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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용운·유관순·이중섭… 역사가 잠든 길, 도시를 보듬다[서울 로드]

    한용운·유관순·이중섭… 역사가 잠든 길, 도시를 보듬다[서울 로드]

    ‘효의 길’서 ‘망자의 공간’ 된 망우리독립운동가·문학인 기리며 공원화채석장 절벽은 ‘용마폭포공원’ 변신봉화·망우·용마산 병풍 두른 21㎞흩어진 역사·저마다의 사연 이어져‘길에는 주인이 없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신경준은 ‘도로고(道路考)’에 이렇게 썼다. 소설가 김훈은 ‘허송세월’에서 ’“길은 소통의 통로란 의미”라고 풀었다. 오래 전부터 길을 중심으로 사람과 재화, 서비스가 움직이고 건물이 들어섰다. 이처럼 길은 도시의 경쟁력이자 풍경이며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600여년 역사의 서울에는 많은 길이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이 쫓겨갔던 유배길부터 3·1 운동과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2002년 월드컵, 두 번의 탄핵 촛불까지, 역사의 변곡점마다 길이 있었다. ‘서울 로드’에서 길에 스며든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풀어보려 한다.한양에 도읍을 정한 태조 이성계는 고려 왕릉 대부분이 개성 산악지대에 있어 참배하기 불편하고 관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자신과 자손들의 안식처를 가까운 곳에 두고자 했다. 항간에는 무학대사의 권유로 자신의 능지(건원릉)를 답사하고 환궁하던 태조가 “이제 근심을 잊을 수 있겠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한다. 지금의 경기 구리시와 서울 동쪽을 잇는 고개에 ‘망우’(忘憂)라는 이름이 붙은 유래다. 이후 건원릉을 품은 동구릉에 태조를 비롯한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었고, 망우리는 왕들이 조상의 능침을 살피러 가는 ‘효(孝)의 길’이 됐다. 망우리에 공동묘지 이미지가 씌워진 것은 일제강점기 때다. 조선총독부는 자신들이 정한 공동묘지 외에는 묘를 쓰지 못하게 했다. 경성부는 1920년대 전후로 서울의 동서남북(신당리, 아현리, 이태원, 수철리)에 부립 공동묘지를 만들었다. 사대문 밖 묘지가 부족해지자 1933년 경성부는 망우리 일대 임야 75만평을 사들이고 그중 52만평을 묘역으로 조성했다. 왕릉으로 이어지던 신성한 땅은 그렇게 ‘망자의 공간’이 됐고, 서울 각지에서 밀려난 수만 기의 무덤이 흘러 들어왔다. 6·25전쟁 때 가매장된 무연고 시신도 옮겨지면서 망우리는 거대한 죽음의 군락이 됐다. 1973년 3월, 4만 7700여기의 분묘가 가득 차 더 이상 묘지를 쓸 수 없게 됐다. 1990년대 들어 이곳에 묻힌 위인을 기리자는 움직임이 이어졌고, 1997년부터 독립운동가와 문학인 등 15명의 무덤 주변에 추모비가 세워졌다. 1998년 공원화 사업을 통해 망우리공원이란 이름을 얻었고, 4.7㎞의 산책로인 ‘사색의 길’이 조성됐다. 공원을 찾는 이들이 늘자 서울시는 2016년 인문학 길인 ‘사잇길’을 추가 조성했다. 그사이 지속적인 이장으로 6209기까지 줄어든 분묘들은 울창한 나무 그늘에서 한국 근현대사의 목격자로 남았다. 길 위에서 만나는 이름은 경이롭다. 만해 한용운, 소파 방정환, 화가 이중섭, 독립운동가 오세창, 그리고 열사 유관순 등 근대사의 거인 80여 명이 잠들어 있다. 1920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는 이태원공동묘지에 묻혔다가 1936년 택지 개발로 2만 8000여기의 무연고 묘와 함께 ‘이태원 무연고 합장분묘’에 모셔졌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1938년 유언으로 평남 강서군 선산이 아닌 비서이자 제자 유상규가 묻힌 망우리에 묻어달라고 했다. 1973년 강남 대개발 당시 도산의 유해는 신사동 도산공원으로 이장됐지만, 옛 묘지석은 우여곡절 끝에 2016년 망우리로 돌아왔다. 망우동에 자리한 ‘중랑망우역사문화공원’은 2022년 개편 이후 묘지의 부정적 이미지를 벗고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지난해까지 214만명이 다녀갔다. 공원 안에 있는 ‘중랑망우공간’에서는 5월 17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억상자’ 전시도 열린다. 공원을 벗어나 용마산으로 발길을 옮기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지난해 11월, 지상 10m 높이에 설치된 ‘용마산 스카이워크’는 개통 이후 ‘노을 맛집’으로 입소문이 났다. 지난 2월 한 달에만 23만 명이 다녀갔다. 조금 더 가파른 능선을 타면 고구려의 숨결이 서린 ‘용마산 보루’가 나타난다. 삼국이 한강 유역을 놓고 다투던 시절, 고구려가 쌓아 올린 요새다. 근현대사의 아픔을 간직한 망우산에서 시작해 스카이워크를 거쳐 고구려의 기상에 닿는 이 길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 연대표가 된다. 산자락을 내려오면 마주치는 용마폭포공원은 도시의 성장이 남긴 상처를 치유하는 공간이다. 1960~80년대 개발시대 급팽창하던 서울을 짓기 위한 돌을 캐내던 채석장의 깎여나간 절벽에 51m 높이의 인공폭포를 설치했다. 1993년 조성 당시 동양 최대 규모였다. 중랑구는 흩어진 역사의 조각을 모아 하나의 퍼즐로 엮어냈다. 봉화산과 망우산, 용마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중랑천을 끼고 중랑구 전체를 감싸고 도는 21㎞의 ‘중랑동행길’이다. 이 중 망우의 역사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구간은 중랑망우공간에서 시작해 용마산 스카이워크와 용마폭포공원을 거쳐 중랑천 장평교에 닿는 7.3㎞ 길이의 ‘망우·용마산길’이다. 길의 마침표는 중랑천변 장미길이 찍는다. 1999년 외환위기 당시 공공근로사업으로 심기 시작한 장미 덩굴은 어느새 1000만 송이의 거대한 터널을 이뤘다. 중랑천 범람을 막기 위해 높게 쌓았던 제방은 5월이면 장미 축제의 장으로 탈바꿈한다. 저마다 사연을 품은 길들을 하나로 이은 중랑동행길은 도시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는 지혜를 일깨운다.
  • 5·18 기념식, 6년 만에 민주광장서 열린다

    5·18 기념식, 6년 만에 민주광장서 열린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6년 만에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열린다. 광주시는 올해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정부 기념식을 동구 5·18민주광장에서 치르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고 19일 밝혔다. 5·18 정부 기념식이 5·18민주광장에서 열리는 것은 2020년 제40주년 행사 이후 6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다. 1997년 5·18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이후 매년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기념식이 열렸지만, 2020년 문재인 정부 당시 ‘현장 중심 기념’이라는 취지에 따라 처음으로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5·18민주광장은 ‘1980년 5월 민주화운동의 본산’으로, 당시 민주광장 내 분수대를 중심으로 5번의 ‘민주주의 수호 시민궐기대회’와 3번의 ‘민족민주화대성회’가 진행됐다. 옛 전남도청은 ‘시민군 최후의 항쟁지’로서, 원형 복원을 둘러싼 10년여간의 갈등과 2년여간의 공사를 거쳐 최근 복원 사업이 마무리돼 시민에게 공개됐으며, 이번 기념식 이후 개관식이 진행된다.
  • 李대통령 “헌법의 뿌리 4·19 정신으로 내란의 밤 물리쳐”

    李대통령 “헌법의 뿌리 4·19 정신으로 내란의 밤 물리쳐”

    유공자 예우·의료지원 등 강화 방침“통합 민주주의 미래에 물려줄 것”인도·베트남 순방… 뉴델리 도착오늘 모디 총리와 정상회담 예정 이재명 대통령은 19일 “대한민국 헌법의 뿌리로 태어난 4·19 정신이 있었기에 2024년 12월 겨울밤, 우리 대한국민들은 마침내 내란의 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6주년 4·19 혁명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의 토양 위에서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자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강국으로 눈부신 도약과 번영을 이룰 수 있었다”며 “부마 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을 거쳐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까지 이어진 4·19 정신은 참된 주권자의 나라를 갈망하는 강고한 연대의 힘으로 피어났다”고 평가했다. 유공자 지원 강화 계획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모든 분을 한 분이라도 더 찾아내 포상하고 기록하며 예우할 것”이라며 특히 “고령의 4·19 혁명 유공자분들에게 시급한 의료지원 또한 더욱 강화하고 세심하게 챙길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주의 관철 의지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민주주의 역사는 순풍에 돛을 단 유람선처럼 평온하게 온 것이 결코 아니다. 독재의 군홧발은 불평등과 빈곤의 틈새를 파고들며 민주주의 파괴를 정당화한다”며 “정치의 책임은 오직 민생이라고, 국민의 삶이 국가의 존재 이유라 말씀드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민주주의야말로 5200만 국민 한 명 한 명의 잠재력과 역량을 발견하고 저마다의 꿈으로 행복을 키우며 각자의 삶을 존엄하게 만들 수 있는 가장 유용하고 합리적인 체제임을 끊임없이 입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세월이 흘러도 가슴과 뇌리에 새겨진 뚜렷한 기억이 모여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에 빠진 위정자들이 국민의 뜻을 거역할 때마다 나라를 바로 세우고 역사의 물줄기를 되돌려놓았다”며 “대한국민의 DNA에 오롯이 남겨진 자유와 평등, 통합과 연대의 민주주의를 더욱 빛나는 미래로 물려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끝으로 “사람의 목숨은 누구에게나 똑같다. 한 명의 목숨이나 100명의 목숨이나 다 그 사람에게선 하나의 우주”라며 “모두를 위해 목숨을 던질 수 있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기념식을 마친 뒤 5박 6일간의 인도·베트남 국빈 방문을 위해 서울공항을 통해 출국한 이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는 이날 오후 인도 뉴델리에 도착했다. 이 대통령은 수브라마냠 자이샨카르 인도 외무장관을 접견하고 동포 만찬 간담회를 소화했다. 20일에는 간디 추모공원에 헌화하고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소인수회담, 확대회담을 하며 양해각서 교환식과 공동언론발표를 가질 예정이다. 이 밖에도 국내 주요 기업인들이 참여하는 비즈니스 포럼 등의 일정을 소화한 뒤에 21일에는 두 번째 방문지인 베트남 하노이로 이동한다.
  •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권찬주, 잊지 말아야 할 4월 혁명의 어머니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권찬주, 잊지 말아야 할 4월 혁명의 어머니

    올해로 4·19혁명이 66주년을 맞는다. 지난 3월 15일 경남 창원시 국립3·15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6주년 3·15의거 기념식에는 국가기념일 지정 이후 처음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자격으로 참석해 “3·15의거 희생자 유가족분들께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허리 숙여 사과했다. 이 소식을 접하며 평생을 아들 김주열의 희생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며 살다 1989년 세상을 떠난 ‘4월 혁명의 어머니’ 권찬주가 떠올랐다. 그는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마산의거가 대통령 하야까지 이어지며 4·19혁명으로 승화하는 길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60년 3월 15일 전북 남원 출신 김주열은 외가가 있는 경남 마산(현 창원시)에서 마산상고 합격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밤 그는 형과 함께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행방불명이 됐다. 이틀 후에야 이 소식을 들은 권찬주는 3월 18일 아침 서둘러 출발해 오후에 마산에 도착했다. 먼저 마산경찰서로 달려가 “내 아들을 찾으러 왔다”고 울부짖는 그에게 경찰은 “학생들이 인민공화국 만세를 불러 잡으려 하니 산으로 숨어 들어갔다. 산에 가서 찾아보라”고 했다. 권찬주는 “내 아들이 왜 빨갱이란 말이냐”며 항의했다. 경찰서를 나온 권찬주는 사망자가 안치된 시체실과 부상자가 즐비한 병실을 정신없이 찾아 헤맸으나 아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3월 19일 권찬주는 마산일보사에 찾아가 아들의 행방불명 소식을 알렸고 그날부터 중앙 일간지도 아들을 찾는 권찬주의 애끓는 사연을 보도했다. 다음날인 3월 20일에도 아들 소식을 듣지 못한 그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거리를 헤맸다. “내 아들 못 보았소”, “혹시 어디서 시체가 또 나왔다는 말 못 들었소”라며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물었다. 이후 권찬주는 날마다 경찰서, 검찰청, 변호사회, 시청, 정당 사무실을 찾아다녔고 병원을 뒤졌다. 국회 진상조사단도 만났다. 하수구도 들여다보고 인근 산도 헤맸다. 그렇게 “억세게 찾아 나섰더니” 마산 사람들이 모두 그를 알아봤다. 여성들은 권찬주의 끼니를 챙기며 김주열을 찾는 데 함께 나섰다. 그렇게 마산에서 김주열을 찾는 운동이 일어난 와중에 ‘3월 15일 밤 경찰이 시체에 돌을 달아 시청 뒤편 연못에 유기했다’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3월 29일 검찰, 경찰, 자유당과 민주당 관계자, 신문기자, 거기다 500명 넘는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청 뒤편에 있는 연못의 물을 퍼냈지만 시체는 없었다. 한 달 가까이 아들을 찾아 마산 거리를 헤매던 권찬주는 남편이 아프다는 소식에 4월 11일 오전 8시 남원행 버스를 탔다. 그로부터 3시간이 지나 행방불명이 된 지 27일 만에 눈에 최루탄이 박힌 끔찍한 모습으로 김주열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시체를 인양하는 동안 소식을 들은 마산 시민들이 부둣가로 몰려왔다. 사람들은 ‘김주열이 자신의 끔찍한 모습을 차마 어머니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아 어머니가 떠난 후에 바다에 떠올랐다’며 애달파했다. 김주열의 시체가 도립병원으로 운반되자 시민 3000여명이 병원을 에워싸고 범죄를 은폐한 경찰을 규탄하며 시위를 벌였다. 그날 저녁에는 수만 명의 마산 시민들이 관공서를 파괴하며 ‘이승만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이날 시위는 4·19혁명에서 처음 등장한 이승만 퇴진 요구였다. 이승만 퇴진을 외친 시민들은 매일 거리에서 아들을 찾아 달라고 호소한 권찬주를 20일 넘게 지켜보며 함께 고통스러워했던 이들이었다.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되자 마산 시민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분노로 들끓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5월 8일 어머니의 날을 맞아 권찬주는 “귀여운 자녀들을 잃은 어머니 여러분, 우리 다같이 눈물을 거둡시다. 밝아오는 새나라 아침 햇살을 받으며 그리고 자식들이 뿌린 따뜻한 선혈이 남긴 이 민족의 넋이 헛되지 않도록 내일의 새로운 세대를 뒷받침하는 이 나라의 어머니로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밉시다”라는 글로 4·19혁명으로 자녀를 잃은 어머니들을 위로해 큰 울림을 주었다. 권찬주는 아들 김주열의 죽음을 “이 나라 민주 발전의 터전이 될 것으로 섭섭하기는 하나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마음에 새겼다. 6월 하순에는 김주열의 백일재를 마친 후 김주열을 찾는 일을 도왔던 언론사와 입원 중인 4·19혁명 부상자를 위로하고자 상경했다. 그해 10월 새싹회가 수여하는 소파상을 수상하는 등 권찬주는 ‘4월 혁명의 어머니’로 국민적 추앙을 받았다. 권찬주는 평생, 심지어 2023년 4·19혁명 유공자로 건국포장을 받을 때조차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로만 기억됐다. 하지만 4·19혁명에는 청년학생들뿐 아니라 권찬주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들이 참여했다는 게 명백한 사실이다. 김주열의 주검이 발견되자 마산에선 여학생부터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4월 25일에는 200~300여명의 할머니들이 “죽은 학생 책임지고 리 대통령은 물러가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를 벌였고 마산경찰서 안으로 들어가 경찰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제는 누군가의 어머니뿐 아니라 권찬주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나라가 되길 기대한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 민주주의 정신 담긴 ‘4·19묘지’… 대한민국 초석 닦은 ‘초대길’ [서울 로드]

    민주주의 정신 담긴 ‘4·19묘지’… 대한민국 초석 닦은 ‘초대길’ [서울 로드]

    북한산 아래 도심 속 쉼표 같은 길4월 혁명의 산증인 ‘4·19민주묘지’5·16 군부가 남산서 수유리로 변경이시영·이준 등 4인 품은 ‘초대길’독립정신 깃든 3·1 발원지 ‘봉황각’사일구로 다른 얼굴 ‘4·19카페거리’개성 만점 가게들 230여곳 들어서‘길에는 주인이 없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신경준은 ‘도로고(道路考)’에 이렇게 썼다. 소설가 김훈은 ‘허송세월’에서 ’“길은 소통의 통로란 의미”라고 풀었다. 오래 전부터 길을 중심으로 사람과 재화, 서비스가 움직이고 건물이 들어섰다. 이처럼 길은 도시의 경쟁력이자 풍경이며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600여년 역사의 서울에는 많은 길이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이 쫓겨갔던 유배길부터 3·1 운동과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2002년 월드컵, 두 번의 탄핵 촛불까지, 역사의 변곡점마다 길이 있었다. ‘서울 로드’에서 길에 스며든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풀어보려 한다.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헌법 전문) 1956년 3대 대통령(4대 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장면이 자유당 이기붕을 누르고 부통령에 당선되는 이변이 벌어졌다. 스스로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고 생각하던 이승만 대통령의 충격은 사뭇 컸다. 이에 1960년 4대 대통령(5대 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고령(당시 85)인 대통령의 유고할 경우 직을 승계할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부정과 꼼수를 총동원했다. 해도 너무한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시위가 들불처럼 번졌다. 3·15 의거 때 실종된 고교생 김주열의 시신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게 기폭제가 됐다. 4월 19일 분노한 시민들이 경무대(현 청와대)와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 중앙청(정부청사·1995년 철거)을 향해 몰려들었고, 경찰은 무차별 발포했다. 결국 ‘피의 화요일’에서 시작된 4월 혁명은 이승만의 하야를 끌어냈다. 프랑스대혁명을 기리는 바스티유 광장처럼 한국에 민주주의의 씨앗을 뿌린 4·19를 기려야 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4·19의거 학생대책위원회가 주축이 돼 시청 광장에 위령탑을 세우기로 했다. 희생자 가족 단체인 4월혁명 유족회는 희생자 묘역을 포함한 기념공원을 추진했다. 서울시도 가세해 남산 팔각정 부근에 1만 5000평 규모로 공원을 만들기로 하고 설계를 공모했다. 그러던 중 5·16 군사정변이 터졌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4·19에 대한 부정도, 긍정도 못 하는 어중간한 자세를 취했다. 부정하자니 민심이 두려웠고, 계승한다고 하자니 겸연쩍었을 터. 박정희 정권은 4·19기념탑과 묘역 조성을 통합해 국가기관 ‘재건국민운동본부’로 이관시켰다. 국민운동본부는 묘역과 기념탑을 서울 외곽 수유리에 조성하기로 했다. 그리고 공모로 결정된 기념탑 설계를 친일 논란이 끊이지 않던 조각가 김경승에게 넘겼다. 그는 이승만 흉상도 만들었던 인물이다. 결국 독재에 항거하다가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국립 4·19민주묘지는 공간적으로는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고, 친일 논란이 끊이지 않는 작가의 작품과 공존하게 됐다. 뒤틀린 한국 현대사의 또다른 단편이다. 국립 4·19민주묘지 아래편에 ‘사일구로’가 있다. 이 이름이 붙기 전 주민들이 부르던 별칭인 ‘4·19카페거리’ 상권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반영해 주민들이 직접 뽑은 이름이다. 도로명 주소인 ‘4·19로’와 발음이 같아 친숙하면서 북한산의 자연과 어우러진 도심 속 쉼표 같은 거리를 뜻한다. 사일구로와 북한산 사이에는 1.3㎞ 길이의 역사체험 둘레길 ‘초대(初代)길’이 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에 ‘처음’이란 이정표를 찍은 이들의 묘역을 도보 코스로 연결했다. 강북구가 북한산 일대에 흩어진 역사문화자원을 지역 발전 동력으로 삼기 위해 2016년 조성했다. 초대길의 시작과 끝은 ‘근현대사기념관’이다. 3·1운동의 발원지인 천도교 수도원 봉황각과 순국선열 묘역 그리고 4·19민주묘지가 있는 강북구를 독립정신과 민주주의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전통적 명당으로 알려진 북한산에 이시영 초대 부통령이 안장된 것을 시작으로 초대 국회부의장 신익희,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대한제국 1호 검사’ 이준 열사 등이 모셔졌다. 동선상으로는 기념관을 출발해 신익희 선생과 이준 열사 묘역을 지나 김병로 선생 묘소와 광복군 합동묘, 이시영 선생 묘역을 돌아 다시 기념관으로 이어진다. 강북구에서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하루 두 차례 문화관광 해설을 진행한다. 봉황각은 1969년 서울시 유형문화재(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됐다. 1912년 천도교 제3대 교주 손병희가 일제의 감시를 피해 첩첩산중인 이곳에 건물을 세우고 봉황각이란 이름을 붙였다. 현재 현판은 훗날 서울신문 명예사장을 지내기도 한 민족지도자 오세창 선생이 썼다. 오는 10일 사일구로 일대에서 자유·민주·정의의 4·19혁명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4·19혁명 국민문화제 2026’이 시작된다. 올해로 14회를 맞는 국민문화제는 연극제와 문화공연, 뮤직페스티벌, 합창대회, 1960 거리 재현 퍼레이드 전국 경연대회 등이 열린다. 당일인 19일에는 4·19민주묘지에서 ‘제66주년 4·19혁명 기념식’이 열린다. 사일구로는 지난해 ‘서울시 로컬브랜드 상권 육성사업’에 선정될 만큼 합리적 가격에 맛 좋은 가게 230여곳이 들어서 있다. 이 길의 다른 이름이 4·19카페거리일 만큼 아늑한 분위기와 개성 있는 카페도 넘쳐난다.
  • [인사]

    ■국가보훈부 ◇국장급 전보△정책기획관 황의균◇과장급 전보△국립묘지혁신과장 김법수
  • 뱀으로 매도된, 욕망의 여자여… 가부장제 비웃는 메두사 돼라[오경진의 폐허에서 무한으로]

    뱀으로 매도된, 욕망의 여자여… 가부장제 비웃는 메두사 돼라[오경진의 폐허에서 무한으로]

    신의 질서 순응할 수 없는 피조물뱀에게서 슬픔을 본 최승자처럼헌신적 어머니 아닌 주체적 악녀‘도금봉’ 시로 승화한 김언희처럼페미니스트 엘렌 식수는 권한다억눌린 모든 여성이여, 글을 쓰라가부장 부역자가 불안·불쾌해할꿈틀거리는 욕망을 적고 웃어라 “어머니 나는 어둠이에요./ 그 옛날 아담과 이브가/ 풀섶에서 일어난 어느 아침부터/ 긴 몸뚱어리의 슬픔이에요.”(최승자, ‘자화상’ 부분) 뱀의 슬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 아담도 이브도 아닌 그 존재의 슬픔을 우리가 가늠할 수 있을까. ‘창세기’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뱀은 주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하였다.”(3장 1절) 뱀은 억울할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씌워진 ‘악’(惡)의 굴레가 달갑지 않을 것이다. 뱀의 악은 아담과 이브의 그것과는 다르다. 아담과 이브의 악은 그들 자신의 의지였지만, 뱀의 악은 신의 뜻이었다. 낙원의 질서에는 맞지 않는 존재. 날 때부터 신을 배반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 뱀에게 자유의지가 주어진다면 그때도 그는 과연 악을 택할까. 전지전능하고도 선한 신은 왜 뱀과 악을 창조했나. 도처에 악이 창궐하고 있는 오늘날 이 문제의 답을 찾는 일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승자 시인은 답을 찾길 멈춘 듯하다. 대신 뱀에 조용히 자기를 투영한다. 그는 거기서 존재의 슬픔을 길어 올렸다. 신이 만든 질서에 순응할 수 없는 피조물의 슬픔. “밝은 거리에서 아이들은/ 새처럼 지저귀며/ 꽃처럼 피어나며/ 햇빛 속에 저 눈부신 天性의 사람들/ 저이들이 마시는 순순한 술은/ 갈라진 이 혀끝에는 맞지 않는구나./ 잡초나 늪 속에 온 몸을 사려감고/ 내 슬픔의 毒이 전신에 발효하길 기다릴 뿐”(‘자화상’ 부분) 인간을 꾄 벌로 뱀에게는 가혹한 벌이 내려진다. “주 하느님께서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창세기 3장 14절) 혀를 날름거리며 평생 바닥을 기어야 하는 뱀을 시인의 ‘자화상’으로 택한 최승자의 선택은 탁월하다. 일상의 질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서 있는, 그럼에도 끝없이 아름다운 말로 세계를 현혹하는. 바로 시인의 초상이다. 하지만 뱀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자기를 외면한 세계를 향해 기어코 이빨을 드러낸다. “이 세상에 진짜 여자 같은 건 없어, 진짜 어머니 같은 건 없다고, 진짜! 혀를 차대는 년들이 있다, 살모사 같은 년들이, 물어 죽일 어미를 찾아 헤매는 년들이 있다, 밑이 빠질 것 같은 내 몸에서 나가지 않는 년들이, 내 애인의 애인 같은 년들이, 목젖에 걸린 세상을 가랑이로 삼켜 넘기는 년들이, 있다 진짜 밑은 웃다가 빠지는 거야, 등신!”(김언희, ‘도금봉을 위하여’ 부분) 생략된 원문은 더 거칠다. 날것에 가까운 언어 가운데 한 문장이 날아와 박힌다. ‘살모사 같은 년들’이라는 화자의 독설. 그들은 어쩌다가 제 어미를 물어 죽이겠다고 나섰을까. 세상에 ‘진짜 여자’, ‘진짜 어머니’ 같은 건 없다고 울부짖으면서. 여기서 어머니는 자애로운 모성과 사랑의 화신이 아니라 가부장적 질서에 순종하기를 택한 존재다. 살모사는 그 어미를 물어 죽인다. 이름과 달리 살모사의 새끼는 실제 어미를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여기서 사실관계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듯하다. 뱀은 아담에도, 이브에도 속하지 못했다. 그에게 신이 제멋대로 만든 낙원의 질서를 답습하고 싶은 마음은 꿈에도 없을 것이다. 폭파하라! 어머니의 이름으로 유지되는 저 공고한 체계를. 어머니의 이름 뒤에 숨은 저 비겁한 ‘아버지’의 세계를. 김언희의 시가 배우 도금봉(1930~2009)을 기리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월하의 공동묘지’ 등 생전 5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던 그의 이름은 지금은 거의 잊혔다. 영화감독 오승욱은 도금봉을 “위대한 악녀”로 기억했다. “욕망에 충실한 여성은 악녀가 되던 시대, 도금봉은 그 한계를 배짱과 연기력으로 돌파하려 한 유일한 여배우다.”(오승욱, ‘위대한 악녀 도금봉’, 신동아) 솔직하게 욕망을 표출하는 여성, 가부장적 질서에 순종하길 거부하는 여성은 여성이 아니다. ‘악녀’(惡女)로 변모한다. 악녀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질서로 포착할 수 없다. 이들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에도 이브에도 속하지 못했던 뱀과 같은 운명을 공유한다. “글을 쓰라, 아무도 그대를 막지 못하고, 아무것도 그대를 멈추지 못하리라. 남자도 그대를 멈추지 못하고, 멍청한 자본주의 기계(출판사는 그 기계 안에서 우리 이익에 반하여 우리 등골을 빼먹는 경제의 명령을 전달하며, 교활하고 비굴한 중개자로 기능한다)도 그대를 멈추지 못하리라. 그대 자신조차 그대를 멈추지 못하리라.”(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부분) 뱀과 악녀가 손을 맞잡은 곳에서 우리는 메두사와 만난다. 머리카락이 온통 뱀으로 된 그리스 신화 속 괴물. 동시에 그는 뭇 영웅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지독한 악녀이기도 했다. 프랑스 페미니스트 작가 엘렌 식수는 메두사에서 ‘여성적 글쓰기’의 가능성을 엿본다. 식수는 이 세상 모든 여성이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은 무엇으로 쓰는가? 그들의 ‘몸’으로 쓴다. 남성들이 절대로 침범할 수 없는, 절대적으로 완전한 그들의 육체로 쓴다. “여성들의 진정한 텍스트들, 여성들의 성기들을 지닌 텍스트들, 그건 그들 마음에 들지 않고,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며 불쾌감을 준다. … 내 육체는 텍스트다. 노래하는 흐름의 횡단, 내 목소리를 들어라.”(엘렌 식수, ‘메두사의 웃음’ 부분) 신화 속 메두사는 페르세우스에게 목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나 오늘날 메두사의 후예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정복한 그들은 꿈틀거리는 머리카락과 함께 서늘한 웃음을 짓고 있을 것이다.
  • 거리서 내가 완성하는 연극… 새롭게 발견한 서울

    거리서 내가 완성하는 연극… 새롭게 발견한 서울

    ‘리모트X’ 65개 도시 거쳐 서울 상륙헤드폰 속 목소리 따라 소소한 일탈 서울 지하철 동작역 안, 똑같은 헤드폰을 쓴 사람들 30여명이 개찰구를 바라보며 앉아 있다. 무대는 개찰구, 헤드폰을 쓴 이들은 관객이다.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그저 일상을 보내지만 헤드폰 속 목소리를 듣다 보면 이 순간은 한 편의 연극이 된다. 대화를 하거나 서둘러 걸어가거나 또는 이 무리를 의아해하며 바라보는 ‘각자의 역할’을 맡은 셈이다. 연극을 설명하던 목소리는 명령한다. “이제 너희가 인생의 무대에 등장할 차례야. 관객의 위치에서 벗어나 무대를 끝까지 가로질러.” 무리는 일제히 무대를 향해 걸어간다. 도시를 무대로 인공지능(AI) 음성을 따라 일상을 경험하는 참여형 공연 ‘리모트 서울’이 지난 3일 개막했다. 독일 창작집단 리미니 프로토콜의 대표작 ‘리모트 X’의 서울 버전이다. 2013년 베를린에서 첫선을 보인 ‘리모트 X’는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중국 상하이 등 32개국 65개 도시를 거쳐 GS아트센터 기획 공연으로 서울에 상륙했다. 국립서울현충원에서 헤드폰과 교통카드를 받으면 공연이 시작된다. 국군묘지에서 삶과 죽음을 사유한 뒤 지하철역을 거쳐 역삼동 GS아트센터까지 2시간 정도 이동한다. 목소리의 지시로 박수를 치고 발레 동작을 하거나 엘리베이터 한 줄 서기 같은 암묵적인 규율을 어겨보기도 한다. 헤드폰 속 여성 목소리는 ‘차를 조심하며 걸어가’라거나 ‘건강을 걱정한다면 계단으로 올라가도 돼’라며 섬세하고 다정하게 안내한다. ‘기계에게 운동은 시간 낭비일 뿐이야’, ‘이 사람들 중 누가 더 오래 살 거 같아?’, ‘집단지성이라는 건 집단어리석음도 가능하다는 뜻이야’라며 인간적인 삶, 민주주의나 사회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다시 도시로 섞여 들어갈 준비를 해’라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공연이 끝나고 거리에 나서면 삶과 사회에 대한 시선이 사뭇 달라진다. GS아트센터에서 만난 현지 연출 외르크 카렌바워는 “요즘 죽음과 삶에 대해서도 챗GPT나 AI에 묻고 의존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원하는 게 이런 것인지, 인간 흉내를 내는 AI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인지 생각해보고 싶었다”면서 “궁극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연대하고 의지하는지,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지 보여주고자 한 의도도 있다”고 말했다. 카렌바워 연출은 지난해 12월 방한해 경로를 고민했고 개막 3주 전부터 서울에 머무르며 사회문화적 배경, 공공장소에서 보인 시민들의 행동 등을 관찰하고 분석해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에게 서울은 “대중교통 시간도 비교적 정확하고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리모트 X’를 진행하기 좋은 도시”다. 다만 “시민 대부분 휴대폰을 보고 있어 참여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아” 아쉬웠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 공연에서는 자유와 개성을 존중할지 평등과 규범을 우선할지 묻는 질문을 별도로 넣었다고 했다. ‘리모트 서울’은 다음 달 10일까지 매주 금~일요일 진행된다.
  • “꿰맨 양말로 찾은 시신… 78년 만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렀죠”

    “꿰맨 양말로 찾은 시신… 78년 만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불렀죠”

    “꿰맨 양말을 보고 니 아방(아버지)인 줄 알았져. 산더미처럼 쌓인 시신들 더미에서, 안 그랬으면 찾지도 못했을 거여.” 1일 서울신문과 만난 제주4·3 희생자의 유족 고계순(78)씨는 1948년 겨울 군경 토벌대에 의해 총살된 아버지(고석보씨)의 이야기를 꺼내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어머니(김보희씨)는 시아버지와 함께 남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헤매고 또 헤맸다. 고씨가 태어난 지 6개월도 안 됐던 때였다. 어머니는 홍역을 앓아 고열에 시달리는 고씨를 업은 채였다. 그해 겨울바람은 뼛속까지 스며들 만큼 매서웠다. 어머니는 자신이 직접 꿰맸던 양말 한 짝을 보고 남편이라는 걸 직감했다고 한다. 무자년 동짓달 스무날은 그렇게 아버지의 제삿날이 됐다. 직접 꿰맨 양말이 아니었다면 아버지의 시신을 찾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당시 구르마에 싣고 오다가 남의 밭에 묻었던 시신은 나중에 봉개동 가족묘지로 이장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은 고씨는 고열로 인해 청력을 거의 상실했다. 열 살이 돼서야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이 몰살됐듯, 그렇게 총에 스러진 사실을 알게 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큰고모 자식들은 군불 때는 아궁이 속에 숨어 겨우 목숨을 구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4·3 희생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은 생존 자체를 위협했다. 학교를 다녀야 하는 나이가 될 무렵 군대에서 제대한 작은아버지가 결혼하면서 고씨를 자신의 자식으로 호적에 올렸다.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가슴에 묻어둔 삶은 그렇게 흘러갔다. 그러다 또 다른 상처가 찾아왔다. 7남매를 둔 작은아버지가 별세한 뒤 고씨는 친딸이 아니라는 이유로 작은아버지 호적에서 빠지게 된 것이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 더욱 진해졌다. “희생자로 인정해 달라고, 호적 좀 바로잡아 달라고… 발이 부르트도록 다녔어요.” 2년여가 흐른 지난 2월 13일 고씨는 78년 만에 아버지를 되찾았다. 국무총리실 산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그를 희생자 고석보씨의 친생자로 인정한 것이다. 고씨는 “아버지를 한 번도 잊은 적 어수다. 이제 맘이 편해마씸. 한이 풀렸수다”라며 목메인 듯 말을 멈췄다. 오영훈 제주지사가 고씨의 집을 찾아 4·3위원회의 결정서를 직접 전달했다. 결정서에는 “고계순은 희생자 망 고석보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고씨를 포함해 4명에게 4·3 희생자와 친자 관계를 확인하는 결정이 처음 내려졌다. 조천 출신 김영석씨의 딸 순자(80)씨, 성산 출신 김철호씨의 딸 정해(78)씨, 구좌 출신 이완배씨의 딸 애순(77)씨 모두 출생 신고가 이뤄지기 전에 부친이 토벌대에 총살당하거나 형무소 수감 중 행방불명되며 할아버지의 자녀로, 부를 공란으로, 자신을 호주로 출생신고 돼야 했다. 하지만 학창 시절 생활기록부, 집안 족보, 희생자의 묘비, 친인척의 증언 등을 통해 아버지를 되찾았다. 4·3으로 인해 비틀린 가족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은 2021년 4·3 특별법이 개정되면서다. 기존 가족관계등록법으로는 생부가 행방불명돼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한 경우 친자 관계를 인정받기 어려웠으나 4·3 관련 특례 규정이 이때 신설됐다. 2023년 7월부터 관련 신청이 본격적으로 이뤄졌으며 지난해 4월부터는 도 차원의 사실 조사가 완료된 건에 대해 실무위원회 심의가 본격화했다. 지금도 많은 유족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기록해 달라”며 신청서를 내고 있다. 도에 따르면 3월 기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신청은 희생자와의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221건을 포함해 499건(취하 73건 제외)이 접수됐다. 4·3 관련 가족관계 정정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한 사람의 삶과 한 가족의 역사를 되찾는 일이다. 고씨는 인터뷰 말미에 “아버지가 살아 있었으면 엄마도 재혼 안 했을 테고 내게도 형제자매가 있었을 텐데…”라고 이야기하며 말끝을 흐렸다. 도는 지난달 26일 제243차 실무위를 열어 가족관계등록부 정정 10건을 추가 의결했다. 이 중 희생자와 자녀 사이의 친생자 관계를 확인·인지한 사안이 8건이다. 모두 고씨의 사례와 유사하다. A씨 등 7명은 출생신고 전 부친의 사망으로 희생자의 형과 형수의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출생신고됐으며 1명은 희생자 사촌의 자녀로 출생신고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 8명도 4·3위원회의 최종 심의·결정을 통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를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3일 4·3평화공원에서 열리는 제78주년 4·3추념식에서는 고씨의 사연이 영상과 배우 김미경의 낭독·연기로 소개될 예정이다.
  • ‘12·12 항거’ 故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한다

    ‘12·12 항거’ 故김오랑 중령 무공훈장 추서한다

    정부가 12·12 쿠데타 당시 신군부에 맞서다 총격으로 숨진 김오랑 중령에게 무공훈장을 추서한다. 정부는 31일 국무회의에서 김 중령에게 기존에 추서된 보국훈장을 취소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무공훈장 추서 안건은 추후 별도 상정해 의결할 계획이다. 무공훈장은 전시 등에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여되는 최고 수준의 예우다. 김 중령은 1979년 12·12 당시 정병주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으로 반란군의 정 사령관 체포 시도를 막으려 총격전을 벌이다 가슴과 배에 총탄 6발을 맞고 사망했다. 1980년 2월 국립묘지에 안장된 지 10년 만인 1990년 2월 중령으로 추서 진급됐다. 앞서 신군부는 김 중령이 먼저 사격했다고 주장하며 ‘순직’으로 분류했다. 이후 2012년 국회에서 ‘고 김오랑 중령 훈장 추서 결의안’이 발의됐고 순직 분류를 고려해 2014년 보국훈장이 추서된 바 있다.
  • ‘왕사남’ 단종 유배길, ‘케데헌’ 누빈 성곽길… 시간 품은 길[서울 로드]

    ‘왕사남’ 단종 유배길, ‘케데헌’ 누빈 성곽길… 시간 품은 길[서울 로드]

    태조 때 쌓은 18.6㎞ 중 13.7㎞ 남아총 6개 코스 작년 방문객 5580만명처음 찾는다면 평탄한 숭례문 구간백악 구간 경사 가팔라 난이도 최상인왕 구간은 서울 명품 야경 한눈에‘길에는 주인이 없고,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조선 영조 때 실학자 신경준은 ‘도로고(道路考)’에 이렇게 썼다. 소설가 김훈은 ‘허송세월’에서 ’“길은 소통의 통로란 의미”라고 풀었다. 오래 전부터 길을 중심으로 사람과 재화, 서비스가 움직이고 건물이 들어섰다. 이처럼 길은 도시의 경쟁력이자 풍경이며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600여년 역사의 서울에는 많은 길이 있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이 쫓겨갔던 유배길부터 3·1 운동과 4·19 혁명, 6월 민주항쟁, 2002년 월드컵, 두 번의 탄핵 촛불까지, 역사의 변곡점마다 길이 있었다. ‘서울 로드’에서 길에 스며든 과거와 현재, 미래를 풀어보려 한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건국하고 3년 뒤 수도를 개경(개성)에서 한양(서울)으로 옮기면서 가장 먼저 도성을 쌓았다. 전국에서 차출된 19만 7400여명이 98일 만에 총길이 18.6㎞의 성곽을 축조했다. 북악산과 낙산, 인왕산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한양도성은 500여년 동안 서울의 울타리로 소임을 다했다. 하지만 근대화 과정에서 시나브로 모습을 잃어갔다. 1899년 도성 안팎을 연결하는 전차 개통과 함께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했고, 1907년 일본 왕세자 방문을 앞두고 길을 넓힌다는 이유로 숭례문 좌우 성벽이 철거됐다. 1908년 평지의 성벽 대부분이 헐렸다. 1925년에는 일제가 남산에 조선신궁, 흥인지문(동대문) 옆에 경성운동장을 지으면서 성벽을 헐어 석재로 썼고, 민간에서도 집을 짓기 위해 훼손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1968년 북한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한 ‘김신조 사건’(1·21 사태)을 계기로 숙정문 주변부터 복원이 시작됐다. 문화유적으로 정체성 변화에 맞춰 서울성곽이란 이름을 쓰다가 2011년부터 한양도성이란 공식명칭을 얻었다. 전체 구간의 70%인 13.7㎞ 구간이 남아 있다. 총 8개의 문(4대문·4소문) 중 숙정문(북대문)과 창의문(북소문)을 제외한 나머지는 헐리거나 소실돼 새롭게 복원(서대문·서소문 제외)됐다. 조선시대에도 한양도성을 따라 걸으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여행을 ‘순성(巡城)’이라 부르며 즐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K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의 인기 덕분에 낙산공원 성곽길 코스가 유명세를 탔지만, 지금도 한양도성은 전체 구간을 걸어서 이동할 수 있다. 지난해 한양도성을 찾은 국내외 방문객은 총 580만명에 이른다. 한양도성을 처음 접한다면 숭례문(남대문) 구간이 제격이다. 강북삼성병원이 있는 돈의문 터에서 남산 입구 백범광장까지 도심을 가로질러 평지로 이동하는 구간이다. 남아 있는 성벽은 없지만 서울역사박물관과 덕수궁 돌담길 등을 지날 수 있어 서울을 처음 찾은 관광객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백범광장에서 남산을 타고 장충체육관으로 이어지는 목멱산 구간은 다산 성곽길로 불린다. 당시 공사를 담당했던 이들의 이름이 새겨진 ‘각자성석(刻字城石)’도 볼 수 있다. 성곽길 곳곳에 숨겨진 맛집과 카페를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흥인지문에서 장충체육관으로 이어지는 흥인지문 구간 역시 성벽은 없어졌지만 한양도성의 역사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한양도성박물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등이 있어 필수 코스로 넣을 만하다.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역대급 흥행을 이어가고 있는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단종이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등된 뒤 강원도 영월까지 쫓겨가는 700리(280㎞) 유배길에도 흥인지문은 등장한다. 야사에서는 창덕궁에서 출발한 단종이 흥인지문을 나와 청계천 영도교에서 정순왕후와 작별한 것으로 전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광희문(남소문)으로 나갔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체가 나가는 문이라는 뜻의 ‘시구문(屍口門)’으로도 불린 광희문은 한양에서 죽은 시신을 한양 밖으로 옮길 때 통과하는 문이었다. 시신은 모두 사대문 밖으로 옮겨 묻어야 했는데 광희문이 당시 묘지가 많았던 수철리(현 금호동)의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흥인지문 북쪽으로는 케데헌 성지순례 코스인 낙산 구간이 나온다. 산이 있는 구간 중 가장 완만하고 길게 뻗은 도성에 설치된 조명 덕분에 밤에는 로맨틱한 풍경을 연출한다. 오래된 집을 유지하며 건물 외벽 그림 등을 볼 수 있는 장수마을과 이화마을도 이곳에 있다. 한양도성의 북쪽인 백악산과 인왕산을 연결하는 백악·인왕산 구간은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혜화문에서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4.7㎞ 백악 구간은 도성에서 가장 높은 백악마루(해발 342m)를 포함한다. 경사가 가팔라 한양도성 6개 코스 중 가장 난이도가 높다. 백악마루에서 청운대로 내려가는 길에는 15발의 총탄이 박힌 소나무에서 김신조 일당과 군경이 총격전을 벌인 흔적을 찾을 수도 있다. 창의문에서 돈의문 터로 이어지는 4.0㎞의 인왕 구간에서는 서울의 명품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강북삼성병원에서 출발해 90분쯤 올라가면 인왕산 정상에서 사대문 안 도심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 질 무렵 올라가면 낮의 풍경과 야경을 동시에 감상할 수도 있다.
  • ‘넌 이제 어엿한 숙녀야’…가슴 뭉클해지는 세월의 흐름 [트렌드 케찹]

    ‘넌 이제 어엿한 숙녀야’…가슴 뭉클해지는 세월의 흐름 [트렌드 케찹]

    요즘 해외 SNS에서는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1970년대 명곡, 스타일리스틱스의 ‘You’re A Big Girl Now’가 자주 들려옵니다. “You’re A Big Girl Now, no more daddy’s little girl”(넌 이제 어엿한 숙녀야, 더 이상 아빠의 어린 딸이 아니지)라는 가사에 맞춰 어린 시절과 현재의 성숙해진 모습을 대비시키는 트렌드인데요. 어릴 적 아버지와 찍은 사진 뒤에 아버지의 묘지를 방문한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한 손에 쏙 들어오던 아기 고양이와 강아지가 늠름하게 자라난 과정을 공유하며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하죠. 수많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켜켜이 쌓인 서사를 단 몇 초 만에 마주하게 되어 묘한 뭉클함이 밀려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싶은 분들, 이 트렌드를 저장하고 활용해 보세요.
  • “3·15, 민주주의 위기마다 나라 바로 세울 이정표”

    “3·15, 민주주의 위기마다 나라 바로 세울 이정표”

    이재명 대통령은 15일 3·15 의거에 대해 “위기 때마다 나라를 일으켜 세울 우리의 이정표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남 창원시 국립3·15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6주년 3·15 의거 기념식’에 참석해 “마산에서 시작한 3·15 의거는 전국 곳곳의 4·19 혁명을 촉발했고 마침내 강력했던 독재정권을 무너뜨렸다”며 이처럼 말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의거는 2010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고 2011년부터 정부 주관으로 기념식을 거행해왔는데 현직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3·15 의거가 있었기에 12·3 불법 계엄을 막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세월이 흘러도 가슴과 뇌리에 새겨진 쓰라린 상처와 기억, ‘그래도 국민을 이기는 권력은 없다’는 확고한 역사적 믿음이 모여 2024년 12월 3일 밤, 내란의 어둠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1960년 3월 15일’이 그랬던 것처럼 ‘2024년 12월 3일’ 역시 일각의 영구집권 야욕을 국민 주권의 지혜가 물리친 날로, 절망의 겨울을 넘어 희망의 봄을 만들어낸 날로 기록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3·15 의거 유공자들도 다른 유공자에 합당한 대우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3·15 의거, 4·19 혁명에 참여하신 유공자분들을 한 분이라도 더 찾아 포상하고, 기록하며, 예우하겠다”고 했다. 
  • 강북 “올 4·19문화제, 문화콘텐츠 다양화”

    강북 “올 4·19문화제, 문화콘텐츠 다양화”

    서울 강북구는 전날 국립4·19민주묘지에서 ‘4·19혁명국민문화제 2026 위원회 출범식’을 개최하고 올해 문화제 준비에 나섰다고 12일 밝혔다. ‘4·19혁명국민문화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상징인 4·19혁명의 역사적 의미와 민주정신을 국민과 함께 기리는 전국 규모의 보훈문화 행사다. 매년 4·19민주묘지를 중심으로 강북구 일대에서 개최되는 대표적인 역사문화 축제다. 출범식은 문화제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한 첫 공식 행사로 마련됐다. 이순희 강북구청장을 비롯해 4·19혁명 관련 단체 관계자와 위원회 위원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이후 국립4·19민주묘지를 참배하며 민주 영령들의 희생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구는 출범식을 계기로 오는 4월 10일부터 19일까지 열리는 문화제 준비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올해 문화제는 시민 참여형 프로그램 확대와 문화 콘텐츠 다양화에 중점을 뒀다. 음악·연극·전시 등 문화 프로그램으로 4·19혁명의 의미를 친숙하게 전달하고, 시민이 참여하는 프로그램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일상에서 공유하는 축제로 발전시킬 방침이다. 또 외국인 탐방단 등 국제 교류 프로그램으로 ‘K-민주주의’의 역사적 의미를 세계 시민과 공유하는 행사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이 구청장은 “문화제는 한국 민주주의의 뿌리를 기억하고 그 가치를 다음 세대와 함께 나누는 뜻깊은 행사”라며 “시민들이 4·19혁명의 의미를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문화제로 준비해 안전하고 내실 있는 행사가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 정기선 회장, 한·필리핀 ‘가교 역할’

    정기선 회장, 한·필리핀 ‘가교 역할’

    정부 경제사절단 일원으로 필리핀을 방문 중인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한·필리핀 간 우호 증진을 위해 가교 역할에 나섰다. HD현대는 정 회장이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비를 참배하고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했다고 5일 밝혔다. 정 회장은 지난 4일(현지시간) 마닐라 국립 영웅묘지에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비를 찾아 헌화했다. 필리핀은 한국전쟁 당시 아시아 국가 중 가장 먼저 전투부대를 편성해 가장 많은 7420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이튿날에는 한국경제인협회와 필리핀상공회의소가 공동으로 개최한 ‘한·필리핀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해 양국 경제협력 확대를 위한 세부 방안을 모색했다. 정 회장은 “HD현대는 필리핀과의 단순한 사업 협력 관계를 넘어 대한민국과 필리핀 간 우호 증진을 위한 핵심적인 가교 역할을 수행해 오고 있다”며 “앞으로도 대한민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필리핀과 깊은 신뢰를 쌓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 회장은 필리핀 수빅만에 위치한 HD현대필리핀조선을 방문해 직원 기숙사 신축 현장과 야드를 둘러보며 직원들을 격려했다.
  • “남편은 아내 때려도 돼” 법으로 보장…동물 학대보다 가벼운 처벌 논란

    “남편은 아내 때려도 돼” 법으로 보장…동물 학대보다 가벼운 처벌 논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는 탈레반 정권이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행을 사실상 허용하는 법령을 공식화 해 논란이 일고 있다. CNN은 2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인권 단체 ‘라와다리’가 입수한 탈레반의 새 형법 조문 내용을 공개했다. 공개된 법령에 따르면 남편이 아내를 때리더라도 뼈가 부러지거나 외상 또는 멍이 생기지 않을 정도의 폭행은 처벌 대상에서 제외된다. 만약 아내가 골절이나 상처를 입어 판사에게 호소할 경우에만 남편에게 징역 15일형이 선고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여성에 대한 처벌이 동물 학대에 대한 처벌보다 가볍다는 점이다. 현지 형법에 따르면 개나 수탉을 강제로 싸우게 하는 등 동물 학대가 적발될 경우 징역 5개월에 처할 수 있다. 아내를 폭행해 골절상을 입게 한 경우보다 더 엄중한 처벌을 받는 셈이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탄압 수위도 한층 높아졌다. 법령은 동성애를 비롯해 이른바 ‘이슬람 교리에 어긋나는 성관계’를 지속할 경우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절도, 이단, 마법 등에 대해서도 사형을 선고할 수 있다. 탈레반의 처벌 관행이 법령에 명시된 것은 2021년 8월 탈레반 재집권 이후 처음이다. 인권 단체들은 탈레반의 이번 법령이 여성의 사법 접근권을 완전히 차단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프가니스탄 샤리아(이슬람 율법)상 여성의 증언은 남성의 절반 가치로만 인정될뿐 아니라 여성은 남성 보호자 없이 외출하는 것이 금지돼 있어 폭력 피해를 알리는 것조차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권 운동가 마부바 세라지는 CNN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남성의 말을 곧 법이며 그들이 여성을 완전히 지배할 권리를 갖게 됐다”면서 “과거에는 판사나 법적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기대할 만한 것이 없다”고 토로했다. 폴커 튀르크 UN 인권최고대표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인권이사회에서 “아프가니스탄은 인권의 묘지가 되고 있다”면서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성별에 기반해 재현된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탈레반의 법령에는 교사가 학생을 폭행해 뼈가 부러질 경우에도 단순히 직위 해제 처분만 내리게 하거나, 아버지가 기도하지 않는 자녀를 신고하거나 처벌할 권한도 명시돼 있다. 더불어 최고지도자인 히바툴라 아쿤자다를 모욕할 경우 채찍 39대와 징역 1년, 고위 관리를 모욕할 경우 징역 6개월과 채찍 20대에 처하는 등 정권 비판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필리핀 참전용사를 기억합니다… 한국전 희생 기리는 현대차그룹

    필리핀 참전용사를 기억합니다… 한국전 희생 기리는 현대차그룹

    현대자동차그룹과 국가보훈부가 필리핀 국립 영웅묘지의 한국전 참전비 및 참전 기념관에 대해 보수·환경 개선에 나선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첫 번째, 세계 세 번째로 한국전쟁(6·25전쟁)에 병력을 보낸 우방국이며, 우리나라와 수교를 맺은 지 올해로 77주년을 맞았다. 권오을 보훈부 장관은 2일 “우리 정부는 필리핀 참전용사 추모시설을 시작으로 유엔 참전국의 참전 기념 시설에 대한 정비를 확대해 참전국과의 결속력을 더욱 공고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그룹이 이달부터 개보수 작업에 들어가는 국립 영웅묘지 참전비와 한국전 참전 기념관은 수도 마닐라에 있다. 이들 시설은 한국전쟁 당시 필리핀의 한국 원정군(PEFTOK) 5개 전투대대 소속이었던 총 7420명의 병력과 그 가족의 헌신을 기리려 건립됐다. 이 중 1967년 세워진 국립 영웅묘지 참전비는 참전용사들의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 의미를 담았다. 양국 수교 60주년이었던 2009년에 보훈부 주도로 보수 작업을 한 바 있으며, 이번에는 현대차그룹이 보훈부와 함께 새롭게 단장에 나서게 됐다. 참전비는 약 7m 높이의 삼각기둥으로 상단에는 유엔 엠블럼과 함께 한국·필리핀 양국의 국기가 부착돼 있다. 또 아래쪽에는 전사한 대원 112명 전원의 이름을 새겼다. 현대차그룹은 이달부터 참전비의 균열되거나 변색된 부분을 보수하고 참전비 주변 계단과 바닥부의 대리석을 전면 교체할 예정이다. 시설 안내판과 상징성을 살린 조형물도 설치해 참전용사 가족과 관광객이 쉽게 현장을 찾을 수 있게 돕는다. 참전비에서 약 1.2㎞ 떨어져 있는 한국전 참전 기념관은 2012년 건립됐으며, 한국전쟁 당시 기록물과 사료를 전시·보관하는 박물관과 도서관 등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 건물도 보수하고 내부 가구류 등도 교체하는 동시에, 시설 리모델링도 검토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필리핀을 시작으로 한국전쟁 참전국의 현지 참전용사 추모시설들을 돌아보고 환경 개선 사업을 본격 검토한다. 또 해외 각지에 있는 독립운동 사적지의 보존·관리를 위해 협력할 예정이다. 한편 현대차그룹은 필리핀에서 재난 구호에 활용할 차량과 물품 등을 지원하고 사회적 취약계층 청소년과 재난 피해 지역 학생들에게 학용품과 생필품을 지급하는 등 사회공헌활동을 펼쳐 왔다.
  • 2500년 전에 턱 수술을?…시베리아 여성 미라가 보여준 고대 의학 수준 [핵잼 사이언스]

    2500년 전에 턱 수술을?…시베리아 여성 미라가 보여준 고대 의학 수준 [핵잼 사이언스]

    지금으로부터 약 2500년 전 시베리아에서 살았던 여성이 심각한 머리 부상으로 턱 재건 수술을 받았던 것이 확인됐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라이브사이언스 등 과학 전문 매체는 영구동토층에서 발견된 여성 미라를 CT 스캔으로 분석한 결과 턱 수술과 원시적인 형태의 보철물을 착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 여성 미라는 지난 1994년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소속 고고학자들이 시베리아 남서부 알타이산맥 지역에 있는 우코크고원의 공동묘지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25~30세로 추정되는 이 여성은 미라 상태였으며, 본격적인 연구는 최근에서야 이루어졌다. 연구를 맡은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 대학 블라디미르 카니긴 교수는 “CT 스캔을 이용해 영구동토층에 보존된 이 미라를 분석한 결과 부상의 흔적뿐 아니라 고대에 복잡한 외과수술이 이루어진 것까지 확인했다”면서 “당시 파지리크 문화가 높은 수준의 의학 지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파지리크 문화는 기원전 6세기에서 3세기 중앙아시아 알타이산맥 지역에서 번성했으며 주로 스키타이 계열의 유목민의 의해 형성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이 여성은 당시 오른쪽 턱관절이 부서졌는데, 이에 따라 정상적으로 말하거나 식사를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당시 의료진은 오른쪽 턱관절을 구성하는 두 뼈에 얇은 관을 뚫어 그 안에 말 털이나 동물 힘줄 같은 것을 넣어 고정했다. 이 원시적인 보철물이 관절면을 서로 연결해 여성의 턱을 움직이게 했다는 것으로 무려 2500년 전 이 같은 의료가 행해졌다는 것이 놀라운 점이다. 이에 대해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자 나탈리아 폴로스는 “파지리크인 들은 마취가 없던 시절에도 기본적인 두개골 수술을 할 줄 알았다”면서 “그들은 인체 해부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미라를 만드는 전통에도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연구는 파지리크인 들이 동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복잡한 외과 수술을 시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다”고 덧붙였다.
  • [서울광장] 국민의힘, ‘윤석열 블랙홀’ 벗어나려면

    [서울광장] 국민의힘, ‘윤석열 블랙홀’ 벗어나려면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퇴임 후 ‘박연차 게이트’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은 노무현 전 대통령. 그는 2009년 5월 23일 이런 유서를 남기고 마을 뒷산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던졌다. ‘특권과 반칙 없는 나라’라는 정치 목적에 도달하는 데 실패했다는 좌절감, 무력감에다 노무현이 정의·진보 같은 이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 돼 버렸다며 스스로를 가혹하게 처벌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도 국회 탓, 국무위원 탓, 사령관 탓으로 일관하며 12·3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제 법원에서 1심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국민 앞에 반성과 사과는 없었다. 국민의힘은 그런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건희 비리 의혹’과 그를 감쌌던 윤 전 대통령, 이를 지적하며 갈등했던 한동훈 전 당대표 사이에서 계엄폭탄이 터지는 비극을 막지 못한 ‘내란 방조 정당’이라는 여권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한국의 보수정당은 정치의 주류에서 밀려난 지 10년이나 됐다. 2016년 총선 패배에 이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대선 참패,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 참패로 이어지는 보수의 겨울을 맞았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라는 ‘반짝 봄날’도 있었지만, 2024년 총선 참패와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탄핵파면으로 입법부, 행정부 권력을 상실한 데다 내란 우두머리 배출 정당이라는 낙인까지 찍힘으로써 건국과 산업화를 주도해 온 자유민주주의 헌법 수호세력이라는 자부심과 명분마저 흔들리는 처지가 됐다. 국민의힘과 보수가 ‘윤석열 블랙홀’에서 벗어나 다시 국민의 사랑과 선택을 받을 수 있기까지 얼마의 세월이 걸릴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이 비주류로 밀려난 10년 동안 이견을 배신으로 여기는 ‘배신자 색출병’이 체질화된 것도 당의 자생력과 복원력 발휘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유승민 원내대표의 다른 목소리에 대해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며 ‘진박’, ‘찐박’만 찾다가 총선 참패와 탄핵을 맞았다.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 외친 윤 전 대통령은 이준석 당대표를 ‘내부 총질’ 혐의로 사실상 내쫓았고, 한동훈 당대표를 ‘배신자’로 몰아붙였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당 게시판 사건의 책임을 물어 계엄에 반대하고 탄핵에 찬성했던 한 전 대표를 제명했다. 윤 전 대통령을 대신해 한 전 대표를 응징한 셈이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절연해야 한다는 당 안팎의 요구에 “절연에 대한 입장은 우리 당에서 여러 차례 밝혔다”면서 “지금 절연보다 더 중요한 건 전환”이라고 했다. 장 대표의 ‘전환’이 다음달 1일부터 당명을 바꾸고 당을 지방선거 모드로 전환하는 식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는 것이라면 국민에게 진정한 변화·혁신으로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선포의 한 이유로 든 부정선거론에 사로잡혀 당을 고립으로 몰아넣고 있는 ‘윤 어게인’ 세력과의 단절 여부도 헌법·사실·상식을 중시하는 국가중심세력으로의 복귀 가능성을 가르는 하나의 기준선이 될 것이다. 국민의힘 계열의 한국 보수정당은 잘못된 과거를 스스로 청산하고 위기를 극복한 역사를 갖고 있다. 김영삼 정부 때인 1995년에는 12·12 군사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특별법 제정으로 신군부 세력을 단죄했다. 2004년 박근혜 대표 시절에는 천막당사라는 기득권 포기 실천으로 ‘차떼기당’의 오명을 씻고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2020년 총선 참패 후에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광주 5·18 민주묘지 앞 무릎사과로 호남의 문을 두드렸고, 30대 0선 당대표를 내세워 청년들에게 다가서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장동혁 지도부가 무늬만의 변화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쇄신할 결심을 했는지는 6·3 지방선거의 공천혁명 여부로 드러날 것이다. 한 전 대표도 ‘윤석열의 황태자’로 법무부 장관, 비상대책위원장, 당대표를 지내면서 계엄이라는 윤 정부의 자멸을 막지 못한 책임과, 탄핵·대선 국면에서 리더십·팔로어십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는 당원들의 비판 앞에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박성원 논설위원
  • 연애 고민 보내면 욕부터…中 청년들, 돈 내고 ‘공개 혼쭐’ 찾는다 [핫이슈]

    연애 고민 보내면 욕부터…中 청년들, 돈 내고 ‘공개 혼쭐’ 찾는다 [핫이슈]

    중국에서 연애에 집착해 이성을 잃은 청년들이 돈을 내고 낯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혼나는 서비스가 유행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연애에 빠져 판단력을 잃은 상태’를 뜻하는 신조어로 부르며 거친 질책을 감정 해소와 현실 인식을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11일 중국 젊은 층 사이에서 연애 상담 대신 거친 언어로 현실을 직설적으로 지적해 주는 ‘욕 상담’ 서비스가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라이브 방송에서 여성 시청자는 학력과 집안 형편이 좋지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가난한 연상의 남성에게 집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에 인플루언서 ‘타오자이’는 “그런 태도라면 사랑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이 같은 방식은 외부에서 보면 모욕처럼 보일 수 있지만, 많은 젊은이에게는 감정의 출구로 작용하고 있다. 라이브 방송과 유료 상담, 온라인 강의까지 등장하며 ‘연애 일침’ 서비스가 하나의 시장으로 형성되는 모습이다. ◆ “30분 욕 듣고 전 남친 잊었다”…저렴한 ‘감정 처방’ 인기 타오자이는 거친 화법으로 약 200만명의 팔로워를 모았다. 연간 1800위안(약 37만 원)을 내면 라이브 상담 우선 참여나 1대1 메시지 상담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인플루언서는 흰 가운을 입고 심리 상담가 역할을 하며 거친 언어로 조언한다. 그는 남자친구가 연락을 끊었다는 여성에게 “묘지에 있어서 신호가 안 잡히는 거냐”는 식의 직설적인 말을 던지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한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에서도 ‘연애 욕 상담’ 상품이 등장해 월 3000건 이상 팔리는 사례도 있다. 한 쇼핑몰에서는 30분 전화 상담을 60위안(약 1만 2500원)에 제공한다. 구매자들은 “30분 욕을 듣고 전 남친을 잊었다”며 “심리 상담보다 훨씬 저렴한 현실적인 충격”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대도시에서 전문 심리 상담 비용은 시간당 500~2000위안(약 10만 4600~41만 8500원)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단순한 ‘망신 주기’가 아니라 감정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로 해석한다. 장융 우한과학기술대 교수는 “부정적 감정에 압도되면 자신을 돌아보기 어려워진다”며 “강한 외부 피드백이 자기 인식을 촉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자격이나 감독이 없는 ‘감정 코치’들이 왜곡된 연애관을 퍼뜨릴 위험도 있다고 경고했다. ◆ 감정 소비 시장, 향후 5년 새 두 배 성장 이 같은 현상은 중국에서 감정 자체를 상품으로 소비하는 ‘감정 경제’ 확대 흐름과 맞물려 있다. 인민일보가 인용한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감정 경제 시장 규모는 2024년 2조 3000억 위안(약 481조 2750억원)에 달했고 2029년에는 4조 5000억 위안(약 94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기괴한 표정의 인형이 큰 인기를 끌며 제조사 매출을 끌어올린 사례나 공장에서 실수로 울상 얼굴이 된 인형이 노동자들의 공감을 얻은 일화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일부 젊은 여성들은 게임이나 소설 속 이상형을 연기하는 코스플레이어를 고용해 실제 데이트를 즐기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플랫폼 확산과 사회적 스트레스가 맞물리면서 감정 소비 시장이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장 교수는 “감정을 건강하게 이해하고 다루는 감정 교육이 사회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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