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치고 싶은 문장]
여름을 건너(야프 로번 지음, 박영록 옮김, 문학과지성사)
형의 눈동자 깊숙한 곳, 그 색깔 속에서 우주를 본다. 엄마가 늘 하던 말이다. 우리 뤼시엔은 못하는 게 많지만, 눈 속에는 우주가 담겨 있다고.
어느 여름, 열세 살 브라이언은 장애가 있는 형 뤼시엔의 보호자가 됐다. 형이 있던 시설이 리모델링을 하면서 함께 살게 됐는데, 아버지가 자주 집을 비우는 바람에 형을 돌보는 일은 고스란히 브라이언의 몫이 됐다. 형을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고, 보호하려다 상처를 입힌다. 책의 원제는 네덜란드어로 ‘소메르바흐트(Zomervacht)’, ‘여름’과 ‘털’을 붙인 단어다. 작가는 절제된 문장으로 “형을 감싸 주는 털가죽 같은 존재” 브라이언과 각자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에게 끝내 가닿으려는 사람들을 그려냈다. 398쪽, 1만 8000원.
영광 없는 영웅들(퍼디아 레넌 지음, 최리외 옮김, 다산책방)
상식이란 흔해빠진 생각일 뿐, 상상력이라곤 없고 오직 선례만을 따르는 생각일 뿐이다. 상식을 따르면 주머니 속이, 그리고 내면까지도 가난해진다. 상식 따위 엿이나 먹으라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한창이던 고대 그리스 도시 시라쿠사의 채석장. 도공 겔론과 람포는 빵과 치즈를 들고 굶어 죽어가는 아테네인 포로들을 찾았다. 에우리피데스 연극 ‘메데이아’를 올리려는 두 사람과 포로들의 기묘한 협업이 시작됐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속 아테네 포로들, 플루타르코스의 ‘니키아스의 생애’를 접목해 포로를 살린 미지의 시라쿠사인을 현대에 살려냈다. 비극과 희극이 뒤섞인 이야기는 “가장 독창적이고 놀라운 데뷔”라는 찬사와 함께 작가에게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을 안겼다. 408쪽, 1만 9700원.
코끼리가 코를 풀면 며칠이나 걸릴까(김경란 지음, 송종희 그림, 좋은꿈)
코끼리는/ 긴 코로/ 어떻게// 코를 풀까?// 바나나 잎을/ 코에 대고// 뿌우우웅/ 뿌우우웅/ 푸나?// 음// 코딱지가/ 나오려면/ 며칠은 걸리겠네.
김경란 시인의 첫 동시집. 세상 모든 것이 처음인 아이들은 어른이 무심히 지나치는 것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질문한다. “왜 그렇지?” 시인의 동시도 이렇게 시작한다. 아이는 코를 파며 동물원에서 만났던 코끼리를 떠올린다. 코끼리는 코가 긴데, 코를 어떻게 팔까? 코끼리의 코딱지는 어떻게 생겼지? 평범한 일상이 시인의 눈을 거쳐 엉뚱하면서도 따뜻한 풍경으로 탈바꿈한다. 120쪽, 1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