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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 3명 살해한 엄마 응원해” 여성 수백명 모였다… 산후우울증보다 심각한 산후정신병 때문? [월드픽]

    “아이 3명 살해한 엄마 응원해” 여성 수백명 모였다… 산후우울증보다 심각한 산후정신병 때문? [월드픽]

    자녀 살해 혐의 여성 재판날 지지자들 몰려美시스템이 정신질환 관리 못해 범행 주장검찰, 남편 심부름 보내 계획 범죄에 무게 생후 8개월에서 5살 사이 자신의 아이 3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30대 여성의 재판이 열리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 상급법원 앞에 지난 20일(현지시간) 피고인을 지지하는 여성 수백명이 몰려들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법원 앞에는 ‘린지에게 평화를’, ‘그녀에겐 도움이 필요하다’, ‘믿는다’ 등 문구가 적힌 분홍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 여성이지만 소수의 남성도 있던 약 300명의 지지자들은 피고인인 린지 클랜시(36)에 대한 무죄 판결을 촉구하면서 미국 사회의 정신건강 시스템이 여성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클랜시의 변호인 역시 “피고인이 아이들을 살해한 사실은 부인하지 않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 형사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재판 중인 자녀 살해 사건은 2023년 1월 24일 매사추세츠주 덕스버리에 있는 클랜시의 자택에서 벌어졌다. 당시 산부인과 간호사로 일하던 클랜시는 운동용 밴드를 이용해 생후 8개월 아들, 3살 아들, 5살 딸의 목을 졸랐다. 두 아이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막내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며칠 뒤 숨졌다. 클랜시는 범행 직후 자택 2층 창문 밖으로 뛰어내렸으나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척추를 크게 다쳐 하반신이 영구 마비됐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마당에 쓰러져 있는 클랜시를 발견하고 911에 신고했고, 뒤이어 집 안 지하실에서 자녀들을 발견했다. 현지 검찰은 클랜시가 남편에게 아이의 약을 찾아오고 식당에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으로 포장해 와달라면서 집 밖으로 내보낸 뒤 범행을 저지른 점을 들어 이 사건을 계획적인 살인으로 봤다. 그러나 변호인은 피고인이 심각한 산후우울증을 앓았으며 그 증세가 훨씬 심각한 산후정신병으로 발전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러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클랜시는 범행 약 3주 전 정신적 불안 증세와 자살 충동을 호소하며 스스로 한 정신병원을 찾아가 입원 치료를 받았고, 5일간의 입원 후 병원 측은 ‘상태가 호전됐다’며 퇴원 조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포함해 클랜시는 수개월 동안 정신과, 응급실, 상담 치료 등을 받았고 10여종의 약물을 처방받았으나 미국의 시스템이 그를 구하는 데 실패해 결국 이 사건에까지 이르렀다는 게 변호인의 주장이다. 산후정신병은 출산 후 여성 1000명당 1~2명에게서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인 지지자들 중 전직 간호사였던 72세 여성 잔 자보르스키는 “제 여동생도 출산 후 합병증으로 고생했다. 클랜시가 필요한 치료와 마땅한 보살핌을 받길 바라며, 다른 여성들도 우리처럼 힘을 모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병원 목사인 쉴라 캐버노는 “제가 클랜시의 손을 잡고 위로해주자 그는 ‘아이들이 안전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말했다”며 “저도 ‘아이들은 천국에서 하나님 곁에 있어 안전하다’고 신학적으로 대답했다”고 전했다. 한편 5주 동안 이어지고 있는 재판에서 배심원들은 지난주 평결을 위한 심의를 시작했으나 30일 현재까지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클랜시가 자녀 살해 혐의 유죄 판결을 받으면 종신형과 같은 중형에 처해질 수 있고, 무죄 판결을 받으면 석방되거나 정신건강 시설에 수용될 수 있다고 AP는 전했다.
  • “혼란과 고통 지나야 진리와 신비가 드러나죠”

    “혼란과 고통 지나야 진리와 신비가 드러나죠”

    산문집 펴낸 남상근 신부살며 겪어야 할 일은 겪을 수밖에환란 지나야 비로소 깨달음이 와은총, ‘참 좋은 것’에 수긍하는 힘출판사 대표 변신 김금희편집자로 창작 못잖은 희열 느껴남 신부 만난 덕에 깊은 신앙 얻어앞으로도 가톨릭 필자 발굴할 것 “살면서 책과 같은 삶의 흔적을 남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아시겠지만, 늘 신자가 강자고 사제가 약자니까요. 신부들이 큰소리치는 것 같지만 정반대죠. 하하!” ‘소설가 김금희’가 영성으로 충만한 책 ‘은총수업’(페퍼로니)으로 찾아왔다. 직접 쓴 건 아니다. 출판사 사장이자 책의 충실한 편집자로 만듦새를 책임졌다. 그가 한발 물러나며 앞세운 주인공은 남상근 라파엘 신부다. 두 사람을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성당에서 만났다. 남 신부는 스스로 “극도로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밝혔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 시종일관 유쾌한 에너지로 기자를 웃기고 울렸다. 김금희가 잠깐 펜을 내려놓고 편집자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보다 앞서 왜 지금 우리에게 ‘은총’이 필요한 것일까. “사람의 능력만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요. ‘나’ 혹은 ‘우리’를 세상의 중심에 둘 때 여러 문제가 생기죠. 꼭 그런 게 아님을, 우리를 뛰어넘는 어떤 게 작동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바로 은총을 받아들이는 시작이죠.” ‘은총수업’은 올해로 사제 서품 25주년을 뜻하는 ‘은경축’을 맞이한 남 신부의 첫 번째 산문집이다. 그동안 미사와 강론을 통해 신자들에게 전했던 이야기들을 단정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성경 속 구절이 일상의 고민과 어우러지는 가운데 오늘날 우리의 삶이 결코 우리만의 힘으로 완성되는 게 아님을 넌지시 가르쳐 준다. 꼭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신앙심이 없어도 펼쳐볼 만하다. 신앙보다는 삶과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라서다. 김금희는 책 57쪽에 있는 ‘모든 불이 지나간 뒤’라는 제목의 글이 특히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해당 글에서 남 신부는 열왕기 상권 19장 12절의 문장을 인용하고 있다.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살면서 겪어야 할 것은 겪어야 합니다. 피할 도리가 없죠. 예언자 엘리야의 이야기인데요. 엄청난 혼란과 고통이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들을 여력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만약 그러면 우리가 이미 성인(聖人)이죠. 모든 환란이 다 지난 뒤에 비로소 무엇을 발견하게 됩니다. 인생의 진리일 수도 삶의 신비일 수도 있죠. 그런데 잘 생각해 보죠. 지진과 불과 바람이라는 혼란이 없었다면 진리나 신비가 우리 눈에 보일까요.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걸 지나와야 비로소 더 귀한 걸 발견하게 되죠.” ‘너무 한낮의 연애’, ‘경애의 마음’, ‘대온실 수리 보고서’ 등의 소설을 펴내며 동시대 한국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김금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러나 2023년에 세례를 받았으니, 생각보다 신자로 살아온 세월이 그리 길지는 않다. 짧은 세월에도 깊은 신앙심을 키울 수 있던 건 공덕동성당의 주임신부였던 남 신부와의 만남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기 이름을 내건 출판사 첫 책의 저자로 남 신부를 당당히 앞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페퍼로니라는 출판사 이름은 그의 소설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에서 따온 것이다. 남 신부의 책을 만들면서 김금희는 “창작 못지않은 희열감을 느꼈다”며 “앞으로도 가톨릭 관련 좋은 필자를 발굴해서 멋진 책을 펴내고 싶다”고 말했다. 한때 기자를 꿈꾸기도 했다는 남 신부는 서울대 신문학과에서 공부했다. 대학원 공부를 이어가던 중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성가복지병원에서 우연히 자원봉사를 하게 됐는데 그 길로 신학을 공부하고 2001년 사제품을 받았다. 사제는 분명 교회 안에서 ‘대접받는’ 사람이다. 그 사실 때문에 의기양양하고 더러는 자만하기도 했다. 그러나 은총은 자만심에 빠진 사람에게 오지 않는다. “은총은 자기의 한계를 아는 사람이 잘 느끼는 것 같아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적인 것이 ‘좋으신 분’으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것. 그렇게 되면 아무리 열악하고 불행한 상황에서도 빠져나갈 수 있어요. 은총은 ‘참 좋은 것’을 ‘참 좋은 것’으로 수긍하게 하는 힘이에요.”
  • “이란이 내 아들 죽이려 한다”…네타냐후가 ‘암살설’ 터뜨린 이유 [이슈분석+]

    “이란이 내 아들 죽이려 한다”…네타냐후가 ‘암살설’ 터뜨린 이유 [이슈분석+]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자기 아들 중 한 명을 이란을 살해하려 했다고 밝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24일(현지 시간) 친정부 성향 매체 채널14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말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면서 “이란이 내 아들 중 한 명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란이 내 아들 중 한 명을 죽이려 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두 아들 중 누구인지 또한 암살 근거 등 자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총리가 자기 가족이 누리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준의 경호를 옹호하기 위해 암살 시도 의혹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네타냐후 총리는 이 인터뷰에서 “그들이 받는 경호는 결코 사치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사라 여사와 두 아들 야이르와 아브너를 두고 있으며,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최소 5년 동안 이스라엘 최고 정보기관인 신베트의 철저한 경호를 제공받기로 결정된 상태다. 그러나 일각에서 가족에 대한 경호가 과도한 사치라는 비판이 제기돼 왔으며 이 중 야이르에 대한 논란이 가장 뜨겁다. 강경 우파 성향의 소셜 미디어 활동으로 유명한 야이르는 주로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거주하고 있다. 특히 2024년 현지 언론은 그가 마이애미의 호화 아파트 단지에 거주하며 운전기사와 신베트 특수부대 소속 경호원들을 두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로 해외에 거주하는 야이르에게 제공되는 24시간 경호가 과도하다는 비판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이스라엘 장관급 위원회는 네타냐후 총리 가족의 신베트 경호 기간을 새로 결정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고 수준의 종신 경호를 받으며, 사라 여사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두 아들은 향후 최소 5년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감행한 이란, 하마스, 헤즈볼라 지도부 암살 작전 이후 네타냐후 총리 가족을 겨냥한 보복 및 암살 위협 수위가 높아졌다는 것이 명분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퇴임 이후에도 연간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고액 경호 비용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과도한 특혜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 췌장암 말기인데 “소금물 마시세요”…올리버쌤이 밝힌 ‘충격적인 美의료시스템 현실’

    췌장암 말기인데 “소금물 마시세요”…올리버쌤이 밝힌 ‘충격적인 美의료시스템 현실’

    구독자 225만명을 보유한 유튜버 ‘올리버쌤’이 미국에서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새아버지를 언급하며 미국 의료 시스템의 현실을 전했다. 지난 23일 유튜브 ‘책과삶’ 채널에는 ‘“생존 확률 1%” 미국 불바다에서 살아남은 기적, Ep. 사람산책 21, 올리버쌤 부부 1부’라는 제목의 영상이 게재됐다. 영상에는 올리버쌤과 그의 아내인 웹툰 작가 정다운씨가 출연해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담겼다. 올리버쌤 부부는 미국 텍사스에서 생활하면서 “과연 이곳에서 오래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며 과거 딸 체리가 아팠던 당시 겪었던 일을 털어놨다. 정씨는 “사실 저희가 그 집을 선택했을 땐 집을 갖고 싶은 생각에 큰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고른 이유도 있었던 것 같다”며 “평당 500원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그렇게 됐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의료 접근성이 굉장히 떨어지더라”고 말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체리 배꼽이 떨어졌어야 했는데 일주일 뒤 노란 고름이 차기 시작하더라”면서 “한국인으로서 그냥 가볍게 생각하고 병원에 가서 진단받자고 했는데 이게 당연하지 않은 일이란 걸 늦게 알았다”고 전했다. 체리는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나 가입된 보험과 병원이 처리하는 보험 종류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수술을 거절당했다. 올리버쌤은 “죄책감을 많이 느꼈다. 미국으로 이민 온 게 맞는 건가? 부끄럽기도 했다”며 “매일 2~3시간씩 보험사랑 병원이랑 통화했다. 결국 체리 배꼽 문제를 위해 1시간 10분 정도 운전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올리버쌤은 췌장암 말기로 지난 2월 별세한 새아버지의 사례도 전했다. 올리버쌤은 “그때도 병원 가기 쉽지 않았다. 체리 문제처럼 비슷한 이유로 접근성이 굉장히 떨어졌다”며 “결국 의사를 만나게 되셨을 때 의사 선생님이 아버님한테 검사 같은 거 없이 그냥 ‘아마 배 문제가 있는데 소금물 마시고 좀 쉬세요’ 이런 식으로 대충 말하고 집으로 보내셨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고 털어놨다. 정씨는 “사실 증상이 있었던 건 꽤 오래전인데, 미국은 주치의부터 만나고 허락을 받아야 검사를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주치의로부터 ‘쉬면 괜찮아진다. 소화불량 같다’ 이렇게 진단을 받았다”며 “한국인으로서 소금만 먹고 쉬라는 말이 충격적이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아픈데도 무력하게 걸어 나오셨을 아버님을 생각하니 정말 맘이 아팠고,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게 시스템상에 없으니까 무력감이 크게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 상황을 미국인은 당연하다는 듯 담담하게, 워낙 익숙한 일이니까 ‘그래? 또 그렇네. 그럼 또 한 달 동안 찾아서 다른 의사를 찾자’라며 받아들이더라”며 “그걸 보면서 한국인으로서 ‘이게 맞나? 라는 의구심이 들었다”고 전했다. 가족들은 새아버지가 암 진단을 받지 못했기에 소금물을 마시며 상태가 나아지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새아버지는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았고, 이후 아내를 잘 부탁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올해 2월 세상을 떠났다. 앞서 올리버쌤 부부는 지난해 12월 새아버지의 암 투병 소식을 전하며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한 바 있다. 당시 미국의 의료보험료로 2600달러(한화로 약 400만원)를 내야 한다고 밝힌 정씨는 “이렇게 비싼 돈을 내고도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너무 서비스가 좋지 않다”며 “올리버쌤 새아버지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그 이전에도 여러 번 증상을 보이셨고, 병원을 찾아가셨다. 무조건 주치의를 통해서만 검사를 받을 수 있었는데 의사가 검사를 피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아무리 정밀검사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고, 결국 말기가 돼서야 발견할 수 있는 이런 상황을 보고 마음이 아프고 가슴이 찢어질 것 같더라. 감정적인 게 먼저 왔고 이것이 나의 미래일 수도 있겠다는 이성적인 두려움이 저희에게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올리버쌤은 구독자 약 226만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올리버쌤’을 운영 중이다. 과거 한국에서 영어 강사로 활동하다 현재는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문화와 일상을 외국인 시선에서 풀어내는 콘텐츠로 인기를 얻었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과 솔직한 화법을 바탕으로 한·미 문화, 언어 차이, 결혼 생활, 육아 이야기를 현실감 있게 전하고 있다. 2016년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있다.
  • 조선의 중심에서 오늘의 서울까지… ‘종’소리 울리는 ‘길’[서울 로드]

    조선의 중심에서 오늘의 서울까지… ‘종’소리 울리는 ‘길’[서울 로드]

    조선 통금·해제 알리던 보신각종서울신문 균열 보도에 모금 운동1980년대 국민 힘 모아 다시 제작전차·가로등·주상복합·주택단지국내 최초의 기록이 즐비한 거리소설가 구보처럼 천천히 걸어볼까조선부터 구름처럼 사람 몰리던 곳고관대작 피하기 위해 ‘피맛길’ 생겨해방 후 예술가·민주화운동의 길로 종로는 서울의 자치구 중 유일하게 이름에 ‘길(路)’을 담고 있다. 종이 울리는 길이란 뜻이다. 조선 초기 도성을 여닫고 인정(人定·통행금지)과 파루(罷漏·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종을 매단 종루(보신각)가 있던 데서 유래했다. 요즘에는 한 해를 보내고 새해의 평안과 희망을 기원하며 찾는 보신각이, 조선 시대에는 일상을 통제하는 국가 시설이었다. 같은 공간이 시대에 따라 다른 의미와 기능을 품은 셈이다. 보신각은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쳤다. 지금의 종은 국민 성금으로 만들어졌다. 1984년 서울신문이 보신각종에 생긴 균열을 보도한 것이 계기가 됐다.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모금 운동이 이어졌고, 국민 손으로 다시 세웠다. 조선 시대에도 ‘종로’는 한양의 중심이었다. 광화문 남쪽으로 뻗은 세종대로는 관청이 늘어선 육조거리였고, 그와 직각으로 놓인 종로는 팔도의 물자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 ‘운종가(雲從街)’로 불렸다. 동대문(흥인지문)과 서대문(돈의문)을 잇는 이 거리에는 독점적 영업권이 있는 육의전(명주·종이·어물·모시·비단·무명)이 있었다. 이곳에선 때때로 탐관오리를 공개처형함으로써 국법의 엄중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광화문우체국 맞은편에 표지석으로 남아 있는 혜정교가 그 무대였다. 육조거리와 종로거리가 마주치는 곳인 동시에 죄인을 다스리는 우포도청 앞이어서 공개형을 치르기에는 최적이었다. 팽형(烹刑) 또는 부형(釜刑)으로 불렸는데, 끓는 가마솥에 죄인을 담그는 공개형이란 의미다. 다만, 삶는 흉내만 내 경각심을 주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권력의 서슬을 피하기 위한 작은 길도 있었다. 말[馬]을 피[避]하기 위해 만든 곳이란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고관대작을 피해 서민들이 이용하던 좁은 뒷길, ‘피맛골’이다. 해방 이후에는 문인과 언론인, 예술가의 집합소였고, 독재정권 때는 경찰을 피해 시위대가 숨어드는 해방구였다. 1974년 지하철 1호선 공사 때 일부가 사라진 뒤 종로1가 교보문고 뒤쪽에서 종로3가까지 사잇길이 남았다. 길 양쪽에 해장국과 생선구이, 빈대떡을 파는 식당과 술집이 즐비했다. 2009년 청진동 재개발로 피맛골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비판이 제기됐다. 이미 개발이 진행된 곳을 제외하고 종로2가에서 종로6가에 걸쳐 있는 피맛골을 수복재개발구역으로 지정해 예전 모습을 재현하기로 하고, 2012년 종로3가~종묘 구간에 대한 정비사업을 완료했다. ‘청진옥’ ‘서린낙지’ ‘한일관’ 같은 노포가 인근으로 옮겨져 명맥을 잇고 있다. 종로는 근대 문물이 가장 빨리 유입된 곳이기도 하다. 1899년 돈의문에서 종로를 거쳐 청량리에 이르는 최초의 노면전차가 개통됐다. 1900년 전차가 야간 운행을 시작하면서 정거장과 매표소를 밝힐 불이 필요했다. 최초의 전기 가로등 3개가 들어섰다. 덕분에 종로의 밤은 대낮처럼 밝고 활기찼다. 일제강점기 종로는 민족의 자존심을 건 격전지였다. 일본인이 명동과 충무로 등 남촌 일대 상권을 개발했다면, 청계천 북쪽 종로 상권엔 조선인이 많았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장군의 아들’과 드라마 ‘야인시대’로도 유명한 김두한의 주무대가 이 일대인 까닭이다. 김두한의 흔적이 남은 곳들도 근래까지 꽤 있었다. 김두한이 한때 기거했고, 한국기원 근처여서 지방에서 올라온 바둑기사들이 많이 묵었던 종로 YMCA 옆골목 ‘종로 용일여관’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1980~90년대에 안동식 장터국밥과 석쇠불고기를 파는 ‘시골집’으로도 유명했지만, 2020년 재개발로 사라졌다. 1930년대 종로2가에 있던 화신백화점(현 공평동 종로타워 자리)은 최첨단 문물을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1935년 화재 이후 지하 1층, 지상 6층의 현대식 건물로 재건됐다. 당시 경성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고,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일루미네이션이 설치된 핫플레이스였다. 창업자 박흥식은 조선총독부와 밀착해 조선 최고 갑부가 된 인물로, 훗날 해방정국에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의 제1호 검거자로 구속됐다. 1934년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주인공 구보는 전차에서 내려 이 길을 배회한다. “구보는 전차 선로를 두 번 횡단하여 화신상회 앞으로 간다. 그리고 저도 모를 사이에 그의 발은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기조차 하였다.” 구보와 모던보이가 거닐던 경성의 랜드마크 화신백화점은 1970년대까지 명맥을 이었지만, 1980년 부도에 이어 1987년 철거 수순을 밟았다. 화신백화점 자리에서 멀지 않은 북촌의 한옥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데몬헌터스’를 통해 세계적인 유명세를 탔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한국 최초 디벨로퍼’가 고민 끝에 남긴 흔적이다. 1920년대 ‘건축왕’ 정세권(1888~1965)은 북촌과 익선동 일대에 한옥 단지를 조성했다. 100평 규모의 사대부 한옥이 아니라, 서민도 살 수 있도록 10~40평대로 공급했다.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수도나 전기가 들어오도록 했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북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통왕’ 박흥식, ‘광산왕’ 최창학과 함께 1930년대 ‘경성 3대 왕’으로 불릴 만큼 부를 일궜지만, 삶의 궤적은 전혀 달랐다. 친일파로 이름을 남긴 다른 둘과 달리 정세권은 독립운동을 후원하고, 조선어학회에 사옥을 기증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고문을 당했고, 뚝섬에 있던 3만평 땅과 재산, 건설면허를 빼앗겼다. 그럼에도 지원을 이어갔고 1957년 ‘큰 사전’의 간행을 이끌어냈다. 훗날 고향의 단칸 농가에서 숨진 그가 남긴 것은 ‘큰 사전’과 쌀되, 밥공기, 수저 한 벌뿐이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다. 종로3·4가로 들어서면 개발독재 시대의 잔재가 눈에 띈다. 애초 이 일대는 2차세계대전 말기 미군 공습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소개(疏開) 공지대였다. 목조건물 밀집지대에 소이탄이 떨어질 경우 불이 옮겨붙는 것을 막기 위해 중간중간에 빈터를 마련한 것이다. 1960년대 종묘 앞 일대 ‘종삼(鍾三)’은 길이 1㎞, 넓이 5만㎡의 땅에 2200여 동의 무허가 판잣집과 대규모 사창가가 뒤섞인 슬럼가였다. 역대 서울시장 중 가장 굵은 족적을 남긴 ‘불도저’ 김현옥 시장은 1966년 판자촌을 쓸어버리고 1968년 ‘나비 작전’이란 이름으로 남은 사창가를 없앴다. 그 자리에 세워진 ‘세운상가’ 지구는 한국 최초이자 최대의 주상복합 건물군이다. 당대의 건축가이자 3공화국 핵심들과 교분이 남달랐던 김수근이 설계했다. 1㎞ 길이의 거리가 보행로가 될 수 있도록 입체화시켜 데크로 잇고, 1~4층에는 상가를, 5층 이상은 아파트를 두는 주상겸용 복합건물군을 배치하는 ‘큰 도시 속에 작은 도시들’ 콘셉트였다. 현대상가를 시작으로 세운상가, 청계상가, 대림상가, 삼풍상가, 풍전호텔, 신성상가, 진양상가 등 8개 대형건물이 이어진 형태다. 1960년대 후반 세운 지구는 서울의 핵심 상권인 동시에 저명인사들이 앞다퉈 입주하던 최고급 아파트였다. 하지만 영광은 짧았다. 1970년대 신세계, 미도파에 이어 롯데백화점까지 을지로 일대에 문을 열자 상권의 중심이 움직였다. 강남 한강변에 현대·한양 등 대형 고급아파트가 건립되자 재력가들의 주거도 움직였다. 끝으로 1970년대 김중업이 설계한 삼일빌딩을 비롯한 미학적 완성도가 높은 건물이 속속 들어서자 세운상가를 두고 ‘위압감을 주고 볼썽사납다’는 평가와 함께 서울의 녹지축을 단절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때 미래 서울의 상징으로 주목받던 세운 지구는 도심의 흉물로 쇠락했다. 지난한 논란을 겪고도 세운재정비촉진지구 4구역 개발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처럼 종로는 수백년 동안 레이어(겹쳐입기)를 하듯 새 옷을 입고 매무새를 고쳤지만, 어딘가에는 과거를 품고 있다. 왕조의 수도에서 격동의 근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종로는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길인 동시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연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 흉보고 다퉈도 밥은 챙기네 !…  징글징글하고 따스한 이웃들

    흉보고 다퉈도 밥은 챙기네 !…  징글징글하고 따스한 이웃들

    평균 연령 일흔여덟의 시골 마을‘레지’ 오해받는 서울서 온 두 찌니‘레즈’ 이해 못해도 품는 어르신들 ‘찌니들’은 혜진과 성진을 부르는 동네 애칭이다. 평균 연령 일흔여덟, 노쇠한 마을 어르신들이 편리하게 붙였다. 어느날 아침, 마을회관에 모인 노인들 앞에서 동네 실세를 자처하는 윤 선생이 어마어마한 폭로를 해버렸다. 사실 서울에서 내려온 그 두 찌니는 ‘레지’다! 촌로들에게 레지란 다방에서 차를 나르던 옛 직업이다. ‘찌니들이 방안퉁수라는 건 이 동네 개들도 다 아는디 레지는 먼 놈의 레지! …아따! 고런 레지가 아니란 말이네! 고런 레지가 아니먼 요런 레지도 있당가? 글먼 갸들은 먼 레진디? …고것들이 긍게, 즈그끼리 좋아한다, 그 말이여.’(23쪽) 정지아(61)의 신작 ‘찌니주의보’는 이렇게 오해 한 자락에서 비롯된 폭소로 문을 연다. 마을 사람들은 레지가 껄끄럽다. 스무 살도 안 된 레지에 한씨 부자가 얽혀 경찰 조사까지 받았다. 민망해진 한씨 큰아들이 밤도망을 쳤다. ‘그 레지’가 아닌 게 다행이긴 한데 이번 건은 또 다른 문제다. 여자끼리 한집에 살 수는 있어도 사랑할 수는 없다는 오랜 믿음 앞에서 찌니들은 쫓아내야 할 존재가 된다. 세상 눈초리를 피해 이 마을까지 흘러든 두 사람은 다시 빗장을 걸었다. 판을 흔드는 것은 이장의 베트남인 아내 쑤언이다. 스무 해 전 시집와 줄곧 이방인으로 살아온 그에게 찌니들의 처지는 남의 일일 수 없다. 쑤언은 한국 사람이 아니라서, 찌니들은 여자를 좋아해서 사람들의 냉랭한 시선을 받고 입방아에 오르내린다. 사람을 죽였느냐 도둑질을 했느냐고 쏘아붙이는 쑤언 앞에서 마을 여론은 갈피를 잃는다. 찌니들을 당황하게 하는 건 완고한 시선보다 노인들의 앞뒤 안 맞는 손길이다. 앓는 몸으로 남편 밥상부터 차려줘야 했던 한씨댁이 지긋지긋한 남편을 벗어나 찾은 곳은 찌니들 집이다. 그 와중에 찌니들 줄 김치통을 들고 왔다. “느그가 난 년들이다, 난 년들이여. 한 년이 아프먼 딴 년이 밥이라도 채릴 것 아니냐.”(225쪽) 찌니들은 이해를 받은 것인지, 기분이 오묘해진다. 반려닭을 유모차에 태운 도시 친구 기희가 나타났을 때도 그렇다. 닭이 하도 시끄러워 시골에 맡기려고 찾아온 것인데, 기겁한 찌니들과 달리 달구 할매가 오히려 포용한다. 물론 다달이 일종의 ‘보육료’를 줘야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 모질게 굴던 윤 선생이 살 곳마저 잃을 처지에 놓이자 사람들은 고개를 젓다가도 끝내 등을 돌리지는 못한다. 정지아는 1990년 빨치산이던 부모의 생애를 옮긴 ‘빨치산의 딸’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책은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고 작가는 오래도록 그 이름표를 떼어내려 애썼다. 2011년 홀로 남은 어머니를 모시려 고향인 전남광주 구례군으로 간 지 11년 후 다시 ‘전직 빨치산’인 아버지의 서사를 따라가며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내놨다. 이념 너머의 한 사람을 발견하게 했던 그 소설로부터 네 해가 지나 마을 전체를 무대로 편견 너머의 이웃을 조망한다. 작가는 자신을 “잔뜩 날 선 고슴도치”에 견주며 그 가시를 뭉툭하게 만든 것이 구례 노인들이라고 적었다. 좋고 싫음이 전통이거나 학습된 관념이라면 일상은 구체다. 몸을 써서 하루를 밀고 나가는 사람 앞에서 관념은 번번이 진다. 한해 농사를 헛걸음으로 만드는 태풍조차 원망 없이 받아들이는 이들이니, 외국인 며느리든 레즈비언이든 끝내 품고야 마는 것이다. “야! 달구 할매가 너네보다 더 깨어 있더라 얘. 청소만 잘하라던데? 이 닭 차별주의자들아.”(192쪽) 반려닭을 키우는 친구가 찌니들에게 한 말에서 작가의 심정이 투영되는 까닭이다. 소설은 편견이 말끔히 씻기는 화해를 향해 가지 않는다. 완전히 이해해야만 곁에 남는 것은 아니라고, 흉보고 다투면서도 아픈 사람 밥은 챙기는 시간이 어떤 대의보다 질기다고 소설은 말한다. 엉뚱한 상황과 구수한 남도 입말이 섞인 노인들의 오해에 피식 웃다가 끝내 사람이 그리워지는, 매콤하지만 따뜻한 시골 풍경이다.
  • 챗GPT로 ‘가족 살해 시나리오’ 구상해 실행에 옮긴 17세 美 소년 [월드픽]

    챗GPT로 ‘가족 살해 시나리오’ 구상해 실행에 옮긴 17세 美 소년 [월드픽]

    미국에서 17세 소년이 어머니와 남동생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다. 특히 범행 전 오랫동안 인공지능(AI) 챗봇을 통해 가족 살해 시나리오를 구상해 온 것으로 조사돼 AI 챗봇의 안전 문제가 다시금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챗GPT로 ‘가족 살해 시나리오’ 구상…母·동생 살해 뒤 도주CNN, 폭스뉴스 등 미국 현지 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일 오후 6시 37분쯤 매사추세츠주 액턴에서 “가족과 연락이 안 된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경찰이 신고자의 자택으로 출동해 진입한 결과 1층에서 둘째 아들 시다르트 아라빈드(14)가, 지하실에서는 아내 수다 벤카테산(45)이 숨진 채 발견됐다. 두 사람 모두 외상을 입은 명백한 흔적이 있었다. 검찰은 “집 안에서 격렬한 몸싸움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었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사인은 둔기에 의한 외상으로 추정된다. 맏아들 아르준 아라빈드(17)는 경찰 수색 당시 집 안에 없었다. 수다의 승용차가 없어진 것을 볼 때 아르준이 어머니의 차를 타고 도주한 것으로 추정됐다. 그리고 다음 날 오전 3시 40분쯤 액턴에서 차로 20분 거리인 웨일랜드의 한 주차장에서 경찰이 차에 있던 아르준을 발견해 체포했다. 웨일랜드 경찰은 당시 가족 살해 사건과 무관한 신고로 출동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사에 따르면 사건 당일 오전 아버지는 출근 전 아내와 마지막으로 연락했고, 그날 오후 과외 교사가 방문했다가 문이 잠겨 있고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후 아버지가 경찰에 신고했던 것이다. 액턴은 보스턴에서 북서쪽으로 약 32㎞ 떨어진 교외 부촌으로, 이들 가족은 최근 학군 등을 이유로 이곳으로 이사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3일 아르준에 적용된 살인 2건, 가족 폭행 2건 및 기타 혐의에 대한 무죄 주장 답변이 제출됐다. 액턴 지역을 관할하는 미들섹스 카운티 검찰의 매리언 라이언 검사장은 피의자 아르준에 대해 “최근 우려스러운 행동을 보여온 가운데 인터넷과 챗GPT를 이용해 가족 살해와 연관된 이론적 아이디어나 판타지 스토리를 검색한 기록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에 따르면 아르준은 챗GPT를 이용해 고딕 소설류의 이야기를 만드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챗GPT에 질문을 던지고 캐릭터를 만들면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나?’,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되지?’ 같은 식으로 물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가족이 살아남지 못하는 상황과 관련 있어 보인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었다. 가족들도 비슷한 우려를 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아르준은 지난 1년간 문제 행동을 보여 왔고, 가족들은 그의 문제 행동과 온라인 활동을 우려해 집 안의 부엌칼을 숨겨두고 있었다고 아버지가 진술했다. 법원 기록에는 아들이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아버지의 진술도 포함돼 있었다. 아르준의 변호인은 “아르준이 집을 나설 때 그는 두 사람이 사망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온전히 상황을 이해할 능력이 없는 상태”라고 주장하며 정신감정을 신청했다. 플로리다주, 오픈AI ‘범죄 조력 방조’ 주 차원 소송 이번 사건은 그동안 AI 기술이 범죄나 인명 피해에 영향을 끼쳤다는 의혹을 받는 여러 사건과 같은 선상에 놓였다. 앞서 플로리다주는 지난 6월 챗GPT 개발사 오픈AI와 대표 샘 올트먼을 상대로 주 차원의 첫 소송을 제기했다.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과 사우스플로리다대 유학생 살해 사건이 소송 계기가 됐다. 플로리다주립대 총기 난사 사건 범인은 범행 전 챗GPT에 산탄총 탄약의 살상력, 학교 총격범의 수감 현황, 학생회관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 등 범행 준비를 위한 질문을 던졌다. 검찰은 챗GPT가 무기 선택과 효과에 대해 “상당한 조언”을 제공했다고 판단했다. 사우스플로리다대 유학생 살인 사건 범인은 범행 전 “사람을 검은 쓰레기봉투에 넣으면 어떻게 되나” 등의 질문을 했고, 범행 후에는 “저격 총탄을 맞고 생존한 사람이 있나”, “이웃이 총소리를 들을 수 있나” 등의 질문을 했다. 플로리다주는 챗GPT가 부모 감독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고, 미성년자를 중독시켰으며, 이용자의 비판적 사고 능력을 상실케 하고, 총기 난사범을 돕고 자살을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오픈AI는 그동안 “미성년자에게 상당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업계 최고 수준의 보호 장치와 정책을 마련해 두었다”라고 밝혀 왔다. 다만 아르준 아라빈드 사건과 관련해서는 아직 별도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범행 위험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가 소송반대로 최근에는 범행 계획을 챗GPT에 털어놓은 남성이 오픈AI의 신고로 덜미가 잡히기도 했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대런 저우(25)는 지난 3월 챗GPT에 헤어진 여자친구를 살해하겠다는 계획을 상세히 털어놨다가 최근 체포됐다. 그는 챗GPT에 “이달 말까지 그 여자를 죽일 것”이라며 “내가 가질 수 없다면 아무도 가질 수 없다” 등의 대화를 나눴다. 또 전 여자친구의 취미, 자주 찾는 장소를 기록했고, 다른 남성에 대한 질투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전 여자친구가 다니는 체육시설 주차장에서 꽃을 들고 기다리다가 거절당하면 총으로 살해하고 목숨을 끊겠다’고 챗GPT에 언급하는 등 단순 감정 표출을 넘어 구체적인 범행 계획을 세우는 수준이었다고 수사 당국은 설명했다. 소총과 권총, 산탄총 등을 구매하고 그 사진을 전 여자친구에게 보냈다고 챗GPT에 과시하기도 했다. 오픈AI는 저우의 챗GPT 대화 패턴에서 위험성을 감지하고 대화 내역을 연방수사국(FBI)에 신고했다. 저우는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했으나 감형 합의를 통해 판결이 유예되고 보호관찰 8년과 전자발찌 2년 착용 처분을 받았다. 오픈AI가 범행 전 위험을 감지하고도 이를 방치했다는 의혹을 받고 소송을 당한 것은 플로리다주 사례만이 아니다. 지난 2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북동부 탄광 마을 텀블러리지에서 벌어진 가족 및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제시 밴 루트셀라(18)의 경우 범행 8개월 전인 2025년 6월 오픈AI는 밴 루트셀라의 챗GPT 계정을 정지했다. 그가 총기 범행 시나리오와 연관된 질문을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오픈AI 직원 12명은 회사 측에 경찰 신고를 요구했으나 경영진은 신고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밴 루트셀라의 활동이 ‘범행으로 곧바로 이어질 만큼 신빙성이 있는 위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었다. 이 사건은 오픈AI 측이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플로리다주 사례에서 더 나아간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에 지난 4월 피해자 유족은 오픈AI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샘 올트먼은 “계정 정지와 관련해 수사기관에 알리지 않은 데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공개 사과했다.
  • “애는 또 낳으면 돼”…물에 빠진 아들 두고 혼자 나온 母 ‘충격’

    “애는 또 낳으면 돼”…물에 빠진 아들 두고 혼자 나온 母 ‘충격’

    물에 빠진 아들을 두고 홀로 빠져나온 엄마의 사연이 전해져 충격을 안겼다. 지난 18일 방송된 tvN ‘이호선 상담소’에는 엄마와의 관계를 끊고 싶다는 아들의 사연이 공개됐다. 이날 아들은 “엄마와의 관계 자체가 부담스럽다.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지 고민”이라고 털어놨다. 아들은 학창 시절 학교 폭력을 당했지만 엄마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도 혼자 삭혔다. 이제는 기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가 엄마에게 의지하지 못했던 이유도 공개됐다. 과거 물에 빠진 아들을 두고 엄마가 먼저 물 밖으로 나왔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이 아이를 구하다가 나도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기 위해 나왔다. 다행히 아이가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아이가 커서 대화하는 중에 장난스럽게 아이에게 ‘애는 또 낳으면 되지’라고 말했다. 솔직하게 내 마음을 말했다”고 덧붙였다. 엄마의 솔직한 발언에 스튜디오에서는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이호선 상담가는 “솔직함에서 비롯된 이야기가 아들에게 상처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개된 아들의 인성검사 결과에 대해서는 “반사회성 점수가 높게 나왔다. 자율성은 19점밖에 안 된다”며 “혼자 소진되고 지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호선 상담가는 아들의 현재 상태를 고려해 “3년간 엄마와 연락을 끊으라”고 조언했다.
  • “10년 넘게 이어진 끔찍한 성폭행 죗값 치른다”…가해자는 오빠, 피해자는 여동생 5명 [여기는 남미]

    “10년 넘게 이어진 끔찍한 성폭행 죗값 치른다”…가해자는 오빠, 피해자는 여동생 5명 [여기는 남미]

    친여동생 5명을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인면수심 20대 아르헨티나 남자가 체포돼 사회가 경악하고 있다. 특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된 남매의 친모는 성폭행을 묵인한 것으로 알려져 사회의 공분이 커지고 있다. 남미 언론은 18일(현지 시간) 경찰이 아르헨티나 중서부 멘도사에 거주하는 29세 청년을 상습적 성폭행 혐의로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일찌감치 끔찍한 사건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지만 아들 편을 들면서 딸들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강요해 온 친모도 공범 혐의로 수갑을 찼다. 보도에 따르면 체포된 남자는 6남매의 장남으로 남자 밑으론 25살, 24살, 19살 그리고 각각 15살 된 여동생 다섯이 있다. 여동생을 대상으로 한 남자의 성폭행은 장녀가 13살일 때 시작됐다고 한다. 이어 다른 여동생들도 차례로 남자의 성폭행 피해를 당했다. 피해자들은 오빠의 성폭행이 반복되는 일상이었다고 진술했다. 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장녀는 모친에게 사건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폭력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오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엄마에게 털어놓고 도와달라고 했지만 엄마가 곧 이를 오빠에게 말해버렸다”면서 엄마에게 말을 했다는 이유로 오빠로부터 엄청난 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둘째와 셋째 여동생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은 “엄마에게 알렸지만 발설하지 말라는 협박뿐이었다”고 했다. 셋째는 “엄마가 수면제를 주고 먹으라고 한 적도 있다”면서 “수면제를 먹고 자면 누군가 옷을 모두 벗겨 알몸이 되곤 했다”는 말도 했다. 오빠의 성폭행이 계속되자 지난 2018년엔 다섯 자매가 정원에 은신처를 만들고 노숙을 하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오빠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곁에 있었더라면 딸들을 지켜줬을지 모르지만 아버지는 누명을 쓰고 집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걸핏하면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른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쫓아낸 건 바로 친모였다. 자매들은 “아버지가 집에서 폭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면서 “모든 게 아버지를 쫓아내기 위한 엄마의 거짓말이었다”고 말했다. 다섯 자매에게 악몽과도 같았던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건 뒤늦게 용기를 낸 장녀가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 덕이었다. 아직 미성년자인 쌍둥이 막내 2명을 제외한 다른 동생 2명을 비밀리에 불러 조사한 경찰은 범행을 확인하고 가해자인 오빠와 엄마를 동시에 체포했다. 경찰은 “막내인 두 쌍둥이가 미성년자이어서 정신적 고통이 클 것 같아 아직 조사를 하지 않을 것일 뿐 세 언니의 진술을 보면 쌍둥이도 오빠의 성폭행 피해자”라고 밝혔다. 한편 사건이 보도되자 인터넷에는 공분의 글이 쇄도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여동생 다섯 명이 모두 성폭행 피해자라니 끔찍하다. 엄중한 죗값을 치르게 하자” “아들을 감싸면서 묵인하고 방조한 엄마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딸들을 자식으로 여기지 않은 것인가” 등 분노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친모와 오빠 두 사람에겐 최장 징역 50년이 선고될 수 있다.
  • 구조된 10살 앞에서…트럼프 “나라면 안 구했을 것” [핫이슈]

    구조된 10살 앞에서…트럼프 “나라면 안 구했을 것” [핫이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거센 파도에 휩쓸린 10세 소년을 구한 16세 인명구조원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영웅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자신이라면 같은 행동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농담해 눈길을 끌었다. 18일(현지시간) AP통신과 미 매체 피플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백악관 집무실에서 캘리포니아주립공원 소속 인명구조원 라이더 윌리엄스(16)와 그가 구조한 너새니얼 라이(10)를 만났다. 두 사람의 가족과 구조를 도운 다른 인명구조원 애런 보넌도 자리를 함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윌리엄스를 “진정한 영웅”이라고 부르며 구조 당시 침착하게 대응한 점을 여러 차례 칭찬했다. 라이에게는 “신이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다 트럼프 대통령은 라이에게 “내가 그랬을지는 모르겠다. 아마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그날 내가 근무 중이 아니어서 네가 다행”이라는 취지로 농담을 건넸다. 윌리엄스는 위험한 순간 어떻게 행동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훈련 덕분이라고 답했다. 그는 “위험한 순간에는 항상 훈련받은 대로 행동하려 한다”며 당시에는 최대한 빨리 소년을 물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 데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3m 파도 속 뛰어든 16세…의식 잃은 소년 붙잡아 사고는 지난달 25일 캘리포니아주 샌타크루즈의 시브라이트 주립해변에서 발생했다. 당시 라이는 발목 정도 깊이의 얕은 물에 서 있다가 갑자기 밀려온 강한 파도에 휩쓸렸다. 약 18m 떨어진 구조대에서 이를 목격한 윌리엄스는 즉시 무전으로 상황을 알린 뒤 바다로 뛰어들었다. 라이는 해안에서 약 13.7m 떨어진 곳까지 떠밀려간 상태였다. 당시 파도 높이는 약 2.4~3m에 달했다. 윌리엄스가 소년에게 접근했을 때 라이는 이미 몸에 힘이 빠지고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거센 파도 때문에 구조용 튜브를 제대로 사용할 수도 없었다. 윌리엄스는 라이를 붙잡은 채 연이어 밀려오는 파도를 버텼고, 두 사람은 한때 물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도 했다. 이후 동료 인명구조원 보넌이 바다로 들어가 구조를 도왔다. 라이는 육지로 옮겨져 응급 처치를 받은 뒤 가족에게 돌아갔으며 심각한 부상은 입지 않았다. 구조 장면을 담은 영상은 온라인에서 수백만 회 조회되며 화제가 됐다. 라이는 이후 인터뷰에서 당시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아버지 수미트 라이는 아들을 구한 윌리엄스에게 “그가 한 일은 결코 갚을 수 없다”며 감사를 표했다. 영상 본 트럼프가 직접 초청…“진정한 영웅” 트럼프 대통령도 구조 영상을 접한 뒤 윌리엄스의 행동에 주목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영상을 공유하며 윌리엄스와 가족, 구조된 소년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높은 수준의 민간 영예를 주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처음 영상을 봤을 때 다시 돌려보라고 했다”며 “눈앞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놀랍다. 여러 구조 장면을 봤지만 이와 같은 것은 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윌리엄스는 앞으로 응급구조사 교육을 받고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뜻도 밝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앞으로 “좋은 추천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화답한 뒤 일행에게 백악관 링컨 침실을 둘러보도록 권했다.
  • 어린 형제 반복 성폭행한 유부남 “발기부전이라 불가능” 주장했지만… 징역 27년·태형 24대 [월드픽]

    어린 형제 반복 성폭행한 유부남 “발기부전이라 불가능” 주장했지만… 징역 27년·태형 24대 [월드픽]

    싱가포르 남성, 모스크서 알게 된 형제에친해진 후 “아빠·아들” 하더니 상습 범행 외할머니와 함께 사는 어린 형제와 친해진 뒤 반복적으로 성폭행·성추행을 일삼은 무슬림 남성이 싱가포르 법원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17일(현지시간) 스트레이츠타임스는 이날 싱가포르 고등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강간 3건과 성추행 2건에 대한 유죄를 인정한 A(37)씨에게 징역 27년 10개월과 태형 24대가 선고됐다고 전했다. A씨는 11~12세 정도인 B군과 6~8세 사이로 알려진 C군 형제에 대한 범행 외에도 17세 소년 등 다른 3명의 피해자에 대한 성추행 사실도 시인했다. A씨는 2022년 4월 싱가포르의 한 모스크에서 B군과 알게 됐다. A씨는 틱톡 계정에 종교에 관한 짧은 영상들을 올리는 인플루언서로 활동해왔는데 B군이 그를 알아보면서 두 사람은 점차 친해졌다. B군과 C군 형제는 외할머니와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혼 후 연락을 끊었고 어머니는 3년간 약물재활센터에 입원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A씨는 B군과 축구를 하고 자신의 집에 데려가면서 친해졌고, B군의 집도 방문했다. B군은 할머니에게 A씨를 유명 인플루언서로 소개했다. 할머니는 A씨의 틱톡 영상 내용이 종교적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심했으며, 그가 자신의 아들들과 어린 시절 친구 사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A씨는 C군과도 친해져 모스크에 데려가 함께 기도하고, 하굣길을 챙겨주기도 했으며 외식을 하러 나가기도 했다. 이처럼 어린 형제와 가까워지던 A씨는 형제의 외할머니에게 두 소년의 아버지 같은 존재 겸 종교적 멘토가 돼주고 싶다고 했다. 이후 형제는 A씨를 “아빠”라고, A씨는 형제를 “아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유부남이었지만 자녀는 없던 A씨는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하던 아내에게 두 ‘아들’을 돌볼 책임을 맡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A씨는 C군에게 장난감 총을 사주겠다고 약속한 뒤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했다. 그는 C군에게 “재미로 놀았던 것”이라며, 만약 이 일을 누구에게라도 말하면 그것은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며 아빠는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C군은 A씨의 협박에 두려워 이 일을 비밀로 하기로 동의했다. 이후 A씨의 성폭행은 지속됐다. 모스크에 함께 갔을 때 화장실로 데려가 성폭행하는가 하면 자신의 어머니 집으로 데려가 어린 시절 자신의 방에서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A씨의 범행은 B군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2024년 초 B군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옷 위로 사타구니를 만진 뒤 이 일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지속되던 A씨의 범행은 약물재활센터에서 나온 형제의 어머니가 C군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발각됐다. C군은 A씨가 행한 성적 행위를 전하면서 그게 잘못된 것인지 어머니께 물었다. 이후 B군도 A씨가 자신을 만진 일을 털어놨다. A씨는 처음에는 자신이 발기부전을 앓고 있어 성폭행은 할 수 없다고 발뺌했다. 그러나 형제 어머니의 계속된 추궁에 결국 말을 바꿔 초자연적인 영혼의 조종을 받아서 그런 짓을 저질렀다고 변명했다. 어머니의 신고로 A씨는 현지 경찰에 체포됐지만, 이후 형제는 더 큰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성범죄 피해 사실이 모스크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형제는 자살 충동에 시달리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A씨의 범죄에 대해 “극도로 혐오스럽고 흉악하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이슬람종교위원회(MUIS)는 성명을 내고 “모스크 내에서 발생한 청소년 대상 성범죄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모스크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A씨는 모스크 직원이나 인증받은 아사티자(말레이어권 이슬람교 선생님)가 아니다”며 “자신을 종교인으로 소개하는 사람을 자격을 갖춘 종교 교사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 한국은 ‘매각’…베이징 ‘파이브 가이즈’는 2시간 대기줄

    한국은 ‘매각’…베이징 ‘파이브 가이즈’는 2시간 대기줄

    중국의 내수 경기 침체에도 간편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미국산 패스트푸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지난 3일 햄버거 체인 ‘파이브 가이즈’가 베이징 차오양구와 시단구에 두 개의 매장을 처음 동시에 열자 두 시간을 기다려서야 겨우 주문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파이브 가이즈는 지난 2021년 중국 상하이에 첫 매장을 냈으며, 이달 안에 베이징에서 세번째 매장을 열 예정이다. 햄버거 브랜드뿐 아니라 피자헛이 반년 만에 200개 이상 매장을 내고, 올해 말에는 기존 피자헛 식당과 버거를 함께 파는 형식의 매장을 500~600개로 확대한다. 훠궈로 유명한 하이디라오도 중국에서 맥도날드, KFC, 버거킹이 지배하는 햄버거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이디라오는 홍콩에서 피자·파스타·프라이드치킨을 판매하는 체인점인 ‘환셴바오( 欢鲜堡)’를 열었다. 하이디라오가 햄버거 시장에 뛰어든 까닭은 훠궈는 한끼 식사에 100위안(약 2만원) 이상이 드는 ‘특별한 외식’으로 경기 둔화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반면 햄버거는 저가의 간편식을 선호하는 경향 덕분에 배달 시장에서 성장률이 100%를 넘을 정도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7일(현지시간) 중국에서도 대가족이 줄고 1인 가구가 증가한 데다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소비를 억제하는 경향에 따라 패스트푸드 인기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서 지난 5월 웬디스가 중국 진출을 선언하면서 앞으로 10년 동안 최대 1000개의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을 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아이미디어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의 서구 패스트푸드 시장은 2025년 기준 4996억 위안(약 104조원) 규모에 이르렀으며, 2027년에는 5870억 위안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패스트푸드 가운데 중국 소비자의 선호도 1위는 햄버거가 차지했다. 특히 배달음식을 많이 이용하는 중국인들에게 햄버거는 매력적인 선택사항으로 중국인의 43%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배달 주문을 하는 반면 전 세계 평균은 23%다. 류타오(48)는 통신에 “일요일마다 11살 난 아들을 맥도날드에 데려가서 수학과 영어 수업 사이에 햄버거를 사준다”면서 “아들은 영어 수업을 들으러 가는 차 안에서 햄버거를 먹는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파이브가이즈는 냉동고없이 직접 조리한 식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으며 매일 즉석에서 튀기는 감자의 원산지를 공개해 신선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상하이 매장에서 더블 치즈 버거가 70위안(약 1만 5000원)에 판매되는 등 가격이 비싸다는 평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난달 학원이 밀집한 대치동 한복판에 파이브가이즈 10호점이 열었으나 2023년 처음 강남 매장이 생겼을 때만큼 장시간 대기 줄이 형성되지는 않았다. 한국 운영사인 에프지코리아의 모회사 한화갤러리아는 파이브가이즈 지분 매각을 두고 1년째 협상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 사유는 흑자 전환에 성공한 파이브가이즈의 지분을 넘겨 현금을 확보하려는 것으로 관측된다.
  • 중증 자폐 아들 두고 떠나는 시한부 아빠의 ‘마지막 소원’

    중증 자폐 아들 두고 떠나는 시한부 아빠의 ‘마지막 소원’

    말기 간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고 홀로 남을 장애 아들의 거처부터 걱정하는 아버지가 있다. 27년간 중증 자폐 아들을 홀로 키운 전경철 작가다. 전경철 작가는 아들이 살아갈 곳을 찾아 전국 시설 1000곳 가까이 문을 두드렸다. 어렵게 아들의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의 바람은 이제 또 다른 중증 발달장애인과 가족들을 위한 ‘네버랜드’를 만드는 것으로 향하고 있다. 12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는 중증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 제원씨를 홀로 키워 온 전 작가가 출연했다. 제원씨는 올해 27세지만 발달 연령은 두 살 정도에 머물러 있다. 전 작가는 영원히 아이로 남아 있는 아들을 동화 속 인물에 빗대 ‘피터팬’이라고 불러 왔다. 아들을 돌보는 삶은 녹록지 않았다. 제원씨의 몸무게가 한때 160㎏까지 늘면서 먹는 것을 조절하기 위해 냉장고에 쇠사슬과 자물쇠까지 채워야 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도 견뎌야 했다. 그러던 중 전 작가에게 말기 간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내려졌다. 치료하지 않으면 남은 시간이 6개월가량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그의 첫 번째 걱정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었다. 자신이 떠난 뒤 아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갈지였다. 전 작가는 처음에는 치료마저 거부했다. 남은 6개월을 아들이 살아갈 곳을 찾는 데 쓰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1년 넘게 전국의 시설 약 1000곳에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중증 자폐성 장애인을 돌보는 데 많은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시간은 흘렀지만 아들이 지낼 곳은 찾지 못했다. 결국 전 작가는 의사에게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 치료도 할 테니 6개월만 더 살게 해 달라”고 부탁하며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혼자 감당해 온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지난 3월 MBC ‘실화탐사대’를 통해 부자의 사연이 알려진 뒤 시민들의 응원과 후원이 이어졌다. 전 작가가 브런치에 연재한 회고록 ‘안녕, 피터팬’에도 수많은 응원과 후원금이 모였다. 이후 같은 제목으로 출간된 책도 독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토록 찾아 헤맸던 아들의 거처도 마침내 마련됐다. 제원씨는 현재 24시간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시설에서 지내며 아버지와 떨어진 생활에 적응하고 있다. ‘유퀴즈’ 방송 이후에도 전 작가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후원의 손길이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전 작가의 바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뿐 아니라 중증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의 앞날을 걱정하며 세상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이름은 ‘네버랜드’다. 책 인세와 후원금 등을 종잣돈 삼아 사회복지법인 ‘피터팬재단’ 설립도 추진하고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중증 발달장애인이 돌봄을 받으며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전 작가는 오는 14일 자신을 응원하고 도운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는 자리도 마련한다. 그는 이 자리를 자신의 ‘생전 장례식’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직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자신의 목소리로 말할 수 있을 때, 자신을 도운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감사와 작별을 전하겠다는 뜻이다. 이 자리에서 피터팬재단 설립과 ‘네버랜드’ 구상도 공식적으로 알릴 예정이다. 전 작가가 남은 시간 동안 이루고 싶은 것은 자신이 겪었던 막막함을 다른 부모들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이다. 그는 ‘유퀴즈’에서 “저와 제 아들만큼, 그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많다”며 “저처럼 힘들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200년 버틴 슈베르트 선율… 시적 몸짓일까 인간의 욕망일까

    200년 버틴 슈베르트 선율… 시적 몸짓일까 인간의 욕망일까

    슈푹 ‘일곱 번째 파랑’… 아시아 초연음악, 부분만 흐르면서 춤과 조화“한국 무용수, 배움 목마른 듯 질문”에크만 ‘선인장’… 위계적 평가 풍자속도감·진지함 속 인간 과시욕 직시“의미 찾는 자신 발견하고 웃게 돼” 올해는 프란츠 슈베르트(1797~1828)의 현악4중주 14번 ‘죽음과 소녀’를 초연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창단 2년이 된 서울시발레단은 200년을 버틴 선율에서 갈라져 나온 두 세계를 한 무대에 올린다. 오는 14~16일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선보이는 더블 빌(한 주제로 두 작품을 묶은 공연) ‘죽음과 소녀’에서 크리스티안 슈푹(왼쪽)의 ‘일곱 번째 파랑’(Das siebte Blau·2000년 초연)과 알렉산더 에크만(오른쪽)의 ‘선인장’(Cacti·2010년 초연)을 나란히 놓았다. 독일 베를린 슈타츠발레단을 이끄는 슈푹은 ‘죽음과 소녀’를 처음 들었던 기억을 먼저 떠올렸다. 여덟 살 무렵 여름방학에 우연히 들은 음악이 살아가는 내내 자신에게 되돌아왔다고 했다. 최근 서울 용산구에서 기자들과 만난 슈푹은 음악에 대해 “죽음에 두렵다는 느낌보다 아름답다는 감각을 주는 시적인 작품”이라면서 “음악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춤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것이 음악에 대한 존중을 드러내는 원칙이었다”고 소개했다. 음악이 전곡이 아니라 장면에 따라 부분만 흐르면서 “음악과 안무가 서로 대화하는 구성”을 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우울”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삶의 밝은 부분을 보여주는 부분을 지나 마지막 순간은 재미있게 표현하고자 했다”며, “누구나 각자의 시간과 삶이 있고 그 안에서 감동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고 부연했다. ‘일곱 번째 파랑’이라는 제목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나왔다. 무용수가 몇 명이냐(일곱 쌍), 좋아하는 색이 무엇이냐(파랑)는 물음이 그대로 남았다. 26년간 여러 발레단을 거치면서 정확한 재현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안무는 “박물관의 박제처럼 다루는 것”도, “정해진 답”도 아니라 “새로운 답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무용수들에 대해 “그냥 받아들이지 않고 질문하며, 배움에 목말라 있더라”면서 “내 춤을 추는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화답할지, 무엇을 바꾸고 수용할지 기대된다”고 했다. 이번 공연은 아시아 초연이다. 에크만의 ‘선인장’은 예술을 규정하려는 태도를 겨눈다. 서면으로 만난 에크만은 “당시 소수의 평론가가 하룻밤 사이에 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 상처받은 취약함에서 출발했지만 나 자신을 포함한 시스템 전체를 웃어넘기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사람들이 의견을 갖는 건 당연하다”고 전제한 뒤 “예술적 경험처럼 본질적으로 불안정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것까지 전문성을 내세우면서 위계를 만들고 확신을 과시하는 인간의 욕구를 직시했다”고 했다. 이어 16년이 지난 지금 그 권위는 사라진 게 아니라 흩어졌다고 진단하면서 “누구나 즉각 반응을 올리지만 무엇이 보일지는 알고리즘이 정한다. 때로는 알고리즘이 가장 강력한 비평가”라고 말했다. 무대 위 선인장에 대해서는 해석을 사양했다. 작품의 의도대로 선인장의 의미를 찾으려는 태도는 “함정이라기보다 거울”이라며 “공식적인 의미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웃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철저한 진지함 속에 유머”를 두고, 공연은 “빠른 속도감과 강한 리듬”으로 무장하는 게 그의 작업 방식이다. 스마트폰에 매몰된 현대인을 풍자한 ‘해머’(지난해 11월), 집단적 최면과 광기를 그린 ‘한여름 밤의 꿈’(6월)으로 국내 관객에게 보여준 그의 작품 철학은 이번에도 이어진다. ‘일곱 번째 파랑’에는 강효정 드레스덴 젬퍼오퍼발레단 수석무용수와 임수정 취리히발레단 솔리스트가 무대에 오른다. ‘선인장’에는 이상은 잉글리시 내셔널 발레 리드 수석과 리앙 시후아이 서울시발레단 발레마스터가 함께한다. 이번에는 콰르텟21과 엘랑콰르텟이 ‘죽음과 소녀’를 연주한다.
  • “펑펑 소리 나더니 불길 번져”…가양동 아파트 15층서 불나 장애 앓던 어머니와 아들 숨져

    “펑펑 소리 나더니 불길 번져”…가양동 아파트 15층서 불나 장애 앓던 어머니와 아들 숨져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불이 나 2명이 숨지고 1명이 다쳤다. 사망자들은 61세 뇌병변 장애인 여성과 38세 남성으로 모자 관계로 파악됐다. 11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55분쯤 가양동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불이 났다. 소방당국은 신고 접수 약 24분 만인 오후 5시 19분쯤 큰 불길을 잡았으며, 오후 6시 8분쯤 완전히 불을 껐다. 불이 난 세대에 살던 여성과 남성은 아파트 화단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들은 불길을 피하는 과정에서 아파트 화단으로 추락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불이 난 세대 옆집에 살던 60대 여성도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5년째 이 아파트에 살며 불이 난 세대의 가족을 잘 안다는 노모(69)씨는 “뇌병변 장애가 있는 아내와 휠체어를 타는 남편, 성인 아들까지 세 가족이 살았다”고 말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주민 윤정중(65)씨는 “오후 5시쯤 불길이 확 번지며 가스가 터지는 것처럼 ‘펑’ 하는 소리가 두 차례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은 사고 전 담배를 피우러 밖에 나와 있어 화를 피한 것으로 들었다”며 “같은 주민으로서 인명 피해가 발생해 마음이 참담하다”고 했다. 아파트 인근에서 수리 업체를 운영하는 최순희(63)씨는 “멀리서도 자욱한 연기와 붉은 불길이 보여 달려왔다”며 “바람이 불어 불이 더 번질까 무서웠고, 불타는 모습을 보며 우는 주민도 있었다”고 말했다. 불이 난 가양4단지는 1992년에 준공된 영구임대 아파트로, 총 12동 1998세대 규모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아 화재 대응에 취약한 단지로 꼽힌다. 이 아파트에서 불이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아파트의 동대표 중 한명인 이모씨는 “4∼5년 전 (불이난 아파트와) 같은 동의 저층 세대에서도 화재가 발생해 고령의 남성이 숨졌다”며 “당시 바로 아래층에 살았는데 물과 잔해가 집 안으로 흘러내려 큰 피해를 겪었다”고 말했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현장 감식 등을 통해 정확한 화재 원인과 사망자의 추락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에 “사실 무근”…과거 강동원·이지아 대응 어땠나 [스타이슈ON]

    하영, 증조부 ‘친일 논란’에 “사실 무근”…과거 강동원·이지아 대응 어땠나 [스타이슈ON]

    배우 하영이 증조부의 ‘친일 행각’ 의혹으로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연예계 스타들의 과거 논란과 각기 다른 대처 방식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하영은 최근 여러 방송을 통해 의사 집안 내력을 자랑으로 내세운 바 있다. 그는 자신의 증조할아버지가 과거 일본 유학을 거쳐 한양에 최초로 서양식 병원을 개원했으며, 고종 황제를 직접 진료했다고 밝혀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후 하영의 증조부가 안상호라는 구체적인 인물로 지목되며 일제강점기 당시 친일 행적 의혹이 있다는 주장이 확산됐다. 기록에 따르면 안상호는 1898년 일본 도쿄자혜의원의학교에 입학해 1902년 의술 개업 시험에 합격한 뒤 귀국했으며, 1919년 고종이 뇌출혈로 쓰러졌을 당시 일본인 의사와 함께 진료에 참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실린 “조선 옷은 한 번도 입지 아니하고 음식도 매운 것은 조금도 못 먹는다”, “자녀들이 집에서 일본어만 사용한다. 조선말은 전혀 하지 못한다. 완전한 일본인 가정으로 키우고 있다” 등의 발언이 친일적 행보를 보인 근거로 제시됐다. 이와 같은 논란이 확산되자 하영 측은 증조부의 친일 논란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다. 연예계에서 스타들의 조상 및 가족의 친일 행각 의혹이 터져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강동원은 과거 영화 홍보를 앞두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외증조부가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홍역을 치렀다. 과거 강동원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외증조부 이종만을 대동기업 회장이자 금광을 운영했던 예술가로 언급한 것이 화근이 됐다. 이종만은 일제강점기 당시 금광과 광산, 교육 등의 분야에서 사업을 벌이며 부를 축적한 친일파로 지목된 인물이었다. 당시 논란이 장기화되자 강동원은 공식 입장을 통해 “어린 시절부터 저는 외증조부의 미담을 들으며 자라왔다. 외할머니가 독립유공자의 자손이셨기 때문에 외증조부에 대한 미담을 자연스레 받아들여왔고, 2007년 인터뷰를 한 시점에는 그 분의 잘못된 행동들을 정확하게 인지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일이 혼란스러웠고 충격도 컸다. 더욱이 가족사와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문제를 정확히 파악해야 했고, 또 관련된 자료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미숙한 대응과 관련해 관련자 분들께 사과드린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지아 역시 조부의 친일 행각이 세상에 알려지며 큰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이지아의 조부는 김순홍으로, 그는 일제강점기 대지주로서 일제에 국방금품을 헌납했다는 의혹과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 김구 선생이 작성한 친일파 숙청 목록 1순위에 오른 인물이다. 이와 더불어 친일인명사전에 친일 반민족 행위자로 등재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파장을 일으켰다. 또 김순홍의 아들 측이 형제들과 토지 환매 과정을 둘러싸고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까지 전해지며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이에 이지아는 직접 작성한 장문의 입장문을 통해 “내가 두 살이 되던 해 조부께서 돌아가셔서 조부에 대한 기억이 없으며, 친일 행위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하고 자랐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2011년 기사를 통해 처음 해당 사실을 접한 후 정확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민족문제연구소를 여러 차례 방문하는 등 관련 자료를 확인하고 공부했다”며 “그 과정에서 조부의 헌납 기록을 확인하게 됐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더라도 이러한 행위는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이번 논란의 중심인 안양 소재의 땅이 일제강점기 동안 취득된 재산이라면 반드시 국가에 환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소신을 밝히며 대중의 비난을 잠재웠다.
  • 1년 선거주 조건은 유지… 1주택 비거주 예외 확대

    1년 선거주 조건은 유지… 1주택 비거주 예외 확대

    투기·실거주 사이 ‘비거주 1주택’ 겨눴다 유탄… ‘예외’ 늘려 달래나 그간 ‘다주택자’를 겨눴던 부동산 세제가 ‘비거주 1주택자’로 방향을 틀면서 부동산 시장과 정치권이 거센 후폭풍에 휩싸였다. 실수요와 투자의 경계에 있는 이들에게 “세를 놓고 딴 데 살면서 차익을 얻으려 하지 말고 직접 들어와 살아라”라는 메시지가 전달된 것이 반발을 키웠다. 정부는 보완에 나설 방침이지만, 자칫 ‘갭투자’의 길을 열어 줄 수도 있어 더는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거주 1주택자와 정부 간 ‘세제 힘겨루기’가 본격화한 것이다. 법제처 국민참여입법센터에 접수된 종합부동산세 개정안과 소득세법 개정안과 관련한 입법 의견이 10일 총 5000여건을 돌파했다. 재정경제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쇄도한 것이다. 배모(76)씨는 “손자가 두 명 태어났는데 양육을 도와달라는 아들과 며느리의 요청을 받고 서울에서 경기 용인으로 이사했다”며 “손주를 돌보느라 합가했는데 보유한 집이 실거주가 아니라고 세금을 많이 내라는 건 억울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세제개편안에서 제시한 비거주 예외 조건 중에는 ‘부모 봉양’은 포함됐지만 ‘자녀 돌봄’은 빠져 있다. 부모 봉양 이외에 비거주해도 거주한 것으로 인정하는 ‘부득이한 사유’로는 취학·직장 변경·질병·전학·해외 체류 등이 있다. 하지만 예외 요건이 폭넓지 않고 ‘최장 3년’에 그치면서 불만이 확산했다. 1주택자들이 ‘비거주’가 된 사연은 다양했다. 기존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전출이 잦은 군인의 관사 거주, 이혼이 미확정인 상태로 별거 중인 부부 등 예외 인정 여부가 불확실한 사례도 넘쳐났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전셋집을 구한 1주택자는 “자녀가 교육 여건이 좋은 곳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이사했다고 세금을 많이 물리는 건 거주 이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거주 1주택자들이 세제개편안에 분노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로 압축됐다. “다주택자도 아닌데 왜 투기 수요로 취급하고 세금을 올리느냐”였다. 정부는 종부세 1주택자 기본공제액을 공시가격 12억원에서 14억원(시가 20억원)으로 높이면서 종부세 대상자 중 비거주의 공제액은 다주택자와 같은 9억원을 적용했다. 투기 세력으로 간주하고 중과 대상으로 삼아 온 다주택자와 지금까지 세제 혜택 대상이었던 비거주 1주택자를 동일선상에 놓고 본 것이다. 또 15년 동안 집을 소유했더라도 실제 들어가 살지 않은 비거주 1주택자는 종부세 50% 세액공제 혜택을 받을 수 없도록 했다. 양도소득세 장기보유특별공제는 장기거주소득공제로 이름을 바꾸고, 집을 팔 때 적용되던 최대 40%의 보유 공제 혜택은 폐지했다. 한 비거주 1주택자는 “열심히 벌어서 내 집을 마련했고, 다시 상급지로 갈아타거나 시세 차익을 조금 얻어 보려고 비거주하는 게 무슨 큰 잘못이냐”라고 토로했다. 하지만 집값 안정을 달성해야 하는 정부로서도 비거주자에 대한 세 부담 강화 방침을 철회하긴 어렵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비거주 1주택자를 실거주자로 간주하는 예외 사례가 지나치게 확대되면 주택 수요를 자극해 집값이 더 오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정부는 비거주 1주택자의 고충을 최대한 수용하면서도 ‘투기성 비거주자’를 최대한 솎아낼 방침이다. 다른 시·군으로의 전근이 불가피하게 길어지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등을 고려해 현재 최장 3년으로 정한 실거주 인정 기간을 더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와 함께 근무명령서·재직증명서·재학증명서·진단서·가족관계증명서 등 객관적 증빙자료 제출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1년 이상 선거주’ 조건도 유지할 계획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최소 1년도 거주하지 않은 것은 갭투자의 성격이 클 수밖에 없다”며 “거주하다가 불가피한 사유로 떠났을 때 실거주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다”면서 “실제 거주 이력이 없는 주택까지 거주 기간으로 인정하면 투기 수요와 실수요를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중국에서 로마까지 오직 육로로…9000㎞ 유라시아 횡단하는 중국 엄마들 [여기는 중국]

    중국에서 로마까지 오직 육로로…9000㎞ 유라시아 횡단하는 중국 엄마들 [여기는 중국]

    중국의 엄마 10명이 각자의 자녀를 데리고 기차와 자동차만으로 중국에서 이탈리아까지 이동하는 39일간의 여행에 나서 화제다. 10일 중국 언론 홍싱신문에 따르면 청두에 사는 탕모씨는 지난 7월 20일 10살 아들과 함께 청두동역에서 이탈리아 로마로 출발했다. 직선거리로 9000㎞ 이상 떨어진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비행기는 타지 않는다. 여행에는 톈진과 지난, 상하이, 난징 등 중국 각지에서 온 엄마 9명과 자녀 9명도 동행한다. 총 10쌍의 엄마와 자녀는 각자 거주지에서 출발해 네이멍구 국경도시 얼롄하오터에서 만났다. 일행은 이곳에서 국제열차를 타고 몽골로 넘어간 뒤 러시아로 향했다. 시베리아횡단철도를 이용해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하고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유럽에 들어간다. 이후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독일, 프랑스, 스위스를 지나 이탈리아 로마에 도착할 예정이다. 전체 일정은 39일이다. 탕씨는 “비행기를 타면 한 번에 갈 수 있는데 왜 굳이 힘든 길을 택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각 나라의 기차와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현지 사람들의 일상을 가까이에서 경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이번 여행을 ‘청춘 여행’이라고 부른다. 평소에는 직장인이나 전업주부,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지만 여행하는 동안만큼은 아이들과 함께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을 해보자는 취지다. 탕씨는 아들과 울란바토르의 야경과 바이칼호를 보고 모스크바에서는 레닌 묘를 방문할 계획이다. 베를린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흔적을 살펴보고 파리에서는 센강 유람선을 탄다. 밀라노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감상하고 베네치아를 거쳐 로마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사실 이번이 탕씨 모자의 첫 장거리 육로 여행은 아니다. 두 사람은 앞서 라오스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등을 여행해 왔다. 지난해에는 25일 동안 기차를 타고 중국 15개 도시를 거쳐 청두에서 싱가포르까지 이동했다. 육로 여행은 비행기보다 일정이 복잡하고 돌발 상황이 많다. 러시아 울란우데 국경을 통과했을 때는 현지 유심이 곧바로 개통되지 않아 택시를 부르지 못했다. 결국 모자는 무거운 여행 가방을 끌고 국경에서 기차역까지 걸어가야 했다. 탕씨는 이런 경험을 거치면서 아들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도 침착하게 대처하게 됐다고 말한다. 여행 중 만난 다른 나라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고 번역기와 보디랭귀지를 이용해 친구를 사귀기도 한다. 특히 영어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과거에는 영어 공부를 꺼렸지만 해외에서 물건을 직접 사면서 영어를 시험 과목이 아닌 의사소통 수단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설명이다. 이번 여행에서 한 가족당 경비는 8만 위안(약 1680만원) 정도다. 중국 엄마들의 용감한 도전 사연을 접한 누리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 아이와 함께 발로 세상을 누비면 문제 해결 능력도 함께 자랄 것 같다”, “어린 시절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며 응원하는 반면 현실적인 조건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용기는 있지만 돈이 없다”, “39일 동안 쉴 수 있다는 것부터 부럽다”, “전업주부나 교사가 아니라면 한 달 넘게 휴가를 내기 어렵다”, “아빠들은 열심히 여행 경비 마련하느라 못 왔겠다”라고 말했다.
  • ‘조각의 신’ 미켈란젤로, 돌 속에 잠든 영혼을 깨우다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조각의 신’ 미켈란젤로, 돌 속에 잠든 영혼을 깨우다 [이명옥의 예술가의 명언]

    ‘신성한 사람’이라 부르며 경외심神 지위 오른 이유 시·명언에 나와대리석 안에 형상이 있다고 생각세상에 드러내는 게 조각가 역할사람은 컴퍼스를 눈에 지녀야눈은 예술가의 종합적 판단력세계미술사의 별들 가운데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가 두 차례나 출판된 최초의 예술가는 누구일까? 바로 르네상스의 천재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1475~1564)이다. 당대 화가이자 미술사가였던 조르조 바사리는 그를 향해 이런 찬사를 남겼다. “죽은 자와 살아 있는 자를 통틀어 승리의 종려가지를 거머쥔 이는 신성한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이다. 그는 회화와 조각, 건축 세 분야 모두에서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 동시대인들은 미켈란젤로를 신성한 사람, 즉 이탈리아어로 ‘일 디비노’라고 부르며 경외심을 품었다. 그는 어떻게 생전에 신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해답은 그가 남긴 작품과 글 속에 숨겨져 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가이자 화가, 건축가였으며 300편이 넘는 시를 남긴 시인이기도 했다. 오늘날 전해지는 500여통의 친필 서한 속 시와 명언들은 그가 왜 일 디비노라 불리게 되었는지를 밝혀 주는 열쇠가 될 것이다. 첫 번째 명언 “가장 뛰어난 예술가도 대리석 속에 존재하지 않는 형상을 창조할 수는 없다. 오직 지성에 복종하는 손만이 그 형상을 드러낼 수 있다.” 이 문장은 미켈란젤로가 영혼의 단짝으로 여겼던 여성 시인 비토리아 콜론나에게 보낸 소네트에 나온다. 그는 대리석 안에 이미 완전한 형상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조각가의 역할이란 그것을 가리고 있는 부분을 제거해 세상 밖으로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이 명언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지성에 복종하는 손”이라는 표현이다. 당시 회화와 조각은 물감을 칠하거나 돌을 깎는 장인들의 육체적 기술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다. 미켈란젤로는 뛰어난 손재주만으로는 예술가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에게 조각은 손과 물질, 지성이 하나가 되어 진리를 찾아가는 철학적이고도 정신적인 수행이었다. 이러한 예술관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실마리는 미켈란젤로의 10대 시절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열네 살 무렵 피렌체의 통치자인 로렌초 데 메디치의 눈에 들어 후원을 받았다. 이후 메디치가를 드나들던 인문주의자와 시인, 철학자들에 의해 신플라톤주의를 접하게 되었다. 신플라톤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철학을 르네상스 기독교 세계관과 결합해 새롭게 해석한 사상이다. 지상의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의 영혼이 진리와 신성에 다가갈 수 있다고 보았다. 그가 스물네 살 무렵 완성한 ‘피에타’①는 신플라톤주의 예술관을 보여 주는 걸작이다.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을 품에 안고 슬퍼하는 장면을 담은 이 작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슬픔이라 불린다. 그런데 1499년 이 조각상이 로마에 처음 공개되었을 때 대중은 작품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 의문을 품었다. 서른세 살에 죽은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어머니가 왜 이토록 젊게 보이는가? 미켈란젤로의 전기에 따르면 그는 성모가 비현실적으로 젊어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하느님의 기적적인 손길이 그녀의 영원한 처녀성과 순결함을 세상에 증명하기 위해 젊음을 유지하도록 도왔을 것이라 나는 믿는다.”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영혼을 지닌 성모 마리아의 얼굴은 세월에 훼손되지 않은 영원한 젊음과 아름다움으로 빛나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의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참혹하게 죽은 아들을 품에 안은 어머니라면 분노하며 울부짖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런데 성모의 얼굴에는 격렬한 감정의 폭발 대신 고요와 평온이 감돈다. 신플라톤주의자들은 현실의 고통을 영혼의 힘으로 이겨내고 초월하게 되면 신성한 고요함에 이른다고 믿었다.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성모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신의 뜻임을 받아들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인간적 비극과 절망을 더 높은 차원의 정신적 평온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두 번째 명언 “사람은 컴퍼스를 손이 아니라 눈에 지녀야 한다. 손은 단지 실행할 뿐이며 눈이 판단하기 때문이다.” 조르조 바사리의 저서 ‘미술가 평전’에 기록된 미켈란젤로의 핵심 미학을 담고 있는 명언이다. 여기서 눈은 신체의 눈만을 뜻하지 않는다. 대상의 비례와 균형, 작품이 놓일 공간과 높이, 관람자가 바라보는 거리와 각도까지 종합적으로 헤아리는 예술가의 판단력을 의미한다. 미켈란젤로가 활동하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수학적 비례와 원근법, 해부학적 지식이 미술의 중요한 토대로 자리잡았다. 예술가들은 자와 컴퍼스를 사용해 인체와 건축물의 이상적인 비례를 탐구했다. 미켈란젤로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수치를 지닌 작품이라도 생명력과 조화를 잃는다면 진정한 아름다움에 도달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눈의 컴퍼스 철학이 구현된 작품이 피렌체의 상징이 된 ‘다비드’②이다.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다비드는 성경 속 소년 목동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신체 높이가 5.17m나 되는 거대한 몸과 단단하게 다져진 근육질의 누드상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 영웅이나 신을 떠올리게 한다. 앞선 조각가들은 주로 다비드가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발아래에 두고 승리를 선언하는 순간을 선택했다. 반면 미켈란젤로는 다비드가 적과 싸우기 직전 두려움과 투지가 팽팽하게 맞서는 결전의 찰나를 포착했다. 이마를 가로지르는 깊은 고뇌의 주름, 팽팽하게 긴장된 목덜미의 근육, 돌을 감춘 오른손에 불끈 솟아오른 핏줄 등. 온몸의 감각이 적을 향해 곤두서 있다. 그런데 ‘다비드’를 살펴보면 일부 신체 비례가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머리는 몸에 비해 비교적 크고 특히 돌을 쥔 오른손은 크고 강하게 강조되었다. 왜 이상적인 인체 비례에서 벗어나 머리와 손을 크게 표현했을까? ‘다비드’는 원래 피렌체 대성당 외부의 높은 버팀벽 위에 세워질 조각상으로 주문되었다. 작품이 높은 곳에 놓이면 지상에서 올려다보는 관람자의 눈에는 원근법적 단축 현상 때문에 머리와 손이 실제보다 작아 보이게 된다. 즉 조각상이 실제로 놓일 높이와 관람자의 시점을 미리 계산하고 시각적 효과에 맞추어 비례를 의도적으로 조정한 것이다. 한편으로 크게 강조된 머리는 거인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다비드의 지성을, 강인한 오른손은 거인을 쓰러뜨릴 결단력을 상징한다는 해석도 제시된다. 세 번째 명언 “화가는 회화만큼 조각에도 힘써야 하며 조각가 역시 조각만큼 회화에도 힘써야 한다. 회화와 조각은 하나의 동일한 지성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 말은 일흔두 살 무렵의 미켈란젤로가 오랜 예술적 경험 끝에 도달한 깨달음을 담고 있다. 그는 평생 자신을 조각가라고 생각했고 젊은 시절에는 조각이 회화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도 가졌다. 그런 그에게 1508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리라는 임무를 맡겼을 때 그의 절망감이 얼마나 컸을까. 당시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서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높고 넓은 곡면 천장에 대규모 프레스코화를 제작한 경험이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익숙한 조각이 아니라 회화 작업을 맡게 된 것을 부담스러워했다. 실패할 경우 조각가로서 쌓아 온 명성이 손상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작업은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초기에는 회반죽의 습기와 배합 문제로 화면에 곰팡이처럼 보이는 얼룩이 생겨 일부를 제거하고 다시 작업해야 했다. 높은 비계 위에서 오랫동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을 향해 붓을 들어야 했던 작업이 그의 몸에 극심한 고통을 안겼다. 1509년 무렵 그는 친구인 조반니 다 피스토이아에게 작업 자세를 익살스럽게 묘사한 시를 보냈다. “고통 속에서 목에는 혹이 생기고 배는 턱밑까지 밀려 올라왔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붓의 물감은 내 얼굴을 화려한 바닥처럼 만들었지. 조반니여, 내 명예를 지켜주게. 나는 화가가 아니라네.” 스스로 화가가 아니라고 호소했던 조각가가 그린 그림이 어떻게 인류 최고의 걸작이 될 수 있었을까? 비결은 조각의 3차원적 양감과 인체 표현력을 회화에 적용했기 때문이다.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인 ‘아담의 창조’③를 살펴보겠다. 화면 왼쪽 아담의 몸을 자세히 보면 가슴과 복부, 팔과 다리를 따라 이어지는 근육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 단단한 부피감을 얻고 있다. 천장화를 채우고 있는 300명이 넘는 인물 역시 마찬가지다. 몸을 비틀고, 웅크리고, 팔을 뻗는 자세마다 조각적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다. 그는 붓을 조각가의 정처럼 사용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극적인 효과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1536년에 그렸던 시스티나 예배당 벽화 ‘최후의 심판’에서도 2차원 평면에 3차원적 입체감을 통합하는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조각과 회화를 넘나드는 오랜 경험은 미켈란젤로의 생각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1547년 피렌체의 인문학자 베네데토 바르키는 학계에서 뜨겁게 논쟁하던 주제에 대해 미켈란젤로의 견해를 구했다. “회화와 조각 가운데 어느 예술이 더 우월한가?”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조각이 회화의 등불이며 조각과 회화 사이에는 태양과 달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깨달았다. 조각과 회화는 동일한 지성에서 나오는 본질적으로 같은 예술이다.” 세상의 찬사와 성공을 거머쥐었던 미켈란젤로도 생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죽음과 구원의 의미를 성찰했다. 영혼의 안식을 위한 간절함이 담긴 그의 유작이 ‘론다니니 피에타’④이다. 그가 20대에 완성한 바티칸의 ‘피에타’는 이상적이고 완벽한 인체의 아름다움으로 눈부셨다. 그러나 여든여덟 살의 미켈란젤로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까지 다듬었던 ‘론다니니 피에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다. 그가 평생 자랑해 온 해부학적 정확성도, 매끈하게 마감된 대리석 피부도 찾아볼 수 없다. 표면에는 정으로 찍고 깎아낸 거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인물의 얼굴은 희미하며 팔다리는 길고 가늘게 늘어져 있다. 성모와 그리스도의 몸은 서로 기대어 하나로 합쳐지는 듯하다. 슬픔에 잠긴 성모가 죽은 아들을 붙들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죽음을 넘어선 그리스도가 성모를 구원으로 이끌고 있는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젊은 시절 그는 완벽한 신체적 아름다움을 통해 천상의 신성을 증명하려 했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둔 그는 영혼의 본질만을 남기고자 했다. 이 작품은 지상의 미를 탐구하던 그의 눈이 마침내 물질을 초월해 신의 구원이라는 절대적 아름다움에 도달했음을 보여 준다. 그가 남긴 친필 기록에는 마지막 소망이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 “비록 내 육체는 쇠하고 늙어 숨쉬기마저 버거우나 내게 맡겨진 소명을 결코 내려놓지 않을 것이네. 나는 오직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사랑을 위해 일하며 내 영혼의 모든 소망과 구원을 오직 그분께만 두고 있기 때문이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 “소변 묻은 속옷까지 빨았다”…‘근육병’ 초등생 도운 공익, ‘SNL 대세’ 김규원이었다

    “소변 묻은 속옷까지 빨았다”…‘근육병’ 초등생 도운 공익, ‘SNL 대세’ 김규원이었다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에서 활약 중인 코미디언 김규원(28)의 미담이 공개돼 네티즌들의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미담은 독자의 사연을 바탕으로 웹툰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의 공식 인스타그램 채널을 통해 7일 공개됐다. 제보자 A씨는 김규원의 SNS 댓글창에도 “제가 규원 선생님께 느껴본 따뜻함을 좀 더 많은 여러분들께 함께 나누고 싶어 망설이다 이렇게 긴 댓글을 드린다”며 장문의 글을 달았다. A씨는 “저희 아이는 선천적 근육병으로 초등학교 4학년부터 휠체어를 타게 됐다”며 “휠체어를 타고 처음 등교하던 날 저와 아들이 얼마나 긴장하고 걱정했는지 모른다”고 운을 뗐다. 그는 “제가 학교에 계속 있어 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학교에 근무하는 공익근무요원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면서 “좋은 분들도 계셨지만 아이를 귀찮아하고 화장실 데리고 가는 것을 노골적으로 ‘전 못하겠는데요?’ 하는 분도 계셔서 매번 눈치를 보거나 기분이 나쁘고 속상해도 참고 혼자 울기 일쑤였다”고 떠올렸다. A씨가 김규원을 만나게 된 건 아이가 5학년이 됐을 때였다. 공익요원으로 일하게 된 김규원은 아이의 얘기도 잘 들어주고 진심으로 예뻐해 줬고, 아이 역시 김규원이 재밌다며 잘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규원 선생님을 만난 후) 한시름 놓고 지냈는데 아이가 화장실에서 소변 실수를 했다”며 “그래서 선생님께 전화가 왔는데 제가 멀리 있어 바로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제가 당황하고 있는데 (규원 선생님이) 혼자 해결해 보겠다며 걱정 말라 하시더라”고 밝혔다. 김규원은 소변 실수를 한 아이의 뒤처리를 도왔고, 소변이 묻은 아이의 속옷을 손수 빨아서 햇볕에 말려놓았다. 이후 학교에 온 A씨에게는 오히려 “마음 졸이시게 괜히 전화드렸다”며 사과까지 했다. A씨는 “소집해제 하실 땐 아쉽다고 떡까지 해서 나눠주시곤 아이와 울며 인사하고 헤어지게 됐다”며 “아이 졸업식에 와주신다고 약속하셨었는데 진짜 선물과 꽃다발을 사서 오셨다. 그런데 저희 가족 모두 코로나에 걸려 졸업식을 못 가 집 앞에 꽃과 선물을 두고 가셨다”고 전했다. 이후 A씨는 TV에서 개그맨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규원을 보게 됐다. 그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드렸더니 기억하시며 아이 중학교 졸업식에 스케줄이 되면 와주신다고 약속을 하시더라. 워낙 요즘 바쁘시고 많이 나오시길래 못 오실 수 있다고 아이에게도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며 “그런데 중학교 졸업 당일 정말 선생님이 와주셨다”고 감격해했다. A씨는 “김규원 선생님. 너무 감사하고 선생님이 잘돼서 저희 가족 모두 너무 기쁘다”며 “앞으로 저희 가족에겐 연예인 통틀어 0순위다. 아이에게도 저희 부부에게도 좋은 추억을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하시는 일 더 승승장구하시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감동적인 사연에 네티즌들은 “김규원 배우 더 잘되실 거다”, “김규원 요즘 너무 호감이었는데 감동이다”, “진짜 멋진 사람이다”, “오늘부터 팬이다”, “인성 무엇. 미담 폭발이다” 등의 반응을 보이며 김규원의 인성을 칭찬했다. 한편 2023년 tvN ‘코미디빅리그’를 통해 데뷔한 김규원은 ‘SNL 코리아’ 시즌5부터 크루로 합류해 ‘규카츠’와 같은 부캐릭터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스마일 클리닉’, ‘MUSMA(머스마)’ 등 주요 코너에서 센스 있는 예능감과 캐릭터 소화력으로 존재감을 키웠다. 이 같은 활약에 힘입어 그는 최근 개최된 제5회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SNL 코리아’로 신인 남자 예능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당시 김규원은 “훌륭한 후보가 많아 기대를 안 했는데 살면서 한 번 받는 귀한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길을 닦아주신 신동엽 선배님과 크루, 제작진에게 고맙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오래 웃음 주는 뒤집어지게 웃기는 코미디언이자 겸손한 광대로 남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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