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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로 본 오늘…민주화 짓밟은 12·12 사태, 군사 반란

    역사로 본 오늘…민주화 짓밟은 12·12 사태, 군사 반란

    1979년 12월 12일. 38년 전 오늘은 전두환, 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이 최규하 대통령 승인 없이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 정병주 특수전사령부 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부 사령관 등을 체포한 날이다. 12·12 군사 반란 또는 12·12사태로 불린다.이들은 정 총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김재규가 시해하는 과정에서 방조한 혐의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은 12.12 군사 반란을 통해 군부 권력을 장악, 정치적인 실세로 등장했다. 신군부는 12월 13일 국방부·중앙청 등을 점령하고, 방송국과 신문사를 통제했다. 1980년 5월.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는 5·17 쿠데타로 사실상 정권을 장악했다. 5월 18일 쿠데타에 항거한 시민을 상대로 공수부대를 광주에 투입해 총을 발포하는 등 불법 진압을 했다. 5.18 민주화운동 희생자 수는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가 약 200여명, 부상 및 피해자는 약4300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두환은 1980년 8월 22일 육군 대장으로 예편, 다음 달인 1980년 9월 대한민국 제11대 대통령이 됐다.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김영삼 대통령은 12·12 사건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했다. 90년대 들어 역사 바로 세우기 작업을 통해 1994년 12월 검찰은 이 사건은 군사반란이 맞지만 국내 혼란을 우려 기소 유예 처분한다고 발표했다. 12·12 사건 기소 유예 처분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1995년 1월 20일 12·12사건 기소유예처분취소청구에 대해 각하 및 기각 결정을 내렸다. 1995년 7월 검찰은 5·18 사건은 전두환 정국 장악 의도에 진행됐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도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기소하지 않았다. 이후 국회가 5·18 특별법을 제정, 신군부 인사들의 새로운 혐의가 발견되자 검찰은 1995년 12월 12·12, 5·18 사건 재수사에 나섰다. 전두환, 노태우 등 신군부 핵심 인사는 1996년 1월 23일 5·18 사건에서의 내란혐의로, 1996년 2월 28일 12·12 사건의 반란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12·12, 5·18 사건 재판 1심서 전두환은 사형, 노태우는 무기징역 판결이 내려졌다. 고등법원에서 전두환은 무기징역으로 감경됐다. 대한민국 대법원은 12·12 군사반란에 대해 전두환과 노태우 등에게 반란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1996년 12월 16일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에 벌금 2205억원 추징을, 노태우에게 징역 15년, 벌금 2626억원 추징을 각각 선고했다. 그러나 1997년 대선 이후 정치 보복은 없다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와 김영삼 대통령의 합의에 따라 1997년 12월 22일 전두환과 노태우를 포함한 12·12, 5·18 사건 관계자들은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정치불안 장기화 경제침체 악순환

    필리핀은 정정불안과 경제침체의 악순환의 수렁속에 빠졌다? 27일 필리핀 정부의 국가비상사태 연장, 야당 지도자 구금·기소 등 초강수에도 불구, 정치불안이 수그러지지 않고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침체 탈피에 안감힘을 쓰던 필리핀이 정치불안의 장기화로 다시 경제침체와 정정불안이 반복하는 악순환의 늪에 빠져들었다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야당지도자 구금·기소 필리핀 정부는 이날 국가비상사태를 연장하기로 했다. 이그나치오 분예 필리핀 대통령실 대변인은 27일 “국가비상사태를 26일 해제하려 했으나 이날 일어난 보니파치오 해병대 기지에서의 쿠데타 사건으로 해제를 늦췄다.”고 해명했다. 분예 대변인은 비상사태 해제연기가 얼마나 더 오래 갈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불만과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또 당국은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 정권의 붕괴를 계획한 것으로 알려진 고위 경찰간부 4명을 체포하고 야당 지도자 16명을 반란혐의로 기소하는 등 반대파 색출을 밀어붙이고 있다.●다음 수순은 계엄령? 필리핀 경찰은 아로요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해온 좌파성향의 하원의원 4명과 다른 야당인사 12명을 반란 및 쿠데타 혐의로 법무부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들 중 크리스핀 벨트란 의원 등은 구금상태고 일부는 도피 중이다. 경찰 ‘특별행동부대’ 지휘관직에서 해고된 마르셀리노 프란코 경무관과 고위 간부 3명도 감금상태에 있다고 아르투로 롬미바오 경찰청장이 밝혔다. 게다가 정부는 이날 자로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 가담을 막기 위해 전국의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야권은 글로리아 아로요 대통령이 비상령 선포, 휴교령에 이어 사태가 진정되지 않을 경우 다음 수순으로 계엄령까지 선포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들썩이는 군부세력 가두 시위는 줄어들었지만 정국 안정의 열쇄를 쥔 군부의 동요가 가라앉지 않고 있어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아로요 정부는 이미 쿠데타 음모에 연루된 다닐로 림 준장을 구금하고 레나토 미란다 해병대사령관을 면직했지만 군부의 반발은 수그러지지 않았다. 어느때이고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현재 표면적으로 에프렌 아부 총참모총장의 지휘아래 있지만 군부의 불만이 높은 데다 군 지지 기반이 취약한 아로요 대통령이 군부를 제대로 장악하지 못해 언제든지 불만이 폭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빨간불 켜진 경제 해외송금 증가 등에 힘입어 최근 숨통을 돌렸던 경제상황도 고유가에 정정불안까지 겹쳐 다시 휘청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1달러대 50페소였던 페소화 가치는 27일 52.20달러를 기록하는 등 곤두박질치고 있다. 페소화 가치 하락과 함께 경제성장률도 둔화될 전망이다. 지난 2004년 경제성장률은 6.1%였으나 올해에는 5%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은 연소득 270달러 이하의 극빈층이 전체 인구의 35%를 차지하는 필리핀 민초들의 불만을 더욱 고조시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7일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국가 부채가 많은 필리핀의 부담이 환율과 금리 때문에 가중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4) 문인방의 ‘정감록’ 사건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44) 문인방의 ‘정감록’ 사건

    정조7년(1783) 1월15일, 인정전에 모인 신하들은 ‘정감록’을 되뇌이던 역적들을 일망타진하게 된 사실을 기뻐하며 국왕에게 축하인사를 올렸다. 난리가 토벌되면 되풀이되는 하나의 관습이었다. 이날 정조는 전국에 사면령을 반포하였다. 웬만한 죄인은 다 풀어주라는 것으로, 이 역시 뒤숭숭해진 민심을 달래기 위한 상투적인 조치였다. 왕은 포고문에서 문제의 정감록 사건을 일으킨 문인방과 이경래 등 주범들의 죄상을 간단히 요약했다. 사면령을 내리는 동시에, 역모사건의 전모를 백성들에게 간단히 알려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실록, 정조 7년 1월15일 정미) 먼저 사건의 중심에 있던 문인방의 죄를 성토한다. 문인방은 삿된 술수를 써 백성들을 현혹하였다고 했다. 그가 역모를 꾸민 것은 고대 중국에서 일어난 황건적의 난과 비슷하다고 했다. 매우 심한 과장이었다. 그 옛날 장각이 이끈 황건적은 중국 한나라를 기우뚱거리게 만들었다. 문인방 사건이 미수에 그친 것과는 천양지차다. 정조는 문인방이 각지를 떠돌며 힘센 장사를 모으려 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그러면서 이것이 명종 때 유명한 도적 임꺽정 사건과 유사하다고 말한다. 역시 과장된 표현이다. 문인방은 백천식, 김훈 등과 짜고 상주의 백학산 아래 만든 소굴에 머물렀다. 이 사건이 발각된 것은 그들과 한통속이던 박서집이 밀고했기 때문이었다. 전라도에서 체포된 문인방은 전주 감영에서 취조를 받았고, 곧이어 서울로 붙들려가 본격적인 신문을 받았다. 그는 역모 사실을 모두 실토했다. 군량을 담당할 사람, 난리를 일으킬 때 선봉장을 맡을 사람 등 가담자들의 역할은 이미 정확히 정해져 있었다고 했다. 그 가운데는 도원수도 있었고, 대선생(大先生)으로 불리는 선비까지 존재했다. 문인방 사건 때 도원수로 내정된 이는 이경래였다. 이 사건이 뒷날의 여러 정감록 사건과 뚜렷이 구별되는 점은 송덕상(宋德相)이란 유학자를 ‘대선생’이라 떠받들며,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서약했다는 점이다. 정조 즉위 초 산림(山林·재야에 묻혀 있던 큰선비)의 중심인물로 천거돼 조정에서 크게 활약한 송덕상이 정감록 사건에 연루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각별히 주목된다. ●산림 송덕상과 권신 홍국영 문인방 사건으로 조정이 한 차례 홍역을 겪기 5년 전이었다. 대대로 충청도 회덕에 살고 있던 성리학자 송덕상은 산림으로 천거되었다. 정조는 송덕상의 학덕(學德)에 크게 감복한 듯, 그의 건의라면 무엇이든 대체로 수용하는 편이었다. 조선 후기에는 이른바 산림이란 명목으로 향리에 묻혀 지내던 큰선비들이 일시에 높은 벼슬에 등용되곤 했다. 그런데 영조 이후로는 산림이란 카드가 집권세력인 노론에 의해 정국수습용 임시방편으로 활용되는 듯한 분위기도 있었다. 마치 1970∼80년대 한국의 국무총리 자리가 그러했듯, 산림은 일종의 얼굴마담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가끔 예외도 있었다. 효종 때 북벌론(北伐論)을 내세우며 정국을 홀로 이끌던 송시열(宋時烈)의 경우다. 그는 산림으로서 노론의 명실상부한 우두머리였다. 산림 송덕상은 바로 송시열의 자손이었으나 그 처지는 자기 조상과는 너무도 달랐다. 송덕상은 정조 즉위에 공을 세운 홍국영 일파의 추천으로 조정에 등용된 만큼 그들의 정치적 견해를 대변했다. 정조 3년(1779), 이조참판 송덕상은 홍국영 등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김구주의 처벌을 강력히 요구한 적이 있다.(실록, 정조 3년 6월18일 경오) 알 사람은 이미 다 알지만 홍국영은 정조의 외척이었다. 그는 영조 말기 세손(世孫·정조)의 집권을 반대하던 벽파 정후겸, 홍인한, 김구주 등을 물리치고 정조를 즉위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그 뒤 홍국영은 수년간 반대파를 모두 내쫓는 데 부심하였다. 그는 정조의 신변보호를 구실로 숙위소를 창설해 직접 그 책임을 도맡으면서 더욱더 세도를 부리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홍국영의 권력은 날로 비대해졌고, 과거에 그의 정적이었던 정후겸을 방불케 했다. 사람들은 홍국영을 ‘대후겸(大厚謙)’이라 부르며 비웃었다. 홍국영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했다. 자기의 누이동생을 정조의 후궁으로 들여보내 장차 외척으로 세력을 굳히려 했다. 하지만 일년 만에 누이 원빈이 병사하고 말았다. 홍국영은 꾀를 내어 왕제(王弟) 은언군 인의 아들 담을 원빈의 양자로 삼아 훗날 세자로 정할 생각을 가졌다. 이것이 여의치 않게 되자 담에게 역모죄를 씌워 죽였다. 정조4년(1780)에는 왕비 김씨를 살해하려고 음식에 독약을 넣었다가 발각되기도 했다. 그 일로 홍국영은 실각했고 그 여파는 송덕상에게도 미쳤다. 송덕상은 재빨리 상소를 올려 홍국영과 자기의 사이가 별것 아님을 애써 변명하려 했다. 그러나 홍문관 교리 서유성 등 홍국영의 반대파들은 송덕상이 겉으론 산림으로 행세하면서 실제는 홍국영에게 아부를 일삼아 권력자가 시키는 대로 왕세자 책봉 건에 관여하는 등 수많은 죄를 저질렀다고 맹렬히 규탄했다.(실록, 정조 5년 4월28일 신미) 결국 송덕상 역시 조정에서 물러나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로선 억울한 점이 있었을 테지만, 이런 식의 정계 개편은 집권세력이 바뀔 때마다 늘 되풀이되어 온 일이다. ●송덕상의 제자 문인방 뜻하지 않은 스승의 정치적 몰락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타격으로 다가왔다. 스승이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는 한 그들의 미래 역시 어두웠다. 보통 스승이 중벌을 받으면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미래를 기약하게 된다. 일단 죽림으로 들어간 젊은 선비들은 시서(詩書)를 연마하며 세상이 바뀌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운이 좋아 언젠가 관리로 등용되기만 하면 왕에게 스승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 보통이다. 중종 때 역적으로 몰려 죽은 개혁정치가 조광조의 복권과정이 바로 그랬다. 하지만 송덕상의 제자들 가운데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한 사람들이 있었다. 문인방 등이 바로 그러하다. 그들은 ‘정감록’을 빙자해 난리를 꾸몄다. 과연 제자들이 스승 송덕상을 위해 역모를 꾀했는지, 아니면 우연히 송덕상과 역적들 사이에 사제관계가 형성돼 있었던 것인지, 쉽게 가늠하기는 어렵다. 여하튼 송덕상의 몇몇 제자들은 군사적 행동을 준비하다 발각돼 역적으로 처형되었고, 그 여파로 송덕상 역시 옥에 갇힌 것이 사실이다. 노론들 사이에서 박학다식한 큰선비로 통했던 송덕상은 여러 달 동안 영어(囹圄)의 몸으로 고통을 받다 드디어는 세상을 뜨고 말았다.(실록, 정조 7년 1월7일 기해) 다른 역모사건들도 그렇지만 이 사건 역시 피의자들이 자기들의 처지를 변호하며 남긴 기록은 찾아볼 길이 없다. 있다면 취조문서가 전부다. 사건을 수사한 국가의 입장에서 사건을 완전히 왜곡하였을 가능성마저 적지 않다. 그 점을 염두에 두면서 문인방 사건의 내막을 살펴보겠다. 송덕상의 제자 신형하는 황해도 평산 사람이다. 그는 송덕상의 억울함을 풀어야겠다며 스승을 변호하는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한다. 그것이 문제로 부각되어 신형하는 마침내 전라도의 한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마찬가지로 송덕상을 추종하던 황해도 해주의 선비 박서집은 시를 지어 신형하의 절의를 기렸다. 그 시가 또 문제되어 박서집도 섬으로 귀양을 갔다. 박서집은 유배지에서 우연히 문인방이란 사람과 동거하게 되었다. 평안도 출신인 문인방은 놀랍게도 본심을 털어놓았다. 그는 송덕상의 억울한 처지를 생각해서 장차 군사를 일으켜 서울로 쳐들어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물론 박서집은 그에 찬동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 박서집은 겁이 났다. 그는 섬에 파견돼 유배자를 관리하는 사람에게 문인방의 역모사건을 밀고하였다. 그 섬은 전라도 관할이어서 깜짝 놀란 전라관찰사는 급히 영을 내려 관련자 전원을 체포하였다. 전주와 서울에서 혹독한 신문이 진행되었다. 이 과정에서 문인방은 자기가 역모를 꾸민 사실을 시인하였다. 함께 붙들려온 백천식도 반란혐의를 인정하였다. 그들은 밀고자 박서집과 함께 일의 성사를 기원하며 하늘에 축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평민지식인으로 술사이기도 했던 문인방은 ‘정감록’의 한 구절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때 ‘여섯 글자’의 흉악한 예언이 문제로 부각되었으나 그 내용은 알 수 없다. 그 구절은 문인방이 소지했던 ‘경험록’이란 예언서에도 나와 있다고 하였다. 현재 ‘경험록’이란 책자는 남아 있지 않다. 이 사건 당시 문인방은 모두 4종류나 되는 예언서를 소지하고 있었다. 평소 그가 이른바 비결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점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당류 이경래는 강원도 양양 임천리에 살며, 도창국은 평안도 영원 내락림에 있고, 김정언과 오성현은 함경도 안변에 거주하고, 곽종대는 평안도 순안에 살며, 이밖에 김훈과 백천식이 또 있습니다. 만일 난이 성공하게 되면 대선생으로 청계 선생을 모시려 하는데, 이는 송덕상이며 그 손자 송계유는 지금 나이 28세로 저와 마음을 합해 역모를 꾀했습니다.” 이 말에 따르면, 문인방처럼 고향이 평안도인 사람도 있지만 함경도 출신도 상당했던 모양이다. 이밖에 강원도 출신도 역모에 참여했다. 아울러 송덕상의 집안사람들도 일부 포섭돼 있던 것 같다. 그러나 과연 송덕상 일가가 역모사건에 참여하였을지는 의심스러운 점이 없지 않다. 회덕에 세거하던 송씨 집안은 조선사회에서 손꼽히는 명문 양반이었다. 설사 그들이 송덕상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해도 그것은 일시적인 일이었다. 조선사회에서 그들이 향유한 특권적인 지위는 이런 정도의 일로는 무너질 리가 없었다. 따라서 송덕상의 손자가 모의에 참여했다는 문인방의 진술은 신문과정에서 억지로 강요됐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송덕상의 제자는 주로 서울과 충청도에 거주했을 텐데, 하필 조선사회의 변경인 서북지방과 강원도 해안지방의 몇몇 제자들만 스승을 위해 난리를 꾸몄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양반과 평민지식인들의 역적모의 사건의 주모자로 분류된 문인방은 힘세고 날랜 평안도 출신의 장사 도창국과 함께 강원도 양양의 선비 이경래와 친했다. 이경래 역시 송덕상의 제자였는데 정조5년(1781) 9월 문인방 등이 이경래를 찾아갔을 때 이경래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 스승님 송덕상이 조정에 죄를 얻어 뜻밖에 멀리 귀양을 가 계시므로 지금 사태가 급해졌다. 빨리 일을 도모하는 게 좋겠다. 문인방 그대가 인재를 잘만 모집하면 일이 성사된 다음 장수든 정승이든 여하튼 높이 등용하겠다.” 문인방 등은 그 말에 기뻐하며 이경래를 도원수로 삼고, 도창국을 선봉장으로 정했다. 이경래는 양양에 일가친척이 많은 데다가 노복도 숫자가 많으므로, 일단 유사시에 난을 일으켜 양양군수를 잡아 죽이고 무기와 병사를 확보하는 것쯤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다음 이웃 고을인 간성을 공격하고 강릉으로 밀고 들어간다는 계획이 세워졌다. 그 뒤 반란군은 원주를 함락시키고 곧이어 서울로 진격해 동대문을 거쳐 대궐을 점령하기로 하였다. 거사가 성공한 다음 그들은 송덕상을 ‘대선생’으로 책봉하기로 뜻을 모았다. 반란을 일으킬 시기는 갑진년(1784) 7월과 9월 사이로 정해졌다. 이경래의 집안은 강원도 양양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명문가였다. 이경래의 친척 공조참의 이택징은 우선적인 포섭대상으로 떠올랐다. 이택징은 정조의 왕권강화정책에 반대해 규장각 운영을 강도 높게 비난한 적이 있다.“규장각은 전하의 사적인 관서에 지나지 않고, 규장각의 관리들은 전하의 사사로운 신하일 뿐입니다.” 이처럼 정조의 정책적 고려에 날카롭게 맞선 인물이었다. 문인방 등은 이런 이택징을 서둘러 합류시키고, 그들을 지렛대 삼아 서울의 여러 양반들을 역모에 끌어들이기로 했다. 당시 서울에는 몇 해 전에 거세된 홍국영 일파를 비롯해 정조의 왕권강화정책에 반대하며 울분을 삭이지 못해 어쩔 줄 몰라하던 양반들이 많았다. 조선은 양반의 국가라, 양반들이 국가에 반기를 들 거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영조 초년 삼남지방에서 일어난 무신란(1728)을 비롯해 몰락한 양반들이 반란을 꾀한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개중에는 정적(政敵)들에 의해 완전히 조작된 역모사건도 없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17세기 초에 일어난 인조반정(1622)은 양반들이 반란을 통해 정권을 교체한 본보기였다. 그런 점에서 문인방과 이경래 등이 무력을 통해 정권을 탈취하겠다는 소망을 품게 된 것도 전혀 터무니없는 일만은 아니었다. 문인방 사건의 경우 역모사건이 새롭게 달라진 측면도 있다. 권좌에서 밀려난 제일급의 양반들이 서북지방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평민지식인들 또는 술객(術客)들과 합세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모의과정에서 평민지식인들의 역할이 점차 강화되었다는 점을 놓쳐서도 안 될 것이다. 이 사건을 두고 볼 때 이경래나 이택징과 같은 일급 양반들보다 평민지식인 문인방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해 보인다. 또 한 가지 강조할 사항은 ‘정감록’을 포함한 각종 예언서에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사실이다. 문인방은 양양과 서울은 일단 이경래에게 부탁해 놓고 자신은 삼남지방으로 내려갔다. 힘이 센 장사들을 다수 모집해 거사를 성공으로 이끌 생각이었다. 그가 관헌에 체포되기 직전 충청도 진천에 머물고 있던 것도 장사를 모으기 위해서였다.(실록, 정조 6년 11월20일 계축) ●평민지식인이 송덕상 같은 양반과 결탁하다니 억울하게 멸시받던 평민지식인들로서야 송덕상과 같은 명문가 출신의 양반과 사귀고 싶어도 도저히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짐작은 매우 합리적으로 들리지만,18세기 조선사회의 실상과는 더 이상 부합되지 않는다. 문인방 사건 때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지만 용케 법망을 빠져나간 평민지식인들 중에 이규운이란 사람이 있다. 전국 각지를 떠돌며 훈장노릇을 하던 평민지식인이었다. 그런 이규운이 산림 송덕상과 서로 가까워진 것은 실로 우연한 기회에 비롯되었다. 정조 초년 이규운은 강원도 통천에 있었다. 통천은 송시열이 함경도로 귀양갔다 돌아오는 길에 잠시 머물던 곳이라 송시열의 기념비가 있었다. 이 비석을 다시 세우는 일로 이규운은 송덕상을 몇 차례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강원도 김화 수령으로 재임하던 송덕상의 아들까지도 사귀게 된다. 어렵게 대갓집과 연줄을 대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규운에게 돌아올 몫은 아무 것도 없었다. 쥐꼬리만 한 벼슬 한 개도 차지할 운이 아니었다. 이규운은 본래 평안도 선천 사람이었고 진짜 이름은 오도하라고 했다. 이규운은 고향을 떠나 강원도를 떠돌았다. 그는 서울 양반 이찬이란 사람을 대신해 과거시험 답안지를 써주었는데 그 덕에 이찬은 진사가 되었다. 제 이름을 걸면 아예 과거시험장 출입이 불가능한 이규운이었으나 그가 대필해준 글로 다른 사람은 진사가 되었다. 머리가 돌아버릴 것 같은 허탈과 공황 속에서 이규운은 ‘정감록’을 읽었고, 반란을 꿈꾸었다. 이규운은 송덕상 같은 양반을 위해 피를 흘릴 사람은 아니었다. 그와 같은 술객에게 송덕상의 명예회복은 구실에 지나지 않았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미 국무부 북한 96년 인권보고서

    ◎북 주민 75% 동요·적성층 분류/탈출자·정치범 약식재판 거친뒤 처형 북한에서는 초법적인 살인과 실종·고문·강제수용이 빈발하는 등 최악의 인권부재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고 6일 배포된 미 국무부의 96세계인권보고서가 밝혔다. 보고서는 또 김정일 체제하의 북한 주민중 75%가 동요층 및 적성분자로 분류돼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올해의 연례 인권보고서 가운데 북한에 관한 주요부분은 다음과 같다. ▲망명자들에 따르면 북한정권은 정치범,송환된 망명시도자,김정일에 대한 반란혐의가 있는 군장교 등을 예전과 마찬가지로 약식재판으로 처형하고 있다.「사회주의에 대한 반대」라는 애매한 형법조문을 걸어 사형이 언도되기도 한다. ▲북한은 최소한 20명의 일본인을 납치,억류하고 있는 것으로 일본 언론들은 추정하고 있다.중국과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동포들에 대한 납치 의혹도 제기된다. ▲북한의 죄수들은 거의 일상적으로 고문당하고 학대당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감옥의 고문·질병·기아와 해로운 환경의 방치로 사망했다고 믿을 만한소식통은 전하고 있다.노동자·학생·동료죄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개처형이 점점 빈번하게 실시된다.전가족이 같이 수감돼 「노동을 통한 재교육」의 혹독한 강제노역에 종사 된다.이들에게는 3년에 한번 밖에 의복이 지급되지 않으며 도망가지 못하도록 무거운 철 차꼬가 발에 채워진다.규칙을 어긴 죄수들은 똑바로 설 수도 없고 완전히 눕지도 못하는 「형벌 독방」에 수주일간이나 구금된다. ▲주민에 대한 구속·억류·추방이 북한정권 자의로 이뤄져 당국에 가족의 일원이 잡혀가더라도 위에서 말해주지 않는한 남은 가족들은 무슨 혐의인지조차 알 길이 없다. ▲북한정권은 지금도 주민을 「핵심」「동요층」「적성분자」 등 세가지로 분류하고 있으며 주민들을 당과 지도자에 대한 충성도를 따져 50여개의 구체적 범주로 세분한다.그 결과 전주민의 75%가 동요층 및 적성분자로 지목돼 있는 것으로 추산되며 적성분자층이 최소한 20%에 달한다고 망명자들은 입을 모은다.
  • 정치·행정개혁을 보고/오석홍 서울대 교수·행정학(특별기고)

    ◎가시적 성과 거둔 「과거청산」 문민정부의 긍지,그리고 국민지지와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고 추진한 개혁운동은 그 접근방법에 있어서 과거와는 구별되는 면모를 보여주었다.몇몇 충격적인 조치들은 국민의 갈채를 받기도 했다. 김영삼 행정부가 추진한 개혁의 중심테마는 정치·경제·사회의 정당성복원과 과거청산으로 집약할수 있다.정당성 복원은 바로 정당하지 못한 과거의 청산을 의미한다.정치·행정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곳에서 정당성을 회복하려는 노력과 그 성과는 두드러진 것이라 할 수 있다.정당성 복원사업은 공직사회의 분위기쇄신에 아주 큰 자극을 주었을 것이다. 정당성 복원은 민주적 원리의 복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김영삼행정부의 개혁은 권위주의 타파와 민주화라는 기본노선을 걸어왔다.권위주의적 과거의 청산,강압통치의 수단이 되었던 기관들의 축소와 기능제한,작은 정부의 추진,정부규제완화와 국민위주·고객위주의 행정개선 부패응징 등의 분야에서 상당히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현시대의 세계적 변화추세인 세계화·정치화·자치화·민간화·정보화에 능동적 또는 피동적으로 대응하는 노력도 있었다.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기구개편과 관리작용개선이 있었다.정치부문이 예전보다 활성화되어 정치에 의한 정부관료제 통제를 실질화해 나갈 희망을 갖게 되었다.지방자치단체장 선거까지 마쳐 본격적인 지방자치의 시대를 열어놓았다.정치화·자치화의 촉진은 민주주의의 부흥에 연결된 것이다.작은 정부의 추진,정부규제완화,민간위탁확대 등은 민간화를 지향하는 것이었다.지방자치의 진행에 따라 정부부문이 민간의 경영자세를 닮는 측면에서의 민간화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사회전반의 정보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정부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반부패운동에서는 과거에 건드리지 못했던 「소굴」을 파헤치는 과단성을 보이기도 했다.전직대통령들의 「비자금」수사에서 그러한 과단성이 확연했다.내란혐의·군사반란혐의에 대한 소추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문민정부의 개혁적 공적을 인정하지만 그 흠절과 한계를 또한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문민정부의 개혁은 일관성을 잃고 뒤뚱거릴 때가 많았다.정당성 복원과 과거청산에 순수성만을 고집할 수 없는 장애가 많았다.그러한 장애는 생각하기에 따라 치명적일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시간이 흐를수록 과거와의 재유착이라는 경향까지 보이게 되었다. 청산되어야 할 「과거」로 지목되고 포승에 묶여 법정에 출입하던 사람들이 얼마 안 있어 여당공천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되는 사례가 우리 정국의 딱한 사정을 상징한다. 문민정부는 과거의 유산을 안고 그 바탕위에서 출범했다는 것,체제화된 부패의 뿌리가 너무 깊다는 것,정당성 복원을 위한 투쟁은 오랜 세월에 걸쳐 정당성 결여의 정권과 기득권으로 유착된 다수와의 투쟁이라는 것등이 현 정부의 장애이며 부채다.과거의 내란세력은 아직도 선거인단 속에 상당히 광범한 지지기반을 가지고 있다.이것은 우리의 현실이며 이 현실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 5·18수사 이종찬본부장 일문일답

    ◎“국회의원 부정축재 수사계획 있다”/정의원 혐의 5·18군사반란에 국한/언론통폐합 추가로 밝혀진것 없어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이종찬본부장은 30일 하오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앞으로의 수사방향 등에 대해 설명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다른 5·18관련자들은 이미 기소됐는데 이들 세 의원도 곧 기소하나.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기소할 방침이다. ­남은 수사는 어떤 것인가. ▲일부 의원을 상대로 5·18사건 관련 혐의 이외에 부정비리 혐의도 수사할 계획이다. ­포착된 비리내용은. ▲앞으로 수사과정을 보면 알 것이다.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의원은 누구인가.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수사단서가 확보되면 모두 조사하겠다. ­정의원의 경우 검찰의 12·12사건 1차 수사결과 부화뇌동죄가 적용됐는데 이번에는 반란중요임무종사죄가 적용된 이유는. ▲이번 수사과정에서 정의원이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과 함께 주영복국방장관­이희성계엄사령과 황영시육참차장으로 이어지는 정식 군지휘계통에 끼어들어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과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광주시민을 살해한 혐의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혐의내용은 5·18사건 과정에서 이뤼진 군사반란 행위에만 국한된 것인가. ▲그렇다.불법진퇴및 지휘관수소이탈 등 12·12사건과 관련된 반란혐의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보고 포함하지 않았다.이 부분은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인 위헌제청 사건이 종결되는 대로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 ­부화뇌동한 정의원도 그때 추가로 사법처리되나. ▲헌재의 합헌결정이 있더라도 정의원은 12·12 당시 뒤늦게 상경,반란군측에 합류한 것이므로 처벌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과 관련,그동안 수사를 통해 추가로 드러난 사실이 있나. ▲현재로서는 지난번 관련자들을 기소할 때 공소장에서 밝힌 것이 전부다.
  • 전·노씨 반란­부패 혐의 구속/옐친 “나도 퇴임후…” 주시

    ◎미 US뉴스지 보도/집무실에 매일 관련기사 보고 지시/93년 의사당 유혈진압 등 보복 우려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반란혐의 등으로 기소된데 대해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고 미국의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가 미·러시아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리포트지는 29일자 최신호에서 『옐친 대통령은 매일 아침 자신이 출근하기 전 크렘린 집무실에 전,노 두사람에 관한 뉴스철이 놓여져 있도록 지시했다』고 전했다. 리포트지는 옐친의 이같은 행동이 대권을 놓치는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옐친은 강경파가 집권하면 자신이 93년 10월 러시아 의사당을 공격하도록 해 여러명을 죽게 한 사건으로 보복받지 않을까 걱정하는 모양』이라고 분석했다. 옐친은 또 『러시아 정부에 팽배해있는 부정 문제로 대권을 놓은 후 자신이 다칠 수 있다는 점도 걱정하는 것같다』고 리포트지는 설명했다. 리포트지는 『전씨는 80년 광주학살이,노씨는 엄청난 부패 문제가 주된 기소 사유라는 점이 옐친 대통령으로 하여금 이들의 소식에 각별히 신경을 쓰게 만드는 이유로 보인다』면서 『옐친이 한국 소식으로부터 자신의 정치적 장래와 관련해 뭔가 묘책을 찾으려는 모양』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뉴욕타임스지는 앞으로 수년 동안 89년 중국에서의 천안문사건과 91년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사건에서 대규모 학살을 저지른 관련,정치 및 군부인사들의 처벌 여부가 주목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지도자들은 강력한 경제성장으로 이들 사건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면 이 사건을 저지른 만행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으로 믿고 있으나 전,노씨는 이러한 도박에서 결국 졌으며 이러한 교훈이 아시아 전역에 울려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 최규하씨 법정증인채택/5·18특수부/전·노씨 공판과정서 신문키로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4일 5·18사건과 관련,내란 및 반란혐의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 등 관련자에 대한 공판과정에서 최규하전대통령을 법정증인으로 채택,신문키로 했다. 검찰 관계자는 『재수사과정에서 최씨에 대한 방문조사를 통해 신군부측의 내란 및 반란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충분한 진술을 확보치는 못한 만큼 참고인인 최씨를 법정증인으로 정식채택,보다 구체적인 진술을 확보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신군부측이 5·18 당시 집권시나리오에 따라 대통령의 의사와 관계없이 국보위를 설치한 뒤 입법·행정·사법 등 국가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하고 최씨의 대통령직 하야를 유도한 것으로 보고 있다.
  • 발포명령·지휘체계이원화 규명/전씨등 내란죄 기소­수사결과와 의미

    ◎「정권찬탈」 단죄… 역사 재정립에 큰획/16년 응어리 광주시민 명예 법적회복 23일 검찰이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8명을 내란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함으로써 12·12 및 5·18사건 재수사가 마무리됐다. 국회 회기가 끝난 뒤 정호용·허화평·허삼수·박준병의원 등 국회의원 4명을 사법처리해야 하는 수순을 남겨놓고는 있지만 수사 자체는 끝난 것과 다름없다.지난해 11월30일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된 지 54일,12월19일 5·18특별법이 제정된 지 35일 만이다. 이로써 전씨와 노씨는 기왕에 기소된 비자금 및 12·12사건에 이어 3가지의 사건으로 법원의 심판을 받게 됐다.전·노씨에게는 12·12사건에서뿐 아니라 5·18사건에서도 군사반란혐의가 추가적용됐다. 일각에서는 5·18의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12·12사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지 못한 데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한다.물론 헌법재판소에서 5·18특별법에 대해 합헌이라는 결정을 내리면 12·12사건 관계자들도 사법처리할 수 있다.그러나 현재로서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의 일반적인 관측이다. 또한 5·18이후 15년8개월여 만에 공소시효만료일을 불과 하루 앞두고 관련자들을 기소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재수사를 통해 12·12군사반란과 5·18내란의 법적·역사적 성격을 확실히 했다는 점은 큰 성과다. 검찰은 5·18사건이 ▲계엄확대 ▲국보위 등 비상기구설치 ▲국회해산 ▲언론통제 등 신군부측의 치밀한 집권시나리오에 의해 이뤄진 정권찬탈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따라서 아쉬운 점은 없지 않지만 「역사를 바로 세웠다」는 점에서 전국민으로부터 폭넓은 공감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5·18 당시 발포명령 및 지휘체계의 2원화문제 등도 어느 정도 밝혀냈다. 김상희주임검사는 『명시적으로 발포명령을 내린 사실은 확인할 수 없지만 이희성계엄사령관의 자위권발동 천명을 발포명령으로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수사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이 어느 정도 밝혀지고 16년동안 응어리진 광주시민의 명예가 정치적으로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완전하게 회복된 점 역시 큰 의의로 내세울 수 있다. 앞으로 전씨측은 5·18특별법 등에 대해 집요하게 위헌시비를 벌인다는 계획이다.그러나 법원과 헌법재판소가 전씨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헌법재판소는 지난해 12월 이미 5·18사건 불기소처분에 대해 「성공한 내란을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은 잘못」이라는 점을 명백히 밝혔다. 또한 전씨측은 5·18사건 공소시효 기산점이 최규하전대통령이 하야한 80년 8월16일로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공소시효 기산점은 법률문제가 아니라 검찰의 재수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질 수 있는 사실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 헌재 빠른 결정 기대한다(사설)

    여야 합의로 5·18특별법을 제정하게 된 것은 헌정파괴의 주모자들에 대해 엄정한 법의 심판을 내림으로써 쿠데타로 인한 민족의 비극을 이 땅에서 영원히 추방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었다.역사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시작한 과거청산의 과정은 적법하고 빠를수록 좋다.우리사회가 과거 비극적 사건으로 인한 갈등에서 빨리 벗어나 대화합의 전진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18특별법 위헌 제정신청이 수용됨에 따라 「12·12」 및 「5·18」사건 주모자들에 대한 검찰의 수사와 재판 일정이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된다.현실적으로 헌법재판소가 특별법의 위헌제청 심리를 빠른 시일내에 마무리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더라도 본격심리에서 위헌여부에 대한 판단까지 내리려면 최소한 2개월은 걸릴 것으로 보여 재판일정이 영향을 안받을 수 없다. 「12·12」 반란혐의 공소시효문제와 함께 특별법 자체의 위헌여부 제청은 충분히 예견되어 왔다.정치권이 좀더 정교하게 대처했더라면 지금과 같은 사법적 혼란은 차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정치권은 당초이 사건에 대한 헌재의 결정 일부가 특별법제정에 불리하다는 이유로 헌재의 결정 직전에 소원을 취하했었다.결국 이번에 12·12 반란혐의의 공소시효와 특별법의 위헌여부는 헌재의 판단을 받게돼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정치권이 당시 헌재의 결정을 기다려보고 대응해도 되는데도 서둘러 특별법을 제정하고 이제 다시 헌재의 결정을 구하는 역순을 밟음으로써 오늘의 결과를 자초했다고 하겠다.검찰은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에 대한 내란혐의를 22일까지 추가기소할 것으로 보이지만 그밖의 관련 불구속피의자에 대한 기소는 위헌제청 결정 이후로 미룰 수 밖에 없어 재판일정이 상당기간 미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우리는 헌재의 신속한 결정을 기대하며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절대 존중되어야 함을 강조한다.지금 진행되고 있는 「5·18」처리는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법치주의의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 「5·18특별법」 위헌제청 신청하면…

    ◎「12·12」 연루자 사법처리 차질/위헌여부 헌의 결정때까지 재판 중단/비자금 사건은 별개… 전·노씨 재판 계속 5·18 특별법을 둘러싼 위헌 논란이 본격화되면서 12·12 및 5·18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다. 서울지법 김문관판사는 18일 『5·18 특별법이 12·12 군사반란죄에 대해 공소시효가 중단된다고 규정한 것은 법률 불소급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며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의 발부를 보류했다. 그는 그러나 5·18 내란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권력의 장악에 성공한 내란행위라 하더라도 국민으로부터 정당하게 국가권력을 위탁받은 국가기관이 기능을 회복하기까지는 공소 시효가 중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두 사건에 동시에 연루된 유학성씨 등 3명에 대해서는 영장을 발부했다. 김판사의 이같은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지난 93년 3월 형법 제241조에 대한 위헌심판사건에서 『영장 심리도 재판에 해당되므로 영장발부 단계에서도 위헌여부심판제청을 할 수 있다』고 선고한데 따른 것이다. 김판사뿐 아니라 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법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도 앞으로 12·12와 5·18 사건에 대해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위헌 여부를 제청할 수 있다.전두환전대통령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5·18 사건과 관련한 내란혐의 역시 공소시효가 만료되었거나,「성공한 내란」이라는 등의 이유로 위헌의 소지가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재판부가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전씨측 인사가 직접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도 있다.따라서 헌법재판소가 5·18 특별법에 대해 위헌 여부 심사를 한다는 것은 이미 예고됐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검찰이 장씨 등에게 12·12 군사반란사건만을 적용한 것은 지나치게 안이한 대응이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도 그때문이다. 담당 재판부가 위헌 여부 제청을 할 때는 물론 김판사의 결정만으로도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은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 중지된다.이 때 재판부는 12·12 사건에 대해서만 재판을 중지하고 5·18 사건은 그대로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하지만 효율적인 재판 진행을위해 재판부가 직권으로 12·12 및 5·18 사건 전체를 중지시킬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은 별개의 사건이므로 그대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통령은 내란·외환을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 소추되지 않는다」는 헌법 규정에 따라 군사반란죄의 공소 시효는 재직중 정지되는 것이므로 전·노씨를 처벌하는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김판사의 결정에 따라 검찰이 기소까지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검찰은 장씨와 최씨에 대해 5·18 및 개인비리 관련 부분을 추가하지 않는 것은 물론 헌재의 결정이 나기까지는 12·12 사건으로도 기소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2·12 사건에만 연루된 관계자 역시 군사반란혐의로 기소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다만 구속 대상자로 알려진 정호용·허삼수·허화평·박준병의원 등도 두 사건에 모두 연루돼 있어 신병 처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을 넘겨받으면 가급적 1∼2개월 안에 위헌 여부 결정을 내린다는 방침이다.헌재의 한 관계자는 『기왕에 한번 검토한 사건인 만큼 내용은 물론 관련 법이론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있다』면서 『다만 이제까지는 현행법 테두리내에서 판단했으나 이번에는 특별법의 위헌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고 밝혔다.
  • 「5·18법」 위헌심판 제청/서울지법

    ◎장세동·최세창씨 영장 보류/유학성·황영시·이학봉씨 수감 5·18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이 법원에 의해 받아 들여져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에 올랐다. 서울지법 김문관판사는 18일 전두환전대통령측의 변호인 전상석변호사가 낸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신청에 대해 『12·12 군사반란사건의 공소 시효는 이미 만료된만큼 특별법상의 공소 시효 정지 조항을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형벌 불소급의 원칙을 위배한 것』이라며 받아들였다. 김판사는 이에따라 검찰이 장세동전수경사30경비단장과 최세창3공수여단장에에 대해 12·12 군사반란혐의만으로 청구한 구속 영장의 발부를 보류했다.검찰은 장·최씨를 이날 상오 귀가시켰다. 김판사는 그러나 『특별법에서 5·18 내란 사건 관련자에 대해 공소시효를 정지한 것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회복이라는 헌법상의 요청에 의해 가능한 것으로 본다』며 12·12 및 5·18사건에 함께 연루된 유학성 당시 군수차관보,황영시육참차장,이학봉보안사대공처장 등 3명에 대해서는 영장을 발부했다. 유·황씨는 서울구치소에,이씨는 영등포구치소에 각각 수감됐다. 검찰은 또 법원의 이같은 결정에 따라 12·12 사건 피고소·고발인 38명 가운데 5·18 사건과 중복 관련된 13명을 제외한 25명에 대해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올 때까지 사법처리를 보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해서도 5·18 관련 및 개인 비리 혐의 등을 추가 적용하지 않고 헌재의 결정이 나올때까지 사법처리를 유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그러나 5·18 사건 피고소·고발인과 5·18 사건에 중복 관련된 피고소·고발인은 오는 22일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을 내란죄로 기소하면서 일괄 기소하기로 했다. 한편 전전대통령은 이날 다시 전변호사를 통해 12·12 및 5·18 사건 재판부인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재판장 김영일부장판사)에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서를 냈다. ◎내주 전원재판부 회부/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소장 김용준)는 18일 최세창·장세동씨 등의 변호인이 『5·18특별법이 위헌요소가 있다』며낸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서울지법이 받아들임에 따라 사건을 접수하는 대로 19일 중 재판부를 지정,위헌심판 제청 요건의 미비 여부 등을 판단하도록 한뒤 빠르면 다음주 초 사건을 전원재판부에 회부하기로 했다. 헌재 관계자는 이와 관련,『국민적 관심도와 12·12 및 5·18 사건의 재판 진행 등 여러 사정을 고려,재판부가 빠른 시일안에 심리를 마쳐 위헌 여부 결정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가담 경위」 등 감안 구속 결정/이종찬수사본부장 일문일답

    ◎“관련 현역의원 사전영장 청구 고려안해/핵심 5명 기소때 전씨도 내란죄로 기소” 12·12 및 5·18사건특별수사본부 이종찬본부장은 17일 하오 장세동씨 등 관련자 5명에 대해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관련자들에 대한 구속과 불구속의 기준은. ▲관련자가 가담하게 된 경위와 정도·사안의 경중·성행·개전의 정 등은 물론,당시 직책과 5·6공에서의 역할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됐다.수사는 계속되므로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인가는 기소단계에 가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5명에 대한 구속영장은 군사반란혐의만 적용된 것인가. ▲영장에는 대표적인 죄명 하나만 기재하면 되므로 대표죄명인 반란 하나만 썼고 적용내용에는 내란죄도 포함돼 있다. ­기소는 언제쯤 하나. ▲수사진척에 따라 먼저 사법처리한 사람 순서대로 할 것이다. ­전두환씨에 대한 내란죄 추가기소는언제쯤 할 것인가. ▲이들의 기소때 추가한다. ­(81년 1월24일 계엄해제일로부터 산정,공소시효 만기일이 되는)오는24일전에 관련자 사법처리를 다 끝내야 하지 않나. ▲현재 여러가지 상황과 조건을 고려해 수사를 하고 있으므로 그때까지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말하기 어렵다. ­현역의원 가운데 구속대상자는 국회 회기가 끝나면 하나,아니면 회기중 체포동의서를 제출하나. ▲지금 말하기 곤란하다. ­이들에 대한 사전영장도 가능할텐데. ▲그런 것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사실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역의원을 제외한 추가구속자는. ▲더 생각해보자.구속자는 수사보안상 이 단계에서 말할 수 없다. ­장세동씨의 구속사유는. ▲12·12 당시 30경비단장으로서 30단장실에서 있었던 경복궁모임에 장소를 제공했다.이는 굉장한 의미다.일몰때는 수경사령관조차도 대통령 경호실장의 허락없이는 못들어 가는 곳이기 때문이다.또 모임의 일원으로서 반란지휘부를 구성하는 역할을 했고 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이 정승화총장을 연행할때 자신의 5분대기조 부하 80명을 김진영33경비단장에게 파견,허처장을 돕도록 했다.또 이희성중앙정보부장 서리에게 부탁해 육본 병력의 출동을 저지토록 하기도 했다. ­유학성씨는. ▲12·12와 관련,사전모의에 가담했으며 상대편에 전화를 해 육본병력 출동을 저지했고 5·18때는 시국수습방안논의에 참여,내란모의를 한 것이다. ­황영시씨는. ▲12·12때 1군단장으로 2기갑여단을 중앙청에 진주시키고 휘하 박희모30사단장에게 병력을 고려대에 진주시키도록 했다.고대 진주는 육본 진압병력의 통과를 막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또 5·18때 시국수습방안을 논의하고 광주민주화운동을 강경 진압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 전씨 12일쯤 수뢰죄 추가기소/친·인척도 일괄 처리

    전두환전대통령의 비자금 내역을 수사하고 있는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9일 군사반란혐의로 구속기소된 전씨에 대해 빠르면 12일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를 적용,추가기소 하기로 했다. 이차장은 이와 관련,『이미 전씨에 대한 계좌추적 등을 통해 충분한 액수의 뇌물을 밝혀낸 만큼 이번 주말이나 다음주 초쯤 전씨에게 뇌물수수혐의를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기소때 전씨에게 뇌물을 건넨 기업체와 전씨의 친·인척,측근 등 3∼4명에 대해 일괄 사법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전씨의 뇌물에 대해 노씨와 같이 공무원 범죄에 대한 몰수 특례법을 적용,몰수와 추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전씨의 비자금 조성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전씨의 아들 재국씨와 동생 경환씨 등도 금명간 소환,조사하기로 했다.
  • 터졌다 하면 “메가톤급”… 경악·충격/되돌아 본 ’95사건·사고

    ◎전·노 전대통령 구속… 역사적 과거 청산/삼풍붕괴 대참사… 건국이래 최대 인재/대구 가스폭발·남해 기름오염에 허탈 올 을해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대형 사건·사고가 많았다.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구속과 수백명의 생명을 앗아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이를 단적으로 대변해준다.이들 사건·사고는 세계 10대 뉴스의 한토막을 장식,우리 모두에게 수치감을 안겨주기도 했다.주요 사건·사고를 중심으로 한해를 되돌아 본다. ▷사건◁ 뭐니뭐니해도 전·노씨의 구속을 꼽을 수 있다.「헌정사상 초유의 일」들이 거푸 국민들의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이 두 사건은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이목을 집중시켰다.외국 유명 언론들도 연일 1면 머릿기사 등으로 대서특필했다. 지난 10월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불거져 나온 노씨의 거액 비자금 조성사건은 일거에 전국민을 분노와 허탈감에 빠뜨렸다.노씨는 이 사건이 처음 터진 뒤 박의원을 명예훼손혐의로 제소하겠다는 등 발뺌하다가 결국 『5천억원을 통치자금으로 모금했다』고실토하고 말았다.「진실」이 「가면」을 강타하는 순간이었다. 노씨가 35개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뇌물」로 거둬들인 돈은 자그마치 2천8백38억원.노씨는 이처럼 조성한 비자금을 일부 빼내 제3자 명의로 빌딩을 매입하는 등 부정축재를 한 것으로 드러나 분노를 가중시켰다. 노씨에게 돈을 준 기업인들도 홍역을 단단히 치렀다.35개 기업 가운데 삼성·대우·동아·대림·동부·한보·진로그룹의 총수들은 뇌물공여혐의로 기소돼 「정경유착」에 대한 최종심판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전씨의 구속은 「뇌관」에 비유될 만큼 메가톤급이었다.잘못된 과거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제정 선언으로 촉발된 전씨에 대한 검찰수사는 쾌도난마처럼 달렸다.검찰이 지난 2일 전씨측에 소환을 통보하자 전씨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고향인 합천으로 내려갔다.검찰은 다음날인 3일 전씨를 군사반란혐의로 구속집행했다.전씨는 이에 강력히 반발,단식으로 맞서고 있다. 전씨에 대한 검찰수사는 12·12 및 5·18뿐만 아니라 대통령 재임중의비자금 조성 등에까지 확대돼 조만간 전모가 드러날 전망이다. 이 두 사건에 가리기는 했지만 이형구 전노동부장관,최낙도·박은태 의원 등의 수뢰사건 또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으며 교육위원선출 비리사건도 「간접선거」의 많은 문제점을 지적,법개정의 촉매역할을 했다. ▷사고◁ 지난 6월 29일 하오 6시쯤 서울 한복판에 있는 삼풍백화점의 초현대식 5층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내려 4백58명이 죽고 9백33명이 부상당하는 한편 1백4명이 실종한 건국이래 최악의 사고가 일어났다. 실종자 가족중에는 시신은 물론 유골조차 찾지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이들의 장례식은 지난 20일쯤에야 겨우 끝났다.또 사고가 난지 6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 완전한 보상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아 유족들의 시름을 더해주고 있다.부상자들의 사정은 더 딱한 편이다.관심 밖으로 점점 멀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삼풍사고는 우리 건설문화의 총체적 비리와 부실공사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전형적인 인재였다.원초적인 부실공사에 안전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용도변경 등이 사고원인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관련 공무원들은 시민들의 생명은 도외시한 채 「떡값」을 챙겨 원성을 자아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백화점 쇼핑을 기피하고 대형 건물을 두려워하는 이른바 「삼풍신드롬」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다.부실공사 의혹을 받았던 분당·일산의 아파트 값도 덩달아 하락했다. 엄청난 인명피해를 냈음에도 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1심 형량은 기대에 훨씬 못미쳤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지난 27일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삼풍백화점 회장 이준(73)피고인에게 징역10년6월의 형이 내려졌다.시공회사 관계자들은 대부분 집행유예 등으로 풀려났다. 올해의 불길한 조짐은 지난 4월 28일 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로 시작됐다.이 사고로 등교중이던 어린 학생을 포함,1백1명이 숨지고 1백17명이 부상을 입었다.이 사고 역시 지난해의 아현동 가스폭발사고와 마찬가지로 인재가 부른 대참사였다. 이밖에 ▲올 여름 남해안 일대를 「죽음의 바다」로 만든 유조선 시프린스호 좌초 ▲37명의 생명을 앗아간 경기도 여자기술학원 기숙사 방화 ▲19명이 숨진 컨테이너 운반선 한진부산호 화재 ▲집중호우로 국가기간산업인 철도망의 마비 ▲잇따른 노래방 화재사건 등도 국민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사건·사고 일지 ▲2월7일=부산 한진중공업 수리조선소에 불 19명 사망. ▲3월14일=금용학원이사장 김형진씨 안방서 피살. ▲4월28일=대구 도시가스폭발 1백1명 사망,1백17명 부상. ▲5월28일=경기도 포천 무장탈영병 강도. ▲6월6일=조계사 등에서 농성중이던 한국통신 노조간부 13명 구속. ▲6월12일=서울 은평구 치과의사 모녀 변사체로 발견. ▲6월14일=한국조폐공사 조폐창에서 1천원권 1천장 도난. ▲6월29일=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7월15일=삼풍백화점 붕괴 박승현양 건물더미에서 17일만에 구출. ▲7월17일=국내최대 금괴밀수 적발,2천6백억원상당. ▲7월23일=유조선 씨프린스호 좌초로 원유유출. ▲7월31일=고 문익환 목사 부인 박용길씨 판문점귀환 구속. ▲8월19일=「차명계좌」가로채려다 동료인 이형근 대리를 살해한 증권사 직원 검거. ▲8월21일=용인 여자기술학원생 방화로 37명 사망. ▲8월26일=경기도교육위원후보가 도의원에게 금노리개로 뇌물. ▲8월30일=가짜승려 일력10억 빼내 중국으로 도피. ▲10월24일=무장간첩 2명 충남 부여에 출현,1명 검거. ▲11월1일=노태우 전대통령 검찰소환. ▲11월4일=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관련 기업인 소환조사. ▲11월16일=노태우 전대통령 수뢰혐의로 구속. ▲12월1일=검찰,「12·12,5·18」전면 재수사. ▲12월3일=전두환 전대통령 반란수괴혐의로 구속. ▲12월6일=노래방에 불 8명 사망. ▲12월8일=듀스 김성재 살해범으로 애인 김유선씨 구속. ▲12월18일=노태우 전대통령 첫 공판. ▲12월23일=서울 신한은행 대낮 3인조 무장강도. ▲12월27일=우성호 선원 납북 7개월만에 귀환.
  • 「12·12」 기소이후 「5·18」 수사 전망

    ◎전씨 내란·수뢰혐의 곧 추가기소/최씨 하야까지의 정권찬탈 과정 규명/관련자 새달 중순 일괄 사법처리할듯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이 12·12 사건과 관련해 21일 군사반란 등의 혐의로 기소됨으로써 앞으로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의 수사는 5·18과 전씨의 비자금 사건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물론 12·12 사건에 대한 보강수사는 계속된다.12·12 사건은 5·18에 이르기까지 「다단계 쿠데타」의 첫 단추에 해당하기 때문이다.당시 최규하 대통령이 신군부측에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연행을 재가한 과정 등이 보강 수사의 한 예다. 검찰이 5·18 사건 피고소·고발인들을 소환해 집중적으로 조사할 부분은 ▲80년 4월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직 경위 ▲5·17 비상계엄 확대 경위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병력 출동 경위 ▲광주에서 진압군 발포 명령 하달 및 양민학살 경위 ▲80년 8월16일 최규하 대통령의 하야 과정 등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12·12에서부터 5·18과 최전대통령의 하야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신군부의 정권 찬탈 계획에 따라 연속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이미 기소되기는 했지만 전·노씨에 대한 수사도 계속된다.지금까지는 주로 12·12 군사 반란혐의에 대해서만 조사했기 때문이다.다만 전씨가 계속해서 식사를 거부하면 수사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게 될 수도 있다. 검찰은 신군부에 대한 조사를 내년 1월 중순쯤 마무리하고 일괄 사법처리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전씨측은 2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특별법에 대해 위헌소송을 내겠다고 밝히고 있다.대통령 임기중에는 공소시효가 정지된다는 것,이미 공소시효가 지난 나머지 관련자들도 소급 처벌하겠다는 것이 헌법에 위반된다는 주장이다.따라서 특별법에 근거한 5·18 재수사 자체가 위헌시비에 휘말릴 소지도 없지 않다. 그러나 검찰은 이같은 위헌 시비를 피하기 위해 5·18 사건 공소시효의 기산점을 81년 1월24일 비상계엄 해제일로 잡는다는 방침이다.그로부터 15년이 되는 내년 1월23일까지 기소하면 특별법에 대한 위헌시비에 상관없이 관련자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검찰은 전씨 비자금 사건에 대한 수사에도 힘을 기울여 이달말쯤 전씨를 특가법상의 뇌물수수혐의로 추가 기소한다는 계획이다.예상과는 달리 이날 검찰이 전씨를 뇌물수수혐의로 기소하지 않은 것은 잔액규모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현재 검찰이 밝혀낸 전씨의 비자금 조성 규모는 3천억원,보유 잔액은 3백억원 가량이다. 비자금 수사는 기소 후에도 계속된다.이종찬 본부장은 물론 수사 실무진도 『전씨 친인척과 측근들의 것으로 보이는 1백83개 계좌의 자금을 추적하려면 최소한 2∼3개월은 걸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검찰은 전씨 비자금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핵심 측근들의 부정축재 등 비리가 드러나면 모두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이다.
  • 이 특수본부장·김 주임검사 일문일답

    ◎“전씨측근 약간명 수뢰비리 조사중”/5·18수사 한달이상 소요… 1월중 마무리 계획 21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군사반란혐의로 기소한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 이종찬 본부장과 김상희 주임검사는 이날 하오 3시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의 수사과정을 설명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씨 비자금에 관한 수사결과는 상당히 미흡한데 확인된 액수와 잔액은 얼마나 되나. ▲확정되지 않았다.수사가 더 진행돼야 밝힐 수 있다. ­친인척 명의의 부동산도 있다고 했는데. ▲부동산에 흘러들어간 자금의 출처및 연결경로를 추적하고 있다. ­전씨 측근도 수사하나. ▲약간명에 대해 여러 각도로 수사하고 있다.수사의 고비를 넘기면 발표하겠다. ­이들의 개인비리도 수사하나. ▲수뢰관련자는 조사하고 있다. ­전씨가 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앞으로 조사 일정은. ▲정해진 계획이 아직 없다.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이다. ­나머지 12·12관련자 처리는. ▲(김상희 부장)주임검사로서 향후 수사계획을 소개하겠다.전·노씨 기소 이후5·18사건을 전면 수사하는데 수사력을 집중,사건의 윤곽이 잡히면 추가기소할 방침이다.그때 나머지 공범을 일괄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지금까지는 그 범위 및 기준을 일체 검토하지 않았다. ­전씨에 대한 뇌물죄 추가기소는. ▲비자금 수사를 신속하게 전개,빠른 기간안에 마치려 한다. ­이번 수사결과 지난번 수사와 달라진 부분은. ▲(김)지난번 수사에서는 전·노씨를 서면으로 조사했으나 이번에는 각각 3차례씩 직접 조사했다.최규하 전대통령도 지난번에는 조사가 불가능했으나 이번에는 2차례 방문조사를 통해 미흡하나마 진술조서를 작성했다. ­최씨 진술조서는 법적인 의미가 있나. ▲(김)60여문항을 질문했고 답변하지 않겠다는 진술내용을 기재했다.법원에 증거로 제출할 수는 있다.증거채택 여부는 법원의 재량이다. ­정승화 당시 육참총장은 의심받을 만한 혐의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나. ▲(김)이학봉 당시 합수부수사국장의 전임으로 10·26사건을 처음부터 수사했던 백동림 대령을 조사한 결과 처음 정씨를 조사했을 때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으며 12·12이후 신군부측이 발표한 (김재규로부터 떡값 3백만원을 받았다는)혐의내용도 이미 밝혀진 사실이었다.하지만 정총장의 혐의 유무는 전·노씨의 군사반란 혐의를 입증하는데 배경사실일 뿐 결정적인 내용이 아니다. ­5·18수사는 언제까지 진행되나. ▲피고소·고발인 58명(5명은 이미 무혐의처리)을 조사하자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김)주임검사로서 볼때 통상적인 수사체제로는 한달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이며 연내에 종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그러나 수사진의 체력문제도 있어 무작정 장기화하는 것도 어렵다.내년 1월중 어느 시점에서 마무리할 계획이다. ­12·12 당시 신군부가 집권시나리오를 가지고 있었다는 진술은 없었나. ▲(김)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받은 몇몇 사람이 내란의 증거로 삼을 만한 진술을 했다.그러나 전·노씨는 이를 부인하고 있어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정총장연행 재가과정의 강제성 여부가 드러났나. ▲(김)공소유지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는 않지만 사건전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부분이다.최씨 주변인물들의 참고인 진술로 보면 당시 최씨가 총장연행 사실을 뒤늦게 알았고 병력이동 상황도 자세히 보고받지 못하는 등 정보가 부족했던 것만은 틀림없다.자세한 것은 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재가서류는 찾았나. ▲(김)아직 못찾았다. ­이에 대한 진술은 어떤가. ▲(김)진술이 서로 엇갈린다.전씨는 노재현 당시 국방장관이 가지고 갔다고 진술하고 노전국방장관은 결재한 뒤 전씨에게 주었으며 당연히 합수부에 보관될 서류라고 진술했다. ­경복궁모임에 최범수 대통령비서실장,신현확총리 등이 참석하기로 돼있었다는 말이 있는데 확인됐나. ▲(김)주장들이 서로 다르다.법정에서 밝혀질 것이다. ­공소장에 기재된 당시 정총장과 전씨의 의견대립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나. ▲(김)전씨가 청와대에서 발견한 금고를 마음대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정총장에게 2억원을 건넸다가 힐책을 당했으며 정총장이 공식적인 참모회의에서 전씨의 (차관 등 고위관리를 소집하는 등)월권행위를 나무란 사실이 확인됐다.또 이후락 전중앙정보부장이 해외로 출국하는데 대해 정총장은 허가했으나 전씨는 금지하려 했다. ­그동안 수사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김)전혀 없었다.
  • 전두환씨 반란혐의 기소/노씨엔 모의혐의 추가

    ◎“「12·12」는 신군부의 계획적 반란”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21일 전두환 전대통령을 군형법상의 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또 비자금 사건으로 이미 기소된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해서도 군형법상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를 추가,기소했다. 검찰은 이날 그동안의 수사결과를 설명하면서 12·12 당시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대통령의 재가없이 무기를 휴대하고 정승화 참모총장을 강제 연행토록 직접 지시하는 등 12·12는 신군부의 계획적 반란이었음이 새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12·12 당일 아침 허삼수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등 연행팀에게 『오늘 하오 6시30분 대통령에게 재가를 받으러 간다』면서 『재가여부에 관계없이 하오 7시에 강제연행작전을 개시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또 12·12에 앞서 12월7일 노태우 9사단장이 국군보안사령부로 전사령관을 방문,정승화총장의 연행을 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시신군부측의 지휘본부로 사용된 경복궁 30경비단이 청와대 경호실장의 허가없이는 수도경비사령관도 들어갈 수 없는 장소였음에도 10여명의 장성들이 하오 6시부터 7시까지 불과 1시간 사이에 모인 것도 계획적 반란의 증거라고 설명했다. 전·노씨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외부에서는 전혀 침입할 수 없고 최첨단 통신시설을 갖춘 30경비단 상황실과 모든 부대 이동을 파악할 수 있는 보안사 상황실을 이용한 것이 12·12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진술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5·18특별법의 제정에 따라 5·18내란사건에 대한 재수사를 계속,내년 1월 중순쯤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전·노씨에게 내란혐의를 추가로 기소할 방침이다.이 때 핵심관련자 10여명도 선별적으로 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날 전씨에게 적용한 혐의는 군형법상 반란수괴,불법진퇴,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 및 미수,초병살해 등 6가지다.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수뢰혐의로 구속기소된 노씨에 대해서도 군형법상 반란모의 참여 및 중요임무종사,불법진퇴,지휘관계엄지역수소이탈,상관살해,상관살해미수,초병살해 등 6개 혐의가 추가됐다. 한편 검찰은 이날 전씨의 비자금에 대한 수사와 관련,전씨에게 돈을 준 재벌총수 20여명에 대한 조사결과 및 전씨 소유 금융계좌에 대한 추적 등을 통해 전씨가 친·인척명의로 된 부동산과 함께 금융자산 등 상당한 액수를 축재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전씨가 재임중 최소 3천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최소 3백억원 이상의 쓰고 남은 비자금을 확인했다』고 말했다.또 『비자금조성 및 사용과 관련된 개인비리가 드러난 전씨의 핵심측근 3∼5명에 대한 사법처리결과도 이달말쯤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하오 김성호 부장검사 등 검사3명을 전씨가 이송돼 치료를 받고 있는 경찰병원에 보내 6번째로 출장조사를 했다. ◎형사합의 30부 배당/서울지법 서울지법(법원장 정지형)은 21일 검찰이 군형법상 반란혐의로 구속기소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12·12사건을 노씨 비자금사건 담당재판부인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 「12·12」­비자금 수사 이모저모

    ◎검찰 전씨 비자금규모 언급 회피/노소영씨부부 10분간격 따로 나와/“전씨 측근들 조사 성향 파악 위한 것” 검찰은 21일 12·12사건과 관련,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혐의 등으로 기소하면서 그동안의 수사를 통해 12·12가 「5·18 내란」의 첫 단계였음을 입증하는데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음을 시사했다.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은 이번 수사의 성과 가운데 첫번째로 지난해와는 달리 전·노씨에 대해 서면 조사가 아닌 3차례의 직접조사를 한 것을 꼽아 12·12 사건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강조. 그는 또 최규하 전대통령이 검찰의 2차 방문조사 때 60개 사항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지만 당시의 태도와 표정 등을 근거로 담당 재판부에 증거로 제공할 것임을 밝혀 5·18 사건에 대한 검찰의 의지를 간접적으로 피력. ○…검찰은 전씨의 비자금 수사 과정에서 기업인 20여명에 대한 조사와 친인척 명의의 계좌추적을 통해 전씨가 상당히 많은 부동산과 금융자산을 축재한 사실을 밝혀낸 것처럼 발표문에 기재하고서도 개략적인 비자금 규모와 잔액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 이본부장은 비자금수사와 관련,전씨 측근 4,5명을 오는 29일쯤 사법처리한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묻자 『가급적 연말까지 수사를 끝낸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며 측근들의 개인 비리를 캐고 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데 이어 『측근에 대한 조사는 성향 파악을 위한 것』이라고 말해 개인 비리 유무가 처벌의 기준이 될 것임을 시사. 이본부장은 그러나 『아직 누구를 신병처리한다는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지는 않다』고 밝히고 5·18 공소시효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언급을 회피. 그는 비자금 잔액에 대해서도 『기업인 20여명에 대한 조사와 계좌추적,친인척 부동산과 금융자산 조사 등을 통해 상당히 많은 재산을 축적한 것을 확인했다』고만 밝히고 『조성 경위와 잔액규모에 대해서는 『수사를 더 진행시켜봐야 알 수 있으니 양해해 달라』고 설명. ○…김상희 부장은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군인사 문제 이외에도 12·12사건 이전부터 상당한 갈등과 마찰을 빚어온 것으로 관계자들을 통해 확인했다고 설명. 김부장은 한 예로 『정육참총장이 공식석상에서 전씨가 행정부처 차관들의 모임을 주재한 행위를 월권이라며 질책하는가 하면 박정희전대통령의 청와대 금고에서 마음대로 돈을 사용한 사실에 대해서도 심하게 꾸짖었다』고 설명해 이번 사건을 대하는 검찰의 분위기를 반영. ○…20만달러 미국 밀반입사건과 관련,이날 검찰에 소환된 노소영(34)·최태원(36)씨 부부는 각각 상오 10시5분과 15분,10분간격으로 대검청사에 도착. 은회색 그랜저승용차를 타고 도착한 소영씨는 청사입구에서 사진촬영을 위해 10여초동안 포즈를 취해주기도 했으나 『20만달러를 아버지가 준 것이냐』,『돈의 출처는 스위스 비밀계좌인가』등 기자들의 질문에는 일체 함구한채 침통한 표정으로 조사실로 직행. 뒤이어 도착한 최씨도 기자들을 향해 자신은 사건과 무관하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좌우를 둘러보기도 했으나 부인 소영씨와 마찬가지로 함구로 일관.
  • 1∼2월경 전·노씨 함께 법정 설듯/재판 진행일정 어떻게되나

    ◎「노씨 비자금」 구형뒤 「12·12」심리 본격 착수 검찰이 21일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군형법상 반란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전직대통령 두명은 나란히 법정에 서게 되는 「비극」을 맞게 됐다. 동시에 노씨 비자금사건과 12·12사건 심리를 맡은 서울지법 형사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는 헌정사에 깊은 상흔을 남긴 역사적 사건들을 일거에 심판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게 됐다.앞으로 검찰이 전씨 비자금과 5·18사건을 추가기소하면 이마저도 병합심리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재판일정도 복잡하게 얽힐 수 밖에 없게 됐지만 법원측은 이에 대해 일단 교통정리를 해 놓은 듯하다. 우선 다음달 15일로 예정된 노씨 비자금사건의 2차공판에 이어 한두차례 공판을 더 속개하는 과정에서 따로 기일을 정해 반란죄사건의 첫 공판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따라서 전·노씨가 함께 법정에 서는 「일대 드라마」는 내년 1월 하순이나 늦어도 2월 중순까지는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 법원측은 노씨 비자금사건이 덩치는 비록 크지만 사실관계 등을 놓고 법정에서 논란을 빚을 소지는 거의 없다는 견해여서 2월 중순쯤에는 이 사건에 대한 변론종결과 함께 검찰의 구형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이때 비자금사건에 대한 선고일자를 추후지정한 채 12·12사건에 대한 심리에 본격 착수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재판 수순은 「5·18 및 전씨 비자금사건 병합­12·12 및 5·18사건 등 첫 공판­노씨 비자금사건 결심공판­비자금사건 공판중단­전·노씨 등 관련피고인에 대한 일괄선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다. 그러면 두 전직대통령의 「죄과」를 가리는 선고일자는 언제쯤이 될까. 이에 대해서는 추측이 엇갈려 속단할 수 없지만 지난달 16일 구속수감된 노씨의 구속만료일(구속일로부터 6개월) 때문에 내년 5월15일 이전에 선고가 내려질 것이라는 예상이 일단 주류를 이루고 있다.그러나 그 이후로 미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노씨는 뇌물수수혐의로 구속된 상태라 법원이 구속만료일 이전에 선고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 직권으로 12·12반란혐의에 대해 별도로 구속영장을 발부할 수있기 때문이다.이 경우 노씨의 구속만료일은 새로 발부한 영장에 근거해 다시 6개월 연장할 수 있어 1심 선고일자도 그만큼 뒤로 늦춰질 수 있다.또 6개월의 1심 완료시한은 구속피고인에 국한돼 있기 때문에 심리도중 전·노씨가 보석 등으로 풀려나 불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되면 이에 구애받지 않아도 된다. 재판부가 5·18특별법에 대한 피고인들의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재판은 한동안 공전할 수 밖에 없어 내년 5월 이후에 선고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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