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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전원주 유서 공개됐다… “중환자실에서 울면서 써”

    배우 전원주 유서 공개됐다… “중환자실에서 울면서 써”

    배우 전원주(86)가 수술을 앞두고 직접 쓴 유서를 공개했다. 전원주는 지난 7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전원주인공’에 올라온 ‘전원주 집정리 2탄’이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안방을 정리하던 중 유서를 발견하고는 제작진 앞에 꺼내놨다. 전원주는 “내가 유서까지 써놨다. 아플 때 쓰게 된다”고 말했다. 제작진이 “쓰실 때 마음이 어떠셨냐”고 묻자, 전원주는 “울면서 썼다”고 말한 뒤 떨리는 목소리로 유서를 읽어 내려갔다. 유서에는 ‘힘들 때는 서로에게 용기를 주고 기쁠 때는 서로에게 웃음을 주고, 이제와 생각하니 너무 미안하다. 유난히 쓴소리를 많이 한 나. 너희들이 많이 힘들었음을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겠냐’라는 가족을 향한 마지막 마음이 담겼다. 또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나도 이제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고 떠나련다. 내 쓴소리가 너희들 인생에 좋은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저세상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아라’는 내용도 있었다. 전원주는 유서를 쓰게 된 이유도 처음 공개했다. 그는 “고관절 수술을 받을 때 병원에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하더라. 생명이 잘못될 수도 있다고 해서 쓴 것”이라며 “수술 들어가기 전에 내 마음을 그대로 적었다. 쓰면서 눈물이 막 나오더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병원 중환자실에서 울면서 썼다. 그때는 정말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이며 당시의 두려움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전원주는 지난 3월 빙판길에서 넘어져 고관절이 골절돼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고령인 만큼 건강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고, 유튜브 활동도 잠시 중단했던 바 있다. 이후 건강을 회복한 그는 다시 유튜브를 통해 밝은 근황을 전하고 있다. 유서를 접한 며느리는 “어머니, 마음이 너무 아프다”라며 눈물을 보였다. 전원주 역시 “그때는 아들 생각이 제일 많이 났다. 내가 잘해야 아들이 편안하게 살지 않겠냐는 생각뿐이었다”고 고백해 먹먹함을 더했다. 눈물바다가 된 분위기 속에서도 전원주는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며느리가 “앞으로 쓴소리 안 하시면 되지 않냐”고 농담을 건네자, 전원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변을 웃게 했다.
  • 시인은 가도 낱말은 남아 나를 안았다

    시인은 가도 낱말은 남아 나를 안았다

    故허수경 시인의 ‘마지막 불꽃’8년 만에 유고 시집으로 찾아와 선물처럼 다시 만난 시인의 세계필사·낭독회엔 독자 발길 이어져 시인은 가고 없어도 시인의 마음을 간직한 시는 여기에 남아 있다. 그것은 언젠가 다른 이의 음성으로 환하게 읽힐 날을 기다린다. 어쩌면 인간은 그렇게, 문학을 통해 죽음을 견뎌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시인 허수경(1964~2018)의 유고 시집 ‘만일 그대가 나보다 먼저 간다면’이 그의 생일인 지난 9일 출간됐다. 시인이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8년 만이다. 사람을 지독히도 사랑했고, 시에는 한없이 엄격했던 허수경의 마지막 불꽃이 시간의 지층을 뚫고 마침내 우리에게 왔다.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2016)를 마지막으로 시인의 세계가 끝난 줄 알았던 독자에게는 뭉클한 선물이다. “어제는 당신이 나를 더 기다렸고/ 오늘은 내가 당신을 더 기다린다/ 그것만이 농담이 아닌 이국의 공항에서/ 상냥한 벗인 취기에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아, 당신을 기다리면서 물들면서/ 나는 이 세상 속, 어떤 예쁜 사람이 되어/ 사라져간다”(‘공항에서’ 부분) 허수경의 삶은 이방인으로서 고독함과 괴로움을 견디는 일의 연속이었다. 1987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은 1992년 돌연 독일로 떠났다. 줄곧 그곳에서 살며 시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고고학을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런 그에게 ‘공항’이 지니는 의미는 남달랐을 것이다. ‘나’를 ‘너’와 이어주는 관문으로서 공항은 기꺼운 기다림의 공간이다. 그러나 기다리는 일은 동시에 이 세상에서 조금씩 사라지는 일이기도 하다. 오랜 기다림 속에서 우리의 육신은 서서히 증발한다. 이곳에 남는 것은 너를 향했던 사랑, 그리고 그것을 애절하게 기록한 시뿐이다. “나는 너야. 나는 바람, 태양, 소금, 물이 필요해. 그리고 짝짓기도. 나를 먹으렴. 나는 너니까. 너는 네 욕망의 근원이고 네 복의 근원이고 심지어 네 불행의 근원이니까. 너는 너의 모든 근원이니까. 너를 먹으렴.”(‘나의 코끼리 꿈과 코끼리의 내 꿈’ 부분) 허수경의 생일에 맞춰 시집을 출간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생전 시인과 가까웠던 후배이자 이번 시집을 편집한 김민정 시인은 “지난해 유족들을 통해 한국에서 언니(허수경)의 사망신고가 아직 안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서류상으로는 아직 살아 있는 언니를 이제 편히 쉬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수경의 기일인 오는 10월 3일에는 시인을 기리는 나무를 한 그루 심고 그 아래 문인과 독자들의 편지를 담은 달항아리도 함께 묻을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시집 전문 서점 위트 앤 시니컬에서는 출간일에 맞춘 기념행사 ‘허수경 하루’가 열리기도 했다. 오후 2시부터 종일 허수경의 시를 필사하고 낭독하는 자리였다. 저녁 7시에 시작한 낭독회에는 50명이 참석했다. 서점 안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였다. 대학생 노윤서(23)씨는 “시인의 시를 다른 사람과 함께 손으로 쓰니 ‘시집’이라는 말처럼 함께 하나의 집을 짓는 기분이 들었다”고 전했다. 낭독회는 밤 10시가 가까워서야 마무리됐다. 분위기가 점점 무르익을수록 서점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의 마법일까, 이상하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울지 않고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시가 하나 있었다. 소리 내어 읽어내는 것조차 버거운, 압도적인 슬픔. 현장은 단숨에 눈물바다가 됐다. “집 앞을 쓸다가 마주친 이웃이 물었다/ 당신의 고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나도 모른다, 고 말하는데/ 눈물이 났다/ 사람들이 바닷속에 있어요/ 엄마들이 울고 아빠들이 울고/ 삼촌 친구 짝사랑하던 소녀가 울고/ 잠수부가 울고/ 다 우는데 아무도 몰라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영원한 실종을 완성할 일이/ 제 고향에서 일어났는지도 몰라요 … 이십 년 동안 독일에 살면서/ 망설이면서도 포기한 적 없던/ 내 얼굴의 고향은 서러웠다/ 길게 울었다 눈앞에 없는/ 바다 앞에서/ 고향의 수박등이 흔들렸다”(‘누군가 물었다’ 부분)
  • 김부겸 “점퍼 색 아닌 일꾼으로 승부할 시대 온다”…눈물바다 된 해단식

    김부겸 “점퍼 색 아닌 일꾼으로 승부할 시대 온다”…눈물바다 된 해단식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6·3 지방선거 이튿날인 4일 “대구도 점퍼 색깔이 아니라 시민들 곁에 진지하게 다가가는 일꾼의 모습으로 승부를 낼 수 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고 말했다. 사상 첫 민주당 소속 대구시장으로 새로운 정치사를 쓰려 했으나 다시 한번 고배를 마신 그가 대구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봤다고 평가한 것이다. 김 후보는 이날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동에 있는 선거사무소에서 선대위 해단식을 열고 “그동안 대구에서 우리 당(민주당) 지지율이 30%를 겨우 왔다 갔다 했지만, 이번에 시의원 후보들의 평균 득표율이 35%까지 올라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고지는 10%만 더 올리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지난 두 달 동안 활기차게 함대 같이 진군하는 선거를 치러본 건 지금껏 10번 선거를 나가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며 “12년 전 대구시장 선거에 처음 나왔을 때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라고 회고했다. 이와 함께 “저쪽 당(국민의힘)도 이번에 ‘시민들의 마음이 이렇게 흔들릴 수 있구나, 잘못하면 큰일 나겠다’며 분명히 깜짝 놀랐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단식에 참석한 선대위 관계자들과 김 후보의 지지자들은 서로를 위로하는 가운데 눈물바다가 됐다. 이에 김 후보는 참석자들에게 “우리가 대구시정을 책임졌을 때 역량이 있다는 걸, 비전이 있다는 걸 모두들 보여주셨다. 정말 고맙다”며 “진영 대결이 불길처럼 번지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 후보들의 호소에 귀를 기울여준 분들이 늘어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인사했다. 특히, 김 후보는 이번 선거 과정에서 자신을 지지해 준 공직자, 보수 정당 출신 인사들에게도 고개를 숙였다. 그는 “어쩌면 대구의 주류 사회에 몸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대구를 살려야 한다’는 소명의식으로 저 김부겸과 함께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김 후보는 해단식 말미 침울해진 현장 분위기에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했던 말을 기억하지 않느냐”며 “비록 우리들의 행진이 잠시 여기서 멈춘다고 하더라도 절대로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지지자들을 격려했다.
  • 전남 신안군수 조국혁신당 김태성 당선…‘인물론’으로 신안의 새 역사 썼다

    전남 신안군수 조국혁신당 김태성 당선…‘인물론’으로 신안의 새 역사 썼다

    6·3 지방선거 전남 신안군수 선거에서 조국혁신당 김태성 후보가 당선되며 지역 정가에 큰 파장을 몰고 왔다. 징검다리 5선을 노린 더불어민주당 박우량 후보와 맞대결을 벌인 김 당선인은 개표 결과 51.95% 득표로 48.04%를 얻은 박 후보를 제치고 당선증을 거머쥐었다. 이번 승리는 단순한 혁신당의 승리를 넘어 굳건한 거대 민주당의 조직 중심 정치를 뚫고 오롯이 ‘인물론’과 ‘진정성’으로 일궈낸 이변의 드라마라는 평가가 나온다. 개표 초반부터 손에 땀을 쥐는 접전이 이어졌으나, 섬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바닥 민심을 훑은 김 당선인의 뚝심이 막판 표심을 무섭게 끌어당겼다. 당선이 확실시되자 선거사무소는 환호성과 눈물바다로 뒤덮였다. 신생 정당인 조국혁신당의 얇은 지역 기반에도 불구하고 그는 낡은 정치 문법 대신 지역의 해묵은 과제를 해결할 ‘준비된 일꾼’임을 내세워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었다. 지역 정가에서는 “기존의 조직 선거 틀을 깨고, 군민들이 정당이 아닌 ‘누가 진짜 신안을 발전시킬 적임자인가’라는 인물 가치에 투표한 결과”라며, 이른바 ‘김태성 브랜드’의 승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는 “오늘의 승리는 김태성의 승리가 아니라 변화를 열망한 위대한 신안군민의 승리요, 조국혁신당원의 승리”라며 “선거운동 내내 줄기차게 외쳤던 대로 ‘함께하는 군수’, 군민 주인 시대, 하나 된 신안 건설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신안의 공기가 확 달라질 것”이라며 “신안의 산하가 바뀌고, 거리가 깨끗해지고, 신안 주민들의 표정이 한층 밝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임자면 출신으로 임자중, 광주 살레시오고,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김 당선자는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2년 전 총선에 도전했다가 아쉽게 패했던 김 당선자는 전국 최초로 지자체장 5선을 노린 거물 박우량을 꺾음으로써 지역 정가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민주당에서 내란 진상 조사위원으로 활동하며 국방전문가로 명성을 쌓아가다 불법 당원 모집으로 징계를 받은 뒤 민주당을 탈당, 조국혁신당에 입당해 혁신을 염원하는 군민의 표심을 사로잡았다.
  • 임라라, 구급대원과 눈물의 재회…“심정지 위기, 40분간 가슴 압박”

    임라라, 구급대원과 눈물의 재회…“심정지 위기, 40분간 가슴 압박”

    크리에이터 임라라가 긴박했던 출산 과정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했던 구급대원과 뜻깊은 재회를 했다. 3일 오후 방송되는 KBS2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 624회는 ‘찰떡같이 찾아온 축복’ 편으로 꾸며진다. 방송에서 손민수·임라라 부부는 생후 200일을 맞이한 쌍둥이 자녀 ‘강단둥이’ 남매의 축하 자리를 마련하며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다. 스튜디오와 촬영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임라라의 출산 당일 그를 병원까지 이송한 소방서 구급대원들이었다. 임라라는 당시 의식을 잃어가던 위급 상황 속에서 구급대원들의 헌신적인 응급조치 덕분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는 구급대원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이어 대원들을 향해 “구급대원분들 덕분에 강단이와 함께 할 수 있게 됐다”며 두 아이를 품에 안을 수 있게 해 준 은인들에게 연신 고개 숙여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200일을 맞이한 쌍둥이 남매의 건강한 근황도 함께 공개된다. 부부는 구급대원들을 향한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담아 쌍둥이 남매를 ‘아기 소방관’으로 변신시켰다. 실제 구급대원들이 착용하는 주황색 기동복 제복에 소방 모자까지 맞춰 쓴 남매의 깜찍한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을 미소 짓게 했다. 특히 쌍둥이 남매는 살이 통통하게 오른 작은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아빠 손민수의 구령에 맞춰 “안! 전!”이라고 외치며 앙증맞은 거수경례를 선보였다. 그중 아들 강이는 엄마의 생명을 지켜준 구급대원의 품에 안겨 대원의 얼굴을 뚫어지게 응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어 당시 구급차 안에서 벌어졌던 긴박했던 기록들이 구급대원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졌다. 담당 구급대원은 “임라라 씨가 계속 의식을 잃고 혈압까지 떨어져 심정지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하며 “40분 내내 가슴 압박을 했다”고 밝혀 위험했던 상태를 짐작하게 했다. 구급대원의 헌신적인 심폐소생술 덕분에 고비를 넘긴 임라라는 “기억이 난다. 덕분에 의식을 찾았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 “사랑하는 조카를 잃었어요”… 눈물바다 된 한화공장 희생자 장례식장

    “사랑하는 조카를 잃었어요”… 눈물바다 된 한화공장 희생자 장례식장

    “사랑하는 조카를 잃었어요. 우리 조카를요….” 1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폭발 사고’로 숨진 희생자의 삼촌 A(60대)씨는 힘겹게 말을 꺼냈다. 그는 장례식장 의자에 멍하니 앉아 이마를 짚고 깊은 한숨을 내쉬기를 반복했다. 이따금 “아유…” 하는 탄식도 흘러나왔다. A씨 곁에는 회색 작업복을 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이날 대전 유성구 유성선병원 장례식장은 무거운 침묵에 잠겨 있었다. 갑작스러운 비보를 접한 유족들은 복도 한편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떨군 채 한숨을 내쉬었고, 일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훔쳤다. 어린 조카를 잃은 심정을 묻자 A씨는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또 다른 유족 B씨는 “어떻게 죽었는지 우리도 아는 게 없다”며 “너무 갑작스럽고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고 말했다. 한동안 탄식하던 A씨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의 안내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1층 응급실 쪽으로 향했다. 다른 유족들 역시 신원 확인 절차를 기다리며 넋이 나간 듯 허공만 바라봤다. 같은 희생자의 유족인 50대 부부도 장례식장을 찾았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던 여성은 남편에게 몸을 기대며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은 말없이 등을 토닥였고, 여성은 화장실로 향해 한동안 감정을 추슬렀다. 다른 희생자들의 시신이 안치된 대전 중구 충남대병원 장례식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아직 빈소조차 마련되지 않았지만,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들은 일찌감치 도착해 유족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직원은 “유족들이 먼저 도착할 수 있어 직원들이 미리 나와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 59분쯤 대전 유성구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해 5명이 숨지고 2명이 다쳤다. 소방당국은 인력 100여명과 장비 30여대를 투입해 진화와 구조 작업을 벌였으며, 오후 1시 7분쯤 완전히 불을 껐다. 사고로 243㎡ 규모 건물 1개 동이 전소됐다. 사고가 발생한 대전사업장 정문에도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사고 직후 출입을 통제했고 정문 앞에는 경찰차와 소방차, 관계기관 차들이 분주히 오갔다. 일반인 출입은 전면 제한됐다. 직원들도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현장에 있던 직원은 “건물 간 거리가 멀어 사고 장면은 보지 못했지만 갑자기 ‘쿵’ 하는 폭발음이 들렸다”며 “순간 또 사고가 난 건가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고 말했다. 그는 “예전에도 폭발 사고가 몇 차례 있었던 터라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며 “사고 건물 주변에서 근무하던 일부 직원들은 조기 귀가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직원은 “사고가 난 건물은 폭발물을 취급하는 시설”이라며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건물 간 거리를 충분히 두고 설계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업장 내 건물들은 폭발 피해가 주변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간격을 두고 배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폭발의 위력은 상당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폭발이 발생한 단층 건물은 외벽과 내부가 모두 검게 그을린 채 사실상 전소됐고 내부 구조물 역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붕괴됐다. 사고 당시 건물 안에는 7명이 있었으며, 이들 모두가 숨지거나 다쳤다.
  • “오늘이 생일이에요”… 눈물바다 된 서소문 붕괴 희생자 빈소

    “오늘이 생일이에요”… 눈물바다 된 서소문 붕괴 희생자 빈소

    “오늘이 (고인) 생일이에요. 쉬지도 못하고 현장만 계속 돌아다녔던 사람이었어요.” ‘서소문 고가차도 붕괴 사고’로 숨진 흥화건설 소속 현장관리소장 이모(60대)씨의 매형 박모(62)씨는 27일 눈물을 삼키며 이렇게 말했다. 박씨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뒤 형제끼리 어렵게 살았다”며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한 뒤 첫 직장이었던 흥화건설에 입사해 지금까지 한눈팔지 않고 성실하게 일만 해온 사람”이라고 했다. 이날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씨의 빈소에는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아들은 빈소 한쪽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인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부인은 끝내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유족들에 따르면 이씨는 이번 서울 서소문 현장을 마지막으로 정년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남 나주에 가족을 두고 평택과 목포, 서울 등 전국 건설 현장을 오가며 일해온 ‘기러기 아빠’였다. 이씨는 사고 전 매형 박씨에게 “큰 공사를 맡아 스트레스가 많다. 현장 정리가 끝나면 내려가 얼굴 한번 보자”고 말했지만, 끝내 마지막 약속이 됐다. 유족들은 고인을 누구보다 묵묵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사촌 김모(72)씨는 “동생은 한마디로 ‘성실맨’이었다”며 “척박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성실함 하나로 버텨 현장 소장 자리까지 오른 책임감 강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같은 날 경기 성남시 분당차병원 장례식장에도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같은 사고로 숨진 감리단장 안모씨의 유족들은 수척한 얼굴로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 속에서도 빈소를 챙기던 안씨 부인은 영정사진 앞에 절을 올린 뒤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따로 살던 아들은 바쁜 아버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놨다. 안씨의 아들은 “수십 년 동안 이 일만 해오신 분인데 어떻게 사고가 난 건지 가족들은 기사와 뉴스를 통해서야 알게 됐다”며 “회사에서도 연락은 왔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딸은 “아버지는 평소 정말 섬세하고 자상한 분이었다. 누구보다 책임감 있는 가장이었다”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을 흘렸다. 슬픔 속에서도 유족들은 서로의 곁을 지켰다. 고인의 비석에 새길 문구를 고민하던 딸은 작은 목소리로 “아빠가 평생 일을 너무 많이 하셨으니까, 그곳에서는 이제 일하지 말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적고 싶다”고 말했다.
  • 故최진실 모친 끝내 눈물… ‘11살 연상♥’ 최준희 결혼식 어땠길래

    故최진실 모친 끝내 눈물… ‘11살 연상♥’ 최준희 결혼식 어땠길래

    배우 고(故) 최진실의 딸 최준희(23)의 결혼식이 열린 가운데 한때 불화설이 있었던 외할머니가 결혼식에 참석해 훈훈한 모습을 연출했다. 최준희는 17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전날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진행된 11살 연상의 비연예인 남성과의 결혼식 현장 사진·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사진·영상에서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최준희는 연보랏빛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외할머니의 팔짱을 끼고 서로 마주 보고 웃으며 다정한 모습을 선보였다. 특히 식 중 공개된 영상에서 외할머니는 감정이 북받친 듯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그 옆에는 최준희의 친오빠 최환희가 외할머니의 등을 가만히 토닥이고 있어 뭉클함을 안겼다. 앞서 최준희는 과거 외할머니를 주거침입으로 신고하는 등 관계가 극도로 악화하기도 했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번 결혼식에도 외할머니가 참석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최준희는 SNS를 통해 “외할머니 당연히 오셨다. 기분 좋은 날 억측은 그만해달라”며 선을 그었다. 이어 결혼식에서 외할머니와 다정한 모습을 공개하며 앞선 논란을 무색하게 했다. 이날 최준희의 결혼식 영상에는 고 최진실과 전 야구선수 고 조성민의 생전 모습도 등장해 현장은 눈물바다가 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영상에는 ‘부모님과 사는 동안 우리는 뭐가 그렇게 서운했을까. 어른이 되고 나니 우리의 유년기는 그들이 치열하게 만들어낸 요새였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는 자막이 더해졌다. 최준희는 영상을 통해 “엄마, 아빠 너무 보고 싶다. 오늘 함께할 수 있었으면 너무 행복했을 거 같다. 엄마, 아빠가 제게 주신 사랑 꼭 닮은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결혼식 사회는 코미디언 조세호가 맡았다. 축가는 가수 소향, 테이가 불렀다. 최준희는 최환희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었다. 최준희는 최진실과 조성민의 딸이다. 최진실은 2000년 조성민과 결혼해 아들 최환희, 딸 최준희를 낳았다. 두 사람은 결혼 4년 만인 2004년 이혼했고 2008년 최진실, 2013년 조성민이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 신지♥문원, 눈물바다 된 결혼식 현장…백지영 ‘축가 중단’ 사태

    신지♥문원, 눈물바다 된 결혼식 현장…백지영 ‘축가 중단’ 사태

    그룹 코요태 멤버 신지와 가수 문원의 결혼식이 2일 동료 연예인들의 축하와 눈물 속에 치러졌다. 신지(44)와 문원(37)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 라움아트센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방송인 붐과 개그맨 문세윤이 사회를 맡아 진행했고, 가수 백지영과 에일리가 축가 가수로 나섰다. 코요태 멤버인 김종민과 빽가는 축사를 통해 두 사람의 앞날을 응원했다. 유재석, 채리나, 심진화, 박슬기, 강재준, 자두, 주영훈, 솔비, 양미라 등 연예인 동료들도 대거 참석했다. 백지영은 성시경의 ‘두 사람’을 축가곡으로 불렀는데 노래 도중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떨리는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가던 그는 결국 “다시 하겠다”며 반주를 멈췄다. 이를 지켜보던 신지도 눈물을 흘렸다. 붐은 “가장 친한 언니고 인생 동반자다”라며 신지와 백지영의 각별한 관계를 강조했다. 백지영도 “사실 옛날에는 정말 ‘우리는 시집 못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농담으로 분위기를 전환한 뒤 “누구보다 현명하고 사랑이 많은 아내이자 엄마가 될 거라 믿는다”며 진심 어린 축하를 건넸다. 결혼식에 참석한 방송인 박슬기도 이날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백지영 언니의 눈물 머금은 축가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터져 나왔는데, 명 MC 붐 오빠랑 세윤 오빠 덕에 쏙 들어갔다. 그냥 축제 그 자체 결혼식”이라고 후기를 전했다. 신지와 문원은 2024년 MBC 표준FM ‘이윤석 신지의 싱글벙글쇼’에 문원이 게스트로 출연한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최근 KBS 2TV 예능 프로그램 ‘신상출시 편스토랑’에 출연해 신혼집에서 함께 생활 중인 예비부부의 일상을 공개했다. 결혼 이후에는 MBN 신규 예능 프로그램 ‘남의 집 귀한 가족’에 합류해 결혼 준비 과정과 신혼 생활을 선보일 예정이다.
  • “갓난쟁이 두고 가신 우리 아버지”…김민석·우원식 울린 4·3 유족 사연

    “갓난쟁이 두고 가신 우리 아버지”…김민석·우원식 울린 4·3 유족 사연

    “우리 아버지. 갓난쟁이 아기 두고 가려니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셨을까. 품에 한 번 제대로 안아보지 못한 어린 핏덩이인데…. 고계순. 딸 이름은 알고 계세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3일 제주4·3평화공원. 제78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장에선 단아한 한복 차림의 배우 김미경이 한 유족의 사연을 읽어 내려갔다. 배우의 목소리는 조용히 고계순(78)씨 앞에 멈췄다. “꿈에라도 한번 보러 오실까. 난리가 끝나면 이름도 짓고 호적에도 올리리라 다짐했지만, 끝내 올리지 못한 딸 이름 석 자. 하지만 오늘 보고 계시죠. 당당히 아버지 딸로 앉아있는 딸 계순이를…” 이어지는 말에 추념식장은 숨죽였다. “우리 계순 삼춘, 그 모든 세월 어찌 견디며 살아오셨을까. 평생 가슴에만 묻어둔 이름, 아버지를 불러보지 못한 그 긴 세월…. 하영 속았수다. 이제 당당히 불러보십서.” 고씨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아버지… 아버지 보고 싶어요. 얼굴 한번 못 보고 돌아가셔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그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이윽고 추념식장에는 노래 ‘동그라미’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추념식장은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고씨 옆에 앉아 있던 오영훈 지사도, 김민석 국무총리도, 우원식 국회의장도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평화공원에 핀 하얀 벚꽃들마저 훌쩍이듯 흔들댔다.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이어졌다. 오 지사와 김 총리, 우 의장도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쳤다. 평화공원에 핀 하얀 벚꽃마저 바람에 흔들렸다. 올 추념식에는 4·3 희생자의 가족관계 정정 첫 결정 사례인 고계순(78) 할머니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1948년 6월 태어난 그는 출생신고도 하기 전에 4·3으로 아버지를 잃었다. 가족들은 ‘4·3 희생자 자녀’라는 이유로 받을 불이익을 우려해 고씨를 작은아버지 딸로 호적에 올렸다. 그렇게 그는 77년 동안 작은아버지의 딸로 살아야 했다. 그리고 올해 2월, 처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되찾았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결정하면서다. 고씨는 ‘고계순은 희생자 망 고석보의 친생자임을 인지한다’는 문구가 담긴 결정서를 받아 아버지 묘소에 올렸다. 기존 가족관계등록법으로는 생부가 행방불명된 경우 유전자 검사가 불가능해 친자관계를 인정받기 어려웠다. 그러나 2021년 4·3특별법 개정으로 특례 규정이 신설되면서 국가 차원의 가족관계 확인이 가능해졌다. 앞서 오 지사도 추념사를 통해 “제주4·3의 진실을 기억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를 회복하며 비극을 넘어서며 희망의 역사로 이어가는 일. 그것은 오늘을 사는 우리의 책무”라며 “최근 오랜 세월 뒤틀려 있던 가족관계를 비로소 바로 세우는 첫 결실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제주4·3 희생자 고(故) 고석보씨와 딸 고계순의 친자관계가 마침내 확인됐다”고 언급했다. 이어 “아직도 제주에는 국가 폭력에 의해 가족관계가 뒤틀린 채 살아오신 분들이 많다”면서 “친생자관계 확인 신청 230건을 포함해 혼인관계나 양친자관계 등 잘못된 가족관계 정정을 요청한 전체 건수는 509건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김 총리는 “올 2월에는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에서 유족 네 분을 희생자의 자녀로 인정하는 최초의 의결을 했다”며 “가족관계등록부에 비로소 아버님의 이름을 올리게 된 고계순, 김정해, 김순자, 이애순 어르신께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고 강조했다.
  • “깜깜해, 엄마·아빠 사랑한다고 전해 줘”… 마지막 통화에 오열

    “깜깜해, 엄마·아빠 사랑한다고 전해 줘”… 마지막 통화에 오열

    “왜 여기 있니, 제발 다시 돌아와라”유가족, 위패 어루만지다 오열·실신주변에 있던 조문객도 눈시울 붉혀분향소 찾은 회사 대표 “정말 죄송” “우리 아들 왜 여기 있니.… 아이고 철아 다시 이리 돌아와라, 제발….” 22일 오전 대전시청 1층 로비에 마련된 ‘대덕구 안전공업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 고 김종철씨의 어머니는 믿기지 않는 듯 아들의 위패와 국화를 번갈아 어루만지며 오열했다. 위패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한 그는 “한 번만 안아 보자”며 아들의 이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주변에 있던 조문객들도 고개를 떨군 채 눈시울을 붉혔다. 같은 날 분향소를 찾은 고 최용석(40)씨의 유족들도 멍하니 고인의 이름을 바라보면서 좀처럼 말을 잇지 못했다. 부친 최병찬(66)씨는 “우리 아들은 가족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혼자 벌어 모두를 부양할 정도로 책임감이 컸다”며 “아들이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이어 “화재 현장에 가 보니 창문도 제대로 없는 열악한 상태더라”며 “얼마나 답답했겠느냐”며 울먹였다. 옆에 있던 고인의 어린 두 아들도 따라 눈물을 쏟았다. 분향소 한쪽에서 만난 고 정두성(40)씨의 외삼촌 홍관표(50)씨는 평소 조카와 유독 가까웠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홍씨는 “조카가 화재 당시 여자친구와의 마지막 통화에서 ‘연기로 눈앞이 깜깜하다. 엄마와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전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며 “힘든 순간에도 부모를 먼저 생각한 효자였다”고 전했다. 정씨 가족들은 화재 소식을 듣자마자 인천에서 대전으로 내려와 3시간 동안 지역 병원을 돌며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결국 정씨가 실종자 명단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너져 내렸다. 사고 당일 공장 인근 가족 대기실에 도착한 정씨의 어머니는 오열과 실신을 반복했다. 홍씨는 “이렇게 허망하게 보낼 줄은 몰랐다”며 “아직까지 신원 확인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도 너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시청 2층에 휴식 공간이 마련됐지만 위패 앞에서 눈물을 쏟아내는 유족들은 좀처럼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주저앉아 하염없이 통곡하는 희생자들의 가족들은 끌려가듯 부축을 받고 나서야 어렵게 분향소 앞을 벗어났다. 유족들은 자리를 벗어나서도 “너 없이는 절대 못 산다”며 통곡했다. 이들의 외침은 시청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고, 현장의 관계자들도 눈물을 훔쳤다. 이날 손주환 안전공업 대표와 임직원 30여명도 합동분향소를 찾아 고개를 숙였다. 이들은 묵념을 마친 뒤 희생자 14명의 위패 앞에서 “정말 죄송합니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손 대표는 큰절을 올린 뒤 임직원들과 함께 분향을 마치고 자리를 떠났다. 다만 조문 이후 사고 경위와 입장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는 별다른 답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벗어났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대전시당은 이날 잇따라 분향소를 찾아 헌화하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 이임재 “대통령실 용산 이전 안 했다면 ‘이태원 참사’ 없었을 것”

    이임재 “대통령실 용산 이전 안 했다면 ‘이태원 참사’ 없었을 것”

    “경찰 인력 대통령실 경비로 분산”이상민 “종합적 판단” 늑장대처 부인생존자 “10분이라도 빨랐다면…”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 서울 용산 지역의 치안을 책임졌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이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이전하지 않았다면 이런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은 지금보다 낮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참사 당시 행안부의 ‘늑장 대처’ 의혹을 거듭 부인했다. 이 전 서장은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청문회 증인으로 출석해 “당시 핼러윈 대비 과정에서 경찰 인력이 대통령실 경비로 많이 분산됐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은 그해 5월에 이뤄졌다. 특조위는 당시 서울 치안을 총괄한 김광호 전 서울경찰청장에게도 참사 당일 경찰 배치·운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이유를 물을 계획이었으나, 김 전 청장은 증인 선서와 진술을 모두 거부했다. 이에 특조위는 김 전 청장을 고발하기로 했다. 이 전 장관은 행안부에 대한 늑장 대처 지적에 “이태원 참사는 사후 기준이 아니라 그때 당시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행안부는 정책 부처로서 소방·경찰과 속도가 같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구성이 늦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중대본은 사고의 규모와 위험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가동 여부를 결정한다”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날 청문회에는 생존자 민성호씨가 나와 당시 상황을 증언하면서 청문회장은 눈물바다가 됐다. 민씨는 “(구조가) 10분이라도 빨랐다면 100명은 살아남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 죽음 앞 ‘유언장’ 써놓은 유열…“의사도 놀라” 몰라보게 건강해진 모습

    죽음 앞 ‘유언장’ 써놓은 유열…“의사도 놀라” 몰라보게 건강해진 모습

    80년대 발라드를 대표하는 가수로 사랑받은 유열이 폐섬유증으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다 기적처럼 팬들 곁으로 돌아왔다. 오랜 투병 끝에 다시 무대에 선 그는 몰라보게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24일 방송된 KBS2 ‘불후의 명곡’은 유열 특집으로 꾸며져, 10년간의 투병 끝에 건강을 되찾아 대중 앞에 다시 선 유열의 복귀 무대가 공개됐다. 유열은 이날 자신의 데뷔곡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를 열창했다.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10년의 투병 이력이 무색할 만큼, 변함없는 음색과 특유의 감성으로 객석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그는 방송에서 “9년 전부터 폐섬유증이 진행되다가 지지난해 5월 독감으로 입원했는데, 그 길로 입원해서 6개월 정도 중환자실에 있었다”며 “나중에는 생명이 위중한 지경까지 갔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지난해 7월 말에 폐 이식 수술을 받았다”며 “정말 감사하게도 회복 상태가 좋아 병원에서도 많이 놀라고 있다. 스스로도 기적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그간 정말 많은 분들의 응원과 기도를 받았다”며 “무엇보다 폐를 기증해 주신 그분과 가족에게 뭐라고 감사의 말을 다 전할 수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유열은 2017년쯤부터 폐섬유증을 앓아왔다. 체중이 40㎏대까지 빠진 그는 2024년에는 생사가 오가는 험난한 시간을 보냈다. 폐 이식이 두 차례 무산되는 아픔도 겪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세 번째 시도 만에 수술이 성공해 ‘새 삶’을 찾게 됐다. 폐섬유증은 폐에 염증이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하며 폐 조직이 점차 딱딱하게 굳는 난치성 질환이다. 폐 기능 저하로 신체 주요 장기에 산소 공급이 줄면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다. 생존율은 진단 후 평균 3~5년이며, 5년 생존율은 40%가 채 되지 않는다. 유언장 미리 작성하기도…“모든 게 ‘감사’였다” 유열은 이날 방송된 MBN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대비해 작성했던 유언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이식)수술 후 3~4일째 되던 날 새벽 심정지 비슷한 것이 두 번 왔다. 비상상황이었다”며 “혹시 모르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아내에게 (유언장을) 전해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유언장에는 “혹시 그럴 일 없길 기대하지만 내가 만일 하늘나라를 가게 된다면 모든 게 ‘감사’였다고 전해달라. 주신 사랑 되돌려드리지 못하고 가서 미안하다”라며 “여보, 무슨 말로 다 할까. 너무도 큰 사랑만 받고 가네. 미안하네. 우리 소중한 기억 안고 잘 살아내 주리라 믿네”라고 적혀 있었다. 유언장을 읽어 내려가던 유열은 감정이 북받쳐 오른 듯 눈물을 흘리며 끝내 다 읽지 못했다. 다행히 현재 유열은 건강하게 회복하고 있다. 그는 “이식 수술 후 1년 반 정도가 지났는데 거부 반응도 없고, 지금도 한 달에 한 번씩 검진을 받으며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198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로 대상을 차지하며 가요계에 등장한 유열은 특유의 서정적인 목소리로 ‘이별이래’, ‘단 한 번만이라도’, ‘어느 날 문득’, ‘가을비’, ‘사랑의 찬가’ 등의 대표곡을 냈다.
  • “죽느냐 사느냐 50%였다”…손태진, 대체 무슨 일 있어나

    “죽느냐 사느냐 50%였다”…손태진, 대체 무슨 일 있어나

    가수 손태진이 ‘편스토랑’에 출격해 어릴 적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연을 공개한다. 16일 오후 8시 30분 방송되는 KBS 2TV ‘신상출시 편스토랑’에는 ‘트로트계의 귀공자’ 손태진이 신입 편셰프로 전격 합류한다. 이날 방송에서는 손태진의 요리 실력뿐만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생사의 기로에 서야 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최초로 공개될 예정이다. 스튜디오를 눈물바다로 만든 주인공은 손씨의 어머니다. 아들과 함께 정성스러운 집밥을 준비하던 어머니는 “엄마한테 너무 행복한 시간이다”라며 “태어났을 때 죽느냐 사느냐 50%였다”고 갓 태어난 아들의 위태로운 건강 상태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며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이를 지켜보던 손태진 역시 어머니의 눈물에 울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손태진은 최근 온라인상에서 무분별하게 퍼진 황당한 루머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백화점 딸과 결혼해 아이가 둘이라는 가짜뉴스도 있었다”며 근거 없는 소문에 고통받았던 심경을 토로했다. 총각인 그가 졸지에 유부남에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어처구니없는 가짜뉴스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기적처럼 살아남아 ‘불타는 트롯맨’ 우승자까지 거머쥔 손태진의 이야기는 이번 주 ‘편스토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드디어 돌아왔다”…3주 연속 1위, 시청률 14% 찍은 ‘국민 예능’

    “드디어 돌아왔다”…3주 연속 1위, 시청률 14% 찍은 ‘국민 예능’

    TV조선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미스트롯4’가 방송 초기부터 압도적인 시청률과 화제성을 기록하며 트로트 오디션 명가다운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4일 시청률 조사회사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1일 방송된 ‘미스트롯4’ 3회는 전국 유료가구 기준 시청률 12.6%를 기록했다. 첫 방송 시청률 10.8%로 출발한 ‘미스트롯4’는 2회에서 14.0%까지 치솟으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고, 3회에서도 두 자릿수 시청률을 유지하며 3주 연속 동 시간대 1위에 올랐다. 이러한 인기는 화제성 지표에서도 확인됐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가 발표한 2026년 1월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평판 분석 결과 ‘미스트롯4’는 MBN ‘현역가왕3’,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MBC ‘나 혼자 산다’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3회 방송에서는 치열한 예심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53팀의 명단이 공개됐다. 마스터 예심 결과, 영예의 ‘진(眞)’은 ‘울고 넘는 박달재’를 부른 이소나가 차지했다. 그는 정통 트로트의 맛을 완벽히 살렸다는 극찬을 받으며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이어 가녀린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애절한 목소리의 홍성윤이 ‘선(善)’을, 아이돌급 외모에 탄탄한 가창력을 겸비한 대학생 길려원이 ‘미(美)’를 거머쥐었다. 예심에서 가장 큰 화제를 모은 참가자는 미얀마 내전을 피해 한국으로 온 고등학생 완이화였다. 간암으로 어머니를 여의고 두 동생을 돌보는 ‘고3 가장’인 그는 유지나의 ‘모란’을 진심 어린 감성으로 불러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본선 1차 경연으로는 ‘장르별 팀 데스매치’가 진행된다. 같은 장르를 선택한 두 팀이 1대1로 맞붙어 승리한 팀만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방식이다. 이번 시즌은 젠지 세대(1995~2010년생) 참가자들과 실력파 현역들의 대결 구도가 뚜렷하게 형성되며 시청자들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다. ‘미스트롯’ 시리즈는 그간 대한민국 방송계의 흐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시즌1은 가수 송가인을 배출하며 트로트 신드롬을 일으켰고, 시즌2는 최고 시청률 32.9%라는 기록을 세운 바 있다. ‘미스트롯4’가 초반 흥행세를 이어가 송가인, 임영웅에 버금가는 차세대 트로트 스타를 탄생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 ‘눈물바다’ 된 평양역…‘사상 초유’ 거리로 쏟아져 나온 北주민들 [포착]

    ‘눈물바다’ 된 평양역…‘사상 초유’ 거리로 쏟아져 나온 北주민들 [포착]

    북한 여자축구가 17세 이하(U-17) 월드컵에서 2연패를 달성한 가운데, 이를 거리에서 지켜본 북한 주민들이 환호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조선중앙TV는 11일 평양역 대형 전광판 앞에 모여든 시민들이 거리 응원을 펼쳤다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 9일 모로코 라바트에서 열린 2025 여자 U-17 월드컵 결승전에서 김원심·박례영·리의경의 연속 골로 네덜란드를 3대0으로 물리쳤다. 조선중앙TV는 이 경기를 전날 오후 8시 30분 녹화중계했다. 경기를 보기 위해 평양역에 모인 시민들은 전광판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경기를 보며 환호성을 지르고, 북한 국기인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했다. 한 운전자는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경기를 봤다. 북한 선수들이 네덜란드의 골문을 가르자 시민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손뼉을 치고, 서로를 얼싸안았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어린 자식의 손목을 잡고 걸음을 다그치던 젊은 여성까지도 아이를 품에 안은 채 대형 전광판 앞에서 경기를 지켜보았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또 “평양역 주변은 말 그대로 환희의 바다, 격정의 바다로 화하였다”며 “사람들 모두가 마치 구면인 듯 얼싸안고 승전의 감격을 나누었다”고 했다. 북한이 참가한 주요 스포츠 경기가 열릴 때 주민들이 실내에서 TV를 보며 응원하는 모습이 보도된 적은 많지만, 거리 응원을 하는 모습이 공개된 건 사실상 처음이다. 북한 주민들은 식당에서도 TV 앞에 둘러앉아 경기를 시청했다. 신문은 “어떤 사람들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경기 방영 시간을 알려주느라 전화기에 불이 일 정도였다”며 “또 어떤 단위에서는 축구 경기를 혼자서 볼 때보다 많이 모여서 보아야 보는 멋이 더 크다며 종업원 모두가 TV로 방영하는 결승 경기를 보자는 약속도 하였다”고 전했다. 특히 이번 대회 ‘투톱’이었던 유정향과 김원심을 배출한 북한 엘리트 축구의 산실 평양국제축구학교는 축제 분위기다. 대회에서 8골을 터뜨린 유정향은 골든볼(최우수선수)과 골든부츠(득점왕)의 영예를 안았고, 7골로 득점 2위에 오른 김원심은 실버볼과 실버부츠를 받았다. 노동신문은 “우리의 미더운 여자축구 선수들의 승전 소식이 전해진 때부터 시간이 퍽이나 흘렀지만 학교에 차 넘치는 감격과 흥분은 좀처럼 잦아들 줄 모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북한의 이 대회 우승은 2008년·2016년·지난해에 이어 4번째다.
  • 아들상 5년 만에 ‘임신 발표’…오나미도 눈물바다

    아들상 5년 만에 ‘임신 발표’…오나미도 눈물바다

    코미디언 성현주가 자녀상 5년 만에 임신을 발표하면서 축하가 이어졌다. 성현주는 2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한 주 한 주 노심초사하느라 불러오는 배 꽁꽁 숨겨가며 어느덧 9개월 차 임신부가 됐다”며 임신을 발표했다. 그는 “휘몰아치는 임신 증상들을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득하게 겪으며 감사한 마음보다 ‘임신 이거 이렇게 힘든 거였나’ 하는 유약한 마음이 앞섰다”며 “이제 남은 한 달, 말랑말랑한 마음으로 고마운 사람들의 흘러넘치는 축하를 만끽하며 뒤뚱뒤뚱 유난하게 걸어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아마도 저는 머지않아 또 다른 작은 사람을 끔찍하게 사랑하게 될 것”이라며 “그것은 제가 곧 두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것. 저도 ‘임밍아웃’(임신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행위) 한다”라고 덧붙였다. 글과 함께 공개된 사진에는 성현주의 ‘만삭 화보’가 담겼다. 배를 감싼 성현주의 얼굴엔 둘째를 곧 맞이하는 엄마의 행복한 미소가 그대로 드러났다. 성현주는 동료 코미디언 박소영, 오나미, 김민경에게 임신 사실을 공개하는 순간이 담긴 영상도 공개했다. 임신 소식을 듣자마자 “진짜냐”고 물으며 안아주는 박소영부터 자신의 일처럼 울어주는 오나미, 김민경까지 이들의 우정이 뭉클함을 자아냈다. 한편 KBS 22기 공채 개그맨 출신인 성현주는 지난 2011년 6세 연상 사업가와 결혼했다. 성현주는 2020년 당시 5살이었던 아들 서후를 패혈증으로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뒤 2022년 12월 엄마로서의 기록물이자 에세이 ‘너의 안부’를 발간했다. 인세는 전액 어린이병원 환아들의 치료를 위해 기부했다.
  • 정동영에 무릎 꿇고 울며 호소…“너무 힘들다 가족 생사 확인이라도”

    정동영에 무릎 꿇고 울며 호소…“너무 힘들다 가족 생사 확인이라도”

    납북자 가족들이 8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을 만나 “가족들의 소식이라도 좀 알게 해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정 장관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약속했다. 정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최성룡 이사장을 비롯한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이사진과 면담을 가졌다. 면담 자리에서 1987년 납북된 어선 동진호의 어로장 최종석씨의 아내 김태주씨는 정 장관에게 “매일 전화하던 남편 소식이 끊어진 지 사십년인데 남편 없이 이렇게 지내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면서 “장관 계실 때 납북자 생사 확인이라도 해달라”고 연신 부탁했다. 김씨는 정 장관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무릎 꿇고 말씀드린다. 좀 도와달라”며 흐느꼈다. 김씨의 호소를 듣던 다른 납북자 가족과 귀환 납북자도 눈시울을 붉히면서 이내 눈물바다가 됐다. 이에 정 장관은 김씨의 손을 잡고 “그 심정을 어떻게 다 헤아리겠습니까만 최선을 다하겠다”며 위로를 건넸다. 정 장관은 “이념과 체제 때문에 인륜과 천륜을 끊는 비극적인 상황이 이 땅에서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비극적”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지금 전 세계에서 이런 고통을 겪는 나라는 없다”며 “납북자 가족의 애끓는 인간적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대화의 끈이 이어지고 대화의 문이 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이사장은 “우리 가족들의 (생사 확인) 문제는 이념 문제가 아니고 천륜의 문제”라며 “천륜보다 앞설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납북자나 국군 포로와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정 장관에게 “개성 등 비밀 장소를 만들어 비밀리에 비공식적 만남을 추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정 장관은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가 지난달 대북전단 살포를 공식적으로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관련해 “새 정부 방향에 적극 협조해 주셔서 남북관계에 새로운 모색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면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에 최 이사장은 “새 정부가 남북 대화를 할 수 있게 우리도 지원해야겠다”라면서 “‘북한을 절대 자극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에 대북전단 살포를 중단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날 “한미 정상회담을 대비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 관계의 복원 등과 관련해 유관기관과 긴밀하게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앞서 정 장관은 한미 관세협상 때의 ‘마스가’(MASGA·조선협력 프로젝트)를 언급하면서 “통일부가 북한과 관련한 아이디어를 만들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통일부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대미 담화를 주시하고 있다는 미 국무부 당국자의 발언에 대해 “한미 양국은 한반도 평화 및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서 북한에 대한 대화에 열려 있다는 데 입장을 같이하고 있다”면서 “정부는 북미회담 재개를 적극 지지한다는 입장 역시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고 설명했다.
  • 지난겨울도 힘들었수다, 폭싹 속았수다… 고단한 세월 버텨온 그대, 아픔 달래줍서[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지난겨울도 힘들었수다, 폭싹 속았수다… 고단한 세월 버텨온 그대, 아픔 달래줍서[박상준의 여행 서간(書簡)]

    지나고 나면 알게 되는 진심들이 있습니다. 더러는 후회로 남고 더러는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 자꾸 뒤돌아보게 하지요. 봄날이 화사할수록 그리움은 깊어만 갑니다. 당신의 4월 이야기는 누구와 함께인가요? 그이에게 건네는 당신의 말은 연애편지인가요, 낙서인가요? 오늘은 봄날의 마음을 먼 남쪽 땅 제주로 유배 보냅니다. ‘폭싹 속았수다’ 보고 계신가요? 딸 금명(아이유)이 엄마 애순(문소리)과 전화하는 장면에서 눈물, 콧물 다 쏟고 말았어요. ‘폭싹 속았수다’는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말입니다. 드라마의 제목으로 쓴 이유를 알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우리는 백 번, 천 번 고마워해야 할 이의 가슴은 낙서장처럼 쓰고, 어쩌다 한 번인 타인의 친절에는 연애편지처럼 관대하게 답하지요. 그럼에도 정제되지 않는 말들은 가까운 사이라 가능한 투정이겠습니다. 당신은 어떤가요?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있자니 자꾸만 잃어버린 얼굴들이 떠올라 가슴 한켠이 서걱거렸습니다. 그리고 제주의 봄이 그리워졌습니다. ●‘금명’처럼 사랑하는이에게 푸념하듯 저는 지금 제주 남서쪽 대정읍을 향하고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유배 살던 동네에 가려 합니다. 대정에는 그가 유배 시절 가장 오랜 시간 머문 집이 있고,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기념관이 있습니다. 유배가 무에 기념할 일일까 싶지만 추사의 일생을 두고 보면 제주 시절은 스스로 낮아지고 가벼워지는 시간이 아니었을까요. 그는 유배지에서 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아내에게, 가족과 지인에게 고단함을 토로하곤 했지요. 저는 그가 글씨를 잘 쓴 사람이 아니라 편지를 자주 쓴 사람이어서 좋습니다. 편지 속에서 속내를 숨기지 않고 푸념하듯 뱉은 글들은 조선 최고의 명필 이전에 나 같고, ‘금명’ 같은 사람이었을 거라 믿게 합니다. “… 팔도의 다 있는 것이 여기 없으니… 북어 명태란 말을 듣지도 못하였사옵니다.” 명문가에서 태어나 탄탄대로를 걷던 그에게 유배 생활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을 겁니다.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 적당히 연하고 무른 민어를 가려서 사 보내라거나, 겨자는 맛난 것을 넉넉히 보내라는 등 재촉하는 내용이 적잖습니다. ‘금명’이 ‘애순’에게 그랬듯 사랑하는 이여서 그랬겠지요. 꼬박꼬박 한글로 ‘~사옵니다’라고 존대해 적은 편지는 이를 짐작하게 합니다. 1842년 11월 14일, 그는 또 아내 예안 이씨에게 편지를 씁니다. 아내의 병환을 걱정하며, ‘소식을 자주 듣지 못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타는 듯하여 못 견디겠사옵니다’라고 적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습니다. 제주와 육지를 오가는 편지는 족히 몇 달이 걸렸고, 그 시차가 삶과 죽음 사이에 놓인 바다 같았겠습니다. 그래서 건축가 승효상은 제주추사관의 전시공간은 지하에, 진입로는 가파르게 설계해 추사의 절박함을 전하려 합니다. 제주추사관이 처음 지어졌을 때 마을 사람들은 ‘감자창고 같다’ 했다고 합니다. 단아한 1층 건물은 추사의 명성에 비하면 소박합니다. 계단 사이로 가파르게 난 갈지자(之)형 경사로를 지나 전시실로 내려갑니다. 먼저 두 개의 무량수각(無量壽閣) 현판 앞에 멈춥니다. ●세월의 풍상 견디며 뿌리내린 삶의 흔적 추사가 유배 오는 길(1840년)에 썼다는 해남 대흥사 무량수각과 유배 6년이 지나 예산 화암사에 보낸 무량수각 글씨입니다. 앞에 것은 힘차고 호쾌하며 뒤에 것은 여유롭고 담백합니다. 탁본일지라도 한 생의 증거를 이처럼 나란히 두고 마주할 기회는 많지 않을 겁니다. 저는 문 아래 사람이 지나는 듯한 화암사 현판의 ‘각’(閣) 자가 좋습니다. ‘각’(閣) 은 2층 이상의 큰 집에 붙이는 말인데 ‘문’(門)의 우측을 슬며시 기울여 썼습니다. 세월의 풍상을 견딘 문은 분명 그런 모양으로 점점 낮아지며 땅에 뿌리 내려 나이 먹었을 겁니다. 추사에게 제주의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알겠습니다. 이 현판은 대흥사에 얽힌 전설 때문에 유명하지요. 추사는 유배 길에 대흥사에 들렀다가 원교 이광사의 현판을 떼고 자신의 글씨를 걸으라 했다고 하지요. 8년 3개월의 유배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는 후회하며 이를 돌려놓았고요. 추사와 떼어놓을 수 없는 또 한 사람이 동갑내기 친구 초의선사입니다. 그는 우리나라 ‘차의 성인’(茶聖)이라 불립니다. 추사에게 ‘제주화북진도’를 선물하며 ‘서로 사모하고 아끼는 도리를 잊지 않은’ 사이라 했을 만큼 각별한 벗입니다. 추사가 대흥사에 들른 것 역시 초의선사를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전시장 한쪽에는 ‘명선’(茗禪)이란 큰 글씨가 보입니다. ‘차를 마시며 선의 경정에 들다’라는 뜻입니다. 추사가 초의선사에게 선물한 호입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완당전집’, ‘여초의’, ‘벽해타운’ 등에 알려진 것만 무려 70여편에 달합니다. 막역하고 개구진 벗들의 대화가 웃음 짓게 합니다. 추사는 제주에서 처음 말을 타다 살갗이 벗겨진 초의선사에게 사슴 가죽을 얇게 펴 밥풀로 붙이라 하며 ‘스님의 살가죽이 사슴 가죽과 비교해 어떤지 보자’며 놀립니다. 편지는 제주 유배가 끝난 후에도 이어졌는데요. 그때도 추사는 초의선사의 치통을 ‘혼자서 좋은 차를 마셨’기 때문이라 타박합니다. 저는 누구에게 이런 ‘낙서’ 같은 편지를 건넬 수 있을까요. 철없다 느껴지던 추사의 편지들이 조금씩 부러워지는 건 왜일까요. ●힘든 세월 잘 견뎌 낸 이들에게 전할 말 당신이 떠올리는 추사체는 어떠한가요? 제주추사관의 마지막 전시실은 우리의 선입견을 깨뜨립니다. 전시실 벽에 걸린 ‘판전’(板殿)의 현판은 그가 71세 병중에 마지막 쓴 글씨입니다. 비례나 균형이 맞지 않고 삐뚤삐뚤해 서툴러 보이기까지 해요. 추사의 글씨라 믿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대가의 글씨를 이미 마주했던 터라, 그 떨림을 더 오래 명상하듯 바라보게 됩니다. 끝끝내 잘 쓴다는 것,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 번져갑니다. 전시실을 나서기 전에는 어둠 속에서 추사의 흉상을 마주합니다. 흉상의 시선은 판전(板殿) 현판 위 동그란 창에 이릅니다. 그 너머로 소나무가 어리네요. 소나무와 잣나무 사이에 원형의 창을 가진 집 한 채. 제주추사관은 동쪽에서 보면 ‘세한도’의 정경을 닮았습니다. 추사의 유배가 5년 차에 접어들 때쯤, 북경의 귀한 책을 구해 준 제자 이상적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선물한 그림입니다. 추사의 발문은 제자에게 전하는 편지이고, 댓글처럼 줄줄이 이어지는 20여명의 감상평은 후대의 사람들이 추사의 생에 바치는 헌사와 다름없겠습니다. 추사영실에서 길은 다시 건물 바깥의 추사적거지로 이어집니다. 적거지는 추사가 유배 시절 머물던 집으로 안채와 바깥채, 별채를 재현했습니다. 담장에는 제주말로 개탕쥐낭이라 불리는 탱자나무 울타리를 둘러 위리안치를 표현했고요. 가시덤불이 담장을 타고 올라갑니다. 아쉽게도 제주추사관에는 추사의 편지가 많지는 않습니다. 가족과 지인에게 건넨 편지 정도가 있지요. 그럼에도 추사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한 통 한 통에 깃든 마음은 대정이라서 한층 절절하게 다가옵니다. 추사는 1848년, 8년 3개월의 유배를 마치고 돌아갑니다. 제주에 처음 다다랐을 때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겠지요. 추사체가 제주에서 비로소 얼개를 갖춘 것처럼 말입니다. 그는 점점이 멀어지는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잘 견뎌 낸 자신에게, 먼저 떠난 아내에게, 굳건한 벗이 되어 준 초의선사에게 그리고 자신의 생을 다시 들여다보게 한 제주와 그 땅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폭싹 속았수다.’ ●곶자왈 숲이 보낸 생명의 소리 유배지의 날들은 외롭고 고된 세월이었을 겁니다. 늘 바쁜 우리는 정작 그 유배의 시간이 필요하게 되었고요. 4월의 제주는 활짝 핀 유채꽃과 벚꽃도 좋겠습니다만 오늘은 당신에게 제주 숲의 소리를 들려주고 싶습니다. 제주에는 곶자왈이 있습니다. ‘곶’은 숲이고 ‘자왈’은 돌과 나무들이 엉클어진 덤불을 뜻하지요. 곶자왈에는 열대 북방한계와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어울려 산다고 해요. 제주의 생태 콘텐츠 스타트업인 ‘더사운드벙커’의 ‘사운드 워킹’은 그 숲을 거닐며 가만히 제주의 목소리를 들어보는 프로그램입니다. 눈으로 좇고 혀끝으로 탐하던 제주를 귀로 맞아들이는 겁니다. 사운드 워킹은 제주추사관에서 멀지 않은 화순곶자왈에서 이뤄집니다. 전문가용 소형 녹음기와 헤드셋이 소리의 동반자입니다. 4월의 곶자왈은 초록이 한층 싱그럽게 피어납니다. 머리 위로 바람이 불고 나뭇가지와 잎들이 부딪쳐 웅성거릴 때 그것은 잔잔한 파도 소리처럼 들립니다. ‘호오~휘리릭’ 하는 섬휘파람새 소리도 들리네요. 새들의 소리가 구애의 ‘송’(song)과 신호의 ‘콜’(call)로 나뉜다는 걸 아시나요? 이것은 봄날의 섬휘파람새가 짝을 찾는 소리이므로 노래일 겁니다. 그리고 헤드폰을 벗는 순간 우리는 그 숲에 작은 생명들이 살아 숨 쉰다는 걸, 사람이 가늠할 수 없는 자연의 소리로 넘쳐난다는 걸, 때로는 귓가에 닿았으나 미처 알아채지 못한 공기 같은 소리가 있다는 걸 알아챕니다. 우리에게 여행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감각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 거지요. 사람과 자연은 글로는 소통할 수 없지만 그렇게 소리로 조금씩 서로를 알아갈 수 있다는 것도요. ●10년 지나 오는 ‘피그말리온 편지’ 다시 ‘폭싹 속았수다’입니다. 제주 푸른 바다가 눈물바다로 보이는 당신과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제주교육박물관은 ‘폭싹 속았수다’의 장면 장면이 겹쳐 흐르지요. 어린 금명이 등에 메고 인사하던 빨간 책가방, 시내버스 승차권, 구슬이나 딱지 같은 추억이 반짝입니다. 더구나 2층은 세트장이나 진배없습니다. 양은 도시락이 놓인 만화방, 애순(아이유)과 관식(박보검)이 된 양 옛 교복을 입어 볼 수 있는 교실 등에서 우리는 잠시 제주의 옛 시간을 살갑게 느껴 봅니다. “밥값. 시(詩) 써.”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딸 금명이 집을 떠나며 니베아 크림과 함께 엄마에게 엽서 같은 메모 한 장을 남깁니다. 저는 그 장면이 떠올라 2전시실 앞에서 한참 머물렀습니다. ‘어머님 보십시오’로 시작하는 1970년대 편지에는 어머니가 보내준 반찬거리에 ‘집의 냄새가 깃들여’ 있다 적혀 있습니다. 따라 스크랩해 붙인 편지였는데 제게는 어머니가 아들의 편지를 고이 간직했다는 증표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니 박물관을 쉬이 떠날 수 있을까요. 제주교육박물관에는 10년 후에 받아 보는 피그말리온 편지가 있습니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절실히 바라는 마음이 이뤄진다는 걸 뜻하는 심리학 용어지요. 누군가는 가족의 평안을, 건강을, 어떤 간절한 믿음을 글로 써나갔겠습니다. 지난해에도 10년 전 제주를 다녀간 이들에게 512통의 편지가 발송되었습니다. 저는 10년 후의 봄날을 떠올려 몇 글자를 눌러 씁니다. 제주교육박물관을 나와서는 4㎞ 남짓한 거리의 제주목관아와 관덕정을 찾아갑니다. ‘폭싹 속았수다’의 백일장 장면 촬영지입니다. 시인이 되고픈 애순과 그런 애순을 사랑하는 관식이 시를 쓰는 장면에 나오지요. 애순은 ‘가슴속에 식지 않은 돌 하나’를 엄마에 비유해 쓰고, 관식은 애순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을 ‘왱왱왱, 잉잉잉’이라고 표현하지요. 제주목관아는 탐라국 시절부터 제주 행정의 중심이었습니다. 제주목관아 앞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랜 건물이고요. 신발을 벗고 관덕정에 오릅니다. 눈 앞에 오늘의 제주 거리가, 등 뒤로는 제주목관아의 옛 시간이 흐릅니다. 평화로운 한때입니다. 그러나 이맘때는 제주 4·3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제주에서 4월의 봄꽃은, ‘폭싹 속았수다’라는 말은 어쩌면 제주가 간직한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그 시간을 견뎌 낸 당신들에게 건네는 위령의 말일지 모르겠습니다. ■ 여행수첩 ●제주추사관 -오전 9시~오후 6시(오후 5시 30분 입장 마감), 월요일 휴관, www.jeju.go.kr/chusa ●제주교육박물관 -오전 9시~오후 6시(오후 5시 30분 입장 마감), 월요일 휴관, www.jjemuseum.go.kr
  • K드라마 ‘도둑 시청’하는 중국…‘폭싹 속았수다’도 당했다

    K드라마 ‘도둑 시청’하는 중국…‘폭싹 속았수다’도 당했다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으로 한국 드라마 등 콘텐츠의 수입을 제한하고 넷플릭스의 진입조차 차단하고 있는 중국이 또 한국 드라마를 ‘도둑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는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넷플릭스 글로벌 톱10시리즈(비영어) 부문 2위까지 오른 ‘폭싹 속았수다’가 대상이다. 20일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등에 따르면 중국의 영화·드라마·도서 등 평론 사이트인 ‘더우반’에서 ‘폭싹 속았수다’의 평점은 이날 기준 9.4점에 달한다. ‘폭싹 속았수다’는 대만에서 ‘고진감래 끝에 너를 만나’(苦盡柑來遇見你)라는 제목으로 넷플릭스에서 방영 중인데, 중국에서도 역시 같은 제목으로 불리고 있다. 더우반은 ‘폭싹 속았수다’에 대해 3월 7일 한국에서 방영을 시작한 총 16부작 드라마이며 “반항적이고 용감한 애순(아이유 분)과 우직한 관식(박보검 분)이 제주도에서 꽃이 피고 지는 사계절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그린다”고 소개했다. 더우반에는 드라마를 봤다는 네티즌들의 후기가 400여건이나 올라왔다. 중국 네티즌들은 “‘응답하라 1988’의 후속작이 될 만 하다”, “다음 막이 공개되면 눈물바다에 빠질 것 같다” 등의 평가를 쏟아냈다. “1막에서 애순이 엄마는 왜 죽었나”, “촬영 비하인드는 어디서 볼 수 있나” 등 드라마 안팎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한한령에도 불구하고 한국 드라마의 팬층이 두터운 중국에서는 이미 ‘폭싹 속았수다’를 여러 경로로 시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각종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에는 현재까지 공개된 전편의 영상이 올라와있으며, 중국 언론과 블로거 등도 거의 실시간으로 드라마에 대한 평가와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2017년 한류 콘텐츠 수입을 차단했다. 당시 인기 드라마들의 중국 내 방송이 불발된 것을 시작으로 국내 콘텐츠 업계는 중국 시장을 잃었다. 그럼에도 중국은 한국 드라마와 영화 등을 무단으로 OTT 플랫폼에 게재해왔다. 넷플릭스가 전세계 콘텐츠 시장을 장악한 후에도 중국은 넷플릭스에 빗장을 내걸었지만, 중국인들은 ‘더 글로리’와 ‘오징어게임’, ‘흑백요리사’ 등 넷플릭스의 한국 콘텐츠들을 장벽 없이 시청해왔다. 서경덕 교수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폭싹 속았수다’가 중국에서 또 불법시청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면서 “중국 내에서는 ‘도둑시청’이 일상이 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지금까지 중국에서는 K콘텐츠에 등장한 한류 스타들의 초상권을 마음대로 사용하고, 짝퉁 상품을 만들어 판매해 자신들의 수익구조로 삼아와 큰 논란이 됐다”면서 “중국 누리꾼들은 ‘한국이 중국 문화를 훔쳤다’는 억지 주장을 펼칠 게 아니라 스스로 먼저 다른 나라 콘텐츠를 존중할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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