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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은행 금리 2배 주는 ‘기본예금’ 필요… 저신용자 다시 설 수 있게 도와야죠”

    [단독] “은행 금리 2배 주는 ‘기본예금’ 필요… 저신용자 다시 설 수 있게 도와야죠”

    신용 하위 20~30% 약자 대상청년미래적금은 15.8% 효과서금원 역할 은행까지로 확대 “신용평점 하위 20~30%를 대상으로 시중은행 금리의 2배를 주는 ‘기본예금’ 도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중저신용자에게 대출해주고 돈만 갚으라 할 게 아니라 다시 일어서게 도와주자는 취지에서요.” 김은경(61) 서민금융진흥원장 겸 신용회복위원장은 11일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현재 1년 만기 은행 예금 금리가 연 2% 중후반대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최소 5%대 이상의 금리를 주는 상품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예컨대 1970~80년대 서민층에 두 자릿수 이율로 인기를 끌었던 재형저축(근로자 재산형성저축) 같은 상품이다. 소득, 자산, 신용등급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적정한 금융 서비스를 받는 ‘금융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게 평소 김 원장의 지론이다. 그는 기본예금 아이디어를 쪽방촌 주민들과 대화하다 얻었다고 한다. 김 원장은 “이달 생계비계좌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쪽방촌 주민들은 수중에 돈이 얼마간 생겨도 압류될까 우려해 통장에 넣지 못하고 장판 밑에 넣어뒀다 도둑맞기 일쑤”라며 “이런 사람들에게 돈만 갚으라 할 게 아니라 어떻게든 돈을 모으고 일어설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취지에서 현재의 정책대출과 정책보증 표현 역시 ‘기본대출’, ‘기본보증’ 등으로 수정하자고 그는 제안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 시절부터 주창해온 기본소득·기본사회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김 원장은 “서민들을 위한 은행 역할까지 서금원이 나서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서금원은 서민들을 위한 햇살론, 미소금융 등 대출지원과 보증을 주력으로 하는 기관이다. 서금원은 오는 6월 청년 자산형성 상품인 청년미래적금 출시도 준비하고 있다. 청년미래적금은 은행 금리 연 5%를 가정했을 때 정부 기여금까지 고려하면 최대 15.8%의 적금에 가입하는 효과를 낼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청년미래적금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에 투자하는 게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와 관련 김 원장은 “자산 관리는 특정 종목에 꽂혀서 파고 들어가기보다는 분산이 중요하다. 이때문에 청년에게 ‘비빌 언덕’이 될 예·적금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금원을 찾는 고객들은 대부분 1금융권 상품 이용이 어려운 이들이다. 김 원장은 “은행의 대출 총량은 커졌지만 저신용자에게 문턱은 여전히 높다”고 했다. 대부업조차 이용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서금원이 취급하는 불법사금융 예방대출 한도도 현재 100만원에서 120만원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김 원장은 봤다. 이를 위해 서금원은 재원 확보에도 주력할 방침이다. 지난달 2일 취임한 김 원장은 한국외대 법학과 출신으로 2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2020년~2023년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을 지냈다. 이번 정부 출범 당시 정책 밑그림을 그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활동했다.
  • “설탕 중독, 국가가 개입할 때”… 해외선 일부 성과, 물가는 부담

    “설탕 중독, 국가가 개입할 때”… 해외선 일부 성과, 물가는 부담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추진 의사를 밝힌 이른바 ‘설탕 부담금’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촉구에 힘입어 영국, 멕시코 등 120개국 이상이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시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물가 상승 우려와 산업계의 강한 반발로 수차례 무산된 바 있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선 지금이 도입 적기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윤영호 서울대 건강문화사업단장(의대 교수)은 “국민 건강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선언한 대전환”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설탕의 중독성은 마약보다 강하다는 보고가 있을 정도”라며 “개인의 의지에만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시스템으로 개입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국형 설탕 부담금 도입을 둘러싼 정책 방향과 논란을 Q&A 형식으로 짚어 본다. Q. 설탕 부담금은 어떻게 걷나. A. 음료의 부피(㎖·ℓ)당 당 함량(g·㎏)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방안이 유력하다. 예컨대 100㎖당 설탕이 5g 미만이면 300원, 5~8g이면 500원씩 부과하는 것이다. 세금은 수입·제조업자가 신고·납부하며 납세분은 판매가격에 반영된다. Q. 대통령이 ‘식음료’를 지목한 배경은. A. 액상 형태의 당이 체내에 가장 빠르게 흡수된다. 청량음료 600㎖ 한 병에는 64g, 설탕 15~16티스푼 분량의 당이 들어 있다. 사탕이나 아이스크림보다 많다. 질병관리청 조사 결과 한국인이 가장 많이 섭취하는 당류 공급원은 사과(하루 평균 3.93g), 그다음이 탄산음료(3.55g)였다. Q. 설탕 부담금을 걷어서 어떻게 쓸까. A.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편입해 국민의 식습관 개선을 유도하고 당뇨·비만 등 질병을 예방하는 등 특정 목적에 쓰는 방안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성인 비만율은 2024년 34.4%로, 2015년(26.3%)과 비교해 8.1% 포인트 증가했다. Q. 설탕 부담금으로 설탕 소비가 줄까. A. 영국의 경우 2018년 설탕세(SDIL) 도입 후 음료 제조업체의 65%가 세금을 피하려 자발적으로 당 함량을 낮췄고 연간 약 4만 5000t의 설탕이 덜 쓰이게 됐다. 특히 18세 이하 아동·청소년의 충치 입원율을 12% 감소시키는 등 실질적 보건 지표 개선으로 이어졌다. 이에 영국 정부는 당 함유 하한선을 100㎖당 5g에서 4g으로 낮추고 적용 대상을 과일주스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Q. 산업계의 반발은. A. 제조업자의 부담금이 제품 원가에 반영돼 물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한다. 당 함량을 낮추면 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업체는 설탕 함유량을 유지하는 대신 제품 가격을 올린다는 논리다. 또 설탕 부담금은 간접세 방식이어서 서민의 가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조세의 역진성’ 문제도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중장기적으로 고용 위축 등 경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Q. 설탕 부담금 연착륙을 위한 과제는. A. 전문가들은 최근 무설탕·저당·대체당 상품이 늘어나고 있으니 점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소비자에게 설탕 대신 쓰일 무설탕 감미료의 안전성 등을 평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자는 제언도 있다. 징벌적 과세보다는 이 대통령의 제안처럼 거둬들인 재원을 지역·공공의료 강화와 소아 비만 예방에 사용하는 ‘목적세’ 성격을 명확히 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윤 단장은 “설탕 부담금은 기업이 레시피를 건강하게 바꾸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모인 재원을 지역 공공의료 강화에 투입하자고 말했다.
  • 연탄공장 문 닫고 가격 치솟아… 겨울나기 힘겨운 취약계층

    연탄공장 문 닫고 가격 치솟아… 겨울나기 힘겨운 취약계층

    한때 서민의 대표적인 겨울철 난방 수단이던 연탄 사용량이 줄어 생산 공장은 줄줄이 문 닫고 가격은 치솟고 있다. 여전히 연탄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일부 취약계층에 대한 공공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밥상공동체복지재단·연탄은행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연탄 사용 가구 수는 2006년 27만 100가구에서 지난해 5만 9695가구로 줄었다. 도시가스와 지역난방 사용이 늘면서 나타난 변화다. 1960년대 400여 곳에 달하던 연탄 생산공장도 지난해 16곳으로 급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탄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정부가 연탄을 ‘서민 연료’로 지정하고 가격 상승을 억제하던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장당 150~180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2018년에는 639원까지 올랐고 올해 들어 950원 이상으로 치솟았다. 배달이 어려운 산간 지역의 경우 소매 가격이 장당 1600~1700원에 달하는 곳도 있다. 산업통상부가 연탄 공장에 지원하던 생산 보조금도 2028년 폐지가 결정돼 가격은 더 오를 전망이다. 그동안 정부는 연탄 도매가를 생산 원가보다 낮게 책정해 차액을 지원해 왔다. 지난해 연탄 사용 가구의 80.5%인 4만 8062가구는 수급·차상위·소외 가구 등 취약계층이다. 서울은 1129가구인데 무허가 주택이나 달동네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고 월평균 소득도 30만원 남짓의 저소득층이라는 게 연탄은행의 설명이다. 정부가 연탄 보일러를 사용하는 취약계층에 가구당 47만 2000원의 연탄 쿠폰을 지원하고 있으나 충분한 수준은 아니다. 대구 달서구 쪽방촌에서 만난 한 주민은 “혼자 어렵게 사는 사람들은 날이 추워지면 난방비 걱정부터 앞선다”면서 “겨울에 적어도 1000장은 쓰는데 쿠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탈석탄 정책과 취약계층 난방 지원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진숙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환경 측면에서 탈석탄 정책도 중요하지만 취약계층에 연탄은 여전히 효율적인 난방 연료”라며 “에너지 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난방 기구 교체와 난방비 지원 등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예보 사장 김성식, 서민금융진흥원장 김은경 내정

    예보 사장 김성식, 서민금융진흥원장 김은경 내정

    예금보험공사 신임 사장에 김성식(왼쪽·60) 법무법인 원 변호사가 내정됐다. 서민금융진흥원장 및 신용회복위원장에는 김은경(오른쪽·60)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내정됐다. 금융위원회는 김성식 변호사와 김은경 교수를 각각 예보 사장, 서금원·신복위원장으로 임명 제청했다고 30일 밝혔다. 예보 사장과 서금원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서울대 사법학과를 졸업한 김성식 내정자는 이재명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다. 1995년 서울지법 북부지원 판사, 1997년 대전지법 공주지원 판사로 근무했다. 이 대통령이 경기도지사로 재임했을 당시 진행된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 관련 재판을 담당한 변호사다. 김은경 내정자는 한국외대 법학과 출신으로 20년간 교수로 재직했다. 2020년~2023년 금융감독원 금융소비자보호처장(부원장)을 지냈다.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던 지난 2023년 6월 민주당 혁신위원장을 맡았다. 이번 정부 출범 당시 정책 밑그림을 그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 ‘옛날 그놈들 냄새가 난다’ 잠들었던 형사 본능 깨운 100억 코인 사기극 [파멸의 기획자들 #37~40]

    ‘옛날 그놈들 냄새가 난다’ 잠들었던 형사 본능 깨운 100억 코인 사기극 [파멸의 기획자들 #37~40]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정부가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보자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저기요, 제발 전화 좀 받으세요. 정말 시끄러워 죽겠네.”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 있던 50대 남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이태성의 팔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태성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손바닥을 비벼 마른 세수를 한 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분명히 진동으로 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전철 안이 ‘G선상의 아리아’로 가득했다. “여보세…” “야! 내가 사무실 돌아가는 거 신경 쓰라고 했지! 정말 너 뭐하는 거야!” 인사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쩌렁쩌렁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나인 은주였다. 태성은 반사적으로 볼륨 버튼을 눌러 통화 음량을 줄였다. 때마침 지하철이 신길역에 도착했다. 그는 지하철을 빠져나와 잠시 플랫폼 의자에 앉아서 왼손으로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사건 처리 하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사무실 업무까지 신경 쓸 정신이 어디 있어. 그런 일은 사무장이 하면 되는 거잖아.” 태성은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누나에게 대답했다. 누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법무법인이 흥신소 되는 거 한순간이다”, “떼인 돈 받아준다는 식으로 광고하면 변호사 이미지 금방 망가진다”, “내 친구가 너한테 도망친 계주 잡아달라고 말하겠다고 하더라” 등 이해되지 않는 소리를 잔뜩 늘어놓았다. 며칠 동안 밤을 새가며 준비했던 재판에서 최종 승소해 째지게 좋았던 기분이 누나의 융단폭격 같은 잔소리로 완전히 망가졌다. 밀려오는 짜증을 애써 누르며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누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 정말!” 태성은 자신의 얼굴과 사무실 이름이 크게 걸린 노골적인 네이버 블로그 광고글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곧바로 김대유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장님, 지금 사무실에 계세요?” “네, 변호사님 사무실입니다. 오늘 재판은 어땠나요?” “자세한 이야기는 사무실에서 할 테니까 거기 그대로 계세요. 금방 도착합니다.” 태성은 전화를 끊고 사무실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분명 사무장에게 ‘내 허락 없이 사무실 홍보를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고 최근에도 다시 한 번 경고했는데, 사무장이 이를 무시하고 또다시 블로그 광고를 올린 것이다. 바쁜 태성이 이런 것까지 검색해서 확인해 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서 한 것이다. 태성에게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서민들이 고액의 수임료를 부담하며 변호사를 찾는 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일 터.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막 수단이라 여기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기에 그들의 간절한 상황을 돈과 연결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무장이 올린 광고들은 온통 ‘떼인 돈을 책임지고 찾아준다’, ‘불법 리딩방 피해 금액을 찾아준다’ 등 태성이 책임질 수 없는 내용으로 도배돼 있었다. 특히 ‘가상화폐 사기’를 다룬 광고는 부풀려져도 너무 부풀려져 있었다. ‘이성조 교수’라는 사람에게 사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코인 사건의 신(神)’인 이태성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기면 피해 금액을 100% 돌려받을 수 있을 것처럼 적어놨다. 지난달에도 사무장이 태성 모르게 금전 사기 사건을 수임했다가 피해자가 사무실로 찾아와 ‘변호사가 사건에 왜 이렇게 소홀하냐’고 화를 내며 돌아간 적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태성은 사무장이 피해자에게 수임료로 500만원을 받은 뒤 300만원은 사무실 법인 계좌로, 200만원은 본인 계좌로 이체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쉽게 말해서 사무장이 수임료 일부를 삥땅친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성이 피해자에게 사과하며 수임료를 전액 환불해줬고, 이때부터 ‘양심불량’ 사무장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무장이 자숙하지 않고 피해 금액을 모두 되찾아 올 수 있다는 식으로 광고글을 올린 것이다. 사기 사건 피해자 대다수는 전 재산을 날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장난질 치는 듯한 사무장의 행동을 태성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태성 자신이 사무실 운영 비용도 벌지 못하고 있어 사무장이 마지못해 앵벌이식 영업에 나선 ‘불편한 진실’은 생각하지 못한 채. 태성은 어려서부터 정의에 대한 갈망이 강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일찌감치 경찰대 입학을 결심했지만 ‘SKY 진학률’에 목을 매는 학교 분위기 때문에 담임 교사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지구대와 경찰서를 돌며 여러 사건을 두루 경험했다. 그러나 범인을 아무리 열심히 잡아넣어도 재력과 인맥으로 무장한 ‘법꾸라지’들은 갖가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갔다.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최소한 대한민국에 완벽히 들어맞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법조계의 요직을 맡다가 나온 ‘전관 변호사’들은 일반인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을 어렵지 않게 이끌어냈다. 여전히 고통받는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법을 믿어보자’고 위로하는 것이 그에게는 위선처럼 느껴졌다. 경찰로 일하는 것보다는 변호사가 되는 것이 이들을 더 가까이서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태성은 오랜 고민 끝에 경찰 의무 복무 기간을 채운 뒤 배지를 내려놓았다. 그렇게 다시 공부를 시작해 어렵사리 수도권의 한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태성은 경찰에서 쌓은 풍부한 사건 경험이 자신의 강력한 경쟁력이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30대 중반의 늦깍이 변호사를 환영하는 법무법인은 많지 않았다. ‘백수 변호사’ 기간이 길어지자 이를 보다못한 누나 은주가 주택 마련 자금 일부를 헐어 신길동에 법률사무소를 차릴 수 있게 도왔다. 그녀가 태성에게 시도때도 없이 ‘사무실 운영을 신경쓰라’고 잔소리하는 것도 동생의 사업에 자신의 돈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이 다 마찬가지지만 자영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변호사 간판을 유지하는 데만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갔다. 태성은 어려운 이들을 도와주겠다는 애초의 목표를 이루지 못한 채 사무실 유지도 여의치 않아 전전긍긍하는 ‘생계형 변호사’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을 속여가며 내 주머니를 챙기는 ‘양아치’는 되지 말아야겠다고 늘 다짐했다. 태성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김대유 사무장에게 이번 광고가 어떻게 게재됐는지 캐물었다. 김 사무장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더니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태성을 얼굴을 보더니 “아는 동생이 사무실을 홍보해 주겠다고 해서 돈을 주고 만든 페이지”라고 실토했다. “사무장님, 진짜 마지막 경고입니다. 다시 한 번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하신다면 그때는 저도 사무장님을 원칙대로 처리할 수밖에 없어요.” 태성은 건물 밖으로 나왔다. 사무장에게 소리치고 나니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사무장이 그런 식으로 홍보를 한 의도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법률사무소 대표라는 사람이 늘상 사회 정의만 부르짖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사무실 형편이 좋을 리 없었다. 사무장이 월급이나 제대로 받아가고 있는지도 확인해보지 못했다. 편의점에서 에너지 드링크 하나를 산 태성은 가게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건너편 건물 간판을 멍하니 바라봤다. 무언가가 머릿속에 떠오른 듯 스마트폰을 꺼내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왜 우리 사무장은 많고 많은 사건들 가운데 코인 사기 사건으로 광고를 만들었을까…’ 전화기 화면을 들여다보는 태성의 얼굴이 계속 굳어졌다.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가상화폐를 활용한 사기의 양상과 피해가 훨씬 심각했다. 리딩방에서 전문가를 자칭하는 놈들이 회비 몇 푼 뜯어내서 잠적하던 전통 방식에서 벗어나 거래소와 코인까지 새로 만들어 서민들을 완벽히 속이는 기업형 범죄로 탈바꿈한 상태였다. 태성은 과거 경찰 시절 범죄를 접할 때 느꼈던 ‘촉’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잘만 파고 들면 ‘파멸의 기획자들’을 싹쓸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 말이다. 갑자기 계단을 뛰어 올라간 태성이 자신의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김 사무장이 갑작스러운 그의 등장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태성이 대유에게 소리쳤다. “사무장님! 아까 가상화폐 사기 사건으로 지방에서 어떤 분이 상담하러 왔다 갔다고 하셨죠? 그 내용을 자세히 알려주세요.” 믹스커피를 마시던 김 사무장은 전북 완주군에 사는 최승현이 왜 서울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까지 찾아오게 됐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승현이 들려준 가상화폐, 선물 거래, 강제 청산 등은 변호사인 태성에게도 쉬운 내용이 아니었다. 그래도 기억력이 좋은 사무장이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해준 덕분에 어렴풋하게나마 사건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최승현이라는 분은 피해 의심 금액이 얼마나 된다고 하던가요?” 사무장은 태성의 말투가 오늘따라 유난히 딱딱하다고 느꼈다. 두 사람이 경찰과 참고인으로 처음 만났던 6년 전 그날처럼 말이다. 평소 태성은 성격만큼 말투도 느릿하고 유순했다. 하지만 일단 사건을 접하고 분노가 차오르면 논리적이고 딱딱하게 변하곤 했다. 사무장은 태성의 말투를 통해 지금 그가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굉장히 흥분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 분이 강제 청산당한 계좌 잔고는 2억원 정도고요. 이 가운데 순수 원금은 7000만원쯤 된다고 했어요.” 김대유 사무장이 이태성 변호사의 차가운 말투에 눌려 얼버무리듯 답했다. “강제 청산… 강제 청산이라…” 태성은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그 단어가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기억의 파편을 건드렸다. 피해자와 직접 대화를 해 보면 이 막연한 불안감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무장에게 전북 완주군에 사는 최승현의 번호를 받아서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승현은 내내 연락을 받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기 때문인 듯 했다. 태성의 답답함이 목까지 차올랐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승현에게 문자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법률사무소 블루의 이태성 변호사라고 합니다. 며칠 전 제 사무실을 다녀가셨다는 이야기를 사무장에게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응대해 드리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그날 사무장과 상담하신 내용에 대해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으니 시간을 내 주시면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30분 넘게 스마트폰 화면을 지켜봤지만 승현에게서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태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던져둔 자켓을 집어 들고 사무장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서 단호함이 배어났다. “이 사건 관련해서 외근 나갑니다. 오늘은 못 들어올 것 같으니 먼저 퇴근하세요.” 사무장이 태성의 등 뒤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동안 태성에게서 본 적 없는 비장함이 느껴져서다. 사무실을 빠져나온 태성은 쫓기기라도 하듯 신길역 방향으로 걸어갔다. 승현의 강제 청산 이야기와 며칠 전 누나가 던진 알 수 없는 잔소리, 그리고 사무장의 기만적 광고 문구로 그의 머릿속이 뒤죽박죽돼 있었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연락처 검색창에 초성 ‘ㅈㅇㅈ’을 입력했다. ‘정유진’이라는 이름이 뜨자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첫 번째 발신음이 끝나기도 전에 스마트폰 너머에서 맑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오랜만이예요. 설마 청첩장 주겠다거나 돈 빌려달라는 얘기는 아니겠죠? 그게 맞으면 당장 끊으시고!” 자신을 반기는 유진의 목소리가 반갑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어떻게 알았어? 너한테 돈 빌려서 너하고 결혼하려고 했는데”라고 넉살좋게 받아쳤겠지만, 지금은 사건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해져서 농담따먹기할 기분이 들지 않았다. 태성이 한숨처럼 대답을 내뱉었다. “유진아, 혹시 지금 경찰서에 있어?” “네, 선배! 목소리가 딱딱해진 거 보니까 무슨 일이 있네요.” 유진의 예리한 관찰력은 여전했다. 태성은 피식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내가 그쪽으로 갈게. 만나서 이야기하자. 지금 전철을 타면 30~40분 정도 걸릴 것 같아.” 태성은 변호사 개업 당시만 해도 번듯한 검은색 세단 승용차를 리스해서 타고 다녔다. 하지만 ‘변호사 4만 명 시대’로 접어 든 현실에서 사무실 경영이 녹록지 않음을 깨닫고 차량을 없애 버렸다. 시간이 늘 부족한 그로서는 전철로 목적지까지 이동하면서 뭔가를 메모할 수 있어 더 나은 선택이기도 했다. 정 할 게 없으면 자리에 앉아서 잠을 청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잠조차 제대로 청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했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청사로 걸어가는데 저 멀리서 반갑게 손을 흔드는 여성이 보였다. 유진이었다. 누가 보면 남자친구 마중 나왔다고 오해할 만큼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유진의 변치 않는 모습에 태성은 잠시 마음이 편해지는 듯했다. “유진아, 넌 정말 형사가 맞냐? 스티브 잡스도 아니고 맨날 검은 색 니트에 청바지가 뭐야.” 태성의 잔소리에도 유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밝게 대꾸했다. “몇 달 만에 만나서 잔소리부터 하는 건 뭐죠?” 유진을 따라 청사 내 회의실로 들어갔다. 조금만 성격이 다소곳했다면 예쁜 얼굴 덕분에 간부들의 추천을 받아 경찰 홍보 모델로도 활동했을 터지만 지금 그녀는 긴 다리를 쩍쩍 벌려가며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가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선머슴 여대생이었다. 유진이 자판기에서 뽑아온 캔 음료를 건네받은 태성이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넌 언제까지 수사과에 있을 거야?” 유진이 음료수 캔을 따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걸 뭘 또 물어. 전에 다 얘기했잖아요.” 저 대답은 태성이 유진과 처음 만났던 날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당시 동료들은 꽃미녀 경찰의 ‘사수’가 된 태성을 부러워했지만, 정작 그는 유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얼굴만 믿고 남성 선배들에게 애교로 일관하다가 경찰로서 성장이 멈춘 ‘응석받이’로 전락할 수 있어 보여서였다. “도대체 넌 언제까지 수사과에 있을 거냐?” 유진과 파트너가 된 태성이 그녀에 대한 선입견을 떨치지 못하고 짜증섞인 감정을 담아 던진 첫 번째 질문이었다. 그런데 제복을 입고 있던 유진이 기다렸다는 듯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저는 사기공화국인 대한민국을 바꾸고 싶어서 경찰대에 지원했습니다. 우리나라의 사기꾼들을 다 잡고 난 뒤에 수사과에서 나가겠습니다.” ‘인류 평화에 기여하려고 미스코리아에 지원했다’는 식의 뻔한 답이 돌아올 줄 알았던 태성에게 그녀의 응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진에게서 작게나마 진정성이 느껴졌다. 그녀에게 숨은 아픈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이때부터 태성과 유진은 한몸처럼 붙어 다녔다. 유진은 쉬는 날 태성의 누나와 만나 쇼핑도 다닐 만큼 친해졌다. 아들에게 전화 한 통 하지 않던 태성의 아버지조차 종종 유진에게 전화해 안부를 묻곤 했다. 태성이 로스쿨을 가겠다고 경찰을 그만뒀을 때도, 가족들은 그가 유진과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더 슬퍼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결혼을 생각할 만큼 뜨겁게 불타는 것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과 우정 사이’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었다. “정유진 경위! 최근 들어서 가상화폐 관련 사기 사건들 접수된 것들 내용을 자세히 알려줄 수 있어?” 유진이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려다가 갑자기 들어온 질문에 당황하며 말했다. “선배, 잘 알면서 왜 그래. 그런 건 외부인에게 공개할 수 없잖아요.” 태성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 미안. 내가 마음이 급해서 잠시 표현이 서툴렀어. 다시 질문할게. 요즘 가상화폐 관련 사기 사건 신고 접수가 많아졌어?”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청바지에 손을 찔러 넣고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녀의 얼굴에 피로감과 짙은 회의감이 함께 서려 있었다. “솔직히 요즘 장난이 아니에요. 신고 건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개인 정보가 털려서 자기 명의로 대포 통장이 만들어졌다는 피해자들과 가상화폐 사기 사건으로 돈을 날렸다는 피해자들이 폭증하고 있어요. 문제는 경찰이 이런 사건들에 매달리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당장 처리해야할 사건도 산더미 같으니까요. 코인 사기 사건 역시 피해 금액이 상당한 강력 범죄인데도 지금 경찰 인력 구조로는 이런 사건까지 적극적으로 나서기가 쉽지 않아요.” 태성은 유진의 말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과거 경찰로 일할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실이 그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스마트폰 검색창에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검색했다. 김대유 사무장이 만든 ‘이성조 교수 사칭 불법 사기 거래 피해자를 구제해 드립니다’라는 광고 화면을 내밀었다. “유진아, 이거 한 번 봐줄래? 혹시 네가 말한 그 사건과 같은 거야?” 유진이 태성의 전화기 화면을 들여다보더니 크게 웃었다. “오~ 선배, 사진 진짜 잘 나왔네요. 편집자가 뽀샵질을 엄청 했구만. 이거 보여 주고 싶어서 여기까지 온 거야?” 태성은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지금은 농담을 받아칠 여유가 없었다. “으… 미치겠네. 일단은 아랫쪽에 있는 내용부터 봐줘.” 검지 손가락으로 태성의 스마트폰 화면 스크롤을 내리는 유진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장난기 가득했던 표정은 사라지고 진지함이 감돌았다. 조금 뒤에 그녀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요. 요즘 접수되는 사기 사건과 같은 유형이예요. 선배 혹시 이 사건 수임한 거예요?” 태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냐, 사실은 사무장이 나 몰래 이런 광고를 만들어서 올려놨는데, 이 광고를 보고 누군가가 사건을 맡기려고 찾아왔었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그 분한테 전화를 해봤는데 몇 번을 해도 받지를 않아. 혹시라도 나쁜 생각을 한 건 아닐까 싶어서 문자도 보냈는데, 다행히 문자는 읽고 씹었더라고. 찾아온 분의 이야기와 사무장이 올린 광고 블로그의 내용을 종합해보니 옛날 그 사건이 자꾸 떠올랐어.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야.”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태성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 속에서 과거 태성의 아픈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이 사건 말이야. 사무장이 광고를 만들어서 게재할 정도면 이미 관련 사기가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잖아. 네가 말한 대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사건이 접수된다면 그냥 넘어가선 안 되는 거잖아.” 유진이 침묵을 깨고 태성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녀의 목소리에 단호함과 걱정이 배어 있었다. “선배는 이제 경찰이 아니예요. 혹시 그때 그 사건 때문에 이러는 거예요?” 유진은 태성이 경찰을 그만두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을 언급하며 그를 다그쳤다. 그의 가슴에 깊은 상흔을 남긴 그 사건의 그림자에서 태성이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어쨌든 지금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고 싶어.” 태성의 눈빛이 흐려졌지만, 결심만큼은 확고해 보였다. 유진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 쪽 창문의 블라인드를 내렸다. 회의실 안이 일순간에 어두워졌다. “원래 외부인에 이런 내용까지 전해선 안 되지만… 선배를 진심으로 믿기에 말씀드릴게요. 지금부터 긴 이야기가 될 텐데, 마음 단단히 먹어요.” 유진은 태성에게 최근 몰려들고 있는 가상화폐 사기 사건 피해 사례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태성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의 눈빛이 어느새 경찰 시절의 날카로운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 [세종로의 아침] 경제 양극화가 촉발한 한국 사회의 민낯

    [세종로의 아침] 경제 양극화가 촉발한 한국 사회의 민낯

    “우리는 99%다(We are the 99%).” 2011년 9월 17일 미국 뉴욕에서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 1000여명이 월가 주변의 주코티 공원에서 텐트 노숙을 하며 외친 슬로건이다. 미국 최상위 1% 경제 엘리트의 탐욕이 가져온 금융위기를 질타한 이 시위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경제적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 문제를 부각시켰다. 금융위기 피해는 99%의 서민들에게 돌아갔지만, 투자에 실패한 대형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거액의 연봉과 퇴직금을 챙겼다. 당시 시위는 별다른 변화 없이 실패로 끝났지만 ‘1% 대 99% 사회’라는 양극화 키워드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는 화두가 됐다. 전 세계적 양극화는 오히려 더 심각해져 기득권층의 부정부패,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켰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Z세대 시위’는 이런 양극화에 분노한 청년층이 직접 나선 사례다. 아시아의 네팔, 아프리카의 마다가스카르에선 실제로 이들의 시위로 정권이 교체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의 수많은 청년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2010~11년 ‘아랍의 봄’ 시위로 이어졌고, 최근의 Z세대 시위까지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셈이다. 한국 경제를 둘러싼 가장 큰 화두 역시 양극화다.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금 등 자산을 소유한 상류층의 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지만, 자산 증식 대열에 편승하지 못한 대다수 서민들은 순식간에 ‘벼락거지’로 전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재명 정부가 서울 전역을 조정대상지역·투기과열지구·토지거래허가구역의 3중 규제로 묶는 10·15 대책을 시행했는데도 거래만 위축됐을 뿐 집값이 오히려 오른 상황은 부동산 양극화의 실상을 드러낸다. 부동산 양극화의 실증자료도 나왔다. 국가데이터처의 ‘행정자료를 활용한 2024년 주택소유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하위 10% 주택의 가격 차는 45배로 벌어졌다.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와 전세대출을 규제해 ‘주거사다리’로 불리는 전세의 월세화를 가속화하는 것도 양극화를 부추긴다. “따님한테 임대주택 살라고 얘기하고 싶으시냐”라는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제 가족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하지 마라”며 발끈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의 대응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자인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코스피 5000 시대’ 달성이라는 정부의 목표 역시 양극화를 부추기는 정책이다. 대주주 양도세 기준 50억원 유지, 배당소득 분리과세 최고세율 인하(35%→25%) 등은 상위 10%를 위한 제도라는 점에서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은 서민들에게 ‘빚투’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대표적인 빚투 지표인 신용거래 융자 잔액은 지난 7일 기준 26조 200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핫이슈로 부상한 스테이블코인 도입 논의 역시 부의 양극화와 관련이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발간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주요 이슈와 대응 방안’ 보고서에 실린 원화스테이블 코인의 7대 잠재 리스크 중 마지막 항목인 ‘금융중개 기능 약화’가 그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은행의 소매예금에서 자금을 흡수해 준비자산을 매입하는 데 쓰면 은행의 대출 여력이 감소할 수 있고, 대출 문턱이 높아져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해외 유학생 자녀에게 송금하거나 상속·증여 시 탈세 우려가 있다는 점도 부의 양극화를 초래할 수 있는 대목이다.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는 25세 이상 성인에게 12만 유로(약 2억원)를 주는 최소 상속세를 제안한 바 있다.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청년들의 일자리가 대체되는 속도는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한 Z세대 시위가 한국에 상륙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한국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경제적 양극화를 불러오는 소득과 자산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 절실하다. 황비웅 디지털금융부 기자(차장급)
  • “90세까지 갚으라고?”…트럼프, 돌연 ‘50년 주담대’ 들고나왔다 [핫이슈]

    “90세까지 갚으라고?”…트럼프, 돌연 ‘50년 주담대’ 들고나왔다 [핫이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들과 상의 없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주담대) 구상을 전격 공개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빌 펄티 연방주택금융청(FHFA) 청장이 직접 보고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곧바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8일 트루스소셜에 50년 주담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게시하자 백악관 참모들이 항의 전화를 받았다”며 “대출 만기를 늘리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쏟아졌다”고 보도했다. 루스벨트와 나란히 놓은 ‘50년 주담대’ 이미지 트럼프 대통령이 올린 이미지는 ‘위대한 미국 대통령들’이라는 제목 아래 두 장의 사진이 나란히 배치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사진에는 ‘30년 모기지’, 트럼프 대통령 사진에는 ‘50년 주담대’라는 문구가 적혔다. 루스벨트가 1930년대 도입한 장기 대출 제도를 자신이 계승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백악관 참모들은 아무런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상환 기간이 길어질수록 월 부담은 줄지만 그만큼 주택 수요가 늘어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펄티 청장 직보 뒤 10분 만에 게시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올린 이미지는 펄티 청장이 직접 보고한 포스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지 10분 만에 이를 SNS에 게시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는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펄티는 종종 그 과정을 생략한다”고 말했다. 펄티 청장은 대형 주택건설업체 펄티그룹 창립자의 손자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 취임 이후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전문가 “근본 해결책 아냐”전문가들은 이번 구상이 주택 공급 부족이라는 근본 문제를 외면한 미봉책이라고 비판했다. SMBC 닛코증권 아메리카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트로이 러트카는 “지금 필요한 것은 대출 조건 변화가 아니라 공급 확대”라고 강조했다. TD증권의 미국 금리전략 책임자 게나디 골드버그는 “50년 주담대는 초기 상환금 대부분이 이자로 빠져 자산 형성이 늦어진다”며 “단기 처방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소비자연맹(CFA) 샤론 코넬리센 주택국장은 “월 상환금은 줄어도 주택을 통한 부 축적은 어렵다”고 경고했다. “퇴직 후에도 빚 남는다” 우려 확산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미국에서 첫 주택을 사는 사람의 평균 나이는 40세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50년 주담대를 선택하면 90세가 되어서야 대출을 마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데이비드 리스 코넬대 로스쿨 교수 겸 부동산 금융 연구원은 “은퇴 전에 주담대를 상환해야 한다는 게 재무 원칙”이라며 “이번 구상은 그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NAR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런스 윤은 “차입자가 실질적인 자산을 쌓는 시점이 대출 마지막 10년으로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매달 내는 돈 줄어든다” 해명에도 논란 계속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50년 주담대는 단지 매달 내는 돈이 줄어든다는 뜻”이라며 “큰 변화는 아니고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이자 부담이 커져 오히려 소비 여력을 줄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서민의 주택 구매 부담을 덜 방법을 항상 모색하고 있다”며 “공식 정책은 백악관을 통해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즉흥적 결정, 백악관 운영 체계 흔들폴리티코는 “이번 사안은 주요 정책이 얼마나 즉흥적으로 대통령에게 제안되는지를 보여준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통치 방식이 언제든 역풍을 부를 수 있음을 드러냈다”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모기지 기관의 규정을 바꾸려면 의회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며 “시장 안정성을 흔드는 성급한 실험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 트럼프, 또 ‘즉흥 결정’?…백악관도 몰랐던 ‘50년 주담대’

    트럼프, 또 ‘즉흥 결정’?…백악관도 몰랐던 ‘50년 주담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참모들과 상의 없이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주담대) 구상을 전격 공개해 파장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빌 펄티 연방주택금융청(FHFA) 청장이 직접 보고한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곧바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8일 트루스소셜에 50년 주담대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게시하자 백악관 참모들이 항의 전화를 받았다”며 “대출 만기를 늘리는 발상 자체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쏟아졌다”고 보도했다. 루스벨트와 나란히 놓은 ‘50년 주담대’ 이미지 트럼프 대통령이 올린 이미지는 ‘위대한 미국 대통령들’이라는 제목 아래 두 장의 사진이 나란히 배치됐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대통령 사진에는 ‘30년 모기지’, 트럼프 대통령 사진에는 ‘50년 주담대’라는 문구가 적혔다. 루스벨트가 1930년대 도입한 장기 대출 제도를 자신이 계승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셈이다. 그러나 백악관 참모들은 아무런 사전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상환 기간이 길어질수록 월 부담은 줄지만 그만큼 주택 수요가 늘어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펄티 청장 직보 뒤 10분 만에 게시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올린 이미지는 펄티 청장이 직접 보고한 포스터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지 10분 만에 이를 SNS에 게시했다. 백악관 관계자는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는 검증 절차를 거치는 것이 원칙이지만 펄티는 종종 그 과정을 생략한다”고 말했다. 펄티 청장은 대형 주택건설업체 펄티그룹 창립자의 손자이자 트럼프 대통령의 오랜 후원자로, 취임 이후 두터운 신임을 받아왔다. 전문가 “근본 해결책 아냐”전문가들은 이번 구상이 주택 공급 부족이라는 근본 문제를 외면한 미봉책이라고 비판했다. SMBC 닛코증권 아메리카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트로이 러트카는 “지금 필요한 것은 대출 조건 변화가 아니라 공급 확대”라고 강조했다. TD증권의 미국 금리전략 책임자 게나디 골드버그는 “50년 주담대는 초기 상환금 대부분이 이자로 빠져 자산 형성이 늦어진다”며 “단기 처방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소비자연맹(CFA) 샤론 코넬리센 주택국장은 “월 상환금은 줄어도 주택을 통한 부 축적은 어렵다”고 경고했다. “퇴직 후에도 빚 남는다” 우려 확산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미국에서 첫 주택을 사는 사람의 평균 나이는 40세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50년 주담대를 선택하면 90세가 되어서야 대출을 마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데이비드 리스 코넬대 로스쿨 교수 겸 부동산 금융 연구원은 “은퇴 전에 주담대를 상환해야 한다는 게 재무 원칙”이라며 “이번 구상은 그 안정성을 흔들 수 있다”고 말했다. NAR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로런스 윤은 “차입자가 실질적인 자산을 쌓는 시점이 대출 마지막 10년으로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매달 내는 돈 줄어든다” 해명에도 논란 계속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50년 주담대는 단지 매달 내는 돈이 줄어든다는 뜻”이라며 “큰 변화는 아니고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융 전문가들은 “이자 부담이 커져 오히려 소비 여력을 줄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백악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서민의 주택 구매 부담을 덜 방법을 항상 모색하고 있다”며 “공식 정책은 백악관을 통해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즉흥적 결정, 백악관 운영 체계 흔들폴리티코는 “이번 사안은 주요 정책이 얼마나 즉흥적으로 대통령에게 제안되는지를 보여준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스러운 통치 방식이 언제든 역풍을 부를 수 있음을 드러냈다”고 평했다. 전문가들은 “정부 모기지 기관의 규정을 바꾸려면 의회 승인 절차가 필요하다”며 “시장 안정성을 흔드는 성급한 실험은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 재판 승소 뒤 누나의 잔소리에 기분 상한 변호사, 사무장 과장 광고 게시글에 격분 [파멸의 기획자들 #37]

    재판 승소 뒤 누나의 잔소리에 기분 상한 변호사, 사무장 과장 광고 게시글에 격분 [파멸의 기획자들 #37]

    “저기요, 제발 전화 좀 받으세요. 정말 시끄러워 죽겠네.” 지하철 옆자리에 앉아 있던 50대 남자가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이태성의 팔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태성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손바닥을 비벼 마른 세수를 한 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분명히 진동으로 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차량 안이 온통 ‘G선상의 아리아’로 가득했다. “여보세…” “야! 내가 사무실 돌아가는 거 신경 쓰라고 했지! 정말 너 뭐하는 거야!” 인사말을 마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쩌렁쩌렁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나인 은주였다. 태성은 반사적으로 볼륨 버튼을 눌러 통화 음량을 줄였다. 때마침 지하철이 신길역에 도착했다. 그는 지하철을 빠져나와 잠시 플랫폼 의자에 앉아서 왼손으로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사건 처리 하는 것도 바빠 죽겠는데 사무실 업무까지 신경 쓸 정신이 어디 있어. 그런 일은 사무장이 하면 되는 거잖아.” 태성은 피곤에 찌든 목소리로 누나에게 대답했다. 누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법무법인이 흥신소 되는 거 한순간이다”, “떼인 돈 받아준다는 식으로 광고하면 이미지 망가진다”, “내 친구가 너한테 말해서 도망친 계주 잡아달라고 말하겠다고 하더라” 등 이해되지 않는 소리를 잔뜩 늘어놓았다. 며칠 동안 밤새 준비했던 재판에서 최종 승소해서 째지게 좋았던 기분이 누나의 알지 못할 융단폭격 같은 잔소리로 완전히 망가졌다. 밀려오는 짜증을 애써 누르며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누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 정말!” 태성은 자신의 얼굴과 사무실 이름이 크게 걸린 노골적인 네이버 블로그 광고글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곧바로 김대유 사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무장님, 지금 사무실에 계세요?” “네, 변호사님 사무실입니다. 오늘 재판은 어땠나요?” “자세한 이야기는 사무실에서 할 테니까 거기 그대로 계세요. 금방 도착합니다.” 태성은 전화를 끊고 사무실 방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분명 사무장에게 ‘내 허락 없이 사무실 홍보를 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를 했고 최근에는 경고까지 줬는데, 사무장이 다시 블로그 광고를 올린 것이다. 태성에게는 나름의 철학이 있었다. 서민들이 변호사를 찾는 것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해서일 터.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막 수단이라 여기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온 것이기에 그 간절한 상황을 돈과 연결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사무장이 올린 광고들은 온통 ‘떼인 돈을 책임지고 찾아준다’, ‘불법 리딩방 피해 금액을 찾아준다’ 등 태성이 책임질 수 없는 내용으로 도배돼 있었다. 특히 ‘가상화폐 사기’를 다룬 광고는 부풀려져도 너무 부풀려져 있었다. ‘이성조 교수’라는 사람에게 사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코인 사건의 신(神)’인 이태성 변호사에게 소송을 맡기기만 해도 피해 금액을 100% 돌려받을 수 있을 것처럼 적혀 있었다. 지난달에도 사무장이 태성 모르게 금전 사기 사건을 수임했다가 피해자가 사무실로 찾아와서 한바탕 난리 치고 돌아간 적이 있었다. 사무장은 지인에게 전 재산을 투자했다가 모두 날린 피해자에게 수임료로 500만원을 요구해 300만원은 사무실 법인 계좌로, 200만원은 본인 계좌로 이체했다. 쉽게 말해서 수임료 일부를 삥땅친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성이 수임료를 모두 환불해줬고 ‘양심불량’ 사무장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무장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피해 금액을 모두 되찾아 올 수 있다는 식으로 버젓이 광고를 올린 것이다. 사기 사건 피해자는 대부분 전 재산을 날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장난질 치는 듯한 사무장을 태성은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다. 태성 자신이 돈에 너무 무감각해서 사무실 운영 비용도 건지지 못하니 사무장이 마지못해 앵벌이식 영업에 나서고 있는 ‘불편한 진실’은 생각하지 못한 채. (38회로 이어집니다. 사기 피해 예방과 범인 검거를 위해 많은 이들과 기사를 공유해 주세요.)
  • 건설경기 침체 심각한데… 주택 정책 이끌 공공기관장 동시 공석

    건설경기 침체 심각한데… 주택 정책 이끌 공공기관장 동시 공석

    LH·HUG 공석… 정책 차질 불가피부동산원·신보 후임 인선 ‘하세월’여권 ‘보은 인사’설도 나와 뒤숭숭“전문성·현장 감각 갖춘 인사 필요” 주택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주요 공공기관장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건설경기 침체로 중소건설업계의 고통이 큰 상황에서 공공기관장 인사까지 미뤄지면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현실이다. 설상가상 전문성 없는 정치권 출신이 논공행상에 따라 ‘낙하산’으로 올 수 있다는 소문마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전문성과 현장 감각을 갖춘 인사를 서둘러 임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이한준 전 사장의 사표가 뒤늦게 수리돼 차기 사장 인선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 전 사장이 사의를 밝힌 지 두 달여 만이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공모 절차가 통상 3개월쯤 걸리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1차관이 공석이기 때문에 LH 사장 선임은 더 오래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9·7 부동산 공급대책의 중추 격인 LH 사장을 둘러싼 자천타천 하마평은 무성하다. 이헌욱 전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김헌동 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등이다. 이 전 사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 때 GH 사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여권 인사들이 저울질 중이란 얘기도 들린다. 부산 해운대구청장을 지낸 홍순헌 더불어민주당 해운대갑 지역위원장은 고위공직자 국민추천제에 본인을 추천했다. 주택·건설 금융정책의 핵심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유병태 전 사장이 지난 7월 퇴임한 뒤 아직도 새 수장을 찾지 못했다. 유 전 사장은 2년 연속 공공기관 경영평가 D등급을 받자 스스로 물러났다. HUG는 지난달 30일에서야 차기 사장 모집을 공고했다. 손태락 한국부동산원 원장은 지난해 2월 임기가 끝났지만 2년이 다 되도록 후임을 찾지 못했다. 역대 원장들은 국토부 출신이 다수였다. LH는 주택 공급과 공공택지 개발, 서민 주거 안정 기능을 맡고 있는 만큼 공석 장기화가 부동산 정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HUG도 중소건설사 유동성 악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터라 우려가 적지 않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관장 공백이 길어지면 정부가 새로 시작하는 토목·건설 사업은 발주가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도급받아 시공하는 중견 이하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건설 불황으로 어려운 가운데 더욱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최원목 이사장의 임기는 8월 말 끝났지만 후임이 정해지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내부에서는 내년 1월 정기인사까지 최 이사장이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앞서 서근우·황록 전 이사장은 각각 하나금융, 우리금융 출신으로 민간에서 왔다. 윤대희(행시 17회) 전 이사장과 최 이사장(행시 27회)은 관료 출신이다. 친여권 성향의 경제관료 후보군은 제한됐지만, 국민연금공단과 예금보험공사, 국책은행장 선임 시기가 맞물려 있다는 점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윤석열 캠프 출신인 김경환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지난해 9월 선임돼 2027년 9월까지 임기가 남았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여권 출신에 대한 ‘보은 인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주택과 금융 정책은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인 만큼 정치적 고려보다 현장을 잘 아는 인사가 필요하다”며 “그래야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공공기관장 공석 장기화…주택·건설정책 ‘공백 리스크’ 커진다

    공공기관장 공석 장기화…주택·건설정책 ‘공백 리스크’ 커진다

    주택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주요 공공기관장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건설경기 침체로 중소건설업계의 고통이 큰 상황에서 공공기관장 인사까지 미뤄지면서 어려움이 가중되는 현실이다. 설상가상 전문성 없는 정치권 출신이 논공행상에 따라 ‘낙하산’으로 올 수 있다는 소문마저 나온다. 전문가들은 “전문성과 현장 감각을 갖춘 인사를 서둘러 임명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이한준 전 사장의 사표가 뒤늦게 수리돼 차기 사장 인선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 전 사장이 사의를 밝힌 지 두 달여 만이다. 공공기관 관계자는 “공모 절차가 통상 3개월쯤 걸리지만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 1차관이 공석이기 때문에 LH 사장 선임은 더 오래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9·7 부동산 공급대책의 중추 격인 LH 사장을 둘러싼 자천타천 하마평은 무성하다. 이헌욱 전 경기주택도시공사(GH) 사장, 김세용 고려대 건축학과 교수, 김헌동 전 서울주택도시공사(SH) 사장 등이다. 이 전 사장은 이재명 대통령이 경기지사 때 GH 사장으로 호흡을 맞췄다. 여권 인사들이 저울질 중이란 얘기도 들린다. 부산 해운대구청장을 지낸 홍순헌 더불어민주당 해운대갑 지역위원장은 고위공직자 국민추천제에 본인을 추천했다. 주택·건설 금융정책의 핵심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유병태 전 사장이 지난 7월 퇴임한 뒤 아직도 새 수장을 찾지 못했다. 유 전 사장은 2년 연속 공공기관 경영평가 D등급을 받자 스스로 물러났다. HUG는 지난달 30일에서야 차기 사장 모집을 공고했다. 손태락 한국부동산원 원장은 지난해 2월 임기가 끝났지만 2년이 다 되도록 후임을 찾지 못했다. 역대 원장들은 국토부 출신이 다수였다. LH는 주택 공급과 공공택지 개발, 서민 주거 안정 기능을 맡고 있는 만큼 공석 장기화가 부동산 정책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HUG도 중소건설사 유동성 악화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한 터라 우려가 적지 않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기관장 공백이 길어지면 정부가 새로 시작하는 토목·건설 사업은 발주가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며 “도급받아 시공하는 중견 이하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건설 불황으로 어려운 가운데 더욱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용보증기금은 상황이 더 복잡하다. 최원목 이사장의 임기는 8월 말 끝났지만 후임이 정해지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내부에서는 내년 1월 정기인사까지 최 이사장이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앞서 서근우·황록 전 이사장은 각각 하나금융, 우리금융 출신으로 민간에서 왔다. 윤대희(행시 17회) 전 이사장과 최 이사장(행시 27회)은 관료 출신이다. 친여권 성향의 경제관료 후보군은 제한됐지만, 국민연금공단과 예금보험공사, 국책은행장 선임 시기가 맞물려 있다는 점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로 꼽힌다. 윤석열 캠프 출신인 김경환 주택금융공사 사장은 지난해 9월 선임돼 2027년 9월까지 임기가 남았다. 정권마다 반복되는 여권 출신에 대한 ‘보은 인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주택과 금융 정책은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인 만큼 정치적 고려보다 현장을 잘 아는 인사가 필요하다”며 “그래야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정책에도 힘이 실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 평균 물가보다 ‘1.56배’ 가파르게 오른 의식주 물가…해마다 4.6%씩 상승

    평균 물가보다 ‘1.56배’ 가파르게 오른 의식주 물가…해마다 4.6%씩 상승

    최근 5년간 전기요금, 아파트 관리비, 식료품 비용 등 ‘의식주’ 물가가 전체 소비자물가보다 1.5배 이상 더 가파르게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민생과 직결된 의식주 물가가 평균보다 빠르게 오르며 서민들의 체감물가 부담이 더 컸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에게 의뢰해 지난 2019~2024년 소비자물가지수를 분석한 결과 의식주 물가가 연평균 4.6% 상승해 같은 기간 연평균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2.8%)보다 1.56배 더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전기‧가스 및 기타연료(7.0%), 수도·주거 관련 서비스(4.3%), 주거시설 유지·보수(4.0%) 등 주거 항목 물가가 5.5%로 가장 높았다. 천연가스 등 원료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에너지 품목의 경우 공급망 리스크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가격 인상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식료품(5.2%), 외식 등 음식서비스(4.0%), 비주류 음료(3.9%) 등 식생활 물가는 해마다 4.6%씩 올랐다. 김 교수는 “복잡한 농산물 유통구조로 인한 유통비용 증가, 수입 의존도와 인건비, 이상기후에 의한 작황 부진 등 때문”이라며 “도매시장 활성화를 통해 유통비용을 절감하고 국제 농식품 물가의 국내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2.9%씩 상승한 의류 항목에서는 의류 제조업의 디지털 혁신, 인공지능(AI) 기반 수요 예측 등을 통해 재고 최적화와 원가 절감을 유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공통적인 물가 인상 항목으로 인건비를 꼽으며 “최저임금의 결정이 물가를 올리는 공통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고, 산업별로 생산성이 다르기 때문에 산업별로 최저임금이 결정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주3회 라면, 사망 위험↑”…“이것만은 하지 말라” 日 학자의 당부

    “주3회 라면, 사망 위험↑”…“이것만은 하지 말라” 日 학자의 당부

    일본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라멘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섭취하는 사람의 사망 위험이 한두 번 섭취하는 사람에 비해 1.5배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일본은 물론 인스턴트 라면을 즐겨 먹는 한국에서도 적지 않은 화제가 된 바 있다. 해당 연구가 공개된 뒤 일본의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는 “난 곧 죽는다”, “수명이 줄더라도 라멘은 포기 못 한다” 등 웃픈 아우성이 쏟아졌다. 이에 해당 연구를 진행한 연구진이 진화에 나섰다. 화제가 된 논문은 일본 야마가타 대학과 야마가타 현립 요네자와 영양과학대학 연구진이 지난 8월 ‘영양, 건강 및 노화 저널’에 발표한 ‘라면의 과잉 섭취와 특정 서브 그룹의 사망 위험 증가’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연구진은 일본에서 라멘 소비량이 가장 많은 지역인 야마가타현에서 2009년부터 2023년까지 진행된 코호트 연구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건강 검진을 받은 40세 이상의 남녀 6725명을 대상으로 라멘을 섭취하는 빈도에 따라 ▲한 달에 한 번 미만 ▲한 달에 1~3번 ▲일주일에 한두 번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등 4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이어 이들의 라멘 섭취 빈도와 사망 위험 간의 관계를 연구한 결과 라멘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섭취한 그룹의 사망 위험이 일주일에 한두 번 섭취한 그룹에 비해 1.5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라멘 섭취 빈도와 사망 확률’ 연구日 네티즌 갑론을박…국내서도 화제이같은 연구 결과에 일본 네티즌들은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야후 재팬에 올라온 관련 기사에는 수백개의 댓글이 달리며 네티즌들의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한 네티즌은 엑스(X)에서 최근 며칠 간 먹은 라멘 사진과 함께 “이번 주에 벌써 라멘을 세 번째 먹었는데, 이제 얼마 못 살 것 같다”며 한탄했고, 또 다른 네티즌은 “유기농 음식만 먹어도 언젠가 사망할 확률이 100%인데, 그냥 라멘 실컷 먹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구 결과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자 지난 13일 일본 시사주간지 ‘주간 신초’는 연구진과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논문의 제1저자인 요네자와 영양과학대 강사 스즈키 미호 박사는 주간 신초에 “나도 라멘을 좋아해서 자주 먹는다”면서 연구에 대해 “라멘 소비량이 1위인 야마가타 지역에서 라면 섭취를 얼마나 절제해야 하는지 데이터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계기가 됐다”고 입을 열었다. 연구에 참여한 야마가타 대학 의학부 이마다 츠네오 교수는 라멘의 섭취량이 사망 위험과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라멘을 주 1~2회 섭취하는 그룹의 사망 위험이 한 달에 한 번도 먹지 않는 그룹보다 오히려 낮게 나타났다며 “과잉 섭취하지만 않으면 오히려 건강에 좋다”는 게 이마다 교수의 설명이다. “매일 먹지 말고, 국물 다 먹지 말라”연구진은 야마가타 대학 홈페이지에 공개한 질의응답(Q&A)를 통해 “라멘을 먹으면 위험해진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라멘 자체 뿐 아니라 라멘을 자주 먹는 사람들에게 있는 좋지 않은 생활 습관이 영향을 미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라멘을 주3회 이상 섭취한 그룹의 사망 위험이 1.52배 높게 나타난 데에는 “통계적 유의성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이들 그룹에게서는 체질량지수(BMI)가 높고 흡연 및 음주를 즐기며 당뇨병, 고혈압이 있는 경향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 대상을 보다 구체적으로 구분해 분석한 결과 ▲남성 ▲70세 미만 ▲국물을 절반 이상 마시는 사람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에게서 사망 위험이 높게 나타났다. 일본 라멘은 지방과 염분, 탄수화물이 많은 음식으로 국내 식품업체가 제조한 인스턴트 라면 대비 나트륨 함량이 2~3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일본인들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 ‘완식(完食)’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라멘 국물을 최대한 마시는 경향이 있어 라멘으로 인한 나트륨 과잉 섭취에 대한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왔다. 연구진은 “라멘을 일주일에 몇 번 적절히 먹는 건 문제 없지만, 중요한 건 먹는 방법과 빈도”라며 “염분의 과다 섭취를 자제하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매일 먹는 습관은 삼가고 국물을 다 마시지 않아야 한다”면서 “채소나 생선 등을 함께 섭취해 영양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스턴트 라멘 역시 염분이 많으므로 너무 많이 먹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AI로 방향 트는 ‘백발 청춘’ 서경배… 두 딸 민정·호정 차기 경쟁[2025 재계 인맥 대탐구]

    AI로 방향 트는 ‘백발 청춘’ 서경배… 두 딸 민정·호정 차기 경쟁[2025 재계 인맥 대탐구]

    구조조정 결단력에 형 제치고 승계CES 직접 챙기고 MS CEO 독대도구내식당 자주 들러 ‘식판 경영’ 즐겨통합 뷰티 솔루션 등 5대 기조 발표신흥 강자 에이피알 성장세로 위협외연 확장과 이미지 혁신 등 과제로 “아름다움의 영역을 개척하고 창조해 온 ‘뷰티 크리에이터’로서, 몸과 마음의 조화에서 비롯돼 나이와 시간을 초월한 독보적인 아름다움을 전 세계에 선보이겠습니다.” 지난달 서울 용산구 본사에서 열린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서경배(62)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의 발언은 화장품 산업에 대한 그의 열정과 의지를 보여 준다. 백발에 캐주얼 정장, 흰 운동화 차림으로 사원들 앞에 선 서 회장은 ▲글로벌 핵심 시장 집중 육성 ▲통합 뷰티 솔루션 강화 ▲바이오 기술 기반 항노화 개발 ▲민첩한 조직 혁신 ▲인공지능(AI) 기반 업무 전환 등 5대 기조를 발표하며 뷰티 시장의 격전지에 내몰린 각오를 다졌다. ●부친 마당발 인맥 덕 화려한 혼맥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세운 고 서성환 창업주와 고 변금주 여사 사이에는 2남 4녀가 있지만 장남인 서영배(69) 태평양개발 회장과 서 회장을 제외한 자매들은 경영 일선에서 빠졌다. 재계는 물론 정계와 언론계 등 넓게 퍼져 있는 서 창업주의 인맥을 바탕으로 자녀들의 혼맥도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이어졌다. 첫째 서송숙(78)씨는 고 박세정 대선제분 회장의 아들인 고 박내회 서강대 명예교수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현재는 미국 국적이다. 둘째 서혜숙(75)씨는 이승만 정부에서 내무·교통·상공부 장관을 지냈던 고 김일환 전 장관의 3남 김의광(76) 목인박물관장과 결혼했다. 김 관장은 태평양 계열사였던 장원산업 회장을 지내며 4명의 사위 중 유일하게 장인 회사의 경영에 참여했다. 3녀 서은숙(72)씨는 공화당 소속이었던 고 최두고 전 국회의원의 차남 최상용(73) 전 고려대 의과대 학장과 결혼했다. 고려대 구로병원에서 근무했던 최 전 학장은 간 이식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의로 통했다. 장남인 서영배 회장은 고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의 장녀인 방혜성(65)씨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서 회장은 태평양증권 부사장을 거쳐 태평양개발 회장에 올랐다. 서 회장과 방씨는 현재 성덕여중·성덕고가 소속된 태평양학원의 이사장과 이사를 각각 맡고 있다. 서 창업주로부터 금융과 건설 등 비화장품 계열사를 물려받은 서영배 회장은 태평양건설만을 독자 경영해 왔다. 동생인 서 회장과 함께 태평양화학공업사에 입사해 경영권을 두고 다툼을 벌였지만, 서 창업주는 계열사를 과감하게 구조조정한 서 회장의 결단력에 손을 들어 준 것으로 전해진다. 4녀인 서미숙(67)씨는 고 최주호 우성그룹 회장의 4남인 최승진(70) 전 우성그룹 부회장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서 회장은 부친인 서 창업주와 신춘호 농심그룹 선대회장의 인연으로 1990년 신 선대회장의 막내딸인 신윤경(57)씨와 결혼했다. 신씨는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고문을 지내며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하고 있다. ●휴직 중인 민정씨, 오설록 합류 호정씨 서 회장과 신씨는 슬하에 장녀 민정(34)씨와 차녀 호정(30)씨를 뒀다. 2009년 모교인 연세대 경영대의 동문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해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민정씨에게 직접 칵테일을 타 줬다고 밝힐 만큼 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2006년 이미 민정씨에게 태평양의 우선주를 처음 증여하기도 했다. 서민정씨는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의 컨설팅사인 베인앤컴퍼니에서 근무했다. 2017년 6개월간 아모레퍼시픽 오산공장에서 짧은 경력을 쌓은 뒤 중국의 장강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거쳤다. 2019년 아모레퍼시픽에 재입사한 민정씨는 고가 브랜드 라인인 럭셔리 디비전AP팀에서 근무하며 순조로운 승계 작업을 거치는 듯 보였다. 승계 구도에 지각 변동이 생긴 것은 민정씨가 2021년 보광그룹 3세인 홍정환(40) 폴스타파트너스 대표와 결혼한 지 8개월 만에 이혼한 이후부터다. 민정씨는 2023년 7월 개인적인 사유로 휴직계를 낸 뒤 현재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7월 둘째인 서호정씨가 계열사인 오설록 제품개발(PD)팀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2018년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이후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으나 아모레퍼시픽그룹의 8개 주요 자회사 중 아모레퍼시픽 다음으로 성장률이 높은 오설록을 통해 경영 실무에 뛰어든 것이다. 2023년 서 회장이 호정씨에게 주식을 대거 증여하며 언니인 민정씨와의 지분 격차를 줄인 것도 자매의 승계 경쟁 구도에 불을 지폈다. 올해 8월 기준 지주사인 아모레퍼시픽홀딩스 지분은 민정씨가 2.8%, 호정씨가 2.6%로 약 0.2% 포인트 차다. 주요 계열사로 넓히면 민정씨가 이니스프리를 8.7%, 호정씨가 아모레퍼시픽을 0.01% 보유해 격차가 벌어지지만 이니스프리가 실적 악화를 털어 내지 못하면서 오히려 민정씨의 입지가 흔들린다는 분석이다. 2016년 매출 7700억원을 기록하며 에뛰드·설화수·마몽드·라네즈와 함께 그룹 내 ‘글로벌 5대 챔피언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던 이니스프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타격을 입은 뒤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은 2246억원, 영업이익 16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8.0%, 84.5% 감소했다. 반면 오설록의 성장세는 꾸준하다. 오설록의 지난해 매출은 937억원, 영업이익 92억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11.7%, 68.7% 증가했다. 올해도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말차 열풍에 주문량이 급증해 처음 배당을 실시했다. 상승세에 힘입어 추석 직전 가격 인상도 무리 없이 해내면서 올해 오설록의 호실적은 이미 예견돼 있다는 평가다. 다만 승계 경쟁 초읽기에 들어선 것일 뿐 아직 일선 현장을 적극적으로 뛰는 서 회장의 경영 능력은 여전히 ‘백발의 청춘’이다. 현장성을 중시하는 서 회장은 올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를 처음 참관했다. 특히 뷰티 테크, 뷰티 디바이스 등 자사의 대내외적 AI 전환을 강조하는 서 회장은 직속으로 ‘이노베이션센터’를 만들었을 만큼 차세대 전략으로 AI 혁신을 적극 밀었다. 지난 3월엔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최고경영자(CEO)와 독대하기도 했다. 조직 관리에는 엄정하지만 사내 소통에는 개방적이다. 수평적인 사내 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전사적으로 호칭을 ‘님’으로 통일하면서 서 회장 역시 직원들에게 ‘서경배님’으로 통용된다. 구내식당에도 자주 등장해 직원들과 ‘식판 경영’을 할 만큼 소탈하고 격의 없는 소통을 즐긴다. 매달 전사에 송출되는 정기 조회 ‘아모레 블루밍’에도 분기에 한 번씩 등장한다고 한다. ●1970년대생 젊은 대표들에 계열사 맡겨 아모레퍼시픽그룹 주요 계열사에는 주로 1970년대생의 젊은 대표들이 포진해 있다. 대부분 2021년 부진했던 실적을 만회하고 혁신 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해 그룹 전반에 걸쳐 세대 교체를 단행한 여파다. 일각에선 아직 30대인 두 딸의 원활한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김승환(56)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아모레퍼시픽에서 경영전략팀장과 인사조직 유닛장, 지주사인 아모레퍼시픽그룹에서 대표이사와 전략 유닛 전무를 지내며 인사·전략 분야에 오래 몸담았던 인물이다. 대표직을 맡은 이후 해외 비즈니스 확장과 조직 개편에 주력했다. 이니스프리는 최민정(47) 대표가 이끌고 있다. 글로벌 소비재 기업과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2019년 아모레퍼시픽그룹 전략실로 합류했다. 에스쁘아 대표를 역임한 최 대표는 이니스프리의 리브랜딩을 이끌며 다양한 시도를 하는 전략통으로 통한다. 아모레퍼시픽 공채 신입사원부터 시작한 이수연(49) 에뛰드 대표는 아이오페, 마몽드 등 아모레퍼시픽의 주요 브랜드에서 마케팅을 담당해 왔다. 젊은 대표가 이끄는 색조 브랜드 이미지에 맞게 인플루언서 협업 등 새로운 마케팅 방식에 적극적이다. 오설록은 2019년 독립법인으로 분사하면서부터 서혁제(53) 대표가 이끌어 왔다. 아모레 설록사업부로 입사한 서 대표는 설록차 등 아모레퍼시픽그룹의 티 브랜드에서 상품 개발, 마케팅 등 여러 분야를 두루 담당했다. K뷰티의 부흥으로 어느 때보다 한국 뷰티 산업의 미래가 밝은 현시점에 한때 경쟁자조차 없이 업계 선두를 달렸던 아모레퍼시픽은 외연 확장과 자력 성장, 구세대적 이미지 탈피 등의 과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 K뷰티의 인기에 힘입어 국내 신흥 브랜드들이 무서운 기세로 성장하는 것 또한 아모레퍼시픽에는 위험 요인이다. 80년간 쌓아 온 아모레퍼시픽의 공력이 오히려 트렌디함이 중요한 뷰티 업계에서 브랜드 이미지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이 굳혀 왔던 국내 화장품 업계의 양강 구도를 상장한 지 2년도 안 된 신흥기업 에이피알이 흔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국내 최초의 역사를 써 온 뷰티업계의 ‘맏형’ 아모레퍼시픽이 세계 시장에서 선보일 또 다른 혁신에 관심이 쏠린다.
  • ‘아태 사법 정의 허브’ 조성하는 서초[현장 행정]

    ‘아태 사법 정의 허브’ 조성하는 서초[현장 행정]

    890년 된 ‘천년향’에 접근로 신설바닥엔 법률 명언… 법과 정의 체감서민 일상 속 사법 접근성 향상 상징대법원에 후계목 심어 의미 더해 “이 같은 공간을 만든 것은 우리 법치주의와 서민의 사법 접근성 향상이라는 큰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큰 발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천대엽 법원행정처장) “법이라는 게 우리 국민의 일상에서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음을 실감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전성수 서울 서초구청장) 지난 2일 ‘서초역 향나무 공간 조성’ 개장식에 참석한 전 구청장과 천 처장은 사법정의를 상징하는 공간을 만든 의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서초구는 서초역 사거리에 약 890년이 된 보호수 향나무인 ‘천년향’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사법정의 허브’의 상징 공간을 조성하고 이날 개장식을 열었다. 아·태 사법정의 허브는 대법원, 대검찰청, 대한변호사협회 등 전국 최대 법조단지가 있는 서초역 일대 약 53만 6000㎡ 지역에 조성된다. 이날 두 기관은 대법원에서 천년향의 뒤를 이을 후계목 식수 행사를 가진 뒤 서초역 사거리의 향나무 상징공간으로 이동해 개장식을 가졌다. 개장식에는 지역주민과 법무부, 대검찰청,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향나무 상징공간에는 서초역 사거리 횡단보도와 연결된 접근로를 신설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바닥에는 법률 명언이 새겨있어 자연스럽게 법과 정의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다. 천 처장은 “서초구가 후계목을 대법원 경내에 심어주셨다. 그 큰 뜻을 이어받아서 새로운 1000년의 사법정의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이에 전 구청장은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기관이 노력해주신 덕분”이라고 화답했다. 서초구는 아·태 사법정의 허브와 관련, 지난해 3월 지정·고시를 하고 같은해 7월에 선포식을 개최하는 등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법조 관련 기관이 밀집한 이 지역을 네덜란드 헤이그와 같은 세계적인 사법 정의의 메카로 조성한다는 계획의 하나이다. 이 같은 구상은 전 구청장의 은사인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안에서부터 시작했다. 이날 개장식에 참석한 송 명예교수는 국제형사재판소장 시절 헤이그에서의 일화를 소개하며 “상징공간과 같은 물리적 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시민 교육 등으로 확산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 ‘희망 회로’ 갇힌 농부, 코인으로 날린 원금 찾으려 여동생 속여 추가 대출 [파멸의 기획자들 #17~19]

    ‘희망 회로’ 갇힌 농부, 코인으로 날린 원금 찾으려 여동생 속여 추가 대출 [파멸의 기획자들 #17~19]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정부가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보자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전라북도 완주군의 농부 승현의 눈앞이 캄캄했다. 노트북 화면에 떠 있는 IEKAF 계좌의 마이너스 잔고가 섬뜩한 괴물처럼 그를 집어삼킬 듯했다. 이성조 교수의 ‘수제자’라는 이호철 대표가 운영하던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진행한 선물 거래를 따라가다가 순식간에 강제 청산당했다. 단 10여 분의 거래로 우리 돈 2억원 가까운 잔고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숨쉬기조차 힘들 만큼 고통이 승현을 짓눌렀다. 청산의 충격으로 손에 든 물컵을 쥔 채 오랫동안 굳어버렸다. 목은 타들어 갔지만 물 한 모금 넘길 수 없었다. 텅 빈 방이 심장의 불규칙한 박동 소리로 가득 찼다. 원금 7000만원이 불과 몇 주만에 3배로 불어나자 ‘나도 곧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는데, 단 하루 만에 이런 어이없는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번 거래를 주도한 이호철 대표의 텔레그램 메시지가 승현의 뇌리를 맴돌았다. “투자에 대한 책임은 각자에게 있지만... 제 경험상 일주일 정도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습니다. 원하시면 원금 회복을 도와드릴 수 있어요. 다만 최소 5만 달러(약 7000만원)는 새로 입금하셔야 합니다.” 5만 달러? 그게 누구네 강아지 이름인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금액이었다. 당장 급한 건 다음 주에 농기계 거래 대금으로 지급해야 할 3000만원이었다. 이미 계약금으로 500만원을 지급했는데, 다음 주까지 잔금을 치르지 못하면 그 돈마저 떼인다. 맞춤형 농기계가 없으면 과수원의 나무들을 관리하기 어려워 애써 키운 과일들이 금세 썩어 버릴 터였다. 귀농에 남은 인생을 걸었는데, 그 꿈이 단 하루 만에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이러고 있을 수 없어. 당장 뭐라도 해야 해!” 승현은 절박한 심정으로 노트북을 켰다. 이자가 아무리 높아도 좋으니 대출을 알아봐야 했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 이번 사태의 시작인 ‘강제 청산’이라는 단어에 시선이 꽂혔다. 이를 악물고 검색창에 관련 단어를 입력하자, 한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자사 시스템을 설명하는 정보가 나왔다. “선물 거래의 등락이 극심할 경우, 거래소는 투자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고자 강제 청산이라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이 대표가 했던 말과 똑같았다. ‘맞아. 이번 거래는 단순히 운이 없었을 뿐이야. 우연히 순간적인 시장 변동성이 나를 덮친 거야... 이 대표는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 실력이 부족할 수는 있어도 사기를 친 건 아닐 거야.’ 상황을 이렇게 합리화하자 작은 안도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이어지는 글이 그의 눈을 잡아끌었다. “하지만 저희 거래소는 강제 청산을 통해 고객님의 계좌가 마이너스가 되는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거래소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좀 더 찾아보니 정상적인 거래소의 청산 시스템은 ‘마진콜’(Margin Call) 이후 담보금이 ‘제로(0)’가 되기 직전 자동으로 포지션을 종료한다고 돼 있었다. 거래소가 고객에게 빚을 지우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는 설명과 함께. 그런데도 계좌가 ‘마이너스’인 건 분명 이상했다. 승현은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텔레그램을 켜고 IEKAF 고객센터 매니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매니저님, 오늘 PSV 코인 선물 거래를 하다가 극심한 가격 변동으로 청산을 당했습니다. 원래 청산 시스템은 마이너스 계좌를 방지하는 게 목적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 제 계좌는 제로를 넘어서 마이너스 상태입니다. 이럴 수도 있나요?” 몇 분 뒤 거래소 매니저에게서 답변이 왔다. 매우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내용이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안타까운 소식에 유감을 표합니다. 선물 거래에서는 극심한 가격 변동으로 인해 청산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현재 고객님의 선물 계좌는 ‘-3500 USDT’(약 490만원)로 확인됩니다. 우선 이 금액부터 상환하셔야 합니다. 일주일 내로 상환하지 않으시면 신용도 하락 등 불이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투자금 7000만원을 모두 잃은 것도 억울한데, 500만원 가까운 빚까지 덤으로 지고 신용불량자까지 될 수 있다고 하니 승현의 공포가 극에 달했다. 그러나 ‘마이너스 청산 계좌가 정말 존재할 수 있느냐’는 핵심적인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일단 그는 ‘알겠다’고 답한 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청산’ 관련 글을 찾아 읽어 내려갔다.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어가는 듯했다. 그러다가 서울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올린, 섬뜩한 제목의 글을 발견했다. “이성조 교수 사칭 불법 사기 거래 피해자를 구제해 드립니다.” 승현은 자신이 누구보다 존경하고 따르던 이성조 교수의 이름이 박힌 링크를 홀린 듯 눌렀다. ‘법률사무소 블루’라는 곳에서 올린 네이버 블로그 글이었다. 내용은 충격 그 자체였다. 사기꾼들이 텔레그램 채팅방 ‘부의 길’을 통해 소시민들을 상대로 조직적인 코인 사기 행각을 벌이고 있다는 경고였다. “피해를 봤다면 지체 없이 연락하라”는 광고 문구가 그의 심장을 거칠게 두드렸다. 승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이 글을 그대로 복사해 자신이 속한 채팅방에 공유했다. “혹시 이것 보신 분 계신가요? 누가 설명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떨렸다. 확인하고 싶지 않은 무서운 진실이 눈앞에 펼쳐질까 두려웠다. 곧바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저도 봤어요! 그렇지 않아도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었는데…”, “로펌 광고라서 그냥 무시했어요.”, “우리 교수님 이름을 사칭한 또 다른 사기꾼이 있는 것 같은데요?” 마지막 댓글이 승현의 마음에 희미한 안도감을 제공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이 채팅방에 있는 이성조 교수와 이호철 대표는 사기꾼이 아닐 테니까. 게다가 로펌이 언급한 채팅방 이름은 ‘부의 길’이었고, 지금 승현이 속한 곳은 ‘경제적 자유를 위한 초석’이었다. 그때였다. 텔레그램 알림음이 울리며 이 교수가 직접 해명 메시지를 올리기 시작했다. “존경하는 회원 여러분, 저도 몇 달 전부터 이런 글들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제 운영 방식을 모방해서 사기를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유명 로펌에 소송을 의뢰한 상태이며, 경찰과 공조해서 사기꾼 일당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관련 정보를 갖고 계시면 저나 김가영 비서에게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그가 직접 나서서 상황을 설명하자, 회원들의 격려 댓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럼요, 우리는 교수님을 끝까지 믿습니다!”, “교수님 힘내세요. 사기꾼 일당은 반드시 잡힐 겁니다!”, “어떻게 대한민국 인간문화재 이성조 교수님을 사칭할 수가 있죠?” 사람들의 격려와 위로 속에서 승현은 잠시나마 희망을 느꼈다. 모두가 교수를 믿고 있는데, 나 혼자만 유난스럽게 그를 의심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로펌 블로그의 섬뜩한 경고와 이 교수의 차분한 해명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결국 그는 직접 두눈으로 진실을 확인하기로 했다. 글을 올린 법률사무소를 찾아가 변호사를 만나야만 이 의심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이른 아침, 승현은 전주로 건너가서 서울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은 승현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더욱 부추겼다. 희망을 찾아 고향을 떠났던 과거의 자신이 떠올라 불안감이 더 커졌다. 용산역에 내려 지하철을 타고 신길역으로 향했다. 스마트폰 지도 앱에 ‘법률사무소 블루’ 주소를 입력하니, 역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라고 나왔다. 마음이 급한 승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재개발 예정지역으로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서니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허름한 빌딩 3층에 ‘법률사무소 블루’ 간판이 걸려 있었다. 변호사를 만나기도 전부터 그의 기대는 바닥을 쳤다. ‘이런 곳에도 법률사무소가 있구나.’ 사무실에 도착했다.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으려는데, 문이 알아서 스르륵 열렸다. ‘요즘에는 자동 미닫이문도 있나’라고 의야해하던 찰나, 음식 배달 기사 한 명이 승현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밖으로 나갔다. ‘또 한 명의 불쌍한 인간이 이곳의 미끼 광고에 걸려들었구나’라고 비웃는 것 같은 눈빛으로. 조바심을 억누르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자, 짜장면과 군만두 냄새가 승현의 코를 강하게 찔렀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음을 깨닫자 뒤늦게 허기가 밀려왔다. “어떻게 오셨나요?” 변호사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외모와 기름기 도는 얼굴의 40대 남자가 짜장면을 먹다 말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인터넷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이성조 교수 사칭 사기 사건 때문에…” 남자는 서둘러 테이블 위 서류들을 한쪽으로 밀어 치우고, 물티슈를 꺼내 음식을 올려둔 먼지 낀 테이블 위를 쓱쓱 닦았다. 이 사무실은 사채업자 아지트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낡고 지저분했다. 모든 것이 1980년대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승현은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책장에 가득 쌓인 낡은 법률 서적을 두루 살펴본 뒤에야, ‘여기가 정말 변호사 사무실이 맞긴 하구나’라고 체념에 가까운 인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가 종이컵에 재빠르게 믹스 커피를 타서 승현에게 건넸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법률사무소 블루의 김대유 사무장이라고 합니다. 우리 변호사님은 금융 거래, 사기 등 분야에서 상당히 유명하신 분입니다.” 승현은 사무장이 내민 명함을 받았다. 앞면에는 모든 글자가 한자로 쓰여 있었고, 뒷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승현은 김대유의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한 눈빛을 읽으며 믹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사무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이성조 교수 사건의 피해자신가요?” “솔직히 말하면 이게 피해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변호사님 블로그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일단 사무장님의 설명을 듣고 상담 여부를 결정하려고요.” 승현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SNS 광고를 보고 이 교수의 카카오톡 채팅방에 가입한 뒤 텔레그램으로 이동했고, 5만 달러(약 7000만원)로 코인 선물 거래 ‘예비클럽’에 가입해 잠시 큰 수익을 냈다가, 이 교수의 수제자라는 이호철 대표의 잘못된 리딩 판단으로 모든 것을 날리고 거액의 빚까지 지게 됐다고. 이 대표가 원금 회복을 위해 5만 달러를 추가로 입금하라고 요구해 고민하던 차 블루의 블로그 글을 보고 여기로 찾아왔다고. 사무장은 그의 이야기를 미동도 없이 듣더니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안타깝지만 사기를 당하신 게 맞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우리 변호사님은 이 분야 최고 전문가시니까요. 이런 종류의 사기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돈을 되찾아 드린 경험이 아주 많습니다. 일단 여기 서류부터 작성해 주세요.” 김 사무장의 설명 방식이 이 교수의 비서 김가영의 텔레그램 말투와 판박이였다. ‘두 사람이 동일 인물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순간 승현의 머릿속에 ‘내가 새로운 종류의 사기 사건에 휘말리는 건 아닐까’라는 싸늘한 생각이 스쳤다. 이 변호사의 사무실이야말로 ‘신길동에 똬리를 튼 또 다른 협작꾼들의 소굴’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말이죠… 변호사 수임료는 얼마나 되나요? 아까 말씀드렸듯 제가 5만 달러를 날려서 당장은 돈이 없거든요.” “수임료는 피해 금액에 따라 다르긴 한데요.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셨으니 가격은 충분히 조정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얼마인가요?” “500만원까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500만원’이라는 말을 듣자 승현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어제 이호철 대표와 함께한 선물 거래에서 강제 청산을 당했을 때처럼 불쾌하고 위협적인 느낌이었다. ‘이 사람들도 변호사와 사무장의 탈을 쓴 수임료 기계들이구나.’ 사무장의 주장대로 이 교수 일당이 자신에게 사기 행각을 벌인 게 맞다면, 그간 자신이 거래한 가상화폐 거래소와 코인이 모두 가짜여야 했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오고자 짐을 챙기면서 승현은 뭔가가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들이야말로 이성조 교수를 활용해서 변호사 수임료나 한탕 뜯어내려는 작자들이 틀림없다는 확신 말이다. ‘결국 가상화폐 강제 청산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 이 대표는 그저 나에게 더 많은 수익을 챙겨주려고 아무 대가도 없이 선물 거래를 리딩한 것 뿐이잖아. 극심한 가격 변동 때문에 본인 역시 수억원의 손실을 입었는데… 이럴 때일수록 회원끼리 서로 믿고 의지해야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현실을 합리화한 승현은 마음을 단단히 고쳐 먹었다. 이제 그에게 ‘주적’은 이 교수가 아니라 신길역의 이름 모를 변호사와 그 일당이었다. “일단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여기 더 있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판단한 승현이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사무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400만원까지 해 드릴게요!”라고 외쳤지만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 외침은 오히려 신길동 일당이 수임료로 서민들의 돈을 뜯어내려 했다는 증거로 들릴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그는 당장 다음 주에 지급해야 할 농기계 거래대금 3000만 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3000만원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결론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1억원을 구해서 다시 IEKAF에 밀어 넣어보자. 이호철 대표의 도움을 받아서 투자금만 되찾으면 거래대금 3000만원은 아주 쉽게 복구할 수 있잖아. 이 대표가 최대한 빨리 원금을 회복시켜 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를 한 번 믿어보자.’ 승현은 곧바로 농협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집과 농장을 담보로 9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부산에 사는 여동생 지혜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과수원 사업이 잘돼서 대형 마트들과 납품 계약을 맺기로 했는데, 보증금으로 30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지혜는 자신의 오빠가 진짜로 성공을 거둔 줄 알고 크게 기뻐하며, 주택 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전부 보냈다. 그날 밤, 승현은 전날 강제 청산의 충격 때문에 못 이룬 잠까지 보상받듯 평소보다 더 평안한 밤을 보냈다. 자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제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이호철 대표의 도움으로 농기계 거래대금은 물론 대출금까지 다 갚을 수 있다. 3000만원을 돌려주면서 늘 마음에 걸리던 여동생 가족의 낡은 TV도 바꿔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그는 현실의 위기를 외면한 채 스스로 창조한 ‘희망 회로’ 속으로 더욱 깊숙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 ‘희망 회로’에 갇힌 농부, 코인으로 날린 원금 찾으려 여동생까지 속여 추가 대출 [파멸의 기획자들 #19]

    ‘희망 회로’에 갇힌 농부, 코인으로 날린 원금 찾으려 여동생까지 속여 추가 대출 [파멸의 기획자들 #19]

    서울신문 나우뉴스는 ‘사기공화국’ 대한민국에 경종을 울리고자 르포 소설 ‘파멸의 기획자들’을 연재합니다. 우리 사회를 강타한 실제 가상화폐 사기 사건을 나한류 작가가 6개월 가까이 취재·분석해 소개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사기를 피하는 바이블’이자 정부가 범죄에 더 엄하게 대응하도록 촉구하는 ‘여론 환기’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제보자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사건 속 인물과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 등은 모두 가명 처리했습니다. 남자가 종이컵에 재빠르게 믹스 커피를 타서 승현에게 건넸다. “제 소개가 늦었네요. 법률사무소 블루의 김대유 사무장이라고 합니다. 우리 변호사님은 금융 거래, 사기 등 분야에서 상당히 유명하신 분입니다.” 승현은 사무장이 내민 명함을 받았다. 앞면에는 모든 글자가 한자로 쓰여 있었고, 뒷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승현은 김대유의 어딘지 모르게 불안정한 눈빛을 읽으며 믹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사무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혹시 이성조 교수 사건의 피해자신가요?” “솔직히 말하면 이게 피해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일단 변호사님 블로그에 적혀 있는 내용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일단 사무장님의 설명을 듣고 상담 여부를 결정하려고요.” 승현은 그간 있었던 일들을 자세히 설명했다. SNS 광고를 보고 이 교수의 카카오톡 채팅방에 가입한 뒤 텔레그램으로 이동했고, 5만 달러(약 7000만원)로 코인 선물 거래 ‘예비클럽’에 가입해 잠시 큰 수익을 냈다가, 이 교수의 수제자라는 이호철 대표의 잘못된 리딩 판단으로 모든 것을 날리고 거액의 빚까지 지게 됐다고. 이 대표가 원금 회복을 위해 5만 달러를 추가로 입금하라고 요구해 고민하던 차 블루의 블로그 글을 보고 여기로 찾아왔다고. 사무장은 그의 이야기를 미동도 없이 듣더니 늘상 있는 일이라는 듯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안타깝지만 사기를 당하신 게 맞습니다. 하지만 걱정 마세요. 우리 변호사님은 이 분야 최고 전문가시니까요. 이런 종류의 사기로 피해를 입으신 분들의 돈을 되찾아 드린 경험이 아주 많습니다. 일단 여기 서류부터 작성해 주세요.” 김 사무장의 설명 방식이 이 교수의 비서 김가영의 텔레그램 말투와 판박이였다. ‘두 사람이 동일 인물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순간 승현의 머릿속에 ‘내가 새로운 종류의 사기 사건에 휘말리는 건 아닐까’라는 싸늘한 생각이 스쳤다. 이 변호사의 사무실이야말로 ‘신길동에 똬리를 튼 또 다른 협작꾼들의 소굴’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말이죠… 변호사 수임료는 얼마나 되나요? 아까 말씀드렸듯 제가 5만 달러를 날려서 당장은 돈이 없거든요.” “수임료는 피해 금액에 따라 다르긴 한데요.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셨으니 가격은 충분히 조정해 드리겠습니다.” “그래서 얼마인가요?” “500만원까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500만원’이라는 말을 듣자 승현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어제 이호철 대표와 함께한 선물 거래에서 강제 청산을 당했을 때처럼 불쾌하고 위협적인 느낌이었다. ‘이 사람들도 변호사와 사무장의 탈을 쓴 수임료 기계들이구나.’ 사무장의 주장대로 이 교수 일당이 자신에게 사기 행각을 벌인 게 맞다면, 그간 자신이 거래한 가상화폐 거래소와 코인이 모두 가짜여야 했다.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오고자 짐을 챙기면서 승현은 뭔가가 명쾌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들이야말로 이성조 교수를 활용해서 변호사 수임료나 한탕 뜯어내려는 작자들이 틀림없다는 확신 말이다. ‘결국 가상화폐 강제 청산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어. 이 대표는 그저 나에게 더 많은 수익을 챙겨주려고 아무 대가도 없이 선물 거래를 리딩한 것 뿐이잖아. 극심한 가격 변동 때문에 본인 역시 수억원의 손실을 입었는데… 이럴 때일수록 회원끼리 서로 믿고 의지해야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의 현실을 합리화한 승현은 마음을 단단히 고쳐 먹었다. 이제 그에게 ‘주적’은 이 교수가 아니라 신길역의 이름 모를 변호사와 그 일당이었다. “일단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오겠습니다.” 여기 더 있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판단한 승현이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등 뒤에서 사무장이 다급한 목소리로 “400만원까지 해 드릴게요!”라고 외쳤지만 그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그 외침은 오히려 신길동 일당이 수임료로 서민들의 돈을 뜯어내려 했다는 증거로 들릴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그는 당장 다음 주에 지급해야 할 농기계 거래대금 3000만 원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3000만원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결론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1억원을 구해서 다시 IEKAF에 밀어 넣어보자. 이호철 대표의 도움을 받아서 투자금만 되찾으면 거래대금 3000만원은 아주 쉽게 복구할 수 있잖아. 이 대표가 최대한 빨리 원금을 회복시켜 준다고 약속했으니까 그를 한 번 믿어보자.’ 승현은 곧바로 농협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연락해 집과 농장을 담보로 9000만원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부산에 사는 여동생 지혜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과수원 사업이 잘돼서 대형 마트들과 납품 계약을 맺기로 했는데, 보증금으로 300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지혜는 자신의 오빠가 진짜로 성공을 거둔 줄 알고 크게 기뻐하며, 주택 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전부 보냈다. 그날 밤, 승현은 전날 강제 청산의 충격 때문에 못 이룬 잠까지 보상받듯 평소보다 더 평안한 밤을 보냈다. 자는 내내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이제 일주일 정도만 지나면 이호철 대표의 도움으로 농기계 거래대금은 물론 대출금까지 다 갚을 수 있다. 3000만원을 돌려주면서 늘 마음에 걸리던 여동생 가족의 낡은 TV도 바꿔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렇게 그는 현실의 위기를 외면한 채 스스로 창조한 ‘희망 회로’ 속으로 더욱 깊숙이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20회로 이어집니다. 사기 피해 예방과 범인 검거를 위해 많은 이들과 기사를 공유해 주세요.)
  • 서초 향나무 아래서 손잡은 사법부와 지자체

    서초 향나무 아래서 손잡은 사법부와 지자체

    서초구·대법원 ‘서초역 향나무 공간 조성’ 개장식 참석‘사법정의 허브 조성’… 대법원서 후계목 식수 행사도“새 천년 사법정의 이루도록 노력” “이같은 공간을 만든 것은 우리 법치주의와 서민의 사법 접근성 향상이라는 큰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큰 발걸음이라고 생각합니다.”(천대엽 법원행정처장) “법이라는 것이 우리 국민의 일상에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 있음을 실감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전성수 서울 서초구청장) 지난 2일 ‘서초역 향나무 공간 조성’ 개장식에 참석한 전성수 서울 서초구청장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사법정의를 상징하는 공간을 만든 의미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서초구는 서초역 사거리에 약 890년이 된 보호수 향나무인 ‘천년향’을 중심으로 ‘아시아·태평양 사법정의 허브’의 상징 공간을 조성하고 이날 개장식을 열었다. 아·태 사법정의 허브는 대법원, 대검찰청, 대한변호사협회 등 전국 최대 법조단지가 있는 서초역 일대 약 53만 6000㎡ 지역에 조성된다. 이날 두 기관은 대법원에서 천년향의 뒤를 이을 후계목 식수 행사를 가진 뒤 서초역 사거리의 향나무 상징공간으로 이동해 개장식을 가졌다. 개장식에는 지역주민과 법무부, 대검찰청,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들도 함께 했다. 향나무 상징공간에는 서초역 사거리 횡단보도와 연결된 접근로를 신설해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바닥에는 법률 명언이 새겨있어 자연스럽게 법과 정의의 가치를 체감할 수 있다. 천 처장은 “서초구가 후계목을 대법원 경내에 심어주셨다. 그 큰 뜻을 이어받아서 새로운 1000년의 사법정의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이에 전 구청장은 “이 자리에 함께 한 모든 기관이 노력해주신 덕분”이라고 화답했다. 서초구는 아·태 사법정의 허브와 관련, 지난해 3월 지정·고시를 하고 같은해 7월에 선포식을 개최하는 등 조성에 속도를 내고 있다. 법조 관련 기관이 밀집한 이 지역을 네덜란드 헤이그와 같은 세계적인 사법 정의의 메카로 조성한다는 계획의 일환이다. 이같은 구상은 전 구청장의 은사인 송상현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안에서부터 시작했다. 이날 개장식에 참석한 송 명예교수는 국제형사재판소장 시절 네덜란드 헤이그에서의 일화를 소개하며 “상징공간과 같은 물리적 시설을 설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시민 교육 등으로 확산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 검사·금감원·은행 나눠 ‘역할극’… AI 통해 가스라이팅 시켜 조종

    검사·금감원·은행 나눠 ‘역할극’… AI 통해 가스라이팅 시켜 조종

    수사당국·금융기관 사칭해 접근다크웹으로 개인 정보 미리 빼내 문자메시지로 악성 앱 설치 유도“확인차 연락”한다며 피해자 압박AI 딥보이스 기술 통해 수법 진화가스라이팅 당한 20대 도피 생활 30대 이하·40~60대도 범죄 표적“검거율 낮아… 해외 사법 공조 필요” 올해 1~7월 보이스피싱·스미싱 피해액이 8000억원에 육박하는 등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그만큼 피싱조직의 수법이 진화하고 있어서다. “서울중앙지검 ○○○ 검사입니다”, “금융감독원 ○○○입니다” 등 기관 단 1곳을 사칭해 범죄에 연루됐다며 출금을 유도하는 ‘고전 방식’은 사라지는 추세다. 31일 경찰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근 두드러진 보이스피싱의 유형 중 하나는 정교해진 ‘역할극 기관 사칭 사기’다. 피싱조직은 검사, 금감원 직원, 은행 직원 등으로 역할을 나눠 피해자에게 접근한다. 피해자의 연락처, 이름, 직장 등 일부 개인정보는 다크웹 등을 통해 확보한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후 이들은 맞춤형 사기를 저지르기 위해 ‘악성 앱 설치’에 사활을 건다. 대표적인 방식은 문자메시지를 통한 ‘배송조회 URL’ 전송이다. 피해자가 링크를 누르도록 유도한 뒤 “신청하지 않은 카드가 배송될 예정이니 보안 점검을 위해 앱을 설치하라”고 안내한다. 저금리 대출 광고에 응한 피해자에게는 ‘대출 전용 앱’, ‘보안 앱’ 설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A씨는 ‘대출 상담을 원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 달라’는 문자를 받은 이후 URL을 클릭했고 이후 안내받은 대로 ‘서민금융진흥원 앱’을 설치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앱은 피싱조직의 악성 앱이었다. 하지만 A씨는 카드사를 사칭해 ‘대출금 중 3000만원을 갚으라’는 피싱조직의 요구대로 돈을 보낸 이후였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금융회사 앱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후 범죄 조직원들은 여러 기관을 사칭하며 피해자를 압박한다. 검찰을 사칭한 조직원이 “당신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불법 자금 세탁에 이용됐다”고 전화를 하면 곧이어 금감원을 사칭한 조직원이 “최근 계좌 사칭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 확인차 연락드린다”며 다시 전화를 하는 식이다. 이 밖에도 카드배송원이나 우체국 집배원이 “카드 배송을 하러 왔다”고 연락한 뒤 “본인이 신청한 게 아니면 명의가 도용됐으니 고객센터에 전화해 보라”고 속이는 것도 수법 중 하나다. 피해자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이미 설치된 악성 앱이 작동해 통화가 조직원에게 연결된다. 이후 ‘범죄와 연루돼 있으니 다른 계좌로 돈을 옮겨야 한다’는 식으로 송금을 요구하는 등 피해자를 기만한다. 심리적 지배를 통한 ‘가스라이팅’ 방식 사기도 늘고 있다. 피싱조직은 피해자가 완전히 통제당했다고 판단할 때까지 돈을 요구하지 않고 반성문 작성 등을 지시한다. ‘본인이 처벌될 경우 가족이 입을 불이익’을 강조해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8월 초 전북 익산에 사는 20대 회사원 B씨는 개인정보 유출로 범죄에 연루됐다는 피싱조직의 가스라이팅에 속아 모텔에서 나흘간 먹고 자면서 실제 도피 생활을 했다. “선생님, 유출된 개인정보가 범죄에 활용됐는데요. 우선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 계시면 조치를 취해 보겠습니다.” 이 같은 전화를 받은 B씨는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하겠다”는 조직의 압박에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5000만원을 피싱조직에 건네려 했지만 다행히도 관련 첩보를 입수한 경찰의 설득으로 거액을 송금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예전의 단순한 보이스피싱으로 여겨 ‘나는 당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고 경고했다.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확보한 사진과 영상을 가지고 인공지능(AI)으로 목소리 등을 위조하는 ‘딥페이크·딥보이스 기술’도 피해자를 감쪽같이 속이는 데 한몫한다. 한 대학교수는 지난 4월 “아빠 지금 5000만원만 빨리 입금해 줄 수 있을까? 지금 이 계좌로 좀 보내 줘”라는 전화를 딸에게 받았다고 한다. 30년간 들었던 외동딸의 목소리였지만 알고 보니 AI 기술로 딸의 목소리를 흉내 낸 것이었다. 피해자는 연령을 불문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기관사칭형’ 피해자의 52%는 30대 이하였고, ‘대출빙자형’ 피해자의 80%는 경제활동이 왕성한 40~60대였다. 건당 평균 피해액은 2022년 2326만원에서 올해는 7554만원으로 점점 고액화되는 추세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 증가에는 낮은 검거율도 한몫한다”며 “국가 간 사법공조 체제를 강화하는 협정 체결이 효과적일 수 있다. 또 피싱이 합리적인 수준 이상으로 의심되는 경우 금융기관이 경찰에 신고하도록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 피해자 혼 쏙 빼는 요즘 보이스피싱…가스라이팅까지

    피해자 혼 쏙 빼는 요즘 보이스피싱…가스라이팅까지

    올해 1~7월 보이스피싱·스미싱 피해액이 8000억원에 육박하는 등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것은 그만큼 피싱조직의 수법이 진화하고 있어서다. “서울중앙지검 ○○○ 검사입니다”, “금융감독원 ○○○입니다” 등 기관 단 1곳을 사칭하면서 범죄에 연루됐다며 출금을 유도하는 ‘고전 방식’은 사라지는 추세다. 31일 경찰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최근 두드러진 보이스피싱의 유형 중 하나는 정교해진 ‘역할극 기관 사칭 사기’다. 피싱조직은 검사, 금감원 직원, 은행 직원 등으로 역할을 나눠 피해자에게 접근한다. 피해자의 연락처, 이름, 직장 등 일부 개인정보는 다크웹 등을 통해서 확보한 상태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후 이들은 맞춤형 사기를 저지르기 위해 ‘악성 앱 설치’에 사활을 건다. 악성 앱이 설치되면 피해자가 거는 전화를 중간에서 가로채 받을 수 있고, 문자 메시지나 검색 내역 등도 파악할 수 있어서다. 대표적인 방식은 문자 메시지를 통한 ‘배송조회 URL’ 전송이다. 피해자가 링크를 누르도록 유도한 뒤 “신청하지 않은 카드가 배송될 예정이니 보안 점검을 위해 앱을 설치하라”고 안내한다. 저금리 대출 광고에 응한 피해자에게는 ‘대출 전용 앱’, ‘보안 앱’ 설치를 요구하기도 한다. 서울에 거주하는 40대 A씨는 ‘대출 상담을 원한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달라’는 문자를 받은 이후 URL을 클릭했고, 이후 안내받은 대로 ‘서민금융진흥원 앱’을 설치했다. 경찰 수사 결과 이 앱은 피싱조직의 악성 앱이었다. 하지만 A씨는 카드사를 사칭해 ‘대출금 중 3000만원을 갚으라’는 피싱조직의 요구대로 돈을 보낸 이후였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금융회사 앱과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이후 범죄 조직원들은 여러 기관을 사칭하며 피해자를 압박한다. 검찰을 사칭한 조직원이 “당신 명의로 개설된 계좌가 불법 자금 세탁에 이용됐다”고 전화를 하면 곧이어 금감원을 사칭한 조직원이 “최근 계좌 사칭 범죄가 급증하고 있어 확인차 연락드린다”며 다시 전화를 하는 식이다. 이 밖에도 카드배송원이나 우체국 집배원이 “카드 배송을 하러 왔다”고 연락한 뒤 “본인이 신청한 게 아니면 명의가 도용됐으니 고객센터에 전화해 보라”고 속이는 것도 수법 중 하나다. 피해자가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면 이미 설치된 악성 앱이 작동해 통화가 조직원에게 연결된다. 이후 ‘범죄와 연루돼 있으니 다른 계좌로 돈을 옮겨야 한다’는 식으로 송금을 요구하는 등 피해자를 기만한다. 심리적 지배를 통한 ‘가스라이팅’ 방식 사기도 늘고 있다. 피싱조직은 피해자가 완전히 통제당했다고 판단할 때까지 돈을 요구하지 않고 반성문 작성 등을 지시한다. ‘본인이 처벌될 경우 가족이 입을 불이익’을 강조해 불안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8월 초 전북 익산에 사는 20대 회사원 B씨는 개인정보 유출로 범죄에 연루됐다는 피싱조직의 가스라이팅에 속아 모텔에서 나흘간 먹고 자면서 실제 도피 생활을 했다. “선생님, 유출된 개인정보가 범죄에 활용됐는데요. 우선 안전한 장소로 이동해 계시면 조치를 취해 보겠습니다.” 이 같은 전화를 받은 B씨는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구속하겠다”는 조직의 압박에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후 5000만원을 피싱조직에 건네려 했지만 다행히도 관련 첩보를 입수한 경찰의 설득으로 거액을 송금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예전의 단순한 보이스피싱이라 ‘나는 당하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라고 경고했다. 소셜미디어(SNS) 등에서 확보한 사진과 영상으로 AI(인공지능)로 목소리 등을 위조하는 ‘딥페이크·딥보이스 기술’도 피해자를 감쪽같이 속이는 데 한몫한다. 한 대학교수는 지난 4월 “아빠 지금 5000만원만 빨리 입금해 줄 수 있을까? 지금 이 계좌로 좀 보내줘”라는 전화를 딸에게 받았다고 한다. 30년간 들었던 외동딸의 목소리였지만, 알고보니 AI 기술로 딸의 목소리를 흉내 낸 것이었다. 피해자는 연령을 불문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기관사칭형’ 피해자의 52%는 30대 이하였고, ‘대출빙자형’ 피해자의 80%는 경제 활동이 왕성한 40~60대였다. 건당 평균 피해액은 2022년 2326만원에서 올해는 7554만원으로 점점 고액화되는 추세다. 치밀한 설계로 큰 피해를 안기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는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 증가에는 낮은 검거율도 한몫한다”며 “국가 간 사법 공조 체제를 강화하는 협정 체결이 효과적일 수 있다. 또 피싱이 합리적인 수준 이상으로 의심되는 경우 금융기관이 경찰에 신고하도록 권한과 의무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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