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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도, 나라꽃 무궁화 우수분화 품평회 ‘동상’ 수상

    전북도, 나라꽃 무궁화 우수분화 품평회 ‘동상’ 수상

    전북도가 ‘광복 80년, 함께 피는 무궁화’를 주제로 열린 품평회에 우수한 성과를 거뒀다. 전북도는 지난 13일 산림청 주관으로 국립세종수목원에서 열린 ‘2025년 전국 나라꽃 무궁화 우수분화 품평회’에서 단체부문 ‘동상(산림청장상)’을 수상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품평회는 전국 지자체와 개인이 출품한 무궁화 분화 작품을 대상으로 전문가와 국민 평가단의 현장 투표를 통해 종합 평가해 우수작을 선정했다. 전북도는 총 60점의 무궁화 분화를 출품했다. 특히 산림환경연구원에서 자체 개발한 신품종인 ‘웅비(홍단심계)’, ‘비상(아사달계)’, ‘새천년(백단심계)’ 등을 출품해 창의성과 품종의 고유특성, 균형감 있는 수형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황상국 산림환경연구원장은 “이번 수상을 계기로 무궁화 품종 개발과 화분 재배 기술 향상에 더욱 힘쓰고, 도민과 함께 나라꽃 무궁화의 가치를 널리 알리겠다”고 말했다.
  • “무궁화가 이렇게 예뻤어?”…인생샷 건지는 ‘무료 명소’ 5곳 [뚜벅뚜벅 대한민국]

    “무궁화가 이렇게 예뻤어?”…인생샷 건지는 ‘무료 명소’ 5곳 [뚜벅뚜벅 대한민국]

    장마와 불볕더위가 번갈아 오는 궂은 날씨에도 무궁화는 활짝 핀다. 전국 곳곳에서 무궁화가 만개한 가운데 입장료 없이 무궁화를 관람할 수 있는 명소 5곳을 소개한다. 1. 서울 서울식물원 무궁화원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서울식물원 무궁화원에는 100여 품종의 무궁화가 5000여 점 식재되어 있다. 지하철 9호선 마곡나루역 4번 출구에서 도보로 5분이면 도착해 접근성이 좋은 무궁화원은 24시간 개방되어 있다. 서울식물원 무궁화원은 지난 2021년 산림청 ‘제8회 나라꽃 무궁화 명소’ 공모에서 최우수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서울식물원은 여름이면 무궁화뿐만 아니라 연꽃과 수국이 만개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아울러 오는 8월 31일까지 운영되는 서울식물원 물놀이터에서는 무더위를 떨칠 수 있다. 물놀이터 역시 별도의 입장료 없이 방문객 누구나 이용할 수 있어 가족들과 함께 힐링하기 안성맞춤이다. 2. 경기 안산 무궁화동산 안산 호수공원 내에 조성된 무궁화동산은 총면적 6만6000여㎡로 전국 최대 규모의 무궁화동산이다. 이곳에는 1만여 그루의 무궁화나무가 식재되어 있으며 특히 우정, 홍순, 선녀 등 희귀한 품종의 무궁화 묘목이 보존, 육성되고 있다. 무궁화동산은 가파르지 않아 가족, 친구 또는 연인과 함께 아름다운 무궁화를 보며 여유롭게 산책하기 좋다. 매년 8월이면 개최되는 ‘안산 나라꽃 무궁화 축제’에서는 무궁화로 만든 음식과 차를 맛보고 종이접기, 키링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3. 강원 홍천 무궁화수목원 무궁화 메카 도시인 홍천에는 다양한 무궁화원이 조성되어 있다. 홍천 북방면에 자리 잡은 무궁화수목원은 국내 최초의 무궁화 테마 수목원이다. 평생 무궁화를 아꼈던 독립운동가 한서 남궁억(1863~1939)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공간으로 2017년 처음 문을 열었다. 수목원 내에는 무궁화 조형물과 무궁화 미로원을 비롯해 억새원, 배나무원 등 16개 주제원과 숲속 산책로인 무궁 누리길, 어린이 놀이터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홍천 무궁화 테마파크는 1만9000여㎡에 5769본의 무궁화가 식재되어 7~8월이면 무궁화가 만개한다. 무궁화 외에도 다양한 식물이 심겨 있으며 데크, 그늘막, 운동기구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4. 충남 천안 명품 무궁화 테마공원 명품 무궁화 테마공원은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문을 열었다. 천안시는 총사업비 30억원을 투입해 독립기념관 내 겨레의 탑과 단풍나무 길을 연결하는 길목에 면적 5만㎡의 테마공원을 조성했다. 무궁화 테마공원에는 65개 품종 무궁화가 3319주 심어졌으며 소나무 등 경관 조경수도 식재됐다. 테마공원 중심의 무궁화광장에서는 무궁화에 대한 안내판과 배달계, 백단심계, 홍단심계, 청단심계, 아사달계 등 무궁화 대표 품종을 볼 수 있다. 무궁화정원에는 흔히 알고 있는 나무 형태(목본)의 무궁화가 아닌 화단에서 초화(초본)로 피는 독특한 무궁화가 만개한다. 여름이면 분홍빛으로 물드는 무궁화 테마공원은 연간 200만명이 방문하는 독립기념관에서 새로운 볼거리로 자리 잡았다. 5. 전북 완주 무궁화 100리길 32km 도로 양쪽으로 무궁화 1만5000여 그루가 줄지어 있는 완주 무궁화 100리길은 지역 주민과 관광객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매년 여름이면 무궁화가 만개하는 무궁화 100리길은 국내 최장 무궁화 가로수다. ‘나라꽃 무궁화 선양 대표도시’로 선정돼 대통령상을 받은 완주군에서는 무궁화 100리길 외에도 다양한 무궁화원을 만나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11년 조성된 무궁화 테마 식물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무궁화를 주제로 한 식물원이다. 식물원 입구에 있는 무궁화전시관에서는 무궁화의 내력과 품종 등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으며 무궁화정원에는 무궁화나무가 빼곡히 자리 잡고 있다. 고산문화공원 무궁화동산 일원에서 매년 8월 개최되는 ‘나라꽃 무궁화 축제’는 완주군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무궁화 축제는 무궁화 그림대회, 무궁화 나눔, 무궁화 보물찾기 등 다양한 체험 행사로 호평받았다. 군은 만경강 수변생태공원 일원에 1억원을 들여 무궁화동산을 조성하고 매년 비료 주기, 병충해 방제, 풀베기 작업 등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올여름 장마와 무더위 속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다면, 전국 곳곳 명소에서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활짝 핀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 ‘강동엄마’ 박춘선 서울시의원, 고덕천 수변공원 무궁화 식재 행사 참여

    ‘강동엄마’ 박춘선 서울시의원, 고덕천 수변공원 무궁화 식재 행사 참여

    ‘강동엄마’ 박춘선 서울시의원(강동3, 국민의힘)이 지난 3월 27일 둔촌동 허브천문공원에서부터 시작된 ‘강동구 주민과 함께하는 릴레이 식목행사’에 참석해 주민 주도의 마을 정원 가꾸기 사업에 힘을 실었다. 특히 지난 4월 8일 식목일을 맞아 강동구 고덕천 수변공원에서 열린 무궁화 식목 행사에서는 나라꽃인 무궁화의 의미를 되새기며, 지역주민들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8일에 진행된 고덕천 수변공원의 무궁화 식목행사는 강동구가 주최한 총 5회의 대규모 식목 캠페인 중 네 번째 행사로 우리 민족의 꽃인 무궁화를 식재함으로써 애국심을 고취하고 지역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 목적을 두었다. 행사에는 이수희 강동구청장과 문현섭 구의원, 그리고 ‘아름다운 정원 지킴이’ 아정이 회원들과 지역주민 약 100여명이 함께 했다. 박 의원은 이날 이른 오전부터 행사에 참석해 주민들과 직접 무궁화를 심으며, 자연과 함께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행사에는 약 100여명의 시민이 참여해 고덕천 수변공원 200㎡ 면적에 적단심, 백단심, 아사달 3종류의 무궁화 500주를 함께 심었다. 또한 박 의원은 “우리 민족의 정신을 상징하는 무궁화를 고덕천 수변공원에 식재함으로써 지역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는 동시에 애국심을 고취하는 의미 있는 행사가 됐다”라며 “강동구의 녹지 환경을 개선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번 식재 행사는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되는 식목행사로 ▲ 지난 3월 27일 둔촌동 허브천문공원을 시작으로 ▲ 4월 4일 암사동 신양중학교 옆 가로숲 ▲ 4월 4일 상일동 수풀공원 ▲ 4월 8일 고덕천 수변공원 ▲ 4월 9일 찬솔공원까지 강동구 내 다양한 지역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이번 고덕천 수변공원 행사에서는 대한민국의 국화인 무궁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그 의미를 더했다. 강동구 관계자는 “이번 행사로 식재된 무궁화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정기적인 관리를 이어갈 예정”이라며 “이번 ‘주민과 함께하는 릴레이 식목행사’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도 주민 참여형 환경 개선 프로그램을 확대해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박 의원은 “이번처럼 실질적인 식목 활동에 주민 여러분이 직접 참여하실 수 있는 자리를 자주 만들고, 그 안에서 애국심과 이로운 공동체 의식을 함께 키워갈 수 있도록 의정 활동에 더욱 힘쓰겠다”라며 “작은 나무 한 그루에서 시작된 이 변화가 우리 지역 전체에 초록 물결처럼 퍼져나가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 전설의 시작과 남겨진 숙제, 불국사와 석굴암 [한ZOOM]

    전설의 시작과 남겨진 숙제, 불국사와 석굴암 [한ZOOM]

    신성함이 요구되는 곳에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전설이 남아 있다. 신라인들에게 황룡사(皇龍寺)와 함께 불국정토(佛國淨土) 건설의 상징이었던 불국사(佛國寺)와 석굴암(石窟庵)의 시작에도 그러한 전설이 남아 있다. 불국사를 만든 김대성(金大城)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김대성은 전재산을 모두 부처님에게 바치고 얼마 후 갑자기 숨을 거두었다. 김대성이 죽던 날, 재상 김문량(金文亮)의 집에는 ‘김대성이 이 집에서 환생할 것이다’라는 계시가 내렸다. 얼마 후 김문량의 아내가 왼손에 ‘대성(大成)’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막대를 쥔 아들을 낳았다. 김문량은 아이의 이름을 김대성(金大城)이라 지었고, 김대성의 전생 어머니를 데리고 와서 함께 살도록 했다. 다시 태어난 김대성은 사냥을 좋아했다. 하루는 곰을 사냥한 후 깜빡 잠이 들었다. 꿈 속에서 김대성은 자신이 죽인 곰으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김대성은 곰에게 진심을 다해 용서를 빌었고, 꿈에서 깨어난 후 다시는 살생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시간이 흘러 김대성의 전생 부모와 현생 부모 모두 세상을 떠났다. 김대성은 부모님들을 기리기 위해 불국사를 만들기 시작했다.그림자가 없는 탑 무영탑(無影塔) 부산 출신인 대학교 2년 선배 두 사람이 있었다. 둘은 어렸을 때부터 친구였고 함께 같은 대학교에 들어왔다. 술자리가 무르익었을 때가 되면 어김없이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고 ‘부산갈매기’를 불렀다. 요즘 술자리에서 노래를 부르면 주변 사람들의 항의로 쫓겨나겠지만 그때는 그런 낭만 아닌 낭만이 가능했다. ‘부산갈매기’ 만큼 신나지는 않지만 경주(慶州)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는 역시 현인이 부른 ‘신라의 달밤’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대중가수인 현인은 성악가의 길을 걷다가 대중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인의 종숙(從叔)이 바로 독립운동가이자 작가인 현진건(玄鎭健·1900~1943)이다. 그는 1938년부터 다음 해 1939년까지 동아일보에 ‘무영탑’이라는 역사소설을 연재했다. 이 소설에는 ‘아사달과 아사녀’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아사달과 아사녀’ 이야기를 역사적 기록 또는 전설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현진건이 소설 ‘무영탑’을 쓰기 위해 만든 이야기이다. 신라는 석가탑을 만들기 위해 당시 신라보다 건축기술이 앞서 있던 백제로부터 ‘아사달’이라는 이름의 석공을 데려왔다. 아사달에게는 ‘아사녀’라는 이름의 아내가 있었다. 아사녀는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는 아사달이 보고싶어 경주로 찾아갔다. 하지만 탑을 만드는 동안 경건한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아사녀는 아사달을 만날 수가 없었다. 아사녀는 탑이 완성되면 연못에 그림자가 비출 것이라고 믿고 매일매일 연못을 보며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지친 아사녀는 연못에 몸을 던졌다. 석가탑이 완성된 후 아사녀가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사달은 급히 아사녀를 찾아 갔으나 그녀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후 사람들은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석가탑을 무영탑(無影塔)이라 불렀다.부처님께서 1200년 동안 숨겨둔 돼지 한 마리 2007년 정해년(丁亥年)은 60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오는 ‘붉은 돼지의 해’가 10번째 되는 해라고 해서 ‘황금 돼지의 해’로 불렸다. 그런데 그해 초 불국사에서 엄청난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극락전(極樂殿) 현판 뒤에서 돼지조각상이 발견되었던 것이다. 처음 불국사를 만든 때가 751년이고,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극락전을 다시 만든 때가 1750년이다. 그렇다면 이 돼지조각상은 최소 약 260년, 최대 1260년 동안 극락전 현판 뒤에 숨겨져 있었던 셈이었다.돼지조각상이 발견되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신기한 조각상을 보기 위해 불국사를 찾았다. 게다가 이 조각상이 발견된 해가 600년 만에 찾아온 ‘황금 돼지의 해’라는 사실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의미를 전해주었다. 불국사에서는 이 돼지조각상에 ‘극락전 복돼지’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극락전 복돼지를 보고 만질 수 있도록 극락전 앞 마당에 똑같이 생긴 돼지상을 만들어 공개했다.인간은 물을 이길 수 없다 1913년 일제에 의한 석굴암 복원작업이 시작되었다. 당시 석굴암 복원 담당자들은 터널공사 전문가들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고대 석조 문화재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 조선의 석공들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조선인들을 복원공사에 참여시키지도 않았다. 심지어 복원공사 과정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으면서 주먹구구식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석굴암의 냉각과 제습체계는 오늘날의 과학기술로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무지와 오만은 결국 문화재의 손상을 불러왔다. 해방 후 우리 정부는 석굴암 복원공사를 재개했다. 당시 유네스코(UNESCO)에서 온 전문가까지 동원되었지만 습도를 극복하지 못했다. 결국 석굴암 내부를 밀폐된 공간으로 만들고 24시간 에어컨을 가동하는 방법을 적용했다. 지금도 석굴암 본존불(本尊佛)은 24시간 가동되는 에어컨 공기 속에서 앉아 있다. 에어컨의 진동 속에서 시나브로 훼손되어 가는 부처님의 고통이 하루 빨리 멈추기를 기원한다.
  • 혜민스님 2년만의 근황… 우크라 난민 구호 활동 중

    혜민스님 2년만의 근황… 우크라 난민 구호 활동 중

    약 2년 전 ‘풀(full)소유’ 논란으로 방송 활동을 중단했던 혜민스님이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고 있다는 근황이 전해졌다. 법보신문은 지난달 4일 혜민스님이 보내온 ‘힘내라 우크라이나!’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전해진 근황에 따르면 혜민스님은 지난 4월 24일 출국해 독일 베를린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불교계 국제구호단체 더프라미스, 현지 구호 단체 아사달과 함께 난민들을 돕고 있다. 혜민스님은 기고문에서 러시아의 침공으로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만난 근황을 전했다. 혜민스님은 “처음 만나는 고려인이 우크라이나 사람일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그였지만 그가 처한 상황이 남 일 같지 않게 느껴졌다”고 했다. 혜민스민은 현지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난민들과의 대화 일부를 전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지속될 것 같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마다 예상과는 사뭇 다른 답이 돌아왔다”며 “지금 상황에서 전쟁이 끝나면 수년 내로 러시아가 다시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고 예상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난민들은 지금 바로 (전쟁이) 끝나기보다는 미국이나 유럽국가들이 도움을 주는 현 상황을 활용해 러시아가 또다시 전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자국의 피해가 계속되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본인들이 바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더라도 긴 미래를 보고 이런 바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덧붙였다. 혜민스님은 그러면서 “생명은 우크라이나 사람이든 러시아 사람이든 똑같이 소중하다. 만약 한 사람이 내 눈앞에서 부상당해 쓰러져 있다면 나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분별하지 않고 주저 없이 그를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혜민스님은 2020년 11월 tvN ‘온앤오프’에 출연해 2015년 8억원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서울 삼청동 집을 공개했다. 방송 이후 네티즌들은 혜민스님이 ‘무소유’가 아닌 ‘풀소유’의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했고, 이후 해외 부동산 소유 의혹과 스타트업 수익활동 등 재산 관련 논란이 잇따라 불거졌다. 혜민스님은 논란이 커지자 “모든 활동을 내려놓고 대중 선원으로 돌아가 부처님 말씀을 다시 공부하고 수행 기도 정진하겠다”고 밝힌 뒤 방송 활동을 중단했다.
  • 평생 결기로 정교하게… 영원한 문청, 국문학 전문 출판의 외길 걷다[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평생 결기로 정교하게… 영원한 문청, 국문학 전문 출판의 외길 걷다[유성호 교수가 찾은 문학의 순간]

    지난해 봄, 문예지 하나가 세상에 나왔다. 계간 ‘문학인’이다. 소명출판 박성모 대표는 전성시대를 지나 황혼을 맞고 있는 문예지 시장에 늦둥이로 뛰어들었다. 남다른 규모와 자본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터에, 오랜 역사를 가진 출판사들이 문예지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시점에, 반전에 가까운 낯선 등장을 수행한 것이다. “모든 이들이 정전이라고 합의할 수 있는 잡지는 사라지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이때 우리가 개입할 시점이 아닌가 하고 판단을 했어요. 최선을 다하면 늦은 나이지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대표는 자신이라도 굵고 오래 끌고 가서 그동안 눈에 보이지 않던 주요 필자를 발굴하고 살려야 되지 않겠느냐는 각오로 새로운 시작을 한 셈이다. 때로 기민하게 사회현상도 담아내겠지만 후일에도 다시 뒤적여 볼 수 있는 결코 가볍지 않은 잡지, 매호가 역사가 되는 잡지가 되도록 애쓰겠다고 한다.소명출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문학 전문 출판사다. 이쪽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소명에서 책을 내기를 소망하면서, 어렵기만 한 인문학의 성채를 함께 쌓아 가고 있다. “스스로 대표 출판인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출판 영역이 하도 넓어 특정 영역에 한정해서는 그렇게 불릴 수도 있고, 고맙게도 그렇게 인정해 준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상업성을 좇아도 될까 말까 한데 가장 장사가 안 된다는 학술출판에 이렇게 괜찮은 편집을 해도 되는 거야? 사람들은 이러한 질문 형태의 격려를 소명출판에 아끼지 않을 것이다. 학술출판이니까 편집 디테일이 허술하고 적당히 기일에 맞춰 끝내도 된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그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학술출판이기 때문에 더 정확하고 미학적으로 공들여야 한다는 에디터로서의 그의 신념은 20여년 동안 완강하게 지속돼 왔다. 박 대표는 그런 정예화 과정을 실천해 온 세월을 자산으로 삼고 있는 몇 안 되는 학술전문 출판사의 발행인인 셈이다. “흘러 흘러 바닷물이 되려는 냇가에 고목 한 그루쯤 있어야 하는데 냇물은 그저 흐르기 바쁜 시절인가 봅니다. 소프트한 대중서도 기초학문이 무르익어야 탄생하는 건데, 기초를 무시하고 계란이 계란을 낳는 출판 풍토가 많이 아쉽기만 합니다.” 그가 힘주어 말하는 인문학의 기초가 우리 시대의 과제를 은유하는 듯해 묵직한 연대감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기초 무시, 계란이 계란 낳는 풍토 개탄 물론 박 대표가 처음부터 출판인을 소망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도 출판보다는 문학을 꿈꾸었던 어린 시절이 있지 않았을까? 그는 월남민인 아버지를 따라 춘천, 양구, 철원, 인제 등 강원 북부를 떠돌다가 여섯 살에 원주에 정착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거의 독고였죠. 학교 주변을 흔들어 대던 소위 짱들은 스스로 가난했으면서도 가난한 애들을 더 괴롭혔어요. 제 안의 가난도 그네들과 다투어야 했습니다.” 그중 대장이었던 녀석과 서로 눈빛으로 기싸움을 하다 ‘소년 박성모’는 깜빡하는 사이에 ‘선빵’을 맞아 입술이 뚫어진 적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안과에 업고 가서 여섯 바늘을 꿰맸다. “지금 같으면 어떻게 안과에서 꿰매느냐 난리가 났을 거예요. 아직도 입술에 딱딱하게 굳은 상처 자국이 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자잘한 일이 있었지만, 어쨌든 대장과 맞짱 뜬 일은 엄청난 사건으로 원주 전역 초중고에 퍼졌고,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말죽거리잔혹사’나 ‘우상의 눈물’ 주인공이 따로 없다. “그런 와중에 원주의 고등학교 연합으로 ‘아사달’이라는 시 동호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약간의 필력이 소문 나긴 했죠. 원주문화원에서 연합시화전도 열었고, 여고생들로부터 편지도 오고, 학교로 편지들이 오는 바람에 수학 선생님께 들켜 크게 혼났죠.” 그 역시 필력 있는 문청(文靑) 누구나 겪는 연애편지 대필, 백일장 수상의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었다. “대학 갈 생각은 없었어요. 우선 가난했고 공부는 딴전이었고요. 수업 시간에 교과서 밑에 숨겨서 읽던 책으로 지금도 잊히지 않는 것이 정음사판 서정주의 ‘시문학원론’이었어요. 간간이 김춘수 ‘시론’도 봤지요.” 그럼 그렇지. 그 역시 대가들의 시론을 통해 습작의 밑그림을 그리던 조숙한 독서열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원주 유명 헌책방 서너 군데를 단골 마트로 삼아 순례를 시작했다. 그때 문예반 선생님께서 그를 많이 아껴 주신 모양이다. “고3 진달래꽃 필 때였는데, 대학은 다른 세계가 있으니 좋은 대학이 아니라도 가보라는 거예요. 정 아니면 시를 쓰는 일은 꼭 대학이 아니어도 된다시며 당시 소련의 어떤 시인을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 잘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어렴풋이 당시 음색을 따라가 보면 마야콥스키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잔혹사와 서정주와 김춘수, 마야콥스키가 혼재했던 가난한 시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청년 박성모’는 대학에 들어갔다. 휴학과 입대와 제대를 하고 나서 그가 마주친 과제는 공부가 아니라 돈 버는 일이었다. 당시 단기간에 목돈 버는 방법은 원양어선 타는 것과 광부 생활이었다. 둘 다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단기간에 졸업 때까지 학비를 벌 수 있었다. 원양어선은 멀미가 걸려서 원주역 맞은편 구인 광고업체를 찾아가 서류를 작성하고 태백으로 갔다.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2개월간 훈련을 받고 광산에 배치됐다. “고한에 있는 성동광업소에 차출돼 일했죠. 희멀건 얼굴로 광업소에 왔으니 남들보다 신원조회를 더 까다롭게 해요. 다이너마이트를 다루는 일이기도 했고 지하로 들어온 운동권들이 많아 더 그랬겠지요.”●근대 표상하는 대표 도록 장정으로 내 월급 타면 신간 시집을 사 읽었다. 사북에 있는 서점에서 산 시집들을 지금도 제법 여러 권 가지고 있다. 주로 신문 신간 면에 소개된 책들을 주문해서 보았다. “당시 문화면들은 읽을거리가 많았죠. 3학년 복학해서야 현실 사회에 눈을 떴어요. 대학 입학하고 3학년이 되기까지 나름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죠. 그때 읽은 책들이 지금 제 자산의 팔할이라 봐도 무방합니다.” 복학 후에 그는 스승인 비평가 구중서 선생을 만난다. “처음엔 꽤나 어려웠어요. 말수가 적으신 데다 느리시고, 넘어질 듯 휘청휘청 걸으시는 모습은 어딘가 함부로 다가가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다 선생님 강의를 들으면서 매우 흥미로웠죠. 성큼성큼 건너는 강의였지만 오히려 그게 핵심을 짚어 주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서정주를 넘어 임화와 이태준을 읽고 있었다. ‘문학인’에 있는 ‘정전의 재발견’ 코너에 들어가는 문인 이름은 그때 구중서 선생께서 다 말씀해 주신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는 습작과 신춘문예 병에 빠져 있었다. 10년은 그랬고 능력이 안 됨을 스스로 인정하는 데 5년이 걸렸다. 불면증이 깊어 유체이탈 같은 고통, 이명 등의 증상을 경험하면서 더는 그런 고통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졌다. 조금씩 시로부터 멀어지니 평안이 찾아왔다. “지금도 가끔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본선에 딱 한 번 이름이 거론된 적이 있었지만 그 이상은 능력이 안 되었죠. 그러고 보면 시인이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이 모든 고통과 좌절의 경험이 지금 그의 자존감을 이루는 파고(波高) 높은 바탕이 됐으리라.박 대표는 출판을 여기(餘技)로 여기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는다. 출판은 매우 정교하고 전문적인 영역이고 평생을 거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라 ‘결기’로 해 가는 출판문화의 최전선 작업이 ‘출판인 박성모’의 철학이자 미래로 훤칠하게 다가온다. 지금 우리는 타자를 읽을 생각은 없고 자기만 노출하려는 욕망이 훨씬 강한 시대를 살고 있다. 그 결과 깊이를 잃은 자기 노출의 문학이 부유하는 현상을 자주 목도하곤 한다. “글이 신변잡기에 그쳐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을 많이 보게 됩니다. 시인이 산문집을 내고, 소설가가 출판사를 차리고, 지자체는 이들과 융복합 문화를 창출하는 역설의 시대가 아닌가 합니다. 컴퓨터 시대의 글쓰기는 댓글 문화의 연장인 토막글이 기워져 멋진 문장이 되고 하나의 책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봐야 합니다.” 원주의 가난했던 소년이 질풍노도의 청년 시절을 지나 비로소 꿈꾸는 문예지 발간과 출판문화 정예화를 응원하는 4월의 한나절이었다. 이태준은 한 수필에서 ‘책’만은 ‘冊’으로 쓰고 싶다고 했다. 그 ‘冊’이 ‘영원한 문청’ 박성모의 손길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나올 것을 기대한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사반세기 고집쟁이 출판 외길을 걸어왔고, 어려운 형편에도 임화문학예술상을 13회째 시행하고 있고, 근대를 표상하는 대표 도록(圖錄)들을 아름다운 장정으로 펴내고 있지 않은가. ‘문학인’으로서의 남다른 ‘소명’을 안고서 말이다. 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 [글로벌 In&Out] 다문화사회, ‘단군신화’ 등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다문화사회, ‘단군신화’ 등 역사 교육이 중요하다/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역사는 참 신기한 현상이다. 역사는 학문의 영역이고, 때로는 수많은 사상이나 이데올로기의 기둥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부는 역사를 낭만적으로 접근하고 정치적 이념이나 종교적 교리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활용하려고 한다. 나 같은 사람들은 교훈을 얻으려고 역사에 접근하고 현재를 이해하는 도구로 쓴다. 역사는 인류의 제일 큰 사회적 실험실이다. 그 실험실에서 얻은 결과를 감정이나 정체성, 신념에서 벗어나 분석하면 많은 가르침을 얻는다. 이렇게 긴 서론을 쓰는 이유는 역사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아서다. 한국 TV에 자주 출연한 한 외국인과 대화하다가 ‘단군신화’에서 멈추게 됐다. 그 외국인 친구가 단군신화의 내용을 모른다는 것을 알아챘다. 친구는 모른다고 시인했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한국어도 그렇게 잘하고, 한국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는데 어떻게 단군신화를 모를 수 있나 싶어서 물어봤다. “어학당 다닐 때도 안 배웠어? 나는 단군신화를 충남대 정치외교학과에서 배운 거 아니야. 난 어학당에서 배웠어. 4급 때는 가르치던데? 넌 6급 졸업한 거 아니었어?” “응, 4급이나 5급 때 그런 거 배운 적이 없어. 우리 교과서가 다른가 봐.” 이 친구가 진짜로 단군신화를 하나도 모른다는 것을 확인하고 난 후에 바로 설명했다. 일단은 단군신화를 요약했다. 환인과 환웅 이야기를 하고, 다음에 곰과 호랑이 이야기를 하면서 단군의 탄생을 서술하고, 아사달에서 건국됐다고 하는 고조선의 배경을 알려 줬다. 물론 그 친구의 질문은 멈추지 않았다. “이 이야기가 어디에 쓰여 있어?” “단군에 대한 언급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그리고 ‘동국통감 외기’ 같은 문서에 있는데, 단군신화가 제일 이쁘게 나온 대표적인 문서는 일연 스님이 집필한 삼국유사야.” 그다음 대화는 왜 일연 스님이 갑자기 삼국유사를 집필했는지로 넘어갔다. 왜냐하면 외국인 관점에서는 당시에 유력한 종교의 스님이 불교적 교리와 어긋난 이야기들을 가지고 책을 냈다는 것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그러다 보니까 대화의 주제가 몽골 제국의 한반도 침략 및 고려시대가 돼 버렸다. 몽골 지배하에서 지식인들이 종교보다는 민족적인 감정이 강해져서 삼국유사 같은 책이 나오게 됐다. 신기한 것은 삼국유사가 몽골 침략이 끝나고 나서 살짝 잊혀졌다가 조선시대 말에 다시 한번 크게 관심받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조선시대 말에는 주권이 다시 위협받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단군신화를 바탕으로 그 당시에 탄생한 신흥 종교 대종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홍익대학교, 단국대학교 그리고 경희대학교의 성립 배경을 이야기했다. 다음에 개천절이 국경일로 지정된 역사적 흐름을 말해 주니까 그 친구의 눈이 좀 커졌다. 단군신화 하나로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됐다는 그런 눈빛이었다. 물론 나는 단군신화에 속 이야기를 믿지는 않는다. 무슨 곰이 40일 동안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참았다고 여성으로 변신해서 한국 여성의 조상이 됐겠는가. 오히려 개인적으로 그 동굴에서 여성으로 변신한 동물은 곰이 아니라 호랑이였다고 생각한다. 나는 단군신화가 성경이나 불경 같은 신성한 종교적인 문서는 아니지만, 한국의 공동체를 하나의 국민으로 묶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만큼 한국과 인연을 맺은 외국인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론은 한국에서 살려고 결심한 외국인은 한국어만큼 한국인을 구성하는 정신적인 요소인 역사나 신화 등을 알아야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각 대학의 어학당이나 한국어 교육을 하는 장소들에서 언어 교육 속에 한국의 신화와 역사를 녹여서 교육해야 한다.
  • 저항시인 신동엽 50주기… 그림·낭독극으로 만난다

    저항시인 신동엽 50주기… 그림·낭독극으로 만난다

    ‘저항 시인’ 신동엽(1930~1969)의 50주기를 맞아 회화 작품, 입체낭독극 등 시인을 기리는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 신동엽기념사업회는 29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 서울 교보문고 광화문점 교보아트스페이스에서 ‘시인 신동엽 50주기 기념 시그림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연다. ‘진달래 산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등 대표 작품 33편을 강경구, 김선두, 박동진, 박영근, 장현주, 최영 등 6인의 중견 화가들이 38점의 그림으로 형상화했다. ‘껍데기는 가라’는 박영근 화가의 손에서 뜻밖에 서정적 유화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는 강경구 화가에 의해 캔버스에 아크릴을 더한 현대적 한국화로 재탄생했다. 1차 전시 이후에는 충남 부여 신동엽문학관(9월 25일~10월 30일), 서울 교보문고 합정점(11월 1일~2020년 1월 6일) 등에서 순회전시를 이어 갈 예정이다.다음달 6~7일에는 시인이 쓴 오페레타 ‘석가탑’이 51년 만에 입체낭독극(낭독극에 춤, 마임, 노래, 가야금 연주 등을 결합) 형식으로 무대에 오른다. 불국사 경내의 ‘석가탑’에 얽힌 전설을 바탕으로 석공 아사달의 예술에 매혹당한 수리공주와 공주를 사랑한 도미 장군, 남편을 기다리다 지친 아사녀의 슬픈 사연이 한데 어울린다. 서울 성북구 여행자극장에서 열리는 공연에서는 시인이 8년 동안 국어교사로 재직했던 명성여고(현 동국대부속여고) 학생들이 열연한다. 신동엽 대본, 백병동 작곡의 석가탑은 1968년 5월 서울 드라마센터에서 초연됐다. 그러나 이후 더이상 공연되지 않았고, 대본은 1980년 간행된 ‘신동엽전집(증보판)’에 처음 수록됐다. 신동엽학회가 신동엽문학관에 소장돼 있던 필경등사본을 새로 발견해 학술논문을 발표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홍석경의 문화읽기] 아스달 연대기, 동아시아 역사 판타지의 탄생

    [홍석경의 문화읽기] 아스달 연대기, 동아시아 역사 판타지의 탄생

    tvN과 넷플릭스가 동시에 방송하는 ‘아스달 연대기’가 조용한 혁신을 하고 있다. 시청률이나 화제성에서 예상보다 조용하지만, 한국 드라마가 OTT 플랫폼 시대를 새로운 전략으로 접근한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이 드라마는 청동기시대 동아시아 어디에선가 벌어지는 정치와 종교가 얽힌 권력의 탄생 이야기를 아시아대륙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신화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며 만들어진 역사 판타지다. ‘선덕여왕’과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 한국 드라마(한드) 최고 역사 드라마를 탄생시킨 작가들과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등 2010년대 최고의 한드를 만들어 낸 연출가가 팀을 이뤄 기록적인 제작비를 투여해 만드는 작품이다. 시즌제를 염두로 후일 테마파크화를 전제한 대규모 세트가 건설됐고, 아스달연맹에 속한 여러 종족의 과거사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앞으로 전개될 긴 이야기의 기본 포석이 복잡하고 촘촘히 던져지는 첫 시즌의 1부와 2부가 방송됐다. 김영현, 박상연 팀은 선덕여왕의 이야기를 고비사막으로 확장시켜 라틴어를 읽을 줄 아는 두 특별한 여인의 권력다툼과 정치철학의 이야기로 발전시킨 바 있으며, 한글 창제의 과정을 조선 정치철학의 두 계보가 갈등하는 서스펜스 사극으로 그려 낸 바 있다. 이 팀이 청동기시대 동아시아 신화시대를 무대로 권력의 탄생에 손을 댄다는 사실 자체가 한드 시청자의 호기심을 끌 만하다. 아스달을 시청하는 경험은 여러 가지로 한국 드라마를 세계 속에 위치시킨다. 제작사인 스튜디오드래건이 지역 기반 사업자가 어떻게 거대 플랫폼시대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것인지 고민한 결과이기에 드라마를 구성하는 여러 선택 사항들이 흥미로운 비평거리를 제공한다. 일단 이 드라마는 본방송보다 넷플릭스를 통해 보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다. 여러 신조어와 표현, 가상언어의 뜻을 자막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고, 이것은 넷플릭스를 통해 픽션을 소비하는 시청자들에게는 매우 익숙한 관람 인터페이스다. 원령 공주를 환기하는 흰 늑대 할머니, 물과 불, 새, 방울의 제의 등 동아시아의 여러 대중문화물을 참조하기에 시청자의 적극적인 확장해석을 자극한다. 이 드라마의 여러 요소가 최근에 종료한 세계적 히트작 ‘왕좌의 게임’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서구의 ‘게임’적 인터페이스와 동아시아 드라마의 연속극적 내러티브 전략과 인물에 대한 접근이 대조되는 이 드라마의 가치를 저하시킨다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청동기시대라니. 어떤 현실적 허구적 참조 대상이 없는 이 시대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전개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시청자들을 두 장르의 경계에서 반응하도록 만든다. 용과 죽은 자의 부대가 등장해 판타지 장르임을 천명하는 ‘왕좌의 게임’과 달리 아스달은 동아시아의 고대사와 신화, 종교 등 훨씬 사실적 역사를 환기하면서 허구적으로 가공한다. 그 결과 허구를 이해하기 위해 사실적 정보 추구를 자극하는 이중의 시청을 독려한다. 사람에게 전멸당한 뇌안탈은 호모사피엔스와의 경쟁에서 사라진 네안데르탈을 상기시키지만 외모는 서구적 모습을 지녔고, 지구와 아시아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아스’의 수도 아스달은 누가 봐도 고조선의 수도 아사달을 연상시키는 식이다. 이러한 기본 장치들의 혼합은 이 드라마의 시대착오적이고 판타지 장르적 설정에도 시청자가 디테일의 현실정합성을 추구하도록 만든다. 고대 지중해나 중앙아시아를 상기하는 일부 인물의 복장을 이 종족의 근원과 관계 있을 것으로 이해하고, 그 이야기가 펼쳐질 3부 또는 다음 시즌으로 독자의 상상을 넓혀 가게 만든다. ‘아스달 연대기’는 현재 제작 과정이나 비평에서 시원한 평점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북미의 글로벌 판타지 시리즈에 비해 한국 드라마가 지닌 상대적인 우월성을 유지한다면, 다시 말해서 세계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낸 ‘왕좌의 게임’의 엔딩처럼 이야기의 그럴듯한 결말을 만드는 데 취약한 북미 프로덕션과 다르게 미스터리의 끝까지 쫓아가 이야기의 실타래를 꼼꼼하고 의미 있게 결말 짓는 한드의 힘을 보여 준다면 당장의 시청률 여부와 상관없이 장기적이고 널리 사랑받는 세계 속 한드 역사 판타지로서 큰 첫발을 떼게 될 것이다.
  •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불국사의 미학

    [최세일의 건축이야기] 불국사의 미학

    신라의 불교는 호국불교로 진흥왕 때부터 대형 사찰들이 건립된다. 불국사는 그 선상에서 지어진 사찰이다.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은 아버지를 기리며 감은사를 짓고 만파식적을 얻었다. 이후 문무왕의 증손인 경덕왕 때 불국사와 석굴암을 짓고, 석굴암의 방향이 문무왕릉을 향해 감은사와 같이 문무왕을 기리고자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불국사는 이름 그대로 불국을 재현한 절이다. 현세의 부처인 석가모니와 과거의 부처님이자 극락세계의 영주인 아미타불,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따로 모셨고, 중생을 구원하는 관음보살 역시 따로 모셨다. 네 개의 영역은 크기는 물론 마당의 높이가 다른 완전히 독립된 영역이다. 석가탑 앞에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다보탑을 모셨으니 부처님만 네 분을 모신 절이다. 이 중 중심은 현세의 부처를 모신 대웅전 영역이다. 청운교, 백운교 계단을 올라 자하문을 지나면 여기부터는 불국이다. 계단을 교(橋)라 한 것은 부처의 나라로 들어가는 다리 역할을 한다 해서 그렇게 부른다. 또 범영루 우측의 수로에서는 물이 떨어지는데, 밑의 연못에 떨어졌을 것이며, 청운교 아치 밑에는 이 물이 흐르거나 고여 있었으니 다리 교를 쓰는 것이 맞다. 자하는 자색 안개로 수구에서 물이 떨어지며 자색 물안개가 피어났다 한다. 자하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자줏빛 금색 안개를 말한다. 자하문 안쪽에 해와 달이 함께 그려졌는데 자하문 안의 불국이 해와 달 위의 하늘에 있다는 의미다. 백제 석공 아사달을 청해 석가탑 등을 건조하는데, 몇 해가 가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 아사녀가 불국사로 찾아간다. 아녀자가 불사를 조성하는 곳에 들어가면 아니 된다 하여 무영지에서 기도하며 기다리라 한다. 탑이 완성되면 그 그림자가 무영지에 비치니 그때 아사달을 만날 것이라 했다. 그러나 끝내 그림자는 비추지 아니하고, 아사녀는 무영지에 몸을 던졌다. 해와 달 위에 떠 있는 불국이니 어찌 그림자가 있을 수 있겠나? 불국사의 경내가 불국임을 이야기하는 설화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분별이 없다는 것이다. 분별은 실체와 상관없이 개념으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선과 악, 깨끗하고 더러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의 구별은 원래 하나인 세상을 인간이 나누는 것이다. 부처가 되면 이 분별이 없어지고 비로소 하나의 세상이 된다. 그림자가 없다는 이야기는 석가모니는 현세의 부처이기 때문에 분별하지 않고 분별이 없는 것을 상징적으로 그림자가 없는 것으로 표현한다. 아사녀는 결국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탑의 그림자가 생기길 기다린 것이다. 아름다운 전설이지만 자비의 부처님 전설에 희생된 아사녀의 이야기는 어쩌면 종교가 가진 한계를 보여 주는 서글픈 이야기다. 석가탑과 다보탑은 두 부처님의 모습을 재현했다. 다보여래는 동방보정세계의 교주다. 스스로 어느 곳이든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 나의 보탑이 솟아나와 그 설법을 증명하리라 했다. 석가모니 부처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 역시 보탑이 솟아 나왔다 하여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석가탑과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다보탑을 함께 조성한 것이다. 해체 복원이 원래의 상태대로 복원해야 하나 불국사나 석굴암 등은 그러지 못했다. 불국사의 석축을 보면 원형과 복원이 확연히 다른 것이 보인다. 원 석축은 크고 넓은 자연 석축 위에 그랭이질된 장대석을 얹어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보여 준다. 그랭이 공법으로 잘 맞춰진 석축은 지진을 버텨 낼 수 있는 힘이 됐다. 여러 전란에도 불국사의 석축 등이 버틸 수 있던 것도 이러한 우리만의 독특한 기술 때문이었다. 대웅전은 기하학적으로도 거의 완벽하다. 중심축에서 완전히 대칭이다. 이 완벽한 대칭은 다보탑과 석가탑의 형태에서 깨진다. 그 깨진 대칭은 양 끝의 범영루와 자경루에서 회복된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한 석가탑의 연장선에 있는 범영루는 누각을 받치는 석조의 화려한 주초부터 건물까지 화려함을 자랑하고 화려한 다보탑의 연장선에 있는 자경루는 꾸밈없이 간결하다. 양쪽이 간결함과 화려함을 나누고 그 무게감을 맞추어 대칭 속의 비대칭, 비대칭합의 대칭을 완벽하게 구현한 미적·기하학적인 우리의 대표 문화유산이다.
  • 세계문화유산 불국사가 품은 불교 이야기

    세계문화유산 불국사가 품은 불교 이야기

    2018년에 등재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7사찰에 앞서 24년 전에 이미 등재된 불국사와 석굴암을 먼저 찾았다. 신라의 불교는 호국불교로 진흥왕 때부터 대형 사찰들이 건립된다. 진흥왕 때 황룡사가 건립되고 선덕여왕 때 황룡사 9층 목탑과 분황사가 건립 되었다. 무열왕이 통일의 기반을 다지고 문무왕이 통일을 완성할 무렵 신라에는 원효와 의상이라는 걸출한 승려가 있었고 이중 의상은 당에서 화엄경을 공부하고 돌아와 통일 신라에 화엄경을 설파하고 제자들을 길러냈으며 이후 그의 제자들이 신라의 불교를 더 융성하게 한다.불국사는 그 선상에서 지어진 사찰이다. 문무왕의 아들인 신문왕은 아버지 문무왕을 기리며 감은사를 짓고 만파식적을 얻었다. 이후 문무왕의 증손인 경덕왕 때 불국사와 석굴암이 지어졌고 석굴암의 방향이 문무 왕릉을 향해 감은사와 같이 문무왕을 기리고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는 문무대왕의 유지대로 외세를 억누르기 위한 기원의 의미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불국사에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한다. 그 하나는 김대성에 대한 설화고 또 하나는 아사달과 아사녀에 관한 설화다. 김대성에 대한 전설은 불국사의 창건에 대한 이야기고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은 무영탑이라 부르는 석가탑에 대한 이야기다. 2대의 왕을 위해 왕명을 받들어 김대성이 지은 것이 효자로 이름난 재상 김대성이 지은 것으로 잘못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불국사는 이름 그대로 불국을 재현한 절이다. 현세의 부처인 석가모니와 과거의 부처이며 극락세계의 영주인 아미타불, 법신인 비로자나불을 모셨고 중생을 구원하는 관음보살 역시 따로 모셨다. 네 개의 영역은 크기는 물론 마당의 높이가 다른 완전히 독립된 영역이다.석가탑 앞에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다보탑을 모셨으니 부처님만 네 분을 모신 절이다. 이중 그 중심은 현세의 부처를 모신 대웅전 영역이다. 도솔천의 33천을 상징하는 청운교 백운교 33계단을 올라 자하문을 지나면 여기부터는 불국이다. 계단의 수에 대해서는 34단이라는 사람들도 있는데 첫 단을 지반과 같은 높이였다고 보면 33단이 된다. 다른 사찰의 경우라면 자하문은 불이문이 되었을 것이다. 계단을 교(橋)라 한 것은 부처의 나라로 들어가는 다리역할을 한다 해서 그렇게 부른다. 또 범영루 우측의 수구에서는 물이 떨어져 밑의 연못에 떨어졌을 것이며 청운교 아치밑에는 이 물이 흐르거나 고여 있었다면 다리교를 쓰는 것이 맞을 것이다.복원을 위해 발굴조사를 한 기록을 보면 지금의 불국사 앞 마당에도 연지의 터가 발견되었고 여기서 기와등이 발견되었다. 자하는 자색 안개를 뜻 하는데 수구에서 물이 떨어지며 물안개가 피어났는데 그 안개가 자색이었다고도 한다. 또 자하는 부처님의 몸에서 나오는 자주 빛 금색 안개를 말한다. 자하문의 안쪽에 해와 달이 함께 그려진 것은 자하문 안의 불국이 해와 달을 위의 하늘에 있다는 의미로 불국임을 다시 알려준다. 자하문에 평주와 고주를 연결하는 계량 또는 소 꼬리같이 생겨 우미량이라고 하는 부재를 하나는 위로 휘고 하나는 아래로 휜 부재를 사용한 것은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시간이 다르니 해가 뜨면 달이 지고 달이 뜨면 해가 지는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어 해와 달이 다 있는 불국을 표현하였다.백제의 석공 아사달을 청하여 석가탑을 비롯한 석조물을 건조 하였는데 몇 해가 가도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그의 아내 아사녀가 불국사로 찾아간다. 아녀자가 불사를 조성하는 곳에 들어가면 아니 된다 하여 그녀를 들이지 않고 무영지에서 가서 지성으로 기도를 하며 기다리라한다. 탑이 완성되면 그 그림자가 무영지에 비칠 것이니 그때가 되면 아사달을 만날 것이라 하였다. 지성으로 기도를 하며 기다렸으나 끝내 그림자는 비추지 아니하였다. 기다림에 지친 아사녀는 무영지에 몸을 던졌다 한다. 석가탑은 그림자가 없는 무영탑이다.해와 달 위에 떠있는 불국이니 어찌 그림자가 있을 수 있겠나? 불국사의 경내가 불국임을 이야기 하는 또 하나의 설화다. 그림자가 없다는 것은 분별이 없다는 것이다. 분별은 실체와 상관없이 개념으로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선과 악, 깨끗하고 더러운 것, 밝은 것과 어두운 것 같은 구별은 원래 하나인 세상을 인간이 둘로 나누는 것이다. 부처가 되면 이런 분별이 없어지고 비로써 하나의 세상에 있게 된다. 그림자가 없다는 이야기는 석가모니는 현세의 부처이기 때문에 분별을 하지 않고 분별이 없는 것을 상징적으로 그림자가 없는 것으로 표현한다. 그래서 석가탑은 애초에 그림자가 없는 탑이었다. 아사녀는 결국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 탑의 그림자가 생기길 기다린 것이다. 아름다운 전설이지만 자비의 부처님 전설에 희생된 아사녀의 이야기는 어쩌면 종교가 가진 한계를 보여주는 서글픈 이야기다.석가탑과 다보탑은 두 부처님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아미타불이 과거의 부처이며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라면 다보여래는 동방보정세계의 교주다. 몸 전체가 진신사리가 되어 보석처럼 빛나는 화려한 탑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스스로 어느 곳이든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 나의 보탑이 솟아나와 그 설법을 증명 하리라 하였다. 석가모니 부처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 역시 보탑이 솟아 나왔다 하여 석가모니를 상징하는 석가탑과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다보탑을 함께 조성한 것이다. 석가탑은 2단의 기단 아래 자연석의 기반이 있다. 석가모니가 앉아있던 바위를 상장한다. 남산 용장사지의 석탑이 바위 위에 앉은 모습이 연상된다. 석가탑의 해체 복원 시 사리함과 함께 무구정광 다라니경 목판 인쇄본이 나왔다. 이 목판 인쇄본은 최초의 목판 인쇄기록을 바꾸는 중요한 문화재로 천년이 넘은 한지의 우수성도 함께 입증되었다. 다보탑의 다섯 기둥으로 이루어진 기단부의 안쪽에 있었을 것이라 예상한 사리장엄구와 이불 병좌상이 없는 것은 일제 때 해체 복원되며 사라진 것이라 추측한다. 이불 병좌상은 다보여래가 자신의 보탑 안에 자리의 반을 내어주어 석가모니 부처와 다보여래가 함께 나란히 앉은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해체복원이 원래의 상태대로 복원해야 하는 것이나 불국사나 석굴암을 비롯한 여러 문화재가 그렇지 못하였다. 불국사의 석축을 보면 원형의 석축과 복원된 석축이 확연히 다른 것이 보인다. 원래의 석축은 크고 넓은 자연석위에 그랭이질 된 장대석을 얹어 자연과 인고의 조화를 보여주는 한편 그랭이 공법으로 잘 맞춰진 석축은 지진을 버텨낼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여러 전란에도 불구하고 불국사의 석축 등이 버틸 수 있던 것도 이러한 우리만의 독특한 기술 때문이었다.불국사의 대웅전의 영역은 기하학적으로도 거의 완벽하다. 청운교 백운교 자하문 대웅전 무설전은 정확히 중심이 일치하는 직선상에 놓여 있으며 석가탑과 다보탑, 영역을 구획하는 회랑은 그 중심축에서 완전히 대칭이다. 또 석가탑과 다보탑의 중심거리의 반을 기준 척으로 계산하면 대웅전 영역의 가로는 기준척의 네 배고 길이는 다섯 배가 된다. 또 석가탑과 다보탑의 하부 기단너비는 같으며 대웅전의 폭은 이 기단 너비의 세배가 된다. 또 대웅전 영역의 전면 두 꼭지 점과 대웅전 뒷벽의 중심을 연결하면 정삼각형이 된다. 기준척도를 가지고 그 비율로 만들어낸 정확한 규칙이 보인다. 이 완벽한 대칭은 다보탑과 석가탑의 형태에서 깨진다. 백제 미륵사의 경우 같은 쌍탑 이지만 두 탑의 모양이 같다. 이에 비해 불국사는 그 대칭의 경직성이 두 탑에서 깨진다. 그 깨진 대칭은 영역 전면의 양 끝에 범영루와 자경루에서 회복된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한 석가탑의 연장선에 있는 범영루는 누각을 받이는 석조의 화려한 주초부터 건물까지 화려함을 자랑하고 화려한 다보탑의 연장선에 있는 자경루는 꾸밈없이 간결하다. 양쪽이 간결함과 화려함을 나눠서 그 무게감을 맞추어 대칭속의 비대칭, 비대칭 합의 대칭을 완벽하게 구현 하였다.아미타 부처가 있는 영역은 그 지반의 높이와 계단의 단수가 낮다. 극락왕생을 빌어준다는 그 극락이 이곳이니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계단을 오르내렸을까? 연화교와 칠보교를 통해 들어가는데 이는 극락정토가 연화와 칠보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이를 의미한다. 서방 극락정토의 부처님을 만나러 올라가는 연화교의 계단석 바닥에는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 한 장의 꽃잎으로 볼 수도 있고 한 송이의 꽃으로 볼 수도 있다. 꽃잎이라 보면 꽃잎을 즈려밟고 오르는 것이고 꽃송이라면 피지 않은 봉우리를 보며 올라가서 부처님을 만나고 내려올 땐 부처의 법력으로 활짝 핀 연꽃을 보며 내려오는 형상이 된다. 나는 후자에 무게를 두고 싶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청운교와 백운교의 축소판이고 조금 간결해진다. 안양은 극락의 다른 이름이다. 아미타불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의 이름은 안양문 이고 아미타불을 모신 불전은 극락전이다. 아미타불은 화엄종에서 본존불로 모시는 극락정토의 부처이며 중생에게 자비를 베푸는 부처님으로 우리 역사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부처님이다. 불국사는 경덕왕 때 지어졌다고 하나 무설전은 문무왕 때 지어졌고 대규모 사찰이 아닌 작은 사찰로는 경덕왕 이전에 존재 했으며 경덕왕 때 대규모로 중수되어 큰 사찰이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80여종 2000여 칸의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경덕왕은 불국사 외에 석굴암을 조성하였고 불교유적의 보고인 남산과 월성의 남쪽 끝을 연결하는 월정교를 축조하는 등 신라의 대표적 유적들을 조성한 것으로 보아 불심과 효심이 깊고 예술적 감각도 뛰어난 성군이 아니었을까 싶다. 임진왜란 때 석조물과 일부 건물만 남기고 전소 되었고 중수와 방치를 거쳐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문화공보부 시절 지금의 모습으로 보수 복원 되었다.복원된 현재의 불국사가 원형에 비해 미흡하다는 지적들이 많음에도 지금의 모습으로도 우리의 대표적 유적중 하나로 손색이 없다. 불국사 앞의 마당과 연못을 비롯 원형이 복원된 모습을 상상해본다. 경주에 가면 작년 가을에 복원된 월정교도 꼭 들러보시길 권한다.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가 생각나는, 누각으로 덮인 누교로는 유일한 다리다. 원효대사가 요석궁에 머무를 시간을 벌기위해 일부러 물에 빠져서 옷을 젖게 하여 요석공주와 설총을 만들었다는 낭만적인 설화가 깃든 곳이니 사랑하는 이와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최세일 한건축 대표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나라꽃 무궁화를 그린다는 것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나라꽃 무궁화를 그린다는 것

    무덥고 습한 기후가 지속될 때면 나는 하루가 다르게 생장하는 식물들을 관찰하느라 여느 때보다 바빠진다. 그러다 보면 매일 일로써 그려야 하는 식물들을 관찰하는 데에 시간을 쏟느라 정작 내가 평소 개인적으로 그리고자 했었던 식물들의 생장 과정을 놓치게 되는 일이 많은데, 그렇게 자꾸만 시기를 놓쳐 다음해를 기약하다 수년이 지나버리게 되는 식물들도 많다. 그중 하나가 무궁화다.내가 다니던 수목원에는 커다란 무궁화 정원이 있었다. 수목원의 중심, 사람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길목에 무궁화 정원이 있는 건 이들이 우리나라 국화라는 이유에서였다. 한여름 무더위에 사람들이 산책조차 마다할 시기, 정원엔 무궁화 꽃이 가득 핀다. 그 꽃은 희거나 붉거나 푸르렀고, 꽃잎이 겹꽃으로 화려하거나 홑꽃으로 단아하기도 했다. 이들은 나무마다 모두 각기 다른 색과 형태의 꽃을 피웠다. 그 다양한 색에 감탄하며 이름표를 들여다보면 ‘선녀’, ‘아사달’, ‘첫사랑’과 같은 우리말 이름이 쓰여 있었다. 무궁화를 그리고자 하는 마음이 든 건 이들을 보고 난 후부터다. 무궁화는 우리나라의 국화이지만 우리나라의 자생식물은 아니다. 중국 원산의 식물이다. 물론 수백년 전 중국에서 건너와 우리나라에 심어지기 시작했지만, 그조차도 일제시대에 거의 모두 베어져 버렸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오게 된 무궁화는 오래 꽃을 피우는 특성이 우리나라 사람의 끈기와 닮았고, 흰 꽃이 백의민족을 상징하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 국화가 되었다.물론 그 나라에 자생하지 않는 식물이 국화인 경우는 많다. 네덜란드의 국화인 튤립은 터키 원산이며, 프랑스의 국화 장미는 서아시아 원산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무궁화와 이들 국화의 차이점은, 각국의 국화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궁화를 널리 애용하거나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연구자들은 국화인 무궁화의 보급을 위해 그들의 효용성을 연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잘 생육하거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색과 형태를 띠는 무궁화를 육성해 왔다. 그렇게 육성된 무궁화만 200여종이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가로수나 공공기관 혹은 공원, 도시 어딘가에서 자라고 있는 이 무궁화가 그만큼 다양하게 존재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는 늘 새로운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가장 사랑받는 식물은 늘 우리가 기존에 보지 못했던, 특이하고 신기한 형태의 외국 식물이다. 그에 비해 무궁화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뻔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수목원의 무궁화 정원에서 보았던 그 꽃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무궁화의 형태와 성질을 넘어서는 것들이었다. ‘선녀’는 꽃이 새하얗지만 꽃잎이 빛을 따라 은은한 연보랏빛을 띠고, 아사달은 분홍색 물감을 묻힌 붓이 스친 듯 꽃잎 부분 부분에 분홍색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들여다보면 볼수록 다양하고 아름다운 형태였다. 늘 생각했다. 이런 무궁화의 존재를 누군가 그림으로 기록해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이 기록은 기록의 의미를 넘어 사람들에게 무궁화의 다양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매개가 되어 줄 것이다. 네덜란드는 튤립 버블이라 불리는 황금시대가 지나고 경제가 붕괴되면서 튤립 문화는 잠식될 뻔했다. 그러나 곧 국내가 아닌 주변 국가에 눈을 돌려 세계에 튤립을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튤립 문화는 살아난다. 네덜란드가 외국에 튤립을 수출하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식물세밀화가들을 모아 네덜란드에서 육성하고 재배한 튤립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그렇게 기록된 튤립 세밀화로 인쇄물을 만들어 주변 국가에 네덜란드 튤립을 홍보하고 수출하여 지금까지 튤립 문화가 지속될 수 있었다. 여전히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튤립 세밀화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그때의 그 그림은 현재 중요한 튤립 연구 데이터로 이용된다. 언젠가 일본 진다이식물원의 무궁화 정원에 간 적이 있다. 정원 입구에 무궁화에 대한 설명이 쓰인 표지판이 있었는데, 그 표지판엔 무궁화 연구를 이토록 많이 하는 우리나라는 쏙 빠진 채 일본과 중국 이야기만 쓰여 있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나라 무궁화를 그리고자 하는 마음은 더해진다. 어제는 무궁화를 그리려 수목원의 무궁화 정원을 다녀왔다. 조생종인 몇몇은 이미 만개했고 대부분은 봉오리를 맺은 채 꽃이 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는 두어 종의 무궁화를 그릴 생각이다. 이렇게 매년 꾸준히 조금씩 그리다 보면 언젠가 우리나라의 무궁화 컬렉션을 완성할 날이 오지 않을까.
  • 불국사 석가탑 원형 복원… 되살아난 ‘신라의 미’

    불국사 석가탑 원형 복원… 되살아난 ‘신라의 미’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국보 제21호)이 다음달 3년 4개월간의 전면 해체·보수 작업을 마무리짓고 일반에 공개된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4일 불국사 석가탑 보수 현장에서 보수 추진 경과 설명회를 열고 3층 옥개석(屋蓋石·지붕처럼 덮은 돌)을 설치했다. 연구소는 이달 안에 상륜부까지 조립을 완료하고 12월 중 가설덧집을 철거한 뒤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석가탑은 742년(경덕왕 원년) 불국사 창건 때 조성됐다. 백제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사랑의 전설이 담겨 있는 석가탑은 간결하면서 비례와 균형이 완벽해 통일신라 조형예술의 백미로 꼽힌다. 2010년 12월 정기 안전점검에서 상층 기단 갑석이 깨져 있는 게 발견됐다. 길이 1320㎜, 폭 5㎜ 정도의 균열로, 기단 내부의 적심(積心·20여t에 이르는 탑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채운 흙더미)이 비바람 등으로 유실된 게 원인이었다. 곧장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보수정비사업단이 꾸려졌고 2012년 9월 전면 해체 보수 작업에 들어갔다. 해체한 석가탑은 가설덧집에 보관하면서 지의류·균류, 철산화물, 염류 등 탑 표면 오염물 세척 작업을 했다. 화학약품을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 스틱으로 긁어내거나 스팀을 분사해 씻어냈다. 부식된 철제 은장은 열팽창과 열전도율이 낮고 내부식성과 연성이 뛰어난 티타늄 은장으로 대체했다. 갈라지거나 떨어져 나간 부분은 티타늄 핀 3~5개를 박아 고정시켜 붙이거나 에폭시수지로 틈새를 메웠다. 김덕문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축문화재연구실장은 “이번 해체 수리의 특징은 원형 보존과 역사적 진정성 확보, 과학 기술에 근거한 구조 보강과 보존 처리, 자료 제작과 기술 보급”이라면서 “과거와 현재 기술을 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석가탑은 1966년 도굴 미수 사건에 따른 후속 조치로 부분 해체·보수 작업이 이뤄졌다. 해체 당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해 사리장엄구(사리함과 사리병을 비롯해 사리를 봉안하는 일체의 장치), 사리를 담은 금동제외합과 은제내합, 중수문서 등 유물 45건 88점이 수습됐다. 석가탑은 고려 현종 15년(1024) 해체 수리, 정종 2년(1036)과 4년(1038) 지진 피해 보수, 조선 선조 20년(1596) 우레로 탑 꼭대기의 뾰족한 부분인 상륜부 파손(이때 파손된 상륜부는 1972년 복원)에 따른 보수 등 여러 차례 보수를 한 적이 있지만 석탑 기단까지 전부 들어냈다 다시 세우는 전면 해체는 창건 이래 처음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설 황금연휴, 100배 즐기기

    설 황금연휴, 100배 즐기기

    설 연휴 기간 테마파크와 주요 리조트들이 다양한 즐길 거리를 마련했다. 가족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신나는 공연도 선보인다. ‘삼대(三代) 가족 할인’ 등 할인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준비했다. 아울러 명절 피로를 풀기 좋은 워터파크 등에서도 여러 이벤트를 준비했으니 꼼꼼하게 살피고 가는 게 좋겠다. 방콕이 지겨운 우리 아이를 위해… ■테마파크 에버랜드(①)는 오는 18~22일 설날 민속 한마당을 연다. 카니발광장에서 민속놀이 체험 마당을 진행하고 민속용품을 전시한다. 18일부터 21일까지 동물원 동물 타기 지역에서 서예 명인이 수묵화 양 그리기 시범을 보인다. 추첨을 통해 양 그림도 선물한다. 가훈 쓰기, 사군자 그리기 체험도 진행한다. 실내 공연장 그랜드스테이지에서는 18, 19일 초대형 북과 불붙인 북채를 이용한 전통 대북 공연 ‘화고’(火鼓)를 진행한다. 20, 21일에는 사물놀이, 소고놀이, 남사당놀이 등 우리의 전통 국악이 비보이 같은 현대적인 댄스와 결합한 신명나는 퓨전 국악 공연을 한다. 14~22일 삼대 가족이 함께 방문할 경우 입장료를 정상가 대비 약 35% 할인해 준다. 롯데월드 어드벤처(②)는 18~22일 100여명의 연기자와 관객이 함께 참여하는 ‘까치까치 설날’ 공연을 연다. 사물놀이와 상모돌리기, 부채춤 등을 선보이고 행운의 박 터뜨리기도 벌인다. ‘시집가는 날’ 공연도 있다. 길이 6m, 높이 4m의 초대형 가마가 동원돼 볼거리를 제공한다. 19~22일 오후 4시 30분에는 여성 농악대 길놀이 공연, 22일 오후 3시에는 ‘부리푸리 무용단’ 초청 공연을 한다. 19일 오후 6시에는 줄타기 명인 권원태씨의 민속 줄타기를 선보인다. 한복을 입고 방문하면 동반 3인까지 자유이용권을 50% 할인해 준다. 연휴 기간 중 서울 및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 방문한 사람에게는 동반 3인까지 최대 40%가량 할인된다. 서울랜드(③)는 18~22일 설날 축제 한마당 행사를 진행한다. 20일 세계의 광장에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4호인 ‘정조대왕 과천무동답교놀이’를 공연한다. 사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비통하게 여긴 조선 22대 정조대왕을 위로하기 위해 백성들이 선보였던 민속놀이다. 다양한 가족 참여 행사와 소원 풍선 날리기, 오색 한지 체험 등도 진행한다. 양띠 고객은 3월 31일까지 자유이용권을 50% 할인받을 수 있다. 신분증을 지참하면 동반 3인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외국인은 3월 1일까지 약 65% 할인된 1만 3000원에 자유이용권을 살 수 있다. 동반 3인까지 동일하게 할인받을 수 있다. 자유이용권으로 눈썰매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베어트리파크(세종시)는 설 연휴 기간 유료 관람시설인 만경비원을 무료로 개방하고 허브차, 유자차, 자몽차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 18~20일 매일 선착순 50명에게 선물 교환권이 포함된 행운의 복주머니를 제공한다. 명절 스트레스에 지친 엄마를 위해… ■아쿠아리움&워터파크 아쿠아플라넷(④·일산·여수·제주)과 63스퀘어(⑤)는 양띠 할인과 럭키백 이벤트를 공동으로 진행한다. 4개 업장 모두 18~22일 양띠 고객에게 50%, 동반 3인까지 20% 할인해 준다. 또한 각 업장에 있는 기념품숍에서 아쿠아플라넷 캐릭터 인형, 담요, 머그컵, 종합관람권 1매(63스퀘어, 아쿠아플라넷 중 1곳 선택)로 구성된 설날 럭키백을 판매한다. 이 외에 업장별로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63씨월드는 대형 수조에서 다이버가 설빔을 입고 꼭두각시 춤을 추는 ‘새 옷 입고 덩실덩실’ 신규 공연을 선보인다. 원마운트(경기 고양)는 18~22일 ‘설맞이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쇼핑몰 일대에선 ‘스탬프 릴레이 이벤트’가 열린다. 제기차기 등 5개 미션을 완수하면 원마운트 테마파크 70% 할인권 또는 아이스링크 무료 입장권을 준다. 오후 2시엔 전통의상 퍼레이드와 탭댄스, 난타 등의 무대 공연이 열린다. H&M 등 6개 매장에서는 브랜드 세일도 한다. 워터파크와 스노우파크에서는 2월 내내 입장권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모든 양띠 고객과 동반 1인, 아이와 놀아주는 아빠와 초등생 이하 자녀 동반 입장 시 워터파크 종일권이 1만 6000원이다. 롯데 워터파크(⑥·경남 김해)는 명절 연휴 동안 애쓴 주부들을 위한 ‘설맞이, 아내를 부탁해!’ 이벤트를 준비했다. 18~28일 30세 이상 여성은 종일권을 1만 8000원에 살 수 있다. 파크 내 다양한 물놀이 시설과 초대형 온천 사우나, 황토방, 자수정방 등 총 8개 아이템 방을 갖춘 찜질방 ‘티키 아일랜드 온천 스파’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통합 입장권이다. ‘귀성객 특별 우대’도 진행한다. 13~22일 고속버스, 기차, 항공, 여객선 및 고속도로 영수증을 소지한 고객은 동반 3인까지 입장권을 45% 할인받는다. 리솜스파캐슬(⑦·충남 예산)은 18~20일 생일을 맞은 고객에게 천천향 입장권을 할인해 1만원에 판매한다. 명절을 맞아 한복을 입고 천천향에 입장하는 고객은 50% 할인받는다. 외국인도 입장료가 40% 할인된다. 신분증과 외국인등록증을 지참해야 한다. 리솜오션캐슬(충남 태안)은 19일 민속놀이 체험 이벤트를 펼친다. 아쿠아월드 무료 이용권 등의 상품과 롤케이크를 제공한다. 코엑스아쿠아리움은 설 연휴를 맞아 ‘투란도트, 정어리 숲속으로’ 시즌Ⅱ 앵콜 공연을 3월 1일까지 한다. 파라다이스 스파 도고(⑧·충남 아산)는 17~22일 매일 밤 11시까지 야간 스파를 운영한다. 2월 내내 졸업생들은 반값, 13~23일 가족 중 양띠가 1명 있으면 4명까지 반값으로 할인받을 수 있다. 장거리 운전에 피곤한 아빠를 위해… ■리조트 대명리조트(⑨)는 변산에서 18~20일 가훈, 덕담 써 주기를 무료로 진행한다. 프런트에서는 입실 고객을 대상으로 송편을 나눠 줄 예정이다. 소노펠리체는 19일 설 당일에 딱지왕 선발대회와 가족 노래자랑을 진행한다. 딱지왕 선발대회는 선착순 8팀, 가족 노래자랑은 선착순 10팀만 접수받는다. 우승팀, 참가팀에는 풍성한 상품을 준다. 대명리조트 제주는 식음료 무료권 및 할인권이 들어 있는 ‘복주머니를 잡아라’ 이벤트를 진행한다. 로비에서 한복을 차려입은 직원이 고객들에게 복주머니를 선물한다. 대명리조트 양평, 거제, 델피노 호텔&리조트, 엠블호텔 여수 등 각 사업장에서 다양한 민속놀이 체험존을 운영한다. 한화리조트는 15~17일 운용되는 ‘설렘 패키지’를 내놨다. 9만 9000원에 객실+조식 또는 부대 업장 무료로 구성된 알뜰한 패키지다. 대천 파로스는 19~21일 오후 8시부터 레이저 마술과 샌드애니메이션, 중국 전통 변검 등 다채로운 공연을 무료로 진행한다. 19일 오전 10시부터는 온 가족을 대상으로 전통놀이 체험 시간을 갖는다. 참가 성적에 따라 머드종합세트, 대천김 등 푸짐한 상품도 준다. 아울러 대천 트릭아트 ‘박물관은 살아있다’와 사우나를 묶어 45% 할인된 9900원에 한정 판매한다. 한화리조트 경주는 18~20일 한복 착용자와 동반 1인에 한해 스프링돔과 사우나 50%, 아사달 레스토랑은 10% 할인해 준다. 서브원 곤지암리조트(10)는 19~21일 ‘곤지암 설맞이 복 잔치’ 행사를 마련했다. 그랜드볼룸에서 투호, 굴렁쇠 굴리기, 버나돌리기 등의 민속놀이를 즐기는 ‘전통놀이 한마당’과 대형 윷놀이 대전, 아빠 팔씨름 대회 등의 풍성한 ‘가족 대항전’이 펼쳐진다. 매일 저녁 특별 공연도 준비됐다. 19일에는 아빠, 엄마와 퀴즈, 게임을 즐기는 ‘더 즐거운 가족 레크리에이션’과 ‘가족 노래자랑’이 열린다. 20일에는 ‘어린이 뮤지컬’이, 21일에는 마술사와 함께 직접 마술을 배울 수 있는 ‘더 놀라운 매직쇼’가 열린다. 행사 기간 동안 리조트 곳곳의 미션 장소에서 인증 사진을 찍은 뒤 행사장 안내 데스크에 제출하면 매일 선착순 50명에게 핸드 케어 마사지를 제공한다. 휘닉스파크(11)는 합동 차례 행사를 19일 설날 당일에 무료로 진행한다. 제주 휘닉스아일랜드에서는 18, 19일 리조트 내 식음업장 10만원 이상 이용 고객들에게 모바일 문화상품권 1만원권을 준다. 전통 민속놀이 한마당 행사도 마련했다. 설 연휴에도 스키를 즐기려는 이들을 위해 28일까지 다양한 가격대의 패키지 상품을 운영한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름의 이름으로 Let’s 팅Rafting ·핑Camping ·킹Trekking

    여름의 이름으로 Let’s 팅Rafting ·핑Camping ·킹Trekking

    여름은, 견디자면 한없이 길고, 만끽하자면 너무나 짧은 계절이다. 아드레날린 펑펑 샘솟는 여름 레포츠! 그러나 하드코어는 좀 곤란하다면 가볍게 팅!핑!킹! 여름날 웃음 팡팡 튀는 산하로 가자.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봉화군청 www.bonghwa.go.kr, 영주시청 yeongju.go.kr, 모두캠핑 www.modecamping.com ●Rafting 낙동강 상류 이나리 강변 영차, 으싸 물 위의 전력질주 스키 한번 못 타고 겨울을 보낸 섭섭함을 기억한다면 이 여름이 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래프트에 몸을 싣는 일이다. 래프팅의 계절은 여름보다 짧기 때문이다. 인제 내린천도 가봤고, 정선 동강도 가봤고, 한탄강도 가봤지만 낙동강은 처음이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 초행자들을 놀래키려는 듯 낙동강 발원지에서 가까운 봉화 이나리 강변은 거친 물살을 쏟아내고 있었다. 며칠 전 내린 장마비가 한몫 단단히 했다. 장마 때는 도로에서 불과 1m 아래까지 차오를 정도로 수위가 높아지는데 래프팅의 스릴은 이 수위와 정비례한다. 보통 래프팅은 6~9월까지 석 달간 허락되어 있지만 첫물과 끝물은 마니아들이 움직이는 시기이고, 일반인들에게는 7~8월 두 달간이 무난하다. 35번 국도를 타고 상류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십여 개의 보트가 차창 밖으로 스쳐갔다. 봉화 래프팅은 봉화나루터에서 시작하여 길게는 청량교까지 코스가 이어진다. 상류에서부터 순서대로 관창교, 오마교, 관창1교, 청량교 등의 다리 부근에 선착장이 있는데 짧게는 6km, 길게는 10km까지, 여러 코스가 있다. “위험한 곳과 재미있는 곳은 다르다!” 베테랑 가이드의 연륜 어린 충고가 귀에 쏙 박혔다. 스릴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위험하다!’는 경고가 유혹으로 들리겠지만 래프팅의 재미는 여러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수량이 많고 거친 물살이 간혹 나타나야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노련한 가이드의 안내와 팀워크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안전이다. 그래서 몸을 푸는 준비 운동과 안전교육은 필수다. 무게가 60kg이 넘는 10~12인승 보트는 여러 명이 힘을 합쳐야만 운반도, 운행도 가능하다. “봉화의 래프팅 코스에는 두 가지 고비가 있는데요, 첫 번째 것은 위험하기만 하고 재미있는 곳은 아니고요, 두 번째 고비는 좀 위험하지만 스릴을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그의 설명을 듣고 보니 하얀 포말이 올라오는 지점이 다가올수록 물속에 자갈이 구르는 소리가 들리고 작은 소용돌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트 바닥에 부착된 발고리에 안전하게 발을 고정하고 구령에 따라 몸을 앞뒤로 숙이기도 하고 힘차게 패들을 저으니 어느새 수면이 잠잠해졌다. 그러나 이미 몸은 흠뻑 젖은 상태. 아드레날린의 세례를 받은 듯하다. 가이드가 경고했던 두 개의 고비를 넘기고 나니 기다리고 있는 것은 다이빙 타임! 바닥이 보이질 않으니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물길을 잘 아는 가이드들이 파악해 둔 다이빙 지점은 수심이 깊어서 다칠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자세로 입수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저절로 환호성이 터진다. 그 소리에 놀란 두루미가 멀리서 날아올랐다. 물길 따라 그냥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래프팅은 의외로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다. 몇 번 물에 빠지고 나니 (그래서 물을 삼키지 않는다면) 배가 홀쭉해져 있다. 종료 지점이 가까워지면서 몇 팀과 캔 맥주 내기 레이싱을 해서 더 그랬을지도. 단단하게 조였던 구명조끼가 다 헐렁하게 느껴질 정도. 당장 식당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일 때 낙동강레포츠센터의 넓고 깨끗한 샤워장은 참 고마운 존재였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후에 나누는 밥상은 그 어느 때보다 화기애애했고, 맛있을 수밖에. 한여름이 꿀맛이다. ▶Rafting Gear 래프트 래프팅은 2차 세계대전 후 남은 군용 고무보트를 운송 수단으로 사용했다가 레저용으로 확산됐다. 작게는 3~4인용(45kg, 3m60cm)부터 크게는 12인용(64kg, 4m50cm)까지 있으며 PVC나 고무재질로 만들어진다. 고무 래프트 한 척의 가격은 보통 300~400만원 사이다. 구명조끼 수영을 못해도 래프팅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구명조끼다. 체중 120kg까지 안전하다. 착용요령은 가슴둘레가 꼭 맞도록 몸통의 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다리 고정끈까지 확실하게 채워야 물에 빠졌을 때 조끼가 벗겨지지 않는다. 안전모 너무 크거나 작은 사이즈는 불편할 뿐 아니라 안전하지도 않으므로 적당한 사이즈를 골라서 착용해야 한다. ▶travie info 낙동강 래프팅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의 35번 국도를 달리다 보면 중앙래프팅(054-672-0802), 봉화래프팅(054-673-0890), 청량산래프팅(054-674-1999) 등 여러 업체를 발견할 수 있다. 소요시간 2~3시간 요금 1인당 2만~3만5,000원(코스별) 봉성 청봉숯불구이 봉화군 봉성면은 솔잎향이 가득한 돼지숯불구이로 유명하다. 춘향목에서 딴 솔잎이 잡냄새를 제거하고 육질을 부드럽게 해주는 것이 비결. 숯불 화덕에서 구워 오기 때문에 대기시간이 걸리지만 바로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직접 띄운 메주로 만든 된장찌개도 일품. 돼지 숯불구이 1인분 1만8,000원 문의 054-672-1116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Camping 연천 조각공원 캠핑장 예술이 있는 풍경 그리고 캠핑 <1박2일>, <아빠, 어디가>의 영향력이 대단하긴 하다. 여행을 귀찮아하시는 어머니의 입에서 ‘캠핑 한번 해보자!’라는 제안이 먼저 나오다니. 부모님의 로망을 풀어 드리긴 해야겠는데 한번 쓰자고 비싼 캠핑장비를 구입하기는 그렇고, 또 막상 텐트생활을 불편해 하실지 모른다는 생각까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 끝에 나온 답은 캐러밴이었다. 여름의 위세는 당당했다. 주차장에 내려서 고작 10여 미터를 걸었을 뿐인데 말 그대로 뙤약볕 샤워. 이 순간 드는 생각은 아무리 자연 속의 캠핑이라지만 텐트가 아닌 캐러밴을 예약한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주방용 에어컨과 침실용 에어컨을 가동하니 차 안 공기는 금세 뽀송뽀송, 시원해졌다. 한결 가벼운 기분으로 둘러보니 6인승 캐러밴은 펜션 시설 못지않았다. 전면에는 커플을 위한 큰 침대와 전용 에어컨, 후면에는 2층 침대 2개가 있었다. 중앙부의 주방에는 가스레인지와 냉장고는 물론이고 식기와 밥솥 등 모든 주방도구가 갖춰져 있으니 늦은 점심식사 준비도 뚝딱 이루어졌다. 게다가 평면 TV까지. 또 하나의 집이다. 캐러밴에 딸린 파라솔 테이블 옆으로 대형 그늘막 설치가 끝날 무렵 아버지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셨다. 냉장고에서 금방 꺼낸 맥주 한 캔. 그렇게 온 가족이 야외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어린시절 부산 외갓집 앞 평상에 할머니, 이모, 삼촌까지, 온 가족이 모여 수박을 깨먹던 추억이 몇십 년의 시차를 뚫고 달려와 있었다. 그때 어린 나 대신, 꼭 그 또래의 조카가 뽀로로 캠핑의자에 앉아 있을 뿐. 열기가 가시고 그림자가 길어지기 시작할 때쯤 공원 산책에 나섰다. 좀 전까지 예사로 보았던 물체들에 다가서니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멀리서 돌멩이인 줄 알았던 연못가의 검은 물체들은 세심하게 배치된 군화 수십 켤레고 그냥 장대라고 생각했던 쇠철봉 위에 녹슨 철조망이 걸려 있었다. 저 멀리 검은 천막은 미국의 군용막사였다. 1999년부터 현재까지도 매년 6월 민통선예술제를 주최하고 있는 미술관다운 작품들이었다. 서울에서 불과 2시간을 달려왔을 뿐인데 분단이라는 현실에 바짝 다가와 있었다. 이곳에 설치된 대형 작품들은 대부분 석장리 조각공원의 관장인 박시동 화백의 것이고 곳곳에 소품들이 숨은 듯 전시되어 있다. 분단과 평화에 뜻을 둔 작품들도 있지만, 다양한 재료로 다양한 주제를 표현한 작품들이 푸른 잔디밭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석장리 조각공원이 캠핑 캐러밴 사이트로 변신한 것은 지난 6월의 일이다. 기존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 사이로 모두 17대의 캐러밴이 자리를 잡았다. 예술을 테마로 하는 독특한 오토캠핑장이 생긴 것이다. 캠핑장 운영을 맡고 있는 김규호씨의 부지런함과 싹싹함 뒤에는 아버지 김명환씨의 든든한 지원이 있다. 캐러밴 등 특수차량을 생산하는 (주)두성특장차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명환씨는 일반인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캠핑장 운영에 대한 컨설팅과 강연도 맡고 있다. 전국에 캠핑장이 급증하는 추세에서 테마와 개성이 없으면 금방 도태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 그런 의미에서 연천 조각공원점은 야생 버라이어티 캠핑보다는 느긋한 휴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캠핑장이다.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정성들여 가꿔 온 정원처럼 아늑하다. 생태보고지역인 최북단 제1땅굴 아래에 위치해 있어서 지난 15년간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채 재배해 온 야생화와 약초들은 효소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약을 치지 않아 파리가 많은 것이 흠이었지만 살충제를 뿌리면 반딧불들도 함께 사라질 것이 고민이라고. 박시동 관장 내외가 거주하는 집과 작업실이 뒤편에 있고, 주차장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손수 만들었다는 황토방 3채가 있다. 그중 하나는 효소저장소로 사용 중이다. 9월부터 관장 내외가 지도하는 도자기 체험, 사진워크숍 등의 프로그램을 개시할 예정이며 수년 동안 숙성시킨 효소도 구입할 수 있다. 또 규모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50명 이하 단체를 위한 여행지로도 제격. 야외부대와 황토방 펜션 등 다른 캠핑장에는 없는 시설도 있다. ▶Camping Gear 캐러밴을 이용하는 가장 큰 장점이 캠핑 장비를 준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긴 하지만 한 두가지만 더 준비하면 캠핑의 재미를 더욱 풍부하게 만끽할 수 있다. 캠핑 의자 보통 캐러밴 옆에 피크닉 테이블이 있지만 이동이 어렵고 좁기도 하다. 편하게 옮겨 앉을 수 있는 캠핑 의자가 있다면 경치 좋은 자리, 시원한 자리에서 독서를 하거나 담소를 나눌 수 있다. 여기에 작은 테이블과 그늘막이 있다면 금상첨화다. 화롯불 지피기 캠프파이어가 없다면 캠핑의 낭만을 절반도 즐기지 못한 것이다. 관리사무소에서 숯불 바비큐용 화로를 빌려주기도 하지만 이와 별도로 장작을 구입해서 모닥불을 만들면 밤새 불가에 모여서 도란도란 즐길 수 있다. ▶travie info 모두캠핑 연천 조각공원점 모두캠핑 연천 조각공원점은 캐러밴 전용 캠핑장으로 2인용, 4인용, 6인용까지 총 17대의 캐러밴이 있다. 원래 석장리 조각공원이었던 캠핑장에는 조각품과 설치미술, 연못과 잔디정원으로 꾸며져 있으며 2채의 황토펜션도 운영 중이다. 태안반도의 학암포 캠핑장과 영종도의 왕산 제휴점도 있다. 주소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석장리 875 요금(최저요금기준) 스탠더드 8만원(2인용), 디럭스 11만원(4인용), 스위트(6인용) 14만원, 황토펜션(2인용) 10만원 문의 1544-6615 www.modecamping.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ekking 청량산·죽령옛길 참! 시원한 여름 숲길 그 좋아하던 등산도 여름이면 잘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러나 내공 있는 사람들은 다 안다. 여름 숲이 얼마나 시원한지를. 그 계속물이 얼마나 차가운지를. 봉화 청량산 물과 함께 걸었네 청량산 산행은 보통 ‘입석’에서 시작된다. 이름 그대로 서 있는 돌. 뚝 떨어져 나온 커다란 바위가 마치 이정표처럼 서 있다. 탐방코스는 5가지로 짧게는 2시간(4km) 코스도 있고 정상을 넘는 코스는 5시간 40분(7km) 정도를 잡아야 한다. 물병 하나 들고 오르기 시작! 청량산淸凉山은 수려한 풍경 때문에 금강산과 비교하여 ‘소금강’으로 불리는 곳이다.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걸쳐 조선시대에 풍기군수로 재직했던 주세붕이 직접 명명했다는 12개의 봉우리(내산內山 9개, 외산外山 3개)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데 최고봉은 장인봉870m이다. 30분 정도 걸어가니 반가운 쉼터가 나왔다. 청량정사를 먼저 방문해야 정석이겠지만 발길이 먼저 닿는 곳은 바로 옆에 위치한 ‘산꾼의 집’. 칠순이 넘은 기인 이대실 선생이 이 집의 주인이다. 서예, 달마도, 가야금, 무예 등 다방면에 재능이 많은 그는 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몄고 직접 제작한 소품들도 판매하고 있었다. 후한 인심 덕에 이곳에 들르는 나그네는 누구나 따끈하고 달큰한 약초차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 원하는 만큼 마시되 컵을 헹구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좁은 오솔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갑자기 시야가 확 트였다. 입구에서 시원한 약수 한 바가지 들이키고 나니 뼛속까지 시원해진다. 경사면에 위아래로 펼쳐진 청량사의 중간 허리쯤에 이미 도착해 있었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창건된 청량사는 산 중턱쯤, 마치 부채를 펼쳐서 세워놓은 듯 비탈진 절벽 아래 독특한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었다. 전성기에는 산 곳곳에 암자가 27개나 되었다지만 지금은 조선 후기 양식을 보여주는 유리보전과 원효대사가 머물렀다는 응진전이 가장 수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이번에는 그 냉수의 힘으로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목적지는 해발 800m 지점의 하늘다리. 2008년에 설치한 하늘 다리는 솟아오른 두 개의 봉우리, 자란봉과 선학봉의 정상을 연결한 길이 90m의 산악현수교다. 다리 가운데 지점에는 투명한 복합유리섬유 바닥재를 사용해 마치 허공 위를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했지만 오래돼서인지 불투명해져 버렸다. 어쨌든 아찔한 풍경인데 운동화를 신은 소년들은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청량사에서 선학정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에는 졸졸졸 계곡물이 따라 내려온다. 고대에는 수산水山이라고 불렸다는데, 그만큼 12봉 사이 계곡마다 물이 풍부했었나 보다. 그 조잘대는 물소리만으로도 청량하기가 그지없다. 청량산도립공원 mt.bonghwa.go.kr 054-679-6651 영주 죽령옛길 ‘잠시 쉬었다 가게나!’ 소백산국립공원의 둘레에도 길이 흐른다. 충북 단양, 강원 영월, 경북 영주에 모두 걸쳐 있는 소백산자락길이다. 총 12개의 자락길 중에서 죽령옛길은 3자락(11.4km)을 구성하는 3개의 길(죽령옛길, 용부원길, 장림말길) 중에서 첫 번째 문화생태탐방로다. 그러나 죽령옛길(2,8km 50분)의 역사는 신라 아사달과 15년(15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추풍령, 문경새재와 함께 영남과 다른 지방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통로였고 조선시대 유생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거쳤던 곳이기도 하다. 그 선비들이 쉬어 가곤 했던 주막과 마방은 1900년대 초까지도 운영을 했었다. 지금은 다 무너진 돌담의 흔적으로만 남아 있지만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어르신들도 아직 계시다. 주막에서 들이킨 약주 한잔의 힘을 보태지 않았다면 고갯길은 더 힘겨웠을 것이다. 구름도 자고 간다는 추풍령이 고작 해발 221m이니 해발 689m의 죽령을 넘는 구름들은 사나흘 푹 묵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이 길을 오갔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는 퇴계 이황 선생도 포함된다. 형제간의 우애가 지극했던 퇴계 이황 선생과 형 온계 이해 선생이 서로를 배웅했던 계곡자리가 남아 있었다. 고속도로가 깔리면서 쓸모가 없어진 죽령옛길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우거진 풀숲에 잠식되나 했지만 트레킹 붐을 타고 다시 빛을 찾았다. 지금은 국가명승 30호로 지정되었고 12자락 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기도 했다. 몇해 전 이 길을 걸었을 때에는 소백산역(구 희방사역)에서 시작해 죽령마루까지 오르막길을 걸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반대 방향으로 내려갔다. 나무 계단과 데크가 놓이고 도로변에는 정자까지, 길은 제법 정비가 되어 있었다. 숲길이 끝날 무렵에는 사과, 자두, 호두가 알차게 영글어 가는 과수원이 나왔다. 열매는 여름이라는 뜨거운 에너지의 집약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에 걷기에는 정말 최곤데요!” 누군가의 탄성이 지나갔다. ▶travie info 송이돌솥밥 봉화는 전국 최대 송이 주산지다. 송이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돌솥밥을 맛있게 즐기는 방법은 솥밥을 푸기 전에 송이 한 점을 참기름장에 찍어서 그 맛과 향을 음미하는 것이다. 봉화에서 나는 신선한 나물반찬들이 입맛을 돋운다. 송이요리전문점 솔봉 송이(봉화읍 내성리, 054-673-1090) 돌솥밥 1만5,000원 약선정식 청정지역에서 재배해 향이 깊고 부드러운 나물들을 간수 뺀 소금과 효소 등으로 맛을 낸 약선요리는 먹을수록 건강해지는 느낌이다. 인삼요리와 한방인삼김치를 전문으로 하는 약선당은 2010년 세계약선요리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박순화 여사가 창업했고 아들 이정훈씨가 대를 잇고 있다. 약선당(영주 봉현면, 054-638-2728) 약선정식 2만원, 인삼정식 3만원
  •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공사 석장 이재순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공사 석장 이재순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석공의 흔적은 역사의 물결처럼 도도하게 흐른다. 백제의 석공 아사달은 신라로 건너와 석가탑을 만들었다. 아내 아사녀는 천리길을 달려와 탑의 그림자를 기다리다 지쳐 연못에 빠져 죽었다.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아사달은 연못에 다가가 웃는 듯하다가 사라지는 아내의 모습을 앞산 바위에 새기며 뼈 아픈 한을 달랬다. 그러다가 ‘아사녀! 아사녀!’를 외치며 연못에 빠졌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못을 ‘영지’라고 했고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석가탑을 ‘무영탑’이라고 했다. 석공의 슬픈 전설은 지금도 그렇게 전해진다. 이렇듯 신라시대의 석공은 많은 전설과 함께 오늘날의 ‘국보’와 ‘보물’이란 이름으로 우리들과 만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07년 처음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120호) 석장(石匠) 부문을 신설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석공예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때 석조각 공예가 이재순(57)씨가 국내 최초로 무형문화재 석장이 됐다. 이씨는 김진영 선생의 제자로 경복궁의 석조물을 조각한 이세욱·김맹주 선생의 맥을 잇는 석조각계의 대가였기에 이 계통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씨는 요즘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숭례문 복원작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성곽 복원 전체 공정 중 85%가 진행됐고 오는 7월이면 거의 끝날 예정이다. 그는 12살 때부터 돌과 인연을 맺어 올해로 석조각 인생 45년째이다. 지난 26일 오후 경기 구리시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입구에는 10여m 높이의 미륵상을 비롯해 사자상, 부처상 등 수많은 석상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가 돌이지만 다들 저마다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완성품도 있었고 아직 덜된 작품도 있었지만 다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습들이었다. 꽃샘추위를 담은 바람이 잠시 밀려왔다. 작은 부처상한테 물었다. “춥지 않으세요.”라고 했더니 “바람은 극복하는 것이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에궁…. # 성곽 85% 복원… 옛 석공의 번뇌 읽다 그러는 참에 웃으면서 나타난 이씨와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요새 무슨 일로 바쁘냐고 했더니 숭례문 복원공사 얘기가 나온다. “숭례문 성곽 복원이 85% 정도 완료됐습니다. 숭례문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53m, 서쪽으로 16m의 길이를 대부분 복원했지요. 기나긴 세월의 풍화를 읽으면서 하는 작업이 정말로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먼 옛날 석공들의 고뇌와 번민 등 그런 부분을 알고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씨는 석공 선현들의 지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숭례문에 쌓아 올려진 돌, 그러니까 오랜 세월을 간직한 유물들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비오는 날이었다. 돌에 구멍이 있었는데 빗방울에 의해 구멍이 뚫렸다. 이 순간 이집트의 신전이 생각났다. 커다란 돌을 옮겼던 기억이었다. 정사각형의 돌 중앙에 구멍을 뚫어 정교하게 자리 이동을 해 벽을 쌓은 것이다. 그 다음에는 숭례문 돌 모양들이 아주 자연 친화적으로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돌 가운데 구멍 뚫어 옮긴 흔적 발견 “숭례문에 있는 돌들은 아무렇게 쌓아 올려진 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생각하면서 그에 맞게끔 친자연적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석수(都石手)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도편수는 그동안 많이 나왔지만 도석수라는 말은 이번 복원공사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아마 당시 도석수는 지금으로 말하면 5급 관리 정도로 여겨집니다. 또한 돌마다 가진 물과의 관계, 즉 비가 오면 물이 밖으로 새도록 하는 등 아주 과학적이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돌의 크기가 다 다르다는 점에 눈길이 쏠렸다. 얼핏 보면 부자연스럽고 서로 맞추기도 힘들 법한데 퇴물림 형식으로 쌓아놓은 돌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이씨는 그런 돌을 보면서 한마디, 한마디 묻고 또 물었다. “선조들이 어떻게 돌을 다뤘으며, 또 어떻게 생각했을 것이란 상상을 하는 순간 전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중간중간에 놓인 장돌들을 볼 때에는 더욱 그랬지요. 위아래에서 누르는 압력을 장돌을 통해 견디도록 하는 지혜에 참으로 경탄했습니다.”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하면서 힘든 것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던 이씨는 “(방화사건 직후) 처음에 아직도 가시지 않은 화재의 기운과 접하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 몇몇이 피부병에 걸렸을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다들(20여명) 숭례문 복원공사가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작업했다고 술회했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우리는 문화재를 복원한답시고 기계적으로 손을 대는 바람에 오히려 화재나 사고 등에 대해서는 무심했습니다. 정작 보존과 관리에 대해서는 진정성 없이 다가갔던 것입니다. 아마 숭례문 복원은 이런 것들을 전부 고민한, 새로운 역사를 쓰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 都石手가 있었음을 처음 알게 돼 이씨는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앞에 언급한 도석수라는 단어였다. 원래 도편수라는 말은 있었지만 도석수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면서 선조의 존엄성을 몸소 느꼈던 것. 또한 부석소(浮石所), 즉 지금의 채석장을 두고 돌 문화 창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특히 돌을 다듬으면서 비가 올 것을 대비해 정교하게 빗물을 흘려보내는 것까지 생각한 선조 석공들의 지혜의 흔적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을 깨는 방법이나 돌을 다듬는 방법이 정말 과학적이며 친자연적으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돌 중앙에 구멍을 뚫어 정교하게 이동시켰다는 걸 알고 놀랐지요. 대체로 돌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에는 사방에 밧줄을 연결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밧줄을 빼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차가 생깁니다. 그런데 숭례문의 돌을 보면서 이런 과정까지 염려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흔들림 방지, 비 올 때 물의 흐름까지 생각한 선조 석공들의 지혜를 숭례문 복원 공사를 통해 깨달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씨는 이런 점을 소중히 메모하면서 후배들에게 전수할 책을 준비하고 있다. “옛날에는 돌을 다루는 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석공들 또한 자부심이 강했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돌이 안 들어간 것이 어디 있습니까. 소중한 것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돌의 미학, 석공의 예술을 책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이씨가 그동안 제작한 작품은 2000여점에 이른다. 전국의 사찰과 문화재가 있는 곳에는 그의 손때가 대부분 묻어 있다. 뿐만 아니다. 네덜란드 유트리트 박물관, 이탈리아 카라라시청, 일본 덕정사, 타이완 기륭 자항기념당, 프랑스 파리 7대학 등에도 이씨의 작품이 보관돼 있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일화 한토막. 2005년 일제가 가져간 북관대첩비(임진왜란 때 정문부를 대장으로 한 함경도 의병의 전승비)의 환수 운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문화재청에서 북관대첩비가 환수될 때를 대비해 좌대와 옥개석을 복원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며칠 후 북관대첩비는 무사히 반환돼 남한을 거쳐 북으로 돌아갔다. 이때 북관대첩비는 이씨가 복원한 옥개석을 머리에 인 채 북한 국보 193호로 지정돼 북한으로 갔다. 이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돌을 만지는 장인으로서 더없는 영광이 아니냐.”고 말한다. # 선조의 지혜 책으로 펴낼 계획도 이씨는 전남 담양 출신으로 12살 때부터 외삼촌에게 돌을 다루는 기술을 배웠다. 평소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는 팽이, 썰매 등 전통 놀이기구 제작에 솜씨를 발휘했다. 그러던중 1970년 스승 김진영 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석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스승 김씨는 40년간 석조계에 몸담은 베테랑으로 조선 철종, 헌종 시대 경복궁의 해태상 등을 조각한 이세욱 선생과 김맹주 선생의 맥을 잇고 있었다. 이씨는 스승 김씨한테 10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 두 번째 스승인 김부관 선생을 따라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보수작업을 하면서 숙석(熟石) 기법을 배웠으며 그 덕분에 불교미술 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돌 분야는 할 일이 많습니다. 현대와 전통을 접목시키는 것도 중요하고요. 사실 이제야 돌을 만지는 사람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돌은 정직합니다. 화난 사람이 돌을 마주하면 돌도 화가 나 있고, 예쁘게 돌을 보면 돌 또한 예쁜 대답을 합니다. 돌에는 정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도 정이 많잖아요. ” 선임기자 km@seoul.co.kr 열두 살 때부터 돌 잡아 국가주요무형문화재 석장 부문 1호 지정 1956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한학자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12살 때 석공이었던 외삼촌에게 돌을 고르는 일을 배웠다. 문화재 공사현장을 다닌 것도 이때부터. 이후 스승 김진영 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석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두 번째 스승인 김부관 선생한테 돌을 다듬는 숙석(熟石) 기법을 배웠다. 전국 기능인경기대회에서 연속 2회 금메달과 함께 한국문화재기능협회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으로 지정됐다. 1995년 타이완의 자항기념당에서 석굴암보다 더 큰 석상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 현재 부도를 비롯한 석조물의 복원과 정비, 각종 석조물의 해체 및 보수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성곽의 해체 및 복원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일본 오사카 보암사 석가노미불(1999), 경북 영주 석륜선원 부처 진사리석탑(2000), 네덜란드 유트리트 박물관 기하형체(1977), 이탈리아 카라라시청 소상(1983), 북관대첩비 갑석(2005) 등 2000여점이 있다.
  • [기고] 눈 속에 피어난 무궁화/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기고] 눈 속에 피어난 무궁화/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아무도 걷지 않은 새하얀 눈 위를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걷다 보면 마음도 새하얗게 맑아진다. 햇살을 받은 눈이 투명하게 반짝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눈부시다. 세상은 순백의 설원이다. 소나무들은 흰 모자를, 들판은 두툼한 이불을 선물 받았다. 눈 속에 피어난 발자국을 따라가니 묘비 위, 친구인 나목들이 서 있다. 나목들은 어깨에 눈 외투를 걸친 채 상념의 잎사귀를 떨어뜨리고 임을 위해 추모 기도를 올리는 묵언 수행자다. 겨울 나목들과 악수하며 걷다 보면 ‘357 무궁화 언덕’이 보인다. 푯말에는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대한민국 해군 참수리 357정 용사들의 영웅적인 희생정신을 영원히 기리려고 무궁화를 기념식수한 곳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제2연평해전 전사자 추모회’가 여섯 전사자의 나라사랑정신과 숭고한 희생정신이 국민의 가슴속에 무궁화로 피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언덕을 조성했다. 이 추모회는 무궁화 여섯 그루를 2005년 6월 6일, 무궁화 잔치를 개최하고 있는 홍천에서 가져와 장사병 제2묘역 뒷길 경사진 부분에 심었다. 이 무궁화 나무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호국의 언덕에 피어난 제2연평해전 여섯 전사자의 현신이다. 대전현충원에서는 국기인 태극기는 언제나 볼 수 있지만, 국화인 무궁화를 연중 볼 수 없음이 못내 안타까웠다. 그래서 방문객들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계절 모두 무궁화 꽃을 보고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하려고 가로 6m, 세로 6m, 높이 4m의 대형 무궁화 토피어리를 제작했다. 하얀 눈 속에 활짝 만개한 무궁화 토피어리는 반만년 겨레와 함께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강인한 모습을 닮았다. 대전현충원에는 3500여 그루의 무궁화가 있으며 품종은 아사달, 단심, 배달 등 100여종이 있다. 무궁화 품종은 200가지가 넘는다. 그중 일편단심은 백의민족이 즐겨 입던 하얀 옷에 독립을 위해 순국했던 선열들의 붉은 피가 맺힌 듯하며, 신태양은 우리 조국의 미래를 환하게 비출 다섯 개의 붉은 태양이 떠오른 듯하고, 옥토끼는 하얀 꽃잎 속에 달나라 토끼 한 마리가 숨어 있는 듯하다. 무궁화는 한 그루에 3000여 송이의 꽃이 피고 지는데, 은근과 끈기를 상징하며 왕성한 생명력을 가진 꽃으로 매일 피고 지는 영원불멸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나날이 새 꽃을 피우는 모습은 겨레의 진취적인 기상을 닮았다. 한순간 확 피었다가 바람에 날려 흔적 없이 사라지는 벚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무궁화 축전은 모르면서 벚꽃 구경을 가는 점이 안타깝다. 지금이라도 일본강점기 우리 겨레와 고난을 함께했던 무궁화를 관공서에도, 회사에도, 집 마당에도 심고 무궁화 차를 마시며 별이, 순이 등 예쁜 품종 이름으로 아이 이름을 짓자. 그리고 우리 모두 무궁화 축전에 아이들과 함께 참여하여 무궁화 묘목도 받고 무궁화 종이접기와 글짓기, 무궁화를 이용한 떡과 차도 마셔보며 무궁화를 우리 가슴에 심었으면 한다. 올해는 제2연평해전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대전현충원을 가족과 함께 방문하여 ‘357 무궁화 언덕’에서 추모의 시간을 가져보고, 무궁화 토피어리 앞에서 기념사진도 찍으며 무궁화 한 송이를 헌화하여 나라 사랑정신을 키워보는 것이 어떨까.
  • [뉴 시티노믹스 시대] 한국의 스토리텔링 도시 경주

    코펜하겐 미래학연구소장을 역임한 베스트셀러 ‘드림 소사이어티’의 저자 롤프 옌센은 스토리텔링의 가치를 처음으로 주창한 학자다. 그는 “꿈과 감성을 파는 사회가 온다.”면서 “상품은 물론 도시와 나라조차도 꿈과 감성을 담아 팔아야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늘날 전 세계에는 이야기를 담은 관광도시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빨간머리 앤의 고향 프린스에드워드 아일랜드, 셰익스피어 생가가 있는 스트랫퍼드 어폰에이번, 타이타닉의 항구였던 아일랜드 코브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스토리텔링 도시로는 경주가 우선 꼽힌다. 경주는 천년고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데다 각종 편의시설 등을 충분히 갖춰 도시 전체가 관광도시화돼 있다. 무엇보다 불국사 3층 석탑에 얽힌 아사달과 아사녀의 이야기, 성덕대왕 신종에 담긴 에밀레 전설 등은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다만 이 같은 이야기를 어떻게 포장해 관광상품화 시키느냐가 과제다. 경주시청 관계자는 “최근에는 경주관광르네상스 행사를 통해 새로운 관광경주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한식 세계화’에 발맞춰 전통에서 새로운 한식의 가능성을 찾는 신라전통음식체험 코스가 인기가 높다. 한국관광공사 측은 “신라는 천년의 역사뿐 아니라 국제도시로서 다양한 식재료와 요리법을 갖고 있었다.”면서 “무엇보다 철저한 자연음식이었다는 점에서 최근 세계적인 흐름에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관광공사와 경주시는 경주의 가능성을 지난해 히트한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찾고 있다. 한류 열풍을 타고 전 세계로 수출되는 드라마를 이용한다면 잘츠부르크의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와 같은 접근이 가능하다는 분석 때문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드라마나 뮤지컬 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씨줄날줄] 금 간 석가탑/김성호 논설위원

    불국사 대웅전 뜰에 마주 선 다보탑과 석가탑. 과거 불의 현신이라는 다보탑이 복잡한 구조를 띤다면 현재 불인 석가탑은 정제된 아름다움의 극치로 빛난다. 그중에서도 석가탑은 탑 곳곳에 적용된 황금비율의 확인으로 아름다움이 더 배가된 석탑이다. 신의 비율이라는 황금분할과 황금구형, 황금사선 말이다. 감은사지탑, 고선사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3대 걸작 석탑으로 꼽힘이 괜한 게 아니다. 오죽하면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의 모범답안”이란 극찬까지 나올까. 그림자가 없다 해서 무영탑으로 통하는 석가탑. 무영탑이야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구현이란 불국사 창건에 연결된 이름일 듯. 하지만 석가탑은 어려운 불교이론을 들먹거리지 않아도 대중적으로 유명한 일화가 숱하다. 석가탑 건조에 참여한 도공 아사달·아사녀의 전설이 그렇고, 현존 최고의 목판본이라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발견이 대표적 사연들이다. 아사달·아사녀의 전설이 석탑 조형미로 해서 각색된 전설이라면,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석가탑 자체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는 복장유물일 것이다. 걸작 석가탑에는 오랜 세월 예사롭지 않은 이야기가 붙었다. 신라 경덕왕10년(751년) 불국사 창건 때 세워진 뒤 단 한번도 수리·보수가 없었다는 온전함의 신화다. 그런데 1966년 도굴을 맞아 해체·수리에 들어가면서 발견된 종이뭉치 묵서지편은 이 신화를 산산조각냈다. 고려 현종기(1024년)와 정종기(1038년) 지진을 맞아 대규모 중수가 있었다는 기록 때문이다. 묵서지편은 이 중수 말고도 고려후기∼조선시대에 걸쳐 여러 차례 수리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연한 아름다움을 간직했던 무영탑이니 선대의 보존 노력을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일 석가탑에 심각한 균열이 생겼다는 국립문화재연구소의 발표가 있었다. 상층 기단석에 난 길이 132㎝·폭 5㎜ 크기의 금. 도굴사건 후 해체 보수로 모습을 되찾은 끝이었으니 큰 낭패다. 방치한다면 탑 전체가 무너진다는 위기론이 만만치 않다. 오래된 석재며 지진 탓이라는 말들이 분분하지만 정확한 원인은 미궁. 느닷없는 균열을 놓고 불교계와 문화재청의 공방이 뜨거운 가운데 조계종 문화부장의 발언이 새삼스럽다. “종교적 관점에만 미룬 채 문화재 측면에서의 관심과 유지보수에 소홀했다.” 어차피 금 간 국보에 날 선 공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적어도 복원된 광화문 현판 균열의 전철은 밟지 않기를….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아사달·아사녀 예술혼 설화공원서 만난다

    경북 경주에 신라시대 명장(名匠)으로 석가탑과 다보탑을 만든 아사달의 예술혼과 아내 아사녀의 애절한 사랑을 기리기 위한 기념물이 잇따라 조성되고 있다. 경주시는 19일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달픈 사연이 전해져 내려오는 외동읍 괘릉리 영지(影池) 16만 5천여㎡에 오는 2016년까지 총 100억원을 들여 아사달·아사녀 설화공원을 조성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시는 올해 10월까지 2억원을 들여 설화공원 조성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과 기본설계를 완료하고 내년부터 사업 추진에 들어갈 계획이다. 시는 영지 주변 조경 및 정비 사업, 탐방로·전망대 설치, 아사달과 아사녀 설화를 주제로 한 스토리텔링 개발 등을 통해 설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석가탑 축조에 얽힌 아사달과 아사녀의 설화가 깃들어 있는 영지는 불국사에서 서쪽으로 4㎞ 떨어져 있는 저수지로, 아사달이 아사녀의 모습을 조각했다는 영지석불좌상(경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이 있다. 앞서 시는 지난해 11월 경주 불국사 관문인 불국동 구정광장에 ‘아사달 아사녀’의 설화를 표현한 조형물을 세웠다. ‘영원’이란 주제로 설치된 이 조형물(높이 8m)은 분수를 포함한 연못형태에 연꽃 봉오리 모양을 배치하고 그 위에 아사달 아사녀 설화를 표현했다. 경주 석공들의 모임인 경석동우회와 동해지구석재협의회도 2006년 경주 토함산 동리·목월문학관 광장에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절한 사랑을 기린 ‘아사달·아사녀 사랑탑’을 조성했다. 시 관계자는 “백제 사람인 아사달 부부가 신라땅 경주에서 만들어낸 부부애를 기리고 가족단위 관광객들에게 테마가 있는 체험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영지설화 공원을 조성키로 했다.”고 말했다. 한편 8세기 중엽 가장 뛰어난 석공으로 이름난 아사달은 불국사를 창건한 김대성에 의해 신라로 초청돼 석가탑을 만드는 일을 했다.아내 아사녀는 몇 해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만나러 경주까지 왔으나 탑을 완성하기 여자를 만날 수 없다는 금기로 인해 결국 만나지 못하자 영지못에 빠져 죽고 만다. 탑을 완성한 아사달은 영지못으로 달려갔으나 아내를 만나지 못하고 바위에 아내 모습을 새기고는 사라졌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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