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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커버스토리] 클릭, 잠시 짜릿했으나…패닉, 영혼까지 털렸다

    [커버스토리] 클릭, 잠시 짜릿했으나…패닉, 영혼까지 털렸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8일 지난 3년간 6300억원 규모의 사설 스포츠토토를 운영해 온 고모(46)씨 등 8명을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2010년 6월부터 최근까지 사설 토토 사이트 14개를 통해 600여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겼으며 규모가 큰 사이트는 회원 2700명에 월평균 35억원이 입금된 것으로 드러났다.”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 그래서 기자가 직접 사설 스포츠토토에 베팅해 봤다. 지난 18일 오후 11시 30분부터 이튿날로 넘어가는 밤을 하얗게 불태웠다. 클릭질 몇 번에 수십만원이 오갔다. 돈은 당장 손에 잡힐 듯 가까웠고, 방식은 쉽고 간편했다. 짜릿했다. 왜 사람들이 사설 토토에 중독되는지 알 것 같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태 파악을 위해 특별 취재비로 받은 30만원을 7시간 만에 전부 잃었다. 킥오프와 종료 휘슬이 몇 번 반복되는가 싶었는데 보유머니는 어느새 0원이었다. 베팅은 지난 3년간 밤낮으로 사설 토토를 한 김용진(28·가명·12면 참조)씨가 귀띔한 ‘메이저 놀이터’(안전한 사설 토토 사이트를 뜻하는 은어)에서 이뤄졌다. 지인의 추천을 통해서만 엄격하게 회원을 받아 경찰에 절대로 걸릴 염려가 없다고 했다. 서버는 모두 해외에 있고 대포통장으로 철저하게 관리한다는 것. 돈을 입금받고 결과를 맞히면 아이디(ID)를 없애버리는 ‘먹튀 사이트’들이 횡행하는 가운데 3년 넘게 무사고(?)로 운영 중이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두근두근. 링크창에 사이트 주소를 쳤다. 메인 화면에는 음악을 듣는 외국 남자의 사진이 떴다. 음악 관련 블로그 같았다. 설마 없어진 건가. 혹시나 싶어 김씨에게 미리 받은 ID와 비밀번호를 쳤다. 신세계가 펼쳐졌다. 웨인 루니(축구), 로저 페더러(테니스),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농구)의 사진이 떴다. 페이지 하단에는 ‘저희는 별도의 광고 없이 추천인만을 통해 가입하며, 보안을 가장 중요시하는 곳입니다’라는 설명이 쓰여 있었다. 보안유지를 위해 회원 모두가 노력하자는 공지 글에는 ‘보안이 생명’, ‘보안 또 보안’이라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아, 제대로 찾아왔구나. 사설토토 사이트는 별천지였다. 전 세계에서 열리는 축구·야구·농구·미식축구·핸드볼 등 웬만한 종목은 다 있었고 베팅 종류도 승무패·언더-오버(양팀 득점의 합이 기준점수를 넘는 것)·핸디캡(강팀에 불리한 조건을 주는 방식)·스페셜(야구 첫 볼넷, 농구 첫 3점슛, 축구 전반 득점 등) 등 다양했다. 합법 스포츠토토(베트맨)는 최소 두 경기부터 승, 무, 패 등 경기결과를 베팅할 수 있는 반면 사설토토는 첫 경기부터 걸 수 있다. 베팅액도 베트맨이 100~10만원인데, 사설토토는 5000~300만원으로 크다. 배당률도 당연히 사설토토가 높다. 베트맨을 통해 베팅에 재미를 느낀 사람들이 불법토토로 유입되는 이유다. 마감임박 경기들이 깜빡였다. 노르웨이, 카타르, 러시아, 요르단 등 평소 따로 챙겨 본 적이 없는 축구경기가 베팅을 재촉했다. 거침없이 눌렀다. 첫 번째 선택은 18일 오후 11시 30분에 킥오프하는 러시아 축구 2부리그. 배당률이 낮은, 달리 말하면 이길 확률이 높은 팀의 승리에 5만원을 걸었다. 사이버머니는 현금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밤 12시 15분에 시작하는 카타르 리그 두 경기에도 베팅했다. 알사드와 레크위야SC, 알라이안과 알자이시의 대결. 알사드와 알라이안이 이긴다에 각각 5만원씩 걸었다. 축구 국가대표 출신 이정수·조용형 등이 뛰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를 취재하며 자주 접해 익숙한 팀들이었다. 돈을 잃을까 봐 불안하기도 하고, 이변이 생겼을 때 대박을 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같은 경기의 무와 패에도 전부 1만~2만원씩을 걸었다. 합법토토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이다. 노르웨이 축구까지 베팅, 사이버머니 30만원을 전부 썼다. 이제 기다릴 시간. 지루할 거란 예상과 달리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실시간 점수를 중계해 주는 라이브스코어 사이트에 들어가니 채팅방에 재잘대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실시간으로 뜨는 골 소식에 채팅창이 들썩였다. 노르웨이, 카타르 축구가 끝나자 0원이던 잔고는 다시 19만원으로 채워졌다. 분명 11만원을 잃은 건데 돈을 땄다는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새벽 2시인데 눈이 말똥거렸다. 왠지 계속 딸 것 같은 기분에 취했다. 간이 커진다. 이번엔 미국프로야구(MLB)를 택했다. 밀워키-샌프란시스코, 시카고C-텍사스전에서 첫 볼넷이 어느 팀에서 나올지를 고르는 게임이다. 투수의 제구력이 우선이지만, 축구보다는 경기상황과 운에 좌우될 가능성이 커 보였다. 아무 팀이나 겁없이 찍었다. MLB 몇 경기와 사우디아라비아·스위스·잉글랜드·콜롬비아 축구, 유럽농구까지 돈을 따는 족족 베팅했다. 깜깜한 새벽, ‘아드레날린’ 대분출이다. 파란색 낙첨과 빨간색 당첨을 정신없이 반복하는 사이 사이버머니는 어느덧 0원. 7시간 31개 베팅의 끝은 ‘올인’이었다. 영혼까지 탈탈 털렸다. 한국의 4대 프로스포츠가 전부 승부조작의 홍역을 앓았지만, 그 온상이 된 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는 여전히 불야성이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가 고려대에 의뢰해 지난달 발표한 제2차 불법도박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설 스포츠토토의 규모는 연간 7조 6000억원으로 파악됐다. 우리나라 도박의 총규모(연간 75조원)의 10.1% 수준이다. 2008년 제1차 조사 때는 미미해 따로 사설토토를 집계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도박의 큰 부분을 차지하던 하우스(노름판) 도박(25.7%), 사행성 게임장(24.9%), 사설 경마·경륜·경정(13.2%)의 자리를 사설토토가 급격하게 잠식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는 사설 스포츠토토의 특징으로 ▲인터넷, 모바일로 24시간 이용 가능 ▲베팅대상 및 방식의 다양성 ▲환전의 신속성 ▲높은 베팅 상한선과 배당률 ▲다양한 VIP제도 등을 꼽았다. 사설토토 사이트를 운영하다 적발되면 7년 이하 징역이나 7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문다. 이용자도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사감위는 정부, 경찰과 함께 지난해 11월 불법사행산업감시 신고센터(1855-0112)를 발족했으나 사설토토가 워낙 은밀하게 이뤄지는 까닭에 단속이 쉽지 않다. 대부분 해외서버인 데다 주기적으로 주소를 바꾸며 회원을 관리하고 있어 적발이 어렵다. 강남서가 적발한 사설토토 조직도 검거까지 무려 8개월이 걸렸다. 운영자들은 수사망을 피하려고 서버는 일본에, 사무실은 태국·중국에 열고 현금으로 출금한 최종 수익금을 합법 법인계좌에 입금해 해외제조사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돈세탁까지 거쳤다. 치밀하고 교묘한 수법이다. 전문가들은 도박에 취약한 개인특성, 사회에 만연한 한탕주의만큼이나 국가의 책임방기가 사설 스포츠토토 중독자를 양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규호 중독예방시민연대 상임대표는 “합법 도박(베트맨)을 즐기던 사람들이 배당률이 높고 다양한 조합으로 즐길 수 있는 불법토토로 흡수되는 경향이 있다”면서 “합법, 불법토토 모두에 대한 규제와 감시를 강화하고 철저한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명호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도박을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건 국가”라면서 “중독자의 자활, 치료를 위한 정부 차원의 네트워크를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커버스토리-불법 온라인 도박의 함정] 5000원 베팅해 120만원 대박… 불행의 시작 사채까지 쓰며 수천만원 빚더미…“돈·꿈 다 잃었다”

    [커버스토리-불법 온라인 도박의 함정] 5000원 베팅해 120만원 대박… 불행의 시작 사채까지 쓰며 수천만원 빚더미…“돈·꿈 다 잃었다”

    사방이 환했다. 저녁을 먹고 컴퓨터에 앉은 것 같은데 12시간이 금세 지났다. 눈은 퀭했고, 빨갰다. 재떨이의 담배꽁초는 수북했다. 사설 스포츠토토는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았다. 간밤에도 그랬다. ‘손해본 것만 만회하면 바로 나와야지’라며 로그인했다. 저축은행에 이어 대부업체까지 손을 벌려 마련한 돈이었다. 반전을 꿈꾸며 클릭을 거듭했지만, 해가 밝았을 때는 다시 빈털터리였다. 3년째 되풀이 된 불면의 밤. 청년은 “돈과 시간, 꿈과 건강과 인간관계까지 모든 걸 잃었다”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19일 인터뷰에 응한 서울대 졸업생 김용진(가명·28)씨는 사설토토에 빠져 지낸 지난 3년을 힘겹게 곱씹었다. 시작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사설토토를 즐기는 친구를 보고 재미 삼아 시작했다. 2010년 가을,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때였다. 어차피 학교 수업 끝나면 집에서 매일 야구를 보는 그였다. 딱 5만원 걸었을 뿐인데 짜릿함은 배가 됐다. 투수의 공 하나, 타자의 방망이질 한 번이 달리 보였다. 스포츠의 세계가 무한해지는 느낌이었다. 이후 김씨는 종종 사설토토를 했다. 전보다 흥미진진하게 스포츠 중계를 볼 수 있었다. 중독되기 시작한 건 첫 베팅 후 3개월이 지났을 무렵. 여느 때처럼 푼돈을 걸었는데 대박을 쳤다. 프로농구(KBL)·여자농구(WKBL)·미국프로농구(NBA) 몇 경기의 승패, 언더-오버, 핸디캡 등 12개 결과를 모두 적중시킨 것이다. 베팅한 돈 5000원은 채 1분이 안 돼 현금 120만원으로 통장에 꽂혔다. 심장이 펄떡거렸다. 씀씀이는 점점 커졌다. 쉽게 번 돈인 만큼 부담 없이 마구 질렀다. 며칠 뒤에는 농구 언더-오버에 걸었던 100만원이 285만원으로 돌아왔다. 김씨는 “초반에 그렇게 몇 번 따니까 힘들게 직장생활 할 필요 없이 사설토토로 돈을 벌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회상했다. 승산이 있다고 믿었다. 행운에만 의존하는 도박이 아니라 공부하면 정복할 수 있는 주식 같았다고 했다. 사전정보가 있고 그 정보를 세밀하게 분석한다면, 본인만 잘한다면,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전문 돈벌이로 사설토토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김씨는 변수와 이변이 적고 베팅종류도 많지 않은 해외 축구를 집중적으로 팠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는 기본이고, 덴마크·핀란드·칠레·크로아티아·파라과이·에스토니아·사우디아라비아 등 제3세계 축구까지 닥치는 대로 챙겼다. 경기를 본 게 아니었다. 실시간으로 변하는 배당률과 씨름했다. 상대전적, 홈·원정 승률, 주요 선수 컨디션 등을 꼼꼼하게 살폈다. 경기정보가 빼곡한 분석사이트(베트익스플로어러, 오즈포털)와 외국 베팅업체 사이트(벳365, 188벳, 윌리엄힐),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모든 경기의 점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라이브스코어 사이트를 분주하게 오갔다. 공책에 베팅업체별 적중률, 배당률의 흐름·변화주기 등을 빼곡하게 적으며 자기만의 비책을 만들었다. 그렇게 추려진 통계 정보로 항상 경기시작 1분 전에 베팅했다. 한 경기에 20만~30만원씩, 확신이 있을 땐 최대 베팅금액인 100만원을 걸었다. 평일엔 6~7경기, 주말엔 10경기를 분석해 다양한 조합으로 베팅했다. 최고 1000만원을 딴 적도 있었지만 바로 베팅에 쓰거나 유흥비로 탕진했다. 몇 번의 ‘잭팟’은 흔히 말하는 초심자의 행운이었다. 환희보다 탄식과 분노, 오기가 일 때가 더 많았다. 사설토토는 ‘돈 먹는 하마’였다. 김씨는 인생에서 열심히 해서 정복하지 못할 건 없다고 믿었고 그렇게 살아왔다. 재수 1년만에 수능점수 120점을 끌어올려 서울대에 입학한 의지의 사나이였다. 분석 결과가 빚나가 돈을 잃을 수록 오기가 생겼다. “내가 호구 같이 돈을 뜯기고 있다는 기분을 참을 수 없었어요. 이기고 싶었고,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죠.” 야무지게 부딪혔지만 매번 돈을 잃었다. 평범한 대학생 용돈으로는 적자 폭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돈이 필요했다. 인터넷으로 계좌를 조회하다 부모님이 김씨 이름으로 붓던 적금을 발견했다. 적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농협에서 100만원씩 야금야금 빼냈다. 대출한도액 1500만원은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그래도 끊을 수 없었다. 저축은행에서 금리 25%짜리 대학생 신용대출로 600만원을 빌렸다. ‘잭팟’ 한 번이면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을거란 생각에 갇혔다. 번번이 실패. 결국 김씨는 지난해 11월, 무려 30% 이자를 내야하는 일본계 대부업체에서 200만원을 빌렸다. 더러는 땄지만, 대부분 돈을 잃었다. 빚은 2500만원까지 늘었다. 김씨는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담배를 뻐끔거리면서 불면의 밤을 보냈다. 친구들과 낄낄대면서 마시던 소주도 전혀 생각이 안 났고, 연애도 귀찮게만 느껴졌다. 때론 ‘내가 지금 뭐하는거지?’ 하는 자괴감이 들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김씨는 “생활은 피폐했고, 항상 비참했다. 밤일을 하니까 인간관계가 단절됐고, 결국 고독함의 극치를 맛봤다”고 회상했다. 더러운 기분을 잊으려고 더욱 토토에 매진했다. 악순환이었다. 매일매일 그만하려고 노력했다. 심지어 사이트 비밀번호는 ‘akwlakr’. 키보드를 한글로 치면 ‘마지막’이란 뜻이다. 굳게 마음먹고 사이트 탈퇴신청을 한 적도 있다. 회원가입된 상태면 자제하기 힘들 것 같아 아이디(ID)를 없애달라고 업체 측에 요청했지만, 계정은 2주가 지나도 안 없어졌다. 끊임없이 유혹메시지가 왔다. 아침마다 후회와 공허함을 느끼면서도 김씨는 저녁이면 어김없이 사이트에 접속했다. 손을 털게 된 계기는 어머니였다. 적금을 담보로 친동생에게 돈을 빌려주려던 어머니는 김씨가 이미 대출을 받아갔단 사실을 알게 됐다. 지난 2월 말의 일이다. 사실이 발각된 뒤 김씨는 일주일간 집을 나가 방황하다가 다시 돌아와 무릎 꿇고 빌며 “주식에 손을 댔다”고 둘러댔다. 빚 2500만원도 있다고 털어놨다. 순간 위기는 모면했지만, 어머니의 눈물은 내내 잊히지 않았다. “엄마 얼굴을 떠올리니까 다 되더라”고 했다. 김씨는 그날 이후 사설토토를 끊었다. 그는 지난 3년을 어떻게 정의할까. “친구들은 다 취업해서 번듯한 회사를 다니는데, 나는 뭐했나 싶어요. 갈 데까지 갔는데 도박의 마지막은 엄청난 외로움만 남더군요. 공허하고 황폐하고 고독하더군요. 해봤자 별거 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앞으론 남들보다 두 배로 열심히 살겁니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커버스토리-불법 온라인 도박의 함정] “연봉보다 수입 많아”… 직접 베팅하거나 돈받고 승부조작까지

    운동을 직업으로 하는 선수들에게도 사설 스포츠토토는 뿌리 깊게 박혀 있었다. 일반인보다 경기를 분석하는 안목이 높은 데다 선후배들을 통해 고급정보를 얻을 수 있어 별다른 죄책감 없이 사설토토에 빠져든다. 고등학교 축구선수는 “언제 부상당하고 은퇴할지 불안한 데 벌 수 있을 때 왕창 벌어야 하지 않냐”면서 “친한 프로 형들한테 선발 엔트리나 전술 등 경기관련 정보를 받고 베팅한다”고 말했다. 한 구기종목 감독은 “애들이 밤새 사설토토를 하느라 잠을 안 잔다”면서 “실업팀에서 죽어라 운동하면서 받는 연봉보다 토토로 버는 돈이 더 많다는데 뭐라고 혼내기도 답답하고 서글프더라”고 하소연했다. 스포츠토토 중독 증세가 심해지면 직접 승부의 결과를 바꾸기에 이른다. 스스로 베팅한 상태에서, 혹은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특정한 경기결과를 내기 위해 뛰는 것. 승부조작 브로커는, 축구로 치면 골키퍼나 최종수비수 등 패배에 직접 영향을 줄 수 있는 선수들에게 전주(錢主)에게 받은 돈을 쥐어 준다. 이걸 ‘약을 친다’고 표현한다. 의도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갖은 협박과 회유로 발을 빼지 못하게 한다. ‘파리 지옥’인 셈이다. 우리나라 4대 프로스포츠가 전부 비슷한 수순을 밟았다. 은퇴한 한 농구선수는 “선수생명이 짧고, 몇몇 스타를 빼고는 연봉도 못 받고, 은퇴 후 마땅히 할 것도 없는데 그런 유혹이 오면 당연히 끌릴 수 있다”면서 “특히 첫 파울처럼 승부에 영향도 안 주고 티도 안 나는 거라면 몇 백만원에도 혹할 것”이라고 말했다. 확실하게 약을 쳤다면, 합법 스포츠토토(베트맨)로도 충분하다. 배당률이 별로 높지 않지만, 전주나 조직폭력배 등 ‘검은손’들은 사채·대출까지 해 억대의 큰돈을 걸어 잭팟을 터뜨린다. 스스로 경기를 뛰면서 돈벌이 내기를 하는 경우도 최근 부쩍 늘었다. 대학교 구기종목 코치는 “연습경기를 하는데 선수들끼리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서 내기(베팅)를 하는 걸 봤다”면서 “최고 50만원까지 통 크게 돈을 걸고 살벌하게 경기하더라”고 귀띔했다. 그는 “자기팀에 걸면 그나마 다행인데 지는 쪽에 걸고 일부러 태업을 해 기합을 준 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돈에 눈이 멀어 장난을 치는 거라고 보는 건 단편적인 시각이다. 전문가들은 ▲지도자의 불안정한 지위·처우 ▲입시·진학·스카우트 비리 ▲학부모의 자녀 이기주의 ▲조직폭력배의 돈놀음 ▲경기단체의 무감각 ▲개개인의 도덕불감증 등 체육계의 고질적인 문제들이 뭉쳐서 폭발한 게 승부조작, 사설 토토라고 규정했다. 선수들은 정상적인 스포츠맨십을 교육받지 못했다. 입시, 진학, 지도자 재계약 등 여러 문제에 따라 져줄 수도 있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은퇴한 구기종목 선수는 “경기에서 감독님이 100% 전력을 다하지 않는 걸 느낀 적이 있다”면서 “다른 팀 지도자와 친하다거나, 토너먼트 상대를 감안해서 일부러 장난을 치는 경우”라고 했다. 그는 “괜히 에이스 선수를 내보냈다가 부상당해서 결승에 못 나가면 어쩌냐고 둘러댄 뒤 약한 멤버를 투입하는 식”이라면서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어서 학부모도 선수도 발만 굴렀다”고 회상했다. 매년 성적을 내지 못하면 재계약에 실패하는 지도자들은 성적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건강한 스포츠 토양이 정착되지 않는다면 사설토토는 영원히 뿌리 뽑을 수 없고, 승부 조작도 반복될 문제라는 얘기다. 최동호 스포츠평론가는 “자금줄과 브로커를 색출하지 않고 선수·지도자 개개인 도덕불감증으로만 치부하면 이런 문제는 되풀이될 것”이라면서 “유명인이라 도마에 올랐지만 사실 불법토토의 구조에서 선수·감독은 하수인, 깃털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정희준 동아대 생활체육과 교수는 “입시·진학·지도자끼리의 친분 등에 따라 학생 때부터 자연스럽게 승부 조작을 해온 선수들의 인식을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힘들다”면서 “도덕성이 낮은 게 아니라 잘못된 줄도 모르는 상태인 건데 체육계 전반적으로 뜯어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10억 돈상자’ 주인

    ‘10억 돈상자’ 주인

    지난 2월 서울 여의도의 물품보관소에 ‘현금 10억원 상자’를 숨겼다가 발각되자 해외로 달아난 정모(40)씨는 불법 도박 사이트 운영을 통해 240여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또 이 사이트 운영에 참여했던 전모(32)씨 등은 정씨의 돈 43억원을 훔쳤다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한 정씨에게 돌려줬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20일 불법 사설 토토 사이트를 운영해 벌어들인 수익금을 훔친 전씨를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하고, 김모(35)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또 해외로 도피한 도박 사이트 운영자 정씨를 특수강도 및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 혐의로 지명수배하고 인터폴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정씨는 조사 결과 2009년 1월부터 지난 2월까지 2년 1개월 동안 사설토토 사이트를 불법적으로 운영하면서 240여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씨는 정씨가 강남구 신사동의 한 오피스텔 금고에 도박 사이트 운영 수익금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 가운데 43억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정씨는 범죄수익금을 도둑맞은 사실을 알고 조직폭력배 행동대원 신모(36)씨를 동원, 협박해 전씨로부터 4억원을 되돌려 받았다. 정씨는 범죄 수익금 중 일부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물품보관소에 보관해 오다 지난 2월 ‘폭발물 의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은닉 사실이 드러나자 인도네시아로 도주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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