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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반그룹, 국가유공자에 장수사진 선물

    호반그룹, 국가유공자에 장수사진 선물

    호반그룹은 제81주년 광복절을 맞아 지난 6일 서울 서초구보훈회관에서 국가유공자를 대상으로 장수사진 촬영 봉사활동 ‘오늘을 만든 당신께’를 진행했다고 9일 밝혔다. 임직원 봉사단 ‘호반사랑나눔이’를 중심으로 호반건설, 대한전선, 호반호텔앤리조트 등 그룹 임직원 30여명이 참여했다. 이번 봉사활동은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행사에는 서초구에 거주하는 국가유공자 30여명이 참석했으며, 헤어·메이크업부터 장수사진 촬영까지 호반그룹 임직원들의 재능기부로 진행됐다. 임직원들은 국가유공자들이 촬영을 기다리는 동안 말벗이 되어 담소를 나누며 뜻깊은 시간을 함께했다. 완성된 사진은 액자에 담아 선물과 함께 전달할 예정이다. 호반그룹은 매년 서초구가 주관하는 ‘서초 보훈문화 페스티벌’을 후원하는 등 지역사회 상생에도 앞장서고 있다.
  • ‘조각의 신’ 미켈란젤로, 돌 속에 잠든 영혼을 깨우다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조각의 신’ 미켈란젤로, 돌 속에 잠든 영혼을 깨우다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신성한 사람’이라 부르며 경외심神 지위 오른 이유 시·명언에 나와대리석 안에 형상이 있다고 생각세상에 드러내는 게 조각가 역할사람은 컴퍼스를 눈에 지녀야눈은 예술가의 종합적 판단력세계미술사의 별들 가운데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가 두 차례나 출판된 최초의 예술가는 누구일까? 바로 르네상스의 천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이다. 당대 화가이자 미술사가였던 조르조 바사리는 그를 향해 이런 찬사를 남겼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를 통틀어 승리의 종려가지를 거머쥔 이는 신성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이다. 그는 회화와 조각, 건축 세 분야 모두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 동시대인들은 미켈란젤로를 신성한 사람, 즉 이탈리아어로 ‘일 디비노’라고 부르며 경외심을 품었다. 그는 어떻게 생전에 신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해답은 그가 남긴 작품과 글 속에 숨겨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였으며 300편이 넘는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다. 오늘날 전해지는 500여통의 친필 서한 속 시와 명언들은 그가 왜 일 디비노라 불리게 되었는지를 밝혀 주는 열쇠가 될 것이다. 첫 번째 명언 “가장 뛰어난 예술가도 대리석 속에 존재하지 않는 형상을 창조할 수는 없다. 오직 지성에 복종하는 손만이 그 형상을 드러낼 수 있다.” 이 문장은 미켈란젤로가 영혼의 단짝으로 여겼던 여성 시인 비토리아 콜론나에게 보낸 소네트에 나온다. 그는 대리석 안에 이미 완전한 형상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조각가의 역할이란 그것을 가리고 있는 부분을 제거해 세상 밖으로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이 명언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지성에 복종하는 손”이라는 표현이다. 당시 회화와 조각은 물감을 칠하거나 돌을 깎는 장인들의 육체적 기술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미켈란젤로는 뛰어난 손재주만으로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에게 조각은 손과 물질, 지성이 하나가 되어 진리를 찾아가는 철학적이고도 정신적인 수행이었다. 이러한 예술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실마리는 미켈란젤로의 10대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열네 살 무렵 피렌체의 통치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의 눈에 들어 후원을 받았다. 이후 메디치가를 드나들던 인문주의자와 시인, 철학자들에 의해 신플라톤주의를 접하게 되었다. 신플라톤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철학을 르네상스 기독교 세계관과 결합해 새롭게 해석한 사상이다. 지상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의 영혼이 진리와 신성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스물네 살 무렵 완성한 ‘피에타’①는 신플라톤주의 예술관을 보여 주는 걸작이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품에 안고 슬퍼하는 장면을 담은 이 작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슬픔이라 불린다. 그런데 1499년 이 조각상이 로마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 대중은 작품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 의문을 품었다. 서른세 살에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가 왜 이토록 젊게 보이는가? 미켈란젤로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성모가 비현실적으로 젊어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하느님의 기적적인 손길이 그녀의 영원한 처녀성과 순결함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젊음을 유지하도록 도왔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영혼을 지닌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세월에 훼손되지 않은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빛나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참혹하게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라면 분노하며 울부짖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런데 성모의 얼굴에는 격렬한 감정의 폭발 대신 고요와 평온이 감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현실의 고통을 영혼의 힘으로 이겨내고 초월하게 되면 신성한 고요함에 이른다고 믿었다.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성모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신의 뜻임을 받아들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인간적 비극과 절망을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 평온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두 번째 명언 “사람은 컴퍼스를 손이 아니라 눈에 지녀야 한다. 손은 단지 실행할 뿐이며 눈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조르조 바사리의 저서 ‘미술가 평전’에 기록된 미켈란젤로의 핵심 미학을 담고 있는 명언이다. 여기서 눈은 신체의 눈만을 뜻하지 않는다. 대상의 비례와 균형, 작품이 놓일 공간과 높이, 관람자가 바라보는 거리와 각도까지 종합적으로 헤아리는 예술가의 판단력을 의미한다. 미켈란젤로가 활동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수학적 비례와 원근법, 해부학적 지식이 미술의 중요한 토대로 자리잡았다. 예술가들은 자와 컴퍼스를 사용해 인체와 건축물의 이상적인 비례를 탐구했다. 미켈란젤로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수치를 지닌 작품이라도 생명력과 조화를 잃는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눈의 컴퍼스 철학이 구현된 작품이 피렌체의 상징이 된 ‘다비드’②이다.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다비드는 성경 속 소년 목동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신체 높이가 5.17m나 되는 거대한 몸과 단단하게 다져진 근육질의 누드상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영웅이나 신을 떠올리게 한다. 앞선 조각가들은 주로 다비드가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발아래에 두고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을 선택했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다비드가 적과 싸우기 직전 두려움과 투지가 팽팽하게 맞서는 결전의 찰나를 포착했다. 이마를 가로지르는 깊은 고뇌의 주름, 팽팽하게 긴장된 목덜미의 근육, 돌을 감춘 오른손에 불끈 솟아오른 핏줄 등. 온몸의 감각이 적을 향해 곤두서 있다. 그런데 ‘다비드’를 살펴보면 일부 신체 비례가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머리는 몸에 비해 비교적 크고 특히 돌을 쥔 오른손은 크고 강하게 강조되었다. 왜 이상적인 인체 비례에서 벗어나 머리와 손을 크게 표현했을까? ‘다비드’는 원래 피렌체 대성당 외부의 높은 버팀벽 위에 세워질 조각상으로 주문되었다. 작품이 높은 곳에 놓이면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관람자의 눈에는 원근법적 단축 현상 때문에 머리와 손이 실제보다 작아 보이게 된다. 즉 조각상이 실제로 놓일 높이와 관람자의 시점을 미리 계산하고 시각적 효과에 맞추어 비례를 의도적으로 조정한 것이다. 한편으로 크게 강조된 머리는 거인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다비드의 지성을, 강인한 오른손은 거인을 쓰러뜨릴 결단력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제시된다. 세 번째 명언 “화가는 회화만큼 조각에도 힘써야 하며 조각가 역시 조각만큼 회화에도 힘써야 한다. 회화와 조각은 하나의 동일한 지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일흔두 살 무렵의 미켈란젤로가 오랜 예술적 경험 끝에 도달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 그는 평생 자신을 조각가라고 생각했고 젊은 시절에는 조각이 회화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도 가졌다. 그런 그에게 1508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리라는 임무를 맡겼을 때 그의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까. 당시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높고 넓은 곡면 천장에 대규모 프레스코화를 제작한 경험이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조각이 아니라 회화 작업을 맡게 된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실패할 경우 조각가로서 쌓아 온 명성이 손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작업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회반죽의 습기와 배합 문제로 화면에 곰팡이처럼 보이는 얼룩이 생겨 일부를 제거하고 다시 작업해야 했다. 높은 비계 위에서 오랫동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을 향해 붓을 들어야 했던 작업이 그의 몸에 극심한 고통을 안겼다. 1509년 무렵 그는 친구인 조반니 다 피스토이아에게 작업 자세를 익살스럽게 묘사한 시를 보냈다. “고통 속에서 목에는 혹이 생기고 배는 턱밑까지 밀려 올라왔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붓의 물감은 내 얼굴을 화려한 바닥처럼 만들었지. 조반니여, 내 명예를 지켜주게. 나는 화가가 아니라네.” 스스로 화가가 아니라고 호소했던 조각가가 그린 그림이 어떻게 인류 최고의 걸작이 될 수 있었을까? 비결은 조각의 3차원적 양감과 인체 표현력을 회화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아담의 창조’③를 살펴보겠다. 화면 왼쪽 아담의 몸을 자세히 보면 가슴과 복부, 팔과 다리를 따라 이어지는 근육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 단단한 부피감을 얻고 있다. 천장화를 채우고 있는 300명이 넘는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몸을 비틀고, 웅크리고, 팔을 뻗는 자세마다 조각적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는 붓을 조각가의 정처럼 사용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1536년에 그렸던 시스티나 예배당 벽화 ‘최후의 심판’에서도 2차원 평면에 3차원적 입체감을 통합하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조각과 회화를 넘나드는 오랜 경험은 미켈란젤로의 생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547년 피렌체의 인문학자 베네데토 바르키는 학계에서 뜨겁게 논쟁하던 주제에 대해 미켈란젤로의 견해를 구했다. “회화와 조각 가운데 어느 예술이 더 우월한가?”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조각이 회화의 등불이며 조각과 회화 사이에는 태양과 달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깨달았다. 조각과 회화는 동일한 지성에서 나오는 본질적으로 같은 예술이다.” 세상의 찬사와 성공을 거머쥐었던 미켈란젤로도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죽음과 구원의 의미를 성찰했다. 영혼의 안식을 위한 간절함이 담긴 그의 유작이 ‘론다니니 피에타’④이다. 그가 20대에 완성한 바티칸의 ‘피에타’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인체의 아름다움으로 눈부셨다. 그러나 여든여덟 살의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다듬었던 ‘론다니니 피에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그가 평생 자랑해 온 해부학적 정확성도, 매끈하게 마감된 대리석 피부도 찾아볼 수 없다. 표면에는 정으로 찍고 깎아낸 거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인물의 얼굴은 희미하며 팔다리는 길고 가늘게 늘어져 있다. 성모와 그리스도의 몸은 서로 기대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하다. 슬픔에 잠긴 성모가 죽은 아들을 붙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넘어선 그리스도가 성모를 구원으로 이끌고 있는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젊은 시절 그는 완벽한 신체적 아름다움을 통해 천상의 신성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둔 그는 영혼의 본질만을 남기고자 했다. 이 작품은 지상의 미를 탐구하던 그의 눈이 마침내 물질을 초월해 신의 구원이라는 절대적 아름다움에 도달했음을 보여 준다. 그가 남긴 친필 기록에는 마지막 소망이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비록 내 육체는 쇠하고 늙어 숨쉬기마저 버거우나 내게 맡겨진 소명을 결코 내려놓지 않을 것이네. 나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위해 일하며 내 영혼의 모든 소망과 구원을 오직 그분께만 두고 있기 때문이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반복과 절제, 시간이 빚어낸 ‘환한 자유’… 이대원의 70년

    반복과 절제, 시간이 빚어낸 ‘환한 자유’… 이대원의 70년

    피상적 단어에 가려졌던 작품 세계관찰과 축적의 회화 다시 만날 기회멀리서 봐도 유지되는 독립적 색점사방으로 펼쳐진 과수원으로 초대 “무한한 형태, 무한한 색채를 이 조그마한 눈·머리·손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정복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자연의 힘에 새로운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 같다.”(이대원, ‘내 마음속 공간 1번지-파주 과수원’ 중에서)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인 이대원(1921~2005)은 해방과 분단 와중에 실종된 아버지가 사줬던 과수원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자연을 오래오래 바라보다 대상이 거의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졌을 때 마침내 붓을 들었다. 그의 캔버스 속 사과나무, 복숭아나무, 그 주변을 지킨 산과 연못은 그렇게 탄생했다. 같은 모습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계절마다 시간마다 달라지는 자연, 그려도 그려도 끝이 없는 자연 속에서 외경심을 느꼈던 작가는 이제 없지만, 작품은 고스란히 남아 관객을 과수원 한가운데로 초대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덕수궁에서 ‘이대원: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을 선보인다. 그의 작품은 미술 애호가는 물론 대중에게도 크게 사랑받았다. 그러나 친숙함은 그의 작품을 제대로 바라볼 기회를 감췄다. 홍익대 총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을 지낸 이력 역시 그를 ‘팔자 좋은 화가’라는 타이틀에 가두기도 했다. 최초의 대규모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피상적인 말들로 가려졌던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살필 기회다. 전시 제목은 작가와 막역했던 고고미술사학자 김원룡이 “사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던 그림 평에서 따왔다. 이런 평은 생동감 넘치고 명랑한 색채가 그의 기질과 닮았다는 해석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슬픔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전시를 기획한 배원정 학예연구사는 “이대원의 회화는 오랜 관찰과 반복, 축적과 절제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환하고 자유로운 화면에 도달한 것”이라며 “이번 전시는 그 시간을 다시 살펴본 전시”라고 소개했다. 전시장 입구를 채운 것은 5m의 대작 ‘담’(1986)이다. 주미한국대사관에서 빌려온 이 작품은 오랜 시간 타지에서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얼굴로서 역할을 해왔다. 멀리서 보면 나무와 흰 담이 어우러진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담은 하나의 흰색이 아니다. 미색과 분홍빛, 푸른빛이 감도는 여러 흰빛이 나란히 놓여 있으며 각각의 색은 서로 섞이지 않고 고유한 발색을 유지한다. 색실이 서로 인접해도 저마다의 색을 잃지 않는 전통 자수의 방식을 연상시킨다. 전시에서는 작가가 12세에 그린, 가장 이른 작품인 ‘백일홍’, 경성제2고등보통학교에서 미술 교사 사토 구니오에게서 회화와 공예를 배웠던 시절의 작품까지 만날 수 있다. 작가가 깊은 관심을 두고 소장했던 자수, 나전, 화각, 목가구 등이 그림과 함께 전시된 것도 눈길을 끈다. 전통 공예의 원리가 그의 화면으로 어떻게 이어졌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다. 1970~2000년대까지 작품에서는 색점, 색선, 색면을 거듭 쌓아 올리며 독자적인 회화 언어를 완성해 가는 과정을 살필 수 있다. 배 학예연구사는 “조르주 쇠라의 점묘법이 서로 다른 색점을 나란히 놓아 일정한 거리에서 시각적으로 혼합되는 방식이라면, 이대원의 색점은 멀리서 봐도 하나의 색으로 혼합되지 않고 각자의 색채적 독립성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전시의 백미는 작가의 말년 작품을 만날 수 있는 4전시실이다. 5m, 7m에 달하는 작품들이 서로 마주 보며 펼쳐지고 전시장 바닥에 스틸 반사경을 설치했다. 관람객은 마치 사방으로 펼쳐진 과수원 안에 들어선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화면 가득 채워진 꽃과 나무를 헤아리다 보면 어느새 당신을 슬프게 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순간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전시는 11월 8일까지.
  • “제 손으로 아이들 숨 끊어야”… 여우고개 백골 자매 비정한 천륜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제 손으로 아이들 숨 끊어야”… 여우고개 백골 자매 비정한 천륜 [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잠시 후 저희 손으로 아이들의 목을 졸라야 합니다. 이런 부모가 또 있을까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모든 사람에게 더 큰 피해를 주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야 할 ‘가족’이라는 이름. 그러나 그 이름 뒤에 숨어 가장 잔혹한 예고장을 쓴 이들은 다름 아닌 30대 어머니 정 씨와 40대 아버지 이 씨였다. 2011년 2월 15일, 매서운 겨울바람이 살을 에던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백운계곡의 한 차가운 민박집 주차장. 정 씨는 떨리는 손으로 편지지를 꺼내 천인공노할 범죄를 덤덤히 써 내려갔다. 같은 시각, 남편 이 씨 역시 눈물과 비겁한 변명으로 얼룩진 유서를 매형에게 남기고 있었다. “남겨진 아이들이 천덕꾸러기가 될 것 같아 저희가 데려갑니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죽을 각오로 잘 살아보려 했는데 현실은 너무 무섭습니다. 어제도 행동으로 옮기려 했으나 아이들의 눈이 밟혀 못했습니다.” 이들이 ‘가족 여행’이라는 달콤한 거짓말로 13살, 10살 두 딸을 데리고 집을 나선 지 이틀째 되던 날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잔혹한 예고장은 현실이 되었다. 10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2011년 12월 30일, 성탄절의 들뜬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경기도 포천시 여우고개 6부 능선 계곡. 한 등산객이 70m 깊이의 가파른 낭떠러지 아래에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진 진청색 승용차를 목격했다. 그곳에는 차에서 불과 10m 떨어진 곳에 파란색 비옷과 담요 등으로 조심스럽게 덮인 두 구의 백골 시신이 방치되어 있었다. 치아 발육 상태와 뼈의 길이를 통해 확인된 신원은 불과 13살, 10살의 어린 자매였다. 동반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며 사라졌던 4인 가족 중 어린 두 딸만이 캄캄하고 차가운 계곡의 백골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자매를 그곳에 남겨둔 채 사라진 부모는 어디로 간 것일까. 이 참혹한 사건의 전말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자식을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잔혹한 이기심의 극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빚더미가 앗아간 이성… 경제적 파탄이 부른 비극의 서막사건의 비극은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했던 한 부부의 삶이 경제적 파탄이라는 벼랑 끝으로 내몰리면서 시작되었다. 남편 이 씨(당시 46세)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전자상가 등에서 컴퓨터 관련 일을 하던 평범한 기술자였다. 그는 성실하게 모은 전세금 등 전 재산을 쏟아부어 지인들과 야심 차게 사업을 시작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집 보증금까지 전부 날린 이 씨는 결국 가족들을 이끌고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자신의 누나 집에 얹혀사는 신세로 전락했다. 비록 사업은 망했으나 이 씨는 일용직 노동을 하며 가족을 부양하려 애썼고 주변 이웃들은 그를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유난히 강했던 성실한 가장”으로 기억했다. 문제는 아내 정 씨(당시 37세)에게서 터져 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계에 보탬이 되고자 학습지 판매회사에 입사한 정 씨는 남다른 영업력으로 해당 지점의 연간 총매출 6억 원 중 무려 4억 5,000만 원을 혼자 달성할 정도로 독보적인 우수 사원이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실적의 이면에는 썩어 들어가는 곪은 상처가 있었다. 업계의 무리한 실적 압박에 시달리던 정 씨는 직급을 유지하고 실적을 부풀리기 위해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의 명의를 도용해 허위로 학습지 구매 계약을 체결한 뒤 고객들이 준 현금으로 이를 이른바 ‘돌려막기’ 하기 시작한 것이다. 허위로 도맡아 사들인 교재들은 인터넷에 헐값으로 되팔아 자금을 마련하려 했으나 빚은 걷잡을 수 없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이 비정상적인 영업 방식은 본사에 적발되었고 정 씨는 회사 측의 고발로 1,000만 원의 벌금형까지 선고받자 가계는 완전히 파탄 났다. 정 씨의 월급은 압류되었고 정 씨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한 달에 고작 50만 원뿐이었다. 반면 매달 변제해야 하는 학습지 대금과 사채 이자는 600만~700만 원에 달했다. 정 씨는 주변 지인들의 신용카드까지 빌려 쓰며 버텼으나 채무는 무려 1억 3,000만 원을 돌파하며 한계에 다다랐다. 설상가상으로 얹혀살던 이 씨 누나의 집마저 월세가 밀려 쫓겨날 처지에 놓였다. 무엇보다 정 씨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한 것은 당장 다음 달이면 중학교에 입학해야 하는 첫째 딸의 교복을 살 단돈 10만 원조차 없었다는 참혹한 현실이었다. 더 이상 미래가 보이지 않는 궁지에 몰리자 정 씨는 해서는 안 될 극단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여보, 난 더 이상 못 살겠어. 이 빚 절대 못 갚아. 이제 다 끝이야.” 정 씨는 남편 이 씨에게 가족 모두가 세상을 떠나자는 끔찍한 제안을 했다. 처음엔 이 씨도 펄쩍 뛰며 말렸다. “어떻게든 열심히 살면 기회가 온다”고 아내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하지만 정 씨의 태도는 완강했다. 죽음 외에는 이 지옥 같은 현실을 탈출할 방법이 없다는 아내의 짙은 절망 앞에 결국 남편 이 씨의 이성마저 마비되고 말았다. ‘가족 여행’의 가면을 쓴 잔혹한 이별식과 편지2011년 2월 14일 새벽 4시. 부부는 곤히 잠든 두 딸을 깨워 차 뒷좌석에 태웠다. 누나와 매형에게는 “잠시 바람 좀 쐬고 오겠다”는 짤막한 메모만 남겨둔 채였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은 그저 오랜만의 밤하늘을 보며 가족 여행을 떠난다는 사실에 신이 나 있었다. 부모가 준비한 이 여행의 최종 목적지가 끔찍한 ‘죽음’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고양시 일산을 출발한 부부는 약 13시간 동안 정처 없이 떠돌다 당일 오후 경기 포천시 이동면 백운계곡의 한 민박집에 투숙했다. 부부는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방에 들여보내 놀게 한 뒤 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다음 날 지인에게 급히 빌린 돈의 일부로 인근 편의점에서 편지지와 봉투, 볼펜을 구입해 각자 마지막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아내 정 씨는 시누에게 보내기 위한 유서에 자신들이 저지를 천인공노할 범죄를 덤덤하게 써 내려갔다. “처음 ‘형님’이라 불러 보네요… 아이들을 키울 자신도, 미래도 보이지 않기에 이리 죽을 결심을 했습니다. 세상이 참 무섭다는 거 너무 늦게 깨달아 죄송합니다. 잠시 후 저희 손으로 아이들의 목을 졸라야 합니다. 이런 부모가 또 있을까요…” 그들의 유서에는 자식을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가 아닌 자신들이 마음대로 거두고 처분할 수 있는 ‘소유물’로 취급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죽으면 남겨진 자식들이 비참하게 살 것이라는 핑계로 아이들의 찬란한 미래를 강제로 빼앗으려는 끔찍한 범행 모의에 불과했다. “보육원 갈래, 같이 갈래?”… 아이들의 영혼을 뒤흔든 잔혹한 가스라이팅그날 밤, 민박집 방 안에서 첫 번째 끔찍한 시도가 행해졌다. 그러나 신은 이 끔찍한 범죄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한밤중 잠결에 화장실에 가려던 어린 둘째 딸이 어두운 방 안에서 넘어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이 씨는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보며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급히 창문과 문을 열어 환기시켰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다음 날 일가족은 민박집을 나와 인근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늦은 식사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나온 아내 정 씨는 차에 타기 전 두 딸을 앞에 두고 세상에서 가장 비정하고 잔혹한 질문을 던졌다. “엄마 아빠는 이제 죽기로 결심했어. 너희가 원치 않으면 보육원에 보내줄게. 그러면 나중에 친척들이 데리러 올 거야. 어떻게 할래?” 고작 13살, 10살에 불과한 아이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아직 세상 물정도 모르는 어린 자매에게 “우리를 따라 죽을래, 아니면 낯선 보육원에 버려져 고아로 살래?”라는 협박과 다름없는 가스라이팅이었다. 부모의 절대적인 보호가 생존의 전부인 아이들에게 이 질문은 선택이 아닌 명백한 강요였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식을 외면한 악마적 본성부부는 급히 빌린 돈을 인출한 뒤, 포천 산정호수 인근의 한적한 숙박업소 공터로 이동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부부는 막걸리와 소주를 구입하고 치명적인 수단을 동원할 준비를 마쳤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자식들의 숨통을 끊을 수 없었기에 알코올의 힘을 빌리려 한 것이다. 2월 17일 새벽 2시. 졸음을 이기지 못해 칭얼거리는 두 딸을 다독여 승용차 뒷좌석에 눕힌 부부는 앞좌석에 탑승했다. 그리고 밀폐된 차 안에서 끔찍한 범행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자 뒷좌석에서 괴로운 신음이 들려왔다. 잠에서 깨어난 두 딸이 숨이 막혀 고통스럽게 발버둥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자식을 보았다면 즉시 문을 열고 구하는 것이 부모의 최소한의 본능일 터다. 그러나 부부의 선택은 잔인했다. 남편 이 씨는 뒷좌석으로 넘어가 고통스러워하는 아이들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치자 아내 정 씨는 앞좌석에서 뒤로 손을 뻗어 딸의 두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단단히 움켜쥐었다.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도리라는 병적인 망상에 빠진 채 부부는 그렇게 차례대로 첫째 딸과 둘째 딸의 호흡을 강제로 앗아갔다. 피지도 못한 두 송이 꽃이 가장 믿고 따르던 부모의 억압에 의해 무참히 꺾인 순간이었다. 질긴 목숨과 비겁한 생존 그리고 시신 방치두 딸이 차갑게 식어가자 부부는 시신을 포갠 뒤 자신들도 뒤따라 죽겠다며 차를 몰았다. 그들이 선택한 장소는 포천 여우고개 6부 능선의 낭떠러지였다. 이 씨는 70m 아래 가파른 절벽을 향해 가속 페달을 밟았다. 차는 허공을 날아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승용차는 바위에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고 그 엄청난 충격으로 뒷좌석에 있던 두 딸의 시신은 차창 밖 거친 눈밭 위로 처참하게 튕겨 나갔다. 하지만 기적이자 비극적이게도 앞좌석에 탄 부부는 목숨을 건졌다. “죽기를 결심했다”던 그들은 차량이 추락하기 직전, 무의식적이고 본능적인 습관으로 안전벨트를 매고 있었던 것이다. 정신을 차린 부부는 다시 자살을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그 기나긴 실패 끝에 부부는 참으로 뻔뻔하고도 편리한 결론에 도달했다. “우리가 이렇게 해도 안 죽는 것을 보니, 우리는 살 운명인가 보다.” 참으로 비겁한 변명이었다. 생존을 선택한 부부는 눈밭에 처참하게 버려진 두 딸의 시신을 단 한 번 수습하지도 않은 채 여우고개를 걸어 내려왔다. 자식들의 가엾은 시신은 야생동물과 혹독한 비바람 속에 10개월 동안 백골로 변해갔다. 전국을 누빈 2년 2개월의 도피와 악마의 거짓말여우고개를 빠져나온 부부는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생존’을 도모했다. 2011년 2월 25일, 부부의 유서 편지를 받은 매형이 일산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접수하고 수사가 시작되었으나 부부는 이미 연기처럼 사라진 뒤였다. 그들은 며칠간 몸을 숨긴 뒤 버스를 타고 탈출했다. 지인들에게 전화를 걸어 소액의 돈을 송금받은 부부는 그 길로 대학병원을 찾아가 자신들의 동상 치료부터 받았다. 자식들은 차가운 눈밭에 백골로 썩어가고 있는 와중에, 부모라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언 발을 치료하기 위해 의정부와 강릉의 대형병원을 뻔뻔하게 전전한 것이다. 치료를 마친 부부는 경찰의 집요한 추적을 피하기 위해 PC방에서 일자리를 검색했다. 그들의 도피 경로는 대한민국 전국 지도와 다름없었다. 경기 의정부에서 시작해 강원 강릉, 충북 진천의 오이 농장, 충남 보령의 모텔, 경북 상주의 버섯 농장, 경북 청도, 경남 밀양의 펜션, 전남 여수,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전국 방방곡곡의 외진 시골을 유유히 누볐다. 주변에서 “젊은 부부가 왜 아이도 없이 이런 시골에서 일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정 씨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소름 돋는 거짓말을 지어냈다. “우리 애가 둘 있는데요 지금 다 호주로 유학 보냈어요. 유학 자금을 몇 년 치 미리 다 송금해 줘서 당장 돈 걱정은 없어요. 애들 유학비 벌려고 부부가 같이 고생하는 중이랍니다.” 자신의 손으로 생명을 앗아가고 그 사체가 산짐승에게 훼손되도록 내버려 둔 가엾은 자식들을 ‘호주 유학생’으로 둔갑시키는 악마적인 뻔뻔함이었다. 부부의 도피 행각은 부산 기장군의 한 농장에 안착하면서 장기화되었고 그곳에서 무려 1년 6개월 동안 숨어 지냈다. 은행 벽 수배 전단 1번, 드디어 드러난 실체와 배심원들의 분노길고 길었던 비극의 고리는 우연한 눈썰미에 의해 극적으로 끊어졌다. 여우고개에서 자매의 유골이 발견된 이후 경찰은 이 씨 부부를 전국의 공개수배 전단에 올렸다. 수많은 범죄자 중에서도 이 씨의 사진은 수배 전단 맨 첫 줄, 공개수배 1번에 당당히 배치되었다. 2013년 4월 초, 부산 기장군에 거주하던 한 주민이 농협을 방문했다가 벽에 붙은 전단을 보게 되었다. 수배자 1번의 얼굴이 동네 농장의 일꾼과 일치했던 것이다. 제보를 받은 경찰은 2013년 4월 10일 밭에서 일하고 있던 부부를 덮쳤다.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 이 씨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전 죽어 마땅한 사람입니다. 저쪽 조용한 곳으로 가서 이야기하시죠.” 자매가 목숨을 잃은 지 2년 2개월, 유골이 발견된 지 1년 4개월 만에 도피 행각의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구속기소 된 부부는 재판 과정에서 뜻밖에도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배심원들에게 생활고를 눈물로 호소해 감형을 받아내겠다는 얄팍한 계산이었다. 법정에서 부부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오열했다. 이 씨는 “자식을 죽인 부모 입장에서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진정으로 자식들을 사랑했다. 속죄하며 살겠다”며 뻔뻔하게 선처를 구했다. 그러나 7명의 배심원과 재판부의 시선은 냉정했다. 검찰은 “피지도 못한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생명을 빼앗기며 느꼈을 거대한 공포와 고통, 시신을 산속에 방치하고 도망 다닌 비정함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며 부부에게 각각 징역 20년을 강력히 구형했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유죄를 평결했다. 재판부 역시 이들의 범행이 명백한 ‘살인’임을 판결문을 통해 엄중히 선언했다. “자녀들은 부모의 몸을 통해 태어났으나 부모와는 독립된 인격체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보장되고 존중되어야 할 고귀한 생명권을 가진다. 피고인들은 자녀들에게 선택권을 주었다고 주장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 ‘엄마 아빠와 같이 죽을래, 혼자 살래’라고 묻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판단할 수 없는 강요이며 극심한 학대다. 부모라고 할지라도 자식을 자기의 소유물로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된다.” 솜방망이 처벌과 이 비극이 던지는 묵직한 메시지재판부는 생활고로 인한 정신적 혼란과 초범인 점 등을 참작하여 부부에게 각각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자식을 잔혹하게 유기한 대가치고는 대중의 법 감정에 턱없이 부족하고 가벼운 형량이었으나 사법부가 내린 판결의 메시지만큼은 묵직했다. 부부는 형량이 너무 무겁다며 즉각 항소하는 후안무치한 태도를 보였으나, 기각되어 원심이 확정되었다.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이 씨 부부는 형기를 모두 채우고 2023년 4월 9일 만기 출소하여 우리 사회로 이미 돌아왔다. 그들이 지은 끔찍한 죄에 비해 10년의 감옥 생활은 너무나도 짧고 가벼웠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사회로 복귀한 지금도 우리 사회에서는 유사한 비극이 처참하게 되풀이되고 있다. 언론에 종종 보도되는 ‘일가족 동반자살’의 실체는 대부분 명백한 ‘자녀 살해 후 극단적 선택’이다. 자신의 삶이 무너진다고 해서 무고한 자식의 생명까지 동반 처분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서구 사회에서는 이를 ‘가장 잔혹한 아동 살해 사건’으로 분류하여 가중처벌하지만 한국 사회는 ‘오죽했으면 자식과 함께 죽었겠느냐’는 온정주의적 잔재가 남아 있다. 이 사건의 국선 변호인을 맡았던 변호사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저희가 만난 수많은 피고인 중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가장 뼈저리게 후회하고 지옥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었다. 만약 지금 이 순간에도 극단적인 선택을 고민하며 자식을 같이 데려가겠다는 부모가 있다면 먼저 저질렀던 이들이 겪은 지옥 같은 후회를 보고 제발 멈추어 달라고 간곡히 전하고 싶다.” 벼랑 끝에 몰린 부모들이 절망 속에서 손을 뻗을 수 있는 촘촘한 사회적 안전망의 구축과 더불어 ‘자식의 생명은 온전히 자식의 것’이라는 아동 인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인식 대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 평산책방 개점 1200일, 누적 63만명 다녀가…책으로 지역과 동행

    평산책방 개점 1200일, 누적 63만명 다녀가…책으로 지역과 동행

    문재인 전 대통령이 ‘책방지기’로 활동하는 경남 양산시 평산책방이 개점 1200일을 맞았다. 지난 3년 3개월여 동안 평산책방을 찾은 방문객은 63만명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평산책방은 지난 8일 개점 1200일을 맞았다고 9일 밝혔다. 2023년 4월 25일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에 문을 연 평산책방의 누적 방문객은 62만 8769명이다. 하루 평균 523명이 책방을 찾은 셈이다. 30평 남짓한 규모의 평산책방에서 문 전 대통령은 가족 휴가나 서울 행사 참석 등 일부 일정을 제외하고 거의 매일 나와 방문객들과 책을 매개로 대화를 나눠왔다.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읽고 인상 깊었던 책을 골라 공개 추천한 도서는 모두 124권이다.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호승 시인의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등 일부 추천 도서는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평산책방은 운영 수익금을 출판문화와 독서문화 확산을 위한 공익사업에 활용하고 있다. 특수학교를 비롯해 전국의 어린이·청소년 시설과 기관, 아동보호기관, 도서·산간 지역 등을 찾아가 학생들이 직접 책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공공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지금까지 2122명에게 4466권의 책을 선물했으며 독서노트와 에코백 등도 함께 기증했다. 작은 도서관을 통한 독서문화 확산에도 힘을 쏟았다. 인근 양산시 작은 도서관 79곳에 3950권, 전국 작은 도서관 40곳에 1280권 등 모두 119곳에 5230권의 책을 기증했다. 전국 동네책방과의 상생을 위한 지원사업도 펼쳤다. 작가를 초청하고 싶어도 강연료 마련 등에 어려움을 겪는 동네책방을 대상으로 작가 섭외를 돕고 강연료를 지원했다. 2024년 19곳, 2025년 30곳, 올해 52곳 등 지금까지 모두 100곳의 책방이 지원받았다. 전국의 동네책방을 알리는 ‘동네 책방을 소개합니다’ 코너도 운영해 현재까지 50곳의 동네책방을 소개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도 이어지고 있다. 평산책방을 찾은 청소년 관련 기관을 대상으로 문 전 대통령이 직접 책을 선물하고 함께 사진을 촬영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지금까지 45회에 걸쳐 727명에게 도서를 전달했다. 책방 인근 어린이집과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매주 한 차례 그림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현재까지 46개 기관에서 457명이 참여했다. 이밖에 매월 열리는 ‘작가와의 만남’에서는 참여 주민들에게 초청 작가의 책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지역의 문화공간 역할도 이어가고 있다. 평산책방 관계자는 “다양한 공익사업과 함께 책방이 한편으로는 마을의 사랑방과 쉼터, 문화공간 역할을 하고 있다”며 “마을에 활력이 생겼고 주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도 늘어났다”고 밝혔다. 이어 “책으로 세상의 어둠을 밝히며 민주시민의 성장을 도모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 블랙핑크 “데뷔 10주년, 즐기다보니 시간 빨리 가”

    블랙핑크 “데뷔 10주년, 즐기다보니 시간 빨리 가”

    K팝 대표 여성 그룹 블랙핑크가 데뷔 10주년을 맞아 조촐한 행사를 열고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팀의 맏언니 지수는 8일 오후 진행한 온라인 팬 소통 플랫폼 위버스 라이브 방송에서 “오늘은 블랙핑크가 열 살 되는 날이다. 저희에게 중요한 날이다. 감사하다”고 밝혔다. 로제는 “즐기다 보면 시간이 순식간에 흐른다는데 10년이 빨리 간 듯하다. 10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미리 준비한 케이크와 꽃다발을 멤버들에게 선물했다. 제니는 “우리 팀의 로맨티스트”라며 환하게 웃었다. 리사는 “헤어, 메이크업을 준비하면서도 블랙핑크 노래를 들었다”며 팀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블랙핑크는 이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팬 40명을 초청해 ‘미트 앤드 그리트’ 행사를 열었다. 지수는 “작게 이벤트를 준비하게 됐다. 원래는 많은 분들과 보고 싶었다”면서 “약간 섭섭한 마음이 있는 블링크(팬덤)에게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블랙핑크는 2016년 8월 8일 ‘휘파람’으로 데뷔했다. 힙합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결합한 음악과 강렬한 퍼포먼스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정규 2집 ‘본 핑크’로 아시아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미국 빌보드 200과 영국 오피셜 앨범 차트 1위를 동시에 석권했다. 팀 발매곡 11곡이 미국 빌보드 ‘핫100’에 진입했다. 공식 유튜브 채널은 올해 2월 전 세계 가수 최초로 구독자 1억명을 돌파했다. 동영상 누적 조회수는 426억회를 넘어섰다. 첫 번째 월드투어는 47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당시 K팝 걸그룹 월드투어 신기록을 세웠다. 두 번째 월드투어 ‘본 핑크’는 약 180만명을 모으며 자신들의 기록을 다시 경신했다. YG엔터테인먼트는 “최근 16개 도시 33회차 규모로 진행한 ‘데드라인’ 월드투어도 매진 행렬을 이어가며 압도적인 글로벌 티켓 파워를 입증했다”고 밝혔다.
  • “사랑할게”…유아인, 男과 볼뽀뽀 근황 사진 ‘발칵’

    “사랑할게”…유아인, 男과 볼뽀뽀 근황 사진 ‘발칵’

    배우 유아인의 ‘남사친’과의 근황이 공개돼 시선을 집중시켰다. 8일 온라인상에는 패션 브랜드 베아크(VEAK) 대표와 유아인이 함께 촬영한 스티커 사진이 공개됐다. 사진에는 흰색 상의를 맞춰 입은 듯한 두 사람이 스티커 사진 부스 안에서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담겼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였다. 유아인과 대표는 몸을 밀착하고 서로 얼굴을 맞댄 채 장난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볼 뽀뽀를 시도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사진에는 오랜 친구 사이에서나 볼 법한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특히 흑백으로 인화된 사진에는 “우리 행님 사랑할게”라는 문구까지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이 평소 각별한 친분을 이어오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베아크와 유아인의 인연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아인은 과거 베아크의 화보에 직접 등장하는가 하면 자신의 SNS를 통해 브랜드를 소개하는 등 오랜 기간 각별한 인연을 이어왔다. 한편 유아인은 마약류 투약 혐의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유아인은 최근 지인들과 함께하는 모습이나 공개 행사 참석을 통해 조금씩 근황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에는 나홍진 감독의 신작 영화 ‘호프’ VIP 시사회장을 찾기도 했다.
  • ‘고지용과 2년 전 이혼’ 허양임, 새 출발 고백

    ‘고지용과 2년 전 이혼’ 허양임, 새 출발 고백

    그룹 젝스키스 출신 사업가 고지용과 이혼한 가정의학과 전문의 허양임이 유튜브 채널을 열고 새 출발을 알렸다. 허양임은 지난 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유튜브 채널을 시작하게 된 이유’, ‘브이로그 001’ 등의 영상을 올리며 본격적인 개인 방송 활동에 나섰다. 그는 영상에서 병원 진료와 방송 녹화 등 일상을 공유했다. 허양임은 “그동안 방송을 많이 했지만 거의 의학에 대한 방송이었다. 저에 대해 얘기를 한 적은 거의 없다”라며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이어 “만약 제 채널을 운영하게 된다면 환자분들과 소통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제 생각이나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남겨야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며 최근 개설한 유튜브 채널을 통해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한편 허양임은 2013년 고지용과 결혼, 슬하에 아들 승재 군을 뒀다. 2017년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가족 모두가 출연하며 큰 사랑을 받았지만 최근 이혼 소식을 전했다. 고지용은 지난달 “허양임과 2년 전 이혼했다”고 밝히며 “앞으로도 아빠로서 최선을 다할 것이며, 비록 부부로서는 헤어졌지만 서로를 응원하며 잘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아들 승재 군은 허양임이 양육 중이다.
  • 184명 성폭행에도 ‘사형’ 피한 발바리…그래도 “내 딸은 소중해”[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184명 성폭행에도 ‘사형’ 피한 발바리…그래도 “내 딸은 소중해”[듣는 그날의 사건현장]

    은 대한민국을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통해 숨겨진 진실을 추적하는 시리즈입니다. 과거의 기록을 되짚으며 사회적 경각심을 일깨우고 정의와 안전의 가치를 깊이 있게 고찰하는 서울신문의 특화 기사입니다. 서울신문은 기사 내용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AI 음성을 이용해 기사 내용을 재구성했습니다.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약 7년 8개월 동안 대전을 비롯한 전국을 무대로 184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희대의 연쇄 성폭행범 이중구의 겉모습은 지극히 평범한 이웃이었다. 40대의 개인택시 기사였던 그는 아내와 남매를 둔 성실한 가장으로 통했으며, 10년 넘게 조기축구회에서 활약했다. 키 157cm의 작은 체구였지만 몸이 다부지고 발이 빨라 동호회원들 사이에서는 재빠르다는 뜻의 ‘발발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러나 축구 경기가 끝나고 저녁이 되면 그는 땀 냄새가 찌든 옷을 그대로 입은 채 대전 일대의 원룸촌을 배회하며 혼자 사는 여성들을 사냥하는 괴물로 돌변했다. 사소한 실랑이에서 시작된 끔찍한 연쇄 범죄이중구의 첫 범행은 1998년 2월, 술에 취한 20대 여성 승객과의 실랑이에서 비롯되었다. 길을 돌아와 요금이 많이 나왔다며 돈을 얼굴에 던진 승객에게 앙심을 품고 며칠 뒤 그녀의 집에 강제로 침입해 성폭행을 저질렀다. 의외로 범행이 손쉬웠고 경찰에 잡히지 않자 그의 범행은 완전히 습관적이고 대담한 연쇄 범죄로 진화했다. 그는 철저하게 경찰의 불심검문과 수사망을 피했다. 흉기 외에는 어떠한 범행 도구도 소지하지 않았고 대신 피해자의 집에 있던 수건을 가위나 칼로 찢어 손발을 결박하는 특이한 수법을 사용했다. 현관문이 잠겨 있으면 가스 배관을 타고 화장실 창문이나 베란다로 침입했으며, 가스 검침원이나 보일러 수리공 등으로 위장해 대담하게 문을 열게 만들었다. 유전자 감식을 피하기 위해 범행 후 피해자를 강제로 목욕시키는 치밀함도 보였다. 피해자의 영혼을 유린한 가스라이팅과 기괴한 물욕이중구의 범행은 단순한 성적 욕구 충족을 넘어 피해자의 심리를 철저히 짓밟는 가학성을 띠었다. 칼을 들이대며 피해자에게 돈을 빌려오라며 지인을 부르게 한 뒤 현장에 나타난 그 지인마저 제압해 한 공간에서 성폭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자신 때문에 소중한 친구가 끔찍한 일을 당했다는 평생의 죄책감을 안게 되었다. 또한 범행 중 피해자에게 “예쁘게 생겼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라”라고 강요하는 등 비정상적인 인정 욕구를 폭력적인 상황 속에서 충족하려 했다. 그의 기이한 광기는 돈에 대한 집착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피해 여성의 지갑에서 소액 현금을 빼앗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돼지저금통에서 지폐나 동전까지 닥치는 대로 털어 7년 8개월 동안 약 4,700만 원 상당을 강탈했다. 그는 이 돈을 단 한 푼도 유흥에 쓰지 않고 전액 저축했으며 자신과 가족의 생활비조차 극도로 아끼는 짠돌이 생활을 유지했다. 검거 당시 그의 통장에는 무려 1억 4천만 원이라는 거액이 예치되어 있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이 돈을 합의금으로 내놓으면 실질적인 감형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 아까운 돈을 주느니 차라리 징역 20년을 더 살겠다”며 보상을 전면 거부했다. 결국 법원은 이 1억 4천만 원을 범죄로 취득한 장물로 규정하여 전액 국고로 몰수 처분했다. 40만 쪽의 방대한 수사 자료와 게임방에서의 최후오랜 기간 꼬리를 밟히지 않던 그의 도주극은 경찰의 집요한 추적과 과학수사 앞에 막을 내렸다. 2005년 초 대전 동부경찰서에 발바리 검거 전담팀이 꾸려졌고, 수사팀은 1999년부터 축적된 무려 40여만 쪽에 달하는 미제 사건 수사 자료와 방대한 유전자(DNA)를 분석했다. 그 결과 60건이 넘는 사건의 용의자 DNA가 일치한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냈다. 수사팀은 전국의 고속도로 나들목 폐쇄회로 화면을 샅샅이 분석해 2004년 광주 사건과 2005년 논산 사건 현장에서 포착된 동일한 스포츠카 한 대가 대전으로 과속하며 돌아온 기록을 찾아내고 이중구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다. 2006년 1월 9일, 수사관들이 자택을 기습 탐문하자 이중구는 양말을 신고 오겠다고 속인 뒤 3층 아파트 창문에서 가스 배관을 타고 흔적도 없이 달아났다. 경찰은 즉시 그의 집에서 수거한 칫솔과 수저, 담배꽁초 등을 통해 국과수에 유전자 분석을 의뢰했고, 범인의 DNA와 99.99% 일치한다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후 전국에 현상금 500만 원과 함께 수배령이 내려졌다. 궁지에 몰린 이중구는 2006년 1월 19일 오후, 서울 천호동의 한 PC방에서 지인의 아이디를 도용해 무협 온라인 게임에 접속했다가 실시간 IP 추적 잠복망에 걸려들어 급파된 형사들에게 마침내 검거되었다. 사형을 피한 ‘무기징역’ 판결알려진 피해자만 184명에 이르는 전무후무한 범죄 규모를 감안해 검찰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1심과 2심 법원은 이중구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아래는 판결문에 나온 양형 사유다. “피고인은 장기간에 걸쳐 특수강도강간범행을 저질렀으나 피해자의 생명을 박탈하거나 중한 상해를 가한 적이 없고 강간을 주된 목적으로 할 뿐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배우자 또는 가족이 목격하는 가운데 극도로 잔인하고 비열한 수법을 이용해 가정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 적은 없다. 이 점에서 피고인이 저지른 범죄가 사형이 허용될 만한 정도에 이른다고 누구나 수긍할 수 있다고 보기에는 주저된다” 육체적 생명을 앗아가지 않았더라도 무고한 여성들의 내면을 산산조각 내고 영원한 죄책감과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게 만든 성범죄를 살인과 다름없는 무게로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 판결은 심각한 사법적 인지부조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중구는 2026년이면 수감 생활 20년을 채워 형식상 가석방 심사 대상 요건을 충족하게 되지만 당시 법원의 엄중한 판단과 성범죄자 가석방을 불허하는 현 방침상 그가 실제로 풀려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영화 속 괴물이 아닌 평범하고 성실한 이웃의 얼굴로 숨어 지냈던 이중구의 사건은, 2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와 사법 체계에 범죄의 이면을 직시해야 한다는 무거운 경고를 남기고 있다.
  • “엄마라 해도 믿겠네”…36세에 할머니 된 日 여성, 7개월 손주 안자 ‘발칵’

    “엄마라 해도 믿겠네”…36세에 할머니 된 日 여성, 7개월 손주 안자 ‘발칵’

    일본에서 15세의 나이에 연상의 남성에게 첫눈에 반해 교제 한 달 만에 임신했던 여성이 30대에 할머니가 된 사연이 전해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6일 일본 오리콘뉴스 등에 따르면 현지 방송사 아베마(ABEMA)의 예능 프로그램 ‘사랑의 하이에나 시즌2’ 최근 방송에서 히로시마에 거주하는 A(36)씨의 대가족 일상이 소개됐다. A씨는 15세 때 당시 27세였던 현재의 남편을 보고 첫눈에 반해 적극적인 애정 표현 끝에 연애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후 사귄 지 한 달 만에 첫째 딸을 임신한 일화를 털어놨다. 그러나 이들의 결혼 생활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남편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을 뿐만 아니라, 결혼 후에는 남편에게 600만엔(약 5400만원)에 달하는 숨겨진 빚이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졌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네 자녀를 키워낸 A씨는 스무 살이 된 첫째 딸이 아이를 출산하면서 36세라는 젊은 나이에 할머니가 됐다. 방송에서 A씨가 7개월 된 손자를 안고 있는 모습이 공개되자 출연진은 “누가 할머니인지 모르겠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A씨의 가족은 48세 남편, 18세 장남, 16세 차녀, 10세 차남을 비롯해 20세 장녀와 23세 사위, 손자까지 모두 8명이 한 집에 모여 대가족을 이루고 있다.
  • 하영, 어떤 집안이길래…“증조부가 고종 황제 진료”

    하영, 어떤 집안이길래…“증조부가 고종 황제 진료”

    배우 하영이 의사 집안의 이력을 공개해 화제다. 7일 오후 방송되는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옥탑방의 문제아들’에는 드라마 ‘이런 엿같은 사랑’의 주역인 배우 정해인과 하영이 게스트로 출연한다. 이날 방송에서는 하영의 남다른 ‘엄친아’ 이력이 조명된다. 그는 이화여자대학교 서양화과를 거쳐 미국 뉴욕의 3대 아트 스쿨로 꼽히는 명문 SVA(School of Visual Arts)에 진학했다. 하영은 학창 시절부터 이어진 엘리트 행보와 놀라운 집안 이력이 공개되며 출연진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MC 유병재가 “집안이 대대로 의사 집안이라고 들었다”고 질문하자, 그는 “맞다”고 인정했다. 이어 그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까지 모두 의사셨다”며 “기억으로는 증조할아버지가 당시 한양에서 서양 의학 전문 의원을 가장 먼저 여신 분 중 한 분이라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증조부께서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개원하셨고, 고종 황제를 진료하셨다”고 덧붙여 스튜디오를 놀라움으로 물들였다. 친언니 역시 현재 내과 전문의로 활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집안의 분위기와는 달리 하영은 단 한 번도 의사의 길을 꿈꾼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한 번도 의사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다. 너무 어려운 직업이라 감히 생각도 못 했다”며 “저는 그냥 언니가 열심히 해주길 바랐다”고 유쾌하게 전했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 속 의학 드라마인 ‘중증외상센터’에서 간호사 역할을 맡았을 당시에도 실제 의사인 가족들에게 직접 자문을 구하며 완성도를 높였다는 비하인드를 전하기도 했다. 한편 하영이 출연하는 ‘옥탑방의 문제아들’은 7일 오후 10시 10분 방송된다.
  • 이채명 경기도의원 “경로당 무더위쉼터, 누구나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어야 ”

    이채명 경기도의원 “경로당 무더위쉼터, 누구나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어야 ”

    경기도의회 이채명 의원(더불어민주당·안양)은 7일 안양시 노인복지과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폭염기 경로당 무더위쉼터 안내 홍보를 철저히 하고 어르신들이 보다 쾌적하게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 의원은 이날 아침 지역을 살피던 중 어르신들로부터 “경로당이 무더위쉼터로 운영되는 것은 알고 있지만, 평소 경로당을 이용하지 않던 사람도 들어가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혔다. 현재 경로당 출입구에 무더위쉼터 표지가 부착되어 있으나, 비회원은 이용할 수 없다는 오해로 인해 발길을 돌리는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이에 이 의원은 안양시가 일원화된 안내문을 제작해 무더위쉼터 지정 경로당에 부착함으로써 누구나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안내문에는 ‘경로당 회원이 아니어도 지역 어르신 누구나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습니다’라는 환영 문구와 함께 이용 시간과 문의 연락처 등을 알기 쉽게 표시하자는 내용이다. 또 ▲경로당별 무더위쉼터 운영 시간 안내 ▲냉방시설과 휴게 공간 점검 ▲출입구 안내문 부착 여부 확인 ▲현장 이용 어르신들의 건의 사항 청취 등을 함께 추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의원은 “경로당 회장님들과 임원진께서 평소 시설 관리와 식사 준비, 회원 간 화합을 위해 많은 수고를 하고 계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번 제안은 누군가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폭염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경로당의 무더위쉼터 기능을 더욱 알리고 필요한 지원을 함께 찾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경로당마다 공간과 회원 수, 운영 여건이 서로 다른 만큼 현장의 어려움을 충분히 듣고 안양시와 대한노인회, 경로당 회장단이 함께 현실적인 운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경로당의 사례를 발굴해 다른 경로당과 공유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어르신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회원 간 화합과 소통을 잘 이끌어가는 운영 사례를 회장단 교육 등을 통해 확산하자는 취지다. 끝으로 이 의원은 “무더위쉼터라는 글자만으로는 평소 경로당을 이용하지 않던 어르신들이 선뜻 문을 열기 어려울 수 있다”며 “따뜻한 환영 문구 하나가 어르신들에게는 ‘나도 들어가 쉬어도 되는 곳’이라는 안심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경로당이 더위를 피하는 공간을 넘어 이웃의 안부를 살피고 정을 나누는 열린 사랑방이 될 수 있도록 현장의 목소리를 계속 듣겠다”며 “안양시와 협력해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여름을 보내실 수 있도록 필요한 사항을 세심하게 살피겠다”고 밝혔다. 한편, 경기도의회 안양상담소는 지역 주민들의 든든한 소통 창구로서, 다양한 생활 민원 해결과 정책 제안을 수렴하며 지역 현안 해소에 앞장서고 있다. 나아가 주민들이 일상에서 직접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체감도 높은 정책을 발굴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 불륜 남편과 이혼했는데 ‘변태’ 남친이… 女속옷 보낸 스토킹男 충격 정체는

    불륜 남편과 이혼했는데 ‘변태’ 남친이… 女속옷 보낸 스토킹男 충격 정체는

    전남편의 외도 때문에 ‘돌싱’이 된 여성이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자 전남편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하기 시작했다는 소름 끼치는 사연이 전해졌다. 지난 3일 방송된 채널A 예능 ‘탐정들의 영업비밀’에서 탐정들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선 여성에게 악질적으로 집착한 전남편의 정체를 추적했다. 이 사연 의뢰인은 이혼 후 고등학생 딸의 권유로 소개팅을 시작하면서 자신을 다시 가꾸게 됐고,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설렘과 자신감도 되찾았다. 그러나 이혼 후 처음 사귄 헬스 트레이너 남자친구는 바람둥이였고, 재혼까지 생각했던 두 번째 남자친구는 교복 입은 여학생 사진을 모으는 변태적인 취미를 가진 인물로 밝혀졌다. 심지어 그의 소셜미디어(SNS) 부계정에는 의뢰인 딸의 사진도 있어 충격을 더했다. 그런데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의뢰인에게 어느 날부터 정체불명의 스토킹이 시작됐다. 스토킹범은 의뢰인 모녀가 사용하는 샴푸와 생리대가 뭔지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사이즈를 맞춘 속옷을 익명으로 보내오기도 했다. 탐정단은 두 명의 전 남자친구를 비롯해 의뢰인을 오래 짝사랑해 온 회사 동기, 호시탐탐 의뢰인을 노리던 옆집 언니 남편, 그리고 전남편까지 모두 다섯 명을 용의선상에 올려 추적에 나섰다. 그러던 중 의뢰인의 휴대전화에서 은행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위장한 해킹 앱이 발견되면서 스토킹범의 정체가 탄로 났다. 범인은 바로 의뢰인의 전남편이었다. 그는 이혼 후 딸이 자신을 만나주지 않자 의뢰인의 휴대전화에 해킹 앱 설치를 유도해 모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왔다. 전남편은 모든 사실이 발각된 뒤에도 “왜 이혼하고 나니까 그렇게 섹시해지냐”며 끝까지 의뢰인 탓을 했다. 이를 본 데프콘은 “구속감”이라며 경악했고, 김민경은 사연을 지켜보는 내내 “남자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며 분노했다.
  • 가수 이랑, 日 나가이 가후 문학상 수상…‘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여성 향한 폭력과 상처 응시

    가수 이랑, 日 나가이 가후 문학상 수상…‘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 여성 향한 폭력과 상처 응시

    가수이자 작가인 이랑이 에세이 ‘엄마와 딸들의 미친년의 역사’로 일본 나가이 가후 문학상을 받았다고 출판사 이야기장수가 9일 밝혔다. 한국 국적 작가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나가이 가후 문학상은 일본 근대문학의 거장인 나가이 가후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종합 문학상이다. 시, 소설, 에세이, 평론, 희곡 등 장르의 경계를 두지 않고, 1년간 일본에서 출간된 모든 문학작품 중 문학성과 작품성이 뛰어난 단 한 편의 최고 작품을 선정한다. 상금은 100만 엔(약 900만 원)이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은 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자신으로 이어지는 여성 가족의 삶을 통해 개인과 사회에 반복되는 폭력과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품이다. 특히 가족과 사회의 압력 속에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타인에게 전부 내어주다가 끝내 자살한 언니의 죽음을 이랑 작가는 ‘소진사’라고 썼다. 올해는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가이자 사상가 아즈마 히로키, 2022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도가와 이코, 일본 논픽션의 거장 사와키 고타로, 시, 연극 등 장르를 넘나드는 예술가 가게야마 기쇼다이 등이 후보에 올랐다. 출판사 관계자는 “일본 출간 직후, 초판 5000부가 수일 만에 소진됐으며 한국에서도 출간 즉시 에세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출간 8일 만에 4쇄를 찍었다”고 설명했다. 올해 나가이 가후 문학상 심사위원을 맡은 가네하라 히토미는 “죽고 싶을 때, 용서할 수 없을 때, 구원받고 싶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 없을 때,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책을 계속 펼칠 것”이라고 평했다. 시상식은 오는 11월 2일 일본 이치카와시에서 열린다.
  • ‘사랑의 불시착’ 男배우, 예상 못 한 충격 근황…“미안합니다” 팬들 멘붕

    ‘사랑의 불시착’ 男배우, 예상 못 한 충격 근황…“미안합니다” 팬들 멘붕

    배우 이신영(28)이 군 입대 소식을 뒤늦게 알렸다. 이신영은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자필 편지를 올리고 “조금 늦게 소식을 전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입대 전부터 어떻게, 언제 말씀드리는 게 좋을지 고민이 많았지만 교육대에 있는 동안은 군인으로서 군 생활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미처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갑작스럽게 소식을 접해 놀라셨을 분들께 죄송하다. 또 아무 말 없이 기다리게 한 것 같아 마음이 쓰인다”면서 “변함없이 응원해 주시고 제 자리를 지켜주시는 여러분께 늘 감사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이신영은 “저도 제게 주어진 자리에서 건강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잘 지내다 돌아오겠다”며 “2026년 8월 6일 수료를 명받았다. 늘 감사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인사드리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신영은 2018년 웹드라마 ‘한입만 시즌1’로 데뷔했다. 이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 ‘낮과 밤’, ‘낭만닥터 김사부3’ 등에 출연했다.
  • 2년 7개월 전 나온 소설 역주행 놀랍네…유래혁 ‘수족관’ 2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

    2년 7개월 전 나온 소설 역주행 놀랍네…유래혁 ‘수족관’ 2주 연속 베스트셀러 1위

    역주행을 거쳐 정상에 등극한 유래혁 작가의 첫 장편소설 ‘수족관’이 2주 연속 베스트셀러 종합 1위를 차지했다. 소설이 나온 것은 2024년 1월로 출간 당시에는 존재감이 없었지만, 뒤늦게 베스트셀러 정상에 올랐다. 책을 펴낸 곳 역시 작가가 운영하는 독립출판사로 광고나 마케팅 없이 역주행했다는 게 이례적이다. 수족관의 인기는 소셜미디어(SNS)가 견인했다. 작품을 읽은 독자들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퍼지면서 20대 독자층의 꾸준한 선택이 인기를 견인하고 있다. 여름방학을 맞아 소설을 읽으려는 독자가 늘어난 영향도 크다. 최근 별세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투명한 나선’은 2계단 상승해 종합 2위에 올랐다.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용의자 X의 헌신’, ‘악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등 주요 전작들이 다시금 조명을 받으며 외국 소설 분야 순위에 대거 이름을 올렸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의 대본집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종합 7위로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인기 드라마나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대본집과 각본집 출간이 활발히 이어지는 추세다. 교보문고 측은 “작품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팬덤의 수요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구매층은 3040 여성 독자 비중이 가장 높았으며, 20대부터 50대까지 폭넓은 연령층에서 두루 사랑을 받았다. 8월 초 여름휴가 시즌에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가족 단위 독자들의 발길이 두드러진다. 무더위를 피해 서점 피서를 즐기는 이들이 늘면서 어린이 독자들의 파워도 거세졌다. ‘김동희 세계관 호기심 환장 RPG’, ‘흔한남매 이무기’, ‘백앤아X고고프렌즈 국어별동대’ 등 어린이 학습만화가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오르며 높은 관심을 모았다.
  • 사랑의달팽이, 청각장애 유소년 연극단 달꿈극단 창작연극 ‘미로와 푸른귀 이야기’ 성료

    사랑의달팽이, 청각장애 유소년 연극단 달꿈극단 창작연극 ‘미로와 푸른귀 이야기’ 성료

    청각장애 유소년 배우 9인·성인 배우 5인 호흡…CKL스테이지 객석 3회 연속 매진우리금융미래재단, 서울경제진흥원 후원, 한국콘텐츠진흥원 지원 사단법인 사랑의달팽이(회장 이행희) 소속 청각장애 유소년 연극단 ‘달꿈극단’이 창작 연극 ‘미로와 푸른귀 이야기’ 공연을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달꿈극단은 지난 7월 31일부터 8월 2일까지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총 3회에 걸쳐 무대를 선보였다. 회차당 200석 규모의 객석이 대부분 채워지며 청각장애 청소년들의 예술 활동에 대한 높은 관심 속에 진행됐다. 김양구 작가와 추미정 연출이 함께한 이번 작품은 혜성의 접근으로 세상이 불안과 설렘으로 가득 찬 가운데 펼쳐지는 이야기다. 인공와우를 착용한 소녀 ‘미로’는 토굴에서 정체불명의 신호를 따라가다 현실과 과거, 기억과 이야기가 얽힌 낯선 세계로 들어선다. 그곳에서 전쟁을 피해 아이들을 지키려 했던 바우와 태수, 그리고 모든 이야기에 귀를 열어 두는 존재 ‘푸른귀’와 만나게 된다. 작품은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순간 이해가 시작되고 잊힌 삶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듣는다는 것’의 의미로 풀어냈다. 이번 무대에는 청각장애 단원 김예린, 김찬솔, 박승민, 박승혜, 오예나, 이윤아, 장윤소, 최시현, 홍수민이 출연했으며, 성인 배우 김완수, 김진호, 유슈인, 지혜연, 최혜수가 함께 무대를 완성했다. 공연을 찾은 관객들은 청각장애 유소년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와 전문 배우들과의 조화로운 앙상블에 호평을 쏟아냈다. 한 관객은 “청각장애 배우들이 나온다고 해서 왔는데, 막이 오르자마자 이야기 자체에 빠져들었다”며 “공연이 끝나고도 ‘듣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이 계속 맴도는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달꿈극단이라는 이름을 내세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달팽이의 꿈’, ‘달팽이들의 꿈의 무대’라는 뜻을 담은 달꿈극단은 2022년 창단한 청각장애인 연극단 옥탑방달팽이에서 출발해 2026년 새 이름으로 새로운 출발을 선언했다. 발성·호흡·연기 교육을 통해 청각장애 청소년의 언어 재활과 자존감 향상을 꾸준히 지원해 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미로 역의 최시현 배우는 “처음에는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이 떨렸지만, 준비 과정에서 자신감이 붙었다”며 “관객들이 우리 이야기에 함께 웃고 집중해 주는 모습이 정말 뿌듯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번 공연은 우리금융미래재단과 서울경제진흥원의 후원, 한국콘텐츠진흥원의 CKL스테이지 공간 지원을 받아 제작됐다. 사랑의달팽이는 달꿈극단 활동 외에도 클라리넷앙상블 연주단 운영, 멘토링, 직업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청각장애 청소년의 사회 적응을 지원하고 있다. 청각장애 청소년들이 직접 무대에 올라 ‘듣는다는 것’의 가치를 예술로 표현한 이번 공연은 문화예술이 장벽을 허물고 공감의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의미 있는 사례로 남았다.
  • ‘박찬민 딸’ 박민하, 귀엽던 꼬마가 이렇게 컸네…대학생 근황

    ‘박찬민 딸’ 박민하, 귀엽던 꼬마가 이렇게 컸네…대학생 근황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박찬민의 딸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박민하가 성숙해진 대학생 근황을 공개해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6일 박민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뜨거운 광선 쏟아져”라는 글과 함께 여러 장의 일상 사진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서 박민하는 민소매 나시톱에 블랙 컬러의 카디건을 매치한 세련된 차림으로 한 선글라스 매장과 소품 숍 등을 방문해 여유로운 쇼핑을 즐기고 있다. 어린 시절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주니어쇼 붕어빵’ 등에 출연하며 대중의 큰 사랑을 받던 귀여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훌쩍 자라 성숙해진 모습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빠 박찬민 전 아나운서의 이목구비를 닮은 붕어빵 인상도 훈훈함을 더했다. 딸의 훈훈한 근황에 아빠 박찬민 역시 직접 “살도 빠지고 많이 많이 예쁘다”며 애정 어린 댓글을 남기며 ‘딸바보’ 면모를 드러냈다. 한편, 박민하는 지난 2011년 MBC 드라마 ‘불굴의 며느리’를 통해 아역 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영화 ‘감기’, ‘공조’ 등 굵직한 흥행 작품들에 연이어 출연하며 연기 재능을 유감없이 선보여 왔다. 또한 연기 활동뿐만 아니라 남다른 운동 신경을 발휘해 청소년 대표 사격 선수로 전국 대회에서 메달을 획득하는 등 다재다능한 이력으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꾸준히 학업과 연기를 병행해 온 그는 현재 건국대학교 예술디자인대학 매체연기학과에 재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대체불가 대한민국, 세계가 따라 쓸 AI 운영체계를 만들어야”

    “대체불가 대한민국, 세계가 따라 쓸 AI 운영체계를 만들어야”

    - 이경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 평창 바랑재 포럼서 AI 패권 시대 국가 전략 제시- 인간과 AI가 네 가지 시대 질문에 답하는 릴레이 강연…휴머노이드 로봇도 강연자로 참여 대한민국이 AI 패권 시대에 대체 불가한 나라가 되려면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에너지에 AI를 연결해 세계가 따라 쓸 도시와 공장의 운영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이경수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은 지난 8월 5일부터 6일까지 강원도 평창 한옥 호텔 바랑재에서 열린 ‘2026 평창 바랑재 포럼’에 참석해 “AI 시대의 주도권은 모든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며 “다른 국가와 기업이 우리의 기술, 표준, 플랫폼을 기본값으로 자연스럽게 도입하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 부의장은 한국이 반도체와 자동차, 조선, 방산, 에너지 등 강력한 산업 기반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반도체라는 좋은 부품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AI가 실제 도시와 공장에서 작동하는 규칙과 표준까지 설계해야 한다”며 “세계가 미래의 답을 찾을 때 ‘그 답을 보려면 한국을 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라이나전성기재단(이사장 홍봉성)이 주최하고 세바시가 기획·제작한 이번 포럼은 ‘시대의 질문, 그 앞에 서다’를 주제로 열렸다. 우리 시대가 던지는 네 개의 질문에 인간과 AI가 릴레이 강연 형식으로 답했으며, 이 가운데 두 개의 질문에는 휴머노이드 로봇이 직접 강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포럼에서는 ▲AI 시대 인간의 고유함 ▲성장하는 기업과 무너지는 기업의 차이 ▲AI 패권 시대 대한민국의 전략 ▲성장 이후 한국인의 행복을 주제로 강연과 토론이 진행됐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이경수 부의장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국가미래전략연구위원회 김호기 위원장,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서용석 교수 등 국가전략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에이블리 강석훈 대표와 업스테이지 손해인 부사장 등 AI·플랫폼 산업 현장의 기업가, 이슬아 작가, 박상희 교수, 김태유 서울대 명예교수도 강연자로 나섰다. 서용석 교수는 “AI가 답을 잘 낼수록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 정의하고, 그 결과를 판단하고 책임지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며 “정답을 많이 아는 사람보다 정답이 바뀌었음을 먼저 알아차리는 사람이 능력자”라고 말했다. 그는 AI 시대의 운을 개인의 우연이 아니라 사회가 만드는 구조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슬아 작가는 인간의 한계와 상처를 AI가 대체할 수 없는 능력으로 해석했다. 그는 “AI는 잘 쓴 글을 만들 수 있지만, 잘 쓰고 싶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을 수는 없다”며 “생각하기와 느끼기를 외주 주지 않고, 못하는 시간을 기꺼이 견디는 인간이 오래 사랑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석훈 에이블리 대표는 기업의 AI 도입보다 먼저 조직과 일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대표는 영화 ‘탑건: 매버릭’의 대사인 “중요한 건 전투기가 아니라 파일럿”을 인용하며 “아무리 뛰어난 AI를 도입해도 그것을 다루는 사람과 조직이 몰입하지 않으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에이블리에서는 경영진의 별도 지시 없이 구성원들이 자발적으로 50개가 넘는 사내 AI 봇을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호기 위원장은 K컬처의 힘을 산업적 성과와 삶의 의미라는 두 측면에서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백범 김구의 ‘높은 문화의 힘’을 언급하며 “문화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무기이면서 국민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세계에 행복을 전하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포럼의 위원장을 맡은 이광재 국회의원은 환영사에서 오 헨리의 단편 소설 ‘마지막 잎새’를 소개했다. 이 위원장은 “밤새 벽에 마지막 잎새를 그려 한 사람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웠듯, 우리도 이 자리에서 시대를 살리는 해법을 함께 그려야 한다”며 “과학기술과 산업, 문화와 행복을 잇는 구체적인 해법이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포럼 마지막에는 참가자들이 ‘2026 바랑재 선언’을 함께 낭독했다. 참가자들은 답이 넘칠수록 더 깊이 질문하고, 기술의 힘만큼 인간의 책임을 키우며, 소유의 경쟁을 넘어 연결의 능력을 키울 것을 다짐했다. 홍봉성 라이나전성기재단 이사장은 “AI가 일과 산업, 사회의 기준을 빠르게 바꾸고 있지만 속도가 방향을 대신해 줄 수는 없다”며 “변화가 빠를수록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변화가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지를 묻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바랑재 포럼에서 시작된 질문과 대화가 각자의 일터와 삶으로 이어져, 우리 사회가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하는 힘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의 모든 인간 강연과 AI 답변은 세바시 강연 영상으로 제작돼 세바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 “국가유공자 장수사진 찍어드려요” 호반그룹, 광복절 촬영 봉사

    “국가유공자 장수사진 찍어드려요” 호반그룹, 광복절 촬영 봉사

    호반그룹이 제8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국가유공자들에 장수사진 촬영 봉사활동을 진행했다고 7일 밝혔다. 호반그룹은 지난 6일 서울 서초구보훈회관에서 국가유공자 대상 장수사진 촬영 봉사활동인 ‘오늘을 만든 당신께’를 열었다. 행사에는 임직원 봉사단 호반사랑나눔이를 비롯해 호반건설, 대한전선, 호반호텔앤리조트 등 그룹 임직원 30여명이 참여했다. 이번 봉사활동은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서초구 거주 국가유공자 30여명이 참석했으며 헤어·메이크업과 장수사진 촬영 등 전 과정이 임직원들의 재능기부로 이뤄졌다. 임직원들은 촬영 대기 시간 동안 말벗 봉사도 함께 진행했다. 완성된 사진은 액자, 선물과 함께 전달할 예정이다. 호반그룹 관계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국가유공자 여러분의 헌신과 희생에 깊이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국가유공자와 보훈 가족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호반그룹은 국가유공자 예우와 호국보훈의 가치 확산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23년부터 3년간 전쟁기념관에서 환경정화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발전기금 3000만원을 전달했으며, 지난 6월에는 그룹 신입사원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묘역 정화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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