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손과정
    2026-08-27
    검색기록 지우기
  • 한국 기업
    2026-08-2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
  • 신비롭고 우아한 ‘형태미’… 한자의 새로운 발견

    신비롭고 우아한 ‘형태미’… 한자의 새로운 발견

    한자 구성 요소 중 ‘모양’에 집중안진경·손과정 ‘서예’ 예술적 분석글자 하나 유래와 쓰임새 등 설명 봄 춘(春)자의 옛 글자를 보면 원래 초(艸) 아래에 어려울 준(屯)이 있고, 다시 그 아래에 해를 뜻하는 날 일(日)이 있다.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준’이다. 왜 봄에 어려움이라는 뜻이 포함돼 있을까. 준과 춘은 음도 비슷하지만, 의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초목이 막 생겨날 때의 모습을 한 이 글자에는 어려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한자(漢字)는 어떻게 예술이 되고 역사가 됐을까. 한문 번역가이자 서예사 연구자인 윤성훈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은 한자의 모양에서 형태미를 발견하고 3000년을 이어온 ‘문명의 무늬’를 소개한다. 한자는 모양(形)과 소리(音), 뜻(義) 이 세 요소로 이뤄져 있다. 그동안 한자의 소리, 뜻과 관련된 책은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이 책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적었던 한자의 모양에 집중했다. 알파벳이나 한글에 비해 한자는 많은 글자를 가지고 있다는 결함이 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한자가 가지고 있는 다채로운 형태미의 매력을 발견한다. 그는 “글씨들에는 크게는 한 시대의 정신이, 작게는 한 예술가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며 “처음엔 이국적이고 신비롭게, 나중엔 웅숭깊고 우아하게 보이는 한자”의 매력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한자 모양에 대한 학문으로는 고문자학과 서예론으로 나뉠 수 있다. 저자는 고문자학의 학문적 성과를 받아들여 한자 초창기의 역사적 배경을 밝히면서도 글자의 형태미를 집중적으로 연마했던 서예라는 미적 성취를 끌어와 함께 설명한다. 이 책은 2013년 저자가 출간한 ‘한자의 모험’의 내용을 두 배 가까이 늘려 출간한 것인데, 뒷부분에 서예사 책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안진경, 손과정 등 다양한 서예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덕분에 독자는 갑골문이나 금문이 쓰인 초창기부터 발전기, 원숙한 예술적 성취를 이룬 후기까지 한자의 역사를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다. 글자 한 자는 작지만, 그 유래와 어떻게 쓰이고 확장됐는지 파생되는 이야기는 깊고도 넓다. 가령 봄 춘에는 술의 뜻도 담겨 있는데, 시간을 견딘 술동이 속에서만 화학 작용으로 봄비 내리는 소리가 나듯 봄도 인고의 계절을 거쳐야만 만날 수 있다는 뜻이 담겼다. 저자는 또 참 진(眞) 자에 담긴 길고 긴 여정을 톺아보며 안진경의 글씨를 분석한다. 그는 “안진경이야말로 역사상 최초로 자기만의 얼굴을 가진 글자를 선보인 서자(書者)”라고 칭송하는데, 표준이 전제된 가운데 이 세계 밖, 즉 지금 여기가 아닌 곳에서 온 요소를 녹여야 강렬한 개성이 탄생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자의 모양은 계속 변해왔다. 초서의 탄생은 글씨가 왕의 위업을 기리는 도구에서 벗어나 개인의 예술 작품으로 가능성을 확장한 혁명적 사건이다. 남북조시대를 끝내고 거대 통일제국을 이룬 당나라는 왕희지의 행초서로 대표되는 남조의 붓글씨와 북조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운 새김 글씨 전통을 종합해 해서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저자는 해서 이후 거대 서체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한자의 모양은 개인적, 예술적 창조의 결과물이 됐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소개하는 한자에 담긴 언어의 역사, 인간 사회의 문화, 문명의 역사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한자의 다채로운 무늬를 만나게 된다.
  • 중국서예론 문선/곽노봉 엮어옮김(화제의 책)

    ◎서예의 이론과 기법·역사적 연원 등 정리 서예는 점과 선을 통해 작가의 정감을 표현하는 추상예술이다.때문에 전문적 안목,즉 서예에 관한 이론을 갖추지 않으면 옥석을 구분하기 힘들고 서예의 발전도 기대하기 어렵다.현재 서예를 배울 수 있는 곳은 개인서실과 문화센터,서예관,대학교의 서예과 등.그러나 이중 어느 곳도 서예이론을 중시해 가르치지 않는다.기껏해야 도제식 교육을 답습하는 정도다.「중국서예론…」은 바로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서예의 이론과 기법·역사적 연원·비첩고증·서예감상 및 서예가의 실제체험 등을 다룬 현대 중국의 서예관련 논문 21편을 싣고 있다.당나라의 유명한 서예가인 손과정과 안진경의 서예이론을 비롯,달중광이 지은 청나라의 서예이론서 서벌,운필법의 핵심인 질삽,서예감상법,서체연구의 자료가 되는 비각과 비첩,서예의 다섯가지 요점인 관·임·양·오·창에 관한 것 등 다양한 내용이 서예의 깊은 멋을 느끼게 한다.동문선 1만8천원.
  • 광개토대왕비/무분별한 탁본으로 비 마모

    ◎문화재연,길림성 집안박물관장 보고서 입수… 훼손과정 공개/1880년 발견직후 이끼 제거위해 불/훼손된 자에 엉뚱한 글자 새겨넣기도/일제,역사왜곡위해 두차례나 강탈 시도 광개토대왕비 발견이후 지금까지 훼손 과정 및 보호관리 상황을 종합적으로 담은 연구보고서가 국내 학계에 처음으로 공개됐다.최근 발간된 연간 학술지 「문화재」제25호에 실린 「호태왕비의 보호와 현 상태」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현지전문가인 중국 길림성 집안박물관 경철화부관장이 썼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이 보고서는 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말 집안현지에서 고구려문화유적의 보존상태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입수한 것이다.보고서에 따르면 광개토대왕비는 1880년을 전후,그 존재가 세상에 다시 알려지면서 불질러져 치명적인 손상을 입은 것으로 돼있다.이후 무분별한 탁본과 석회를 사용한 잦은 글자 보수로 원형을 크게 잃었는데 발견 당시 표면에 이끼가 두껍게 끼어 있어 탁본을 뜨기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고 전한다.그래서 마분을 비석표면에 두텁게 바르고 말린다음 불을 질렀기 때문에 비면 곳곳이 불에 튀고 들뜨는 큰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불에 그을려진 시기는 비석과 이웃해 살던 초천부(1847∼1918)라는 사람이 1883년 쯤 처음 탁본을 시도한 직전으로 추정했다.탁본은 초천부의 뒤를 이은 아들 초균덕 등 여러사람에 의한 맹목적이고 무분별하게 장기간 행해진 것으로 알려졌다.그 결과 성근 각력응회암 석질의 비석이 불에 튀어 갈라진데다 자주 두드리는 바람에 글자의 모서리가 갈라지고 부스러져 심지어는 탈락된 것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비문의 판독이 점차 어렵게 되자 탁본을 하려는 사람들은 1900년께부터 해마다 석회를 발라 보수를 해왔다.그 상황을 경부관장은 『문자가 똑똑하지 않은 곳은 석회로 채우고 그려넣어 비문가운데 일부는 필획이 많아지거나 적어졌고 심지어는 거짓글자(위자)를 적어넣은 것도 있다』고 밝혔다.이어 『1905년 일본인 시라도리 히코요시가 이 비석을 일본으로 실어갈 것을 제안한 일도 있다』고 털어 놓은 그는 『1907년 이후에는 일본침략자들이 한술 더 떠서 군함으로 이 비석을 실어가려 했으나 국민들의 격렬한 반대로 실패했다』고 적고있다. 광개토대왕비는 1961년 중국 국무원으로 부터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된뒤 부터 본격적으로 보호되었다.1962년 집안현 문물보호관리소는 위험한 상태에 있던 이 비석에 대한 전면적인 현지조사를 실시,그 점검결과에 따라 중국 문화부 문물국은 1964년 「호태왕비 화학보호처리사업소조」를 구성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1년동안에 걸친 모의실험에서 자신감을 얻은뒤 1965년5월부터 50여일에 걸쳐 보존처리작업을 벌여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1974년에는 비석의 기초를 튼튼히 하기위해 가로 세로 8미터의 시멘트 명대를 설치했다.또 이 보고서를 통해 비석에 대한 화학약물 재처리와 함께 1979년에는 새로 갈라진 틈을 접착제로 고정시키는 등 보존처리를 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의 비각은 1982년에 착공,1983년에 마무리됐는데 1928년도에 처음 세웠던 비각은 몇차례 보수를 거듭했지만 계속 기울어져 헐어버린 것으로 기술됐다.그리고 지금도 걸려있는편액「호태왕비정」은 첫번째 비각을 세울 당시인 1928년 현지사 유천성이 썼다는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