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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쉬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동굴서 찾은 문학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당선 소감]

    쉬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동굴서 찾은 문학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당선 소감]

    나의 마을에는 바위그늘유적이 있다. 온갖 섬과 바다로 둘러싸인, 땅만 팠다 하면 패총이 나오는 이 도시에서 바위그늘유적이 발견된 것은 꽤 근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불운하게도 이 최초의 그늘을 찾아주는 사람이 마땅히 없어 아쉬운 대로 내가 바위그늘을 찾아가 위로하곤 했다. 한때 이 산을 뛰어다녔던 발자국. 바위 틈새로 보였던 수천 개의 돌조각. 나는 그런 믿음을 쥔 채 걷고 있다. 세상은 미련한 사람을 욕하지만 그늘은 그러지 않는다. 그림자 아래에서 숱한 후회와 좌절을 반복해도 그늘은 그렇다. 그늘은 그냥 그늘을 준다. 어느새 내 얼굴 위에 있다. 쉬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그 동굴 안에서 발견한 문학처럼. 한 줄기 빛을 머금은 시간이 있었다. 사랑과 애도의 의미를 알려 주신 함정임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선생님 덕에 강의 유적을 헤매다 바다를 보았다. 인문학과 여행의 중요성을 알려 주신 백가흠 선생님, 문학을 보는 시선을 키워 주신 손정수 선생님, 매일 쓰는 삶을 알려 주신 장옥관 선생님, 작가는 고향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신 김민정 선생님께도 감사를 전한다. 선생님들 모두 뜬금없이 타국에서 들려온 소식에 놀라셨을 것 같다. 무엇보다 늘 나를 지지해 주는 엄마와 아버지, 양금 할머니, 동생과 가족, 함께 기뻐해 준 독도 씨에게도 깊은 사랑을 전한다. 대구와 부산, 서울과 프랑크푸르트, 괴팅겐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과 좀 더 먼 시간이 된 친부와 친조모, 광자 할머니에게도 안부를. 마지막으로 늘 단칸방에서 써 내려간 내 글을 호명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전한다. ▲1995년 부산 출생 ▲계명대 문창과·문헌정보학과 졸업, 독일 괴팅겐대 대학원 비교문학 석사과정
  • 언어의 고고학/김세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언어의 고고학/김세정 [서울신문 2026 신춘문예 - 소설]

    학과 필수모듈인 어학 파트에서 ‘초급 그리스어’를 들을 거라고 말했을 때, 홍은 조금 놀란 듯했다. 당장 졸업 작품부터 준비해도 모자랄 세 번째 학기였다. 그리스어나 라틴어는 아무리 날고 기어도 ‘이쪽 친구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걸 잘 알지 않느냐고, 차라리 일본어를 듣는 편이 도움이 될 거라고 홍이 종용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강의실에 모인 학생들은 겨우 열 명 남짓이었다. 상대적으로 비인기 언어라 그런지 학생 수는 다른 수업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원탁으로 빙 둘러앉은 좁은 강의실에서는 쿰쿰한 곰팡이 냄새와 학생들이 흘리는 땀내가 뒤섞여 불쾌한 냄새가 났다. 교수가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그리스어 학습 동기를 물었을 때, 그들 대부분은 어머니나 아버지가 그리스 계통이지만 자신은 그리스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는, 아마 높은 확률로 거짓말일 것임이 분명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내고 있었다. 아마 수업 하나쯤은 먹고 들어가려는 심산이겠지. 사실 그런 학생들은 생각보다 흔했다. 이쪽은 어머니가 프랑스인이고, 저쪽은 할머니가 러시아인이고, 쟤는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았던 삼촌이 루마니아인이래, 하는 이야기는 너무 흔하디흔해서, 그런 일에 누군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조차 우스꽝스러울 지경이었다. 곧 교수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는 강의실에서 유일하게 동양인인 내가 그리스어 수업을 들으려는 이유를 내심 궁금해하는 듯했다. 그 호기심 어린 미소에 힘입어, 그럭저럭 교수가 만족할 만한 대답을 내놓을 수도 있었다. 가령, 코흘리개 시절부터 그리스 신화에 관심이 있어 제대로 연구해 보고 싶었다거나,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에 희랍어가 등장한다는, 꽤 그럴듯한 말로 이야기의 물꼬를 틀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학습 동기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였고, 이들에게 그 이유ㅡ‘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을 읽기 위해서’라는 말은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히 그 말을 독일어로 제대로 설명할 자신도 없었다. 나는 그저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 사람이 내게 들려줬던 이야기를 생각했다. 그 사람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안티고네를 원서로 읽어 보고 싶어서요. 금발로 덮인 두피 곳곳에 희끗한 새치가 돋아난 중년의 교수가 나를 응시했다. 그러고는 턱에 난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흥미롭다는 듯 빙긋 웃더니, 다른 학생들을 둘러보면서 이 학생이 아주 ‘야심 찬 계획’(ambitionierten Plan)을 가져온 것 같다는 모호한 농담을 던졌다. 그는 말했다. 그 계획에 이르기 위해 내가 얼마나 많은 그리스 방언을 익혀야 하는지. 현대 그리스어에 대한 배경지식은 물론, 고전 그리스어의 아티카 방언, 이오니아 방언과 아이올리아 방언까지. 소포클레스나 호메로스 같은 작자들을, 화자가 사라진 언어를 읽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아냐면서. 시대와 지역별로 나눈 그리스어의 기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설명 방식은 내 어깨를 점점 짓눌렀다. 마치 모든 학생 앞에서 나의 ‘야심 찬 계획’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이 자리에서 당장 밝혀내겠다는 듯. 그의 눈빛은 이제 처음 드러냈던 조소를 넘어 약간의 경멸마저 내비치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간과한 것이 있다면, 내가 그 정도로 바보는 아니라는 것, 그 사실에 관해서라면 이미 오래전에 들은 적이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수업에서 학습 동기를 제대로 밝혔더라면, 어쩔 수 없이 나의 ‘계조모’(Stiefgroßmutter)라고 소개해야 했을, 적어도 내가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아오리스트(Aorist)인 나의 할머니 하나코 씨로부터 말이다. * 시제(Tense)는 시간(Time)과 시상(Aspect)과 함께 작동한다. 할머니의 ‘아오리스트의 필사 노트’는 그렇게 시작된다. * 내가 그 노트를 처음 발견한 것은 라이프치히대학 문창과에서 석사 첫 학기를 보낸 직후였다.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학기 과제를 제출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초봄이었다. 많이 아프셔? 출국하기 전에도 할머니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았다. 어제 쓰러지셨어, 라고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말했다. 또? 엄마는 답하지 않았다. 조금 지친 목소리로 첫 학기도 보냈는데 한국에 한 번 들어와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아무 음악도 영화도 틀지 않은 채 맞은편의 화면을 응시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가로지르는 노란 경로를 따라 비행기 모형이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고개를 돌려 한반도 오른편에 있는 섬나라를 바라보았다. 문득 홍의 고향인 하코다테와 후추시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 궁금했다. 엄지와 검지를 펼쳐 그 사이를 가늠해 보았다. 겨우 손톱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좁은 너비였다. 부모님은 대학에 합격한 후에야 유학에 대한 나의 의지를 인정했다. 엄마는 애초부터 내가 독일에 가는 것을 반대했다. 왜 거기까지 가서 또 글을 쓰려고 하냐고. 대체 돈은 언제 벌 셈이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굳이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찬성하지도 않았다. 아마 아버지는 내심 형과 함께 시장의 곡물 가게를 이끌어 가기를 바랐을 것이다.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나는 서울로 도망간 형 대신 아버지의 쌀가게 일을 도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의 얼굴은 생각보다 밝아 보였다. 불과 삼 주 뒤에 죽음이 임박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는 혈색에, 당황한 사람은 오히려 나였다. 나중에 병실 복도에서 엄마에게 들은 바로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날부터, 할머니의 정신이 거짓말처럼 맑아졌다고 했다. 나를 보자마자, 할머니는 거친 손으로 내 뺨을 매만졌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느냐고, 애가 왜 이렇게 피골이 상접해 뱃가죽이 등에 눌어붙었느냐면서. 요 몇 달 동안, 자신의 모습을 한 번도 거울에 비춰 본 적 없는 사람처럼 말했다. 나는 그런 할머니의 손길이 낯설기도 했고 멋쩍기도 했다. 할머니가 그 정도로 내게 감정을 표출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아 침대 위에 살며시 놓았다. 나는 무슨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몰라 할머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밖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물어 가는 햇빛이 할머니의 눈동자 속에서 반달 모양으로 일렁이면서 반짝였다. 그녀의 눈 밑에 오랜 세월 동안 자리 잡았을 것임이 분명한 푸르스름한 그림자가 비쳐 보였다. 할머니는 해외 생활은 잘 맞는지, 음식은 어떤지, 앞으로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약간의 시차를 둔 채 차분히 물어왔다. 침묵이 찾아올 때마다 우리는 잠시 창밖을 보면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와 나누는 대화는 항상 그랬다. 할머니는 서른이 다 되도록 취업하지 않은 나의 처지를 별달리 걱정하지 않았다. 그녀가 나에게 묻는 것은 미래뿐이었다. 그것이 정말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의 현재에 딱히 관심이 없어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배우고자 하는 문학을 진지하게 궁금해하는 사람은 가족 중에서 할머니가 유일했다. 입원하기 전부터 종일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을 끼고 살았던 할머니였다. 그녀는 내가 유럽에서 인종차별을 겪지는 않았는지, 왜 라이프치히를 선택했는지, 독일의 문학 수업에서는 정말 그리스 신화들을 중요하게 읽는지, 평소 자신이 궁금해했던 질문들을 연이어 쏟아냈다. 나로서는 평생 장사를 하면서 살아온 외할머니와 동년배임에도 불구하고, 질문의 방향이나 밀도가 전혀 다른 할머니의 목소리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답하면서도, 가슴속에서는 그런 지적인 대화를 가족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했다. 독일에서 지내면서 궁금해진 것들도 많았다. 가령 일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던 할머니의 시간에 대해. 홍과 같은 나라에서 나고 자랐으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그녀의 발자국-그 삶의 궤적에 대해. 그러고 보니 너 마침 잘 왔다. 한참 동안 질문을 쏟아내던 할머니는 나를 보더니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다고, 혹시 집에서 노트 한 권을 가져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노트요? 희랍어 노트 말이야. 요즘에도 그리스어를 공부하고 계시냐고, 내가 깜짝 놀라 묻자, 할머니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일생에 한 번쯤은 안티고네를 원서로 읽어 봐야 하지 않겠니.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해진 채로 옆에 앉아 있던 엄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는지 어서 갔다 오라는 듯 문을 향해 조용히 턱짓했다. 나는 외투를 챙기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생긴 노트인데요? 아오리스트. 네? 표지에 아오리스트의 필사 노트라고 적혀 있어. 처음 들어 보는 단어였다. 내가 반사적으로 아오리스트가 무엇이냐고 묻자, 할머니는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왜 이리 군말이 많아. 일단 가져와. 그러면 다 설명해 주겠다고, 할머니는 힘도 없으면서 내 엉덩이를 팡팡 내려치고는 지갑에서 오만 원을 꺼냈다. 갔다 오면서 밥도 먹고 와. * 아오리스트(Aorist)는 무정시제이다. 아오리스트로 포착된 사건은 완결적으로 제시되며, 문맥에 따라 과거에만 묶이지 않고 다양한 시간으로 퍼져 나간다. α -(아니다) όριστος(규정된, 한정된)는 정해지지 않은(αόριστος) 불확정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όριστος는 ὅρος(경계)에 맞닿아 있다. ‘무정’은 ‘부정’(不定)일 수도 있고 ‘미정’(未定)일 수도 있다. ‘부정’(不定)과 ‘부정’(否定)을 착각해서는 안 된다. 구별되어야 한다. * 사실 할머니의 일생에 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중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였고, 그때 우리는 구포시장 근처에 있는 고급 중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당시는 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지도 겨우 한 달밖에 안 된 시기여서, 나는 그 모든 상황이 이상하고 낯설기만 했다. 할머니는 외할머니와 같은 나이인데도 열 살은 더 많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나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와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외할머니에게선 느낄 수 없던 우아한 기품이 느껴졌다. 할머니의 첫인상은 내게 꽤나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건 그날, 내가 절반쯤 남겨 버린 짜장면을 할머니가 자신 앞으로 가져가 거침없이 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이미 간단한 저녁 식사를 하고 와 배가 부른 상태였다. 조금 전부터 할머니가 내 그릇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갑자기 그릇을 가져가 처음 보는 아이가 남긴 잔반을 거리낌 없이 먹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네가 입이 짧은 모양이구나. 할머니가 조용히 입을 닦으면서 말했다. 내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부모님을 바라보자, 아버지가 아무리 그래도 잔반을 드시냐고, 아직 출출하시면 한 그릇을 더 시켜 드리겠다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한 손으로 손사래를 쳤다. 됐다. 그냥 딱 한 입 정도만 더 먹고 싶었어. 그리고 할미가 손주가 남긴 음식을 먹는다는데. 그깟 잔반이 뭐가 대수냐. 할머니가 반대편 손으로 냅킨을 꺼내 들며 덧붙였다. 이제 가족인데. 당시, 나는 그런 할머니의 행동에 내심 감동을 받았다. 물론 그것이 완벽하게 의도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아마 아버지의 남동생 내외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 여자가 나이가 어린 엄마를 가족으로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그런 분위기를 내심 눈치채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렬한 첫 만남에도 불구하고 나와 할머니 사이의 감정적 거리는 꽤나 오랫동안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다. 할머니는 구포동에 있는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에 홀로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치 분기 보고서를 쓰듯, 의무적으로 식재료를 잔뜩 사서 할머니를 방문했고, 그럴 때마다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것이라는 의례적인 감사 인사를 건넸다. 내가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그때가 전부였다. 하지만 정작 할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나는 그 어색한 시간을 견디기 위해 괜히 할머니의 방안을 둘러보곤 했다. 안방의 벽에는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조차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런 시간들 속에서 할머니를 조금씩 알게 됐다.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를 엿들으면서-이제 돈 쓰는 법도 좀 배우세요. 평생 고된 일만 하시고. 저희가 하지 말라고 해도 식당 일에, 식모 생활에… 몸 쓰는 일만 하셨잖아요-그녀의 성격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아들이 용돈을 줘도 일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렇게 번 돈의 대부분을 저금하는 사람. 남편의 병수발을 들고, 두 아들이 먹을 반찬을 만드는 데 평생을 보낸 사람. 그러나 정작 두 아들은 일본식 반찬을 학교에 가져가는 것을 부끄러워해서 집에 두고 가고, 먼저 간 남편은 자신을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 일생을 거부당한 사람. 그래서 누구보다 상처받은 사람이 할머니였다. 그래서 가끔 아버지가 못마땅했다. 한 시간이 지나 정해진 칭찬의 레퍼토리가 모두 소진되면, 마치 알람 시계라도 설정해 놓은 사람처럼 이제 그만 가 봐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면, 할머니의 기만당한 삶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도 그걸 모를 리가 없었다.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들었을 텐데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쏜살같이 일어나 집을 나서려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마치 아버지의 진심을, 아직 오지 않은 불편한 미래를 보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어머니 인생도 굴곡이 많았지. 아버지는 종종 제사를 지낼 때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할머니가 친모가 아니라 계모라는 사실, 친모는 아버지를 낳은 지 이 년도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는 사실은 그때 들었다. 구포동 할머니는 1928년에 도쿄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조선으로 넘어와 구포에 정착했다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조선인 남자와 눈이 맞아 결혼했지만, 불과 일 년 만에 병에 걸린 남편과 사별했다고 했다. 일본인 송환 때 돌아가지 않으신 걸 보면 아는 친척도 없으셨던 모양이야. 우리한테는 아들을 조선에서 키우고 싶어서 그랬다고 하셨지만. 하나밖에 없던 아들은 전쟁 중에 죽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스물세 살 때 할아버지를 만난 거라고 아버지는 덧붙였다. 아버지 바람기가 보통이 아니니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지. 제사상에 할아버지의 영정을 놓을 때마다 아버지는 그 시절이 떠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말을 멈추지는 않았다. 구포동 할머니를 들이기 전까지 집안에 몇 명이 거쳐 갔는지. 다들 하나 같이 화장이 진한 술집 여자들이었다고 했다. 구포동 할머니는 어린 아버지가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은 유일한 여자였다. 다른 여인들처럼 분 냄새를 풍기지도 않았고,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산만한 아버지를 따끔하게 혼냈다고. 그래서 아버지는 이 사람이 아니면 싫다고 했다. 다른 여자들은 싫다고. 어머니로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어린 아버지의 고집에, 할머니는 얼마 가지 않아 쌀가게 사모님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참 박하게 사셨지. 같이 시장에 가면 사람들이 수군거리지를 않나. 그때만 해도 말을 좀 어눌하게 하셨으니. 대놓고 쪽발이라고 부르는 못된 인간들도 많았어. 나나 동생도 사춘기 때는 참 못됐지. 길가에서 친구들이랑 걷다 어머니를 만나면 일부러 못 본 척하고 피해 다녔으니. 어머니도 숨통 트일 때라곤 가끔 일본인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게 전부셨을 거야. 거기 모임 이름이 뭐랬더라, 부영회였나? 나중에 검색해 보고서야 나는 그 모임의 이름이 ‘부용회’(芙蓉會)라는 걸 알게 됐다. 아버지는 자신의 생떼로 별난 할아버지 곁에서 평생을 살아야 했던 할머니의 삶을, 할아버지의 권유로 이른 나이에 아이를 세 번이나 유산해야 했던 그녀의 인생을 얼마간 가엾게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버지는 할머니에 대해, 하나코라는 인간에 대해 그 이상의 의미를 느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버지에게 할머니란 그저 어머니, 지극히 언어적인 의미로서의 ‘어머니’일 뿐이었다. * 무정시제 연습 55 지배하다 현재 시제 : 지배하고 있다 과거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고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다 완료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고, 현재에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다 무정 시제 : 과거에 지배를 했지만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지배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무정 시제 연습 178 잃어버리다 현재 시제 : 잃어버리고 있다 과거 시제 : 과거에 잃어버렸고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다 완료 시제 : 과거에 잃어버렸고, 현재에도 여전히 잃어버리고 있다 무정 시제 : 나는 과거에 잃어버렸으나, 그 일은 그때 완결되었고, 지금도 잃어버리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과거에 아이를 잃었으나, 그 일은 그때 한 번으로 완결되었고 지금도 잃고 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만 지속되거나 반복되는 일이 아니기에 이것은 미완료가 아니다. 과거에 발생한 그 일이 현재에 하나의 상태로 고정돼 있다고 말할 수 없기에 완료도 아니다. 나는 여전히 알 수 없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잊지 않는다. 영원히 재현할 수 없다. 늘 불완전한 중얼거림으로 남아 있다. 이 모든 것이 그 死語(사어)로부터 비롯되었다. * 홍과 만난 것은 베를린에서 어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어학원 친구의 소개로 시내에 있는 한식집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홍은 내가 살고 있던 사설 기숙사 근처에 살고 있었다. 한 번 외식을 할 때마다 잔고가 추락하는 독일의 미친 물가 덕에, 우리는 제법 큰 공용주방이 있는 나의 기숙사에서 함께 요리를 하면서 가까워졌다. 홍이나 나나 독일의 행정은 지긋지긋해했지만, 맥주만은 사랑했다. 홍의 아버지가 외교관이라는 것, 일본에서 태어나 하코다테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는 것, 일본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솔직히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얼마간 비참해지기도 했다. 그건 아마 잦은 변화 속에서도 자상함을 잃어버리지 않았던 홍의 아버지에 대한 인상이 나의 친부에 대한 의문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친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 친가와도 교류가 없었다. 친부는 고등학교 때까지 복싱선수로 활동하다 부상을 당한 뒤부터 구포시장의 도축업자로 일했다고 들었다. 내가 다섯 살 때, 심장병으로 죽은 그는 나에게 자랑할 만한 번듯한 직업조차 남기지 않았다. 고집불통에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인간. 아들보다는 딸을 원해 내 이름을 중성적으로 지어버려, 늘 사람들에게 나는 남자라고 해명하게 만든 사람. 그것이 내가 엄마에게 들은 친부에 대한 전부였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괜히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우리 아버지는 지금 해외에 계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들을 읊어 놓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재혼한 뒤부터는 나에게도 번듯한 아버지가 생겼으니까. 나는 새아버지를 친아버지처럼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곡물 사업을 하고 있다는 모호한 말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은근히 조장했다. 친구들과 격투기 시합을 볼 때면 우리 아버지도 복싱을 했었다고 말했고, 식당에서 시킨 소고기가 생각보다 적어 보일 때는 아버지가 축산업을 해서 아는데, 라는 말로 운을 뗐다.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지 않았다. 오류는 있었을지언정 틀린 말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너희 할머니도 일본에서 태어났다고 하시지 않았어? 언젠가 홍이 그렇게 물은 적이 있었다. 물론 홍은 그 할머니가 혈연이 아니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나는 언젠가 그 말을 하려 했다. 때가 되면 홍의 머릿속에서 파편적으로 떠다닐 나의 가족들을 구분 지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일본인이셔. 술에 취한 그날에도 그랬다.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고서야 아차 싶었지만, 말을 고치기엔 이미 늦어버렸다. 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야. 그럼 너, 어떻게 보면 일본인 혼혈인 거네? 나에게 친근감을 느끼는 듯한 그 미소가 좋았다. 그 미소가 나도 모르게 거짓을 사실처럼, 허구를 진실처럼 이야기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나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근데 부모님도 아니고 기껏해야 할머닌데…. 얘 좀 봐. 21세기에 무슨 그런 시대착오적인 발언이야. 피곤함에 지쳐 있던 홍의 눈빛이 갑자기 선명해졌다. 됐고. 할머니 이야기 좀 더 해 봐. 혹시 자세히 말해 줄 수 있어? 그즈음 홍은 소논문을 위해 일본 여성들의 이주사를 정리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해명하는 일을 포기했다. 구포동 할머니가 도쿄도 후추시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오랫동안 부용회라는 재한일본인 처들의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끌던 사람이었다고 아버지에게 들은 그대로 말했다. 쌀가게에서 나오는 수익을 몇 번이나 빼돌려 해방 후 남편에게 버림받은 여인들의 생계를 돕고, 홀로 이국땅에서 죽은 그들을 위해 손수 장례까지 치러 주는 바람에 할아버지에게 죽도록 맞은 적도 있다고. 그러고 보니 이번에 장례식 끝나고 할머니 노트 가져왔는데. 노트? 무슨 노트? 그게… 할머니가 좀 특이한 분이셨거든. 그리스어 공부가 취미셨어. 나는 서랍 어딘가에 있는 할머니의 노트를 가져왔다. 할머니의 장례를 치른 후에, 엄마가 버리려던 것을 겨우 말려서 들고 왔다고. 구포동 할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 썼던 수십 권의 노트들 중 하나라고 했다. εἰ μέν κ᾽ αὖθι μένων Τρώων πόλιν ἀμφιμάχωμαι 만약 내가 여기 머물며 트로이의 도시를 두고 싸운다면, ὤλετο μέν μοι νόστος, ἀτὰρ κλέος ἄφθιτον ἔσται 내게서 귀향은 사라지겠지만, 불멸하는 명성을 얻게 될 것이다. 할머니는 이 부분을 반복적으로 필사하셨어, 라고 나는 말했다. ‘일리아스’의 문장이래. 왜? 그야 나도 모르지. 잠깐 줘 봐. 홍이 할머니의 노트를 들고 가더니 빠르게 뒤쪽의 페이지를 훑었다. 할머니랑은 한국어로 소통했어? 응. 정확히 말하자면 일본어가 침투해오는 부산식 한국어긴 했지만. 너희 할머니 작가였어? 무슨 소리야? 너 뒷부분 안 읽어 봤어? 그냥 필사노트라 앞쪽만 읽었는데? 홍이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다시 노트를 건넸다. 그러고는 마지막 몇 페이지를 다시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에게서 노트를 건네받았다. 그녀의 말대로 뒤페이지에는 앞쪽의 시제 연습과는 달리 꽤 긴 산문이 있었다. 모두 그리스어로 기술돼 있었다. 할머니는 그 위에 일본어로 ‘아오리스트의 마지막 습작’이라고 적어 놓았다. 나는 홍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국의 문자들을 멍하니 응시했다. * 모든 아오리스트는 언어의 흐름 속에서 소외된 존재다. 그러나 소외되었다는 사실이 사라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아오리스트는 단일하고 완결된 사건이지만 지속성과 반복성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아오리스트는 사라짐이 아니라 한순간의 존재다. 아오리스트는 불멸하는 명성을 추구한다. 끝났으나 끝나지 않은 것들을 찾아 헤매고, 떠나왔으나 정주하지도 귀향하지도 않으며, 죽었으나 결코 죽음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다. 마치 나의 아이처럼. 마치 아이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나처럼. 알 수 없는 것으로 끊임없이 남겨 두려 하는 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영원한 탐구가 가능해진다. 나는 무정시제이다. 나는 한 명의 아오리스트다. * 그리스어 수업은 처참한 성적표와 함께 끝났다. 홍의 말대로 나는 이미 수준급의 그리스어 지식을 가지고 있는 학생들 틈에서 시간이 갈수록 기가 죽었고, 독일어로 작품을 써내느라 수업조차 제대로 참석하지 못한 날이 잦았다. 그리스어를 다시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졸업작품을 최종적으로 제출한 늦가을부터였다. 홍과는 그즈음을 전후로 헤어졌다. 나는 학업에 뜻이 없었고, 독일에 계속 체류할지조차 불확실한 상황이었지만, 홍은 미국에서 박사 유학을 계속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이국에서의 만남과 헤어짐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사람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서로의 삶을 응원하고 깔끔하게 돌아섰던 마지막조차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처럼 느껴졌다. 한국에는 돌아가기로 결정했어? 아직 잘 모르겠어. 교수님이 졸업 작품을 출간해 보자고 하시는데. 너는 마음에 안 들지? 홍의 즉답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결말 부분을 좀 더 고치고 싶어서. 신중하게 써야지. 홍이 말했다. 너희 할머니 얘기잖아. 나는 그 말에도 잠시 주춤했다. 이번에도 홍의 대답이 곧장 돌아와서는 아니었다. ‘너희 할머니’라는 말. 마음이 잠시 흔들렸다. 일본에서 보고 싶은 게 있어. 겸사겸사 한국도 잠시 가고. 다른 계획은 있어? 그냥 친구들이나 만나겠지. 그간 미룬 성묘도 좀 가고. 홍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건 좀 궁금하네. 뭐가? 너희 할머니가 쓴 글들. 너는 마지막까지. 왜,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아? 그간 미국행 준비로 바빴는지 홍의 얼굴이 부쩍 수척해져 있었다. 아니, 라고 말하면서 홍이 미지근하게 미소 지었다. 그건 너만 알고 있는 게 맞는 것 같아.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오래전처럼 화면 속의 경로를 응시했다. 홋카이도와 도쿄. 고료카쿠 타워와 도쿄 타워. 이제 나는 그곳으로부터 밀려나고 있었다. 오쿠니타마 신사와 유쿠라 신사로부터. 내가 한때 가깝다고 느꼈던 공간들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소들에 대한 체감까지 사라진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 속에 웅크려 있던 그 수많은 장소들의 생동감까지 잃고 있는지는. 언젠가 홍과 함께 하코다테시의 도심을 거닐었던 적이 있다. 홍은 유년을 보낸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 했고, 그해 여름, 우리는 홍의 고향인 홋카이도로 떠났다. 홍은 이곳에 올 때마다 자신이 여기서 살았는지 헷갈린다고 했다. 그 시절이 자신에게 정말로 존재했는지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때 이곳을 떠났고, 떠남에 고통을 느꼈지만, 지금도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그런 느낌이 있다고.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나는 그것이 지극히 아오리스트적인 느낌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을 아오리스트적 사고로 접근하니, 그 모든 일들을 아오리스트적 사건으로 남겨 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친모를 잃었고, 그때 그 일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잃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죽은 친부는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때 그 일은 완결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남기고 있지 않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날,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상주인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의 이름 아래에는 ‘손자’라고 적힌 칸이 있었고, 그곳에 내 이름은 없었다. 아버지는 경황이 없었다고 했다. 남동생이 기입을 맡았는데 자신이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그래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않냐…. 작은아버지란 사람은 여전히 엄마와 나를 무시했다. 나는 그 장례식장 구석에서 양복을 차려입고, 서울에서 몇 년 만에 내려온 형과 마찬가지로 몇 년 만에 만난 사촌 동생이 사람들을 맞이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가족에겐 애도할 권리조차 없구나. 그런 문장이 문득 떠올랐다. 그 학기에 교수가 기말과제를 내주며 했던 말-이번 학기에는 신화적 원형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이 연이어 생각났다. 그때 느낀 박탈감은 이미 완결되었다. 그러나 그 박탈감이 아직까지 어딘가에서 지속되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어서…. 너는 이야기를 만들지. 그날 병원에서 할머니는 내게 말했다. 왜 그러고 싶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창밖에서 들려왔다. 나는 그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내가 가져다준 노트를 유심히 보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계속 쓰다 보면 잊을 수 있을까 싶어서요. 누구에게도 고백한 적 없는 진심이었다. 엄마에게도, 한국에서 글을 쓰던 친구들에게도, 라이프치히 학우들에게도 말하지 못한 진심. 변주하다 보면 그 이야기를 진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러자 할머니가 갑자기 나의 손을 덥석 잡아들었다. 그러지 마. 네?…. 나는 당황했다. 그런 신음에 가까운 말을 내뱉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할머니는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그때는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할머니가 나보다 오랫동안 글을 쓴 사람이란 걸 알고 있으니까. 비록 할머니에게 나는 지극히 언어적인 차원에서의 손자에 불과했지만. 할머니의 글을 읽으면서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할머니는 왜 일본어도 한국어도 아닌 언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평생토록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 사람은 그 부정조차 부정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이중부정이 삶을 긍정의 세계가 아니라 영원한 미지의 세계로, 비타협의 상태로 남겨 둔다면 어떨까? 미정도 부정도 아닌 그런 상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 왕복운동으로 인해 삶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면. 비록 할머니의 글에 신화와 문법에 대한 오독이 있을지라도, 나는 할머니가 노년에도 조화나 타협을 포기한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내가 할머니에게 완료형이 될 수 없는 시제였던 것처럼, 나에게도 예술가 하나코는 완료형이 될 수 없는 시제다. 할머니와 나는 그런 점에서 닮았다. 우리는 현재와의 연결성이 불확실한 아오리스트였다. 어쩌면 그래서 여전히 그리스어를 배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오리스트를 쓰기 위해. 아오리스트로 말하기 위해. * 나는 무덤이 되고 싶다. 한때 무정시제라는 언어체계였으나 그 야성적인 규칙에서마저 빠져나가 버린, ‘정해지지 않았다’는 규정에서조차 탈출해 버린 야성의 시간이 묻힌, 어느 범박한 무덤*이 되고 싶다. * 후추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오후였다. 미리 예약해 둔 호텔에 들러 체크인을 했다. 할머니의 노트를 넣은 백팩을 메고 바깥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식당은 신사 근처였다. 신사 정문에서 본당까지는 꽤나 기다란 돌길이 일자로 뻗어 있다. 홍과 하코다테를 방문했을 때 들렀던 유쿠라 신사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다.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말끔하게 도색된 유쿠라 신사의 도리이와 달리, 이곳의 석조 도리이에는 검은 이끼들의 흔적이 역력했다. 밝지도 않고 화려하지도 않다. 단지 회색빛으로 수수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을 뿐. 길을 따라 양쪽에 늘어선 나무 도리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역의 기둥들은 차라리 무덤가에 꽂힌 묘목들에 가까워 보였다. 할머니의 소설은 이곳, 오쿠니타마 신사의 어둠 축제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이곳을 떠났던 어린 할머니와 같은 나이인 여덟 살 소녀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천 년의 역사를 지닌 신사로 들어선 소녀. 그러나 어째서인지 일본식도 한국식도 아닌 안티고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의 얼굴 위로 노란 등빛이 번진다. 나는 할머니의 소설을 손에 쥔 채 그들의 맞은편에 쭈그려 앉는다. 이곳에는 빛이 없지만 저곳에는 빛이 있다. 그 빛 속에서 소녀는 부모님에게 신사의 전설을 듣는다. 대장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부인의 순산을 기원했던 이곳에는 늘 행복과 결연의 신이 사람들의 운명을 예언하고 있다고. 앞으로 우리 딸은 어떻게 살려나. 그런 물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오로지 어머니와 딸의 대화로만 이루어진다. 마치 미래를 단정 짓듯, 혹은 예언하듯 미래형의 아오리스트로 기술된 이 소설에서 할머니는 미래를 잃지 않는다. 비록 단발성과 완결성으로 끝난 사건일지라도, 아오리스트의 불확정성이 이미 완결된 운명적 사건에 대한 상상을, 그 미래에 관한 끝없는 고투를 가능하게 한다. 그 습작에서 할머니는 농사꾼이었던 남편과 다시 사별하게 된다. 그러나 일 년 만에 헤어지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그를 더욱 극진히 간호했고, 사별하게 될 남편은 무려 일 년을 더 살게 된다. 그 일 년 동안, 할머니는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조선어가 서툴러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분명한 목소리로 고백한다. 할머니는 소설에서도 할아버지와 결혼한다. 시장 사람들에게 쌀가게 사모님으로 불리고, 결국 이번에도 할아버지의 주사에 뺨을 맞고, 결국 이번에도 임신했던 아이를 유산한다. 그러나 유산할지언정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할머니는 아이와 함께 육 년을 살게 된다. 아이는 여섯 살이 되던 해, 피란길에 장티푸스에 걸려 죽음을 맞이할 운명이지만, 그가 죽기 두 달 전, 할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고향인 후추시에 방문한다. 바로 이곳에 와서 아이와 함께 밤의 축제를, 가부키극을, ‘거대한’(μέγα) 건물과 ‘넓은’(εὐρὺ) 하늘, ‘꺼질 줄 모르는’ (ἄσβεστον) 불빛들을 지켜본다. 어느새 그들이 바라봤던 집은 허공 속으로 사라지고, 하늘의 풍경도, 그들을 비추었던 불빛도 희미해진다. 시간은 아이를 잃고 하나코 씨를 잃는다. 돌길 한편에 쭈그려 앉아 그들을 바라봤던 나도 잃어서 그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겠지만, 반대로 무언가 분명 거대하게 남을 것이라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하늘을 바라봤던 사람의 심장에 단발성의 고통이 있었고, 그것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고통이 얼마나 넓었는지 미래의 자신은 분명 알 것이라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한때 이곳에서 손을 잡고 있었던 사람들을 밝혔던 불빛, 한순간의 빛과도 같은 그 시간은 이제 사라졌지만, 그 순간은 꺼지지 않을 것이고, 그 시간은 어느새 내가 될 것이며, 나는 미래에도 이곳에 있다고, 아오리스트는 말한다. *허수경, ‘꽃핀 나무 아래’(‘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사, 1992), ‘나는 비애로 가는 차 그러나 나아감을 믿는 바퀴/살아온 길이 일테면 자궁 하나/어느 범박한 무덤 하나 찾는 거라면’
  • “다이어트로 400㎏ 뺐는데”…세계서 가장 뚱뚱한 남성, 41세 나이로 사망

    “다이어트로 400㎏ 뺐는데”…세계서 가장 뚱뚱한 남성, 41세 나이로 사망

    세계에서 가장 무거운 사람으로 기네스 세계 기록에 이름을 올렸던 멕시코 남성이 4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0일(현지시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뚱뚱한 사람’ 세계 기록 보유자인 후안 페드로 프랑코(41)가 신장 감염 합병증으로 지난 24일 숨졌다. 프랑코는 2017년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록될 당시 체중이 594.8㎏에 달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극심한 비만으로 침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됐고 당뇨와 고혈압, 갑상선 기능 장애 등에 시달렸다. 건강 개선을 위해 프랑코는 엄격한 지중해식 식단과 함께 위 소매 절제술과 위 우회술 등 두 차례의 비만 수술을 받았다. 의료진의 치료와 그의 꾸준한 노력 끝에 2020년 체중이 200~210㎏ 정도로 약 400㎏ 감량에 성공했다. 한때 스스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하기도 했다. 프랑코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매일 스스로 일어나 물 한 잔 마시고 화장실에 혼자 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이라고 말하며 세계 비만 환자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프랑코는 같은 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걸렸다 22일간의 사투 끝에 회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말 프랑코는 신장 감염이 악화되며 전신 합병증으로 이어졌다. 의료진의 치료에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고, 결국 병원 치료 중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주치의인 호세 안토니오 카스탄에다 박사는 “이번 합병증은 끝내 이겨낼 수 없었다”며 “프랑코는 극심한 비만과 싸우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다”고 추모를 전했다. 프랑코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전 세계 네티즌들의 애도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한편 비만이 심화될수록 당뇨병,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등 대사질환과 암, 근골격계·소화기계·생식기계 질환 등 각종 질병의 발병 위험이 커지며, 이로 인한 사망 위험 또한 높아진다. 대한비만학회는 비만을 단순히 체중이나 체지방이 늘어나는 상태가 아닌, 각종 합병증 위험을 높이는 만성질환인 ‘비만병’으로 규정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연 1회 이상 체질량지수(BMI)를 점검하고 25 이상일 경우 비만병으로 인지하여 조기에 관리할 것을 권장한다.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영원한 캡틴’ 콜라르 별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영원한 캡틴’ 콜라르 별세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명문 구단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영원한 캡틴’ 엔리케 콜라르가 2025년의 막바지에 영면에 들었다. 91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구단은 30일(한국시간) 1960년대 팀을 이끌며 리그 우승 1회와 국왕컵 3회 우승을 이끈 구단의 전설 콜라르가 별세했다고 밝혔다. 구단은 성명을 통해 “적백(구단 상징)의 가족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국내외 축구의 정점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상징적인 인물을 잃었다”고 애도했다. 왼쪽 공격수였던 콜라르는 1953년부터 1969년까지 아틀레티코에서 470경기에 출전해 105골을 기록했고, 1960년대에만 10년간 주장으로 활약해 구단 역사상 최장수 주장으로 기록됐다. 그는 1960년 국왕컵 결승전이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마드리드 더비’에서도 골망을 가르며 우승에 기여했고, 이후 1961년과 1965년에도 아틀레티코를 국왕컵 정상에 올려놨다. 아울러 아틀레티코는 콜라르의 리더십 아래 레알 마드리드가 리그를 지배했던 1965~66시즌에도 라리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콜라르는 1962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과 더불어 스페인 대표팀으로 그해 열린 칠레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그는 발렌시아에서 한 시즌을 보낸 뒤 1970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 유재석, MBC 대상 수상하며 ‘하차’ 이이경 향해 한 마디

    유재석, MBC 대상 수상하며 ‘하차’ 이이경 향해 한 마디

    방송인 유재석이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9번째 대상을 수상했다. 29일 열린 ‘MBC 방송연예대상’은 전현무와 장도연의 진행으로 펼쳐졌으며, 한 해 동안 활약한 예능인과 프로그램의 성과를 조명했다. 올해 대상 후보에는 전현무, 기안84, 유재석, 장도연, 배구 선수 김연경이 이름을 올렸다. 장도연은 데뷔 이후 처음으로 대상 후보에 오르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김연경 역시 예능 활동을 통해 후보에 합류했다. 대상의 영예는 ‘놀면 뭐하니?’를 이끈 유재석에게 돌아갔다. 유재석은 수상 소감에서 “무엇부터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가족과 동료, 시청자에게 공을 돌렸다. 특히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이미주와 박진주, 그리고 최근 구설 끝에 하차한 이이경까지 언급하며 “이이경, 고생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방송 환경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모든 관계자와 종사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한편 올해 ‘나 혼자 산다’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도 프로그램의 수상 여부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옥자연이 베스트 엔터테이너상을 받으며 ‘나 혼자 산다’의 현재 가치를 강조했다. 전현무는 시청자에게 “송구스럽다”며 논란에 대해 공개 사과하기도 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고(故) 전유성이 공로상을 받았다. 제자 김신영이 대리 수상자로 무대에 올라 선배를 향한 존경과 애도의 뜻을 전하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다.
  • 李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1년…대통령으로서 깊은 사죄·유가족 종합지원”

    李 “무안공항 여객기 참사 1년…대통령으로서 깊은 사죄·유가족 종합지원”

    이재명 대통령은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맞은 29일 “어떤 말로도 온전한 위로가 될 수 없음을 알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책무를 가진 대통령으로서 깊은 사죄의 말씀을 올린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지난해 12월 29일,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여객기 참사가 우리 모두에게 깊은 슬픔을 안긴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고 언급한 뒤 “사랑하는 가족과 해외여행을 마치고, 해외에서의 출장과 업무를 끝내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비행기에 올랐던 179분의 소중한 삶이 순식간에 비극으로 변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제는 형식적 약속이나 공허한 말이 아닌, 실질적 변화와 행동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독립성과 전문성 강화를 적극 뒷받침하고 여객기 참사의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또한 유가족의 일상 회복을 최우선으로 삼아 심리·의료·법률·생계 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적 지원을 빠짐없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12·29 여객기 참사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와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며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희생자 여러분을 기리는 최소한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책임져야 할 곳이 분명히 책임을 지는, 작은 위험일지라도 방치하거나 지나치지 않는, 모두가 안전한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끝으로 “다시 한번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빈다. 유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재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 유포나 피해자에 대한 비난을 삼가주세요. 재난을 겪은 뒤 심리적인 어려움이 있는 경우 ☎02-2204-0001(국가트라우마센터) 또는 1577-0199(정신건강위기 상담전화)로 연락하시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이 기사는 재난보도준칙을 준수하였습니다.
  • “개고기 식용 반대” 외친 프랑스 여배우 바르도 잠들다

    “개고기 식용 반대” 외친 프랑스 여배우 바르도 잠들다

    1950~1960년대 명배우로 활동하다가 동물권 운동가로 변신한 프랑스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가 28일(현지시간) 파리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AFP통신 등이 이날 보도했다. 91세. 브리지트바르도재단은 성명에서 “재단 창립자이자 대표인 브리지트 바르도의 별세 소식을 깊은 슬픔과 함께 전한다”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배우이자 가수였던 그는 화려한 경력을 포기하고 동물복지와 재단에 삶과 열정을 바치기로 선택했다”고 전했다. 1934년 파리의 부유한 가톨릭 가정에서 태어난 고인은 15세 때 패션잡지 ‘엘르’ 모델로 활동하다가 1952년부터 연기 경력을 시작했다. 1956년 당시 남편인 로제 바딤 감독의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로 스타덤에 올라 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사랑받았다. 소설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59년 에세이 ‘브리지트 바르도와 롤리타 증후군’에서 고인을 “프랑스에서 가장 해방된 여성”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고인은 1973년 39세의 나이에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동물권 운동가로 변신했다. 그의 동물권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는 개고기 등을 먹는 소수 민족에 대한 혐오로 번졌다. 한국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등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집요하게 비판했고, 프랑스에서도 동물 도살 등과 관련한 무슬림 문화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인종차별 혐의로 5차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정치적으로 우파였던 고인은 2012년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전선’(FN)에 대한 공개 지지에 나서기도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엑스(X)에 “우리는 세기의 전설을 애도한다”고 추모했다.
  • 샴쌍둥이 자매, 분리 수술 7개월 만에 결국 둘 다 숨져

    샴쌍둥이 자매, 분리 수술 7개월 만에 결국 둘 다 숨져

    지난 5월 분리 수술을 받았던 브라질 샴쌍둥이(결합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끝내 숨졌다. 수술 직후 사망한 또 다른 자매에 이어 두 자매 모두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됐다. 브라질 언론은 아루나 로드리게스가 24일(현지시간) 오후 3시 51분 고이아스주 주립 아동청소년병원에서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의료진의 집중 치료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아루나와 자매 키라즈는 태어날 때부터 신체가 붙어있어 주요 장기를 공유했다. 자매는 생후 18개월 19시간에 걸친 대규모 수술로 분리됐다. 당시 병원은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자매는 안정적인 상태에서 회복 중”이라고 밝혔지만 키라즈는 수술 며칠 만에 숨졌다. 주치의 자카리아스 칼릴 박사에 따르면 두 자매는 의학적으로 ‘트리푸스 이스키오파구스’(tripus ischiopagus)로 불리는 희귀 형태의 결합쌍둥이였다. 이는 골반 부위가 붙어 있고 세 개의 다리를 공유하는 유형으로, 전체 샴쌍둥이의 6%가량만 해당한다. 분리 수술에는 의료진 약 60명이 투입됐다. 외과의 16명이 4시간씩 교대로 참여했으며, 수술에는 약 31만 파운드(약 5억4000만원)가 소요됐다. 수술 전에는 자매의 피부를 늘리기 위해 6개월 전부터 특수 피부 확장기를 이식하는 과정도 거쳤다. 칼릴 박사는 소셜미디어(SNS)에 “오늘 하나님이 아루나의 고통을 덜어주시고 그녀를 자매 키라즈 곁으로 데려가셨다”며 “용기와 믿음, 사랑으로 싸워온 이 가족에게 깊은 슬픔을 전한다”고 애도했다. 아루나의 아버지 알레산드루 로드리게스는 “딸이 최근 상태가 호전돼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지만, 이후 감염과 바이러스 질환이 겹치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말했다. 아루나의 시신은 26일 고이아니아를 떠나 가족이 거주하는 상파울루로 이송돼 장례를 치렀다.
  • 분리 수술 7개월 만에 결국 숨진 결합쌍둥이

    분리 수술 7개월 만에 결국 숨진 결합쌍둥이

    지난 5월 분리 수술을 받았던 브라질 샴쌍둥이(결합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이 크리스마스이브에 끝내 숨졌다. 수술 직후 사망한 또 다른 자매에 이어 두 자매 모두 세상을 떠나는 비극이 됐다. 브라질 언론은 아루나 로드리게스가 24일(현지시간) 오후 3시 51분 고이아스주 주립 아동청소년병원에서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고 전했다. 의료진의 집중 치료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아루나와 자매 키라즈는 태어날 때부터 신체가 붙어있어 주요 장기를 공유했다. 자매는 생후 18개월 19시간에 걸친 대규모 수술로 분리됐다. 당시 병원은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자매는 안정적인 상태에서 회복 중”이라고 밝혔지만 키라즈는 수술 며칠 만에 숨졌다. 주치의 자카리아스 칼릴 박사에 따르면 두 자매는 의학적으로 ‘트리푸스 이스키오파구스’(tripus ischiopagus)로 불리는 희귀 형태의 결합쌍둥이였다. 이는 골반 부위가 붙어 있고 세 개의 다리를 공유하는 유형으로, 전체 샴쌍둥이의 6%가량만 해당한다. 분리 수술에는 의료진 약 60명이 투입됐다. 외과의 16명이 4시간씩 교대로 참여했으며, 수술에는 약 31만 파운드(약 5억4000만원)가 소요됐다. 수술 전에는 자매의 피부를 늘리기 위해 6개월 전부터 특수 피부 확장기를 이식하는 과정도 거쳤다. 칼릴 박사는 소셜미디어(SNS)에 “오늘 하나님이 아루나의 고통을 덜어주시고 그녀를 자매 키라즈 곁으로 데려가셨다”며 “용기와 믿음, 사랑으로 싸워온 이 가족에게 깊은 슬픔을 전한다”고 애도했다. 아루나의 아버지 알레산드루 로드리게스는 “딸이 최근 상태가 호전돼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동으로 옮겨졌지만, 이후 감염과 바이러스 질환이 겹치며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말했다. 아루나의 시신은 26일 고이아니아를 떠나 가족이 거주하는 상파울루로 이송돼 장례를 치렀다.
  • 딸 안고 반신욕하다 ‘쿨쿨’ 잠든 30대 아빠, 20개월 아기 사망 ‘충격’…美 ‘아동방임’ 기소

    딸 안고 반신욕하다 ‘쿨쿨’ 잠든 30대 아빠, 20개월 아기 사망 ‘충격’…美 ‘아동방임’ 기소

    미국에서 한 아버지가 어린 딸을 안고 욕조에서 잠들었다가 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매체 피플 등에 따르면 지난 13일 오전 3시 30분쯤 플로리다주 오세올라 카운티의 한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아이가 의식이 없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구조대가 출동해 20개월 된 딸 아자리아 허프를 즉시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딸은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수사 결과 워싱턴 D.C.에 거주하는 허프 가족은 플로리다로 여행을 와 해당 숙소에서 숙박했다. 아버지 레이나드 타이론 허프(33)는 딸을 품에 안은 채 수심 약 1m 깊이의 온수 욕조에 들어간 뒤 잠이 들었고, 약 20분 뒤 깨어났는데 딸이 반응하지 않는 상태였다고 진술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사건 발생 전 술과 마약성 약물을 복용한 상태였다고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오세올라 카운티 보안관실은 “영유아는 짧은 시간의 노출만으로도 익사 위험이 급격히 증가한다”며 “특히 보호자가 술이나 약물의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는 수중 환경이 치명적 위험으로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 레이나드는 아동 방임 및 가중 아동 과실 치사 혐의로 체포돼 오세올라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돼 있다. 현재 추가 조사 및 기소 절차가 진행 중이다. 보안관실 관계자는 “사건 당시 다른 어린 자녀도 집에 있었다”면서 “가족 모두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가족들은 딸에 대해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고 애도했다. 수사 당국은 정확한 사인과 경위를 확인하기 위한 추가 조사를 진행 중이다. 영유아 익사는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소리 없이 발생하는 대표적인 치명적 사고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와 미국소아과학회(AAP)에 따르면 생후 1~2세 영유아는 스스로 머리를 들거나 자세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아, 보호자가 바로 곁에 있어도 순간적인 부주의로 익사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앞서 국내에서도 지난 10월 전남 여수시에서 생후 4개월 된 남아가 욕조에 빠져 숨진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30대 친모 A씨는 10월 22일 낮 12시 30분쯤 여수시 자택 욕실에서 생후 4개월 된 아들 B군을 유아용 욕조에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됐다. A씨는 “아이가 물에 빠졌다”고 119에 신고했고 B군은 출동한 소방 당국에 의해 여수 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26일 결국 숨졌다. A씨는 유아용 욕조에 B군을 홀로 둔 채 물을 틀어 놓고 거실에서 TV를 시청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A씨를 아동학대 중상해 혐의로 구속했지만, B군이 사망함에 따라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변경해 송치했다.
  • ‘김정은 집사’ 김창선 사망…북미·남북 정상회담 보좌

    ‘김정은 집사’ 김창선 사망…북미·남북 정상회담 보좌

    김정일·김정은 대이어 최근접 보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집사’로 불리며 정상외교 의전을 담당했던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사망했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김 위원장이 김 부장의 사망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전날 화환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절세위인들의 각별한 사랑과 크나큰 믿음 속에 당과 국가의 중요 직책에서 오래동안 사업하여 온 김창선 동지는 언제나 견실하고 성실한 한 모습으로 우리 당의 권위를 옹호 보위하고 국가의 대외적 위상을 떨치는데 특출한 기여를 하였다”고 평가했다. 김 부장은 북한의 정상 의전 책임자로 국내외 언론에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2018∼2019년 북미,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해 북중, 북러정상회담 등에 앞서 그는 선발대로 회담지를 방문해 동선 등을 미리 점검했다. 그는 2018년 2월 김 위원장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평창동계올림픽 고위급 대표단으로 방남했을 당시에도 대표단 지원인력에 포함됐다. 같은 해 4월 남북간 의전·경호·보도분야 실무회담에 북측 수석대표로 참석해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등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했다. 김 부장은 김정일·김정은 두 최고지도자를 대를 이어 가까이서 보좌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권 때부터 최고지도자와 그 가족의 일상생활을 돌보는 기능을 하는 서기실에 재직했고 이후 김정은 집권 이후에도 첫 서기실장을 맡았다.
  • 가습기살균제 ‘참사’ 규정… 李 “국가가 온전히 배상”

    가습기살균제 ‘참사’ 규정… 李 “국가가 온전히 배상”

    기업 손해배상 책임 정부와 분담배상위원회 개편… 총리 소속 격상학교 배정·등록금·취업까지 지원추모일 지정·국가 추모 사업 추진李 “비극 반복 안 되게 제도 점검”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800여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를 사회적 참사로 명확히 하고,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을 세워 피해를 온전히 배상하겠다”고 공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많이 늦었다. 모든 피해자와 유가족들께 머리 숙여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 대통령은 “1994년부터 아무런 의심 없이 사용해 온 가습기살균제가 사랑하는 가족의 건강과 생명을 앗아갈 줄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면서 “2011년 원인이 밝혀지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고, 그 이후로도 1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현실에 얼마나 억울하고 참담하셨을지 감히 헤아리기조차 어렵다”며 피해자를 위로했다. 이어 “다시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와 관리 전반을 근본적으로 점검하겠다”고 강조했다. 가습기살균제 참사는 1994년부터 판매된 가습기살균제 제품(SK케미칼·애경산업·옥시 등)이 사용자의 폐 손상을 일으킨 사건이다. 2011년 당시 질병관리본부(현 질병관리청)가 역학조사를 통해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 인과관계를 최초로 밝혀냈다. 사건이 공론화한 지 14년이 흐른 지난달 말 기준으로 5942명이 정부로부터 피해를 공식 인정받았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가습기살균제 참사에 국가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고, 정부는 그동안 사회적 합의를 통한 사안 해결을 추진해 왔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에서 “정부는 참사 공동 책임자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이행하고자 한다”면서 “피해구제법을 전면 개정해 이 사건을 사회적 참사로 명확하게 규정하고 국가 책임에 기반한 배상과 지원을 할 수 있는 체계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오랜 세월 고통과 불안을 견뎌내셔야 했던 6000명에 이르는 피해자와 가족분께 다시 한번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피해자 지원 방향에 대해선 “피해자의 학업, 사회 진출, 일상 회복까지 생애 전 주기에 걸친 맞춤형 지원을 하겠다”며 “피해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중심으로 전 부처가 함께 힘을 합쳐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정부가 이날 확정한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 종합지원대책’은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참사’로 명확히 규정하고, 기존 행정적 피해구제 체계를 국가 주도 배상 체계로 전환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지금까지는 기업 분담금 2500억원과 일부 정부 출연금 225억원을 토대로 구제급여가 지급됐다. 앞으로는 정부 주도로 지원액이 대폭 확대된다. 기업에만 물었던 손해배상 책임도 기업과 정부가 나눠 갖게 된다. 기존 기후부 소속 피해구제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 배상심의위원회로 개편된다. 2021년 이후 중단됐던 정부 출연도 내년 100억원을 시작으로 재개된다. 국무조정실은 범부처 전담반(TF)을 구성해 ‘피해자 생애 전 주기 지원’에 나선다. 피해 청소년은 중고교 진학 시 희망하는 학교에 우선 배정하고 대학 등록금도 지원할 방침이다. 사회에 진출하는 피해 청년에 대해서는 국민취업지원제도, 청년도전지원사업,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 등을 통해 취업을 적극 지원한다. 현행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의 목적에 ‘추모’를 추가하고 추모일을 공식 지정해 국가가 주도하는 추모 사업도 추진한다. 정부는 “2026년을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피해구제 방식을 전면 전환하는 원년으로 삼고 오랜 기간 고통을 겪었던 피해자들이 조속히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후속 조치를 속도감 있게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 “죽은 사람도 태워주나요?”…비행기 탑승했는데 사망 판정 받은 89세女 ‘발칵’

    “죽은 사람도 태워주나요?”…비행기 탑승했는데 사망 판정 받은 89세女 ‘발칵’

    스페인 남부 말라가 공항에서 영국 런던 개트윅으로 향하던 이지젯 항공편에서 89세 고령 여성 A씨가 기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일부 승객들은 “할머니가 탑승 당시 이미 숨져 있었다”고 주장하며 항공사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했다. 21일(현지시간) 더선에 따르면 해당 항공편은 지난 18일 오전 출발 예정이었으나 출발 직전 기내에서 한 고령 승객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승무원들의 판단이 나오면서 이륙이 중단됐다. 응급 구조대와 공항 당국이 기내로 투입돼 확인한 결과 A씨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개된 목격담에 따르면 A씨는 휠체어에 실려 탑승했다. 주변 승객들은 “할머니의 머리가 축 처져 있고 눈을 뜨거나 움직이는 모습이 전혀 없었다”며 “함께 있던 가족이 할머니의 머리를 받쳐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한 승객은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지젯이 죽은 사람을 비행기에 태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논란의 중심에 선 A씨 가족 측은 “할머니가 단지 몸이 좋지 않아 잠들어 있는 상태일 뿐이었다”고 항공사 직원에게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격자 중 일부는 가족 중 한 명이 자신을 의료인이라고 소개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이지젯 측은 공식 입장을 통해 “해당 승객은 탑승 전 ‘비행 적합 진단서(Fit to Fly)’를 제출했으며, 항공기 탑승 당시 의료진에게서 생존 상태로 확인 받았다”고 밝혔다. 항공사는 “승객과 승무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의료 응급 상황으로 판단해 즉각 대응했다”면서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이번 사건으로 해당 항공편은 약 12시간가량 지연됐다. 항공사 측은 피해 승객들에게 음식 및 음료 쿠폰을 제공했다. 스페인 현지 경찰은 여성의 정확한 사망 시점과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가족들이 당시 노인의 상태를 알고 있었는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 배우 이영애도 추천한 ‘이 음료’…겨울철 면역 효과 ‘만점’

    배우 이영애도 추천한 ‘이 음료’…겨울철 면역 효과 ‘만점’

    겨울철 불청객인 감기를 예방하고 몸을 따뜻하게 보호하기 위해 차를 마시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쌍화탕, 유자차, 대추차 등을 즐긴다. 반면 유럽은 ‘뱅쇼’를 즐겨 마신다. 뱅쇼는 프랑스어로 ‘따뜻한 와인’이라는 의미로, 와인에 각종 과일과 계피를 끓여 마시는 음료다. 배우 이영애도 겨울에 마시기 좋은 건강 음료로 뱅쇼를 추천했다. 이영애는 최근 소셜미디어(SNS)에 “재료는 취향껏 넣는 뱅쇼.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사진과 영상을 올렸다. 사진 속 그는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머리를 묶어 올린 채 부엌에서 뱅쇼를 직접 만들었다. 그의 글대로 뱅쇼는 사과, 배, 오렌지, 자몽 등 과일과 팔각, 계피 등 향신료를 취향껏 넣고 와인을 부어 끓이면 된다. 특히 뱅쇼에 들어간 레드와인의 타닌과 향료들이 어우러져 항바이러스 효과를 낸다. 이는 ‘천연 감기약’으로 불린다. 뱅쇼를 마시면 체온 상승으로 혈액 순환이 좋아져 추위를 완화한다. 오랜 시간 끓여 대부분의 알코올이 날아가기 때문에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뱅쇼에 들어있는 와인과 과일에는 비타민C가 풍부하다. 비타민C는 감기 예방, 피로 해소,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 따뜻한 온도와 소량의 알코올이 혈관을 확장해 순환을 촉진하고, 수족냉증이나 관절 통증을 줄여준다. 이 밖에 포도씨의 카테킨이 혈관을 깨끗하게 한다. 계피도 피로를 풀어주며 소화 촉진에도 도움을 준다. 또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해 대사증후군 수치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다만 당뇨 환자나 혈당 관리가 필요한 사람은 주의해야 한다. 뱅쇼에는 과일과 설탕이 더해져 당도가 높은 편이기 때문이다. 혈당이 급격하게 상승할 위험이 있다. 또 초기 감기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약을 대신할 수는 없다. 따라서 심한 감기나 고열에는 의사의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 당선 1년여만에 숨진 37세 女시장…‘복통 신호’ 무시했다간 늦는다

    당선 1년여만에 숨진 37세 女시장…‘복통 신호’ 무시했다간 늦는다

    튀르키예에서 37세 여성 시장이 대장암 투병 끝에 사망해 정계에 충격을 주고 있다. 대장암 진단을 받은 지 불과 1년 3개월만에 유명을 달리한 것으로, 20~30대 젊은 층에서 급격히 늘고 있는 대장암의 위험을 상기시킨다. 터키시 미닛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튀르키예 서부 마니사 주(州) 셰이자델레 지구를 이끌던 굴사 두르바이(37) 시장이 지난 14일(현지시간) 마니사 시립병원에서 치료 중 별세했다. 튀르키예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 소속으로 1988년생인 두르바이 시장은 지난해 3월 셰이자델레 지구 선거에서 당선돼 마니사 주 최초의 여성 지방자치단체장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그해 9월 대장암 진단을 받은 그는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삭발한 머리를 두건으로 가린 채 시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해왔다. 그러나 이달 초 상태가 악화해 수술받았고, 이후에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아 인공호흡기를 착용해야 했다. 결국 지난 14일 1년여 간의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그의 별세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애도의 메시지를 전했다. 항암 치료 중 두건 쓰고 직무 수행50세 이상 중장년의 질환으로 여겨져 왔던 대장암이 두르바이 시장처럼 20~30대 젊은 층에 찾아오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대장암으로 병원을 찾은 국내 20~30대 환자는 지난 2020년에서 2024년까지 5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미국 콜로라도대학교 메디컬센터가 진행한 연구에서는 한국의 20~49세에서의 대장암 발병률이 조사 대상인 42개국 가운데 1위(인구 10만명당 12.9명)로 나타나기도 했다. ‘젊은 대장암’은 식습관과 생활 습관이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동물성 지방이 많은 음식과 햄, 소시지 등 가공육, 붉은 육류 섭취를 비롯해 잦은 음주와 흡연 등이 대장암을 초래한다. 수면 부족과 비만, 스트레스 등도 대장암과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서구화된 식습관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동물성 지방과 가공육 섭취, 잦은 음주와 가당 음료 섭취가 대표적이다. 이 외에도 비만, 스트레스, 수면 부족, 가족력 등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장암 초기에는 대부분 증상을 느끼지 못한다. 복통이나 혈변, 설사, 피로감, 식욕부진, 체중 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났을 때는 이미 상당 기간 진행된 뒤다. 대장암은 조기에 발견할수록 완치율이 높다. 1기에 발견해 치료받을 경우 완치율은 90%, 2기는 80%에 달한다. 내시경 검사를 통해 선종성 용종을 제거하면 대장암 발병 위험을 대부분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3기로 진행되면 70%로 떨어지며 4기에 발견하면 완치율은 10%에 그친다. 조기 발견이 어려운 탓에 검진이 중요하다. 국가암검진사업에서는 만 50세 이상이면 1년마다 분변잠혈 반응검사를 통해 이상 소견이 나올 경우 대장내시경검사 또는 대장이중조영검사를 받도록 한다. 그러나 증상이 없어도 50세 이전에 정기적인 검사를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국가암검진사업은 증상이 없는 성인의 경우 45세 이후에는 1~2년 간격의 분변잠혈검사 또는 5~10년 간격의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권장하고 있다. 특히 가족 중 대장암 환자가 있는 등 위험 인자가 있는 경우, 또한 평소 혈변이나 설사, 복통 등의 증상이 있는 경우 30대라도 대장암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 며칠 전까지 활동했는데…유명 여행 유튜버, 숨진 채 발견

    며칠 전까지 활동했는데…유명 여행 유튜버, 숨진 채 발견

    미국의 인기 여행 유튜버 애덤 더 우(본명 데이비드 애덤 윌리엄스)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23일(현지시간) 피플에 따르면 애덤 더 우는 전날 미국 플로리다주 셀러브레이션에 위치한 자택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다. 오세올라 카운티 셰리프국은 “자택에서 움직임이 없는 남성이 발견돼 출동했고, 구조대와 함께 진입해 사망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당국에 따르면 지인이 사다리를 이용해 3층 창문을 통해 내부를 확인하던 중 침대 위에 쓰러진 남성을 발견했고, 이후 신고가 접수됐다. 현재까지 범죄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으며,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통해 규명될 예정이다. 셰리프국은 유가족에게 사망 사실을 통보했다. 비보가 전해지자 동료 유튜버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절친한 동료 저스틴 스카드는 SNS를 통해 “지금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프다. 세상은 거인을 잃었고, 나는 피보다 가까운 친구를 잃었다”며 “그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밝혔다. 또 다른 친구 크리스 욘 역시 “불과 며칠 전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앞으로의 여행과 콘텐츠 계획을 이야기했는데 믿기지 않는다”고 전했다. 애덤 더 우는 2009년 유튜브 활동을 시작해 2012년 대표 채널 ‘The Daily Woo’를 개설했다. 약 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일일 브이로그를 올리며 미국 50개 주를 모두 여행했고, 테마파크 탐방과 폐허 도시, 유령의 집, 소도시의 역사와 일상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했다. 특히 디즈니랜드와 디즈니월드를 자주 찾는 여행 크리에이터로 잘 알려졌으며, 월트 디즈니와 관련된 역사적 장소를 꾸준히 소개해 ‘디즈니 전문가’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마지막 영상은 사망 하루 전인 지난 21일 공개된 것으로, 셀러브레이션 지역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둘러보는 내용이었다. 팬들은 온라인을 통해 “여행의 의미를 알려준 크리에이터” “디즈니를 가장 사랑한 이야기꾼”이라며 추모 메시지를 이어가고 있다.
  • 유퀴즈 나온 ‘그알’ PD 고발당한 뒤…헌재 만장일치 ‘사이다’ 판결

    유퀴즈 나온 ‘그알’ PD 고발당한 뒤…헌재 만장일치 ‘사이다’ 판결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얼굴을 공개한 SBS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 PD에 대한 검찰 기소유예 처분이 헌법재판소에서 취소됐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서울서부지검이 이동원 SBS PD에게 내린 기소유예 처분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지난 18일 취소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2021년 1월 정인이의 죽음을 재조명하고 아동학대 현실을 다룬 ‘정인이는 왜 죽었나, 271일간의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 ‘정인아 미안해, 그리고 우리의 분노가 가야할 길’ 편을 방영하면서 정인이 얼굴이 나온 사진과 영상을 그대로 공개했다. 당시 제작진은 얼굴 공개 배경에 대해 “학대의 흔적이 유독 얼굴에 집중돼 있고, 아이의 표정에 그늘이 져가는 걸 말로만 전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같은 해 10월 정인이의 얼굴과 생년월일 등을 노출했다며 이 PD를 고발했다. 아동학대처벌법은 방송사 편집책임자 등이 아동보호 사건에 관련된 아동학대 행위자, 피해 아동, 고소·고발인 또는 신고인의 주소, 성명 등 인적 사항이나 사진 등을 출판물에 싣거나 방송매체를 통해 방송할 수 없다고 정한다. 이에 서울서부지검은 2023년 6월 그를 아동학대처벌법(보도금지의무) 위반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했다. 기소유예란 혐의가 인정되지만 검사가 여러 정황을 고려해 피의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처분을 말한다. 이 PD는 검찰의 처분에 불복해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고, 헌재는 2년여에 걸친 심리 끝에 “기소유예 처분은 정당행위에 관한 중대한 법리오해 또는 수사미진에 의한 것으로 청구인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며 기소유예를 취소했다. 헌재 “얼굴 공개, 오히려 피해아동 이익에 부합” 판단 헌재는 이 PD의 행위가 아동학대처벌법 구성요건에는 해당한다면서도, 목적의 정당성과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돼 ‘정당행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 방송은 정인이를 추모하고 가해자가 당시 기소된 아동학대치사죄가 아니라 살인죄로 처벌받아야 함을 주장하며 수사기관 등 관련기관을 비판하고 후속 조치와 제도적 보완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헌재는 “가해자가 범행을 부인하는 상황에서 방송은 피해를 그대로 전달해 시청자들이 직접 판단할 수 있도록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하고 전문가의 검증을 받았다”며 “가족관계나 학대 경위를 설명하는 외에는 주변인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흐린 화면으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또 정인이가 사망해 해당 조항의 보호법익인 ‘피해 아동에 대한 2차 피해를 막고 피해 아동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기본적 목적은 달성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피해 아동이 사망했더라도 끔찍한 피해를 당한 모습이 박제돼 대중에게 기억되지 않도록 인격적 이익을 보호할 필요성이 있지만, 해당 방송으로 정인이에 관한 사적 영역이 무분별하게 폭로되거나 불필요하거나 자극적 이미지로 소모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인다고도 밝혔다. 나아가 헌재는 “사건의 진상이 충분히 조사되고 규명돼 가해자가 책임에 부합하는 처벌을 받는 것이 아동학대로 사망한 피해 아동의 입장에서 가장 큰 이익이라고 할 수도 있다”며 “오히려 이 사건 방송은 피해 아동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헌재는 또 해당 방송이 아동학대범죄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가해자의 범행 내용에 부합하는 처벌을 촉구함과 동시에 아동학대 예방 방안을 공론화하려는 공익적 목적으로 제작됐음이 인정되고 언론의 자유라는 기본권 행사로서의 의미도 가진다고 봤다. 방송 이후 양모 장모씨는 살인 혐의 등이 유죄로 인정돼 징역 35년형이 확정됐고, 아동학대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법령이 정비되는 등 후속 조치와 제도적 보완이 이뤄졌으며, 해당 방송은 다수 언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헌재는 짚었다. 실제로 방송 이후 아동을 학대하고 살해한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형법상 일반 살인죄보다 더 무겁게 처벌하도록 한 ‘정인이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동원 PD, 유퀴즈서 “시청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동원 PD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그것이 알고싶다’를 연출했다. 2022년 tvN 예능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 당시 이 PD는 그알 연출 기간 가장 기억에 남은 사건으로 ‘정인이 사건’을 꼽은 바 있다. 그는 “사실 취재할 때 그 사건을 취재하고 있지 않았다”고 언급했다. 이어 “다른 사건 취재를 위해 인터뷰하는 분들을 뵐 때마다 ‘입양 아동 사건은 안 하세요?’라고 물어보시더라. ‘이 사건을 우리가 좀 더 알아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 PD는 “이렇게 많은 관심을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서 “아동 학대 사건은 사람들이 보기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잘 안 보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누가 보고 안 보고 시청률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렇게 많은 분이 고민하고 걱정하고 있다면 우리가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시작했다”며 “만난 분이 200분이 넘었다.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아서 했다”라고 전했다. 이 PD는 “우리가 정인이 묘지에 갈 때마다 눈이 온다. 갈 때마다 예보에 없는 폭설이 내린다. 첫 방송 끝나고 찾아갔더니 정말 많은 분이 정인이 묘지 앞에 줄을 서 계셨다. 합창하시는 분들이 노래도 불러주시더라. 모두가 ‘애도하는 마음으로 왔어요’라고 하시는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제작진끼리 많이 울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정인이가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그 생각밖에 안 든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 “성폭력 생존자” 고백했던 배우,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성폭력 생존자” 고백했던 배우, 자택서 숨진 채 발견

    미국 드라마 ‘더와이어’에서 지기 소보트카 역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제임스 랜슨(46)이 사망했다. 21일(현지시간) 피플, 폭스뉴스 등에 따르면 랜슨은 최근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 인근 별채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검시국은 사인을 자살로 공식 확인했다. 랜슨은 아내 제이미 맥피와 두 자녀를 두고 떠났다. 맥피는 이후 자신의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NAMI(미국 정신질환자 가족연합) 후원 링크를 게시하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랜슨은 2003년 방영된 ‘더 와이어’ 시즌2에서 항만 노동자이자 노조위원장 프랭크 소보트카의 아들 지기 소보트카를 연기하며 불안정한 청춘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 호평받았다. ‘더 와이어’는 2002~2008년 방영된 이후 현대 TV 드라마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랜슨은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고, 올해 6월 공개된 ‘포커페이스’ 시즌2 에피소드가 마지막 TV 출연작이 됐다. 랜슨은 생전 자신의 상처와 회복 과정을 공개해 왔다. 2021년 성폭력 생존자임을 밝힌 데 이어, 2016년 인터뷰에서는 20대 후반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 회복 중이라고 고백했다. 그의 솔직한 발언은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비보가 전해지자 팬들은 “지기의 얼굴을 잊지 못할 것” “솔직함과 연기가 오래 기억될 배우”라며 애도의 뜻을 전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자살예방SNS상담 ‘마들랜’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최성훈의 세세보] ‘그 자연이 네게’

    [최성훈의 세세보] ‘그 자연이 네게’

    홍상수 감독이 지난 5월 공개한 33번째 장편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는, 27년 전인 1998년작인 그의 두 번째 영화 ‘강원도의 힘’을 떠올리게 한다. 둘 모두 등장 인물들이 서울에서 자연(산)으로 떠났다가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강원도의 힘’의 지숙(오윤홍 분)은 친구들과 강원도 강릉으로 떠났다가 어찌어찌 살아서(!) 서울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다시 홀로 강릉에 다녀오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대성통곡을 한다. 우혜경 평론가의 빼어난 2017년 평론에 나오듯, 그것은 살았다는 안도와 죽어야(죽여야) 했던 태아에 대한 애도가 뒤섞여 있다. 반면 상권(백종학 분)은 우연히 같은 시기에 같은 장소에 다녀왔지만, 심지어 원했던 교수직을 얻었음에도 여전히 (한편으로는 두려운) 성관계에 집착할 뿐이다. 상권은, 대야 속 금붕어 두 마리 중 한 마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 홍 감독을 ‘차이와 반복’에 관한 작가라고 칭할 때 사람들이 염두에 둔 것은, 질 들뢰즈의 책 ‘차이와 반복’이다. 정작 들뢰즈는 데이비드 흄의 테제를 다음과 같이 ‘반복’한다. “반복되고 있는 대상 안에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복을 응시하고 있는 정신 안에서는 무엇인가 변하고 있다.” 최근에 국세청이 바우처 방식의 산모·신생아 돌봄 서비스 이용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 범위에 관한 해석을 바꿨을 때에도 그러한 구조적 동형성이 보인다. 세법 조문 자체는 변함없이 반복 적용되고 있었는데, 그걸 반복하는 주체(과세관청) 내부에서는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변하지 않는 법 자체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입장에서는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강원도의 힘’에서 지숙이 서울로 살아서 돌아온 것이 과연 강원도의 ‘힘’이라는 ‘실체’ 덕분일까. 홍 감독은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하기 위해 마치 힘으로 작용하는 실체에 의해서 지숙의 운명이 결정된 것처럼 영화의 제목을 붙인 것 아닌가. 홍 감독의 21번째 장편인 2017년작 ‘그 후’에서 아름(김민희 분)은 봉완(권해효 분)과 ‘실체’에 대해서 낮술 토론을 벌인다. 아름은 봉완에게 “정말로 실체가 우리가 알 수 없는 거라면 사실은 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묻고, “알지도 못하는 실체라는 허상 때문에 우리가 당장 필요한 믿음을 거부하는 건 엉뚱한 짓”이라고 나무란다. ‘그 자연이 네게 뭐라고 하니’에서 ‘그 자연’은 네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단지 네 안의 무엇인가가 변한 것일 뿐. 따라서 중요한 것은 당장 필요한 믿음이다. 예를 들면 ‘그 후’에서 아름의 말처럼 나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믿음 같은 것 말이다. 아름의 그 믿음이야말로 ‘강원도의 힘’의 지숙이 서울 집으로 살아서 돌아오는 데 필요했던 믿음이었는지 모른다. 2025년 한 해 동안도 힘들었던 일들을 잘 견뎌 낸 당신 역시, 당신 자신만의 그러한 믿음이 있었으리라 믿는다. 최성훈 법무법인 은율 변호사
  • 광주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추모음악회 개최

    광주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추모음악회 개최

    광주시는 오는 26일과 27일 오후 광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12·29 여객기 참사 1주기 추모공연’을 연다고 18일 밝혔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12월29일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유가족과 사고현장 지원에 헌신한 봉사자들 그리고 지역민을 위로하기 위해 마련됐다. 26일 오후 7시에는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이 ‘진혼, 기억’을 주제로 추모공연을 선보인다. 사회는 영화배우이자 국악인 오정해 씨가 맡는다. 공연은 망자의 천도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광주시립창극단의 ‘진도씻김굿’으로 시작한다. 이어 국민 소리꾼 장사익이 무대에 올라 ‘찔레꽃’, ‘꽃구경’, ‘아리랑’을 노래하며 깊은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피날레는 이정호 작곡가의 국악 레퀴엠 ‘진혼’이 장식한다. 광주시립관현악단과 광주시립합창단, 광주시립창극단, 광주소년소녀합창단, 목포시립합창단, 순천시립합창단 등 광주·전남지역 6개 예술단체가 함께 무대에 올라 합동 공연을 펼친다. 26일 공연은 6세 이상(2020년생 포함) 관람가로 전석 무료이며, 18일 오후 2시부터 유료회원 티켓 선예매가 시작된다. 일반회원은 19일 오후 2시부터 광주예술의전당 누리집에서 예매할 수 있다. 둘째 날인 27일 오후 5시에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이 ‘179명의 이름을 기억하며’를 주제로 추모음악회를 연다. 참사로 희생된 179명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고, 그들을 떠올리는 모든 이들과 마음을 나누기 위한 것이다. 연주회는 ‘슬픔 → 기억 → 위로 → 연대’의 흐름으로 구성해 각자가 고인을 떠올릴 시간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음악과 낭독이 하나의 호흡으로 이어지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마음을 조용히 전한다. 첫 무대는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로, 절제된 선율 속에 담긴 깊은 슬픔을 담아 애도의 시간을 연다. 이어 존 윌리엄스의 ‘종달새의 비상’을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 협연, 담담한 선율로 삶의 흔적과 남겨진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세 번째 무대에서는 작가 황석영이 고인을 위한 글을 직접 낭독하며, 관객이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생각을 모을 수 있는 시간을 이끈다. 마지막 무대는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3번 제6악장’으로 장식한다. ‘사랑이 나를 살게 한다’는 문장으로 알려진 이 곡은 말러 작품 중 가장 내밀한 정서를 담고 있으며, 고인을 기리는 마음과 서로를 향한 조용한 연대를 음악으로 풀어낸다. 27일 공연은 초등학생 이상(2018년생) 관람할 수 있으며 전석 무료다. 18일 오후 5시부터 유료회원 선예매가 시작되며, 일반회원은 19일 오전 10시부터 광주예술의전당 누리집에서 1인 2매까지 예매할 수 있다. 윤영문 광주예술의전당 전당장은 “참사 이후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아픔과 질문들이 남아 있다”며 “이틀간의 공연이 그 마음들 가까이에 조심스럽게 놓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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