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보시라이
    2026-01-11
    검색기록 지우기
  • 군주제
    2026-01-11
    검색기록 지우기
  • 로드킬
    2026-01-11
    검색기록 지우기
  • 주현진
    2026-01-11
    검색기록 지우기
  • 금주
    2026-01-1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99
  • 시진핑 딸 졸업한 하버드는 “공산당 간부 배출하는 당교”

    시진핑 딸 졸업한 하버드는 “공산당 간부 배출하는 당교”

    미국 최고의 명문대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명운을 건 전쟁 중인 하버드대가 중국 공산당 간부를 양성하는 학교란 주장이 나왔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하버드대에서 중국 관료 수천 명이 수십년간 교육받았는데, 트럼프 행정부가 이러한 관행을 중단시킬 수 있다고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외동딸인 시밍쩌가 가명으로 하버드대를 다녔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며 지난달 29일에는 중국 여성 유학생 장위룽이 최초로 졸업 연설을 하기도 했다. 특히 중국 관료 및 공산당 간부에 호의적인 하버드대 안의 단과대학은 케네디스쿨로 불리는 공공정책대학원으로 졸업 연설을 한 장도 케네디스쿨 출신이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당 간부와 관료들이 미국 등 해외 대학에서 연수받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중국 엘리트들이 가장 선호하는 곳은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이었다. 2014년 중국 상하이시 당 기관지인 ‘상하이 옵서버’는 “만약 중국 공산당의 ‘해외 당교’ 순위를 매긴다면 1위는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1980년대부터 중국 출신 학생들을 받았던 케네디스쿨은 1998년부터 매년 20명 안팎의 고위간부들을 위한 장학금을 제공하고 연수과정을 운영했다. 류허 전 중국 국무원 부총리는 1995년 하버드 케네디스쿨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리훙중 현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원은 1999년 단기연수를 하버드에서 했다. 시밍쩌를 비롯해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외손자 앨빈 장, 보시라이 전 정치국 위원의 아들 보궈궈도 하버드를 졸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달 22일 하버드대가 공산당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외국인 학생 입학 허가를 취소했으며 하버드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외국인 학생 비자에 대해서는 법원의 판결로 30일의 유예 기간이 주어졌지만, 트럼프 정부 동안 하버드대의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유학생 숫자는 크게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일단 트럼프 정부는 유학생 비자는 ‘특권’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며, 외국인 학생들의 불법 행위 등에 관한 자세한 여덟 가지 정보 제출을 요구했다. 또 30억 달러(약 4조원)의 정부 보조금이 중단되거나 줄어들 공산이 커지면서 앨런 가버 하버드대 총장은 스스로 급여를 25% 삭감했다. 하버드대의 유학생 비율은 약 27%로 케네디스쿨, 경영대학원, 공중보건대학의 외국인 학생 비율이 특히 높다.
  • [월드핫피플] 감옥에 갇힌 시진핑 정적의 아들, 대만인과 결혼

    [월드핫피플] 감옥에 갇힌 시진핑 정적의 아들, 대만인과 결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적이었던 보시라이(75) 전 충칭시 당 서기 아들이 최근 대만인 여성과 결혼했다. 보시라이 전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의 아들 보과과(37)는 지난 23일 대만 신주현에서 결혼식과 피로연을 열었다. 대만 국민당과 싸웠던 중국 혁명원로의 손자이자 시 주석과 공산당 후계를 놓고 경쟁 구도를 형성했던 보시라이의 아들이 대만 여성과 결혼한다는 소식은 현지에서 큰 화제를 낳았다. 결혼식 현장은 엄격하게 통제된 가운데 신랑 보과과는 신부 쉬후이위와 중국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경호원이 결혼식 참석자 명단을 대조해 한명씩 입장시키는 등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다. 또 결혼식장 위로 투명 텐트를 설치하거나 안티 드론건을 준비해 방송사의 드론 취재에 대비하는 등 삼엄한 경계가 이뤄졌다. 중국 정부는 한때 ‘중국의 황태자’로 통하던 보시라이의 아들이 대만에서 결혼한다는 소식에 논평을 거부하면서 이 결혼이 ‘악의적 선전’에 활용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27일 대만 연합보에 따르면 중국의 대만 담당 기구인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의 천빈화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보과과의 결혼과 관련한 질문에 “당신(기자)이 양안(중국과 대만) 혼인을 했다면 나는 당신을 축복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에 대한 논평이 없다. 이에 대해 악의적 뉴스 선전을 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현재 베이징 창핑구의 고위급 인사가 많이 있는 친청교도소에 수감 중인 보시라이는 아버지부터 유명한 공산당 간부로 성골 중의 성골이었다. 충칭시 당서기로 시 주석과 권력을 다퉜던 보시라이가 몰락하는 과정에는 온갖 스캔들이 난무한다. 보시라이의 아버지 보이보는 중국 8대 원로로 불리며 공산당 혁명에 참여했던 인사로 국무원 부총리 등을 역임했다. 보시라이는 충칭시 당서기로 일하면서 ‘공동부유’를 내세울 정도로 사회주의 사상을 구현하는 정치를 했지만, 각종 스캔들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는 다롄 시장직을 훌륭하게 수행한 데 이어 충칭시에서도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보시라이의 아내 구카이라이가 자신들의 치부가 들춰질 것을 우려해 영국인 사업가를 청산가리로 독살하면서 그도 심판받게 된다. 보시라이의 내연녀였던 다롄방송국의 인기 아나운서가 인체 표본을 전시하는 ‘인체의 신비’ 전 표본이 됐다는 것은 그와 관련된 유명한 스캔들 가운데 하나다. 보시라이와 구카이라이 사이의 아들인 보과과는 영국 명문 해로 스쿨을 거쳐 옥스퍼드대, 하버드대에서 유학했다. 보과과의 화려한 유학 생활은 아버지 보시라이가 뇌물 수수 등 부패 스캔들에 연루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알려졌다. 보과과와 결혼한 대만 여성 쉬후이위는 대만 타이베이 인근 이란현의 지역 유지 집안의 딸로 이란 뤄둥보아이병원 병원장의 손녀다. 쉬후이위 역시 영국과 미국에서 유학한 뒤 소더비 경매,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대만 고궁박물원 등에서 근무했다. 두 사람은 몇 년 전 유학 생활 중 처음 만나 교제하다 결혼을 약속했다. 보과과는 현재 캐나다에 체류 중으로 캐나다 한 기업에서 애널리스트로 재직 중으로 알려졌다.
  • ‘시진핑 맞수’ 보시라이 아들, 대만에서 삼엄한 경계속 결혼식 올려

    ‘시진핑 맞수’ 보시라이 아들, 대만에서 삼엄한 경계속 결혼식 올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맞수였던 보시라이 충칭시 전 당서기의 아들이 삼엄한 경비 속에 대만 여성과 결혼식을 올렸다고 자유시보와 중국시보 등 대만언론이 24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보시라이 아들 보과과는 전날 저녁 대만 북부 신주현 휴양시설로, 3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난위안 런원커잔에서 대만 여성 쉬후이위와 결혼식을 올렸다. 대만언론은 보과과와 쉬후이위가 런원커잔을 3일간 빌렸으며 정치인 하객 초청이나 언론 인터뷰 요청 등을 거부하고 전통 혼례복을 입고 조용히 결혼식을 치렀다고 전했다. 행사장 측은 출입구에 경호 요원을 배치해 참석자의 명단을 대조하는 것은 물론 직원의 신분증, 근무 카드를 확인하면서 한명씩 입장시키는 등 외부인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했다. 또 검은색 우산으로 취재진의 시선을 가렸다. 결혼식 장소 위로 투명 텐트를 설치하고, 재밍 드론 건을 준비해 방송사의 드론(무인기)을 이용한 현장 취재에 대비했다. 이에 특정 지역에 투입된 일부 매체 드론이 신호가 사라져 통제 불능에 빠지기도 했다. 현지 경찰도 유사시에 대비해 전날 오후 11시까지 현장에서 대기했다. 대만언론은 보과과 신분의 특수성으로 인해 그의 대만 입경부터 결혼 피로연까지 모든 일정이 철저한 보안 속에 이뤄졌다고 전했다. 일부는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과과의 대만 입경 신청 당시 영국 국적 신분이 아닌 중국인으로 신청했다고도 전했다. 보시라이는 중국 혁명 원로 보이보의 아들로, 한때 ‘중국의 황태자’로 통했다. 보시라이가 충칭시 당서기를 맡을 당시 시 주석과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이다. 그러다 2012년 부패 혐의로 실각한 후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거물급이 주로 갇히는 베이징 창핑구 친청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다. 아들 보과과는 1998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옥스퍼드대에서 재학했으며, 2012년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을 졸업했다. 보과과와 결혼한 쉬후이위는 동부 이란현의 뤄둥 보아이병원 창립자 쉬원정의 손녀로 15세 때 영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녔으며 런던대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소더비 경매,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대만 고궁박물원 등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 권력 위협 무서운 시진핑… 中 고위 관료 41명 부정청탁 혐의 수사중

    권력 위협 무서운 시진핑… 中 고위 관료 41명 부정청탁 혐의 수사중

    중국 공산당 반부패 기구가 올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취임한 이래 가장 많은 정부 고위 관료들을 부정청탁 관련 혐의로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첫 3연임에 성공한 시 주석이 자신의 권력을 위태롭게 만드는 정치적 라이벌의 부상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블룸버그 통신은 14일(현지시간) 공산당의 반부패 감시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올해 1월 이후 지금까지 발표한 성명을 전수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1월 이후 고위 관료 41명을 부정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조사중이다. 41명이란 수치는 2014년 이후 최대 수치다. 여기에는 시진핑 3기 내각이 들어선 뒤 새롭게 임명됐다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축출된 국무위원인 친강 전 외교부장, 리상푸 국방부장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한 조사가 연말 전 발표돼 이 수치에 포함된다면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할 수 있다. 또 올해 최소 17명의 퇴직 고위 간부가 반부패 관련 조사를 받았는데, 이는 시 주석 집권 기간 중 가장 많은 수치다. 시 주석 집권 첫해 공산당이 조사한 퇴직 고위 간부는 단 두 명에 불과했다. 최근까지 은퇴한 고위 간부들은 일반적으로 형사기소를 하지 않고 어느 정도 보호해주는 것이 암묵적 관례였다. 물론, 저우융캉 전 국가안전보위부장이 시진핑의 정치적 경쟁자인 보시라이를 지지한 혐의로 2015년 종신형을 선고받은 사례가 있으나 이런 사례는 드물다. 이는 시 주석이 2012년 처음 취임한 뒤 공산당 내부를 단속하기 위해 정치적 숙청이 계속 벌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 주석은 2013년 취임 당시 뇌물 수수와 청탁 문화가 중국 정부의 신뢰를 위협한다고 보고, 집권 여당의 부정부패 척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를 통해 ‘파리’라고 불리는 지역 정치인 400여만명과 ‘호랑이’로 불리는 강력한 정치적 경쟁자를 포함한 차관급 이상 정치인 533명을 처단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은 초대 중국 국가주석인 마오쩌둥 이후 중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중국은 최고지도자 한명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체제를 피하기 위해, 국가 주석의 임기를 제한하고, 다수의 협의를 거치는 집단 지도자 체제를 유지하려 노력해왔다. 하지만 시 주석이 오래된 현대 중국 정치의 합의를 깬 것이다.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 중국분석센터의 중국정치전문가 닐 토마스는 “시 주석의 내부 규율 캠페인은 이념적 순수성을 높이고, 정책 실행률을 높이고, 잠재적인 정치적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끝없는 이념 투쟁이나 다름없다”며 “끊임없는 경계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라고 말했다. 시 주석은 지난해 ‘제로 코로나’ 정책을 강행하면서 집권 이래 최대 국민 반발에 부딪혔다. 제로 코로나 정책은 국가 주도의 초고강도 봉쇄 정책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있는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문에 걸린 쇠사슬을 풀지 않고 건물 밖으로 못 나오게 해 사상자 수를 키우는 등 반인권적 처사로 지탄받았다. 이후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 등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을 때 영국 공영방송 BBC의 에드 로런스 기자를 폭력적으로 체포한 사실이 알려져 빈축을 사기도 했다. 시 주석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기한 지 1년만에 중국은 전례 없는 경제 위기를 맞았다. 수십년간 고성장을 거듭해온 중국의 경제는 이제 디플레이션 국면에 들어섰다.
  • ‘중국 2인자’ 앞 허리 세번 굽힌 시진핑…리커창 전 총리 애도

    ‘중국 2인자’ 앞 허리 세번 굽힌 시진핑…리커창 전 총리 애도

    지난달 27일 중국 상하이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한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의 영결식과 화장(火葬)이 2일 베이징에서 엄수된 가운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애도를 표했다. 신화통신은 이날 오후 3시(현지시간)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노련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 국무원 전 총리인 리커창 동지의 시신이 2일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원에서 화장됐다”고 밝혔다. 중국중앙TV(CCTV)가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리 전 총리 시신은 검은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쓴 채 흰색 침구 위에 누워 있었다. 시신은 붉은색 중국공산당 깃발로 덮인 상태로, 주변엔 화초가 둘렸다.시 주석은 오전 9시쯤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함께 영결식에 참석했다. 이들은 리 전 총리 시신 앞에서 세 차례 허리를 굽혀 조의를 표한 뒤 유족의 손을 잡고 위로했다. 리창 현 총리와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비롯해 왕후닝·차이치·딩쉐샹·리시·한정 등 당정 지도자들도 시 주석에 이어 묵념했다. 리 전 총리와 함께 중국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계를 이끌었던 후진타오 전 주석은 추모 화환을 보냈다. 신화통신은 “당과 국가의 관련 지도 동지들이 차례로 (리 전 총리를) 송별하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애도를 표했다”며 “당 중앙과 국가기관 관련 부문 책임 동지, 리커창 동지의 생전 친구, 고향 대표 또한 송별했다”고 설명했다. 중화권 매체들은 이번 장례가 지난해 말과 2019년 7월 각각 엄수된 장쩌민 전 주석, 리펑 전 총리의 영결식과 비슷한 모습이라고 전했다.1955년생인 리 전 총리는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공청단 제1서기와 허난성 당위원회 서기 겸 성장, 랴오닝성 당위원회 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중국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청단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당내에선 비슷한 연배 가운데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그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기 전에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후 전 주석의 뒤를 이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그러나 태자당(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연합해 시 주석을 밀어주면서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리 전 총리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뒤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영향력이 갈수록 약해지자 올해 3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세상 떠나 ‘할말은 했던 2인자’ BBC “사망 소식 경시”

    리커창 전 중국 총리 세상 떠나 ‘할말은 했던 2인자’ BBC “사망 소식 경시”

    올해 3월 퇴임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27일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68세, 상대적으로 한창 나이에 허망하게 삶을 접었다. 중국중앙(CC)TV는 이날 오전 8시(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최근 상하이에서 쉬고 있던 리커창 동지에게 26일 갑자기 심장병이 발생했고, 응급조치도 소용없이 27일 0시 10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관영 신화통신은 리 전 총리의 사인이 심장마비라고 전했다. 이날 오후 6시 30분에야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정치협상회의 공동 명의로 낸 부고를 통해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노련하고 충성스러운 공산주의 전사, 걸출한 프롤레타리아 계급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인 리커창 동지가 서거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당정은 “그의 서거는 당과 국가의 중대한 손실”이라며 “우리는 비통함을 힘으로 바꿔 그의 혁명정신과 숭고한 품덕, 우량한 작풍(업무 태도)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시진핑 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 중앙 주위로 더 긴밀하게 단결해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의 위대한 기치를 높이 들고,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을 전면 관철해야 한다”며 “리커창 동지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중국 당정은 오전 8시 별세 소식 발표 후 “곧 부고를 내겠다”고 했지만 10시간이 넘게 부고와 입장문이 나오지 않자 서방 매체 등 일각에선 중국이 리 전 총리의 죽음을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뒤늦게 나온 2511자 분량의 부고문에는 젊은 시절부터 최근까지 리 전 총리의 업적이 상세히 설명됐다. 중국 당정은 특히 “세계적 변화의 가속화와 코로나19의 충격, 국내 경제 둔화 등 다중의 도전에 직면해서도 ‘안정 속에 진보를 추구한다’는 기조 하에 새로운 발전 구도를 만들고, 양질의 발전을 이끌었다”며 “탈(脫)빈곤과 농촌 진흥 전략 추진으로 빈곤 퇴치 성과를 늘렸다”고 평가했다. 1955년생인 리 전 총리는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제1서기와 허난성 당위원회 서기 겸 성장, 랴오닝성 당위원회 서기 등을 거쳐 2007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됐다. 중국공산당 내 주요 파벌인 공청단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당내에선 비슷한 연배 가운데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냈다.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지냈고, 시진핑 체제가 출범하기 전에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 서기와 함께 후 전 주석의 뒤를 이를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태자당(太子黨·혁명 원로 자제 그룹)계와 장쩌민계인 상하이방이 연합해 시 주석을 밀어주면서 경쟁에서 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시진핑 체제가 출범한 뒤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는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 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리 총리는 2020년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자회견 당시 중국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하며 “6억명의 월 수입은 겨우 1000위안(약 18만원)밖에 안 되며, 1000위안으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고 말해 중국은 물론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시 주석이 업적으로 꼽고 있는 ‘샤오캉(小康, 모든 국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건설’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전국 화상회의를 열어 10만명이 넘는 공직자들 앞에서 중국의 경제 상황이 2020년 우한 사태 때보다 심각하다고 발언하며 ‘방역 지상주의’가 경제를 망쳐서는 안 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집단지도체제가 약화하고 시 주석에 권력이 한층 집중되면서 리 전 총리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해졌다. 그는 올해 3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리 전 총리는 퇴임 후 중국 경제 회복 둔화 속에 오히려 더 인기가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 8월 말 소셜미디어(SNS) 엑스(옛 트위터)에 올라온 리 전 총리의 간쑤성 둔황 모가오(莫高·막고)굴 방문 영상을 보면 수백명의 관광객이 “총리님, 안녕하세요”라고 반갑게 맞는 장면이 나온다. 별세 소식이 알려진 이날 중국 SNS 웨이보에서는 오전부터 종일 ‘리커창 동지 서거’ 해시태그가 검색어 1위를 기록했다. 누리꾼들은 추모 의미를 담은 붉은 촛불 이모티콘과 함께 “너무 갑작스럽다”거나 “믿고 싶지 않다”, “침통한 마음으로 리커창 총리를 애도한다”, “편히 가세요” 등 메시지를 작성했다. “인민의 좋은 총리,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 같은 반응도 많았다. 한국 정부는 “리커창 전 총리가 한국의 가까운 친구로서 한중관계 발전에 크게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며 “그의 영면을 기원하며 유가족에게도 깊은 애도와 추모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미국과 일본 정부도 추도 입장을 발표했다.영국 BBC 방송은 리 전 총리가 “빈부격차를 줄이고 저렴한 주택 제공에 초점을 둔 정책으로 덜 혜택받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지도자로 명성을 얻었다”며 “시 주석에 의해 결국 배제됐지만 경제정책 면에서는 실용주의로 인기있는 지도자였다”고 보도했다. 이어 리 전 총리가 재임 시 “시 주석에 충성하는 그룹에 속하지 않은 유일한 현직 고위 관료”였으며 “최근 몇년 동안 중국 최고 지도자들 사이에서 고립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로이터 통신도 “엘리트 경제학자인 리 전 총리는 ‘리코노믹스’(리커창+이코노믹스)로 불리는 접근방식 아래 더 개방적인 시장경제를 지지하고 공급자 측면의 개혁을 옹호했으나 이는 완전히 실행되지 못했다”고 평했다. 로이터는 이어 “궁극적으로 리 전 총리는 국가 통제력을 높이려는 시진핑의 선호에 굴복해야 했고 시진핑이 요직에 자기 사람들을 앉히면서 리 전 총리의 권력 기반은 약해졌다”고 짚었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리 전 총리의 합리적인 정책 결정은 시진핑의 정치화된 통치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부드럽게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제한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관료주의를 없애겠다며 사업 등록 기간을 대폭 단축한 것과 같은 리 전 총리의 성과는 시 주석의 반기업 정책으로 훼손됐다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리 전 총리가 “자유시장과 중국의 더 빈곤한 시민들을 옹호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며, 시진핑 독재 부상으로 밀려난 정치적 대안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했다. 외신들은 영어에 능통하고 개혁·개방을 강조해온 리 전 총리가 중국 지도부 안에서 미국 등 서방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목소리를 대변했다고도 평가했다. CNN은 “중국과 서방 국가의 관계가 갈수록 경색되던 시기에 중국과 세계의 다른 접근법을 대변하는 인물로 여겨졌다”며 리 전 총리가 2021년 3월 기자회견에서 ‘중국과 미국이 공통의 이익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일화를 전했다. 로이터는 일부 중국 지식인과 자유주의 엘리트들 사이에서는 “자유주의 경제 개혁의 등불이었던 리 전 총리의 별세가 한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BBC도 싱크탱크 카네기차이나의 비상주 학자 이언 총을 인용해 “리 전 총리의 죽음은 중국 공산당 고위층 내에서 눈에 띄는 온건한 목소리의 상실을 의미한다. 아무도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며 “이는 아마 시 주석의 권력행사에 대한 제약이 더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라고 전했다. 외신들은 중국 당국이 리 전 총리의 사망을 축소해 전달하고 인터넷에서 리 전 총리 관련 내용을 검열하는 상황에 주목했다. BBC는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 관영 언론들이 리 전 총리의 경력에 대한 공산당의 평가를 나타내는 공식적인 수식어를 사용하지 않는 등 사망 소식을 경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2019년 리펑 전 총리 사망 때 “탁월한 당원, 오랜 기간 검증받은 충성스러운 공산주의자 군인이자 뛰어난 프롤레타리아 혁명가, 정치가, 당과 국가의 지도자”라는 찬사를 쏟아낸 것과 대조된다는 것이다. BBC는 그러면서 “중국 전직 지도자들의 죽음은 과거에도 시위를 촉발한 적이 있다”며 “지난해 장쩌민 전 국가주석이 사망했을 때 애도 목소리도 시진핑 주석에 대한 미묘한 비판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전했다. WSJ도 웨이보 등 소셜미디어에서 리 전 총리 사망 관련 댓글이 검열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과거 중국 고위 관리들의 사망 때 대중의 애도 움직임이 현직 지도자를 겨냥한 대규모 시위로 발전한 적이 있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도 그해 4월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사망을 애도하는 집회에서 시작됐다”고 짚었다.
  • “中 최고지도부 진입 못한 천민얼, 톈진시 당서기 될 듯”

    “中 최고지도부 진입 못한 천민얼, 톈진시 당서기 될 듯”

    중국 ‘시진핑 3기’에서 공산당 최고지도부(서열 1~7위) 진입에 실패한 천민얼(62) 충칭시 당서기가 수도 베이징과 인접한 톈진의 당서기로 자리를 옮긴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7일 보도했다. 천민얼은 지난달 폐막한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중앙정치국(1~24위)에는 포함됐지만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명에는 들지 못했다. 천민얼은 시 주석의 ‘심복 중 심복’으로 불린다. 그간 베이징 정치무대에서 1960년대생을 뜻하는 ‘류링허우 3인방’(딩쉐샹·천민얼·후춘화) 가운데 한 사람으로 주목받았다. 청 리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천민얼을 “시진핑이 가장 신뢰하는 부하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그의 탈락을 두고 많은 말이 나왔다. 다만 SCMP는 “그가 중앙정치국 24명 위원에 여전히 이름을 올린 것은 향후 5년 내 승진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알프레드 우 싱가포르국립대 리콴유 공공정책학원 부교수도 “그가 21차 당대회에서 최고 지도부에 들 것으로 보인다”며 “충칭시 당서기에서 톈진시 당서기로 옮기는 게 승진은 아니지만 차기 최고 지도부 입성을 기다리며 지방 정부 통치 경험을 풍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장성에서 태어난 천민얼은 공산주의 이론 강사 출신의 여론선전 전문가이자 저장일보 사장 출신이다. 시 주석이 2002∼2007년 저장성 당서기로 지내는 동안 저장성 당 위원회 선전부장을 맡으며 친분을 쌓았다. 당시 시 주석은 ‘쩌신’(哲欣·저장 혁신)이라는 필명으로 저장일보에 게재한 칼럼의 초고를 천민얼이 2003년 2월부터 약 4년간 썼다. 그는 대부분 관직 생활을 저장성 지방 관리로 지내다가 시 주석과의 인연으로 초고속 승진을 시작해 차기 후계자로 떠올랐다. 2017년에는 보시라이와 쑨정차이 등 전임자들이 부패 혐의로 낙마한 인구 3000만명의 초거대도시 충칭의 당서기로 발탁됐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그가 이번에 상무위원으로 발탁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친인척 비리 때문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천민얼의 근거지인 저장성은 중국을 대표하는 빅테크 알리바바의 본사가 있는 곳이다. 천민얼이 시 주석과의 인연으로 승승장구하자 알리바바가 대거 가족과 친척들에 여러 편의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천민얼 가족과 알리바바 간 유착 사실이 일부 확인되면서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는 시 주석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 시진핑, ‘호랑이 사냥꾼’ 왕치산도 ‘사냥’하나

    시진핑, ‘호랑이 사냥꾼’ 왕치산도 ‘사냥’하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3기에도 고위층 사정 작업을 뜻하는 ‘호랑이 사냥’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시 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던 왕치산(74) 전 국가부주석의 핵심 보좌진이어서 중국 전역이 시끄럽다. 중국 지도층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아는 그에게도 사정의 칼날이 겨눠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중국 온라인 매체 펑파이는 27일 “검찰이 왕 부주석 측근인 톈후이위 전 자오상은행장에 대한 체포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인민검찰원은 수뢰, 직권남용, 미공개정보 이용 거래 등 혐의로 중앙기율검사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 조사를 받던 톈 전 행장에 체포 결정을 내렸다. 기율·감찰위는 지난 4월 ‘심각한 기율 위반’ 혐의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발표한 뒤 그를 검찰에 송치했다. 당적과 공직을 동시에 박탈해 사회적 영향력에 타격을 주는 ‘쌍계’ 처분도 내렸다. 톈 전 행장은 과거 왕 부주석이 중국건설은행에서 일할 때 비서로 일한 ‘왕치산계’다. 이번 체포 결정이 눈길을 끄는 것은 왕 부주석이 시진핑 주석 집권 1기(2012∼2017년)때 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맡아 반부패 드라이브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번 결정은 시진핑 집권 3기에도 고강도 사정이 계속될 것임을 시사하는 동시에 최종 목표가 왕 부주석일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호랑이 사냥꾼’을 ‘사냥’하게 된다는 뜻이다. 그는 청년 시절 하방(지식인을 노동 현장으로 보냄) 때 5살 적은 시진핑을 만나 우정을 쌓았다. 2003년 베이징에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퍼지자 ‘소방수’로 투입돼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주목 받았다. 시 주석의 집권을 확정한 2012년 제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최고지도부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7명)에 뽑힌 뒤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를 맡아 ‘부패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와 저우융캉(78) 전 정치국 상무위원 등 거물을 잇따라 낙마시켰다. 이때부터 공식 서열에 관계없이 늘 ‘시진핑의 2인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문제는 왕 부주석 자신과 관련한 부패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2017년 6월 미국으로 망명한 억만장자 궈언구이가 “왕치산이 엄청난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으며 영화배우 판빙빙에게 성상납도 받았다”고 주장해 타격을 입었다. 결국 2017년 19차 당대회에서 서열 8위 국가부주석으로 밀려났고, 이때부터 주변 인물들에 대한 부패 조사가 시작됐다. 코로나19 사태 때 시 주석을 ‘벌거벗은 광대’라고 비난한 부동산 재벌인 런즈창 화위안그룹 회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2020년 횡령, 뇌물 등 혐의로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았다. 런 회장은 왕 부주석과 막역한 사이다. 런즈창 판결 직후 왕 부주석의 최측근인 둥훙 중앙기율위원회 중앙순시조 부조장도 재판에 들어가 4억 6000만 위안(약 920억원) 뇌물 수수 혐의로 사형 집행 유예를 선고받았다. 사형 집행유예는 2년간 수형 태도를 관찰한 뒤 무기징역으로 감형해주는 중국 특유 제도다. 중국 당국은 왕 부주석과 친분이 깊은 하이난성의 재벌인 HNA그룹 천펑 회장도 구금했으며, 왕 부주석의 조카이자 HNA그룹의 고위 간부인 야오칭을 조사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왕 부주석은 최근 중국을 대표해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는 등 직무를 수행해 왔다. 올해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도 중국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했다. 중국 고위층의 부패 내역을 샅샅이 알고 있을 그를 시 주석이 쉽게 내치지 못하고 있다는 견해가 많다.
  • 시진핑과 함께할 상무위원 누가 될까

    시진핑과 함께할 상무위원 누가 될까

    오는 16일 열릴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에서 시진핑(69) 국가주석이 ‘10년 집권 뒤 퇴임’ 및 ‘7상8하’(67세는 유임, 68세는 퇴임) 관례를 깨고 3연임을 준비하는 가운데 향후 중국을 이끌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시 주석 포함 7명) 인선에 관심이 모아진다. 시 주석의 ‘1인 지배체제’ 강화로 상무위원 7인의 집단지도체제가 유명무실해졌다는 의견에도 ‘중국을 이끄는 최고 파워엘리트 집단’이라는 이들의 정치적 위상은 변하지 않는다. 10일 베이징 외교가에 따르면 20차 당대회 이후 시 주석(서열 1위)·신임 국무원 총리(2위)와 중국을 이끌 ‘최고 지도부’(1~7위) 입성이 유력한 후보로 딩쉐샹 공산당 중앙판공청 주임과 천민얼 충칭시 당서기, 황쿤밍 공산당 중앙선전부장, 차이치 베이징시 당서기, 리창 상하이시 당서기 등이 거론된다. 딩쉐샹은 시 주석의 2014년 방한과 지난달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할 만큼 두터운 신임을 받는다. 공산당 홍보 활동을 책임지는 황쿤밍은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시진핑 사상으로 전 인민을 무장시켜야 한다”며 공개적으로 시 주석을 찬양했다. 천민얼은 2003년부터 약 4년간 시 주석이 저장일보에 게재한 칼럼의 초고를 작성해 ‘시진핑의 필사’로 불린다. 보시라이와 쑨정차이 등 전임자들이 부패 혐의로 낙마한 충칭시에서 당서기를 맡았다. 중국 양대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를 각각 책임지는 차이치와 리창은 시 주석의 측근으로 구성된 가신그룹의 대표 주자들이다.
  • 尹 취임식에 ‘시진핑 오른팔’ 왕치산 참석…中 의도는?

    尹 취임식에 ‘시진핑 오른팔’ 왕치산 참석…中 의도는?

    오는 10일 열리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측근이자 서열 8위인 왕치산(74) 국가부주석이 참석하기로 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진다. 6일 제20대 대통령취임준비위원회는 브리핑에서 “143명의 주한외교사절 등 약 300여명의 외빈이 함께 한다”고 밝혔다. 중국에서는 시 주석의 ‘오른팔’로 평가받는 왕 부주석을 낙점했다. 부총리 시절인 2012년 이후 10년 만의 한국 방문이다. 그간 중국은 한국 대통령 취임식에 부총리급 인사를 파견해 왔다. 2003년 2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취임식에 첸치천 당시 국무원 부총리가 참석했고, 2008년 2월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식에도 탕자쉬안 당시 공산당 외무담당 국무위원이 왔다. 2013년 2월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식 때도 류옌둥 공산당 정치국원이 방문했다. 이번에는 베이징 지도부가 격을 끌어올려 정상급 인사를 택했다. 미국이 취임식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남편 더글러스 엠호프를 대표로 한 것을 감안하면, 중국은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급의 인사를 보내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반영하는 동시에 한미 동맹 강화 움직임을 견제하려는 시 주석의 메시지도 직접 전달하겠다는 의도를 담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시 주석은 한국의 대통령 당선인과 직접 소통하지 않는 관례를 깨고 지난 3월 윤 당선인과 전화 통화를 해 ‘한중관계 관리’ 의지를 보였다.왕 부주석은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 때 베이징 시장으로 긴급 투입돼 군경까지 동원해 감염병을 소멸시켜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2년 중국 최고지도부(상무위원)에 입성해 시 주석 집권 1기(2012~2017)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기율위 서기(위원장)를 맡았다. 반부패 사정 작업을 진두지휘해 시 주석의 정치적 라이벌인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와 저우융캉 전 정치국 상무위원을 잇따라 낙마시켰다. 이때부터 공식 서열에 관계없이 ‘2인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실질적 권력은 왕 부주석이 쥐고 있다는 분석도 많았다. 이를 반영하듯 2018년 시 주석은 ‘7상 8하’(67세까지 공직을 맡고 68세 이후로는 은퇴) 원칙을 깨며 69세인 그를 부주석 자리에 앉혔다.  그러나 2014년 미국으로 망명한 중국 억만장자 궈언구이가 2017년부터 “왕치산이 엄청난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 영화배우 판빙빙에게 성상납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점차 정치적 입지가 좁아졌다. 왕 부주석의 핵심 보좌진인 둥훙이 비리 혐의로 낙마하고 오랜 친구인 런즈창 전 화위안그룹 회장도 코로나19 사태 때 시 주석을 비난했다가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측근들이 잇따라 어려움에 처했다. 시 주석이 그에게 ‘무언의 경고’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왕 부주석은 올 가을 시 주석의 3연임을 확정지을 20차 당대회를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할 것이 확실시된다.
  • [서울광장] 2022년 시진핑의 중국/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2022년 시진핑의 중국/오일만 논설위원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기류가 완연한 2022년 중국은 새로운 도전의 시기를 맞게 될 듯하다. 시진핑 국가주석 집권 10년인 내년 10월에 열리는 제20차 당대회가 최대 변곡점이다. 시 주석의 3연임 여부가 결정됨과 동시에 대내외 전략 역시 변화가 불가피하다. 1989년 장쩌민 집권 이후 10년 통치 관행이 깨지고 일인 장기집권의 커튼이 열리는 것이다. 지난달 공산당 19기 6중전회의 ‘역사 결의’를 통해 마오쩌둥·덩샤오핑 반열에 오른 시 주석의 위상은 판이하게 달라졌다. 중국의 신문과 방송들은 연일 시 주석을 찬양하는 ‘시비어천가’ 일색이다.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 시대로 되돌아간 느낌마저 든다. ‘시진핑 우상화’ 시도 자체가 내년 당대회에서의 장기집권을 향한 포석이란 의미다. 중국 공산당은 건국 100년을 맞는 2049년까지 국가 총력전 체제가 불가피하다는 시각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내부 단속의 고삐도 한껏 죄는 분위기다. 지난 5월부터 대중 문화계에 들이닥친 연예인 정화 작업을 눈여겨봐야 한다. 이른바 홍색 정풍운동의 신호탄이다. 1940년대 마오쩌둥이 일인 지배권을 확립한 옌안시대의 엄혹한 사상 투쟁과 닮은꼴이다. 1964년 ‘문예정풍’(文藝整風)을 거쳐 1966년 악명 높은 문화대혁명으로 이어진 역사가 있다. 차이샤(蔡霞) 중앙당교 전 교수도 지난 8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의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에서 이탈해 문화혁명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장기집권의 길목에서 마오쩌둥식 사상 검증에 착수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중 ‘신냉전’과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침체, 가혹한 빈부격차 등 내우외환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의도가 강하다. 체제 결속과 내부 단속을 위해 정치·경제·사회·문화계 전반으로 사상 검증의 수위를 높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장쩌민ㆍ후진타오 시대에 반체제만 아니라면 묵인했던 무딘 비판의 목소리도 침묵으로 바뀌는 양상이다. 1950년대 마오쩌둥의 대대적인 지식인 탄압(반우파 투쟁)의 서막과 비슷하다. 2018년 7월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 이후 본격화된 중화 민족주의의 향배도 우려스럽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사회주의 이념을 포기하는 대신 중화사상을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채택했다. 오랜 세월 세력을 키운 이들은 시진핑 시대와 함께 강력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바로 소분홍(小粉紅)이라 불리는 세력이다. 소(小)는 젊다는 의미고, 분홍(粉紅)은 웹사이트의 배경 화면에서 따온 말이다. 문화대혁명 시기 마오에게 맹목적으로 충성했던 홍위병을 빗대 ‘신(新)홍위병’으로 부른다. 미국은 물론 외세와의 다툼이 벌어지면 인터넷 최전선에서 여론전을 펼친다. 100년의 민족적 굴욕을 끝내고 중화민족의 기상을 세웠다고 자랑하는 공산당 입장에서 이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 없다. 외국에 유약한 모습을 보이면 이들이 바로 시진핑 정권에 칼날을 들이댄다. 양날의 칼날인 셈이다. 최근 민족주의 대안으로 신세대 애국주의 개념을 들고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애국주의라는 개념 안에 민족주의를 가둬 관리하겠다는 의미가 짙다. 시진핑 시대 좌파 노선을 강화하면서 마오 시대 유행했던 ‘공동부유론’이 전면에 등장했다. 빈부·도농 격차 해소를 목표로 국유기업의 역할을 강화하고 저소득층을 위한 복지를 확대하는 것이 뼈대다. 이 과정에서 시 주석의 정적인 당시 보시라이 충칭시 당서기가 추진한 ‘충칭 모델’의 일부를 수용했다. 개혁개방 이후 누적된 빈부격차 등 대중의 불만과 분노를 해소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읽혀진다. 지난 6일 시진핑 국가주석 주재로 열린 경제운용 회의에서 경기부양으로 경제 정책을 대전환했다. 내년 중국 경제가 30년래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이 지난 15일 지급준비율을 0.5% 포인트 인하했다. 경기부양에 앞서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함이다. 내년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에 성공하기 위해 경기침체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묻어난다. 2022년 미중 패권 갈등은 더욱 첨예화될 가능성이 높다. 내년 11월 미국은 중간선거가 있고 중국 역시 시 주석의 장기집권이 달려 있다. 선거를 앞두고 한쪽이 물러서면 패배하는 치킨게임의 양상이다. 서로 때리는 강도를 높여야 생존하는 구조다. 큰 틀에서 공존과 생존을 꾀하는 2인3각 대결이 불가피하다. 미중 갈등 구조의 살얼음판을 걸어야 하는 우리로선 균형적이고 전략적인 안목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 [특파원 칼럼] 시진핑 3연임의 마지막 걸림돌은/류지영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시진핑 3연임의 마지막 걸림돌은/류지영 베이징 특파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장쩌민 전 주석 간 갈등설은 베이징 특파원들의 단골 기삿거리다. 최근 이를 두고 해외 매체들이 언론 보도를 쏟아내면서 내년 베이징동계올림픽(2월)과 20차 공산당 전국인민대표자회의(10월)를 앞둔 중국 정가에 대한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최근 장가오리 전 국무원 부총리가 여자 테니스 스타 펑솨이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쑨리쥔 전 공안부 부부장(차관)은 뇌물 수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이들은 모두 ‘상하이방’ 수장인 장쩌민의 측근이다. 이미 시 주석은 ‘부패와의 전쟁’을 통해 장쩌민의 ‘왼팔’로 불리던 보시라이와 ‘오른팔’ 저우융캉을 제거하는 등 집권 기간 내내 상하이방을 쳐냈다. 이번에 또다시 장쩌민계에 타격이 될 뉴스가 연이어 터지면서 신구 권력 간 갈등설이 힘을 얻고 있다. 장쩌민은 1989년 톈안먼 사건으로 자오쯔양 전 공산당 총서기가 실각하면서 갑자기 최고권력자가 됐다. 초기만 해도 불안감이 컸지만 덩샤오핑 등 당 원로들의 강력한 지원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그의 권력욕이 지나치게 강해 순순히 권좌에서 내려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후진타오에게 2002~2003년 중국 공산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을 물려줬지만 인민해방군을 지휘하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은 2004년에야 내려놨다. 은퇴한 뒤에도 중국 정치의 핵심인 중난하이와 중앙군사위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후진타오를 집권 마지막 해까지 감시하듯 지켜봤다. 후진타오는 죽을 때까지 권력을 쥐려는 장쩌민에게 넌덜머리가 났다. 2012년 후임자인 시진핑에게 당·정·군 모든 직위를 한꺼번에 이양해 ‘1인 집권’에 힘을 실어 줬다. 시 주석과 후진타오 간 ‘묵시적 연합’이 이때 시작됐다. 대표적 원칙론자인 시 주석의 성격상 상하이방 척결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상하이방이 이를 가만 보고만 있지는 않은 듯하다. 2012년 블룸버그통신은 당시 시진핑 부주석의 누나 치차오차오와 남편 덩자구이의 재산이 3억 7600만 달러(약 4300억원)라고 보도했다. 그가 한창 반부패운동을 벌이던 2014년에도 가족들이 조세회피처에 법인을 설립해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숨겼다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발표가 있었다. 중국에서 최고위 지도자들의 재산 정보를 알 수 있는 이들은 한정돼 있다. 중국 정치에서 부정축재에 자유로운 인물은 없다는 점에서 장쩌민이 여전히 시 주석을 겨냥한 ‘히든카드’를 쥐고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중국의 전력난과 이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사태가 ‘시 주석의 3연임을 결정할 20차 당대회를 앞두고 중국 내 권력 투쟁이 격화돼 나타난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시 주석이 헝다와 환타지아 등 장쩌민계 부동산 기업들을 공격하자 상하이방도 이에 반발해 의도적으로 ‘석탄대란’을 일으켰다는 진단이다. 다만 베이징에서 외국인이 중국 정부나 공산당의 핵심 인사를 직접 만나 사건의 실체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 외신 기자들은 중국 내 핵심 인사와 접촉한 이들을 어렵사리 만나 ‘한두 다리 건너서’ 듣게 된다. 눈 감고 코끼리 만지듯 제공되는 일부의 주장이나 분석을 정설인 양 받아들이는 것은 중국이라는 실체에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진핑과 장쩌민의 대결이 어떤 결말을 맺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시 주석이 무난히 3연임에 성공할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지만 정치라는 것이 늘 그렇듯 돌발 변수가 존재한다. 앞으로 두 세력 간 갈등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이것이 베이징 정치를 어떻게 바꿀지가 미래 10년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 “스타 특별대우 안해” 크리스 우 체포에 감옥 소개 영상 인기

    “스타 특별대우 안해” 크리스 우 체포에 감옥 소개 영상 인기

    여러 건의 성폭행 혐의로 체포된 전 엑소 멤버 크리스 우 탓에 중국에서 갑자기 쓰촨 교도소의 생활을 소개한 30초짜리 영상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5일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를 통해 ‘쓰촨 감옥’ 공식 계정이 ‘높은 담 안의 생활’이란 제목으로 소개한 감옥생활 소개 동영상을 1억명 이상의 네티즌이 시청했다고 전했다. 쓰촨일보가 촬영한 동영상에 따르면 높은 담벼락 안의 세상은 대기열 훈련, 법률 교육, 일상적인 행동 훈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개된 식단에 따르면 아침 식사는 만두, 소금에 절인 요리 및 쌀밥 그리고 점심은 쌀, 수프, 볶음 요리다. 저녁 식사로는 쌀, 야채, 수프에다 행동을 잘하면 고기를 ‘보너스’로 먹을 수 있다. 생일이면 1년에 한번 닭요리, 꼬치구이, 국수 등을 생일식사로 먹는다. 중국에서는 생일에 미역국 대신 장수를 상징하는 면요리를 주로 먹는다. 또 숙박비와 식비를 지불할 필요가 없으며, 위생적인 식사를 잘 먹을 수 있다고 쓰촨 교도소 측은 강조했다. 하루의 시작은 당신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이곳에서 무엇을 하는지 세 가지 질문을 스스로 묻는 정신 교육으로 이루어진다. 한때 스타였던 범죄자가 감옥에서 특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가란 네티즌의 질문에 쓰촨 교도소 측은 “감옥은 모든 범죄자를 동일시한다”고 밝혔다. 검찰과 다른 범죄자의 감독하에 누구도 특별 대우를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 동영상은 지누션의 노래 ‘나에게 말해줘’를 배경으로 제작되어 더 큰 관심을 끌었다. 중국 언론은 크리스 우가 한때 한국의 엑소 멤버였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쓰촨 교도소 측의 소개와 달리 정치범은 특별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 언론은 한때 중국 최고의 지도자로 물망에 오르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는 베이징 근처 친청교도소에서 죄수복이 아닌 양복을 입고 서예를 하면서 수감 생활을 한다고 보도했다. 직접 붓글씨로 쓴 편지는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당국에 재심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한 뒤 비리 혐의로 수감된 저우융캉 전 공산당 상무위원은 교도소내 독방 옆에 텃밭을 일궈 과일과 채소를 기른다고 전해졌다.
  • [씨줄날줄] 바이든과 시진핑/오일만 논설위원

    [씨줄날줄] 바이든과 시진핑/오일만 논설위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꽤 오랜 친분이 있다. 9년 전인 2012년 2월 13일 시진핑 당시 국가부주석은 9박 10일 일정으로 미국을 공식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시진핑은 중국의 차기 대권주자로 자리를 굳히는 과정이었고 부통령이었던 바이든은 호스트로서 접대를 총괄했다. 두 사람은 이후 18개월여에 걸쳐 8차례, 모두 25시간을 통역만 대동한 채 대화를 나눌 정도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방미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중국의 정치지형 자체를 바꾸는 엄청난 비밀 파일을 직접 전달했다는 증언들이 있다. 2012년은 후진타오 당총서기 임기 마지막 해로 권력 변동기였다.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시진핑은 상무위원이자 부주석으로 5세대 지도자의 핵심으로 황태자로 불렸지만 반(反)시진핑 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9명의 상무위원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저우융캉(周永康)을 필두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 링지화(令計劃) 중앙판공청 주임, 군부 실세였던 쉬차이허우(徐才厚) 군사위 부주석 등 이른바 신4인방의 쿠데타 음모가 진행되는 와중이었다. 시 부주석 방미 일주일 전인 2월 6일 보시라이 심복이었던 왕리쥔(王立軍) 충칭시 공안국장이자 부시장이 신변의 위험을 느끼면서 청두 미 총영사관으로 달려가 망명을 요청하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다. 이때 왕리쥔은 신4인방의 극비 쿠데타 음모가 적시된 비밀 파일을 미국에 건넸다. 이 파일은 당시 게리 로크 주중 미국대사를 통해 오바마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바이든 부통령이 차기 대권주자였던 시진핑에게 이 극비 문서를 넘기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대만 국방부 산하 군사정보국의 전 부국장 웡옌칭(翁衍慶·76) 예비역 중장이 그의 저서 ‘중공정보조직과 간첩 활동’(2018)을 통해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했다. “바이든 부통령은 왕리쥔이 제출한 보시라이·저우융캉의 쿠데타 계획 물증을 시진핑에게 보여 줬다. 시진핑은 베이징에 돌아온 뒤 후진타오 주석에게 내용을 보고했다.” 비밀 정보를 손에 쥔 시진핑은 후 주석과 연합전선을 펴 반격에 성공했고, 그해 11월 18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당 총서기로 등극했다. 앞서 바이든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당시 미 상원 외교위원장으로 중국의 세계 무대 진출을 지원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20일 제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미국은 중국을 자국 이익을 위협하는 제1의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이 시작한 무역·기술 전쟁을 이어받은 처지다. 친구에서 적으로 돌변한 두 사람의 관계가 사뭇 관심이다. oilman@seoul.co.kr
  • 시진핑의 경고?… 中 ‘2인자’ 왕치산 前보좌진 비리 조사

    시진핑의 경고?… 中 ‘2인자’ 왕치산 前보좌진 비리 조사

    시진핑(67) 중국 국가주석의 고위층 사정 작업을 뜻하는 ‘호랑이 사냥’이 재개됐다. 이번에는 시 주석의 ‘오른팔’로 불리던 왕치산(72) 국가부주석의 핵심 보좌진이어서 중국 전역이 시끄럽다. 중국 지도층의 일거수일투족을 잘 아는 왕 부주석에게 사정의 칼날이 겨눠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4일 대만 빈과일보는 “중국 공산당 감찰기구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국가감찰위원회가 중앙기율위 고위직을 지낸 둥훙(67)을 붙잡아 심각한 기율·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보도했다. 둥훙은 1998년부터 광둥성과 하이난성, 베이징 등에서 왕 부주석과 함께 일했다. 특히 시 주석 집권 1기(2012~2017)에 정치국 상무위원 겸 중앙기율위 서기(위원장)를 맡은 왕치산을 도와 반부패 사정 작업에 앞장섰다. 지난달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사태 때 시 주석을 ‘벌거벗은 광대’라고 비난한 런즈창(69) 전 화위안그룹 회장에게 징역 18년형을 선고했다. 런 회장은 왕 부주석과 막역한 사이다. 일각에서는 왕 부주석의 측근들이 잇따라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두고 시 주석이 ‘무언의 경고’를 보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는다. 그는 시 주석이 집권하자 곧바로 반부패 드라이브에 나서 보시라이(71) 전 충칭시 서기와 저우융캉(78) 전 정치국 상무위원 등 거물을 낙마시켰다. 공식 서열에 관계없이 늘 ‘2인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하지만 2017년 6월 미국으로 망명한 억만장자 궈언구이(50)가 “왕치산이 엄청난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으며 영화배우 판빙빙(39)에게 성상납을 받았다”고 주장해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이듬해 3월 시 주석은 ‘7상 8하’(67세까지 공직을 맡고 68세 이후로는 은퇴) 원칙을 깨면서까지 그를 국가부주석에 임명해 논란이 됐다. 시 주석이 중국 고위층의 부패 내역을 샅샅이 알고 있을 왕 부주석을 쉽게 내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이를 반영하듯 왕 부주석은 지난달 30일 열린 국경절 경축 만찬에도 시 주석 등 중국 최고지도부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덧붙였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축제 분위기 속에 끌어내려진 청두 미 영사관 성조기

    축제 분위기 속에 끌어내려진 청두 미 영사관 성조기

    수천명의 중국인 몰려 미국 영사관 폐쇄 관람 격화하는 미중 갈등 속에 청두 미국 총영사관의 성조기가 27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끌어내려 졌다. 미국이 휴스턴의 중국 총영사관을 폐쇄한 방식 그대로 중국도 청두의 미국 총영사관을 폐쇄했다. 중국 외교부는 메신저인 위챗 공식 계정을 통해 이날 중국 관리들이 청두 미국 총영사관의 정문으로 진입해 구역을 넘겨받았다고 보도했다. 반면 주중 미국 대사관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공식 계정에 “오늘 청두 미국 총영사관에 작별 인사를 한다. 우리는 영원히 널 그리워할 것”이란 게시물을 올렸다. 이날 오전 6시 24분 청두 미 총영사관에서 성조기가 마지막으로 휘날렸고, 수천 명의 중국인들은 이 광경을 축제 분위기 속에서 지켜보았다. 많은 중국인들은 미국 총영사관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려 하는 바람에 경찰이 군중을 통제해야만 했다. 미국 총영사관 폐쇄를 보기 위해 시안이나 하이난에서 오는 등 먼 거리를 이동한 중국인 관광객도 많았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보도했다. 영사관 길 건너에서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는 이날 하루 매상이 2배나 껑충 뛰기도 했다.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 쉬쥔칭(60)은 “사람들은 그저 궁금해서 모인 것이라고 본다”며 “중국과 미국이 협력을 중단하면 세계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미국 영사관은 다시 곧 문을 열 것”이란 바람을 전했다.미국 11월 대선 앞두고 미중갈등 악화 우려 1985년 문을 연 청두 미국 총영사관에서는 중국 현지 직원 150명과 미국 외교관 50여명이 근무했다. 1999년 미국이 유고 베오그라드의 중국 대사관을 미사일로 오폭했을 때 반미 시위대가 영사관을 둘러싸는 등 미중 갈등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정적이었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부하도 청두 미국 영사관에 뛰어들어 미국 망명을 신청했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스인홍 중국 인민대 교수는 미국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중국 총영사관을 추가 폐쇄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곳에 중국 인민해방군과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받던 중국 여성 연구자가 숨었다가 체포됐기 때문이다. 스 교수는 “미국은 중국과 모든 부문에 걸쳐 다퉈보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며 “6개월 안에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 중국에 대해 또 다른 법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션딩리 중국 푸단대 교수는 “미중 양국이 심각한 디커플링(탈동조화)을 하고 있어 심지어 외교 관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고 본다”며 “외교관계 단절은 예전에는 세계화때문에 불가능했지만 지금은 양국이 심각하게 서로 멀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유타 등 세 주 주민에 우편 ‘보석 봉지’, 열어 보니 중국산 씨앗

    유타 등 세 주 주민에 우편 ‘보석 봉지’, 열어 보니 중국산 씨앗

    유타주 오툴에 사는 로리 컬리를 비롯한 미국 전역의 여러 주민들이 한자로 보석이라고 겉에 적힌 봉지를 우편으로 받았는데 그 안에는 중국에서 보낸 정체 불명의 씨앗들이 들어 있었다. 컬리는 26일(이하 현지시간) 폭스 13 KSTU 채널 인터뷰를 통해 “지난 21일 우편 봉지를 받고 열어 보니 씨앗들이 들어 있었다. 분명히 그것들은 보석이 아니었다”고 털어놓았다. 버지니아주 농업 및 소비자부(VDACS)도 지난 24일 성명을 발표해 여러 주민들이 중국에서 보낸 것으로 보이는 씨앗 봉지들을 받았다고 확인하면서 씨앗들을 함부로 심지 말고 당국에 신고해줄 것을 당부했다. 유타주 농업 및 식품부도 관세 및 국경보호국과 협력해 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유타주에서는 적어도 40명의 주민이 문제의 봉지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고 버지니아와 워싱턴 주에서도 수십 명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숫자는 공개되지 않았다. 씨앗의 정체를 밝혀내려면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식물 종을 남의 나라에 함부로 보내는 일은 커다란 위협으로 간주된다. 2016년 국립 과학 아카데미(NAC)가 곤충과 병원균이 얼마나 이 지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살펴 이런 행위가 글로벌 농업에 수십억 달러의 위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바 있다. 한편 미국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 폐쇄에 대한 보복 조치로 폐쇄 요구를 받은 청두(成都) 주재 미국 총영사관이 27일 오전 10시(현지시간)에 완전히 문을 닫았다. 중국 외교부도 오전 11시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계정을 통해 “중국의 요구에 따라 청두 미국 총영사관이 폐쇄됐다”면서 “중국 담당 부문은 이후 총영사관 정문으로 진입해 접수 업무를 집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 군공사(군비관리사)는 이날 정오 웨이보를 통해 “우리는 정문을 통해 들어가 정당하게 (청두 미 총영사관)을 접수 절차를 집행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청두 미 총영사관은 지난 사흘 폐쇄 준비를 위해 이사용 화물 트럭 5대를 투입했다. 이날 오전 6시 18분 성조기를 내리면서 총영사관 폐쇄 절차를 사실상 마무리했다. 이로써 1985년 문을 연 청두 총영사관은 35년 만에 처음으로 업무를 중단했다. 중국 매체를 비롯해 주요 외신, 청두 주민 수백 명은 폐쇄 시한인 오전 10시를 전후해 총영사관 앞에 모여들어 공안의 총영사관 진입이 이뤄지지 않자 “어서 서둘러라”, “이미 시간이 지났다”, “당장 강제로 끌어내라” 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청두 총영사관은 쓰촨(四川), 윈난(雲南), 구이저우(貴州), 충칭(重慶) 등과 함께 신장(新疆)과 티베트 지역을 관할해 미국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특히 이곳은 2012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의 실각 사태 당시 미중 충돌이 벌어진 장소로도 유명하다. 당시 보시라이의 부하였던 왕리쥔(王立軍) 전 국장이 보시라이와의 다툼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청두 총영사관으로 뛰어들어 망명을 요청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미국 유타주 오툴에 사는 주민 로리 컬리의 우편함에 배달된 중국산 씨앗 봉지들. 일간 새크라멘토 비 홈페이지 캡처
  • 중국, 미국에 ‘진짜 고통’ 준다…외교관 추방 보복도 암시

    중국, 미국에 ‘진짜 고통’ 준다…외교관 추방 보복도 암시

    티베트 관할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중미갈등의 중심지 중국이 24일 미국의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폐쇄 조치에 대한 보복으로 폐쇄 명령을 내린 청두 미국 총영사관은 어떤 곳일까.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미국이 휴스턴 총영사관을 지난 21일 72시간 안에 폐쇄하라고 명령하면서, 미국에 ‘진짜 고통’을 주기 위해 중국이 반격을 가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남부 쓰촨성 청두의 미국 총영사관은 이날 내려진 중국 외교부의 명령에 따라 모든 업무를 일단 중단해야만 한다. 중국 외교부는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폐쇄가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으며, 이러한 대응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모든 책임은 미국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청두의 미국 총영사관은 지난 1985년 문을 열었으며,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분리독립운동이 이어져 미국의 집중 관심을 받고 있는 티베트 지역을 관할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시절에 개설된 청두 총영사관은 지난 1999년 베오그라드 중국 대사관이 미국의 미사일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자 반미 시위대로 둘러싸이기도 했다. 2012년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적이었던 보시라이 전 충칭시 서기의 실각 사태로 미중 충돌이 벌어진 곳이기도 하다. 당시 보시라이의 부하였던 왕리쥔 전 국장이 보시라이와의 다툼에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청두 총영사관으로 뛰어들어 망명을 요청했지만, 망명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국 관영연구원, 주홍콩 외교관 추방 조치 암시 중국이 미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우한 총영사관을 폐쇄할 것이란 관측이 있었지만 결국 청두 총영사관 폐쇄 명령을 내린 것은 이와 같은 정치적 배경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우한 총영사관의 미국 직원들이 복귀하지 않은 상태라 우한 총영사관의 폐쇄는 중국 입장에서 동등한 보복 조치가 아니기도 하다. 중국 사회과학원 소속 미국 전문가 루샹(盧翔) 연구원은 “미국이 중국의 외교기관을 더 이상 폐쇄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휴스턴 중국 총영사관 폐쇄는 코로나19 방역 실패로 실망한, 특히 공화당 지지자율이 높은 텍사스 주민의 관심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루 연구원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율이 높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중국 외교기관에 대한 폐쇄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1월 재선 가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이 만약 미친 짓을 계속하면 중국도 또 다른 보복 카드를 쓸 수 있다”며 “소위 외교관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미 정보기관 직원인 주홍콩 미국 외교관을 추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시진핑과 푸틴의 꼼수/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시진핑과 푸틴의 꼼수/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며칠 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가 느닷없이 내각 총사퇴를 발표했다. 메드베데프의 ‘깜짝 사임’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대통령 3연임 금지를 우회해 권력을 장악하는 부분 개헌 국민투표를 제안하자마자 나온 까닭에 푸틴의 ‘종신 집권’을 위한 길 터주기라는 합리적 의심을 낳았다. 이런 푸틴의 정치적 행보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빼닮았다. 시진핑은 1997년 15차 당대회에서 중앙위 후보위원에 선출됐다. 투표 결과 151명 중 151위였다. 그를 위해 150명 정원을 늘렸다는 후문이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당시 공청단 제1서기를 맡아 승승장구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17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은 리커창을 따돌리고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후계자로 지명됐다. 후진타오가 ‘상왕’ 장쩌민(江澤民)을 모시던 ‘힘든’ 모습을 목도한 시진핑은 2012년 집권하기 직전부터 권력을 향해 폭주 기관차처럼 달렸다. 당정군 장악과 정적 제거 작업을 치밀하게 진행한 것이다. 반부패운동은 만연한 부패 척결을 통해 민심을 얻는 효과 못지않게 정적 제거에도 유효한 카드였다. 권력과 부(富)를 양손에 쥐었던 저우융캉(周永康) 정치국 상무위원, 보시라이(薄熙來) 충칭시 당서기, 쉬차이허우(徐才厚) 군사위 부주석, ‘후진타오의 오른팔’ 링지화(令計劃) 통일전선부장 등 거물 정적을 차례로 감옥에 보냈고, ‘호랑이’로 불리는 장관급 관리 191명에게 줄줄이 쇠고랑을 채웠다. 시진핑은 덩샤오핑(鄧小平) 시절에 사용됐던 ‘당핵심’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아 상무위원 7인의 집단지도체제를 무력화시켰다. 시진핑 집권 당시 ‘시ㆍ리 체제 출범’이라며 리커창과 권력을 분점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시진핑 사상’을 당장(黨章)에 올리며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 반열에 올라선 시진핑은 격대지정(隔代指定·차차기 지도자를 미리 정함)의 전통을 깨고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총서기나 군사위 주석은 임기 제한이 없지만 국가주석은 ‘3연임 불가’라는 걸림돌이 있었다. 이미 1인 체제를 확고히 구축했던 시진핑은 개헌을 통해 국가주석 임기 제한을 없애 장기 집권의 길을 닦았다. 푸틴 역시 비슷한 정치 행로를 걸었다. 국가안보위원회(KGB) 출신인 그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을 보좌한 덕분에 총리로 전격 발탁됐다. 푸틴이 러시아 국민의 지지를 받은 것은 체첸 반군의 비극적 테러 사건이었다. 신경가스 살포 등 무자비하게 진압했던 푸틴은 단호한 지도자, 러시아 민족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2000년대 들어 국제 유가의 고공 행진에 힘입어 정적 올리가르히(재벌) 세력에 대한 숙청을 벌여 경제권도 장악했다. 2000~2008년 대통령직을 수행한 푸틴은 3연임이 금지돼 할 수 없이 총리로 한발 물러났다. 이후 대통령 임기는 6년으로 늘어났고 다시 대통령에 올랐다. 2018년 연임에 성공한 그는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2018년 3월 장기 집권의 문을 먼저 연 시진핑은 1주일 뒤 대선에서 압승한 푸틴과 서로 당선 축전을 교환하며 ‘스트롱맨 브로맨스’를 과시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2년 전 ‘신독재 4단계’를 제시하며 러시아를 지목했다. 첫 번째 단계는 위기가 도래하고 자신을 구해 주겠다는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선출한다. 두 번째는 이 지도자가 정적을 찾아내는 단계다. 세 번째는 지도자의 길을 가로막는 사법기관 등 독립기구들을 찍어 누른다. 마지막으로 규칙을 바꿔 장기 집권으로 나아간다. 중국은 지목하지 않았다. 어찌 하건 지도자를 국민투표로 뽑는 러시아와 달리 공산당원 대표 2270명이 당중앙의 뜻을 받들어 지도자를 선출하는 과정을 14억 인민들은 지켜봐야만 했으니까. khkim@seoul.co.kr
  • 중국 공산정권 수립 70주년 맞아 대규모 특사 단행

    중국 공산정권 수립 70주년 맞아 대규모 특사 단행

    중국 정부가 오는 10월 공산정권 수립 70주년을 맞아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후 9번째이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상무위원회는 29일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항일전쟁에 참가하는 등 9가지 분류에 해당하는 죄인들을 특사로 석방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이날 건국 이래 9번째인 특사 결정문건에 서명해 즉각 공포했다. 특사자들은 법원의 결정 즉시 차례로 풀려난다. 이번 특사는 공산당 지도부가 사회주의 정권 출범 70주년을 향한 축하 무드를 고양하고 공산당의 구심력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특사 대상은 올해 1월 1일 이전에 확정 판결을 받은 죄수들 가운데 국가의 주권과 안전, 영토를 수호하는 대외작전에 참가하거나 모범 노동자로서 표창을 받은 적이 있는 이들이다. 또한 과잉 방위나 긴급 회피 행위 등으로 3년 이하 징역형을 선고받거나 잔여 형기가 1년 미만인 죄수도 포함시켰다. 그러나 부패와 오직 혐의로 복역하는 수형자는 제외시켰다. 이에 따라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등 정쟁에 휘말려 비리로 낙마한 정치 거물들도 빠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중국 당국은 2015년에도 ‘항일전쟁과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을 기념해 특사를 실시했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