 주문했다. 끝으로 김 의원은 “위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평생교육으로서 노인 교육 활성화가 필요하다”라고 거듭 당부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한정판도 아닌데 되팔이 전쟁”…60만원 스와치가 350만원 된 이유 [브랜드 줌]

    “한정판도 아닌데 되팔이 전쟁”…60만원 스와치가 350만원 된 이유 [브랜드 줌]

    한정판도 손목시계도 아닌 제품이 전 세계 스와치 매장 앞에 긴 줄을 세웠다. 스위스 시계 브랜드 스와치와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 오데마 피게가 손잡고 내놓은 ‘바이오세라믹 로열 팝 컬렉션’ 이야기다. 미국 정가는 모델에 따라 400달러 또는 420달러다. 국내 발매가는 57만원과 60만 5000원이다. 그러나 출시 직후 국내 리셀 플랫폼에서는 인기 모델이 350만원대에 실제 체결됐고 해외에서도 정가의 약 6배에 팔린 사례가 나왔다. 이번 협업작은 일반적인 손목시계가 아니라 목에 걸거나 휴대하는 회중시계다. 그런데도 소비자와 리셀러는 제품에 몰렸다. 명품 협업이 어디까지 소비 심리를 자극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 한정판 아니라는데도 매장 30곳 이상 폐쇄 스와치는 지난 16일 오데마 피게와 협업한 ‘로열 팝’ 컬렉션을 전 세계 일부 매장에서 출시했다. 제품은 모두 8종으로 오데마 피게의 대표 모델 ‘로열 오크’와 스와치의 1980년대 ‘팝’ 라인에서 영감을 받았다. 출시 전부터 기대감은 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시계 애호가들이 이번 협업을 두고 스와치가 오데마 피게의 대표 모델 로열 오크를 대중 가격대로 재해석할 가능성에 주목했다고 전했다. 오데마 피게는 파텍필립, 바쉐론 콘스탄틴과 함께 최고급 시계 시장을 상징하는 3대 브랜드로 꼽힌다. WSJ는 이번 협업이 고급 시계의 상징을 스와치 방식으로 대중화했다는 점에서 기존 오메가·블랑팡 협업과 성격이 달랐다고 짚었다. 출시 당일 상황은 예상보다 과열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뉴욕, 런던, 파리, 두바이 등 주요 도시 매장 앞에 인파가 몰리자 스와치가 공공 안전을 이유로 30곳 이상의 매장을 닫았다고 전했다. NBC는 미국에서만 최소 19개 매장이 보안 인력과 현지 당국 판단에 따라 영업을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BBC에 따르면 영국 카디프에서는 쇼핑센터에 약 300명이 몰렸고 남성 1명이 체포됐다. 스와치는 공식 안내문에서 “로열 팝 컬렉션은 몇 달 동안 계속 판매될 예정”이라며 “일부 국가에서는 50명 이상의 대기열을 허용할 수 없어 판매를 일시 중단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한정판이 아니라는 설명이었지만 현장은 사실상 한정판 출시처럼 움직였다. ◆ 국내서도 57만원 제품이 350만원대 거래 리셀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WSJ는 뉴욕 타임스스퀘어 매장 앞에서 출시 며칠 전부터 대기 행렬이 생겼고 일부 잠재 리셀러들은 1500~4000달러 수준의 재판매가를 기대했다고 전했다. 디자인 호불호보다 브랜드 이름과 초기 희소성에 베팅하는 수요가 컸던 셈이다. 국내 리셀 플랫폼에서도 웃돈은 확인됐다. 크림(KREAM)에 올라온 스와치·오데마 피게 협업 제품 가운데 흰색 모델인 ‘위트 블랑’은 국내 발매가 57만원으로 표시됐지만 최근 356만 9000원에 체결된 거래가 확인됐다. 직전 거래도 299만원, 324만원, 325만원, 323만원 등 300만원 안팎에 형성됐다. 발매가와 비교하면 실제 체결가가 6배 수준까지 뛴 셈이다. 블랙 모델인 ‘오초 네그로’도 인기가 높았다. 같은 플랫폼에서 오초 네그로는 최근 275만~299만원대에 체결됐고 거래 건수도 16건으로 확인됐다. 해외에서도 이베이 판매 완료 목록 기준 로열 팝 제품이 1400~2400달러 수준에 판매된 사례가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 회중시계인데 왜 샀나…손목 커스텀 기대감 이번 협업작의 가장 큰 반전은 손목시계가 아니라 회중시계라는 점이다. 로열 팝은 케이스 위쪽에 고리와 스트랩을 단 형태다. 목에 걸거나 가방에 달 수 있지만 일반적인 시계처럼 손목에 차도록 나온 제품은 아니다. 그런데 이 점이 오히려 시계 애호가들의 관심을 키웠다. 손목에 찰 수 있다면 ‘저가형 로열 오크’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기대가 퍼졌기 때문이다. 시계 전문 매체 기어패트롤에 따르면 스트랩 브랜드 델루그스는 로열 팝을 손목에 착용할 수 있는 스트랩 개발을 예고했다. 공식 제품은 회중시계지만 소비자들이 머릿속에 그린 제품은 사실상 ‘60만원대 로열 오크풍 손목시계’에 가까웠던 셈이다. 오데마 피게의 팔각형 베젤 디자인과 스와치 특유의 가벼운 소재가 결합되면서 “커스텀만 되면 손목에 찰 수 있다”는 기대가 수요를 키웠다. 다만 이는 아직 커뮤니티 차원의 기대와 예상에 가깝다. 스와치가 공식 손목 스트랩이나 어댑터를 내놓은 것은 아니다. ◆ 명품 대중화인가, 희소성 장사인가 스와치는 이미 비슷한 방식으로 시계 시장을 흔든 경험이 있다. 2022년 오메가와 협업한 ‘문스와치’는 오메가의 대표 모델 스피드마스터를 스와치식으로 재해석해 세계적인 품절 대란을 일으켰다. 이후 블랑팡 협업 제품도 큰 관심을 받았다. 이번 오데마 피게 협업은 상징성이 더 크다. 오메가와 블랑팡은 모두 스와치그룹 계열 브랜드지만 오데마 피게는 독립적인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다. 시계 업계에서 이번 협업을 두고 고급 시계의 ‘성역’까지 대중 협업의 영역으로 내려왔다는 반응이 나온 이유다. 호불호는 뚜렷했다. 일부 소비자는 저렴한 로열 오크 손목시계를 기대했지만 실제 제품은 회중시계였다는 점에 실망했다. 반대로 리셀러들은 브랜드 이름과 디자인 상징성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봤다. 스와치는 이번 컬렉션을 몇 달 동안 계속 판매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은 스스로 한정성을 만들어냈다. 일부 매장 판매와 1인당 구매 제한, 초기 공급 부족과 리셀 기대감이 겹치자 소비자들은 제품을 지금 사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로열 팝 소동은 단순한 시계 출시 해프닝이 아니다. 손목에 차지도 못하는 회중시계가 왜 전 세계 매장 앞에 줄을 세웠는지 보여준다. 명품은 대중화될수록 더 가까워지지만 동시에 더 많은 사람이 몰리면서 또 다른 희소성을 만든다. 60만원 안팎의 스와치가 불러온 소동은 그 역설을 드러냈다.
  • 기후 적응의 ‘역설’, 주택가격 상승 등 취약계층 ‘주거 불안’ 심화

    기후 적응의 ‘역설’, 주택가격 상승 등 취약계층 ‘주거 불안’ 심화

    도시공원 조성과 습지 복원 등 도시의 기후 적응 활동이 주택가격 상승 등을 유발해 취약계층의 거주 불안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8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따르면 AI 미래학과 김승겸 교수 연구팀이 베이징대 등과 아프리카 32개국 도시를 분석한 결과 기후 적응 정책이 도시 회복력을 높이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원주민을 밀어내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규명했다. 이는 도시공원 조성 등으로 도시의 홍수·폭염 피해를 줄이는 기후 적응 전략인 ‘그린·블루 정책’이 도시 변화에 미친 영향에 대한 첫 검증이다. 분석 결과 그린·블루 적응이 이뤄진 지역은 주택가격·인구 유입·지역 변화 등을 반영한 종합 젠트리피케이션 지수가 약 41%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주택가격은 13.00% 오르고, 가구 소비는 20.30% 증가했다. 기후 적응을 위한 투자가 지역의 자산 가치와 사회경제적 구성을 재편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연구팀은 이런 현상이 특정 도시가 아닌 아프리카 전역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적 변화라고 평가했다. 연구팀은 임대료 규제만으로는 젠트리피케이션 압력을 완화하지 못했고 일부는 투기적 투자 유인을 자극하는 경향도 확인했다. 반면 재정착 지원체계가 마련된 지역에서는 부정적 효과가 완화돼 기후 적응의 파급효과가 도시 구조와 성장 단계에 따라 차별적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기후 적응이 단순 인프라 확충의 문제가 아니라 ‘분배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연구”라며 “기후 정책은 환경 개선뿐 아니라 취약계층 보호와 주거 안정까지 고려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 광주은행, 변동성 장세 속 ‘자산관리 해법’ 제시

    광주은행, 변동성 장세 속 ‘자산관리 해법’ 제시

    광주은행이 요동치는 금융시장 상황에 대응해 PB(프라이빗 뱅킹) 고객들을 위한 ‘자산관리 나침반’을 제시했다. 18일 광주주은행에 따르면 최근 본점 상생마루에서 독립 리서치 법인 ‘광수네복덕방’의 이광수 대표를 초청해 ‘PB고객 자산관리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국내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는 가운데, 고객들에게 거시적 시장 흐름을 명확히 전달하고 실질적인 자산 운용 해법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강연자로 나선 이광수 대표는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는 국면일수록 단기적 이슈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견고한 포트폴리오 구성이 우선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특히 구체적인 사례를 바탕으로 리스크 관리 방안과 장기적 자산 배분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흔들림 없는 투자 원칙의 필요성을 강조해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현재 광주은행은 급변하는 투자 환경에 발맞춰 자산관리 서비스의 질적 도약을 꾀하고 있다. ‘PrimePB센터’와 ‘WM라운지’를 필두로 투자·세무·부동산·연금 등 각 분야의 전문 컨설팅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전문 조직인 ‘WM플러스’와 ‘The혜안(慧眼)’을 중심으로 고객별 맞춤형 원스톱 솔루션을 지원하고 있다. 정금옥 광주은행 WM사업부장은 “고객들의 자산관리 수요가 점차 다변화되고 전문화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신뢰도 높은 시장 정보와 차별화된 전문 솔루션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고객의 소중한 자산을 보호하고 증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기후변화 극복 노력이 저소득층 삶을 힘들게 만든다고?

    기후변화 극복 노력이 저소득층 삶을 힘들게 만든다고?

    지난주부터 한여름에나 만날 수 있는 가마솥 더위가 찾아왔다. 과거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 5월 중순에 낮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후변화도 한몫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는 것처럼 원인을 제거하는 감축과 다가오는 피해에 대비하는 적응이다. 적응은 이미 시작된 이상 기후에 맞춰 사회와 개인의 생존 및 회복력을 높이는 전략이다. 그런데 기후변화 적응이 자칫 저소득층의 삶을 힘들게 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카이스트 AI미래학과, 중국 북경대, 뉴욕상하이대 공동 연구팀은 도시공원 조성, 습지 복원 같이 녹지와 수(水)공간을 활용하는 ‘그린-블루 적응’이 역설적으로 집값 상승과 인구 유입을 촉진해 기존에 거주하고 있던 저소득층 주민의 거주 불안을 심화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18일 밝혔다. 이 연구는 아프리카 전역을 대상으로 기후적응과 젠트리피케이션 간 인과 관계를 규명한 첫 대륙 규모의 분석으로 도시공학 분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도시학’에 실렸다. 녹지와 수공간 기반 기후적응 방법인 그린-블루 적응은 도시의 홍수와 폭염 피해를 줄이는 대표적 기후적응 전략으로 꼽힌다. 연구팀은 아프리카 32개국 221개 도시의 5503개 행정단위를 대상으로 2005년부터 2024년까지 변화를 추적했다. 위성 영상 분석과 사회경제적 데이터를 결합해 그린-블루 적응이 실제 도시의 변화와 주민 삶에 미친 영향을 정밀 분석했다. 이어 정책 효과의 전후 변화를 비교해 인과 관계를 분석하는 이중차분법을 적용해 그린-블루 적응이 도시에 미친 영향을 살펴봤다. 그 결과, 기후적응 정책이 도시 회복력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동시에 환경 개선이 오히려 원주민을 밀어내는 사회적 배제 압력인 ‘젠트리피케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연구팀에 따르면 기후적응 시설이 조성된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주택가격, 인구 유입, 지역 변화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종합 젠트리피케이션 지수(CGI)가 평균 약 41% 상승했다. 주택가격은 약 13% 상승했으며, 외부 인구 유입도 유의미하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대해 연구팀은 기후 위기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된 시설이 역설적으로 경제적 취약계층의 주거 불안을 심화시키고 기존 공동체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를 이끈 김승겸 카이스트 교수는 “기후적응 정책은 도시를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지만 동시에 집값 상승과 인구 이동을 불러와 기존 주민들의 주거 불안을 키울 수 있는 만큼 앞으로의 기후 정책은 환경 개선뿐 아니라 취약계층 보호와 주거 안정까지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기후적응을 단순한 인프라 구축의 문제가 아니라 혜택과 부담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의 ‘분배 문제’로 바라봐야 함을 제시한다”며 “앞으로의 기후 정책이 녹지와 수공간 확충에 그치지 않고 토지 소유권 보호와 공공주택 공급, 개발이익 환수 등 주거 안정 대책과 함께 추진돼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무용수의 화가 넘어 ‘기록가’ 드가를 만나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무용수의 화가 넘어 ‘기록가’ 드가를 만나다[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30여권 수첩은 화가의 ‘실험 일지’구상·재료 실험·인물 관찰 등 담겨그림, 치밀하게 계산된 ‘범죄’ 비유집요한 관찰·기록으로 완벽 재구성파스텔을 독립적 회화로 끌어올려누드화, 여신 아닌 ‘현실의 몸’ 묘사말년에는 ‘시력 악화’ 시련도 극복 조각의 고정관념 깨뜨린 걸작 남겨흔히 무용수의 화가로 불리는 인상주의 화가 에드가르 드가(1834~1917)에게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얼굴이 있었다. 바로 지독할 만큼 집요한 기록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평생 수많은 편지와 카르네라고 불리는 30여권의 수첩을 남겼다. 특히 1853년부터 1886년까지 33년에 걸친 흔적이 담긴 그의 수첩들 속에는 작품 구상과 재료 실험, 인물의 움직임에 대한 관찰,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선이 실험 일지처럼 세밀하게 적혀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드가가 찰나의 빛을 좇던 인상주의 화가에 머물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그는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면서도 탄탄한 인체 데생, 치밀한 화면 구성을 끝까지 놓지 않았던 예술가였다. 이제 드가가 남긴 명언들을 따라가며 그의 기록들이 캔버스 위에서 위대한 걸작으로 탄생하는 과정을 함께 살펴보겠다. 첫 번째 명언 “그림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만큼이나 많은 교활함과 악덕이 필요한 일이다.” 예술가를 범죄자에 비유하다니, 처음 들으면 다소 당혹스럽게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 범죄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일이 그만큼 치밀하고 계산적인 행위라는 의미에 가깝다. 범죄자가 현장의 흔적을 지우고 완벽한 알리바이를 짜듯이 화가 역시 화면 속 모든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치하고 관람객의 시선을 정교하게 이끌어야 한다는 뜻이다. 드가는 인체 근육의 미세한 떨림, 무대 조명이 만들어 내는 인공적인 빛과 어둠의 대비를 포착하기 위해 범죄 현장의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관처럼 대상을 집요하게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작업실로 돌아와 수첩 속 스케치와 기억, 반복된 수정과 계산을 바탕으로 화면을 완벽하게 재구성했다. 드가는 영감이나 즉흥성에 기대는 예술을 경계하며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만큼 스튜디오에서 철저히 계산해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없다. 내가 하는 모든 일은 거장들을 연구하고 성찰한 결과물이다.” 실제로 드가는 청년 시절 루브르 미술관의 공식 모사공으로 등록해 옛 대가들의 작품을 수없이 베끼며 화가로서의 기본기를 다졌다. 그는 고전 거장들의 구도와 기법, 인체 표현 방식을 흡수한 뒤 무용수, 경마장, 오페라 극장처럼 현대적인 삶의 장면에 적용했다. ‘발레 수업’①은 회화란 눈앞의 현실을 그대로 옮기는 일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가짜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드가의 예술관을 잘 보여 주는 작품이다. 화면 속에는 당시 위대한 안무가였던 쥘 페로의 지도 아래 수업이 막 끝나갈 무렵의 발레 연습실 장면이 펼쳐져 있다. 언뜻 보면 드가가 연습실 한편에서 우연히 포착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작업실에서 수많은 스케치와 기억들을 정교하게 조립해 완성한 작품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나를 무용수의 화가라고 부르지만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움직임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드가에게 무용수는 아름다운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인체의 움직임을 연구하기 위한 가장 완벽한 피사체였다. 그는 예쁘게 멈춰 선 자세보다 근육이 팽팽하게 수축하고 몸이 비틀리며 균형이 흔들리는 순간에 더 매료되었다. 하품을 하거나 토슈즈 끈을 묶는 사소한 동작 속에서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와 운동감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난다고 본 것이다. 드가는 다른 화가들이 놓쳤던 화려한 무대 뒤편의 진실을 포착했기에 무용수의 화가를 넘어 현대적 삶의 움직임을 기록한 독보적인 예술가가 될 수 있었다. 두 번째 명언 “나는 선을 통해 색채를 구현한다.” 보통 우리는 선은 형태를 잡고 색은 그 안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드가에게 선은 색이고 색은 또 하나의 선이었다. 이런 드가의 예술 철학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매체가 파스텔화이다. 분말 안료를 점착제와 섞어 막대 형태로 굳힌 파스텔은 아름답지만 연약하고 다루기 까다로운 재료다. 드가는 이 섬세한 재료를 종이 위에 직접 긋고, 문지르고, 눌러 쌓아 올리며 색을 입히는 도구이자 선을 긋는 도구로 활용했다. 직접 개발한 특수 고착제를 사용해 파스텔 가루를 화면에 단단히 고정시킨 뒤 그 위에 다시 파스텔을 덧칠하고 쌓아 올리는 독보적인 적층 기법을 발전시켰다. 때로는 유화 물감이나 구아슈를 함께 섞어 화면의 밀도를 높이기도 했다. 이렇게 겹겹이 쌓인 색층은 가볍고 부드러운 일반적인 파스텔화와 달리 인물의 입체감과 거친 에너지를 뿜어냈다. 드가는 유화를 위한 밑그림이나 보조 수단에 머물던 파스텔을 독립적인 회화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혁신가였다. 대표 작품이 ‘모자 상점에서’②다. 이 작품은 19세기 말 파리의 세련된 유행과 소비문화를 엿볼 수 있는 모자 가게를 배경으로 한다. 그는 화면 전경에 화려한 모자들이 놓인 탁자를 배치하고 이를 과감한 대각선 구도로 강조했다. 인물보다 색채의 리듬이 화면 전체를 이끌어 가도록 치밀하게 설계한 것이다. 드가는 모자를 장식한 붉고 푸른 리본, 부드러운 깃털, 천의 섬세한 주름을 통해 파스텔이 지닌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했다. 화면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짧게 끊어진 선, 손가락으로 문지른 색면, 겹겹이 쌓인 파스텔 가루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래서 그의 파스텔화는 ‘색으로 드로잉하는 회화’라고 불린다. 세 번째 명언 “마치 열쇠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드가가 자신의 누드화를 두고 한 이 말은 아일랜드의 비평가였던 조지 무어가 그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글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열쇠 구멍이라는 말 속에는 서양 누드화의 전통을 뒤흔든 드가만의 통찰이 담겨 있다. 이전까지 세계 유명 미술관을 가득 채웠던 수많은 누드화를 떠올려 보라. 신화 속 비너스처럼 우아하게 누워 있거나 관객을 향해 유혹하는 듯한 여성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보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모델처럼 보였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누드는 관객의 시선을 전제로 한 보여지기 위해 연출된 몸이었다. 드가의 여인들은 다르다. 그들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억지로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저 몸을 씻고, 머리를 빗고, 수건으로 몸을 닦을 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누드는 항상 관객을 전제로 한 자세로 표현되어 왔다. 내 그림 속 여성들은 육체적인 일 외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는 소박하고 정직한 존재들이다.” 드가가 말한 열쇠 구멍이라는 표현은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특징인 거리 두기와 엿보는 듯한 관음적 시선을 설명해 준다. ‘욕조 속 여인’③은 드가의 열쇠 구멍 시선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화면 속 여인은 고개를 깊숙이 숙이고 등을 둥글게 만 채 오로지 몸을 씻는 행위에만 집중하고 있다. 관객에게 아름답게 보이려는 의도적인 포즈도 시선을 의식한 표정도 없다. 이 작품에서 누드는 신화 속 여신의 이상화된 몸이 아니라 씻고, 구부리고, 움직이는 현실의 몸으로 제시된다. 시점 또한 독특하다. 우리는 지금 목욕하는 여인을 높은 곳에서 훔쳐보는 듯한 위치에 서 있다. 열쇠 구멍 시선이 화면 속에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일부 비평가들은 드가의 적나라한 표현 방식을 추하다고 비난했지만 오늘날에는 전통 누드화의 관습을 뒤집고 근대적 인간의 일상과 신체를 새롭게 포착한 혁신적 시도로 평가받는다. 드가는 또 이런 말도 남겼다. “25세엔 누구나 재능이 있다. 어려운 것은 50세에도 재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의 치열한 작가 정신을 대변하는 말이다. 진정한 거장이란 반짝이는 재능으로 시작해 지치지 않는 끈기로 재능을 완성하는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 드가에게 운명은 가장 가혹한 시련을 안겨 주었다. 말년에 접어들며 그의 시력이 급격히 악화되었고 남은 시야마저 뿌연 안개 속에 갇힌 듯 흐려졌다. 평생 세상을 집요하게 관찰했던 드가에게 시력을 잃어 간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운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고 눈이 아닌 손의 감각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표현 방식을 실험하는 길로 나아간다. ‘열네 살의 작은 무희’④는 그가 자신의 회화적 재능을 조각으로 확장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드가는 조각이란 대리석이나 청동으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과감하게 깨뜨렸다. 그는 조각에 실제 인간의 머리카락을 붙이고 천으로 만든 발레 치마, 리본, 리넨 슈즈를 입혔다. 심지어 당시 조각가들이 기피했던 해부학용 밀랍을 주재료로 선택했다. 드가는 조각에 실제 사물을 도입하며 원하는 효과를 위해서라면 어떤 재료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이 작품의 모델은 벨기에 이민자의 딸로 극심한 빈곤 속에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학생 무용수로 살아가던 열네 살의 소녀였다. 소녀의 자세를 자세히 보겠다. 두 손은 등 뒤로 깍지를 낀 채 뻗어 있고 턱은 앞으로 꼿꼿이 들려 있다. 반쯤 감긴 눈과 굳은 표정에서는 고된 연습 뒤의 피로와 세상을 향한 반항심이 엿보인다. 드가는 대중이 기대했던 우아한 발레리나의 환상을 걷어내고 무대 뒤편에서 혹독한 훈련과 가난을 견뎌야 했던 19세기 파리 하층민 출신 무용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 조각상이 처음 공개되었을 때 관객과 비평가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의 미적 기준과 사회적 편견을 정면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열네 살의 작은 무희’는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한 작품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오늘날에는 조각의 표현 가능성을 확장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생전에 그는 “유명해지면서도 동시에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고 싶다”는 역설적인 소망을 남겼다. 대중의 박수보다 작품 자체로 평가받고 싶었던 예술가의 자부심이 담겨 있는 말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듯하다. 오늘날 우리는 드가를 관찰의 천재,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이룬 화가, 20세기 거장들의 스승이라 부르며 뜨겁게 그를 기억하고 있으니까.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외계인 시신 4종 숨겼다?…美 전직 정부 연구자 폭로에 발칵 [핫이슈]

    외계인 시신 4종 숨겼다?…美 전직 정부 연구자 폭로에 발칵 [핫이슈]

    미국이 추락한 미확인비행물체(UFO)에서 외계 생명체 4종을 회수했다는 전직 정부 연구자의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다만 해당 연구자는 직접 증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미 국방부도 외계 기술이나 비밀 회수 프로그램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미국 뉴욕포스트는 16일(현지시간) 전직 미 정부 연구자 해럴드 ‘핼’ 푸토프 박사가 최근 팟캐스트에서 “UFO 회수 작업에 관여한 사람들로부터 최소 4종의 외계 생명체가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푸토프 박사는 과거 미 국방부의 비밀 연구 프로그램인 ‘첨단항공우주위협식별프로그램’ 관련 자문을 맡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보도에 따르면 푸토프 박사는 영국 기업가 스티븐 바틀릿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더 다이어리 오브 어 CEO’에 다큐멘터리 ‘에이지 오브 디스클로저’ 감독 댄 패라와 함께 출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회수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최소 4가지 유형이 있다고 말했다”며 “나는 직접 접근한 적은 없지만 내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을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외계 생명체 4종의 실물 자료나 사진 또는 공식 문서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푸토프 박사의 발언은 직접 확인이 아니라 관계자 전언에 근거한 주장이다. ◆ “그레이·렙틸리언 등 4종” 주장 뉴욕포스트는 푸토프 박사의 오랜 협업자로 알려진 물리학자 에릭 데이비스 박사가 지난해 이들 외계 생명체의 명칭으로 그레이, 노르딕, 인섹토이드, 렙틸리언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데이비스 박사는 당시 정보 보고를 근거로 이들 생명체가 모두 두 팔과 두 다리를 가진 인간형 외형이라고 주장했다. 그레이는 대중문화에서 흔히 묘사되는 큰 눈의 작은 외계인이다. 노르딕은 북유럽계 인간과 비슷한 외형으로 알려졌다. 인섹토이드는 사마귀와 유사한 곤충형 생명체다. 렙틸리언은 파충류형 외계 생명체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같은 분류는 과학적으로 검증된 개념이 아니다. UFO 연구자와 음모론 커뮤니티에서 오래전부터 거론돼온 명칭에 가깝다. 실제 외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물증이나 미 정부가 이를 회수했다는 공식 확인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번 주장은 2023년 미국 의회 청문회에서 나온 폭로성 증언과 맞물리며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전직 미 공군 정보장교 데이비드 그러시는 미 정부가 추락한 UAP에서 “비인간 생물학적 물질”을 회수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UAP는 미 정부가 UFO 대신 사용하는 표현으로 ‘미확인 이상 현상’을 뜻한다. 그는 당시 자신이 직접 외계 생명체나 우주선을 본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관련 프로그램에 관여한 인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 같은 내용을 파악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미국 내에서 UAP 정보 공개 요구를 키우는 계기가 됐다. ◆ 펜타곤 “증거 없다” 반박 미 국방부는 이런 주장에 선을 그어왔다. 국방부 산하 전영역이상현상조사국(AARO)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미 정부나 민간 기업이 외계 기술에 접근했거나 외계 기원의 물체를 역설계했다는 검증 가능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AARO는 과거 UFO 관련 보고와 정부 문서를 검토하고 관계자들을 면담했다. 그러나 외계 생명체나 외계 기술 은폐 의혹을 뒷받침할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미 국방부도 지금까지 공개된 UAP 사례 중 외계 기원을 입증한 사례는 없다고 설명해왔다. 일부 사례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미 국방부는 그 이유가 외계 기원 때문이라기보다 관측 자료 부족, 센서 오류, 풍선, 드론, 위성, 조류 등의 오인 가능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미국 내 UAP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전직 정보 관계자들의 폭로와 의회의 정보 공개 요구, 관련 다큐멘터리와 팟캐스트가 맞물리면서 “정부가 무엇을 알고 있느냐”는 의문이 반복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번 푸토프 박사의 발언도 같은 흐름 속에서 나왔다. 다만 현재까지는 외계 생명체 4종이 실제로 회수됐다는 직접 증거가 공개되지 않았다.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 전직 관계자의 주장과 미 국방부의 공식 부인이 맞서는 논란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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