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귀거래사] 천연염색가로 변신 가수 은희씨
“생각난다. 그 오솔길/그대가 만들어준 꽃반지 끼고/다정히 거닐던 그 오솔길….” 1970년대 초 ‘꽃반지 끼고’, ‘사랑해’, ‘연가’ 등의 히트곡을 냈던 추억의 가수 은희(58·본명 김은희)씨는 요즘 천연염색에 푹 빠져 있다. 서해 바다가 지척인 전남 함평군 손불면 교촌마을 입구에 이르면 소나무숲 언덕이 첫눈에 들어온다. ‘민예학당’이란 안내판을 따라 언덕을 오르면 폐교된 옛 손불 남초등학교 건물이 우뚝 서 있다. 본관에 이르는 길 양쪽은 갓 피어난 잔디로 푸르다. 옛 시골 학교 모습 그대로다.
“어서 오시오~잉. 감 염색 옷을 세계적 브랜드로 키우는 게 꿈이지라.” 이 집의 안주인 은희씨는 익숙한 전라도 사투리로 기자를 맞는다.
그가 이곳에 둥지를 튼 것은 2003년. 염색의 주 재료인 감이 많이 나고, 기후와 산천이 고향인 제주도와 비슷한 점이 가장 맘에 들었단다. 전라도 사람들의 정서도 마음에 들었다.
이후 틈틈이 폐교 운동장에 잔디와 들꽃을 심고, 연못도 팠다. 학교 본관을 개조해 2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과 염색 연구소, 디자인 작업실, 작품실 등을 갖췄다. 여기서 그는 ‘감 염색’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그가 한창 잘나가던 가수생활을 접고 결혼과 함께 미국 뉴욕행 비행기를 탄 것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뉴욕주립대 패션학과(FIT)에 입학한 그는 의상디자인과 메이크업 등 이른바 ‘토털 패션디자인’을 배우고 15년만인 1985년 귀국했다. 서울 압구정동 5층짜리 건물에 ‘코디네이션 센터’를 열어 처음으로 국내 공연·예술계에 ‘코디’란 개념을 전파했다. 또 ‘스톤 아일랜드 갤러리’를 마련하고, 흑백사진 초대전만 가졌다. 이를 계기로 문화계 인사들과 자연스레 어울리면서 ‘우리 문화’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는 고향인 제주 모슬포 인근 재래시장을 지나다 좌판에 깔린 ‘갈중의(갈옷)’를 봤다. “바로 이것이구나.”란 생각이 뇌리를 쳤다.
갈옷은 예부터 땡감으로 염색해 제주 사람들이 즐겨 입던 작업·노동복이다. 땀 흡수력이 뛰어나고 감의 떫은 성분인 타닌이 방취, 방충, 방습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몸 냄새가 상대적으로 많은 서양인들에게 안성맞춤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양의 대중 옷인 블루진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1989년 그는 본격적인 감 염색 작업에 착수, “봅데강(보셨습니까라는 제주도 방언)”이란 상표로 갈옷 제품을 내놨다. 초등학교 동창인 탤런트 고두심, 살아 생전의 중광 스님 등 문화계 인사들이 힘을 보탰다. 갈옷을 국내 한 홈쇼핑에 올려 1000여벌이 순식간에 동나기도 했다.
외환위기 때 어려움도 겪었지만 관련 특허까지 따 내는 등 감 염색 연구에 몰입했다. 그럴수록 기능성에 확신을 갖게 됐다.
그는 최근 일본 도쿄, 나고야, 오사카, 교토 등 5대 도시를 순회하며 전시회와 발표회 등을 이어갔다. 지금은 일본의 유명 백화점이 입점을 요청할 정도로 갈옷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재료를 구입하고 공동 작업하는 과정을 되풀하면서 동네 주민들과도 스스럼없이 지낸다. 그는 이제 함평 사람이 다 됐다.
“봄바람이 살랑대는 초록 5월엔/꽃길따라 꿈을 꾸듯 나비따라 간다” 그가 함평 나비축제의 주제가를 작사, 작곡, 노래까지 할 정도로 이곳은 제2고향이 됐다.
글ㆍ사진 함평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