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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광숙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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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어린 예술가들/최광숙 논설위원

    출퇴근길에 지나치는 광화문 지하철역. 최근 역 주변이 예쁜 설치미술품으로 장식됐다. 독도를 주제로 한 아기자기한 작품이다. 손바닥만 한 골판지 위에 그려진 그림들을 모아 놓은 것이 마치 설치미술가 강익중의 작품 같다. 3×3인치의 작은 캔버스나 나무틀 같은 것에 다양한 그림과 기호 등을 그려 넣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강익중 말이다. 유심히 들여다봤다. 독도를 아끼는 동심이 저마다의 무한한 상상력을 펼치고 있다. 독도 주변을 헤엄치는 물고기의 등에는 태극 마크가 선명하다. 만화 주인공 뽀로로도 태극 모자를 쓰고 용감하게 독도를 지킨다. 예쁜 꽃과 식물들도 독도 지킴이로 변신했다. 그림 위에 영어로 ‘독도는 내것’이라는 쓴 글귀도 눈에 띈다. 그림 하나하나에서 어린이들의 독도에 대한 그윽한 마음과 우리 땅을 지키겠다는 굳은 결의가 배어 나온다. 그 어느 홍보물보다 진한 감동을 준다. 어쩌다 어린이들까지 그런 그림을 그려야 하는 상황이 됐는지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출생 증명서/최광숙 논설위원

    ‘어머니는 일본인이다.’ 1990년 3당 합당 후 민자당 내에서 박태준 최고위원의 출생을 놓고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박 최고위원이 수장이던 민정계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끄는 민주계 간에 당권과 대선 경선을 놓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질 때다. 이런 루머는 속성상 근거가 없는 출처 불명임에도 박 최고위원이 어려서 일본에서 자라고 공부한 배경 탓에 그럴듯하게 포장돼 당 주변을 떠돌아다녔다. 어머니의 일본인 설(說)은 선거 때면 정가에 떠도는 대표적인 매터도 가운데 하나다. 상대 정적을 흠집 내기 위한 흑색선전인 셈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한다는 일본. 그렇다 해도 일본인을 어머니로 둔 것이 무슨 죄이겠는가. 그래도 반일 감정이 잠재해 있는 우리네 민족감정선을 자극하는 어머니가 일본인이라는 루머는 과열된 선거 분위기 속에서 단골로 등장한다. 특히 대선 본선보다 당내 경선에서 위력을 발휘한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도 ‘생모가 일본인이다.’라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이 울산에서 연설하던 이 후보의 구강점막 상피세포를 채취하기에 이르렀다. 이 후보의 형인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DNA까지 조사해 대조한 결과 사실무근임이 드러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출생과 관련해 뒷말이 무성했다. 김 전 대통령 사후에 출간된 자서전에서 그는 “내 어머니는 작은댁이었다.”고 출생의 의혹을 간략히 정리했다. 출생에 얽힌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아주 매력적인 스토리텔링의 주제다. 그러니 유력 정치인들의 ‘출생 비밀’은 더더욱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도 생부를 놓고 말들이 많았다. 어머니가 하도 많은 남자를 만나 생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중요한 것은 그가 생부의 성을 따르지 않고 양부의 성을 따랐다는 것이다. 그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출생증명서를 공개했다. 서류에는 하와이 출생 사실과 어머니·의사·호적담당자 서명도 있다고 한다. 이로써 지난 대선부터 최근 ‘부동산 황제’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제기된 오바마의 ‘출생 의혹’은 한방에 날아가게 됐다. 특히 ‘케냐에서 태어난 만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시민이 아니며, 대통령 당선도 원인무효’라는 버서(birther·오바마의 출생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들의 주장도 헛소리가 될 것 같다. 내 뜻과 무관한 출생을 놓고 벌이는 소모적 논쟁, 이젠 드라마에서조차 보고 싶지 않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목련/최광숙 논설위원

    목련이 필 때면 가슴이 콩닥거린다. 겨우내 움츠렸던 가슴이 활짝 펴진다. 봄의 전령사 목련 앞에 서면 다들 마음이 살짝 달뜨게 마련인가 보다. 가수 양희은도 청아한 목소리로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생각나는 사람~”하고 옛 연인을 노래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난 하얀 목련이 필 때면 순백의 여고 시절이 생각난다. 모교엔 목련나무가 있었다. 시험에 찌들었던 갈래머리 땋은 여고생들도 목련이 피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련 주변에 모여들곤 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얀 목련꽃이 핀 나무 아래서 친구들과 함께 추억의 사진 한장을 남기던 어느 봄날. 누군가 사진기를 가져 왔는데 교정 곳곳을 거닐다가 결국 발길이 머문 곳이 목련 앞이었다. 화들짝 꽃이 필 때 주는 극도의 화려함과 달리 꽃이 지면 너무 초라해 목련이 싫다는 이도 있다. 그래도 좋다. 눈꽃송이 같은 목련이 펼쳐지면 마치 화이트 크리스마스처럼 느껴진다. 온 세상이 환해지고 따뜻해지는 마법의 꽃이 목련이지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황당한 키스/최광숙 논설위원

    그의 기상천외한 키스 세례를 받고 멍했다. 내 평생 그런 입맞춤은 처음. 아니,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런 멋진 키스를 받은 여성은 없으리라. 최근 하는 짓이 귀여운 7살 개구쟁이 조카에게 “뽀뽀 좀 해 줘.”라고 졸라댔다. 처음에는 녀석이 내 부탁을 거절하는 줄 알았다. 갑자기 오른손으로 주먹질을 해댔기 때문이다. 그러더니만 내 뒤통수에 왼손을 얹더니 내 얼굴을 자기 쪽으로 확 잡아 당겼다. 그러고는 입술을 쭉 내밀어 뽀뽀를 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창 태권도에 쏙 빠져 있는 녀석은 팔을 뻗었다 하면 주먹질이고, 발을 들었다 하면 발차기다. 내게 날린 뽀뽀도 완전 ‘태권도식’이다. 친한 언니한테 조카의 키스 얘기를 해 줬다. “어머, 그런 터프한 키스를 받는 게 우리 여성들의 ‘로망’ 아니니?” 하며 파안대소한다. 며칠 전 여동생이 그 녀석에게 이모를 사랑하느냐고 물었더니만 안 사랑한단다. 박력 있는 키스로 나를 사로잡아 놓더니만 이젠 외면한다. 이래저래 내 애간장을 태우는 귀여운 남자(?)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막걸리/최광숙 논설위원

    막걸리 하면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일찍이 홀로돼 막걸리로 외로움을 달래셨던 할머니다. 그걸 아는 맏딸인 어머니는 할머니가 오시면 나와 남동생의 손에 주전자를 들려 막걸리 심부름을 보내곤 했다. 어린 동생이 할머니가 주신 막걸리 한사발에 취해 해롱거린 일도 있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 그 막걸리를 내가 마시게 됐다. 무지막지한 선배들이 신발에 막걸리를 부어 주었다. 겁에 질린 우리들은 그걸 받아 마시곤 한점 집어 먹은 안주까지 모두 쏟아 내야 했다. 어두컴컴한 뒷골목 전봇대에 기대 올려다본 하늘엔 그날 따라 왜 그리 별들이 반짝이던지…. 어느 날 옷을 입으려다가 깜짝 놀랐다. 간밤에 마신 막걸리가 청색 치마에 흩뿌려져 안개꽃이 핀 듯했다. 남자 동기들의 연애 카운슬링을 도맡아 하던 내가 실연당한 친구를 위로한다며 마신 막걸리의 흔적. 신사임당은 치마폭에 포도넝쿨을 그렸다는데 난 막걸리 꽃이라니. 추억의 막걸리가 와인보다 항암물질이 많단다. 또다시 막걸리를 마셔야 할 이유를 찾았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한복/최광숙 논설위원

    몇해 전 미국에 잠시 머물 때 카리브해로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규정상 디너 정찬 시 여성들은 드레스를 입어야 했다. 드레스가 없던 내가 입은 것은 하늘하늘한 여름철 캐주얼 원피스. 스카프를 둘러 나름대로 화려함을 보탰다. 그래도 빤짝이 드레스와 몸매가 드러나는 섹시한 드레스 옆을 지나치자면 왠지 주눅이 들었다. 어느날 멀리서 한복 차림으로 위풍당당하게 다니는 할머니를 봤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한국 할머니를 만난 것도 반가운데 거기다 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은 할머니를 만나다니…. 할머니의 선택은 참으로 아름답고 돋보였다. 한복의 고운 선(線), 화려한 색(色)의 절묘한 조화, 입체감 있는 디자인. 사실 어느 것 하나 뒤지지 않는 드레스가 한복임을 그 할머니가 증명해 보였다. 해외에서 보니 한복은 파티복으로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드레스였다. 최근 호텔신라에서 벌어진 한복 홀대 사건을 보면서 세계 각국 사람들과 같이 선상 위를 누비던 그 할머니의 고운 한복이 떠오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드레스 코드/최광숙 논설위원

    “뭐야, 옷이!” “국회를 뭘로 보는 거야.” 지난 2003년 4월 국회에서 한바탕 소동이 빚어졌다.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유시민 의원이 국회의원 선서를 하는 국회 본의장에 ‘백바지’에 면티, 청색 캐주얼 재킷을 입고 나타난 것이다. 국회법에 국회의원의 드레스 코드(복장 규정)가 정해진 것은 없다. 셔츠에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이라는 관습이 있을 뿐이다. 유 의원은 그 선을 넘었기에 “튀려고 한다. 정치를 희화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 이전에도 파격적인 패션으로 주목받은 이들이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6대 국회 등원 때 흰 구두와 양복을 입은 패셔니스트다. 당시나 지금이나 ‘백구두’는 영화배우나 신는 최첨단 패션 아이템이다. 카이저수염으로 유명한 김동길 전 의원은 14대 국회 때 나비 넥타이를 처음으로 국회에 선보였다. 옷은 개인의 생각·취향·삶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개인뿐 아니라 시대와 국가·민족에 따라 드레스 코드는 달리 나타난다. 드레스 코드로 그 나라의 역사적·문화적·정치적인 배경까지 읽을 수 있다. 얼굴을 스카프로 가리고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여인들을 보면 이슬람 국가 출신으로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요즘 모임·장소에 따라 거기에 맞는 옷차림새를 요구하는 ‘드레스 룰’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우아하게 품위를 갖춰야 할 클래식 공연장, 격식 있는 레스토랑, 명문 골프장 등에서 드레스 코드를 요구한다. 청바지에 샌들 차림은 입장 불가다. 파티 같은 모임에는 아예 초청장에 ‘검은색 정장’ 등과 같이 옷색깔까지 콕 찍어준다. 최근 유명 한복 디자이너 이혜순씨가 호텔신라의 한 레스토랑을 갔다가 쫓겨났다. 호텔 측은 “드레스 코드가 있는데 한복과 트레이닝복은 안 된다.” “한복은 위험한 옷이다.”라고 했다. 이부진 사장이 직접 이씨를 찾아가 사과했다지만 파장이 만만찮은 모양이다. 한 네티즌은 이 사장의 모친 홍라희 여사가 한복차림으로 신라호텔에 간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아니, 자기들은 되고. 정작 돈 주고 밥먹겠다는 손님한테는 웬 까탈인지….”라며 쓴소리를 할 정도로 여론이 냉랭하다. 시인 박목월은 ‘한복’이라는 시에서 “품이 낭낭해서 좋다. 바지저고리에 두루막을 걸치면 그 푸근한 입성/옷 안에 내가 푹 싸이는 그 안도감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라며 한복을 예찬했다. 한복은 우리 조상의 지혜가 담긴 문화 유산이다. 내 문화를 홀대하는 나라가 어찌 국격을 운운할 수 있겠는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신사임당/최광숙 논설위원

    신사임당, 엘리자베스 여왕, 마리 퀴리. 이들의 공통점은? 화폐에 등장하는 여성이다. 마리 퀴리의 화폐는 유로화 통용으로 프랑스에서 사라졌지만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은 14개국 화폐에 등장할 정도로 인기다. 화폐는 한 나라의 역사를 품는 상징이자 각국의 정치·문화 등을 아우르는 예술품이기도 하다.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원권 지폐가 도입된 것은 2009년 6월. 당시 유관순 열사를 지폐의 첫 여성으로 모셔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양성평등 의식 제고와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기여했다.”는 이유로 신사임당으로 정해졌다. 신사임당은 조선시대 예술가다. 1504년 외가인 강원도 강릉에서 다섯 딸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시와 글씨,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7세 때부터 스승 없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가 그린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고 여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살아 있는 풀벌레인 줄 알고 부리로 쪼아 그림이 뚫어질 뻔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잔치에 갔다가 빌려 입고 온 치마에 술을 쏟아 난처해하던 동네 처자를 위해 치마폭에 포도덩굴을 그려 얼룩을 감춰줬을 정도로 그는 인간미 넘치며 창의로운 예술가였다. 명종 때 어숙권은 ‘패관잡기’에서 “사임당의 포도와 산수는 절묘해 평하는 이들이 ‘안견(安堅)에 버금간다’고 한다. 어찌 부녀자의 그림이라 경홀히 여길 것인가.”라며 그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천재화가 사임당은 사후 100년이 흐른 17세기 중엽 유학자들로부터 대학자 율곡 이이를 낳은 현모양처로 칭송받기 시작했다. 아들 그늘에 사임당의 예술적 재능은 가려지고 부덕과 모성을 갖춘 현모양처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유교 사회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 주체적인 신여성이라 할 수 있다. 재능을 연마하면서도 자식들을 큰 인물로 키워냈다. 게다가 공부를 게을리하고 그릇된 무리들과 어울리는 남편을 바른 길로 이끌어 동반자적 관계를 열어 보인 미래형 여성이기도 하다. 사임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필요할 정도다. 최근 불법 도박사이트 운영업자들이 마늘밭에 묻어뒀던 돈들이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원권이라고 한다. 불법자금이 연루된 사건에는 어김없이 5만원권이 등장한다. 신사임당의 수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잘못된 길을 가던 남편마저 꾸짖던 신사임당이 오늘날 땅속에서 검은 돈의 주인공이 된 자신의 처지를 어찌 생각할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삼청동/최광숙 논설위원

    오랜만에 나들이 간 삼청동. 가볍게 걷기 좋아 간 곳인데 주말이라 사람들의 물결이 넘실댄다. 거의 한줄로 서서 걸어야 할 정도다. 삼청동 바로 옆 동네, 조선시대 여덟 판서를 배출했다고 이름 붙여진 팔판동에 살았던 터라 이곳에 오면 옛 생각이 난다. 정독도서관에서 삼청동 길로 접어드는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니 내 풋풋한 20대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커트하러 갔다가 미용사 꾐에 빠져 내 생애 처음으로 뽀글뽀글 파마를 하게 된 미용실 자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당대 여학생들이 즐겨 읽던 잡지 ‘여학생’ 출판사 터는 예쁜 장신구들로 가득차 있다. 반찬거리를 사 먹던 코딱지만 한 슈퍼는 삼청동의 눈부신 개발바람에도 꿋꿋하게 버티더니만 이젠 사라졌다. 도로변 차들의 질주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작은 창문이 있던 작은 집은 화려한 옷들로 여인들을 유혹한다. 잠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듯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내 젊은 날의 추억이 담긴 삼청동, 이젠 더 변하지 말아다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커피 한잔/최광숙 논설위원

    커피 하면 생각나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지 싶다. 노총각이던 작은 외삼촌은 당시 귀한 커피를 즐겼다. 인스턴트 커피를 찾기 어렵던 시절인지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미제 커피였던 것 같다. 어느날 삼촌이 마시던 커피가 우리집에도 등장했다. 어머니는 커다란 양은 주전자에 커피를 진하게 끓였다. 우리 형제들은 주전자 주변에 둘러앉아 프림도 없이 시커먼 한약재 같은 커피를 마셨다. 스테인리스 대접으로 쭉 들이켰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희한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동네 개울가에서 부르던 ‘커피 한잔’ 노래도 떠오른다. 큰오빠가 노래를 가르쳐 준다며 어린 나에게 따라 부르게 한 노래가 바로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그대 올 때를 기다려봐도~”다. 그 노랫가락과 가사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 걸 보니 오빠들과 노래 부르는 것이 퍽 좋았나 보다. 커피에 얽힌 추억은 이토록 진하건만 난 커피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그래도 우리나라가 세계 11위 커피 수입국이란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난 기르기/최광숙 논설위원

    지난해 선물 받은 귀한 난을 지켜 내지 못했다. 아주 작고 예쁜 난이었다. 그동안 번번이 실패했던 터라 이 난은 어떻게든 잘 키워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 어린 생명을 지키고자 평소 물을 잘 주고 사랑도 듬뿍 줬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래도 예전보다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런데도 시들시들하더니만 병색이 완연해지는 게 아닌가. 회사 내 난을 잘 ‘치료’하는 ‘명의’를 찾았다. “살려 달라.”는 부탁과 함께 난을 명의의 사무실에 ‘입원’까지 시켰다. 상태가 좋지 않지만 한번 해 보자고 했다. 그 이후 영양제를 맞고 있는 난 화분 모습이 휴대전화로 날아왔다. 참으로 정성을 들여 치료해 주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뿌리가 썩은 일부 난을 솎아내고 다른 난을 이식하는 등 대수술까지 감행했지만 결국 그 난을 구하진 못했다. 그래도 명의는 달라도 달랐다. 내 마음을 위로하고자 다른 난을 하나 키워 보라고 선물하는 것 아닌가. 또 한번 생명을 해칠까 봐 거절했지만 한번 키워 보란다. “난도 연애하듯 사랑을 주고 살살 잘 다뤄야 합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보톡스/최광숙 논설위원

    세월의 흔적 주름. 주름을 없애기 위한 여성의 몸부림은 가히 처절할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름방지 화장품과 마사지 등에 들어가는 공과 비용도 적지 않다. 요즘에는 이도저도 필요없다. 보톡스 한방이면 주름은 저리가라다. 덕분에 나이를 종잡을 수 없게 됐다. 특히 여성 연예인 대부분은 보톡스의 힘을 빌리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빵빵하게 보톡스를 맞았는지 보기 민망할 정도다. 거부감마저 생길 때도 없지 않다. 세월을 거슬러도 웬만해야지… 어디 연예인들 뿐이랴. 60대 중반인 지인도 전해들은 바로는 성형수술과 보톡스의 세례를 받아 예뻐졌다고 한다. 최근 즐겨 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한 탤런트는 웃을 때 눈가의 잔주름이 안개처럼 퍼진다. 과하게 팽팽한 여배우의 얼굴만 대하다 그의 주름을 보니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진다. 돌아서 내 얼굴을 본다. 남들은 내 얼굴의 주름을 어떻게 생각할까? 영 자신이 없다. 솔직히 보톡스, 외면하기 참 어려운 묘약이지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광장] 리더십의 세계화/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리더십의 세계화/최광숙 논설위원

    지난 2009년 9월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객원연구원으로 있을 때다. 미국의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인 이 대학 제럴드 커티스 교수의 ‘일본 현대정치’ 강의를 관심을 갖고 들었다. 그는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의 내정 소식을 전하며 “총리를 할 만한 인물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의 일본 내각평을 듣고 다소 놀랐다. 그가 일본통이라고는 해도 일본 정치, 아니 일본 정치인 개개인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어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소 전 총리는 취임 후 1년이 채 안 돼 중도퇴진했다. 그것도 중의원 선거에 패배해 54년 만에 자민당의 간판을 내리게 하고 정권을 내주는 수모를 당했다. 태평양 건너 멀리 미국에서도 정확한 정보만 있으면 일본 정치인의 리더십을 평가할 수 있다. 다만 커티스 교수처럼 미리 알수 있느냐 하는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은 대통령·총리 같은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야 리더십의 진면목을 알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성군(聖君)은 태평성대 같은 호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지도자의 리더십이다. 백척간두 같은 엄청난 위기에는 말할 것도 없이 자잘한 위기에도 한방에 가는 이가 나오기 마련이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그렇다. 일본 대지진 참사를 겪으면서 그의 허약한 리더십을 전 세계가 알게 됐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시 그가 보인 위기 대응 능력은 아마추어 그 자체다. 문제는 이제 한 나라 지도자의 리더십이 그 나라에만 영향을 주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금융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 듯 한 나라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경을 뛰어넘는 ‘리더십의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환경 문제 이상으로 각국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지구촌 사람들을 급속히 하나의 운명체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웃 나라 총리의 원전사태에 대한 부실한 대응이 우리 식탁에 오르던 일본산 명태와 같은 먹거리를 사라지게 한다. 각종 부품과 소재 품귀로 공장의 생산라인이 중단될 수도 있다. 저 멀리 카다피의 독재권력이 촉발한 리비아 사태도 일본 참사와 함께 가뜩이나 불안정한 원자재 가격을 올려 세계 경제를 휘청이게 하고 있다. 중동의 한 국가가 민주화되느냐 않느냐는 그 나라 국민만의 문제를 떠나 당장 우리에게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최고의 리더라면 위기시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쿠바 미사일의 위기를 넘긴 미국 케네디 전 대통령을 보라. 그가 1962년 10월 16일 소련의 쿠바 미사일 기지 건설을 알고 난 뒤 소련의 미사일 철수 선언을 이끌어내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3일이다.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라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을 정점으로 행정부의 정책 결정 시스템을 긴박하게 움직인 결과였다. 그는 해상봉쇄령부터 시작해 소련 흐루쇼프와의 비밀협상 등 ‘Presidential Resource’(대통령이 동원할 수 있는 자원)를 모두 활용했다. 그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이 여차하면 제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사태를 막은 것이다. 내년에 대선이 있다. 박근혜·오세훈·김문수·손학규·유시민 등 거론되는 대권 후보들이 경제·안보·재난 등의 위기에서 나라를 구할 인물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는지, 작은 위기에도 맥없이 무너질지 철저하게 검증해야 한다. 큰일이 터졌을 때 정보체계를 장악하고 독자적인 정책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인물을 가려내야 한다. 특히 한반도의 특수상황을 감안하면 국제관계까지 챙길 수 있는 글로벌 역량을 갖춰야 한다. 남북문제를 잘못 다뤘다가는 자칫 동북아 정세를 불안하게 할 수 있다. 경제는 말할 것도 없다. 동반성장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옮기고, 선진국 반열에 올릴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지도자에 머물지 않고 동북아의 리더,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가 될 만한 인물을 바란다면 과욕인가.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자연/최광숙 논설위원

    기타의 감미로운 선율을 느낄 수 있는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 얼마나 아름다운 곳이면 타레가가 그런 명곡까지 만들었을까 싶었다. 1993년쯤인가 스페인 여행 중 안달루시아 지방의 그라나다에 있는 그곳을 찾고서야 이해가 됐다. 이슬람 국가도 아닌 곳에서 만난 이슬람 예술의 극치가 바로 알람브라 궁전이었다. 사람이 빚어낸 아름다운 건축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는데 할머니 두분의 속삭임이 들렸다.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그들은 정원에 핀 꽃을 들여다보면서 감탄을 연발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의 현장에 와서 꽃구경에 열중하는 할머니들. 나이가 들면 최고의 예술품을 만나도 자연보다 위일 수는 없나 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난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 새롭게 눈을 떴다. 하지만 최근 일본 대지진 참사로 자연의 또다른 이면과 맞닥뜨리면서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어마어마한 자연의 위력 앞에 처참하게 무릎 꿇지 않으면 안 되는 왜소한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이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여성 복서

    권투가 유일한 희망인 매기. 매일 체육관에 나와 홀로 연습한다. “31살 된 여자가 발레리나를 꿈꾸지 않듯 복싱 선수를 꿈꾸어서도 안된다.”며 매몰차게 그녀를 내치던 프랭키도 결국 두손을 든다. 프랭키의 도움으로 매기는 챔피언으로 등극한다.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아름다운 복싱영화이면서도 눈물겨운 부성애(父性愛)를 담은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감독과 프랭키 역할을 맡아 아카데미 감독상까지 거머쥐었다. ‘사각의 링’이라는 작은 합법적인 공간에서 두 주먹만이 난무하는 권투. 사람들은 그 원시성에 열광한다. 상대방을 피흘리게 하고 쓰러뜨려야 직성이 풀리는 게임. 여차하면 목숨까지 잃을 정도로 거칠다. 오로지 맨몸과 정신력만으로 무장해야 하는 복싱. 인류 문명의 놀라운 진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원시시대의 투박한 싸움같이 느껴진다. 트렁크팬츠와 글러브에 투혼을 실은 복서들에게서 스포츠의 원형질을 발견하는 이유다. 가끔은 격렬한 권투 시합 경기를 보면 말이 스포츠이지 독한 주먹질에 인간 본성 저밑에 깔려 있는 것이 폭력성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때도 있다. 그런 험한 권투에 뛰어든 여성 복서들이 점차 늘고 있다. 다이어트 운동으로 주목받을 정도로 일상에서도 여성 복서를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여성 복서의 역사를 보면 이미 20세기 초반에 스포츠계에 공식적으로 이름을 올렸다. 최초의 미국 여성 복싱선수는 1975년 복싱면허를 취득한 캐롤라인 스벤슨이지 싶다. 1977년 최초 여성프로복싱 챔피언십이 열려 캐시 데이비스 등이 선수로 뛰었다. 197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는 여성 복서들의 시합은 스포츠가 아니라 일종의 ‘스캔들’처럼 보도됐다고 한다. 이후 많은 여성 복서를 거쳐 1999년 ‘전설의 복서’ 알리의 딸 라일라 알리가 세계 여성 복싱계를 달구었다. 모델 경력이 말해주듯 빼어난 미모에다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전 세계가 여성 복서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인영이 최초의 여성 프로복서다. 2003년 세계챔피언 벨트를 따낸 그녀를 이어 김주희가 세계 6대 기구 챔피언을 돌아가면서 석권하는 등 많은 여성 후배 복서들이 지금 사각의 링에서 뛰고 있다. 그제 여배우 이시영이 제7회 전국여자신인 아마추어 복싱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다. 데뷔 7개월 만에 거둔 우승이지만 스포츠계도 놀랄 정도로 주먹 솜씨는 대단했다고 한다. 아름답고 용기 있는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청개구리/최광숙 논설위원

    엄마의 말에 반대로만 하던 청개구리. 우리 집안에도 청개구리가 있다. 7살짜리 개구쟁이 조카 녀석이다. 항상 청개구리 짓을 하며 말썽을 도맡아 피운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따따따’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였던 것 같다. “비가 오네.”라고 비오는 창밖을 가리키면 “비가 안 오면”이라고 엉뚱하게 되묻는다. 출근길 나에게도 “이모, 안녕히 안 다녀오세요.”라고 인사한다. 이모 회사를 물어보면 ‘마포신문’이라고 골지른다. 마포의 우리집과 신문을 교묘히 합쳐 놓는다. 좋아하는 ‘치즈케이크’ 사줄까 하면 듣도보도 못한 ‘포도케이크’를 사달라고 조른다. 최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그의 누나에게 띠를 물었더니 ‘원숭이띠’란다. 그 녀석에게 돌아오는 답변은 걸작이다. ‘초록띠’라고 우기는 것 아닌가. 태권도장에 다니는데 자신의 태권도 승급 띠 색깔을 갖다 붙이는 거다. 누가 가르친 것도 아닌데 타고난 것 같다고 가족들이 결론을 내릴 정도로 매사에 삐딱한 조카. 반골 기질로 똘똘뭉친 그의 행보가 어디까지 갈는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가족/최광숙 논설위원

    미국 뉴욕에 잠시 머물 때 자주 가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다. 그곳에 가면 벽에 쭉 걸려 있는 사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몇대 위의 선조부터 부모님까지 가족 사진들이다. 마피아 일가를 그린 영화 ‘대부’에서 보듯 이탈리아인들의 가족 사랑은 유별나다. 식당에 이런저런 가족 사진들이 많이 걸려 있으면 십중팔구 이탈리안 식당이라고 보면 된다. 살던 아파트 근처에는 인도인들이 많아 공원이나 지하철 등에서 그들과 마주칠 기회가 많았다. 그들의 특징 중 하나가 3대(代)가 거의 같이 움직인다는 점이다. 아기가 탄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 옆에는 항상 노부부가 있다. 인도인들도 이탈리아인처럼 전통적으로 가족을 중시하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과거 우리도 저랬는데 싶어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핵가족 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족의 개념이 점차 축소되는 것 같다. 하늘이 내린 천륜이라는 부모와 형제들과의 인연도 저멀리 뒷전으로 밀려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동의보감/최광숙 논설위원

    “중국 방서(처방전)를 보니 부족함이 있다. 너는 온갖 처방을 덜고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들라.” 조선시대 선조는 임진왜란 와중이던 1596년 허준에게 명한다. 어의(御醫)이던 허준·양예수 등은 중국과 우리의 의서들을 모아 집대성하고, 임상의학적인 체험을 통한 치료 비방까지 모았다. 그렇게 탄생된 것이 ‘동의보감’(東醫寶鑑)이다. 정유재란으로 잠시 중단됐다가 허준이 혼자 마무리를 해 1610년에 완성됐다. 15년 만의 일이다. 그 이후 동의보감은 ‘민족의 의학 교과서’ ‘한의학의 백과사전’으로 자리매김했다. 400년이 지난 현재도 임상에 쓰이는, 살아 펄떡이는 책이다. 굳이 한의원을 찾지 않아도 식당에서 동의보감을 인용해 ‘메밀의 효능은’ 식의 음식을 소개하는 글을 자주 접할 수 있는 것만 봐도 그 생명력을 짐작할 수 있다. 한의학계에서는 “동의보감 때문에 우리 의학 발전이 늦어졌다.”는 역설적인 말이 나올 정도로 우수성은 일찌감치 검증이 됐다. 중국, 일본 등에서도 명성이 자자했다. 책이 나온 지 150년쯤 지나 정조 때 박지원이 베이징의 한곳에 갔는데 그곳에서 만난 유일한 조선 책이 동의보감이었다. 그것도 당대 최고 학자 능어(魚)가 ‘천하의 보물’이라는 서문을 써서 출판한 것이었다. 일본 에도시대의 한 의사도 동의보감을 ‘신선의 경지’라고 평가했단다. 당시 일본의 권력자들은 동의보감을 구해 읽는 것을 큰 특권처럼 여겼다는 얘기도 있다. 동의보감이 단순한 의학서가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의학을 뜻하는 동의(東醫)라는 이름에서 보듯 중국 의학(北醫·南醫)과 구별되는 ‘의학 자주화’를 선언한 책이다. 중국의 약재에서 벗어나 우리 땅에서 나는 갖가지 향약(鄕藥)을 사용했다. 동의보감 뒤편에 약물을 정리해 놓은 ‘탕액편’이 있는데 인삼은 ‘심’으로, 길경(도라지)은 ‘도랏’(도라지의 옛 이름)으로 적어 놓고 있다.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재를 활용할 수 있게 배려한 것이다. 특히 동의보감은 새로운 관점에서 의학에 접근하고 있다. 지금 보면 자연친화적인 의술이고, 현대의술로 풀지 못하는 질병에 대체의학적 해법을 제시한다. 이런 가치 덕분에 의학서적으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지 않았던가. 보건복지부가 동의보감을 영어로 번역해 세계 각국에 알린다고 한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조만간 해외에서도 허준의 일생을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모자/최광숙 논설위원

    겨울철 내내 가방에 장갑과 모자를 챙겨 다닌다. 그 전에야 칼바람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맨머리로 길거리를 활보해도 견딜 만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모자를 쓸 때와 쓰지 않을 때의 그 ‘현격한’ 차이를 알고부터는 모자는 소중한 친구가 됐다. 계기는 미국에 잠시 머물 때가 아닌가 싶다. 워낙 춥다 보니 그곳 사람들에겐 모자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심지어 정장 차림의 남자들도 털모자를 눌러쓰고 출근했다. 여성들이야 패션까지 겸하니 모자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실용주의가 뭐 별건가. 추우면 모자 쓰고 점퍼 입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사정이 좀 다르지 않나 싶다. 남의 눈을 의식하느라 추워도 외출길에는 가급적 모자 쓰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1월 수십년 만의 추위에 중절모를 쓴 한 중년 남성을 만났다. 연예인이나 쓸 법한 모자를 그는 용감하게 쓰고 다니는 것 아닌가. 유럽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 때문일까. 거리에서 모자 쓰는 멋쟁이들을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봄나물/최광숙 논설위원

    봄동, 취나물, 달래…. 입맛이 없을 때 쌉싸래한 봄나물을 무쳐 먹으면 입맛이 확 돈다. 한살 한살 더 먹으면서 예전의 입맛과 달라지는 것을 확연히 느낀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나물이 좋아진다는 것이다. 나물마다 고유의 향취를 알고 그것을 즐기게 된다. 과거에는 먹지도 않던 나물을 굳이 찾는 것은 나뿐만이 아닌 것 같다. 최근 외국에 있는 큰오빠가 집안 일로 급히 서울에 왔다가 장을 봐 갔다. 멸치와 라면 등은 늘 사 가는 품목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봄철에만 나는 신선한 나물을, 지금 아니면 못 먹는다면서 취나물과 냉이 등을 사 가는 것 아닌가. 물론 새언니의 부탁인데, 그전에 봄나물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가져가 잘 먹었다고 한다. 요즘 외국에 가도 웬만한 한국 음식 재료를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봄나물을 찾기란 어렵다. 기껏해야 취나물처럼 말린 나물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더욱 먹고 싶나 보다. 나른해지는 봄날에 봄나물이라, 입안엔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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