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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치현 전 대통령실 행정관, 보훈부 장관 정책보좌관 임명

    최치현 전 대통령실 행정관, 보훈부 장관 정책보좌관 임명

    최치현 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정관이 이재명 정부 국가보훈부 장관정책보좌관(고공단 2급)으로 2일 임명됐다. 최 정책보좌관은 이재명 정부 첫 국가보훈부 장관인 권오을 장관을 보좌하며, ‘예우는 더 높게, 지원은 더 두텁게’라는 이재명 정부의 보훈 기조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 업무를 총괄하게 된다. 그는 국가보훈처 장관정책보좌관 재직 당시 보훈의료시스템을 체계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등 보훈 정책 전반에 대한 이해와 실행 경험을 쌓았다. 또, 대통령직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와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출범을 실무 총괄했고, 옛 전남도청 복원 문제 해결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정무기획, 사회조정, 사회통합비서관실에서 근무하며 주요 국정과제 조율에 참여했고, 광산구 열린민원실장을 역임하며 지역 현안 해결에도 적극 나섰다. 제21대 대선에서는 이재명 대통령후보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 선임팀장으로 활동하며, 당시 위원장이었던 권오을 현 장관과 함께 안동을 중심으로 대구·경북 전역에서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했다. 최 정책보좌관은 “이재명 정부의 보훈 기조에 맞게,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이 자부심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훈 정책을 강화하고, 보훈이 국민 통합의 든든한 토대가 되도록 힘껏 일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 기왓장마다, 담벼락마다… 경성 건축왕의 애국, 모던 보이들의 예술혼 깃들다

    기왓장마다, 담벼락마다… 경성 건축왕의 애국, 모던 보이들의 예술혼 깃들다

    서울시민 상당수가 피서를 떠났을 무렵 서울 종로구 북촌을 찾았다. 오버투어리즘 논란이 일 정도로 관광객이 몰리는 곳. 하지만 절정의 휴가철이던 그날은 서울시내 교통부터 인파까지 기이할 정도로 한산했다. 그 덕에 모던 걸과 보이들이 질주하던 북촌을 외국인 관광객이라도 된 양 느긋하게 어슬렁댈 수 있었다. 역시 서울 구경은 피서철이 제격이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동네를 일컫는 표현이다. 북으로 북악산이 둘러싸고 있고 남으로는 광화문과 돈화문을 잇는 도로가 경계다. 가회동, 계동, 삼청동, 원서동, 재동, 팔판동, 화동, 안국동 등이 모두 북촌에 속했다. 북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지난해 세상을 뜬 ‘뒷것’ 김민기의 뒤안길을 밟으면서다. 전북 익산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던 김민기는 5학년 무렵 서울로 전학을 온다. 10남매를 둔 어머니의 교육열이 남달라 막내인 김민기까지 모두 서울로 올려 보내 공부를 시켰기 때문이다. 당시 김민기가 이사한 곳이 가회동이다. 북악산 앞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정세권, 개량 한옥 단지 지어 분양일본인 땅따먹기 막는 방파제로가회동 일대를 돌며 발견한 이야기는 김민기의 시대에만 머물지 않았다. ‘북촌의 방파제’ 정세권, ‘한국의 1세대 건축가’ 김수근, 한국의 모던 포크를 함께 일군 양희은, ‘하얀 나비’ 김정호, ‘1990년대 문화 대통령’ 서태지 등 위아래로 무수히 많은 갈래를 치며 뻗어 나갔다. 숱한 인물이 시차를 두고 북촌 일대를 오가며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거다. 그 시간의 층위를 모두 전할 수는 없다. 북촌이 형성되기 시작한 193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는 구간만 살펴도 책 수십권은 족히 쓰고도 남는다. 이번 여정에선 근현대의 인물만 소환하기로 한다. 좀더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 관심이 깊었던 인물들이다. 우선 ‘북촌의 설계자’ 정세권(1888~1965,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엔 1966년 사망으로 기록)부터. 경남 고성의 능참봉에서 일약 ‘경성의 건축왕’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과거 일제강점기의 부동산 개발업자 정도로 여겨지다 지금은 민족자본가의 위상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북촌’이란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의 지명이 생긴 것도 정세권의 한옥 단지 개발에서 비롯됐을 개연성이 높다. 서울시가 운영하는 한옥마을 누리집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시의 한옥 분양 광고에서 볼 수 있듯, 북촌의 한옥은 당시의 새로운 도시주택 유형으로 정착되어….” 쉽게 말해 북촌의 개량 한옥이 ‘당대의 아파트’였다는 얘기다. ‘조선집’이라 불리던 이 개량 한옥을 만든 이가 정세권이다. 시계추를 잠깐 당시로 돌리자. 종로를 기준으로 남쪽에는 일본인들이, 북쪽엔 조선인들이 주로 살았다고 한다. 어슴푸레하던 경계는 경성에 일본인 거주자가 늘면서 위협받기 시작한다. 개항장이던 전남 목포 등의 도시에서 보듯, 경성의 노른자위 땅을 야금야금 차지하던 일본인들이 급기야 나라님이 머물던 공간 언저리까지 집어삼킬 기세였다. 이때 정세권이 나서 북촌 일대의 주거 환경을 획기적으로 바꾼다. 가회동, 계동 등의 대형 한옥을 인수해 대지를 잘게 쪼갠 뒤 작은 한옥을 지어 분양한 것이다. 정세권의 한옥 단지는 일본인의 확장을 막는 방파제 구실을 했다. 주택자금이 부족한 조선인을 위해 대출을 해 준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러니까 요즘처럼 돈을 먼저 받고 집을 짓는 게 아니라 먼저 집을 지어 분양한 뒤 이주 비용을 천천히 갚도록 한 것이다. 당시 매일신보(서울신문의 전신) 1936년 5월 20일 자 ‘나는 엇디게 성공하얏나’(나는 어떻게 성공했나)라는 인터뷰 기사에 이와 관련한 내용이 언급된다. 요즘의 건설사라면 그리할 수 있었을까. 북촌, 익선동뿐만 아니다. 왕십리, 신당동 등 서울의 한옥 지대는 거개가 정세권이 개발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다만 고택을 잘게 쪼개 작은 한옥을 짓다 보니 담장이 사라지고 벽이 그대로 골목에 노출되는 경우가 생겼다. 인적이 드물던 예전에야 별문제 아니었겠으나 나라 안팎의 관광객으로 차고 넘치는 요즘엔 소음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재동초등학교에서 북촌 답사에 나선다. 김민기와 양희은이 1년 터울로 이 학교에 다녔다. 둘은 이 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생 때 다시 만난다. 그때까지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던 듯하다. 이후 이들이 한국 포크의 역사를 새로 쓰는 영웅으로 성장한 건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다. 가수 김민기·양희은 꿈 키운 재동초건너편엔 상류층 저택 백인제 가옥왜색 오해에도 민족지사 손때 가득재동초등학교 건너 백인제 가옥은 윤보선 가옥과 함께 당대를 대표하는 북촌의 양반 가옥이다. 윤보선 가옥이 현재 비공개인 걸 감안하면 사실상 북촌에서 옛 상류층의 가옥 형태를 온전히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건축물이다. 1913년에 처음 이 집을 지은 이는 ‘금융계의 이완용’이라 불리는 한상룡이다. 그가 이 집에서 지낸 시기는 15년 정도다. 금전 문제로 이 집을 넘기고 북촌의 다른 고대광실로 이사(이 과정에 야료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한다. 친일파의 손을 탄 탓에 백인제 가옥을 다소 떨떠름한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영화 ‘암살’(2015)에서 친일파의 저택으로 등장하며 이런 인식이 짙어지기도 했다. 행랑채에 깔린 장마루만 보고도 왜색이라 표현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본채의 마루는 우리 전통의 우물마루다. 일본 양식이 일부 가미됐다고 해서 전체를 왜색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 싶다. 게다가 한상룡 이후 백인제 선생 등 민족지도자들이 몇 배 더 오래 이 집에 거주했다. 백인제 가옥과 이웃한 건물은 등록문화유산인 정독도서관이다. 정독도서관의 전신은 경기중·고등학교다. 우리나라 관립 중등교육기관의 효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대에도 관학의 최고봉이었다. 김민기의 어머니가 가회동을 선택한 것도 아마 이런 교육, 주거 환경이 주된 요인이었지 싶다. 정독도서관, 당대 건축 기술 총동원겸재인왕제색도 탄생한 자리기도인근엔 서민들 돈 모아 학교 설립도 당대의 건축 기술이 총동원된 건물이 무척 인상적이다. 도서관 뜨락엔 ‘겸재인왕제색도비’가 세워져 있다. 겸재 정선이 이 자리에서 본 인왕산을 토대로 걸작 ‘인왕제색도’를 남겼다고 한다. 당시 북촌은 중등교육의 중심지였다. 이른바 ‘5대 공립’(경기·서울·경복·용산·경동고) 가운데 경기고, ‘5대 사립’(중앙·휘문·배재·양정·보성고) 가운데 중앙고와 휘문고가 북촌에 있었다. 이 중 중앙고는 여전히 남아 한 세기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전설적인 한류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로 쓰이면서 한국을 넘어 일본과 동남아의 팬까지 찾아올 정도로 명소가 됐다. 학생들의 수업 환경을 위해 평소에는 출입이 금지되고 주말에만 들여다볼 수 있다. 요절한 ‘하얀 나비’의 가수 김정호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낸 곳도 이 일대다. 김민기가 미술에 미쳐 있었다면 김정호는 밴드부에 미쳐 고교 시절을 보냈다. 김정호는 김민기보다 한 살 어리지만, 상경은 2년 먼저 했다. 광주 금남로 인근에 살다 올라온 김정호가 자리잡은 곳은 익선동이다. 이곳 역시 정세권이 북촌과 비슷한 방식으로 개발했다. 익선동에서 교동초등학교를 나온 김정호는 북촌 계동에 있는 대동중, 대동상고(현 대동세무고등학교)에서 혈기 방장한 시기를 보낸다. 이 학교도 설립 과정이 독특하다. 일제강점기 인력거꾼 3000여명이 경성차부(車夫)협회를 조직한 뒤 세운 학교다. 서민들이 자식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교육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최준식 교수의 책 ‘동(東) 북촌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이들은 교사 신축에도 적극 나섰다. 건축자재를 이고 지고 좁은 골목길과 급한 언덕길을 쉴 새 없이 오갔다. 건물 앞에 있는 산을 파 운동장을 만들고 그 흙으로는 담장을 세웠다. 언덕길투성이인 계동에서 대동세무고가 좀처럼 보기 힘든 너른 운동장을 가진 이유다. 훗날 이 학교를 나온 김정호가 국악과 결합한 가요로 당대를 풍미했고, 대동중 20년 후배인 서태지 역시 록과 국악을 결합한 ‘하여가’(1993)란 곡으로 한국 대중음악사에 굵직한 획을 긋는다. 창덕궁 앞 빨래터에 흐르는 비화들김지하·박인환·최승희 발자취 따라김수근의 ‘공간 사옥’서 차 한잔을 북촌 끝자락, 창덕궁과 경계를 이룬 곳에 ‘한국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 가옥이 있다. 그가 직접 지었다는 집은 종로구립미술관이 됐다. 현재 전시작 교체로 출입 통제 중이고, 오는 9월 4일 이후 다시 찾을 수 있다. 온라인에 정보가 넘쳐나는 고희동 가옥보다 더 관심이 쏠리는 건 골목 끝자락의 ‘원서동 빨래터’다. 이른바 북촌 8경 가운데 3경인데 느낌이 아주 독특한 공간이다. 빨래터 위는 궁궐이고 아래는 범부들이 사는 동네다. 창덕궁에서 흘러온 물이 선원전 담벼락 밑으로 흐르며 궁궐과 민가가 연결됐다. 여기서 궁인들과 평민들이 함께 빨래하며 이야기를 나눴다고 한다. 글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내용이었을까. 아니면 중전과 후궁들이 싸운 얘기였을까. 빨래터에서 돈화문 방면으로 쪼르륵 내려오면 ‘마고 싸롱’과 만난다. 김지하 시인이 이름을 지어 줬다는 카페다. 마고 싸롱 뒤에 시인 박인환의 집터가 있다. 그가 8년가량 머물며 ‘목마와 숙녀’ 등의 시를 빚어낸 장소다. 물론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강원 인제 출신의 박인환은 대단한 모던 보이였던 듯하다. 곱상한 외모에 술과 담배를 즐기며 명동을 주름잡았다고 한다. 그는 한 번도 마주한 적이 없는 시인 이상을 유난히 좋아했다. ‘죽은 아폴론’이라 부르며 추앙하던 이상의 기일만 되면 폭음을 했다. 그가 허무하게 떠나던 1956년의 그날도 그랬다. 이상의 죽음을 슬퍼하며 사흘 밤낮을 폭음하다 자신도 술독을 못 이겨 세상을 뜨고 만다. 그의 나이 겨우 서른(생일을 맞지 못했으니 요즘 식으로는 스물아홉)이었다.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 두 명을 거푸 끌어내린 헌법재판소 맞은편엔 우리 현대무용의 개척자로 꼽히는 최승희의 옛집이 있다. ‘동양의 이사도라 덩컨’이라 불리며 일제강점기 당시 세계 무용계에 돌풍을 일으킨 무용가다. 지금은 한식당이 된 이 집엔 흑요석처럼 깊고 검은 눈을 가졌다는 최승희와 ‘모란이 필 때까지’의 시인 영랑 김윤식의 사랑 이야기가 한 자락 깔려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비껴간 뒤 최승희는 사회주의에 심취한 남편과 함께 월북한다. 김일성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얼마 뒤 김일성의 말 한마디에 숙청되고 만다. 근대문화유산(등록문화재)인 ‘공간 사옥’(현 아라리오갤러리)은 북촌 여정을 마무리하기 맞춤한 곳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꼽히는 김수근이 짓고 사무실로 쓴 장소다. 나라 안팎의 건축 학도들이 즐겨 찾을 만큼 중요한 건축물이다. 건물 지하의 소극장은 역사적인 장소다. 여기서 최승희의 몸종이었던 공옥진이 곱사춤을 초연했고, 김덕수 사물놀이패가 첫 공연을 열었다. 금싸라기 같은 건물에 돈 안 되는 소극장을 만들고 가난한 예인들에게 내준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가난한 시절에 ‘공간’이란 문화잡지도 펴냈다. 부자나라가 된 지금 우리에게 없는 ‘잡지’를 그는 돈에 연연하지 않고 만들었다. ‘공간 사옥’은 현재 갤러리, 카페 등으로 쓰이는데 옛 건물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스승(김수근)과 제자(장세양)의 이야기가 묻힌 곳에서 차 한잔 홀짝대며 다리쉼하기 좋다.
  • 신민호 전남도의원, “전라도천년사 근대편 폐기해야”

    신민호 전남도의원, “전라도천년사 근대편 폐기해야”

    독립운동사가 누락된 ‘전라도천년사’ 근대편을 폐기해야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신민호(더불어민주당, 순천6) 전남도의원은 최근 열린 문화융성국 업무보고에서 ‘전라도천년사’ 중 근대편 4권에 대해 “전면 폐기하고 새롭게 서술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했다. 신 의원은 앞서 지난해 11월에도 전라도천년사의 근대편에 미주, 일본, 중국 등지에서 활약한 전남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이 누락됐다고 지적하며 폐기를 주장한 바 있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신 의원은 전남도가 별도로 구성한 검증팀의 결과를 공개하며 “책 전반에 걸쳐 사실관계 오류와 오타가 다수 발견됐을 뿐만 아니라 전남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빛나는 활약상이 대부분 빠져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국가보훈처 공훈록에 등재된 전남 출신 인물만 분석하더라도 국내는 물론 미주, 일본, 심지어 하얼빈 등지에서 활약한 전남 출신의 독립운동 사실을 서술에서 빠뜨림으로써 전라도천년사가 전남 지역 정체성을 담는 데 실패했다”고 꼬집었다. 전남도는 신 의원의 문제 제기로 별도 검증팀을 구성,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전시기의 내용을 재검토한 결과 적지 않은 오류들이 확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남도 관계자는 “검증자료를 토대로 오류를 바로잡고, 논란이 새롭게 제기된 근대 4권은 전남의 정체성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새롭게 서술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전라도천년사’는 전라도 정명(定名) 1000년을 기념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광주·전남·전북 3개 시도가 8억원씩 총 24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편찬된 방대한 역사서다. 하지만 일본서기 자료 인용 문제 등이 논란을 빚으며 배포가 중단된 상태다. 전남도 방침과 달리 전북도와 광주광역시가 고대편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선배포’를 추진해 논란이 된 바 있다.
  • “한국은 문학의 나라… 세계인들 K팝·드라마에 열광하는 원천” [서동철의 노변정담]

    “한국은 문학의 나라… 세계인들 K팝·드라마에 열광하는 원천” [서동철의 노변정담]

    빨갱이 자식에서 유공자 아들로부친은 항일·농민운동 하다 옥살이초교 4년 때 첫 대면… 6·25로 이별2020년엔 국가유공자증·훈장 받아신춘문예 10관왕 되기까지‘당선’되지 않은 것은 뭔가 모자란 탓상상 못 할 고통의 시간 보내며 창작‘기성의 벽’ 넘어 나만의 새로움 제시200만개 단어 가진 우리말주말이면 시를 싣는 신문 적지 않아이런 문학 대접은 한국 말고는 없어‘좋은 시’는 썼는데 ‘위대한 시’는 과제이근배 시인은 ‘신춘문예 10관왕’으로 통한다. 그가 문학청년이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신춘문예는 바늘구멍을 지나기보다 어렵다. 그런 시인에게 ‘우리 사회에서 문학에 대한 존중이 옛날보다는 좀 덜해진 것 아니냐’고 했더니 펄쩍 뛴다. 해마다 1월 1일이면 중앙일간지마다 1면에 신춘문예 당선자의 이름과 사진이 나가고 작품도 실리는 것을 예사로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문사마다 신춘문예에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을 들이는 것은 물론 주말이면 시를 싣는 신문도 적지 않다고 했다. 이렇게 문학을 대접하는 나라가 한국 말고 어디 있느냐고 되물었다. 이른바 문화 선진국에도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문학의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말은 200만개의 단어를 갖고 있는데 10만개에 불과한 언어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뛰어난 언어로 우리만의 체험을, 나만의 시어(詩語)로 쓰는 것이 시인의 책무라고 했다. 이 시인은 한국 사회에서 문학의 역할, 특히 시의 역할에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우리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 않습니까. 드라마라는 게 뭐냐 하면 시예요. 드라마의 스토리가 그렇고, 드라마의 대사가 모두 우리말로 지은 시입니다. 방탄소년단(BTS)도 난리가 났는데 우리말로 시를 써서 노래를 부른 것 아닙니까. 그러니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류의 원천은 우리 문학입니다. 그 꼭대기에 시가 자리잡고 있어요. 사람들이 이런 이치를 잘 몰라요. 세상에 알려야 합니다. 조선 사회에서도 근본적으로 시를 잘 써야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야 영의정도 하고 좌의정도 할 수 있었어요. 우리는 시의 나라입니다. 한국 문화가 최근 크게 각광받는 이유도 우리 언어와 문학에 있다고 봅니다.” 그는 신춘문예 등단을 넘어 일가(一家)를 제대로 이룬 문인이다. 월간 ‘한국문학’을 필두로 다양한 문예지에 주간으로 참여했고 서울예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시 창작을 강의하기도 했다. 힌국시인협회상을 비롯해 다양한 문학상을 수상한 경력에 예술원 회장을 지냈으니 문화예술계의 최고 영예를 누렸다고 해도 조금도 지나치지 않다. 그럼에도 “그동안 ‘좋은 시’는 많이 썼다고 생각하지만 ‘위대한 시’는 쓰지 못했다”고 했다.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모든 시인이 고뇌해야 하는 과제라는 것이다. 이 시인이 최근 펴낸 ‘이근배 육성 회고록’을 펼치면 ‘신춘문예 당선하는 비법 있어요’라는 제목이 큼지막하게 눈에 들어온다. 그가 동화출판사 주간 시절 신경림 시인이 5년 동안 편집장을 했는데 신춘문예 당선자가 나오면 “또 이근배구먼”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의 당선작들은 신춘문예 응모자들에게는 일종의 ‘모범답안’처럼 비쳤다. 그러니 대학에서 시 창작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신춘문예에 당선하는 비결을 알려 주겠다”고 하면 귀가 쫑긋해서 집중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비결’이라며 “신춘문예는 투고한 자만이 당선한다”고 하면 학생들은 일제히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이다. “스포츠도 그렇잖아요. 금메달 딸 줄 알았는데 못 따면 뭔가 모자란 게 있는 것 아닙니까. 내가 공부를 모자라게 했기 때문에 당선되지 않은 것이거든요. 요즘에는 잘 쓰지 않는 표현이지만 예전에는 어떤 작가나 작품을 가리켜 ‘기성(旣成)의 벽을 넘었다’는 평이 큰 덕담이었어요. 이미 만들어져 있는 틀을 벗어나서 자기만의 어떤 것, 지금 있는 것하고는 다른 것을 찾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니까 남의 아류 같은 것보다는 미래성, 자기 자신에 대한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저에게 신춘문예 당선의 비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런 생각으로 열심히 썼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낸 것이 사실입니다.” 시인은 1994년 서울신문에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서사시 ‘동학의 함성을 찾아서’를 연재했다. 당시 문화부 기자였던 필자는 전북 고창의 동학농민운동 현장을 둘러보는 시인의 연작시조기행에 한 차례 동행한 적이 있다. 오래전이지만 그가 역사 현장을 찾은 감회를 봇물 터뜨리듯 즉석에서 운문으로 형상화하는 모습에 크게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구상 시인의 뒤를 이어 공초숭모회를 이끌고 있는 그는 오상순 시인을 기리는 공초문학상을 서울신문과 공동으로 제정해 시상하고 있기도 하다. 시인은 “신춘문예 첫 당선을 서울신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남다르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1960년 12월 31일 밤 명동 향지원 다방에 공초 선생을 모시고 있었어요. 섣달그믐엔 통행금지가 해제됐으니 거리는 발 디딜 틈이 없었지요. 한 친구가 헐레벌떡 들어오더니 “너 신춘문예 당선했잖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당선 사실을 미리 알려 주지 않았으니 1월 1일 자 신문을 보고 확인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서울신문에 ‘벽’이 당선하지 않았어?” 하고 거듭 다그치는 것입니다. 내가 서울신문에 응모한 사실은 물론 제목도 이 친구가 알 까닭이 없으니 믿을 수밖에요. 막 뛰어서 태평로 서울신문사 뒤편에 가니 배달 차량이 시동을 걸고 있었어요. 가판신문을 10원인가 주고 딱 한 장을 샀는데 쫙 펴니까 ‘응모작은 총 1000여편, 당선작은 시조부의 벽’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보이는 겁니다. 이병기 선생과 이태극 선생의 심사평도 함께 실려 있었습니다.” 시인은 신문을 들고 다시 뛰어서 명동 다방으로 갔다. 공초 선생에게 보고했더니 기뻐하면서 손을 굳게 잡아 줬다. 명동 자리가 파하자 삼촌이 사는 남산의 한의원으로 가서 난로에 불을 지피고 의자에서 잤다. 날이 밝자 신춘문예에 응모한 신문사를 돌아다니며 게시판을 확인했다. 경향신문은 시조 ‘묘비명’이 당선됐고, 조선일보는 시조 ‘압록강’이 가작으로 뽑혔다. 이해 신춘문예는 모두 이사천이라는 필명으로 응모했는데 사천(沙泉)은 공초 선생이 지어준 아호다. 1962년엔 동아일보에 시조 ‘보신각종’이 당선됐고 조선일보에는 동시 ‘달맞이꽃’과 시조 ‘바위’가 가작과 가작 2석에 각각 올랐다. “1963년엔 문화공보부 신인예술상에서 시 ‘달빛 속의 풍금’과 시조 ‘산하일기’가 각각 수석상으로 뽑혔어요. 1964년에는 자유시 ‘꽃과 왕령’과 ‘북위선’이 각각 동아일보와 한국일보에서 당선됐지요. 이해 5월에는 동인지에 발표하려고 써둔 시 ‘노래여 노래여’가 있었는데 전에 신촌에서 같이 하숙했던 친구 하나가 영천 하숙집으로 찾아와 문공부 신인예술상 얘기를 꺼내는 겁니다. 같은 방을 쓰던 중학생 이름으로 작품을 건네주었는데 문학부 특선작에 뽑혔어요. 특상은 늘 소설이 탔는데 그해는 시가 된 겁니다. ‘노래여 노래여’는 나를 유명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이후 문단과 언론에서 신춘문예 일곱 차례와 신인예술상 세 차례를 합쳐 모두 열 차례 등단했다고 ‘10관왕’이라고들 했지요” 시인은 자신을 ‘한글둥이’라고 말한다.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에 들어간 것이 광복 이듬해인 1946년이다. ‘5000년 역사에 한글로 정규교육을 받은 1기생’이라는 것이다. 국어 교과서도 없었으니 선생님이 백묵으로 ㄱ, ㄴ, ㄷ, ㄹ을 써서 가르쳤다. “집안에 어떤 문학적 배경이라도 있느냐”고 물으니 ‘자화상’이라는 시를 보라고 했다. ‘너는 장학사의 외손자요 이학자의 손자라 / 머리맡에 얘기책을 쌓아놓고 읽으시던 할머니 안동 김씨는 / 애비, 에미 품에서 떼어다 키우는 똥오줌 못 가리는 손자의 귀에 / 알아듣지 못하는 말씀을 못박아주었다 /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라 찾는 일을 하겠다고 / 감옥을 드나들더니 광복이 되어서도 집에는 못 들어오시는 아버지와 / 스승 면암의 뒤를 이어 조선 유림을 이끌던 장후재 학사의 셋째 딸로 시집와서 / 지아비 옥바라지에 한숨 마를 날 없는 어머니는 / 내가 열 살이 되었을 때 겨우 할아버지 댁에 들어왔다 / 그제야 처음 얼굴을 보게 된 아버지는 삼팔선이 터져 바삐 떠난 이후 오늘토록 소식이 끊겨있다…저 놈은 즈이 애비를 꼭 닮았어 / 할아버지가 자주 하시던 그 꾸지람…’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처음 봤다. 아산에서 적색농민조합을 만들어 농민운동을 하다 옥살이를 하고 농민진흥회에서 민족운동을 이끌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다. 항일운동을 했지만 좌익이라고 광복이 되자 국방경비대에서 죽은 목숨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반동분자로 지목됐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피신시키고 다시 아산으로 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만삭의 어머니는 면암 최익현 선생의 문하생인 친정아버지의 회갑연 준비로 부엌에서 일하다 산통을 느껴 외할아버지 소실댁에 가서 외아들인 나를 출산하셨어요. 외할아버지는 황룡이 달려드는 용꿈을 꾸고 소실의 태몽인 줄 알았는데 외손자 꿈이었던 거지요. 할아버지는 감옥을 드나드는 아버지 구명운동에 몸과 마음, 재산을 다 바치셨어요. 손자도 그런 길을 갈까 봐 아버지를 닮았다고 꾸지람을 하셨지요. 어머니는 중학교엔 못 보낸다고 했지만 아래채를 팔아 기어이 입학시킨 것도 할아버지였지요.” 시인은 ‘가장 기쁜 날’이 2020년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이라고 했다. 국가보훈처에서 아버지의 국가유공자증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날이다. 조선총독부 재판 기록과 당시 신문기사로 아버지의 항일운동 공적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빨갱이 자식’에서 ‘국가유공자 아들’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에게선 용돈 10원도 받은 적이 없는데 국가에서 매달 연금이 나오고 병원비나 약값 모두 공짜이니 엄청난 일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가 그토록 아프게 여기시던 큰아들의 독립운동이 가문을 빛나게 하고 있으니 지금은 어디를 가더라도 아버지 자랑을 한다”며 웃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하시라’고 했더니 “역사를 돌아보는 것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것”이라고 자신의 문학론을 다시 펼쳤다. 그러니 시나 소설로 역사를 다룰 때도 미래가 담겨 있지 않고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문학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는 “남이 하지 않은 일, 자기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남보다 반 발짝이라도 앞서나가야 한다”면서 “앞으로도 그런 문학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이근배 시인은 194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났다. 1958년 서라벌예술대학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해 김동리·서정주 교수의 지도로 소설과 시를 공부했다. 1961년부터 1964년까지 서울신문과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일간지 신춘문예에 시·시조·동시가 당선됐다.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노래여 노래여’, ‘추사를 훔치다’와 기념시집 ‘대백두에 바친다’, ‘종소리는 끝없이 새벽을 깨운다’, 시조집 ‘동해바닷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달은 해를 물고’, 장편서사시집 ‘한강’, 기행문집 ‘시가 있는 국토기행’ 등이 있다. 한국문학작가상, 가람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만해대상 문학부문 등을 수상하고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서울예대, 추계예대, 재능대, 신성대에서 강의했다. 월간 ‘한국문학’ 발행인, 계간 ‘민족과 문학’과 ‘문학의 문학’ 주간, 간행물윤리위원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2019 세계한글작가대회 조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글·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 이새날 서울시의원, 참전유공자 예우 강화 및 보훈교육 내실화 위한 조례 개정

    이새날 서울시의원, 참전유공자 예우 강화 및 보훈교육 내실화 위한 조례 개정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이새날 의원(국민의힘, 강남1)이 대표발의한 ‘서울시교육청 학교민주시민교육 진흥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이 지난 7일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날 통과된 조례 개정안은 제5조(학교민주시민교육의 내용)에 ‘국가를 위한 희생·공헌 등 보훈의 가치 및 독립·호국·민주의 역사에 관한 교육’을 명시적으로 추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통해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민주시민교육에서 학생들이 보훈의 역사와 가치를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교육환경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이 의원은 같은 날 열린 본회의 5분 자유발언에서 “올해는 6·25전쟁 발발 75주년이자 광복 8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지만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는 노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라며 “그분들의 숭고한 헌신이 단순한 역사 속 이야기로 사라지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참전유공자의 평균 연령이 90세를 넘어선 현실을 언급하며 서울시 차원의 실질적인 예우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보훈처 중심의 지원을 넘어 서울시에서도 의료비 지원 확대, 복지시설 이용 우선권 부여, 생활 지원금 인상 등 현실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서울시교육청과 협력해 학생들이 참전용사와 직접 만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6·25전쟁 기념관과 관련 전시회를 활성화하는 등 보훈교육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참전유공자의 희생을 기억하고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 추진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이 의원은 “‘6·25전쟁, 내가 나라를 지켰다’와 같은 도서 발간 사업을 지속 지원하고 참전용사들의 생생한 기록을 보존할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끝으로 이 의원은 참전용사의 희생이 단순한 교과서 속 한 줄로만 남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한 분들께 합당한 예우를 다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며 그것이 바로 우리가 미래세대에 남겨야 할 가치”라고 밝혔다. 덧붙여 “이번 조례 개정이 서울시교육청의 보훈교육 강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지속적인 관심과 실효성 있는 정책 집행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 최재형 “친구야 미안하지만 尹 탄핵 불가피”…박민식 “崔 불가피론 반대”(종합)

    최재형 “친구야 미안하지만 尹 탄핵 불가피”…박민식 “崔 불가피론 반대”(종합)

    감사원장 출신으로 지난 대선 경선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경쟁했던 최재형 전 국민의힘 의원은 25일 “결코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윤 대통령의) 탄핵은 불가피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최 전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탄핵에 찬성했던 의원들도 보수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갔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문자에 답신한 내용을 전하면서 “구국의 결단이라고 하더라도 군 병력을 국회의사당에 진입시키고, 국회의 활동을 금지하는 포고령을 발령한 것만으로도 중대하고 명백한 헌법과 법률 위반”이라고 밝혔다. 이어 “(윤 대통령의 계엄이) 탄핵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우리 정치는 1960년대로 퇴행하게 될 지도 모른다”며 “정치력을 발휘해 나라를 이끄는 어려운 길보다 군 병력을 이용한 비상조치라는 손쉬운 수단을 사용하려는 유혹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게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최 전 의원은 강성 지지자들에 대한 우려도 덧붙였다. 그는 “비상계엄이 계몽령이고 부정선거 때문이라는 주장은 다수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보수 세력까지 분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라고 했다. 이에 ‘친윤’(친윤석열) 박민식 전 국가보훈부 장관은 페이스북에 ‘최재형 의원의 탄핵 불가피론에 반대함’이라는 제목의 글로 최 전 의원의 의견에 반박했다. 박 전 장관은 “최 전 의원의 주장 요지는 국회에 군을 투입한 것이 ‘중대한’ 헌법 위반이라 탄핵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상계엄 선포 행위를 비판하는 것과 민주적 정당성을 보유한 대통령 직위를 박탈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전 장관은 “국회 다수파가 손쉽게 탄핵을 남발해도 견제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직무정지 또는 박탈시킬 수 있다면 이건 내각제이지, 대통령제가 아니다”라면서 “국민 눈높이에서 보면 결국 내란이라고 볼수 있느냐가 핵심 관건이다. 도대체 현직 대통령이 내란수괴가 될수 있나”라고도 했다. 판사 출신인 최 전 의원은 감사원장을 중도 사퇴하고 지난 대선 경선에 참여했다. ‘미담 제조기’ 등 별명과 강직한 이미지로 주목받았으나 2차 컷오프에서 탈락했다. 박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에서 국가보훈처가 62년 만에 국가보훈부로 승격되면서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22대 총선에서 서울 강서을에 출마했지만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패했다.
  • ‘광복절 발언 논란’ 뉴욕총영사 사의, 영부인과 인연 부인

    ‘광복절 발언 논란’ 뉴욕총영사 사의, 영부인과 인연 부인

    ‘광복절 발언’ 논란으로 야당의 사퇴 압박을 받아온 김의환 주뉴욕 총영사가 지난달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김의환 주뉴욕 총영사는 13일(현지시간) 기자들에 배포한 ‘근거 없는 민주당 비난에 대한 총영사 입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민주당의 근거 없는 정치공세로 총영사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며 “결국 총영사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그는 이미 지난달 26일 외교부에 물러나겠다는 사의를 표명했고, 사표가 수리되면 공개하려 했었다며 “그러나 최근 민주당에서 총영사 비난을 위해 영부인까지 공격하는 것을 보고 현시점에서 총영사의 입장을 밝힌다”고 했다. 그는 그러면서 최근 야권이 제기한 자신과 김건희 여사와 관련성을 부인했다. 그는 자신이 국가보훈처나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근무해 국제업무 분야가 낯설지 않다면서 자신이 이끌던 공부 모임에서 김 여사가 팀장이었다는 주장은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했다. 그는 “영부인의 뛰어난 글로벌 전시기획 능력과 겸손한 자세에 반해 이후 그의 팬이 된 것도 사실”이라며 “영부인이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해서 훨씬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총영사는 지난 8월 15일 뉴욕에서 열린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광복회 뉴욕지회 회장이 건국절 제정 운동을 비판한 이종찬 광복회장의 광복절 기념사를 대독하자 “말 같지도 않은 기념사를 들으면서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나 생각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기념사에서 “오늘은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을 깊이 새기며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을 가져다준 미국에 감사를 표하는 날”이라며 “대한민국 내부의 종북 좌파 세력들을 분쇄해야 한다”고 했다. 해당 발언이 알려진 직후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야당에서는 외교부에 김 총영사의 직위해제를 건의하는 등 압박이 이어졌다. 최근에는 한정애 민주당 의원이 김 총영사의 뉴욕 부임 배경이 김건희 여사와의 인맥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역사 왜곡 논란 ‘전라도천년사’ 폐기되나?

    역사 왜곡 논란 ‘전라도천년사’ 폐기되나?

    역사 왜곡과 식민사관 의혹으로 간행이 중단됐던 ‘전라도천년사’를 폐기해야한다는 주장이 해를 넘기고 있다. 전라도천년사 편찬은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지역 역사를 바로 잡고자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광주· 전남·전북 등 호남권 3개 지자체가 각 8억원씩 총 24억원을 투입해 추진한 사업이다. 역사·문화·예술 각 분야 전문가 213명의 집필진이 참여했다. 34권 1만 3559쪽에 달하는 전례없는 대규모 공동 편찬 역사서로의 의미가 컸다. 하지만 식민사관 논란에 이어 표절 문제까지 불거지며 지난해 예정됐던 전라도 천년사 발간이 무기한 연장됐다. ‘일본서기’ 속 지명·인명 사용과 고조선 역사 축소·낙후 표현 등으로 논란이 일자 호남 3개 광역지자체는 ‘전라도천년사’의 배포 여부를 2년 가까이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광주, 전남 시민단체들과 도의회에서는 줄곧 전라도천년사 34권 전부를 폐기해야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전북연구원은 표절 검사 프로그램인 카피킬러를 활용해 도출된 결과 66%의 유사도율이 확인된 사례가 확인됐고, 집필진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있어 투명한 행정 처리 원칙을 훼손시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전남도의회 문화융성국 행정사무감사에서도 이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신민호(순천6) 전남도의원은 “고대사 서술 부분에 마한의 정체성이 드러나 있지 않고, 독립운동을 다룬 근대편 서술에서 미주·일본 등지에서 활약한 전남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상이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국가보훈처 공훈록 분석을 통해 새롭게 확인했다”고 꼬집었다. 이어 “공훈록에 수록돼 서훈된 전남 출신 의열단원이 10명이나 되는데도 미서훈된 의열단 1명을 포함해 2명만 설명이 됐다”며 “전남 출신 의열단 활동이 축소 서술되는 등 전남 출신 독립운동가의 활동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신 의원은 “작년에 논쟁이 됐던 고대편에 이어 전남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독립운동 분야 서술의 문제점을 추가로 언급함으로써 전라도천년사 간행 논란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섰다”며 “있는 자료도 활용하지 못할 정도로 역사서로서의 한계는 물론 ‘의향 전남’의 정체성도 담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마땅히 폐기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관련 박우육 전남도 문화융성국장은 “검증을 다시 하겠다”며 “편찬위원회와 상의하겠다”는 원론적 입장만 밝혔다.
  • 순천만국가정원 주차장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 설치

    순천만국가정원 주차장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 설치

    순천시가 순천만국가정원 동문 및 서문 주차장에 각 1면씩 총 2면을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으로 설치했다. 국가보훈처의 전국 지자체 공영주차장 등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 설치 협조 요청에 따른 조치다. 시는 국가를 위해 헌신한 이들의 희생에 감사하고 그 가치를 존중하기 위해 앞으로도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 설치를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유승현 순천시의원은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국가유공자들이 국가와 지자체로부터 합당한 예우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며 “순천시의회는 시와 긴밀히 협력해 공공기관은 물론 대형 할인마트와 호텔 등 민간 다중이용시설로 확대 설치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방수진 순천시 정원운영과장은 “일상에서 국가유공자를 존중하고 예우하는 보훈 문화 확산에 기여하고자 했다”며 “순천만국가정원을 방문하는 국가유공자의 교통편의를 증진하고 복지를 향상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순천시의회는 지난 6월 강형구 의원이 대표발의한 ‘순천시 주차장 설치 및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개정했다. 주차대수 규모가 50대 이상인 순천시청 및 소속기관의 청사와 순천시가 설치·관리하는 공공시설의 경우 최소 1개 이상을 국가유공자 우선주차구역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을 추가했다.
  • 장애인 일상 불편 없게... 영등포구가 시원하게 쏜다

    장애인 일상 불편 없게... 영등포구가 시원하게 쏜다

    서울 영등포구가 다양한 복지용품 지원 사업을 통해 모든 구민이 차별 없이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8일 밝혔다. 영등포구는 ‘실내용 경사로’를 무료로 지원해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보장한다. 이 경사로는 휠체어가 문턱에 걸리는 불편을 해소해 장애인들이 실내에서 안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돕는다. 영등포구는 지역 내 동 주민센터 및 장애복지 기관 등에 총 90개의 실내용 경사로를 보급했다. 영등포구는 또 ‘시·청각 장애인 맞춤형 전용 TV’ 보급을 확대해 정보 격차를 해소한다. 이 TV는 자막 안내, 수화 통역, 화면 해설 등 다양한 편의 기능을 제공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시청자 미디어재단이 공동 추진하는 이 사업의 대상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중 보건복지부에 등록된 시청각 장애인 또는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눈·귀 상이등급자 등이다. 영등포구는 이 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보다 많은 대상자를 발굴했다. 뿐만 아니라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구민을 위해 ‘수동 휠체어 무료 대여 서비스’도 운영한다. 장애인, 고령자뿐만 아니라, 사고 등 일시적으로 휠체어가 필요한 구민들이 경제적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무료로 제공한다. 지역 내 18개 동 주민센터, 영등포구 보건소, 장애복지 기관 등에서 대여 가능하며 최대 2개월까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영등포구는 최근 ‘스마트 음성인식 스위치’ 지원 사업을 통해 장애인들이 안전하고 편리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지원했다. 장애인 보조 기기 교부, 전동보장구 수리비 및 안전보험 가입 등 약자를 위한 다양한 지원 사업 역시 이어가고 있다. 최호권 영등포구청장은 “이번 사업이 장애인의 이동권과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앞으로도 모든 구민이 불편함 없이 일상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발굴해 무장애도시 실현에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 “사라진 3·15의거 복원하라” 새 역사 교과서 비판 거세져

    “사라진 3·15의거 복원하라” 새 역사 교과서 비판 거세져

    내년 중고등학교에서 쓰일 새 검정 한국사 교과서 전시본(견본)에서 ‘3.15의거’라는 단어가 사라지거나 관련 역사가 축소 기술돼 반발이 일고 있다. 3·15의거학생동지회는 7일 경남 창원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검정을 통과한 중고등학교 교과서 16종 모두에서 3·15의거가 사라졌다는 보도를 접하고 분노와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3·15의거에 함께 참여했던 우리가 이렇게 뻔히 살아있음에도,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서 3·15의거를 빼앗아버리는 이러한 행태는 의도적이 아니라면 발생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3·15의거는 1960년 3월 15일부터 4월 13일까지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에 항거해 발생한 민주화운동”이라며 “내년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마산에서 정부기념식이 치러지는 국가기념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검정 교과서에서 사라진 3·15의거 완전 복원 ▲3·15의거가 일제히 사라진 이유 설명 ▲3·15를 사라지게 한 책임자 처벌 등을 촉구했다. 앞서 교육부는 8월 30일 중학교 7종, 고등학교 9종 등 새 한국사 교과서 전시본 16종을 공개했다. 각 학교는 이 중 1종을 채택, 내년 1학년 교과 과정에 사용해야 한다. 이를 두고 3·15의거기념사업회와 3·15의거유족회, 3·15의거부상자회, 3·15의거공로자회 등 관련 단체들은 새 교과서를 분석한 결과 ‘3·15의거’ 단어가 삭제된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4일 성명을 내고 “새 교과서는 한결같이 1960년 ‘3·15의거’라는 단어 자체를 삭제하고 3·15부정선거와 4·19혁명만 기술하고 있다”며 “현대사 최초 유혈 민주화운동 3·15의거가 있던 날은 2010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는데도 3·15가 교과서에서 지워졌다”고 비판했다. 또 “우리 현대사 최초의 유혈 민주화운동인 3·15의거는 2010년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는데도 역사 교과서에서 지워져 후대에 역사를 제대로 전달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새 교과서를 ‘퇴행적 교과서’라고 평가한 이들은 교육부와 출판사 각성을 촉구했다.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축소·왜곡된 교과서가 채택되지 못하도록 불매 운동을 벌이겠다고 경고했다.
  • 구리시, 다자녀·국가유공자 공영주차장 주차료 면제

    구리시, 다자녀·국가유공자 공영주차장 주차료 면제

    경기 구리시는 오는 27일부터 국가유공자와 다자녀가정의 공영 노외주차장 주차요금을 1회당 48시간까지 면제한다고 25일 밝혔다. 면제 대상 다자녀가정 차량은 구리시 저출산 대책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른 다자녀가정 차량으로, 경기아이플러스카드 등 다자녀 증명자료를 출차할 때 제시해야 한다. 또 국가유공자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상 국가보훈처장이 발행한 국가유공자 증서를 소지하면 탑승 차량의 주차요금을 면제받을 수 있다. 차량 장기 방치를 예방하기 위해 노외주차장 면제시간은 1회당 48시간으로 제한된다. 도로 노면에 설치된 공영 노상주차장도 국가유공자는 3시간, 다자녀가정 차량은 2시간까지 주차요금 면제 혜택이 제공되며, 이후부터는 요금을 50% 감면받을 수 있다. 시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국가유공자에게 합당한 예우를 제공하고, 다자녀가정의 양육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주차요금 감면과 면제를 추진하게 됐다”고 밝혔다.
  • 김용호 서울시의원, ‘제74주기 호국영웅 연제근 상사와 12인의 특공대원 추모식’ 참석

    김용호 서울시의원, ‘제74주기 호국영웅 연제근 상사와 12인의 특공대원 추모식’ 참석

    서울시의회 도시안전건설위원회에서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용호 서울시의원(국민의힘·용산1)은 지난 20일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개최된 ‘제74주기 호국영웅 연제근 상사와 12인의 특공대원 추모식’에 참석, 추모 및 유족들을 격려했다. 이날 추모식은 6·25전쟁 영웅 연제근 상사와 12인 특공대원의 호국영령을 추모하고 살신성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사)호국영웅연제근 기념사업회(이사장 연제은, 회장 김남권)가 주관하고, 국가보훈처, 국립현충원, 증평군청, 곡산연씨종친회, 육군본부, 육군부사관학교, 제3보병사단, 제37보병사단이 후원해 개최됐다. 충북 증평군 도안면 노암리에서 출생한 연제근 상사는 1948년 7월 국방경비대 제7보병사단에 자원입대해 1949년 3사단 22연대 1대대 분대장으로 근무하던 중 1950년 9월 17일 12인의 특공대를 결성하여 포항 탈환을 위한 형상강 도하작전에 참가, 총탄을 맞고도 수류탄을 들고 적진에 뛰어들어 적군의 기관총 기지를 완전히 파괴하고 12인의 특공대원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전쟁영웅으로 이는 국군이 포항 탈환은 물론 압록강까지 북진하는 발판이 됐다. 김 의원 “누구나 말로써는 나라 사랑을 말할 수 있으나 목숨을 바쳐 조국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6·25전쟁 영웅 연제근 상사와 12인 특공대원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호국정신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김 의원은 “(사)호국영웅연제근 기념사업회와 연제근 상사의 유족대표인 연제은 이사장께 심심한 위로와 감사를 드린다”라며 “저 역시 대한민국 해군장교 출신으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연제은 상사와 12인 특공대원들의 호국정신을 받들고 계승하는 일에 적극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추모식에는 박지희 제3보병사단장, 이재영 증평군수, 주상용 백골전우회 회장, 윤항중 대한민국 호국총연합회장, 김석진 남산시민대학장, 박장규 전 용산구청장, 김용해 충효예실천운동본부 서울연합회장, 김무현 효학·한문학 박사, 용산 하나로회 윤평진 사무총장 외 회원들, 김남권 호국영웅연제근 기념사업회장 외 회원, 유족 등 250여명의 추모객이 참석했다.
  • [속보] 尹 “안보는 나라의 근간…병사 월급 205만원 인상, 간부 장려금 인상할 것”

    [속보] 尹 “안보는 나라의 근간…병사 월급 205만원 인상, 간부 장려금 인상할 것”

    윤석열 대통령은 29일 “튼튼한 안보의 토대 위에 자유통일 대한민국의 길을 열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정브리핑을 통해 “안보는 나라의 근간이며,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영웅들을 예우하기 위해 올바른 보훈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며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했고, 국가유공자 보상금을 2년 연속 5% 이상 인상했으며, 30년 이상 근무하고 정년퇴직한 경찰과 소방관들이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장병과 초급간부의 복무 여건도 개선하고 있다”며 “병사 봉급을 205만 원까지 인상했고, 위관급 장교와 부사관의 봉급 및 단기 복무 간부들의 장려금도 인상할 것이며 시간외근무수당, 당직수당, 주택수당도 확실하게 늘리겠다”고 말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정부는 강력한 힘에 의한 평화를 구현해 나가고 있다”며 “한미 연합연습을 재개하고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을 가속화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억제 능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드론작전사령부’ 창설에 이어 오는 10월 ‘전략사령부’가 출범하면, 우리의 전략자산이 더욱 효과적으로 통합 운용될 것”이라며 “인공지능(AI)과 첨단 과학 기술을 기반으로 정예 선진강군을 육성할 ‘국방혁신 4.0’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서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을 언급하며 “이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헌법이 대통령과 국민에게 명령한 통일 비전과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자유의 가치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할 때, 우리의 자유와 번영을 북녘땅까지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자유 통일 대한민국으로 힘차게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국정브리핑을 하는 것은 이번이 취임 이후 두 번째다. 윤 대통령은 국정브리핑 후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 “내 별명은 ‘의친자’… 독립 영웅 찾는 건 내게 주어진 책무”

    “내 별명은 ‘의친자’… 독립 영웅 찾는 건 내게 주어진 책무”

    ‘의병 문학’ 전공한 교사 출신독립운동가 7035명 포상 신청“기록 없어 포상 반려 안타까워죽는 날까지 남은 유공자 발굴” 대학 시절 ‘의병 문학’을 전공한 이 사람은 한때 교사였다. 방학이 되면 전국 의병 활동 지역으로 답사를 다녔고, 월급의 절반을 연구에 썼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홀로 신청한 2000명을 포함, 연구원 4명과 함께 국가보훈부에 독립운동가 포상을 신청한 사람의 숫자는 총 7035명. 그중 1440명이 실제 포상을 받았다. 하루 1명꼴로 역사 속에 잊혀져 있었던 독립운동가를 발굴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의병에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인생의 3분의1을 바쳐 독립운동가를 찾아 나선 이 사람. 이태룡(69)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이다. 79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찾은 이 소장의 연구소. 책상 한쪽엔 포상 신청 관련 서류와 후손들이 보낸 독립운동가의 공적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개인이 이런 자료를 준비해 포상을 신청하기는 쉽지 않은 터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 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문의가 쇄도한다. 그간 1400명 넘는 이들이 독립운동 행적을 인정받았지만 이 소장은 자신이 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는 “보람을 느끼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친 사람들을 누군가는 찾아내서 그 흔적을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그 일이 이번 생에 저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했다. 왜 이렇게 의병 관련 연구에 매진하는지를 묻자 그는 “1907년 의병으로 활동했던 5촌 당숙의 이야기를 내내 듣고 자랐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정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에게 항상 더 마음이 쓰인다”고 강조했다. 반일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는 체포되거나 고문을 당했어도 정확한 사유나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에 포상을 신청해도 ‘적극적인 독립 활동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기록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반려될 때가 적지 않다. 그는 특히 네 번이나 포상을 신청했던 고완남(1920~1991) 선생에 대해 “항일 결사 ‘조선학생동지회’에 참여했다 일본 경찰에 발각돼 함흥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분이지만 기소유예가 돼 재판을 받지 않았다”며 “기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포상 신청이 반려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처음 독립운동가 포상 신청을 한 건 2008년이었다. 그는 그동안 연구했던 자료를 모아 ‘순국했거나 3년 이상의 징역을 받았지만 포상을 받지 못한 828명의 자료’를 13권의 책으로 만들었고 당시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 이 책을 보냈다. 2013년 교직에서 물러난 이후 2019년 독립운동사연구소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홀로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포상 신청을 이어 왔다. 17년 동안 줄기차게 이 길을 걸었는데도 후회가 남아 있을까. 그는 “아직도 인정받아야 할 분들이 많이 남아 있다”며 “내 나이가 70세가 다 돼서, 예전처럼 이 일을 할 수 없게 될까 봐 그게 아쉬울 뿐”이라고 답했다. 71세가 되는 2년 뒤면 연구소장에서 물러날 예정인 그는 “그동안 연구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자료를 정리해 모두 포상 신청을 하는 게 남은 2년 동안의 목표”라고 했다. 이어 “연구소장에서 물러나도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함께하는 사람이 없어 지금보다는 더디겠지만 아마 죽는 날까지도 이 일을 하고 있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 17년간 하루 1명꼴...독립운동가 발굴에 평생 바친 이태룡 소장

    17년간 하루 1명꼴...독립운동가 발굴에 평생 바친 이태룡 소장

    “독립운동가 발굴은 나의 책무”이태룡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인터뷰 홀로 독립운동가 2000명 포상 신청연구소 재직하며 총 7035명 신청해 “연구소장 물러나도 이 일은 계속” 대학 시절 ‘의병 문학’을 전공한 이 사람은 한때 교사였다. 방학이 되면 전국 의병 활동 지역으로 답사를 다녔고, 월급 절반을 연구에 썼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그가 홀로 신청한 2000명을 포함, 연구원 4명과 함께 국가보훈부에 독립운동가 포상을 신청한 사람의 숫자는 총 7035명. 그중 1440명이 실제 포상을 받았다. 하루 1명꼴로 역사 속에 잊혀져 있었던 독립운동가를 발굴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의병에 미친 사람”이라고 했다. 인생의 3분의1을 바쳐 독립운동가를 찾아 나선 이 사람. 이태룡(69)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이다. 79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찾은 이 소장의 연구소. 책상 한쪽엔 포상 신청 관련 서류와 후손들이 보낸 독립운동가의 공적 자료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 개인이 이런 자료를 준비해 포상을 신청하기는 쉽지 않은 터라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 소장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문의가 쇄도한다. 그간 1400명 넘는 이들이 독립운동 행적을 인정받았지만 이 소장은 자신이 하는 일은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는 “보람을 느끼려고 하는 일이 아니다.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친 사람들을 누군가는 찾아내서 그 흔적을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그 일이 이번 생에 저에게 주어진 책무”라고 했다. 왜 이렇게 의병 관련 연구에 매진하는지를 묻자 그는 “1907년 의병으로 활동했던 5촌 당숙의 이야기를 내내 듣고 자랐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인정받지 못한 독립운동가들에게 항상 더 마음이 쓰인다”고 강조했다. 반일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는 체포되거나 고문을 당했어도 정확한 사유나 활동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에 포상을 신청해도 ‘적극적인 독립활동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기록이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반려될 때가 적지 않다.그는 특히 네 번이나 포상을 신청했던 고완남(1920~1991) 선생에 대해 “항일 결사 ‘조선학생동지회’에 참여했다 일본 경찰에 발각돼 함흥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분이지만 기소유예가 돼 재판을 받지 않았다”며 “기록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포상 신청이 반려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처음 독립운동가 포상 신청을 한 건 2008년이었다. 그는 그동안 연구했던 자료를 모아 ‘순국했거나 3년 이상의 징역을 받았지만 포상을 받지 못한 828명의 자료’를 13권의 책으로 만들었고 당시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 이 책을 보냈다. 2013년 교직에서 물러난 이후 2019년 독립운동사연구소장으로 부임하기 전까지는 홀로 독립운동가를 발굴해 포상 신청을 이어 왔다. 17년 동안 줄기차게 이 길을 걸었는데도 후회가 남아 있을까. 그는 “아직도 인정받아야 할 분들이 많이 남아 있다”며 “내 나이가 70세가 다 돼서, 예전처럼 이 일을 할 수 없게 될까 봐 그게 아쉬울 뿐”이라고 답했다. 71세가 되는 2년 뒤면 연구소장에서 물러날 예정인 그는 “그동안 연구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자료를 정리해 모두 포상 신청을 하는 게 남은 2년 동안의 목표”라고 했다. 이어 “연구소장에서 물러나도 이 일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함께하는 사람이 없어 지금보다는 더디겠지만, 아마 죽는 날까지도 이 일을 하고 있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 ‘독립운동영화 제작비’ 착복한 김희선 전 의원, 재판서 혐의 인정

    ‘독립운동영화 제작비’ 착복한 김희선 전 의원, 재판서 혐의 인정

    독립운동가 관련 영화 제작 비용을 부풀려 보조금 수천만원을 부정으로 수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희선 전 의원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서울북부지법은 형사11단독 이창원 부장판사는 12일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의원에 대한 첫 공판기일을 열었다. 김 전 의원 측 변호인은 이날 공판에서 검찰 측 공소 사실을 모두 인정하냐는 판사의 질문에 “인정한다”고 했다. 김 전 의원 측 변호인은 김 전 의원이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라고 밝히며 대부분의 답변을 대신했다. 이날 김 전 의원은 휠체어를 타고 재판에 출석했다. 김 전 의원은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던 중 2021년 9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문화제’ 관련 영화 제작 비용을 부풀려 보조금을 신청한 다음 업체로부터 리베이트(뒷돈 수수) 방식으로 5000만 원 상당의 보조금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검찰 수사 결과 김 전 의원은 사무국장인 A씨에게 지시해 국가보훈처로부터 영화 제작비를 2배 부풀려 보조금을 받아내 영화 제작업체에 지급한 후 이 중 절반을 다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 대한 기부금 명목으로 돌려받아 운영비로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보훈처는 지난해 3월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정황을 포착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 및 홍보를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이사장인 김 전 의원은 16·17대 서울 동대문구갑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 “접속 대기 90시간” 당첨되면 수십억 돈벼락…난리 난 ‘로또 청약’ 상황

    “접속 대기 90시간” 당첨되면 수십억 돈벼락…난리 난 ‘로또 청약’ 상황

    당첨만 되면 수십억원의 시세 차익이 기대되는 ‘로또 청약’이 줄줄이 나와 관심이 뜨겁다. 청약 신청자들이 모이면서 ‘청약홈’ 홈페이지는 접속 지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29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주택 청약 신청 시간인 오전 9시가 되자마자 접속자들이 몰리면서 홈페이지가 멈췄다. 오전 10시 현재까지도 접속 오류가 나거나 접속 지연이 계속되고 있다. 이날부터 오는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 일반 청약, 경기 화성시 ‘동탄역 롯데캐슬’과 양천구 신정동 ‘호반써밋 목동’,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2단지’의 무순위 청약, 일명 ‘줍줍’이 열린다. 먼저 가장 눈여겨 볼만한 청약은 경기 화성 오산동 ‘동탄역 롯데캐슬’이다. 동탄역 롯데캐슬은 29~30일 계약 취소·미계약 가구 등 총 5가구에 대한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다. 무순위 사후접수 1가구, 계약취소주택 재공급이 4가구다. 계약 취소 물량은 ▲전용면적 65㎡ 1가구 ▲전용면적 84㎡ 1가구 ▲전용면적 107㎡ 2가구다. 이 가운데 전용면적 65㎡·84㎡는 신혼특공 물량이다. 무순위 사후접수 가구는 전용면적 84㎡ 1가구로, 분양가는 2017년 12월 가격으로 나왔다. 전용면적 65㎡ 3억 6300만원, 전용 84㎡ 4억 7200만원(미계약 물량은 4억 8200만원), 전용면적 102㎡ 5억 7600만원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 단지 전용면적 84㎡는 지난해 10월 16억 2000만원에 거래됐고, 현재 매물의 호가는 17억~18억원에 달한다. 당첨시 시세 대비 약 10억원의 시세 차익이 기대된다. 이 가구는 청약통장 보유 여부에 상관 이 국내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청약할 수 있기 때문에 역대급 청약 수요가 몰릴 것으로 보인다. 실거주의무와 전매제한도 적용되지 않는다. 계약 취소 주택은 화성시에 사는 무주택자만 넣을 수 있다. 신혼 특공의 경우 요건을 갖춘 화성시 무주택 가구 구성원이 신청할 수 있다. 전용면적 107㎡ 2가구는 화성시에 거주하는 무주택 세대주가 청약할 수 있다. 계약시 계약금 20%를 납부하고, 2개월 이내 나머지 잔금을 지불해야 한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는 이날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30~31일 1순위, 내달 1일 2순위 순으로 진행된다. 당첨자 발표는 내달 7일이다. 계약은 내달 19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다. 평형별로 ▲전용면적 59㎡가 37가구 ▲전용면적 84㎡ 215가구 ▲전용면적 107㎡ 21가구 ▲전용면적 137㎡ 11가구 ▲전용면적 155㎡ 4가구 ▲전용면적 191㎡ 4가구다. 래미안 원펜타스의 분양가는 최고가 기준으로 전용면적 59㎡는 17억 4000만원, 전용면적 84㎡는 23억 3000만원으로 책정됐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된 단지 가운데 가장 높은 분양가지만 주변 시세보다 저렴하게 나와 높은 시세 차익이 기대된다. 다만 이 단지는 조합원이 이미 입주한 후분양 단지이기 때문에 잔금 납부 일정이 짧다. 내달 7일 당첨자 발표 후 계약금 20%를 내고 입주 지정기간인 10월 말까지 잔금 80%를 내야 한다. 전용면적 84㎡ 당첨자라면 계약 시 약 4억 6700만원을 낸 뒤 3개월 내 18억 6600만원을 내야 한다. 실거주 의무 유예 3년을 적용받아 임차인을 구해 잔금 일부를 낼 수 있지만, 기간이 짧아 사전 자금 확보가 필수다. 서울 신정2-2구역 ‘호반써밋 목동’은 이날 계약이 취소된 2세대의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다. 기관추천 특별공급 1가구와 일반공급 1가구가 나왔다. 2가구 모두 전용면적 84㎡B타입으로, 분양가는 7억 9830만원이다. 같은 타입의 호가는 현재 13억원대다. 일반공급 1세대는 청약요건은 서울시 거주 무주택 세대주다. 기관추천 특공은 국가보훈처의 추천 및 인정서류를 받은 국가유공자·국가보훈대상자가 청약할 수 있고, 서울시 거주자로서 무주택 세대구성원이면 된다. 또 종로구 입정동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2단지’에서도 계약 취소 물량이 나온다. 전용면적 42㎡A타입 1가구다. 분양가는 6억 4930만원이고, 현재 같은 타입의 전세가격이 5억원 수준이다. 올해 2월 입주를 했고, 거주 의무 기간은 없다. 계약금 10%는 8월 8일 계약일에 이후 2주 안에 10%를 마련해야 한다. 잔금은 계약 45일 안에 치르면 된다. 서울시에 거주하는 성인 또는 세대주인 미성년자도 청약 지원이 가능하다.
  • “잊지 않아요 애국의 마음” 양천구 보훈수당 대상 확대

    “잊지 않아요 애국의 마음” 양천구 보훈수당 대상 확대

    서울 양천구가 나라를 위해 희생한 시민들의 복지를 강화한다. 양천구는 국가보훈대상자의 복지 향상을 위해 보훈예우수당 지급대상을 ‘국가유공자법’ 적용을 받는 개인 전체로 확대 시행한다고 22일 밝혔다. 이렇게 되면 이달부터 약 4100여 명의 국가유공자를 지원할 수 있게 된다. 구는 보훈예우수당 지급대상을 더욱 폭넓게 확대하기 위해 지난 6월 ‘서울시 양천구 국가보훈대상자 예우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개정했다. 이에 따라 7월부터는 ▲4·19혁명유공자 ▲순직공무원 ▲공상공무원 ▲특별공로순직자 ▲특별공로상이자 ▲특별공로자도 매월 5만 원의 구 보훈예우수당을 받게 된다. 구는 “조례 개정으로 약 100여 명의 추가 대상자가 혜택을 받게 되어 국가보훈대상자 예우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지원 대상자들에게는 수당 신청 안내문이 개별 발송되며, 신청자는 신청한 달부터 보훈예우수당을 지급받게 된다. 서울시 보훈수당 수령자이면 별도의 신청 절차 없이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계좌로 7월부터 매월 25일에 5만원씩 직권 지급될 예정이다. 단, 서울시 보훈수당에 해당하지 않고, 아직까지 보훈예우수당을 신청하지 않은 국가유공자는 유공자증(또는 유족증)과 통장사본을 지참해, 거주지 동 주민센터를 방문·신청하면 된다. 한편 구는 국가보훈대상자들의 명예와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생활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고자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보훈예우수당 나이제한 및 서울시 참전명예 수당 수급자 중복지급 제한 폐지로 보훈예우 수당 대상자를 약 3배 대폭 늘리며 국가보훈대상자들의 복지를 크게 향상시킨 바 있다. 이기재 구청장은 “국가를 위해 헌신한 국가보훈대상자들이 있어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국가보훈대상자들의 복지와 예우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꽃길일까, 가시밭길일까… 인구부 신설에 인사 이동 ‘눈치싸움’

    꽃길일까, 가시밭길일까… 인구부 신설에 인사 이동 ‘눈치싸움’

    인구정책을 총괄하는 부총리급 인구전략기획부(인구부) 신설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의 이번 달 발의를 앞두고 관료 사회의 눈치 작전이 본격화할 조짐이다. 일부 부처의 저출생 관련 기능이 인구부로 이관되면 조직과 인력도 따라서 옮겨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인구부는 과거 제3공화국 때 경제기획원(EPB)처럼 각 부처에 걸쳐 있는 저출생, 고령화, 인력, 이민 정책의 중장기 전략·기획과 조정을 총괄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만성적인 ‘승진 적체’에 시달리는 기획재정부의 젊은 사무관들이 인구부를 주시하고 있다. 전날 정부 브리핑에 따르면 인구부에는 저출생 관련 예산을 배분하고 조정하는 사전심의 권한이 주어진다. 기재부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예산 편성에 이를 반영해야 한다. 기재부가 갖고 있던 인구에 관한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기능도 이관된다. 매머드 부처인 기재부는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승진하는 데 통상 13~15년이 걸린다. 통상 8~10년이 걸리는 타 부처의 1.5배 정도다. 신설 부처로 이동하면 인구소멸 대응이란 국가적 과제를 다루는 동시에 승진도 노려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당초에는 인구부의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한 데다 일종의 ‘하향 이동’으로 생각하는 기류도 적지 않았다. 초대 인구부 장관으로 거론되는 주형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의 ‘그립’이 강해 고참 공무원들이 인구부 이동을 주저할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현 정부의 저출산 정책에 무게가 실린 데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인구부는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이 확산하면서 공무원들의 생각이 바뀌고 있다는 후문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인구 문제가 이어지는 한 없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커 한번쯤 가 볼까 고민하는 공무원이 꽤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넉 달 넘게 이어지는 의사들의 집단행동으로 과도한 업무 부담에 시달리는 보건복지부 공무원들도 인구부를 주시하고 있다. 인구부 이동을 일종의 ‘동아줄’로 삼으려는 기류마저 엿보인다. 일·가정 양립을 중시하는 인구부라면 소속 공무원들의 ‘워라밸’도 낫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맞물려 있다. 앞서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로 승격될 때도 코로나19로 업무 과중에 시달리던 복지부 공무원들이 보훈부 이동을 희망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복지부 관계자는 “최근 복지부가 업무가 워낙 많다 보니 나가고 싶어 하는 공무원들도 꽤 있다”면서 “특히 저출산·고령화와 직결된 복지 분야 공무원들의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인구부는 기존 복지부가 추진해 오던 저출산·고령사회 법령과 인구정책 기능을 맡을 전망이다. 반면 이번 정부조직 개편 방안에서 일단 여성가족부 존치가 확정되면서 여가부 공무원들은 한숨을 돌렸다. 그간 인구부가 신설되면 흡수 통합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여가부 공무원들은 ‘세종 이주’에 대한 근심이 사뭇 컸다. 신설되는 인구부가 세종에 둥지를 틀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여가부 사무관들 사이에서는 최대 장점인 ‘서울살이’를 포기하면서까지 인구부로 가진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한 여가부 사무관은 “여가부의 메리트는 서울”이라며 “서울에 살고 싶어서 여가부로 옮긴 사람도 많은 상황에서 세종으로 이사하면서까지 인구부 이동을 결심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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