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출신 지은희 여성부장관 인터뷰 “여성이 편안하면 사회 행복해져요”
“욕먹는 것은 겁내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니만큼 신념대로 일할 겁니다.” 지은희(池銀姬·55) 신임 여성부 장관은 “‘여성이 행복한 나라’라는 참여정부의 대(對) 여성공약이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었다.”면서 “이제 그 행복을 실현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고 의욕을 보였다.그의 이력서는 다양한 NGO 경력으로 가득하다.여성단체연합(여연) 6년 대표를 거쳐 정신대대책협의회 상임대표와 총선연대 공동대표,시민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까지 이 시대 여성·시민운동의 중심에 버티고 서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웃는 얼굴이지만 논리적으로 파고들어 설득하는 데에는 ‘이겨낼 장사가 없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다.
그런 그에게 여성부 장관 자리는 운동가로서의 30년을 마무리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회로 보인다.전임 한명숙(韓明淑)장관도 여연 출신이었지만 국회의원을 거친 후 장관이 됐다면, 지 장관은 현장에서 곧바로 행정부로 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NGO에서 내던 큰 목소리로 행정부를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하는 우려에 대해서 “관행을따르지는 않는다.NGO의 역할에 행정부의 역할을 조화시킨다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고 물러서지 않는 원칙론으로 답했다.
●올해는 호주제 폐지의 해
출범 3년을 맞은 여성부의 최대 현안은 호주제 폐지와 성매매방지법 제정으로 압축된다.이에 대해 지 장관은 확신에 차 있었다.
호주제 폐지의 당위론이 무르익고 있고 강금실(康錦實) 법무장관이 호주제 폐지를 공언하고 나선 만큼 제도로서의 개선이야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호주제가 헌법의 평등권 보장과 인권이념에 반한다는 것이 현재 진행중인 위헌소송에서 밝혀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제도의 부당함을 알게될 겁니다.”
“일부에서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족제도가 해체된다고 우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호주제를 폐지해야 가족 관계가 주종에서 민주적으로 바뀝니다.가족 제도가 해체된다는 것도 과잉 반응이고요.” 이어 양성평등한 사회의 실현에 가상공포와 피해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여성이 행복한 사회가 바로 모두가 행복한 사회임을 이해시키는 과정에힘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우선 제도가 바뀌면 획기적인 의식의 혁신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성매매방지법,원칙을 지켜야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앞두고 첨예하게 맞선 여성단체의 원칙론과 현실에 기초한 일련의 협상론은 여성단체들 사이에서도 아직 조율되지 않은 상태다.현실을 인정한다는 것,그것이야말로 성매매를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던 지 장관에게 향후 성매매방지법안의 제정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물었다.“이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이다.”고 입을 연 그는 성매매산업,즉 여성의 신체를 사고파는 행위에 어떤 ‘절충’이 필요한가고 되물었다.
“원칙이 무너지면 일을 해결할 근거가 없다.”며 항간의 “일정지역 집촌을 허용해야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앞세운 주장을 일축했다.
“지나친 원칙론은 현실성이 없지 않으냐.”고 지적하자 그는 “성매매는 부부간,남녀간 불신을 심화시키고 결혼생활,가족생활의 근간까지 뒤흔든다.”면서 “성매매를 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장을 지키는 장관되겠다
지 장관은 NGO출신답게 “현장에 있겠다.”고 했다.“소외계층 여성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수렴하겠습니다.” 국민이 정책 그 자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운용·실행으로 정책을 평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책상 앞에서 평가받으려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7년간 동양시멘트공업의 비서실에 근무하면서 어린 여공들의 열악한 현실을 처음 보게 됐고 사회의식에 눈떴다는 그는 비정규직 여성과 노동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여성근로자의 공통된 고민인 보육문제와 관련, “보육이 어떻게 여성만의 문제입니까?”라고 되물으며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그러나 120명의 초미니 부처인 여성부의 몸집을 보육과 청소년업무까지 더해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서두를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정부조직법 개정 여부는 사실상 내년 총선 이후로 미뤄진 상태니 서둘러 봤자 소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여성부의 존재 자체만으로 화제가 됐던 때가 있었다면, 장관급 여성정책조정회의가 시작되고 청와대 기획팀 중 양성평등 TF팀이 가동되는 올해야 말로 이 나라 여성의 권익향상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한 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허남주기자 yukyung@
◈남편이 본 지은희장관은
최근 모시고 살았던 친정 아버지의 상을 당한 지 장관에게 결례를 무릅쓰고 일요일인 지난 2일 아침 인터뷰를 하기 위해 서울 상도동 아파트를 찾았다.
자택 위치를 구체적으로 묻는 전화 통화에서 장관은 “그 사람,등산가고 없을 거예요.”라며 남편과 접촉하는 것을 꺼렸다.그래서 약속시간보다 조금 서둘러 방문했더니 문을 열고 맞아준 사람이 남편 주영길(55·국민건강보험 관리공단 상임이사)씨였다.주스를 따라주며 대접한 사람도 주씨가 됐다.장관이 먼저 컵에 주스를 따르려고 했으나 능숙하지 않은 살림솜씨를 증명이라도 하듯 쏟았기 때문이다.그는 “나 살림 잘 못해요.”라고 말하며 쑥스러워했다.
한참동안의 인터뷰를 끝내고 아내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남편 주씨는 선뜻 “강하기보다는 오히려 심약할 만큼 마음이 약하고,다정다감하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대가 세고,자기주장이 강하고 너무 똑똑한 여자하고 살아서 피곤하겠다.”는 주위의 편견에 대해 평소 웃고 말았지만 이제 할 말을 해야할 시점이라는 판단이 선 것 같았다.어쩌면 여성운동가 출신의 장관에게 느끼는 거부감을 불식시키기 위한 배려같기도 했다.
친구의 약혼식장에서 처음 만나 “여성운동을 계속하고,아이를 낳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일방적인 선언에 동의하고,결혼식에 나란히 입장하는 등 파격을 수용하며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주씨가 ‘가장’이 아닌 ‘동지’가 되기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단다.“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실천은 어렵게 마련”이라면서 “아내의 오랜 설득작전에 의해서 가능해졌다.”고 웃음을 보탰다.요즈음 주씨는 청소기를 돌리고,빨리 귀가한 사람으로서 저녁준비도 곧잘 해내는 ‘앞선 사람(?)’이 됐다.
주씨는 “사회운동하는 아내를 잘 받쳐주려면 남편이 경제력이 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빠듯한 월급쟁이 생활이라 제대로 뒷받침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둘 사이에는 이화여대에 재학중인 외동딸 해연(22)양이 있다.“아내의 가정교육 원칙은 ‘독립적인 인간으로의 성장’이에요.‘착한 아기,예쁜 아기∼’라는 자장가까지 ‘굳센 아이,힘찬 아이∼’로 바꿔 불렀을 정도로 강하게 키우고 싶어하지요.”
허남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