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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 스타벅스’와 5·18 정신, 시민의 저항권 [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탈 스타벅스’와 5·18 정신, 시민의 저항권 [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광고 마케팅은 소비자 생각이 중요분노한 시민들 불매운동 할 수 있어스타벅스, 신뢰 회복 위해 노력해야일각의 터무니없는 주장 용납 안 돼정부·정치권이 나서 ‘응징’하는 모습5·18 민주화운동 정신과 맞지 않아시민군, 헌정질서 수호하려고 저항5·18, 정치적 목적에 종속될 수 없어“국가폭력 범죄를 미화하거나 피해자를 모욕하는 행위에 대해선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응징해야 한다.”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한 말이다.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파문에 대해 아주 직설적이고 단호한 입장을 재차 표명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입장에 호응하듯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이 거들고 나섰다. 자신의 엑스(X)에 “최근 물의를 빚은 스타벅스코리아의 반역사적 행태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했다. 그간 행안부를 비롯한 정부 기관들이 국민 참여 이벤트용 경품으로 스타벅스 모바일 상품권을 활용해 왔는데 앞으로는 스타벅스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민주주의의 역사와 가치”를 가볍게 여긴다면 가차 없이 배제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민주당, 스타벅스 출입 자제령 반스타벅스 운동은 행정부를 넘어 입법부 혹은 정치계 전반으로 번지는 듯한 모양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지난 20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스타벅스에 출입하는 것 자체가 국민에게 매우 안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며 6·3 지방선거 민주당 후보자와 선거운동원들에게 스타벅스 출입 자제령을 내렸다. 사실상 보이콧에 들어간 셈이다. 그러다 보니 심지어 ‘헛발질’이 나오기까지 했다. 정진욱 민주당 의원이 지난 21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게시물이 대표적이다. 그는 스타벅스가 지난 2024년 4월 16일에 올린 ‘사이렌 클래식 머그 시리즈’를 문제 삼았다. “신화에서 노래로 배를 난파시키는 세이렌을 세월호 참사일인 4월 16일 이벤트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스타벅스는 1971년 미국 시애틀에서 창립되었으며 그때부터 줄곧 그리스 신화 속 인어인 ‘사이렌’을 로고로 삼아 왔다는 역사적 사실은 아랑곳하지 않는 발언이었다. 심지어 지난 23일 이 대통령이 이 발언을 본인의 엑스에 인용하면서 스타벅스 논란은 점입가경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모든 논의에 앞서 우선 필자 본인의 입장을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겠다. 나는 스타벅스코리아가 5·18에 공개된 광고 이벤트에 ‘탱크데이’라는 표현을 쓴 행위를 옹호하지 않는다. 설령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하하고 조롱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광고 마케팅은 표현하는 사람의 의도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의도가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불편함을 느끼고 거북한 심경을 드러내고 있는 한, 기업으로서 스타벅스는 소비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방향은 의문스럽다. 개별적인 소비자나 민간단체 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직접 관계자나 유족들이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스타벅스를 “응징”해야 한다고 나서는 이 모습은 기괴하다 못해 섬뜩하기까지 하다. 지금 정치권이 보이는 모습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과 부합하지 않는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계엄군에 맞서 무장하고 목숨을 내건 항쟁을 했던 시민군의 정신과 정반대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항권, 가장 중요한 헌법적 권리 일각에서는 5·18은 민주항쟁이 아니라 무장 폭동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의 주장을 펴고 있다. 이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헌법과 그 정신에 대한 완전한 무지에서 비롯된 말이다. 계엄군에 맞서 총을 들고 싸운 것은 국민의 저항권을 행사한 것이다. 저항권은 각국의 헌법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거나 묵시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헌법적 권리다. 가장 중요한 사례를 두 개 꼽아 보자.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제20조 4항은 ‘모든 독일인은 헌법적 질서를 폐지하려는 자에 대하여 다른 구제 수단이 없을 경우에는 저항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총기 소지의 자유를 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수정헌법 제2조 역시 마찬가지다. ‘규율이 잘 서 있는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할 수 있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국민이 무기를 소지할 권리를 가짐으로써 민병대를 구성하고, 주나 연방 정부가 부당하게 권리를 침해하면 맞서 싸울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민군이 지키고자 했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전복해 완전히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넘어선 무언가를 향하는 것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전남도청을 거점으로 삼아 계엄군과 맞서 항전하던 시민군의 목적의식은 분명했다.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군사정변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수호하고자 한 것이다. 시민군은 태극기를 두르고 애국가를 부르며 싸웠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에 입각해 불법적으로 동원된 군사력에 항전했다는 뜻이다. 역사학계에서 수많은 논문을 통해 확인한 바와 같이, 시민들의 애국심은 때로는 반공주의의 형태를 띠기도 했다. 혹시라도 시민군으로 자원하는 인원 중 북한에서 보낸 간첩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에 전남도청에는 간첩 여부를 조사하는 조사과가 따로 설치되어 있을 지경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보수를 자처하는 일부 인사와 진영에서 제기하는 ‘5·18 간첩설’은 실로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시민군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공산주의 독재국가 북한과 전혀 상관없는 무언가였다. 5·18은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이 그 주권을 박탈하고자 했던 군부에 맞서 저항권을 행사한 사건이다. 둘째, 5·18 정신은 특정 진영의 특수한 정치적 목적에 종속될 수 없다. 8·15 광복 이후 6·25 한국전쟁을 거쳐 확립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는 역사적 흐름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폭압적인 권력에 맞선 시민의 저항권뿐 아니라 자유로운 선거와 책임정치, 기업 활동의 자유, 표현의 자유까지 그 모든 것을 지키고자 한 싸움이 바로 5·18이었던 것이다. ●정부·정치권 과잉 대응 ‘불편’ 다시 한번 강조하자. 스타벅스코리아의 의도가 어찌 되었건 5·18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그것은 실패한 마케팅이다. 대체 어떤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 5·18에 대한 비하와 조롱으로 비칠 수 있는 마케팅 문구가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비자가 그렇게 받아들였고 불매운동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기업 차원에서 감수해야 할 일이다. 분노한 소비자가 스타벅스를 불매하거나 이용을 꺼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스타벅스는 당장의 매출 저하와 장기적인 브랜드 가치 손상 등 다각도로 그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사안을 정치권에서 확대 재생산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도 그리 책임이 크지 않은 누군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이 발 벗고 나서서 “가용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응징해야 한다”고 말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과도하다. 스타벅스에 분노하는 다수 국민조차 정부의 과잉 대응에 불편해하는 까닭이다. 이것은 민주국가의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니다. 행안부 장관이 정부 차원의 불매 운동을 제안하는 것 또한 사뭇 충격적이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가 개인이나 기업을 향해 이토록 직접적인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민주국가를 배경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갓 권력을 잡았던 나치 정권은 1933년 4월 1일 유대인 상점 불매 운동(Judenboykott)을 벌였다. 기시감을 접기 어렵다. 심지어 정치권 일각에서는 5·18 특별법을 개정해 이와 같은 사례를 ‘예방’하고 ‘처벌’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런 발상이야말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거스르는 것이다. 개인이나 기업 등 사인(私人)의 문제를 공적 영역에서 법으로 가로막고 처벌하는 영역을 늘리면 늘릴수록 대한민국은 5·18 정신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 5·18 정신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며, 자유민주주의는 표현의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김일성 만세’를 인정하는 데 있다.” 자유를 노래한 4·19의 시인 김수영이 한 말이다. 스타벅스의 ‘탱크데이’ 광고도 마찬가지다. 불매를 하든 계속 스타벅스를 이용하든 그 모든 판단과 결정은 시민의 몫이다. 이 대통령과 정치권은 이 논란에서 손을 떼야 한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 속 5·18재단 홈페이지 ‘디도스 추정’ 공격받아

    스타벅스 ‘탱크데이’ 논란 속 5·18재단 홈페이지 ‘디도스 추정’ 공격받아

    5·18기념재단 홈페이지가 19일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추정 공격을 받아 재단이 대응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이버 공격은 5·18 민주화운동 46주년인 전날 스타벅스 코리아의 ‘탱크데이’ 논란이 이날까지 이어지던 가운데 벌어졌다. 이날 재단에 따르면 전날부터 재단 홈페이지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다수의 IP가 반복적으로 접속을 시도하는 정황이 확인됐다. 재단은 특정 IP들이 짧은 시간 동안 대량의 접속을 반복하며 서버에 과부하를 유발하려 한 것으로 보고 디도스 공격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 전날 스타벅스 코리아가 텀블러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행사 날짜인 5월 18일에 ‘탱크데이’,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 등을 홍보 이미지에 사용해 민주화운동 폄훼 논란이 일었다. 이에 재단은 규탄 성명을 발표하고 이를 홈페이지 보도자료 게시판에 게재한 상태였다. 이후 보도자료 게시판과 홈페이지 전반에서 다중 접속 사례가 잇따라 확인되자 재단은 1분당 120회 이상 접속하는 IP에 대해 속도 제한 조치를 적용하는 등 대응하고 있다. 재단은 지난해 12월 12일에도 일시적으로 트래픽이 급증하는 디도스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설명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주도하는 신군부는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이에 대한 저항이 1980년 5·18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졌다. 재단 관계자는 “현재 일반 이용자들의 홈페이지 이용에는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며 “접속 기록과 홈페이지 데이터를 분석하며 정확한 원인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 [우리동네 선거는]6·3 최대 격전지 대구…핫플 떠오른 서문시장

    [우리동네 선거는]6·3 최대 격전지 대구…핫플 떠오른 서문시장

    6·3 지방선거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보수 민심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대구 서문시장이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국무총리를 지낸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경제부총리를 역임한 추경호 국민의힘 후보가 초박빙 승부를 벌이면서다. 보수 지지세가 강한 대구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라 표심을 얻으려는 정치권의 필수 방문지로 주목받고 있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김 후보는 지난 9일 서문시장을 찾았다. 하늘색 와이셔츠 차림을 한 그가 시장 곳곳을 누비자 ‘보수의 심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환호성을 보내는 시민들과 지지자 등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김 후보가 느낀 서문시장 민심은 ‘절박함’이었다. 그는 “‘대구를 살려달라. 경제를 꼭 살려달라’는 게 시민들이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였다”며 “절박하기 때문에 시민들께서 저를 부르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5일에는 추 후보도 서문시장을 방문했다. 빨간 점퍼를 입은 그가 시장으로 들어서자 시민들은 “추경호”를 연호하며 폭발적인 지지를 보냈다. 현장에서는 동선 확보가 어려울 정도로 구름인파가 몰려 강한 보수 지지세를 실감케 했다. 추 후보는 2시간 가량 시장을 돌아본 뒤 “서민 경제가 어렵다. 민생경제부터 살려야 한다”면서 “대구는 보수의 심장으로, 민주당 정권이 마지막 남은 지방 권력 대구까지 장악하려 한다.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보수 결집을 호소했다. 조선시대부터 전국 3대 전통시장으로 꼽히는 서문시장은 보수 진영 정치인들에게 각별한 장소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직선제 개헌 직후인 1987년 이곳을 찾아 ‘보통 사람 노태우’를 외쳤고, 김영삼·이명박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이곳을 찾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치적 고비마다 서문시장에서 기(氣)를 받아간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서문시장은 대구·경북의 바닥 민심을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진다. 그래서인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등 민주당계(係) 출신 대통령들도 보수 민심 공략을 위해 한 번씩은 반드시 찾았던 장소다. 이 밖에도 이회창, 홍준표 등 거물급 정치인들도 서문시장을 자주 찾아 애정을 드러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보수 후보는 ‘지지세 결집’을, 민주당 후보에게는 ‘변화한 대구 민심’을 상징할 수 있는 장소”라며 “방문 자체가 메시지가 되길 바라는 정치인들에게는 필수 코스”라고 말했다.
  •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시대를 읽는 눈금자, 노동절

    [김정인의 역사프리즘] 시대를 읽는 눈금자, 노동절

    올해부터 5월 1일은 노동절이라는 본래 이름을 되찾았다. 법정 공휴일이 되면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던 유급 휴일이 관공서, 공공기관 등으로 확대되었다. 노동절이 시작된 지 136년 만에 한국에서 5월 1일이 제자리를 찾았다. 노동절의 뿌리는 미국이었다.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들이 8시간 노동제를 요구하며 전국적 총파업을 일으켰다. 당시만 해도 하루 8시간 노동이란 혁명 구호인 동시에 불온한 선동이었다. 미국 노동자들의 총파업은 유럽 노동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해 1889년에 프랑스 파리에서 결성된 제2인터내셔널은 미국 시위를 기념해 매년 5월 1일을 국제 노동자의 날로 지정하고 이듬해인 1890년 5월 1일 유럽 각국에서 최초의 메이데이(May Day) 행사를 개최했다. 이후 노동절은 세계적인 기념일로 자리잡았다. 한국에서는 1920년대 초반부터 노동절을 메이데이라 부르며 기념했다. 당시는 일본 식민치하였으므로 메이데이 기념 시위는 허용되지 않았다. 1923년 경성에서는 노동연맹회가 준비한 메이데이 기념 행진을 경찰이 저지하자 노동단체들은 ‘세계 각국 노동자들이 이날을 기념하며 거리를 행진하는데 조선에서만 금지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항의했다. 5월 1일 경찰의 엄중 경계하에 중앙청년회관에서 열린 메이데이 기념 강연에는 2000여명의 청중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는 메이데이만 되면 기념행사를 치르려는 노동계와 이를 저지하려는 경찰이 번번이 충돌했다. 경찰은 해가 갈수록 탄압의 강도를 높여 시위는 물론 강연조차 허락하지 않았고 사전에 요시찰 인물을 예비 검속했으며 우편물 검사까지 했다. 그럼에도 노동자는 물론 학생까지 나서 메이데이에 노동제를 거행하거나 시가지에 격문을 배포하다가 검거되는 사건이 반복되었다. 식민지 조선과 달리 일본에서는 1920년부터 노동자들이 대대적인 시가행진을 벌이며 노동절을 기념했다. 1927년에는 조선노동총동맹원 300여명이 도쿄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해 일본 노동자들과 함께 행진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처음 맞은 이듬해 노동절에 노동계는 좌우로 갈려 메이데이 기념행사를 열었다. 우익 노동계는 대한독립노동총연맹 주최로 서울운동장 축구장에서, 좌익 노동계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 주최로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기념식을 거행했다. 미군정은 양측의 마찰을 우려한다며 거리 행진을 금지했다. 이날 메이데이기념행사후원회의 이름으로 5월 1일은 만국 노동자의 명절이므로 공휴일로 지정해 달라는 건의문이 미군정에 제출되었다. 1947년에도 서울에서는 좌우 노동계가 별도의 기념식을 개최했으나 충돌은 없었다. 하지만 경북 경주와 전남 나주, 장흥, 담양, 광산, 순천 등지에서는 노동자를 비롯한 군중이 경찰서를 공격하는 시위가 일어나 경찰 2명을 포함해 23명이 사망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났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메이데이에는 반공의 색채가 덧씌워졌다. 언론은 메이데이가 종전에는 “공산주의자들의 모략과 허위 선전을 위해 이용되는 날”이었으나 이제는 “자유노동자들이 그 힘을 모아 멸공 전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데 분발해야 할 뜻깊은 날”이라고 정의했다. 또한 노동운동이 관제 운동으로 전락하면서 1956년 메이데이 거리행진에서는 이승만과 이기붕의 초상화를 건 트럭이 맨 앞자리를 차지했다. 급기야 이승만 정부는 1959년 노동절을 법정 기념일로 제정하면서 날짜를 3월 10일로 바꿨다. 5월 1일은 공산국가와 공산당의 선전 기념일이고 미국 정부도 9월 첫째 주 월요일로 날짜를 바꿔 노동절로 기념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날짜 변경 과정에는 역사학자까지 동원되었다. 결국 대한독립노동총동맹이 탄생한 3월 10일을 노동절로 선택했다. 4·19혁명 이듬해인 1961년에는 한국노동조합총협의회가 혁신계 인사들과 함께 5월 1일에 메이데이 기념행사를 열고 노동절을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환원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5·16쿠데타로 들어선 군사 정부는 1963년 노동절이라는 기념일 명칭마저 근로자의 날로 바꿔 버렸다. 이듬해에는 미국을 좇아 5월 1일을 법의 날로 제정하고 근로자의 날을 근로기준법상의 유급 휴일로 정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처음 맞은 1988년 5월 1일에는 노동단체들이 ‘세계 노동자의 날 기념 노동 3권 쟁취 수도권 노동자 결의대회’를 열고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노태우 정부에 ‘3·10 근로자의 날 폐지와 5·1 노동절 복원’을 담은 노동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1990년 출범한 전국노동조합협의회는 3월 10일 근로자의 날을 거부하며 5월 1일에 전국에서 노동절 기념식을 거행하기 시작했다.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먼저 날짜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김영삼 정부는 1994년 근로자의 날을 3월 10일에서 5월 1일로 변경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32년 만인 2026년에 ‘5월 1일 노동절’이 제자리를 잡았다. 지난 100년 노동절의 역사는 식민과 분단, 독재와 민주화의 궤적이 고스란히 투영된 시대의 눈금자였다.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 입안 주도, 정치학자 출신 이홍구 前총리 별세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 입안 주도, 정치학자 출신 이홍구 前총리 별세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정부를 걸쳐 요직을 두루 역임했던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5일 별세했다. 92세. 1934년 경기 개성시 남산동(현재 북한 개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법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입학 이듬해 자퇴한 뒤 미국 에모리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예일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8년 귀국한 뒤부터는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로 지냈다. 고인은 한국정치학회장을 지내는 등 20년간 학자로 생활했다. 이때 학술지와 신문 등에 쓴 당대 정치 관련 글들로 주목을 받았다.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국토통일원 장관으로 입각하며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고인이 주도하고 여야가 합의해 만든 통일 정책이 1989년 나온 ‘한민족 공동체 통일 방안’이다. 자주·평화·민주의 3대 원칙을 바탕으로 남북연합 체제를 거쳐 통일된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가는 게 골자다. 이후 대통령 정치특별보좌관과 주영대사를 역임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통일원 장관 겸 부총리를 거쳐 1994년 제28대 국무총리에 올랐다. 이후 1996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대표위원으로 합류하며 정계에 몸 담았고, 같은 해 치러진 제15대 총선에서 전국구(현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책임 총리제, 통일 대통령 등을 앞세워 신한국당 대선 경선에 도전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자 1998년 의원직을 내려놓고 초대 주미대사로 부임하며 IMF 외환위기 조기 수습에 나섰다. 주미대사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학계를 넘어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서울국제포럼 이사장, 중앙일보 고문, 유민문화재단 이사장, 대한배구협회 고문, 아산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유족은 부인 박한옥씨와 아들 현우(EIG 아시아 대표)씨, 딸 소영·민영(동덕여대 교수)씨, 며느리 황지영(홍콩한인여성회장)씨, 사위 이강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 발인은 8일 오전 9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지다.
  • 이홍구 전 국무총리, 92세로 별세…학계·정계 넘나들며 여야 아우른 원로

    이홍구 전 국무총리, 92세로 별세…학계·정계 넘나들며 여야 아우른 원로

    김영삼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주미대사를 지낸 이홍구 전 국무총리가 5일 별세했다. 92세. 1934년생인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와 미국 에모리대와 예일대 등을 거쳐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학자로서 학술지와 신문에 당대 정치를 조명한 논문과 논설로 주목받은 고인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 본격적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국토통일원 장관과 주영대사를 역임한 고인은 김영삼 정부 시절엔 부총리 겸 통일원 장관을 거쳐 제28대 국무총리에 임명됐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1996년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 대표위원으로 합류했다. 이어 같은 해 치러진 제15대 총선에서 전국구(현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김대중 정부에서도 중용돼 1998년 주미대사로 활동하며 외환위기 조기 수습에 나서기도 했다. 주미대사를 마치고 귀국한 후에는 학계를 넘어 사회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서울국제포럼 이사장, 중앙일보 고문, 유민문화재단 이사장, 대한배구협회 고문, 아산재단 이사 등을 지냈다. 유족은 부인 박한옥씨와 아들 이현우(EIG 아시아 대표)씨, 딸 이소영·이민영(동덕여대 교수), 며느리 황지영(홍콩한인여성회장), 사위 이강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 등이 있다.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0호에 빈소가 마련됐다. 영결식은 8일 오전 8시, 발인은 오전 9시다.
  • 모노레일 타고 봉황빵 먹고… 국민 핫플 된 ‘청남대의 변신’

    모노레일 타고 봉황빵 먹고… 국민 핫플 된 ‘청남대의 변신’

    옛 대통령 전용 별장인 청남대(청주시 상당구 문의면)가 진정한 국민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충북도의 노력으로 과도한 환경 규제가 풀리면서 그동안 꿈에 그리던 관광 인프라를 속속 확충하고 있어서다. 20일 충북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청남대 모노레일이 운행을 시작했다. 54억원이 투입된 모노레일은 청남대 옛 장비 창고에서 제1전망대까지 350m 구간에 설치됐다. 단선 왕복형으로 20인승 2대가 운행된다. 그동안 제1전망대를 가려면 20분 이상 계단 645개를 올라가야 했다. 모노레일 운행으로 이제는 장애인, 노인, 임산부 등 누구나 쉽게 제1전망대까지 갈 수 있다. 소요 시간은 7분이다. 20인승 모노레일 2대 운행옛 장비창고~ 1전망대 350m 구간하루 20회 운행… 소요 시간 7분1전망대서 본 대청호 풍경 ‘으뜸’모노레일 운행 시간은 첫 출발 오전 9시 20분, 마지막 출발 오후 5시다. 전망대에 도착한 모노레일은 23분 후 다시 내려온다. 하루 운행 횟수는 20회다. 이용료는 성인 5000원, 만 12세 이하와 65세 이상, 충북도민, 장애인은 3000원이다. 모노레일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도 관계자는 “평일은 오후 3시, 주말은 오후 1시 정도면 탑승권이 매진된다”면서 “한 번에 최대 40명까지 탑승할 수 있는데 안전을 고려해 35명으로 제한하고 있어 하루 700명이 모노레일을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인분들이 주로 많이 이용한다”며 “제1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청호 풍경이 일품이라 인기가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2월 청남대에는 개방 22년 만에 처음으로 카페가 문을 열었다. 이전에는 컵라면과 음료수 등을 파는 매점이 전부였다. 도는 상수원 보호구역에 있는 카페이다 보니 환경오염 차단에 많은 공을 들였다. 카페에서 발생하는 오폐수 처리 시설을 따로 설치하고 친환경 소재 컵과 다회용기를 사용한다. 카페에서 발생하는 모든 쓰레기는 외부 업체가 거둬 간다. 카페가 자리 잡은 곳은 대통령기념관 1층이다. 청남대가 이곳에 카페를 꾸민 것은 다양한 기획 전시가 열리는 문화 공간과 양어장, 메타세쿼이아 나무숲 등과 연계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150㎡ 규모인 카페는 나무 느낌의 자연 친화적 공간으로 꾸며졌다. 커피, 음료, 케이크, 쿠키 등 간편식을 즐길 수 있다. 봉황빵도 판매한다. 빵 모양이 봉황을 닮거나 봉황 문양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 청남대를 많이 찾는 어르신들이 달지 않은 것을 선호해 속에 아무것도 넣지 않은 빵을 만들었는데 청남대 상징인 봉황을 빵 이름으로 썼다. 개방 22년 만에 카페도 문 열어대통령기념관에 자연친화적 공간다회용기 사용 등 오염 차단 최우선 “먹거리 즐기며 쉴 공간 생겨 좋아”청남대를 찾은 한 관광객은 “부지가 넓어 전체를 둘러보면 체력 소모가 적지 않은데 그동안 쉴 곳이 없어 아쉬웠다”며 “여유롭게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생겨 너무 좋다”고 말했다. 카페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2024년 9월 준공한 나라사랑교육문화원도 청남대 변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다. 198억원이 투입된 교육문화원은 지하 1층, 지상 3층, 전체 면적 4222㎡ 규모로 건립됐다. 지하 1층은 구내식당과 세미나실, 지상 1층은 2개의 강의실과 영상실, 지상 2층과 3층은 생활관 32실로 꾸며졌다. 총 72명의 교육생이 머물 수 있는 복합 교육 시설이다. 청남대관리사업소는 교육문화원을 활용해 나라사랑 교육, 자연사랑 교육, 지역사랑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최근 2년간 이뤄진 청남대의 이 같은 변화와 발전은 규제 완화를 위해 도가 흘린 땀의 결과물이다. 도는 이시종 전 지사 때부터 청남대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상수원 보호구역 규제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이 전 지사는 임기 내내 청남대가 품고 있는 대청호 규제가 팔당호 등과 비교해 과도하다며 청남대를 비롯한 대청호 주변 일정 부분에 관광 시설을 허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뒤를 이은 김영환 지사 역시 청남대 규제 완화에 혼신을 다했다. 김 지사는 2024년 6월 당시 윤석열 대통령에게 손 편지까지 쓰며 규제 완화를 호소했다. 그는 손 편지에서 “청남대는 지금 당장 세계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국가정원”이라며 “이 엄청난 국가정원이 상수원 보호구역이라는 온갖 규제로 인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김 지사는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을 면담하고 상수원 관리규칙 개정을 위한 충청권 4개 시도 회의도 개최했다. 이런 노력이 더해져 2022년 5월 상수원 관리규칙이 일부 개정됐다.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상수원 보호구역 내에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및 교육원 등을 설치할 수 있다는 게 개정의 핵심이다. 단 오폐수가 상수원으로 직접 유입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변화 첫 상징 ‘나라사랑교육문화원’충북지사들 규제완화에 직접 뛰어모노레일·교육원 등 설치 근거 마련“문화·관광·교육 모두 가능한 명소”2024년 8월에도 상수원 관리규칙 개정이 이뤄졌다. 이 개정으로 상수원 보호구역 내 150㎡ 이하 건물의 경우 음식점으로 용도 변경이 가능해졌다. 모노레일과 청소년수련원을 설치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됐다. 군사 시설 용도 변경도 허용해 청남대 내 기존 건물들을 미술관, 박물관, 교육원 등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됐다. 도 관계자는 “청남대가 규제 완화의 상징이 되고 있다”며 “규제 완화를 계기로 청남대가 문화, 관광, 교육이 모두 가능한 국민 명소로 다시 한번 도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1983년 영빈관 격으로 조성된 청남대의 전체 면적은 182만 5647㎡다. 조성 당시 ‘봄을 맞이하듯 손님을 맞이한다’는 의미의 ‘영춘재’란 이름으로 준공됐다가 1986년 청남대로 개칭됐다. 청남대는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이다.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역대 대통령 5명이 청남대를 이용했다. 1급 국가경호시설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다가 2003년 소유관리권이 충북도로 이양되면서 국민에게 개방됐다.
  • “성장·행복 모두 막아선 서울 집값… 보유세 높이고 공급 대폭 늘려야” [월요인터뷰]

    “성장·행복 모두 막아선 서울 집값… 보유세 높이고 공급 대폭 늘려야” [월요인터뷰]

    부동산 수렁에 빠진 대한민국소득 대비 집값, 뉴욕·도쿄의 두 배보유세는 최대 5분의1 수준 그쳐저출산·빈부격차·성장 둔화 불러‘1기 신도시 설계자’의 집값 해법3기 신도시 분양 앞당겨 공급 확대단독·다가구 재개발로 양극화 완화보유세 강화해 투기 수요 억제도원로 경제학자의 성장 해법출산율 높이고 외국인·로봇 활용첨단 과학기술 개발에 국력 집중부동산 아닌 기술 투자 이어져야40억원 넘는 기부 이끈 철학 ‘나’보다 ‘우리·사회적 이익’ 우선타인·사회 배려로 얻는 행복 더 커지금, 할 수 있는 만큼 배려해 보길집 한 채를 향해 돈이 몰리면 경제는 다른 길을 잃는다. 공장으로 가야 할 자금은 아파트로 향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할 청년의 시간은 대출 상환에 묶인다. 결혼은 늦어지고 아이 울음은 줄어든다. 성장률 둔화와 저출산, 빈부격차. 따로 노는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곳에서 시작된다. 집값이다. “대한민국 전체가 부동산 수렁에 빠졌다.” 노태우 정부 시절 대통령 경제수석과 건설부 장관으로 분당·일산 등 1기 신도시를 설계해 ‘주택 200만호 시대’를 연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진단은 단호했다. 그는 집값 문제를 공급과 유동성, 두 축에서 모두 다뤄 본 인물이다. 신도시 개발로 공급을 늘리고, 과열기에는 통화정책으로 균형을 맞추며 집값 안정을 설계해왔다. 12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만난 그는 한국 경제의 병목을 묻는 질문에 머뭇거림 없이 답했다. “소득 대비 집값을 절반으로 낮춰야 합니다.” 소득 대비 집값(PIR)은 연 가구 소득으로 집을 사는 데 걸리는 기간을 의미한다. 서울은 24 수준인데, 뉴욕은 11, 도쿄는 10이다. 쉽게 말해 서울의 중간소득 가구가 한 푼도 쓰지 않고 24년을 모아야 중간 수준의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주요 도시와 비교하면 두 배 이상 오래 걸리는 셈이다. 집값을 낮추는 것이야말로 성장과 분배, 삶의 질을 동시에 회복하는 ‘경제 정상화의 출발점’이라는 설명이다. 박 전 총재의 해법은 명확하다. 단독·다가구 밀집 지역 재개발과 3기 신도시 조기 분양으로 공급을 늘리고, 보유세를 강화해 수요를 억제해야 한다. 결국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기대 자체를 끊어야 한다는 얘기다.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한국은행 총재까지 60년 가까이 정책의 최전선에 서 온 원로 경제학자. 그의 경제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사회적 윤리’다. 개인의 행복은 작고, 타인과 사회의 행복은 크다는 철학을 갖고 학자와 공직자로 일생을 보낸 박 전 총재는 40억원이 넘는 재산을 사회에 기부해왔다. 다음은 박 전 총재와의 일문일답.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성장 엔진이 꺼지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성장률은 20년 전 5%대에서 10년 전 3%대로, 지금은 2% 내외까지 떨어졌고 이 추세가 이어지면 앞으로 0%대 성장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과 독일이 이미 같은 길을 걸었다. 일본은 장기 저성장에 빠졌고 독일도 최근 마이너스 성장에 들어섰다. 경제가 성장을 멈추면 분배와 복지도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원인은 분명하다. 생산 노동력이 줄고 있고, 첨단 과학기술 경쟁력이 약해지고 있으며, 국내 투자가 위축되고 있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 출산율 제고와 외국인 노동력 활용 그리고 로봇의 생산현장 투입을 통해 노동력 감소에 대처해야 한다. 다음으로 첨단 과학기술 개발에 국력을 집중해 첨단 과학기술이 성장 약진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을 인공지능(AI) 경쟁력에서 세계 3대강국이 되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정책방향은 매우 바람직하다.” -K자형 성장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한국은 대표적인 ‘고소득 저생활국’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1인당 소득이 3만 6000달러 수준의 선진국이지만,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높고 출산율과 국민행복지수는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행복지수는 33위로 하위권이다. 소득 수준에 비해 삶의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분명하다. 집값이 너무 비싸 내집 마련이 어렵다는 데 있다.특히 한국은 성장할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K자형 구조’가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심에도 부동산 문제가 있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소득 격차보다도 자산 격차가 근본 문제인데 최대 원인은 집 문제다.” -부동산이 왜 문제인가. “높은 집값은 결혼 기피와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이고, 빈부격차와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다. 따라서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은 단순한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한국 경제 전반의 정상화를 위한 기본 과제가 된다. 그래야만 젊은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 소득 대비 집값을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정책적으로는 공급과 수요를 동시에 건드려야 한다. 공급 측면에서는 단독·다가구 주택 밀집 지역의 재건축을 국책적으로 적극 추진해 주거 환경 개선과 공급 확대를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이는 저소득층 지원과 양극화 완화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3기 신도시 분양을 앞당겨 대규모 물량 공급을 실감토록 해야한다.수요 측면에서는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해 국민 저축이 부동산으로 가는 길을 차단해 국내 투자로 흐르도록 해야 한다. 현 정부의 부동산정책에서 미흡하다고 여기는 것은 수요쪽에서 종부세에 손대지 않고 있는 점, 공급쪽에서 3기 신도시 공급을 늦추고 있는 점이다.”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첫째는 투기 목적의 가수요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빈부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소비세보다 자산세를 강화하는 것이 불평등 해소에 더 효과적인데, 그 중심이 바로 부동산 보유세다. 셋째는 사회정의의 문제다. 고가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세금을 부담해야 사회적으로 떳떳하고, 사회적 형평성에도 이것이 맞다.지금 한국은 이 세 가지 측면 모두에서 문제가 있다. 보유세 수준이 선진국의 3분의 1~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뉴욕은 시가 대비 약 1.3%, 도쿄는 1.7% 수준인데 서울은 0.3%에 그친다. 시가 10억원 주택 기준으로 보면 미국 휴스턴은 재산세 500만원과 교육세 1000만원을 합쳐 연 1500만원 수준인데, 서울은 재산세와 종부세를 합해도 약 300만원에 불과하다.과세 기준도 바뀌어야 한다. 총 보유가액 기준으로 과세하는 것이 맞다. 서울의 70억원짜리 한 채와 지방의 5000만원짜리 여러 채를 단순히 주택 수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최근 한국 증시와 환율 흐름은 어떻게 평가하나. “그동안 한국 증시는 선진국 대비 저평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상태였는데, 최근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과 AI 산업 확산이 맞물리면서 반도체 중심으로 강한 상승 흐름을 보였다. 반도체 산업 호황과 정부 정책이 맞물려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는 현상으로 본다. 이러한 상승은 일정 부분 지속성을 가질 것으로 본다. 환율 역시 비슷한 흐름이다. 기초 체력이 견고한데도 환율이 상승하는 것은 이란 전쟁, 대미 투자, 해외 투자 확대 등 일시적 외화 수요 때문으로 본다. 이러한 특별 수요는 시간이 지나면 완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연말에는 환율이 1300원대 수준에서 안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AI와 로봇 확산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어떻게 보나. “앞으로는 피지컬 AI와 휴머노이드 로봇이 결합되면서 생산 현장에 로봇이 빠르게 투입될 것이다. 로봇은 24시간 가동이 가능하고 보상이나 휴식이 필요 없으며 노동 분규도 없다. 이런 변화는 생산비를 낮추고 물가를 안정시키며,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활 수준과 실질 소득을 높일 것이다.다만 단기적으로는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일자리 감소와 실업 문제, 불평등 심화, 윤리와 보안 문제 등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이를 막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리더십 철학이 있나. “언제나 ‘나’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한다. 작은 선택에서도 마찬가지다. 불편하더라도 남을 먼저 배려하고, 조직과 사회에 도움이 되는 방향을 택하는 것이 쌓이면 결국 개인의 길도 열린다.정책은 항상 갈등을 동반한다. 분당·일산 등 1기 5대 신도시를 건설할 때의 일이다. 현장에서는 극심한 반대가 있었고, 도로 점거와 시위가 이어졌으며 국회에서는 백지화 결의안까지 통과됐다. 그럼에도 당시에는 후퇴하지 않고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지금의 불편과 손해보다 미래의 사회적 이익이 더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사업은 예정대로 추진됐고, 나는 정치적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됐는데, 그 때 일은 지금도 기억에 선명하다.”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기부한 이유는. “나 자신의 큰 행복을 위해서다. 하늘을 보고 별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일이 종종 있다. 그 때마다 개인적인 행복은 작고 좁은 행복이고, 남과 사회를 배려하는 데서 오는 행복은 크고 넓은 행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폐교 위기에 있던 전북 김제의 한 농촌 초등학교에 도서관을 지어주고 장학기금을 마련해 주었는데, 이 학교가 다시 살아나 최근에 4개 학급을 증축하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보는 것이 내게는 큰 행복이다.젊은 세대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 삶도 힘든데 어떻게 남과 사회까지 생각하느냐’고 묻지만,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주변을 배려하고 조직에 기여하는 태도를 가지면 된다.” ■박승 前한은 총재는 1936년 전북 김제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년 한국은행에 입행한 뒤 중앙대 교수, 대통령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한국은행 총재 등을 역임하며 정책과 학계를 넘나들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성장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가진 사람이 더 나누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철학을 실천해왔으며, 모교와 농촌 학교, 공익재단 등에 40억원이 넘는 재산을 기부해왔다. 2013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 소사이어티’에 최초로 부부가 함께 가입해 100억원이 넘는 유산을 펀드 형태로 사회에 환원한 권준하·조강순 부부가 박 전 총재의 처남인데, 그의 기부 철학에 영향을 받아 실천에 나선 사례로 꼽힌다.
  • [세종로의 아침] ‘체육대통령’ 비리, 끝까지 추적해 단죄해야

    [세종로의 아침] ‘체육대통령’ 비리, 끝까지 추적해 단죄해야

    이기흥 전 대한체육회장은 두 번의 임기 동안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한 해 4000억원 넘는 예산이 무기였다. 상위 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손도 못 댈 정도여서 ‘체육대통령’이라 불렸다. 그가 3선을 앞두고 다시 회장이 되겠다고 나섰을 때 문체부 직원들에게 들었던 일화가 생생하다. 상식을 넘어서는 온갖 만행에 “그럴 수 가 있느냐”며 혀를 내둘렀던 기억이 난다. 지난 4일 감사원이 발표한 대한체육회 운영에 대한 감사 결과는 당시 소문이 상당수 사실이었음을 보여 줬다. 국가대표 선발·훈련 지원, 선수 인권침해 보호, 종목단체 지도·감독, 기관 운영 등 4개 분야에서 문제가 차고 넘쳤다. 감사원 조사에 따르면 이 전 회장은 문체부 협의 없이 예산 규정을 개정해 행사성 예산을 대폭 증액했다. 대한체육회는 2023년 운영자금 30억원가량을 차입할 정도로 재정이 어려웠는데, 행사성 예산은 24억원으로 10억원이나 뛰었다. 정관을 위반해 이사회와 스포츠공정위원회를 자의적으로 구성해 운영했다. 경제부처 고위공무원 출신 등 수십 명을 ‘특별보좌역’이라는 이름으로 앉혀 놓고 매월 300만~800만원씩 주기도 했다. 이들이 이 전 회장의 ‘로비꾼’으로 활동했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국가대표 선발 과정도, 선수들 인권 보호도 제대로 됐을 리 없다. 2022~2024년 29개 종목단체에서 국가대표 선발 방식을 결정하거나 후보자를 평가한 이사·경기력향상위원 70명이 직위를 유지한 채 국가대표 지도자로 지원했고, 이 중 상당수가 선발됐다. 2020년 8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폭행·성폭력 등으로 체육지도자 자격이 취소됐지만 222명이 학교 등 체육 현장에서 지도자로 활동 중이었다. 최근 3년간 각종 대회에 참가한 학교폭력 가해 선수는 152명이었다. 고름이 터지자 지난해 당선된 유승민 회장이 사과와 재발 방지책 마련 등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다. 유 회장은 감사원 발표 이틀 뒤 ‘대한체육회 조직 운영 및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자의적인 예산 운영을 방지하고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자체 예산도 문체부 승인을 받도록 예산 규정을 개정하기로 했다. 스포츠공정위원회의 위원을 외부 인사로 구성하고, 2회 이상 연임 제한 규정을 만들었다. 논란이 된 특별보좌역은 아예 폐지했다. 국가대표 선발 절차의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선수 선발 유형별 표준 기준을 마련하고, 지도자 선발 절차와 평가 기준도 표준화할 방침이다. 범죄경력 결격 대상자의 지도자 활동을 방지하기 위해 체육지도자 자격증 보유자 중심으로 지도자 등록 체계를 정비하고, 범죄 이력 확인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안도 문체부와 협의 중이다. 유 회장이 내놓은 방안은 박수받을 만하지만, 이 정도로 묻고 갈 일이 아니다. 예컨대 현 정부 모 장관은 과거 이 전 회장의 특별보좌역으로 일해 논란이 일었는데, 인사청문회 당시 잠시 언급됐다가 지금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덮인 상태다. 이 장관은 당시 ‘문체부·기재부 등 대정부 협력’, ‘국회 상임위·특위 등 대국회 협력’이란 임무를 맡았는데, 어떤 자문 내역이나 출근 기록도 남기지 않고 1년 10개월간 매월 330만원씩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번 조사 결과는 이 전 회장이 답변을 거부한 상태에서 나온 결과다. 제대로 된 조사로 볼 수 없고, 따라서 제대로 된 처벌도 내릴 수 없다. 이 전 회장이 3선에 도전했을 때 문체부는 직무 정지 처분을 내렸던 터였다. 당선됐더라도 제 역할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3선에 성공했더라면 체육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망가졌을 확률이 높다. 과거 전두환·노태우에 대한 단죄가 부족해 윤석열 같은 이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이 전 회장을 제대로 조사하고 비리가 나오면 죄를 철저히 물어야 한다. 그래야만 ‘체육대통령’ 같은 이가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김기중 문화체육부 차장
  • [사설] 尹 무기징역… ‘헌정 파괴 내란’ 단죄는 사필귀정

    [사설] 尹 무기징역… ‘헌정 파괴 내란’ 단죄는 사필귀정

    법원이 어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내란죄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불법 비상계엄 443일 만에 사법부가 역사적 심판을 내린 것이다. 1996년 내란 혐의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은 이후 30년 만에 전직 대통령이 또다시 내란 혐의로 유죄를 인정받았다. 다시는 참담한 역사가 반복돼선 안 된다는 준엄한 경종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 지귀연)는 12·3 계엄은 경고성 계엄일 뿐이라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일축하고 내란죄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무엇보다 군을 국회에 보내고 국회의장과 여야 당대표 등을 체포하려 한 것이 내란 혐의의 핵심이라며 형법이 규정한 국헌 문란과 폭동에 해당한다고 못박았다. 질서 유지를 위해 군을 보냈다는 윤 전 대통령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법원은 대통령도 국헌 문란 목적의 내란죄를 저지를 수 있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나 검찰도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내란죄 수사 권한이 있다고 판시하는 등 공소기각 가능성을 일축했다. 다만 윤 전 대통령이 1년 전부터 비상계엄을 준비했다는 특검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특검에 이어 사법부까지 12·3 비상계엄을 내란죄로 규정한 만큼 이제라도 윤 전 대통령은 잘못을 깨끗이 인정하고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과해야 마땅하다. 앞서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재판부에서 내란 혐의를 유죄로 판결했다. 법적 판단이 아니더라도 윤 전 대통령의 과오는 실로 중대하다. 어처구니없는 계엄을 발동하고도 정치적·법적 반발을 이어 가는 바람에 국론은 참담하게 쪼개졌다. ‘윤 어게인’을 외치는 지지자들에게 통합을 주문하는 것이 한때 국가 최고 지도자로서 국민에게 속죄하는 최소한의 도리다. 법원도 12·3 계엄 탓에 사회가 정치적으로 양분돼 극한의 대립을 겪고 있다며 사회적 비용을 산정할 수 없는 정도의 어마어마한 피해라고 지적했다. 상급심이 남았으나 정부·여당도 책임 있는 자세로 전향할 필요가 있다. 1심 법원이 43차례 공판에 무려 160여명의 증인을 출석시킨 끝에 내란죄를 인정하고 중형을 선고한 마당에 이 문제를 무한정 정치 쟁점으로 삼는 것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과유불급의 우려를 듣는 2차 종합특검도 90일 이내에 신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한다는 의심을 받을 뿐 아니라 ‘윤 어게인’ 세력이 계속 발호할 동력을 주게 된다. 내란 세력을 단죄하기까지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안정시킬 수 있는 처방은 민생에 집중하는 집권당의 모습이다.
  • 미동 없이 재판부 응시한 尹… 지지자엔 옅은 미소

    미동 없이 재판부 응시한 尹… 지지자엔 옅은 미소

    선고 마무리되자 김용현과 악수변호인단과 웃으면서 대화 나눠형 확정 전까지 서울구치소 수감 윤석열 전 대통령은 19일 무기징역이 선고된 순간 미동 없이 재판부를 바라봤다. 재판이 끝나고 퇴정하면서는 지지자들에게 미소를 보이기도 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는 일찍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노타이에 남색 정장 차림으로 입정한 윤 전 대통령은 판결문 낭독 내내 굳은 표정으로 지귀연 부장판사와 허공을 번갈아 응시했다. 약 1시간 동안 이어진 선고 공판 내내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 이따금 고개를 숙이거나 입술을 깨무는 등 긴장한 기색을 보였고, 옅은 한숨을 쉬기도 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도리도리’ 동작도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선고가 마무리되자 변호인단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앞자리에 앉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도 악수했다. 선고 직후 법정 안팎은 지지자들로 인해 소란이 일기도 했다. 재판부가 퇴장하자 방청석의 일부 지지자들이 일어나 “대통령님 힘내세요”, “자유 대한민국”을 큰 소리로 연호하다 법원 경위들의 제지를 받았다. 출입구 쪽에서는 “엉터리 판사, 지귀연 판사 어딨어”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반면 윤 전 대통령을 향한 듯 “양아치야! 국민한테 빌어! 잘못했다고!”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윤 전 대통령은 퇴정하면서 방청석 일부에서 “대통령님 힘내세요” 등의 외침이 나오자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미소를 지은 채 법정을 빠져나갔다. 윤 전 대통령은 선고가 끝난 후 경기 의왕시에 있는 서울구치소의 2평대 독방으로 돌아갔다. 형이 확정될 때까지 서울구치소에서 수감 생활을 계속한다. 구치소 복귀 뒤 첫 저녁 메뉴는 들깨 미역국과 떡갈비 채소 조림, 배추김치, 잡곡밥이 나왔다. 선고 전 점심 메뉴는 잔치국수와 핫바, 아침은 사골곰탕과 무말랭이무침이었다. 재판이 열린 417호 대법정은 150석 규모의 전국 최대 규모 형사 법정으로, ‘전직 대통령의 무덤’으로 불린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등 역대 대통령들이 모두 피고인석에 섰다. 
  • 사망자 많았던 전두환…물리력 자제한 윤석열

    사망자 많았던 전두환…물리력 자제한 윤석열

    윤·전, 국가 위기라며 불법 계엄둘 다 사형 구형에도 반성 없어 윤석열 전 대통령이 19일 내란 우두머리 1심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불명예스러운 운명을 나란히 하게 됐다. 윤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이어 서울중앙지법 417호 형사 대법정에서 내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전직 대통령으로 남게 됐다. 내란 우두머리는 최고형으로 단죄한다는 판례도 남겼다. 전 전 대통령은 12·12 군사반란과 5·18 내란을 일으킨 혐의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내란 목적 살인, 뇌물도 인정됐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기소된 노태우 전 대통령도 1심에서 징역 22년 6개월을 선고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17년으로 감형됐다. 이들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날인 1997년 12월 20일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당선자의 협의로 사면 복권됐다. 수감 기간은 약 2년에 불과했다. 이들에 대한 단죄는 쉽지 않았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에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로 이들을 불기소했다. 이후 국회가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면서 재수사가 시작됐다. 전 전 대통령과 윤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형량을 가른 포인트는 ‘사망’으로 보인다. 전 전 대통령의 경우 정권 찬탈 과정에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했고 살인 혐의가 인정됐다. 반면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재판부는 “직접적인 물리력·폭력을 행사한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윤 전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 줄곧 헌법상 대통령에게 부여된 비상계엄 선포권을 정당하게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전 전 대통령은 군부에 이어 행정부까지 장악하기 위해 계엄 확대 조치를 했고, 당시 그는 국군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에 불과했다. 윤 전 대통령은 정권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헌정 질서를 파괴한 반면 전 전 대통령은 군사 반란 및 정권 탈취가 목적이라는 점도 차이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은 실패한 ‘친위 쿠데타’로, 전 전 대통령의 경우에는 폭력을 통해 성공한 ‘군사 쿠데타’로 규정되는 점도 다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12·3 내란은 윤 전 대통령과 추종 세력에 의한 것으로,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둘 모두에게 사형을 구형했고 이들은 최후진술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쿠데타는 내란죄로 중형에 처해진다는 점이 역사적 판례로 기록됐다.
  • 체포 방해부터 계몽령 주장까지… 尹 ‘오욕의 역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으며 비상계엄 선포 443일 만에 내란죄가 인정됐다. 윤 전 대통령 내란 혐의와 관련된 수사·공소 유지는 수사기관 간 힘겨루기부터 영장 쇼핑 의혹, 즉시항고 포기 등 숱한 논란과 더불어 불명예 기록들을 처음 써 내려간 과정이었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비상계엄 선포 5일 후인 2024년 12월 8일 검경 합동수사본부(합수본)에 ‘12·3 비상계엄 선포’ 사건에 대한 이첩요구권을 행사했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주도하겠다는 포석이었다. 결국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사건을 공수처로 이첩했으며 공수처는 나머지 피의자들에 대한 이첩 요청을 철회했다. 다만 공수처는 영장 청구 단계에서부터 논란을 일으켰다. 공수처 관할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이 아닌 서울서부지법에 체포·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영장 쇼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공수처는 우여곡절 끝에 2025년 1월 19일 윤 전 대통령을 구속했고, 이후 검찰 특수본이 1월 26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첫 구속 기소이자 현직 대통령 최초의 ‘피고인’이라는 불명예 기록이었다. 논란의 정점은 법원의 윤 전 대통령 구속 취소 결정과 이에 대한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였다. 그해 3월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지귀연)는 윤 전 대통령 측이 청구한 구속 취소 청구를 인용했다. 이례적 법리 해석이었지만 대검찰청은 항고 포기를 결정했고 다음날인 8일 윤 전 대통령은 풀려났다. 이후 윤 전 대통령은 4월 4일 헌법재판소 결정에 의해 파면됐다. 이어 7월 10일 조은석 특별검사팀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해 직권남용, 허위공문서 작성, 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법원은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의 이유로 영장을 발부했다.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에 이어 헌정사 다섯 번째 전직 대통령 구속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재판 과정에서도 ‘계몽령’, ‘경고성 계엄’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내란 혐의를 전면 부정했다. 그는 최후진술에서도 “국민들이 응원해 주는 것을 보고 내가 울린 비상벨이 효과가 있구나”라고 말하는 등 끝까지 반성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 [기고] 통합 광주특별시, 리더십의 조건과 덕목

    [기고] 통합 광주특별시, 리더십의 조건과 덕목

    1990년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지방자치제 도입을 연기하려 했던 노태우 정부에 맞서 ‘지자제 완전 실시’를 요구하며 13일간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을 펼쳤고, 결국 지자제의 부활을 끌어냈다. 2002년 ‘지방화 시대 국가균형발전’을 3대 국정목표로 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종시·혁신도시 건설과 176개 공공기관의 이전으로 균형발전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이후 수도권 집중화로 균형발전은 후퇴하고 지방소멸에 이어 국가소멸로 가고 있다. ‘5극 3특 국가균형성장’을 국정 중점 과제로 내건 이재명 대통령은 먼저 대전·충남 통합을 화두로 제시했다. 이곳이 주춤하는 사이 광주·전남의 강기정 시장과 김영록 지사가 나섰다. 김민석 총리가 발표한 ‘예산 20조원+a와 공공기관 이전’ 지원 방안은 지방자치단체 입장에선 새 마스터플랜을 짤 좋은 기회다. 그렇다면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약칭 광주특별시장)이 갖춰야 할 리더십의 조건과 덕목은 무엇일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우선 ‘갈등 조정·통합의 리더십’이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이 있듯이 두 광역단체가 통합하는 데 수많은 이해 갈등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약 300개 현안을 잘 조정하는 능력과 더불어 화학적 통합을 이뤄 내야 한다. 둘째, ‘부강한 특별시를 만드는 선진 리더십’이다. 글로벌 신기술·신산업 트렌드를 잘 파악해 신성장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특히 기존 인공지능(AI)·반도체·콘텐츠·모빌리티·에너지·우주항공·농생명 산업을 최고 경쟁력으로, 또 신산업 창업을 이끄는 역량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지역을 AI·디지털 등 4차 산업혁명의 ‘아시아 허브’로 이끄는 리더여야 한다. 셋째, 대형 공공기관을 유치하는 ‘정치적 돌파력과 협상력의 네트워크 리더십’이다. 노 전 대통령 때 한국전력 등 공공기관이 나주로 옮겼다.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앞두고 대형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이와 관련한 경륜이 있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넷째, ‘뉴DJ 소명의 리더십’이다. 한국의 지방자치는 ‘미완이자 반쪽 제도’다. 지방의 권한이 중앙정부에 종속되어 ‘2할 자치’라는 조롱도 받는다.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대2 수준이고 지방은 중앙의 교부세 등에 의존한다. 온전한 자치분권을 이뤄 내는 리더가 절실하다. 다섯째, 궁극적으로 ‘연방국가로 가는 리더십’이다. 미국·독일 수준의 ‘온전한 자치분권’ 선진국은 입법, 재정, 인사권이 실질적으로 지방정부에 있다. 미국·독일처럼 전 국토를 넓게 활용해 균형발전해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다. 선진국 수준의 균형발전을 위해 우리도 상원제를 도입하는 ‘원 포인트 개헌’이 필요하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 전문에 수록하는 국민운동을 함께 펼칠 수 있는 호기다. 통합의 성패는 이 대통령에게 달려 있다. 이 대통령이 국정 핵심과제로 삼은 균형발전을 위해 통합 광역단체와 한 배를 타는 ‘원팀 정신’이 필요하다. 광주의 재야 리더는 ‘이 대통령이 주관하는 광주전남 통합 타운홀 미팅’을 제안한다. 이어 ‘대구경북 타운홀 미팅’으로 확실하게 통합 이니셔티브를 잡을 수 있다. 통합 광주특별시가 단순한 행정통합을 넘어 ‘메가시티’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100년의 설계자이자 중재자’의 역량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통합을 이뤄 내는 통 큰 리더십은 DJ처럼 지역 분권의 선구자로 차기 지도자로 도약할 수 있는, 통합 광주특별시 시민들이 원하는 리더십일 수 있다. 김택환 미래전환정책연구원장
  • [박성원의 직설대담] “껍데기만 민주주의, 언제든 거꾸로 돌아갈 위험 있다”

    [박성원의 직설대담] “껍데기만 민주주의, 언제든 거꾸로 돌아갈 위험 있다”

    경찰 권한집중, 벌써 우려 목소리권력시녀화 땐 개혁 요구 나올 것 12·3 계엄, 민주주의 심각한 훼손내란죄 여부, 법원 판단 존중해야張·韓 반민주적 행태, 국힘을 망쳐국민이 후보 선출하는 공천혁명을대통령, 與 잘못도 과감하게 지적힘있는 여권의 성찰과 절제 필요12·3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조기 대선과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세계에서 유례없는 회복탄력성을 보여 줬다. 그러나 한 꺼풀 들어가 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권력기관 개편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논란이 적지 않다.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지난 40년간 제도적 민주주의는 이뤄졌지만, 정치권에서는 민주주의가 내면 깊숙이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또한 “민주주의가 형식화되거나 껍데기만 권력욕에 이용될 경우 민주주의는 언제든 깨지고 후퇴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서 2년 반 동안 했던 일 중 가장 보람 있는 걸 꼽는다면. “지난해 6월 10일 이곳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자리에 민주화운동기념관을 개관한 일이다.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정리하고 일상의 민주주의를 기념사업회의 나아갈 방향으로 정착시킨 것에도 보람을 느낀다.” -1987년 민주항쟁과 직선제 개헌 이후 40년간 우리 민주화의 성취에 대한 평가와 아쉬운 점은. “치열했던 민주화 역사를 통해 제도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뤄졌다. 하지만 정치하는 사람들, 입법부·행정부·사법부 이런 곳에는 아직 민주주의 가치가 깊이 자리잡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10월부터 검찰청이 폐지되고 수사권이 경찰에 집중된다. 더불어민주당은 검찰의 보완수사권도 없앤다는데. “경찰에만 권한이 집중되는 건 위험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경찰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압살하는 제1선에 있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제도적 민주화로 고문은 없어졌지만, 수사권이 모두 경찰의 손에 들어간다면 염려되는 바가 적지 않다. 명심해야 한다.” -이달부터 전국 198개 경찰서에 정보과가 부활하고 1400여명의 정보경찰이 부활한다. 반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없어졌다. “국정원이 과거엔 대공조작도 했지만 간첩 잡는 데는 노하우가 있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가더니 요즘은 간첩 잡는 게 없다. 수사를 안 해서 그런 건지, 전문적으로 특화된 대공수사가 잘 안 이뤄져서 그런 건지, 아무튼 그것도 걱정이다.” -검찰수사권이 박탈된 데는 자업자득도 있는 것 아닌가. “검찰의 흑역사도 경찰 못지않다. 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특히 독재권력하에서 검찰은 없는 죄도 만들고 무소불위였지 않나. 그렇다고 검찰의 기능 자체를 없앤다는 건 신중히 해야 한다. 지금 벌써 경찰들이 권력수사는 깔아뭉갠다는 염려가 나오지 않나. 수사권 행사에 대한 감시·통제 기능이 없어지고 경찰이 이를 독점하게 되면 다시 경찰민주화 요구가 나올 수 있다. 경찰이 권력의 시녀가 되거나, 일반 형사사건도 수사 기간이 길어지고, 국민이 범죄 피해로부터 제대로 구제받지 못할 수 있다.” -1987년 이후 수평적 정권교체도 몇 차례 있었는데, 우리 정치는 여전히 욕을 먹고 있다. “제도적 민주화는 훌륭해졌다. 계엄도 2시간 만에 해제해 버렸다. 그런데 정치인들 자신의 체질적 민주주의는 성숙되지 못한 것 같다. 최근 공천헌금 사건에서 보듯 공천이 돈에, 힘에 의해 좌우되는 일도 남아 있다. 껍데기만 민주주의일 뿐 뼛속 깊이 민주주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제도만이 아니라 내용을 민주주의로 채워야 한다. 일상의 민주주의가, 민주주의 가치의 일상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제도만 민주주의고 지도자들의, 공직자들의 내면에 민주적 가치가 자리잡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언제든 거꾸로 돌아갈 위험성이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대해 법원이 19일 1심 선고를 할 예정이다.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행위 등이 내란이라고 보는가. “내란죄냐 아니냐는 법원의 판단에 맡기고 그 판단을 존중해 줄 일이다. 그것은 법원의 몫이다. 그걸 존중하고 따르는 게 민주주의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12·3 계엄은 정당화될 수 없다. 우리가 2차 대전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에 동시에 성공한 유일한 나라다. 무슨 난리가 일어난 것도 아닌데 권력 유지를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민주주의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이 왜 그런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보나. “마음속에 민주주의 가치가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 뜻대로 안 돌아가니까 계엄을 해서 권력으로 뭘 해보겠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에 저해되는 발상이다. 야당이 말을 안 들어서? 그렇다면 만나서 대화하고 타협하고,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그렇게 해야지. 대통령이 그런 솔선수범을 했어야지.”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가 당원 게시판 논란 끝에 제명 처분된 이후 당의 내홍이 이어지고 있는데. “장동혁식 정치도, 한동훈식 정치도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본다. 각각 판사와 검사 출신이지만, 민주주의를 겉으로만 배운 사람들 같다.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자기 필요한 것만 민주주의라고 하고, 가슴속에는 반민주적이고 권력지향적인 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게 국민의힘을 망치는 것이다. 당헌당규에 제명 조항이 있다 해서 제명을 시키는 것도, ‘내가 내 주장 하는데 뭐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도 민주주의라 할 수 없다. 윤석열을 지지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민주주의를 자기 편리할 때만 찾고 힘을 쓰려 할 때는 반민주적으로 한다.” -국민의힘이 ‘내란 정당’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 제1야당으로서 역할을 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국민의힘을 내란 정당으로 규정하는 건 옳지 않다. 국민의힘에도 계엄을 반대한 사람이 있다. 어찌 됐건 국민의힘이 여당의 ‘내란 정당’ 공격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당내 민주주의를 여당보다 한발 앞서서 하는 것뿐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공천심사위를 없애고 지역 유권자들이, 지역 당원들이 예비선거를 해서 후보를 뽑는 식으로 국민들께 후보 선출을 맡겨야 한다. 당의 공천권을 없애는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민주적인 공천혁명 없이는 여당의 그런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지금 국회나 여야 관계는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고 정치가 실종됐다는 지적이 많다. 이재명 대통령도 “국회가 너무 느려서 일을 할 수가 없는 상태”라고 하던데. “범여권이 180석인데, 자기들 필요할 때는 다수결로 강행 처리하면서 자기들이 필요치 않을 때는 통과를 안 시키는 것도 문제다. 대통령도 여야를 통합하고 국민을 하나로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여당이 잘못하는 것도 과감히 지적해야 한다. 내가 대통령을 해 보니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잘못이라고 지적해야지, 민주주의를 권력에 이용하려고만 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민주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내란 종식을 목표로 내건 2차 종합특검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하면 뭐가 더 나올런가? 정부도, 여권도 국민들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정부에 어떤 기대를 갖고 있는 건지 살피고 해야지, 말로는 국민주권정부다,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권력이 자기들 필요한 일만 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는 끊임없는 성찰과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그게 더 필요한 게 힘있는 여권이다. 물론 야당도 덮어놓고 여당 하는 일에 반대만 해서는 민주주의가 안 된다.” -민주당은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제, 법왜곡죄 등 이른바 ‘3대 사법개혁안’도 밀어붙이고 있는데. “국민 여론도 충분히 듣고 해야 할 일이다. 제도란 건 한번 바꿔 놓으면 오래가기 때문에 여야 입장이 아니라 나라 전체 발전 방향 속에서 공청회도 해 봐야 한다. 독재정권하에서 사법부가 해 온 일에 원죄도 있지만, 개혁이란 건 잘못을 고치는 것이어야지 뿌리를 뽑는 게 돼서는 안 된다.” ● 이재오 이사장은 1945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중앙대 재학 시절 한일회담 반대 투쟁을 주도해 제적된 적이 있고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다섯 번 투옥돼 10년 6개월간 수감생활을 했다.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 등 재야운동에 뛰어들어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위원회 사무국장, 전민련 조국통일위원장을 거쳐 1990년 민중당 창당에 참여, 사무총장을 맡았다. 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정책에 동참해 신한국당에 입당, 15대 총선에서 당선됐고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한나라당 사무총장·원내대표·최고위원과 이명박 정부 국민권익위원장·특임장관 등을 역임했다.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7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에 임명됐다. 박성원 논설위원
  • [씨줄날줄] ‘합당 문건’ 나비효과

    [씨줄날줄] ‘합당 문건’ 나비효과

    1990년 10월 내각제 추진 합의각서 파문이 터졌다. 민주자유당 김영삼(YS) 대표가 그해 초 민정·민주·공화당 3당 합당을 할 때 당시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최고위원과 내각제에 합의했다는 각서가 뒤늦게 공개된 것. YS는 “우리를 고사시키려는 정치 공작이다. 내각제 개헌은 국민과 야당이 반대하면 절대 할 수 없다”며 당무 거부를 선언하고 마산으로 내려가 버렸다. 노 대통령은 김윤환 원내총무를 마산으로 보내 ‘내각제 포기’ 메시지를 전달했고, 노-김 전격 회동으로 사태는 수습 국면에 들어갔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와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후보는 공동정부 구성과 내각제 개헌을 공동 공약으로 내걸고 DJP연합을 추진했다. 내각제는 집권 초 외환위기와 야당의 반발 때문에 제대로 논의되지 못하다가 1999년 양당 공조에 금이 가면서 약속도 파기됐다. 권력을 쥔 쪽에서 이행할 의사가 없으면 합칠 때의 어떠한 약속도 휴지조각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합당 추진 일정과 협상 쟁점 등을 정리한 대외비 문건이 공개됐다. 친명(친이재명)계 의원들은 정청래 대표에게 ‘합당 밀약’의 책임을 지고 합당 논의를 멈추라며 반발하고 있다. 조기 합당 추진을 8월 전당대회에서 대표직을 연임하고 2028년 총선 공천권을 장악하려는 정 대표와 차기를 노리는 조국 혁신당 대표 간 담합의 산물로 보는 것이다. 정 대표는 “나도 보고받지 못한 문건”이라며 선을 그었고, 조승래 사무총장은 “실무 차원의 검토 자료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친명계에서는 당권파의 합당 드라이브를 범친문(친문재인) 세력이 시도하는 여권 내 주류 교체 음모의 일환으로 의심하고 있다. 7쪽짜리 문건 공개가 권력투쟁의 태풍을 예고하는 나비의 날갯짓이 된 셈이다. 권력투쟁은 문건보다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와 역학관계에 따라 귀결돼 온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 친한계, 고성국 징계 요구…대안과 미래 ‘의총 요구서’ 제출

    친한계, 고성국 징계 요구…대안과 미래 ‘의총 요구서’ 제출

    한동훈 전 대표 제명 결정을 두고 당 내홍이 확산하는 가운데 친한(친한동훈)계 의원들은 30일 서울시당 윤리위에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에 대한 징계 요구서를 제출했다. 친한계로 분류되는 김형동·고동진·박정훈·정성국·우재준·유용원·안상훈·김건·한지아·진종오 의원 등은 이날 당에 “합리적 이유 없이 정치적 견해 등을 이유로 차별적인 발언을 통해 당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징계를 요구했다. 이들은 “고씨는 본인의 유튜브를 통해 당의 정강과 기본정책 및 당론에 명백하게 어긋나는 언행 및 타인에 대해 모욕적·협박적 표현을 지속적·반복적으로 행했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지난 5일 입당 원서를 제출해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들은 고씨가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건국의 이승만 대통령, 근대화산업화의 박정희 대통령, 거의 피를 흘리지 않고 민주화를 끌어내는 대역사적 대타협을 한 전두환 대통령, 노태우 대통령, 김영삼 대통령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까지 당사에 사진 걸어야 한다”는 발언 등을 문제 삼았다. 또 김무성 상임고문에 대해 “김무성이가 아직 안 죽었나”라고 발언한 점과,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혁명적이고 충격적인 컷오프를 시켜야 한다”고 말한 부분도 문제 삼았다. 친한계가 든 ‘품위 유지’ 문제는 친한계 김종혁 전 최고위원의 징계 사유와 같다. 한편 당내 소장파 의원 모임인 ‘대안과 미래’ 소속 의원 11명은 이날 당 지도부에 긴급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한 전 대표에 대한 제명 의결을 강행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안과 미래는 다음 달 3일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를 초청해 당내 현안 및 외연확장 방안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 노재헌 주중대사 530억 ‘최다’…이찬진 금감원장 5억 넘는 귀금속도 있었다

    노재헌 주중대사 530억 ‘최다’…이찬진 금감원장 5억 넘는 귀금속도 있었다

    이재명 정부 현직 고위 공직자 71명이 평균 44억 4917만원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7월 2일 이후 임용된 현직 대통령 참모진 21명, 국무총리 참모진 4명, 장·차관급 46명을 집계한 결과다. 이중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노재헌 주중한국대사가 530억4461만원으로 재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야당이 지적한 2주택·2상가 외에도 5억8800만원 상당의 귀금속도 보유하고 있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이날 지난해 7월 2일부터 11월 1일까지 임명된 새정부 고위 공직자를 포함해 승진·퇴직자 등 재산공개 대상자 362명의 재산 등록 사항을 공개했다. 지난해 9월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시스템이 마비되며 미뤄졌던 내역이 한꺼번에 공개됐다. 노재헌 대사가 보유한 재산의 40%인 213억 2247만원은 해외 증권이다. 마이크로소프트 2015주, 아이셰어즈중국대형주ETF 8700주, 엔비디아 1만 7588주를 보유했고, 비상장주식도 47억 6718만원 어치를 가졌다. 증권 외에도 서울 종로구 단독주택 1채(28억원), 서대문구와 용산구의 건물 2채(19억 7588만원·55억원), 예금 126억 1858만원을 신고했다. 재산 순위 2위는 이찬진 금감원장으로, 384억 8874만원을 신고했다. 자산 대부분인 310억원은 은행 예금이었다. 기존에 논란이 된 서초구 아파트 2채와 상가 2채 외에도 배우자가 소유한 금 24K 3000g, 다이아 목걸이와 반지, 귀걸이 등 5억 8800만원 상당 귀금속이 확인됐다. 또 연회비가 2060만원~4900만원에 달하는 서초구 양재동 고급 스포츠센터 회원권도 4장을 보유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38억 7282만원으로 재산 순위 3위였다. 150억 4162만원을 증권으로 보유했다. 전신인 NHN의 대표를 지냈던 만큼 네이버 주식 3만 1090주를 보유했고 삼성중공업 4620주, 비상장사인 ㈜놀유니버스·㈜들국화컴퍼니·플랜티유㈜의 주식을 가졌다. 또 경기 안양 아파트 1채(9억 5000만원)와 강원 평창 연립주택 1채(3억 1000만원), 예금 37억 1609만원, 사인간채권 16억 8400만원 등을 보유했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재산은 221억 1571만원이었다. 한 장관은 경기 양평과 서울 종로의 단독주택 2채(6억 3000만원·15억원), 강남 오피스텔 1채(20억 7463만원), 송파 아파트 1채(27억 3981만원), 삼청동 사무실(5억원), 종로 근린생활시설 2채(8억 9000만원·14억원)와 상속지분을 가진 경기 양주 단독주택 등 8건의 부동산이 있었다. 인사청문회 당시 논란이 됐던 네이버 주식 8934주는 지난해 7월 29일 모두 매각했다고 신고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65억 7240만원, 최동석 인사혁신처장은 57억6235만원을 신고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56억 7217만원,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47억 8836만원, 조원철 법제처장 45억 5871만원,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41억 3793만원,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 31억 9925만원,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25억 6556만원, 조현 외교부 장관 21억 9907만원, 이억원 금융위원장 20억 1475만원,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 13억 1422만원,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10억 8539만원을 신고했다.
  • 초대 소련 주재 대사… ‘북방 외교’ 큰 족적

    초대 소련 주재 대사… ‘북방 외교’ 큰 족적

    한일 협정·한중·한소 수교 기틀위안부 인정 ‘고노 담화’ 이끌어 노태우 정부 시절 초대 주소련 대사를 역임한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이 지난 25일 별세했다. 94세. 고인은 1932년 함경북도 명천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58년 외무부에 입부했다. 외무부에선 한국과 소련 수교 협상 과정에 일조하며 1990년 초대 주소련대사를 맡았다. 이후 외교안보연구원장, 주일대사를 거쳐 1994~1996년 김영삼 정부 외무부 장관을 지냈다. 공 전 장관은 외무부 동북아과 근무 당시 한일 협정 체결 관련 업무도 맡았다. 1983년 발생한 ‘중국 민항기 납치 사건’ 때도 외무부 정무차관보로 한국 측 협상 수석대표를 맡아 사건 해결에 기여했다. 한국이 중국 당국과 정부 간 협상을 벌인 건 1949년 이후 처음이었다. 협상은 한중관계 개선을 넘어 양국 수교로 이어지는 기틀이 됐다. 외교안보연구원장 재직 시절엔 남북핵통제공동위원장을 지내며 북한과 직접 핵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고인은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해 중국·소련과 외교를 선행해야 한다고 제안해 ‘북방 외교’에 큰 족적을 남겼다는 평을 받는다. 고인은 아주국장, 주일대사 등으로 대일 외교에도 큰 역할을 했다. 1993∼1994년 주일대사 시절에는 일본군이 위안부 동원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인정한 ‘고노 담화’ 등이 나왔고, 외무부 장관일 때는 ‘무라야마 담화’가 나왔다. 퇴임 후에는 한일포럼 회장, 동아시아재단 이사장, 세종재단 이사장, 국립외교원 석좌교수 등을 역임했다. 후배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외교관으로 꼽혔고, 2024년에는 국립외교원에 그의 이름을 딴 ‘공로명 세미나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엑스(X)에 “대한민국 외교사에 큰 족적을 남기신 공로명 전 장관님의 별세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썼다. 이어 “한국 외교의 산 증인으로서 40여년간 격동의 외교 현장을 지키셨다”면서 “북방외교, 한일 과거사 문제 등 난제 앞에서 국익 수호를 위한 균형 있는 입장을 고심하며 늘 당당하고도 의연한 자세를 보여주셨던 것을 기억한다”고 고인을 회고했다. 빈소는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9일.
  • “위로부터의 내란, 친위 쿠데타… 기존과 비교도 못 할 충격”

    “위로부터의 내란, 친위 쿠데타… 기존과 비교도 못 할 충격”

    국헌문란의 목적·폭동 행위 인정尹측 ‘사망자 없이 종료’ 논리엔“계엄 해제는 국민 용기 의한 것”이진관 판사, 선고 중 울컥하기도 “12·3 불법 계엄은 내란 행위에 해당한다”는 사법부의 첫 판단이 21일 나왔다. 법원은 윤석열 전 대통령 측의 ‘비상계엄은 헌법상 대통령의 권한이므로 내란죄가 성립될 수 없다’, ‘경고성 계엄이었다’는 주장을 반박하면서 “12·3 계엄은 내란이자 친위 쿠데타였고, 가담한 사람들을 무겁게 처벌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의 피고인은 한덕수 전 국무총리였지만, 재판부는 ‘내란죄’의 위헌성을 지적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 이진관)는 이날 한 전 총리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사건 1심 선고 공판에서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헌법에 따라 보장되는 의회, 정당 제도를 부정하는 포고령을 발령했다”며 “군경을 동원해 국회, 선거관리위원회를 점거하고 압수수색한 것은 헌법에서 정한 내란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12·3 내란은 친위 쿠데타’라고 규정했다. 재판부는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윤 전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에 의한 것으로서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한다. 이러한 형태의 내란을 이른바 친위 쿠데타로 부른다”라고 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보면 쿠데타가 성공해서 권력자·독재자가 된다”며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을 위반하고 법치주의 신념을 흔들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내란죄가 성립되는 핵심 요소인 국헌 문란의 목적과 폭동 행위가 모두 있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윤석열과 김용현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발령한 포고령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하지 않고, 의회와 정당 제도와 영장주의를 소멸시키며 헌법이 금지하는 언론 및 출판에 대한 허가·검열을 시행함으로써 헌법과 법률을 부정하는 국헌 문란 목적으로 발령한 것”이라고 판시했다. 또 “다수의 군경력과 경찰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관위를 점거하고 출입을 통제함으로써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할 정도의 폭동을 일으켰다”고 했다. ‘계엄이 사망자 없이 몇 시간 만에 종료됐으므로 폭동이 아니다’라는 윤 전 대통령 측 논리를 겨냥해 “(내란 종료는) 무엇보다도 무장한 계엄군에 맨몸으로 맞서 국회를 지킨 국민의 용기에 의한 것이다. 12·3 내란 가담자에 의한 것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국민의 용기’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이 부장판사의 목이 메이는 듯한 장면도 보였다. 이어 “12·3 내란 가담자의 형의 결정에 있어 피해 발생이 경미했다거나 짧은 시간 동안 진행됐다는 사정을 깊이 고려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계엄 사태가 헌법·법률 위반과 민주주의 부정 같은 잘못된 생각을 키웠다고도 말했다. 비상계엄에 찬성을 표하는 윤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의 주장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면서 “계몽적 계엄·경고성 계엄을 당연하게 주장하는 사람들, 서부지법 폭동 사건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선거 제도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기존 내란 사건 판례가 한 전 총리의 양형에 기준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12·12 군사반란 관련 1997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당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징역 17년을 선고받았는데, 한 전 총리에게는 이보다 무거운 형이 선고된 것이다. 재판부는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대한민국에서 친위 쿠데타가 발생해서 생긴 정치적·경제적 충격은 기존 내란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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