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만 보다간 집값 못 잡는다…도시 공간 늘려 주거 안정부터” [월요인터뷰]
주택 새 공급 경로 확보품질 좋은 도시 공간 공급 늘리면주거 안정돼 불안한 집값도 진정소규모 정비·인허가 허들 낮춰야인재 중심의 도시 조성인재 네트워크, 일자리 창출 핵심국가 전략으로 지식 생태계 조성지방 소멸 막는 프로젝트 필수적청년 주거 사다리 복원강남·분당 같은 새로운 공간 필요청년들 활동할 선택지 많아져야임대·비아파트 공급이 우선 순위안정적 월세 주택 확대무주택 청년 영끌 감당 못 할 수도전세 대출은 유동성 과잉 이어져이자보다 싼 월세 주택 많이 공급역대 정부가 집값 안정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놨지만 번번이 한계에 부딪혔다. ‘정부가 시장을 이긴다’는 강한 의지를 내세운 이재명 정부 역시 공급 부족에 따른 수도권 아파트값 상승과 전월세난 심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동산 정책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주택시장 통계와 공급 지원을 담당하는 이헌욱(58) 한국부동산원장을 만났다. 이 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신문 본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기존 부동산 정책이 한계를 만났다면서도 “인간이 만든 문제이니 해결할 수 있고,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집값 자체보다 주거 안정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며 새로운 주택 공급 경로 확보, 인재 중심의 도시 조성, 청년 주거 사다리 복원, 안정적인 월세 확대 등을 제안했다. 일문일답.
-부동산 시장의 불안이 반복되는 원인은.
“핵심은 수도권 주택 문제다. 불안의 원인은 한마디로 압축 성장의 부작용 때문이다. 단기간에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동안 양질의 도시 공간을 제공하는 데 치밀하지 못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도시 공간의 구조적 희소성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지속하지 않으면서 도시 불균형이 심해졌다.”
-이런 구조적인 격차에도 집값 안정이 가능한가.
“집값에 매몰되면 문제를 풀 수 없다. 목표는 주거 안정이어야 한다. 품질이 좋은 주거 공간, 도시 공간을 충분하게 많이 공급하면 사람들의 선택이 더 수월해지고 이런 과정으로 주거 안정을 보장할 수 있다. 주거 안정을 보장한 결과로 집값이 조금 하향 안정화하는 것은 감수해야 할 일이다. 이렇게 자연적으로 시장 안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게 맞는 방향이다.”
-경쟁력을 가진 도시 공간을 늘리려면 일자리 창출이 중요할 텐데.
“중요한 것은 인재 네트워크다. 인재들이 모여 지식산업 네트워크를 꾸려야 일자리가 생긴다. 새로운 지식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수행할 핵심 인재 풀을 30만명 정도 구성하면 종합적인 인재 허브로 작동할 수 있다. 호남의 메가 프로젝트도 그런 노력이다. 인재 생태계 없이는 기업이 갈 수 없다. 그건 기업한테 망하라는 얘기다. 대만의 신주과학단지와 같은 거점을 우리도 30년 전에 만들었어야 한다. 대전의 대덕 연구단지조차 인재 밀도가 낮다. 국가 전략으로 인재 네트워크를 통한 지식 생태계를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방 소멸을 막을 수 없다.”
-도시 공간 조성에는 시간이 걸리고, 공급 부족은 현재 문제다.
“장기적으로는 도시 정비를 통해 좋은 공간으로의 전환을 지속하고 있지만 당장 집이 부족하고 고통받는 이들도 있으니 단기적 방안도 찾아야 한다. 기존 방식은 이미 한계에 와 있다. 과거에는 빈 땅이 있었다. 아니면 단독주택을 다가구 주택으로 바꾸는 방식을 많이 했는데 이제 쉽지 않다. 500가구 미만 소규모 정비사업 활성화, 지식산업센터 등 기존 건물의 주거 전환, 준공업 용지 활용 등 새로운 길을 열고 작게라도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실행해야 한다. 또 인허가 허들을 낮춰 병목을 풀고 경기도 3기 신도시 등 유휴 부지에 시급하게 주택을 공급하는 것도 단기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당장 서울을 중심으로 집값 상승세는 계속되고 여론도 좋지 않다.
“역시 오랫동안 주택이 충분하게 공급되지 못한 탓이 가장 크다. 공사비 급등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졌고 전세 사기 여파로 비아파트 부문 공급도 사실상 끊겼다. 서울 아파트 공급도 20% 이상 줄고 도심 정비사업도 지난 5년간 정체됐다. 이런 복합적인 영향들로 공급이 굉장히 부족한 상태다.”
-청년층의 주거 불안과 고민이 크다.
“청년들에게 아주 미안하다. 우리(기성세대)는 직장을 얻고 열심히 노력하면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성장의 시대라서 희망이 있었다. 지금은 성장이 거의 끝난 데다 불균형 성장의 결과로 기회가 골고루 가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정말 미안한 것은 그동안 청년들에게 필요한 공간을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 윗세대의 강남이나 우리 세대의 분당처럼 새로 개발하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 지금도 강남 같은 곳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강남과 서울, 수도권 외에도 청년들이 활동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아져야 한다. 과감한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해야 한다.”
-청년 주택 정책으로 임대주택이나 비아파트를 중시하면서 젊은 세대의 박탈감이 화두로 부상했다.
“비아파트가 강조되는 것은 그동안 비아파트 공급이 너무 무너져 있어서 이를 재건해야 주거 사다리가 복원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아파트에 살면 좋지만 다 그러기는 쉽지 않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일단 임대주택과 비아파트에서 시작했다가 돈을 모아서 더 원하는 곳에 살 기회를 정부가 계속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평생 거기서 살라는 게 아니다.”
-추격 매수를 고민하는 무주택 청년이나 서민에게 집을 사라고 권하겠나, 기다리라고 하겠나.
“형편에 맞춰서 해야지 절대 ‘영끌’하고 무리하면 안 된다. 금리도 오르고 거시 환경의 변동성이 커 자칫 감당할 수 없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 정부가 신도시 분양, 청년들을 위한 임대 물량 및 청약 우대 등 실질적인 기회를 넓히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100% 만족은 안 되어도 살 만하다는 집을 마련할 수 있을 테니 무리는 하지 마시길 바란다.”
-집을 사고 싶어도 대출 문턱이 높아 주저하는 사람들도 많다. 대출 규제를 완화할까.
“대출을 풀기는 굉장히 어렵다. 외환위기와 코로나19를 거치며 급증한 가계부채를 아직 줄이지 못한 데다 시중 유동성이 크게 늘고 있다. 반도체 호황 등은 좋은 일이지만 그렇게 유입되는 자금도 유동성 관리에는 큰 부담이다. 대출 완화는 신중해야 한다.”
-전세는 결국 사라질 제도라고 보나.
“전세는 집값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 아래에서 생긴 사금융인데, 여기에 전세 대출까지 뒤를 받쳐주니 유동성 과잉으로 이어지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전세 대출은 좀 엄격하게 다루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더 좋은 것은 전세 대출받아 내는 이자보다 더 저렴한 수준에서 선택할 수 있는 안정적인 월세 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것이다. 충분히 좋은 집이 많이 공급되면 전세 수요가 줄고, 결국 전세는 없어지지 않겠나.”
-취임 후 부동산원에 주택공급지원본부를 신설했다.
“(조직개편으로) 정비지원기구 역할을 통해 도시정비사업의 병목을 풀고 원활하게 진행하도록 하고 있다. 큰 틀에선 부동산 데이터 전문기관으로서 체계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부동산 문제 해결을 위한 방향성을 제시할 계획이다. 어떤 도시가 높은 삶의 질과 혁신성을 가졌는지 데이터로 밝히고 도시마다 강점과 약점을 구체적으로 짚어 ‘좋은 도시’의 방향을 제시하려고 한다. 서울을 넘어 각지에 ‘위대한 도시’가 생기기를 바란다. 각 도시의 경쟁력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바탕으로 인공지능(AI) 기반의 ‘도시 온톨로지’ 플랫폼(주택·교통·일자리·교육 등 도시의 다양한 정보를 연결해 AI가 도시의 구조와 문제를 분석하도록 하는 지식 체계)을 구축하고 싶다.”
-부동산원에서 매주 공표하는 아파트가격 통계가 시장 불안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주간 통계는 표본을 갖고 기하평균을 산출해서 낸다. 모든 표본이 매주 거래가 되지 않으니 유사 사례의 거래를 비교·보정하기도 한다. 전문적인 역량으로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여 정교한 통계 작업을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매주 국가가 승인한 주택 가격 통계를 내는 나라가 없다. 과연 이게 맞는지 고민은 된다. 충분히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면 그에 따른 역할을 하겠다.”
-정부가 개입할수록 부동산 시장이 왜곡된다는 비판도 있다.
“시장에만 맡겨두면 편하겠지만, 주택 문제에 대해선 국민도 정부에 많은 요구를 한다. 지당한 요구이고 국가는 노력할 의무가 있다.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알고 있고 책임감도 크다. 시장 정상화와 서민의 주거 안정을 지키는 일은 결코 회피해선 안 되는 (정부의) 책무다.”
■ 이헌욱 원장은
경남 의령 태생. 서울대 공대 졸업 후 변호사(사법연수원 30기)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에서 주거·금융·가계 부담 문제 등을 다루는 민생 운동을 했다. 제11대 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2019~2021년)으로서 당시 이재명 경기도 지사와 부동산 및 주거·도시정책 분야에서 호흡을 맞추며 기본주택(장기공공임대), 기본대출 등을 주도했다. 지난 2월 제17대 한국부동산원 원장으로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