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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균, ‘전참시’ 추노 스타일 어디로…은퇴식서 포착된 모습

    황재균, ‘전참시’ 추노 스타일 어디로…은퇴식서 포착된 모습

    전 야구선수 황재균이 은퇴식을 맞아 달라진 스타일로 등장했다. 지난 13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는 ‘2026 신한 SOL KBO리그’ KT 위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열린 가운데 황재균의 공식 은퇴 기념식이 진행됐다. 이날 황재균은 최근 방송 프로그램 등을 통해 보여 줬던 장발 스타일 대신 짧고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등장해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층 날렵해진 턱선과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로 현역 시절과는 또 다른 매력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현역 시절의 깔끔한 이미지와는 180도 달라진 파격적인 비주얼로 주목받으며 일각에서는 그의 모습을 두고 ‘추노’, ‘장첸’ 등의 유쾌한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지난달 MBC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했을 당시 전현무는 황재균을 향해 “‘추노’가 돼서 돌아왔다”고 소개했다. 이날 홍현희는 “얼굴이 녹아내린 것 같은 사진을 보고 너무 놀랐다. 어디가 아파서 입원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에 황재균은 보디 프로필을 준비하며 단기간에 체중을 감량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바디 프로필 촬영을 목표로 혹독한 관리에 돌입해 체중 98kg에서 무려 80.2kg까지 18kg가량을 감량한 이후 꾸준한 관리를 통해 현재는 87~88kg대의 체중을 유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과거와 달리 술을 마시는 대신 러닝이나 크로스핏 등 건강하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일상의 즐거움을 찾아가고 있다고 했다. 은퇴식을 맞아 장발과 작별하고 머리를 짧게 자른 데에는 팬들을 향한 깊은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인생의 절반을 보낸 그라운드를 떠나 팬들 앞에 마지막으로 ‘야구선수 황재균’으로서 공식적으로 서는 소중한 자리인 만큼 지저분한 인상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아 큰마음을 먹고 직접 머리를 자르기로 결심했다고 전했다. 그는 “아까 머리를 자를 때부터 울컥해서 울 뻔했다”며 뭉클했던 당시의 심경을 고백했다. 이어 장발에 도전했던 이유에 대해 “야구하면서 평생 머리를 길러 본 적이 없다.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그의 새로운 비주얼을 접한 누리꾼들은 “머리를 자른 것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깔끔해지니 전성기 시절 비주얼이 보인다” 등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한편 황재균은 지난 2006년 현대 유니콘스 소속으로 프로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히어로즈와 롯데 자이언츠를 거치며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내야수로 자리매김했다. 잠시 미국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해 역경을 딛고 돌아온 뒤 지난 2018년 KT 위즈에 전격 합류했고, 2021년에는 주장으로 팀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지난해 12월 현역 은퇴를 선언하며 20년간의 프로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 ‘不敬 아닌 佛經’ 반야심경·전자음악 하나로… 한일 ‘힙 불교’ 이심전심

    ‘不敬 아닌 佛經’ 반야심경·전자음악 하나로… 한일 ‘힙 불교’ 이심전심

    힙합·록 접목해 불경 알리는 선승유튜브 구독 108만… 조회수 1억회“만사 받아들이고 상호 공존해야불교, 고요히 마음 바라보는 도구” 어떻게 가더라도 결국 ‘깨달음’에 이르면 된다. 그곳으로 가는 길이 즐겁고 흥겹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반야심경(般若心經)을 외는 승려의 목소리에 전자음악이 더해진다. 불경(佛經)에 대고 이러는 것이 불경(不敬)한가? 아니다. 독경 소리는 더욱 청청하게 울려 퍼진다. 다음달 30일 첫 내한 공연을 펼치는 일본인 승려 간호 야쿠시지를 서면으로 만났다. 일본 에히메현 이마바리시에 있는 절 가이젠지의 16대 부주지이자 선승(禪僧)인 그는 불경을 현대음악과 조화롭게 접목한 것으로 주목받는 세계적인 사운드 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유튜브 구독자만 108만명, 그가 올린 음악 클립들은 현재 여러 온라인 스트리밍 사이트를 통해 청자와 만나고 있으며 누적 조회수는 1억회가 넘었다. 이 독창적인 ‘만남’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교토에서 수행하던 시절 매일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10명 정도 수행승과 함께 독경했습니다. 경전 위에 목소리가 겹칠 때 마음이 차분해지더라고요. 그 감각이 오래 남았고 수행이 끝난 후 ‘내가 직접 화음을 쌓아 그 감각을 재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죠. 그렇게 코러스를 겹치고 기타와 퍼커션을 넣어 첫 편곡을 완성했습니다.” ‘반야심경 음악’으로 그가 관객을 만난 지 올해로 꼬박 10년이 된다. 누구나 이름은 들어봤지만 제대로 이해하기엔 난해하기 짝이 없는 반야심경이 간호 스님의 손을 거치며 다채롭게 변신한다. 전자음악, 힙합, 록 등과 결합하며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불자(佛子)는 물론 일상 속 평화와 구도를 원하는 모든 이에게 위로를 전했다. 월드투어를 겸해 열리는 이번 공연의 부제는 ‘조화의 원’이다. “지난 10년간 음악 활동은 저에게는 모두 수행이었습니다. 망설임도, 갈등도 있었고 제 마음에 여러 고집과 치우침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하지만 도망치거나 덮어둔다고 행복으로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10년을 나타내는 말로 ‘원’(圓)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일을 받아들이며 자신과 계속 마주하는 것. 그리고 내가 모든 연결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아는 것.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게 삶에서 중요한 것이죠.” 간호 스님의 공연은 국내 ‘힙불교’(힙한 불교) 열풍과도 맞닿으며 관심을 끌고 있다. 동시대 젊은 세대에게 불교는 고리타분한 종교가 아니다. 멋지게 즐길 수 있는 문화이자 삶을 풍요롭게 바꿔주는 다정한 철학이다. ‘전자음악 반야심경’도 힙불교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번뇌와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이 즐겁지 말라는 법은 없다. 역설적이지만, 괴롭지 않을 때 비로소 우리는 괴롭지 않을 수 있다. “최근 한국 드라마에서도 절이 나오는 장면이 늘어난 것 같더라고요. 한국의 젊은 세대에서 불교를 향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마음의 안정을 찾거나 막연한 불안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물건과 정보가 넘쳐나고 생각이 앞서기 쉬운 시대입니다. 그 가운데 불교가 지닌 ‘고요함’의 이미지와 단지 자신의 마음(心)을 바라보는 시간이 새롭고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간호 스님의 공연은 불자만을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 현대 사회의 치열한 갈등과 경쟁에 지친 사람이라면, 누구든 그와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불교는 하나의 종교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라는 틀을 넘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을 알아가는 도구로도 존재했으면 합니다. 음악이든 사찰이든 패션이든 무엇이든 입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아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 김민재 지도했던 페네르바체 감독, 챔스리그서 물병 맞은 뒤 “사퇴하겠다”

    김민재 지도했던 페네르바체 감독, 챔스리그서 물병 맞은 뒤 “사퇴하겠다”

    튀르키예 프로축구 명문 페네르바체를 이끄는 이스마일 카르탈(65) 감독이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경기 무승부 직후 기자회견에서 돌연 사의를 밝혔다. 관중이 던진 물병에 머리를 맞으면서 심경에 변화를 일으킨 것으로 관측된다. 카르탈 감독은 11일(한국시간)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초바니 스타디움에서 열린 AS로마(이탈리아)와의 2026~27 UCL 리그 페이즈 1차전 홈경기를 마치고 기자회견에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고 말했다. 이날 페네르바체는 이탈리아의 강호 AS 로마와 1-1로 비겨 승점 1을 따내며 리그 페이즈를 시작했다. 카르탈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1차전을 마친 소감을 밝히고 결과에 대해 선수들에게 축하 인사를 하다가 “질문을 받기 전에 제 개인에 관해 얘기할까 한다”면서 “클럽을 위해, 클럽에 길을 열어주기 위해 이런 결정을 내렸다. 스태프들과 함께 내린 결정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임한다”고 밝혔다. 튀르키예 국가대표 출신으로 선수 시절 페네르바체에서 200경기 넘게 뛰었던 카르탈 감독은 2014년을 시작으로 페네르바체에서 사령탑으로만 네 번째 임기를 보내는 중이었다. 그는 한국 대표팀 중앙 수비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독일)가 2021~22년 페네르바체에서 뛰었던 당시에도 팀을 이끌었다. 페네르바체는 이번 시즌 개막 이후 쉬페르리그에서 2승 2패를 기록, 중위권을 달리고 있고 UCL에선 18년 만에 본선에 진출해 첫 경기에서 승점을 따냈다. 카르탈 감독이 팀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다고 보기는 어려운 배경이다. 페네르바체의 아지즈 일디림 회장은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카르탈 감독이 압박감을 느끼고 있으며, 이날 경기 중 관중석에서 날아든 병에 맞는 사건이 발생해 사의를 밝히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일디림 회장은 UCL 진출 이후 ‘왜 진출했나, 팀이 약하다’는 식의 비판을 듣고 있으며, 언론의 ‘가짜 뉴스’로도 피해를 보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카르탈 감독은 계속 팀을 이끌 것이다. 내가 떠날 때까지 카르탈은 페네르바체의 감독”이라고 강조했다. 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카르탈 감독에게 병을 던진 사람의 신원이 확인됐다”면서 “해당 인물에게는 관련 법률에 따라 경기장 출입 금지 조처가 내려졌다”고 전했다.
  • “술병 들었으나 위협한 적 없다”…승리, ‘특수폭행’ 피소에 직접 입 열었다

    “술병 들었으나 위협한 적 없다”…승리, ‘특수폭행’ 피소에 직접 입 열었다

    그룹 빅뱅 출신 가수 승리(본명 이승현·35)가 특수폭행 혐의로 고소당한 가운데 승리가 “술병을 들었으나 위협하지는 않았다”면서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10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는 지난달 25일 승리에 대한 특수폭행 혐의 고소장을 접수했다. 고소 내용은 승리가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던 30대 남성 A씨를 폭행했다는 주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승리는 이날 일간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지인 2명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다른 테이블의 술 취한 손님(A씨)이 다짜고짜 동석을 요구했다”면서 정중히 사양했음에도 A씨가 사업 제안을 하겠다며 자리를 떠나지 않아 다툼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승리는 A씨와 합석해 함께 술을 마셨고, 연락처까지 주고받았다고 말했다. 또 헤어질 때에는 A씨가 직접 배웅까지 해줬다고 해명했다. 승리는 “헤어진 직후엔 먼저 연락해 ‘속 아프겠다’며 해장하라는 이야기도 했고, ‘주말 잘 보내라’며 다음 주에 보자고 했다. 이후 만나자는 연락이 와 ‘사업계획서를 보내달라’고 하자 연락이 없더니 다음 날 고소하겠다는 회신이 오더라”며 “무슨 심경 변화가 있었는지 피해를 입었다며 고소를 하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특수폭행 혐의에 해당하는 행위가 있었는지 묻자 승리는 “동석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과정에서 술병을 든 건 사실”이라면서도 “들기만 했지 휘두르거나 위협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승리는 “술자리 이후 A씨와 연락 나눴던 문자 내용들, 식당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 식당에서 동석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목격한 직원들 및 A씨가 나를 배웅하는 걸 본 발렛 기사의 진술도 확보한 상황”이라며 “수사기관에 잘 협조해 해명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함께 피소된 지인들에 대해서는 무고 혐의로 대응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승리는 “또 한 번 개인적인 일로 불편을 드려 면목이 없습니다만, 이번 사건은 고소에 특수한 목적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면서 “사실관계를 기반으로 수사에 협조해 명명백백 진실을 밝히겠다”고 전했다. 한편 승리는 지난 2006년부터 그룹 빅뱅의 멤버로 활동하다가 2019년 ‘버닝썬 게이트’ 사건에 연루되는 등 논란을 빚은 뒤 2019년 연예계 은퇴를 선언했다. 그는 성매매 알선, 횡령,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9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했으며 2023년 2월 출소했다. 이후 승리는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지역의 클럽에서 모습을 드러내왔다. 최근에는 베트남 하노이의 한 행사장에서 포착됐다.
  • “父, 50명과 외도하며 ‘네 엄마’ 소개”…유명 가수 숨겨진 가족사

    “父, 50명과 외도하며 ‘네 엄마’ 소개”…유명 가수 숨겨진 가족사

    가수 김도향이 오랜 시간 가슴에 묻어뒀던 가족사를 털어놓으며 끝내 눈물을 보였다. 10일 MBN ‘특종세상’은 ‘57년 차 가수 김도향’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선공개했다. 영상에는 데뷔 57년 차를 맞은 김도향이 그동안 쉽게 꺼내지 못했던 가슴 아픈 가족사를 고백하는 모습이 담겼다. 김도향은 부모님의 묘소를 찾지 못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냈다. 부모와 자식, 부부 사이의 관계에 대해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가던 그는 결국 참아왔던 눈물을 흘렸다. 김도향은 “부모와 자식 간이나 부부 사이라는 게 사이가 좋고 안 좋고가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다”며 “두 분도 그러실 것 같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털어놨다. 김도향은 “아버지를 되게 미워했다”며 “‘네 엄마다’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50명은 만났다. 그렇게 많은 여자를 만나면서 바깥 생활을 하신 것”이라고 고백했다. 아버지의 외도로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도 괴로우니까 저녁이면 혼자 우시더라. 어머니가 우시는데 제가 잠이 오겠냐”라며 “그런 생활을 참 오래 했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야 했던 부모님의 갈등은 김도향에게 오랜 상처로 남았다. 김도향이 오랜 시간 마음속에 간직해온 가족사와 부모님을 향한 복잡한 감정은 이날 본방송을 통해 공개된다. 한편 김도향은 1970년 손장철과 그룹 ‘투코리언즈’를 결성해 데뷔했다. 이후 솔로로 활동한 그는 대표곡 ‘바보처럼 살았군요’를 통해 한 많은 인생을 살아온 한국인의 원통함과 허무함을 풀어주는 위로의 노래로 공감을 이끌어냈다.
  • “은행서 해지 권유”…송은이, 33년 전 ‘금리 20% 연금저축’ 현재 어떻게 됐나

    “은행서 해지 권유”…송은이, 33년 전 ‘금리 20% 연금저축’ 현재 어떻게 됐나

    방송인 송은이가 무려 33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지해 온 고금리 연금저축의 현황을 공개했다. 지난 9일 유튜브 채널 ‘비보티비’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는 송은이와 김숙이 최근 급변하는 주식 및 금융 시장 속에서 서로의 투자 현황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담겼다. 이날 방송에서 김숙이 “주식시장에 따질 게 한두 개가 아니다. 나 ETF 수익이 -37%”라며 쓰라린 심경을 토로하자 송은이는 “지금 물린 사람들이 한두 명이 아니다”라며 어린 위로를 건넸다. 재테크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송은이는 현재 자신이 보유한 연금저축의 누적 수익률이 30퍼센트대를 기록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연금저축 누적 수익률이 있지 않냐. 누적은 단기 수익률과 다르다”라며 말했다. 이와 더불어 적립식으로 펀드에 가입해 10년간 보유해 2배의 수익률을 기록한 경험을 이야기하며 연이어 장기 투자에 대한 투자 철학을 밝히기도 했다. 앞서 송은이는 지난 1993년에 가입한 연금저축 상품을 무려 33년째 단 한 번도 해지하지 않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밝혀 화제를 모은 바 있다. 그는 월급이 고작 20만 원에 불과하던 시절 해당 상품에 가입했으며, 당시 적용된 금리가 20퍼센트대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은행 측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상품 해지를 강력하게 권유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재테크 근황을 전했다. 다만 송은이는 자신의 이 같은 특별한 사례가 ‘과거 고금리 상품 덕분에 거액의 큰돈을 벌었다’는 식으로 와전되어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해당 상품에 대해 “적금이 수익이나 노후 완성과는 거리가 있다”며 “세제 혜택을 받고 연금을 들기 위해 했던 거고 금액이 많지 않다. 가입 당시 20퍼센트대였던 이율이 현재도 10퍼센트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마치 내가 그것 때문에 노후가 다 준비된 것처럼 보여지는데 그건 아니다”라며 “무엇보다 금액이 많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 라이머, ‘안현모 이혼’ 3년 만에 재혼 계획…“새 출발 응원”

    라이머, ‘안현모 이혼’ 3년 만에 재혼 계획…“새 출발 응원”

    프로듀서 겸 브랜뉴뮤직 대표 라이머가 ‘신랑수업2’에 새로운 입학생으로 등장하며 재혼 시동을 걸었다. 4일 방송된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신랑수업2’ 말미 예고편에는 라이머의 출연 장면이 담겨 눈길을 끌었다. 소속사 아티스트인 그리, 한해, 전웅은 ‘대표님 장가보내기 지원본부’를 결성해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들은 “대표님이 요리를 정말 잘하신다”, “운동 좋아하는 아저씨 느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라이머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했다. 라이머는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겠다. 그런 마음들이 저한테 항상 있다”고 털어놨다. 라이머는 지난 7월 3일 ‘신랑수업2’에 출연해 “지금 사는 건 너무 편한데 마음에 외로움이 있다. 제가 정이 많아서 사람이랑 부대끼는 걸 좋아했다”고 말한 바 있다. 라이머는 이상형에 대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 좋고, 대범한 여자가 좋다. 제가 무슨 얘기를 하든 ‘우리 오빠 귀여워’라고 했으면 좋겠다. 밝고 맑은 사람이 잘 맞더라. 의리가 있고 정이 있는 여자”라고 꼽았다. 한편 라이머는 지난 2017년 방송인 겸 통역사 안현모와 결혼했으나 2023년 이혼 소식을 전했다. 이후 지난 5월 가수 케이윌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세상에 안 좋은 경험이라는 건 없지만 굳이 안 해도 되는 경험은 있는 것 같다”며 이혼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나는 다른 것보다 가족들한테 죄송했다. 결혼이라는 건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과 가정이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에 가족들한테 죄송했다”고 심경을 고백했다.
  • 예능서 화제됐던 ‘유명 여배우 동생’…38세에 배우 캐스팅

    예능서 화제됐던 ‘유명 여배우 동생’…38세에 배우 캐스팅

    배우 전소민의 친동생 전욱민이 단역 배우로 캐스팅된 소식을 전하며 연기자로 첫발을 내딛는다. 전욱민은 지난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짧은 영상과 함께 벅찬 심경이 담긴 장문의 글을 게시했다. 공개된 영상 속에서 그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모든 분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그리고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라며 진심 어린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 동시에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며 감격스러운 심경을 전했다. 이어 그는 연기를 향한 꿈을 품고 달려오는 동안 겪어야 했던 고민들을 털어놨다. 전욱민은 “38세에 돈도 커리어도 아무것도 없이 연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이제 그만해야 하지 않겠냐’, ‘이제 너도 마흔이다’ 같은 이야기를 한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고백했다. 이어 “그리고 며칠 전에 내게 전화가 왔다”며 기적처럼 캐스팅 연락을 받았던 순간을 회상했다. 그는 이번 배역에 대해 “대사는 많이 없고 잠깐 스쳐 지나가는 역할”이라면서도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작은 기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다르다. 처음으로 내 꿈이 현실에 닿을 것 같은 아주 소중한 기회”라고 밝혔다. 그는 “언젠가 더 큰 무대로 가는 첫 장면이 되길 바란다”며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이 말을 되새기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소중히 하면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며 꿈을 향한 각오를 전했다. 한편 전욱민은 배우 전소민의 친동생이다. 과거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천하제일장사’와 SBS ‘런닝맨’ 등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얼굴을 알린 바 있다. 피트니스 트레이너 출신인 그는 과거 사업 실패의 아픔을 겪은 후 생계를 위해 배달 일을 병행하면서 연기자의 꿈을 키워왔다.
  • 황신혜, 박위 논란 속 “장애인 가족으로 마음 편치 않다” [스타이슈ON]

    황신혜, 박위 논란 속 “장애인 가족으로 마음 편치 않다” [스타이슈ON]

    배우 황신혜가 유튜버 박위의 낙상 사고 영상 공개 논란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장애인 가족으로서 심경을 털어놨다. 황신혜는 28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가족 런치타임, 동생을 만나니 장애인을 둔 가족으로서 지금 상황이 안타깝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글로 박위 논란을 간접적으로 언급했다. 함께 공개한 사진에서 그는 동생인 황정언 작가를 비롯한 가족들과 함께 다정한 식사를 즐기며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어 그는 “도움이 필요한 많은 분께 누군가의 작은 배려는 그분들께 큰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 따뜻한 마음만은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진심 어린 바람을 덧붙였다. 글에서 언급된 ‘지금 상황’은 최근 불거진 박위의 KTX 하차 사고 논란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박위는 지난 14일 KTX 열차에서 휠체어를 이용해 내리던 중 경사로에서 사회복무요원의 발에 바퀴가 걸려 바닥으로 심하게 고꾸라지는 낙상 사고를 겪었다. 이후 지난 21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당시 현장 CCTV 영상을 공개하며 현장에 있던 사회복무요원의 모습을 여과 없이 노출했다. 해당 사회복무요원은 현장에서 이미 정중하게 사과했음에도 영상을 공개하며 ‘공개 저격’이자 ‘마녀사냥’이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그는 영상을 삭제하고 영상 공개 하루 만인 지난 22일 채널 커뮤니티를 통해 “근무자님의 입장을 생각하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황신혜가 이 같은 논란에 안타까움을 표한 데에는 남다른 가족사가 작용하고 있다. 그의 동생인 황정언 작가는 29세 때 불의의 사고로 전신 마비 판정을 받았다.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황신혜는 과거 동생이 구족화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은 물론, 동생의 전시회에 동행하고 일상을 살뜰히 챙기는 등 장애를 가진 동생을 곁에서 돌봐온 것으로 알려졌다.
  • 서인영, 2개 남은 명품백 팔았다…14년 전 산 가방의 감정가는 얼마?

    서인영, 2개 남은 명품백 팔았다…14년 전 산 가방의 감정가는 얼마?

    가수 서인영이 소중히 아끼던 마지막 남은 명품백을 과감히 처분했다. 지난 26일 공개된 서인영의 유튜브 채널 ‘개과천선 서인영’에는 “워터밤으로 모두 탕진하고 2개 남은 명품백 팔러간 서인영”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업로드됐다. 영상에서 그는 “오늘 중요한 거 할 게 있다. 다 무소유하려고 한다. 우리 아빠가 돈을 안 줘서 미칠 거 같다”라며 “‘촬영 때문에 뭐 하나 새 거 입고 싶다’ 했는데 ‘네가 아직 정신을 못 차렸다. 병원을 알아보겠다’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앞서 서인영은 전성기 시절 100억 탕진을 했다고 밝히며 최근 아버지에게 통장을 뺏겨 용돈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한 바 있다. 이날 그는 소장하고 있던 마지막 명품 브랜드 C사와 H사의 가방을 가리키며 “이 가방들을 다 팔려고 한다. 멜 일도 없다. 돈이 없다. 그리고 몰래 가져왔다. 예능에서 금 받은 것도 메달 빼놨다”며 비장한 각오를 드러냈다. 전문 감정사를 찾아간 그는 과거 애정했던 H사 가방을 꺼내며 “캘리백 한때 꽂혀서 색깔별로 샀다. 그때 매장 가면 1500만 원이었는데 가격을 좀 올려서 파는 곳이 있었다. 난 그런 곳으로 가서 4000만 원을 주고 샀다”며 명품 구매 가격을 공개했다. 서인영은 명품 브랜드 C사와 H사의 가방을 각각 감정받았고, 2012년도경 600만 원 정도에 구매한 C사의 가방은 165만 원, 선물 받은 H사의 가방은 265만 원으로 측정됐다. 하지만 이후 매장의 라이브 방송에 출연하는 조건으로 돈을 더 얹어 받으며 최종 445만 원을 받았다. 가방을 팔고 나온 그는 과거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출연 당시 우수상 수상의 부상으로 받았던 7돈짜리 순금 금메달의 시세를 확인했다. 촬영 당일 기준 금메달 가격은 509만 6000원으로 측정됐다. 가방 2개를 합친 가격보다 금메달 한 개의 가격이 더 높게 나오자 그는 “내 청춘이 담겼는데 그게 500이다. 올 때는 싹 팔아버리자 했는데 고민 많이 된다. 나의 세월이 묻어난 거니까”라며 복잡한 심경을 내비쳤고, 결국 아버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했다.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돈으로 못 사는 거다. 평생 보관하는 거다. 너는 그런 생각을 하고 그걸 갖고 나가냐”고 말하자 서인영은 “그럼 용돈 조금 더 올려 달라”고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렸다. 이에 아버지는 “지금 올려 줬다”며 “장부에 다 쓰여 있다”고 단호하게 거절해 현장을 폭소케 했다.
  • [기고] 기업결합 심사, 우리도 고민할 때

    [기고] 기업결합 심사, 우리도 고민할 때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기업결합 심사 가이드라인의 전면 개정 작업을 추진 중이다. 2004년 수평, 2008년 비수평 기업결합 가이드라인을 하나로 통합한 개정안 초안을 지난 4월 공개했고, 4분기 최종 확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첫 번째 주목할 만한 변화는 가이드라인의 현대화 작업이다. 약 20년간 변화한 경제적 환경과 그간 축적된 실무적, 학술적 지식이 반영되었다. 급성장한 디지털·플랫폼 시장의 특성을 고려하기 위한 규정과 투자·연구개발(R&D) 등을 통해 미래 시장상황에 미치는 동태적 효과를 면밀히 검토하기 위한 규정이 추가되었다. 기업결합이 현재 가격이나 산출량에 미치는 직접효과는 대부분 소비자에게 부정적이지만, 동태적 효과 측면에서는 기업결합이 R&D 유인을 높여 소비자 편익 증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따라서 다양한 효율성 증진 가능성에 대한 검토가 중요해지는데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효율성 인정 방식을 편익이론으로 격상하고 경쟁제한 효과와 병렬적으로 살피도록 했다. 좀더 눈여겨볼 만한 변화는 EU가 가이드라인에 경쟁정책 외적인 정책목표까지 담고자 했다는 것이다. 예컨대 공급망 안보, 환경보호 등 공익적 가치가 실현되면 이를 기업결합의 편익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경쟁정책 기본 원칙에 위배되지 않도록 이러한 공익적 가치들을 비가격변수로 취급하고, 관련 시장 소비자에게 귀속되는 편익만 인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소 파격적인 이런 변화에는 미중 중심의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패권 경쟁, 세계경제 블록화, 지정학적 위험 증가를 마주한 EU의 깊은 고심이 담겨 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 공급망 안보 확충, 환경보호와 같은 정책목표를 달성하며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역내 산업경쟁력 강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중 첫 번째 변화인 기업결합 심사기준 현대화 작업은 우리나라도 제법 진척되어 있다. 디지털·플랫폼 관련 조항과 동태적 효과를 고려하기 위한 조항들이 이미 심사기준 개정을 통해 추가되어 있고, 심사에도 이미 적용되고 있다. 다만 새로운 조항을 실제 심사에 적용하는 것은 난도가 높아 실무 경험 축적과 방법론 확충이 시급하다. 현재 심사 중인 네이버파이낸셜-두나무의 기업결합과 같이 디지털 플랫폼 또는 신산업 부문에서 다층적 검토가 필요한 심사의 경우 통상적으로 더 오랜 기간이 소요되고 있다. 반면 두 번째 변화인 경쟁정책 외적인 정책목표의 경우, 문언상 우리나라 심사기준에 일부 오래된 규정이 존재하긴 하나, 실무에서는 사실상 적용되지 않고 있다. 물론 기업결합 심사에서 경쟁 외의 공익적 가치를 고려하는 것에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다만 EU와 우리나라가 처한 대내외 환경이 유사하고, 산업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상황도 같다. 우리도 비슷한 변화가 필요한 것인지, 더 나은 대안이 있는지에 대해 정책당국과 학계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심경보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 [열린세상] 빅테크 기업들이 빼앗는 것

    [열린세상] 빅테크 기업들이 빼앗는 것

    인공지능(AI)에 대한 담론이 범람하는 요즘, 빅테크 기업들은 온 세상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기술이나 금융 투자에 특별히 관심 없는 사람들조차 빅테크 기업들을 열거하는 데 무리 없을 정도다. 빅테크 기업과 그에 반도체 등을 공급하는 여러 기업의 주인들은 슈퍼스타 못지않은 인기와 인지도마저 누린다. 가히 ‘빅테크와 아이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이 빅테크 기업들이 우리 일상에 어떻게 침투해 있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AI 기술을 비롯한 여러 획기적인 기술들로 빅테크 기업들은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제시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상당수가 우리의 ‘관심과 시간’을 최대한 많이 빼앗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소유한 메타, 유튜브와 검색엔진 등을 소유한 구글, 스마트폰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애플, 온라인 쇼핑의 선두주자인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들의 중심에는 사람들의 시간을 최대한 많이 빼앗아 자신들의 플랫폼에 ‘체류’시키고 소비시키는 일이 자리하고 있다. 1970년대,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관심경제’(Attention economics)라는 용어로 현대사회의 핵심을 지적했다. 정보가 넘쳐날수록 인간의 관심은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된다는 그의 통찰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 훨씬 더 정확한 현실이 되었다. AI 알고리즘은 우리가 무엇에 분노하고 환호하는지 끊임없이 학습하며 ‘관심’을 붙잡아 둔다. 그렇게 우리가 플랫폼에 쓴 시간은 고스란히 데이터화되고, 빅테크 기업의 천문학적인 매출과 주가로 환산된다.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감정 채굴’(최지수 역, 돌베개)에서 특히 그 중심에 ‘감정’이 놓여 있음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감정이 기술과 이처럼 하나가 된 적이 없었다. 감정이 기술 플랫폼의 일부가 되면서 전례 없는 경제적 가치를 창출해 내고 있다. 주체성은 기술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가치 창출의 내부 기제로 자리잡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감정’이라는 원자재를 통해 빅테크 기업들은 우리를 플랫폼 중독에 빠뜨리며, 스마트폰에서 눈과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이런 시대에는, 빅테크 기업들이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과 시간을 더 잘 빼앗길 바라며 열심히 그들의 주식을 사는 것도 중요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빼앗기고 있는 내 관심과 시간을 더 먼저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희로애락이 알고리즘에 의해 세팅되며 증폭되는 것에 넋 놓고 따라가기보다는, 어느 순간 멈춰 서서 나의 ‘관심과 시간’을 어디에 쏟을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플랫폼에 쏟는 시간이 내게 진정한 기쁨과 만족을 주고, 내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길이라면 애써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하루 평균 5시간 정도 된다고 하는 한국인의 스마트폰 스크린타임을 생각해 보면, 1년이면 약 2000시간가량 쓰이는 그 시간이 정말 우리에게 값진 시간인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 데 1만 시간가량 걸린다고 하는 통념에 따르면 우리는 대략 5년마다 얻을 수 있는 수준급의 연주나 요리 실력, 운동능력이나 지적 자산을 잃고 있는 셈이다. 매 시대마다 새로운 기술은 탄생했다. 그 기술들은 인류에게 많은 편의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주는 것이 있으면 빼앗는 것이 있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는 트레이드오프(trade-off)야말로 만고불변의 진리일 것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열어 보일 거라 주장하는 저 미래가 오기까지, 내가 잃는 것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것들 중에는 내가 마땅히 내 삶의 가장 소중한 사람들에게 썼어야 할 사랑과 우정의 시간, 인생에서 한 번쯤 시도해 보고 싶었던 일에 대한 관심, 꿈에 도전하는 데 사용했어야 할 에너지 같은 것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지우 변호사·작가
  • 불심에서 피어난 ‘철의 불꽃’…한국 철강 최초 기록 쓴 동국제강 [창업주의 비밀노트]

    불심에서 피어난 ‘철의 불꽃’…한국 철강 최초 기록 쓴 동국제강 [창업주의 비밀노트]

    ‘동쪽의 나라’라는 의미의 동국(東國)은 우리나라를 의미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1950년대 한국 철강 산업의 출발점 중 하나로 꼽히는 동국제강의 이름은 여기서 따왔습니다. 독실한 불교도였던 장경호(1899~1975) 동국제강 창업주의 창업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동국제강은 나의 것도 너희 것도 아니다. 이 나라 부강과 민족을 위해 세웠으니 그들의 것”이라며 전 재산을 기부한 대원 장경호는 철강업계와 불교계에 깊은 발자취를 남긴 인물로 평가됩니다. 불교 진흥과 사업보국의 두 축장경호는 1899년 부산 동래군 사중면 초량동의 한 불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제강점기 중·고등학생 시기와 청년기를 보낸 그는 조국의 아픔을 피부로 느끼며 성장했습니다. 그는 1919년 서울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길에 올라 1년여간 문물을 접하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후 1925년 인생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통도사에서 구하 스님을 모시고 안거 수행을 하던 그는 사업가와 재가 불자로서 인생의 목표를 정리했습니다. 3개월의 안거가 끝나는 날 그는 대웅전에 꿇어앉아 발원했다고 합니다. “상업에 종사하여 크게 돈을 벌리라. 하여 그 모든 것을 불교에 바치겠다.” 그의 나이 27세 때 일입니다. 1929년 그는 형들과의 사업 경험을 토대로 첫 회사 ‘대궁양행’을 설립합니다. 쌀가마니를 수집해 파는 회사였습니다. 1935년에는 사업을 확장해 ‘남선물산’을 세우고 가마니 판매 외 수산물 도매업, 미곡사업, 정미소, 창고업 등으로 발을 넓혔습니다. 철과의 인연은 1949년에 시작됩니다. 한 재일 교포 기술자가 운영하던 신선기(못과 철사를 뽑는 설비)를 인수했습니다. 당시 장경호는 못과 철사가 나라를 세울 산업이라 직감했습니다. 이 회사가 현 동국제강의 모태 ‘조선선재’입니다. 조선선재는 한국전쟁 후 전후복구에 필수적인 철사와 못을 생산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축적한 자산을 기반으로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있던 한국특수제강을 인수, 동국제강 주식회사를 설립합니다. 조선선재를 세운 지 5년 만으로 한국 최초 민간 철강사가 탄생한 순간입니다. 그가 붙인 기업의 이름에는 민족성이 녹아 있습니다. 큰 활을 쏘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대궁’, 남쪽으로 기운을 펼쳐가겠다는 ‘남선’, 나라의 이름을 딴 ‘조선’, 그리고 세계 속의 한국을 칭하는 ‘동국’. 철강보국이라는 그의 인생관을 느낄 수 있는 대목입니다. 갯벌을 공장으로…철강 산업을 견인하다 중공업의 부흥기였던 1960~1970년대 철강산업의 중요성은 커졌습니다. 정부는 철강 수입 의존도를 줄이고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철강공업 육성법을 제정했습니다. 국내에 대규모 철강 단지가 필수라고 느꼈던 장 창업주는 1년간 미국에 머무르며 선진형 산업단지를 공부하고, 해안 매립형 철강 단지를 구상합니다. 여러 부지를 고민하던 중 부산 남구 용호동 일대를 택합니다. 해방 후 휴경화된 염전 지역으로, 판자촌이 일부 남아 있고 지역 쓰레기 매립지로 활용하던 곳입니다. 주변에서는 우려의 시선이 가득했습니다. 민간 자본으로 대규모 철강공장은 무리라는 시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지는 강했습니다. 장 창업주는 현장에서 제강소를 건설하는 아들 장상철을 만나 “하나의 업은 100년을, 하나의 공장은 10년을 내다봐야 한다는 철학을 가져라.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집념으로 갯벌을 메워 나가라”고 강조했습니다. 1963년 5월 동국제강은 부산 남구 용호동 일대 약 69만 4215㎡(21만 평) 규모 갯벌을 매립해 부산제강소를 세우는 데 성공합니다. 민간 기업 최초로 대규모 철강 공장을 건설한 것입니다. 단순 가공 생산에서 벗어나 국내 최초로 제철, 제강, 압연의 일관 생산 체제를 갖춘 공장이었습니다. 1954년 동국제강 창립 10년 만입니다. 1965년에는 50t 규모 국내 첫 고로(철광석을 고온으로 녹여 철을 만드는 설비)를 준공하기도 했습니다. 1967년에는 철강재 수출입 창구이자 주물·철골 생산 업체인 대원사를 설립하고, 1968년 철골 시공업체이자 환경오염방지업체인 동국건설을, 1971년에는 부산신철을 세웁니다. 한국 철강 산업사 최초의 기록은 첫 고로 가동(1965년), 전기로 가동(1966년), 후판 생산(1971년) 등으로 이어집니다. 동국제강의 도전은 한국 철강사에 빠질 수 없는 업적으로 평가됩니다. 사재 출연해 불교 진흥…조계사 앞 서점 내기도장 창업주는 불교계에서 현대 불교 대중화의 토대를 놓은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철강업으로 국가와 민족에 보은하고자 하는 바람이 불교 정신 확산의 의지로 연결됐습니다. 탄압과 전쟁으로 상처받고 먹고사는 것에 급급했던 사람들이 압축적인 경제 성장을 겪으며 인간성을 잃는 것이 아쉬웠던 그는 불교를 통해 정신과 물질의 균형을 이루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인쇄소를 설립해 경전을 쉽게 풀어낸 불서를 보급합니다. 1967년 조계사 앞 건물 아래층 공간에 ‘불서보급사’를 설립하고 첫 책으로 해안 스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을 펴냅니다. 이후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등을 묶은 불자 독송집, 초발심자경문 등을 펴내며 독자층을 넓혀갔습니다. 주인과 장소는 바뀌었으나 조계사 앞 불서보급사 간판은 그대로 남아 대중불교 운동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중 교화를 위한 그의 발걸음은 대원불교대학 등으로 이어집니다. 부처의 정신을 후대에 계승할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도심 안에서 불교를 생활화하고, 수행과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구상합니다. 이는 대중불교 운동의 산실인 대원정사 설립으로 이어집니다. 1970년 2월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본격적으로 대중 포교당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1973년 5월 대원정사가 설립되던 날 장 창업주는 “이곳의 문은 활짝 열려 있다. 진실로 부처님의 정신을 체험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1975년 사재 30억원 헌납…불교방송 탄생 불교방송 설립도 추진합니다. 1975년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씁니다. “본 소불자는 평생을 근면과 검약으로 일관해 얼마간의 사유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이 재산은 필생의 피와 땀의 대가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부처님의 은혜를 입은 제가 보답하는 길이 무엇인가 생각한 결과, 모든 사유재산을 낙후한 한국 불교의 중흥 사업을 위해 내놓기로 하였습니다.” 평생 근검절약해 모은 사재를 불교 중흥에 써달라는 서한과 함께 헌납한 사재는 대한불교진흥원 설립과 불교방송 탄생의 씨앗이 됩니다. 당시 30억원을 기부했는데 현재 가치로 약 5000억원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1975년 9월 9일 세상을 떠났고, 그의 꿈이었던 방송은 1990년 BBS불교방송 개국으로 이뤄집니다. ‘심조만유 일체유심조’. 장 창업주가 별세 직전 가족들에게 남긴 친필 메모의 내용입니다. 모든 현상과 세상만사가 오직 마음의 작용으로 만들어진다는 불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사업으로 보은하겠다던 청년의 마음은 한국 불교와 철강사에 깊이 남았습니다.
  • “사진 찍어요” 난입하더니 ‘경악’…여배우에 ‘기습 입맞춤’한 여성 [월드픽]

    “사진 찍어요” 난입하더니 ‘경악’…여배우에 ‘기습 입맞춤’한 여성 [월드픽]

    인도 출신 여배우가 여성 팬에게 기습 입맞춤을 당하는 모습이 온라인상에서 확산하며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최근 인도 힌두스탄타임스 등에 따르면 인도 배우 니키타 라왈은 지난 8일(현지시간) 인도 뭄바이에서 개최된 ‘Bright OTT & Style Awards’ 행사에 참석했다가 레드카펫에 난입한 팬에게 강제로 입맞춤을 당했다.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던 니키타에게 한 여성 팬이 휴대전화를 들고 다가왔다. 팬은 니키타에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고, 니키타는 흔쾌히 응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사진 촬영 뒤 니키타의 볼에 입을 갖다 대더니 돌연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당황한 니키타는 서둘러 여성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여성은 입을 떼지 않았다. 결국 이 여성은 경호원에게 끌려 나갔다. 니키타는 여성이 사라진 이후에도 충격을 받은 듯 입술을 감싸고 얼굴을 문질렀다. 이러한 모습이 담긴 영상은 인도는 물론 전 세계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공유됐다. 누리꾼들은 “이건 용납될 수 없는 명백한 성추행이다”, “선을 완전히 넘었다”라며 여성 팬의 행동을 거세게 비판했다. 니키타는 이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심경을 밝혔다. 그는 “많은 사랑과 응원을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여러분도 알다시피 저는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며칠 동안 인도 전역과 세계 각지에서 수천개의 메시지를 받았다”며 “저를 걱정해 주고 따뜻한 말로 제 곁을 지켜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여러분의 응원과 공감, 존중은 제 마음에 깊은 감동을 줬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인도 뭄바이 출신의 니키타는 배우이자 댄서로 활동하고 있다. 다수의 볼리우드 작품에 출연한 그는 남인도 영화계로도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 “266일 지났는데도 서류상 없는 사건”… 제주 초등생 투신 시도 은폐 의혹, 관련자 전원 고발

    “266일 지났는데도 서류상 없는 사건”… 제주 초등생 투신 시도 은폐 의혹, 관련자 전원 고발

    제주지역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이 지속적인 학교폭력을 견디다 학교 옥상에서 투신을 시도한 사건과 관련해 피해 학부모와 시민단체가 제주도교육청과 학교 관계자 등을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피해 학부모와 시민단체 ‘정치하는 엄마들’ 등은 21일 제주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폭력과 투신 시도 사건을 인지하고도 관련 절차에 따른 보고를 하지 않고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며 교육당국의 책임자 처벌과 교육부의 특별감사를 촉구했다. 이들은 지난해 가을 발생한 사건이 이날로 266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교육행정 서류상 공식 사건으로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언론을 통해 사건이 알려진 지는 14일째다. 법률대리인인 서성민 변호사는 고발 취지를 설명하며 “학교폭력으로 인한 학생의 투신 시도 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예방법이 만들어졌지만, 정작 유사 사건에서 교육당국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사례”라고 주장했다. 고발 대상에는 제주도 전·현직 교육감과 제주도교육청 및 서귀포시교육지원청 관계자, 해당 초등학교 전·현직 교장·교감 및 담당자 등이 포함됐다. 이들은 교육당국이 피해 학생의 투신 시도 사실과 학교폭력 정황을 인지하고도 학교안전업무 매뉴얼에 따른 보고와 신고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학교가 유선으로 사건을 보고했을 뿐, 학교안전업무 매뉴얼에 따른 학교안전사고 사안 접수·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학생 자살·자살 시도 관련 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서귀포시교육지원청 담당자들도 유선 보고를 통해 투신 시도 사건을 인지했고,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들 역시 피해 학생 어머니와의 면담과 소명 과정에서 사건을 인지했다”며 “모두가 사건을 명확히 인지했음에도 관련 매뉴얼에 따른 절차를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 “교육감은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사건 축소·은폐 관련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할 의무가 있지만 상당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며 “직무를 유기한 것으로 판단해 고발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피해 학부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건 당시의 상황과 현재까지 이어지는 아이의 고통을 직접 호소했다. 학부모에 따르면 피해 학생은 이주배경을 이유로 지속적인 괴롭힘을 겪었으며, 2025년 11월 학교 옥상까지 올라가 투신을 시도했다. 학부모는 “아이가 왜 창문 앞에 서게 됐는지 제발 알려 달라고 했다”며 “그래야 아이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은 이날 아버지의 대독된 편지를 통해 “친구들이 나를 싫어하고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다”며 “세상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고 당시 심경을 전했다. 해당 학생의 부모는 대독된 발언을 통해 “저를 괴롭힌 아이들이 선생님 앞에서 수십 번, 수백 번 사과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사과하면서도 선생님 뒤에서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위협하기도 했다”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정만영 막시말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도 “한 친구의 투신을 온몸으로 막아낸 아이에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가해 학생들의 집단 따돌림과 조롱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투신 시도와 사이버폭력, 2차 가해는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집단 괴롭힘”이라며 “사건 전반에 대한 특별조사를 즉각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시민단체 측은 특히 전날 제주도교육청이 발표한 재조사 계획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했다. 김숙영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는 “(앞서 20일 내놓은) 교육청의 대책을 보면 피해 학생을 위한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회복 조치보다 ‘제주교육 함께 회복 지원단’을 구성해 자문과 조정 역할을 하겠다는 내용이 중심”이라며 “피해 학생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조정이 아니라 안전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보호하고 무너진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즉각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또 교육청이 교직원들의 2차 트라우마 지원을 위한 예산까지 제시한 것에 대해 “교원에 대한 심리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지금 이 사안에서 가장 우선적인 보호 대상은 4년간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피해 학생”이라고 지적했다. 학교 측이 학생 분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보조 인력을 배치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은 데 대해서도 “분리가 어렵다면 어떻게든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교육행정의 책임”이라며 “보조 인력을 붙이겠다는 것은 피해 학생에게 현재 환경을 계속 감내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교육청의 자체 감사 계획도 도마에 올랐다. 김 대표는 “제주도교육청과 지역교육청, 학교 관계자들은 이번 감사의 대상이지 제3자가 아니다”며 “보고 체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 언제 사건을 인지했는지, 어떤 판단을 했는지, 피해 학생에게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육청이 스스로 조사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다면 국민들이 이를 신뢰할 수 있겠느냐”며 “교육부가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특별감사에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제주도교육청에 ▲피해 학생과 가족에 대한 공식 사과 ▲교육부의 전면 특별감사 ▲은폐 의혹 책임자에 대한 징계 및 수사 ▲피해 학생과 투신을 막은 학생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정서 지원 및 재발 방지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들은 “은폐로 지켜지는 것은 학교의 평판이 아니라 어른들의 책임 회피일 뿐”이라며 “사건의 진실이 온전히 밝혀질 때까지 끝까지 지켜보고 행동하겠다”고 밝혔다.
  • 전남광주동부권 교육계 원로들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섰다” 심경 토로

    전남광주동부권 교육계 원로들 “제자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섰다” 심경 토로

    전남광주 동부권의 교육계 원로들이 국립순천대학교 의과대학과 대학병원 설립을 촉구하고 나섰다. 퇴직 교육장과 교장 등 동부권 교육계 원로 24명은 19일 국립순천대 본부 앞에서 입장문을 통해 “국립순천대학교에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대학병원을 함께 건립할 것”을 정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요구했다. 이들은 전남광주 동부권 관내 교육지원청 교육장과 유치원·초·중·고등학교 교장 등을 지낸 뒤 퇴직한 교육계 원로들이다. 평생을 교단에서 보낸 교육계 원로들이 지역 현안을 두고 공동으로 목소리를 낸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어서 시민들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정부가 의과대학 신설 추진계획서 제출 기한으로 통보한 20일을 하루 앞둔 시점이어서 이들의 주장은 사실상 마지막 호소의 성격을 띤다. ◇“의사를 꿈꾼 제자들은 예외 없이 고향을 떠났다” 원로들은 의과대학 유치를 지역 간 이해관계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기회 문제로 규정했다. 이들은 “우리가 만난 제자들 가운데 의사를 꿈꾼 아이들은 예외 없이 이 지역을 떠나야 했고, 대부분 돌아오지 않았다”며 “이것은 통계가 아니라 우리가 교단에서 해마다 반복해서 지켜본 현상”이라고 밝혔다. 이어 “의과대학은 건물 하나를 세우는 문제가 아닌 지역의 아이들이 고향에서 배우고 일하며 뿌리내릴 수 있는가의 문제다”며 “교육자로서 우리는 이것을 기회의 문제라고 부른다”고 강조했다. ◇“행정·교육 떠난 자리에 의료까지 빠져나가면 지역이 비어 간다” 원로들은 전남도청과 도교육청, 전남경찰청이 서부권으로 이전한 지 20년이 지났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변화가 동부권 학교 현장에 미친 영향을 교육 현장에서 직접 지켜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행정이 떠나고 교육이 멀어진 자리에 이제 의료마저 서부권으로 집중된다면 이것은 지역 간의 다툼이 아닌 한 지역이 서서히 비어 가는 일이다”고 우려했다. ◇“동부권엔 권역외상센터도 닥터헬기도 없다···의대와 병원 함께 있어야” 이들은 동부권이 전남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고, 광양만권의 석유화학·제철 국가산업단지와 대형 항만을 품어 중대재해와 중증·응급질환의 위험이 상시 존재하는 곳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이 지역에는 권역외상센터, 닥터헬기 배치 의료기관, 결핵전문치료기관, 공공어린이재활의료센터가 모두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원로들은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은 함께 있을 때에만 제 기능을 한다”며 “학생을 가르치는 곳과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온전한 의학교육이 될 수 없다는 점을 평생 교육 현장을 지켜 온 우리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이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있다···교육자로서 참담” 원로들은 지난달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초광역 통합의료벨트’ 구상이 당사자인 대학과 지역 시민과도 상의 없이 결정되고 통보됐다고 비판했다. 서부권에는 의과대학과 대학병원, 의료 연구 기능이 나란히 배치된 반면 동부권에 담긴 것은 이미 있던 의료기관의 재편이었다는 설명이다. 최근 지역사회 갈등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지금 이 지역은 현수막으로 갈라지고 서로에게 책임을 묻는 말들이 오가고 있다. 아이들이 이 모습을 보고 있어 교육자로서 참담하다”며 “그러나 그 원인은 주민들의 다툼에 있지 않고, 기준 없이 진행된 절차가 사람들을 갈라 세운 것이다”고 질타했다. ◇정부·통합특별시에 4가지 요구 원로들은 ▲정부는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의 소재지를 인구 규모와 산업재해 위험, 중증·응급의료 수요 등 객관적 지표에 따라 결정할 것 ▲정부는 기한을 이유로 전남의 기회를 거두지 말 것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소재지를 판단하는 기준을 시민 앞에 공개할 것 ▲국립순천대학교에 의과대학을 설립하고 대학병원을 함께 건립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정원 100명은 지난 2월 이미 전남에 배정된 사안이다”며 “두 대학의 협의가 늦어졌다는 이유로 지역 주민이 그 기회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 원로들은 “우리는 거리에 나서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다”며 “그런 우리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이 문제가 우리 세대의 이해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생명에 관한 일이기 때문이다”고 힘줘 말했다. 이용덕 전 순천교육장은 “동부권이 요구하는 사항은 특혜가 아니라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을 제자리에 두라는 것이다”며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동부권 시민과 뜻을 모아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 “하닉 280층, 주식창 열때마다 손 떨려” 194만 유튜버도 물렸다 [내가샀다]

    “하닉 280층, 주식창 열때마다 손 떨려” 194만 유튜버도 물렸다 [내가샀다]

    SK하이닉스 주가가 고점 대비 55% 가까이 주저앉은 뒤 소폭 반등한 가운데, 194만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유명 유튜버 랄랄이 “280층에 갇혀 있다”며 주식 하락으로 인한 우울감에 빠져 있다고 밝혔다. 17일 방송가에 따르면 랄랄은 전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에서 “주식 하락장 우울증에 걸린 것 같다”고 말했다. 랄랄은 “280층에 사람 있어요”라는 가사가 담긴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주식창을 확인했을 때 좌절감을 느끼는 증후군을 겪고 있다”며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SK하이닉스 ‘고층’에서 하염없이 구조대를 기다리는 연예인은 랄랄뿐만이 아니다. 방송인 홍진경은 경제 콘텐츠 크리에이터 최고민수(박민수)의 추천을 받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매수한 뒤 급락장을 맞았다. 이후 그는 지난 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영상에서 최고민수를 만나 “선생님이 사라고 해서 샀는데 계속 빠진다. 왜 비쌀 때 사라고 했나”고 하소연했다. 코미디언 미자는 증시가 고점을 향해 가던 지난 6월 중순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SK하이닉스가 장중 270만원을 터치한 화면과 함께 “방금 SK하이닉스 들어갔다. 이번에도 잃으면 내 인생 주식은 없다”고 밝혔다. 이후 증시가 급락한 뒤 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공개한 영상에서 “주식 폭삭 망했다더니 어떻게 됐나”는 아버지 장광의 말에 “지금 털면 죽는다”고 답해 네티즌의 공감을 샀다. SK하이닉스는 지난 6월 22일 191만 9000원에 마감하며 종가 기준 최고가를 쓴 뒤 곤두박질쳤다. 글로벌 증시에 불어닥친 ‘메모리 반도체 고점론’ 우려와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청산 등의 여파, 실적 발표 이후의 ‘셀온’ 현상 등을 거치며 지난달 30일 132만 2000원까지 주저앉으며 고점 대비 54.7% 하락했다. 이후 소폭 반등해 140만~150만원 사이에서 맴돌던 주가는 지난 11일부터 4거래일 동안 15.8% 상승, 14일 164만 5000원에 마감하며 160만원선을 회복했다. 외국인이 3거래일 연속 SK하이닉스를 사들이는 동안 개인 투자자들은 앞다투어 ‘탈출’ 혹은 차익 실현에 나서는 모양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 3거래일(12~14일)간 SK하이닉스 주식을 3조 680억원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은 3조 1570억원 순매수했다.
  • 린, 이혼 후 母 만나 속내 고백…“갑자기 이혼한다고 찾아와”

    린, 이혼 후 母 만나 속내 고백…“갑자기 이혼한다고 찾아와”

    가수 린이 어머니와 만나 이혼 당시의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지난 16일 방송된 SBS 예능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속초로 여행을 떠난 린 모녀의 일상이 따뜻하게 그려졌다. 이날 속초에서 가보고 싶었던 지역 맛집들을 차례로 투어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린은 어머니를 향해 “근사한 바다 뷰 호텔로 모시겠다”며 서프라이즈 장소로 안내했다. 하지만 린이 야심 차게 준비한 이벤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로맨틱한 차박이었다. 린이 “약간 실망스러운 것 같은데”라고 장난스럽게 떠보자, 어머니는 “좀 그렇다”며 당황하면서도 솔직한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이어 차박을 위한 잠자리 세팅을 마친 두 사람은 밤바다를 배경으로 마주 앉아 그간 쉽게 꺼내지 못했던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린은 조심스럽게 “화장실에서 뜨개질하는 거 걱정되냐”고 넌지시 물었고,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이 자꾸 너 왜 그러냐고 물어본다”고 털어놓으며 속상했던 마음을 내비쳤다. 앞서 린은 ‘미운 우리 새끼’ 첫 출연 당시 집 안 화장실 공간에서 독특한 일상을 보내는 모습을 공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이에 대해 린은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걱정 많이 해주시더라. 화장실에 있는 거 너무 걱정하지 마라”라며 안심시켰고, 어머니 역시 딸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다독였다. 분위기가 깊어지면서 린은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나한테 서운한 거 없냐”고 물었다. 한참 동안 머뭇거리던 어머니는 마침내 “갑자기 이혼한다고 찾아와서”라며 말을 꺼냈다. 이어 “요즘 세상에 이혼이 흔하다고 해도 부모 마음은 다 똑같아서 그렇지 않다. 잘 살면 가장 좋겠지만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고 힘들었으면 혼자 결심하고 찾아왔을까 싶다가도...”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어머니의 눈물을 마주한 린은 “내가 앞으로 더 잘 살겠다”고 당차고 씩씩하게 위로를 건넸다. 이후 모녀는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확인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린의 명곡 ‘어머니의 꿈’에 얽힌 비화도 공개됐다. 린은 “그 노래 가사를 쓸 때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다. ‘엄마의 진짜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너희들 건강하고 행복한 거’라고 답하더라. 어머니의 꿈이 오직 나의 행복이라는 사실이 너무 짠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어 “어머니는 무조건 건강해야 한다. 이제 병원에 언제 가야 하냐”며 다정하게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알고 보니 어머니는 과거 간경화를 앓았던 과거가 있었다. 린은 “더 심해지면 간암으로 진행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조심해야 했는데 다행히 빨리 발견하게 됐다”며 “당시 엄마 병원을 쫓아다니면서 엄마가 아프고 약해진 모습을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날이 닥치니까 너무 당황스럽고 무서웠다. 엄마가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진심 어린 바람을 전했다.
  • ‘친일파의 버려진 후손’ 고백한 가수…“이완용 통역관이었다”

    ‘친일파의 버려진 후손’ 고백한 가수…“이완용 통역관이었다”

    배우 하영(본명 안하영·33)이 증조부 안상호(1872~1927)의 ‘친일 의혹’에 대해 공식 사과한 가운데, 앞서 스스로 ‘친일파 후손’임을 고백한 밴드 ‘양반들’ 보컬 전범선(35)이 가문의 내력을 알게 된 뒤의 심경을 회고했다. 14일 가요계에 따르면 전범선은 전날 유튜브 채널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 트라우마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지난 4월 유튜브 채널 ‘뮤지엄피’에 출연해 자신이 한국 최초의 신소설인 ‘혈의 누’의 작가이자 언론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이인직(1862~1916)의 5대손임을 밝혔다. 이인직은 대한제국 시기 일본 유학을 한 뒤 러일전쟁 당시 일본 해군 통역관을 맡았고, 이후 경술국치(1910년)를 전후해 이완용(1858~1926)의 통역관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친일 행적을 이어갔다. 대학 때까지 자신이 친일파 후손임을 몰랐다는 전범선은 고등학생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강원 횡성군 소재 민족사관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아이비리그 중 한 곳인 다트머스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데 이어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다트머스대 재학 시절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선교사와 독립운동가, 외교관 등으로 활동했던 호머 헐버트 박사에 대해 알게 됐고, 이후 귀국해 헐버트 박사 관련 활동을 하던 중 어머니로부터 가문의 내력을 알게 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어머니, ‘친일파 후손’ 숨겨오셨다”“트라우마 극복하려 역사서 집필”그는 “어머니가 ‘역사 공부하는 건 알겠는데, 네 출신 성분을 알고나 해라’라며 내가 ‘친일파 후손’이라고 말씀하셨다”면서, “‘네 조상은 이인직’이라고 하셨다. 이인직은 ‘혈의 누’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친일파인 것까지는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어머니가 ‘그냥 친일파가 아니라 대단한 친일파였다. 이완용의 통역관이었다’라고 하셨다”면서 “나라를 팔아먹는 그 행위에서 통역을 했던 사람이 내 5대조부, 외할머니의 증조부였다”라고 말했다. 전범선은 “어머니는 그때까지 그런 이야기를 나에게 안 하셨다. 부끄러웠던 거다”라면서 어머니의 말씀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다만 친일파 후손으로서 떵떵거리면서 산 것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이인직은 조선인 아내를 버리고 일본인 여성과 재혼해 살다 1916년 경성(서울)에서 사망했는데, 조선인 아내의 후손인 탓이다. 그는 “이인직은 일본인 여성에 새장가를 들며 저희 가족을 사실상 버린 셈”이라며 “혜택을 누린 건 전혀 없다. 어머니도 숨기고 살아오셨다”라고 덧붙였다. 홍대 인디신에서 활동하던 전범선은 다트머스대 졸업 후 귀국해 2014년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을 결성했다. 2016년 ‘녹두장군’ 전봉준에게 영감을 받아 만든 앨범 ‘혁명가’가 호평을 받았고, 이듬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수록곡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최우수 록 노래’ 부문을 수상했다. 현재는 밴드를 ‘양반들’로 재정비하고 활발히 활동 중이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역사서(전범선의 한국사 테라피)도 저술했는데, 친일파 후손으로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한 활동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 원하건 원치 않건 익숙한 고통… 삶과 죽음의 경계서 ‘서성이다’

    원하건 원치 않건 익숙한 고통… 삶과 죽음의 경계서 ‘서성이다’

    작가와 주인공 ‘슬퍼지지 않음’을 고민어설픈 위로 속 무너진 삶 다시 일으켜비루한 언어로 찾은 치유·회복의 과정 일기(日記)가 문학인 이유는 개인의 내밀한 고통을 보편적인 감각으로 바꿔내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그 자체가 치유와 회복의 과정이다. 작가의 아픔은 말과 글을 거치며 공동체의 감정과 연결된다. 소설가 장강명(51)의 신작 ‘서성이다’를 읽는 내내 심경이 복잡했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내를 곁에서 지키는 소설 속 주인공 안시찬은 거의 그대로 현실 속 장강명과 겹치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장강명의 아내는 지난해 갑작스럽게 쓰러진 뒤 교모세포종 진단을 받았다. 최근 두 번째 뇌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회복 중이라고 한다. 일간지 기자에서 성공한 소설가로, 쓰는 족족 작품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린 장강명의 삶은 멀리서 보기엔 더 바랄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삶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예측할 수 없이 찾아온다. 당연하게도. “나는 지금 슬픈 걸까? 그는 또 생각했다. 두려움, 답답함, 막연함은 이제 아주 잘 알았다. 매사에 의심이 많은 인간이기는 했지만 자신이 그런 감정들을 겪고 있다는 데에는 일말의 의구심도 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슬픔이란 뭘까?”(207쪽) 침상에 잔뜩 토사물을 뱉어낸 아내는 지금이 몇 월인지, 남편의 이름이 무엇인지 대답하지 못했다. 그대로 응급실에 실려 가 수술을 받기까지 있었던 일과 감정들이 숨가쁘게 지나간다. 너무도 갑작스러웠기에 슬퍼할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벌어진 이 일의 정체가 무엇인지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주인공 혹은 작가 장강명은 한참 ‘슬퍼지지 않음’의 이유를 고민한다. 그러다 아주 공교로우면서도 잔인한 일이 발생한다. 부부가 집을 구하고자 아내 명의로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다. 잔금을 치르려면 아내 통장에서 돈을 뽑아야 했다. 그런데 주인공은 아내가 어떤 비밀번호를 쓰는지 알지 못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사투하고 있는 아내를 옆에 두고 남편은 은행의 절차와 돈 문제를 고민해야 했다. 이보다 더 큰 아이러니가 있을까. “세상에는 사람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적어도 그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순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그렇게 서성이다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나아가게 되겠지. 원하건 원치 않건 미래가 그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결국 그는 미래와 타협하게 되리라. 희미해진 혹은 익숙해진 고통에 자신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트라우마를 통해 성장했다는 말을 지껄이게 될 거라 상상하니 구역질이 치밀어 올랐다.”(214쪽) 어설픈 위로가 그에게 몰려들었을 것이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문장이 작가의 귀에 맴돌았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우리가 전할 수 있는 건 오직 그뿐이다. 거대한 고통 앞에서 위안의 언어는 한없이 비루하다. 하지만 그것으로라도 무너진 삶을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다. 잔인한 진실 속에서 인간은 기어이 신을 찾는다. 자기가 스스로 ‘발명’한 신을. “인간은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보다 먼저 죽기 때문에 신을 발명한 것이다. 무언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빌고 싶어서. 그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는 기분을 얻고 싶어서. 기적을 주관하는 존재가 절실해서.”(221쪽) 장강명의 체험이 깊이 반영돼 있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소설이다. 안시찬이 겪은 감정의 상당 부분은 장강명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지만, 소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실제와는 꽤 다르다고 장강명은 밝혔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는 실제 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는 침상 앞에 선 채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도움 안 되는 소리를 지껄였다. 미안해, 내 잘못이야, 나 때문에 자기가 이렇게 됐어, 정말 사랑해, 정말 미안해…….”(18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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