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상감청자
    2026-08-31
    검색기록 지우기
  • 자진 출석
    2026-08-31
    검색기록 지우기
  • 사리 추가
    2026-08-31
    검색기록 지우기
  • 김해운
    2026-08-31
    검색기록 지우기
  • 월 45시간
    2026-08-3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4
  • 청주 운천근린공원 부지서 고려시대 청석탑 발굴

    청주 운천근린공원 부지서 고려시대 청석탑 발굴

    청주시는 흥덕구 운천근린공원 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에서 고려시대 사찰 건물지와 함께 청석탑 부재(部材)가 확인됐다고 16일 밝혔다. 청석탑은 검푸른 빛의 점판암을 여러 층으로 쌓아 만든 고려시대 석탑이다. 부재는 구조물의 뼈대를 이루는 여러 가지 재료를 의미한다. 이번에 출토된 부재는 청석탑 맨 위 장식부인 상륜부를 구성하는 복발(覆鉢), 보륜(寶輪), 수연(水煙) 등이다. 시는 부재가 양호한 상태로 출토돼 고려시대 청석탑의 구조와 조형 양식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학술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국 17곳에 청석탑이 남아 있는데 폐사찰 터에서 발굴조사를 통해 청석탑 부재가 확인된 것은 국내 첫 사례다. 청석탑 부재가 나온 건물지는 중앙에 마당을 둔 ‘ㅁ’ 자형 평면 배치 구조로 확인됐다. 이곳에선 고려 전기 해무리굽 청자류와 상감청자 매병편, 연화문·일휘문 막새기와, 전돌, 청동제품 등 유물이 다수 출토됐다. 시 관계자는 “발굴 성과를 바탕으로 유적의 보존 및 활용 방안을 체계적으로 마련하고 시민들을 위한 현장 공개 행사와 학술대회를 검토할 계획”이라며 “이번 조사는 문화유산 보존과 도시공원 조성을 함께 추진한 모범 사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는 유적이 발굴된 부지를 제외하고 공원 조성을 추진해 지난달 운천근린공원을 준공했다.
  • ‘호암 이병철 회장의 고향’ 경남 의령에 오는 이건희 컬렉션

    ‘호암 이병철 회장의 고향’ 경남 의령에 오는 이건희 컬렉션

    경남 의령군은 이달 10일부터 8월 9일까지 의병박물관 제2전시관에서 ‘국보순회전-우리 동네에서 만나는 보물’ 특별전을 연다고 2일 밝혔다. 의병박물관과 국립진주박물관이 공동 주관하는 이번 전시는 ‘도자기에 핀 꽃, 상감청자’를 주제로 삼았다. 국보 ‘청자 상감 모란무늬 항아리’를 비롯해 고(故)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유물 등 총 6건 6점의 문화유산을 공개한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추진하는 국보 순회전 사업의 하나다. 수도권에 집중된 문화유산을 지역에서도 접하게 하자는 취지다. 삼성 창업주 호암 이병철 회장의 고향인 의령에서 이건희 컬렉션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상감청자는 도자기 표면에 문양을 새긴 뒤 흰색 또는 붉은색 흙을 메워 넣고 유약을 입혀 구워낸 고려시대 대표 도자기다. 은은한 비색과 정교한 문양이 특징으로, 고려청자의 예술성과 기술 수준을 보여주는 대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다. 전시와 함께 다양한 체험·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19일에는 상감청자를 주제로 한 ‘인문학 콘서트’를 연다. 13일~14일에는 매직쇼와 상감청자 만들기 체험, 27일에는 ‘상감청자의 유래를 찾아 떠나는 역사유적기행’을 진행한다. 전시 기간 매주 주말에는 교구 체험 프로그램인 ‘내 손으로 만드는 고려청자’를 운영해 관람객에게 고려청자를 직접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의병박물관 관계자는 “이번 특별전은 지역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국보급 문화유산과 이건희 컬렉션을 가까이에서 만날 뜻깊은 기회”라며 “앞으로도 지역민과 관광객이 수준 높은 문화유산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전시·체험 프로그램 관련 문의는 의병박물관(055-570-2842)으로 하면 된다.
  • 국보급 ‘이건희 컬렉션’,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고향 의령에 온다

    국보급 ‘이건희 컬렉션’,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 고향 의령에 온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 국보급 문화재’가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회장 고향인 경남 의령에 온다. 의령군 의병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주관하는 ‘2026 국보 순회전 공모사업’ 전시기관으로 최종 선정됐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공모는 전국 공립박물관 254곳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1차 심사를 거쳐 18개관을 후보로 선정했고 최종 평가로 6개관을 전시 개최 기관으로 정했다. 의병박물관은 경쟁 심사를 통과하며 전시 기획 역량과 지역 문화 인프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의병박물관은 이번 국보 순회전을 통해 ‘도자에 핀 꽃, 상감청자’를 주제로 한 특별전을 2026년 상반기에 열 예정이다. 고려 상감청자 조형미와 섬세한 문양을 중심으로 한 전시는 도자에 담긴 자연의 아름다움과 우리 도자 문화 예술적 가치를 조명하는 내용까지 담아 관람객을 찾는다. 전시에서는 국보 ‘청자상감 모란무늬 항아리’를 비롯해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국보급 도자가 주요 전시 유물을 선보일 예정이다. 이건희 컬렉션은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국가에 기증한 문화유산이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선생 고향에서 국보급 문화재가 전시된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국보 순회전은 전액 국비로 추진한다. 전시에는 총 1억 6000만원이 투입된다. 의병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국보와 국보급 문화재를 지역에서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국가 대표 문화유산 가치를 지역 사회와 공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김충배의 박물관시대] 박물관이 선도하는 K디자인

    [김충배의 박물관시대] 박물관이 선도하는 K디자인

    최근 우리나라 박물관을 비롯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벌어지는 문화행사에서 특이한 현상이 목격된다. 중심 전시나 행사보다 보조적 요소인 문화상품 판매가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박물관의 유물을 소재로 만든 상품들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민화 속 까치호랑이나 반차도의 인물들, 상감청자, 미륵보살상, 조선 왕실의 보자기 문양 등이 가방에 매다는 작은 인형이나 키링, 스카프, 램프 같은 생활 속 소품들에 등장하고 있다. 이런 문화상품의 제작과 상품 개발은 국가유산진흥원과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이 선도하고 있다. 필자가 국립고궁박물관 재임 시절에 만들어 호평받았던 사각 유리등이나 모란 향수 같은 문화상품들은 아이디어와 기본적인 디자인 방향성은 박물관이 제공하고, 실질적인 상품 개발과 판매는 국가유산진흥원이 맡았다. 사람들이 박물관 경험을 추억하기 위해 구매하는 문화상품은 꽤 오랜 협동과 노력의 결과물이다. 또한 문화상품의 역할이 점차 중요해지면서 박물관으로서는 이를 개발하는 데 더욱 정성을 기울이게 된다. 그런데 앞으로는 어떨까. 현재와 같은 문화상품들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끌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시민들의 기호는 변하므로 더 향상되고 변화된 박물관적 요소를 고민해야만 한다. 앞서 예를 들었던 사각 유리등은 효종대에 왕실의 밤잔치에 쓰였던 장식성 조명기구라는 특수한 서사가 곁들여진 데다가 상품 자체도 매우 예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사각 유리등은 예쁜 소품에 머물지 않고 실생활에 밀접한 공공시설의 디자인에 적용해 상업용 상품으로 개발됐다. 마침 교체시기가 도래한 경복궁 둘레길과 서울 인사동의 도보 가로등을 사각 유리등을 바탕으로 제작한 등기구로 바꾸어 시민들에게 큰 만족감을 주었다. 별다른 특색이 없던 가로등을 왕실의 디자인을 입혀 정체성이 뚜렷한 요소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향후 문화상품의 방향성은 이렇게 한시적 즐거움을 지나 삶 속에서 더욱 밀접하게 활용되고 부가가치가 큰 실용품으로 발전해 가는 것이어야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희귀한 순정효황후의 리무진 자동차를 바탕으로 국가 의전차를 만들거나 대한제국 시기 궁전에 사용한 패턴을 응용해 현대에도 어울리는 벽지를 제작한다든지 하는 박물관 유물 디자인의 적극적 활용이 필요하다. 이런 방식의 활용이 가능하도록 박물관들이 원초적 디자인 소스를 제공하고 필요하다면 개발에 함께 나서면 좋겠다. 국공립박물관에서 만든 고해상도 사진을 공개하거나 정밀한 3D콘텐츠들을 제한 없이 사용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을 더욱 확대하고 적극적으로 진행했으면 좋겠다. 이런 박물관들의 노력으로 앞으로 우리나라의 전통적 정체성이 드러날 다양한 K디자인 상품들이 쏟아져 나와서 박물관을 누리는 방식이 더욱 발전하길 기대한다. 김충배 허준박물관장
  • 상명대-부안청자박물관, ‘청년 도예가’ 육성 맞손

    상명대-부안청자박물관, ‘청년 도예가’ 육성 맞손

    상명대학교(총장 홍성태)는 전북 부안 청자박물관과 청자 상감기법 전승을 통한 청년 도예가 육성과 도자산업 활성화 등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13일 밝혔다. 이번 협약은 지역 도예가와 예술인 연계 협력 사업 개발에 이어 고려청자 학술 연구 등 한국 문화유산 발굴과 보존을 위해 기획됐다. 협약 주요 내용은 △상감청자 전문 인력 양성을 위한 공동 협력사업 발굴 △도자산업 육성 △지역 청자 문화자원 공동 조사 △지역 도예가와의 교류 등이다. 부안청자박물관은 2011년에 개관한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1000여년 전 고려청자를 구워냈던 가마터를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야외 사적공원이 있다. 상명대는 1988년 국내대학으로 유일하게 산업도자기 디자인개발과 연구 전문 인력 양성 등을 위해 세라믹디자인전공을 신설 창의적 도자 디자인 전문 인력을 양성 중이다. 상명대학교 유동관 디자인대학장 “이번 협약으로 부안군 대표 문화자원인 상감청자를 활용한 도자산업 활성화 방안을 부안군과 함께 모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권익현 부안군수는 “부안이 청년 도예가들에게 창의적 실험과 성장을 위한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도자 관련 인프라를 확충하고 청자 산업 지원 정책을 적극 발굴하겠다”고 강조했다.
  • 다양성의 공존… 200여년간 펼쳐진 ‘조선 전기 미술’ 대서사

    다양성의 공존… 200여년간 펼쳐진 ‘조선 전기 미술’ 대서사

    시작과 끝은 점이 아니라 선이자 면이다. 조선 전기는 왕조 교체에 따른 혁신과 이상으로 새로운 미감이 탄생한 시기였지만, 동시에 고려 말부터 이어져 오던 미의식의 변형과 성장이 일어난 시기이기도 하다. 다양함이 공존하던 조선 전기 미술의 면모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0일부터 8월 31일까지 선보이는 특별전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이다. 그동안 조선 후기에 비해 전기의 면모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현존하는 작품 수가 적을뿐더러 주요 작품 다수가 국외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용산 개관 20주년을 맞이해 열리는 만큼 대규모로 기획됐다. 도자, 서화, 불교미술 등 당시 미술을 대표하는 691건의 작품이 출품됐다. 이 중에는 국보 16건, 보물 63건과 미국, 일본 등 5개국 24개 기관에서 온 작품이 포함됐다. 국내 최초로 공개되는 작품도 23건에 달한다. 이번 전시는 조선 전기 200여년간 펼쳐진 미술의 거대한 서사를 도자, 서화, 불교미술 세 분야로 나누고 각각 백(白), 묵(墨), 금(金)이라는 세 가지 색으로 살펴보는 점이 흥미롭다. 전시장 초입에는 멈추지 않는 시간의 흐름 한가운데 자리잡은 ‘이성계 발원 사리장엄’을 전시했다. 금강산 월출봉 석함에 봉안한 사리장엄 표면에는 새로운 시대를 바라는 민중의 염원을 등에 업고 이성계 자신이 직접 새로운 세상을 열고자 하는 의지가 담겼다. 푸른 청자의 시대가 가고 분청사기와 백자의 시대가 펼쳐진 광경도 엿볼 수 있다. 특히 도자 300여건을 배치한 길이 14m, 높이 3m의 벽은 이번 전시의 백미다. 연한 상아색을 띠는 국보 ‘백자 상감연화당초문 대접’, 1489년 제작된 사실을 알 수 있는 ‘백자 청화 홍치2년명(銘) 송죽문 항아리’ 등이 전시됐다. 임진아 학예연구사는 “조선 전기는 역사상 가장 다양한 도자기가 공존했던 시대”라며 “고려 상감청자를 계승한 장식기법이 ‘상감’에서 무늬 도장을 사용해 그릇 표면에 새기는 ‘인화’로 변화하면서 일종의 시대 양식을 이뤘고 결국 백자로 수렴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조선 사대부의 취향이 깃든 여러 서화도 만나 볼 수 있다. 사대부들은 먹 안에 모든 색이 들어 있다고 여겼는데, 사유를 중시했던 그들의 이상과 잘 맞았다. 일본 모리박물관이 소장한 ‘산수도’는 기존에는 중국 송나라 시기의 그림으로 여겨졌으나 최근 연구를 통해 16세기 중반 작품으로 재평가됐다. 미국 LA카운티미술관이 소장한 ‘산시청람도’와 일본 야마토문화관 소장 ‘연사모종도’는 함께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나란히 전시된다. 조선 시대에 배척된 것으로만 알려졌던 불교미술을 다시 보는 공간도 마련됐다. 불교는 유교가 해결하지 못하는 죽음 등의 문제에서 많은 이에게 위안을 줬다. 이번 전시에서는 불교미술을 조선 전기 주요한 전통으로 조명하며, 왕실 후원의 불상과 불화를 소개한다. 비단 위에 석가모니 부처의 일생을 그린 ‘석가탄생도’를 만날 수 있다.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은 조선의 문화적 역량을 가장 잘 보여 주는 ‘훈민정음’이 오롯이 채운다. 여러 소장처에서 전시품을 모은 만큼 교체 일정을 살펴보고 방문하는 게 좋다. 보물인 조계사 ‘목조여래좌상’은 22일까지 전시되며 간송미술문화재단 ‘훈민정음’과 일본 야마토문화관 소장 ‘어촌석조도’, ‘평사낙안도’는 7월 7일까지만 전시된다.
  • [장남원의 도자 산책] 꽃을 든 아이

    [장남원의 도자 산책] 꽃을 든 아이

    부드러운 비취빛 청자 발(鉢)의 내면에는 은은한 포도넝쿨 양각 문양이 가득 차 있다. 그 사이사이 3곳에는 어린아이들이 검고 가는 윤곽선에 백토를 메워 넣은 상감기법으로 새겨져 있다. 아이들은 살짝 미소 띤 얼굴로 이리저리 걷거나 뛰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 손에는 저마다 연과 새총, 꽃이 들려 있다. 800여년 전 도자기에는 왜 아이들이 그려졌을까. 국내외 연구들에 따르면 꽃 넝쿨을 짊어진 남자아이들은 이미 로마시대 석관에는 죽음을 애송하는 의미로, 고대 인도의 간다라 지역 스투파 부조에는 붓다에게 공양하는 의미로 장식됐다고 한다. 어린아이는 포도와 함께 묘사되기도 하여 중앙아시아, 중국 등을 거치면서 그림이나 공예품 등에 자주 등장한다. 어린아이 몸체만큼 크고 알알이 탐스러운 포도송이와 그 넝쿨 사이로 올라타고 재주 넘는 천진한 형상은 풍요로운 느낌으로 웃음 짓게 한다. 실제로 포도주가 애호됐던 현상과 연관 짓기도 한다. 현전하는 송나라 그림 속 아이들은 연못이나 정원에서 꽃을 따거나 물놀이를 하고, 새를 잡으러 다니거나 나뭇가지를 꺾어 뛰어가기도 하며, 때로는 공놀이를 하는 생활 장면 속에 그려졌다. 이 같은 도상들은 그대로 중국의 정요(定窯) 백자나 금속공예품들의 도안으로 활용됐다. ‘고려사’ 1078년 기록에 송나라 신종이 보내온 복식류에 동자무늬가 조각된 옥(玉)이 포함됐다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다양한 문물이 유입되던 고려 전기에는 이처럼 중국에 정착된 어린아이 도상들이 전해졌던 것 같다. 그리고 이는 고려의 양각이나 상감청자에 자연 속에서 뛰노는 평화로운 모습으로 그려졌다. 친숙하고 사랑스러운 현실 속 존재로 아이들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사람이 천성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보고 그것이 흐려지지 않도록 국가와 사회가 함께 양육하고자 했다. 10세 이전에 고아가 되면 관청에서 식량을 주어 부양했고, 아이를 유기한 경우 벌을 내렸다. 영아 때 혼자가 된 아이들은 다른 성씨를 가진 집안에서 양육할 수 있었다. 사찰은 종종 소외된 아이들의 교육장이 되기도 했다. 종일 다녀도 어린아이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은 요즘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다. 어여쁜 그 모습을 그리거나 새겨 바라보기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장남원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
  • 디지털로 소환한 천 년 비색… ‘고려의 혼’ 청자를 만나다[권다현의 童(아이와 함께)行]

    디지털로 소환한 천 년 비색… ‘고려의 혼’ 청자를 만나다[권다현의 童(아이와 함께)行]

    12세기 최고 도자기 만든 사당리 가마터에 위치재료·온도 따라 다양한 색깔의 작품 200점 전시태안 앞바다 ‘보물선’ 유물·발굴 사진, 호기심 자극물레로 빚은 자기만의 그릇 만들고 가질 수 있어성형·조각·굽기·유약·선별 과정 등 게임처럼 체험모래 놀이·흙가마 미끄럼틀 등 아이 위한 시설도 박물관 가는 날이라며 신나게 집을 나섰던 아이가 잔뜩 시무룩한 표정으로 유치원에서 돌아왔다. “오늘 견학은 재미있었어?” 엄마의 물음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얼굴엔 불만이 가득하다. 뭔가 아쉬운 게 있었던 게 분명하다. “도자기 만들고 싶었는데 선생님이 안 된다고 하셨어.” 평소 엄마와 박물관에 가면 빠지지 않고 체험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녀석이라 못내 서운했던 모양이다. 결국 동네 문방구에서 점토를 사 와 크고 작은 접시 서너 개를 빚고서야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이걸 아주 뜨거운 불에 넣고 구우면 진짜 그릇이 되는 거 알아?” 물었더니 아이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정말요? 흙은 불에 안 타요?” 질문이 꼬리를 무는 아이에게 언젠가 ‘진짜’ 도자기를 만들러 가자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이번 강진 여행에서 그 약속을 지키게 됐다.전남 강진에 고려청자박물관이 세워진 건 200여개에 이르는 가마터 덕분이다. 고려청자가 만들어진 가마터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하는데, 시기에 따라 지역이 조금씩 달라진다. 초기 가마터는 경기도와 황해도 그리고 전라도에 집중됐다. 위치상 중서부 지역은 중국의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 벽돌로 가마를 만들었고 남서부 지역에서는 토기 가마의 전통을 이어받아 진흙을 뭉쳐 만든 가마에서 청자를 제작했다. 강진 용운리와 삼흥리에서 당시 가마 형태를 만나 볼 수 있다. 중기가 되면 벽돌가마는 사라지고 강진과 부안을 중심으로 청자 생산이 이뤄졌다. 특히 사당리에선 고급 청자가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후기에도 여전히 진흙 가마를 사용하는데, 다른 지역과 비교해 강진은 오히려 가마터가 증가하고 상감청자도 생산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처럼 고려청자의 탄생부터 발전과 쇠퇴까지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곳이 강진이다. 박물관에 들어서기 전 먼저 눈길을 빼앗는 것도 가마터다. 12세기 고려 최고 품질의 청자를 생산했던 사당리에 자리한 박물관은 앞마당에 7호 가마터가, 본관 오른쪽에는 41호 가마터가 보존돼 있다. 수몰 지역에서 발굴한 용운리 10-4호 가마터도 옮겨 복원했다. “여기서 도자기를 구웠던 거예요?” 아이는 가마터를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둘러봤다. 무려 800~900년 전 가마일 텐데 경사면과 벽면, 중간에 까맣게 그을린 흔적까지 온전히 남아 있어 더욱 실감 났다. 원래는 진흙으로 만든 지붕이 있었을 테고 도자기를 먼저 안쪽에 넣은 뒤 밖에서 며칠 동안 불을 지폈을 거라고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그 과정에서 깨지는 도자기도 있었을 거라고 했더니 아이는 절로 안타까운 표정이다.“너 청자가 무슨 색인지 알아?” 첫째가 동생 앞에서 아는 체한다. 하지만 청자의 오묘한 빛깔을 이해하기에 일곱 살은 너무 어렸던 걸까. “푸른색이 뭔데? 하늘처럼 파란 거야, 아니면 나무처럼 초록인 거야?” 첫째도 우물쭈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우리 청자를 직접 보면서 이야기해 볼까?” 자연스레 아이들을 전시실로 이끌었다. 나 역시 학교에서 청자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푸른빛의 자기를 일컫는다고 배웠지만, 박물관에서 만난 고려청자는 훨씬 다양한 색과 깊이를 지녔다. 실제 설명에도 청자의 색은 제작 기술의 발전 정도나 품질, 청자를 생산한 지역의 흙 성분, 굽는 온도, 가마 안의 산화와 환원 상태에 따라 담청색부터 담녹색, 회녹색, 청회색, 녹황색, 녹회색, 녹갈색, 담황색 등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가장 잘 만들어진 청자의 푸른색은 비취옥과 비슷해 ‘비색’이라 불렀다는데, 그조차 찾아보니 농도가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박물관에 전시된 200여점의 고려청자를 모두 살펴본 후에 둘째는 깜냥으로나마 푸른색을 이해한 모양이다. “이제 알겠어. 푸른색은 깊은 바다 빛깔이야!” 고려청자의 색깔만큼이나 그 형태와 문양도 다채로웠다. 특히 모란과 작약, 연꽃, 국화, 매화 등 고려청자에 새겨진 꽃문양을 계절의 변화에 따라 구분한 전시가 관심을 모았다. 부귀와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모란과 작약은 봄을 알리는 꽃으로, 부처님의 진리와 극락정토 등 불교적 상징성을 지닌 연꽃은 여름을 대표하는 꽃으로 표현됐다. 흐드러진 버드나무와 갈대가 피어 있는 연못 풍경도 함께 즐겨 사용됐다. 군자, 절개를 상징하는 국화는 가을을 알리는 꽃으로 고려청자가 전성기를 이뤘던 중기에는 꽃송이 하나하나 사실적인 묘사가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엄마는 어떤 꽃 모양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내가 만들어줄게!”아이들이 가장 흥미롭게 관람한 것은 태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보물선을 주제로 한 특별전이었다. 강진에서 생산된 청자를 싣고 당시 수도였던 개경으로 향하던 중 난파된 것으로 보이는 이 운반선에서 무려 2만 3000여점의 고려청자가 발굴됐다. 당시 배에 실려 있던 청자들은 물론 수중 발굴 사진도 함께 전시 중이다. 동화책에서나 봤던 보물선이 실제로 존재했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첫째도, 둘째도 눈빛이 내내 반짝인다. 박물관 왼쪽에 자리한 청자 빚기 체험장에서 아이는 엄마가 좋아했던 연꽃을 물컵에 담았다. 여기선 물컵이나 머그컵, 반상기 등 완성된 그릇의 표면에 글씨나 그림을 새겨 세상 단 하나뿐인 나만의 그릇을 만들 수 있다. 가래떡 모양의 흙을 원하는 형태로 쌓아 올려 그릇을 만드는 코일링 체험, 흙을 물레에 올려 원하는 모양을 빚어 보는 물레 체험도 가능하다. 이렇게 완성된 작품은 가마에서 구워져 한 달 내로 받아 볼 수 있다. 아이는 벌써 청자 물컵만 사용할 거라며 작품이 도착하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고려청자 디지털박물관도 꼭 들러봐야 한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고려청자의 매력을 이해할 수 있도록 꾸며진 공간으로, 들어서자마자 화려한 조명을 덧입은 청자 조각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어 디지털 패드를 활용해 고려청자 제작 과정을 게임처럼 신나게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첫 번째는 ‘성형’으로 밑감이 되는 흙을 손이나 물레를 이용해 도자기 모양으로 형태를 잡아주는 과정인데, 여기선 물레의 회전력을 이용해 대칭적인 모양을 만들도록 한다. 두 번째는 ‘조각’으로 건조된 성형품에 다양한 문양을 새겨 넣는다. 세 번째는 ‘초벌’로 보름 이상 건조한 성형품을 가마에 넣고 불길과 온도가 고르게 닿게 한 후 900도의 열을 가해 약 30시간 불을 지펴 구워 내는 과정이다. 네 번째는 ‘시유’로 초벌구이가 끝난 예비품을 가마에서 꺼내 규석과 장석, 석회석, 철분 등 배합 비율에 맞춰 제작된 유약을 도자기 전체에 골고루 바르는 과정이다. 여기선 제한 시간 동안 더 많은 청자에 유약을 바르는 걸 게임으로 체험한다. 다섯 번째는 ‘재벌’로 유약을 바른 도자기를 1250도 이상의 온도에서 구워 내는 과정으로, 이때 청자 고유의 빛깔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마지막 여섯 번째는 ‘선별’로 완성된 청자의 모양과 색을 확인하고 잘못 만들어진 청자는 선별하는 과정이다. 미션이 단순하면서도 흥미로운 덕분인지 아이들은 물론 아빠까지 한참 게임에 열중했다. 이뿐 아니다. 증강현실과 모래놀이가 결합한 ‘샌드크래프트’, 청자를 훔쳐 달아나는 도둑들에게 공을 던져 맞히는 ‘조각 사냥꾼, 청자를 구하라’, 미디어아트로 구현된 아름다운 우주와 해변 속에 숨겨진 청자를 찾아보는 ‘화면 속 청자 찾기’, 종이에 그림을 그려 스캐너에 넣으면 화면 속 청자에 문양이 인식되는 ‘나만의 청자 무늬 그리기’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체험 요소들이 가득하다. 유아들을 위한 놀이방 ‘플레이셀라돈’도 자리한다. 흙가마를 모티프로 한 미끄럼틀과 점토 밟기를 재현한 트램펄린, 강진에서 제작된 고려청자를 싣고 가던 보물선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볼풀 등 재미와 의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마당극으로 소환한 다산의 꿈… 조선을 엿보다 다산 정약용 유배지 사의재 배경지역주민 직접 배우로 참여 열연‘조만간 프로젝트’ 공연 등 선보여한국민화뮤지엄, 250점 작품 전시전라병영성·하멜기념관 등도 눈길 이웃한 한국민화뮤지엄도 함께 둘러보기 좋다. 2015년 처음 문을 연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민화 전문 박물관인 영월 조선민화박물관의 자매관이기도 하다. 상설전시실에서는 민화의 생성 과정과 함께 다양한 주제와 의미를 담은 250여점의 진본 민화를 감상할 수 있다. 2층에서는 현대적 감각의 민화 초대전이 이뤄진다. 오는 8월 30일까지 화사하고 포근한 베갯모 시리즈로 사랑받는 문선영 작가의 ‘빛날 화(華)’전, 책과 모란 그리고 물줄기를 입체적으로 담아낸 안성민 작가의 ‘책, 꽃, 그리고 물’전이 이어진다. 체험행사도 다양하다. 부채에 민화를 그려 넣거나 민화를 모티프로 한 문패 만들기 등 20여개 프로그램을 선택할 수 있다. 마침 한낮 햇살이 뜨거워 부채 만들기에 나선 아이는 호랑이가 그려진 합죽선을 완성해 여행 내내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주말에 강진을 찾았다면 다산 정약용이 유배 생활 중 머물렀던 주막 사의재를 배경으로 한 ‘조만간’(조선을 만나는 시간) 프로젝트도 추천한다. 치열한 오디션을 거친 지역주민들이 직접 배우로 참여해 주모와 옥동자, 저승사자 등 다양한 조선시대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농담을 주고받다 보면 이름 그대로 조선시대로 시간여행을 떠나 온 기분이다. 유쾌한 재연 배우들 덕분에 사진이라면 질색하던 사춘기 첫째도 먼저 나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평소 접하기 어려웠던 전통 놀이와 활쏘기 체험도 온 가족이 함께 즐기기 좋다.마당극 ‘다산의 꿈’도 챙겨 봐야 한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자신은 천주교도로 낙인찍혀 강진으로 유배를 오게 된 다산의 모습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공연장이기도 한 사의재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세상이 다산으로부터 등을 돌렸을 때 유일하게 푸짐한 국밥 한 그릇과 따뜻한 방을 내어 줬던 주모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방황하는 다산에게 권력으로부터 핍박받는 민초들의 삶을 여실하게 보여 준다. 이에 큰 깨달음을 얻은 다산은 자신이 머물던 작은 방을 사의재, 즉 맑은 생각과 엄숙한 용모, 과묵한 말씨, 신중한 행동을 해야 하는 방이라 이름 지었다. 다산은 이곳에 기거했던 4년 동안 행정의 개혁을 주장한 ‘경세유표’를 완성하는가 하면 소외된 지역 인재들을 후학으로 양성했다. 이 같은 사실을 마당극 특유의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 아이들도 깔깔거리며 관람했다.해 질 무렵엔 전라병영성을 거닐어 보자. 조선시대 호남지역은 물론 제주도까지 다스렸던 육군 총지휘부로, 초대 병마절도사인 마천목의 꿈속에 나타난 눈 자국을 따라 축조했다 하여 ‘설성’으로도 불린다. 현재 성곽은 대부분 복원된 것이지만, 옛 성곽의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어 과거 규모를 짐작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제주에 표착했던 네덜란드인 하멜이 이곳으로 압송돼 8년 동안 억류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도 전라병영성 건너편에 하멜기념관이 자리해 당시 생생한 기록을 전하고 있다. 근처 병영시장에선 매주 금요일 ‘불금불파’(불타는 금요일 불고기 파티)가 열린다. 이 지역 특화 음식인 돼지불고기를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는 것은 물론 각종 공연과 EDM 파티까지 펼쳐져 흥이 많은 둘째는 그야말로 ‘불금’을 보냈다. 여행작가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붉은 머리 학이 전하는 상서/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붉은 머리 학이 전하는 상서/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우리 미술의 최고봉이라 할 상감청자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아마도 구름 사이로 학이 날아가는 문양이 새겨진 운학문매병일 것이다. 상감청자 운학문매병이 워낙 유명해서 고려 사람들이 특별히 운학문을 애호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름 사이로 하늘을 나는 학의 모티브는 상감청자보다 훨씬 먼저 미술에 표현됐다. 10세기경 송나라나 요나라 무덤 벽화에 학이 나온다. 묘실 내벽 윗부분에 학이 그려진 걸 보면 망자가 신선계에 오르길 희망하는 마음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지안에 있는 고구려 오회분 4호묘와 퉁거우 사신총에도 학을 타고 있는 신선이 그려졌다. 이 벽화들에서는 학의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신선의 세계를 상징하는 학의 이미지가 이때 이미 자리잡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학만을 그린 그림은 당나라 때 시작됐다고 보는데 남아 있는 것은 송의 무덤 벽화가 가장 이르다. 처음에는 띄엄띄엄 한두 마리 그리다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점차 많은 학을 그리게 된다.더 많은 복과 장생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서학도’도 그중 하나다. 고대광실 지붕 위로 무수한 학이 날아오르는 이 그림은 북송 황제 휘종 조힐(1082~1135)이 그렸다고 전해진다. 푸른 하늘과 흐릿한 갈색 구름이 대조를 이루는 화면 속의 학은 모두 머리가 붉은 단정학이다. 대각선 방향으로 엇갈리게 날아오른 모습이 상감청자 속 학과 같다. 길고 가는 목과 다리, 활짝 편 날개 묘사가 실제 학을 관찰하고 그린 듯이 자연스럽다. 화면의 약 3분의2를 푸른색으로 칠해 청아한 하늘의 느낌을 강조했고, 아래로는 자로 잰 듯 깔끔한 건물 지붕이 보인다. 지붕 꼭대기 양 끝의 처마에는 두 마리 학이 살포시 앉아 균형을 이룬다.휘종은 예술을 숭상하고 장려한 대표적인 군주였지만 정사에는 별 관심이 없어 송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는 비난을 받는다. 새로 발흥한 금나라의 침입을 막지 못해 결국 송이 무너지고 휘종과 아들 흠종 모두 금에 잡혀가 머나먼 타향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중화원인 도화원을 전폭 지원하고, 각종 서화 및 골동품을 수집했을 뿐만 아니라 화가와 작품 목록을 담은 선화화보를 편찬해 후세에 전했다는 점에서 그가 다음 세대의 예술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고려사 연구에 중요한 서적인 고려도경도 그가 보낸 사신 서긍이 쓴 것이다. 수금체라 불리는 그의 필체에 보이는 예민한 성품만큼 휘종의 예술적인 재능이 뛰어났던 건 분명하지만 실제로 황제인 휘종이 몸소 ‘서학도’를 그렸는지는 논란이 많다. 학을 그리고 친히 시를 지어 적장자가 아님에도 황제가 된 자신의 통치가 천명임을 강조하려는 휘종의 의도가 엿보인다. ‘서학도’는 1112년 정월대보름 다음날 구름이 낮게 드리운 가운데 학이 무리를 지어 궁궐에 날아와 오랫동안 머물렀던 상서로운 일을 기념한 그림이다. 올 한 해, ‘서학도’의 상서가 모든 이에게 실현되길 바란다.
  • 군산 바다서 건진 고려청자… 잠자던 유물 356점 나왔다

    군산 바다서 건진 고려청자… 잠자던 유물 356점 나왔다

    선박이 침몰하면서 바닷속에서 1000년 가까이 잠들어 있던 유물들이 대거 발굴됐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지난 4월부터 실시한 전북 군산 고군산군도 해역 수중발굴조사 성과를 6일 공개했다. 지난해 탐사를 통해 214점의 유물을 발굴했던 연구소는 이번에 12~14세기 제작된 고려청자를 비롯해 유물 356점을 추가로 발굴했다. 군산 고군산군도 해역은 군산시 옥도면에 위치한 곳으로 선유도∙무녀도∙신시도 등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다. 1872년 제작한 ‘고군산진 지도’에서도 확인되듯 고군산도는 국제 무역항로의 기항지이자 서해안 연안 항로의 거점이었다. 선박들은 바람을 피하거나 기다리는 곳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송나라 사신 서긍이 1123년 고려 방문 당시를 기록한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따르면 고려로 오는 사신을 맞아 대접하던 군산정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지난해 탐사에서는 당시 선적됐던 청자다발 81점과 난파 당시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제 닻과 노(櫓), 닻돌 등 선박 부속도구들이 함께 발견됐다. 선박의 난파 가능성이 컸던 만큼 연구소가 올해 추가로 조사했고, 다양한 시대의 유물들을 넓은 범위에 걸쳐 확인했다.가장 많이 발굴된 유물은 12~14세기경에 제작된 고려청자다. 대접(발)∙접시∙완 등의 일상용기는 물론 구름과 봉황의 무늬인 운봉문(雲鳳紋)∙국화와 넝쿨무늬인 국화당초문(菊花唐草紋) 등이 새겨진 화려한 상감청자들도 나왔다. 청자와 더불어 조선시대에 제작된 분청사기∙백자, 운송 및 선상 저장용으로 보이는 도기들도 다수 확인됐다. 이 유물들은 강진, 부안 등 전라도 일대의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시대를 거슬러 삼국시대 토기, 숫돌로 추정되는 석재 등도 출수됐다. 고군산군도 해역이 고대부터 활발한 해상활동의 무대였음을 보여 주는 유물이다. 특히 숫돌로 추정되는 석재가 이번처럼 100점이 무더기로 확인된 경우는 처음이다. 이전에는 선상용품으로 1~2점이 출수되거나, 2015년 태안 마도4호선 발굴에서 15점이 새끼줄로 묶여져 확인된 사례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나주의 공납품인 숫돌을 조정에 바쳤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미루어 이들 유물은 공납품일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향후 지속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해 선적했던 배의 정확한 출항지와 목적지, 유물의 성격 등을 명확히 밝혀내고 해양문화유산 보호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 군산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유물 발견…무역품 실은 고선박 난파 추정

    군산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유물 발견…무역품 실은 고선박 난파 추정

    전북 군산시 고군산군도 해역에서 도자기, 숫돌 등 유물이 대량 발굴됐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올해 4월부터 실시한 고군산군도 해역 수중발굴조사 결과 도자기, 숫돌 등 570여점의 유물이 발굴됐다고 6일 밝혔다. 고군산도 해역은 선유도·무녀도·신시도 등 16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곳으로 국제 무역항로의 기항지이자 서해안 연안 항로의 거점으로 알려졌다. 특히 선유도는 ‘선화봉송고려도경’에서 고려로 오는 사신을 맞아서 대접하던 군산정(群山亭)이 있었던 곳으로 언급된다. 이에 따라 지난 2021년 수중조사를 통해 청자다발 81점, 난파당시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목제, 닻, 노(櫓), 닻돌 등 214점의 유물을 확인했다.연구소는 조사해역 인근에 고선박이 난파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지난 4월부터 본격적인 수중발굴조사를 착수해 350여점의 유물을 추가 발굴했다. 이번 조사에서 발굴된 유물은 토기, 청자, 백자 등 다양한 시대의 유물로 확인됐다. 특히 12~14세기경에 제작된 고려청자로 대접, 접시, 완 등 일상용기가 주를 이루며 구름과 봉황의 무늬인 운봉문(雲鳳紋)·국화와 넝쿨무늬인 국화당초문(菊花唐草紋) 등이 새겨진 화려한 상감청자도 발굴됐다.또 과거 중국과의 국제교류 양상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인 중국 송대 이후의 도자기 일부가 발견됐고, 삼국시대 토기, 숫돌로 추정되는 석재 등이 출수돼 이곳이 과거 공납품 운송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시 관계자는“기록으로만 전해지던 고군산도의 역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관계자분들에게 감사하다”며 “앞으로도 군산시의 문화와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문화유산 발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 고려청자가 전하는 은은한 위로… ‘컬러테라피’ 가득한 중앙박물관 청자실

    고려청자가 전하는 은은한 위로… ‘컬러테라피’ 가득한 중앙박물관 청자실

    귀여운 토끼 세 마리가 자기 몸보다 훨씬 큰 향로를 받들고 있다. 힘들 법하지만 힘든 내색 없이 버텨온 세월도 벌써 1000년 가까이 된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새로 개편한 청자실에서 볼 수 있는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는 국보 5점이 은은하게 비색(翡色)을 뽐내는 중에도 떡 하니 가운데를 차지해 존재감을 과시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고려청자를 제대로 보여 주기 위해 약 1년에 걸쳐 청자실을 새로 단장했다. 개편한 청자실에는 국보 12점과 보물 12점 등 250여점을 볼 수 있다. 22일 열린 언론공개회에서 윤성용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고려 비색을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사유의 방’ 못지않은 명소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자실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고려청자의 모든 것을 보여 주기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전시관이다. 지난해 2월 개관한 분청사기·백자실의 후속이자 상설전시관 3층 도자공예실을 완결하는 공간으로서 의미가 있다. 단순히 고려청자의 아름다움만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제작기법, 역사와 사연까지 모두 담아 관람객에게 위로를 전한다.‘도자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안내로 시작한 전시공간은 고려청자가 어떤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왔는지 관람객들에게 소개한다. 고려청자와의 만남이 익숙해질쯤 관람객들은 이번 개편의 핵심인 ‘고려비색’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를 포함한 국보 5점 등 18점의 비색청자가 있다. 어둠이 내려앉은 공간에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인 다니엘 카펠리앙이 작곡한 음악 ‘블루 셀라돈’(Blue Celadon)이 흐른다. 전시 공간에 들어선 관람객들은 비색 청자가 은은한 빛깔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것을 보게 된다. 유물에 대한 소개는 짧게 있지만 관람객들은 오묘한 비색 앞에 오래 머물게 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각 국보의 색에 맞춰 조명들의 조도를 설정해 최적의 감상 환경을 마련했다. 전시를 준비한 이애령 미술부장은 “비색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기 위해 미술부 직원 전체가 동원돼서 색을 어떻게 맞출까 몇 날 며칠을 고민했다”면서 “비색에서 심신의 안정을 느끼고, 말갛개 갠 하늘빛의 아름다움을 함께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고려청자는 자연광에서 보는 것이 가장 아름답지만 박물관의 현실적인 여건상 완벽한 감상 조건의 80% 정도 수준까지 끌어올렸다는 것이 이 부장의 설명이다.‘고려비색’ 공간 이외에도 초기 자기 제작 기술을 엿볼 수 있는 경기 시흥시 방산동 가마터 출토 조각, 고려 제17대 임금인 인종(재위 1122∼1146)의 무덤에서 나왔다고 전해지는 각종 공예품, 파편 조각을 붙인 고려청자 등이 관람객의 시선을 끈다. 전북 부안리 유천리 가마터에서 수집된 상감청자 조각들에는 파초잎에서 쉬는 두꺼비, 왜가리가 노니는 물가풍경 등 자연의 모습이 묘사돼 있어 고려인의 자연관을 엿볼 수 있다. 관람객들은 김영준 작가, 오수 작가가 준비한 전시 연출을 통해 더 풍성하게 고려청자를 만나게 된다. 전시 끝 부분엔 쇠락해가는 와중에도 고려청자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볼 수 있어 옛사람들의 간절한 마음도 엿보게 된다. 박물관은 점자 안내 지도, 촉각 전시품 등을 함께 설치해 취약계층도 고려청자를 보다 잘 느낄 수 있게 마련했다. 새로 꾸민 청자실은 23일부터 관람객을 맞는다.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돌아온 고려 미술의 정수, 나전칠기합/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돌아온 고려 미술의 정수, 나전칠기합/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

    코로나 팬데믹 와중에 아시아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한류는 말하는 것조차 진부할 정도가 됐고, 구시대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던 아시아의 전통과 문화에 관심이 쏠린다. 돌봄을 중시하는 공동체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지난한 공동 작업에 기반한 아시아의 대표적 공예로 칠기를 들 수 있다. 아시아의 칠기 발달사를 한눈에 꿸 수 있는 ‘칠: 아시아를 칠하다’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칠기를 통해 아시아 각국이 어떻게 자신들의 미감에 맞게 공예품을 만들었는지를 확인시켜 주는 전시다. ‘칠기로 하나 되는 아시아’를 보여 줌과 동시에 저마다 다르게 발전시킨 기술과 색감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칠기는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을 물품의 표면에 칠한 공예품을 말한다. 옻나무 자체가 아시아에서만 자라는 것이어서 칠기도 아시아 고유의 산물이다. 옻칠을 하면 방수성과 방부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보통 목기보다 내구성도 훨씬 증가한다. 게다가 특유의 광택이 생겨서 미적 가치도 높아지는 장점이 있어 아시아에서는 아주 일찍부터 칠기를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신석기시대 칠기가 발견됐고, 우리나라에서도 경남 창원 다호리 등에서 청동기 시대 칠기가 발굴된 바 있다. 기본적으로 옻나무 수액을 바르는 것이라 나무뿐만 아니라 토기나 가죽, 금속에도 칠할 수 있다. 우리나라 칠기는 나전칠기, 흔히 자개라 부르는 것이 주류다. 옻칠을 하고 무늬를 파서 조개껍질을 상감하는 방식으로 만든다.옻칠을 해서 아무리 내구성이 좋아진다 해도 목기는 목기다. 파손되기 쉬운 까닭에 우수한 공예 기술을 자랑하는 고려의 칠기는 매우 드물다. 전 세계에 단 3점만이 남아 있는 고려의 나전칠기합이 눈에 띄는 이유다. 일본 개인 소장가의 수집품을 2020년에 구매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됐다. 값비싼 자개와 대모를 빼곡하게 상감한 정교한 작품이다. 반달형으로 먼저 목기를 만들고 둥근 부분을 3장의 꽃잎처럼 깎은 특이한 모양이다. 이와 아주 유사한 형태의 상감청자가 있기 때문에 나전칠기합도 원래는 4점이 한 세트를 이뤘던 것으로 추정된다. 얇게 가공한 조개껍질로 국화 무늬를 내고 이들이 연이어지도록 넝쿨 모양으로 꾸몄다. 조개 자체의 오묘한 빛이 다채롭기는 하지만 같은 빛깔의 단조로움을 깨기 위해 대모로 작게 장식했다. 대모 뒷면에 색칠을 해서 은은하게 색이 드러나게 만드는 것을 대모복채법(玳瑁伏彩法)이라 한다. 12세기 고려 나전칠기를 대표하는 특징이다. 나전 재료로 쓴 전복 껍질도 그렇지만 대모라는 동남아의 열대 바다에 사는 거북의 등껍질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고가의 재료를 쓴 최고의 칠기다. 동남아에서 수입한 거북의 등껍질을 가공해 나전칠기의 은근하고 고상한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만들었으니 이 칠기를 썼을 고려 귀족의 미적 취향을 짐작하게 한다. 높이가 3㎝에 불과한 그릇이니 그 정교함이란 그저 감탄을 자아낼 뿐이다. 우리는 진심을 다해 정교하게 공예품을 만드는 고려 사람의 DNA를 물려받은 모양이다.
  • 김정숙 여사, BTS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방문…“한국실, 뜻깊은 공간 되길”

    김정숙 여사, BTS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방문…“한국실, 뜻깊은 공간 되길”

    제76차 유엔총회를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뉴욕을 방문 중인 김정숙 여사가 그룹 방탄소년단(BTS)와 함께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실을 방문했다고 22일 청와대가 전했다. 이날 방문에는 ‘미래세대와 문화를 위한 대통령 특별사절’로 임명된 BTS와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윤증 뉴욕한국문화원장 등이 동행했다. 1870년 설립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1870년 뉴욕에 설립된 미국 최대 규모 미술관이자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힌다. 2019년 700만명 이상이 방문해 전세계에서 네 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박물관이 됐다. 뉴욕 시민들에게는 ‘메트’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김 여사는 한국실에서 금동반가사유상과 달항아리, 상감청자, 조선시대 흉배, 화조 병풍, 현대 분청사기, 현대 여성용 흉배 등을 관람했다. 김 여사는 “한국에서 온 다양한 문화유산과 현대 작품들이 문화 외교 사절 역할을 하고 있다”며 “메트의 한국실이 한국과 한국미를 세계인에 전하는 뜻깊은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평소 예술품에 조예가 깊은 BTS의 리더 RM은 “전 세계인이 오고 싶어 하는 도시이자 미술의 메카인 뉴욕에 한국실을 관람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며 “한국 미술가의 작품을 박물관에 드릴 수 있게 돼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저는 미술 애호가여서 더 기쁘다. K컬처 중 K팝, K드라마, K무비 등은 두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아직 해외에 알려지지 않은 멋진 예술가들도 많다”며 “한국을 대표하는 미래문화특사로 한국문화의 위대함과 K컬처를 더 확산하도록 사명감을 갖고 일하겠다”라고 다짐했다. 김 여사와 BTS 등 한국방문단은 ‘오색광율(五色光律)’이라는 한국 공예 작품을 전달했다. ‘오색광율’은 정해조 작가가 한국 전통직물인 삼베를 천연 옻칠로 겹겹이 이어붙여 만든 것으로 한국 생활전통과 철학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된다.김 여사, 뉴욕 韓청년들 만나 “K컬처 열풍 꺼지지 않게 지원” 이어 김 여사는 22일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문화를 알리고 있는 차세대 동포들과 만나 한국 문화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날 뉴욕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간담회에는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장원삼 뉴욕 총영사, 박정렬 해외문화홍보원장, 조윤증 문화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뮤지컬·애니메이션·음악·무용·태권도·한식·문학·한국어 등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한인 청년 11명이 자리했다. 참석자들은 미국에서 한인으로 성장하면서 느낀 한국 문화의 영향력과 자긍심을 언급하며 현재 뉴욕에서의 한류 현황과 미래, 한인 차세대의 역할 등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김 여사는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K-컬처는 이제 세계문화지형의 중심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며 “수많은 난관을 통과하면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발자취와 현재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에서 자신의 길을 헤쳐나가고 있는 노력들이 K-컬처의 세계적인 위상을 높여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여사는 “팬데믹 속에서 아시아인들에 대한 증오범죄가 늘면서 동포사회가 위축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마음이 아프다”며 “어려움 속에서도 뉴욕 한인 예술가분들을 중심으로 디아스포라 한인 아티스트들의 역사를 조명하는 사진전도 열렸다고 들었다”고 격려했다. 아울러 “생존이 목표라면 표류지만 보물섬이 목표라면 탐험”이라는 말을 인용하며 “희망의 끝까지 열정의 끝까지 여러분의 보물섬으로 항해하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황희 문체부 장관은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이 모여 더 큰 창의성을 발휘할 것이고, 한국과 미국의 서로 다른 문화를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여러분의 역할이 기대된다”고 격려했다. 김 여사는 “여러분이 어려움 속에서 성취해 온 것들을 듣고 나니 가슴이 뜨거워진다”며 “K-컬처 열풍이 꺼지지 않도록 정부가 세밀히 지켜보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김 여사는 간담회를 마친 후 추석 선물로 일월오봉도가 그려진 에코백과 색동보자기로 포장된 한과, 나쁜 운을 쫓는다는 도깨비 얼굴이 그려진 수문장 마스크를 참가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참석자들은 선물을 받고 마스크를 써보는 등 기뻐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제76차 유엔총회를 참석한 뒤 이날 방미 일정의 마지막 행선지인 하와이 호놀룰루로 출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에 참석하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들었으며 주요국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외교에 방점을 찍었다. 또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BTS와의 공동인터뷰도 눈길을 끌었다.
  • 어부들의 개밥그릇·재떨이로 ‘천덕꾸러기’… 700년 만에 보물로 깨어난 침몰선 도자기

    어부들의 개밥그릇·재떨이로 ‘천덕꾸러기’… 700년 만에 보물로 깨어난 침몰선 도자기

    1970년대 어부 그물에 도자기 자주 걸려당시 중요성 몰라 다시 바다에 던져 버려1976년 도굴꾼 유물 팔려다 존재 알려져 수중발굴 경험 없어 해군 등과 합동조사세계 수중고고학 사상 대규모 유물 나와금속품·도자기 등 2만 4000여점 찾아내 목간 글씨 연구 결과 원나라 국적 밝혀져당시 항로·유물 추정… 고려 거쳐 日향한 듯신안보물선 14세기 해양 실크로드의 실증1970년대 중반 보물선 신드롬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당시 발굴된 신안보물선에서 값진 고려청자와 송·원대 도자기들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수중 발굴은 물의 흐름, 기상조건, 기압차이 등에 따라 매우 한정된 시간에만 가능하기 때문에 까다롭기 짝이 없고, 고가의 발굴 장비와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수중고고학은 신안보물선 발굴 전까지 국내에서 매우 생소한 학문이었지만, 이 일을 기점으로 급속히 발전했다.●어부 그물에 걸린 도자기 6점의 가치 신안보물선은 1975년 8월 처음 확인됐다. 어부 최모씨 그물에 도자기 6점이 걸려 올라온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다른 어부들은 도자기가 올라오면 바다에 다시 던져 버리거나 집으로 가져가 개밥그릇이나 재떨이로 썼다. 최씨도 도자기의 중요성을 몰랐지만,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그의 동생은 달랐다. 동생의 관심으로 신안군청에 신고해 나온 감정 결과, 중국 송·원대의 도자기였다. 그 이듬해 침몰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무려 700년 동안 깊은 바닷속에 잠들었던 보물선이 비로소 물 위로 떠올랐다. 이듬해 9월 도굴꾼이 잠수부를 고용해 유물을 건져내 팔려다 검거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에도 도굴이 잇달아 일어났고, 발굴 해역 주민들도 도굴에 가담했다. 언론은 이를 대서특필했다. 관계 당국은 조사를 서둘렀지만 수중발굴 경험이 없던 탓에 유물을 건져 올릴 수 있는 도구나 장비도 딱히 갖추지 못했다. 문화재청의 전신인 문화재관리국, 국립중앙박물관과 해군해난구조대 등이 합동조사단을 꾸렸다.신안보물선의 발굴 위치는 전남 신안군 증도 해역이다. 증도는 전남 목포에서 서북 방향으로 약 40㎞ 떨어진 섬이다. 발굴 현장은 증도와 임자도에서 각각 4㎞ 떨어진 해역이었다. 여기서 1976년 10월 26일 우리나라 최초의 수중발굴이 시작됐다. 이후 약 10년 동안 조사가 이어진다. 밀물과 썰물의 차가 커서 물의 흐름이 바뀌는 정조 시간에만 발굴할 수 있었다. 수심은 평균 20m 정도였는데, 수중 시야가 좋지 않고 조류가 빨라 조사에 어려움이 상당했다. 1977년 제3차부터 바둑판 모양의 철재로 된 ‘그리드’를 설치해 육상 발굴처럼 조사 결과를 기록했다. 해군이 발굴하고, 학자들은 유물과 도면을 정리했다. 이렇게 해 선박과 송·원대 도자기 등 무려 2만 4000여점이 최종 출수됐다.신안보물선의 국적은 뜨거운 관심사였다. 고려냐, 중국이냐, 아니면 일본이냐로 의견이 속출했다. 연구 결과 중국 선박으로 최종 밝혀졌다. 신안보물선에서 나온 ‘지치삼년’(至治參年)이라고 새겨진 목간의 글씨가 중국 원 영종 3년(1323년)을 의미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가와 연대가 확인된 것이다. 선박의 구조는 어땠을까. 당시는 고려시대로, 우리나라에서 수중발굴된 선박은 모두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었지만 신안선은 중국 선박으로 배 밑이 ‘V’자 모양인 첨저선이었다. 신안보물선은 중국 푸젠 지역 첨저선으로, 수심이 깊은 해역에서의 운항과 파도를 가르기에 적합하고, 배를 만들 때 무사 항해와 안녕을 기원하는 보수공이 있어 중국 선박임을 확인할 수 있다. 보수공은 선수·선미 용골재 연결부에 위치한다. 선수 수직접합면 원형 구멍에는 청동거울을 넣었고 선미에는 송대 화폐인 태평통보를 북두칠성 모양으로 배치했다. 선체는 모두 720여편(조각)으로,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가 20여년 동안 보존처리 후 복원했다. 추정 실물 크기는 길이 34m, 폭 11m, 깊이 3.7m이다. ●신안보물선에 고려인들도 승선한 듯 신안보물선의 유물은 도자기 2만여점, 금속품 1000여점, 자단목 1000여점, 향신료, 약제품, 석제품, 목제품, 유리·골각제품, 동전 28t(약 800만개) 등이다. 도자기는 길이 50~70㎝, 너비 40~60㎝, 높이 40~60㎝ 정도 나무상자에 10~20개씩 포개서 끈으로 묶어 적재했다. 배의 균형을 잡고자 자단목을 배 밑에 골고루 깔고 그 위에 28t이나 되는 동전을 쌓았다. 동전 상단에는 도자기와 칠기·금속제품 등을 수납했다.우리나라 유물은 청자 매병과 청자 베개, 선원들이 배 위에서 사용하던 청동숟가락 등이 있다. 고려청자는 12~13세기 강진 사당리요와 부안 유천리요에서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에서 수집했을 가능성도 있다. 고려인이 쓰던 것으로 보이는 숟가락이 나온 것으로 보아 고려인들도 승선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당시 신안보물선의 항로나 유물로 봐서는 고려를 거쳤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고려 왕실과 귀족들에게는 중국의 영향으로 차를 마시고, 향을 피우고, 꽃을 감상하는 문화가 있었다. 이 취향은 실용성과 예술성을 갖춘 공예의 발전을 이끌어 고품질 상감청자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일본 유물로는 세토매병과 나막신, 칼코 등이 있다. 일본 가마쿠라시대는 중국과 외교 관계가 중단된 상태였지만,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교류는 활발했다. 차 마시고, 향 피우고, 꽃을 감상하는 문화가 선종사찰, 가마쿠라 막부의 주요 인사와 상급 무사들 사이에서 더 인기가 있었고 이런 문화를 즐기고자 관련 기물을 중국에서 수입했다. 이와 관련한 유물들이 향로, 향합, 꽃병, 잔, 주전자 등이다. 신안선에서 나온 유물 중 가장 많은 것은 도자기·토기류로, 2만 660여점에 이른다. 도자기는 청자와 청백자가 다수였는데 대부분 중국 용천요와 경덕진요계였다. 도자기 분류로 편년과 생산지 등도 밝혀냈는데, 이렇게 대량으로 출수된 도자기는 지금까지도 세계 수중고고학 사상 유례가 드물다. 금속 유물은 1000여점으로 분향구, 불교의식구, 주방용구, 생활용구, 금속정 등 다양했다. 금속덩어리인 금속정은 녹여서 불상이나 기타 기물 제작에 사용하고자 했을 터다. 주석정과 철정이 340여점으로 가장 많고 ‘왕구랑’(王九郞)이라는 장인의 이름이 새겨졌다. 특히 ‘경원로’(慶元路)가 새겨진 청동추 덕분에 선박 출항지가 중국 경원로라는 사실도 알 수 있다. 목제유물로는 목간, 목기발, 목제반, 칠기완, 자단목 등이 나왔다. 목간 360여점은 화물표이니만큼 화물주·적재품 단위 등을 밝히는 데 요긴하게 쓰였고 침몰연대를 분석하는 데에도 사용됐다. 이 중 목간에서 언급한 ‘도후쿠지’(東福寺)는 일본 교토시 도잔구에 있는 임제종 사찰을 가리킨다. 1319년 화재로 소실됐다가 1325년 가마쿠라 막부의 도움으로 재건됐다. ‘도후쿠지’ 목간은 1323년 도후쿠지 사찰 재건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는 신안보물선을 일본 가마쿠라 막부의 묵인 아래 파견된 무역선으로 보는 근거이기도 하다. 식물류는 후추, 은행, 빈낭(기호식품), 여지(과일) 씨 등이 나왔다. 이러한 식물은 한약재와 향료 등이 거래되거나 구급약, 혹은 식용이었을 가능성을 보여 주며 당시 해상운송의 규모와 교류 정도를 가늠케 한다.●출항한 신안보물선, 최종 목적지는 신안보물선의 항로는 두 갈래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추정은 중국 푸젠성 취안저우항에서 연안 항로를 따라 온저우 등을 거쳐 칭위안으로 북상해 무역품을 싣고 고려, 일본으로 향하는 항로다. 중국 저장성 칭위안항을 출발한 배는 고려 개경을 중간 기착지로 삼았을 것이다. 배의 발굴 지점은 한중 항로인 서남해사단항으로, 기상재해 등 돌발 상황으로 인해 침몰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다른 추정은 중일 무역이 활발했던 일본 후쿠오카 하카다항이 목적지인 항로다. 중국에서 출발해 일본으로 직항하던 무역선이 남송·원대의 중국과 일본 간 주요 무역품이던 도자기와 동전들을 싣고 표류하다 침몰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화물주는 일본인과 기관의 대리인 등이 많았으며 목간에 새겨진 ‘조자쿠암’(釣寂巖), ‘하코자키’(筥崎) 등은 규슈의 사찰로, 하카다항과 관련이 있다. 출항지는 청동추에 새겨진 대로 ‘경원로’이다. 칭위안은 현재 중국 저장성 닝보 지역으로 남송대에 광저우, 취안저우와 더불어 국제항으로 성장한 곳이다. ‘지치삼년육월삼일’(至治參年六月二日) 목간은 신안선이 6월 남풍 시기에 출항했음을 알려준다. 신안보물선과 유물은 14세기 전후 해양 실크로드 무역의 실증이며 고려·일본 유물도 출수돼 한중일 관련성도 증명한다. 당시 중국 범선의 무대는 고려·일본과 동남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였다. 신안보물선이 고려를 경유해 일본으로 갔는지, 아니면 바로 일본으로 갔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출수가 우리나라 해역인 것은 분명한 만큼 우리나라가 해양 실크로드의 일원이었음을 대변한다. 신안보물선 수중발굴은 우리나라를 아시아 수중고고학 선도국가로 자리매김했다. 복원된 신안보물선의 선체와 다양한 도자기, 자단목, 목간, 금속제품 등 유물은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전시하고 있다. 연구소를 방문하면 영상과 전시를 통해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신안 증도 발굴해역은 현재 사적 제274호로 지정돼 안내판과 전망대가 설치돼 있다. 생생한 해양 실크로드를 보고 싶다면 직접 방문해 볼 만하다. 김병근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 경주 토함산 석탈해 사당터서 제사용 말 인형 다수 출토

    경주 토함산 석탈해 사당터서 제사용 말 인형 다수 출토

    경북 경주 석탈해 사당터에서 철과 흙으로 빚은 제사용 말인형이 출토됐다. 경주시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지난 9월부터 토함산 인근 불국동 석탈해 사당지 유적을 긴급 발굴 조사한 결과 건물 유적과 유물을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삼국유사에는 680년 신라 문무왕 대에 석탈해왕 뼈로 상을 만들어 토함산에 동악신으로 모시고 국사를 지냈다고 전한다.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사당터와 관련된 건물터 2동과 통일신라시대 암막새, 평기와, 고려시대 명문기와, 청자, 분청사기, 청동방울, 철제마(철로 빚은 말인형), 토제마(흙으로 빚은 말인형)를 발굴했다. 확인된 건물터는 고려 후기 마지막으로 중건된 건물 흔적이다. 중심 건물터는 동서 2칸, 남북 1칸으로 기반층 상부에 황갈색 점토로 대지를 반반히 고른 뒤 조성했다. 중심 건물터 서편에 토석축으로 벽체를 만든 1칸의 부속 건물터도 확인했다. 건물터에서는 철제마, 토제마, 청동방울, 통일신라시대 암막새 조각, 평기와, 고려시대 명문기와, 해무리굽 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 등이 출토됐다. 철제마(철마)나 토제마(토마)는 전북 부안 죽막동 유적과 경기 하남 이성산성을 비롯한 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친 해변이나 산상 제사터에서 주로 출토된다. 청자와 분청사기는 화로나 잔 받침 등 제사와 관련된 것이 많다. 기와 중에 ‘癸巳年 分施主 尹山 崔字 李堅’(계사년 분시주 윤산 최자 이견) 글자가 찍힌 기와가 많이 나왔다. 이 기와는 불국사 성보박물관 부지 발굴 때도 다수 확인됐다. 시주자 중 한 명인 이견(李堅 ?∼1360)은 고려 후기 무인이다. 1350년에 종2품인 지밀직자사에 임명됐고 1360년 홍건적 침입 때 함종전투에서 전사한 인물로 추정된다. 명문 기와는 고려 후기 몽골족 침입 이후 계사년(1353)에 불국사와 함께 탈해 사당도 중건했음을 추측할 수 있는 자료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경잡기 등 지리지와 여러 문집 기록에서 탈해사당은 조선 전기까지 제사를 유지한 것으로 전한다. 경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파주 대성동 마을서 구석기 유물 발견

    파주 대성동 마을서 구석기 유물 발견

    비무장지대(DMZ) 내 최북단 마을인 경기 파주 대성동에서 구석기시대 뗀석기 유물이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를 중심으로 구성된 비무장지대 문화·자연유산 실태조사단은 지난 5월 26일부터 29일까지 파주 대성동 마을에서 진행한 첫 실태조사에서 구석기시대 석기를 비롯한 다양한 유물을 수습했다고 9일 밝혔다. 마을 남쪽 구릉 일대에서 확인된 석기는 뗀석기 2점이다. 사냥하거나 물건에 구멍을 낼 때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찌르개와 날을 세운 석기인 찍개류의 깨진 조각으로 추정된다. 뗀석기는 2004년 개성공업지구 문화유적 남북 공동조사 때도 1점이 발견돼 남북 고고학계가 주목한 바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임진강 유역에서 적지 않은 구석기시대 유적이 조사된 바 있고 특히 대성동 마을과 북측의 기정동 마을은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앞으로 남북공동 조사가 이뤄지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마을 서쪽에 흙을 쌓아 만든 태성(台城)은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동서 방향에 문지(門址·성문이 있었던 자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서문지와 외곽 둘레에서 고려·조선 시대 토기와 기와 조각이 수습됐으며 시기가 이른 유물도 발견됐다. 조사단은 마을 주변 8곳을 매장문화재가 묻혀 있을 유물 산포지로 설정했다. 드러난 지표면에서 고려~조선 시대 기와, 도자기 조각 등이 발견됐고, 접근이 어려운 구릉에서도 봉분 등이 나타난 것으로 미뤄 마을 대부분 지역에 매장문화재가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구석기 유물이 발견된 마을 남쪽 구릉 일대에서는 고려 시대 일휘문(日暉文·원형 돌기 문양) 막새, 상감청자 조각, 전돌, 용두(龍頭) 장식 조각 등 통일신라부터 조선 시대의 유물이 확인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등 DMZ 국제평화지대화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비무장지대 실태조사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태봉 철원성,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 등 총 40여 곳을 대상으로 내년 5월까지 이어진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푸른 하늘 은하수… ‘반달’ 동심에 젖어 서울 보물단지를 만나다

    푸른 하늘 은하수… ‘반달’ 동심에 젖어 서울 보물단지를 만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2차 윤극영의 반달’ 편이 지난 21일 강북구 수유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4·19묘지역 2번 출구에 집결, 도미니코수도회~윤극영 가옥~4·19민주묘지~북한산2코스둘레길~‘아나키스트’ 유림선생 묘~근현대사기념관을 둘러봤다. 이날 코스에서 서울미래유산은 윤극영 가옥과 4·19민주묘지, 근현대사 기념관 등 3곳이었다. 참가자들은 속세와 연이 닿지 않는 수도원 방문 기회를 의미 있게 받아들였으며, ‘반달 할아버지’ 윤극영 가옥에서 반달 노래를 합창하면서 동심에 젖었다. 4·19민주묘지에서는 안내자의 인솔에 따라 민주영령들에게 묵념하고 묘역과 4·19기념관을 참관했다. 기념관 옥상에 올라 백운대(836m)와 인수봉(810m), 만경대(799m)가 삼각뿔을 이루는 삼각산을 조망하는 시간도 가졌다. 마지막 코스인 근현대사기념관 관람이 끝난 뒤 참가자 조진주 강북구 문화해설사가 준비한 호박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면서 깜짝 파티를 즐겼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명료한 해설과 깔끔한 진행으로 호평을 받았다.삼각산 아랫동네 수유동과 우이동에는 서울사람들이 깜짝 놀랄 보물단지가 숨어 있다. ‘중세의 반도체’라고 할 수 있는 도자기를 굽던 도요지다. 보통 도요지는 지방에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깼다. 고려 말~조선 초에 조성된 상감청자와 분청사기 가마터 20여기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왜 삼각산 아래 첫 동네에 도요지가 깃든 것일까.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출몰로 말미암아 전남 강진에 있던 왕실용 가마가 초토화되고, 도공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안전한 장소를 찾아 서울까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 광주 일대에 관요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왕실과 한양에서 사용하던 그릇 대부분을 이곳에서 구워냈다. 도자기의 생산과 유통경로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술과 인식을 뒤집는 중요한 발굴 성과였다. 이를 반영하듯 가마터에서는 고려 상감청자에서 조선 분청사기로 넘어가는 기간에 생산된 귀중한 도편이 대거 출토됐다. 실전된 청자의 비법을 살려낼 실마리가 빛을 발할 날이 머지않았다.2009년 서울역사박물관의 첫 지표조사 이후 가마터의 정확한 위치와 범위 및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학술발굴조사가 이뤄졌다. 2011년 수유동에서 분청사기를 구웠던 가마터가 확인됐다. 가마터는 삼각산 남동쪽 구릉의 아래쪽 계곡과 인접해 있다. 아카데미하우스와 통일교육원에서 도보로 30분 거리다. 이준 열사 묘역을 지나 탐방로를 따라 100m쯤 올라가면 나타난다. 신익희 선생 묘역 아래쪽이다. 수유동 가마의 구조는 아궁이와 계단이 없는 단실요의 형태를 띤다. 가마의 길이는 19.8m, 폭은 1.4~1.6m 정도다. 2014년 서울시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됐다. 우이동 청자가마터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2년에 이뤄졌다. 출토유물로 미뤄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반 사이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가마의 구조는 아궁이 앞에 불을 피우는 공간과 아궁이, 소성실, 연도부로 이뤄졌다. 수유동 가마와 마찬가지로 계단이 없는 단실요 형태였다. 길이는 21.1m, 폭 1.4~2m, 경사도 14도가량의 형태였다. 우이동 청자 가마터는 우이동 만남의 광장 위 옛 그린파크호텔 본관 뒤편 수영장주변 구릉지에 해당한다. 구릉 정상부에서 다량의 청자 파편과 가마벽 파편 등이 발견됐다. 도선사입구 버스정류장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다. 보존을 위해 흙을 덮어둔 상태여서 가마터를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다. 수유동과 우이동 가마터는 1973년 한강유역 동작구 남현동에서 8세기 통일신라시대 도요지가 발굴된 이래 서울 북쪽 끝자락에서 발견된 가마터다. 가마터는 오래된 도시 서울에 또 한 가지의 현란한 빛깔을 덧칠했다.삼각산은 서울을 수도로 정한 조선 풍수의 핵심이다. 한양천도 때 무학대사 이야기의 시발점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조가 승려 무학을 시켜 도읍 터를 정하도록 했다. 무학이 백운대에서 맥을 따라 만경대에 이르고, 다시 서남쪽으로 비봉에 갔다가 한 개의 돌비석을 보니 ‘무학오심도차’(무학이 길을 잘못 찾아 여기에 온다)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도선(신라의 도선국사)이 세운 것이었다. “문득 깨달은 무학은 길을 바꿔 정남 쪽 맥을 따라 백악산 밑에 도착했다. 세 곳 맥이 합쳐져서 한 들로 된 것을 보고 드디어 궁성(경복궁) 터를 정했다”고 한양천도와 경복궁 입지 풍수를 전한다. 무학의 길은 약 300년 전 고려 때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1101년(고려 숙종6)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삼각산 아래에 와서 도읍지를 살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마들(노원)과 해촌(창동), 종로, 용산 등 4곳이 명당으로 꼽혔다. 이 중 백악산 아래에 남경을 정했다. 삼각산이란 고려시대 개성에서 남쪽을 바라봤을 때 우뚝 솟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삼각뿔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북한산은 땅 이름이지, 산 이름이 아니다. 신라 때 서울의 지명인 한산의 북쪽이란 뜻에서 ‘북한산’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한강 건너 남쪽 남한산 또한 산 이름이 아니라 한산의 남쪽 즉 ‘남한산’이란 뜻이다. 한강은 ‘한산의 강’이란 뜻이다. 삼각산을 중심으로 생긴 한양예찬론은 조선의 모든 지리를 총 정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북으로 화산(삼각산)을 진산으로 삼은 한양 땅은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끌어안은 자세요, 남쪽은 한강으로 띠를 삼고…”라고 서술돼 있다. 단순히 명당론이나 풍수도참설이 아니라 성리학의 인문지리, 군사안보, 경제적 측면을 고려해 수도를 옮겼다.삼각산은 조선 개국과 한양도성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의 호 삼봉의 유래와 닿아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삼봉이라는 호는 알려진 것처럼 정도전이 태어난 충북 단양 ‘도담삼봉’에서 따온 게 아니라 삼봉재를 짓고 살던 서울 삼각산에서 비롯됐다. 도담삼봉설은 역사학자 한영우 교수가 1973년에 출간한 ‘정도전 사상의 연구’에서 “아이를 길에서 얻었다고 해서 이름을 도전이라고 하고, 부모가 인연을 맺은 곳이 삼봉이므로 호를 삼봉이라고 지었다”고 쓴 글에 의해 정설로 굳어졌다. 그러나 한 교수는 1999년 펴낸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에서 “삼봉이라는 호는 단양의 삼봉에서 차명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옛집인 개성 부근의 삼각산에서 차명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발 물러났다.정도전은 호의 유래에 대해 직접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유고문집 ‘삼봉집’에 몇 가지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남겼다. ‘정도전의 호 삼봉은 도담삼봉이 아니다’라는 글을 쓴 언론인 조운찬씨는 ‘삼봉에 올라’라는 시에서 “…삼봉마루에 올라/서북쪽으로 송악산 바라보니…”라니 구절과, 또 다른 시 ‘산중’의 내용이 도담삼봉과의 거리나 방향은 물론 풍경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이사’라는 시에는 5년 동안 3번 집을 옮긴 내용이 나오는 데 이사한 곳이 부평, 김포 등으로 삼각산 부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무엇보다 ‘삼봉집’ 어디에도 단양이나 도담삼봉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과 서울의 설계자 정도전이 스스로 호를 딴 삼각산이라는 신령한 산 이름을 젖혀두고 북한산이라는 땅 이름으로 호칭하는 게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3차 왕십리 ■집결장소 : 9월28일(토) 오전10시, 왕십리역 4번 출구, 시계탑 앞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 (www.suci.kr)
  • 초벌구이 전용 칸 완벽보존 고려청자 가마 구조 확인

    초벌구이 전용 칸 완벽보존 고려청자 가마 구조 확인

    초벌구이 전용 칸이 완벽하게 보존된 고려청자 가마가 발견됐다. 문화재청과 부안군, 전북문화재연구원은 현재 발굴 중인 전북 부안 유천리 요지 6구역 가마에서 초벌 전용 칸이 있는 고려청자 가마 2기를 발견했다고 17일 밝혔다. 사적 제69호인 유천리 요지는 고려 시대 최고급 상감청자를 비롯해 다양한 자기를 제작한 곳이다. 이곳 6구역은 망여봉에서 뻗어나간 나지막한 구릉지대다. 가마 2기는 구릉 서쪽 경사면에 등고선과 직교한 방향에서 약 5m 간격으로 자리한다.가마는 진흙과 석재를 이용해 만든 ‘토축요’다. 바닥에 도자기를 구울 때 담는 원통형 ‘갑발’과 구울 때 받쳐두는 ‘도지미’가 불규칙하게 있다. 가마 2기 중 1호는 전체적인 구조가 양호한 상태다. 전체 길이가 25m, 연소실이 1.6m, 토기를 굽는 ‘소성실’이 19m다. 특히 가마 맨 끝 부분에 석재로 만든 배연시설이 있는데, 이 시설과 맞닿은 소성실 끝 칸 마지막 바닥 면에 유물 퇴적구를 확인했다. 폐기장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곳에 여러 점의 초벌 청자 조각들이 집중적으로 쌓여 있었다. 가마온도가 가장 낮은 이곳을 이른바 ‘초벌 전용칸’으로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고려청자 가마에서 초벌 칸을 운용한 앞선 사례로 강진 사당리 43호가 있다. 그러나 이번에 초벌 칸과 연결된 유물퇴적구에서 초벌 청자가 다량으로 나와 가마구조의 발전단계를 확인할 수 있다. 문화재청은 “배연시설과 초벌칸, 초벌칸과 연결된 초벌청자 유물퇴적구 등은 학술 가치가 높아 사적지 복원·정비 사업에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조사는 유천리 요지 6구역의 체계적인 보호와 보존대책을 수립하기 위한 것으로, 지난 2월부터 시작해 이달 말 마무리할 예정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고려청자 대접 바닥에 숨은 꽃무늬 CT로 찾았다

    고려청자 대접 바닥에 숨은 꽃무늬 CT로 찾았다

    국보로 지정된 고려청자 대접에서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꽃무늬가 컴퓨터 단층촬영(CT)으로 드러났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고려 건국 1100주년을 맞아 기획한 특별전 ‘대고려 918·2018 그 찬란한 도전’에 전시 중인 국보 제115호 ‘청자 상감당초문 완’을 컴퓨터 단층촬영으로 분석한 결과를 29일 공개했다. 이 청자 그릇은 경기도 개풍군에 있는 고려 중기 문신 문공유(1088∼1159)의 무덤에서 출토됐다고 전해진다. 연대를 알 수 있는 상감청자 가운데 가장 오래된 유물로 꼽힌다. 그릇의 높이는 6.2㎝로 안쪽에는 넝쿨무늬로 장식돼 있고 그릇 바깥쪽은 국화 문양이 새겨져있다. CT 분석 결과 그릇 유약층의 두께는 내부가 0.53㎜, 외부는 0.40㎜이며 내부 바닥에는 유약이 고여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 내부 바닥에서는 유약층에 가려 보이지 않는 꽃무늬 상감이 확인됐다. 박물관 관계자는 “그동안 이 꽃무늬는 존재를 추정만 했을 뿐 실체가 드러나지는 않았다”면서 “이번 조사는 비파괴 CT 분석을 통해 고려시대 장인의 기술과 예술의 이면을 읽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