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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신여대박물관, ‘옛 세계지도 속 우리나라’ 서울·강원 순회전 개최

    성신여대박물관, ‘옛 세계지도 속 우리나라’ 서울·강원 순회전 개최

    성신여자대학교는 성신여대 박물관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박물관협회의 K뮤지엄 지역 순회 전시 지원사업 ‘뮤지엄 이음’에 선정돼 특별기획전 ‘옛 세계지도 속 우리나라-질서 아래 놓여 있다’를 서울 성북과 강원 영월에서 순회 개최한다고 16일 밝혔다. 이번 전시는 성신학원 창립 90주년과 성신여대 박물관 개관 60주년을 기념해 마련됐다. 조선 시대 세계지도에 담긴 세계관과 질서를 살펴보는 내용으로, 서울 성북구 성신여대 수정캠퍼스 전시실에서 오는 9월 19일까지 열린 뒤 오는 9월 2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영월관광센터에서 순회 전시를 이어간다. 전시와 함께 지역 문화·관광을 연계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성북에서는 역사문화 탐방 프로그램인 ‘지도에서 나와, 길로-성북 산책’을, 영월에서는 ‘지도에서 나와, 길로-영월 답사’를 진행한다. 도슨트 전시 해설, 세계지도 체험 교실, 큐레이터와의 대화 등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된다. 장욱희 성신여대 박물관장은 “대학박물관이 축적한 연구 성과를 더 많은 국민과 공유하고, 옛 세계지도를 통해 선인들의 세계관을 새로운 시각에서 살펴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속보> 진도 죽도등대 ‘무종’…해수부, 보존대책 나섰다

    <속보> 진도 죽도등대 ‘무종’…해수부, 보존대책 나섰다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해역의 상징이자 목포 관리 해역 ‘1호 등대’로 불리는 죽도등대가 오랜 방치 끝에 본격적인 보존·정비 절차에 들어간다. 심각한 훼손 상태가 드러난 ‘무종(霧鐘)’과 종탑에 대해 해양수산부가 뒤늦게 복원 대책 마련에 나서면서, 근대 해양문화유산 보존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목포 해역 항로표지의 효시로 평가받는 죽도등대는 1907년 첫 점등 이후 120년 가까이 서남해 선박의 안전 항행을 책임져온 역사적 상징물이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에 위치한 이 등대는 높이 8.5m 규모로, 최대 23해리(약 40km) 밖까지 불빛을 비춘다. 2009년 무인화된 이후에도 서남해 대표 항로표지 시설로 기능해왔다. 문제가 된 시설은 1950년 제작된 ‘무종’과 이를 지탱하는 종탑이다. 무종은 안개가 짙은 날 일정한 간격으로 울려 선박에 위험 해역을 알리는 장치로, 해양수산부 지정 등대문화유산 제20호이자 국립등대박물관 등록 유물(제4681호)이다. 특히 높이 78cm, 지름 38cm의 황동제로 제작된 이 무종은 국내 최대 규모급으로 꼽힌다. 과거에는 10초 간격으로 타종되며 맹골수도를 지나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현재 종탑은 심각한 훼손 상태다. 중세 유럽풍 건축 양식으로 조성된 콘크리트 구조물 외벽은 곳곳이 부식돼 떨어져 나갔고, 내부 철근은 붉게 녹슨 채 외부로 드러나 사실상 붕괴 직전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무종 역시 종탑 붕괴 우려로 분리돼 현재 등대 내부에 임시 보관 중이다. 현장 안내판마저 글자를 식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후화돼 문화유산 관리가 사실상 중단됐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관리 주체인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진도항로표지사무소는 “종탑 안전 문제가 확인돼 무종을 별도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양수산부는 ‘죽도등대 보존 방안 및 환경정비 계획’을 발표하고 긴급 복원 절차에 착수했다. 해수부는 오는 7월 중 등대 및 건축 문화재 전문가들로 구성된 자문회의를 열고 현장 실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이어 종탑 구조 안전성을 정밀 점검해 무종 재설치 가능성을 검토하고, 8월까지 구체적인 복원 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 9월부터 11월까지는 등대 진입로 제초 작업과 주변 환경 정비, 노후 안내판 교체 등을 집중 추진한다. 아울러 무종과 종탑의 장기적 보존·관리 체계 구축을 위한 추가 예산 확보에도 나설 계획이다.
  • 해양문화유산 진도 ‘죽도등대 무종’ 흉물로 방치

    해양문화유산 진도 ‘죽도등대 무종’ 흉물로 방치

    전남 진도군 맹골죽도에 자리한 죽도등대의 무종(霧鐘)이 관리 사각지대 속에서 흉물로 전락하고 있다. 국립등대박물관 소장 유물로 지정된 근대 해양문화유산임에도 정작 현장에서는 보존·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으며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24일 진도군 등에 따르면 죽도등대 무종은 1950년대 제작된 황동제 유물로, 높이 78㎝, 지름 38㎝ 크기다. 짙은 안개가 끼는 날이면 종소리로 선박에 등대의 위치를 알려주는 역할을 해왔다. 이 무종은 2013년 경북 포항의 국립등대박물관으로 옮겨져 관리되다가 2019년 6월 지역 주민들의 지속적인 요청에 따라 6년 만에 본래 자리인 죽도로 돌아와 재설치됐다. 당시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은 맹골죽도의 절경과 연계해 중세 유럽풍 종탑과 무종을 복원하고, 이를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7년이 흐른 현재 현장의 모습은 당초 기대와 거리가 멀다. 무종이 설치돼 있던 철근콘크리트 종탑은 해풍과 염분에 장기간 노출되며 외벽 콘크리트가 곳곳에서 떨어져 나갔다. 내부 철골은 녹슨 채 드러나 있어 안전 우려마저 제기된다. 무종 본체는 종탑에서 떼어낸 상태다. 관리기관인 진도항로표지사무소가 종탑 붕괴 위험을 이유로 무종을 철거해 내부 보관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무종 입구 언덕에 설치된 안내판은 심하게 부식돼 글자 식별조차 어려운 수준이다. 주민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이모씨는 “힘들게 되찾아온 무종이 다시 방치되는 모습을 보니 허탈하다”며 “마을 입구에 안내 표지판 하나 세워달라는 요구조차 외딴 섬이라는 이유로 외면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진도항로표지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무종과 종탑에 대한 별도의 보수·정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 [씨줄날줄] 레클리스 상사

    [씨줄날줄] 레클리스 상사

    정전협정 체결을 앞둔 1953년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매향리 일대에서 6·25전쟁의 마지막이라고 해도 좋을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중공군 제120사단이 임진강 고랑포 북쪽의 미 해병대 제1사단 제5연대를 기습한 것이다. 미국은 초반 일부 고지를 상실했지만 치열한 전투 끝에 되찾았다. 흔히 네바다 전초전투라 부른다. 호로하라 불리는 이 지역은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임진강의 최하류다. 강 북쪽에 고구려 호로고루, 남쪽에 신라 칠중성이 있는 것은 삼국시대부터 한반도 중부의 최대 군사적 요충이었음을 알려준다. 6·25 개전 당시 북한 인민군 탱크도 호로하를 건너 양주를 거쳐 서울에 진입했다. 네바다 전투의 영웅이 군마(軍馬) 레클리스다. 제5연대 무반동총중대의 에릭 페데르센 중위는 서울에서 군수품 운반용 말을 찾다가 레클리스를 발견했다. 중위는 한국 소년 김혁문에게 자기 돈 250달러를 주고 말을 사들였다. 소년은 다리를 잃은 누나의 의족을 마련하고자 말을 팔았다. 애초 이름은 ‘아침해’였다. 레클리스의 임무는 75㎜ 무반동총 탄약을 고지로 나르는 것이었다. 레클리스는 하루에도 수십차례 포탄이 쏟아지는 전선에서 탄약 상자를 짊어지고 가파른 산길을 올랐다. 레클리스는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언론은 ‘한국의 작은 말이 미 해병을 살렸다’는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다뤘고 레클리스는 전쟁 영웅으로 떠올랐다. 레클리스의 명예 계급은 처음 일병에서 계속 승진해 상사에 이르렀다. 국립해병대박물관을 비롯한 미국 곳곳에 레클리스 동상이 건립됐다. 국내에도 고랑포구역사공원에 동상이 세워졌다. 레클리스의 이야기를 다룬 책의 저자 로빈 허튼이 6·25전쟁 76주년을 맞아 방한했다는 소식이다. 레클리스는 라이프 지의 ‘미국의 영웅 100인’에 윈스턴 처칠, 마하트마 간디, 마더 테레사, 넬슨 만델라와 함께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의 6·25전쟁 영웅은 누구인지 문득 궁금해진다.
  • 양주 대모산성 출토 유물 30여 년 만에 고향 품으로

    양주 대모산성 출토 유물 30여 년 만에 고향 품으로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양주 대모산성(사적)에서 출토된 국가귀속유산 약 1000여 점을 이관받았다고 17일 밝혔다. 이번에 이관된 유물은 1990년대 대모산성 1~5차 발굴조사 당시 출토된 철제 무기류와 토기류, 기와류 등으로, 그동안 한림대 박물관에서 보관해 왔다. 이번 이관으로 대모산성 출토 유물이 30여 년 만에 유산의 고향인 양주시로 돌아오게 됐다.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은 국가유산청 지정 국가귀속유산 보관·관리기관으로, 이번 유물을 포함해 모두 약 1만 8500점의 국가귀속유산을 보관·관리하게 됐다. 대모산성 출토 유물은 양주 지역의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역사를 규명할 핵심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양주 대모산성은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철제 무기류와 토기류, 기와류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대표적인 고고학 유적이다. 이번 유물 반환으로 지역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보존과 연구 기반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박물관은 수장고의 항온·항습 시스템을 활용해 유물을 안전하게 보존하는 한편, 정밀 조사와 보존처리를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양주의 고대사를 시민들에게 소개하는 전시도 마련할 예정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이번에 돌아온 대모산성 유물을 토대로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해 양주의 찬란한 고대 역사를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 침체한 창원 진해 원도심, 근대유산으로 다시 살린다

    침체한 창원 진해 원도심, 근대유산으로 다시 살린다

    경남도가 창원 진해 원도심의 근대문화유산을 활용한 관광명소 조성에 나선다. 도는 남부권 광역관광개발사업 1단계 사업으로 창원시 진해구 일원에서 ‘근대박물관마을 관광경관 명소화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1일 밝혔다. 이 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와 경남도, 창원시가 인구 감소와 상권 쇠퇴로 침체한 진해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추진한다. 총사업비는 50억원으로, 올해는 국비 10억원, 도비 3억원, 시비 7억원 등 20억원을 투입한다. 사업 대상은 진해구 근대문화역사길에 남아 있는 근대 건축물이다. 도와 창원시는 노후 건축물을 보존·활용해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다. 1955년 문을 연 진해 흑백다방은 과거 고전음악 다방의 모습을 재현하고 지역 예술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 군항마을역사관은 옛 진해 군항마을의 사진과 기록물을 전시하는 근대마을체험관으로 꾸민다. 방문객들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1912년 러시아풍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옛 진해우체국은 2000년까지 운영되던 모습으로 복원해 근대역사관으로 조성한다. 편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문화콘텐츠와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다. 도는 시설 정비와 함께 관광 활성화를 위한 맞춤형 진흥사업도 병행한다. 지역민과 예술인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어 관광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주민과 관계기관 참여를 통해 민간 주도 여행상품과 관광콘텐츠 개발도 추진한다. 김상원 경남도 관광개발국장은 “근대박물관마을 관광경관 명소화 사업은 진해 원도심 쇠퇴에 따른 사회문제 해결과 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진해군항제와 연계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쓰겠다”고 밝혔다. 경남도는 부산·울산·광주·전남과 함께 남부권 광역관광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도는 올해 국비 589억원을 포함한 총 1177억원을 투입해 관련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계획이다.
  • 한국전쟁 포화 뚫은 영웅, 한미 우호의 영원한 상징… ‘레클리스’ 전설 계속된다

    한국전쟁 포화 뚫은 영웅, 한미 우호의 영원한 상징… ‘레클리스’ 전설 계속된다

    작고 탄탄한 체구 美 해병대와 인연격전지서 하루에 5t 넘는 탄약 운반부상당한 해병들 후방 이송하기도 뛰어난 공적 인정받아 하사로 진급휴전 뒤 美 건너가 제엽염 앓다 숨져‘100대 영웅’ 선정… 美 곳곳에 동상 “작은 체구였지만 모든 기대를 뛰어넘었다. 레클리스는 진정한 해병이었다.” 지난 12일 밸러리 A 잭슨 주한미해병대 사령관이 렛츠런파크 제주를 찾아 군마 레클리스(Reckless·1948~1968) 동상에 헌화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방문은 6·25 전쟁 당시 미 해병대 제5연대 소속으로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대원의 생명을 구한 제주마의 후손 레클리스의 헌신을 기리고 한미 동맹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마사회 제주지역본부 관계자는 “한라마 출신으로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기여한 레클리스는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라며 “앞으로도 렛츠런파크 제주는 레클리스를 중심으로 말 문화를 통한 국제적 우호 증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7년 미국 시사주간지 ‘라이프’는 특별판 ‘우리의 영웅들을 기리며’를 통해 미국을 빛낸 100인의 영웅을 선정했다. 명단에는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국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테레사 수녀, 배우 존 웨인 등이 이름을 올렸다. 그 사이 낯선 이름이 있었다. 바로 ‘레클리스’. 대통령도, 장군도, 정치인도 아닌 작은 적갈색 암말 한 마리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군마였다. 레클리스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라마’였다. 어미는 제주마였고, 아비는 서러브레드 혈통으로 추정된다. 이런 혼혈마를 한국에서는 ‘한라마’로 불렀다. 레클리스는 바위가 많은 화산섬 제주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고 단단한 체구를 갖춘 제주마의 강인함과 경주용으로 개량된 서러브레드의 날렵함을 두루 갖췄다. 제주마의 피가 흐르는 레클리스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태어났다. 그대로였다면 경주마의 삶을 살았을 터였으나 1952년 10월 전환점을 맞는다. 주인이던 한국 청년 김혁문이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누이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레클리스를 250달러를 받고 미 해병대로 보낸 것이다. 250달러는 당시 해병대 중위 한 달 월급에 맞먹는 액수였다. 레클리스는 새 가족이 된 해병대원들과 깊은 유대감을 나누며 그들을 위해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해냈다. 벙커로 달려가 포격을 피하는 법부터 통신선과 철조망 옆으로 비켜가는 요령까지 빠르게 습득했고 보급 지점에서부터 위험한 산악 지대를 거쳐 최전선 포대까지 대전차화기인 75㎜ 무반동총의 탄약을 나르는 일을 능숙하게 해냈다. 해병대원들은 그런 레클리스를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는 말’로 칭송하며 존경했다. 레클리스의 이름은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레클리스는 특히 1953년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경기 연천에서 있었던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연천은 6·25 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레클리스는 27일 하루에만 죽음의 고지를 총 51회에 걸쳐 오가며 약 56㎞를 달렸다. 한 번에 8발 안팎으로 전체 무게가 88㎏에 달하는 무반동총의 탄약을 짊어지고서다. 그렇게 하루 5t이 넘는 탄약을 운반했다. 때로는 부상당한 해병들을 후방으로 이송하기도 했다. 자신도 두 차례 다쳤다. 한 번은 왼쪽 눈 위에, 또 한 번은 왼쪽 옆구리에 파편상을 당했다. 하지만 약간의 치료와 휴식 후 곧바로 임무에 복귀했다. 이런 용기와 헌신으로 레클리스는 두 번씩이나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특히 1954년 3월 31일에는 뛰어난 공적을 인정받아 병장에서 하사로 진급했다. 이는 미군 역사상 동물로서는 최초의 공식적인 계급 승진이었다. 이듬해 4월 미 해병대 제5연대 제2대대 앤드루 기어 중령이 당시 주간지였던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네바다 전초 전투 당시 레클리스의 활약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미국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네바다 전초 전투는 미 해병대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기어 중령은 “전쟁에서도 결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끔찍한 대포 사격과 폭격이 펼쳐졌으며 분당 500발의 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빗발쳤다”고 기록했다. 바로 그 순간, 작은 체구의 한라마 한 마리가 묵직한 탄약통을 등에 실은 채 홀로 능선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레클리스는 폭격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거친 화산섬의 바람과 돌밭을 견뎌온 제주마의 강인함 그대로였다. 휴전 뒤 미군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레클리스는 말년에 제엽염으로 고통받다가 1968년 5월 20세에 캘리포니아주 펜들턴 기지 마구간 사무실 뒤편에 무덤 표시도 없이 묻혔다. 해병대 제1사단협회는 1971년 11월 마구간 정문에 석조기념비를 헌정했다. 100대 영웅으로 선정된 뒤 2013년 버지니아주 국립해병대박물관을 시작으로 2016년 펜들턴 기지, 2018년 켄터키 말 공원, 2019년 국립 카우걸 박물관 및 명예의 전당과 베링턴 힐스 농장, 2020년 플로리다주 세계승마협회 등 미국 곳곳에 레클리스의 동상이 연이어 세워졌다. 펜들턴 기지 동상 앞에는 언제나 신선한 당근이 놓여 있다고 한다. 2016년 레클리스의 고국인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연천군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동상이 건립됐다. 그리고 2024년 10월 레클리스의 뿌리인 제주에도 동상과 기념관이 세워졌다. 70여 년의 긴 여정을 마친 영웅이 고향으로 돌아온 듯했다. 당시 제막식에서 오영훈 지사는 두려움 없는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준 레클리스에 대해 “한국전쟁과 한미 동맹의 상징이자 역사를 함께 쓴 자랑스러운 한라마 레클리스를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했다”며 “이곳에 레클리스 동상을 세운 것은 단순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 국가들의 헌신, 한미 동맹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 포화 속 한국전쟁의 영웅… 7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레클리스’의 전설은 계속된다

    포화 속 한국전쟁의 영웅… 70년만에 고향에 돌아온 ‘레클리스’의 전설은 계속된다

    “작은 체구였지만 모든 기대를 뛰어넘었다. 레클리스는 진정한 해병이었다.” 지난 12일 밸러리 A 잭슨 주한미해병대 사령관이 렛츠런파크 제주를 찾아 군마 레클리스(Reckless··1948~1968) 동상에 헌화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방문은 6·25 전쟁 당시 미 해병대 제5연대 소속으로 전장을 누비며 수많은 대원의 생명을 구한 제주마의 후손 레클리스의 헌신을 기리고 한미 동맹의 가치를 되새기기 위해 마련됐다. 한국마사회 제주지역본부 관계자는 “한라마 출신으로 세계 평화와 자유를 위해 기여한 레클리스는 소중한 역사적 자산”이라며 “앞으로도 렛츠런파크 제주는 레클리스를 중심으로 말 문화를 통한 국제적 우호 증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1997년 미국 시사주간지 ‘라이프’는 특별판 ‘우리의 영웅들을 기리며’를 통해 미국을 빛낸 100인의 영웅을 선정했다. 명단에는 조지 워싱턴과 에이브러햄 링컨 등 미국 역대 대통령을 비롯해 마틴 루서 킹 목사와 테레사 수녀, 배우 존 웨인 등이 이름을 올렸다. 그 사이 낯선 이름이 있었다. 바로 ‘레클리스’. 대통령도, 장군도, 정치인도 아닌 작은 적갈색 암말 한 마리였다.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쟁 영웅으로 떠오른 군마였다. 레클리스는 한국에서 태어난 ‘한라마’였다. 어미는 제주마였고, 아비는 서러브레드 혈통으로 추정된다. 이런 혼혈마를 한국에서는 ‘한라마’로 불렀다. 레클리스는 바위가 많은 화산섬 제주의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작고 단단한 체구를 갖춘 제주마의 강인함과 경주용으로 개량된 서러브레드의 날렵함을 두루 갖췄다. #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는 말…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연천 네바다 전투서 맹활약제주마의 피가 흐르는 레클리스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태어났다. 그대로였다면 경주마의 삶을 살았을 터였으나 1952년 10월 전환점을 맞는다. 주인이던 한국 청년 김혁문이 지뢰 사고로 다리를 잃은 누이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레클리스를 250달러를 받고 미 해병대로 보낸 것이다. 250달러는 당시 해병대 중위 한 달 월급에 맞먹는 액수였다. 레클리스는 새 가족이 된 해병대원들과 깊은 유대감을 나누며 그들을 위해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해냈다. 벙커로 달려가 포격을 피하는 법부터 통신선과 철조망 옆으로 비켜가는 요령까지 빠르게 습득했고 보급 지점에서부터 위험한 산악 지대를 거쳐 최전선 포대까지 대전차화기인 75㎜ 무반동총의 탄약을 나르는 일을 능숙하게 해냈다. 해병대원들은 그런 레클리스를 ‘불가능한 임무를 수행하는 말’로 칭송하며 존경했다. 레클리스의 이름은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레클리스는 특히 1953년 3월 26일부터 30일까지 경기 연천에서 있었던 네바다 전초 전투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연천은 6·25 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레클리스는 27일 하루에만 죽음의 고지를 총 51회에 걸쳐 오가며 약 56㎞를 달렸다. 한 번에 8발 안팎으로 전체 무게가 88㎏에 달하는 무반동총의 탄약을 짊어지고서다. 그렇게 하루 5t이 넘는 탄약을 운반했다. 때로는 부상당한 해병들을 후방으로 이송하기도 했다. 자신도 두 차례 다쳤다. 한 번은 왼쪽 눈 위에, 또 한 번은 왼쪽 옆구리에 파편상을 당했다. 하지만 약간의 치료와 휴식 후 곧바로 임무에 복귀했다. 이런 용기와 헌신으로 레클리스는 두 번씩이나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다. 특히 1954년 3월 31일에는 뛰어난 공적을 인정받아 병장에서 하사로 진급했다. 이는 미군 역사상 동물로서는 최초의 공식적인 계급 승진이었다.이듬해 4월 미 해병대 제5연대 제2대대 앤드루 기어 중령이 당시 주간지였던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에 네바다 전초 전투 당시 레클리스의 활약을 자세히 소개하면서 미국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네바다 전초 전투는 미 해병대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꼽힌다. 기어 중령은 “전쟁에서도 결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은 끔찍한 대포 사격과 폭격이 펼쳐졌으며 분당 500발의 포탄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빗발쳤다”고 기록했다.바로 그 순간, 작은 체구의 한라마 한 마리가 묵직한 탄약통을 등에 실은 채 홀로 능선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레클리스는 폭격 소리에도 놀라지 않고 침착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거친 화산섬의 바람과 돌밭을 견뎌온 제주마의 강인함 그대로였다. # 하루 56㎞ 이동, 죽음의 고지 51번 왕복, 88㎏의 탄약통 지고 총 5t의 탄약 운반휴전 뒤 미군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레클리스는 말년에 제엽염으로 고통받다가 1968년 5월 20세에 캘리포니아주 펜들턴 기지 마구간 사무실 뒤편에 무덤 표시도 없이 묻혔다. 해병대 제1사단협회는 1971년 11월 마구간 정문에 석조기념비를 헌정했다. 100대 영웅으로 선정된 뒤 2013년 버지니아주 국립해병대박물관을 시작으로 2016년 펜들턴 기지, 2018년 켄터키 말 공원, 2019년 국립 카우걸 박물관 및 명예의 전당과 베링턴 힐스 농장, 2020년 플로리다주 세계승마협회 등 미국 곳곳에 레클리스의 동상이 연이어 세워졌다. 펜들턴 기지 동상 앞에는 언제나 신선한 당근이 놓여 있다고 한다. #7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영웅… 오영훈 지사 “한미동맹 기억하기 위해 레클리스 동상 세워”2016년 레클리스의 고국인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연천군 고랑포구 역사공원에 동상이 건립됐다. 그리고 2024년 10월 레클리스의 뿌리인 제주에도 동상과 기념관이 세워졌다. 70여 년의 긴 여정을 마친 영웅이 고향으로 돌아온 듯했다.당시 제막식에서 오영훈 지사는 두려움 없는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준 레클리스에 대해 “한국전쟁과 한미 동맹의 상징이자 역사를 함께 쓴 자랑스러운 한라마 레클리스를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지 못했다”며 “이곳에 레클리스 동상을 세운 것은 단순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 국가들의 헌신, 한미 동맹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하루를 여는 곳, 포항 호미곶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하루를 여는 곳, 포항 호미곶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장기반도 끝자락에 자리한 호미곶은 한반도 지형에서 가장 동쪽으로 길게 돌출된 곶이다. 흔히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할 때 꼬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람들이 지도를 그릴 때 동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바로 그 지점이 이곳이다. 정확한 행정적 최동단은 남쪽의 구룡포읍 석병리이지만 상징성과 인지도 면에서는 호미곶이 ‘대한민국 해맞이의 대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며 이 일대를 무려 일곱 차례 답사한 끝에 우리나라 가장 동쪽 지점임을 확인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 이곳의 이름은 장기군에서 유래한 장기곶이었으며, 대보리의 지명을 따 대보곶이라 불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장기갑이라 불렸고, 2001년 12월에 이르러 지금의 이름 ‘호미곶’으로 공식 변경됐다. 약 500만 년 전, 바다였던 지형이 융기하며 만들어진 이곳은 대부분 암석 해안으로, 해식애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호미곶이 특별한 장소로 자리 잡은 데에는 ‘해’가 있다. 대한민국 내륙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이곳에서는 해마다 대규모 해맞이 축전이 열린다. 2000년과 2001년에는 국가지정 해맞이 축전이 개최됐고, 이후 매년 한민족 해맞이 축제가 이어지며 수만 명의 인파가 새해 첫 해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2026년 병오년 새해 약 5만명의 관광객이 각각의 소망을 품고 이곳을 방문했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중심에는 바다와 육지에 각각 하나씩 세워진 대형 청동 조형물 ‘상생의 손’이 있다. 바다 위에 솟은 오른손과 육지에 놓인 왼손은 서로 마주 보며 화합과 공존, 상생의 메시지를 전한다. 높이 8.5m, 무게 18t에 달하는 오른손은 일출과 어우러지며 압도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왼손은 땅 위에서 이를 받쳐준다.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 돕고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아 제작된 이 조형물은 이제 호미곶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성화대의 화반은 태양을 형상화했고, 두 개의 원형 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 호미곶 광장에는 다양한 곳에서 채화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과 함께 2만명분을 만들 수 있는 떡국 가마솥,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테마공원은 이 지역이 지닌 신화적 상상력을 더한다. 인근에는 한국 유일의 국립등대박물관이 자리한다. 1908년 세워진 호미곶등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해양 항로와 등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바로 뒤편에는 새천년기념관이 있어 전망대에 오르면 호미곶 일대와 영일만의 탁 트인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행의 즐거움은 먹거리와 쉼에서도 이어진다. 호미곶으로 향하는 길목인 구룡포항에서는 겨울철 과메기를 비롯해 대게, 모리국수, 싱싱한 회 등 포항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숙소는 평소에는 여유롭지만 새해 해맞이 시즌이 되면 인근 주민들의 집까지 민박으로 나올 만큼 수요가 급증한다. 성수기를 피해 방문한다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숙박이 가능하다. 자가용으로 이동할 경우 구룡포를 거쳐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꼽히며 구룡포 옆 일본가옥거리도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대보리 일대의 유채꽃밭과 보리밭은 계절에 따라 바다와 어우러진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최근에는 포항역에서 호미곶까지 직행하는 급행버스 노선도 마련돼 접근성도 한층 좋아졌다.
  •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하루를 여는 곳, 포항 호미곶[두시기행문]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하루를 여는 곳, 포항 호미곶[두시기행문]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장기반도 끝자락에 자리한 호미곶은 한반도 지형에서 가장 동쪽으로 길게 돌출된 곶이다. 흔히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할 때 꼬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사람들이 지도를 그릴 때 동쪽으로 뾰족하게 튀어나온 바로 그 지점이 이곳이다. 정확한 행정적 최동단은 남쪽의 구룡포읍 석병리이지만 상징성과 인지도 면에서는 호미곶이 ‘대한민국 해맞이의 대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고산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제작하며 이 일대를 무려 일곱 차례 답사한 끝에 우리나라 가장 동쪽 지점임을 확인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시대 이곳의 이름은 장기군에서 유래한 장기곶이었으며, 대보리의 지명을 따 대보곶이라 불리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장기갑이라 불렸고, 2001년 12월에 이르러 지금의 이름 ‘호미곶’으로 공식 변경됐다. 약 500만 년 전, 바다였던 지형이 융기하며 만들어진 이곳은 대부분 암석 해안으로, 해식애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호미곶이 특별한 장소로 자리 잡은 데에는 ‘해’가 있다. 대한민국 내륙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이라는 상징성 덕분에 이곳에서는 해마다 대규모 해맞이 축전이 열린다. 2000년과 2001년에는 국가지정 해맞이 축전이 개최됐고, 이후 매년 한민족 해맞이 축제가 이어지며 수만 명의 인파가 새해 첫 해를 보기 위해 몰려든다. 2026년 병오년 새해 약 5만명의 관광객이 각각의 소망을 품고 이곳을 방문했다. 호미곶 해맞이광장의 중심에는 바다와 육지에 각각 하나씩 세워진 대형 청동 조형물 ‘상생의 손’이 있다. 바다 위에 솟은 오른손과 육지에 놓인 왼손은 서로 마주 보며 화합과 공존, 상생의 메시지를 전한다. 높이 8.5m, 무게 18t에 달하는 오른손은 일출과 어우러지며 압도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왼손은 땅 위에서 이를 받쳐준다.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 돕고 살아가자는 의미를 담아 제작된 이 조형물은 이제 호미곶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성화대의 화반은 태양을 형상화했고, 두 개의 원형 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 호미곶 광장에는 다양한 곳에서 채화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과 함께 2만명분을 만들 수 있는 떡국 가마솥, 연오랑세오녀 설화를 형상화한 조형물과 테마공원은 이 지역이 지닌 신화적 상상력을 더한다. 인근에는 한국 유일의 국립등대박물관이 자리한다. 1908년 세워진 호미곶등대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해양 항로와 등대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바로 뒤편에는 새천년기념관이 있어 전망대에 오르면 호미곶 일대와 영일만의 탁 트인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행의 즐거움은 먹거리와 쉼에서도 이어진다. 호미곶으로 향하는 길목인 구룡포항에서는 겨울철 과메기를 비롯해 대게, 모리국수, 싱싱한 회 등 포항을 대표하는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숙소는 평소에는 여유롭지만 새해 해맞이 시즌이 되면 인근 주민들의 집까지 민박으로 나올 만큼 수요가 급증한다. 성수기를 피해 방문한다면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으로 숙박이 가능하다. 자가용으로 이동할 경우 구룡포를 거쳐 호미곶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손꼽히며 구룡포 옆 일본가옥거리도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다. 대보리 일대의 유채꽃밭과 보리밭은 계절에 따라 바다와 어우러진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최근에는 포항역에서 호미곶까지 직행하는 급행버스 노선도 마련돼 접근성도 한층 좋아졌다.
  •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이집트 대박물관과 유물 반환 논쟁

    [이미경의 경이로운 미술] 이집트 대박물관과 유물 반환 논쟁

    이집트 카이로의 기자 피라미드 인근에 거대한 유리와 콘크리트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 준비 끝에 개관한 이집트 대박물관은 단순한 박물관을 넘어 이집트의 문화적 주권을 선명히 드러내는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이 박물관은 단일 문명을 다루는 세계 최대 규모의 기관으로, 서구 중심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 자국인의 시각으로 문명사를 재구성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집트 대박물관 개관은 세계 주요 박물관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제국주의의 힘을 앞세워 반출한 수많은 문화재들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대영박물관의 로제타석과 엘긴 대리석, 루브르미술관의 사모트라케의 니케, 베를린 신박물관의 네페르티티 흉상 등 보존이라는 명분 아래 약탈해 간 유물들은 이제 귀환 요구와 함께 새로운 시대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 서구 박물관들은 오랫동안 보존 환경의 우수성이라는 논리를 내세워 반환 문제를 방어해 왔다. 문명의 유산을 안전하게 보관하며 세계 관람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21세기의 시각으로 보자면 이는 제국주의 시기의 불평등한 취득 과정을 가리는 핑계에 불과하다. 2005년 얼굴 없는 화가 뱅크시가 대영박물관의 유물 옆에 몰래 돌조각을 두었으나 박물관 측이 사흘간 알아채지 못한 일화는 이러한 관리의 우수성 주장을 날카롭게 풍자한 사건이었다. 최근 유럽과 북미 여러 기관이 소장품 반환 문제에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2023년 ‘문화재 이니셔티브’를 만들었다. 유물의 출처와 취득 경로를 체계적으로 재검토하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작품을 적극적으로 조정·반환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올해 2월 기원전 7세기의 청동 그리핀 머리 조각을 그리스로 반환했다. 현재 대출 형식으로 같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그리스에 청동 벨트 걸이와 철검 등 12점의 고대 유물을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역시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군이 임의로 가져간 외규장각 의궤 반환을 꾸준히 요구한 결과 2010년 한·프랑스 정상회담을 계기로 영구임대 방식으로 귀환을 성사시킨 바 있다. 이는 과거의 불의를 바로잡는 동시에 유산 반환의 모델을 제시한 사례로 평가된다. 이런 반환 사례들은 박물관의 책임 및 역할 변화, 탈서구 중심주의, 국제적 역사 정의 회복이라는 큰 흐름과 맞물려 있다. 이제 박물관은 자신들의 컬렉션 형성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문화재를 둘러싼 공정성과 윤리를 논의하는 데 능동적 파트너가 돼야 한다. 핵심 유물은 본국에 돌려주되 장기 대여, 공동 연구,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과 같은 형태로 전 세계와 지식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유물을 본국으로 돌려주는 일은 상실이나 패배가 아니라 인류 문화유산을 진정으로 공유하려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다. 이미경 미술사학자
  • 이 대통령 첫 중동 정책 ‘샤인 이니셔티브’…“중동 국가 맞춤형 협력 추진”

    이 대통령 첫 중동 정책 ‘샤인 이니셔티브’…“중동 국가 맞춤형 협력 추진”

    이집트를 공식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카이로대 연설에서 ‘SHINE(샤인) 이니셔티브’라는 이재명 정부 첫 중동 정책을 발표했다. 1970년대 한국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중동 붐’을 넘어 이제는 한국이 주도해 인공지능(AI) 등 미래 혁신 분야에 대한 중동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취임 후 첫 대학 연설에서 대중동 구상인 ‘샤인 이니셔티브’에 대해 “S는 안정(Stability)을, H는 조화(Harmony)를, I는 혁신(Innovation), N은 네트워크(Network), E는 교육(Education)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평화, 번영, 문화 세 가지 영역에 걸친 ‘샤인 이니셔티브’를 토대로 중동과 한반도가 상생하는 미래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이집트의 ‘비전 2030’처럼 각국의 경제발전을 이끌 맞춤형 협력을 추진할 것”이라며 “이미 삼성의 최신 스마트폰이 이집트 국민을 세계와 연결하고 있으며 현대로템의 전동차가 카이로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처럼 우리 정부는 제조업 공동생산을 통해 중동 각국의 수출과 고용 증진에 기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초고속 압축 성장은 중동의 도움 없이 불가능했을 역사적 성취”라며 “이제는 대한민국이 나일강의 기적에 기여할 차례”라고 했다. 이어 “에너지·건설 분야 협력을 공고히 하는 한편 인공지능, 수소 등 미래 혁신 분야로 협력의 지평을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인적 교류 강화도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카이로 대학을 포함한 양국 대학 간의 교류를 확대하고 더 많은 이집트 학생이 한국으로 유학 올 수 있도록 ICT 분야 석사 장학생 사업, 연수프로그램 확대 등 제도적 지원을 늘려가겠다”고 했다. 이어 “최근 개관한 이집트 대박물관과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이 다양한 협력을 이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를 모두 인정하는 이른바 ‘두 국가 해법’에 대해 “일관되게 지지한다”고 했다. 두 국가 해법은 미국이 지지하는 이팔 분쟁 해법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한국과 이집트의 관계 강화를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이집트와 대한민국은 특별한 관계에 있는 형제와 같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올해는 한·이집트 수교 30주년을 맞이하는 참으로 뜻깊은 해”라며 “한 세대 만에 양국은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고 교역과 투자는 물론이고 인적·문화적 교류를 늘려가며 양국 관계의 토대를 견고하게 쌓아 올려왔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아랍어로 인사말을 하며 현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박수를 받았다. 이 대통령은 연설 시작 때 “앗 살람 알라이쿰(안녕하세요), 발음이 엉성하고 이집트 말은 엉망이죠? 그래서 앞으로 말씀은 부득이 한국말로 해야 되겠다”고도 말했다.
  • [씨줄날줄] 박물관과 ODA

    [씨줄날줄] 박물관과 ODA

    이집트 언론이 엊그제 ‘이집트 문화유산관광부가 이집트대박물관 운영권을 일본이 10년 동안 갖는다는 소셜미디어의 소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는 기사를 일제히 실었다. 이런 루머가 퍼질 만큼 일본 국제협력단은 이집트대박물관 건립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세계 최대 박물관이라는 이집트대박물관은 지난 1일 문을 열었다. 일본과 이집트의 박물관 협력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일본은 공적개발원조(ODA)로 870억엔(약 8220억원)을 지원했다. 박물관과 함께 별도의 유물보존복원센터를 건립하고 보존과학 기술을 전수하는 데 힘썼다. ‘이집트 스스로 유물을 복원하고 보존하는 능력을 갖게 한다’는 복원센터 슬로건은 큰 공감을 불렀다. 일본과 이집트의 보존과학 협력은 5000점 남짓한 투탕카멘 유물의 10년 이상에 걸친 복원 프로젝트에서 특히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기존의 이집트박물관은 카이로의 타흐리르광장에 있었다. 프랑스의 이집트학자들이 주도해 1902년 세운 박물관이다. 하지만 발굴조사가 이어지면서 소장 유물이 크게 늘어났고 당연히 전시 및 수장 공간은 부족해졌다. 나일강의 습기와 도심의 대기오염이 유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결국 기자 피라미드 유적군(群)과 연계한 또 하나의 기념물로 이집트대박물관이 기획됐다. 일본과 이집트의 협력을 보면서 한국과 캄보디아의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올해 한국의 캄보디아에 대한 ODA는 4352억원 규모다. 우리는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중심으로 캄보디아의 세계적 보물인 앙코르와트 보존에 힘을 보태고는 있지만 규모는 미미하다. 온라인 사기 범죄 여파로 캄보디아에 대한 ODA를 삭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 이참에 논란이 불필요한 인류공동유산 지원으로 ODA가 눈을 돌려 보면 어떨까 싶다. 꼭 캄보디아일 필요도 없다. 이집트대박물관에서 보듯 지원국의 흔적이 진하고 오래 남는 투자다.
  • 성신여대박물관, 학생 150명 참여 특별전 ‘가리사니’ 개막… 대형 아카이빙 작품 눈길

    성신여대박물관, 학생 150명 참여 특별전 ‘가리사니’ 개막… 대형 아카이빙 작품 눈길

    성신여자대학교박물관(관장 임상빈)은 학생과 교직원 150여 명이 공동 참여한 특별전 ‘가리사니: 성신에서 마주한 통찰의 실마리’를 지난 22일 운정그린캠퍼스 성신미술관에서 개막했다고 24일 밝혔다. 이번 특별전은 개교 6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으며, 순우리말로 ‘사물을 판단할 수 있는 지각이나 실마리’를 뜻하는 제목처럼 성신 구성원의 통찰과 예술적 시도를 한데 모았다. 전시는 크게 두 가지 섹션으로 구성됐다. 성신여대 전시 동아리 ‘스튜디오 오버 파워’ 작가들의 회화·조각 작품과, 박물관 프로젝트 ‘다 같이 그려라! 성신 캔버스 아카이빙’을 통해 학생과 교직원 150여 명이 제작한 대형 아카이빙 작품이 함께 전시돼 시선을 끈다. 임상빈 성신여대박물관장은 “설립자 리숙종 박사의 예술에 대한 깊은 애정을 이어받아 매년 재학생들의 예술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적극적인 예술활동 참여를 통해 상상력과 창의력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개막식에는 이성근 성신여대 총장, 임상빈 박물관장 등 주요 관계자와 해외 교류 대학인 이 와얀 아드냐나 인도네시아 발리예술대학 총장 등 내외빈이 참석해 참여 학생들을 격려했다. 전시는 다음달 19일까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 시간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 올 추석 관광은 경북 포항에서…관광 편의 위해 공영주차장 ‘무료’

    올 추석 관광은 경북 포항에서…관광 편의 위해 공영주차장 ‘무료’

    경북 포항시가 추석 연휴를 맞아 풍성한 볼거리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2일 포항시는 긴 추석 연휴를 맞아 지역을 찾는 귀성객과 전국 관광객이 만족스러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준비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연휴 기간 전통시장 인근 공영주차장을 무료 개방하고, 여가 플랫폼을 통한 숙박 할인 이벤트와 야간관광 상품 40% 할인 등 특별 혜택을 마련했다. 추석 당일인 6일 보경사, 사방기념공원, 스페이스워크, 오어사 둘레길, 이가리 닻 전망대, 해상스카이워크, 호미곶 새천년기념관 등 주요 관광지는 모두 정상 운영된다. 대표 관광명소인 스페이스워크는 연휴기간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운영되고, 연휴가 끝나는 13일 휴무를 시행한다. 민간공원 특례사업의 핵심 시설인 환호공원 식물원이 정식 개장하면서 연휴 기간 시민과 관광객에게 도심 속 자연 휴식 공간을 제공할 전망이다. 식물원 입장료는 포항 시민은 50% 할인을 적용해 1500원이고 추석 당일은 휴무다. 문화 행사도 다채롭다.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에서는 민속놀이와 기획전 ‘달을 그리다’가 열리고, 구룡포 아라예술촌, 과메기문화관 등에서도 민속놀이 체험과 전시가 열린다. 국립등대박물관에서는 어린이·가족 대상 체험 프로그램 ‘등대 놀이터’를 운영한다. 연휴 마지막 주말인 11~12일에는 연오랑세오녀테마공원에서 포항 대표 전통축제인 ‘일월문화제’가 열린다. 풍물 경연, 국악 공연, 신라복 체험 등 다양한 전통문화 행사가 진행돼 국내외 관광객의 발길을 모을 전망이다. 이강덕 시장은 “문화·관광도시로 도약하고 있는 포항 곳곳에서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며 “이번 추석 연휴에 관광객과 시민 모두 포항의 매력적인 관광자원과 세대를 아우르는 행사를 즐기며 따뜻하고 풍성한 명절을 보내시길 바란다”고 했다.
  • 포스코, 직장 어린이집 아이 위한 여름 체험 프로그램 운영

    포스코, 직장 어린이집 아이 위한 여름 체험 프로그램 운영

    포스코가 임직원 자녀를 대상으로 여름 특별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7일 포스코는 포스코어린이집이 2025년 여름을 맞아 원아를 대상으로 특별 체험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포스코는 포항, 광양, 서울 등 주요 사업장 소재지에 직장 어린이집을 운영 중이다. 특히 경북 포항의 지곡어린이집과 동촌어린이집은 지역 임직원과 그룹사 및 협력사 직원들에게 높은 만족도를 얻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 지난 7월 포항 남구 오천 캠핑장에서 아빠참여수업 ‘두근두근! 아빠와 함께 썸머 어드벤처’가 열렸다. 아이들은 아빠와 함께 풀장에서 물장구를 치고, 거품 놀이를 하며 추억을 만들었다. 같은 달 어린이집 잔디마당에는 대형 워터슬라이드와 풀장을 설치해 물놀이도 즐겼다. 8월에는 등대박물관과 호미곶 돌문어 홍보판매센터를 방문하는 해양 체험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등대박물관에서 등대 역할을 배우고, 돌문어를 직접 관찰하는 등 색다른 경험을 쌓았다. 이 외에도 포스코는 임직원의 일·가정 양립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가족친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자녀 출산장려금을 비롯해 50만원 상당의 ‘아기 첫 만남 선물’도 제공한다. 격주 4일제, 난임 치료 지원, 임신기 단축근무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포스코 어린이집 관계자는 “올여름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형 프로그램을 통해 건강하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며 “앞으로도 아이들의 성장과 행복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유홍준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 “K컬쳐 뿌리 박물관, 문화 강국 위상 보여주겠다”

    유홍준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 “K컬쳐 뿌리 박물관, 문화 강국 위상 보여주겠다”

    “K컬처의 뿌리가 여기(박물관)에 있음을 국민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고 세계만방에 알려 ‘K문화강국’의 위상을 드높이라는 시대적 요구와 명령 앞에 놓여 있습니다.” 유홍준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소강당에서 취임식을 열고 시대가 박물관에게 요구하는 것이 변화하고 늘어났다며 이제는 ‘문화강국’의 위상을 세계에 보여줘야한다고 강조했다. 유 관장은 이날 취임사에서 “누구보다 많이 박물관을 애용하면서 항시 밖에서 전적으로 응원해 왔는데 이 자리에 서고 보니 이제 객석에서 내려와 선수로 뛰게 된 기분”이라며 “국립박물관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문화재를 보존 관리하면서 그 가치를 연구하고 전시를 통해 이를 세상에 알리며 안으로는 국민에게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밖으로는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박물관의 3대 구성요소는 유물, 건물, 사람인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며 “사람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박물관의 모습과 위상이 달라지고 그 성과는 어떤 형태로든 전시회를 통해 나타나고 수렴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상설전시든 기획전시든 좋은 전시를 위해서는 유물의 보존처리, 학술연구, 전시 디스플레이, 박물관 교육, 풍부한 아카이브, 대내외 홍보, 원활한 행정지원, 완벽한 안전, 긴밀한 민간협업, 친절한 민원 등이 원활히 수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 관장은 앞으로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13개 소속 국립박물관을 이끌게 된다. 유 관장은 198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으로 등단했다. 영남대박물관장, 문화재청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로서 연구와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왔다.
  • 제주역사관, 민속자연사박물관과 통합… ‘제주도립박물관’ 탄생 유력

    제주역사관, 민속자연사박물관과 통합… ‘제주도립박물관’ 탄생 유력

    민선 8기 제주도정의 문화예술 공약인 ‘제주역사관’이 기존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과 통합해 제주도립박물관으로 재탄생하는 방안이 유력시되고 있다. 제주역사관조성추진위원회는 2일 오후 4시 제주문예회관 소극장에서 ‘가칭 제주역사관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 최종보고회’를 열고 “공공성·대표성·정서적 수용성을 고려해 제주역사관과 민속자연사박물관을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제시한다”고 밝혔다. 또다른 안은 제주 최초 공공박물관인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기존 명칭을 쓰되 본관을 민속자연사박물관, 별관을 제주역사관으로 하는 안이 제시됐지만, 현재로선 공공성과 신뢰성 부여를 위해 제주도립박물관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제주역사관조성추진위원장인 주진오 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현재 제주도립미술관은 있으나 도립박물관이 없다”면서 “제주도립 명칭을 통해 지역 정체성과 대표성을 강화하고 제주 관련 전 분야를 아우르는 제주의 대표 박물관임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한 전영준제주대박물관장, 김동우 국립제주박물관장 등 추진위원들도 제주역사관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통합에 결을 같이 했다. 삼성혈, 민속자연사박물관, 제주문예회관 등이 주요시설로 들어선 신산공원(일도이동 96-11)에 건립예정인 제주역사관 부지로는 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 부지, 국일건재사 야적장 부지, 수눌음관을 활용한 리모델링 및 증축,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광장 등 4곳이 후보지로 선정됐으나 최종 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 부지로 확정됐다. 박찬식 민속자연사박물관장은 “현재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 부지가 건립 타당성 조사에서 건축행위 제한에 있어 자유롭다는 점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면서 “신산공원 근린공원 시설이 포화상태이고 도로변에서 박물관 주차장 부지가 잘 보이는 이점이 있어 시민들도 공유하는 도민박물관으로 정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박물관 독립 주차대수가 36대(대형버스 포함)에 불과해 주차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대해 “한정된 부지내에서 어떻게 주차공간을 확보할 지는 서로 고민해야 하지만 신산공원 인근에는 삼성혈 중심으로 한 주차장, 공영주차장이 불과 2~3분내에 위치해 있어 부족한 점을 메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기지방재정계획 반영과 문체부 설립협의 절차를 하반기에 실시하고 내년 설계공모 및 선정, 실시설계가 끝나면 2027년에 착공에 들어가 2028년말 완공해 2029년에 개관할 예정이다. 사업준비단계부터 준공 및 시운전까지 박물관 건립에 약 54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주 위원장은 “물리적으로 시간이 매우 부족하다. 목표대로 일정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전시 자료수집, 확보 등 학예 연구사 등 전담인력이 서둘러 확충돼야 한다”며 “건립할 때까지 손 놓고 있으면 예정대로 개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위원 중 일부에선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용역에서 제주역사관의 향후 방문객이 약 연간 73만여명으로 예측한 것은 부풀리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관광객 유입 감소 등 현실을 고려해 이보다 낮게 잡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의 연간 방문객의 3배를 넘는데다, 국내 다른 곳의 역사관 및 박물관 연간방문객과 비교해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송원섭 제주대교수는 “재방문율을 높이기 위해 전시 주제의 다양화를 비롯해 삼성혈과 민속자연사박물관 연계한 민속 문화 체험형 프로그램을 활성화하고 열린도서관, 카페 등을 통해 도민들의 재방문율을 높여야 한다”면서 “특히 대박 난 돌문화공원처럼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참여 프로그램이 늘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총사업비는 294억 4800만원이 투입되는 제주 역사관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 주차장 부지(일도2동 923)에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4130㎡ 규모로 지어질 예정이다. 지하에는 주차장 36면이 조성되며, 지상에는 전시실과 강의실, 세미나실, 열린도서관, 시민전시실, 카페 등이 마련된다.
  • 사라진 돌하르방 하나… 대체 무사 영 되수광?

    사라진 돌하르방 하나… 대체 무사 영 되수광?

    제주 지킨 ‘원조’ 돌하르방은 48기뿔뿔이 흩어져서 1기는 ‘행방불명’읍성마다 몸집·손 모양 각양각색돌하르방 있는 곳 대부분 유적지이달 절정 ‘수국 명소’도 들러보길제주는 ‘비바리’(일반적으로 ‘여자’를 뜻하는 제주 사투리)의 세계다. 제주를 만들었다는 신화 속 ‘마고할망’부터 세계유산 해녀까지 죄다 비바리다. 그럼 ‘소나이’ (‘남자’의 제주 사투리)는 뭘 하고 있었을까. ‘소나이’ 가운데 그나마 두드러진 활약을 하고 있는 건 ‘돌할아버지’ 돌하르방 정도다. 돌하르방에도 문화유산이 있다. 총 48기였는데 현재 남은 건 47기다. 제주도 안에 45기, 서울에 2기, 그리고 1기는 행방불명이다. 돌하르방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우리가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은 돌하르방이라는 이름의 유래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이번 여정에서는 제주와 서울의 돌하르방을 찾아 나선다. 돌하르방의 비밀에 한걸음 다가서 보자는 뜻이다. 잘 몰랐을 뿐 돌하르방이 있는 곳은 대부분 제주의 대표 유적지다. 관광으로서도 그리 ‘손해 볼 것 없는’ 여정이라는 얘기다. ‘다들 어디 계서쑤꽈?’ ‘다들 어디 계셨습니까’의 제주 사투리다. 여러 해 전에 제주의 돌하르방을 찾아 다닌 적이 있다. 당시에는 돌하르방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하나하나 찾으려니 시간이 너무 걸린 탓에 중도에 답사를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이후 돌하르방을 원래 위치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일었고, 일부는 아쉽게나마 옛 형태대로 집합을 이뤘다. 그러니까 4인 1조의 ‘완전체’가 됐다는 뜻이다. 그 덕에 돌아보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지금도 일부는 여전히 흩어져 있다. 특히 옛 제주목에 속했던 돌하르방들이 그렇다. 대체 ‘무사 영 되수광?’(왜 이렇게 되셨어요?)인지…. ●삼다도서 가장 유명한 ‘소나이(男)’ 돌하르방 답사 여정에서 먼저 챙겨야 할 것은 돌하르방의 개념 정립이다. 돌하르방은 ‘조선시대 관청인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의 성문 앞(혹은 성문 밖)에 세웠던 현무암 석인상’이다. 이 정의는 꽤 중요하다. 언제, 어디에 세웠는가로 돌하르방의 본질이 규정되기 때문이다. 온라인 검색 사이트에는 “불교 미륵 신앙의 영향을 받아 육지에서 큰 돌을 미륵이라 부르는 것처럼 미륵, 돌미륵이라 불리기도 한다”고 표기돼 있는데, 이는 명백히 잘못된 사실이다. 재질과 형태가 비슷할 뿐 돌하르방과 불교는 아무 연관이 없다. 관청 외 장소에 세워진 석인상도 마찬가지다. 돌하르방이라 불리기는 하지만, 문화유산으로서의 돌하르방은 아니다. 제주 향토사 학계 등에 따르면 돌하르방이라는 이름이 공식 채택된 때는 1971년이다. 당시 제주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때 어린이들이 ‘돌할아버지’라는 의미로 즐겨 부르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돌하르방으로 굳어졌다. 제작 연대는 조선 영조 30년인 1754년(태종 18년인 1418년 대정성을 시작으로 정의성과 제주성에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즈음으로 추정된다. ‘탐라지’에 제주목사 김몽규가 세운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당시 제주의 행정구역은 제주목과 대정현·정의현 등 1목 2현이었다. 세 곳에는 모두 읍성이 있었다. 돌하르방은 제주목사가 머무는 제주읍성의 동서남문에 각 8기씩 24기, 현감이 머무는 두 현성의 동서남문에 각 4기씩 24기를 세웠다. 돌하르방이라 불리는 건 이때 세워진 48기의 석인상을 뜻한다. 당시에는 ‘옹중석’이라 불렸다. 문제는 문헌에 누가, 언제 세웠는지만 적었다는 거다. 그러니까 돌하르방을 세운 고위 지방관의 이름과 공덕만 중요했을 뿐 누가, 어떤 가치를 담아, 어떤 과정을 거쳐 돌하르방을 제작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거다. 돌하르방을 둘러싸고 갖가지 추리가 난무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각 돌하르방에는 수문장, 수호신, 벽사 등 주술적 의미가 담겼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내륙의 하마비(下馬碑)처럼 ‘여기서부터 지방관이 머무는 성내(城內)로 진입한다”라는 경계 표시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니까 마을마다 세웠던 내륙의 장승과는 결이 꽤 다른 셈이다. 돌하르방은 모두 48기였으나 현재는 47기만 남았다. 제주성에 있던 24기 가운데 동문 밖의 2기는 1960년대에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옮겨졌다. 문화유산 지정 때도 제외됐다. 남은 21기도 관덕정(2기), 제주목관아(4기), 제주대학교박물관(4기), 제주시청(2기), 삼성혈 입구(4기), 제주민속사자연박물관(2기), 제주 KBS(2기), 제주돌문화공원(1기)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다. 1기는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 묘연하다. 강원 동해시 묵호항역에 제주가 원산인 돌하르방이 1기 있기는 하다. 1960년대 언저리에 묵호로 옮겨 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 돌하르방이 제주목관아에 있다가 ‘실종’된 것인지를 규명하려면 학술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수난의 시대 이겨낸 돌하르방들 정의현 읍성과 대정현 읍성의 돌하르방도 한때 흩어졌었지만, 현재는 대정성터 남문의 4기를 제외하고 ‘4인 1조의 완전체’ 형태를 갖추고 있다. 제주성에 견줘 24기 전체를 비교적 쉽게 돌아볼 수 있다. 각 성의 돌하르방들은 모양이 다르다. 키는 제주목 돌하르방의 평균 신장이 187㎝로 가장 크다. 이어 정의현 141㎝, 대정현 134㎝ 순이다. 제주목관아의 한 학예사는 “각 읍성의 위계에 따라 크기를 달리했을 것”이라며 “대정 몽생이(망아지를 뜻하는 단어로 몸집이 작은 사람을 낮춰 부르는 말)라는 옛 표현처럼 지역별 특성도 고려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당시 제주목사는 정3품의 당상관이었고 대정현감과 정의현감은 종6품의 당하관이었다고 한다. 현재 돌하르방의 표준 모델로 지정된 것은 제주목의 돌하르방이다. 제주도 기념품 등에도 이 표준 모델이 쓰이고 있는데, 정의현 읍성이나 대정현 읍성의 돌하르방을 상대적으로 귀엽게 보는 시각도 있는 만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돌하르방은 모두 모자를 쓰고 있다. 제주목 돌하르방은 모자 높이가 높고 넓은 테가 달린 벙거지 형이다. 정의성, 대정성으로 갈수록 모자 높이가 낮아지고 테두리도 좁아진다. 이 모자로 인해 돌하르방의 기원을 놓고 ‘북방 유입설’(몽골 영향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몽골 지배기에 몽골의 장수를 모사했다는 것인데, 현재는 사문화돼 가는 모양새다. 대신 우리나라 남녘의 ‘벅수 문화’가 영향을 줬다는 ‘남방 기원설’, 해양 기술이 강성했던 옛 탐라가 내륙의 문화를 부분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제주 자생설’ 등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돌하르방의 손 모양에도 차이가 있다. 왼손과 오른손을 위아래로 교차해 배 위에 얹은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마치 창을 들고 찌르려는 것처럼 옆으로 제쳤거나 평행하게 맞잡은 경우도 있다. 또 주먹을 쥔 듯한 정의현 돌하르방과 달리 대정현의 경우 대체로 손바닥을 편 모양새다. 이런 이유로 오른손이 위에 있으면 문관, 왼손이 위에 있으면 무관이라거나 유난히 가슴이 튀어나온 돌하르방은 여성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하지만 성을 지킨다는 측면에서 남자, 무관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돌하르방은 조선이 일제에 망하고 광복 후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급격히 위엄을 잃었다. 뿔뿔이 흩어지는 수난도 겪었다. 그나마 정의현의 경우 1980년대 성읍민속마을이 조성되면서, 대정현에서는 이보다 늦은 2018년에 제자리에 가깝게 복원됐다. ●손해 볼 것 없는 ‘돌하르방 찾기’ 여정 아쉽게도 제주목 ‘출신’의 돌하르방은 형태를 온전히 갖추지 못한 편이다. 복잡한 제주 도심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둘러보기도 어렵다. 제주대박물관에 전시된 돌하르방이 그나마 가장 완전한 편이다. 박물관에서는 암각화의 일종인 칠성석상, 민속문화유산인 동자복, 집터 등을 다질 때 쓰던 땅 다짐돌 등 제주의 다양한 석물 문화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제주목관아와 돌문화공원에서는 각각 입장료를 내야 돌하르방과 만날 수 있다. 관덕정과 탐라국의 기원이 됐다는 삼성혈 등은 제주의 대표 역사 유적지인 만큼 방문할 때 돌하르방도 꼭 함께 찾아보길 권한다. 정의읍성은 표선면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곽이다. 제주를 대표하는 민속마을인 성읍마을을 감싸고 있다. 아직 입장료를 받고 있지는 않지만, 제주도 내 대부분의 관광지가 유료화되는 추세인 만큼 조만간 유료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대정읍성은 대정읍에 있다. 내비게이션으로는 ‘추사관’을 검색해야 헛걸음하지 않고 정확하게 찾아갈 수 있다. 추사관은 제주로 유배돼 온 추사 김정희의 삶과 예술 세계를 기리는 공간이다. 그의 걸작 ‘세한도’를 모티브로 삼은 외형이 독특하며 내부의 건축적 조형미도 빼어나다. 돌하르방은 추사관과 보성초등학교 주변에 흩어져 있다. 대체로 키가 작아 친근하게 느껴진다. 돌하르방은 수많은 ‘밈’(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콘텐츠 등 파생 문화)을 낳았다.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슉 슈슉 돌하르방’이다. 난타 공연에서 칼춤 추는 장면을 모티브로 만든 것인데 여전히 소셜미디어(SNS)에서 유행하고 있다. 제주시 호텔난타 정문 옆에 있다. 제주시 다음카카오 본사 앞의 ‘인터넷 하는 돌하르방’, 서귀포시 김영갑갤러리 안의 ‘카메라 돌하르방’도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돌하르방 인증샷 명소다. 요즘 제주에서 주목할 만한 이슈 두 가지를 소개한다. 우선 수국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다. 이맘때 많은 여행자를 불러 모으는 꽃이다. 정의읍성과 대정읍성 주변에도 수국이 만개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검은 현무암 성벽과 어우러진 수국의 자태가 무척 인상적이다. 성산일출봉, 휴애리자연생활공원 등 유무료 수국 명소들도 이달 하순이면 절정에 이를 전망이다. ●한라산 자락 고즈넉한 기린빌라리조트 ‘가성비 갑’ 숙소로 꼽히는 한라산 중산간의 기린빌라리조트는 3차 단지를 오픈한다. ‘기린캠프랜드’ 야영장과 야외 수영장 등의 시설로 구성됐다. 야영장 주변에 나무가 부족한 점은 아쉽지만 눈뜰 때마다 한라산이 보이는 건 최고의 강점이다. 한라산 중산간에 조성된 수영장도 분위기가 고즈넉하다. 실내에 유아 전용 풀도 있다. 3차 단지 공식 개장일은 새달 1일이다. 기린빌라리조트는 제주에서도 최고의 가성비가 돋보이는 숙소다. 무려 50평대의 고급 타운하우스를 15만원 선에 이용할 수 있다. 가구마다 야외 개별 정원이 있어 음식물 등을 조리해 먹기에도 좋다. 일반에 분양된 건물 일부도 리조트 측이 숙박업소로 위탁 관리하고 있다. 부대 시설이 부족하고 환경 정비 부분이 다소 아쉽기는 해도 숙소라는 면에서만 보면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들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부족한 부대 시설은 제휴로 대체하고 있다. 골프장, 음식점, 상효원 등 관광지의 제휴 업소를 찾아가면 대폭 할인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다. 맛집 한 곳 덧붙이자. 제주 도두항의 ‘몰래물밥상’은 서울 특급호텔 조리장 경력을 가진 주인장이 차려 내는 밥상이 맛깔스러운 집이다. 붕어찜처럼 시래기를 깔고 조리한 갈치조림이 특히 인상적이다. 여기에 단일 메뉴로도 충분할 옥돔구이, 갈치튀김 등이 ‘딸려’ 나오는데, 입에 착 붙는다.
  • 목포해양수산청, 20년 된 기록물 담긴 ‘타임캡슐’ 개봉···186건 공개

    목포해양수산청, 20년 된 기록물 담긴 ‘타임캡슐’ 개봉···186건 공개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이 오는 31일 제30회 바다의 날을 기념해 전남 신안군 흑산면 가거도등대에 묻어놓은 타입캡슐 개봉행사를 가졌다고 29일 밝혔다. 이 타임캡슐에는 20년 전인 2005년 5월 31일 제10회 바다의 날을 기념하여 당시 근무하던 직원과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바다의 날을 의미하는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접수받아 가거도등대 앞 부지에 봉인하여 묻어 둔 것으로, 자신과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당시 업무자료 및 물품 등 186건의 사연과 기록물이 담겨있었다. 가거도등대는 우리나라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바다를 비추며 지난 119년간 수많은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해온 역사적인 장소이다. 목포해수청 관계자는 “이번 타임캡슐 개봉은 그 상징성과 더불어 국민과 함께 해양의 가치를 돌아보고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의미 있는 자리가 되었다”고 밝혔다. 타임캡슐 내부 기록물은 보관하고 있는 주소를 바탕으로 개인에게 우편으로 전달하고, 역사적·문화적 가치가 있는 기록물은 별도로 선별하여 국립등대박물관에 이관할 예정이다. 김태환 목포해수청장은 “20년 전 바람과 소망이 이루어져 있기를 희망하며, 이번 행사를 통해 과거와 현재를 잇고 나아가, 미래로 나아갈 새로운 다짐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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