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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문화유산 복원과 시대정신/서동철 논설위원

    [씨줄날줄] 문화유산 복원과 시대정신/서동철 논설위원

    문화유산을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각 시대의 흔적이 문화유산에 배어 있는 것의 의미도 작지 않다. 스페인 팔마의 마요르카대성당은 1229년 공사를 시작해 1578년 완공한 고딕성당이다. 20세기 초반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에게 내부 리모델링을 맡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가우디의 계단, 촛대, 설교대는 이제 성당의 중요한 자산이 돼 많은 관광객을 불러모은다. 체코 프라하의 성비투스대성당은 14세기 착공해 16세기 르네상스식 첨탑을 세우고 17세기 바로크식 지붕을 올린 이후 18세기 신고딕 형태를 갖추어 1929년 완공했다고 한다. 체코의 국민미술가 알폰스 무하(1860~1939)의 스테인드글라스 ‘성 메토디우스’는 600년 이상에 걸친 성비투스대성당 건설 공사를 마무리하는 의미가 있었던 듯싶다. 독일 마인츠의 성슈테판교회엔 마르크 샤갈(1887~1985)을 상징하는 푸른빛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구텐베르크의 고향인 마인츠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의 30차례 남짓한 폭격으로 도시 건물의 80%가 파괴됐다. 990년 지어진 고딕양식의 성슈테판교회도 이때 상당 부분 훼손된 것을 되살렸다고 한다. 샤갈은 1978년부터 이 교회 스테인드글라스 제작에 참여했는데 결국 그의 유작이 됐다. 남원 실상사도 생각난다. 이 절의 구심점은 9세기 창건 당시 조성된 철조여래좌상이다. 높이 269㎝의 여래좌상은 손모습으론 아미타여래지만 약사여래로 불린다. 여래가 모셔진 약사전은 2014년 해체보수 이후 이호신 화백의 현대적인 후불탱이 자리잡았다. 1000년이 넘는 문화유산에 21세기 우리의 모습이 담긴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2019년 대화재로 복원이 한창인 파리 노트르담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현대적 작품으로 바꾸려는 정부 계획에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앞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화재 직후 노트르담대성당의 외관도 현대적 감각으로 복원하는 계획을 밝혔다가 반대에 밀려 철회한 적이 있다. 아직은 문화유산 복원에 ‘원형 환원’ 주장이 강하지만, 오늘날의 시대정신도 담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 물따라 걸음, 자연과 이음, 신선의 놀음

    물따라 걸음, 자연과 이음, 신선의 놀음

    괴석과 폭포 환상적인 무릉계곡진경산수화 같은 풍경 걷기에 딱변산반도국립공원 직소폭포 절경4곡 분옥담 에메랄드 물빛 가득 늦더위가 기승이다. 삼복이 벌써 지났지만, 무더위를 식혀 줄 계곡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고 있다. 에어컨의 냉기가 아닌, 자연이 선물한 상큼한 바람이 가득한 계곡들을 꼽아 봤다.●아홉 굽이 아홉 절경… 괴산 화양구곡 괴산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널려 있는 곳이다. 그중 압권은 화양구곡(명승)이다. 찾는 이의 마음을 무시로 빼앗을 절경이 자그마치 아홉 곳이다. 청천면 화양천 주변 약 3㎞에 흩어져 있는 아홉 장소를 일컫는데 천천히 걸어도 1시간 30분이면 전 구간을 볼 수 있다. 1곡 경천벽을 시작으로 2곡 운영담, 3곡 읍궁암, 4곡 금사담, 5곡 첨성대, 6곡 능운대, 7곡 와룡암, 8곡 학소대, 9곡 파곶 등 풍경이 연이어 나온다. 피서철에는 일부 출입 금지 장소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다. 가족 단위 피서객에게 특히 인기다. 올해 물놀이 기간은 31일까지다. 괴산읍 내엔 홍범식 고가, 조선 후기에 제작한 목조여래좌상 등이 있는 개심사 등의 볼거리가 있다.●신선도 반할 무릉도원… 동해 무릉계곡 무릉계곡(명승)은 거대한 기암괴석과 장쾌한 폭포가 환상적인 피서지다.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4㎞ 정도 이어진다. 계곡 초입의 무릉반석부터 눈길을 끈다. 옛날 묵객들이 자연에 감탄하며 남긴 암각서가 곳곳에 보인다. 계곡을 따라 걷는 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수려한 풍경이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내려온 물이 만나는 쌍폭은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 준다. 인근 삼화동 무릉오선녀탕은 무릉계곡수와 지하수를 활용한 물놀이 시설이다. 장표림, 윤슬담, 가락지, 청옥담 등 야외 풀장 5곳이 갖춰져 있다. 무릉계곡 근처에 스카이글라이더 등 이색 체험 시설을 갖춘 무릉별유천지, 한적해서 매력인 한섬해변, 도째비골스카이밸리와 해랑전망대 등 볼거리가 많다.●청량한 풍류 여행… 함양 화림동계곡 ‘영남 선비 문화의 중심지’를 자처하는 함양에는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논하던 정자와 누각이 곳곳에 있다. 그중 화림동계곡은 수려한 풍경으로 우리나라 정자 문화의 진수를 보여 준다. 여기에 선비문화탐방로 2개 구간이 조성됐다. 화림동계곡의 백미인 거연정과 농월정을 잇는 1구간(약 6㎞)이 인기다. 계곡을 따라 숲길과 마을 길을 거닐며 거연정, 군자정, 영귀정, 동호정, 농월정 등 7개 정자를 만난다. 양쪽 끝에 있는 거연정이나 농월정, 어느 곳에서 출발해도 상관없다. 물이 흐르는 방향대로 걷고 싶다면 거연정에서 시작한다. 여름철에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정자와 계곡에서 쉬기만 해도 좋다. 함양 읍내의 상림(천연기념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이다.●신비의 숲… 부안 봉래구곡 변산반도국립공원 내변산 지역에 있는 봉래구곡은 약 20㎞에 이르는 하천 지형 아홉 곳을 이른다. 1곡부터 5곡까지 왕복 2시간 남짓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6곡부터 9곡까지는 아쉽게도 부안댐에 잠겨 볼 수 없다. 봉래구곡 여행은 자생식물관찰원과 실상사 터를 지나 5곡 봉래곡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변 암반에 새겨진 글자들이 감입곡류인 봉래곡의 아름다운 풍경에 힘을 더한다. 4곡 선녀탕과 3곡 분옥담은 지름에 비해 깊은 항아리 모양의 포트 홀이다.2곡 직소폭포는 변산반도를 대표하는 절경이다. 높이 약 30m에 이르는 폭포 앞에 서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여정의 끝이자 소담한 1곡 대소도 놓치기 아쉬운 비경이다.
  • “오늘부터 무료입니다” 전국 65개 사찰 문화재 관람료 폐지

    “오늘부터 무료입니다” 전국 65개 사찰 문화재 관람료 폐지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관리하며 방문객으로부터 ‘관람료’를 받아온 전국 65개 사찰이 4일 무료입장으로 전환했다. 이날부터 시작된 무료입장은 민간이 국가지정문화재 관람료를 감면하는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해당 비용을 보존하도록 한 문화재보호법 개정안 시행에 따른 것이다. 조계종과 한국불교태고종이 관람료를 공동 징수해 온 선암사와 그간 관람료를 징수했거나 징수가 원칙이지만 유예해 온 조계종 산하 64개 사찰 등 전국 65개 절에 이날부터 무료입장이 가능해졌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수도권 5곳, 강원권 7곳, 충청권 9곳, 경상권 22곳, 전라권 20곳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게 됐다. 사찰별로는 경기의 자재암, 용문사, 용주사, 신륵사 등 4곳과 인천의 전등사다. 강원권은 삼화사, 신흥사, 낙산사, 구룡사, 백담사, 청평사, 월정사 등 7곳이다. 충남은 신원사, 갑사, 동학사, 마곡사, 관촉사, 무량사, 수덕사 등 7곳이며 충북은 법주사, 영국사 등 2곳이다. 경북은 분황사, 기림사, 불국사, 석굴암, 직지사, 봉정사, 부석사, 수도사, 은해사, 불영사, 운문사, 대전사, 보경사 등 13곳이며 경남은 옥천사, 표충사, 내원사, 통도사, 쌍계사, 해인사 등 6곳이다. 대구는 용연사, 동화사, 파계사 등 3곳이다. 전남은 무위사, 태안사, 천은사, 화엄사, 연곡사, 송광사, 선암사, 향일암, 흥국사, 도갑사, 백양사, 대흥사, 운주사 등 13곳이며 전북은 선운사, 금산사, 실상사, 안국사, 내소사, 내장사, 금당사 등 7곳이다. 다만 시도지정문화재를 보유한 사찰 5개소는 관람료를 현행대로 징수한다. 문화재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시도지정문화재 보유사찰은 국고지원 대상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인천 보문사, 충남 고란사, 경남 보리암, 경북 희방사, 전북 백련사 등이다.
  • ‘순천 선암사 일주문’ 등 8건 보물 지정

    ‘순천 선암사 일주문’ 등 8건 보물 지정

    사찰의 출입구이자 사찰 영역의 시작을 알리는 일주문을 포함한 8건의 문화재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이 27일 보물 지정을 예고한 ‘순천 선암사 일주문’, ‘문경 봉암사 봉황문’, ‘대구 동화사 봉황문’, ‘구례 천은사 일주문’은 사찰의 정문으로 기둥만 일렬로 서 있는 독특한 형식의 문이다. 선암사 일주문의 경우 첫 건축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540년 중창됐다는 기록이 있고, 봉암사 봉황문은 1723년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일주문은 단칸 맞배지붕(건물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책을 펼쳐 엎어 놓은 형태의 지붕)과 다포식 공포(공포를 기둥 위와 기둥과 기둥 사이에 꾸며 놓은 양식)로 돼 있다. 동화사 봉황문은 인조 11년(1633년)에 처음 건립됐고, 천은사 일주문은 1723년 창건됐다. 두 일주문은 단칸 팔작지붕(전후좌우 네 면에 지붕이 있고 좌우 면에 작은 삼각형의 박공이 만들어지는 지붕 형태)과 다포식 공포로 돼 있다. 천은사 일주문은 석재로 된 문지방석이 주기둥 사이에 있는데, 이는 유일한 사례다. 문화재청은 ‘고성 옥천사 자방루’,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 ‘남원 실상사 편운화상탑’ 등 불교 문화재도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유일한 유교 문화재인 ‘상주 대산루’는 종갓집의 학문과 교류의 거점 역할을 한 곳으로 조선시대 지방 선비의 학문적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자료다.
  • 한글을 그림으로 30년 톺은 이호신 화백의 책 ‘화가의 한글사랑’

    한글을 그림으로 30년 톺은 이호신 화백의 책 ‘화가의 한글사랑’

    그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전북 남원 지리산 자락 실상사 마당을 그린 것이었다. 장독 하나하나를 실사하듯 찍어낸 그림이었다. 3년 전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처음으로 전모를 들킨 도봉의 영봉과 북한의 기경(奇景)이 펼쳐진다”고 상찬했던 ‘북한산과 도봉을 듣다-이호신 생활산수전’에서다. 북한산 자락을 그린 그림 중에는 크레파스로 별을 그린 다음 먹을 써서 농담(濃淡)을 달리 표현한 것도 있었다. 산자락에 드론 띄워 촬영한 듯 살아 있었고 힘이 있었다. 한국화가 이호신(65)은 본인의 그림을 ‘생활산수’라고 했다. 2010년 경남 산청 남사마을로 내려간 화가가 이번에는 그림이면서 서예이고, 서예이면서 그림인 새로운 예술양식 ‘한글 뜻 그림’에 자연과 생활에서 얻은 깨달음을 옮기는 작업을 결산한 책 ‘화가의 한글사랑’(뜨란, 288쪽 2만원)을 한글날 576돐에 맞춰 낸다. 한글에 담긴 내용을 이미지로 극대화하고 시각적 공감을 자아내는 데 30년 세월을 바쳤다고 했다. 작가는 한글을 ‘무명을 밝히는 세상의 빛’으로 규정하고, 표음문자인 한글로 언어가 함축한 뜻을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해 왔고, 이번 책에 모든 작업의 결실을 응축했다. 선조들의 언어표현이었던 문장(시), 글씨(서), 그림(화)과 민화 문자도(文字圖)의 재발견이다. 글의 내용에 따라 글씨체에 변화를 주거나 구성을 달리하고, 주제에 맞는 상징성과 이미지를 다채롭게 회화로 표현한다. 이미지의 극대화를 위해 화면의 구도는 종종 틀을 깨는 파격을 추구했고, 먹과 붓은 물론 화려한 색감과 크레용, 탁본 기법 등을 활용해 끝없이 일탈한다. 이렇게 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글자를 의미 자체로 해석하고 받아들여 공감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한글 뜻그림’은 보고 느끼고 나누는 글씨와 그림이라 할 수 있다.이 화백의 말이다. “민들레 꽃씨와 같은 한글이 세상을 향해 날아가 그 씨앗이 발아되고 꽃과 향기가 되어 강물처럼 오늘에 흐르고 있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한글 궁체와 판본체, 흘림체를 익혀 왔고, 한글 고체와 민체, 시각디자인 서체에도 관심을 쏟아 왔다. 한글의 다양한 얼굴을 만나기 위해 한글 전시회는 물론 관련 자료를 오래 살피고 수집했다. 전시회 작품 제목을 달면서도 개성있는 글씨체를 반영했고, 시화 등을 꾸준히 써왔다. 그렇게 하면서 말과 글에 표현과 표정을 입혔고, 생명과 얼을 불어넣어 아름답게 재탄생시켰다. 다시 작가의 말이다. “내 붓길에 한지는 매우 중요하다. 한지를 염색해 보려고 30년 전 전남 보성군 벌교 징광리에서 몇 달간 염색공부를 했다. 나는 우리 한지를 서화 용지로 단순하게 쓸 것이 아니라 오방색(五方色)이나 간색(間色)의 아름다움을 바탕지로 응용하고 싶다.”
  • 월주스님 조문 이어져…제자들 “오염된 연못서 청명한 삶 가꾸신 분”

    월주스님 조문 이어져…제자들 “오염된 연못서 청명한 삶 가꾸신 분”

    대한불교조계종 전 총무원장 월주(月珠)스님이 입적한 지 나흘째인 25일 전북 김제시 금산사 분향소에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이날 오전 같은 당 이수진, 이용빈 의원과 함께 분향소를 찾았다. 송 대표 등은 월주스님 영정 앞에 국화꽃 한 송이를 놓고 분향하고 나서 40여 분 동안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비공개 차담을 나눴다. 송 대표는 “월주스님은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에 타협을 거부하고 역사와 국민 편에 선 불교계 큰 지도자였다”며 “많은 핍박 속에서도 조계종을 개혁하고자 노력했고 ‘깨달음의 사회화’ 운동으로 국민의 큰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월주스님의 영면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민주당 김수흥 의원, 김종회 전 의원, 김지철 충남교육감 등도 분향소를 찾았다. 이날 오후에는 민주당 대권주자인 김두관 의원도 조문 행렬에 동참했다. 김 의원은 “이런 큰스님의 뜻을 잘 이어받아 좋은 세상 만드는 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뒤이어 분향소를 찾은 이낙연 후보도 “국민의 생활에 늘 가까이 있는 불교가 되도록 노력했고 종교 간 화합에도 애썼다”고 소회를 밝혔다.이날 월주스님의 제자들도 하나둘씩 모였다. 실상사 회주 도법스님, 금산사 주지 일원스님, 동국대 이사장 성우스님, 금산사 총무국장 화평스님이다. 도법스님은 “(큰스님은) 일생을 사시면서 저희에게 하신 말씀 가르침은 양적으로 굉장히 많다”면서 “핵심적인 부분은 ‘천지가 나와 더불어 한 뿌리이고, 만물이 나와 더불어 한 몸’이라는 세계관으로 살아오셨다”고 회고했다. 그는 “큰스님은 일생 당신이 서 있던 현장을 떠나신 적이 없다”며 “우리가 두 발을 딛고 있는 모든 오염물이 모여드는 연못에서도 오염되지 않도록 자기 삶을 청명하게 완성하고자 일생을 살아오신 분”이라고 했다. 이어 “전통 개념으로 보면 이분이야말로 ‘대승 보살행자’의 삶이라고 볼 수 있다. 매우 일상적으로 소박하면서도 절도가 있었다”고 기억했다. 금산사에서 스승과 많은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화평스님은 “스님이 저에게 했던 말씀 중에 기억에 남아있는 말씀이 있다”며 “저한테 (사회) 복지를 하는 것을 말씀해 주셨고, ‘보살행’이 바로 사회복지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항상 형식적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진심을 내서 진실한 마음으로 복지를 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는 그럼 삶을 살라고 말씀하셨다”고 덧붙였다. 일원스님도 “제가 많이 모시고 살았는데, 두 가지가 제 삶에 지침이 됐다”며 “‘복을 아껴라’, ‘안팎이 똑같다’, 이 두 가르침은 제 삶 속을 뚜렷하게 지탱하는 가르침”이라고 소개했다. 간담회에서는 월주스님이 이사장으로 있었던 ‘나눔의 집’ 사태와 관련해 경기도 행정조치, 언론 보도에 섭섭함을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었다. 성우스님은 “(나눔의 집 사태로) 굉장히 상심하셨다. 그래서 마음에 병을 얻었다.”라며 “선행을 많이 해왔는데, 언론과 경기도로부터 명예가 실추되는 일이 벌어졌고, 지병을 얻으셨다”고 안타까워했다.
  • [법인의 활발발] 코로나19와 귀촌 희망자

    [법인의 활발발] 코로나19와 귀촌 희망자

    신년 초에 해남에 사는 지인에게 안부를 물었다. 나도 요즘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코로나를 염려하며 생업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인사를 건넸다. 지인은 농사를 짓고 있는데 겨울 한 철 동안은 김장용 절임배추를 주로 하고 있다. 예년에 비해 절임배추는 주문량이 오히려 늘었고 김장배추는 약간 줄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보니 농촌분들은 코로나 때문에 입는 어려움이 비교적 적은 것 같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하는 현실에서 귀촌과 귀농을 모색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실상사와 인근 마을은 귀촌ㆍ귀농이 제법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98년 이곳 실상사에 장기 귀농학교가 개설되면서 삶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런 노력으로 실상사가 자리 잡은 산내면과 이웃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다. 이제는 이 동네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어느덧 고등학생이 돼 실상사에서 세운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모두들 어려운 시절이다. 지금 이런저런 이유로 귀촌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겸손하고 따뜻한 ‘훈수’를 전하고 싶다. 먼저 ‘나는 왜 삶의 터전을 농촌으로 옮기고자 하는가’에 대해 분명한 뜻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많은 돈을 벌고 소비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오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귀촌은 단순히 공간과 직업의 이동이 아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위한 결단과 전환이다. 농촌에서 벌어야 할 것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고 우정이고 이웃이다. 농촌에는 대대손손 뿌리내리고 사는 선주민이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귀촌자가 선주민과 갈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시골 인심이 왜 이래?”, “텃세가 심해서 못 살겠네” 이런 하소연과 분노가 섞여 있다. 곳곳마다 갈등과 불화의 사정은 다르다. 그 갈등의 원인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점도 있다. 간혹 사람들은 농촌에 대해 미리 어떤 나름의 그림을 그려 놓고 있다. 이른바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도 좋은 동네라고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하나의 확고한 답을 미리 정하고 있는 ‘답정너’다. 분명 물은 좋고 공기는 맑다. 그러나 일방적인 자기 생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런 좋은 인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착각이고 이기적인 속셈이다. 사람 관계는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또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일단 농촌에 내려왔으면 기존의 생각과 습관과 미련 없이 이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소유 가치에서 존재 가치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과잉의 소유와 소비의 악순환을 끊고 단순 소박한 일상에 만족해야 한다. 단순 소박한 삶은 단지 돈과 물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생각도 단순해야 한다. 몸은 부지런하면서도 일과 관계는 줄여야 좋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허둥지둥 사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소로가 ‘월든’에서 말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직한 사람은 열 손가락 넘게 헤아릴 게 거의 없다. 당신의 일을 둘이나 셋으로 줄이라. 단순하게, 소박하게, 수수하게.”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오려는 사람들은 또 과거의 기억과 습관에 사로잡혀서는 안 될 것이다. 귀촌한 사람 중에서는 과거의 기억과 습관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삶이 상처를 입고 살았든, 영광스러운 대우를 받고 살았든 그런 기억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비록 몸은 지금 농촌에 있을지언정 마음은 과거와 도시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자의식과 자만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의식이 만들어 내는 인정 욕구는 매우 위험하다. 마지막 당부가 있다. 자칫 과도한 이념과 신념에 사로잡혀 농촌 마을을 개조하고 계몽하려는 열정은 애초부터 접으시라. 농촌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지 자기 잣대로 만들어야 할 운동판이 될 수 없다. 농촌에 오시면 부디 하심과 공경, 배움과 성장의 자세로 살아가기 바란다. 이념과 목적에 사로잡혀 행하는 섣부르고 서투른 짓은 자기도 이웃도 괴롭게 한다. 농촌은 자연이다. 마음도 행동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는 시선과 몸짓이 자연이다.
  • [법인의 활발발] 코로나19와 귀촌 희망자

    [법인의 활발발] 코로나19와 귀촌 희망자

    신년 초에 해남에 사는 지인에게 안부를 물었다. 나도 요즘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듯 코로나를 염려하며 생업에 어려움이 없느냐고 인사를 건넸다. 지인은 농사를 짓고 있는데 겨울 한 철 동안은 김장용 절임배추를 주로 하고 있다. 예년에 비해 절임배추는 주문량이 오히려 늘었고 김장배추는 약간 줄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설명을 듣고 보니 농촌분들은 코로나 때문에 입는 어려움이 비교적 적은 것 같다. 그래서 코로나 상황이 장기화하는 현실에서 귀촌과 귀농을 모색하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실상사와 인근 마을은 귀촌ㆍ귀농이 제법 튼튼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98년 이곳 실상사에 장기 귀농학교가 개설되면서 삶의 전환을 꿈꾸는 사람이 모여들었다. 그런 노력으로 실상사가 자리 잡은 산내면과 이웃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둥지를 틀었다. 이제는 이 동네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어느덧 고등학생이 돼 실상사에서 세운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모두들 어려운 시절이다. 지금 이런저런 이유로 귀촌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겸손하고 따뜻한 ‘훈수’를 전하고 싶다. 먼저 ‘나는 왜 삶의 터전을 농촌으로 옮기고자 하는가’에 대해 분명한 뜻을 세워야 할 것이다. 많은 돈을 벌고 소비의 즐거움을 누리고자 오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귀촌은 단순히 공간과 직업의 이동이 아니다.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위한 결단과 전환이다. 농촌에서 벌어야 할 것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고 우정이고 이웃이다. 농촌에는 대대손손 뿌리내리고 사는 선주민이 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귀촌자가 선주민과 갈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시골 인심이 왜 이래?”, “텃세가 심해서 못 살겠네” 이런 하소연과 분노가 섞여 있다. 곳곳마다 갈등과 불화의 사정은 다르다. 그 갈등의 원인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런 점도 있다. 간혹 사람들은 농촌에 대해 미리 어떤 나름의 그림을 그려 놓고 있다. 이른바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도 좋은 동네라고 생각한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하나의 확고한 답을 미리 정하고 있는 ‘답정너’다. 분명 물은 좋고 공기는 맑다. 그러나 일방적인 자기 생각으로 규정하고 있는 그런 좋은 인심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착각이고 이기적인 속셈이다. 사람 관계는 다 자기 하기 나름이다. 또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일단 농촌에 내려왔으면 기존의 생각과 습관과 미련 없이 이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소유 가치에서 존재 가치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 과잉의 소유와 소비의 악순환을 끊고 단순 소박한 일상에 만족해야 한다. 단순 소박한 삶은 단지 돈과 물질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생각도 단순해야 한다. 몸은 부지런하면서도 일과 관계는 줄여야 좋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허둥지둥 사는 일을 뜻하지 않는다. 소로가 ‘월든’에서 말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정직한 사람은 열 손가락 넘게 헤아릴 게 거의 없다. 당신의 일을 둘이나 셋으로 줄이라. 단순하게, 소박하게, 수수하게.”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오려는 사람들은 또 과거의 기억과 습관에 사로잡혀서는 안 될 것이다. 귀촌한 사람 중에서는 과거의 기억과 습관의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삶이 상처를 입고 살았든, 영광스러운 대우를 받고 살았든 그런 기억을 붙들고 사는 사람은 비록 몸은 지금 농촌에 있을지언정 마음은 과거와 도시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자의식과 자만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런 의식이 만들어 내는 인정 욕구는 매우 위험하다. 마지막 당부가 있다. 자칫 과도한 이념과 신념에 사로잡혀 농촌 마을을 개조하고 계몽하려는 열정은 애초부터 접으시라. 농촌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이지 자기 잣대로 만들어야 할 운동판이 될 수 없다. 농촌에 오시면 부디 하심과 공경, 배움과 성장의 자세로 살아가기 바란다. 이념과 목적에 사로잡혀 행하는 섣부르고 서투른 짓은 자기도 이웃도 괴롭게 한다. 농촌은 자연이다. 마음도 행동도 자연스러워야 한다. 보고 싶은 대로 보지 않고, 보이는 대로 보는 시선과 몸짓이 자연이다.
  • [그 책속 이미지] 12년간 네 갈래 길에서 만난 지리산 풍경

    [그 책속 이미지] 12년간 네 갈래 길에서 만난 지리산 풍경

    지리산 자락에 있는 실상사의 도법 스님은 매일 길을 나선다. 첫 발걸음은 기왓장을 나란히 깔아 만든 절 앞마당 길에서다. 스님은 이 길을 ‘신비한 작은 길’이라 부른다. 스님은 직접 지은 동명의 시에서 “나인 그대, 그대인 나를 만난다”면서 “무엇이 부족한가. 이만하면 걸을 만하지 않은가”라고 웃는다. 그 모습, 마치 마당에 가득 핀 꽃 같다. 장엄한 산 풍경부터 사진에 프로젝터를 투사해 만든 몽환적인 모습까지. 실상사 좁은 길에서 토끼가 뛰노는 새벽녘 오솔길까지. 임채욱 사진가가 2008년부터 올해까지 찍은 지리산 풍경 사진 77점을 담았다. 종주길, 둘레길, 실상길, 예술길 4갈래 길에서 아스라이, 때론 또렷하게 지리산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법인의 활발발] 지리산, 큰 상징성이 두렵네

    [법인의 활발발] 지리산, 큰 상징성이 두렵네

    시월 한 달, 지리산에서 지리산을 보았다. 임채욱 작가의 ‘지리산 가는 길’ 사진전이 실상사 선재집에서 열린 것이다. 작가는 지리산을 모두 네 갈래로 보여 주었다. 지리산 종주길, 순례길, 실상사길, 예술길이다. 도법 스님은 전시회 개막전에서 지리산을, 광대무변한 품 안에서 뭇 생명의 삶과 정신이 조화롭게 숨쉬고 있는 ‘장엄한 아름다움’이라고 말했다. 특히 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평사리의 ‘부부 소나무’ 사진에 관람객들의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임 작가는 평사리 부부송에 남다른 메시지를 담았다고 한다. 이렇게 은은하고 순정한 아름다운 산길과 들길이 훼멸되는 일을 막기 위함이라고 한다. 지금 하동군이 추진하는 ‘알프스하동프로젝트’에 대한 작가의 저항인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스위스 융프라우 산악열차와 같이 지리산 형제봉 일대에 산악열차와 모노레일, 관광호텔과 편의시설을 짓겠다는 발상이다. 하동군은 후손들이 100년 이상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또 ‘돈’이다. 우리 시대가 추앙하는 신은 부처와 예수를 넘어 맘몬의 신이 분명하다.“그런데 스님, 어디까지가 환경 파괴일까요?” 전시장에서 ‘알프스하동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을 들은 한 관람객이 물었다. 잠시 내 생각이 멈칫했다. 환경의 보전과 파괴에 대한 정의와 범주가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직답을 하지 않고 대신 이렇게 물었다. “저기, 천왕봉이 보이지요? 만약 저 봉우리에 눈에 띄게 거대한 사찰이나 탑이 우뚝 자리잡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겠어요?” 그는 “볼썽사납기 그지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 “실상사는 어떻게 보이느냐”고 물었다. 실상사는 드물게 지리산 자락 아래 논과 밭에 둘러싸인 평지에 있다. “네, 산과 들과 절이 참 조화로워요. 평온하고 소박해요.” 이어 내가 말했다. “그럼, 실상사 이 자리에 대형 숙박시설과 놀이터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는 산의 아름다움이 죽을 것이라고 했다.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자연스런 어울림이 환경 보전이고 그 어울림을 깨뜨리면 환경 파괴가 아닐까요?” 지난 2018년 3월 환경부 장관 직속 환경정책제도개선위원회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환경적 적폐’로 선정했다. 나는 전문가들의 과학적 근거는 모르지만 오색케이블카가 자연스런 ‘어울림’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임은 안다. 그렇다면 어울림이란 무엇인가? 함께 곁을 나란히 할 때 서로 볼품없지 않고, 서로 빛남을 의미할 것이다. 나는 가끔 이웃들에게 말한다. 전망이 좋은 산하에 절이 들어서지 않았다면 지금 전국의 국토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를 묻는다. 대형 집단위락시설로 명산들이 제 모습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니 산과 절, 고운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개념 없는 국토의 난개발을 막은 것이다. 어울림은 조화이고, 공존이며, 서로 빛남이다. 그런데 하동군수는 산악열차와 지리산과 하동 평원이 매우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착시가 일어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눈앞에 ‘당장의 돈’이라는 색안경이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어느 날 제자들과 산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라! 눈이 불타고 있다. 눈의 대상이 불타고 있다. 눈과 대상의 접촉이 불타고 있다. 탐욕과 어리석음의 불길로 세상이 온통 불타고 있다.” 지금 하동군 관계자들이 딱 이런 꼴이다. 그들은 탐욕의 눈으로 지리산과 알프스가 어울릴 것이라는 판타지를 보는 것이다. 그런 판타지를 꿈꾸는 남원, 함양, 산청, 구례, 하동군에 시달린 지리산은 오늘도 불안해서 그만 극단적인 선택을 상상한다. ‘케이블카를 놓고/모노레일을 깔고/산악열차를 달리게 하겠다니/이제 나를 지리산이라고 부르는 것이 싫어/지리산, 그 이름만으로도 자랑스러웠는데/이 커다란 상징성이 끔찍해/사람들은 왜 나를 가만히 두지 않을까/정말이지 이런 몹쓸 생각도 해봐/내 안에서 자행되는 모든 개발이라는 파괴 앞에/그 탐욕 앞에 /이를테면 지리산인 내가 스스로 죽어버리는 것/그리하여 이 나라의 모든 산이 강이 바다가/다 같이 목숨을 끊어버린다면/그때쯤이면 사람들이 뉘우칠까 그리워할까’ (박남준, ‘지리산이 당신에게’ 중).
  • [법인의 활발발] 고사성어와 도토리묵

    [법인의 활발발] 고사성어와 도토리묵

    실상사 작은학교 1학기는 신영복 선생의 ‘강의’를 교재로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학생들은 공자에서 묵자, 노자에서 장자까지 그런대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감했다. 그런데 문제는 한자였다. 학생들이 한자를 모르니 개념을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심지어 확실하게 아는 한자는 본인의 이름과 월화수목금토일을 합해 열 개라고 한다. 나는 크게 웃었지만 학생들은 못내 마음에 걸린 표정이다. 9월 한 달, 고등 1학년생들과의 집중수업에 앞서 의견을 나누었다. 무엇을 배우고 싶으냐고 물으니 한문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 속내를 이해할 듯했다. “그럼 내가 먼저 공부 방식에 대해 의견을 내면 너희들이 듣고 우리 서로 합의하자.” 선생이라고 해서 학생들을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으니 적절한 동의가 필요하다. 나는 먼저 이렇게 말했다. 공부란 새로운 지식을 알아가는 것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극복할 힘을 기르는 것도 공부다. 그러니 힘들고, 어렵고, 낯설고, 하기 싫고, 자신이 없고, 관심사가 아니라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기꺼이’ 해 보는 자세가 중요하다. 힘든 몸을 이겨내야 하고, 지루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을 넘어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부라고 역설했다. 고맙게도 학생들은 한번 해 보겠다고 했다. 집중수업 과목은 ‘고사성어’. 입식이 아닌 좌식으로 오전·오후 6시간 공부하기로 했다. 사자성어를 낭랑하게 읽고 필사적으로 외우기로 했다. 놀랍게도 이 또한 동의했다. 그런데 한 가지 제안은 거절했다. 하루에 한 끼만 먹고 공부하자고 하니 그것만은 절대 못 하겠다고 한다. 마침내 수업 첫날을 맞았다. 모두 열두 명의 학생이 모였다. 교재는 고사성어 150개를 적은 종이 한 장이 전부다. 먼저 여러 번 낭독했다. 가정맹호, 격물치지, 측은지심, 빈자일등, 청출어람, 백아절현, 동병상련, 마부작침…. 도덕과 윤리, 정치와 사회경제, 철학 등의 뜻이 담긴 교사들을 그저 읽고 외웠다. 읽고 외우는 공부는 주입식이 아니라 사고의 정립과 창의력의 텃밭이다. 외우고 나서 고사성어의 대략적인 뜻을 설명해 주었다. 이어 학생들이 돌아가며 고사의 유래를 읽었다. 고사가 있는 책을 학생들에게 일부러 주지 않았다. 요즘은 모두 화면에 의존한다. 그래서 청각을 통해 경청하는 힘을 길러 주고자 하는 의도로 시도한 것이다. 고사 유래를 듣고 나면 학생들은 그 내용을 말했다. 내 의도가 어느 정도 통했다고 내심 자족했다. 온고지신이라고 했다. 그저 옛 문헌을 알고 기억하는 것은 공부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물었다. “가정맹호가 무슨 뜻이지요?” 술술 대답한다. “가혹한 세금은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국가의 세금은 그리 가혹하지 않습니다만 가정맹호가 곳곳에 있습니다. 그걸 생각해 보세요.” 학생들은 답을 하지 못한다. 내가 예를 들어 주었다. 오늘날 건물주의 도가 넘는 월세가 바로 현대판 가정맹호에 해당한다고. 학생들은 아하~ 하고 이해한다. 이렇게 진정한 고전 공부는, 지금의 나와 사회를 연결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 이후 학생들은 고사와 현실을 잘 연결해 나름 견해를 말한다. 가르치는 기쁨이 여기에 있다.작은학교 주변에 도토리가 많이 떨어졌다. 학생들에게 주워서 묵을 만들어 실상사 공동체 식구들에게 공양하자고 했다. 다들 찬성했다. 학생들이 틈틈이 도토리를 줍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날 정말 놀랐다. 도토리를 담을 상자 위에 이런 문구가 놓여 있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는 것의 쓸모, “평소에 밟고 지나갔던 도토리의 재탄생.” 대기만성(大器晩成), 큰 그릇은 오랜 시간 끝에 만들어진다, “도토리가 묵이 되려면 우리들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다다익선(多多益善),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4학년 일동. 그리고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법인 스님께서 제안해 주셨어요. 도토리를 모아 묵을 만들어 인드라망 식구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주에는 나와 학생들이 정성으로 모은 도토리를 가루로 만들 예정이다. 내가 만드는 법을 알려주면 학생들이 묵을 만들 것이다. 이런 사연으로 만들어진 묵무침을 먹으며 환하게 기뻐할 대중들의 얼굴이 그려진다.
  • 행동하는 평화… 4대 종단·시민들이 뭉쳤다

    행동하는 평화… 4대 종단·시민들이 뭉쳤다

    `비무장지대에서 남북 종교·시민단체가 함께 한반도 평화선언을.´ `전 세계를 상대로 한반도 전쟁 종식 촉구 서명운동을.´종교계와 시민단체들이 잇따라 한반도의 종전·평화선언을 위한 연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종교 시민사회단체 연대가 종전의 선언적 차원에 머물지 않고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져 눈길을 끈다. 지리산종교연대를 비롯해 지리산권 종교·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5일 전북 남원 실상사 선재집에서 한국전쟁 70주년 지리산생명평화기도회를 열고 “남북 종교시민사회단체들이 DMZ에서 한반도평화선언을 하자”고 제안했다. ‘지리산종교연대’는 종교 간 화해와 소통, 더불어 사는 생명평화세상을 목적으로 원불교, 개신교, 천주교, 불교 등 지리산 권역 4대 종단이 함께하는 모임이다. 지리산생명평화기도회는 2010년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지리산종교연대가 구례평화공원에서 시작해 올해로 11회를 맞이했다. 이날 기도회는 실상사를 포함한 지리산종교연대와 지리산생명연대, 지리산권시민사회단체협의회, 숲길 등이 참여했다. 생명평화를 기원하는 침묵기도로 시작해 원불교 장수교당 장연환 교무, 지리산 두레마을 김호열 목사, 천주교 마산교구 임상엽 신부, 실상사 주지 승묵 스님이 종교별로 초대의 말을 나눴다. 이들은 기도회에서 “정치적 이념과 견해의 비무장지대를 형성하고 우리 안의 정상회담을 열어야 한다”며 “남북 간 대화로 평화의 물꼬를 틔워 내자”고 제안했다. 이를 위한 세계 각국의 지지도 요청했다. 한반도 주변국과 세계의 지성과 양심에 대해 “한반도 평화를 위해 우리와 함께 말하고 행동해 달라”고 했다.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말처럼 세상은 모두가 연결된 존재이기에 한반도 평화를 지켜낼 때 세계 평화도 지속될 수 있으며, 한반도 평화는 곧 지구촌 모두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지름길이라는 주장이다. 참석자들은 제안에 앞서 발표한 생명평화 기도문을 통해 “70년 전 일어난 한국전쟁의 아픈 상처를 기억하며 이 땅에 더이상 전쟁의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도록 평화를 향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게 해 달라”고 발원했다. 한편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전 세계인들에게 한반도 평화선언 동참을 촉구하는 서명운동도 벌인다. 한국기독교회협의회(NCCK)를 비롯해 국내 7대 종단, 170여개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한반도종전평화캠페인 준비위원회(준비위)는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 조에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전 촉구 캠페인에 돌입했다. 이번 캠페인은 한국전쟁을 끝내려는 한반도와 세계 시민들이 연대해 공동행동을 벌임으로써 한반도평화선언에 대한 각국 정부 및 의회의 지지와 참여를 이끌어 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고자 기획됐다. 정전협정 70주년인 2023년 7월 27일까지 1억명 이상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게 목표다. 준비위는 “70년에 달하는 불안정한 휴전 상태에 기인한 불안과 증오, 군사적 긴장이 한반도 주민의 삶을 지배해 왔다. 이제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때”라며 한국전쟁 종식과 평화협정 체결, 핵무기와 핵 위협 없는 한반도와 세계 만들기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참석자들은 “휴전에서 평화로, 이제 우리가 전쟁을 끝내자”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불신을 거두고 압박과 적대를 멈춰야 한다”며 시민이 나서서 평화의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에서 시민사회 공동 요구를 담은 `한반도 평화 선언´(Korea Peace Appeal)에 동참할 수 있도록 전개한 서명운동 결과를 적당한 시점에 한국전쟁 관련국과 유엔에 전달하기로 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법인의 활발발] 헌 부대에 새 술을 담아 보니

    [법인의 활발발] 헌 부대에 새 술을 담아 보니

    얼마 전 지인들에게 한 장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어느 단체에서 결의한 발표문이다. 그리고 어떤 곳에서 결의한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물었다. 독자들께서도 다음의 내용을 보시고 짐작해 보시라. “생명살림의 운동은 이 시대 우리 사회 최고의 운동이다. 상황은 절박하고 시간도 촉박하다. 기후위기와 전면적인 생명의 위기는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가장 근본적이고 절실한 문제이다. 오늘의 기후 온난화, 생태계 파괴는 내일의 기후파탄과 종의 대절멸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뭇 생명, 지구 생명의 위기를 극복할 결정적이며 전면적인 대전환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 글을 받은 대부분의 지인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실상사에서 나온 결의문이라고 했다. 혹은 어느 환경단체나 대안적 마을 운동을 하는 곳에서 나온 것 같다고 했다. 결의문의 중심 말을 보면 출처를 그렇게 짐작할 만하다. 그런 답변을 보내 온 지인들에게 출처를 알려주었다. ‘2020년 2월, 전국새마을지도자 일동’.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는, 1972년 대통령령으로 설치·발족한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가 모태가 된 새마을운동중앙회에서 결의된 내용이다. 이 문건은 실상사에서 마련한 지리산 연찬회라는 공부모임에서 새마을운동 관계자가 발표한 것이다. 나와 인연한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 실로 놀랄 수밖에 없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의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믿지 않고 적대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들을 의심하거나 무시한다. 왜 그런가. 예부터 행한 행위들을 보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의심과 무시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업적과 한 시절의 영광을 존재의 의미로 지켜간다. 나름의 신념과 가치, 관행을 과감하게 바꾸려 하지 않는다. 바꾸는 일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가치와 방향, 사업의 전환은 자신들의 역사의 부정이요 왜곡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비록 빛과 어둠이 함께하고 있지만, 빈곤과 절망을 걷어내고 근대화에 나름 공헌한 새마을운동은 역사적 가치 평가를 받을 만하다. 그런데 박정희의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받은 그의 딸의 등장과 그에 기대고 있는 새마을운동의 퇴행이 안타까웠다. 당연 진보적인 사람들을 비롯한 곳곳의 사람들에게 새마을은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로 인식됐다. 그런 새마을운동이 이렇게 변신하고 있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결의문의 전문에 이어 실천항목을 보았다. 그중 하나가 ‘남을 탓하며 중앙과 지방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생명살림 국민운동을 펼치겠다’는 결의다. 진정성이 보였다. 또 유기농업과 유기농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고 비닐과 플라스틱 사용을 억제하며 지구온난화와 미세 먼지를 줄이는 운동과 함께 땅심과 밥상을 살려나가는 운동을 결의했다. 철학과 현장 실천이 조화를 이루고 있음이 보였다. 이런 결의와 실천이 놀랍기도 하지만 이렇게 변할 수 있고 변하려는 시도와 용기가 놀랍기만 하다. 새마을운동의 이런 변화와 전환은 대립과 대결의 한국 사회에 성찰과 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 지금의 자리가 불변의 진리임을 고집한다면 적대적 관계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각자가 성찰하고 변화할 때 서로를 보는 시선은 변할 것이고, 그 변화는 신뢰와 상호 존중의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다. 새롭다는 것, 그것은 과거와 관행에 머물지 않는 끊임없는 변신을 의미한다. 지금 새마을운동은 미래지향적 현재진행형의 새로움이다. 흔히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말 또한 관습적 사고가 아닐 수 없다. ‘헌 부대에 새 술’도 가능하다. 아니 ‘오래된 부대에 새 술’이라고 해야겠다. 이렇게 변신에 성공한다면 새마을운동은 ‘오래된 미래’로 도약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성찰의 시대, 전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새마을운동의 누리집에 들어가 보니 다음과 같은 말이 가슴을 울린다. “‘생명’을 아끼고 살리며 평등을 넘어선 ‘평화’ 인권을 넘어선 ‘공경’을 공부하고 실천하는 전 지구적 연대와 확산을 소망합니다.” 미혹의 문명을 넘어서려는 깨달음의 문명으로의 전환이다. 아! 정말 새마을운동 아닌가.
  • 쉬엄쉬엄, 길이 보인다

    쉬엄쉬엄, 길이 보인다

    삼정능선 골짜기 따라 매달린 칠암자 천왕봉 등 수려한 봉우리들을 한눈에 가장 높은 곳 상무주암, 번뇌 씻어내다올해는 부처님오신날이 두 번이다. 공휴일인 부처님오신날은 지난달 30일이었고 공식 법요식은 오는 30일에 열린다. 코로나19 탓에 빚어진 초유의 일이다. 지난 공휴일에 바이러스가 창궐해 나들이가 어려웠다면 생활 방역으로 접어들며 맞는 부처님오신날엔 명상하기 좋은 암자라도 찾는 것이 어떨까. 지리산에 ‘칠암자 순례길’이 있다. 지리산 자락에 매달린 일곱 암자를 이은 탐방로다. 찾는 이 적으니 거리두기야 자연스레 이뤄질 테고, 오랜 기간 쓰지 않았던 몸 여기저기에 긴장감을 잔뜩 불어넣을 수 있다. 울림과 여운이 남는 수행의 여정을 원한다면 이 길이 딱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칠암자 순례길’의 들머리는 도솔암이다. 한데 문제가 있다. 도솔암 가는 길이 비법정 탐방로란 것이다. 일 년에 딱 하루, 부처님오신날에만 탐방로의 문이 열린다. 평일에 올랐다가 걸리면 꽤 많은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도 꾸역꾸역 찾아가는 이들이 있는지,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산객들 간에 막고 피하는 싸움이 꽤 치열하다고 한다. 오지 말라고 하는 곳을 굳이 찾을 필요가 있을까. 꼭 이름만큼의 구간을 돌아야 한다는, 명분에 너무 집착하는 건 아닐까 싶다. 대부분의 산객들이 선택하는 코스는 경남 함양 영원사에서 올라 상무주암~문수암~삼불사~약수암을 거쳐 전북 남원 실상사로 내려오는 것이다. 평일에는 사실상 도솔암을 뺀 ‘육암자 순례길’인 셈이다. 칠암자든 육암자든 무슨 상관이랴. 순례길을 걷는 목적이 숫자의 정복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칠암자 순례길’은 지리산 안에서 또 다른 지리산을 보며 걷는 길이다. 등산로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면 이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지리산 주능선의 삼각고지(1480m)에서 북쪽 방향으로 작은 능선 하나가 갈라져 나왔다. 이게 삼정능선이다. 칠암자는 이 삼정능선의 골짜기를 따라 매달려 있다. 그러니 암자와 암자를 잇는 순례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천왕봉 등 지리산 주능선의 수려한 봉우리들을 한눈에 담게 된다. 들머리는 함양 마천면의 영원사(920m)다. 1971년 중건된 절집이지만 거쳐 간 스님들의 법명은 그야말로 전설적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항일운동사에 큰 공적을 남긴 백초월 스님 등이 이 절집에서 일정 기간 수행했다. 109명에 이르는 고승들의 면면은 이 절집에서 여태 보관하고 있는 안록(역대 큰스님들의 행장이 수록된 책자)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한다. 영원사 공양간을 돌아서면 오르막이 시작된다. 영원사에서 영원령을 넘어 상무주암에 이르는 1.8㎞ 구간 중에 1㎞가 넘는 구간이 오르막길이다. 이후에도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지만 이 구간이 가장 힘들다. 코를 땅에 박고 오르다 보면 땅에 바짝 붙은 봄꽃들이 슬그머니 꽃술을 내민다. 하나를 찾고 나면 다른 녀석들이 눈에 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면 사방에 봄꽃들이 무성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여태껏 꽃길을 걷고 있었다는 걸 자신만 모르고 있었던 거다. 상무주암은 순례길 암자 가운데 가장 높은 해발 1162m에 있다.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上)에 있는, 머무름이 없는 자리(無住)라는 뜻이다.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2년여를 머물며 “옷 세 벌과 바리때 하나만으로 지리산 상무주암에 은거했는데, 경치가 그윽하니 천하제일인지라 선객이 거주할 만했다”는 말을 남겼다고 할 만큼 전망이 빼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른 암자와 달리 상무주암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암자 입구에 사진촬영금지 팻말이 걸려 있다. 하지만 그걸 보지 못한 게 화근이었다. 낯선 객이 제집인 양 안마당을 헤집고 다니자 주지 스님께서 조용히 한마디 하신다. 사진 찍지 말라고. 멀리서 일부러 찾아왔다고 재차 읍소를 하니 단박에 나가라며 축객령이다. 따지고 보면 해발 1000m를 오르내리는 순례길의 암자들은 세상과 멀어지려 일부러 외진 곳에 터를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숨은 암자를 찾으려 하고, 결국 숨자고 들어선 곳이 외려 명소가 되는 희한한 역설이 생겨난다. 상무주암 주변에 홀로 명상에 잠길 만한 자리가 몇 곳 있다. 축객령으로 내쫓긴 이들에겐 그야말로 제격인 자리다. 눈앞에 펼쳐지는 지리산의 눈부신 봄 풍경 덕에 불편했던 마음 한 자락이 스르르 녹아내린다. 문수암은 커다란 바위 아래 터를 잡은 암자다. 순례길의 풍경을 말할 때 최고로 꼽는 이들이 많은 절집이다. 임진왜란 때 마을 사람 1000여명이 숨었다고 전해지는 천인굴과 늘 마르지 않는 석간수로 알려졌다. 문수암은 오랫동안 암자를 지키던 도봉 스님의 보시로 유명한 절집이다. 암자를 찾는 이와 스스럼없이 대화를 나누고 먹거리를 나누곤 했다. 한데 도봉 스님이 암자를 내려간 이후로 절집은 적막한 공간이 됐다.산객들에게 풍경으로 보시하는 최고의 절집은 삼불사가 아닐까 싶다. 독특하고 소박한 건물과 비구니 스님의 손길이 묻어나는 각종 소품들이 산객의 마음을 산뜻하게 보듬어 준다. 무엇보다 좋은 건 암자 앞 작은 뜨락에서 맞는 너른 풍경이다. 지리산으로 향한 미닫이문이 활짝 열린 듯하다. 삼불사에서 남원 땅에 속한 약수암까지는 2.3㎞로 다소 길다. 내리막길이긴 해도 너덜지대의 연속이어서 결코 만만하지 않다. 약수암은 시원한 샘물이 유명하다. 목각탱화인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보물 421호)도 고색창연하다. 종착지인 실상사는 다른 암자들에 비하면 대찰이다. 평지에 있어 은둔의 느낌도 덜하다. 볼거리는 많다. 경내 극락전 앞의 석등(보물 35호)과 2기의 삼층석탑(보물 37호)을 비롯해 딸린 암자인 백장암의 삼층석탑(국보 10호) 등 문화재가 수두룩하다.산행 끝에 둘러볼 만한 명소 몇 곳만 덧붙이자. 함양 오도재는 지리산 전망이 멋들어지게 펼쳐지는 곳이다. 조망공원이 따로 마련돼 있다. 이웃한 지안제는 사진 좋아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출사지다. 뱀처럼 휜 도로를 사진에 담을 수 있다. 글 사진 함양·남원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리산 칠암자 순례길은 영원사 쪽에서 시작하는 게 낫다. 영원령 등 오르막 구간도 일부 있지만 대체로 내리막 구간이다. 반대로 실상사에서 오르면 급경사가 이어져 체력 부담이 커진다. 도솔암을 제외한 거리는 얼추 8㎞ 가까이 된다. 소요시간은 6시간 이상 잡아야 한다. -약수암에서 실상사까지는 구절양장 임도를 따라 내려와야 한다. 한데 영 산행하는 맛이 나지 않아 숲으로 난 샛길로 내려오는 이들이 많다. 다만 표지판이 없어 길을 잃고 함양 쪽 도마마을로 내려올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차를 가져갈 경우 실상사에 주차를 하고 함양 택시를 불러 영원사로 가는 게 보통이다. 영원사 앞에 차를 대고 실상사에서 택시를 불러도 된다. 어느 쪽이든 택시비는 2만 5000원이다.
  • 이순신 장군 공 기리는 ‘해남 명량대첩비’ 탁본한다

    이순신 장군 공 기리는 ‘해남 명량대첩비’ 탁본한다

    1597년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1688년 세운 보물 503호 해남 명량대첩비 등 문화재 13건을 올해 탁본한다. 3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문화재위원회는 대한불교조계종 불교중앙박물관이 신청한 문화재 탁본 사업을 최근 허가했다. 불교중앙박물관은 올해 작업 대상으로 호남 지역 문화재 13건을 정했다. 모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비석과 석등, 자연 암반 등이 포함됐다. 곡성 태안사 광자대사탑비, 구례 윤문효공 신도비, 영암 엄길리 암각 매향명은 처음으로 탁본한다. 남원 실상사 수철화상탑비, 담양 개선사지 석등, 장흥 보림사 보조선사탑비,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등은 새로 탁본한다. 기존 탁본의 먹이 균일하지 않거나 일부 글자를 판독하기 어려워서다. 탁본 대상 13건 가운데 개선사지 석등, 광자대사탑비, 강진 무위사 선각대사탑비, 엄길리 암각 매향명은 훼손을 우려해 전문가 조언을 받기로 했다. 불교중앙박물관은 종이나 비석 따위에 새긴 글자를 가리키는 금석문 탁본을 매년 진행한다. 2013년부터 학술용역사업으로 전국 금석문 총목록 조사 및 총람집을 제작하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산 좋아하는 이라면 꼭 봐야 할 이호신 생활산수전 ‘북한산과 도봉을 듣다’

    산 좋아하는 이라면 꼭 봐야 할 이호신 생활산수전 ‘북한산과 도봉을 듣다’

    계단을 오르자 별이 뜬다. 조금 더 오르면 산봉우리가 보인다. 그리고 산자락이 눈에 들어온다. 계단을 다 올라 시선을 왼쪽으로 돌리면 북한산의 전모가 드러난다. 정민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처음으로 전모를 들킨 도봉의 영봉과 북한의 기경(奇景)’이 펼쳐진다고 상찬한 ‘북한산과 도봉을 듣다-이호신 생활산수전’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파출소 오른쪽 골목에 접어들어 옛 서울시장 공관 향해 오르다 보면 왼편에 돌올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재능문화재단이 일본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에게 설계를 맡겨 지은 JCC아트센터 1층에서 2층을 오르는 계단 위 담에 자리한 ‘북한산의 밤’이란 작품이다. 별이 반짝반짝 쏟아진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붉은별, 노란별, 흰별 등 온갖 빛깔로 빛난다. 현석(玄石, 검돌) 이호신(62) 화백은 도무지 빈틈이 없다. 세상에나, 크레파스로 별을 그린 다음 먹을 써서 농담(濃淡)을 달리 표현했단다. 기가 막히다. 산자락의 섬세함은 또 어떻고, 소나무 등 나뭇가지는 힘차고 생기가 돈다. 살아있다. 계절을 가늠할 수 없는 하늘색 덕에 산은 눈인지 운무인지 모를 여백을 오롯이 품고 있다.엘리베이터 타고 4층부터 올라가자. 앞의 ‘북한산의 밤’과 마찬가지로 올해 그린 ‘북한산과 도봉산’이 눈에 훅 들어온다. 마치 드론을 띄운 것 같다. 정릉 국민대 앞쪽에서 띄운 드론이 백운대와 저멀리 인왕까지 굽어보는 데 골골이 표현 안되는 것이 없다.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송추로 뻗어나간 계곡 좌우로 상장능선, 우이령 옛길과 오봉, 선인, 자운, 만장에다 멀리 사패능선까지 다 들어온다. 그리고 골골에 숨은 사찰이며 암자, 사람 사는 아파트며 건물까지 세세하다. 이 그림을 돌아가면 2014년에 그린 ‘사패산에서 본 도봉과 북한산’이 나온다. 앞의 그림이 담지 못한 뒷모습을 엿보는데 널따란 바위 위에 이호신 화백이 그림을 그리고 있고, 아웃도어를 폼나게 입은 등산객들이 스틱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키며, 이 화백의 북한, 도봉 산행에 앞장 선 시인 청산(聽山) 이종성의 모습도 보인다. 얼마나 적요(寂寥)해야 산이 들려주는 소리를 들을까 싶은데 이 시인의 작품 ‘사패산에서’가 멋들어진 글씨로 천지개벽하는 것 같은 하늘에 쓰여 있다.와! 감탄은 금물이다. 이제부터다. 뒤를 돌아보자. 북한산과 도봉산을 시원하게 조망한 큰 그림들이 주변에 죽 둘러 처져 있다. 그리고 다시 입구 쪽으로 나오면 이 모든 작업들의 밑바탕이 됐던 화첩에 들어간 몇 점이 유리 전시관 안에 자리하고 있다. 이 화백이 직접 연필로 봉우리 이름을 적고 봉우리 특징들을 갈파한 밑그림들이다. 3층으로, 2층으로 내려오면서 작품들은 조금씩 세세해진다. 나무나 풀, 사찰, 바위 등등이다. 그리고 1층 어둑한 전시실 안에 들어와 화초 몇 점 보고 자리에 앉아 동영상을 바라보는데 이 화백과 이 시인의 인터뷰, 그리고 대금 연주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번 전시회에 나온 작품 위주로 사계를 나눠 보여준다. 누구나 생각과 느낌이 다르겠지만 기자는 이 방법이 전시를 가장 오롯하게 느끼는 순서라고 생각한다. 이 화백은 2014년과 이듬해 한달에 한 번씩 서울에 올라와 이 시인과 함께 두 산을 다녔다. 그리고 지리산 자락 산청 집의 작업실에서는 밥 먹는 것 빼놓고는 매달렸다고 했다. 이 화백은 “붙어야 한다”고 했다. “산에 붙어야 산을 그리고, 그림에 붙어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문화유산에 붙어야 문화유산을 그릴 수 있다. 그리고 이왕에 시작했으면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경지를 개척하기 위해 열심을 다한다”고 했다. 옛 선인들이 그랬듯 시와 그림을 일치시키는 노력을 하면서도 오늘날 이 산에 깃들어사는 이들의 즐거움과 슬픔을 그림에 담는 것이 자신의 의무요 사명이라 했다.그의 작품을 미리 본 이들은 말한다. “제가 본 북한산의 풍광과 조금 다른데요.” 이 화백은 겸재나 단원의 진경(眞景)이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교유하고 느낌을 공유하는지 그 마음마저 담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해서 아웃도어 같은 알록달록함도 이 시대의 우리가 즐기는 산행 문화로서 그림에 들어가는 것이 생활산수, 또는 도서출판 다빈치가 펴낸 도록집 ‘북한도봉 인문진경’에 또렷이 드러난 개념이라고 했다. 이미 책을 많이 낼 정도로 필력도 빼어난 그의 말을 옮기면 “인문과 지리, 유산과 풍광을 시인은 쓰고 화가는 그렸다”고 했다. 한국화 화가인데도 빈센트 반 고흐의 말을 들려주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화가는 보통 사람이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을 간파해 일러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여성봉 바위에서 본 오봉과 북한산의 밤’ 역시 바위 바닥에 누워 바라본 풍광을 담은 것인데 사람들은 그 바위 앞에서 바라보면 그 장면 안 나온다고, 딴소리를 한다고 했다. 그가 멀리 산청에서 한달에 한번 상경해 산을 타고 내려가는 일정을 하게 된 것은 40년 서울살이 할 때 했어야 했던 일을 미룬 죗값을 한 것이라고 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이해를 구해 남들이 가지 못한 곳을 조금 빠르게 다녀와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화첩만 무려 13권이라니 얼마나 많이 그리고 그렸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돈도 안 되는 그림들”을 그린 뒤 “내 죽은 뒤에나 진가를 알아주면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그의 다른 작품들을 여럿 소장하고 있는 이화여대 박물관과 이배용 전 총장의 배려로 JCC아트센터 귀한 공간을 얻어 북한과 도봉을 그린 150점 가운데 겨우 40점만 내걸게 됐다.지독한 사람이다 싶다. 바닥에 엎드려 작업하고, 그러다 한 번 작품을 들어 펼쳐 보고 전모를 본 다음 다시 바닥에 엎드려 작업한다고 했다. 까마귀처럼 하늘을 빙 돌고, 다시 지상에 내려와 부분을 보는 경지다. 정민 교수는 이를 ‘대관소시(大觀小視)’라고 표현했다. 전북 남원 실상사에 있는 부처와 사찰, 주변 풍광을 모두 표현했는데 도법 스님이 그냥 떠나겠다는 그의 발길을 붙잡고 일주일만 더 있어 보라고 해 그랬더니 일주일 만에 벼락처럼 깨치듯 전체가 부분으로, 부분은 전체로 맥이 뚫려 일거에 작업했다고 했다. ‘북한도봉 인문진경’ 책을 짠 박성식 다빈치 대표는 “선생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산청 대원사 작품을 보고 직접 가서 장독대 숫자를 세봤다.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고 했다. 이 화백에게 그 얘기를 했더니 “쓸데없는 소리”라고 뚝잘랐다. 상투적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그는 우리 문화유산을 화폭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으니 그걸 잘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붓길이길 희망한다고 했다. 전시회 구경을 마치고 점심을 드는데 전북 정읍에 내려가 노모 모시며 농사 짓는 틈틈이 작업한다는 ‘영원한 토지 그림 그리는’ 박정렬(73) 화백을 만났다. 그의 거칠고 투박하며 끝이 뭉툭하게 돌아간 손가락 마디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이 화백의 그림이 어떤 점이 좋냐고 물었더니 그의 답이 이랬다. “하늘이나 나무를 보면 생명이 솟음치는 기운 같은 게 느껴진다. 생각대로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이 작품만 봐도 하늘에 영기(靈氣) 같은 게 느껴진다. 이 화백은 붓질을 한번에 긋는데 거기에 생명과 약동하는 기운이 있다.” 박 화백에게 꼭 보라고 권할 만한 작품을 꼽아달라고 하니까 도록집을 한참이나 꼼꼼이 뒤져 3층 계단 바로 앞의 ‘영봉에서 본 인수봉’을 찾아냈다. 지난 15일 막을 올려 내년 1월 31일까지 월요일과 성탄절, 설연휴만 빼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마침 북한산 형제봉 능선 아래 내처 내려가면 성곽길 나오고 조금 더 내려가면 전시관에 이른다. 북한과 도봉을 사랑하는데 아직 눈이 어두워 산의 전모를 발견하지 못한 이들이 이참에 눈과 귀를 확 떴으면 좋겠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부고] 엄기영씨 장모상, 최형열씨 장모상, 고광본씨 모친상, 문인석씨 모친상

    ●윤복희·윤보병(전 춘천고 교사)·윤미리·윤용병(실상사 살림위원장)씨 모친상, 엄기영(전 MBC 사장)·박승원씨 장모상, 5일 오전 10시, 춘천호반병원 장례식장 5호실, 발인 8일 오전 7시. 033-254-9103 ●최형열(화순군 부군수)씨 장모상, 6일 오전 5시,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 113호, 발인 8일 오전 8시. 010-9203-6403 ●고경자(고양 숲속자연어린이집 원장)·고성자·고안자(서울시청 주무관)·고광본(서울경제신문 선임기자)·고혜은씨 모친상, 6일 오전 6시, 정읍아산병원 장례식장 특101호실, 발인 8일 오전 7시. 063-530-6644 ●문인석(신촌 세브란스 병원 이비인후과 부교수), 문수영(한국건설기술연구원 국민생활연구본부 연구위원)씨 모친상, 조상현(삼성전자 종합기술원 전문연구원)씨 장모상, 길남현(도이치증권 감사실 실장)씨 시모상, 6일 오전 11시40분, 연세대학교 신촌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8시, 장지 포천 천주교 천보묘원. 010-2204-7305
  • [부고]

    ●고경자(고양 숲속자연어린이집 원장) 성자 안자(서울시청 주무관) 광본(서울경제신문 선임기자) 혜은씨 모친상 6일 정읍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7시 (063)530-6644 ●최형열(화순군 부군수)씨 장모상 6일 고려대 구로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8시 (010)9203-6403 ●윤복희 보병(전 춘천고 교사) 미리 용병(실상사 살림위원장)씨 모친상 엄기영(전 MBC 사장) 박승원씨 장모상 5일 춘천호반병원 장례식장, 발인 8일 오전 7시 (033)254-9103
  • 서울로 가을 나들이 온 김제 금산사 ‘천년의 문화‘

    서울로 가을 나들이 온 김제 금산사 ‘천년의 문화‘

    천년고찰 김제 금산사의 주요 유물이 서울서 불교 문화와 문화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서울 종로구 불교중앙박물관이 11월 30일까지 여는 특별전 ‘모악산 금산사, 도솔천에서 빛을 밝히다’에서는 대한불교조계종 17교구 본사인 금산사와 말사에 전해지는 유물 118점이 공개됐다.김제 모악산 금산사는 백제시대인 599년 무렵 자복사(資福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당시 흔적은 남지 않았다. 이후 통일신라시대 승려 진표율사가 이 절에서 출가했다는 기록이 있다. 국내 유일 삼층 법당인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은 국보 제62호로 지정됐으며, 이 절에는 꽃봉오리 모양 조각상인 노주(露柱), 고려 중기 승려인 혜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혜덕왕사 탑비, 오층석탑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도 10건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금산사와 말사 관련 유물 중 보물 9점, 유형문화재 8점, 등록문화재 1건 등이 포함됐다. 불상 중에는 2012년 익산 심곡사 칠층석탑에서 나온 금동불감(佛龕·휴대용 법당)과 금동아미타여래칠존좌상, 금산사 오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 보물 제421호인 실상사 약수암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근대 조각가 김복진이 석고로 만든 미륵여래입상이 있다. 박물관은 특별전과 연계해 보물 제1266호 진안 금당사 괘불을 20일부터 10월 4일까지 특별 공개한다. 괘불은 야외에서 법회를 할 때 사용한 대형 불화로, 금당사 괘불은 높이 8.7m, 폭 4.7m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법인의 활발발] 단군 할아버지가 좋아하실 일

    [법인의 활발발] 단군 할아버지가 좋아하실 일

    최근 수행처를 땅끝마을 대흥사 일지암에서 지리산 실상사로 옮겼다. 이 절과 인연이 깊다. 청년 시절 조계종 승가결사체 선우도량을 실상사에서 만났다. 이후 화엄학림이라는 공부 모임에서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존재들이 그물망으로 연결된 생명의 기적과 신비에 눈을 떴다. 실상사는 대안공동체 삶을 지향하고 있다. 이 절에서 소박하고 따뜻한 추억이 하나 있다. 일요일 아침 한 끼는 공양을 하지 않는 날로 정했다. 그런 결정을 내린 계기는 이렇다. 절 앞의 마을에 거처를 둔 공양주 보살님이 계셨다. 노보살님의 기쁨은 주말이면 찾아오는 손주들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그런데 일요일 대중들의 식사 준비를 위해 새벽부터 일해야 하는 처지였다. 이를 알게 된 절 식구들이 모여 궁리 끝에 일요일 아침 공양을 생략했다. 덕분에 노보살님은 토요일 늦은 밤까지 손주들과 오순도순 지내고 다음날 아침 늦잠까지 주무시게 됐다. 생각해 보면 그 노보살님에 대한 ‘배려’라는 말은 사실 염치없고 무지한 발상이었다. 타인의 고된 잠과 시간을 담보로 우리는 넙죽넙죽 밥을 얻어먹은 셈이다. 이와는 다른 씁쓸한 절집 공양의 기억도 있다. 어느 해 봄날이었던가. 오후 두 시쯤 가족으로 보이는 대여섯 명이 공양간에서 밥을 먹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절집 점심은 대개 11시에 시작해 오후 1시면 끝난다. 이런 사정을 말씀드리고 절 아래 식당을 찾으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대뜸 가족 일행 중 할아버님이 버럭 화를 냈다. “내가 돈이 없어서 여기서 밥을 달라고 하는 것인 줄 아시오. 절밥 좀 먹으려고 한 것인데, 언제부터 절집 인심이 이리 야박해졌소.” 아하! 이분은 절밥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조용히 말씀드렸다. “선생님, 여기는 큰 절인지라 매번 많은 사람이 밥을 먹습니다. 작은 절과 달라 공양 시간이 지나면 밥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공양을 담당하는 분들이 새벽 4시부터 음식을 준비하면서 하루 종일 노동의 강도가 벅차니 점심 이후 두 시간 정도의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렸다. 이런 설명에 다들 수긍을 하는데 할아버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절집 사람들은 자비심이 있어야 하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절집 인심도 이제는 옛날 말이네” 하며 혀을 차면서 발길을 돌렸다. 그때 새삼 ‘자비심’에 대해 생각했다. 자비심이 뭐지? 한자로 의미를 풀어 보면 사랑과 연민이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연민에 더 무게를 둔다. 먼저 이웃의 아픔에 공감이 있어야 사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동체대비(同體大悲)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맹자의 그냥 보기에는 차마 견딜 수 없는 마음, 불인지심(不忍之心)과 결이 같다. 이 때문에 연민은 당연히 내 이웃의 처지에서 시작하는 것이지 나의 상황에서 비롯하지 않는다. 절집의 자비심을 운운했던 분은 자비심을 말하기 전에 음식을 준비하는 분들의 노동에서 오는 ‘피로’를 먼저 헤아려야 했다. “한참 잠을 자야 할 새벽에 일어나 일하면 얼마나 힘들까” 하는 헤아림과 공감이 앞서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가 대비(大悲)에 해당한다. 그다음 대자(大慈)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 추억의 절집 밥을 먹고는 싶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시간을 배려해 기꺼이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리고 작은 마음을 보태는 일, 이렇게 대자대비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겠는가.요즘 우리나라를 ‘배달의 민족’이라고 부른단다. 전국 곳곳에 걸쳐 촘촘하고 빠르게 물건을 배달해 주고, 먹고 싶은 음식도 스마트폰으로 주문하면 신속하게 배달해 준다. 그런데 택배 기사들이 ‘택배 없는 날’을 요구한단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우리는 이웃의 위험과 과도한 노동을 담보로 편리함을 누리고 있지 않나를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시간, 공간, 사람은 삼위일체다. 쉴 시간이 주어져야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좋은 감정을 누린다. 불교 경전에는 돈 없이 보시하는 법이 있다. 조금의 불편에 자발적으로 동참한다면 이 또한 대자대비의 보시다. 배달의 민족은 홍익인간의 이념과 가치를 추구해 왔다. 사회적 합의로 ‘택배 없는 날’을 정해 ‘시간’을 보시한다면 단군 할아버지가 ‘개천절’보다 더 좋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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