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지하철공사장] 현장르포
물인가 싶더니 불기둥이 치솟고,멀쩡한 차와 사람이 철제구조물 사이로 곤두박질하는 곳.얼핏 공상과학영화를 연상시키는 아찔한 장면이 전국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진다.바로 서울 등 대도시에서 진행중인 지하철공사 현장의풍경이다. 대구 지하철공사장 붕괴참사를 계기로 원시적 건설환경과 시민들의 희생 위에 엮어지고 있는 지하철공사 현장을 찾아 실태와 문제점을 짚어본다.
◆부실설계와 부실시공 복구공사가 한창인 대구지하철 2-8공구에서 만난 굴삭기 기사 박모씨(37)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잘라 말했다.
“설계부터 잘못된기라.10m만 파면 바위가 나온다고 했는데 25m를 파내려가도 바위는 구경도 못했심더” 당초 설계회사는 지반조사에서 ‘암반층이 두껍다’고 했으나 실제 땅을 파보니 정반대였다는 것.
사고가 난 2-8공구 설계·감리를 맡고있는 동부엔지니어링㈜는 지난 95년지반을 조사한 뒤 지하 4.5∼6m는 풍화암,6∼9m는 연암,9∼22.5m는 보통암,22.5∼31·2m는 경암층이라고 밝혔다.그러나 시공을 맡은 삼성물산 관계자는14m에서연암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또 사고구간 지하에 대형 상수도관과 고압전선,도시가스관이 매설된 것을모른 채 버팀목공법으로 설계,시공사가 나중에 이를 발견해 어스앵커공법으로 변경,붕괴사고의 빌미를 제공했다.
2호선의 경우 지금까지 19차례나 설계가 변경됐으며 막상 시공에서는 설계도조차 제대로 따르지 않은 ‘멋대로’ 공사가 판을 치고 있다.
지난해 11월 대구 2호선에 대한 안전점검에서는 15개 공구 중 4개 공구를 제외한 전 구간에서 도면을 무시한 제멋대로 공사가 지적됐다.
◆안전비용 1.3%의 현장 J건설이 시공중인 서울지하철 5호선 청구역 인근의6호선 6-8공구 현장.복공판 양쪽의 가설인도를 따라 걷는 행인들은 연방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비좁은 인도나마 가다보면 끊기고 막히는 데다 곳곳에서 공사 굉음이 터져나오기 때문이다.
서울시민의 보행권이 손바닥만한 ‘공사중’ 표지판에 밀린 채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이같은 불편과 위험은 복공판 위를 곡예하듯 운행하는 차량 운전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곳에서 버티고개로 올라가는 S건설의 6-7공구 현장은 아수라장에 가까웠다.
콘크리트관이 대부분을 차지한 인도를 따라 레미콘·화물차량이 20여대나 흉물스럽게 늘어서 지나는 시민들을 위압할 뿐 어디에도 시민안전을 위한 배려는 없었다.
현장 관계자는 “공사비의 1.3%가량을 안전비용으로 할애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다른 관계자는 “별도의 안전비용이 책정되는 게 아니라 관행에 따라적당히 한다”고 털어놨다.
◆스팀으로 양생하는 콘크리트 S건설이 맡은 서울 용산구 녹사평 인근 6-6공구는 토목공정 95%를 넘어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곳.혹한 속에서도 20여명의인부가 철근 배근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러나 ‘무재해 176만시간을 기록중’이라는 자랑이 무색할 정도로 설계도를 놓고 작업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숙련공들이라 도면이 필요하지 않다”는 설명이었으나 바로 그 ‘숙련’에 시민의 생명을 맡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돋았다.
영하 10도의 혹한이지만 각 공구마다 콘크리트 타설작업이 한창이었다.
6-6공구 정준화(鄭俊和)감리단장은 “땅 속은 지상보다 따뜻한 데다스팀으로 가온을 하기 때문에 문제가 안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콘크리트 양생을 위해 개방된 공사현장에 일주일 동안스팀을 넣는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짜여진 공기를 맞추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설명이다.
◆파행적인 예산집행 “애당초 돈 없이 시작한 공사라 문제가 없을수 없습니다” 대구시와 시공사 관계자들은 사고를 부르는 부실공사는 대부분 ‘돈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2005년 4월 완공을 목표로 건설중인 대구지하철 2호선(총연장 29㎞)의 사업비는 2조1,946억원.공사비를 댈 여력이 없는 대구시는 지난해 9월 1,000억원의 지방채를 발행,공사비 등에 충당했다.
당연히 대구시가 공구별 시공업체에 3∼5개월씩 공사비를 미루는 일은 다반사였다.
이는 곧 시공업체의 자금난으로 연결,공사현장의 장비와 인력감축을 불러왔고 결국 공사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시공사 관계자는 “현장마다 10명이 해야 할 일을 6∼7명이 하고 있다”며“향후 관급공사 수주문제가 걸려있어 말도 못하고 속만 태우고 있다”고말했다.
올해 2호선 건설비 3,800억원 가운데도 700억원은 아직 미확보된 상태다.
땅만 파놓고 중앙정부만 쳐다보는 식의 비용 확보책이 부실시공을 부추기는한 원인인 것이다.
심재억·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 *황학주 구조물진단학회장 문답 한국구조물진단학회 황학주(黃鶴周·71·다산컨설턴트 회장)회장은 빈발하는 각종 건설 관련 안전사고가 무리한 공사비 절감과 턱없는 공사기간 단축에서 비롯된다고 진단했다.예산을 아낀다며 공사비를 턱없이 깎는가 하면 빠른 공기만을 능사로 삼는 지금의 풍토에서는 안전한 공사문화를 이끌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안전 측면에서 지하철공사의 가장 큰 문제는. 시간과 돈이다.외국과 달리우리나라는 공사비와 시간을 턱없이 줄이면서 외국 못지 않는 규모와 수준의결과를 요구, 안전이 소홀해진다.대구 지하철만 하더라도 충분한 예산과 시간을 줬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라고 생각한다.
◆기술이나 경영상의 문제도 크지 않나. 역시 ‘싼값에 빨리’ 풍토가 문제다.당산철교는 고작 13년사용하고 철거했다.당시 권력자들이 ‘값싸고 빠른것’을 요구한 결과다.이윤을 남겨야 하는 경영자들은 예산에 맞춰 공사를한다.공사비를 깎으면 안전이 희생될 수밖에 없는것 아닌가.
◆제도적인 문제는. 제도보다는 관행,관습이 더 문제다.관급공사의 경우 공무원들이 군림하며 돈을 요구해온 것이 과거의 관행이다.기술자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는커녕 뭐든 명령만 하는 식이었다.이러다보니 기술자들도 관행에익숙해지고 부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공법상의 문제는. 서울 지하철의 경우 대개 공사가 쉽고 비용이 싼 오픈컷(opencut)공법을 택하고 있다.이 공법은 지층에서 파내려가 터널을 축조하기 때문에 통행 불편 등 민폐는 물론 갖가지 안전사고를 부르고 있다.외국에서 이런 식으로 공사를 하다가는 큰일난다.
◆도급제도는 어떤가. 현행 최저가낙찰제가 바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다.이 제도에는 담합이,담합에는 불가피하게 부실이 따른다.업자들의 무리한 수주경쟁이 상식을 파괴하는 공사관행을 낳고 있다.
◆바람직한 안전대책은. 문제는 기술인들이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건설환경을조성하는 것이다.그런 다음에 발생한 부실이나 안전문제에 대해 책임을 묻는다면 모두 승복할 것이다.
심재억기자 jeshim@ *하도급 비리가 不實공사 주범 잊을 만하면 다시 터져나오는 지하철공사장의 대형 사고 뒤에는 하도급이라는 원천적인 비리구조가 도사리고 있다.원도급자가 공사를 따내 다시 하도급을 주는 비정상적인 관행이 부실공사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공사 건설현장의 경우에도 하도급 비리는 예외가 아니다.
하도급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덤핑입찰이다.하도급을 취급하는 전문건설업체가 2만5,000여개나 되는 등 난립한 데다가 최근 관공서 발주 공사가 줄어들어 업체간의 과당경쟁이 출혈경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덤핑입찰은 당연히낮은 하도급률을 부르고 낮은 하도급률은 곧바로 부실시공으로 이어지고 있다.원도급자가 공사가의 70%로 낙찰받아 다시 하도급률 50%로 하도급을 주게되면 실제 공사가는 35%밖에 되지 않는다. 100억원을 들여 공사를 해야 하는데 35억원밖에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하도급에서 또 하나의 문제는 원도급자가 우월적인 지위를 남용하는 것이다.원도급자는 공사대금을 현금으로 받은 뒤 자신은 어음을 발행,막대한 금융이익을 챙긴다.
또 공사대금을 물건으로 결제하는 대물변제도 성행하고 있다.어음의 경우 IMF체제 이후 최장 8개월짜리도 생겨났다.하도급업자는 막대한 금융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부실시공의 우려가 높아진다.
실제로 올 연말 완공예정인 서울지하철 6호선 6-3공구의 원도급자인 삼성물산은 지반공사 비용으로 서울시 지하철건설본부로부터 17억원을 받아 하도급업체인 중앙지하개발(주)에는 원도급액의 46.8%에 불과한 7억9,800만원에 공사를 맡겼다.실제 시공자가 책정된 공사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으로 공사를 한 것이다.
공사현장 관리체계도 문제다.사고가 난 대구의 경우 현장소장은 A업체,공사과장은 B업체,시험실장은 C업체,공무과장은 D업체 하는 식이었다.더구나 2호선 15개 공구 중 1∼4공구,11∼12공구는 한 업체가 시공과 설계를 같이 맡고있다. 설계와 시공을 같이 맡을 경우 공사과정에서 설계상 문제점이 드러날경우 이를 바로잡을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이서구(李西求)대한전문건설협회 산업지원팀장은 “부실시공을 막고 전문건설업체를 육성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규제개혁 차원에서 없앴던 하도급 저가심사제를 부활시켜야 한다”면서 “건설업계의 경제정의를 실현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도급업자를 보호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용수기자 drag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