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혁백 칼럼] 민주당, 독일 사민당에서 해법 찾아라
8·17 전당대회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내에는 ‘외연 확장 전략’과 ‘핵심 지지층 결집 전략’ 간에 선거전략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 이는 1차 대전 이후 독일 사민당이 당면했던 딜레마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노동계급정당인 사민당의 선거 참여는 보통선거권하에서 수적 다수인 노동계급이 권력을 장악할 것이라는 낙관론에 근거하고 있었다. 사민당은 제1당으로 올라섰으나 정권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거듭된 선거를 통한 집권 실패로 사민당 내부에선 선거전략 투쟁이 벌어졌다. 사민당의 핵심 지지층은 순수 계급정당 전략을 고수했다. 이들은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순수 단순 생산직 노동자가 다수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낙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민당은 다수가 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갈수록 노동계급의 비율은 줄어들어 영구적 선거 패배에 직면했다.
이에 사민당은 순수 계급전략을 버리고 중산층을 포섭하는 미텔 클라세 전략을 채택했다. 미텔 클라세 전략은 노동계급을 단순 생산직 노동자로 한정하지 않고, 한줌의 착취계급을 제외하고는 모두를 노동계급으로 재정의하는 데서부터 출발했다. 생산직 임금노동자뿐 아니라 예술가, 문필가, 시인, 과학자와 같이 ‘머리로 하는 노동자’, 화이트칼라 노동자, 주부, 연금생활자, 학생과 같은 ‘국민’까지 노동계급으로 재정의해 인구의 절대적 다수를 노동계급의 범주에 포함시킴으로써 사민당의 계급기반을 확대해 선거 승리를 도모하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텔 클라세 전략도 사민당에 집권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산층의 지지기반을 확대하려는 전략은 핵심적인 노동계급의 이탈과 지지 감소를 가져와 ‘선거 트레이드오프’를 발생시켰기 때문이다.
사민당은 1959년 바트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채택하면서 선거정치 딜레마를 극복할 수 있었다. 사민당은 계급정당을 탈피하고 국민의 정당으로 탈바꿈했다. 마르크스주의와 결별하고 시장경제를 전면 수용했다. 케인스주의를 수용해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아닌 ‘소비의 국유화’로 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실현했다. 이후 노동계급 정당인 사민당은 국민에 호소하는 정당으로 거듭났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민주당의 ‘핵심 지지층 전략’ 대 ‘외연 확장론’ 간의 경쟁은 독일 사민당의 순수 계급 전략 대 중산층 계급 전략 간의 경쟁과 닮았다. 핵심 지지층 전략은 강성 권리당원의 결집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당원이 주인”이라는 당원 주권론은 민주당의 지지 기반과 정체성을 당원으로 좁히는 결과를 가져온다. 반면에 대선 승리를 위해 중도층을 품어야 한다는 외연 확장론은 국민정당을 지향한다. 한줌의 내란세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주권자인 국민이기 때문에 민주당은 이 모두를 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연 확장론은 단순히 중산층을 포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구 보수세력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국민 정당의 모습을 갖추고 재산세 완화, 상속세 개편 논의를 통해 민주당이 재산몰수 좌파정당이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외연 확장론은 독일 사민당의 미텔 클라세 딜레마를 피하기 힘들다. 첫째, 가장 목소리가 크고 조직력이 강한 강성 권리당원은 새롭게 쟁취한 당원주권을 쉽사리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외연 확장론은 강성 당원들의 민주당 정체성의 기준을 충족시키기 힘들 것이다. 만약 외연 확장론이 강성 당원들을 온전히 설득해 내지 못한다면 산토끼 잡으려다 집토끼를 놓치는 트레이드 오프에 직면할 것이다. 핵심 지지층 올인 전략은 민주당을 ‘크고 단단한 소수정당’으로 전락시키는 반면 외연 확장 올인전략은 위기상황에서 당을 지탱해 줄 콘크리트 지지층을 와해시킨다.
이러한 트레이드 오프를 극복하고 민주당이 헤게모니 정당으로 발전하기 위해 필요한 전략은 새로운 이념적, 정책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것이다. 루스벨트의 뉴딜 무지개 연합, 스웨덴의 계급타협 연합과 같이 청년실업자, 플랫폼 노동자, 성차별 여성 등 다양한 소외계층을 연대와 연합을 통해 포용함으로써 민주당을 ‘국민 모두의 정당’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