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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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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갈매기’ 충북에서 서울로…수직 무대가 그린 엇갈린 시선

    연극 ‘갈매기’ 충북에서 서울로…수직 무대가 그린 엇갈린 시선

    충북 청주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객석 점유율 81%를 기록하며 호응을 얻었던 충북도립극단의 연극 ‘갈매기’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국립극단이 지역 우수작을 서울 관객에게 소개하는 공동기획 시리즈의 일환으로 오는 7월 24일부터 8월 1일까지 공연한다. 창단 3년 차 ‘젊은 극단’ 충북도립극단은 안톤 체호프의 대표 희곡 ‘갈매기’를 감각적인 연출로 시각화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짝사랑의 엇갈림’, 끊임없이 인정받고 싶어 하면서도 공허함과 번아웃을 마주하는 현대인의 서글픈 초상을 날것 그대로 펼친다. 작품 속 호숫가 별장은 복잡한 도시의 축소판처럼 그렸다. 상하로 분리된 2층 수직 무대는 인물들의 엇갈린 시선과 소통의 부재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하얗고 간결한 무대 위로 길게 일렁이는 그림자는 요동치는 내면의 불안을 비춘다. 뜨레쁠레프가 직접 연주하는 전자기타 라이브 선율은 고독한 정서를 한층 극대화하는 촉매가 된다. 유명 배우를 어머니로 둔 젊은 작가 뜨레쁠레프는 배우 니나를 사랑하지만 니나는 유명 작가 뜨리고린을 흠모한다. 뜨레쁠레프의 어머니 아르까지나와 뜨리고린이 뜨레쁠레프의 작품을 비하하고 방해하는 모습은 과거와 현재 예술의 충돌을 의미한다. 이어 뜨레쁠레프와 니나, 뜨리고린, 마샤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면서 평범한 삶 속에서 사소한 상처가 어떻게 비극이 될 수 있는지 풀어낸다. 충북도립극단의 ‘갈매기’는 과감하게 캐릭터를 해석하면서 재미를 더했다. 어둡고 수동적이던 마샤는 자신의 욕망을 당당히 직시하는 주체적 여성으로 탈바꿈했고, 주변인에 그치던 하인 야꼬프는 인물들이 위선의 가면을 벗는 가장 나약한 순간을 지켜보는 핵심 관찰자로 거듭났다. 뜨리고린 역은 ‘박정자 연기상’(2025)을 수상한 이기복이 캐스팅돼 신뢰를 더한다. 2011년 데뷔 이래 고전과 현대극의 경계를 넘나든 그는 지난해 충북도립극단 시즌단원으로 합류해 밀도 높은 연기로 단원들의 안정적인 앙상블에 깊은 시너지를 불어넣었다. 박정희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은 “충북도립극단의 매서운 저력이 돋보이는 우수한 작품을 서울 관객에게 소개하게 되어 뜻깊다”고 밝혔다. 김낙형 도립극단 예술감독은 “체호프의 이 작품이 먼 옛날 러시아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치열하게 사랑하고 닿을 수 없는 꿈에 고뇌하는 우리 자신의 삶으로 가닿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7월 25일 공연 후 김낙형 연출과 출연 배우 전원이 참여하는 ‘예술가와의 대화’가 열린다. 체호프 희곡집을 지참한 관객은 동반 1인까지 30%, 대학생·청소년은 4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 [기고] 통합은 사랑이 아니다

    [기고] 통합은 사랑이 아니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을 수 있다면 누가 집권하든 괜찮지 않을까요.” 최근 청년들과의 대화에서 들은 말이다. 처음에는 정치에 대한 냉소처럼 들렸다. 그러나 곱씹어 보니 그 질문은 정권이 아니라 규칙을 향하고 있었다. 누가 권력을 잡느냐보다 어떤 규칙 아래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그 질문은 정치가 놓치고 있는 통합의 본질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통합은 서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생각을 하나로 만드는 일도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통합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생각과 삶의 방식을 인정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제도가 아니다. 생각이 달라도 같은 규칙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다. 그래서 통합의 출발점은 설득이 아니라 인정이다. 그리고 그 인정은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 국민통합비서관으로 일하며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국민을 만났다. 청년들은 미래를 걱정하고 자영업자들은 내일을 장담하기 어렵다고 한다. 어르신들은 국가의 약속과 원칙이 흔들리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질문으로 모인다. “이 사회의 규칙은 공정한가.”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이 적용되고 노력한 만큼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인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생각의 차이에서만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결과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규칙이 누구에게는 다르게 적용되고 노력과 보상이 연결되지 않는다고 느끼는 순간 사람들은 공동체보다 경쟁자를 먼저 보게 된다. 불신은 대화의 자리를 좁히고 다름을 인정할 여유마저 빼앗는다. 그래서 공정은 선의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를 만드는 예측 가능성의 문제다. 신뢰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공정한 규칙이 반복해서 지켜질 때 비로소 만들어진다.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가능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사회를 움직이는 힘이다. 출발선의 차이를 외면하지 않고 격차를 보완하고 실패한 사람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며 누구도 출신과 배경 때문에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 역시 공정한 사회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조건이다. 정치를 하며 깨달은 것도 결국 같은 사실이다. 국민의 삶은 진영의 구호보다 훨씬 복잡하다. 청년의 불안도, 자영업자의 어려움도, 어르신의 걱정도 어느 한쪽 진영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진영의 정책인가가 아니라 국민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느냐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박정희 정책도, 김대중 정책도 필요하면 쓰겠다”고 밝힌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통합은 선언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국민의 삶 속에서 공정이 체감될 때 신뢰가 생기고 신뢰가 쌓일 때 공존이 가능해진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같은 규칙 아래 존중받는 경험이 반복될 때 우리는 비로소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끝내 같은 생각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서로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노력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 생각이 달라도 같은 규칙 아래 존중받을 수 있다는 믿음만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 통합은 서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다. 서로를 믿을 수 있게 만드는 일이다.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통합비서관
  • 끝까지 울림 준 김부겸 “변화 열망하는 대구 시민의 패배 아닙니다”

    끝까지 울림 준 김부겸 “변화 열망하는 대구 시민의 패배 아닙니다”

    ‘보수 심장’ 대구에서만 5번째 선거득표율 45% 넘었지만 “제가 부족”“김부겸 아니면 할 수 없는 일” 평가 “(이번 선거는) 저의 패배이지,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 여러분의 패배가 아닙니다.” 대구시장 선거에 재도전했다가 고배를 마신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4일 낙선 인사를 하면서 “선거 기간 믿어주고,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죄송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험지에서 통합을 외친 그는 마지막 인사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며 퇴장했다. 이날 개표 결과 김 전 총리는 45.05%를 득표해 53.92%를 득표한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당선인에게 패했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1%포인트 안팎의 초접전 양상인 것으로 나타나고, 개표가 30%가량 진행됐을 때까지만 해도 6%포인트 가까이 우위를 점하며 한때 기대감을 키웠지만 보수 결집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3시쯤 대구 달서구에 위치한 선거사무소에서 패배를 인정하고 “제가 부족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선거까지 대구에서만 5번 도전했다. 이 중 4번 낙선했지만 20대 총선에선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맞붙어 승리하며 지역 구도 타파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에도 김 전 총리는 45%가 넘는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김부겸 아니면 할 수 없었던 일”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총리를 지낸 뒤 정치적 은퇴를 하고경기 양평으로 떠났던 김 전 총리는 대구에서 민주당 깃발을 꽂으려는 후배들의 간절한 요청과 대구 경제를 살려야겠다는 절박감으로 다시 대구를 찾았다. 대구·경북 행정통합 재추진과 대구·경북(TK) 신공항 조기 추진 등 현안 관련 공약을 발표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예방과 박정희컨벤션센터 조성 등 메시지도 적극 발신하며 대구 민심을 사고자 했다. 당이 조작기소 특검법을 추진하자 “동지들을 버릴 셈이 아니라면 신중히 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추 당선인 유세에 함께하는 등 막판 보수 결집 바람이 불면서 끝내 대구시장의 꿈을 이루진 못했다. 김 전 총리는 이번이 정치 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는 점을 수차례 강조한 만큼 다시 선거에 도전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 박종철 열사, 그리고 도시빈민·고시촌을 기억하는 길[서울 로드]

    박종철 열사, 그리고 도시빈민·고시촌을 기억하는 길[서울 로드]

    불법 고문으로 스러진 민주화 열망“책상 탁 치니 억”… 6월항쟁 도화선박종철 거리 만들고 전시공간 개관철거민 애환·고시촌 열기 이제 옛말 낙성대·안국사는 강감찬 ‘호국 성지’ 서울대 정문을 나서 도림천을 따라 10분쯤 내려가면 ‘녹두거리’가 있다. 1980년대 초 녹두 부침으로 유명하던 막걸릿집 이름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1988년부터 이곳을 지켜온 인문사회과학서점 ‘그날이 오면’ 정도를 제외하면 프랜차이즈 카페와 식당, 주점이 넘쳐나는 여느 대학가와 다르지 않지만, 1970~80년대 녹두거리는 민주화에 목마른 청년들의 고뇌와 희망이 교차한 공간이었다. 녹두거리를 따라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박종철’이란 이름을 마주하게 된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던 그는 1987년 1월 14일, 하숙집에서 남영동 대공분실로 불법 연행된 뒤 온갖 고문 끝에 숨졌다. 전두환 정권은 단순 쇼크사로 덮으려 했다. 치안본부장 기자회견에서 고문 사실을 전면 부인하며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라는 상식 밖 해명을 내놓았다. 같은 해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 7주기 추모미사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축소 조작 사실을 폭로했고, 국가안전기획부와 법무부, 내무부, 검찰, 청와대를 망라한 조직적 은폐가 드러나면서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장준환 감독의 영화 ‘1987’과 최근 스타벅스코리아의 5·18 폄훼 논란으로 다시 회자된 그 사건이다. 관악구는 2018년 박종철 열사가 살았던 하숙집이 있던 거리에 기념동판을 설치하고 ‘박종철 거리’를 조성한 데 이어 2023년 상설전시공간을 갖춘 ‘박종철 센터’를 개관했다. 센터 앞 벤치에는 열사의 굳은 의지가 담긴 글귀가 새겨져 있다. 1986년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된 그는 옥중 편지에 “저들이 비록 나의 신체는 구속을 시켰지만 나의 사상과 신념은 결코 구속시키지 못합니다”라고 썼다. 관악산 자락의 신림(新林) 일대는 본래 나무가 무성한 숲이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군 야영장으로 쓰였고, 해방 이후 도시 빈민들이 하나둘 모여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로 도심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서울시가 도심 무허가주택에 살던 사람들을 이 일대로 내몰면서다. 그렇게 신림은 해방촌과 청계천, 이촌동, 공덕동, 그리고 한강 주변 등에서 떠나온 철거민들의 터전이 됐다. 택지 개발도 이뤄졌지만, 몰려드는 철거민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소설가 박태순은 외촌동 연작의 초기작 ‘정든 땅 언덕 위(1966)’에서 “닭장 짓듯이 잇달아 날림으로 지은 공영주택”이라고 당시 풍경을 묘사했다. ‘외촌동’은 개발독재 시절 판자촌을 헐고 지어놓은 변두리 공영주택이 모인 가상공간으로, 작가가 난곡동을 모델로 썼다고 한다. 지금은 주민 휴식공간인 ‘별빛내린천’으로 탈바꿈한 도림천 주변은 당시만 해도 상습 침수 구역이었다. 신림 일대가 대학가로 변모한 건 1975년 서울대가 옮겨오면서다. 박정희 정권은 ‘국제 수준의 대학’을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최상류층이 이용하던 골프장 ‘관악 컨트리클럽’ 부지를 낙점했다. 종로구 동숭동(문리대·법대) 등 도심에 산재해 있던 반정부 시위의 중심을 외곽으로 보내려는 목적이란 얘기가 나왔다. 민주화 열망과 함께 개천의 용이 되길 꿈꾸는 청춘들의 욕망도 싹텄다. 1980년대 초부터 한평짜리 방에 숙식을 해결해주는 고시원이 생겼다. 1980년대 말 고시학원이 등장하고, 사법고시를 통해 법조인을 대거 선발하는 1990년대가 되자 고시생이 몰려 ‘신림동 고시촌’은 전성기를 맞았다. 인근에 아파트가 지어질 때 소음 탓에 “고시생이 떨어져 나간다”며 들고 일어날 정도였다. IMF 외환위기로 안정적인 직장을 찾기 위한 고시 열풍이 불면서 1998년 고시촌 상주인구는 3만명에 달했다. 영원할 것 같던 고시촌도 2008년 법학전문대학원 도입과 2017년 사법고시 폐지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고시전문학원은 살아남기 위해 경찰이나 공무원 시험으로 종목을 바꿨다. 고시생이 떠난 빈자리는 취업준비생과 외국인 유학생, 2030직장인, 저임금노동자들이 채웠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세와 생활물가로 관악구는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다. 2호선 서울대입구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낙성대는 고려 거란 전쟁의 영웅 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별이 떨어졌다는 설화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아산 현충사에 이어 낙성대 공원과 사당(안국사)을 조성해 ‘호국 성지’로 정비했다. 민주화 운동의 흔적부터 강감찬 장군 설화까지 온전히 돌아보고 싶다면, 구청에서 운영하는 마을관광해설사 도보투어를 추천한다.
  • 재보선 핫플, 부산 북구갑 3색 유세

    재보선 핫플, 부산 북구갑 3색 유세

    민주당메모남 하정우 “나랏돈 옵니다” “북구를 발전시킬 후보가 누구겠습니까. 기호 1번 하정우가 나랏돈 많이 끌어오겠습니다.” 아침부터 거센 비가 내린 27일,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북구갑 보궐선거 후보는 비옷을 입고 부산 북구 골목골목을 누볐다. 주민들에게 연신 허리를 숙이고 지지를 호소하던 하 후보는 서울신문 기자와 만나 “시민들에게 북구를 정말 발전시킬 후보와 북구를 이용만 할 후보가 누구인지 그리고 북구와 함께 미래로 갈 후보와 과거로 돌릴 후보가 누구인지 말씀드리고 있다”고 밝혔다. 길거리에서 만난 주민들이 고충이나 고민을 털어놓으면 하 후보가 곧장 펜과 수첩을 꺼내 민원을 기록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타운홀 미팅이나 현장에서 만난 시민들 민원을 수첩에 적고 즉각 지시를 하는 것처럼 청와대 AI미래기획수석비서관 출신인 하 후보도 ‘수첩 메모’가 습관이 됐다고 한다. ‘집 주변에 좌회전 신호가 없어 길이 너무 막힌다’, ‘높은 언덕길에 살고 있는데 버스가 지나지 않아 오가기가 너무 불편하다’ 등 갖은 민원이 하 후보의 수첩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 후보는 “많은 분을 만나다 보니 시민들의 요청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꼭 수첩에 적곤 한다”며 “시민들의 목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어 “과도한 민원이 아니면 이를 어떻게 실질적인 정책으로 만들 수 있을지 캠프 회의 때 검토를 한다”고 덧붙였다. 유세차를 이용하지 않고 ‘뚜벅이 유세’를 하는 것도 하 후보의 강력한 의지라고 한다. 이동 거리는 손해를 좀 보더라도 시민들과 더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하겠다는 취지다. 이날도 하 후보는 만덕동, 구포동 거리를 차 없이 누볐고 하 후보에게 ‘셀카’를 요청하는 주민들이 줄을 이었다. 상가 2, 3층에 있던 주민들이 하 후보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반기기도 했다. 일부 주민들은 “한동훈 자원봉사자들은 척 봐도 열심히 안 하데”라며 “하정우 파이팅”을 외치기도 했다. 하 후보는 토론을 피한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 “주민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우선”이라며 주민들과의 스킨십을 계속 늘려가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삭발남 박민식 “함 살려 주이소” “민식이 니 왜 머리꺼정 깎고, 눈물날라 카노. 단디해서 이겨래이.” 27일 부산 북구 덕천역 지하상가. 주민 신경희(80)씨는 6·3 북구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박민식 국민의힘 후보의 삭발한 머리를 보며 이같이 말했다. 박 후보는 신씨 손을 꼭 쥐고 “내가 찐(진짜) 아닙니까. 함 살려주이소”라며 자신이 ‘진짜 북구사람·보수후보’임을 강조했다. 박 후보는 빗속 유세 중 서울신문과 만나 “한 달짜리 떳다방 후보들이 정치적 야심을 위해 지역을 이용하고 있다”며 하정우 더불어민주당·한동훈 무소속 후보를 겨냥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위를 기록한 데 대해선 “밑바닥 민심이 100% 반영된 게 아니다”라며 “민심을 왜곡하는 널뛰기식 엉터리 조사는 믿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박 후보는 유세차 대신 “손 한 번 더 잡겠다”며 ‘뚜벅이’(도보) 유세에 나섰다. 주민들에게 “누나”, “행님”이라 부르며 셀카 요청에도 응하다 보니, 600m 남짓한 덕천역 지하상가를 왕복하는 데만 1시간 20분이 걸렸다. 그는 “하락세인 북구는 절체절명의 위기”라며 “북구를 잘 아는 검증된 구원투수가 와서 불을 끄는 게 맞다”고 했다. 박 후보는 한 후보와의 단일화에 대해 “ㄷ자도 꺼낼 필요가 없다”며 “한동훈은 가짜 보수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을 구형하며 아픔만 준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하 후보에 대해서는 “북구갑에서 존재감은 없다”고 했다. 거리에서 마주친 일부 주민들은 “배신자랑 민주당은 안 된데이”라며 박 후보를 응원했다. 이날 부산 기장시장을 찾은 박근혜 전 대통령도 박 후보 지지를 호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다음 달이 호국의 달이고, 우리가 오늘의 삶을 살고 있는 것도 호국 영령 덕”이라며 “박 후보 아버님께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셨다가 전사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여러분께서 박 후보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시면 박 후보도 나라 잘 지켜나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힘을 실었다. 박 후보는 페이스북에 “북구갑의 유일한 보수 후보가 박민식이라는 게 박 전 대통령과의 자리에서 만천하에 증명된 것”이라고 썼다. 무소속셀카남 한동훈 “분위기 탑니다” “처음에 저를 보면 유명인이라고 생각하고, 두 번째 볼 땐 ‘아직 안 갔네’ 하다가 세 번째 만남부터는 지역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십니다.” ‘무소속’ 한동훈 부산 북구갑 후보는 27일 부산 북구 남산정역 지하역사에서 출근길 인사를 시작으로 유세에 나섰다. 약 30분간 출근 중이던 주민 30여 명이 한 후보를 보고 ‘셀카’를 요청했다. 한 주민이 “꼭 됩니다”라고 하자 한 후보는 “잘하겠습니다”라며 꾸벅 인사를 했다. 한 후보는 이날 유세에 동행한 서울신문에 “5일 전과 분위기가 또 바뀌었다”며 “출근길 유세 때는 적극적으로 다가와 인사하거나 셀카를 먼저 요청하는 분들이 늘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한 후보는 주로 유세차를 타고 북구 골목 구석구석을 훑으며 주민과의 스킨십에 집중한다. 이날은 빗속에서도 우비를 입고 남산정역 입구를 시작으로 구포동 일대를 돌았다. 유세차를 본 주민들은 자동차 창문을 내려 “파이팅”을 외치거나 악수를 했다. 한 후보는 아파트 베란다나 가게에서 나와 손을 흔드는 지지자들에게 주먹을 하늘로 들어 올리며 “대박 나십시오”라고 말했다. 오후 유세차 탑승 전 한 후보가 덕천역 9번 출구 앞에 서자 지지자들이 몰렸다. 한동안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던 그는 “사진만 찍고 저는 안 찍으면 안 된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정우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해서는 “무소속 후보의 지지자가 많다고 징징대는 거 지겹지 않냐”며 “민심의 뒷바람을 잡고 앞서 나가는 걸 보고 여론조사 부정을 얘기하는데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한 후보는 이날 이재명 대통령의 부산 방문에 대해 “노골적인 선거 개입”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소취소 획책하는 이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의 애국심과 김영삼 대통령의 배짱을 말할 수 없다”며 “제가 이번 선거를 통해 현 정권의 공소 취소 폭주를 반드시 박살 낼 것”이라 했다. 그는 오후 5시쯤 구포역 광장에서 집중유세를 하며 “박민식 후보를 찍는 표는 사표가 아니라 하 후보를 찍는 표”라며 “박 후보를 지지해도 이번에는 저를 선택해 민심으로 단일화해달라”고 호소했다.
  •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지방자치제, 독재의 방패에서 민주주의 보루로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지방자치제, 독재의 방패에서 민주주의 보루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6월 3일 실시된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중단된 지방선거는 30년 만인 1991년에 부활했고 1995년에는 첫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지방자치제는 정권 유지에 악용되던 흑역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 실현의 척도라는 본연의 위상을 되찾고 있다. 미군정은 1946년 11월 15일 도지사·부윤·군수·읍장·면장과 각급 지방의회 의원을 보통선거로 선출하도록 하는 법령을 공포했다. 친일파의 피선거권을 박탈한 이 법령은 우리 손으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까지 뽑는 길을 열어 줬지만 시행되지 못한 채 사문화되었다.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제헌헌법은 제8장에 지방자치 조항을 두었고 국회는 정부 수립 닷새 만인 8월 20일에 지방자치조직법 제정을 결의했다. 이듬해 국회는 지방자치법을 제정했다. 이승만 정부는 당시만 해도 정세 불안과 치안 문제를 핑계로 시행을 미뤘지만,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돌연 지방선거를 강행했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제2대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이승만이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재선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1952년 4월 25일 시·읍·면의원 선거, 5월 10일 도의원 선거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여당인 자유당과 친여 무소속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각급 지방의회는 제일 먼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하고 국회 앞에서 관제시위를 벌였다. 결국 7월 4일 ‘발췌 개헌안’이 통과되었고 이승만은 8월 5일 선거를 거쳐 재선에 성공했다. 이승만 정부는 1956년 정부통령선거를 앞두고는 지방의회의 권한 축소를 시도했다. 이번에는 지방의회가 반대하며 지방자치권 확립과 함께 지방경찰제 도입까지 요구했다. 이승만 정부는 2월 13일 도지사·서울특별시장은 임명하고 시·읍·면장은 직선제로 선출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그런데 5월 15일에 실시한 정부통령선거에서 야당인 민주당 소속 장면이 부통령에 당선되자 민심 이반에 놀란 이승만 정부는 8월 8일에 실시된 지방의원 및 단체장 선거, 8월 13일 실시된 서울시 및 도의회 선거에서 노골적인 부정을 저질렀다. 쓰레기 무단 투기·문패 미부착 등을 구실로 야당 후보들에게 구류 처분을 내려 입후보 자격을 박탈했다. 후보 등록서류를 노상에서 강탈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선거 결과는 자유당의 압승이었다. 제주도의 경우 시·읍·면장과 의원 100%가 자유당 쪽이었고 전국적으로도 90% 이상이었다. 다만 서울시 의원 당선자 47명 중에 자유당은 1명에 그쳤고 민주당이 40명을 차지했다. 1958년 12월 24일 자유당은 무장 경관 300여명을 동원해 국회의사당에서 야당 의원을 끌어내고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른바 2·4 파동이었다. 이때 자치단체장 임명제를 부활하고 지방의원 임기를 4년 재연장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도 통과되었다. 의원 임기 연장의 목적은 지방선거를 1960년 8월로 미뤄 정부통령선거에 미칠 영향을 차단하는 데 있었다. 또한 이승만 정부는 자치단체장 임명제 개정을 빌미로 대구시장을 시작으로 기존 민선 자치단체장을 압박해 사퇴하도록 만들었다. 이승만 정부에서 지방자치제는 집권 연장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고 부정선거로 얼룩졌다. 결국 3·15 부정선거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 유린을 일삼은 이승만 정부는 4·19혁명으로 무너졌다. 4·19혁명 이후 치러진 7·29 총선으로 구성된 국회는 1960년 11월 모든 자치단체장을 직선제로 선출하는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공포했다. 12월에는 서울시·도의원, 시·읍·면의원, 시·읍·면장, 서울시장·도지사 순으로 네 차례에 걸친 지방선거가 실시되었다. 그리고 5개월 후인 1961년 5월 16일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 세력은 당일 오후 8시에 각급 지방의회를 일제히 해산해 버렸다. 6월에는 자치단체장을 임명하고 자치단체를 행정기관으로 격하하는 조치를 취했다. 군사정부는 1962년 12월에 개정한 헌법의 부칙에 “이 헌법에 의한 최초의 지방 의회의 구성 시기에 관하여는 법률로 정한다”고 명기했다. 박정희 정부는 1972년 유신헌법 부칙 제10조에 “이 헌법에 의한 지방의회는 조국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못박았다. 그리고 마침내 1987년 전두환 정부는 6월 항쟁에 굴복해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함께 지방자치를 약속하는 6·29선언을 발표했다. 1952년에 처음 시행된 지방선거는 이승만 정권의 독재 강화에 동원됐다. 4·19혁명으로 제자리를 잡아가는 듯했지만 군사쿠데타로 중단되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평화적 정권 교체와 함께 지방자치제 전면 실시까진 또 적지 않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지방선거와 지방자치제에는 독재의 방패가 되거나 철저히 부정당했던 아픈 역사,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염원의 결실이라는 자랑스러운 역사가 모두 담겨 있다. 나와 우리의 민의를 담은 오늘의 한 표가 새삼 소중히 느껴진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 박근혜 등판에 뜨거워진 대구… “시민과 함께” “경제 전문가”

    박근혜 등판에 뜨거워진 대구… “시민과 함께” “경제 전문가”

    칠성시장 찾아 “추, 좋은 정책 낼 것”오늘 대전·충남행… 보수 결집 총력金측 “추, 위기의식”… 비판은 자제 6·3 지방선거 대구시장 대결이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등판으로 한껏 뜨거워졌다. 9년 만에 직접 유세에 나선 박 전 대통령이 대구를 넘어 대전과 충남까지 방문키로 하면서 야권에서는 보수층 결집 기대가 커지고 있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는 24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대구 동화사를 나란히 찾았다. 하지만 두 후보는 별다른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김 후보는 주지 선광 스님과 차담 후 기자들과 만나 “더 정신을 차리고 시민들과 함께하겠다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로 삼겠다”고 말했다. 추 후보는 동구 이시아폴리스 유세에서 “말로 하는 경제는 없다”며 “추경호는 나라가 인정한 경제 전문가”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전날 박 전 대통령은 북구 칠성시장을 찾아 추 후보와 30분가량 시장을 돌며 직접 지원에 나섰다. 지난해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방문했던 현장을 며칠 뒤 따로 방문한 적은 있지만, 후보와 함께 현장 유세에 나선 것은 2017년 탄핵 이후 9년 만이다. 박 전 대통령의 칠성시장 방문에는 수백명이 몰렸다. 박 전 대통령은 “추 후보가 좋은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그동안 많은 분이 ‘저를 한번 봤으면 좋겠다,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는 얘기를 하셨다는 말씀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예방 의사를 피력해 온 김 후보를 만날 생각이 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는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김 후보 측은 백수범 대변인 논평을 통해 “추 후보 위기의식 발로의 결과”라면서도 과도한 비판을 자제했다. 박 전 대통령에 유화적 태도를 취해 온 만큼 논란을 키우지 않겠다는 취지다. 조승래 민주당 사무총장도 기자간담회에서 “긍정·부정 효과가 다 있을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박 전 대통령은 25일 이장우 대전시장 후보 캠프를 직접 찾고 김태흠 충남지사 후보와는 충남 공주산성시장을 방문한다. 박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인 경북 구미, 육영수 여사의 생가인 충북 옥천 이외 지역을 찾는 건 이례적이다. 박 전 대통령은 두 후보에게 힘을 싣는 것 외에도 전국 승패를 가르는 전략 지역인 충청권 보수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이끄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보인다.
  • 다시 뜬 ‘선거의 여왕’ 박근혜…칠성시장 찾아 추경호 지원

    다시 뜬 ‘선거의 여왕’ 박근혜…칠성시장 찾아 추경호 지원

    박근혜 전 대통령이 6·3 지방선거를 열흘 남짓 앞둔 23일 대구 칠성시장을 찾았다.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과거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박 전 대통령은 “추 후보가 좋은 정책을 마련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신뢰감을 드러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쯤 추 후보, 유영하 의원 등과 함께 대구 북구 칠성시장을 방문했다. 황색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박 전 대통령이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시민과 상인들은 일제히 ‘대통령 박근혜’를 외치며 박수로 맞이했다. 추 후보의 이름을 연호하는 지지자들도 눈에 띄었다. 박 전 대통령은 시장 상인들과 부처님 오신 날 연휴를 맞아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안녕하십니까”, “감사합니다” 등의 인사말을 건넸다. 좁은 시장통에 지지자와 취재진, 경호 인력 등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북새통을 이뤘다. 그는 30여 분 칠성시장 일대를 둘러본 뒤 기자들과 만나 “그동안 많은 분들이 저를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며 “그래서 참 오랜만에 칠성시장에 오게 됐는데, 반가워해 주시는 여러 시민들을 보니 ‘진작 와서 뵀어야 하는데’라는 죄송한 마음도 들고 감사하기도 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은 이어 “경제가 안 좋다고 하니 이렇게 조금이라도 위로를 드리고 싶다”면서 “오늘 마침 추 후보도 같이 오셔서 시장을 둘러봤는데 (추 후보가) 어려운 경제 상황을 잘 알고 계시니까 좋은 정책을 마련하실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도 만날 의향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별다른 답변 없이 미소만 띤 채 자리를 떴다. 박 전 대통령이 떠난 뒤 추 후보는 유세차에 올라 민생경제 활성화를 약속했다. 추 후보는 “많은 분들께서 그동안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하시던 박 전 대통령을 보고 눈물을 흘리셨다”며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님을 그리워하면서 두 분께서 나라가 잘살고 국민들이 편안한 것만 생각하셨기에 눈물을 흘리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걸 지켜본 저 추경호는 대구 경제를 확실히 살릴 것”이라며 “대한민국이 인정한 경제부총리 출신으로 경제 문제에 대한 해법이 있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박정희, 박근혜 전 대통령이 꿈꿔온 세상을 제가 이어받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박 전 대통령은 부처님 오신 날 대체공휴일인 25일 모친인 고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있는 충북 옥천을 방문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 [기고] 광화문 한글 현판, 보존 넘어 계승으로

    [기고] 광화문 한글 현판, 보존 넘어 계승으로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더하는 문제를 두고 여기저기서 목소리가 들린다. 광화문의 현판을 한글로 할지, 한자로 할지에 대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한글 현판 논쟁은 현재 3층 누각에 설치된 한자 현판을 그대로 두고 2층 누각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는, 일종의 절충안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광화문에는 한자 현판이 걸렸던 때도 있고, 한글 현판이 걸렸던 시기도 있다. 한국전쟁 중 목조 문루가 불타 석축만 남은 광화문을 1968년 콘크리트로 복원했는데, 이때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을 달았다. 이 한글 현판은 2006년 콘크리트 광화문이 철거되기 전까지 그 자리를 지켰다. 이후 2010년 광화문은 목조로 다시 복원되는데, 이때 다시 한자 현판을 걸게 된다. 그 이후에도 광화문 현판은 원형과 다르다 해서 글자 색을 바꿔 다시 만들기도 했고, 한글 현판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건축문화유산의 현판을 두고 교체하거나 추가하자는 논의가 벌어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제3조는 “문화유산의 보존ㆍ관리 및 활용은 원형 유지를 기본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전통 건축물에서 현판은 건축물을 구성하는 일부로 원형 보존의 대상이 된다. 그럼에도 유독 광화문의 한글 현판을 주장하는 의견이 계속해서 나오는 데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광화문의 가치가 건축물의 원형에 대한 충실함에서 나온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광화문은 이건과 화재, 그리고 두 번의 재건을 거치며 원형으로서의 가치가 크게 훼손됐다. 국보인 경복궁 근정전의 현판을 한글로 교체하자는 주장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원형 손상의 피해가 한글 현판을 추가해서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광화문은 사적으로 지정된 경복궁의 일부로서 대한민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임에 분명하지만, 그 목조 구조물 자체는 지어진 지 20년이 채 지나지 않은 복원물이다. 이는 부재 하나하나를 보존해야 하는 수백년 된 건축물과는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 둘째, 광화문은 과거의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중요한 상징 공간의 일부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 역할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광화문광장 구성의 상징물로 인식돼 왔다. 광화문광장은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역사적·정치적 사건이 일어난 공간이었으며, 최근에는 그룹 방탄소년단(BTS) 공연과 같은 문화 행사의 무대로도 사용되고 있다. 광화문이 이러한 현대적 사건의 배경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광화문을 고정된 보존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넘어 현재 우리 도시 공간의 일부로 인식한다면, 현판에 관한 논의의 폭은 한층 열릴 것이다. 더구나 우리 전통 유산 가운데는 하나의 건물에 두 개 이상의 현판을 가진 경우가 꽤 있다. 금산사 미륵전은 층별로 다른 현판을 가졌으며, 통도사 대웅전은 방향별로 다른 현판을 가졌다. 궁궐 내 전각 중에도 창경궁 통명전과 덕수궁 석어당과 같이 건물 외부와 내부에 각각 다른 현판을 가진 사례도 있다. 광화문의 한글 현판 논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건축문화유산의 원형 보존은 중요한 가치이지만, 광화문이 오늘날 가지는 의미 역시 논의에서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동민 단국대 건축학부 부교수
  • ‘탱크데이’ 파문에 이념대립 난장판 된 SNS…여름철 ‘대란’ 이벤트 ‘잠정 연기’

    ‘탱크데이’ 파문에 이념대립 난장판 된 SNS…여름철 ‘대란’ 이벤트 ‘잠정 연기’

    스타벅스코리아가 ‘탱크데이’ 이벤트로 홍역을 치른 가운데,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SNS)에서 스타벅스와 연결지어 5·18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는 콘텐츠가 확산하며 사회적 갈등으로 치닫고 있다. 21일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따르면 SNS 엑스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스타벅스의 ‘탱크 텀블러’를 사용해 음료를 마시는 영상이 공유되고 있다. 인공지능(AI)으로 만든 해당 영상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게시물이 올라오던 계정에 게시됐다. 영상 속 전 전 대통령은 “맛 좋다. 광주는 하나의 총기를…”이라고 말하는데, 과거 그의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라는 발언에서 따온 것으로 풀이된다. 스타벅스 커피를 들고 있는 전 전 대통령을 앞세운 스타벅스 홍보 포스터 이미지도 등장했다. 전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나란히 서서 스타벅스 커피잔을 부딪친 뒤 마시는 AI 생성 영상도 엑스에서 확산하고 있다. 앞서 스타벅스코리아는 지난 15일 ‘탱크 텀블러’ 할인 행사를 시작하며 홍보 이미지에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인 5월 18일을 ‘탱크데이’라 명명하고,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이러한 표현이 5·18 민주화운동과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사건을 조롱했다는 지적이 나왔고, 소비자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저질 장사치의 비인간적 막장 행태에 분노한다”고 강하게 비판했고,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직접 대국민 사과에 나섰다. 그럼에도 그간 스타벅스를 애용해왔던 소비자들은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환불하거나 스타벅스에서 구매한 텀블러·머그컵 등을 폐기하는 등 불매 운동에 나섰다. 반면 극우 성향의 네티즌들은 스타벅스를 끌어들여 민주화운동을 조롱하는 영상과 이미지를 만들어 SNS에 올리면서 이번 사태는 이념 간 대립으로 번지고 있다. “불매” vs “5·18 조롱” 난장판 된 SNS스타벅스코리아는 ‘탱크데이’ 이벤트를 중단한 데 이어 ‘탱크 텀블러’ 판매도 중단했다. 현재 스타벅스코리아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 탱크 텀블러는 찾아볼 수 없다. 소비자들은 탱크 텀블러 가운데 일부 제품의 용량이 503㎖으로 표기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수인번호인 ‘503’을 연상시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스타벅스코리아는 “17온스(oz)를 밀리리터(㎖)로 환산하면 502.8㎖가 나오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진통을 겪은 스타벅스코리아는 올해 여름철 프로모션과 마케팅을 잠정 연기하기로 했다. 스타벅스는 전날 사내 내부 공지를 통해 “무거운 책임감과 자숙의 마음”이라며 다음주부터 진행할 예정이었던 ‘서머 프로모션’과 ‘서머 e-프리퀀시’를 연기한다고 밝혔다. 스타벅스는 매년 5월~7월 연중 최대 규모의 행사인 ‘서머 프로모션’을 진행해왔다. e-프리퀀시를 통해 제공되는 증정품은 매년 ‘대란’을 일으킬 정도로 스타벅스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아왔다. 스타벅스는 오는 22~24일 음악 축제 ‘제18회 서울재즈페스티벌’에서 운영할 예정이었던 부스도 취소했다.
  • [정은귀의 시선] 천사들에게

    [정은귀의 시선] 천사들에게

    사실 우리 모두는 천사였다. 두루미처럼 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천사들. 엄마들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는 아빠들을 원망 하지 않는다. 아빠들은 상처받고 아프기 때문에. 우리도 전쟁 중에, 학생 혁명의 해에, 쿠데타 이후, 늘 계엄령 속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모두 고아, 고아 아닌 고아들. 천사 아닌 천사들. 우리도 역시 울었다. 우리도 역시 노래했다, 갸름하게 갸름하게. (중략) 우리는 당신들의 고아이고 당신들의 천사다. 우리는 당신의 거울 단어다. 종이에 쓰여 있는 것은 명백하다―DMZ에서 만나! -최돈미, ‘DMZ 콜로니’ 중에서 2020년 한국계 미국 시인으로는 최초로 전미도서상을 수상한 최돈미 시인. 그때의 수상시집 ‘DMZ 콜로니’를 우리말로 옮겨 책으로 내놓은 지 보름 정도 지났다. 골똘히 공들여 번역한 책은 다시 열어 보기가 좀 두렵다. 시 번역을 하면서 작품에 깊이 이입되는 편인지라 책 출간 이후에 이별이 쉽지 않다. 책을 열어 보면 다르게 번역하고 싶은 마음이 들까 두렵고 온 마음과 지력을 포개었던 대상을 떠나보내는 게 연인과의 작별처럼 이상하다. 그래서 시집을 못 열어 보다가 멀리 또 가까이서 진솔한 독후감을 보내주셔서 다시 열어 본다. 새롭다. 왜 지금 ‘DMZ 콜로니’가 새롭게 다가오는가? 분단국가에 사는 우리는 정작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자주 잊는다. 우리가 분단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해외에서 오는 소식으로 확인된다. 더욱이 전운이 온 세계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이즈음은 더 그렇다. 강대국이 북한을 언제라도 타격 가능한 곳으로, 한반도를 전쟁 가능한 지역으로 쉽게 이야기할 때는 그만 마음이 서늘해진다. 그럴 때 새삼 깨닫는다. 아, 우리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을 살고 있구나. 지금까지 DMZ를 4번 가 봤는데 갈 때마다 느낌이 달랐다. 도로에 그어진 파란 선을 넘으면 대한민국이 아닌 유엔군의 지휘 아래 있다는 말도 예전에는 흘려듣곤 했는데, 시집을 번역하면서 실감이 났다. 남북 관계가 평화롭던 시기에는 망원경으로 보이는 개성공단이 손에 잡힐 듯 느껴졌는데, 그래서 우리도 금방 거기 갈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뭐라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최돈미 시인은 우리나라가 강대국들의 힘겨루기 속에서 분단된 현실,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힘겹게 살아온 이들의 지워진 목소리를 생생하게 되살린다. 베트남전과 한국전에 사진기자로 참전했던 시인의 아버지는 박정희의 쿠데타 현장도 사진으로 남겼다. 사실을 정확하게 응시하는 아버지의 눈을 이어받은 딸은 시집 전체를 역사 속에서 희생된 이들에게 바친다. 비전향 양심수를 만나서 들은 이야기가 한국어에서 영어로, 다시 한국어로 옮겨지는 과정은 시와 번역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성격, ‘다른 형태로 바꾸어 전하는’ 작업의 의미를 일깨운다. 양민학살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고아들의 이야기는 어제인 듯 아프고 생생하다. 비무장지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가장 무장이 많이 된 지역, 하늘 위는 그나마 달라서 DMZ 하늘을 자유로이 나는 새들의 군무를 올려다보며 시인은 그 공간의 의미를 새로이 우리에게 묻는다. 번역하는 동안 내가 아찔하게 홀렸던 것은, 역사의 그림자 속에 묻어둔 아픔을 다시 깨우는 시인의 일이 역사를 보듬는 섬세한 사랑의 손길이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문서 등 역사적 사료들을 새로 배열하는 작업은 과거의 지층에 묻혀 있던 천사들을 되살려 미래를 새롭게 열어나가는 일이다. 그 점에서 시인은 ‘만들고 생성하는’ 시의 본래 의미를 잘 수행했다. 내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의 어머니, 우리 윗대에서 힘겹게 통과한 역사의 지층을 어루만지며 나는 수많은 천사들을 만났다. 그 천사들에게 말했다. 감사하다고. 눈물 어룽어룽 무수한 천사들을 만나고 나니 지금-여기를 사는 의미가 새로워졌다. 조금 더 씩씩해졌다. 이 글은 그 천사들, 우리 모두에게 보내는 편지다. 마음 다잡아 더 잘해 보자고. 정은귀 한국외대 영미문학문화학과 교수
  • 李대통령 “농협 정상화 시켜 농민 품에 돌려줘야”

    李대통령 “농협 정상화 시켜 농민 품에 돌려줘야”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농민의 땀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농협을 한시 바삐 농민의 품으로 온전하게 되돌려 드려야겠다”며 농협 정상화 조치에 속도를 낼 것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주재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농업의 근간을 지탱하고 있는 농협의 정상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 일부 임직원의 비리 때문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아온 게 현실”이라며 “농협이 농업 발전과 농민 삶의 질 향상에 앞장서는 진짜 농협으로 확실히 거듭날 수 있도록 조합원 직선제 같은 관련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달라”고 했다. 아울러 농촌과 농업의 대전환을 강조하며 “농민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구체적으로 농어촌 기본소득 및 햇빛소득의 확대, 스마트팜 확산을 위한 정책금융 지원, 농산물 유통 구조 개선 등에 힘써줄 것을 주문했다. 또 이 대통령은 광주 도심 거리에서 지난 5일 장윤기(23)가 고교 여학생(17)을 살해하고 남학생(17)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을 언급하며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청소년과 여성 등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에 전면전 선포라는 다짐으로 예방과 대응 체계를 대폭 강화해야 되겠다”고 말했다. 또한 “국민 불안이 해소될 때까지 범죄 우려 지역에 대한 특별 치안 활동도 철저하게 이어가고, 피해자를 겨냥한 온라인상의 2차 가해는 일벌백계해야 되겠다”고 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진보 진영 출신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경기 성남시 새마을운동중앙회를 방문해 “새마을운동은 산업화시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문화와 경제, 사회적 환경 개선을 위해 시작해 상당히 큰 성과를 거둔 운동이고, 지금 시대에도 매우 유용하다”고 밝혔다. 현장 간담회에서 이 대통령은 “새마을회가 국제 봉사활동으로 농업 지원활동을 많이 하는데, 여러분을 보자고 한 이유는 이 부분을 대폭 확대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새마을운동 찾은 이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큰 성과 거뒀다”

    새마을운동 찾은 이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이 시작…큰 성과 거뒀다”

    이재명 대통령은 14일 “새마을운동은 여러분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산업화 시대 박정희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문화와 경제·사회적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 시작했던, 그리고 상당히 큰 성과를 거뒀던 운동인 게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기 성남시에서 새마을운동중앙회 현장 간담회를 찾아 “지금 이 시대에도 (새마을운동은) 매우 유용하다”며 이처럼 말했다. 진보 진영 대통령이 공식 일정으로 새마을운동중앙회를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 시절 새마을운동중앙회의 도움을 받았다며 “취임하고 좀 일찍 와보고 싶었는데 너무 편파적이라고 할까 봐 좀 미뤄놨다 사실 지금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좀 더 존중과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자꾸 이리저리 정치적 이유로 몰려다니고 이러면 사실은 존중받지 못한다. 정치인들이 막 잘 따라다니면 좋아할 것 같은데 사실은 무시한다”고 했다. 이어 “당당하게 자기 역할하고 국민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회원들, 조직도 좀 늘리고 존경받고 인정받으면 정치인들이 막 쫓아다닌다”라고 덧붙였다. 또 “정치적으로 혹여라도 일각에서 우려하는 것처럼 한쪽으로 이렇게 자꾸 몰리거나 이러면 무시당한다”라며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을 조언했다. 이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작해 성공을 거뒀다고 추켜올리면서 국제 사회에서도 인정받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국내 문제도 해결해야 될 과제들이 많긴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하고 또 국제 사회에서 우리가 혜택 보는 것만큼 또 지원도 하고 봉사도 하고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공정성 강조를 위해 이곳을 찾게 됐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저는 온 세상 모든 일들이 이렇게 좀 상식과 합리에 기초하면 좋겠다”며 “네 편 내 편이나 이념과 가치 이런 것도 중요한데 공적 영역에서는 그러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객관적 기준에 의해 공정하게, 투명하게 모든 일이 이뤄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제가 새마을운동중앙회를 민간 단체로 처음으로 방문했다”고 밝혔다.
  • 주식 1주도 퇴직금 1원도 마다한 ‘철강왕’…박태준이 ‘보국’ 강조한 이유 [창업주의 비밀노트]

    주식 1주도 퇴직금 1원도 마다한 ‘철강왕’…박태준이 ‘보국’ 강조한 이유 [창업주의 비밀노트]

    “선조들 피 값으로 짓는 제철소…실패는 없다”“선조들의 피값으로 짓는 것이다. 제철소 건설에 실패한다면 우리 모두가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실패할 경우 우리 모두 우향우하여 영일만에 투신해야 한다.” 요즘은 쉽게 떠올리기 어려운 이 비장한 구호는 포항제철(현 포스코)의 창업자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968년 경북 포항 영일만 모래사장에 제철소 부지를 만들며 직원들에게 한 말입니다. 1960년대 한국이 제철소를 세운다고 하자 세계은행(IBRD) 등 안팎의 시선은 냉정했습니다. “한국 같은 개발도상국이 일관제철소를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예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비관적인 시선과 달리 제철소는 착공 3년 2개월만에 첫 쇳물을 뽑아냈습니다. 쇳물은 마중물이 되어 한강의 기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박 명예회장은 피와 땀을 쏟은 포스코에서 1992년 물러날 때 퇴직금도, 단 한 주의 주식도 받지 않았습니다. 40년간 거주하던 서울 아현동 소재 주택을 판 돈 10억원도 기부했습니다. ‘짧은 인생을 영원(永遠) 조국에’라는 평생의 좌우명처럼 사리사욕 대신 국가를 앞세운 그의 신념이 제철소 탄생을 가능케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입니다. ‘제철소 특명’ 받았지만 좌절 이어져1927년 경남 동래군에서 태어난 박 명예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6세에 일본으로 건너갑니다. 일본 이야마북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제2차 세계대전 때 제철 근로봉사에 동원되며 용광로와 처음 만났습니다. 수학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온도와 관련된 방정식이나 화학적 반응에 흥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제철소와의 만남은 이후 한국에서 이어집니다. 와세다대 공대 2학년 재학 중 해방을 맞아 귀국한 뒤 1948년 육군사관학교 6기로 임관한 그는 교수로 재직하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습니다. 이후 박 전 대통령에게 제철소 건설이라는 특명을 받고 1968년 포항종합제철 사장으로 임명됩니다. 해방 이후 한국의 종합제철소 건설 시도는 네 차례나 좌절됐습니다. 가장 큰 좌절은 1969년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이 지원을 최종 거부했을 때입니다. 박 명예회장은 1983년 4월 27일 사보 ‘쇳물’ 인터뷰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그때의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다”고 회고합니다.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오를 다지며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했습니다. 이때 실패하면 차라리 영일만에 빠져 죽자는 ‘우향우 정신’이 생겨났습니다.” 차관을 거절당한 뒤 그는 대일청구권자금에서 돌파구를 찾습니다. 대일청구권자금은 1965년 한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한국이 일본에서 받은 자금입니다. 농림수산 부문에 쓰기로 협약됐던 이 돈을 전용하기 위해 박 명예회장은 일본 정계와 철강협회를 끈질기게 설득했고, 결국 종잣돈 7370만 달러를 받습니다. 그는 “선조들의 피 값에 보답하는 길은 종합제철소를 성공적으로 건설하는 것”이라며 여가생활과 취미활동을 끊고 제철소 건설에 매진했습니다. 현장 직원들도 밤낮없이 매달렸습니다. 1970년 4월 1일 포항 1기 설비 종합착공을 시작한 뒤 3년 2개월 만인 1973년 6월 9일 오전 7시 30분.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에서 시뻘건 쇳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전 임직원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불렀습니다. 첫 쇳물이 나온 이날은 법정기념일인 ‘철의 날’로 지정됐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포스코인들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우향우’를 외쳤고 ‘우향우’는 포스코의 정신을 상징하는 단어가 됐다고 합니다. 제철보국·교육보국, 철강 신화를 만들다 “창업 이래 지금까지 제철보국(製鐵報國)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철은 산업의 쌀입니다. 쌀이 생명과 성장의 근원이듯, 철은 모든 산업의 기초 소재입니다. 양질의 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하여 국부를 증대시키고, 국민 생활을 윤택하게 하며 복지사회 건설에 이바지하자는 것이 곧 제철보국입니다.” (1978년 3월 28일 연수원 특강 중) 박 명예회장이 세운 포스코의 설립 정신은 ‘제철보국’입니다. 보국이란 국가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와, 국가를 강하게 보존해 후손에게 계승한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국가는 내 존재의 기반이자 모태이기 때문에 보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제철을 통해 자립경제 달성에 기여하겠다는 정신이기도 합니다. 제철보국 아래 포스코는 국내에 저렴하게 소재를 공급했고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포항제철 건설 뒤 1967년 현대자동차, 1969년 삼성전자, 1972년 현대중공업이 탄생하며 공업 발전의 기틀이 다져졌습니다. 이런 신념의 뿌리에 대해 전문가들은 “군인 출신인 그의 정체성과 발전주의 국가 체제에서의 민족중흥주의, 부국강병론이 결합한 것”이라고 봅니다. 김왕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태준의 국가관과 사회관’에서 “박태준의 보국 이념은 중화학공업의 견인차가 되는 철강산업을 부흥시킴으로써 구체화됐다”며 “제철보국의 이념은 책임감, 돌파력, 추진력을 가능케 하는 행동 강령이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제철보국의 사명감 아래 포스코는 확장을 거듭했습니다. 포항제철소 2~4기, 광양제철소 1~4기, 광양 5고로 증설 등 한국을 세계 5위 철강 대국까지 끌어 올렸습니다. 1937년 45만t이던 조강생산량은 2010년 3540만t을 넘어 80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보국의 다른 축은 ‘교육보국’입니다. 박 명예회장은 1986년 국내 최초로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한 포스텍을 설립했습니다. 일찍부터 연구개발의 중요성을 인식했던 그는 포스코-포항공대-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 3개 축으로 하는 산학연 연구개발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학사운영정책, 신입생 선발에서 획기적인 정책을 과감히 추진해 국내 정상의 대학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대학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박태준 정신으로 쇄신의 길 찾는 철강산업 신화적인 초고속 성장을 이룩해 온 한국 철강 산업은 최근 전례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국산 저가 수입재 증가와 글로벌 과잉 공급, 보호무역 강화와 관세, 수요 부진 등으로 불황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방법만으로는 타개할 수 없는 복합 위기의 시대에 철강 업계는 다시 ‘박태준 정신’을 떠올립니다. 포스코는 전통적 산업 패러다임의 쇄신과 혁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탈탄소 등 미래 철강 산업의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화석연료 대신 수소를 사용하여 철을 생산하는 수소환원제철, 국내 생산의 한계를 넘어 인도·미국 등으로 뻗어나가는 ‘완결형 현지화 전략’ 등을 추진 중입니다. 또 미래 모빌리티와 에너지 시장을 겨냥해 8대 핵심 전략제품을 선정하고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장인화 포스코 회장은 “완결형 현지화 전략을 통해 확보한 수익이 국내 탈탄소 전환 투자의 기반이 되는 선순환 체계를 만들 때 보호주의와 탄소중립은 위기가 아닌 기회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정치권도 철강이 무너지면 국내 제조업 전체가 타격이라는 공감대 속에 ‘K-스틸법’(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지원 근거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60년간 한국 근대화를 이끌어온 철강 산업이 한번 더 혁신을 주도하고 새 역사를 쓸지 주목됩니다.
  • [성낙인 칼럼] 여야 합의 개헌이 헌법 정신

    [성낙인 칼럼] 여야 합의 개헌이 헌법 정신

    1987년 헌법은 1948년 제헌 이후 39년간 9차례 개헌으로 만들어진 10번째 헌법이다. 헌법의 불안정을 명징하게 보여 준다. 87년 헌법은 39년째 유지되며 헌법의 안정을 구가한다. 하지만 5차례의 정권 교체를 이뤄낸 민주 여정에도 불구하고 헌정의 불안정은 계속된다. 헌법 안정기에 개헌 논의가 봇물을 이룬다. 국회의장이 교체될 때마다 개헌 논의기구가 작동한다. 국회, 정부, 학계, 시민사회에서 수많은 개헌안이 제시된다.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중에는 개헌 논의를 배척하다가 임기 말 스스로 개헌 논의를 촉발했다. 개헌안 발의는 이론적·학술적 논의 차원을 넘어 헌법이 마련한 개헌 절차의 공식적인 실행이다. 개헌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헌법 제128조 제1항) 2018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야당 반대로 국회에서 투표 불성립이 됐다. 2026년 범여권 의원들이 발의한 개헌안은 제1야당인 국민의힘의 불참으로 투표 불성립에 그쳤다. 개헌안은 국회 “재적의원 3분의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제130조 제1항) 야당과 합의가 안 되면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한다는 헌법 규범을 외면한 채 개헌안을 상정한 그 자체가 불통의 산물이다. 이번에 발의된 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헌법 전문에 부마항쟁과 5·18민주화운동, 대통령의 비상계엄 발동 요건의 엄격한 제한 등을 담는 것이다. 야당도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시점에 필요한 핵심적인 개헌 논의가 빠진 채 여야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87년 헌법은 대통령 직선 쟁취라는 명분 하에 ‘여야 8인 정치회담’의 산물이다. 집권 야욕에 사로잡힌 여야 정치인이 주도한 개헌안은 국민적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정치적 개헌’이었다. 이승만·박정희의 1인 장기 집권에 따른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전두환이 주도한 5공 헌법의 대통령 7년 단임 간선제를 5년 단임 직선제로 개정했다. 그간 5년 단임제는 9차례의 대통령직 교체로 그 소임을 다한 것 같다. 작금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실존적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에 따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개헌은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정치제도 작동의 기본 원리인 ‘견제와 균형’이 상실된 상태에서 이를 교정하려는 노력이 없는 개헌은 무의미하다. 대통령 재임 중 의회 권력의 정치적 양극화 현상을 총선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계엄이라는 우를 범한 정권, 대통령과 의회의 절대 권력을 장악한 정부·여당의 독주에 합리적 대안이 없는 개헌은 허구다.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개헌의 화두는 권력 분산이다. 전직 국회의원들의 법정단체인 대한민국헌정회(회장 정대철)는 ‘권력 분산적 대통령제’를 제시한다. 집행부 내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이끄는 내각의 균형적 작동과 더불어 내각은 대통령과 의회 사이의 균형추가 되어야 한다. 국회 다수파의 일방통행을 합리적으로 제어하기 위해서는 주요 선진국처럼 의회에 새로운 균형추로서의 양원제 도입이 필요하다. ‘빨리빨리’ 정신에 입각한 단원제는 이제 그 역사적 사명을 다했다. 현행 헌법의 위헌 조항도 삭제돼야 한다. 197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위헌 판결이 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단서 ‘군인·군무원에 대한 이중배상금지 조항’이 72년 유신헌법에 삽입된 이후 5공 헌법을 거쳐 현행 헌법 제29조 제2항에 버젓이 살아 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가로막는 악법은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과거 국가가 가난하던 시절에 군인·군무원에게 희생을 강요한 대표적 악법이다. 현행 헌법은 개헌에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경성(硬性)헌법이다.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야 한다. 향후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다면 국민투표를 거치지 않더라도 국회 재적의원 4분의3 이상의 찬성으로 개헌이 가능한 연성(軟性)헌법도 고려해 보자. 독일은 통일된 그날 새 헌법을 제정하겠다고 하면서 ‘법률 중에서 기본 법률’인 기본법(Grundgesetz)이라고 했다. 하지만 통일 후 이 기본법을 그대로 유지하는 대신 30여년간 거의 매년 30회 이상 개헌으로 통일독일의 국가적 통합을 이뤘다. 성낙인 전 서울대 총장·헌법학
  • 송언석 “일장 훈계·방검복 쇼…더불어오만당, 국민 무시 오만 DNA”

    송언석 “일장 훈계·방검복 쇼…더불어오만당, 국민 무시 오만 DNA”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8일 “더불어민주당의 오만 DNA가 6·3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송 원내대표는 박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민 대다수는 공소취소 뜻이 뭔지 잘 모른다’ 발언 등을 겨냥해 “더불어민주당은 당명을 ‘더불어오만당’으로 바꿔야 한다”고도 했다. 송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 6일 박 의원이 CBS 라디오에 나와 “‘공소 취소가 뭐예요’라고 물어보면 10명 중 8~9명은 잘 모른다”라고 한 발언에 대해 “한마디로, 국민을 무지몽매한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 취급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 원내대표는 “이전까지 공소취소가 대다수 국민에게 생소한 단어였던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공소취소가 무엇인지 온 국민이 알게 해준 것이 바로 민주당 여러분들”이라고 했다. 이어 “이제 국민께서는 ‘공소취소는 곧 이재명 1인 재판취소’이고, 공소취소 특검은 곧 권력자가 특검을 임명하여 특검이 권력자의 범죄재판을 없애주는 ‘이재명 1인 면죄부 특검’이라는 그 본질을 잘 알고 계신다”고 덧붙였다. 송 원내대표는 “이처럼 최근 민주당에서 나오는 다채로운 망언들을 보면 민주당이 얼마나 국민을 무시하고, 국민을 가르치려 드는 오만한 정당인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는 장사가 안된다는 상인에게 ‘왜 장사가 안 되냐’면서 ‘컨설팅을 받아보라’고 일장 훈계를 늘어놨다”며 “장사 한번 안 해본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 상인에게 장사를 가르치려 드는 그 오만함은 도대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라고 했다. 또 “김상욱 울산시장 후보는 근거도, 증거도 없이 ‘테러 위협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방검복을 입고 시민들을 만나러 다니고 있다”며 “근거도 없는 테러 위협을 운운하면서 방검복을 입고 선거운동한다는 것은 시민들을 잠재적 테러리스트 취급하는 저급한 정치 퍼포먼스”라고 지적했다. 지난 2일 전남 순천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지방선거 예비후보들과의 대화 중 “따까리를 하려면 공무원을 해야지”라고 한 김문수 민주당 의원을 거론하며 “전국의 공직자들이 그저 국회의원 앞에서 설설 기는 ‘따까리’쯤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오만의 극치”라며 “이것은 단순히 의원 개개인의 실수가 아니다”고 했다. 송 원내대표는 “공무원 비하 망언을 늘어놓은 김 의원이나, 박정희 대통령이 일찍 죽어서 대한민국이 발전했다는 망언을 늘어놓은 장세용 구미시장 후보에 대해 민주당은 당 차원의 징계에 착수하지도 않았고, 그냥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며 “오만한 행태”라고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 나와서 비속어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고, 여당 대표는 어린이 앞에서 ‘오빠 해봐요’ 같은 아동 성희롱 발언을 늘어놓고 있다”며 “다가오는 6월 3일, 더불어오만당은 반드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아픈 과거 품은 물길에… 다시, 치유가 차오른다[서울 로드]

    아픈 과거 품은 물길에… 다시, 치유가 차오른다[서울 로드]

    병자호란 ‘환향녀’ 슬픔이 서린 곳과거 씻는다는 의미로 몸 씻게 해50년간 버려졌던 유진상가 지하는빛의 예술길 ‘홍제유연’으로 재탄생커피와 함께 인공폭포서 ‘폭포멍’도 ‘길에는 주인이 없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신경준은 ‘도로고(道路考)’에 이렇게 썼다. 소설가 김훈은 ‘허송세월’에서 ’“길은 소통의 통로란 의미”라고 풀었다. 오래 전부터 길을 중심으로 사람과 재화, 서비스가 움직이고 건물이 들어섰다. 이처럼 길은 도시의 경쟁력이자 풍경이며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600여년 역사의 서울에는 많은 길이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이 쫓겨갔던 유배길부터 3·1 운동과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2002년 월드컵, 두 번의 탄핵 촛불까지, 역사의 변곡점마다 길이 있었다. ‘서울 로드’에서 길에 스며든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풀어보려 한다. “제 외아들의 처가 청나라에 잡혀갔다가 몸값을 주고 돌아왔습니다. 더 이상 아들의 배필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선조의 제사를 받들 수 없습니다. 이혼하고 새 장가를 들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1638년 3월 11일 ‘인조실록’ 중 우의정 장유의 상소문) “제 딸이 청나라군에 사로잡혀 있다가 몸값을 주고 귀국했는데, 사위가 다시 장가들려 합니다. 원통해서 못 살겠습니다.”(같은 날 전 승지 한이겸의 상소문) 병자호란(1636~1637년) 때 청나라에 끌려간 이들은 50만~60만명. 다수가 여성이었다. 일부는 온갖 고초를 겪고 다시 고향 땅을 밟았지만, 정절을 강조하던 조선 사회는 이들을 죄인 취급했다. ‘환향녀’(還鄕女)란 주홍글씨를 덧씌웠고, 잡혀갔었다는 이유로 이혼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면서 ‘인조실록’에서처럼 사회적 논란이 됐다. 급기야 인조가 “홍제원(弘濟院) 냇물에서 목욕을 하고 돌아오면 죄를 묻지 않겠다”고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그럼에도 돌아갈 수 없었던 여성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고 왕의 큰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의 ‘홍은동(弘恩洞)’이 됐다는 속설이 있다. 북한산에서 발원해 홍제동, 남가좌동, 성산동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홍제천에는 ‘살아서 돌아온 죄’를 짊어져야 했던 환향녀의 슬픔이 담겨 있다. 이 이야기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소거’되기를 강요받았지만, 살아내려 했던 여성 캐릭터를 다뤄 화제를 모은 드라마 ‘연인’과 연극 ‘나비’로 변주됐다. 홍제천이란 이름은 조선시대 중국 사신이 묵는 홍제원에서 유래했다. 의주를 거쳐 평양, 개성을 찍고 도착한 명, 청 사신이 무악재를 넘어 궁궐에 도착하기 전 의관을 정돈하는 숙소였다. 중국으로 출발하는 학자, 상인도 왕래하던 교통 요지다. 홍제원 건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3호선 홍제역 2번 출구 표지석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1930~40년대 홍제천 일대는 경성이 확장되면서 도시 빈민이 몰려든 사대문 밖 대표적인 달동네였다.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글에 종종 등장하는 현저동에 대한 묘사를 보면 그때 생활상을 짐작할 만하다. “막상 내가 도달한 어머니의 서울 살림은 형편없이 궁색한 것이었다. 반듯반듯한 기와집 동네를 다 그냥 지나쳐 꼬불꼬불한 길을 한없이 기어올라가 깎아지른 듯한 축대 끝에 제비집처럼 매달린 초가집의 우중충한 문간방이 어머니의 서울 살림집이었다.”(‘나 어릴 적에’) 조선시대 중요한 육상교통로 중 하나였던 의주로는 박정희 정권에서 ‘통일로(서울역~파주 통일대교)’라는 새 이름을 얻고, 서울 서북권역의 교통 요지로 계속 기능했다. 1968년은 1·21 사태(김신조 사건)와 푸에블로호 사건,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 군사적 긴장이 한껏 고조된 시기다. 3선 개헌을 준비하던 박정희 정권은 국민 불안감을 활용해 정치적 저항을 억누르는 전략을 취했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구호가 ‘싸우면서 건설하자’였다. 이 흐름 속에 세워진 건축물이 유진상가다. 홍제천을 덮은 시유지에 1970년 지어진 유진상가는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이자 랜드마크였다. 세대별 분양 면적이 최소 33평, 최고 68평에 달했다. 상가아파트임에도 고급 공동주택을 일컫던 ‘맨션’이란 명칭이 붙은 까닭이다. 유진상가는 서울 서북부가 뚫렸을 경우에 대비해 일반 건축물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졌다. 당시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방어선은 구파발이다. 북한군이 구파발 저지선을 뚫고 청와대나 세종로로 진출하려면 반드시 홍은사거리를 거쳐야 했다. 구파발에서 6㎞ 남짓 떨어진 이곳에서 세검정길을 거쳐 청와대까지 5㎞, 정부중앙청사까지 4㎞ 거리였다. 유진상가 1층에 거대한 기둥(필로티)을 세우고 공간을 확보해 유사시 아군 전차의 엄폐 진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한 까닭이다. 하부 기둥을 부술 경우 아파트가 넘어지면서 거대한 대전차 장애물 역할도 하도록 지어졌다는 얘기도 있다. 유신 시대를 상징하는 유진상가 위로 1995년 내부순환도로가 개통했다. B동의 절반인 4, 5층이 뜯겨나가고 회색빛 그늘이 드리웠다. 낙후한 부도심인 데다, 지하 주차장이나 엘리베이터도 없고 소음과 분진이 심각했다. 점점 흉물 취급을 받았고, 2010년대부터 재건축 민원이 제기됐다. 서대문구청이 사업시행자를 맡는 등 적극적으로 나섰고 지난 4월 최고 49층 규모의 주거복합시설로 바꾸는 정비계획이 확정됐다. 50년 동안 막혀 있던 유진상가 지하의 홍제천은 2019년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군사 목적으로 폐쇄됐던 지하통로를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재생했다. 홍제천을 따라 흐르는 인연이란 의미로 ‘홍제유연(流緣)’이란 이름을 붙였다. 유진상가를 지탱하는 100여개 기둥 사이 물길을 따라 미디어아트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콘크리트는 캔버스가 되고 물이 스크린이 된 것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온기’의 작가(팀코워크)는 “조선시대 환향녀 이야기에 비춰진 홍제천은 억울하게 외면받던 여성들을 위한 치유의 장소다. 따뜻한 온기를 담은 빛의 향연으로 평온한 정서를 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유진상가에서 걸어서 홍제천 변 산책로를 40분쯤 거슬러 올라가면 물길이 좁아진다. 홍제천 상류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음풍농월(吟風弄月)을 위해 찾던 장소다. 특히 비 온 뒤 폭포의 모습이 장관이라는 세검정(洗劍亭)이 으뜸이다. 요즘 말로 ‘물멍’ ‘폭포멍’을, 당시에는 관창(觀漲·비 온 뒤 폭포 구경)이라고 했다. 실학자 정약용(1762~1836)은 ‘유세검정기’에서 ‘우두커니 앉아만 있어도 좋기에 / 시 다 짓고도 어서 가자 말하지 않노라’라고 묘사했다. 노년의 겸재 정선(1676~1759)은 이를 그림으로 남겼다. 세검정이란 이름은 인조반정 때 이귀·김유 등이 모여 광해군 폐위를 결의하고 칼날을 씻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정자 앞 너른 바위는 조선왕조실록 편찬자들이 비밀 유지를 위해 원고 종이를 씻어낸 세초(洗草) 작업의 현장이다. 현재 세검정은 1941년 화재로 불타 주춧돌만 남아 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했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이후 서울도성과 북한산성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탕춘대성의 성문 ‘홍지문’도 가까이에 있다. 홍제천 옆 옥천암 바위에는 마애보살좌상이 앉아 흐르는 물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하면서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다는 전설이 있다. 홍제천 상류의 지류인 백사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추사 김정희의 별장터(별서터)가 나온다. 홍제천의 또 다른 이름인 모래내는 1960년대 형성된 남가좌동 모래내시장으로 명맥을 잇고 있다. 맑은 물에 모래가 많아 생긴 이름이다. 장마철이 돼야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던 홍제천은 요즘 사계절 물이 흐르는 산책로로 바뀌었다. 2008년부터 펌프로 한강에서 상류까지 물을 끌어올렸다. 봄에는 벚꽃, 개나리가, 가을이면 단풍이 흐드러진다. 천변을 따라 달리는 러닝 크루, 자전거 족도 적지 않다. 안산(鞍山) 자락의 홍제천 인공폭포는 커피와 함께 ‘폭포멍’을 즐길 수 있는 또다른 명소다.
  • 경북교육감 선거 ‘정당 마케팅’ 잇따라…정치 중립 훼손 지적도

    경북교육감 선거 ‘정당 마케팅’ 잇따라…정치 중립 훼손 지적도

    6·3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지는 전국 시·도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경북교육감 후보들 사이에서 특정 정당 마케팅이 잇따르고 있다. 이를 두고 교육감 후보들이 표면적으로라도 지켜야 할 정치적 중립이 훼손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지역 정치권과 교육계에 따르면 경북교육감 예비후보 중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물은 김상동 전 경북대 총장과 임종식 교육감, 한은미 경상북도미래교육연구원 원장 등이다. 진보 성향 후보로는 이용기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북지부장이 나섰다. 임 교육감과 김 전 총장, 한 원장은 모두 ‘국민의힘 마케팅’에 열중하고 있다. 선거 운동용 점퍼도 국민의힘 상징색과 같은 붉은색으로 맞췄다. 이 전 지부장은 민주당을 연상케 하는 파란 점퍼를 입고 표심을 공략하고 있다. 이들 모두 정치적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보수 성향 후보들의 경우 사실상 국민의힘 후보와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각 캠프 관계자나 지지자들은 교육감 후보와 이 지사가 함께 찍은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있어서다. 특히, 김 전 총장은 지난 1일 이철우 경북지사와 대구시장 후보로 나선 추경호 전 경제부총리, 김장호 구미시장 등 국민의힘 소속 지방선거 후보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참배할 때 기념촬영까지 함께해 뒷말이 나왔다. 임 교육감과 한 원장도 같은 시간 박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보수 성향 후보로 분류되지만 흰색 점퍼를 입고 독자적으로 대구시교육감 선거운동에 나선 강은희 교육감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에 대해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교육감 후보들이 소속 정당만 없을 뿐이지 붉은색 점퍼를 입는 등 사실상 러닝메이트를 자처하고 있다”며 “이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대원칙을 무시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경북 구미에 사는 박모(42)씨는 “보수, 진보 성향으로 후보가 나뉘어 있는 걸 다들 알고는 있지만 정당 공천을 금지한 건 교육이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함 아니냐”며 “후보들이 특정 정당색을 나타내기 이전에 우리 아이들을 더 많이 생각하는 교육 전문가로서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구미 박정희 생가서 ‘원팀’ 다짐…TK 보수 결집 나선 이철우·추경호

    구미 박정희 생가서 ‘원팀’ 다짐…TK 보수 결집 나선 이철우·추경호

    국민의힘 이철우 경북도지사 예비후보와 추경호 대구시장 예비후보가 1일 경북 구미에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하며 보수 결집에 나섰다. 두 예비후보는 생가 옆 추모관에서 함께 참배한 뒤, 대구·경북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공동선언문에 서명했다. 선언문에는 박 전 대통령의 산업화 정신과 업적을 계승·발전하고 대구경북신공항과 대구경북행정통합을 차질 없이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지역 경제를 살리고 보수의 심장인 대구·경북을 지키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추 예비후보는 이날 방문 배경에 대해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앞서 대한민국 경제 발전과 산업화를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아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원팀 정신으로 대구 경북을 함께 발전시키고 또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을 굳건히 지키겠다”며 “보수 정당의 힘을 키워 다음 총선·대선에서 승리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예비후보는 공동선언의 의미에 대해 “신공항·행정통합은 대구 경북의 공동 현안”이라며 “시도가 후손들을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구·경북 공동선대위 구성에 대해서는 “현행 선거법상 시도별 선대위 구성이 원칙”이라면서도 “후보 간 공동 유세와 협력은 적극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과 지방선거 후보, 지지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 ‘자주 근대화’ 열망 흐르던 길… 그 몰락도 돌담은 보았으리라 [서울 로드]

    ‘자주 근대화’ 열망 흐르던 길… 그 몰락도 돌담은 보았으리라 [서울 로드]

    정동 걷기, 조선의 황혼을 걷는 일구한말 외교현장이던 손탁호텔 자리아관파천 고종의 길 끝엔 러 공관탑발굴 중 뒤늦게 발견한 비밀통로도근대 1번지이자 민주화 향한 길목벧엘예배당에선 독립선언서 인쇄성공회회관, 민주항쟁 인사의 거점중정 분실은 사랑의열매 회관 변신시대의 꿈들 피어나던 돌담 아래더이상 나라 설움 없는 사람들이여유 즐기며 무심하게 흘러간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이영훈 작사·작곡 ‘광화문 연가’) 서울시청 서소문청사 1동 13층 정동전망대에 오르면 덕수궁의 날렵한 지붕과 석조전, 빌딩 숲과 어우러진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1980년대 이문세의 명곡이자 이후 뮤지컬로도 유명해진 정동길은 점심때는 직장인들로, 밤이면 연인들로 붐비지만, 곳곳에 굴곡진 근현대사의 흔적이 묻어 있다. 정동(貞洞)이라는 이름은 태조 이성계의 사랑에서 비롯됐다. 1396년 둘째 부인이자 정치적 조언자였던 신덕왕후가 숨지자 태조는 경복궁 서쪽, 현재 영국대사관 자리에 정릉을 조성했다. 사대문 안에 묘지를 둘 수 없지만, 애틋한 마음에 궁 가까이 두려 한 것이다. 하지만 태조의 정실부인인 신의왕후의 소생 태종은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장악하고 정종의 양위로 보위에 오른 뒤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강등하고 묘를 경기도 양주(현재의 성북구 정릉동)로 옮겼다. 뒤끝이 남은 태종은 명나라 사신의 객관을 수리할 자재를 충당한다는 이유로 정릉의 정자각을 헐고, 봉분을 깎아 무덤의 흔적을 없앴다. 조선 중기 고위 관리와 왕족이 거주하던 고급 주택지 정동은 19세기 말 ‘양인(洋人)촌’으로 바뀌었다. 1883년 미국 공사가 땅을 매입한 것을 시작으로 영국, 러시아, 프랑스 공관이 속속 들어섰다. 인천항으로 이어지는 마포나루와 가까운데다 도성 접근성이 탁월해서다. 서양식 건물이 속속 들어섰고 외국인을 구경하려는 인파가 몰렸다. 이때는 이미 조선의 앞날에 먹구름이 몰려오던 때였다. 소설가 김훈이 무크지 ‘정동이야기’에서 “정동을 걷는 일은 조선의 낙일(落日) 속을 걷는 일”이라 했듯 정동길은 근대화를 향한 열망이 폭발하는 공간인 동시에 왕조의 국운이 낙조처럼 빠르게 저물어간 현장이었다. 일본과 친일 내각을 견제하려던 고종과 명성황후는 러시아 공사의 인척으로 입국한 앙트와네트 손탁을 신임했다. 백척간두에 섰던 조선 왕실은 대외 교섭을 위해 외국어에 능통하고 교양을 갖춘 인물이 필요했는데 프랑스어·독일어·영어에 능통한 그가 적임자였다. ‘외교가의 꽃’이 된 손탁은 고종에게 하사받은 정동 가옥을 리모델링해 사교장으로 만들었고 배일 운동 근거지로 활용했다. 이때만 해도 친러파였던 이완용과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 등 정동구락부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1895년 을미사변 이후 일본에 의해 경복궁에 감금당한 고종은 명성황후처럼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꼈다. 몇 차례 시도 끝에 1896년 러시아공사관으로 피신에 성공했다. 손탁의 공이 컸다. 아관파천 1년 뒤인 1897년 고종은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해 대한제국, 즉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했다. 이듬해 고종은 감사의 뜻으로 서양식 벽돌 건물을 지어줬고 손탁은 이를 ‘빈관(호텔)’으로 만들었다. 손탁빈관은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속 중요 공간인 글로리호텔의 모티브로 알려져 있다. 러일전쟁 패배로 한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1909년 손탁이 강제 추방당하면서 호텔도 기울었다. 1917년 이화학당이 사들여 기숙사로 쓰다가 철거했고1922년 새로 지은 프라이홀마저 6·25전쟁 때 폭격을 당했다. 전후 재건됐지만 결국 1975년 화재로 전소됐다. 이곳에 2004년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이 들어섰고, 손탁호텔의 흔적은 표지석으로만 남았다. 1886년 미국 북감리교회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이 정동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신식 여성교육기관인 이화학당은 유관순 열사 등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요람이다. 정동길 로터리를 지나 언덕 끝 정동공원에 있는 옛 러시아공사관은 6·25전쟁으로 훼손돼 탑과 지하 일부만 남은 채 방치됐다. 1973년 탑이 복구돼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됐고 1977년 사적으로 승격됐다. 1981년 공사관 발굴 과정에서 지하 비밀통로와 밀실이 발견돼 이목이 쏠리기도 했다. 덕수궁 선원전에서 러시아공사관까지 이어지는 120m 길이의 ‘고종의 길’은 아관파천 때 피신 동선이다. 오랫동안 미국 공사관 이면도로로 쓰이다가 2011년 토지 교환으로 복원·개방됐다. 토지 교환은 고종의 길과 맞닿아 있는 조선저축은행 중역 사택과도 맞물려 있다. 1938년 덕수궁 선원전 터를 훼손하고 지어진 사택은 광복 후 주한미국대사관 소유로 넘어갔다. 2003년 대사관 기숙사 건립을 위해 문화재 조사를 하던 중 선원전 유구가 확인되자 양국 정부가 교환에 합의했다. 정동은 ‘근대화 1번지’다. 1885년 북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은 교가, 교복 등을 도입한 최초의 서양식 근대 교육기관이었다. 고종은 1887년 ‘유용한 인재를 기르고 배우는 집’이라는 뜻으로 배재(培材)학당이란 이름을 내렸다. 1916년 준공된 역사박물관에는 배재학당 출신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초판본, 유길준의 친필 서명이 담긴 ‘서유견문’, 독일 블뤼트너사가 1911년 제작한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연주회용 피아노가 있다. 같은 해 아펜젤러가 세운 정동제일교회는 최초의 민간 병원 정동병원이 옮긴 자리에 들어섰다. 교회의 역사기념관 역할을 하는 벧엘예배당 내 파이프오르간 안쪽 송풍실은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가 인쇄된 곳이다. 1918년 설치된 한국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으로 1951년 폭격에 소실됐다가 2003년 원형 복원됐다. 1905년에 지어진 성공회 서울대성당 옆 한옥은 대한제국 당시 귀족 자녀들의 교육공간으로 쓰인 경운궁 양이재다. 현재 성공회 서울교구장 공관으로 사용 중이다. 정동길은 한국 민주화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영국대사관을 향하는 오솔길 초입에서 보이는 베이지색 타일 건물은 한국 현대건축의 거장 김중업이 설계한 성공회회관이다. 1980년대 재야인사들은 세실레스토랑에서 시국을 논의했고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은 한때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 분실이었지만 현재 사랑의열매 회관으로 탈바꿈했다. 김중업이 박정희 정권을 겨냥한 날선 비판을 쏟아내다가 1971년 프랑스로 추방된 것과 달리 라이벌 김수근은 이 건물과 남영동 대공분실(현 민주화운동기념관)을 설계했다. 열강 침탈의 아픔이 서린 정동길은 서울시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산책로가 됐다. 과거 연인이 걸으면 헤어진다는 덕수궁 돌담길 속설은 1989년 가정법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하며 시나브로 잊혔다. 한때 정동 일대는 법조타운이었다. 시립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옛 대법원청사다. 한국 최초의 법원인 한성재판소 자리에 일제가 1928년 경성재판소를 지었다. 볼거리로 가득해 어디서 시작할지 고민된다면 서울시가 조성한 5가지 테마의 ‘정동 근대역사길’을 추천한다. 평소 보기 힘든 역사·문화 시설을 개방하는 ‘정동야행(貞洞夜行)’은 10월에 찾아온다. 정동야행은 2015년 중구가 시작한 국내 최초 문화재 야행으로 올해 11번째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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