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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러운 머리 잘라라”…中, 日 난징대학살 겨냥 포스터 공개

    “더러운 머리 잘라라”…中, 日 난징대학살 겨냥 포스터 공개

    중국군이 난징대학살 추모일을 맞아 일본을 비난하는 포스터 한 장을 공개했다. 중국인민해방군 동부전구는 13일 소셜미디어(SNS) 위챗 공식 계정에 ‘대도제’(大刀祭·큰 칼 제사)라는 제목의 포스터를 게시하며 1937년 일본군에 의해 난징에서 주민 30만명이 학살됐다는 점을 부각했다. 포스터에는 일본군 모자를 쓴 해골의 머리를 큰 칼로 베어내는 장면이 담겼다. 포스터 하단에는 1937년 12월 13일부터 이듬해 1월까지 30만명이 희생됐음을 새긴 난징대학살 기념관 광장의 추모비 이미지가 삽입됐다. 동부전구는 게시물에서 “88년이 지났지만, 영령들의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았고 군국주의 유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며 일본의 우경화를 겨냥했다. 이어 “항상 피로 제사 지낸 큰 칼을 높이 들고, 더럽고 추악한 머리를 단호히 잘라 군국주의의 재등장을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동부전구는 또 끝에 ‘대도제’라는 제목의 칠언절구 시에서 ‘동왜가 재앙을 일으킨 지 1000년이 됐다’고 표현했다. ‘동왜’는 동쪽에 있는 일본이라는 의미로, 일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 포스터에 대해 “난징대학살 희생자를 기리고 군국주의에 반대한다는 경고의 의미”라고 해석했다.
  • 뒷짐 진 중국, 공세 수위 높여…일본 총리는 “날뛰는 광대”

    뒷짐 진 중국, 공세 수위 높여…일본 총리는 “날뛰는 광대”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할 수 있다는 발언 이후 일본 측은 외교적 해결을 모색하고 있으나 중국은 공세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푸총 중국 유엔 대사는 18일(현지시간)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본회의에서 “최근 일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국회에서 대만과 관련된 명백한 도발적 발언을 하며 대만에서 일어나는 일이 일본에 ‘존재적 위기’가 될 수 있다고 거짓 주장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일본이 이른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 대만 해협 문제에 무력으로 개입할 수 있다고 암시했다”면서 “대만은 중국 영토의 양도할 수 없는 일부”라고 강조했다. 푸총 대사는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국제 정의에 대한 도발이며, 평화의 길을 따르겠다는 일본의 기본 의지에서 노골적으로 벗어난 것”이라며 “그런 국가는 이사회 상임이사국 자격을 주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국가안보부는 19일 다카이치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일본의 난징대학살 부인 등 과거 언행을 거론하며 역사와 현실을 무시했다고 밝혔다. 또 과거 일본 우익 정치인들이 ‘대만 독립’ 세력과 결탁해 대만을 전략적 지렛대로 삼아 국제 질서를 전복시키려 했으나 오늘날에는 ‘역사의 쓰레기’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보부는 “옛 군국주의 꿈을 되돌아보고 ‘대만을 이용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선을 넘는 도발에 가담하는 비열한 술책은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라며 “대만 문제를 이용해 중국 내정에 개입하고 정치적 자본을 얻으려는 ‘날뛰는 광대(跳樑小丑)’는 분명 모든 중국인에게 배척당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서해에서 이번 주 들어 두 차례나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하며 일본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중국 동부 장쑤성 롄윈강시 해상안전국은 18일부터 서해 남부에서 일주일간 실탄 사격 훈련을 실시한다고 공지했다. 이는 17~19일 서해에서 실시하는 또 다른 실사격 훈련과는 별도의 다른 훈련이다. 18일 디젤 엔진을 장착한 선박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중국의 세번째 항공모함 푸젠함이 남중국해와 태평양 등에서 실사격 훈련과 전자기식 사출기 시험 등을 끝내고 귀항했다. 중일 갈등이 계속될수록 중국은 일본과 영유권 분쟁 중인 동중국해의 댜오위다오(센카쿠 열도)에 대한 군사적 활동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는 중국 해안경비대 선박 4척이 댜오위다오 주변 해역에 지난 16일 진입한 사실과 관련해 일본 측이 항의한 사실을 두고 “부당하다”고 반박했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댜오위다오와 그 연계 섬들은 중국의 고유한 영토이며, 중국 해안경비대가 중국 영해에서 순찰하고 법을 집행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일본은 중국 해안경비선의 법 집행에 간섭하지 말고, 상황 악화를 초래할 수 있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 ‘친한파’ 日 축구 전설, 광복절 앞두고 ‘이것’ 언급했다 사과

    ‘친한파’ 日 축구 전설, 광복절 앞두고 ‘이것’ 언급했다 사과

    일본의 ‘축구 전설’로 불리는 혼다 케이스케(39)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80주년을 앞두고 일본군이 중국에서 저지른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이를 철회하고 사과했다. 우익 네티즌들이 “난징대학살은 실체가 없다”고 주장하는 댓글을 달았지만, 혼다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자신의 입장을 바로잡았다. 14일 중국청년보 등 중국 언론과 일본 제이캐스트 등에 따르면 혼다는 지난 8일 자신의 엑스(X)에 “나도 그렇게 믿는다”며 영상을 게시했다. 영상은 일본의 극우 정치인인 이시하라 신타로(1932-2022) 전 도쿄도지사와 가와무라 다카시 일본보수당 중의원의 2012년 기자회견 장면 중 일부였는데, 당시 이시하라 전 지사는 “난징대학살은 없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나”는 질문에 “일본군이 점령한 그 짧은 시기에, 당시의 무기 체계에서 40만명을 학살했다는 증거를 내놓아달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난징의 사람들을 죽인건 장제스의 군대”라며 “일본이 다시 점령한 뒤 시민들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가와무라 중의원도 “일본이 난징에서 40만명을 죽였다면 모든 일본인이 난징에 가서 무릎을 꿇어도 용서되지 않을 것”이라면서 “만약 아니라면, 이제는 ‘죄송하다’가 아니라 제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난징대학살 없었다” 주장 리트윗했다 뭇매난징대학살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중국 장쑤성 난징시에 진입해 중국군 패잔병을 수색한다며 약 6주 동안 중국군과 민간인들을 대량 학살한 사건이다. 학살당한 중국인들은 최소 수만 명에서 많게는 3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고문과 강간 등 잔혹한 전쟁범죄가 대거 벌어졌다. 난징대학살은 아직까지도 중국 내에서 반일감정이 해소되지 않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본 정부는 난징대학살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정하지 않지만, 극우 성향 정치인들은 “완전한 허구”, “난징대학살은 없었다”며 부인하는가 하면 일부 학계에서도 “30만명이 살해됐다는 건 과장”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축구 전설이 돌연 민감한 역사에 대한 발언을 하자 이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혼다의 게시물에는 “가자지구에서 제노사이드는 없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가 역사 수정주의에 찬성한다는 건 명성을 땅에 떨어뜨리는 일” 등 난징대학살을 부정하는 혼다를 비판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한편에서는 “난징 사람들을 학살한 건 중국국민당이다. 모르는 사람들은 공부해라”, “1937년 난징 인구는 20만명인데 어떻게 30만명을 죽였겠나” 등 극우 성향 네티즌들의 댓글도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유명인의 용기있는 발언에 경의를 보낸다. 이런 말을 하는 유명인이 늘어나면 (난징대학살의 진위에 대해) 논의조차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파장이 커지자 혼다는 이튿날 엑스에 재차 글을 올렸다. 혼다는 난징대학살을 목격한 외신 기자와 선교사 등이 남긴 기록을 열거하며 “이들 사료는 전쟁 후에 창작된 것이 아니라 난징대학살 직후부터 존재하며, 여러 국가 사람들의 입장에서 적힌 기록이 일치해 학술적으로 신뢰도가 높다”면서 “1차 자료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거의 역사와 같다고 생각했다”고 인정했다. 이어 “이시하라 전 지사를 좋아하기도 하고, 역사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실수였다”면서 “다시 공부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고 밝혔다. “역사적 자료 살펴봐…창작된 것 아냐”혼다는 2010년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2010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남아공 16강과 2011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카타르 우승, 2018 월드컵 러시아 16강 등을 이뤄낸 축구스타다. 2014년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 AC밀란에 입단해 총 4시즌을 뛰었으며, 현재는 은퇴한 뒤 감독 겸 구단주, 벤처 투자자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친한파’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선수 시절 일본 내 조선학교에 방문해 학생들을 격려하는가 하면 소셜미디어(SNS)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기도 했다.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는 해설진으로 참여한 박지성과 만나 한국의 16강 진출을 응원하기도 했다.
  • “나잇값 좀!” 조는 의원 욕하더니…국회 데뷔날 ‘쿨쿨’ 딱걸렸네 (영상) [이런 日이]

    “나잇값 좀!” 조는 의원 욕하더니…국회 데뷔날 ‘쿨쿨’ 딱걸렸네 (영상) [이런 日이]

    “투표가 오래 걸려서 졸았는데, 불만 있어?” 과거 국회에서 졸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향해 “일하는 중에 자면 안 된다”며 거세게 비난한 극우 소설가 출신 햐쿠타 나오키(69) 일본보수당 대표가 ‘국회 데뷔’ 날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달 비례대표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된 햐쿠타 대표는 반성은커녕 오히려 국회 투표 시스템이 문제라며 “불만 있냐”고 반박해 논란을 키웠다. 엑스(X)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열린 참의원 본회의 중 햐쿠타 대표가 자리에서 턱을 괴고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날은 지난달 20일 치러진 참의원(상원) 선거 이후 처음 소집된 임시국회로, 부의장 선출을 위한 투표가 진행 중이었다. 햐쿠타 대표가 졸고 있는 모습은 당시 본회의를 생중계하던 언론 카메라를 통해 그대로 담겼다. 그가 눈을 깜빡이며 조는 모습은 약 11초간 실시간으로 송출됐다. “이중잣대” vs “중요한 상황 아니라 괜찮다” “첫날부터 자고 있네. 그렇게나 졸고 있는 의원들을 비난해놓고, 정작 자기가 (당선)되니까 이 모양” (조회수 약 429만회) “개그냐. 그 험담을 하던 때부터 반드시 이렇게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대로 돼서 웃기네” (조회수 약 995만회) 이 모습은 X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누리꾼들 사이에서 지적이 이어졌다. 햐쿠타 대표의 행동이 더욱 논란이 된 건 그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유튜브 방송에서 현재 정치인들은 “따뜻한 환경에 안주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졸고 있는 의원들을 향해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절반쯤 자고 있다”, “일하는 중에 자도 되는 직업이 어디있냐”며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다만 햐쿠타 대표의 행동을 옹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중요한 법안 심의 중에 자는 거라면 비판받아도 할 말 없겠지만, (형식적인) 의장 선출 투·개표 중이라면 아무 문제 없지 않냐” “휴대전화도, PC도 사용 금지되고 2시간 집계하는 동안 졸지 않고 버틸 수 있냐”는 등 중요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투표 너무 오래 걸려서 졸았다” 반박 햐쿠타 대표는 일각의 비판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248명(참의원 의원 정수) 한 사람 한 사람 이름 불려서 투표(긴 통로를 걸어가야 함), 그게 끝나면 오랜 시간 걸리는 집계. 게다가 이걸 두 번이나 해야 한다”며 오히려 국회의 투표 방식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걸로 졸리지 않을 사람이 있으면 알려달라. 물론 끝나고 나서는 눈뜨고 이야기를 들었다. 불만 있냐!”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후에도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공무원이 창구에서 민원인 안 온다고 꾸벅꾸벅 졸아도 괜찮다는 논리랑 별 차이 없다. 적어도 당신의 수입은 세금으로 충당되고 있다. 납세자를 얕보지 말아달라” “이제 보수당 쪽 전원은 적어도 앞으로 다른 의원들이 졸더라도 절대 비판하지 말라”는 지적이 쏟아지는 등 햐쿠타 대표의 ‘변명’은 오히려 논란에 불을 붙인 모양새가 됐다. 한편 햐쿠타 대표는 한국 혐오·차별 발언을 해온 인물이다. 그는 2017년 한반도 위기 고조 상황과 관련해 “전투 상태가 되면 재일(교포)은 적국 사람이 되기 때문에 거리낄 것 없이 짓눌러 죽일 수 있다”고 말하는가 하면, 일본 군대가 1937년 난징에서 시민 등을 무차별 학살한 난징대학살도 날조라고 부정했다.
  • “센카쿠는 중국땅” 日 ‘방송사고’…월급 반납한 임원들

    “센카쿠는 중국땅” 日 ‘방송사고’…월급 반납한 임원들

    지난달 일본 공영방송 NHK 라디오를 통해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쿠(중국명 댜오위다오) 열도가 중국 땅이라고 말하는 내용이 방송된 것과 관련, 해당사 최고 경영진 4명이 월급 일부를 반납키로 했다. 담당 임원 1명은 사임했다. 이나바 노부오 NHK 회장은 10일 기자회견을 열고 “방송 탈취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태다. 지극히 심각한 사태로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린다”며 조사 결과와 함께 자체 징계 처분 조치를 발표했다. 국제방송 담당 이사는 사임하기로 했으며 이나바 회장 등 최고 임원진 4명도 한달 치 보수의 절반 등을 자진 반납하기로 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국제방송 담당 국장 등 5명에 대해 감봉 등 징계 처분을 내렸다. 앞서 위탁 계약 형태로 NHK 라디오 국제방송에서 일본어 원고를 중국어로 번역해 읽는 일을 하던 40대 중국인 남성 직원이 지난달 19일 도쿄 야스쿠니신사 낙서와 관련된 뉴스를 읽다가 약 20초 동안 원고에 없는 돌발 발언을 했다. 그는 중국어로 “댜오위다오와 부속 섬은 예부터 중국 영토다. NHK 역사수정주의와 전문적이지 않은 업무에 항의한다”고 말했고 영어로 “난징대학살을 잊지 말라. 위안부를 잊지 말라. 그녀들은 전시 성노예였다. 731부대를 잊지 말라”고 언급했다. NHK는 이 남성과 계약을 해지하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며 방송 사고 발생 경위와 대응 상황 등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여왔다.
  • “위안부 잊지 마” 발언했던 NHK 中직원 “군국주의” “죽어라” 즉흥 멘트

    “위안부 잊지 마” 발언했던 NHK 中직원 “군국주의” “죽어라” 즉흥 멘트

    일본 공영방송 NHK 라디오 중국어 뉴스에서 원고에 없던 내용을 자의적으로 발언한 중국인 직원이 “군국주의”, “죽어라” 등의 내용도 임의로 덧붙인 것으로 뒤늦게 파악됐다. 앞서 NHK에서 일본어 원고를 중국어로 번역해 읽는 일을 하던 40대 중국인 직원은 지난 19일 오후 도쿄 야스쿠니 신사 낙서와 관련된 뉴스를 전달한 뒤 약 20초 동안 원고에 없는 돌발 발언을 했다. 당일 야스쿠니 신사에서는 검정 매직펜으로 ‘화장실’을 뜻하는 중국어 비슷한 글자와 알파벳 등이 적힌 낙서가 발견됐다. 이 뉴스를 전한 뒤 이 직원은 중국어로 “댜오위다오와 부속 섬은 예부터 중국 영토다. NHK 역사 수정주의와 전문적이지 않은 업무에 항의한다”고 말했다. ‘댜오위다오’는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 중인 센카투 열도를 가리키는 중국어다. 그는 또 영어로 “난징대학살을 잊지 말라. 위안부를 잊지 말라. 그들은 전시 성노예였다. (생체실험을 한) 731부대를 잊지 말라”고도 말했다. 진상 조사에 들어간 NHK는 지난 22일 이러한 돌발 발언 내용을 공개했는데 25일 “22일 발표에서 번역의 일부가 누락돼 있었다”면서 돌발 발언의 내용을 추가했다. NHK에 따르면 “NHK의 역사 수정주의 ‘선전’과 전문적이지 않은 업무에 항의한다”는 발언에서 ‘선전’이라는 문구가 발표에서 누락됐다. 또 야스쿠니 신사에서 낙서가 발견됐다는 뉴스를 전할 때 원고에는 없었던 ‘군국주의’와 ‘죽어라’ 등의 낙서 내용을 임의로 덧붙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NHK가 위탁 계약을 맺은 단체 직원인 이 남성은 2002년부터 NHK에서 원고를 중국어로 번역해 읽는 업무를 해 왔다. NHK는 21일 해당 단체와 업무 계약을 해지했고, 지난 20일 중국어 뉴스를 사전에 녹음해 방송하는 것으로 바꿨다.
  • 日 NHK 진행자, 방송 중 “센카쿠는 중국땅” 돌발 발언…“성노예 위안부 잊지 말라” 언급도

    日 NHK 진행자, 방송 중 “센카쿠는 중국땅” 돌발 발언…“성노예 위안부 잊지 말라” 언급도

    일본 공영방송 NHK라디오 뉴스 진행자가 생방송 중 “센카쿠는 중국 땅”이라며 원고에 없는 돌발 발언을 했다가 계약 해지됐다. NHK라디오 중국어 뉴스 진행자인 40대 중국인 남성은 지난 19일 도쿄 야스쿠니신사 낙서와 관련된 뉴스를 전달한 뒤 약 20초 동안 원고에 없는 발언을 했다. 그는 중국어로 “댜오위다오와 부속 섬은 예부터 중국 영토다. NHK의 역사수정주의와 전문적이지 않은 업무에 항의한다”고 말했다. 중국명 댜오위다오, 일본명 센카쿠는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 분쟁 중인 지역이다. 이 남성은 또 영어로 “난징대학살을 잊지 말라. 위안부를 잊지 말라. 그녀들은 전시 성노예였다. 731부대를 잊지 말라”고 언급했다. 그는 NHK와 위탁계약을 맺은 단체 소속 직원으로, 일본어 원고를 중국어로 번역해 읽는 업무를 해 왔다. NHK는 20일부터 중국어 뉴스를 사전 녹음 방송으로 형식을 바꾸고, 21일 문제의 남성이 소속된 단체와 업무 계약을 해지했다. 이와 관련해 이나바 노부오 NHK 회장은 22일 집권 자민당 정보통신전략조사회에서 자초지종을 보고하고 사과했다. 이나바 회장은 조사회 종료 이후 취재진에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며 거듭 사죄의 뜻을 밝혔다.
  • 中 난징대학살 장소에서…기모노 입고 벚꽃놀이한 여성 논란 [여기는 중국]

    中 난징대학살 장소에서…기모노 입고 벚꽃놀이한 여성 논란 [여기는 중국]

    난징 대학살이 자행됐던 중국 난징의 한 사찰에 벚꽃이 만개하면서 다수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는데 이중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 차림의 여성이 나타나 기념 사진을 촬영해 논란이 되고있다. 지난 20일 난징시 외곽의 사찰 계명사(鸡鸣寺)에서 기모노 의상을 입고 나타나 벚꽃 아래에서 기념 촬영을 한 여성의 사진이 중국 소셜미디어 웨이보 등에 공유됐다. 기모노 차림의 여성이 등장한 계명사는 527년 건립된 난징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 중 한 곳으로 매년 이 시기 수만명의 관광객들이 만개한 벚꽃을 관람하기 위해 찾는 명소로 꼽힌다. 바로 이곳에 기모노를 입고 한 손에는 양산을 든 20대 중국 여성이 나타나 사진을 촬영한 것. 당시 현장에서 이를 목격한 다수의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손가락으로 이 여성을 가리키고 수군대며 힐난했으나, 여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을 이어갔던 것으로 전해졌다. 1937년 일본군이 난징에서 대규모 학살을 저지른 기억이 있다는 점에서 난징 주민들은 이 여성의 기모노 차림에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더욱이 난징대학살이 자행됐던 1937년 12월 계명사는 난징수성부대라는 일본군 침략을 막기 위한 중국 군인들을 위한 통신 연락부대로 활용됐던 장소였기에 기모노 차림의 여성 등장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 당시 승려들은 항일 전쟁을 위한 군관으로 다수가 차출됐는데, 그 탓에 난징이 일본군에 의해 완전히 함락된 후 계명사 일대에서 중국인에 대한 대량 학살이 자행됐었다고 현지 매체 관찰자망은 지적했다. 이 같은 기억을 가진 현지인들은 이 여성을 향해 “중국 여자라면 중국 전통 옷을 입고 사진을 찍어도 충분한데 어떻게 난징에서 기모노를 입을 수 있냐”면서 “중국인 맞냐”고 비판했다. 또 다른 주민 역시 “일본이 그렇게 좋으면 일본으로 가라. 중국인들도 너가 중국에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꼴보기 싫다”는 등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자 이 여성은 “상관말라”며 응수하기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건은 사진이 SNS에 공유되면서 논란은 더욱 일파만파 번지는 양상이다. 특히 현지 네티즌들은 난징에 기모노 차림의 중국 여성들이 등장해 논란을 일으킨 사례가 비단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에 더욱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분위기다. 한 네티즌은 “난징에 기모노 차림 여성이 나타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현지 관할 부처가 주의를 기울여 입장하는 관광객들의 옷차림을 단속해야 한다”면서 “비록 옷차림에 대한 자유는 분명히 있지만, 이에 대한 비판도 자유라는 것을 받아들여 대중의 엄중한 비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도 금지해야 하지만, 난징시 곳곳에서 목격되는 일본산 수입차를 타고 다니는 중국인들 역시 규제해야 한다”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본 차를 타고 난징을 배회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100년도 채 지나지 않은 대학살의 기억을 모두 잊었느냐”고 힐난했다. 
  • 尹 “수렁에 빠진 한일 방치 안 돼”… 5700자 담화로 논란 정면 돌파

    尹 “수렁에 빠진 한일 방치 안 돼”… 5700자 담화로 논란 정면 돌파

    윤석열 대통령의 21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약 5700자 분량(공백 제외)으로, 발언의 상당 부분을 한일 관계에 할애했다. 평소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국무위원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날 발언은 윤 대통령이 직접 담화를 통해 대국민 설득에 나선 것이나 다름없었다. 윤 대통령은 한일 관계 개선 필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그간의 소회를 함께 밝히며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부정적인 여론을 되돌리는 데 집중했다. “만약 우리가 현재와 과거를 서로 경쟁시킨다면 반드시 미래를 놓치게 된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로 모두발언을 시작한 윤 대통령은 전임 정부에서 악화된 한일 관계를 지적하며 “출구가 없는 미로 속에 갇힌 기분이었지만 손을 놓고 마냥 지켜볼 수는 없었다”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전임 정부를 향해 “수렁에 빠진 한일 관계를 그대로 방치했다”고 직격하며 “저마저 적대적 민족주의와 반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 정치에 활용하려 한다면 대통령으로서의 책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반일 정서를 이용했다는 것으로, 윤 대통령은 야권의 ‘친일 외교 공세’를 겨냥한 듯 “우리 사회에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1·2차 세계대전 후 화해한 독일·프랑스 등 역사적 사례를 들며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강조한 윤 대통령은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언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1998년 일본 의회 연설을 인용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이 정권에 관계없이 한일 관계 복원에 나섰던 점을 부각했다.윤 대통령은 이어 강제동원 배상 해법인 ‘제3자 변제’에 대해 “1965년 국교 정상화 당시의 합의와 2018년 대법원 판결을 동시에 충족하는 절충안”이라며 “피해자분들과 유족들의 아픔이 치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1972년 중일 국교 정상화 당시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요구를 포기한 사례도 소개하며 제3자 변제 해법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는 “중국인 30여만명이 희생된 1937년 난징대학살의 기억을 잊어서가 아닐 것”이라고 부연했다. 윤 대통령은 “이제는 일본을 당당하고 자신 있게 대해야 한다”며 일본과의 협력 및 선의의 경쟁을 강조했다. 그는 “이제 한일 양국 정부는 각자 자신을 돌아보면서 한일 관계의 정상화와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스스로 제거해 나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한국이 선제적으로 걸림돌을 제거해 나간다면 분명 일본도 호응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백색 국가 리스트) 원상회복 합의,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정상화 조치, 한일 경제안보대화 출범 등 지난 한일 정상회담 결과를 소개한 윤 대통령은 “특히 한일 양국 간 경제협력 강화는 양국 기업이 글로벌 수주시장에 공동 진출할 기회를 활짝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각 분야의 양국 장관급 후속 회의를 신속히 개최하겠다며 반도체·바이오 등 핵심 협력 분야 대화 신설, 양자·우주·바이오 공동 연구 지원 등의 협력을 속도감 있게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 [씨줄날줄]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시간/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시간/박록삼 논설위원

    1994년 일왕 아키히토는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당시 59세)에게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그해 ‘만엔 원년의 풋볼’이라는 장편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을 치하하기 위함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은 일본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는 “나는 전후(戰後) 민주주의자이므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1958년 만 23세 5개월 최연소 나이에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젊은 작가의 치기와 패기가 남아서가 아니었다. 그의 작품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실존적 사유, 그가 바라는 사회와 공동체의 상이 교직되며 하나의 완성된 세계가 구축된다. 단편 ‘사육’에서 윤리와 순수성을 말살하는 전쟁의 끔찍함을 높은 수준의 문학적 완성도로 담아냈고, 장편 ‘만엔 원년의 풋볼’은 일본의 패전 이후 학생운동에서도 전향한 이들을 내세워 역사적 사실과 개인의 치유를 공동체의 과제로 그려 냈다. 또 르포 ‘히로시마 노트’는 원폭 피해를 고발하고 피폭된 이들의 존엄성과 그들이 만들어 낸 공동체의 위대함을 기술했다. 개인적 삶의 여정을 담담히 적어 낸 에세이집 ‘회복하는 인간’은 오에 겐자부로를 더욱 친숙하게 만든다. 그는 우리에게도 각별하다. 1975년 시인 김지하, 1993년 소설가 황석영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일본의 천황제와 국가주의 등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해 온 작가로서 그는 2015년 반전 평화운동에 전념하겠다며 아예 절필을 선언했다. 그해 한국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계속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야스쿠니 문제, 독도 문제, 난징대학살 그리고 일본의 군사 재무장 등 군국주의 회귀에 대해 타협하지 않은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과도 같은 활동이었다. 지난 3일 세상을 떠난 오에 겐자부로(1935~2023)의 부고가 뒤늦게 알려졌다. 그는 떠났지만 울림 깊은 작품들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남겨진 이들에겐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시간이 시작됐다.
  • “왜곡된 日역사관서 겨우 벗어나”…일본군 학살 증거 기증한 미국인의 고백

    “왜곡된 日역사관서 겨우 벗어나”…일본군 학살 증거 기증한 미국인의 고백

    미국 미네소타주에서 난징대학살의 잔혹상을 그대로 담은 사진들을 무더기로 발견했던 전당포 주인이 시카고 중국 총영사관에 해당 유물을 무상 기증했다.  지난 9월,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작은 전당포를 운영하는 미국인 남성 에반 카일 은 일본군이 자행했던 난징대학살로 무더기로 살해됐던 희생자 사진 30여 장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며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당시 카일은 자신의 전당포가 소유한 물건들 중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중국의 수도를 점령했던 일본군의 잔혹성을 담은 난징대학살 희생자 사진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 무렵, 일각에서는 그의 사진의 진위 여부를 두고 찬반 논란이 뜨겁게 제기됐을 정도로 화제가 된 사건이었다. 특히 카일 역시 과거 학부생 시절 일본 역사를 전공한 인물로, 이 사진들을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이전까지의 그는 줄곧 일본 정부 입장에서만 일방적으로 해석, 왜곡된 역사관을 가져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당시 그는 진위여부 논란이 됐던 사진들을 무더기로 SNS에 공유하며 “매체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사건이었으며 모두가 함께 봐야 한다”고 난징대학살 당시 희생자 사진을 공개하게 된 경위를 밝혔을 정도다.  이후 소식이 잠잠했던 그는 최근 시카고 소재의 중국 총영사관을 찾아 사진 30여 장이 포함된 앨범을 무상 기증한 사실을 추가 공개했다. 그는 17일 자신이 운영하는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에 모습을 드러내 “이 사진들을 발견하고 기증하기까지 과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면서 “중국 역사 연구자들에게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기증 사실을 공개했다.  사진을 기증받은 중국 총영사관 측도 감사의 편지를 전한 사실을 공개하며 “일본군이 1930~1940년대 중국에서 저지른 전쟁범죄는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간이었다”고 했다.  이어 “역사는 오늘날의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에반 카일 씨의 기부는 전 세계 모든 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것이다”면서 “중국과 미국은 향후 문화적 유대와 우정을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한편, 난징대학살은 지난 1937년 일본군이 난징시가 저항없이 일본에 투항하자 단 6주 동안 무려 30만 명의 중국인을 살해하는 등 전례없는 대학살을 한 사건이다.
  • ‘친일 논란 못 참아’…731부대 연상 삽화 中교과서 수거 재배포

    ‘친일 논란 못 참아’…731부대 연상 삽화 中교과서 수거 재배포

    중국 출판사가 자사 중학교 일본어 교과서에 실린 삽화 속 숫자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생체실험을 자행한 731부대를 연상시킨다고 비판받은 것과 관련해 일부 숫자를 바꿔 다시 배포했다. 지난 9월 인민교육사가 펴낸 해당 교과서 삽화 중 하나에 각기 7, 3, 1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농구복을 입은 학생 3명이 나란히 서 있는 그림이 실렸다. 이와 관련 누리꾼들 사이에서 생체실험 부대 731부대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이 나왔다. 일본 관동군 소속 731부대는 만주 하얼빈 일대에 주둔하면서 중국인과 한국인, 러시아인 전쟁 포로를 대상으로 해부실험과 냉동실험 등을 자행한 세균전 부대다. 당시 삽화가 온라인에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왜 하필 일본어 교과서에 731이냐?”, “많은 다른 숫자 조합을 놔두고 731인 것은 출판사의 잘못이 분명하다. 우연의 일치라는 주장 말고 즉각적인 사죄문을 내놓아라” 등의 반응과 비판이 쏟아졌었다. 또 다른 누리꾼들은 “일제 침략을 정당화하려는 문화 침략의 일환이다. 일본군 만행을 미화할 수 있는 의도가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출판사는 즉각 사과문을 내고 당시 논란이 됐던 7, 3, 1 숫자 중 3자를 8로 수정해 재출간, 배포했다고 5일 밝혔다. 기존에 전국에 배포했던 교과서는 전수 조사를 걸쳐 수거, 삽화를 수정한 개정 교과서를 재배포한 것. 이처럼 중국에서는 2차대전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을 국내외에 알리고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하게 제기돼 왔다.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에서 일제의 잔학성을 상징하는 731부대를 외부에 알려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쏠렸을 정도다.  지난 2014년 양회에서는 정협 위원자격으로 참석했던 중국의 유명 연예인 궁한린이 “헤이룽장성 하얼빈에 남아 있는 일제 731부대 유적을 세계문화유산 명단에 올려 국내외에 그들의 만행을 생생히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양회 조별 토론에 참석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규정을 보면 인류 역사에 위해를 준 중요 사건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신청할 수 있다”면서 “731부대는 중국의 3개 지방에서 세균전을 벌여 20만 명을 살해한 반인류적 범행을 저질렀다. 이런 뼈아픈 역사의 교훈은 중국인뿐만 아니라 전 인류가 마음속 깊이 새겨야 한다”고 강조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뿐만 아니라 중국 양회에서는 731부대의 만행을 중국 역사 교과서에 상세하게 서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었다. 헤이룽장성 출신의 장밍 정협위원은 “현재 일본 우익세력이 창궐해 역사 교과서를 함부로 고치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가 하면 난징대학살과 군(軍) 위안부, 강제노역을 부인해 중국인과 아시아인의 마음에 심각한 상처를 주고 있다. 731부대의 행각을 중·고교 역사 교과서에 반드시 기술해 청소년들이 국치를 잊지 말고 유비무환의 자세를 갖추도록 교육하자”고 촉구했다.
  • 경제 협력서 패권 경쟁으로… 신냉전 시대, 암울한 그림자

    경제 협력서 패권 경쟁으로… 신냉전 시대, 암울한 그림자

    시진핑·기시다 ‘관계개선’ 축전미소냉전 한창 때 전략적 수교센카쿠·대만 갈등 첨예한 대립중국과 일본이 29일로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았다. 두 나라 정상은 축하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관계 개선’을 다짐했다. 그러나 양국 간 핵심 기조가 ‘경제 협력’에서 ‘패권 경쟁’으로 바뀌면서 두 나라의 미래에 암울한 그림자까지 숨기진 않았다. 이날 교도통신은 도쿄에서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이 마련한 국교 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얼굴) 일본 총리가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연히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도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가 베이징에서 연 기념 리셉션에 가지 않았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두 나라가 수교 50주년을 맞았지만 서로 간 깊은 분열을 감추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중국중앙(CC)TV는 시 주석과 기시다 총리가 서로 축전을 교환했다고 짤막하게 전했다. 시 주석은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시대의 조류와 대세에 순응하고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중일 관계를 구축하자”고 밝혔다. 다극화 추세로 변하는 세계의 흐름을 이해하고 중국의 굴기를 인정하는 새 외교 전략을 짜라는 속내다. 기시다 총리는 “양국은 지역 및 세계 평화와 번영에 큰 책임을 공유하고 있다. 각하(시 주석)와 함께 건설적이고 안정적인 일중 관계를 구축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등에서 중국이 서구세계와 맞서 갈등을 키우는 현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축’의 의미를 뺀 CCTV 보도는 지천명(知天命·50년)이 된 중일 관계가 30주년을 맞은 한중 관계보다 더 어려운 상황임을 보여 준다. 미소 냉전이 한창이던 1972년 9월 29일 저우언라이(1898∼1976) 당시 중국 총리와 다나카 가쿠에이(1918∼1993) 당시 일본 총리는 베이징에서 만나 공동성명에 서명하고 국교를 정상화했다. 이후 중국은 일본의 자본과 기술의 도움으로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일본도 난징대학살(1937∼1938) 등 중국 침략에 대한 ‘부채’를 상당 부분 털어냈고 ‘세계 1위 인구대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수교 50주년이 된 지금 두 나라는 미중 갈등으로 상징되는 ‘신냉전’ 입구에서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일본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과 대만 문제, 경제부흥 등 난제를 ‘미일동맹 강화’로 풀고자 한다. 반면 중국은 철저히 미국과 손잡고 압박 강도를 높여 가는 일본의 태도에 불만과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도이체벨레는 “역사가 남긴 문제에 더해 (미중 패권 경쟁으로 인한) 모순과 갈등이 겹쳐 두 나라가 축제 분위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미국 틱톡커 “난징 대학살 증거 사진 30장 발견” 진위 검증 필요

    미국 틱톡커 “난징 대학살 증거 사진 30장 발견” 진위 검증 필요

    미국 미네소타주의 전당포 주인 겸 틱톡 인플루언서가 1937년 중국 난징(南京) 대학살의 새로운 증거라며 사진 30장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는데 진위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당연히 중국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도 반색해 보도했다. 일본이 오랜 세월에 걸쳐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발뺌을 했던 만큼 중국 매체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당연한데 조금 더 차분하고 신중하게 검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해 12월 13일부터 6주 동안 중국 난징에 주둔하던 일본군 병사 5만명이 20만에 가까운 중국군 포로와 양민들을 학살했다. 일본 병사들이 중국 여성 1만명 가까이를 성폭행하고 강간한 뒤 시신을 불태워버렸다며 중국 측은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 벌어진 가장 끔찍한 살륙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와 잡지 롤링스톤 등이 지난 1일(현지시간) 전한 데 따르면 폰 맨(전당포 주인)이란 틱톡 계정을 쓰며 10만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에반 카일이 이렇게 주장했다. 개인 박물관 등이 구미를 당길 만한 희귀 아이템을 찾아내 이를 소개해 자랑하곤 했던 그는 이번에는 인터넷 등에서 검색할 때 보지 못했던 난징 대학살 사진을 찾아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가 사진을 찾아낸 것은 미 해군 병사 출신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앨범 속에서였다. 앞의 20쪽까지는 문제의 병사가 1938년 무렵 동남아시아의 대리 전쟁에 복무했던 연합군 소속으로 중국에 파견됐을 때 촬영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21쪽부터 전혀 다른 사진 30장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카일은 틱톡에 올린 동영상을 통해 “내가 앨범을 손에 넣어 열어보고 해당 페이지 이후를 넘기면서 비명을 질렀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동영상에는 이제 190만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고 4만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그는 “어쨌든 이 사긴들을 촬영한 사내는 난징대학살 현장에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진 30장을 찍었는데 역사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며 내가 종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어떤 것보다 더 나빴다”고 덧붙였다. 이 흑백 사진들에는 시신이 무더기로 쌓인 장면, 참수된 모습, 고문 현장 등이 담겨 있다. 너무 잔인해서 카일은 계정이 금지될 위험을 감수하고 이 사진들을 틱톡에 올릴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해서 몇 장의 사진만 트위터에 올려놓았다. 다만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동영상을 공유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카일은 “그가 어떻게 사진을 찍었고 가져왔으며 누구도 이 사진들을 갖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며 “단순한 팩트는 박물관은 이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군사법정과 유네스코에 따르면 난징 대학살 희생자 20만명에는 중국군 병사와 민간인들만 계산한 것이며, 1만명 안팎으로 추정되는 강간 희생자 수가 제외된 것이다. 당시 극히 소수의 외국인 민간인과 독일 나치 당원들이 난징의 안전한 구역에 머물러 있어서 학살 현장을 목격했고 중국인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나중에 이들이 국제사회에 만행을 고발했다. 기자 아이리스 장이 1997년 펴낸 책 ‘난징 강간, 2차 세계대전의 잊힌 홀로코스트’가 서구 사회에 일본의 전쟁 범죄를 고발했다. 하지만 일본군이 대학살을 끝낸 뒤 철저히 증거를 인멸해 객관적인 증거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 앨범의 사진들은 진본일까? 소셜미디어 역사 전문가에 따르면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한다. 트위터에 ‘가짜 역사 사냥꾼’ 계정을 운영하는 조 헤드윅 티뷔세(Jo Hedwig Teeuwisse)는 앨범 앞쪽 사진들은 수병이 촬영한 진본이며 전쟁 사진도 틀림없지만, 뒤쪽 끔찍한 사진들은 난징 대학살 사진들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대신 그 사진들은 여러 전쟁에서 촬영된 것들 가운데 오래 된 것들을 묶어 앨범 주인에게 기념품마냥 팔린 것들로 보이며 앨범 주인은 이를 메멘토(기억)를 되살리는 도구로 간직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티뷔세는 롤링스톤에 “만약 앨범 주인이 정말 찍어 독보적인 것이라면, 사진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면서 “난 사진 몇 장의 연원을 추적해 몇년 동안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이란 점을 확인했다. 심지어 사진회사 아카이브에도 있는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사진 중에는 1905년에 촬영된 것까지 있었다고 트위터에 적었다. 티뷔세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것들을 소셜미디어에 소개할 때는 더욱 주의깊게 살필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녀는 “정말 특별한 뭔가를 갖게 됐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많은 연구를 해봐야 한다. 세상에 알리기 전에 다른 전문가나 박물관에 체크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번 사진들은 공식 박물관이나 역사재단의 검증을 받지 않았는데 카일은 수집가로서 2년 동안 경험해온 것에 비춰 진본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진본임을 확인하는 과정에 있으며 난징에 있는 박물관과도 여러 차례 접촉했다고 주장했다. 이미 알려진 다른 시대의 사진들이 섞여 들었을 수 있다는 질문에 카일은 수병들이 기념품 사진을 자신의 앨범에 끼워넣는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설사 사진들이 진짜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잘 몰랐던 난징 대학살에 대해 알려준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미소니언 같은 박물관이 이 사진들을 받아줄지 연락을 취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그의 말이다. “난 가능한 많은 견해들이 나올 수 있는 장소에 사진들을 가져가려 할 것이다. 그만큼 중요한 역사이고 역사는 그자체로 반복되곤 한다. 난 과거로 돌아가려는 수많은 멍청한 짓거리들이 있었고 오늘도 진행되고 있음을 안다. 그리고 당신도 알다시피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 난징대학살이 거짓?..美전당포서 발견된 슬픈 역사사진 30장

    난징대학살이 거짓?..美전당포서 발견된 슬픈 역사사진 30장

    미국 미네소타주의 한 전당포에서 난징대학살 당시의 잔혹했던 상황을 담은 사진이 대거 발견돼 이목이 쏠렸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환구시보는 최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전당포 주인 에반 카일 씨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중국의 수도를 점령했던 일본군에 의해 무참히 희생된 희생자 사진 30여 장을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며 “매체에서 본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한 사건이며 모두가 함께 봐야 한다”고 발언했다고 2일 보도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일본군은 난징시가 저항없이 일본군에 투항하자 단 6주 동안 30만 명의 중국인을 살해하는 등 전례없는 대학살을 강행했다.  이 매체는 사건과 관련해 전당포 주인 에반 카일이 과거 학부생 시절 일본 역사 전공자로 수차례 일의 입장에서 해석된 난징대학살에 대해 연구한 경험이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 수집한 사진을 확인한 직후 자신의 SNS에 직접 등장해 “사진의 출처는 동남아 국가 출신인 익명의 상점 고객이며 총 30여 장의 흑백 사진이 담긴 앨범을 수령했다”면서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잔인한 사진이 다수 들어있었다. 이 사진은 모두가 공유해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공개한 사진 속에는 일본군에 의해 집단 살해돼 거리 곳곳에 버려진 희생자 시신과 팔, 다리가 무참하게 훼손된 사체들이 널려 있는 거리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또, 일부 사진에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시신을 물건처럼 옮기고 있는 군인들의 모습과 살해당한 희생자의 시신 일부를 절단해 전기줄 상단에 줄로 매달아 놓는 잔인한 상황도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사진에는 팔과 다리가 결박된 남성의 뒤에서 총을 쏘는 군인과 총격으로 현장에서 무참히 살해 당했지만 거리에 방치된 시신 등의 사진들도 확인됐다.  특히 이 흑백앨범에는 사진과 함께 당시 사건을 실제로 목격한 것처럼 사진의 상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게재돼 있어 눈길을 모았다.  한편, 사진을 손에 쥐고 영상 전반에 등장한 에반 카일 씨는 “일부에서는 난징대학살이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등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서 “그들은 주로 증거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허위 사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여기에 바로 그 증거들이 있다. 역사는 반복될 것이며 잔혹한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두에게 공개하고 교육하는 것”이라고 했다.
  • 日전범 위패 모셔온 30대 중국女...생방송으로 공개 심문 당해

    日전범 위패 모셔온 30대 중국女...생방송으로 공개 심문 당해

    일전쟁 당시 난징대학상의 주범인 일본군 전범들의 위패를 봉안해온 난징 사찰이 공개돼 논란이 된 지 사흘만에 위패 봉안자로 지목된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올해 32세의 중국인 여성 우야핑은 25일 오전 경찰에 붙잡혀 형사구류된 상태에서 공개 심문을 받았다. 우 씨에 대한 심문 과정은 이날 오전 중국 관영매체들을 통해 중국 전역에 생방송으로 송출됐다.  푸젠성 출신의 우 씨는 지난 2000년 난징으로 이주한 이후 2009년 베이징의 한 의학대학에 입학, 2013년부터 난징의 모 종합병원에서 약 6년간 간호사로 근무했다. 하지만 2019년 9월 돌연 병원에서 퇴직한 그는 인근 우타이산의 한 사찰로 거처를 옮겨 사찰 생활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가 난징의 쉬안짱(현장·玄奘)사에 난징대학살의 주범인 마쓰이 이와네 등 일본 전범 4명의 위패를 봉안하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난 2017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우 씨는 2013년 대학 졸업 후 난징으로 돌아온 직후, 난징대학살 당시 일본군 전범들의 만행을 알게 됐고 그로 인해 심한 정신적 충격과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017년 3월에는 심각한 불면증과 우울증 등을 호소하며 세 차례 정신과 진료를 받았고 진정제를 복용한 후에야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당시 건강 상태에 대해 우 씨는 “난징으로 돌아온 후 집 안에 앉아 있을 때면 줄곧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면서 “공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해탈하고 싶었다”고 진술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이후 그는 2017년 12월 18일 사찰 쉬안짱사를 찾아 일본군 A급 전범인 마쓰이 이와네 등 일본 전범 4명의 위패를 봉안했다. 사찰이 요구한 위패 봉안료는 매년 100위안(약 1만 9300원)이었으나, 우 씨는 2018~2022년까지 총 5년간 위패 봉안료로 총 3000위안(약 58만 원)을 지불했다.  하지만 이 같은 그의 행각은 지난 2월 한 여성 신도가 쉬안짱사를 찾았다가 일본군 전범 위패가 있는 것을 발견해 소셜미디어에 공개하면서 외부에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수사를 진행했던 관할 경찰서는 우 씨가 제3자에게 사주를 받거나 공모한 사실이 없다는 점에서 그의 개인적 소행이라고 추정했다.  다만, 그의 행위로 인해 민족 감정이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사회적 악영향이 심각했다는 점 등을 들어 형사 구류한 상태로 추가 심문을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난징시 종교사무관리부처는 종교사무조례에 따라 위패가 발견된 이후에도 사실을 줄곧 은폐해왔던 쉬안짱사 주요 책임자의 직무를 해임,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 돈만 주면 다 하는 中 사찰? 종교기능 잃은지 오래…부동산 업체 전락

    돈만 주면 다 하는 中 사찰? 종교기능 잃은지 오래…부동산 업체 전락

    중일전쟁 당시 30만명(중국 정부 추정)이 희생당한 난징대학살의 현장인 중국 난징의 한 사찰에 올해 초까지 대학살의 주범을 포함해 일본군 전범들을 기리는 위패가 봉안돼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중국이 발칵 뒤집힌 지 이틀째인 24일. 중국 당국과 언론이 중국 내 불교 사찰들을 정조준해 거액의 부당 이익을 도모했는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제기했다. 특히 위패 봉안료만 지불하면, 그 대상이 누군지 확인하지 않은 채 사찰 내 봉안을 허가하는 등 이익을 받아 챙긴 사찰들이 있는지 여부를 조사해 담당자를 색출해야 한다는 비판도 제기된 상태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관찰자망은 ‘중국 불교 사찰들은 일반적으로 사찰 입장료와 공양, 기부금, 기념품 판매 등으로 수익을 창출한다’면서 ‘언론을 통해 유명세를 얻은 일부 사찰의 경우 타오바오 온라인 상점을 개설해 기념품을 대대적으로 판매, 유통시키는 등 상업 행위를 가속화 하고 있다’고 24일 이 같이 지적했다.중국 불교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0년 12월 기준, 중국에는 총 3만 2600곳의 사찰이 운영 중이며, 그 가운데 20% 이상이 베이징, 상하이, 저장, 허난, 쓰촨 등에 분포돼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상당수 사찰들은 약 50위안 상당의 사찰 입장권을 판매하거나 기부금을 받아 운영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하이의 징안 사찰은 입장권 50위안 외에도 사원 증축 목적의 기부금과 석가모니 불상을 판매하는 등의 방식으로 수익을 얻어왔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특히 고가로 책정돼 판매된 금불상의 가격은 석가모니 형상의 동상 1개당 최고 10만 위안(약 1천 930만 원)을 호가하는 것도 상당했다는 것이 이 매체 주장이다. 또, 위패를 봉안하는 경우 1개의 위패 봉안료 명목으로 연간 3~5만 위안(약 581~970만 원)을 거둬 들여왔다. 더욱이 최근 위패 봉안이 온라인 전자 시스템으로 그 형식이 변하면서, 봉안 의뢰자는 사찰이 제공하는 애플리케이션에 사자의 성명을 적어 제출하고, 봉안료를 송금하는 간단한 과정만으로 위패 봉안이 가능해졌다.  때문에 사찰 측은 봉안료 징수만 확인하면 위패의 주인이 누구인지, 위패 봉안의 사연이 어떤 것인지 등을 상세하게 조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 됐다고 이 매체는 짐작했다. 또, 중국 관영 매체들은 중국 각 지역의 사찰들이 위패 봉안과 각종 사업체 운영으로 종교적 색채가 희미해졌다는 비판을 이어갔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이 매체는 중국의 대표 사찰로 불렸던 소림사를 꼽았다. 소림사는 해외 분점을 설립하고 타오바오 온라인 상점을 개설해 각종 기념품을 대대적으로 판매해 막대한 수입을 얻고 있다는게 매체들의 분석이다.지난 4월에는 소림사가 소유한 기업체인 허난철수디지털기술유한공사가 무려 4억 5천 200만 위안(약 877억 원) 상당의 상업용지 경매에 참여해 최저가로 입찰한 사실이 공개돼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때 현지 매체들은 소림사가 부동산 업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것이라는 내용의 추측성 기사를 쏟아낼 정도였다.  한편, 지난 22일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난징대학살의 일본군 전범 위패가 모셔졌던 사찰은 23일 오후 영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다. 봉안돼 있던 위패는 난징대학살의 주범인 마쓰이 이와네, 다니 히사오, 노다타케시, 다나카 군키치의 것이었다. 장쑤성 난징시 민족종교사무국은 “해당 사찰의 불법 이익 취득 여부와 관련해 특별조사팀을 꾸려 현장에 파견했으며, 관련 담당 공무원을 징계했다”면서 “이번 상황과 관련해 우리는 민족감정을 상하게 하는 행위를 끝까지 조사할 것이고, 관련 상황을 즉시 발표하겠다”고 강조했다.   
  • ‘반성없는 일본’…日 전범 위령 시설 중국, 미얀마 등 건립 추진돼

    ‘반성없는 일본’…日 전범 위령 시설 중국, 미얀마 등 건립 추진돼

    중일전쟁 당시 30만 명이 희생당한 난징대학살의 현장인 중국 난징에 일본군 A급 전범들을 기리는 위패가 봉안돼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하루 만에 이 같은 시도가 중국 윈난성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발견됐다. 중국 매체 왕이망은 윈난성의 한 사찰에 일본군 1288명의 위패를 봉안하려 했던 시도가 추가로 있었던 것이 최근 조사 결과 밝혀졌다고 23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군 참전용사단은 지난 1980년대 초 윈난성 룽링의 푸룽사(伏龙寺)를 찾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윈난성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일본군 전범 1288명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거액의 돈을 제안했으나 현지 관계 당국에 의해 거절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일본군 참전용사단은 해당 사찰에 위패 봉안료로 거액의 기부금을 제안하고 관할 지역 정부에게도 교육 기관 설립과 장학금 지원, 유해발굴, 기념시설 건립 등을 제안하며 회유했으나 불허가 통보를 받았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하지만 이후 일본 참전용사단은 현지 당국의 위패 봉안 불가 통보 이후 푸룽사 땅에 전쟁 당시 사망한 일본군 사자 명부 한 부를 몰래 묻어 놓은 것이 주민들에게 발각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주민들에게 발각된 ‘사자 명부’에는 쑹산 전투에서 전사한 일본군 1288명 장병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와 관련해, 이 매체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군 참전용사단과 전범 유가족 등을 주축으로 한 일본의 민간 단체들이 일본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해외 각국을 찾아다니며 위령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이들이 추진한 활동에는 전쟁 중 사망한 일본군의 사망 지역에 위령 시설을 건립, 전사자 명단을 봉안하는 것이 주요했다. 대표적인 사찰이 바로 지난 22일 공개돼 중국을 발칵 뒤집었던 난징의 지우화산공원 내 쉬안짱(현장·玄奘)사다. 이 사찰에는 지난 2018년부터 지난 2월까지 일본군 A급 전범인 마쓰이 이와네를 비롯한 다니 히사오, 노다타케시, 다나카 군키치의 위패가 봉안돼 있었다. 마쓰이 이와네 일본군 사령관은 난징대학상의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로, 1937년 12월~1938년 1월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해 중국인 포로와 일반 시민을 무차별 학살하고 성폭행, 약탈, 방화 등을 자행한 인물이다. 난징대학살로 중국은 당시 총 30만 명의 민간인이 희생당했다고 추정하고 있다.마쓰이 이와네는 이후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948년 일본 도쿄에서 교수형에 처해졌으나, 다니 히사오와 노다타케시, 다나카 군키치 등의 일본군 전범들은 난징 현장에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군 전범들의 위패를 봉안해 논란이 된 사찰 사례는 비단 중국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미얀마 양곤의 일본인 묘지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얀마에서 사망한 일본군 전범 100여 명의 위령비와 사자의 이름을 새긴 비석이 마련돼 있다. 지난 2013년 5월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미얀마를 방문했을 당시 이 묘역을 찾은 바 있다. 
  • 中 난징대학살 주범을…日 ‘A급 전범’ 기리는 위패 봉안한 中 사찰 폐쇄

    中 난징대학살 주범을…日 ‘A급 전범’ 기리는 위패 봉안한 中 사찰 폐쇄

    중일전쟁 당시 30만 명의 중국인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던 일본군 전범들의 위패를 봉안해 온 사찰이 논란이 있은 지 하루 만에 사찰 현판이 내려졌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관찰자망은 23일 관할 난징시 정부가 최근 일본군 위패 문제로 논란이 된 난징의 쉬안짱(현장사)사의 주지 스님과 책임자, 담당 공무원 전원을 면직하는 징계를 내렸다고 보도했다. 전날 한 누리꾼의 폭로로 난징대학살의 주범인 마쓰이 이와네 등 일본군 전범 4명의 위패가 사찰에 봉안돼 있던 사실이 공개된 지 단 하루만에 나온 발 빠른 조치다. 그는 1937년 12월 1일 난징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12일 오후 5시경 국민당 난징 수비 부대가 도시를 버리고 탈출한 직후 난징에 남겨진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량학살을 명령한 인물이다. 곧 일본군의 무자비한 대학살로 최대 35만 명이 희생된 난징대학살의 주범을 현지 사찰이 위패로 모신 셈이다. 이와 함께, 사찰에 돈을 내고 일본 전범 위패 봉안을 의뢰한 인물로 ‘우야핑’이라는 실명의 한 남성이 지목됐다. 관할 경찰 측은 우야핑이라는 남성이 지난 2018년 수백만 원의 봉안비를 지불해 위패 봉안을 의뢰했다는 점에 주목해 그를 추적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난징시 역시 해당 인물을 색출해 철저한 추가 진상 조사를 이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뿐만 아니라, 관할 정부와 현지 매체들은 이번 사태의 주요 책임자로 지목된 사찰 주지 촨전스님의 각종 부당 이득 혐의도 연이어 공개했다. 현지 매체는 ‘사찰 주지인 촨전스님은 과거 난징시 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위원 출신이라는 점을 악용해 고위 관료 출신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친분을 과시해왔다’면서 ‘하지만 그가 금전 문제로 여러 차례 송사에 휘말렸으며, 서화를 고가에 판매한 혐의로 관광객들로부터 고소를 당하는 등 구설수가 있는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보도에 따르면, 촨전스님은 난징의 또 다른 사찰의 주지로 이름을 올린 인물로, 여행사와 엔터테인먼트회사, 식품공장 등 총 4곳의 민간 업체를 직접 운영하며 일부 업체에는 고위 임원으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한편, 논란이 된 사찰 쉬안짱(현장사)사는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온 당나라 고승 현장법사의 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난징시와 장쑤성은 쉬안짱사를 제1청소년 애국주의 교육기지로 지정해 청소년 교육의 장으로 활용해왔다. 하지만 이번 사태 발생 단 하루 만에 관할 정부는 쉬안짱사의 ‘제1청소년 애국주의 교육기지’로의 기능을 폐쇄한 상태다. 
  • 中 난징대학살 사찰에…日 ‘A급 전범’ 기리는 위패 발견 논란

    中 난징대학살 사찰에…日 ‘A급 전범’ 기리는 위패 발견 논란

    일본군의 무자비한 대학살로 최대 35만 명이 희생된 중국 난징에 일본 전범을 기리는 사원이 몰래 운영되고 있던 사실이 발각됐다. 난징대학살은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중국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중국인을 대상으로 강간, 방화 등을 자행한 학살 사건이다. 중국 장쑤성 난징시 동북부의 쉬안우구 미족종교사무국은 공식 웨이보 채널을 통해 사찰인 쉬안장사에 봉안된 위패 중 일본 전범의 것 5개가 있었던 것을 확인했다고 22일 공개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미 일본 전범을 기리는 위패가 있다는 신고는 지난 2월 이미 한 차례 관할 경찰서에 신고된 바 있다.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에 의해 해당 사찰 측은 시정 조치를 받았지만, 이번에 또 한 번 전범 위패 논란을 불러 일으키면서 중국인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확인된 바에 따르면, 이 사찰은 난징 지우화산 공원 안 쉬안장사로 총 4명의 일본군 전범의 위패가 보기 좋게 봉안된 상태다. 4명의 일본 전범 중 한 명은 난징대학살의 주범인 A급 전범 마쓰이 이시네로 알려졌다. 마쓰이 이시네는 난징대학살 당시 일본군 육군 대장으로 1937~1938년 일본군을 이끌고 난징을 침략해 난징대학살의 주범으로 지목된 전범이다.그는 1937년 12월 1일 난징을 점령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12일 오후 5시경 국민당 난징 수비 부대가 도시를 버리고 탈출한 직후 난징에 남겨진 주민들을 대상으로 대량학살을 명령한 인물이다. 당시 잔혹했던 상항과 관련해 중국 매체 관찰자망은 ‘일본군의 칼에 무참히 학살당했던 난징 주민들의 시신을 쌓으니 작은 산을 이루었다. 난징에서 살인 경진대회가 열렸다’는 내용의 1938년 1월 25일 외신 기록을 보도했다. 또, 이 매체는 ‘난징대학살 명령이 내려진 지 불과 72시간 만에 무고한 난징 주민 3만 구의 시신이 도심 일대에서 발견됐으며, 셀 수도 없이 많은 여성들이 일본군에게 강간 당한 뒤 살해됐다’면서 ‘당시 일본군은 난징에서 총 28건의 대학살을 벌여 19만 명의 중국인을 학살했고, 산발적인 규모로 학살을 자행한 것만 858건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위패들의 주인은 2급 전범 야타니 히사오, 노다 다케시 가즈미, 다나카 군요시 등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안에 대해 쉬안우구 민족종교사무국은 사찰을 정비하고, 민족 감정에 위배되는 행위를 끝까지 추적해 조치할 것이라고 강력한 고발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한편, 난징대학살의 현장인 난징시의 한 사찰에 일본군 전범 위패가 모셔진 사실이 공개되자 현지 누리꾼들은 크게 분노하는 분위기다. 한 누리꾼은 "대체 누가 그들의 위패를 절에 모시는 것을 허락했으며, 얼마 동안 위패가 있었는지, 또 이 사찰을 최종 관리 감독하는 기관과 담당자는 누군이지 반드시 찾아내서 그 책임을 엄중하게 물어야 한다”며 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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