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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옛 모습 잃은 조선 수군 본부… 바다는 옛 영광 기억할까[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옛 모습 잃은 조선 수군 본부… 바다는 옛 영광 기억할까[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길이 3440m 교동대교 2014년 개통대룡시장 ‘레트로 감성’ 관광객 북적화개산 정상 북녘땅 손에 잡힐 듯읍성 둘레 430m, 현재 남문만 복원 농가 마당에는 당시 석재 나뒹굴어안해루 돌기둥은 잡초들이 휘감아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길이 3440m 교동대교는 2014년 완공됐다. 인천시 강화군의 양사면과 교동면을 연결한다. 교동도에 들어가려면 대교 입구 검문소에서 출입 절차를 밟아야 한다. 절도 있으면서도 친절한 해병대 초병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 주면 차단기가 열린다. 전에는 ‘민통선 임시출입증’도 내주었는데 절차가 간소화됐나 보다. 그래도 통행량이 많은 휴일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도 한다. 그런데 대교에 올라 오른쪽으로 손에 잡힐 듯 황해도 땅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런 절차가 수긍이 가게 마련이다. 교동대교가 세워지기 전에는 강화 창후리포구에서 교동도 월선포구까지 배를 타야 했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만큼 만조 때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뱃길이 간조 때는 물 빠진 갯벌을 돌아가느라 한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교동대교를 건너 계속 달리면 대룡시장이 나타난다. 교동면사무소가 있는 시장 주변은 이제 교동도에서 가장 활기찬 거리가 됐다. 교동대교가 완공되기 전 주말이면 상인들이 육지에 사는 자식을 만나러 나가느라 시장은 텅 비곤 했다. 하지만 교동대교 개통과 함께 대룡시장이 ‘레트로 감성’으로 관광객을 모으기 시작한 이후에는 육지 자식들이 주말이면 섬으로 들어와 부모를 돕는다. ●예성강 하구이자 한강 관문에 자리 교동도는 섬 전체가 비옥한 농지로 둘러싸여 있다. 교동면사무소 주변에서 바라보면 넓은 평야 지대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의 교동도는 과거 세 개의 섬을 연결하는 대규모 간척사업으로 하나의 섬이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오늘날 교동평야라 불리는 벌판이 옛날에는 갯벌이었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1960~1970년대에 이르는 간척사업으로 오늘날의 모습이 만들어진 것이다.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고구저수지가 1976년, 난정저수지가 2006년 조성되면서 1000년에 육박하는 간척사업이 완성됐다. 교동도는 고려의 도읍 개성으로 이어지는 예성강 하구이자 조선의 수도 서울로 들어서는 한강의 관문에 자리잡고 있다. 당연히 외적으로부터 수도를 방어하는 군사적 요지로 일찌감치 떠올랐다. 삼남 지방에서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도성으로 나르는 조운선도 교동도를 지나야 개성이든 서울이든 닿을 수 있었다. 왜구로부터 조운선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교동도를 수군 기지로 활용하는 것은 상식이었다. 하지만 고려시대에는 태조 왕건이 대대로 송도, 곧 개성의 해양 세력이었음에도 독립된 병종(兵種)으로 수군의 성립이 매우 늦었다. 1380년(우왕 6년)이 되어서야 해도도통사((海道都統使)를 설치한 것으로 알려진다. 교동도는 앞서 강화도를 피란 수도로 삼았던 시대에도 당연히 중요한 군사기지였지만 남은 기록은 빈약하기만 하다. ●파도 영향 없고 외적 방어에도 용이 다만 조선왕조실록 태종 2년(1402년) 기사는 해도도통사 출범 시기 교동 수군의 성격을 짐작케 한다. ‘고려가 경신년(1380년) 전라도 정예 수군을 교동과 강화에 이주시켜 토지와 호적을 주고 왜구에 대비하게 했는데, 지금은 도망하거나 여러 고을로 흩어진 사람이 161명’이라는 내용이다. 전투력이 강했던 전라도 수군 병사들에게 땅을 나눠 주면서 교동도에 자리잡게 했다는 뜻이다. 오늘날 교동도 주민 가운데는 이들의 후손도 없지 않아 있을 듯싶다. 교동읍성은 교동대교에서 대룡시장을 지난 뒤 한동안 직진해 가면 나타난다. 교동면사무소를 중심으로는 화개산 너머 남쪽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교동읍성이 있는 읍내리(邑內里)는 동쪽으로 강화도, 남쪽으로 석모도에 가로막혀 있다. 큰 바다에 곧바로 노출되지 않아 파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외적의 공격에도 방어가 용이한 조선시대 수군진의 전형적 입지다. 화개산 정상에는 유사시 통신 수단인 봉수대의 자취도 남아 있다. 조선왕조 출범 직후 교동 수군은 강화 수군을 보좌하는 역할을 했다. 1409년 태종실록에는 ‘경기좌우도 수군절제사에게 강화 부사를 겸하게 하고, 경기우도 도만호에게 교동 현령을 겸하게 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경기도는 1391년 좌도와 우도로 나뉘었는데 1402년 좌도와 우도를 통합해 경기좌우도라 했다. 경기도라는 이름을 되찾은 것은 1414년이다. 경기좌우도 수군절제사라는 벼슬의 배경이다. 교동읍성은 1629년 남양부 화량진에 있던 경기 수영을 교동으로 옮기면서 쌓은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은 경기 수영의 이동과 함께 교동현을 교동도호부로 승격시켰다. 이때 화개산 북쪽의 교동현 관아를 교동읍성으로 옮기고 경기 수영과 통합한 것이다. 정묘호란을 겪으며 경기 수군의 주적이 남쪽 왜구에서 북쪽 여진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교동현 관아는 낚시터로도 유명한 고구리저수지가 있는 고읍리(古邑里)에 있었다. 고읍리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구산리와 합쳐지면서 한 글자씩 딴 고구리가 된 것이다. ●경기·충청·황해도 3도 수군 관할 조선은 1633년 경기·충청·황해도의 3도 수군을 관할하는 삼도수군통어영을 교동읍성에 설치한다. 통어사는 경기수군절도사 겸 삼도통어사·교동도호부사라는 긴 직함을 갖게 됐다. 앞서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3년에는 조정이 삼도수군통제사 직제를 만들어 이순신 장군으로 하여금 전라좌수사를 겸하게 한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이후 통영에 자리잡은 삼도수군통제영은 경상좌우수군과 전라좌우수군, 충청 수영을 관할했다. 충청 수군이 통제영과 통어영에 모두 속했던 것은 흥미롭다. 남쪽에서 왜적이 발호하면 통제사 지휘를 받고, 북쪽에서 오랑캐가 침입하면 통어사 지시를 받은 것이다. 읍내리 남향 언덕의 교동읍성은 둘레가 430m로 읍성으로도, 수영성으로도 규모가 크다고 할 수는 없다. 과거에는 옹성을 두른 동문·남문·북문과 치성·해자가 있었다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모두 제 모습을 잃었다. 유량루(庾亮樓)라 편액한 문루가 있는 남문이 유일하게 복원돼 읍성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남문의 아치 모양 홍예석에는 삼도통문(三道通門)과 남루(南樓)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홍예석만 남아 있던 남문과 문루를 발굴 조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처럼 복원한 것이 2017년이다. 교동읍성의 남문 주변은 이제 말끔하게 정비됐다. 하지만 탐방객의 눈에 들어오는 역사의 흔적은 이것뿐이다. 관광객이 “교동읍성은 딱히 볼 만한 것이 없다”고 리뷰를 남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남문만 보고 발걸음을 돌리기보다 내부로 들어가 왼쪽 성벽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기를 권한다. 남문 지붕 곁으로 바다가 펼쳐진 풍경에서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이 왜 이곳을 수군본부로 삼았는지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수도권 대표 역사문화 자원 복원을 읍성 내부는 흔한 농촌 마을 풍경이다. 그럼에도 마을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면 역사의 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마을 안길을 따라가다 보면 석재를 제법 정성들여 다듬은 우물이 보인다. 이집저집 농가 마당에도 수영성 시절 건물에 쓰였음 직한 석재들이 나뒹군다. 언덕으로 오르는 경사지에는 잡초가 휘감은 한쌍의 장주초석도 보인다. 안내판에는 안해루(晏海樓)의 돌기둥이었다고 적혀 있다. 조선시대 통제영과 통어영은 수군의 양대 지휘본부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18세기 통어영은 거북선을 포함해 군선 227척, 통제영은 550척을 동원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규모의 차이는 있었다. 그렇다 해도 오늘날 통제영이 있던 통영과 통어영이 있던 교동의 모습은 하늘과 땅 차이다. 섬이라는 특수성에 북한과 가까운 민간인통제구역으로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 제 모습 회복을 더디게 했던 이유였을 것이다. 교동대교가 놓인 이후 교동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대룡시장은 물론 북녘땅이 환하게 바라보이는 화개산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교동읍성을 비롯한 수군의 유산은 수도권을 대표하는 역사문화 자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다. 교동 삼도수군통어영이 최소한의 옛 모습이라도 되찾을 수 있는 복원 계획이 하루라도 빨리 마련됐으면 좋겠다. 글·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 ‘신라 천재’ 최치원 당나라 뱃길 오른 곳…“덧없는 삶 서럽구나” 술잔 기울이던 곳 [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신라 천재’ 최치원 당나라 뱃길 오른 곳…“덧없는 삶 서럽구나” 술잔 기울이던 곳 [서동철의 이야기가 있는 옛성]

    백제→고구려→555년 신라 영토로당과 본격 교류로 삼국통일 출발점원효대사도 당 유학길에 올랐다가‘일체유심조’ 깨닫고 발걸음 되돌려테뫼식 산성·포곡식 산성 결합 형태조선시대도 서해안 방어 전진기지 경기 화성시의 동쪽은 동탄신도시 중심의 인구 밀집지역과 삼성전자가 대표하는 첨단 공업지역으로 개발된 모습이다. 반면 화성시 서쪽은 자연과 역사가 조화를 이루는 수도권의 대표 휴양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전곡항, 제부도, 궁평항, 화성호는 ‘서해안 관광벨트’를 이루어 휴일이면 교통체증이 빚어질 만큼 많은 탐방객이 찾는다. 화성시청은 서해안 휴양지대와 인구 밀집지역의 중간지점이라고 해도 좋을 남양읍에 자리잡고 있다. 남양읍은 고려 및 조선 시대 남양도호부 관아가 있었으니 지역 행정 중심지로 유서 깊은 역사를 그대로 물려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양도호부 형장이 있던 남양성모성지에 최근 지어진 아름다운 성당은 문화공간으로도 각광받는다. 당성(唐城)은 서해가 바라보이는 구봉산에 자리잡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당성은 신라의 대(對)중국 교류 전진기지였다. 한반도 동남쪽 신라는 한강 유역을 확보하면서 비로소 당나라와 본격 교류할 수 있게 됐다. 당성의 존재 때문이다. 그러니 신라에 당성은 삼국통일의 출발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서해가 바라보이는 구봉산에 자리 당성은 일찍이 한성백제의 영역이었다. 이때 이름은 당항성(黨項城)이었다.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풍납토성을 빼앗긴 백제는 오늘날의 공주 웅진으로 천도한다. 고구려는 당항성 일대를 당성군(唐城那)이라 불렀다. 진흥왕이 555년 한강 유역을 점령하면서 이 지역은 다시 신라 영토가 됐다.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는 759년 이 지역의 이름을 당은군(唐恩郡)으로 바꿨다. 삼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당나라가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한다는 의미겠다. 그런데 새 이름은 신라 사회에서 인기가 없었다. 이 시기 각종 기록은 하나같이 당성이라고 썼다고 한다. 고려가 출범하며 당은군은 당성군으로 돌아갔다. 당성은 12세기 익주(益州)로 승격한다. 조선시대 이 지역은 남양도호부가 됐다. 종3품 부사가 다스렸으니 위계가 높은 고을이었다. 당성은 조선시대에도 여전히 서해안 방어의 전진기지였다. 당성은 발굴 조사에서 해발 165m의 구봉산 정상을 중심으로 시대를 달리하는 테뫼식 산성과 포곡식 산성이 결합된 형태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테뫼식이 산 정상을 둘러쌓았다면 포곡식은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이다. 학계는 삼국시대 테뫼식 산성을 통일신라가 포곡식 산성으로 규모를 키운 것으로 본다. 지금 보이는 당성 성벽은 통일신라가 당은군 시절 확장한 이후 양상을 반영한다. 당성에 오르면 사방이 거칠 것 없이 트여 있는 정상부에 망해루(望海樓) 터가 있다. 삼국시대 군사적 목적의 장대를 고려시대 누각으로 고쳐 지었다고 한다. 고려는 당성을 지방행정의 중심지, 곧 치소로 활용했다. 그런데 당성의 해상교통 기능은 새로운 수도 송악에서 가까운 예성강 하구 벽란도로 넘겨주기 시작한다. 결국 당성의 치소 기능도 고려 중기 이전 오늘날의 남양읍으로 옮겨갔다. 팔각정을 비롯해 망해루 남쪽 평탄지에서 확인된 다양한 형태의 집터도 치소 시절의 흔적이다. 신라는 한강 유역을 개척하고도 제2수도 충주에서 남한강 수로로 곧바로 이어지는 인천 언저리를 항구로 쓸 수는 없었다. 북쪽에 고구려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해안에서 중국 동해안을 오가는 배는 조선시대에도 육지가 보이는 연안을 따라 북쪽으로 크게 우회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신라는 고구려 때문에 이 뱃길도 이용할 수 없었다. 결국 신라는 북쪽 고구려와 남쪽 백제 사이의 안전지대인 당성에서 서해를 건너는 직항로를 이용했다. 먼바다로 나가야 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했지만 신라의 수도 경주와 당나라 수도 장안을 잇는 최단 거리 교통로였다. ●경주~장안 잇는 최단거리 교통로 당성이 신라시대 중국을 오가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하는 해양교통의 거점이었다는 사실은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857~?)의 일화에서도 잘 드러난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과거에 급제하고 벼슬을 하다가 귀국했으니 오가는 길 당성에서 배를 탔을 것이다. 최치원은 자신을 높이 평가하던 진성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좌절하고 유랑하다 당성에 닿았다. 그는 이곳에서 우연히 경주의 궁궐에서 얼굴을 익혔던 악공을 만난다. 그 역시 효공왕이 즉위하면서 따돌림을 당하자 당나라로 가던 길이었다. 최치원은 악공과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이란 성했다가도 쇠퇴하니 덧없는 삶이 참으로 서럽구나…. 선왕을 뵈올 수 없으니 이 몸도 그대와 눈물 흘리네’라는 시를 써서 건넸다. 원효대사(617~686)가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가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진리를 깨닫고 발걸음을 되돌린 곳도 당성 언저리일 것이다. 앞서 원효대사와 의상대사(625~702)는 한 차례 당나라 유학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고구려를 가로질러 요동으로 가다 변방 수라군에게 붙잡혀 신라로 추방됐다. 두 사람은 661년 다시 유학길에 나선다. 송나라 승려 찬녕(919~1001)이 엮은 ‘송고승전’에 이때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나라로 가는 경계인 해문(海門)에서 큰 배를 구해 바다를 건너려 했다. 중도에서 폭우를 만났다. 길옆 토굴에 몸을 숨겨 회오리바람의 습기를 피했다. 날이 밝아 바라보니 해골이 있는 옛 무덤이었다. 궂은비가 계속 내리고, 땅은 질척해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날 밤도 무덤에서 머물렀는데 귀신이 나타나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원효대사는 “전날은 땅굴이라 생각해 편안했는데, 오늘 무덤에 의탁하니 뒤숭숭하구나. 땅굴과 무덤이 둘이 아님을 알겠구나. 삼계(三界)는 오직 마음일 뿐이고, 만법(萬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니 마음 밖에 어떤 법이 없는데 어디에서 따로 구하리오. 나는 당나라에 가지 않겠다”고 외치고는 바랑을 메고 돌아섰다. 깨달음을 얻고자 당나라에 가려고 했지만, 원효는 배에 오르기도 전에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런데 ‘송고승전’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이야기가 없다. 원효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신 이야기는 북송의 연수(904~975)가 지은 ‘종경록’에 등장한다. ‘원효법사가 갈증으로 물 생각이 났는데, 마침 그의 곁에 고여 있는 물이 있어 손으로 움켜 마셨는데 맛이 좋았다. 다음날 보니 시체가 썩은 물이었다.’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곳이 어딘지를 두고는 직산설과 평택설도 있다고 한다. 모두 경주에서 당성으로 가는 길 중간에 자리잡은 고장이다. 하지만 극적인 스토리가 힘을 발휘하려면 오도(悟道)의 현장은 당나라 가는 배에 막 오르기 직전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실제로 학계에서도 당성설이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는 듯하다. ●20세기 각종 간척사업에 멀어진 바다 지금 망해루 터에 서면 바다까지는 제법 멀어 보인다. 20세기 각종 간척사업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과거에는 당나라를 오가는 배가 정박하던 포구가 멀지 않았을 것이다.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의 당성에 대한 묘사도 이런 추정을 뒷받침한다. ‘당성은 바닷가에 일산처럼 우뚝 솟아 / 개펄이 빙 둘러서 안팎으로 이루었다.’ 화려한 햇볕가리개, 곧 양산 같은 모양으로 당성이 바닷가에 솟아 있었다는 뜻이다. 망해루에선 화량진과 마산포도 바라보인다. 고려 말부터 주변에 왜구가 출몰한 것은 삼남에서 걷은 세곡을 도성으로 옮기는 조운선의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고산자 김정호는 ‘청구도’에 고려 공민왕 때 왜구가 화량에 침입했음을 적어 놓았다. 조선은 경기수군을 좌도 수군과 우도 수군으로 나누었다. 우도 수군의 본영은 도성으로 이어지는 한강 하구의 교동도에 두었다. 좌도 수군의 본영이 바로 화량진이었다. 마산포는 임오군란 당시 흥선대원군이 청나라로 끌려간 항구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다. 앞서 3000명 남짓한 청군은 군함 3척과 상선 2척에 나누어 타고 마산포에 상륙했다. 이렇듯 마산포는 개항기까지 서해안의 핵심 국제항 역할을 했다. 시화호 개발 사업 이전까지 마산포는 소래·사리와 함께 경기만의 3대 포구로도 각광받았다. 하지만 1987년 간척 공사가 마무리되자 어민이었던 마산포 주민들은 졸지에 농민이 돼야 했다. 당시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고자 포도를 심은 것이 지금은 송산포도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화성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 세 개의 산이 모여 만든 석모도, 그 중심의 해명산 [두시기행문]

    세 개의 산이 모여 만든 석모도, 그 중심의 해명산 [두시기행문]

    인천 강화군 삼산면에 속한 석모도는 이름보다 먼저 ‘풍경’으로 기억되는 섬이다. 강화도 서쪽 끝에 자리한 이 섬은 과거에는 배를 타야 닿을 수 있었지만, 2017년 석모대교가 놓이면서 한결 가까워졌다. 그럼에도 체감 거리는 여전히 멀다. 길 위에서 시간을 들여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섬이기 때문이다. 북쪽으로는 교동도, 서쪽으로는 DMZ와 맞닿은 바다를 두고 있어 지리적 특수성까지 품고 있다. 이 섬의 중심에는 해발 327m의 해명산이 자리한다. 삼산면이라는 이름처럼 섬에는 세 개의 산이 있다. 해명산, 상봉산, 그리고 상주산. 이 가운데 해명산은 석모도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산이다. 바다와 맞닿아 바로 솟아오른 지형 덕분에 높이 이상의 시원한 조망을 선사한다. 해명산은 흙길 위로 이어지는 완만한 구간과 바위가 섞인 능선, 그리고 곳곳에 숨어 있는 전망 포인트가 매력적이다. 특히 서해를 향해 열린 시야는 다른 산에서 쉽게 만날 수 없는 개방감을 준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수평선 위로 작은 섬들이 점처럼 떠 있고, 해질 무렵에는 바다가 붉은 빛을 머금는다. 그래서 해명산은 ‘일몰 명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등산코스는 초보자도 도전할 수 있는 길이지만, 중간중간 암릉 구간과 로프 구간이 있어 단조롭지 않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서해의 노을은 계절과 관계없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대표적인 등산 코스는 전득이 고개에서 시작된다. 도로 맞은편에 마련된 주차장과 함께 들머리가 잘 정비되어 있어 초입 진입이 어렵지 않다.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면 곧바로 구름다리가 나타난다. 길지 않은 다리지만 발걸음에 따라 살짝 흔들리며 긴장과 재미를 동시에 준다. 이 구간을 지나면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초반 구간은 비교적 완만하지만 점차 경사가 가팔라진다. 흙길과 바위길이 번갈아 이어지며 체력을 요구한다. 다만 중간마다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무리 없이 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 능선을 따라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시야가 열리며 바다가 등장한다. 산행 중 만나는 이런 장면들은 정상 못지않은 보상이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암릉 구간이 등장한다.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하는 짧은 구간이 있지만 난이도가 높지는 않다. 오히려 이 구간이 산행의 재미를 더한다. 약 한 시간 남짓 오르면 정상에 도착한다. 오래된 정상 표지목은 화려하진 않지만 섬마을의 고즈넉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해명산을 찾았다면 주변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낙가산 자락에 자리한 보문사는 석모도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위치와 절벽 위에 자리한 마애불이 인상적이다.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산행의 여운을 정리하기에 좋은 공간이다. 석모도와 강화도 일대는 새우젓, 꽃게, 밴댕이 등 해산물이 풍부하다. 특히 간장게장이나 꽃게탕은 이 지역을 찾는 이들이 빼놓지 않는 메뉴다. 소박한 식당에서 맛보는 한 끼는 화려하지 않지만 여행의 기억을 더 오래 남게 만든다.
  • 인천시장 ‘박찬대 vs 유정복’ 붙는다

    인천시장 ‘박찬대 vs 유정복’ 붙는다

    국힘 공천… “경험·비전 다 갖춰”세종 최민호·제주 문성유 확정 정청래 대표 ‘험지’인 강화 찾아박찬대와 함께 민심 다지기 행보 국민의힘이 11일 유정복 인천시장을 6·3 지방선거 인천시장 후보자로 단수공천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인천시장 후보로 공천된 박찬대 의원과 맞붙게 됐다. 이번 지방선거의 첫 대진표 확정이다.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이날 중앙당사에서 유 시장을 면접 심사했다. 공천을 확정한 공관위는 유 시장에 대해 “대한민국 대표 행정가이자 인천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인천의 미래를 가장 체계적으로 준비해 온 지도자”라고 소개했다. 최민호 세종시장과 문성유 전 한국자산관리공사 사장도 각각 국민의힘 세종시장·제주지사 후보로 단수공천됐다. 유 시장은 17~19대 국회의원, 행정안전부 장관, 김포시장 등을 두루 거쳤다. 2014년 제6회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당선됐고, 2022년 제8회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재선됐다. 유 시장은 공천 면접 심사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인천이 대한민국 성장을 주도할 도시로 발전하는 데 있어서 책임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절윤’ 결의문 이후 당의 과제에 대해서는 “당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제 역할이 있다면 그 역할을 다 하겠다”고만 답했다. 3선을 노리는 유 시장과 맞붙게 된 박 의원은 이날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함께 ‘험지’로 알려진 인천 강화를 찾았다. 정 대표는 이날 강화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 도중 박 의원을 ‘정치적 짝꿍’이라고 칭하는 등 박 의원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였다. 정 대표는 또 “박 의원과 저는 야당 탄압, 정적 제거, 이재명 죽이기에 맞서 손잡고 열심히 싸웠던 동지”라며 “지금 하는 일도 잘 이루어져서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는 오후 교동도 죽산포구에서 박 의원과 함께 직접 작업복을 착용하고 새우잡이 어선 현장 체험도 했다. 정 대표는 조업 체험 후 기자들과 만나 “강화가 민주당 입장에서는 어려운 지역이지만 지난 대선에서 42%를 득표했다”며 “조금만 더하면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의원도 “강화도에 최고의 노력을 집중해 인천 지방선거 승리의 교두보로 만들고 싶다는 게 후보인 저의 각오”라며 “정 대표께서 직접 오신 만큼 힘을 실어 주실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한국섬진흥원, “올 가을, 섬 여행 여기 어때?”···34개 섬 선정

    한국섬진흥원, “올 가을, 섬 여행 여기 어때?”···34개 섬 선정

    한국섬진흥원은 정부와 6개 주요 경제단체, 전국 지자체, 한국관광공사 등이 함께하는 범국민 여행캠페인 ‘2025년 여행가는 가을’이 시작됐다고 8일 밝혔다. 진흥원은 행정안전부와 함께 섬 관광 활성화를 위해 매년 지정하는 ‘찾아가고 싶은 섬(88개)’ 중 가을철 여행하기 좋은 섬을 선별해 소개했다. 가을 축제와 제철 먹거리, 캠핑과 트레킹 등 다양한 가을 매력을 즐길 수 있는 34개 섬이 선정됐다. 이번에 선정된 섬은 ▲인천 7개(교동도, 석모도 등) ▲충남 2개(가의도, 죽도) ▲전북 3개(무녀도, 신시도 등) ▲전남 11개(가거도, 하화도 등) ▲경북 1개(독도) ▲경남 9개(대매물도, 이수도 등) ▲제주 1개(추자도) 섬이다. 지역별 섬 대표 관광자원과 가는 방법(교통편, 소요시간), 편의시설 등에 대한 여행 정보는 ‘찾아가고 싶은 섬 공식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열차·숙박 할인 받고 지역 살리고, 가을엔 떠나자

    열차·숙박 할인 받고 지역 살리고, 가을엔 떠나자

    정부가 여행 콘텐츠로 지역 살리기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행정안전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4개 정부 부처와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경제인협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 6단체는 16일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하이커그라운드에서 ‘여행가는 가을’(포스터) 캠페인 선포식을 열고 지역경제, 국내 관광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했다. 정부의 사업 기획과 민간의 영업망을 접목한 대규모 민관 협업이 국내 여행 촉진과 지역경제 회복에 실질적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문체부 등 4개 부처와 경제 6단체는 캠페인 선포식에 이어 지역경제 살리기와 국내 관광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홍보대사로는 가수 츄가 위촉됐다. 캠페인의 백미는 할인 혜택이다. 교통 부문에선 5개 관광열차 할인(50%), 내일로 패스 할인(1만원), 항공 지방 노선 할인(2만원), 인구감소 지역행 고속·시외버스 할인(30%), 친환경 안전 운전자 온누리상품권 지급(최대 2만원) 등이 준비됐다. 숙박 부문에선 ‘숙박세일페스타’ 할인(2만~5만원), 품질 인증 숙소 할인(2만~3만원), 캠핑장 할인(1만원) 등이, 여행상품 부문에서는 가을 여행 특별전 할인(최대 30%) 등이 마련됐다. 전남 화순 화순적벽의 송석정 등이 캠페인 기간에 한정 개방되고, 인천 강화 교동도 화개정원 등 숨은 관광지도 발굴해 누리집(korean.visitkorea.or.kr/travelmonth)에 소개한다. 업무는 부처와 기관별로 나눠 담당한다. 캠페인을 총괄하는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는 교통·숙박·여행상품 등 대규모 여행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주제별 여행상품(여행트렌드관) 등을 진행한다. 행안부는 51개 ‘청년 마을’과 88개 ‘찾아가고 싶은 섬’, 인구감소 지역의 철도 운임과 쏘카 대여료 할인(55%) 등을 진행한다. 농식품부는 ‘농촌투어패스’ 등 농촌관광 상품을 운영하고 ‘K미식벨트’, 찾아가는 양조장 등의 이벤트도 진행한다. 해수부는 전국 18개소에서 ‘어촌 체험 휴양마을 스탬프 투어’, ‘연안 크루즈 체험단’를 꾸리고, ‘대한민국 수산대전’ 등도 추진한다. 경제 6단체 가운데 중소기업중앙회는 ‘소기업·소상공인 국내 여행 지원 사업’을 펼친다. 각 사업장에 휴가 장려 공문을 발송해 가을 여행 참여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한국경제인협회는 ‘8초 잡고, 8도 여행가자!’, ‘교통약자 국내 여행 지원 사업’ 등을 진행한다. 김대현 문체부 제2차관은 “‘2025년 여행가는 가을’ 캠페인을 통해 국민의 발걸음이 지역의 새로운 발돋움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 뜨거운 여름날은 가고, 남은 건 해바라기 한 송이뿐

    뜨거운 여름날은 가고, 남은 건 해바라기 한 송이뿐

    10일 인천 강화군 교동도의 도로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해바라기가 활짝 피어 늦여름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뉴시스
  • [서울광장] 강화 비림을 거니는 재미

    [서울광장] 강화 비림을 거니는 재미

    강화전쟁박물관을 강화역사관에서 이름을 바꾼 이후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정문으로 들어서니 왼쪽 언덕에 낯익은 박물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며 취향도 바뀌었는지 오른쪽에 위치한 비석군(群)이 설치미술인 양 조형미를 자랑하며 강렬하게 눈길을 잡아끄는 것이었다. 역사가 깊은 고장은 어디든 비석거리가 있다지만 67기에 이르는 강화의 그것은 압도적이다. 강화도에서 연륙교로 이어진 교동도의 경기수영 터에서도 30기 남짓 겹겹이 늘어선 비석을 보고 감탄한 적이 있었다. 무지(無知)의 소치이겠지만 교동도 선정비에 새겨진 이름은 대부분 생소했다. 하지만 강화 비석의 주인공들은 상당수 뇌리에 남은 인물들이다. 그만큼 강화도가 중요한 역사의 고장이라는 뜻이겠다. 비림(碑林)이라고 불러도 좋을 강화 비석군을 둘러보는 데 한참이나 걸렸다. 시인으로도 명성을 떨친 동악 이안눌의 선정비는 두 기나 있었다. 1620년 ‘행부윤 이공안눌 청덕선정비’와 1631년 ‘유수 이공안눌 영불망지비’가 그것이다. 동래부사 시절 고을 백성이 한날한시에 가족의 제사를 지내는 모습을 보고 ‘동래맹하유감’(東萊孟夏有感)이라는 시를 지어 위로했던 인물이다. 임진왜란 초기 동래성을 지키던 병사와 주민은 왜군에 몰살되다시피 했다. 강화도호부 수령은 1618년 종3품 부사에서 종2품 부윤으로 품계가 높아진다. 1627년 정묘호란으로 강화도로 피난했다가 환궁한 인조는 강화를 유수부로 더욱 격상시켰다. 이안눌은 부사로 왔다가 부윤이 돼 떠났고, 이괄의 난을 방조했다는 이유로 물러났다가 다시 받은 벼슬이 강화유수였다. 이시백은 인조반정의 주역인 이귀의 아들로 그 자신도 반정공신이었다. 정묘호란 때는 수원방어사로 병마를 이끌고 동작나루로 달려가 인조를 강화도로 인도했다. 병자호란 때는 병조참판 겸 남한산성방어사였으니 인조의 측근 중에서도 측근이었다. 인조가 정묘호란 직후 강화읍성 개축과 해안 보루 축성을 논의한 것도 이시백이었다. ‘유수 이공시백 지청지덕무휼군졸 영세불망비’로 임지에 흔적을 남겼다. ‘유수 홍공중보 청덕선정 영세불망비’도 보인다. 홍중보는 효종의 뜻에 따라 강화도 동쪽 해안의 진보를 구축했다. 앞서 효종은 현재의 화성 땅인 남양의 영종진을 자연도로 옮겼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도가 지금의 이름을 얻은 것도 이때다. 홍중보는 안산 초지진, 인천 제물진, 교동 월곶진, 통진 덕진진을 강화로 옮겼다. 용진진, 승천포진, 광성보도 이전하거나 새로 세웠다. 제물진이 강화에 있는 까닭이다. 제물진 병마만호 김병구의 선정비가 홍중보 불망비 곁에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 ‘삼충사적비’는 병자호란 때 순절한 세 장수를 기린다. 비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갑곶 나루터 진해루 아래는 삼충신이 죽은 곳이다. 정축년(1637) 정월 22일이었다. 슬프도다. 삼충신은 강화부 사람이었다. 중군 황선신은 분개하여 싸우다가 전사했고, 우부천총 구원일은 칼을 쥐고 물로 뛰어들어 전사했으며, 좌부천총 강흥업은 중군과 함께 전사하였으니 삼충이라 한다.” 열강의 함선이 다투어 염하로 몰려들던 19세기 역사도 빠질 수 없다. ‘진무사 겸 유수 삼도통어사 신공헌 애민선정비’가 대표적이다. 신헌은 1876년 일본과 강화도조약 체결 당시 전권대관(全權大官)이었다. 후임 유수는 대표적 탐관오리이자 친일파인 조병식이었다. ‘유수 겸 진무사 조공병식 애민선정비’도 신헌 비석과 같은 해에 세워졌다. 맨 뒷줄에는 ‘오종도비’(吳宗道碑)가 있다. 경략 송응창 휘하로 임진왜란에 참전한 명나라 장수다. 정유재란 때는 명 수군을 이끌고 강화에 주둔했는데 드물게 주민들이 편안하게 여겨 떠나는 사람을 기렸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임란 이후 한말까지 외침(外侵)에 대항한 최일선으로 강화의 역사가 압축적으로 담겼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비석군은 그 자체로 독립적인 역사박물관 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장기적으로 넓은 공간에 의미 있게 비석을 재배치하면 강화의 명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우선 하나하나 빗돌의 주인공과 그 시대 역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팸플릿에 설명을 제대로 담는 서비스부터 시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동철 논설위원
  • 스티로폼에 몸 묶은 北남성, 한강중립수역 통해 귀순

    스티로폼에 몸 묶은 北남성, 한강중립수역 통해 귀순

    북한 주민 1명이 지난달 말 서해 한강 중립수역을 통해 귀순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동참모본부는 7일 “지난달 31일 한강 중립수역 일대에서 북한 주민 1명의 신원을 확보해 관계기관에 인계했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 들어 북한 주민 귀순은 지난달 3일 중서부 전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왔던 남성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이번에 귀순한 북한 남성 주민은 인천 강화군 교동도 앞 해상에서 스티로폼을 몸에 묶은 채 헤엄쳐서 귀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은 한강 중립수역 내에서 이 남성을 발견한 뒤 추적, 감시해 신병을 확보해 관계당국에 인계했다고 전했다. 남성은 신병 확보 당시 귀순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교동도는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섬으로 북한 황해남도 연안군과 마주하고 있다. 연안군과 직선거리 기준으로 2.5㎞ 떨어진 곳으로 북한과 지척이다. 지난해 8월에도 북한 주민 1명이 교동도 한강 중립수역을 통해 도보 귀순한 바 있다. 합참은 “당시 북한군의 특이동향은 없었다”고 말했다.
  • 인천 강화 바닷물 ‘정상’…北 방사성 폐수 의혹 ‘해소’

    인천 강화 바닷물 ‘정상’…北 방사성 폐수 의혹 ‘해소’

    북한 우라늄 정련공장에서 방사성 폐수가 무단으로 방류돼 인천 강화만 일대로 흘러들었다는 의혹에 따른 인천시 수질조사에서 방사능 오염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천시는 최근 강화만 일대 수질을 조사한 결과 방사능은 검출되지 않았다고 8일 밝혔다. 시 보건환경연구원은 지난 3일 주문도 서남방과 교동도 주변 2곳 등 3곳 해역의 바닷물을 채수해 삼중수소와 세슘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모든 수치가 ‘정상’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북한 황해북도 평산 우라늄 정련공장에서 방사성 폐수가 무단으로 방류돼 강화만으로 흘러들었다는 일부 언론보도에 따른 것이다. 이 같은 의혹이 제기되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은 지난 1일 현장에 조사관을 파견, 강화만 일대 수질을 측정한 결과 ‘정상’으로 나왔다. 그러나 일부 강화 주민들이 여전히 불안감을 호소하자 강화군이 시에 별도의 수질 조사를 의뢰했지만 이번에도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경기도가 실시한 접경지역 수산물 검사에서도 방사능은 검출되지 않았다. 도 해양수산자원연구소는 지난 3~4일 임진강 상류(연천), 중류(파주), 한강 하류 및 해안 인접 지역(김포) 등 총 4개 지역에서 생산되는 수산물 8종을 대상으로 방사능 검사를 진행했다. 어종은 잉어, 붕어, 메기, 누치, 밀자개, 숭어, 붕장어, 조피볼락 등이며 분석 항목은 요오드131 및 세슘134·137이다. 검사 결과 모든 시료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되지 않아 ‘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는 조사 대상 지역 수산물에 방사능 오염이 없음을 의미한다.
  • 산·바다·하늘 함께 즐긴다… 강화로 여름휴가 떠날까

    산·바다·하늘 함께 즐긴다… 강화로 여름휴가 떠날까

    화개정원, 꽃·나무·조형물 한가득동막해변서 갯벌 체험·낙조 감상마니산 숲길 걸으며 심신 치유도천문과학관서 ‘별 헤는 밤’ 낭만구석기에서 근대까지 역사 체험곧 여름휴가 시즌이 돌아온다. 국내 여행을 고려하면 인천 강화군을 추천한다. 관광객의 발길을 돌리게 했던 북한의 대남방송도 새 정부 들어 중단되면서 휴가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 됐다. 강화군에서는 국내 어디에서도 체험할 수 없는 우리나라 역사의 흔적을 직관할 수 있다. 산과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풍광이 있고 ‘별 헤는 여름밤’의 낭만은 덤이다. 강화군에는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공존해 볼거리, 즐길거리가 1년 내내 넘친다. 강화군을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또한 토질이 우수하고 해풍의 영향으로 농사짓기에 최적의 환경을 갖춰 제철 농수산물 등 먹거리도 넘친다. 2일 강화군의 대표 관광지를 알아봤다. ●화개정원 올해로 개원 2주년을 맞은 화개정원은 누적 방문객 100만명을 돌파한 강화군의 랜드마크다. 교동도에 있는 화개정원은 북한 황해도 연백평야와 강화의 다도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스카이워크형 전망대, 다채로운 꽃들과 조형물이 어우러진 오색 테마정원 등 풍성한 구성으로 관광객의 시설을 끈다. 특히 정상에 있는 스카이워크형 전망대는 바닥이 유리라 짜릿함을 선사한다. 강화군을 대표하는 조류인 저어새의 긴 부리와 눈을 모티브로 한 독특한 외관도 흥미롭다. 오색 테마정원은 각종 제철 꽃과 나무, 조형물들이 가득해 사진 명소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막해변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고 해수욕과 갯벌 체험이 가능한 곳이다. 주변에 식음 및 숙박 시설이 밀집해 편의성이 높다. 최근 2년여에 걸쳐 노후 시설물을 대폭 정비하고 해변 보행로, 달빛 포토존, 저어새 조형물 등 다양한 시설을 설치해 더욱 깔끔하고 쾌적한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황홀한 노을은 여름밤의 낭만을 더한다. ●마니산 치유의 숲 2021년 건강과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인천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된 이곳은 마니산에 조성된 약 1㎞의 울창한 숲길이다. 피톤치드 가득한 숲길을 걸으며 심신을 치유할 수 있고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놀 수 있는 ‘단군놀이터’가 있다. 숲 전문가와 함께하는 체험 프로그램이 매주 주말 운영되는데 강화군 문화관광 홈페이지에서 예약할 수 있다. ●강화함상공원 퇴역 군함 ‘마산함’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보존해 재생한 함상공원에서는 일반인이 접하기 어려운 군함 내부와 해군들의 생활 공간을 엿볼 수 있다. 함포 등 전투 장비도 전시돼 있다. 올해에는 함체 내부의 엔진룸을 실물 그대로 볼 수 있게 유리관으로 새롭게 전시했으며 제복·군복·침낭 등 군용 장비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체험 공간을 확대했다. ●강화천문과학관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을 활용해 조성한 천문과학관은 수도권에서 빛 공해 없이 별을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천체 망원경으로 밤에는 달, 태양계 행성, 성단, 성운을 관측할 수 있고 낮에는 태양의 흑점과 홍염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날씨와 상관없이 우주를 경험하는 천체투영관(실내 영상체험관)도 있다. 여름방학에는 특별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올해는 장마철 흐린 날씨로 천체 관측이 어려운 시기를 고려해 기획된 실내형 우주 체험행사가 준비돼 있다. ‘별을 보지 못해도 별난 체험을 보장한다’는 콘셉트로 가족 단위 관람객은 물론 어린이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는 다양한 체험행사를 선사한다. ●고려궁지 남한에 있는 대표적인 고려 유적지로,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수도를 강화로 옮긴 해(1232년)부터 다시 환도하기까지 39년 동안 고려 궁궐로 쓰였다. 고려궁지에는 조선 정조 때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설치한 도서관인 외규장각과 강화성문의 여닫는 시간을 알리는 데 사용했던 강화동종도 보존돼 있다. ●나들길 강화도에는 총 20여 코스의 나들길이 있다. 나들길은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려시대의 왕릉과 건축물, 외세의 침략을 막아 나라를 살린 조선시대의 진보와 돈대 등 역사와 선조의 지혜가 스며 있는 생활·문화 그리고 세계적 갯벌과 저어새·두루미 등 철새가 서식하는 자연생태 환경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도보 여행길이다. 특히 강화도 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2코스가 가장 인기다. 이 길은 갑곶돈대에서 용진진~용당돈대~화도돈대~오두돈대~광성보~용두돈대~덕진진을 거쳐 초지진으로 이어지는 17㎞로, 아픈 역사를 지녔지만 풍경만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받는다. 돈대는 성곽 등에 총구를 설치하고 봉수시설을 갖춘 방위시설이었다. 조선군은 1866년 병인박해를 명분으로 프랑스가 침입한 병인양요 때와 1875년 일본 해군이 강화도와 영종도를 습격한 운요호사건 때 이곳에서 싸웠다. 광성보는 1871년 4월(신미양요) 미국이 통상을 요구하며 함대를 이끌고 침공해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백병전을 전개한 곳이다. 이 외에도 청동기시대 대표적 무덤인 고인돌을 비롯해 유물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고인돌은 주로 경제력이나 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졌다. 사적 137호인 부근리 고인돌을 비롯해 강화도에는 150여기의 고인돌이 있고 이 중 70여기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또 강화도의 역사가 집대성된 ‘강화 역사박물관’은 들러야 할 필수 코스다. 박물관에는 구석기 때 사용된 주먹도끼부터 조선·근대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유물들을 전시한다. 강화군 관계자는 “강화는 산과 바다, 하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인 동시에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모든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며 “최적의 여름 휴가지”라고 말했다.
  • 랑이네 이음 정미소, 도농 연결 체험 프로그램 ‘랑이네 이음 정미소풍’ 상시 운영

    랑이네 이음 정미소, 도농 연결 체험 프로그램 ‘랑이네 이음 정미소풍’ 상시 운영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 위치한 ‘랑이네 이음 정미소’가 도농 연결 체험 특별 프로그램 ‘랑이네 이음 정미소풍’을 매주 주말 상시 운영한다고 밝혔다. 교동도의 특산물인 쌀을 주제로 한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인 ‘랑이네 이음 정미소풍(精米逍風)’은 정미소와 소풍을 합친 ‘정미소풍’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소풍처럼 편하게 정미소와 농촌을 체험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참가자들은 정미소 견학부터 쌀 도정 체험, 솥밥 짓기, 도시락 만들기 등 쌀과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특히 정미소 대기 공간에서는 수제 요거트, 튀밥, 미숫가루 등 정미소에서 직접 만든 웰컴 티를 즐기며 프로그램을 기다릴 수 있다. 또한 허수아비 만들기, 쌀 관찰, 쌀음료 체험, 피크닉 캠핑, 쌀아트 전시 등 다양한 상시 체험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유병길 랑이네 이음 정미소 대표는 “이번 프로그램은 단순한 체험을 넘어 농촌과 도시를 연결하고, 쌀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특히 아이들에게는 자연 속에서 배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프로그램은 교동도의 특산물인 쌀을 활용한 체험 관광 상품으로,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도시 가족들에게는 자연 친화적 학습과 힐링의 기회를, 도시와 농촌의 새로운 연결 모델을 제시하는 만큼 농촌에는 새로운 관광 수요를 창출하는 상생의 모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체험 예약 및 자세한 내용 참조는 인터넷에 ‘랑이네 이음 정미소’를 검색하면 된다.
  • 첫 현장점검에 ‘北귀순자’ 발견 부대 찾은 김용현 장관

    첫 현장점검에 ‘北귀순자’ 발견 부대 찾은 김용현 장관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9일 취임 후 첫 현장점검 일정으로 해병대 2사단을 방문해 군사대비태세를 점검했다. 해병대 2사단은 지난달 북한 귀순자 유도작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국방부는 김 장관이 해병대 2사단 최전방 관측소(OP)를 방문해 경계작전 현황을 보고받고 확고한 군사대비태세를 강조했다고 이날 밝혔다. 김 장관은 “우리 군이 두려워할 것은 적이 아니라 국민”이라며 “적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우리 군이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적에게 자비는 없다”며 “적이 도발한다면 즉·강·끝(즉각, 강력히, 끝까지) 원칙 아래 적이 추가 도발을 할 수 없을 때까지 충분히, 단호하게 응징하고 결과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또 김 장관은 “지난달 8일 귀순자 유도작전과 이달 5일 서북도서 사격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고 장병들을 격려했다. 지난달 8일 새벽 북한 남성 1명은 인천 강화군 교동도를 통해 귀순했다. 당시 해병대는 귀순자를 포착하고 열상감시장비(TOD) 등으로 추적, 매뉴얼에 따라 귀순 유도작전을 성공적으로 완수했다.
  • 통일부장관 “北 주민 외부정보 욕구 자발적…첨단기술 동원해 접근”

    통일부장관 “北 주민 외부정보 욕구 자발적…첨단기술 동원해 접근”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이 발표한 ‘8·15 통일 독트린’과 관련해 “외부 정보에 대한 북한 주민의 욕구는 대단히 자발적”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아날로그식과 다른 첨단 기술을 동원한 대북 정보 유입 방안을 시사하기도 했다. 김 장관은 2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확대 방안에 관한 질문에 “폐쇄사회에서 정보 접근권은 그 시대의 첨단 기술 발전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며 “국내외에서 기존의 아날로그식 방식과 다른 첨단 기술을 동원한 정보접근 기술을 적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안다”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김 장관은 북한 주민들의 외부 정보에 대한 욕구를 강조했다. 그는 “외부 정보에 대한 북한 주민의 욕구는 대단히 자발적인 것으로, 북한 주민의 이러한 자발적 열망을 충족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 근거로는 2016∼2020년 입국한 탈북민의 80% 이상이 탈북 전 한국 드라마 등 외부 영상물을 본 경험이 있다는 통일부 조사 결과를 언급했다. 최근 강원도 고성과 서해 교동도로 각각 귀순한 군인과 민간인에 대해서는 김 장관은 “이들은 모두 20대 남성이고, 지난해 탈북민 196명 중 20·30세대가 50%가 넘는다”고 했다. 최근 가동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영향을 미쳤는지와 관련해서는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간담회에서는 8·15 통일 독트린이 ‘흡수통일’을 표방하는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질문도 나왔다. 이에 김 장관은 “남북한 체제의 상호 인정은 1991년 기본 합의서 제1조에 나와 있는 내용”이라며 “최근 북한은 ‘통일하지 않겠다’, ‘적대적 관계’ 등의 입장을 내고 있다”며 북한이 사실상 기본 합의서를 파기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장관은 8·15 통일 독트린의 추진 방안 가운데 남북 당국 간 실무차원의 ‘대화 협의체’ 설치가 중요하다며 북한이 호응하기를 거듭 촉구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후 북한은 현재까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 北주민 걸어서 귀순한 중립수역…‘탈북 단골 루트’

    北주민 걸어서 귀순한 중립수역…‘탈북 단골 루트’

    북한 주민 1명이 지난 8일 남쪽으로 걸어서 귀순했다. 이 주민이 건너온 한강하구 중립수역은 별도의 군사분계선이 없는 데다 썰물 때 걸어다닐 정도로 수위가 낮아지는 특성이 있어 이전부터 ‘단골 탈북 루트’로 사용됐다. 9일 군에 따르면 귀순한 북한 주민은 한강하구 남북 중립수역에 썰물로 물이 빠진 틈을 타 걸어서 인천 강화군 교동도로 이동했다. 군은 감시자산을 통해 중립수역에서 2명을 식별한 뒤 이들을 추적했고, 교동도에서 1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다른 한 명은 행방불명으로, 넘어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 북한 주민이 걸어온 한강하구 중립수역의 폭은 가장 넓은 곳이 10㎞, 가장 좁은 곳이 900m 정도이다. 썰물 때는 걸어 다닐 수 있는 수준으로 수위가 낮아지는 지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강하구 중립수역은 경기 파주 탄현면 만우리에서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까지 약 67㎞ 구간으로 교동도는 황해도 연백군과의 거리가 2.6㎞에 불과하다. 이곳은 남과 북의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강에 설정한 별도의 군사분계선이 없는 완충구역으로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가 관할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탈북민들이 한강하구 중립수역을 통해 탈북하는 사례는 종종 있어왔다. 2017년 6월 20대 초반 북한 남성이 나뭇가지와 스티로폼 등 부유물을 어깨에 끼고 한강을 헤엄쳐 건너와 김포반도 북단 한강하구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한강하구 중립수역에 위치한 교동도로 탈북민이 귀순해 알려진 사례는 2013년 8월, 2014년 8월, 2015년 9월, 2017년 8월 등 여러 차례 있었다. 접경지역에서 북한 주민이 귀순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지난해 10월 동해에서 여성 3명과 남성 1명이 소형 목선을 타고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이후 10개월 만이다. 서해로 귀순한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이다.
  • 北주민 1명, 썰물 때 걸어서 귀순

    北주민 1명, 썰물 때 걸어서 귀순

    북한 주민이 8일 한강하구의 남북 중립수역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했다. 썰물 때 물이 빠지는 것을 이용해 걸어서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동참모본부는 “우리 군은 북한 인원으로 추정되는 미상 인원의 신병을 확보해 관계기관에 인계했고 남하 과정과 귀순 여부 등에 대해 관계기관에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군 소식통에 따르면 앞서 군은 감시자산을 통해 남북 중립수역에서 2명을 식별한 뒤 이들을 추적했고, 교동도에서 1명의 신병을 확보했다. 다른 한 명은 행방불명으로, 넘어오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강하구 남북 중립수역은 경기 파주 탄현면 만우리에서 인천 강화군 서도면 볼음도까지 약 67㎞ 구간으로 교동도는 황해도 연백군과의 거리가 2.6㎞에 불과하다. 군 관계자는 “이 지역은 썰물 때가 되면 물이 상당히 많이 빠진다”며 “이전에도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이 빠졌을 때 걸어서 넘어온 사례가 있다”고 전했다. 이곳은 한미연합사의 관할 지역이다. 정부는 합동신문조사 등을 통해 신병을 확보한 주민의 정확한 신원과 귀순 의사 등을 조사하고 있다. 함께 있던 다른 한 명의 행방도 확인할 방침이다. 합참은 “현재까지 북한군의 특이 동향은 없다”고 밝혔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해당 사안에 대해 “(북한 주민이) 출발하는 지점부터 계속 감시해서 (귀순을) 유도했던 성공적인 작전”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주민의 서해를 통한 귀순은 지난해 5월 일가족 9명이 목선을 타고 넘어온 뒤 처음이다.
  • 군 “북한 주민 1명 한강하구 중립수역 넘어 귀순”

    군 “북한 주민 1명 한강하구 중립수역 넘어 귀순”

    북한 주민이 8일 한강하구 남북 중립수역을 넘어 남쪽으로 귀순한 것으로 확인됐다. 복수의 군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주민 1명은 이날 남북 중립수역을 넘어 교동도에 도착한 뒤 우리 측에 귀순 의사를 밝혔다. 군의 한 관계자는 “북한 주민 귀순 당시 한강하구는 물이 빠진 상태였고 해당 주민은 걸어서 중립수역을 건넜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처음에 2개의 점이 식별됐는데 1명이 귀순했다”며 2명의 북한 주민이 귀순을 시도하다가 1명은 행방불명됐을 가능성을 거론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북한 주민 귀순 관련 질문에 “관련기관에서 조사 중”이라고 답했다. 신 장관은 “(북한 주민이) 출발하는 지점부터 계속 감시해서 (귀순을) 유도했던 성공적인 작전”이라며 “그것을 공개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공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면 보고드리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해를 통한 북한 주민의 귀순이 확인된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약 1년 3개월 만이다. 지난해 5월 일가족 9명이 목선에 탑승해 서해 NLL을 넘어 귀순했다.
  • “6월엔 화사한 정원에 가보세요”… 강화·남해 등 관광공사 추천 5곳 ‘정원별곡’

    “6월엔 화사한 정원에 가보세요”… 강화·남해 등 관광공사 추천 5곳 ‘정원별곡’

    6월, 초여름의 정원은 아름답다. 특색 있는 조경에 이야기까지 깃든 정원이라면 더 오래 머물고 싶을 것이다. 한국관광공사가 28일 ‘정원별곡’을 주제로 6월에 가볼 만한 정원 5곳을 선정해 추천했다. 인천 강화 화개정원, 충남 공주 유구색동수국정원, 경남 남해 토피아랜드(사진), 전남 화순 무등산 바우정원, 제주 생각하는 정원 등이다. 강화 교동도 화개정원은 6·25전쟁이 있었던 유월에 한층 의미가 있는 정원이다. 화개산전망대 스카이워크에선 북한의 연백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다 건너가 북한 땅이라 뭉클하다. 공주 유구색동수국정원은 중부권 최대 수국단지로 꼽힌다. 20여종 2만여 포기의 수국이 식재됐다. 새달 14~16일엔 수국축제도 열린다. 남해 토피아랜드는 ‘한국의 가위손이 만든 바다 위 정원’이라 불린다. 영화 ‘가위손’의 주인공 에드워드(조니 뎁 분)가 만든 것 같은 토피어리 600여점과 만날 수 있다. 화순 바우정원은 버려진 물건들로 업사이클링한 정원이다. 정원 곳곳에 한국미도 담아냈다. 제주 생각하는 정원은 ‘제주형 한국 정원’을 내세운다. 한국산 수종을 심고 돌담과 오름을 표현해 제주와 한국을 담았다.
  • [포토] “배고파요” 먹이 보채는 새끼제비들

    [포토] “배고파요” 먹이 보채는 새끼제비들

    23일 오전 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 한 음식점 처마 밑에 만들어놓은 제비 둥지 보호용 틀 안에 둥지를 튼 새끼 제비들이 어미 제비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받아먹고 있다.
  • 켜켜이 쌓인 그리움, 알알이 여문 정겨움… 묵묵히 버틴 옛 성곽, 넉넉히 담은 옛 풍경 [권다현의 童行(동행)]

    켜켜이 쌓인 그리움, 알알이 여문 정겨움… 묵묵히 버틴 옛 성곽, 넉넉히 담은 옛 풍경 [권다현의 童行(동행)]

    조선 왕족들의 유배지이자피란민들의 터전이 된 섬마을시간마저 더디게 흐르는 곳낡디낡은 대룡시장 골목약방·다방 주인장의 정다운 옛이야기도심의 시간은 잊은 지 오래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던 인천 강화도 북서쪽 나지막한 섬, 교동도.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까지 눈에 들어올 만큼 북한과 가까이 자리한 이 섬은 시간마저 느긋하게 흐르는 까닭에 분주한 도시의 삶으로 잊고 지내던 넉넉한 인심과 정겨운 미소를 만날 수 있다. 아이와 함께 여행할 때면 어느 나라 어느 지역이든 전통시장을 꼭 들르는데 특히 교동도 대룡시장은 아담한 크기에 풍성한 이야기가 가득 쌓여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찾아야 했던 곳이지만,섬사람들의 오랜 염원이던 교동대교가 놓인 이후엔 아이와 함께 하루쯤 부담 없이 떠나볼 만하다. 교동도 역사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 ‘달을참’(達乙斬), ‘고목근’(高木根), ‘교동’(喬桐)이란 지명으로 기록돼 있는데, 그중에서도 달을참은 크고 높은 산이 있는 고을이란 의미다. 여기서 크고 높은 산은 지금의 화개산(260m)을 가리킨다. 주민들이 운동 삼아 오르내리던 화개산은 최근 대규모 정원이 조성되고 전망대도 들어섰다. 이곳 전망대에 오르면 북쪽으로는 고구저수지와 교동 벌판, 북한의 연백평야가 한눈에 펼쳐지고 남쪽으로는 석모도와 볼음도 같은 강화도의 수려한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지난 5월부터는 모노레일이 운영을 시작해 교동도의 새로운 관광자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본섬인 강화도가 그러하듯 교동도 또한 고려 중기부터 조선시대까지 유배지로 널리 알려졌다. 연산군과 광해군, 안평대군 등이 이곳 교동도에서 유배 생활을 했다. 특히 연산군은 자신의 어머니 폐비 윤씨의 복수를 명목으로 수십명의 목숨을 빼앗으며 피바람을 일으켰는데 결국 중종반정으로 폐위돼 멀리 교동도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그는 교동도에 유배된 지 64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겨우 31세였다. 한동안 고구리마을로 기록된 연산군 유배지를 찾기 위한 연구가 이뤄졌는데, 최근 화개정원 인근에 유배지를 조성해 위리안치(圍籬安置) 현장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위리안치란 죄인이 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어 그 안에 가두는 형벌이다.●시간을 거스른 듯 마치 영화 세트장 같은 풍경 아이와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교동도에서 가장 번화한 대룡시장이다. 교동도 여행의 중심지라고 하지만 웬만한 시골 장터보다 작은 규모다. 500m 남짓한 골목길 두 개가 ‘열 십’(十)자로 이어진 것이 전부라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땐 사거리 길목에서 나도 모르게 “어머, 이게 다인가 봐!” 속마음을 드러내고 말았다. 하지만 조금만 걸음을 늦추니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낡은 간판과 허물어진 슬레이트 지붕, 먼지 쌓인 벽시계, 백발 성성한 약방 할아버지 이야기에 눈과 귀를 열면 교동도가 지나온 오랜 시간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교동이발관은 KBS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서 은지원의 삭발 장면을 촬영했던 곳으로, 여행자들 사이에서 대룡시장의 랜드마크처럼 여겨진다. 그도 그럴 것이 반듯하게 손으로 적은 철제 간판과 마치 영화세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이발관 내부가 1960~1970년대 시골 풍경 그대로다. 반들반들하게 잘 닦인 면도칼은 지나온 세월의 내공을 드러내는 듯하다. 이곳에서 직접 이발하는 경험을 꼭 선물해 주고 싶었는데, 하필 아이와 찾았을 땐 주인 어르신 집안에 상이 있어 문이 굳게 닫힌 상태였다. 그렇게 몇 년이 훌쩍 지나 지금은 자녀들이 이발관 내부를 그대로 활용해 식당으로 운영 중이라니, 아쉽게도 아이와 낡은 이발관에서 특별한 경험을 나눌 기회는 영영 사라져 버렸다.●약방 어르신과 다방 이모가 건넨 情에 사르르 이발관 건너편에는 동산약방이 자리하고 있다. 약국이 아닌 약방이란 간판이 어쩐지 더 정겹다. 비타민드링크라도 사 먹을 생각에 안으로 들어섰더니 손때 묻은 나무 진열장에 봉숭아꽃으로 물들이기를 할 때마다 심부름으로 사 왔던 추억의 백반이 두둑하게 채워져 있다. 구수한 보리차 냄새가 풍기는 커다란 주전자와 무심한 듯 입에 툭 씌워진 컵이 정겹다. 낯선 아이의 방문에 주인 할아버지는 어디서 왔는지, 나이는 몇 살인지 다정하게 묻는다. 아이가 또박또박 대답하자 환한 미소와 함께 딸기맛 비타민을 한 줌 서비스로 내어 준다. “할아버지, 내가 좋아하는 딸기맛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발랄한 인사에 약방에 앉아 있던 동네 어르신들에게까지 웃음이 번진다.느릿한 걸음으로 시장을 둘러보다 달콤한 군고구마 냄새에 이끌려 찾아간 곳은 교동다방이었다. 여행자들을 위해 소소한 먹을거리 삼아 군고구마를 팔고 있다는 마담 아주머니는 달짝지근한 다방커피를 타는 솜씨도 일품이다. 아이는 갓 구워 낸 고구마의 노란 속살에 반해 야무지게 입을 채웠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잘 익은 귤을 가져다 난로 위에 올렸다. “우와, 귤을 구워 먹는 건 처음이에요.” 아이가 신기한 듯 난롯가에 서서 귤이 익기를 기다린다. 그러다 문득 약방에서 받은 비타민 하나를 꺼내어 아주머니께 건넸다. 약방 할아버지가 선물로 주신 거라며 자랑도 잊지 않았다. “나도 감기에 걸리거나 하면 꼭 동산약방 약만 먹어요. 그래야 금방 기운이 나더라고. 교동도 사람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곳이에요.” ●황해도 실향민의 삶 고스란히 손님이 우리뿐이었던 터라 자연스레 교동도에 쌓인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여기 교동도 어르신 대부분은 피란민이에요. 이 대룡시장도 황해도 연백장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고향에 돌아갈 생각으로 밤낮없이 부지런히 일해서 부자도 많아요. 교동도 쌀이 유명해진 것도 그분들 덕분이죠. 세월이 흘러 여기서 결혼도 하고 자식들 낳고 살았으니 정을 붙일 법하건만 그래도 늘 다방에 오시면 고향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교동도는 고려 때부터 간척이 이뤄져 육지보다 많은 논과 밭을 가졌는데, 광복 직후엔 8000여명의 주민이 거주할 만큼 풍요롭고 북적이는 섬이었다. 행정구역상 강화도에 속하지만 실제 생활권은 불과 12㎞ 떨어져 있는 황해도 연백이었다. 이 때문에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연백에 살던 사람들 다수가 교동도로 피란했다. 교동도 북쪽 말탄포구에서 바라보면 연백 땅이 불과 2㎞ 바다 너머다. 눈앞에 선명한 고향 땅을 반세기 넘게 바라보기만 할 줄은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을 터. 그 한 맺힌 그리움이 다방 한쪽 구석에 쌓이고 또 쌓였다. 북한과 가까운 지리적 위치 때문에 잊지 못할 에피소드도 많단다. “어느 날인가 동네 언니가 텅 빈 옥상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올라갔더니 북한에서 탈출한 청년 하나가 숨어 지내고 있었다지 뭐예요?”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아이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집중한다. “여기 사람들은 그런 사건이 있어도 두려워하기보다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이 먼저인가 봐요. 저기 골목길 끝에 해성식당이라고 있는데 안주인이 전라도 출신이라 음식 솜씨가 좋아요. 여기 사람들 사이에선 맛집이죠. 그런데 그 북한에서 탈출한 청년이 발각됐을 때 경찰이 일부러 그 집 육개장을 주문해서 먹였대요. 식당 주인도 음식 배달하면서 울컥했다고 하더라고요.” 마치 시골 할머니 집에 놀러 온 것처럼 편안하고 느긋한 분위기 때문인지 어느새 아이의 눈꺼풀이 스르르 감긴다. 얼른 소파 2개를 붙여 아이가 잠시라도 단잠을 즐길 수 있도록 자리를 봐주는 아주머니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노 키즈 존’을 내세운 도시의 화려한 레스토랑에선 느낄 수 없는 코끝 찡한 감동이었다.●117년 한 자리 지킨 교동초 마담 아주머니의 추천으로 찾은 곳은 대룡시장과 어깨를 맞대고 자리한 교동초등학교다. 1906년에 개교했다고 하니 그 역사만 무려 117년에 이른다. 멀끔하게 단장한 모습이라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운동장 한편에는 기억조차 희미했던 이승복 동상과 효자 정재수 동상이 자리하고 있어 세월의 깊이를 느끼게 한다. 겨우 10살의 나이에 눈길에 쓰러진 아버지를 구하려다 매서운 추위에 결국 함께 동사한 정재수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이는 감동한 눈치다. 그래도 슬픈 결말은 피하고 싶었는지 “나는 슈퍼히어로가 돼서 엄마도 구하고 나도 씩씩하게 살아올 거야.” 큰소리다. 교동다방에서 꿀맛 같은 낮잠을 즐긴 덕분인지 아이는 널찍한 운동장을 마음껏 뛰며 신나게 놀았다.교동읍성도 교동도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인조 7년인 1629년에 쌓은 고을성으로 둘레는 약 430m, 높이는 약 6m에 이른다. 예부터 교동도는 외세 침략이 잦았던 터라 서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조선 후기에는 읍성 내에 삼도수군통어영 본진이 주둔했다고 한다. 원래 동문과 북문, 남문 등 3개의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온전한 형태를 짐작하기 어렵다. 대부분 세월이 흘러 무너졌고 겨우 남아 있던 남문의 유량루도 1921년 폭풍을 맞아 허물어졌다. 다행히 홍예 부분만은 지금까지 남아 있는데, 이는 돌이나 벽돌을 무지개처럼 휘어진 형태로 쌓은 구조물로 광화문 같은 성문에 주로 사용됐다. 일부 복원된 성곽과 얼기설기 쌓은 옛 성곽이 이곳에 쌓인 시간을 오롯이 드러낸다.교동향교도 아이와 들러 보기 좋다. 향교는 조선시대 지방 유생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교동향교의 역사는 그보다 앞서 고려 충렬왕 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289년 고려 유학자 안향이 원에 사신으로 갔다가 직접 손으로 옮겨 적은 ‘주자전서’와 공자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와 이곳에 모신 것. 한국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향이 처음 배를 댔던 곳이니 교동향교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인 셈이다. 원래는 화개산 북쪽 기슭에 있던 것을 조선 영조 때 지금의 위치로 옮겼는데, 다른 지역 향교들과 비교하면 아담한 규모지만 건축물 하나하나 소박하고 단정한 짜임새가 돋보인다. 홍살문을 지나 향교 안으로 들어서면 공자의 신주와 우리나라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유생들이 배움을 익히고 닦았던 명륜당, 일종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제수용품을 보관하는 제기고, 내삼문이 알뜰하게 들어서 있다. 향교 우측에는 요즘 보기 드문 재래식 화장실이 설치돼 있는데, 얼마 전 뒷간을 소재로 한 전래동화를 읽었던 아이는 직접 오줌도 눠 보며 재밌어했다. ●그림 같은 보호수 자랑하는 화개사 화개산 중턱에는 화개사도 자리한다. 정확히 언제 창건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말의 문신 이색이 머물며 독서를 즐겼다고 하니 고려 때 사찰로 추정된다. 17~18세기 문헌에도 그 이름이 기록돼 있으니 조선 후기까지 강화도의 주요 사찰 중 하나로 규모를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에는 전등사의 말사였고 현재 남은 건물은 1967년 화재로 탔던 것을 이듬해 중건한 것이다. 사찰 입구에는 수령 200년을 넘긴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 모양이 아름다워 아이도 “꼭 옛날 그림 속 나무 같다”며 감탄했다. 기름진 논을 자랑하는 교동도에는 두 개의 커다란 저수지가 있다. 난정저수지와 고구저수지다. 여름이면 난정저수지에는 노란 해바라기가, 고구저수지에는 분홍 연꽃이 무수히 피어오른다. 지역주민들이 마을정원으로 꾸민 것인데 널찍한 저수지를 배경으로 수채화처럼 맑은 풍경을 자아낸다. 겨울에는 이들 저수지 모두 얼음놀이터로 변신한다. 아이들은 썰매를 타고 어른들은 얼음낚시의 손맛을 즐긴다. 차창 밖으로 스치듯 지나가더라도 교동도의 밥맛을 책임지는 물줄기라고 생각하니 더욱 넉넉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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