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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동영 “北 판문점 미화작업…북미 정상회담 징후 있어”

    정동영 “北 판문점 미화작업…북미 정상회담 징후 있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과 관련, “결국 양 정상의 결단 문제”라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하늘이 준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은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다른 시간에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기는 실무적으로 많은 준비와 논의를 거쳐야 하므로 이번보다 훨씬 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북미 간 공식적인 접촉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된 정보는 없다”면서도 “다만 단서와 징후들이 있다”고 했다. 그는 미국 측 징후로 앨리슨 후커 국무부 부장관 등의 방한과 유엔군사령부의 판문점 특별견학 중단 결정을 꼽았고, 북한 측 징후로는 최근 판문점 북측 시설 미화 작업 동향을 소개했다. 그는 북한의 판문점 북측 구역 미화 작업에 대해 “청소하고 풀 뽑고 화단 정리하고 사진도 찍고 하는 모습이 관찰됐다”며 “지난 1년 동안에는 이런 동향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올해 들어 처음 관찰된 모습”이라며 “최근 (나무들) 가지치기 같은 미화 작업도 했다”고 했다. 정 장관은 이 같은 정황들을 근거로 북미 정상 간 만남이 실제로 추진될 가능성을 예상했다. 그는 “이런 여러 가지 징후와 단서를 종합해보면 (양 정상이) 만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본다”며 “정부 공식 입장은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저는 적극적으로 상황을 해석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 강서구 “구인·구직 매칭데이 참여하세요”

    강서구 “구인·구직 매칭데이 참여하세요”

    서울 강서구는 기업과 구직자 간의 현장 면접을 통해 채용을 지원하는 ‘구인·구직 매칭데이’를 진행한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매칭데이는 오는 25일, 26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다. 구와 협약을 맺은 아웃소싱 전문업체인 ㈜삼구아이앤씨가 참여해 마곡 마이스단지의 보안 관리자 및 미화인력을 채용한다. 25일에는 보안팀 총 15명을 채용할 예정이다. 보안 근무는 3조 2교대 방식으로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8시까지 마곡 마이스단지 특별계획구역 에서 보안 순찰 및 안전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 지원자는 일반경비원 신임교육을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한다. 면접은 강서구 일자리센터 4층에서 오후 2시에 진행된다. 26일에는 미화팀 총 44명을 채용할 계획이다. 업무는 마곡 마이스단지 특별계획구역 CP1에서 미화작업이다. 면접은 강서50플러스센터에서 실시한다. 여성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2시, 남성은 오후 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된다. 면접 전날까지 방문, 이메일(seoyw2000@gangseo.seoul.kr), 팩스(02-2620-0440)로 사전 신청할 수 있다.
  • 정부대구청사의 따뜻한 손길 이어진다

    정부대구청사의 따뜻한 손길 이어진다

    지난달 23일 대구청사관리소 직원 10여명이 지역의 80대 독거노인 A씨 집을 찾았다. 거동이 불편해 혼자 끼니도 해결하지 못하는 A씨 집은 상상 이상으로 상태가 나빴다. 냉장고 안에는 바퀴벌레가 가득했고 집 외벽은 큰 구멍이 나 있어 한파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직원들은 가재도구와 이불을 집 밖으로 옮긴 뒤 대청소를 했고 외벽 구멍은 건축 담당 직원이 스티로폼 등 자재를 이용해 보수했다. 직원들은 이날에만 A씨 외에도 2곳의 집의 보수, 청소 등 봉사활동을 했다. 대구청소관리소 직원들의 봉사활동은 지난 2016년부터 시작됐다. 이들의 목표는 매월 2가구에 대해 집수리와 미화작업 등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올해부터는 월 3가구로 늘렸다. 직원들의 봉사활동은 청사 옥상 나눔텃밭 수확물을 사회복지시설에 나눠주는 위문활동, 명절 불우이웃 방문 위문품 전달, 농촌일손돕기 등 다양했다. 그동안 활동한 봉사활동 건수는 집수리 및 미화 봉사활동 114건을 비롯해 200여건에 이른다. 참여한 직원만도 800여명이다. 지난 1월에는 정부대구청사 인근 ‘다사랑 지역아동센터’를 찾아 쌀 10㎏짜리 5포와 라만 7상자를 전달했다. 직원들은 앞으로 이 아동센터에 지속적으로 지원활동을 하기로 했다. 이 아동센터는 돌봄이 필요한 맞벌이 부부와 다문화 가정의 아동을 대상으로 방과후 보호 및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초보 작가나 예술성은 있으나 마케팅 여력이 부족한 지역예술가들의 자립과 입주기관 직원들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 청사에서 매월 테마별 전시회도 개최하고 있다. 지금까지 전시회를 개최한 예술가는 2000여명에 이른다. 이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이태훈 대구 달서구청장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 中, 코로나 확산세 꺾이자마자… 시진핑 띄우기

    中, 코로나 확산세 꺾이자마자… 시진핑 띄우기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인 중국이 안팎의 거센 책임론에 휩싸였던 시진핑 국가주석에 대한 노골적인 미화작업에 들어갔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말 발원한 코로나19 사태가 안정세에 들어서자 중국 당국은 최근 들어 통제에 자신감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당국에 발맞춰 ‘시진핑 찬양’의 선봉에 서기 시작했다. WSJ에 따르면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방역 최전선에서 일하는 의료진을 방문하는 것부터 외국 정상들에게 코로나19 관련 통화를 하는 것까지 꼼꼼하게 기록, 보도하고 있다. 최근 이 매체는 “시 주석의 헌신이 국민을 항상 최우선에 두는 갓난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보도했다. 관영언론의 보도 행태는 코로나19 확산 초기 시 주석과 공산당이 늑장 대처를 했다는 비판을 완화하려는 것이다. 집권 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던 시 주석을 오히려 사태를 수습하고 세계 보건 위기에 도움을 준 결정적인 지도자처럼 미화해 악화된 여론을 되돌리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중국 매체들은 사태 초기 어디에도 보이지 않던 시 주석의 책임론을 지우기 위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하고 있다. WSJ는 대표적인 공산당 이론지 치우스가 지난 2월 초 진행된 당 정치국 상무위 회의의 시 주석 연설 전문을 실은 사례를 꼽았다. 치우스는 시 주석이 1월 7일 당 상무위에서 코로나19 대처를 위한 회의를 개최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마치 그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사태를 진두지휘한 것으로 묘사했다. 여론은 냉담하다. WSJ는 “국민들은 아직 지도자에게 사과도 요구하지 않는데, 지도자들은 벌써부터 국민에게 감사를 표하라고 요구한다”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의 게시글을 소개하며 “중국인들은 여전히 정부에 대해 큰 분노를 느끼고 있다”고 보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벽돌로 쌓은 도시… 다른 듯 닮은 어울림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벽돌로 쌓은 도시… 다른 듯 닮은 어울림

    쿠알라룸푸르는 ‘흙탕물(lumpur)이 만나는 곳(kuala)’이라는 뜻이다. 그 이름에 걸맞게 구도심의 중심에서 곰박과 클랑이라는 이름의 두 탁한 강줄기가 만난다. 그 교차점에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말레이시아의 수도답게 자멕 모스크가 자리 잡았다. 국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보장돼 있다는 것 또한 다민족, 다종교 사회인 말레이시아의 특징, 그리고 고민을 동시에 보여주는 듯하다. 자멕 모스크의 동남쪽 일대가 쿠알라룸푸르의 구도심이다. 동남아시아의 상가주택(숍하우스)에 관심이 있다면 꼭 가봐야 하는 곳이다. 그만큼 숫자도 많고, 건축 양식도 다양하다. 싱가포르에도 상가주택이 많이 있지만 쿠알라룸푸르가 양적으로, 그리고 다양성 면에서 앞서는 것 같다. 쿠알라룸푸르라는 도시와 상가주택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이 있다. 그 하나는 얍 아 로이라는 광둥 출신의 중국인이고, 또 다른 하나는 프랑크 스위튼햄이라는 영국인이다. 얍 아 로이는 다수파인 말레이족과 대별되는 이 지역 중국인의 지도자로서 인근 주석 광산의 배후 지역에 불과했던 쿠알라룸푸르의 근대화를 추구했던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도시 근대화의 구체적인 방법을 제공한 인물이 쿠알라룸푸르가 위치한 셀랑고르 주의 외국인 고문 스위튼햄이었다. 1882년 고문이 되자 그가 처음으로 한 일은 거리를 청소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는 도시를 개조하기 시작했다. 마침 그 전 해인 1881년 쿠알라룸푸르에 대화재가 발생, 대대적인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는 우선 초기 주석 광산 시대의 유산인 목구조의 초가 지붕 건물 대신 벽돌과 타일로 건축할 것을 법으로 정했다. 이렇게 해서 건물의 물리적인 수명을 늘리고 무엇보다 화재에 대비하려 했다. 벽돌 수요가 대대적으로 늘어나는 것에 대비해 얍 아 로이는 넓은 지역 하나를 인수해서 여기에 도시 재건을 위한 벽돌 공장을 설립했다. 그것이 지금 쿠알라룸푸르의 ‘리틀 인디아’로 불리는 ‘브릭필즈’다. 이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을지 모르지만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쿠알라룸푸르를 근대 도시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제도가 만들어지고 산업 인프라도 갖췄다. 이렇게 해서 집단적으로 출현한 것이 1880년대 중반의 과도기형 상가주택이다. 구도심 중심가로의 하나인 툰에이치에스리(Tun H. S. Lee)가(街)는 당시의 상가주택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스위튼햄이 만든 또 다른 규정은 가로에 면한 1층의 전면에 대한 것이었다. 상점의 전면을 5피트, 즉 1.5m 정도 후퇴해 일종의 아케이드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상가주택은 벽을 공유하는, 소위 합벽건축이어서 이 아케이드는 가로 전체로 확대될 수 있었다. 이것은 곧 사람들이 비가 와도 젖지 않은 채로 거리를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오척가로(five-foot way)다. 현대적인 언어로 풀어쓰면 사유재산에 대한 제도적인 개입을 통해 공공의 선을 확장한 정책인 셈이다. 스위튼햄이 이러한 제도를 처음 고안한 것은 아니었다. 싱가포르를 세운 스탬퍼드 래플스 경이 이미 1822년에 이 규정을 도시 계획에 포함시킨 바가 있었다. 오늘날 동남아시아의 도시적 전통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알고 보면 유럽인 식민지배자들에 의해 제도로 정착됐다. 초기 상가주택은 2층이었으나 이어 3층으로 수직 확장됐다. 그러나 대체적인 폭은 20피트, 즉 6미터 정도를 유지했다. 정면이 좁은 대신 안쪽으로는 깊었다. 너무 깊어지면 채광과 환기를 위한 중정이 추가되는 것 또한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시대에 따라 다양한 건축 양식이 반영됐다. 중국, 말레이 양식이 도입된 것은 당연했고 거기에 다양한 유럽의 영향, 즉 신고전주의, 네덜란드, 심지어 아르데코와 모더니즘의 영향까지 발견된다. 초기에 소박했던 상가주택이 본격적으로 화려해지기 시작한 시기의 모습을 쿠알라룸푸르 구도심의 거점 중 하나인 구시장 광장에서 볼 수 있다. 구시장 광장을 찾아간다. 열대지방치고는 비교적 견딜 만한 날씨다. 여기에도 상대적인 4계절이 있어서 이제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고 있는 중이다. 두 개의 강이 만나는 지점 일대에서는 한창 강변 미화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공사장이나 다름없는 거리를 지나, 현대 건축물과 오래된 건물이 불편한 동거를 하고 있는 듯한 업무 지역을 빙 돌아가자 한눈에 봐도 반듯하게 정리가 된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서쪽에는 고층 오피스가 가지런히 서 있었지만 그 반대편인 동쪽은 완전히 분위기가 다르다. 제과점의 쇼윈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다채로운 색상의 상가주택들이 한 줄로 서 있다. 흰색, 하늘색, 노란색, 붉은색…. 하지만 명도가 높아 서로 싸우지 않는다. 마치 자로 잰 듯이 모두 3층이고 정면의 폭도 일정해서 가로의 연속성이 잘 유지되고 있다. 세부 디테일은 조금씩 차이가 나서 창문은 창문대로, 옥상의 페디먼트 장식은 장식대로 모두 저마다의 특성이 있다. 몇 가지 요소들에 차이를 주고 그것과 색상 몇 가지를 조합한 결과 단 한 채도 같은 건물이 없는 것이다. 통일성과 다양성을 잘 겸비하고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1층은 모두 상점인데 위에서 설명한 오척가로의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 누군가는 자기 상점의 면적을 늘리겠다며 전면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인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도와 문화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결과가 아닌가 싶다. 다만 간판이 어지럽게 붙어 있는 모습을 보면 삶의 구석구석까지 그런 생각이 침투하지는 않은 듯하다. 다시 길을 걷시 시작해서 툰에이치에스리가를 따라 내려간다. 건축 양식이 또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과감한 색상을 사용한 건물도 보인다. 간판만 좀더 정리되면 유럽 어디의 거리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곳’이라는 곳이라는 표현은 한국보다는 이런 곳에 훨씬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쿠알라룸푸르가 이렇게 다양한 문화를 갖고 있는 도시인 것은 미처 몰랐다. 다만 그 수많은 다양성 중에 이슬람 문화가 상가주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실치 않다. 짧은 일정 동안 육안으로 확인하는 것은 당연히 한계가 있고 관련 자료에서도 이에 대한 언급은 아직 보지 못했다.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어도 그것의 발현은 선택적인 것인가. 쿠알라룸푸르의 구도심은 꽤 넓고 게다가 도시적 연속성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그러면서도 길모퉁이를 돌면 또 다른 분위기의 거리가 나오는 것이 아주 흥미롭다. 차이나타운에 가까워질수록 상업의 밀도는 점점 더 높아진다. 그중에서도 차이나타운의 중심가로라고나 할 페탈링가는 전체 가로 위에 거대한 유리 지붕을 덮어 놓았다. 고풍스러운 상가주택과 현대식 유리 지붕이 대비를 이루면서 거리의 풍경을 더욱 다채롭게 만든다. 이 지역에서 다시 상가주택의 층수는 2층 정도로 통일된다. 그러면서 벽돌 혹은 목재의 중국풍 장식들이 추가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쿠알라룸푸르의 상가주택과 한국의 2층 한옥 상가를 비교해 본다. 일단 시기로 보면 1900년 무렵 등장한 한옥 상가가 다소 늦었다. 게다가 목구조 건축술의 한계, 그리고 아마도 경제적인 이유 등의 이유로 2층을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쿠알라룸푸르의 상가주택도 당초 목조였으나 얍 아 로이와 스위튼햄의 지시에 따라 벽돌조로 전환했다. 지난번 연재에서 잠시 다룬 싱가포르 차이나타운의 역사박물관 건물은 기둥과 보 등 주요 구조부가 아예 콘크리트였다. 하지만 대체로 이 지역에서는 이것을 시대의 변화에 따른 당연한 건축술의 진보로 보는 듯하다. 즉 일부 문화재 건물을 제외하고는 목구조 자체의 물리적 ‘진정성’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은 그 반대다. 목구조 이외의 한옥은 상상할 수 없다. 그것이 낳은 결과의 차이는 크다. 쿠알라룸푸르의 상가주택은 벽돌이라는 새로운 구조 방식을 받아들인 결과 3층 이상의 층수를 확보하면서 근대화가 야기하는 도시적 밀도의 압박을 어느 정도 이겨낼 수 있었다. 물론 최근 들어서는 그 이상의 밀도가 요구되면서 도시 건축의 보편적 유형으로서의 상가주택이 갖는 의미는 점점 더 사라지고 있으나, 적어도 상당한 기간 동안 그 역할을 해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반면 2층 한옥상가는 애초에 보편적 유형으로 보급되지도 못했고, 근대화 과정에서 도시적 밀도가 금방 2층 그 이상을 요구해 왔기 때문에 유효 기간이 길지도 않았다. 결국 현재 한국 도시에서 2층 한옥 상가는 지극히 희귀한 존재다. 최근 화제가 된 남대문로의 2층 벽돌 한옥상가처럼 문화재 대접을 받으며 가까스로 파괴의 위험을 벗어난 것은 정말 보기 드문 예다. 얼마 남지도 않은 그 나머지는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정면을 뒤덮은 간판과 가벽 뒤에서 자기 정체성을 숨긴 채 근근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도시란 결국 밀도와 복합이라는 두 개의 키워드로 구성되는 인간의 정주 형태다. 도시 건축의 유형이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하나만 무시해도 결국 도시적 보편성을 상실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종종 그 유형 자체가 아예 송두리째 사라지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밀도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그래서 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상당한 제도적·경제적 보호를 받지 못하면 명맥을 유지하기 어렵거나 특수 용도의 건축물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이것은 우리의 한옥이 밟아 온 과정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도 상가주택의 미래에 대해 수많은 고민이 쏟아져 나온다. 싱가포르, 그리고 같은 말레이시아의 도시 중에는 말라카 등이 모범 사례로 종종 제시된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가 이런 역사적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들이 힘을 모아 쿠알라룸푸르 구도심의 한 가로를 ‘더로’(the Row)라는 이름의 매우 매력적인 상가주택 지역으로 탈바꿈시켰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이런 현상이 이미 2000년대의 한국에서도 시작되고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무수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북촌과 서촌, 그리고 전주와 경주 등의 한옥 마을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이를 증거한다. 역설적이지만 전통의 미래는 젊은 세대에게 달려 있다. 이렇게 몸은 이국의 거리에 서 있으나 생각은 한국을 향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패전 70년, 군국주의 상징 ‘제로센’ 다시 날아오르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日 패전 70년, 군국주의 상징 ‘제로센’ 다시 날아오르다

    올해는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의 사슬로부터 해방된 지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태평양 전역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갔던 일본 군국주의 광풍(狂風)이 멈춘 지 70년이 된 해이다. 같은 전범국이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독일이 반세기 넘도록 사과와 반성을 거듭하면서 국제사회의 모범 국가로 대접받는 것과 대조적으로 일본은 종군위안부와 징용을 부정하면서 사과와 반성을 거부하면서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패전 70년에 즈음해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한 법안을 통과시키며 다시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가 된 일본이 이제는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열었던 침략의 상징 ‘제로센(零戰)’ 전투기 복원을 준비하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 태평양 전쟁의 상징 1941년 12월 7일 이른 아침, 대규모 전투기 편대가 나타났다. 휴일을 맞아 휴식을 취하고 있던 미 해군 태평양함대는 일본군 전투기 부대의 대공습을 받아 패닉 상태에 빠졌고, 이로써 태평양전쟁이 시작됐다.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 五十六)와 나구모 주이치(南雲 忠一)가 이끄는 일본해군 연합함대는 항공모함 6척에 441대의 전투기와 공격기를 싣고 전함 2척, 순양함 3척, 구축함 9척의 대함대의 호위를 받으며 하와이에 접근해 방심하고 있던 미 해군을 대상으로 파상공격을 퍼부었다. 당시 미 해군 전함을 공격했던 기종은 97식 함상공격기였지만, 하와이 상공의 제공권을 잡으며 미군 전투기들을 사냥했던 전투기는 제로센, 이른바 '0식 함상전투기'(零式艦上戰鬪機)였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가 만든 ‘바람이 분다’라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소개된 호리코시 지로(堀越二郎)가 설계한 이 전투기는 몇 가지 치명적인 결함이 있기는 했지만 등장 당시에는 태평양 전선 최강의 전투기로 악명을 떨쳤다. 지로는 제로센을 설계할 당시 일본해군의 “최대한 멀리 날 수 있고 최대한 빠르고 날렵한 전투기를 만들라”는 요구에 대단히 고심했다. 전투기가 빠르고 멀리 날기 위해서는 고성능 엔진이 필요한데 당시 일본의 공업기술력으로 이러한 엔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대안은 ‘기체 경량화’였다. 제로센은 장갑판을 최대한 생략했고 동체와 주익 외피에 사용된 금속판은 최대한 얇게 만들었으며, 골조 내부를 비게 만들어 최대한의 경량화를 달성했다. 제로센의 무게는 연료와 무장을 제외한 자체 중량이 약 1.7톤이었는데 이는 태평양 전쟁 개전 초기 라이벌이었던 미 육군 항공대의 P-40 전투기보다 1톤 가까이 가벼운 수준이었다. 기체가 가볍다보니 제로센은 발군의 기동력을 자랑했다. 속도는 물론 가속성능과 선회 능력이 대단히 우수했는데, 이 때문에 개전 초기 태평양 지역의 미군과 영국군 조종사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했다. 속도가 빠르고 선회 능력, 즉 더 빠른 속도로 더 작은 공간에서 한 바퀴를 돌 수 있는 능력이 우수했기 때문에 연합군 조종사들은 제로센을 발견했다 싶으면 어느 순간 꼬리가 물려 있는 상황에 종종 처했다. 이러한 이점으로 제로센은 개전 초기 2년 동안은 무적의 전투기로 군림했지만, 이러한 전성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직후 무기체계 관련 기술 개발에 천문학적인 자금과 노력을 투입했던 연합군과 달리 일본은 전투기 성능 개량이나 개발에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고, 제로센이 기술적으로 정체되어 있는 사이 미군은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제로센보다 더 강력한 무장과 장갑을 갖추었음에도 속도가 더 빠른 F-6F 헬켓(Hellcat)이나 F-4U 콜세어(Corsair)을 배치했고 한때 태평양 상공을 주름잡았던 공포의 전투기는 같은 회사의 G4M 폭격기와 더불어 ‘원 샷 라이터(One-shot lighter)’로 전락했다. 한두 발만 맞춰도 불덩이가 되어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이러한 별명처럼 제로센은 급격히 몰락했다. 기체 중량을 줄이기 위해 무장이 기관총 정도밖에 없다보니 두꺼운 장갑판을 두른 미군 전투기를 격추시키기 어려웠고, 반대로 제로센은 미군 전투기나 대공포로부터 몇 발만 맞아도 기체에 구멍이 뻥뻥 뚫리며 추락했다. 이 같은 화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20mm 기관포를 탑재하는 개량 작업이 이루어졌지만, 이러한 개량 때문에 기체가 무거워지면서 그나마 장점이었던 기동성이 희생되어 제로센의 피해는 더 커져만 갔다. 결국 1943년을 기점으로 몰락하기 시작한 제로센은 1944년부터는 제대로 된 공대공 전투보다는 자살 돌격작전, 즉 가미카제(神風) 작전에 동원되었고 수많은 젊은 조종사들이 ‘일왕 만세(天皇陛下萬歲)’를 외치며 허망하게 죽어갔다. ▲ 패전 70년, 일본 군국주의 부활 원년? 제로센 전투기는 엄청난 사상자를 낸 태평양 전쟁의 신호탄을 쏜 무기이자 침략자 일본 왕을 위해 옥쇄(玉碎)도 불사한다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전투기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전국 곳곳에 이 전투기와 조종사들의 활약상(?)을 기리는 박물관과 전시장이 11곳이나 존재하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 신사 내 전쟁박물관 한복판에도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 전투기가 갖는 상징성 때문에 지난 70여 년 동안에는 복원 작업을 통해 다시 하늘로 날리려 하는 ‘패기’를 가진 이들은 없었다. 이 전투기가 복원되어 하늘로 날아오른다는 것은 곧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위한 날갯짓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내외 반발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 극우 세력은 이 전투기를 대중에게 친숙한 아이템으로 어필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일본 NHK 방송의 경영위원이자 소설작가인 햐쿠타 나오키(百田尚樹)가 제로센 전투기와 자살 돌격대를 미화한 『영원의 제로(永遠の0)』라는 소설을 출간해 500만 부 이상 팔리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고, 방위성과 육·해·공 자위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인기 아이돌 오카다 준이치(岡田准一) 주연으로 영화로도 제작됐다. 이 영화는 700만이라는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문제는 이러한 ‘전범 미화작업’이 일본 문화계 전반에 걸쳐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 내부의 반발도 적지 않다. 가미카제 특공대에 대한 고발 소설을 써 극우 세력으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던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 작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미카제 특공대는 미화의 대상이 아니라 일본 역사의 치부이며, 이들은 자발적인 죽음이 아니라 군부 세력의 강요에 의해 희생됐다”고 지적하면서 극우 세력의 제로센과 가미카제 미화 작업을 비난했다. 그러나 극우 세력은 이러한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로센을 다시 띄우기 위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 미쓰비시중공업 제품 올 8월 비행 예정 일본 극우세력들은 지난 2013년, 모금을 통해 조성한 자금으로 ‘주식회사 제로 엔터프라이즈 재팬’이라는 기업을 만들어 제로센 전투기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이들은 뉴질랜드에 거주하는 일본인 이시즈카 마사히데(石塚政秀) 소유의 전투기를 지난 2008년 구입, 수년에 걸쳐 이 전투기를 여러 파트로 분해해 일본으로 반입했으며, 지난주에 엔진 구동 시험을 마치고 미국 연방항공국(FAA)의 형식 승인까지 얻어냈다. 이러한 복원작업 전 과정은 일본 방위성과 자위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진행되고 있는데, 현재 제로센 전투기가 격납되어 있는 곳도 해상자위대 가노야(鹿屋) 항공기지이며, 해자대는 제로센 복원 작업 전반에 관여하고 있다. 일본은 이 제로센 전투기를 패전 70주년이 되는 올 8월 하늘로 띄울 계획이다. 공교롭게도 8월에는 ‘헤이세이(平成) 시대의 제로센’이라 불리는 일본 스텔스 전투기 기술실증기 ATD-X(Advanced Technology Demonstrator-Experimental) 심신(心神)의 첫 비행이 계획되어 있으며, ‘공격무기의 상징’인 상륙돌격장갑차 시제차량 공개도 예정되어 있는데, 더 재미있는 것은 제로센 전투기와 ATD-X, 신형 상륙돌격장갑차를 만드는 회사가 모두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이라는 것이다. 패전 70주년에 맞춰 집단적 자위권 확보를 통해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를 부활시키고 70년 전 침략 전쟁의 선봉에 섰던 전투기를 복원시키며, 더 나아가 그 전투기를 만들었던 회사에서 신형 스텔스 전투기와 공격용 장갑차까지 개발해 패전했던 그 날에 공개한다는 계획! 이것을 단순한 우연으로만 볼 수 있을까?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뒷골목 맛세상] 인사동의 작은 맛집들

    [뒷골목 맛세상] 인사동의 작은 맛집들

    인사동은 흔히 ‘거리의 박물관’이라고 불린다. 화랑에서부터 공예품이며 골동품을 파는 가게에 이르기까지 고급스러운 문화의 향취가 풍겨난다. 더군다나 얼마 전부터 관광특구로 지정돼 거리 미화작업이 진행되고, 기다렸다는 듯이 문화자본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인사동은 더욱 세련되고, 멋들어졌다. ●음식점 상호엔 멋들어진 우리말 화가나 도예가, 공예인, 문인 같은 예술인들이 터전을 삼아 노니는 곳에 어찌 멋이 뒤따르지 않겠는가. 그들의 발자취가 두루 머무는 곳에 멋이 빠진다면 그야말로 속빈 강정에 다름 아닐 터이다. 멋스러운 거리에 자리를 잡은 먹고 마시는 맛집들 또한 어찌 멋들어지지 않겠는가. 인사동의 맛집들은 우선 상호에서부터 맛이 다르다. ‘오늘같이 좋은 날,千강에 비친 달, 바람 부는 섬, 소금인형, 황금비늘, 두레멍석, 오 자네 왔는가, 툇마루, 놀부가 기가 막혀, 흥부가 기가 막혀, 북치구 장구치구, 사람과 나무, 우리 그리운 날은, 평화만들기, 달고둥, 보릿고개추억, 조각하늘, 좋은 씨앗, 달새는 달만을 생각한다, 뜰 앞에 잣나무, 아빠가 어렸을 적에, 낮에 나온 반달, 완자무늬, 머시 꺽정인가, 모깃불에 달 끄슬릴라, 풍경소리….’ 얼핏 둘러봐도 가히 그 멋들어짐은 시인의 상상력을 넘어선다. 멋들어진 것이 어디 상호뿐이랴. 다양한 먹을거리 또한 멋들어져서, 은정이나 선천, 사천, 이모집 같은 전통 한정식에서부터 재첩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섬진강, 다슬기 요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풍류사랑, 홍어만을 전문으로 하는 홍어가 막걸리를 만났을 때, 홍어천하, 사찰음식 전문의 산촌, 녹차대나무쌈밥이며 녹차너비아니 등 밥이며 요리에 녹차를 이용한 차이야기, 야채 커리나 마살라 같은 인도 요리의 작은 인디아, 된장비빔밥의 툇마루에 이르기까지 불쑥 어느 집에 들어가도 멋들어지지 않은 요리가 없다. 어쩌면, 인사동에 한 가지 흠이 있다면 바로 그 멋들어짐이 너무 지나치다는 데에 있는지도 모른다. 멋이 멋으로만 머물지 않고 멋 자체가 상품화되어 거리에 넘쳐난다면 그런 멋은 이미 멋이 아니다. 멋들어짐이 지나치면 곧바로 건들거리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렇게 건들건들, 건들거리면 자칫 사람 냄새를 잃고 만다. 만약 인사동 거리가 죄다 사람 냄새를 잃고 건들거리고 있다면? 인사동에 언제부터인가 40대 언저리의 중년여인이 있는 듯 없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그이는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10미터쯤 오르는 왼편 골목에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조그만 맛집을 냈다. 작은 뜨락(02-739-2218)이라는 상호인데, 원래 건물 옆에 버려진 골목이었던 것을 위는 차양으로 가리고, 건물 벽에 의지해 폭 1미터에 길이 5미터 남짓한 공간을 마련했다. 폭이 너무 좁아 일반 탁자를 놓을 수가 없어서 벽에 긴 나무판대기를 붙이고, 바닥에는 겨우 엉덩이를 걸칠 만한 간이의자를 놓았다. 이 집에서 먹고 마시기 위해서는 한껏 몸을 웅숭그린 채 본의 아니게 면벽을 해야 한다. ●인사동 풍류객들의 ‘참새 방앗간’ 한 마디로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맛집에다가 주인 되는 노인자씨도 멋하고는 아예 담을 쌓은 이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한 주먹 움켜잡아 뒤통수에 질끈 동여맨 꽁지머리, 아무렇게나 차려입은 차림새. 한 술 더 떠, 먹고 마시는 소위 물장사가 난생 처음이어서 음식을 마련하고 상을 차리고 셈을 헤아리는 일도 서툴다.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손님이 “여기 얼마요.”하면 “몰라요. 먹은 만큼 알아서 주세요.”가 대답이고, 대구와 동태라는 생선을 구별하지 못해 대구를 동태로 파는가 하면 손님이 계산을 않고 나가도 숫제 알아내지를 못했다. 멋대가리라고는 없는 작은 뜨락의 진가를 인사동의 눈 밝은 이들이 못 알아볼리 없었다. 툇마루의 바깥주인이자 ‘집도 절도 주민등록증도 없이’ 떠도는 시인 박중식, 동숭동에서 작가폐업이라는 카페를 운영하는 예사롭지 않은 작가 배평모, 누구나 알아주는 시대의 낭만주의자인 시인 김사인, 한국판 비용으로 통하는 시인 김신용, 인사동 화단의 마당발 화가 장경호,588여인들의 사진전으로 이름을 날린 사진작가 조문호, 십수 년에 걸쳐 인도를 헤맨 끝에 ‘우리는 지금 인도로 간다’는 인도 안내서를 내고 아울러 ‘인도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인도전문가 정무진 등 소위 인사동의 풍류객으로 통하는 이들이 마치 고양이가 생선냄새를 맡고 찾아오듯 차례로 작은 뜨락에 모여들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노인자씨는 물장사만 난생 처음인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일 또한 처음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돈이라고는 벌어본 적이 없는 노인자씨는 돈을 쓰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화려한 이력이 붙은 이였다. 일찍이 불교계의 내로라하는 큰스님 아래서 포교사 비슷하게 아시아 각국이며 유럽을 거쳐 아프리카까지 돌아다녔는데, 세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려가며 아프리카를 종단하여 굶주린 현지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썼다. 이를테면 몸과 마음 전체를 바쳐 30년 가까이 중생구제라는 보살행을 해온 셈이었다. 그런 그이가 어느 날 획하고 머리가 돌아 그만 맛집을 차려 돈을 버는 일을 하고 말았다. 인사동의 눈 밝은 풍류객들이 맨 먼저 알아본 것은 다름 아닌 주인 되는 이의 사람냄새였을 터이다. 그런 그이들로서는 적어도 작은 뜨락이 그대로 망하는 꼴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이들은 주인을 대신하여 나름대로 작은 뜨락을 살리는 일에 나섰다. 이를테면 셈이 어두운 주인을 대신해 모자를 돌려 자신들이 먹고 마신 만큼 돈을 거두어 스스로 셈을 헤아리고, 한 접시에 5000원을 넘지 않는 한도에서 입맛에 맞는 안주를 개발해내고, 무엇보다도 작은 뜨락을 연락처 삼아 주인이 있든 없든 하루에 한 두 번은 꼭꼭 들렀다. 그리고 그이들은 마침내 작은 뜨락만의 규칙을 만들었다. 술과 안주는 한 사람이 1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1차를 마감한다. 만일 차수를 변경하여 2차로 넘어가면 다시 모자를 돌려 1만원을 추가하는데, 절대로 외상은 없다. ●사찰음식 전수받은 된장찌개·들깨탕 작은 뜨락은 4000원짜리 우거지 해장국이 있어서 식사도 할 수 있다. 술안주는 서산에서 이틀에 한번 꼴로 택배로 부쳐오는 어리굴젓과 자연산 생굴이 있는데, 배춧속에다가 생굴을 쌈 싸먹는 맛이 신선하다. 그밖에 조기며 자반고등어 같은 생선구이며 생선찌개도 있다. 작은 뜨락에 처음 가는 이라면 마땅히 조심해야 할 것은 자칫 요술 같은 시간의 흐름에 휘말리는 일이다. 우연히 합석하게 된 풍류객들과 잠시잠깐 웃었는데, 낮술 한 잔이 어느 새 2차,3차를 넘어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다. 인사동 네거리에서 종로 2가 쪽으로 몇 걸음 걷지 않으면 덕원 갤러리 옆 골목 깊숙이 고샅길(02-734-3371)이라는 한식 전문집이 역시 있는 듯 없는 듯 멋 부리지 않고 있다. 한옥의 사랑채를 개량한 듯 주방까지 합쳐 10평 남짓한 실내에 대여섯 개의 식탁이 있는 작은 집이다. 출입문 쪽의 벽을 터서 통유리창을 달고 거기에 진열해놓은 종발 같이 앙증맞은 도기들이 무슨 꽃들이라도 재잘거리며 피어나듯이 아름답다. 뿐만 아니라 좁은 공간에 매달아놓은 화분들이며 실내장식들은 어디에서나 주인의 깔끔하고도 섬세한 손길이 그대로 묻어나와 은은한 향기를 풍긴다. 고샅길 주인 되는 이는 박진숙·경숙 두 자매인데, 이중에서 언니 되는 박진숙씨가 도예가여서 이들 종발이며 요리에 쓰이는 접시와 그릇들을 모두 포천에 있는 작업실에서 직접 구워낸 것이다. 동생인 경숙씨는 식품영양학과 출신으로 원래부터 음식 솜씨가 뛰어났는데, 솜씨를 아낀 언니의 권유로 인사동까지 나서게 되었다. 고샅길의 특징은 요리에서 밑반찬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이 우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고샅길된장찌개(5000원)와 산사들깨탕(1만원)이 일품이다. 메주를 쓰지 않고 알콩 자체를 띄워 만드는 절에서만 전해오는 비법으로 담근 된장을 원료로 한 된장찌개는 한 입 넣는 순간, 어떻게 이런 맛이 날 수 있을까 싶게 그 정갈하면서도 깊은 맛에 대뜸 매료된다. 스님들의 보양식에서 비롯되었다는 산사들깨탕 또한 예사로운 맛이 아니다. 곱게 간 들깨에 배추, 호박, 버섯, 두부, 거두절미한 콩나물을 넣고 약간 되직하게 끓인 산사들깨탕은 육식을 좋아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특히 별미일 터이다. 얼핏 보면 지극히 평범하지만 먹을수록 감탄사가 나오는 이 두 가지 요리는 실제로 쌍계사에 있던 무산스님으로부터 전수받았다는데 무산스님은 출가하기 전에는 한의사 출신으로 평소에도 사찰음식에는 깊은 조예가 있는 이였다. 이밖에도 5000원짜리 동태찌개와 야채비빔밥이 있고, 술안주로는 버섯전골(2만원)이며 닭매운탕(2만원)이 있는데, 서너 명이서 너끈히 즐길 수 있는 양이다. ■ 인정으로 우려내는 전통찻집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방향으로 한참을 올라와 쌈지박 어름에서 왼편 길로 접어들면 산타페 입구 옆에 초당(02-738-4154)이라는 전통찻집이 또한 있는 듯 없는 듯 멋 부리지 않고 있다. 탁자 세 개가 전부인 작은 공간의 한 쪽에 주인 되는 최정해씨가 평생을 바로 그 자리에 있었던 듯 그림 같은 자세로 신비한 미소 지으며 앉아 있다. 결코 적지 않은 나이와는 상관없이 곱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자태다. 무언가 알 수 없는 향기와 빛깔이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듯한 자태는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마치 오랜 세월을 잊혀졌다가 어느 날 불쑥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고려청자나 이조백자처럼 정지된 시간 속에서 깊어진 향기며 빛깔이다. 삶의 무엇이 한 여인을 저렇듯 깊게 만들었을까. 참으로 막막한 무슨 기다림 같은 것은 아닐까. 손님이야 하루에 한 명이 들든 두 명이 들든 별로 개의치 않는다. 중요한 것은 바로 최정해씨가 지키고 있는 자리이다. 벌써 20년 가까이 그 자리에서 어쩌다 든 손님들에게 깊은 손길로 차를 만들고 차를 따른다. 아주 잊혀진 듯 참으로 오랜만에 오는 손님이면 연꽃 모양의 작은 촛불을 물이 담긴 자기 잔에 켜서 차와 함께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촛불에 어둑한 실내가 일순 은은하게 밝아지면서, 그것을 지켜보는 손님의 어둑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이 밝아지기 마련이다. 그렇듯 밝아진 마음으로 차를 들어 한 모금 입안에 넣으면 저 안으로 깊이 흘러들어가는 것은 비단 차만은 아니다. 홍삼말차라는 초당만의 특이한 차가 있다. 녹차 가루에 홍삼가루를 섞어서 약간 되직하게 물을 넣은 흡사 맑은 죽 같은 느낌의 차인데, 이것을 사발에 넉넉하게 마시고, 다음에 바위에서 나는 대나무의 어린 순으로 만든 연둣빛 석죽차와 석류빛 오미자차를 마시고, 이어 솔바람차며 매실차까지 마신다. 차를 바꾸는 틈틈이 편강, 쥐눈이콩강정, 오미자 양갱으로 입가심을 해가며 대여섯 가지의 차를 마시고 나면, 삶의 무엇이 우리를 그다지 애면글면 안타까워하게 하랴. 이런 식으로 차를 순례하고 초당을 나설 때 잠자코 1만원짜리 한 장을 식탁에 놓아두는 것을 잊지 말 일이다.
  • ‘교과서 편파기술’ 설전

    ‘검정 중·고 역사교과서 편파기술’ 문제로 1일 정치권이 논란에 휩싸이고 국회 교육위원회 전체회의가 위원장 직권으로 소집됐지만,정작 회의는 예상과 달리 비교적 밋밋하게 끝났다. 한나라당은 정치권과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와 함께 책임규명을 요구하는 등 장내외에서 파문 확산에 주력했다.김정숙(金貞淑) 최고위원은 이날 “교육부가 검정위원 선정과정에서 교육과정평가원의 추천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으로 주도했으며,이 과정에서 정치외압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국회 교육위의 박창달(朴昌達) 의원도 “교과서가 정권의 홍보지로 전락한 데는 무서운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며 국정감사 실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설훈(薛勳) 의원은 “근·현대사의 기술 문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지만,임기가 끝나지 않은 현 정부를 대상에 포함한 것은 잘못됐다.”면서 “문제의 내용을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설 의원은 또“한나라당이 이번 일로 현 정권을 판단하려 하지만,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이해를 가진 국회의원이현 정부의 공과를 논하는 것도 무의미하고,정쟁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경(李美卿)·송영길(宋永吉) 의원 등은 “이번에 통과된 4개 교과서 가운데 두 가지는 현 정권의 공과(功過)를 함께 실었는데 음모론이 나오는 게말이 되느냐.”면서 “5,6공뿐 아니라 문민정부 시절까지 정권 미화작업이 극에 달해도 전혀 문제제기가 없었는데,한나라당이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상주(李相周) 교육부총리는 답변에서 “외부의 힘이 의도적으로 교과서제작과 검증에 적용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면서 “탈락한 교과서들이 도리어 문민정부를 더 비판적으로 기술하고 있어 의도가 있었다면 오히려 그 책을 선정했어야 했다.”고 해명했다.이어 “언론도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현 정권을 지금 기술하는 데는 공정성에 문제는 있다.”면서 “그런 각도에서 (문제의 교과서는) 수정돼야 한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지운기자 jj@
  • 전봇대 미화사업 일석삼조

    ‘도심의 흉물 전봇대가 지역 명물로 탈바꿈했다’ 은평구(구청장 盧載東)가 각종 광고스티커의 부착으로 도심 미관을 해쳐온 전봇대에 농촌 풍경 등 향토색 짙은 그림을 그려놓아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은평구는 불광동 281 불광전철역 주변 음식점 밀집골목의전봇대 50개에 소나무, 학, 농부의 모습 등 우리의 고유정서를 상징하는 각종 그림을 그리는 ‘전봇대 미화(美化)사업’을 벌이고 있다. 16개의 전봇대에 그림을 그린 데 이어 인근 음식점 주인들로 구성된 상인번영회의 참여를 얻어 전봇대를 아름답게꾸미는데 적극 나서고 있는 것. 전봇대 미화사업은 광고 스티커를 제거해도 흔적이 남아불결한데다 더 높은 곳에 부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그림을 그려넣은 뒤부터는 불법광고물 부착행위가 싹없어졌다. 성열헌 불광1동장은 “미화작업을 통해 광고물 부착 근절,광고물 제거에 따른 인력 절감,주민 정서함양 등 1석 3조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조성기·김다은씨의 ‘꾸밈’없는 이야기 두편

    수식이 거의 없어 오히려 감칠 맛나는 소설집 두 권이 눈길을 끈다. 중견작가 조성기의 작품집 ‘종희의 아름다운 시절’(민음사)은 타이틀작과 ‘종희의 서러운 시절’을 포함,3편으로 된 얇은 책이다. 종희라는 이름을 내건 두 편의 작품은 주인공이 같은 연작인데 이야기 내용도 독자를 사로잡지만 이야기를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작가가 부러 선택한 문체가 한층 매력적이다.이북 원산에서 태어난 여주인공 종희가 19살로 육이오를 맞기까지가 소설의 아름다운 시절이고 부모와 올케·조카를 놔두고 월남한 직후의 부산 생활이 서러운 시절에 해당된다. 일제 말기,분단직후의 북한,전쟁발발과 월남 등 사연이 많을 수 밖에 없지만 비슷한 사연이 흘러넘치고 이미 많이 이야기되어버려서 탈이다.작가는 이 흔한 사연을 어떻게 해야 새롭게 말할 수 있을까. 본래 이 작품의 소재는 창작이 아니고 작가의 옛 전세집 여주인인이종희씨가 테이프 10개 분량에 담은 과거사다.조성기는 이 장황한신세담을 테이프 1개 분량도 못되게 바짝 조인다.이때 시제의 현재형 고수,수식어와 설명 적극 배제의 특이한 문체가 솟아난다.길고 중복됐을 사연 한가운데를 뭉턱 잘라버리고 현재 시제와 함께 쑥쑥 나가는 바람에 인물이 굉장히 생동감있게 다가오며 마치 아직 앞뒤를 재지 못하는 아이처럼 설명이란 걸 하지 않아 독자의 상상력을 촉진시킨다.장황한 글을 많이 써본 작가만이 시도할 수 있는 멋진 ‘변태’다. 여성작가 김다은의 ‘위험한 상상’(이룸)도 꾸밈새없는 간명한 문체가 돋보인다.그런데 이 읽기 쉬운 문체는 작품의 전체적인 정조를살려내기 위한 은근한 미화작업이 아니라 작가의 다소 외진 ‘아이디어’에 독자를 곧장 닿게 하기 위한 거침없는 아스팔트 포장과 같다. 사람살이의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비극적인 단면이 작가의 아이디어다. 작가는 인물이나 사회의 곡진한 면보다 일순 정지·확대시킨 인간의조잡하고 부조리한 측면에 더 강하게 끌려있다. 아이디어 한 점을 완전연소시키는 콩트 같이 삶을 너무 단순화한 감이 있지만 바로 이 점을 재미있어할 독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예컨대 표제작에서 한 여고생은 짝사랑하는 선생과의 성적인 관계를 상상하는 일기를 쓴 채 자살하고,그 교사는 그 일기로 꼼짝없이 감옥행을 당한다.‘개만도 못한 소망’은 가출한 아내가 우연히 만난 여자로변신해 남편과 뜻깊은 외도를 한다는 이야기다. 책 후미 해설에서 평론가 김치수는 “대부분의 소재가 일상적으로 보고들을 수 있는 것이어서 농담처럼 웃을 수 있는 것이지만 거기에는언어가 가지고 있는 애매성이라든가 인간의 운명이 가지고 있는 희극성이라든가 소설이 가지고 있는 반전의 묘미라든가 하는 문제를 밝히려는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김재영기자 kjykjy@
  • [인터뷰] ‘아웃사이더’ 편집위원 진중권씨

    “우리 사회의 비평문화는 너무 ‘인격론’에 치우쳐 있습니다.논리적 비판을 인신공격으로 치부한 나머지 의견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등의 저서에서 특유의 풍자적인 필치로 세간의화제를 모은 자유기고가 진중권(陳重權·36)씨가 최근 독일서 귀국,새 비평지 ‘아웃사이더’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아웃사이더’는 제호에서 풍기는 이미지 그대로 기성과 금기에 도전하는 것이 으뜸가는 기조라고 할 수 있다.전북대 강준만 교수의 ‘인물과 사상’에 쌍벽할 비평지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격월간으로 11월말경에 창간될 이 비평지는 진씨를 비롯해 시인 김정란씨,재불평론가 홍세화씨,그리고 자유기고가 김규항씨등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진씨는 “각자 성향이 조금씩 다른 점이큰 매력일 수 있다”며 초창기에는 4인체제로 꾸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웃사이더’는 일단 현실정치에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으로 시작하여 우리사회의 일상적 문제,즉 권위주의,비합리주의,파시즘 등에 대해서도시선을 놓치지 않을 방침이다.“비판은 하되 공격 일변도보다는 생산적 대안모색도 병행하겠다”는 것이 진씨의 설명이다.대학에서 미학을 전공한 진씨가 사회·예술비평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외국생활이 한 동기가 된듯하다.“‘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한 독일에서는 당시 집권자인 아데나워 수상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습니다.그런데 한국에서는 유독 경제건설을 마치 박정희 개인의 업적인양 미화작업을 하고 있습니다.밖에서 보니 ‘문제’라고 느껴집디다” 진씨는 당분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집필에 전념할 계획이다.비평은 그의 영원한 ‘화두’인듯 했다. 정운현기자 jwh59@
  • 「정보가족」 선정 허용호씨 일가

    ◎3대가 「컴」친구… “어느새 가화만사성”/1대 조순애씨­워드로 반상회보 제작 「첨단 할머니」/2대 허씨 부부­전공·사랑·직업 3위 일체된 「컴」커플/3대 민재·희재­환경미화·학교과제물 PC로 “척척” 『며늘아가,고모생일 축하꽃다발은 내가 PC통신으로 주문해 보냈다』,『할머니,저하고 컴퓨터 게임하고 놀아요』,『엄마,어제 인터넷으로 최신영화 「주라기 공원2」그림들을 캡쳐받았어요』 어머니 조순애씨(63),두 딸 민재(14·숙명여중 2년),희재(9·대도초 2년)와 함께 사는 허용호(41)·이영순(41·여)부부 가족의 대화에는 컴퓨터와 연관된 내용이 유난히 많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 3대가 나이에 상관없이 컴퓨터를 자기생활에 잘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허씨 가족은 한국정보문화센터가 최근 정보문화의 달 1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정보가족」. 육순을 넘긴 나이지만 조씨는 교회권사및 동네 반장으로 워드프로세서를 이용,성경교재를 만들거나 반상회보를 제작한다.손녀들의 스케줄 관리도 해주고 PC통신의 홈뱅킹·홈쇼핑을 가사에 이용한다.통신을 통해 증권이나 부동산시세를 알아보며 「푼돈투자」를 하는 것도 쏠쏠한 낙이다. 민재는 장래 화가가 되고파 한다.인터넷에 들어가 그림,만화,영화관련 사이트를 뒤지고 다니며 꿈을 키운다.워드프로세서로 리포트를 작성하거나 학교 환경미화작업에도 컴퓨터를 이용,친구들사이에서 「컴퓨터 전문가」로 통한다. 막내 희재도 만만치 않은 「컴키드」.생일초대장을 PC로 제작해 친구들에게 나눠주는가 하면 일기쓰기나 동화작성등 워드프로세서의 응용폭이 제법이다.한번은 학교과제물인 가족독서신문를 컴퓨터로 편집,급우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허씨부부는 모두 컴퓨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이 계통의 전문가.허씨는 세계적인 데이터베이스업체 미국 오라클 한국지사의 협력업체담당이사이고 이씨는 한국통신 연구개발본부 부장으로 사내 네트워크 및 사무자동화,인터넷 보안 등을 맡고 있다.이들은 홍익대 전산학과 동기로 캠퍼스 커플. 『3년전 처음 집에 컴퓨터를 들여놓은뒤 아이들이 게임에 몰두하는 것을 보고 시어머니까지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접하게 됐어요.이제는 서로 엇비슷한 수준이 돼 생활도구로,대화의 소재로,놀이수단으로 컴퓨터가 가정화목의 다리가 돼 주고 있죠』,『컴퓨터를 알수록 신기하다는 생각밖엔 안들어요.어려서 듣던 도깨비 방망이가 이것이구나 싶기도 하고 늘그막에 새 세상을 만난 기분이죠』 한 목소리가 된 고부의 컴퓨터 예찬이다. 허씨는 『부모가 컴퓨터를 잘 알면 아이들의 컴퓨터 오용과 남용을 예방할 수 있다』면서 『부모들도 배움에 인색하지 말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 경북 군위읍 팔공적라회(산하 파수꾼)

    ◎“우리동네 산과 강 우리가 깨끗이”/회원 23명 월 1회 환경캠페인 나서 지난해 11월 서울신문의 깨끗한 산하지키기운동본부 환경감시단체로 가입한 경북 군위군 군위읍 팔공적라회는 7년 역사를 지닌 친목단체다. 80년대 군위군봉사위원 50여명이 사회봉사활동을 펴오다 봉사실이 문을 닫으면서 해체됐다.그러나 30명의 위원은 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을 계속 하기 위해 팔공적라회라는 이름의 친목회를 만들어 지난해까지 7년동안 봉사활동을 이어왔다. 팔공적라회는 지난해까지 효자효부포상·모범군민포상·산불감시 등의 사업을 펼쳤다.그러다 지난해 서울신문이 펼치고 있는 환경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정,다채로운 자연보호캠페인을 벌이고 있다.현재의 회원수는 23명.그동안 5명이 작고했고 2명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갔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는 첫 사업으로 군위읍에서 오물수거 및 자연보호캠페인을 했고 달마다 한차례씩 쓰레기치우기 등 환경정화은동을 해오고 있다.특히 지난 6일에는 군위여중생 10명과 함께 충혼탑주변의 쓰레기를 치우는 한편 화단을 가꾸기도 했다. 『우리의 활동을 지켜본 군위군 사회과 직원은 고맙다며 우리 모임의 뜻을 주변에 적극 알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윤달천 회장). 이들은 오는 7월6일과 8월6일 제2석굴암에서 환경미화작업을 벌이기로 했으며 9월6에는 팔공산에서 새집달기와 오물을 치우기로 일정을 잡았다. 『11월까지 한달에 한차례씩 행사를 벌이기로 했죠.내년부터는 군위남중고 학생의 협조를 받아 새마을협의회·부녀회등과 손을 잡고 좀더 규모가 큰 환경보호운동을 펼칠 계획입니다』 윤달천회장은 팔공적라회의 목표가 깨끗한 산하지키기로 바뀌어 무엇보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 ‘95미술의 해/「천안 횃불대제전」 개막행사

    ◎조직위,새달 16일 세종회관서 「미술의 해」 선포식/작가 12명 작품세계 조명… 총 157개행사 확정/국토미화작업 추진… 「한민족 미술전」도 열어 95년 「미술의 해」사업계획이 확정됐다.미술의 해 조직위원회(위원장 이대원)가 22일 발표한 「미술의 해」사업은 학술사업 4건,미술관계법과 제도제정및 개정사업 3건,이벤트사업 9건,전시사업 16건 등 중앙 32개 행사와 지역 1백25개 행사 등 총 1백57개 행사다. 이들 행사는 내년 1월16일 세종문화회관 소강당에서의 「미술의 해」선포식에 이어 2월28일 천안삼거리공원에서의 미술횃불대제전을 개막행사로 차례로 추진된다.특히 「미술의 해」선포식에서는 식이 끝난 직후 동·서양화·조각·공예·서예등 5개 분야에서 월별로 선정한 한국의 근·현대작가 12명의 작품세계를 영상으로 제작,상영하며 개막행사에서는 「미술의 해」사업시작을 알리는 횃불점화식과 행진,시민과 만남전,설치대제전 등 행위예술을 벌일 예정이다. 「미술의 해」를 보다 뜻깊게 하기 위해 조직위가 마련한 이벤트사업 가운데는 ▲미술유적지및 작고작가 화비제작 ▲미술정보센터 설립,발족 ▲영상아트자료 제작을 통한 국토미화작업 추진 ▲유명미술인과 패션디자이너의 연계패션쇼 ▲미술의 해 기념우표발행 ▲무명작가발굴,진혼제 등이 있다.또 노수현·김환기 등 월별작가로 선정한 근·현대작가 12명의 작품세계를 집중재조명하는 한편 세계 저명미술관과 미술관계 명승지를 소개하는 작업도 펼치기로 했다. 전시사업으로는 한국 현대미술의 현주소를 보여줄 「오늘의 한국미술전」이 5월중 예술의 전당에서,광복50주년 「한국미술 30인전」이 11월중 파리시립미술관에서,비디오아트·영상미술 등 「테마별 현대미술전」이 11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펼쳐진다.내년 광복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각국에 거주하는 한민족 작가의 작품을 초대,전시하는 「한민족미술전」도 마련돼 있다.한민족의 문화적 얼을 되살리기 위한 야심찬 계획이다.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관을 기념하는 「이탈리아현대미술전」(11월중),「전국휘호대회」(8월중),「한·중수묵화교류전」(5월중),「전국공예품 디자인개발전시및 워크숍」(10월중),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마련한 「디자인 40년전」 등도 굵직한 행사로 추진된다. 이밖에 학술행사로는 국내외 저명작가가 참여하는 「미술세미나」와 세계현대미술의 경향을 소개하는 「국제심포지엄」,전국순회 「미술강연」등이,지역사업으로는 「광주 비엔날레」,「대구 미술제」,「제1회 제주 비엔날레」,「해운대 바다미술제」,「강원 야외조각공원설립」 등이 추진된다. 박광진 집행위원장은 『사업수립이 다소 늦어졌으나 사업추진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며 『다만 행사를 보다 알차게 추진키 위해 앞으로 더욱 보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 파리/청소에 예산10% 쓴다/조용하고 깨끗한 이유

    ◎청소원 4천5백명… 전문훈련 받아/시민휴식 방해않도록 업무 분업화/첨단소재 빗자루·진공청소차 등 장비도 우수 선진국의 위상에 걸맞게 도시의 미관에 많은 신경을 쓰는 파리의 청소 작업은 조용하면서도 완벽하다. 초록색 유니폼으로 상징되는 파리의 환경미화원은 줄잡아 모두 4천5백명에 이르는데 이들은 청소에도 각종 전자장치가 부착된 기구를 사용하면서 저마다 분업화된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들이 사용하는 기구는 가장 간단한 빗자루에서부터 시작해 쓸게차·진공청소차량·모터사이클등 효율적이고도 다양한 종류를 자량한다. 가장 간단한 빗자루를 보면 첨단소재를 이용해 만든 수십개의 초록색 플라스틱가닥으로 이뤄져 기존의 빗자루보다 5배나 값이 싸고 7배나 질기며 어떤 것은 모터가 달려 자동으로 흔들리면서 비질을 해주기도 한다. 1인용 진공청소차량은 공원이나 길거리에 떨어진 휴지등을 조용하게 빨아들여 옆에서 한가로이 휴식을 즐기는 시민들을 방해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초록색 오토바이 한대를 타고 다니며 마치 우편배달이라도 하는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말쑥한 차림의 청소원 역시 특수 고안된 흡입장치로 휴지를 줍고 다닌다. 이같은 파리의 품위있는 청소를 위해 파리시청은 시 예산의 10%를 사용한다는 것. 파리시 당국이 문화재 덩어리랄 수 있는 파리시내의 청소를 위해 이처럼 많은 비용과 사람을 투입하는 것외에 미화원들의 전문적이고 효율적인 미화작업을 위해 따로 훈련기관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파리시는 미화원들이 실지에 배치되기전 맡게될 작업에 따라 효과적인 작업을 위해 개별적인 청소훈련을 실시,청소하면서 먼지를 일으키거나 쓰레기 관리를 엉성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있다.
  • “추모열기 식을때 기다려” 해석 유력/김정일 권력승계 왜 늦어지나

    ◎“건강·리더십 문제로 난기류” 관측도 북한 김정일의 당총비서 및 국가주석 취임 등 권력승계 절차가 마무리되는 시점은 과연 언제쯤일까. 김일성 사망 이후 북한 선전매체들의 지속적 김정일 미화작업으로 따놓은 당상처럼 비쳤던 그의 공식 1인자 등극 시점이 지연되고 있다. 22일 상오까지 북한방송들에 나타난 김의 호칭은 여전히 최고사령관과 국방위원장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이를테면 북한중앙방송은 21일 저녁 김정일을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로 찬양했으나 그에 대한 호칭은 「장군」에 그쳤다. 20일 김일성 추도대회에서 사실상 김이 후계자로 추대됐음에도 불구하고 김광진 인민무력부부부장 등 각계 인사의 충성다짐만 계속 선전할 뿐 그의 당총비서 및 주석 승계발표를 서두를 낌새는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이 「다된 밥」처럼 여겨졌던 김의 1인자 공식화에 뜸을 들이고 있는 까닭에 대해 현재로선 누구도 자신있게 정답을 제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불리한 정보의 외부유출을 철저히 차단하는 북한체제의 속성상 몇가지추론만 가능할 뿐이다. 우선 2년 동안의 후계체제 구축작업으로 그의 승계가 기정사실화된 만큼 굳이 절차적 문제를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추론이 가능하다.북한권력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수령의 유일지도체제인 데다 김일성 생전에 이미 김을 「미래의 수령」으로 북한주민들에게 세뇌시켜온 만큼 당총비서 등 구체적 직책의 승계는 부차적 문제라는 얘기다. 요컨대 다른 「대안」이 없도록 상황조성을 해놓은 마당에 현재 「상주」의 지위에 있는 김이 아버지의 카리스마를 훼손해가면서까지 승계절차를 앞당겨 강행할 까닭이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거에 따르면 당중앙위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열어 당총비서·국가주석 등 핵심요직에 대한 승계절차를 밟을 시점이 임박했다고 볼 수 있다.김일성에 대한 「추모열기」가 가라앉기만 기다려온 형국이기 때문이다. 이와는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김정일의 건강이나 지도력에 문제가 생겨 완전한 1인 지배체제에 난기류가 조성되고 있다는 관측이 그것이다. 이는 미­북 3단계회담 등 북한정권이 운명을 걸고 대비해야할 대내외적 현안이 산적한 마당에 국가주석 등 요직의 장기공백을 방치할 상황이 아니라는 점에 근거하고 있다.즉 김이 명목상 1인자 자리에 오르는 데는 합의가 이뤄졌으나 실질적인 권력장악에는 문제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정부내 북한전문가들은 김정일을 외형상의 대표로 내세우되 실제 정책결정과 집행은 당정치국을 핵심으로한 당중앙위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향으로 북한체제가 변모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이른바 「당적 지배체제」로 불리는 유사 집단지도체제가 그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김에 대한 공식 후계선언이 늦춰지고 있는 것도 단순히 선출절차나 시기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당적 지배체제」에 참여할 핵심인사들간의 「파워게임」이 끝나지 않은 탓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 “힘든 일 대신 해줍니다”/공단주변 「3D기피」 전담용역업체 성업

    ◎경비 등 단순업무에서 전문분야까지 “척척”/대구 50여곳서 만여명 활동/“경비절감” 계약기업체 급증 「힘든 일을 대신해 드립니다」 최근 사회전반적으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일을 꺼리는 이른바 3D기피현상이 심화되자 이를 대신해주는 3D전문용역업체들이 잇따라 생겨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특히 이들 용역업체들은 심한 인력난을 겪고있는 제조업체등 생산현장에 뛰어들어 부족한 생산라인을 메워주는 일까지 맡아 산업체의 인력난을 더는데도 큰 몫을 하고있다. 이들 업체들은 대구·구미·마산·창원·광양·경인지역등 공장이 밀집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생겨나 원자력 열처리·도장·주물·석유화학등 전문분야에는 물론 청소·분뇨수거·야간경비등 남들이 꺼리는 모든 일을 서슴지않고 도맡아 하고있다. 이때문에 산업체로서는 정규직 사원들이 서로 맡지않으려고 발뺌하는 분야에 그때그때 필요한 인력을 쉽게 투입할수 있는데다 노사분규·퇴직금·산업재해·인력관리에 따른 부대경비등의 부담이 적어져 앞다퉈 이들을 활용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용역업체는 업체대로 기업으로부터 안정적인 일감을 구할수 있는데다 남들이 기피하는 일이라 더 많은 돈을 벌수 있어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대구지역의 경우 대영기업(대표 도경표)등 6∼7개 3D전문용역업체가 성서공단등지의 70여개 기업체와 계약을 맺어 하도급형식으로 1천5백여명의 근로자를 생산현장에 들여보내고 있다. H종합용역(대구시 동구 신천3동)은 성서공단에 있는 S산업의 부품조립공정에 40여명의 직원을 파견한 것을 비롯,10여개업체와 하도급계약을 맺어 모두 2백여명의 근로자를 고용해 매우 짭짤한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대구지역에서는 3D분야외에도 수송·경비·청소·조경등 단순용역업무분야까지 합하면 50여개 업체에 1만여명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성서공단의 자동차부품생산업체 (주)성산(대표 이명곤·36)은 18개생산라인 3백여명의 근로자 가운데 1백20여명을 용역으로 쓰고 있는데 회사관계자는 『산업경기에 따라 인력을 갑자기 늘리거나 줄여야 할 때가 많은 업종이라서 이들 용역근로자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전남 영광원자력발전소의 경우 발전소에서 나오는 방호복·신발·장갑등 저준위방사성폐기물을 아예 전문용역업체인 (주)금강코리아에 맡겨 대신 처리해 사원들이 꺼리는 분야의 일을 극복하고 있다. 전남 광양제철소도 청소와 환경미화작업을 광양기업(대표 강순행)에 맡긴 것을 비롯,분뇨수거·야간경비·가로등정비등 분야별로 16개업체에 용역을 맡겨 정규사원들의 3D기피현상을 이겨내고 있다. 경남 창원공단내 한국공작기계(대표 유흥목)는 지난 90년부터 3D작업현장에 한국도장(대표 김을규)한국페인트(대표 김태호)창성열처리(대표 유지식)등 15개 전문용역업체의 인력을 들여보내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 그동안 주로 청소·경비·건물관리등의 용역을 맡았던 창원시 중앙동 신천개발 관계자는 『최근 마산·창원공단 입주업체들로부터 3D작업용역도 해달라는 주문이 밀려와 인원을 확보하는 중』이라며 3D전문용역업이 매우 전망좋은 사업분야라고 평가했다.
  • 노령화사회… 우리 모두가 모셔야할 노인

    ◎어버이날에 돌아본 “대가족제도 마지막세대” 노인문제가 우리사회의 피할 수 없는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의술발달과 영양상태 호전,높아진 건강의식으로 성인들의 평균수명이 크게 늘어나 65세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은 90년에 5%를 넘고,2000년에는 6.8%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인구 고령화 추세와는 달리 노인문제에 대한 우리의 사회적 수용능력은 전무하다.급속한 산업화로 노인들이 설 공간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전통적 대가족제도의 마지막 세대인 노인들이 막상 자신들은 보편화된 핵가족제도아래 피부양권을 박탈당하는 첫세대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대 노인문제의 비극성은 짙어진다.고령화시대의 실태와 문제점,외국의 사례를 분석하고 전문가의견을 통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찾아본다. ◎오늘의 현실/65세이상 인구 2백14만… 2천년 3백20만명/관련예산 1명당 한해 2만7천6백원 불과 서울 성동구 화양동에 사는 이명재할아버지(69)는 지난 총선과 같은 「눈요깃거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평소같으면 이웃 공원이나 길거리를 헤매며 어떻게든 하루를 보내야 했던 그였지만 선거때는 돈 안드는 좋은 소일거리가 많았었다. 선거가 끝난 사실을 못내 아쉬워하며 며칠후엔 할일없이 이웃 경로당으로 발길을 옮겼다.그러나 이할아버지에게는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경로당의 한 친구가 노환으로 숨졌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보아도 성의표시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잡히질 않았기 때문이다. 이할아버지의 이같은 상황은 바로 우리시대 노인들의 자화상을 압축한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노인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것은 하루가 다르게 「젊은 노인」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보사부가 조사한 고령자 인구비율 통계는 60년 전체인구의 2.9%에 불과하던 65세이상 노인인구가 80년에 3.8%로 1백50만명,90년 5%로 2백14만명,8년뒤인 2000년엔 전체인구의 6.8% 3백20만명,2020년엔 선진국수준인 12.5%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우리나라 고령화수준은 90년기준 일본의11.9%,미국 12.6%,스웨덴 18.3%비율보다 크게 미치지 못한 것이긴 하다.그러나 급속한 인구고령화 추세로 볼 때 안이하게 노인문제에 대처할 경우 곧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노인인구의 급증에도 불구,올해 노인복지관련예산은 5백77억여원.91년보다 47%가 증가한 것이지만 사회복지예산중 5.8%,우리나라 전체예산의 0.17%에 불과한 실정이다. 65세이상 노인 한명당 1년에 2만7천6백원,하루 75원이 노인복지를 위해 확보된 예산이다.개인적인 소득이 따로 없을 경우 이 돈으로 건강문제·여가선용·생존비용을 충당해야 할 판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문제는 소득기회의 확대등 소득보장문제,건강·주택문제,노인보호시설확보등 대체로 3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올해 초 한국소비자보호원이 대도시 60세이상 노인들에 대해 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 노인들의 70%가 자식들로부터 용돈을 타쓰고 있으며 또 70%가 6만원미만으로 한달을 보내는 것으로 밝혀졌다. 노인들의 이같은 경제상황은 자녀교육등으로 대부분 노후대비를 못한 탓도 있지만 「복지국가」로서 「국가연금제도」등 정부의 적극적인 보완책도 미흡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현재 정부는 70세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1만원씩의 노령수당을 지급하고 있다.그러나 그 대상이 전체노인의 8.4%인 19만1천명으로 제한되고 있어 미봉책에 불과하다. 지난 88년부터 시작된 국민연금제도가 있으나 현재의 노인들은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었다.노인들의 소득보장·여가선용을 위한 일자리도 몇몇 전문적인 일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소득도 변변치 못하지만 유병률이 높고 대부분 만성질환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노인들은 일단 몸이 아프면 대부분 대책이 없어진다. 전국민의료보장체계가 돼 있지만 본인부담금액때문에 의료기관이용에 제한을 받고 있고 노인전문병상이나 전문요양기관도 없다고 할만큼 태부족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노인 요양원 병상수는 18개소에 모두 1천4백47개인데 반해 가까운 일본의 경우 2천1백25개소의 15만3천개로 우리나라 보다 65세이상 인구비율로 따질때 무려 15배나 많다. 전문병상도65세이상 1만명당 일본이 32개,캐나다가 1백43개등이지만 우리나라는 일부 병원에서 형식상 시도하고 있을 정도이다. 도시화·산업화의 급진전으로 생긴 핵가족추세도 노인들에게 달갑지 않은 대목이다. 핵가족화는 우리나라 전통적인 노인부양기능을 약화시키면서 나아가 세대간의 갈등·소외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보사부가 최근 조사한 노인단독가구는 모두 58만7천가구로 우리나라 전체가구의 5.2%,노인가구의 22.9%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이들 노인단독가구중 70%가 가족과 함께 살려해도 마땅한 주택이 없거나 세대간의 갈등등 타의로 혼자지내고 있다는 것이 보사부관계자의 귀띔이다. 사회적 여건변화에 따라 생긴 노인들의 소외감,역할상실에 대한 정서적 불안감을 마음놓고 해소시킬 장소도 변변치 못하다. 현재 전국의 크고 작은 경로당은 모두 1만8천여곳.연료비등 운영료만도 20여만원에 이르지만 정부·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하는 월운영비는 1만2천여원 안팎이다.시설이 허술하고 노후화될 수 밖에 없는 이유다.때문에 많은 노인들은 길거리나 공원을 헤맬 수 밖에 없고 그나마 가까운 이웃에 「복덕방」이라도 있으면 퍽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무의탁노인들을 위한 양로원등 노인복지시설은 전국적으로 1백6곳.전체노인의 0.3%인 6천8백여명이 「수용」돼 있으나 우리나라 무의탁노인 5만여명등 12만명으로 추산되는 잠재적 수요를 감안할 때 그 격차가 몹시 크다. 가까운 일본이 15만명,대만이 6만여명을 수용하고 있는 등 외국의 경우 4∼5%가 노인복지시설에서 「안락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복지시설종사자의 인건비등 운영비 지원수준이 현실과 거리감이 있는 것도 노인들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다. ◎정부대책/정년연장·능력은행 확대로 노후소득 보장 노인복지대책의 관건은 예산의 확보와 실천력이다.실행이 전제되지 않은 관련법규의 제정,미지근한 실천력이 우리 노인정책이 걸어 온 길이다.그러나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고령화시대에 이미 들어선 지금 더이상 노인복지를 미룰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노인문제는 노인이 아닌 우리 자신들의 문제로서 이를 방치할 경우 공동체적 위기로까지 발전될 소지가 크다. 이같은 인식하에 정부는 제7차 경제개발계획(92∼96년)가운데 노인복지부문에 대해 세부계획을 수립,추진중에 있다. 정부는 이 계획의 성패여부가 앞으로 「복지국가」의 문턱을 넘어서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를 가름하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고 실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우선 96년까지 모든 저소득층 노인들에게 월1∼3만원씩 노령수량을 확대,지급할 계획이다. 또 노인들에게 적당한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인능력은행」을 확대,시·군·구마다 1개소씩 설치하고 고령자고용촉진법 시행령을 조속히 제정,노인이 취업할 수 있는 직장에서는 일정비율 의무적으로 노인을 채용토록 할 계획이다.이와 함께 국·공립기관의 정년을 60세이상으로 연장하고 민간기업에 대해서도 정년연장과 재취업을 적극 권장할 방침이다. 보건소에 노인진료실을 설치하고 노인병 전문요원및 가정간호사를 배치,방문간호서비스를 제공할 계획도 마련해 놓고 있다.노인환자 요양을 위해 노인전문병원과 노인전문진료요양 시설을 96년까지 6대도시에 설치한다. 특히 올해부터는 노인의 재가보호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가정간호제를 실시하고 가족의 노인부양기능을 대체하기 위해 가정봉사원제도도 정착시켜 나갈 예정이다. 노인종합복지관을 올해 21개소 세우는 것을 비롯,96년까지 모두 1백26개소를 건립한다. ◎외국의 경우/60∼70개국서 연금제… 임대아파트 일반화 선진외국의 경우 노인복지는 정부개입의 증가로 가정에서 전문화된 시설로 옮겨갔다 다시 가정에서의 포괄적인 서비스제공에 주력하는 추세다. 가능한 한 시설보호를 피하고 노인들이 자기집에서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가사보조나 가정원조(Home­Helps)등 재가복지에 최우선적인 목표를 두고 있다. 또 60∼70개국 이상이 이미 완전노령연금제를 실시,이제는 노인복지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노인의 소득보장제도로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녹지관리프로그램」을 만들어 노인들로 하여금 공원 미화작업이나 가로수 돌보기 등의 일을 하게하고 있다.또 「액션프로그램」이라고 해서 노인들이 유급자원봉사활동을 통해 능력을 활용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노인인재은행」을 주요도시에 설치,취업을 알선하고 있고 55세이상 중·고령자를 전체종업원 수의 6%내에서 의무고용하는 제도가 있으나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중·고령자를 제대로 채용하지 않을 경우 고용주에 대한 처벌이 무겁다는 것이다. 또 유럽 대다수 나라에서는 「노인복지공장」이 마을마다 설치돼 퇴직노인들에게 소득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의료보장의 경우 미국은 재가노인들이 의사나 치료시설을 선택,가정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일본은 「노인보건법」을 기초로 70세 이상의 노인과 거동장애가 있는 65∼69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진찰·약제·치료서비스사업을 국가차원에서 펴고 있다.유럽의 경우에도 병원에서 퇴원한 재가노인을 위해 「임시거주보호소」를 운영하는가 하면 각종 「가정건강요양프로그램」이 개발돼 재가노인들이 가정에서 특별물리치료 등을 받을 수있도록 하고 있다. 주택보장으로 미국에는 노인임대아파트가 일반화돼 있고 노인들에 대해 주택세금의 연체 또는 납세연기 등의 혜택을 주고있다. 일본은 호텔식 구조로 노인주택이 운영되고 있는가 하면 주택개량시 무이자 융자제도도 있으며 유럽에서는 자녀주택의 정원에 별도로 세운 소규모 노인주택이 성행하고 있다. 양로원및 요양원 등 노인보호시설은 대부분 국가에서 운영하는 무료시설에서 유료시설로 옮겨가고 있으며 무료의 경우 특정한 노인들에 대해 「주간보호소」「정신질환보호소」등 다양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스웨덴 등 유럽 복지국가들은 65세 노인의 5%정도가 각종 시설에 입소해 안락한 노후생활을 보내고 있다. ◎전문가 진단/“가정·사회적 소외 심각하다”/노령수당·경로우대증제도등 내실 부족/박재간 노인문제연소장 노인들은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생존이 가능하다.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노인들은 가정에서나 사회적으로나 발붙일 곳을 잃어가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시부모와의 동거를 기피하는 며느리들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혼령기에 접어든 처녀들은 시부모를 모실 입장에 있는 신랑감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많은 비율의 노인들은 자녀와 동거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사결정권·재산관리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자녀들의 눈치를 보며 살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삶의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고민하다가 자살의 길을 택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노부부 또는 노인 혼자서 사는 가구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80년대초까지만 하더라도 노인단독가구는 전체 노인의 14%에 불과했으나 91년말 현재 그 비율은 29.0%를 상회한다. 10년 후인 2000년에는 42%이상의 노인들이 자녀들과 동거하지 못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가정이라는 울타리는 이미 노인들에게는 삶의 보금자리가 되지 못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에서 서구사회에서는 이미 금세기초에 노인부양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향으로 정책전환을 이룩했다.그들은 지금 국가예산의 15%에서 20%를 노인복지예산으로 할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노인문제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책을 서두르지 않고 있어 답답하기만 하다.노인복지정책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니다. 노령수당제도·경로우대증제도·양로원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는 모두가 전시효과적 사탕발림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가예산중 노인복지를 위해서 지출되는 돈이 0.15%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오늘의 노인들은 지난날 우리를 낳아서 기르고 나라 발전을 위해서 헌신한 「유공자」들임을 잊어서는 안된다.이들은 가정이나 사회에서 결코 홀대받아야 할 존재가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그러한 뜻에서도 정책결정자들은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펼 의지를 나타내야 한다.
  • 제8회/교정대상 수상… 보람과 영광의 얼굴들

    ◎27년째 봉직… 출소자 결혼식엔 꼭 참석/진익화 52세ㆍ수원교도소 교사/대상 『남달리 뚜렸한 선행을 한 것도 아니고 교정인으로서 평범하게 살아온 제가 이런 큰상을 받게 돼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올해 제8회 교정대상 수상자로 뽑힌 진교사는 짤막하게 수상소감을 대신했다. 63년4월 수원교도소에서 「반징역살이」라는 교도관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27년째를 맞은 진교사는 박봉과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교정행정의 산 일꾼으로 일관해왔다. 『앞으로의 교정행정은 재소자들을 격리ㆍ구금하는 것 보다는 이들을 교화ㆍ선도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소신을 펼치는 진교사의 얼굴엔 지난날에 대한 자부심이 어려있다. 재소자들을 위한 직업ㆍ교화교육을 통해 9백50여명의 각종 기능자격자와 59명의 대입ㆍ고졸합격자를 배출해냈다. 박봉을 쪼개 돕고 출소자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취업을 알선하는 일이 진교사의 업무가 된지 오래다. 진교사는 『신참시절인 65년 혼자서 경기도 화성군 간척지조성 새마을사업장에서 6개월동안 재소자 35명과 함께 숙식을 하며 바다막는 일을 아무사고 없이 마치고 온 일이 후배들 사이에 화제로 떠오를 때면 감회가 새롭다』고 활짝 웃었다. 27년의 교도관생활을 통틀어 살인죄로 복역하던 김모씨(50)가 70이 다 된 노모와 어린 두자녀를 남겨두고 빚독촉에 못이겨 부인이 가출한 것을 고민하는 것을 보고 몰래 도와주자 출소후 부인과 함께 찾아와 이마가 땅에 닿도록 감사해 하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비록 교도관과 재소자 관계지만 그들이 출소한 뒤 검소한 생활을 하는것을 볼때면 교정계에 투신한 보람을 느낀다』면서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출소자들의 결혼식이나 회갑연에는 빠짐없이 참석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는 음지에서 사명감이 없이는 견디기 어려운 교정직에 종사하는 진교사는 『교도관에 대한 사회의 몰이해와 냉대,비난을 접할 때 가장 괴롭다』고 밝히고 『다른 행정기관에서 조차 최근까지도 교정기관을 「혐오기관」으로 분류한 것을 접할 때면 참담한 심정까지 든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그는 교정행정에 대한 사회인식의 변화와 정부차원의 뒷받침을 아쉬워하며 『묵묵히 뒤에서 도와주고 교도관직을 자랑스럽게 여긴 아내와 4남매에게 감사한다』고 했다. ◎불우출소자 피복지원운동 전개/우규식(면려상) 54세ㆍ영등포구치소교사(본상) 60년 6월15일 교정계에 첫발을 내디딘이래 30년동안 재소자들을 선도하고 처우를 향상시키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64년 2월 공주교도소에서 근무할때 불우출소자들을 위해 피복지원운동을 시작,3년이 넘도록 계속하면서 옷가지 1백여점을 모아 출소자들에게 나눠줘 새생활을 돕기도 했다. 73년 영등포구치소 의무과에 재직할때는 폐결핵을 비관해 자살을 기도한 최모씨를 인공호흡으로 회생시킨 뒤 지속적인 상담으로 새 생활을 하도록 돕는 등 사경직전의 재소자 2명의 생명을 구했다. ◎무연고자 가족 찾아주기에 앞장/민도영(성실상) 53세ㆍ춘천교도소 교사(본상) 재소자들이 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정교육과 무연고자 가족찾아주기에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출소후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취업알선과 사회생활에 대한 상담으로 27년 2개월동안 정성을 쏟아왔다. 73년2월부터 의지할곳 없는 출소자 17명을 지역사회독지가들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를 마련해 주는 등 이들의 자립갱생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왔다. 86년4월에는 강원대학교와 협조해 사범대학생 6명을 강사로 초빙,남모씨 등 26명을 고입ㆍ고졸자격 검정고시에 합격시키는 등 재소자들의 학과교육지도에 힘썼다. ◎문맹원생 1백여명에 한글 교육/조기선(창의상) 57세ㆍ대전소년원 보도사(본상) 조선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61년1월 보도직에 임용된 이래 소년원생들이 퇴원한 뒤 다시 비행을 저지르는 것을 막기 위해 기술습득과 문맹원생 한글해독ㆍ취업알선 등에 앞장서 이들이 사회에 뿌리내릴수 있도록 열과성을 다했다. 72년부터 80년 4월까지 문맹원생 1백69명에게 한글을 가르쳐 진로선택의 폭을 넓히고 사회적응을 도왔다. 83년부터는 원생들에게 내실있는 직업교육을 실시해 1천4백20명이 각종 기능자격을 취득하고 지방기능경기대회에 출전,은메달 등 19개의 메달을 따내 소년원에 대한 사회인식을 개선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수형자 4백여명 자매결연 주선/김무웅(교화상) 49세ㆍ인천소년교도소 교회관(본상) 의지할 곳 없는 장기수와 문제수형자 4백57명에게 각계인사와의 자매결연을 주선하고 허물없는 신상상담을 통해 갱생의욕을 고취시켰다. 81년 1월부터 교정참여인사들로부터 피아노ㆍ컬러TV 등 2억5백만원어치의 교화기자재 7백54점과 7천여만원어치의 교화용도서 2만8백여권을 기증받아 재소자들의 교정교육과 정서함양에 기여했다. 73년부터 78년까지 광주교도소에 근무할 때에는 좌익수 교화기법을 개발,무기수 허모씨 등 98명을 전향시키는데 공헌했다. ◎신앙통한 교화로 갱생의지 부축/이의정(박애상) 49세ㆍ예장전북노회 목사(특별상)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77년 3월부터 13년이 넘도록 재소자 종교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신앙을 통한 재소자교정교화에 헌신적으로 봉사해온 성직자로 법무부장관표장을 2차례 받았다. 77년 종교위원으로 위촉된 이래 52만3천5백여명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8백80여차례에 걸쳐 기독교적 교화를 실시했다. 종교위원으로 봉사하면서 알게된 김모씨 등 출소자 15명을 신학교에 진학시켜 이 가운데 11명이 교육을 이수,전주와 남원 등지에서 목회자 활동을 하도록 지원했다. ◎「출소자들의 어머니」… 취업등 알선/정팔기(자애상) 73세ㆍ서울대교구사목회 회원(특별상) 78년8월 인천소년교도소 소년재소자 교화선도사업으로 인연을 맺은 뒤 11년여동안 매달 2차례씩 영등포ㆍ의정부ㆍ홍성교도소 등을 순회하면서 재소자 교화활동을 한 공로로 88년 법무부장관표장과 89년 「카톨릭대상」을 받았다. 재소자들의 심성순화활동 뿐 아니라 의지할 곳 없는 재소자 28명과 자매결연을 맺고 영치금 2백10만원과 1백30만원어치의 생활용품을 지원하는 등 불우재소자들의 수형생활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교도소 포교 자원… 20여년간 헌신/서병진(자비상) 39세ㆍ조계종 삼천사주지(특별상) 재소자교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교도소 포교법사를 자원해 20년동안 서울구치소와 수원ㆍ강릉교도소 등에서 재소자교리지도ㆍ신앙상담ㆍ사형수와의 자매결연 등 재소자교화선도에 헌신한 공로로 3차례에 걸쳐 법무부장관표장을 받은 성직자. 79년1월 서울구치소종교위원으로 위촉된 뒤 3백70여차례에 걸친 불교모임을 통해 4만6천여 재소자들에게 자비사상을 고취해 심성을 순화했다. 매주 1차례씩 사형수 3백21명에게 신앙상담을 해 과거의 죄를 참회토록 교화하고 해마다 불경암송대회를 열어 재소자들에게 신앙심을 고취시켰다. ◎재소자전용 직업훈련시설 기증/박광식(공로상) 48세ㆍ성보산업주식회사대표(특별상) 부산교도소 교화위원과 부산진구 갱생보호위원을 겸직하면서 재소자의 직업훈련 및 교화기자개기증 뿐 아니라 86년부터는 자신의 신발제조업체인 성보산업에 재소자들을 출퇴근시켜 기술훈련을 시킨뒤 원하는 경우 출소뒤 취업시키는 등 교화사회정착사업에 헌신해왔다. 성보산업 안에 재소자전용직업훈련 시설을 마련,현재까지 1백97명을 훈련시켜 이들에게 9백80여만원의 생활정착금을 지급하고 이 가운데 취업을 희망하는 60명은 정식직원으로 채용해 재소자들의 출소후 자립에 크게 기여했다. ◎재소자 9백명에 직훈/정해원 50ㆍ안동교도소 교사(장려상) 63년 12월 교정계에 투신한 뒤 27년동안 확고한 신념과 성실한 복무자세로 각종 재소자직업훈련과 출소자취업알선 등 교화선도에 헌신했다. 9백여명의 재소자들을 상대로 가구ㆍ미용기술 등 직업훈련과 영농교육을 실시해 근로정신을 함양하는 한편,출소자 17명의 신원을 보증해 취업을 시키는 등으로 사회복귀를 지원했다. ◎소년수형자 취업알선/양택민 52ㆍ군산교도소 교사(장려상) 농촌지도요원으로 8년동안 일하다 지난 66년 교도관으로 전직한 뒤 불우재소자돕기와 취업알선,독서ㆍ서예활동을 지원해 재소자의 정서함양에 남달리 헌신했다. 86년 소년재소자에 대한 수용관리대책을 마련해 직원들과 1대1로 자매결연을 맺고 취업을 알선,자립의 기반을 마련해주는데 힘썼다. ◎장기수에 생필품 지원/정인옥 51ㆍ광주교도소 교사(장려상) 유도2단의 무술교도관으로 21년동안 근무하면서 재소자교정교화 및 수용질서확립 등 각종교정사고방지에 기여했다. 재소자특별할동의 하나로 서예반과 회화반을 만들어 여가선용 및 심성순화에 힘썼다. 장기수 등 재소자 1백여명에게 영치금과 생필품을 지원,갱생의욕을 고취시켰다. ◎수용환경 개선에 힘써/김병윤 48ㆍ제주교도소 교사(장려상) 제주도 출신으로 제주교도소가 개청될때부터 근무해오면서 기반조성에 공헌하고 민원실환경을 이용자들에게 편리하도록 개선하는데 힘썼다. 불우재소자 58명을 종교인들과 자매결연토록 주선해 생활용품을 지원하고 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있도록 상담했다. 교도소 주변의 환경미화작업에 앞장서 수용환경을 개선했다. ◎21년간 교화위원 활동/노지욱 76ㆍ공주제일감리교 장로(장려상) 고령에도 불구하고 21년동안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며 재소자의 신앙상담ㆍ종교교화ㆍ출소자취업알선 등 불우재소자를 위해 봉사해왔다. 의지할 곳 없는 출소자들을 집에 데려가 돌보며 일자리를 마련해주고 명절때마다 재소자들을 찾아가 격려해왔다. 교도소 선교회를 만들어 신앙활동을 지도했다. ◎출소자 30명 보호선도/김봉래 61ㆍ순천 교화협의회장(장려상) 73년부터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재소자들을 위한 각종 행사를 마련,소외감을 없애고 불우재소자의 자활의욕을 고취시키는데 힘썼다. 불우출소자들에게 취업은 물론 결혼을 주선해주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는데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갱생보호위원도 겸직하면서 출소자 30여명을 보호선도했다. ◎재소자 검정고시 교육/김태수 71ㆍ김천 교화협의회장(장려상) 소년재소자의 교화교육과 면학기회를 마련해주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국민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재소자들을 위해 중입검정고시제도를 신설,9백38명의 합격자를 배출했고 김천중앙고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과정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84년 화랑소년대 권투부를 만들어 재소자의 체육활동을 활성화시켰다. ◎감호자 정신교육 앞장/안의종 49ㆍ청송 진성중학교장(장려상) 81년 청송교정시설의 개청과 함께 교화위원으로 일해오면서 감호자정신교육과 수용생활을 지원하는데 헌신했다. 진성중학교 교사를 검정고시강사로 보내 3백40명을 고입 및 고졸검정고시에 합격시켰다. 장기감호자와 신체장애자 5백여명에게 7백여만원어치의 생활용품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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