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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현진 “본인 딸에겐 못 쓸 더러운 문자”… ‘성희롱 문자’ 국힘 당원 벌금형

    배현진 “본인 딸에겐 못 쓸 더러운 문자”… ‘성희롱 문자’ 국힘 당원 벌금형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을 막아달라며 저급한 표현이 담긴 문자폭탄을 보낸 같은 당 당원이 벌금형을 받았다. 배 의원은 8일 소셜미디어(SNS)에 관련 기사를 공유하며 “저는 당론을 늘 존중했는데”라고 운을 뗐다. 그는 “12·3 계엄 이후 장이 섰다 싶어 우르르 동냥질에 나선 유튜버들의 아무 말에 심취한 인생들이 본인 딸에게는 다음 생이 되어도 못 쓸 성희롱 섞인 더러운 문자들을 마구 보낸다”고 밝혔다. 이어 “매일 정상적인 업무 문자를 못 볼 정도로 많은 국회의원이 이런 일에 시달린다”며 “저는 이렇게 별을 달아 드린다”고 했다. 이날 헤럴드경제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12단독 서영우 판사는 스토킹처벌법 위반·정보통신망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국민의힘 당원 A씨에게 2025년 11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12·3 비상계엄 선포 직후였던 2024년 12월부터 2025년 3월까지 배 의원에게 “대통령 탄핵 반대는 국민의 목소리”, “눈치 보지 말고 의원님께서 싸워주셔야 한다.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부정선거를 수사하라”는 등의 문자 메시지를 44차례 보낸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는 “A씨가 피해자에게 문자 메시지를 전송하게 된 경위, 전송 횟수, 문자 메시지의 내용, 범행 동기와 수단, 결과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배 의원은 윤 전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이튿날인 2024년 12월 4일 SNS에 “어떤 이유라도 명분 없는 정치적 자살행위엔 절대로 동조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이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차 탄핵소추안 표결엔 참석하지 않았지만 2차 탄핵안 표결엔 참석했다. 배 의원은 계엄 1주년인 2025년 12월 3일 “국민께 충격과 상처를 안겼던 모든 날 모든 순간을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 같은 생각 닮은 풍자

    같은 생각 닮은 풍자

    “집요하게 보채는 작전이 통했는지 마침내 필요하면 가지라며 모자와 동전을 통째로 내밀더군요. 모자를 받아들자 오래된 기름때가 묵직하게 손가락에 착 달라붙었어요. 퀴퀴한 냄새도 코를 찌릅디다. 노인은 3년간 정든 모자라고 애착을 보이며 몇 가지 에피소드도 곁들였어요. 유달리 무겁고 마음에 들었죠.”(2013년 8월 9일 안국역)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대안 미술을 공부해 온 이원호(42) 작가에게 걸인의 동냥 그릇은 쉽사리 지나칠 수 없는 예술품이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마주친 백발 부랑 노인의 ‘동냥질’이 단초가 됐다. 지난해 8월부터 3개월간 서울과 위성도시 곳곳을 돌며 53개의 적선 도구와 적선받은 돈을 모았고, 이를 설치 작품인 ‘스토리Ⅰ’(StoryⅠ)으로 바꿔 놓았다. “100명 중 95명은 당황하며 팔지 않겠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갖고 싶은 건 10배까지 값을 치르더라도 꼭 손에 넣었어요.” 작가가 바닥에 늘어놓은 담요, 종이상자, 모자, 바구니 등 다양한 적선 도구 못지않게 벽면에 내걸린 가계부를 닮은 흥정 기록이 눈길을 끈다. 2013년 8월 9일 안국역·1770원(실가격)·1만 3500원(구입가격)·-1만 1730원(차액), 2013년 9월 11일 의정부·0원(실가격)·3500원(구입가격)·-3500원(차액)…. 수집한 돈은 불과 8만 7040원에 불과했으나 작가가 부랑자들에게 치른 돈은 4배 가까운 34만 200원이었다. 대체 왜? 작가는 “대가 없는 적선을 통해 그들과 나를 구분 짓고 동정하기보다 ‘흥정’이란 협상의 장에 걸인을 끌어들여 우리와 동등한 위치에서 인간으로 마주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의도적으로 배제해 왔던 존재들을 수평적 관계로 복권시켰다는 것이다. 작업 과정 곳곳에 남겨 놓은 메모가 인상적이다. “이 동네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라 우연한 만남에서 재빨리 흥정에 성공해야 한다”(연신내역)거나 “이곳 부랑인들은 유달리 낮부터 술에 취해 있어 조심스런 흥정 끝에 어렵게 스테인리스 그릇(동냥 그릇)을 얻었다”(서울역)는 등이다. 5월 11일까지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이어지는 ‘한·중 현대미술전-액체문명’전에는 만지면 끈쩍한 손때가 묻어날 듯한 걸인의 적선 도구처럼 거친 삶의 모습이 여과 없이 담겼다. 이용백(48) 작가는 영상에 담은 퍼포먼스 ‘자유로를 향하는 플라워 탱크’를 통해 긴장과 불안이 만연한 현대사의 질곡을 에둘러 표현했다. 경복궁에서 출발한 꽃으로 치장한 실제 탱크는 임진각까지 내달렸다. 작가는 “1979년 12월 12일 이후 경복궁 앞에 탱크가 지나간 것은 처음으로 국방부의 협조까지 얻었다”고 말했다. 중국의 사진가 리웨이(44)는 사람이 고층빌딩 옥상에서 한쪽 발만 걸친 채 아슬아슬하게 서 있거나, 달리는 열차에 매달린 듯한 다분히 엽기적인 사진들을 연출했다. 실제라고 믿기엔 위험천만하지만 모두 실제 촬영한 것들이다. 작가는 “급격한 변화로 불안에 시달리는 중국 현대인들의 삶을 묘사했다”고 설명했다. 3점이 전시된 왕칭쑹(48)의 ‘팔로’(Follow) 시리즈도 이목을 끈다. 거대한 칠판에 중국어와 영어를 가득 적어 놓은 ‘팔로 미’, 서재에서 끙끙 앓는 초췌한 작가의 자화상을 담은 ‘팔로 힘’, 200여명의 학생이 책으로 뒤덮인 교실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는 ‘팔로 유’ 등이다. 서구화의 물결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현대 중국인의 모습을 풍자한 작업들이다. 전시에는 이 밖에 신형섭·이창원·한경우·한진수·먀오샤오춘·쑹둥·쉬융·장샤오타오 등 모두 12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현대인의 모습을 흐릿하게 표현한 초상(쉬용), 스크린에 투사한 가짜 성조기(한경우) 등 자본주의가 만연한 현대사회를 꼬집은 모습은 한·중 간에 차이가 없었다. 선승혜 학예연구부장은 “안정적인 고체와 달리 끊임없이 변하는 액체의 유동성에 현대사회의 불가해성을 투사한 것이 전시의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儒林(22)-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중종14년(1519년) 11월 15일 새벽. 한 사람이 정릉동의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정릉동은 오늘날 덕수궁에 인근하여 있는 정동(貞洞). 사내는 초립(草笠)을 쓰고 베옷을 입은 남루한 옷차림이었다.초립은 가는 풀줄기로 엮은 갓이었는데,흔히 관례한 어린소년이나 아니면 광대들이 쓰는 것이었다.다 떨어진 짚신까지 신은 모습이었으므로 영락없는 쌍놈의 모습이었다.그러나 그런 복장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이만은 당당하고 의젓하였다. 아직 사람들의 인적이 없는 꼭두새벽이었지만 사내는 간혹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려오면 어둠 속에 잠시 몸을 숨겼다가 사라진 후에야 다시 나타나 걷곤 하였으므로 뭔가 주위를 꺼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사내는 솟을대문 앞에 서서 주위를 한참 살핀 후 소리쳐 말하였다. “이리 오너라.” 보통 솟을대문 옆에는 행랑채가 붙어있어 그곳에는 하인들이 살고 있었는데,이처럼 신 새벽에 찾아올 사람이 없으므로 하인들은 넋 모르고 잠들어 있어 사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이리 오너라.이리 오너라.” 주위를 꺼려 낮은 소리로 외쳤던 사내는 잠시 후 소리를 높여 큰소리로 외쳤다.그러자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 듯 행랑것 하나가 볼멘소리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서 말하였다. “뉘시유.” 그러자 사내가 목소리를 낮춰 말하였다. “대감어른 계신가.” 잠에서 덜 깨어난 하인이 눈을 부비며 다시 본 후 행여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닐까,이것이 꿈일까 생시일까 하는 어리어리한 눈빛으로 물어 말하였다. “누구냐고 내가 묻지 않더냐.” 하인으로 볼 때는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초립에 베옷을 입은 쌍놈하나가 어둑새벽에 난데없이 찾아와 대감어른을 찾다니. “네 이놈.” 간신히 정신이 든 하인이 소리쳐 말하였다. “네 놈이 이집이 어느 댁인지나 알고 동냥질을 나왔단 말이냐.어서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남루한 옷차림의 사내는 하인 녀석의 으름장에도 전혀 물러서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문 앞으로 바짝 다가와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잔소리 말고 대감 어른께 남산골에 살고 있는 남 서방이 급한 용무가 있어 찾아뵈러 왔다고 여쭈어라.” 어린 종놈은 어리둥절하였다.비록 행색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쌍것이었지만 얼굴과 목소리에는 사람을 압도하는 품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이곳은 정승 댁.영의정 정광필 나으리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닐 것인가.예사 사람이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여염집이 아닌 것이다.게다가 지금은 꼭두새벽이 아닌가. 난처해진 종놈은 다른 행랑채로 달려갔다.그곳에는 행랑것들의 으뜸인 노인이 잠들어있는 방이었다.잠들어있던 노인은 하인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난후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알아채었다.미처 실성한 놈이 아니고서는 반드시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노인은 직감하였다.이처럼 어둑새벽에 정승 댁을 찾아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초립에 베옷을 입은 변복차림이었다면 반드시 주위를 꺼릴만한 국가의 중대사가 걸린 일 때문에 이처럼 남의 눈을 피해 찾아온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노인은 대문을 열고 문밖으로 나가보았다.노인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남루한 행색의 사내를 보자마자 노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고개 숙여 말하였던 것이다. “아니 대감마님,이 신 새벽에 어인일로 행차이시나이까.”˝
  • 儒林(22)-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제1부 王道 제2장 己卯士禍 중종14년(1519년) 11월 15일 새벽. 한 사람이 정릉동의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정릉동은 오늘날 덕수궁에 인근하여 있는 정동(貞洞). 사내는 초립(草笠)을 쓰고 베옷을 입은 남루한 옷차림이었다.초립은 가는 풀줄기로 엮은 갓이었는데,흔히 관례한 어린소년이나 아니면 광대들이 쓰는 것이었다.다 떨어진 짚신까지 신은 모습이었으므로 영락없는 쌍놈의 모습이었다.그러나 그런 복장에도 불구하고 걸음걸이만은 당당하고 의젓하였다. 아직 사람들의 인적이 없는 꼭두새벽이었지만 사내는 간혹 사람들의 인기척이 들려오면 어둠 속에 잠시 몸을 숨겼다가 사라진 후에야 다시 나타나 걷곤 하였으므로 뭔가 주위를 꺼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침내 사내는 솟을대문 앞에 서서 주위를 한참 살핀 후 소리쳐 말하였다. “이리 오너라.” 보통 솟을대문 옆에는 행랑채가 붙어있어 그곳에는 하인들이 살고 있었는데,이처럼 신 새벽에 찾아올 사람이 없으므로 하인들은 넋 모르고 잠들어 있어 사내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이리 오너라.이리 오너라.” 주위를 꺼려 낮은 소리로 외쳤던 사내는 잠시 후 소리를 높여 큰소리로 외쳤다.그러자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 듯 행랑것 하나가 볼멘소리로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면서 말하였다. “뉘시유.” 그러자 사내가 목소리를 낮춰 말하였다. “대감어른 계신가.” 잠에서 덜 깨어난 하인이 눈을 부비며 다시 본 후 행여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닐까,이것이 꿈일까 생시일까 하는 어리어리한 눈빛으로 물어 말하였다. “누구냐고 내가 묻지 않더냐.” 하인으로 볼 때는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초립에 베옷을 입은 쌍놈하나가 어둑새벽에 난데없이 찾아와 대감어른을 찾다니. “네 이놈.” 간신히 정신이 든 하인이 소리쳐 말하였다. “네 놈이 이집이 어느 댁인지나 알고 동냥질을 나왔단 말이냐.어서 물러가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남루한 옷차림의 사내는 하인 녀석의 으름장에도 전혀 물러서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문 앞으로 바짝 다가와 분명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잔소리 말고 대감 어른께 남산골에 살고 있는 남 서방이 급한 용무가 있어 찾아뵈러 왔다고 여쭈어라.” 어린 종놈은 어리둥절하였다.비록 행색은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쌍것이었지만 얼굴과 목소리에는 사람을 압도하는 품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이곳은 정승 댁.영의정 정광필 나으리가 살고 있는 집이 아닐 것인가.예사 사람이 함부로 드나들 수 있는 여염집이 아닌 것이다.게다가 지금은 꼭두새벽이 아닌가. 난처해진 종놈은 다른 행랑채로 달려갔다.그곳에는 행랑것들의 으뜸인 노인이 잠들어있는 방이었다.잠들어있던 노인은 하인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난후 본능적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을 알아채었다.미처 실성한 놈이 아니고서는 반드시 곡절이 있을 것이라고 노인은 직감하였다.이처럼 어둑새벽에 정승 댁을 찾아오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초립에 베옷을 입은 변복차림이었다면 반드시 주위를 꺼릴만한 국가의 중대사가 걸린 일 때문에 이처럼 남의 눈을 피해 찾아온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노인은 대문을 열고 문밖으로 나가보았다.노인의 예상은 적중하였다. 남루한 행색의 사내를 보자마자 노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고개 숙여 말하였던 것이다. “아니 대감마님,이 신 새벽에 어인일로 행차이시나이까.”
  • 해외여행자 씀씀이 더 헤퍼지는데(박갑천칼럼)

    남녘땅의 한 만석꾼 일화가 전해진다.애담살이 등에 업혀있던 아이가 우물을 들여다보다가 쥐고있던 동전 한닢을 빠뜨렸다.아침에 배깔고 엎드려 눈한번 깜짝일 때마다 벼가 한섬씩 불어난다고 했던 이 김부자는 사람을 시켜 우물물을 펐다.무양무양하게 비쳤던지 누군가 말했다.『그까짓 동전 한닢 건지려고 동전백닢을 쓰십니까』 『모르는 소리.돈은 귀중한 거야.내가 쓰는 백닢은 없어지는게 아니지만 우물에 빠진건 안 건지면 녹아없어져』 만석꾼다운 돈철학이었다고 하겠다.그렇게 귀중한 돈은 또 아낄 줄을 알아야한다.「기문총화」에 보이는 여주살았던 허씨성 가진 사람의 경우를 보자. 그 아버지가 동냥질하며 세아들을 공부시키다가 병들어죽자 둘째인 홍이 자신은 10년기한으로 죽을 먹으면서 돈을 벌테니 형과 아우는 공부하라고 하면서 집을 떠난다.갖은 고생 다한끝에 큰부자가 되었다.이를 안 형과 아우가 8년만에 찾아온다.그는 끼니마다 죽만 내왔다.물론 자신도 죽만 먹으면서.바자윈 사람으로 보였던 것이리라.그러나 10년이 찼을때 홍은 재산을 똑같이 셋으로 쪼개어 노느고 있다.돈은 아낄 줄만 아는게 아니라 쓸 줄도 알아야한다.홍은 쓸줄까지 알았던 사람이다.그런 예로 「차산필담」에 나오는 김번부부를 들 수도 있겠다. 살림에 어두운 남편.부인의 바느질로 연명해 나갔다.하루는 그집에 오던 손님이 보니 그 집종이 푸주의 쇠고기를 모조리 사간다.그런데 차려온 저녁상은 간장에 된장국뿐.쇠고기에 대해 묻자 부인은 대답한다.이웃집에서 그 푸주의 고기를 사갔는데 그걸 훔쳐먹은 개가 죽는 걸 보고서 가진돈 모두 털어 사다가 버렸노라고.그 부인이 남편에게 공부는 잠시 멈추고 돈좀 벌라고 똥긴다.그는 관서땅으로 가서 큰돈을 벌어가지고 오는 길에 임진강에서 물에 빠져 죽으려는 부부가 빚 때문에 그러는 걸 알고 남김없이 줘버린다. 귀중하게 여길 줄도 모르고 아낄 줄도 모르며 쓸 줄도 모르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 아닌가 생각될 때가 많다.지난 2월 해외여행자가 지닐수 있는 외화한도는 1만달러로 늘어났다.그러자 여행자들의 씀씀이는 더 헤퍼진다.5월말까지 여행경비로 나간 돈이 26억1천만달러.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9%나 불어났다.그 돈이 꼭 쓰일 데만 쓰인 것일까.일부나마 망상스런 구경거리나 기묘한 먹거리에도 쓰인 것이리라.존절할 줄 모르고 펀들거리며 흥청망청거려도 될 때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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