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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월 백골시신이 지목한 두 놈… 사라진 주범, 수상한 공범

    영월 백골시신이 지목한 두 놈… 사라진 주범, 수상한 공범

    #1. 2009년 9월 29일 강원 영월군 영월읍 38번 국도 인근 산자락. 밤을 줍던 김모(당시 59세)씨가 무언가를 보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곳엔 백골이 된 두개골과 뼈, 옷가지와 흙 등이 뒤섞여 있었다. 경찰이 확인한 결과 1~2년 매장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백골화된 두 구의 시신과 상하의 등 옷가지, 포장용 끈 등이었다. 윗옷 소맷자락이 포장용 끈으로 묶여 있는 것을 볼 때 살해된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경찰은 신원 파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정밀 감식을 의뢰할 계획이었다. #2. 약 9시간 후 서울 강동경찰서 강력6반. “강원도 영월에서 타살로 추정되는 시체 2구가 발견됐습니다….” 앵커의 목소리에 당직근무 중이던 백승진 경사(현 경위)가 얼어붙은 듯 TV를 쳐다본다. 순간 2년 전 ‘놀음판 사채업자 실종·납치 사건’이 떠올랐다. 놀음판에 돈을 대던 사채업자 김강훈(당시 47세·가명)씨와 보디가드 오지훈(당시 52세·가명)씨가 갑자기 실종된 사건이었다. 실종 직후 유력 용의자도 특정할 수 있었지만 시신을 찾지 못해 2년째 실종사건으로만 분류된 미제사건이었다. 특히 영월 야산에선 피에 흥건히 젖은 오씨의 점퍼가 발견됐다. 급한 마음에 다음날 아침 백 경사는 영월경찰서로 향했다.●사채업자와 도박꾼… 갑자기 자취 감춘 넷 현장에 도착하자 직감은 확신으로 변했다. 시신 두 구와 함께 발견된 옷은 2년 전 앞서 발견된 오씨의 점퍼와 한 운동복 세트였다. 수사를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두개골만 우선 챙겨 서울로 돌아왔다. 가장 급한 건 신원 확인이었다. 서울 광진구 한 치과에 두 피해자의 진료기록이 있다는 점에 착안해 우선 컴퓨터단층촬영(CT)과 엑스레이 촬영을 했다. 과거 진료기록과 비교한 결과 오씨와 김씨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 환자가 맞다”는 치과 의사의 간이감정서를 토대로 사건을 인계받았고, 사건의 유력 용의자였던 박종윤(공개수배·당시 49세)씨와 남궁경진(당시 34세·가명)씨에 대한 체포영장을 법원으로부터 발부받았다. ‘영월 살인사건’은 첩보에서 시작됐다. 2007년 12월 17일쯤 하우스 전주인 김씨와 오씨가 누군가에게 납치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강동구 길동 일대 유흥가에선 사채업자 두 사람이 돈 때문에 납치돼 죽었다는 풍문이 떠돌아다녔다. 김씨는 강동구 유흥가의 유명인사였다. 김씨의 벤츠 트렁크에는 수십억원의 현금이 늘 준비돼 있다는 얘기가 돌 정도였다. 납치 용의자에 대한 소문도 돌았다. 그 무렵 도박꾼 박씨와 남궁씨도 자취를 감췄는데, 이를 근거로 이들이 김씨와 오씨를 납치해서 한몫 챙겼다는 얘기가 많았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강력4팀은 주변인 탐문 등 본격 수사에 나섰다. 이후 12월 말쯤 강원 영월군 38번 국도 인근 야산에서 오씨의 지갑이 든 점퍼가 발견됐다. 점퍼에는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 분석 결과 “이물질이 많아 정확하진 않지만 오씨일 가능성이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찰은 피해자들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이들이 박씨와 남궁씨라는 점을 알아냈다. 또 점퍼가 발견된 강원 영월군 38번 국도 인근에서 박씨와 남궁씨가 서로 통화한 기록도 나왔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경찰이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 영월 인근 야산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김씨와 오씨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신이 없다 보니 박씨와 남궁씨에 대한 체포영장은 검찰 단계에서 계속 거부당했다. 그렇게 해당 사건은 2년여간 장기 미제로 분류됐다. 결과적으로 시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수사는 다시 탄력을 받았다. 검찰에서 돌려보냈던 체포영장도 받을 수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영월읍 인근 38번 국도에 있는 통신사 기지국에서 암매장이 이뤄졌을 때 나눴을 용의자 두 사람의 통화기록(3건)이 확실한 증거가 됐다. ●범행 일주일 후 ‘한놈’ 통신기록만 멈췄다 일주일 후 박씨와 남궁씨는 범행 장소 근처에 또다시 등장했다. 다만 이후 박씨의 통신 기록도 완전히 사라졌다. 마치 그에 의해 죽임을 당한 김씨와 오씨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남궁씨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수사팀은 남궁씨를 약 2개월간 쫓아다녔다. 남궁씨가 형의 회사에서 일하는 것을 파악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박씨와 언제 만날지 몰랐기 때문이다. 시신 2구가 나온 만큼 공범끼리 만나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끝내 박씨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간을 더는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한 수사팀은 2009년 12월 1일 형의 집을 나오는 남궁씨를 체포했다. 경찰은 남궁씨의 살인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검찰에 송치하기 전까지 총 12차례 조사를 벌였다. 사실 직접 증거는 사체 유기 혐의를 입증할 수 있는 것뿐이었다. 살인 혐의를 입증하려면 자백이 필요했다. 남궁씨는 11차 조사 때부터 고액의 변호사를 선임하면서 묵비권을 행사했다. 남궁씨는 결국 강도살인, 사체 유기 혐의로 1심에서 15년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판결문을 바탕으로 사건을 재구성하면 이렇다. 사채업자로부터 도박 빚 4억원을 졌던 박씨는 2007년 12월 11일 도박 빚 2000만원을 진 남궁씨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약 8개월 전 도박하다 알게 된 사채업자 김씨의 돈을 빼앗고 그를 죽이자는 것이다. 이때는 박씨가 돈 많은 사채업자의 경호원 역할을 했던 오씨를 먼저 서울 송파구에 있는 자신의 반지하 자취방에 유인해 살해한 뒤였다. 남궁씨는 사건이 벌어지고 나서야 박씨의 자취방에 왔고 같은 날 오후 5시쯤 실제로 범행에 나섰다. 김씨를 박씨의 자취방으로 유인하고서 지갑에서 30만원을 강탈하고 살해했다. 하지만 소문처럼 그의 벤츠 승용차에는 돈이 없었다. 이들이 김씨에게서 빼앗은 돈은 30만원이 전부였다. 다음날 이들은 시체를 매장하기로 결심했다. 12일 새벽 1시 30분쯤 렌터카 회사에서 스타렉스 한 대를 빌렸다. 우선 오씨를 승합차에 실었고, 다음날 새벽 2시 뒤늦게 사망한 김씨를 실었다. 이들은 손과 발이 노끈과 전선으로 묶여 있었고, 이불로 전신이 감긴 상태였다. 우선 경기 남양주 근처를 물색했지만 낯선 곳이라 쉽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한 게 강원랜드 길목에 있는 산세가 험한 영월 38번 국도였다. 이들은 14일 오후 7시쯤 38번 국도 갓길에 차를 세우고 시체를 끌어내려 갓길 아래 숲 방향으로 굴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영하권 날씨에 땅이 얼면서 깊게 파이지 않았다. 처음엔 남궁씨가 땅을 파고 박씨가 망을 봤지만, 마음에 들지 않은 박씨가 땅을 더 파 시체를 유기했다. 이때 영월에서 발생한 세 차례의 통화 내역이 밝혀진다. ●“남궁이 입 다문 진실은 뭘까” 이후 박씨의 소식은 전해지는 게 전혀 없다. 가끔 필리핀 도박장에서 봤다거나 원양어선을 탔다는 제보가 들어왔지만 확인해 보니 모두 박씨가 아니었다. 현재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백 경위는 공개수배 전단에서 박씨를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난다. 그럼에도 형을 사는 남궁씨가 박씨의 상황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둘이 시체 유기를 하고서 일주일 뒤에 영월에 가잖아요. 그리고 박씨의 모든 공식적 기록이 거기서 딱 멈춰요. 연기처럼 사라진 거죠. 그리고 남궁씨는 박씨에 대해 전혀 진술을 하지 않아요. 답답할 노릇이죠. 다만 확실한 건 박씨는 공개수배된 사진과 똑같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가 살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수배범 검거에 결정적인 제보를 하신 분에게 신고포상금이 지급됩니다. 전화번호 112 또는 모바일앱 ‘스마트 국민제보’를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인사]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원 평창군

    ■ 한국예술종합학교 ◇ 신규 임명 △ 교학제2부처장 권희철 부교수(연극원 극작과) △ 기획부처장 조충연 조교수(영상원 멀티미디어영상과) △ 영상원장 박현철 교수(영상원 영화과) △ 영상원 부원장 이정민 교수(영상원 애니메이션과) △ 무용원 부원장 전수환 부교수(무용원 이론과) △ 방송영상과장 임태우 조교수(영상원 방송영상과) △ 멀티미디어영상과장 한상진 교수(영상원 멀티미디어영상과) △ 애니메이션과장 곽영진 조교수(영상원 애니메이션과) △ 이론과장 나경아 교수(무용원 이론과) △ 학생지원센터 센터장 권희철 부교수(연극원 극작과) △ 문화예술교육센터 센터장 김현미 교수(음악원 기악과) ◇ 연임 △ 교학처장 편장완 교수(영상원 영화과) △ 기획처장 이동연 교수(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 음악학과장 허영한 교수(음악원 음악학과) △ 영상이론과장 하승우 조교수(영상원 영상이론과) △ 예술전문사 주임교수 김양일 부교수(영상원 영화과) △ 실기과장 한명옥 부교수(무용원 실기과) △ 산학협력단장 이정민 교수(영상원 애니메이션과) ■ 강원 평창군 ◇ 4급 △ 행정지원국장 천장호 △ 경제건설국장 최영훈 ◇ 5급 △ 기획담당관 한윤수 △ 올림픽기념사업과장 권혁영 △ 문화관광과장 이시균 △ 주민복지과장 고홍재 △ 허가과장 김진용 △ 총무담당관 김명기 △ 일자리경제과장 최찬섭 △ 교육체육과장 김남섭 △ 환경위생과장 장재석 △ 산림과장 김철수 △ 도시주택과장 주현관 △ 안전건설과장 김찬수 △ 시설관리과장 남궁경 △ 종합민원과장 직무대리 김종근 △ 재무과장 직무대리 이대환
  • [부고] 남궁근씨 모친상, 송민헌씨 부친상, 변탁씨 별세, 최덕재씨 조모상

    ●남궁근(전 서울과학기술대 총장)·남궁단·남궁환·남궁혁·남궁경씨 모친상, 11일 오전 5시20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3호실, 발인 13일 오전 10시. 02-2258-5940 ●송민헌(대구지방경찰청장)씨 부친상, 11일 오후 6시 41분. 대구의료원 국화원 장례식장 특302호, 발인 14일 오전 5시 30분. 053-560-9551 ●변탁(전 태영건설 대표이사 부회장)씨 별세, 변준호(제이글로벌 대표)씨 부친상, 정영욱(한국원자력연구원 융복합양자과학연구소 소장), 장우영(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씨 장인상, 11일 오후 5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 발인 14일 오전 8시15분. 02-2258-5940 ●최해원, 해순, 해영, 해형(청운대학교 교수)씨 모친상·이순범(정우감정평가 사무소 대표)씨 장모상, 이선희씨 시모상, 최덕재(연합뉴스TV 기자) 길재 씨 조모상, 11일 오전, 서울 이대목동병원장례식장 특3호실, 발인 13일 오전 9시. 02-2650-5121
  • “윤준협 대상”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더 파이널 ‘성료’

    “윤준협 대상”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더 파이널 ‘성료’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더 파이널’ 영광의 얼굴들이 공개됐다. 대상은 윤준협에게 돌아갔다. 11월 30일 오후 6시 제주도 제주대학교 실내체육관에서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더 파이널’ 본선 대회가 열렸다. 지원자 1600명 중 남자 15명-여자 15명 총 30명만이 본선 대회에 진출해 지난 5개월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선보였다. 윤준협은 더블랙스완 상에 이어 영예의 대상까지 거머쥐며 2관왕에 올라 새로운 모델테이너(모델+엔터테이너)의 탄생을 알렸다. 윤준협은 “대상을 받았다고 해도 남들보다 잘 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발전하는 예술가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윤준협은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에서 장윤주, 김수로, 써니 멘토에게 사랑을 듬뿍 받은 인물.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더 파이널’에서는 김수로 멘토의 팀에 소속돼 뮤지컬 갈라쇼을 선보였다. 김수로는 “(대상이) 수로 팀에서 나와서 기쁘긴 하다”라며 “(윤)준협이가 처음부터 잘해줘서 고맙다. 큰 스타가 되라”라고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이에 윤준협은 “김수로 멘토가 늘 하셨던 말씀이 고민하고 노력하라 였는데 그 말처럼 고민하고 노력하는 예술가 되겠다”고 화답했다. 이번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더 파이널’은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MC∙멘토 군단에 서장훈, 장윤주, 김원중, 김수로, 써니와 특별 MC 배성재 SBS 아나운서가 MC를 맡아 매끄러운 진행을 자랑했다. 화려한 볼거리도 풍성했다. 본선 대회 진출자 30인은 멘토 장윤주, 김원중, 김수로, 써니 팀으로 나눠 런웨이쇼, 뮤지컬 갈라쇼, 파워쇼 등 4팀 4색의 무대를 꾸몄다. 걸그룹 모모랜드와 위키미키는 새로운 모델테이너(모델+엔터테이너)의 탄생을 축하하는 특별 공연도 선보였다.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더 파이널’은 바디프랜드가 주최, SBS플러스와 JIBS가 공동제작, 에스팀이 주관하고, 엘로엘, 셀리턴, 비온코리아, 더블랙스완, 리더스코스메틱, 제주신화월드, 뉴화청국제여행사, 에끌라셀, UNI&IT, 삼다수, AS98, 육우자조금관리위원회가 함께 했다. 다음은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더 파이널’ 수상자 ▶슈퍼모델 2018 대상=18번 윤준협 ▶슈퍼모델 2018 바디프랜드 브레인마사지 상=5번 김수연 ▶슈퍼모델 2018 TOP 7=3번 김민진, 5번 김수연, 15번 박민영, 16번 윤정민, 18번 윤준협, 21번 이가흔, 23번 이선정, ▶슈퍼모델 2018 DREAM pick 상=3번 김민진 ▶슈퍼모델 2018 엘로엘 상=25번 이유리 ▶슈퍼모델 2018 셀리턴 상=3번 김민진 ▶슈퍼모델 2018 비온코리아 상=8번 김어진 ▶슈퍼모델 2018 더브랙스완 상=18번 윤준협 ▶슈퍼모델 2018 리더스코스메틱 상=17번 박제린 ▶슈퍼모델 2018 뉴화청국제여행사상=15번 박민영 ▶슈퍼모델 2018 UN&IT 상=5번 김수연 ▶슈퍼모델 2018 WE pick 상=13번 남궁경희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슈퍼모델’ 남궁경희, 장윤주 찬사에 눈물 “내게 박수 쳐주고 싶어”

    ‘슈퍼모델’ 남궁경희, 장윤주 찬사에 눈물 “내게 박수 쳐주고 싶어”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남궁경희 지원자가 눈물을 흘렸다. 최근 진행된 SBS Plus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이하 슈퍼모델) 4회 촬영은 ‘1대 1 배틀 런웨이’로 진행됐다. ‘배틀 런웨이’는 배틀 상대와 함께 1대 1 런웨이를 펼쳐야 하는 현장 미션. 지원자들은 2인 1조로 팀을 이뤄 주어진 2분 동안 워킹은 기본, 퍼포먼스까지 준비해야 하며 현장 평가단의 직접 투표한 결과로 승패가 갈린다. 남궁경희는 이세빈의 배틀 상대로 지목됐다. 두 사람은 각각 블랙 앤 화이트 의상을 입고 등장해 다크한 분위기 속에 시크한 무대를 완성해냈다. 무대를 본 장윤주는 “남궁경희 씨가 어떤 사람인지 관객들에게 알려도 되겠냐”고 의사를 물으며 “현재 44살이다. 근데 회가 거듭될수록 남궁경희 씨는 메이크업에 따라 얼굴이 계속 바뀌고 있다. 또 이번에 커트한 메이크 오버도 누구보다 성공했다. 이번에 화이트 의상에 블랙 벨트를 착용한 의상도 깜짝 놀랐다. 너무 핏이 딱 떨어진다. 그래서 남궁경희 씨의 새로운 모습을 다시 봤다”고 극찬했다. 장윤주에 이어 써니 역시 “의상을 진짜 잘 입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남궁경희는 장윤주의 호평에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도 “감사함이 크다. 저한테 잘 했다고 박수 쳐주고 싶다. 집안 일 하느라 연습하느라 고생 많이 했는데… 감사하다”고 눈물을 보였다. 한편 ‘슈퍼모델’은 티비톡을 통해 국민심사위원제의 실시간 인기 투표(드림 투표)가 가능하다. 티비톡 앱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슈퍼모델’은 바디프랜드가 주최, SBS플러스와 JIBS가 공동제작, 에스팀이 주관하고, 엘로엘, 셀리턴, 비온코리아, 더블랙스완, 리더스코스메틱, 제주신화월드, 뉴화청여행사, 에끌라셀, UNI&IT, 삼다수, AS98, 육우자조금관리위원회가 함께 하며 매주 수요일 밤 8시 SBS Plus, 수요일 밤 9시 30분 SBS funE, 목요일 밤 8시 SBS MTV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남궁경희의 ‘배틀 런웨이’ 결과는 31일 8시 SBS Plus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슈퍼모델’ 남궁경희 자궁수술 고백→파격 변신 “이것이 메이크 오버”

    ‘슈퍼모델’ 남궁경희 자궁수술 고백→파격 변신 “이것이 메이크 오버”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지원자들이 파격 변신을 감행했다. 24일 방송된 SBS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이하 슈퍼모델) 3회에서 63명의 지원자들은 ‘메이크 오버’ 미션을 받았다. ‘메이크 오버’에 앞서 지원자들의 바디 사이즈 체크가 진행됐다. 여자 지원자들은 가슴 허리 엉덩이 쓰리 사이즈를 측정하며 안절부절 했고, 신장과 몸무게 측정에도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시인은 180.3cm, 김희연은 183cm으로 ‘슈퍼모델’ 트윈 타워이자 여자 지원자 최장신에 등극했다. 여자 지원자들이 신장을 줄이길 원했다면 남자 지원자들은 키를 높이려 애를 써 웃음을 자아냈다. 김도형과 최규태는 라이벌답게 신장계 앞에서도 최단신 자리를 두고 경쟁을 펼쳤다. 그 결과 김도형 178.1cm, 최규태는 177.8cm로 김도형이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바디 사이즈 체크에 이어 지원자들의 몸매 관리를 위해 양치승 트레이너가 지원군으로 나섰다. 양치승 트레이너는 등장하자마자 “아주 기나긴 여정이 될 것 같다”며 혹독한 트레이닝을 예고했다. 이후 지원자들의 몸 상태를 분석하고 남자 워스트 5, 여자 워스트 6를 뽑아 11명의 지원자들의 2주간 특훈을 지도했다. 남자 워스트 5는 김영규, 김현중, 엄태성, 조정흠, 최채훈이었고, 여자 워스트 6는 김다빈, 남궁경희, 이가흔, 김희연, 박민영, 이현진이었다. 바로 특훈이 시작됐고, 지원자들은 고통스러워했다. 특히 연장자 남궁경희는 체력적으로 힘겨워 했고, 급기야 눈물을 터뜨렸다. 이 모습에 양치승 트레이너는 “힘내라. 울지 말고. 과정이니까”라고 위로했고, 남궁경희는 “작년에 자궁 수술을 해서 호르몬제를 먹고 있다. 살을 빼려고 해도 살이 안 빠지고 몸이 붓고 한다. 속상한 부분이다”라고 털어놨다.그녀의 말처럼 남궁경희는 특훈을 비롯해 남편의 반대 등 힘든 상황이 계속 됐지만 그녀의 열정은 대단했다. 이를 악물고 특훈을 견뎠고, 메이크 오버에서도 틸다 스윈튼 닮은꼴인만큼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숏 컷으로 변신해 장윤주 김원중 김수로 써니 멘토들로부터 “이게 메이크 오버지”, “훨씬 낫다”라며 극찬을 끌어냈다. 다른 지원자들 역시 ‘메이크 오버’ 미션을 진행했다. 전문가들은 각각의 지원자들 마다 맞춤형 변신을 제안했고, 지원자들은 대부분은 오픈 마인드로 받아들였다. 그 덕에 지원자들은 헤어 염색, 헤어 컷 등을 통해 파격적인 비주얼 변신에 성공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전문가의 조언을 듣지 않는 지원자도 있었다. 이가흔은 전문가들로부터 숏 컷을 제안 받았으나 “숏 컷은 안 하고 싶다”며 긴 생머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메이크 오버를 마친 지원자들은 ‘메이크 오버 패션 필름’을 통해 결과물을 선보였다. 멘토들은 지원자들의 필름을 확인하고 나름의 심사평을 내놓았다. 김민진, 강서진 등은 호평을 받았으나 이가흔은 “예쁘기만 하다. 촌스럽다”라는 혹평을 들어야만 했다. 그렇게 지원자들의 메이크 오버 패션 필름 결과는 베스트와 워스트로 갈렸다. 베스트 그룹에서는 1위 김민진, 2위 이선정, 3위 이어진 등 탑 10이 호명됐다. 이들은 멘토들로부터 극찬을 받았고 믿기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반면에 워스트 그룹에서는 김도형, 이다정, 최승리, 김시인 등 15명의 탈락 위험군이 공개돼 안타까움을 더했다. 한편 ‘슈퍼모델’은 티비톡을 통해 국민심사위원제의 실시간 인기 투표(드림 투표)가 가능하다. 티비톡 앱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슈퍼모델’은 바디프랜드가 주최, SBS플러스와 JIBS가 공동제작, 에스팀이 주관하고, 엘로엘, 셀리턴, 비온코리아, 더블랙스완, 리더스코스메틱, 제주신화월드, 뉴화청여행사, 에끌라셀, UNI&IT, 삼다수, AS98, 육우자조금관리위원회가 함께 하며 매주 수요일 밤 8시 SBS Plus, 수요일 밤 9시 30분 SBS funE, 목요일 밤 8시 SBS MTV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슈퍼모델’ 44세 지원자의 눈물 고백 “작년에 자궁 수술했다”

    ‘슈퍼모델’ 44세 지원자의 눈물 고백 “작년에 자궁 수술했다”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 지원자 남궁경희가 자궁 수술을 받은 사실을 고백했다. 24일 방송되는 SBS Plus ‘슈퍼모델 2018 서바이벌’(이하 슈퍼모델)에서는 양치승 트레이너가 지원자들의 몸매를 체크하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남자 워스트 5, 여자 워스트 6에 뽑힌 11명의 지원자들은 2주간의 특훈을 받아야 했다. 방송 전 진행된 촬영에서 남궁경희는 옆구리와 허벅지 살을 지적 받았고, 특훈의 시작과 동시에 계속되는 PT 수업에 힘든 모습이 역력했다. 더욱이 연장자인 만큼 체력적인 부분에서 남들보다 더 고통스러워했다. 남궁경희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이 모습에 양치승 트레이너는 “힘내라. 울지 말고. 과정이니까”라고 위로했고 남궁경희는 “작년에 자궁 수술을 해서 호르몬제를 먹고 있다. 살을 빼려고 해도 살이 안 빠지고 몸이 붓고 한다. 속상한 부분이다”라고 털어놨다. 남궁경희는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남편이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연습을 하러 나오면 밥 등을 준비하고 나와야 해서 심적으로 힘들다”며 “그런 부분이 내가 잘 할 수 있게 작용을 해주는 것 같다. 남편이 반대하는데 내가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궁경희는 이후 이뤄진 메이크 오버에서도 확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고, 장윤주는 “이게 메이크 오버다”라고 극찬을 해 그녀의 활약을 기대케 했다. 한편 ‘슈퍼모델’은 티비톡을 통해 국민심사위원제의 실시간 인기 투표(드림 투표)가 가능하다. 티비톡 앱은 구글 플레이스토어와 애플 앱스토어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슈퍼모델’은 바디프랜드가 주최, SBS플러스와 JIBS가 공동제작, 에스팀이 주관하고, 엘로엘, 셀리턴, 비온코리아, 더블랙스완, 리더스코스메틱, 제주신화월드, 뉴화청여행사, 에끌라셀, UNI&IT, AS98, 육우자조금관리위원회가 함께 하며 매주 수요일 밤 8시 SBS Plus, 수요일 밤 9시 30분 SBS funE, 목요일 밤 8시 SBS MTV에서 만나볼 수 있다. 남궁경희의 고백은 24일 8시 SBS Plus에서 공개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은나라 ‘왕실의 후예’ 공자, 二代를 계승한 주나라를 인정하다

    [이덕일의 새롭게 보는 역사] 은나라 ‘왕실의 후예’ 공자, 二代를 계승한 주나라를 인정하다

    몇 년 전 한국과 중국, 중화민국(대만)의 인터넷상에서 논란이 된 사건 중에 ‘공자 한국인 설’이 있었다. 한국인들이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고 중국인들이 비난한 것이다. 공자를 한국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공자가 동이족 출신인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필자의 억측이 아니라 사마천(司馬遷)이 ‘사기’의 ‘공자 세가(世家)’에서 서술한 내용이다.●공자는 동이족인가? 공자는 제후가 아니었음에도 사마천은 공자를 높여서 제후의 사적인 ‘세가’에 서술했다. 사마천은 공자의 만년에 대해 “(제자)자로(子路)가 죽고 공자가 병이 들었다”라고 병들어 쓸쓸한 노후를 묘사하고 있다. 아들 공리(孔鯉:BC 532~481)도 3년 전에 저세상으로 갔다. 공자는 찾아온 제자 자공(子貢)에게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천하에 도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구나. 아무도 나를 존숭하지 않는구나. 하(夏)나라 사람은 동쪽 계단에 빈소를 차렸고, 주(周)나라 사람은 서쪽 계단에 빈소를 차렸고, 은(殷)나라 사람은 양쪽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렸다. 지난밤에 나는 꿈에서 양쪽 기둥 사이에 앉아 제사를 받았다. 나는 은나라 사람에서 비롯되었다.”(사기, ‘공자세가’) 하·은·주(夏殷周)는 빈소를 차리는 예법이 각각 달랐다. 은나라 사람들은 양쪽 기둥 사이에 빈소를 차리는데 공자는 사후에 양쪽 기둥 사이에서 제사를 받는 꿈을 꿨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뿌리는 동이족 은나라라는 것이다. 중국학자들도 은나라가 동이족 국가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는다. 공자는 그 7일 후인 노 애공 16년(BC 479) 4월 기축일에 세상을 떠났다. 사마천이 전하는 공자의 유언은 ‘나는 은나라 사람의 후예’라는 말이었다. ‘사기’에 따르면 공자는 송(宋)나라 시조인 미자(微子)의 후예였는데 미자는 은나라 왕 을(乙)의 큰아들이자 은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紂王)의 서형이었다. 공자는 은나라 왕실의 후예인 동이족이었다.●공자가 ‘춘추’를 쓴 이유 공자는 자신이 ‘논어’(사진ㆍ論語)로 인류의 스승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후에 이름을 날린다면 역사서 ‘춘추’(春秋)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공자는 만년에 “군자는 생애가 다하도록 이름이 알려지지 않는 것을 근심한다. 나의 도가 행하지 않으니 내 무엇으로 후세 세상에 드러나 보이겠는가”라고 한탄하면서 ‘춘추’를 지었다. 공자는 다른 일은 제자들과 상의해 처리했지만 “‘춘추’를 지을 때는 기술할 것은 기술하고, 삭제할 것은 삭제했는데 자하(子夏·공자의 제자) 무리도 한마디 더 할 수 없었다”고 전한다. ‘춘추’는 공자 혼자 지었다는 것이다. 공자는 ‘춘추’를 다 쓴 후 제자들에게 보여 주면서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춘추’ 때문일 것이고 나를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역시 ‘춘추’ 때문일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러나 공자는 ‘춘추’가 아니라 제자들이 그의 어록을 묶은 ‘논어’ 때문에 후세에 이름이 났다. 공자는 “‘춘추’의 의리가 행해지면 천하의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두려워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실제로 공자보다 180여년 뒤의 사람인 맹자(孟子)는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니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하였다(맹자 ‘등문공(藤文公) 하’)”라고 말해서 ‘춘추’를 쓴 공자의 목적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음을 말해 준다.●‘춘추’의 의리 ‘춘추’는 주나라를 정통, 즉 임금의 나라로 보고 다른 나라들은 모두 신하의 나라로 보고 서술한 역사서다. 공자가 말한 ‘난신적자’란 주나라의 종통을 무시하는 자들을 뜻한다. 주나라는 크게 서주(西周·BC 11세기~BC 771년) 시대와 동주(東周·BC 770~BC 256) 시대로 나누는데,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는 동주시대다. 춘추시대는 각지를 차지한 제후들이 힘이 약해진 주나라 왕실을 능멸하고, 각 제후국 내에서는 강한 호족들이 제후들을 능멸하는 패도(覇道)의 시대였다. 그래서 공자는 모든 제후국들이 주나라를 따르는 것이 천하의 순리인 왕도(王道)라고 주창하는 춘추필법을 강조한 것이었다. 여기에서 중국을 황제국가로 보고 다른 모든 민족 국가를 신하의 국가로 보는 이른바 중화사관(中華史觀)이 나왔다. 공자가 제창한 유가(儒家)는 진(秦)나라 때 분서갱유(焚書坑儒)를 당할 정도로 큰 탄압을 받았지만 한(漢)나라가 들어선 후 상황이 달라졌다. ‘춘추’에서 정통으로 삼은 주나라를 한나라로 바꾸어서 해석하면 절대 충성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중국의 모든 왕조는 자신들을 정통으로 삼아 역사를 서술하는데 이것이 춘추필법, 즉 중화사관이다. 중국은 역사를 서술할 때 ‘중국을 위해 치욕의 역사는 감춘다’는 ‘위한휘치’(爲漢諱恥)와 ‘중국 내부의 일은 상세하게 쓰고 이민족의 일은 간략하게 쓴다’는 ‘상내략외’(詳內略外) 같은 춘추필법을 사용한다. 모두 ‘중화’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는 것이었다. ●공자의 사상적 방황 그러나 공자가 주나라를 정통으로 보는 ‘춘추’를 쓰기까지 많은 사상적 방황이 있었다. 자신이 동이족 은나라 왕실의 후예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은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는 은나라의 신하국이었다. 임금의 나라인 은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를 인정할 수 없었던 공자는 사상적으로 방황했다. 그런데 공자가 서른네 살 때인 노(魯) 소공(昭公) 24년(BC 518) 노나라 대부 맹리자(孟釐子)가 세상을 떠나면서 새로운 계기가 마련되었다. 맹리자의 동생 남궁경숙(南宮敬叔)이 노나라 소공에게 “공자와 함께 주나라에 가고 싶다”고 요청한 것이다. 노 소공은 남궁경숙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차와 심부름할 동자를 붙여 주었다. 공자는 드디어 주나라 수도 낙읍(洛邑·낙양)을 여유롭게 답사할 수 있었다. 공자가 방문했을 때 낙양은 퇴락한 주 왕실만큼이나 쇠락해 있었지만 역사에 밝은 공자의 눈에는 달리 보였다. 그래서 공자는 감탄사를 남긴다. “주나라는 이대(二代, 하·은나라)를 귀감으로 삼았으니 찬란하도다 그 문화여!(郁郁乎文哉!) 나는 주나라를 따르겠노라.”(논어 ‘팔일’(八佾)편)” 공자는 주나라가 그보다 앞선 하·은나라의 역사와 문물을 파괴하지 않고 계승했음을 확인하고 주나라를 받아들였다. 동이족 은나라 출신의 공자는 비로소 은나라를 무너뜨린 주나라를 받아들이고, 주나라를 정통으로 삼는 ‘춘추’를 저술할 수 있었다. 동이족 출신 공자가 만든 춘추필법이 역대 한족(漢族) 왕조들이 만든 중화사관의 뿌리가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공자의 유언인 “나는 은나라 사람에서 비롯되었다”라는 것은 그가 진정으로 주나라를 받아들였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해 준다. 단재 신채호는 ‘낭객(浪客)의 신년만필’에서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된다”고 비판했다. 자신의 뿌리에 대한 공자의 끈질긴 고민을 우리가 이어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된다.
  • [김성호 선임기자의 종교만화경] 낯설지만 자유로운 ‘대화형 미사’…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김성호 선임기자의 종교만화경] 낯설지만 자유로운 ‘대화형 미사’…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다

    지난달 19일 오후 4시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 선교센터 1층 성체조배실. 15평 남짓한 작은 방에 50여 명이 오밀조밀 둘러앉아 있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열리는 ‘열린 미사’에 참석하려 찾아든 사람들. 성호를 긋는가 하면 도란도란 옆 사람과 인사를 나누며 담소하는 이들의 자유로운 모습들이 여느 미사와는 사뭇 달랐다.‘보내다’ ‘파견하다’는 뜻의 라틴어 ‘missa’에서 유래한 미사는 5세기쯤부터 라틴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를 재현하며 행해온 가톨릭교회의 유일한 만찬제사를 지칭한다. 이 미사 중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축성된 빵과 포도주를 나눠 먹은 뒤 각자 삶의 자리로 파견된다. 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한국지부가 2013년부터 마련해오고 있는 ‘열린 미사’는 일반 성당에서 볼 수 있는 보통의 미사와는 크게 다르다. 우선 천주교 신자와 비신자, 다른 종교의 신자와 상관없이 누구나 미사에 참여할 수 있다. 삶의 자리에서 ‘복음’, 곧 기쁜 소식을 다른 이웃과 함께 나누자는 열림의 공동체를 중시한다. 그 미사에선 특히 대화의 방식을 존중한다. 대화란 원래 권위나 권력 없이 수평적이며 상호 간의 존엄성과 평등함에 바탕을 둔 인격적인 관계를 지향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이 ‘열린 미사’는 초기 가톨릭 교회의 ‘코이노니아’(koinonia), 즉 참다운 공동체의 대화와 친교에 큰 비중을 두고 자유로운 미사로 진행한다. 무엇보다 차별화되는 부분은 강론이다. 보통의 미사와 비슷한 전례 양식을 지키지만 엄숙한 복음이나 독서 말씀에 치우친 강론이 아닌 선교 체험을 통한 사회 문제의 극복과 갈등 해결을 함께 고민한다. 선교를 하고 있거나 선교를 다녀온 사제가 미사 주례를 맡아 다양한 형식의 강론을 진행한다. 이날의 주례는 2015년부터 미얀마에 파견돼 선교를 하고 있는 이제훈(37) 신부. 양곤에서 1500㎞쯤 떨어진 오지인 미치나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선교하던 중 사고를 당해 수술 겸 휴가차 귀국했다가 주례로 초빙돼 열린 미사에 참석하게 됐단다. 입당 성가와 함께 입장한 이 신부가 방 앞쪽 제대를 사이에 두고 미사 참석자들과 마주 앉자 뭇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 신부에게 쏠렸다. “피부색과 얼굴 생김새가 미얀마 사람과 비슷해 현지인들과 어울려 사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시작한 강론이 역시 여느 미사의 분위기와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이 신부의 선교 체험이 이어지면서 곳곳에선 놀라움 섞인 탄식이, 때로는 웃음이 터져 나오기 일쑤였다. “할머니에게 라면을 끓여 대접했더니 ‘천상의 맛’이라 감탄하며 줄곧 라면을 요구해와 당황했어요.”“성당을 찾아온 노스님이 색깔 있는 안경(선글라스) 없느냐고 물어 안경을 줬더니 안경을 쓰고 같이 사진 찍자며 쫓아다녀 한동안 피곤했습니다.”“초콜릿을 줘도 어떻게 먹을 줄 모르는 어린아이를 보고 우리네 옛날 모습이 떠올라 안타까웠지요.”…. “1960년대 우리의 시골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2년 넘게 그곳 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며 살아온 체험을 전하는 이 신부의 강론은 종교와 선교의 테두리를 넘는 것이었다. 특히 그곳 여러 종교인들과의 특별한 만남과 교류는 청중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불교 국가에서 살다 보니 생활 속에서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그곳 스님들과 어울리며 불교에서 강조하는 ‘마음 공부’의 중요성을 새삼 높이 평가하게 됐단다. “내 마음을 살피지 못하면 뭘 하든 마음의 평화를 얻지 못하는 것 같아요.” 1시간 30분가량의 미사는 “마음 공부를 비롯해 대화와 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주례자 이 신부의 강론으로 채워졌다. 미사가 끝난 뒤 강당으로 옮긴 사람들이 간단한 간식을 함께 나누는 ‘친교의 시간’에서도 이 신부의 강론과 특별한 ‘열린 미사’는 화제였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식지인 주보를 통해 ‘열린 미사’를 알고 찾아왔다는 남궁경숙(70·서울 여의도동)씨는 “다른 미사와 달리 분위기가 자유롭고, 생생한 체험이 담긴 신부님 강론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며 “다음 미사에도 참석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문을 듣고 어떤 미사인지 알고 싶어 참여했다”는 유현정(40·서울 관악구 신림동)씨는 “평소 참석하는 미사가 성경 위주의 말씀을 전하는 데 치중해 지루함을 느꼈는데 자유로운 대화를 통해 전하는 삶의 교훈이 신선했다”며 종종 참석할 뜻을 비쳤다. 고 김수환 추기경은 생전 사목 교서에서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이 시대의 인간의 삶, 곧 문화를 그리스도의 빛으로 비추고 안에서부터 복음의 정신이 누룩의 구실을 못한다면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웃과 함께 어울리고 나누자는 대화와 공동체의 중요성을 바라본 일갈이다. 미사 말미에 이 신부가 전한 말이 그 교훈과 맞닿아 있는 듯해 예사롭지 않았다. “오늘 미사를 계기로 자신을 내어주는 연습을 조금씩이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을 내어준다면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글 사진 kimus@seoul.co.kr
  • 남북 천주교 만남 성사되나

    남북 천주교 만남 성사되나

    남북한 천주교 신자들이 한데 모여 ‘신앙으로 하나 되자’는 신앙대회를 여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남과 북의 천주교 관계자들이 내년 분단 70주년을 맞아 기도를 통한 분단 극복과 남북 관계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명동성당 미사에 초청됐던 북 천주교의 불참으로 무산됐던 남북 천주교의 만남에 다시 기대가 쏠리고 있다. 4일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등 천주교계에 따르면 남북한 천주교 관계자들이 지난달 중순 중국 베이징 모 식당에서 만남을 갖고 신앙(기도) 대회 공동 개최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이날 베이징 회동은 남측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이기헌 주교)가 대화 제의를 한 데 대해 북한 측이 수용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에서 이은형(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이기수(대구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남궁경(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연구분과 대표)·유창연(대전교구 민족화해위원장) 신부가, 북에서는 조선카톨릭교협회 장재언(사무엘) 위원장, 서철수(모세) 서기장 등이 참석했다. 이은형 신부 등 베이징 회동 참석자들은 이번 남북 천주교 만남과 관련해 “내년 분단 70주년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도 남북 경색 국면이 계속되고 있어 ‘기도로 분단 상황을 극복하자’는 남측 제안을 북한에서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신부는 특히 “만남에서 양측은 2015년 중 남과 북의 천주교 신자들이 함께 모여 신앙(기도) 대회를 여는 것에 대한 의견을 집중적으로 나눴다”고 덧붙였다. 회의 참석자들에 따르면 모임에서 남북 천주교인들은 남북 신앙(기도) 대회 개최 장소와 규모, 참석 범위, 시기 등에 대한 구체적 실무 협의를 향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남북 천주교 관계자들이 만나 실무 협의를 하자는 우리 제안에 북한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천주교계가 고무돼 있다. 천주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이번 북경 만남에서 논의된 내년 남북 천주교 신자들의 만남은 그 규모나 명칭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2008년 이후 급격히 경색된 남북 관계에 화해와 협력을 모색하는 장이 된다는 사실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며 “남북한 천주교 신자들의 신앙(기도) 대회는 종전엔 없던 형태가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북한 당국은 지난 5월 이례적으로 한국천주교 최고위 인사인 염수정 추기경의 개성 방북을 허용해 종교계 안팎의 큰 관심을 모았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지난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중 교황이 명동성당에서 집전한 미사에 북한 천주교 인사들을 초청했지만 불참해 남북 천주교의 만남이 불발됐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儒林(50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1)

    儒林(509)-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1)

    제5부 格物致知 제1장 疾風怒濤(31) 일어나 앉은 율곡의 머릿속으로 문득 노자를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던 공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천하의 성인 공자도 예에 대해서 묻기 위해 노자를 만나러 그 먼 주나라까지 여행을 떠나지 않았던가. 사마천은 사기에서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남궁경숙과 함께 주나라로 간 공자는 노자를 만나 예에 대해서 물었다.” 일찍이 ‘열 집이 있는 고을이라면 반드시 충성과 신의에 있어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있겠지만 배우기에 있어서는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자신을 평가하였던 공자. 그러므로 지성이었던 공자도 예에 대해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만리의 여정을 거쳐 주나라의 낙읍으로 간다. 공자는 마침내 노자를 만나게 되자 마차에서 내려 노나라로부터 가져온 기러기 두 마리를 선물로 바쳐 올리고는 ‘예에 대해서 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고 사마천이 기록하였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쓴 ‘자경문’에서 ‘성인(공자)을 본보기로 삼아서 조금이라도 성인에 미치지 못하면 나의 일은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뜻을 세웠던 율곡으로서는 예에 대해 가르침을 얻기 위해 수만리의 여정을 불사한 공자를 본받는 것도 지극히 마땅한 일인 것이다. 더구나 퇴계는 해동공자(海東孔子)로 불리던 당대 최고의 철인(哲人). 나 역시 공자의 말처럼 ‘배우기에 있어서 나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호학지인(好學之人)인 것이다. 물론 공자는 노자로부터 냉대를 받는다. 예를 묻는 공자에게 노자는 다만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이를테면 훌륭한 장사꾼은 물건을 깊숙이 감추고 있어 얼핏 보면 점포가 빈 것처럼 보이듯 군자는 많은 덕을 지니고 있으나 외모는 마치 바보처럼 보이는 것일세. 그러니 제발 그대도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 잘난체하는 말과 헛된 집념을 버리란 말일세.” 이처럼 노자로부터 수모를 당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공자. 그러나 공자는 노자로부터 정말 아무런 배움도 얻지 못하였던 것일까. 아니다. 율곡은 머리를 흔들며 생각하였다. 날이 벌써 밝아 어둑새벽이 되었는지 먼 인가로부터 홰를 치며 울어대는 닭의 울음소리가 까마득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공자는 노자로부터 수욕(受辱)을 당하였으나 오히려 이로 인해 자신의 학문을 정립할 수 있었으니,‘공자가 주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돌아오자 제자들이 점차로 많아지기 시작하였다.’는 사기의 기록이 그 증거인 것이다. 더구나. 율곡은 빙그레 웃으며 생각하였다. 나의 이름은 이이(李珥). 사마천은 노자의 신분을 ‘노자의 성은 이(李)씨고, 이름은 이(耳)다’라고 밝히고 있지 않은가. 율곡의 이름은 ‘귀걸이(珥)’를 뜻하고 노자의 이름은 ‘귀(耳)’를 뜻해 의미는 서로 다르더라도 음은 같아 두 사람은 시공을 초월한 동명이인이 아닐 것인가.
  • 儒林(196)-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儒林(196)-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제2부 周遊列國 제3장 황금시대 어쨌든 이로서 공자는 5년 동안에 걸친 정치가로서의 황금시대를 스스로 마감하고 노나라를 떠나 열국을 순회하는 고난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대사구의 재상 직을 버린 것은 55세 때였고,자기의 이상을 정치적으로 실현할 나라와 임금을 찾아 국외로 여행길에 오른 것은 56세 때였다.그 뒤 다시 노나라로 돌아온 것은 기원전 484년,노나라의 애공 11년.공자의 나이 68세 때였으니,공자는 실로 13년 동안이나 열국을 주유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13년 동안의 세월은 공자의 황금시절과는 전혀 다른 문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대 사상가 공자가 어째서 13년 동안이나 훗날 자신의 신세를 ‘상갓집의 개’인 ‘상가지구(喪家之狗)’로 표현할 만큼 초라한 신세로 주유천하를 하였던가는 실로 미스터릭한 일로 느껴진다. 노나라를 떠나면서 태사 기에게는 ‘모름지기 군자는 멀리 (속세를 떠나) 도망가서 여생을 한가롭게 지낼 뿐’이라고 노래하면서도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세상의 바다 속에 뛰어들어 모진 고초를 받았던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화광동진(和光同塵)’,즉 ‘빛을 부드럽게 하여 속세의 티끌과 함께한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마치 부처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그 본색을 숨기고 인간계에 나타나고 예수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사람의 아들이 되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인간이 죽음을 물리칠 수 있음을 보여주었듯이 공자가 13년 동안의 가시밭길을 주유열국 하였던 것은 속세의 티끌과 같이하려는 구법행위가 아니었을까. 아이로니컬하게도 ‘화광동진’이란 말은 공자 당대의 최고의 라이벌인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그 이목구비를 막고 그 문을 닫아서 날카로운 기운을 꺾고 혼란함을 풀고 지혜의 빛을 감추고(和其光),속세의 티끌과 함께하니(同其塵) 이것을 현동(玄同)이라고 말한다.그러므로 친해질 수도 없고 멀어지지도 않는다.이롭게 하지도 않으며 해롭게 하지도 못한다.귀하게 할 수도 없고 천하게 할 수도 없다.그러므로 천하에 가장 귀한 것이 된다.” 무릇 성인들은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는 형극(荊棘)의 가시밭길 끝에 완성되는 것. 13년에 걸친 주유열국의 고난시절은 공자의 사상을 완성시킨 부처의 설산(雪山) 고행과 예수의 무거운 십자가와 같은 것이 아닐까. 노나라를 떠나 홀연히 자취를 감춘 공자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서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공자를 전송하였던 태사 기가 돌아오자 계환자가 물었다. ‘어떻게 되었는가.’ 이에 기가 대답하였다. ‘떠나지 말라고 말렸는데도 기어이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그래 뭐라고 하던가.’ 그러자 태사 기는 공자와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말했다.자초지종을 들은 계환자는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선생은 예기들의 문제를 걸어서 나를 질책하신 것이다.’” 공자가 떠난 후 노나라는 공자의 예언대로 기울어진다.이것을 상징하듯 사기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여름에 노의 환공(桓公),이공(釐公)의 무덤에서 불이 났다.남궁경숙이 그 불을 껐다.” 남궁경숙은 공자와 함께 노자를 만나러간 사람.공자의 노래 ‘나라의 기둥들이 저 꼴이라면 남은 것은 오로지 파멸일 뿐’이라는 구절처럼 노나라는 마침내 파멸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것이다.
  • 儒林(173)-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儒林(173)-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물론 장자에 나오는 이 유명한 장면은 사실이 아니다.공자를 조롱하는 내용 중 클라이맥스인 이 구절은 장주가 얼마나 공자를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고 있는가를 도둑인 도척의 입을 빌려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잔인한 도둑인 도척의 입을 빌려 ‘도둑이라면 너만한 도둑이 다시없다.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너를 도구(盜丘)라고 부르지 아니하고 나만 도척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공자를 조롱함으로써 장주는 공자를 ‘큰 옷에 넓은 띠를 띠고,터무니없는 말과 위선적 행위로 천하 군주들을 속여서 부귀를 얻고자 하는 지식의 도둑’이라 비웃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공자가 노자를 만났을 때도 노자로부터 그런 취급을 받는다.장주가 공자를 노골적으로 비웃는 것과 달리 노자는 공자를 만났을 때 비교적 온건한 태도로 말하였지만 결과적으로 노자로부터 ‘제발 예를 빙자한 그 교만과 그리고 뭣도 없으면서도 잘난 체하는 병과 헛된 집념을 버리라.’는 충고를 듣게 되는 것이다. 물론 사마천의 ‘공자세가’에는 그런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이는 사마천이 평소에 공자를 마음속으로 존경했기 때문일 것이다.사마천은 ‘공자세가’를 집필하면서 공자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사기에 서술하고 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시경(詩經)’에 보면 ‘고산(高山)을 우러러보면서 대도(大道)로 나아간다.’고 되어 있다.도달할 수는 없더라도 마음은 저절로 그쪽으로 향한다는 뜻이다. 나는 공자의 저서들을 읽으며 그의 인품을 생각해 보았다.노나라로 직접 가서는 그의 묘당에 있는 거복(車服)과 예기도 보고 여러 유생들이 공자의 옛집에서 예를 익히고 있는 것도 구경했다.나는 주위를 거닐면서 차마 그곳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사실을 감지했다.천하의 어떤 군주나 현인들도 살아서는 영화를 누렸겠지만 죽어서는 그 영화도 끝났다.그렇지만 공자는 포의(布衣)의 신분이었으면서도 덕은 10여대에 걸쳐 전하고 학자들도 공자를 종주(宗主)로 우러러보고 있는 것이다.천자나 왕후들을 비롯해 중국 전역에서 예를 논할 때에는 반드시 공자를 표준으로 취사선택하니 과연 공자를 지성(至聖)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류가 낳은 최고의 역사가 사마천은 공자를 ‘지덕을 갖추어 더없이 뛰어난 성인’인 ‘지성’으로까지 부르고 있는 것이다.그러므로 사마천은 ‘공자세가’편에 감히 공자에 대한 노자의 힐난을 기록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남궁경숙과 주나라로 간 공자는 노자를 만나 예에 대해서 물었다.그리고 떠나려고 하자 노자는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부귀한 사람은 손님을 보낼 때에 재물로써 전송하고,어진 사람은 손님을 보낼 때에 좋은 말로 전별한다고 하오.나는 부귀하지 못한 사람이라 어진 사람의 이름을 빌려 그대에게 말로써 전별할까 하오.총명하여 사리를 깊게 살필 줄 알면서도 죽을 고비를 겪는 사람은 원래 남을 비방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며,능변이면서 넓고 크게 아는 것이 많은데도 자신을 위태롭게 하는 사람은 원래 남의 악행을 폭로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오.그리고 사람의 자식된 자는 모름지기 자신을 버리고 어버이를 섬겨야 하고 사람의 신하된 자는 역시 자신을 버려 임금을 섬겨야 하는 법이오.’ 공자가 주나라를 떠나 노나라로 돌아오자 제자들이 점차로 많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처럼 공자에게 부드럽게 말하였던 노자의 태도는 ‘노자열전’의 기록을 보면 180도로 달라지고 있다.
  • 儒林(161)-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儒林(161)-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장차 나도 벼슬을 하겠습니다.’라고 양호의 예공을 슬쩍 피해버린 공자는 그 순간 아마도 노자를 만나기 위해서 주나라로 여행을 떠날 것을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극도로 혼란한 노나라에 머물러 있다가는 자칫하면 정치에 말려들어 근묵자흑(近墨者黑),즉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말처럼 나쁜 권력에 자신도 모르게 물들거나 이용당할 것을 염려하여 ‘벼슬을 하긴 하겠지만 미래에 그러하겠습니다.’라는 애매한 답변으로 얼버무린 뒤 그는 결심을 굳혔을 것이다. 실제로 양호 뿐 아니라 그의 정적인 계환자도 천종의 곡식을 공자에게 선물로 보내왔다고 ‘공자가어’가 전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무렵 노나라에서는 공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를 만나기 위해서 떠난 공자의 여행은 다목적 여행인 셈이었다. 오늘날 산둥성 가상현(嘉祥縣)에는 화상석(畵像石)으로 유명한 무씨(武氏)사당이 있다.화상석은 분묘나 사당의 평평한 내벽이나 석주,석관의 표면에 새겨진 장식 화상으로 표현방식은 음각에 의한 선묘(線描)를 기본으로 부조적(浮彫的)인 것도 있는데,그려진 것은 인물,신화,풍속 등 다채로우며 미술적으로 뛰어날 뿐 아니라 당시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재료로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것이다. 이 화상석들은 대부분 돌로 만든 분묘나 석조물들이 급격하게 발달한 후한시대(後漢時代)에 새겨진 것으로 지금으로부터 2000여년 전의 작품들인 것이다. 청나라 건융(乾隆)연간에 프랑스 고고학자에 의해서 발굴된 무량석실은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화상석들을 끌어 모아 수천 점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특히 후석실의 3석에 4층으로 된 그림은 단군신화의 내용과 유사점을 갖고 있다하여서 우리나라 학자들 간에도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유적이기도 한 것이다. 또한 이 사당에는 전국시대 때의 고사들이 간단한 명문과 함께 생생하게 새겨져 있는데,노자와 공자가 극적으로 만나는 장면을 새긴 화상석이 수십 점이나 전시되고 있다.그 만큼 2000년 전에 벌써 노자와 공자와의 만남을 역사적으로 가장 신비한 사건으로 보고 있는 중국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이 화상석에는 노자를 만나고 있는 공자가 한결같이 품속에서 새를 꺼내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이 새는 비둘기(鳩)로 공자가 노자를 예방할 때 비둘기를 선물로 준비하였던 것은 그 무렵 현명한 노인이나 스승을 만날 때면 으레 비둘기를 예물로 바치는 습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부터 구장(鳩杖)이라 하면 비둘기형상을 머리에 새긴 노인의 지팡이로,나라에서 공로 있는 늙은 신하에게 하사하던 상서로운 물건이었으며,또한 머리에 비둘기형상을 새긴 노인들이 쓰는 젓가락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둘기는 모이를 먹을 때 목이 메지 않는데서 노인도 목이 메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 무렵 비둘기는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노인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가 노나라를 떠날 때부터 한 쌍의 비둘기를 예물로 준비하고 남궁경숙과 더불어 임금이 내린 수레를 타고 노자를 만나기 위해서 수만리의 먼 길을 여행하였던 것은 이렇듯 노자에 대해 최고의 경의를 표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 儒林(154)-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儒林(154)-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이는 사기에 나와 있는 다음과 같은 기록에서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노나라의 대부 맹희자(孟僖子)가 병으로 임종하면서 자신의 대를 이을 아들.의자(懿子)에게 엄숙히 타일러 말하였다. ‘공구는 성인의 후손이다.송나라가 망하자 노나라로 온 것뿐이다.그의 조상 불보하는 처음에 송나라의 군주로 즉위할 신분이었으나 아우 여공( 公)에게 양보한 분이다.정고보 대에 와서는 송의 대공,무공,선공을 보좌해 상경이 되었다.‘” 맹희자는 청동 솥에 새긴 명문의 내용을 설명하고는 다시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고 사기는 전하고 있다. “…정고보는 공손하기가 이와 같았다.내가 들은 바로는 ‘성인의 후손은 벼슬에 오르지 않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사리에 통달한 현인이 나타난다’고 하였다.지금 공구는 비록 나이는 젊지만 예를 좋아하니 필시 그는 사리에 통달한 현인일 것이다.그러니, 내가 죽더라도 너는 반드시 그를 스승으로 섬기거라.” 이 말을 하고 맹희자가 죽자 아들 의자는 아우인 남궁경숙과 더불어 공자에게 가서 예를 배웠던 것이다. 맹희자가 ‘공구는 지금 나이는 젊지만 예를 좋아하니’하고 말하였던 것처럼 그 무렵 공자의 나이는 불과 17세로 아직 가르침을 펼 때가 아니었다.그러므로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예를 배운 남궁경숙은 오히려 공자보다 나이가 많은 권신이었을 것이며,공자가 정식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펼 때에는 이 무리 속에 끼지 않았을 것이다.따라서 이들의 이름이 ‘제자열전’에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이 무렵 남궁경숙의 지위는 상당해서 젊은 백면서생에게 예를 배울지언정 제자노릇은 차마 하지 못하였을 것이다.그러나 남궁경숙은 공자에게 든든한 후원자로 정신적·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공자가 47세 되던 해 주나라로 두 번째 출국을 단행하려 하였을 때 선뜻 따라나서서 동행하였던 것이다.그뿐 아니라 군주인 정공에게 부탁하여 교통의 편의까지 받게 되는 것을 보면 남궁경숙이 이미 상당한 세력가일 뿐 아니라 공자의 후원자 역할을 자임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기록이 사기에 다음과 같이 나오고 있다. “노의 남궁경숙이 노나라의 군주(정공)에게 부탁하였다. ‘청하오니 공자와 함께 주나라로 가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군주는 이를 허락하면서 승용거 한 대,말 두 필,종자 한 사람을 딸려주었다.” 이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공자의 첫 번째 출국은 군주의 허락을 받지 않은 망명이었지만 공자의 두 번째 출국은 군주로부터 정식으로 허락을 받았을 뿐 아니라 수레와 말까지 하사받은 호화여행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공자는 남궁경숙과 군주가 내린 말이 이끄는 수레를 나란히 타고 종자를 앞세워 노나라를 출발하여 주나라로 떠난다.이 무렵 주나라의 왕조는 훗날 낙양으로 알려진 낙읍.노나라에서 주나라에 이르는 그 길은 오늘날에도 쉽게 여행할 수 없는 수천수만리의 긴 여정이었다. 도중에는 진나라와 조나라,정나라와 같은 여러 제후국들을 지나야 했으므로 자칫하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여정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공자는 도대체 무엇을 하기 위해서 47세의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이와 같이 험난하고 머나먼 여정을 떠나고 있는 것일까.그렇다.공자가 떠난 이 여행은 인류사상 가장 극적이고 가장 신비스러운 여행이라고 일컬어 신과 신이 만나기 위해 벌인 ‘신들의 여행’이라고까지 불리고 있다.
  • 儒林(152)-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儒林(152)-제2부 周遊列國 제1장 첫 번째 출국

    제2부 周遊列國 제2장 老子와 孔子 기원전 506년. 공자는 남궁경숙(南宮敬叔)과 주(周)나라로 여행을 떠난다.제나라로 망명하여 1년 남짓 외유하였던 것이 첫 번째 출국이라면 그 후 다시 9년 만에 해외로 출국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출국은 자신의 정치적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서 망명하였던 첫 번째와는 전혀 다른 목적 때문이었다.이때 공자는 불혹(不惑)의 나이에 접어들어 46세 되던 해였다. 이미 노나라의 주군이었던 소공은 7년 동안이나 제나라에서 망명생활을 하였으나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객사하였으며,그 뒤를 이어 정공(定公)이 왕위에 올랐지만 마찬가지로 아무런 권력도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였다.오히려 계씨의 횡포는 더욱 심해져서 내란이 일어날 만큼 노나라는 극도의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어쨌든 새로운 임금이 즉위한지 4년이 된 정공 4년.공자는 수레를 타고 평소에 천하의 종주국으로 생각하고 있던 주나라를 향해 두 번째의 출국을 단행한다. 이때 공자를 도와 함께 떠난 사람은 남궁경숙이었는데,그는 공자의 초기 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그러나 남궁경숙은 공자에게서 예를 배운 제자임에는 틀림없으나 사마천이 쓴 사기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그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사마천은 공자의 70인 제자들을 낱낱이 기록하여 별항을 만들어 공자의 제자열전을 기록하고,그 말미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 태사공은 이렇게 생각한다. 세상의 학자들이 흔히 공문(孔門)의 70인 제자들을 저울질하여 칭찬하는 가운데에는 실제 이상으로 기리는 적도 있고,역시 실제 이하로 비방하기도 한다.어느 쪽도 모두 제자들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 것 같다.제자들의 명부는 공씨의 벽 가운데에서 나온 고문(古文)에 의한 것이니 거의 정확할 것이다.나는 공자 제자들의 이름과 대화를 모두 ‘논어’에 실린 제자들의 문답에서 뽑아 차례대로 엮었으며,의심나는 것은 여기에 싣지 않았다.” 사마천의 말대로 남궁경숙은 공자의 제자임에도 공자의 집에서 전해오는 고문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고 ‘논어’에 나오는 70여명의 제자 중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46세 되던 해,다른 제자는 모두 제쳐놓고 주나라로 남궁경숙과 함께 두 번째의 출국을 단행하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공자와 남궁경숙과의 특별한 인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특별한 인연에 대해 사마천은 사기에서 따로 기록하고 있는데,그 내용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무렵 노나라에는 국보적인 유물 하나가 전해 내려오고 있었는데,그것은 솥(鼎)이었다.고대중국에서 세 발로 만든 청동 솥은 원래 천자의 덕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그 후로 청동 솥은 제위와 권위를 나타내는 신성한 제물로 여겨져 오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솥은 구정(九鼎)이라 하여 고대 순임금 때 주조되어 이를 가진 나라는 정통적으로 천자가 계승하고 있다는 상징물로 신성시되어 왔던 것이다.따라서 하(夏),은(殷), 전국시대의 종주국인 주(周)왕조 대대로 이를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는데,노나라에 있는 솥은 천자를 상징하는 구정이 아니라 정고보(正考父)란 재상의 명문을 새긴 솥이었던 것이다.정고보는 송나라의 제10대 대공(戴公)에서 시작하여,11대 무공(武公),12대 선공(宣公) 등 3대에 걸쳐 임금을 보좌한 현인이었는데,이 청동 솥에는 정고보의 명문이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었다. “첫 번째 임명을 받고는 윗몸을 굽히고,두 번째 임명을 받고는 허리를 굽히고,세 번째 임명을 받고는 엎드리다시피 하여,담을 의지하여 길을 다니지만 아무도 나를 업신여기지 아니한다.여기에 범벅이라도 좋고 죽을 쑤어도 좋다.내 입에는 풀칠만 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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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시간 20분 이내 윤길수(1:15:29) 김인섭(1:17:17) 이강식(1:18:16) 박태국(1:19:43) ●1시간 20분대 손종현 최수영 김영식 권용태 김경성 손신배 정봉구 이성진 박희철 박정경 남궁경 정점채 유연호 이군섭 김민철 김성법 김환규 채성만 김경석 지정구 조상민 최기재 최석환 이영주 이재만 이병탁 황사석 한상억 유영대 김창환 윤기용 박동진 우종구 윤채순 신대선 고태평 유양규 이용대 박근완 송봉규 한진옥 배진환 장경태 김모수 박종석 엄기용 이원재 김동율 김동현 김영식 이종두 함경선 김호경 최창덕 박한식 채종국 지선병 최월흠 나동용 최윤교 김관철 조정환 김용식 김영수 이상봉 이은규 이한천 이상훈 서헌전 김국진 신준식 이의호 이철호 황광대 유영기 ●1시간 30분대 김성수 김종인 서만영 김태기 이근용 김정의 박주용 김효성 김은영 황성환 홍창유 한석행 이용익 한명현 한철웅 조명래 남성우 안승일 김학찬 이계홍 이태훈 정기현 박원배 조용호 김태경 공명근 권혁철 정우국 박청우 양광렬 남창우 오철훈 김왕건 정찬진 김흥남 박기환 박점성 황병태 강대웅 백영운 백승민 민병수 권택호 김성진 윤승환 최재민 황상식 남궁영진 이철희 추인구 양재운 김화룡 서민규 구본길 박성훈 신영철 박홍진 홍석신 유인평 김성겸 배봉맹 윤병호 임성찬 조중기 최현우 강장순 최성락 권순형 우연호 김헌재 김만태 이황희 이선기 유지원 서상균 소관영 김영백 김봉수 고근영 박용주 곽영희 채기범 장준호 황영현 김영남 남동희 권은오 송병곤 최덕규 김용기 최근보 전용억 임성옥 김성진 서규환 최청식 김태규 서세원 박광인 서강원 유희봉 김재문 양완수 전병창 유영일 유순모 김찬규 임동호 박종기 오창후 유병철 안은섭 김선호 정우광 왕태성 류내섭 조재영 최승길 조지슬라마 소순태 한영태 김기문 남대원 홍연표 신동식 송재홍 인정교 문병웅 정이역 유병철 유영근 김흥수 박순찬 박종환 홍동일 정래학 변재수 이민재 송을섭 김개학 성기우 이종남 이재원 이형국 이순주 김진환 명일광 김융희 정한엽 공연배 김택구 양경철 김용만 변성주 황희동 박완우 손봉용 김광인 최보경 임녹재 박형석 방석원 이계정 정병국 정병인 안완구 이종백 최종응 임진홍 연대남 신현철 김창석 윤명로 최영훈 박옥균 심영호 김성원 최강찬 윤정룡 이하일 김행석 구본순 나남운 장달수 이제관 손영섭 이성근 이강찬 김덕관 도기용 손영수 조영채 이내국 이영곤 이진해 이석준 양선복 전광근 최종덕 양섭 최인성 김영기 노철래 김정남 서동준 조철윤 박용희 서상빈 김명수 박준호 강윤교 송의종 김동길 김민 이종원 최인수 이종윤 임철규 박성배 권오학 이현우 이범순 정진송 김인수 이범섭 안중식 백영현 김기희 이광래 송태성 정현수 정오진 김동오 송석구 정종록 이성균 서인석 김광재 박광칠 김윤석 오희용 조성대 강영준 김범주 김용균 서관영 김관식 김재광 김상규 노인영 김현수 이영우 강재욱 김명석 김용인 권영구 정철중 김휴현 최병완 김준성 김용현 이해준 윤재경 박진배 오재원 최진섭 김종배 황천상 이일영 안정훈 한환섭 송홍헌 서상만 양희민 오명석 박야영 조규석 안병건 이재춘 현창호 박국진 이순창 송병찬 손원재 장영기 고창호 송기수 정순용 서석배 이병철 이주현 박기웅 김요경 허정환 이겸노 김성렬 공병홍 김유겸 서정욱 천원석 박창덕 전대길 이동주 전상욱 신현근 이호일 이안재 조순구 이강수 황춘식 이금만 김형경 박경원 김정민 서정옥 송영기 윤석남 윤석화 고영국 안중군 김익현 권병대 김수호 박현규 전운구 김춘규 주철 장경환 변희석 진용길 장주열 한상주 김평호 천기욱 조봉렬 박주복 최상철 이대현 모현동 장정호 김창호 홍순후 권상태 박상진 최인권 윤희상 서흥수 한국영 이재력 전재만 배흥진 반익환 강한석 연문석 김대홍 백남호 김현수 배성완 노상윤 김대민 김영춘 박문구 김성준 오태규 강필선 유용근 김부일 박성일 손윤호 김희문 정태진 김상혜 정은철 김수환 김용찬 박유동 임병민 채청기 박동일 이윤백 김서권 오장환 신형수 박기운 김영구 김영성 백승삼 방승광 김길중 최남희 정지채 김익봉 서민식 류대범 이승섭 이중철 가기삼 김윤경 윤지현 서진석 김일숙 김용식 안병일 한준석 김명원 김형철 최현 박충건 전인철 김승호 권태봉 장현기 장대수 이원경 정욱기 허창근 ●1시간 40분대 류종성 권순용 김성수 여운학 최용복 김재성 황등룡 이극만 이동철 정운영 황선택 양병웅 송용현 이충식 정동현 배영석 이부선 한형석 김한기 김도한 김진태 선경주 박두훈 김용우 안익현 이동균 곽정운 김의종 이영구 윤응천 홍승일 이종후 김병안 이이재 임영일 송종열 이강용 안홍엽 김숙동 강범석 최일구 고동연 장정옥 윤석중 이태우 방철원 김학선 박영주 조이현 정은상 공관석 송월섭 조호정 김영근 이운호 엄창호 김철환 이준영 정해안 정주언 전동혁 정만재 구본황 김부환 김종국 배덕규 황정환 문완식 이성식 김재경 김두옥 강을구 한대식 손영준 홍길순 장영진 송윤섭 정승용 유재경 전의산 박수철 이병하 이남용 이동규 류성범 이의병 허희영 박만선 권장현 정효수 양일호 설동완 김계홍 강선구 김향오 최대호 황백운 이수주 양주승 채수운 허명회 조성목 정우현 서석주 채종원 송봉수 정근종 최영환 한상용 송진영 조우식 이윤희 김충환 조재명 이규완 김종국 이종진 한관섭 조수열 김상영 안맹용 박원걸 오화석 윤규한 서정은 최민석 김을식 김규영 송인국 조규상 이상덕 이희철 인철식 조정현안평순 손형수 장만길 김현강 경송현 박종우 송운선 조상기 이상무 박종익 박종연 고승원 김용철 조성학 김상수 심재종 김기원 박종현 심현정 서승교 장동학 채태석 한진성 이희인 엄기영 강정구 윤기탁 이영환 황승렬 추봉호 이종수 신옥평 이종욱 김종록 이동준 여선동 이묘석 양동해 차영규 차상원 오성기 홍기수 김용주 고영초 최봉운 이호길 전영호 신성철 김학남 유보현 고형택 박영환 남권희 여남진 박용택 이덕진 최승각 임상규 김도중 김민회 홍학기 김학도 류현 최영규 스즈키 소이치로 윤덕열 임학기 허태구 김준섭 김건수 류광호 김성길 강상기 김선진 신영헌 박행수 이병종 김종철 김윤덕 석근대 김용철 최창석 박원태 오성식 정호근 배종수 문흥규 박찬호 성기식 전웅구 김유석 김창옥 이동기 박남진 김풍규 박정호 김태범 김호영 유영철 윤상기 문경칠 이인국 정용준 방상천 전병주 권영수 정진오 신삼섭 김종태 정해용 정진영 한상호 최신택 최자종 현대일 김광순 안해정 김장호 임명근 구정환 김백수 박근석 김장오 이종태 이원재 주재완 강대식 윤인구 노재민 오도섭 이병호 임채영 김영태 박병귀 원종식 방성진 백군성 윤치명 하동균 조재룡 류규형 김우연 박헌 장인교 허강식 박백화 고병규 박노부 이충호 변재훈 박재현 서왕수 구희득 이병이 김정호 오언식 전영호 조창희 양준석 송환영 허남거 임동국 주용출 서인철 신종철 안수현 김경욱 송외동 우승일 김태승 임주환 주만성 이헌 장현석 김성우 김영관 서효석 김홍상 이상규 정유수 박만영 김성완 엄동철 최석권 이득우 이영중 강구현 황민구 정원목 조대희 윤정수 박명선 윤문유 김근복 오성환 조성우 김응민 박영열 김의도 하덕호 최대종 이행수 노광민 최순익 양기훈 김상진 윤정근 소재홍 김재형 박종헌 엄영식 박명규 최종득 박영익 왕규창 목화균 임재택 황한근 장영건 이효연 이수인 장현철 명노일 박병한 경민준 김태성 신경섭 김학수 김인주 조두하 김재연 김대중 이승준 송성규 진성권 김영석 김창식 홍평수 손승언 정진 이숭구 김세정 박진석 구태림 주영팔 김재열 박민양 이인락 곽영민 홍태영 장석춘 이진욱 이성우 윤종원 장홍식 소순재 조영현 박정한 장혁 전남식 박종선 국형걸 서학남 오성균 김철민 전용일 임철현 이원군 김영삼 권성호 허남익 임윤진 안송찬 홍성균 정의룡 김진두 최평연 이주 김정겸 계민석 송기용 탁성재 박일천 조학봉 박영남 안의찬 주경식 김상돈 박영수 홍석태 문천식 윤대식 박춘오 이규성 김귀순 이재우 정용제 김홍귀 윤정철 윤인규 장명학 나견주 손재홍 권혁주 김진규 고광휴 민병춘 김영욱 신형철 김양진 최영환 박종명 박효순 이명직 박원배 고인식 최성인 박종부 홍성각 오병무 엄경호 황인석 금병욱 유종진 김관식 최태영 안광섭 남기범 양몽룡 안용진 전도석 이형주 이영래 신준하 김학봉 우종덕 정인준 김현철 송건호 이종건 김창교 윤봉수 이영배 박상열 장병천 이영선 윤종필 채정석 권영균 이학만 이용관 임태수 전병주 황권오 김용인 김종민 류세현 신현권 서정철 강상훈 김동호 김동규 이민수 안철식 이기행 김길용 변상린 신용식 이경 김영석 권오관 이명호 이승철 임인복 문완식 임종문 강연 김주원 강호천 조중환 최규섭 위을문 이기호 이경학 류택상 장민수 송재욱 김영욱 정호영 박재용 신동학 소용철 고치범 김창열 정우인 이명하 권해균 배재식 이형삼 김영돈 최승관 박종환 유주환 리보구 안대환 한창호 조성철 유승관 김재석 이봉규 양현모 박관용 김중구 장윤선 조영호 임진택 권영철 전도준 김준기 박정민 송시환 유계성 김유호 양기홍 박상필 전동식 김광수 이복의 이재헌 임광종 김수현 강영배 한경수 송진호 윤성로 송재익 박기현 정동호 홍두표 정재승 황적현 함정복 김학민 장귀식 안학주 이상옥 전수한 홍은수 안진환 권순회 김성수 박충하 한근희 신현봉 조중운 김진환 문정대 김희대 전우식 박기현 오운기 김유영 김헌태 황대종 전영준 김홍화 한희헌 김만섭 권광안 강수현 윤치호 배상수 김상찬 이규홍 김옥근 유승균 정윤화 김도현 어윤석 김재화 김진일 정종음 최상호 김춘구 유익종 박태원 정종현 이영관 김철현 고경환 이한식 곽승규 정무진 이광민 손병찬 구자홍 김영수 김형기 김재신 김천희 황길하 박경훈 서춘석 김영창 송석철 유영모 박종철 한승열 이광주 박효전 민윤기 정동희 허인회 황병화 이경천정흠영 장문영 김주연 곽을수 고재원 한병호 송현옥 오윤관 김성일 김휘경 이규재 윤영근 홍성인 나미수 허정권 김영덕 박광호 오광환 전형범 심우정 한인수 김서경 김창업 문왕배 김종선 정영갑 이각표 류종우 김정교 조윤근 박휘식 박한수 임재일 황인용 최용식 이재오 이위성 이정호 윤영빈 정순혁 이기성 성낙종 강장중 강호성 김대성 ●1시간 50분대 정진길 김재동 강석영 문호준 진영철 김주석 강용주 송영조 김수일 류명찬 이영현 김기태 이우연 이원호 유상진 박재진 정욱근 지대선 박종하 민봉기 박진석 송기성 하태성 최칠호 한명수 한만석 신진호 김보선 송재용 홍성화 박진욱 임승래 황희석 박영택 사재욱 김현보 이한규 채흥기 정승현 이은재 이국현 김문주 이기원 신성균 박정옥 이선호 이명호 엄기정 장영인 남성희 김우진 김용진 김범민 박기석 정형재 장석 박한용 손창대 권용진 권영증 김영주 임관호 이동구 노재균 장세이 이종범 신동철 유병우 박주운 한도섭 임재흥 이희구 김기환 남정인 김종선 박재영 강성봉 홍성범 장진호 유병모 장재수 이부근 손남식 권영교 한성욱 최한주 이종림 김상균 김정화 김진오 김세환 김종근 서진천 채수갑 이형윤 김현복 박남수 김동수 조근래 이유태 지용업 김태회 김진성 조휘영 김춘삼 민승식 정세윤 고강만 강기훈 한금렬 임형수 이병은 우도윤 김영성 우헌기 오군석 양자열 한민석 신동준 박재성 오의정 김춘동 노순형 정성식 윤기호 이용식 정영복 홍순택 이세경 이문희 최철호 장재식 이상빈 연상열 박영배 고재문 이관세 장병모 이원선 김희경 변병욱 이달현 성수 전병채 이기열 김영래 홍상기 김관행 김의열 원진희 정창우 정상용 이강환 박중현 박종갑 이기성 이한종 이만영 김복수 문대권 이상경 오도진 이승호 조영석 정무훈 오만일 이관섭 김문경 신만수 권혁배 구태본 송명섭 김종선 이진동 안만철 서광석 김종혁 심명재 이재근 윤순호 오억록 박만철 최중용 오장환 이호 이해용 정재우 박종두 김종호 남병호 안석모 정영호 최영석 장제국 김수현 정문원 원정환 오한승 강대인 곽영수 최선규 용환택 구선완 전경조 이원규 이철희 김병두 박윤선 김영석 김현민 김원홍 박범석 김도운 정수동 신철호 박영락 김선종 황병헌 김상균 박상길 김종성 권경상 안기옥 김상근 권재춘 이기석 황시봉 김종옥 최재호 고석창 김주섭 허균 송달용 김남규 장재선 손기홍 노청한 지창훈 강성억 유은일 김동희 김현식 장래규 박응렬 조태희 이영민 송용수 정영길 이성우 이정환 최정열 김진형 조용혁 오현종 김중빈 이광혁 이영학 손수영 박창현 하영호 백형군 이철영 김남호 김상섭 정수열 안종준 윤주용 동영신 함영민 주신행 강성복 배호진 김진석 안영환 곽경환 오승환 유경하 김동현 안연길 조용훈 허일영 유승렬 방순동 윤제양 김원국 김화중 강용희 김기선 권태훈 유종렬 김수형 홍순국 정병원 정환조 오세룡 정재은 권기환 황정민 이병조 박호섭 고창준 신승주 한상범 윤상철 최광윤 이신우 전민종 장재웅 김성택 김영만 김일문 최광학 권기홍 박동경 송권식 이광호 이상수 김재학 최성택 김상두 이수영 길전목 박영준 이태용 전현식 이상원 이상진 엄호용 박중도 김종태 한재혁 김왕근 서양기 이석호 김용철 진칠수 안동덕 국강호 김현정 지승환 정연광 조경일 김금남 박인이 홍복 김유석 김영춘 나치수 윤도영 박태섭 김철호 노연규 박응렬 박용설 신병묵 황영식 이계철 김종욱 김도경 오세용 홍성수 김운용 이명길 연일희 김응덕 권재열 권기철 장동오 문성수 이창민 박종숙 김경수 전태환 강종닌 이철재 윤종규 설효찬 김종순 명득훈 이익현 채희열 이광희 박옥배 김극섭 진재환 양홍신 송국현 이문선 박병희 이경화 최필규 이문수 최종식 이만진 우택호 김태형 최동수 정충희 류지형 전동완 김정기 김삼종 김용재 신현관 권종기 정재일 홍운기 이수환 염용섭 김덕희 손육래 장재창 김행기 전대원 원종성 우병진 고연갑 안동선 김윤태 이순길 한근탁 김형식 백만종 박상한 박호봉 김준회 김용기 양재교 전우팔 서창주 김현수 장진구 이상도 이호갑 김상순 김병두 김덕중 남궁인 김용주 심인보 심재만 육근형 배상일 김재선 박상길 박정희 이은호 송철의 안종상 공귀현 장권호 김문호 정창화 김성열 이갑주 김명철 차형구 박문환 이재문 박병관 성흥규 김원용 최승덕 이시현 임용태 이인수 한종구 안용호최덕기 김승민 류성우 정지환 전정섭 최윤석 한용석 나석진 김평식 이동포 이형진 김준희 박용환 임동욱 조정연 정남수 조용범 김대용 이병호 고정삼 이의백 이근채 이종운 장순석 정은주 김대수 김양규 황영상 이만호 최웅렬 방란주 박태규 안희찬 이승보 심재훈 김태훈 이규옥 김진식 김승호 이원기 이종운 문인식 박상욱 권영석 윤현중 양국남 이광휘 주종호 박상배 박주균 김진호 강은구 민한홍 이광원 김태성 이봉희 이근영 김병기 이인희 신창렬 임용택 이호민 정일구 최인태 김철진 김기복 조영환 박장규 오희상 최규종 권성재 김홍철 최석민 장군 김창오 지현철 정연문 김웅주 유병천 이재원 정영빈 구희관 백종준 정순기 정기선 이명구 강문갑 김일중 맹용호 김동오 김동호 손상호 최석동 윤성식 조금현 김학재 박형호 조규명 신명호 오창영 이승수 조창권 지명준 권혁신 이상규 권오형 최병용 임동훈 김법종 이종민 강상은 이영휘 이숭묵 김형렬 정영철 이근모 남덕현 김민규 조성묵 유선순 정형진 허인구 김현우 이재곤 강지원 전종락 황석상 김규완 이종희장재욱 김종범 김춘백 이상호 박영덕 임정호 이상돈 옥은택 강혁수 문혁동 이재룡 정덕수 박만욱 박흥수 박문호 장덕만 조명연 김학성 조명준 장용호 장한수 송호동 박귀호 강석문 박성진 서한욱 최덕용 장석기 박상영 송도섭 이기우 홍성훈 원유형 정회곤 이익수 이성인 한명섭 임영수 김경준 이승호 임성수 이동균 김부섭 신재록 전재무 이영선 양의호 김성문 윤종근 홍재식 나보균 백형신 류재현 박재용 안형수 임영진 한기신 이범식 김영환 윤종식 구교룡 양명열 박근배 김경원 강정민 윤완우 김기표 박준우 송병욱 최수철 신기창 윤상호 최형권 하태옥 신홍수 박형우 손호경 김홍주 김종문 신정섭 이운학 박석희 박동길 이원희 신동인 장진국 송준호 김진평 정봉철 강운식 이재종 홍병윤 박상현 김홍찬 주정식 이진규 김갑득 안성기 고군현 이향복 제갈준웅 권덕인 명팔만 이광우 김용화 황인섭 최태규 이성주 전철종 오재승 이상군 고양식 정종선 신주석 김효섭 진병국 나종필 이병철 오원영 김흥식 이금동 소병두 백양준 설동호 하연식 김준식 진석 최백용 이윤식 최해진 김형걸 안달섭 김칠규 김의수 박계호 한호종 정대원 홍양희 이경현 박헌재 이재상 김철 장준호 유재현 양승훈 홍순호 김헌태 염봉헌 김삼구 정근일 이재홍 이환옥 조성주 박규현 윤범수 이은선 양세원 이호영 유영욱 엄태민 정명복 김철용 박승모 안병하 장치성 이용우 박병근 김중효 유동완 김영필 신승우 박병석 안병길 김보현 우원희 강석학 정순목 나승운 구주회 전재권 이의환 박영규 박원 최홍철 최광수 김주병 장삼룡 ●2시간 00분대 김유진 강성덕 안수봉 박찬홍 최기동 박증규 조순 이종찬 박종철 한정희 유성현 조문제 김인수 김용우 이현호 안진호 권오선 황영선 김현수 이은찬 한재신 이의철 송경열 하원식 이종수 이광주 조성목 김유순 김학영 최윤수 이종영 김영식 이홍석 최남일 김석주 정영근 박정주 김순봉 김형민 양주봉 이동기 이병완 안서용 유시운 박종일 양찬수 윤진행 윤수호 김기욱 나중출 양태관 이건상 유익상 소상은 정성용 정찬재 손치훈 이용재 정해양 강성열 안경용 정철희 유제국 김한종 권원일 김한철 복춘선 김민석 강대홍 엄준호 한중섭 이정규 손현규 김승만 이헌정 하철 박종호 이경진 구연갑 김종광 김진영 고종식 이종열 이근택 고규성 이용주 이수영 최창덕 이헌일 이창길 오경호 국순환 박관수 이태훈 김창완 김동수 이재석 김재룡 이중구 오정석 윤호청 김진하 이재우 이형연 정승보 최종국 손심길 서정호 문병호 선승규 이필열 이성한 김종훈 장학기 신동문 임정혁 배석진 노규태 류종완 하태익 박봉일 이종두 김석병 신현두 이광수 김충렬 서일석 차동일 남창욱 이석철 김형석 이승규 김준희 최성운 김세연 류의성 이창윤 안효방 방성민 윤흥식 김광호 황호섭 정대지 한성열 김택직 김종웅 박하근 송기섭 이동천 이상원 한상동 안영상 이석순 조선영 박근우 이창학 임종은 김종국 박준우 이규춘 전관현 윤성근 이학준 정기호 조병준 우귀환 김정열 손정철 박일규 최선식 김대중 김헝우 민준홍 김진성 오달교 박정훈 최광진 최경준 이중영 김동천 이태훈 강상희 이성주 이병관 강대권 최병문 장창연 박종무 강한철 김경식 박성우 황춘걸 고용선 이건석 박봉웅 김현석 심종수 이갑형 박경수 안재준 임균성 정재두 허영수 허명관 임준희 황우근 김병일 조재언 안광섭 김한준 김장기 이성훈 정광훈 이강민 김영우 이선우 이창범 이경곤 김병일 장현이 태근 안종옥 신황인 오대석 김지훈 이종민 김학근 오기봉 이강광 안효선 이호현 김동원 염기창 정태식 이무진 배경환 심재록 윤유현 조한경 김승현 강동성 김성호 곽호선 박형기 이철로 장영호 조성철 장승진 박창우 박병준 김용흥 장정진 서영호 김기동 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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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형사의 순직 그뒤/이지운 사회부 기자(오늘의 눈)

    “가슴이 칼에 찔렸으니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22일 상오 10시 강도범의 칼에 찔려 순직한 서울 동대문경찰서 남궁견 경감(60)과 김상재 경사(30) 영결식이 엄수된 서울청기동단 연병장.남궁경감의 미망인이 울먹이며 되뇌인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가슴보호대나 방탄조끼가 있었더라면 화는 면할수 있었을 거라는 아쉬움때문이었다.미망인은 마치 자신의 가슴이 칼에 찔린 것처럼 연신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라운 사실이지만 현재 일선 경찰서 형사계 직원들은 물론 강력반 형사들에게조차 방탄조끼가 지급되지 않는다. 심지어 강력범 검거를 위해 서울경찰청 산하에 별도로 설치된 형사기동대조차 이같은 장비가 없다. 범죄는 날로 흉포화되고 있다.단속에 나선 경찰이 청소년이 휘두른 칼에 찔리고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이 폭행을 당해 숨지는 세상이다.이지경이라면 어찌 국민의 재산과 생명이 제대로 보호받겠는가. 두 경찰관의 순직은 일선 경찰관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열악한 상황에서 일하고 있는가를 새삼 일깨우고 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다. 사실 당직과 철야 등을 번갈아 해야하는 형사계 반장이 지방 출장을 내려가는 일은 흔치 않다.대부분 강력반의 몫이다. 그럼에도 남궁경감이 출장을 자청했던 것은 “기소중지자 검거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이라는 것이 동료들의 전언이다.남궁경감은 사고 당일 전남 순천에 수배자가 2명씩이나 있다는 첩보를 접하고 검거하기 위해 직접 내려갔다. 연중 계속되는‘기소중지자 검거령’은 가뜩이나 인원과 장비가 부족한경찰관에게 큰 짐이 되고 있다. 지난 6개월간만 해도 6월∼7월,9월∼10월은 조직폭력배 검거기간이었다.그기간중 10월15일부터 한달간은 기소중지자 검거기간과 중복됐다. 실적이 저조하면 지휘자가 문책을 받고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각종 ‘검거령’때문에 형사계가 텅텅 비고 민생치안이 외면당하고 있다는 지적을 ‘윗분’들은 귀담아 들어야 한다. 두 경찰관의 순직을 계기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몸바쳐 지키고 있는 경찰관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 형사반장,수배범 검거중 피살/광주서/흉기에 찔려… 범인은 도주

    ◎경관 1명은 중태 19일 하오 9시30분쯤 광주시 서구 양동 만호장여관 복도에서 강도사건 용의자인 조기호씨(30세 가량)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서울 동대문경찰서 형사 3반장 남궁견 경위(60)가 숨지고 김상재 경장(31)이 중태에 빠졌다. 남궁경위 등은 이날 상오 강도혐의로 수배중인 조씨를 검거하기 위해 광주로 내려갔으며 조씨의 여자친구를 통해 이 여관으로 유인,복도에서 붙잡으려다 조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변을 당했다. 경찰은 수사대를 광주로 급파,범행 직후 달아난 조씨의 행방을 쫓고 있다.남궁경위의 시신은 광주 서부기독교병원 영안실에 안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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