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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솔 키친(Soul Kitchen)/최광숙 논설위원

    똑똑똑, 달그락달그락. 부엌에서 들리는 어머니의 소리다. 어머니의 손길이 도마에 머물 때, 그릇에 머물 때 소리는 달랐지만 그것은 분명한 어머니의 몸짓이다. 어릴 적 잠결에 그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의 존재를 확인하곤 했다. 그 소리만으로 아침 식탁은 이미 풍성함을 느꼈고, 마음은 한껏 푸근해 졌다. 부엌은 어머니의 단순한 일터가 아니다. 어머니의 영혼이 깃든 공간이다. 가족의 건강을 챙기는, 생명의 공간이다. 옛 조상들이 부엌을 지키는 조왕신(?王神)이라는 불(火)의 신을 모신 이유도 거기 있을 터. 미국 록스타 본 조비가 미국 뉴저지에 ‘솔 키친’이라는 자선 레스토랑을 열었다고 한다. 음식을 먹고 난 뒤 각자 알아서 봉투에 돈을 담아 계산하면 된다. 무료 급식소가 아닌, 멋진 레스토랑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자존심을 지키면서 가족과 정식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멋진 식당이다. 자선과 기부가 다양하게, 따뜻하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시각장애인 앵커/최광숙 논설위원

    이탈리아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의 야외 콘서트가 지난 9월 16일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열렸다. 이날 비가 왔지만 그의 열성팬들은 콘서트장을 끝까지 지켰다. 그와 함께 노래한 셀린 디옹은 “신에게 노래하는 목소리가 있다면 보첼리처럼 들릴 것이다.”고 극찬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시각장애를 이긴 그의 천상의 목소리에 반한 팬들이다. 그는 12세 때 축구를 하다 시력을 잃었지만 긍정적인 자세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 변호사로 활동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할 수 없어서 변호사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해 가며 성악 레슨을 받아 결국 스타 테너로 명성을 얻기에 이르렀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오른팔로 불리던 데이비드 블렁킷 전 영국 교육·내무장관도 시각장애인이다. 하원의원으로 의회에 안내견과 함께 등원해 유명해지기도 했다. 장관 시절 비서들이 쳐놓은 점자 보고서나 육성 녹음 테이프를 들으며 일을 능숙하게 처리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평소 “밤에 불을 켜지 않아도 책을 읽을 수 있고, 원고 없이도 청중들을 바라보며 연설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들 가운데 못 보는 것은 약간의 불편일 뿐 장애가 아니라며 어려운 현실을 극복한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인위원회 정책차관보를 지낸 강영우 박사 역시 시각장애인이다. 중학교 때 축구공에 맞아 실명하고 부모와 누나를 잇따라 여읜 뒤 한때 “왜 이런 재앙이 닥치나” 하는 좌절감에 빠졌으나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기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장애인 최초로 국비 유학생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안과의사가 된 장남과 현재 백악관 선임 법률고문이 된 차남을 둔 그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사회의 작은 빛이 되고 싶다던 시각장애인 앵커 이창훈(25)씨가 그제 KBS 뉴스를 진행했다. 점자 단말기를 손으로 훑으며 매끄럽게 뉴스를 전달해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시각장애인이 방송사의 고정 진행자로 투입된 것은 그가 처음이라고 한다. 1급 시각장애인인 그는 올해 7월 523대1의 경쟁률을 뚫고 KBS 앵커로 선발됐다. 그는 방송 후 “약간의 실수가 있어 아쉽지만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도) 떨지 않는 것만큼은 자신감이 있다.”고 말했다. 1년 계약직이라고 하는데, 그의 방송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가 전달하는 뉴스 자체가 ‘희망’을 선사할 테니 말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서울 등 축제/최광숙 논설위원

    앞에는 사물놀이 패가 흥겹게 풍악을 울린다. 조랑말을 탄 신랑과 가마를 탄 새색시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신랑의 벌어진 입을 보니 장가간다고 싱글벙글인 것 같다. 하지만 연지곤지 찍은 새색시의 가마 뒤에 누런 삽살개 한 마리가 쫓는 것을 보면 새색시 마음은 벌써부터 점점 멀어지는 친정집 생각에 애틋해 보인다. 청계천에 아롱다롱 예쁜 등(燈)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올해 세번째를 맞이한다는 서울 등축제다. 청계천의 물 위에 늘어선 다양한 등들은 이처럼 저마다 이야기꽃을 피우며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다. 추운 날 귀마개를 하고 연을 날리고, 썰매를 타며 재미나게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재연한 등을 보면 어릴적 시절로 돌아간 듯 한참 쳐다보게 된다. 저녁에 가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청계천의 ‘물’과 등의 ‘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야경을 연출할 테니 말이다. 이번 축제의 주제는 ‘등으로 보는 서울 옛이야기’라고 한다. 가족들과 함께 청계천에서 ‘과거’로 가는 여행을 떠나길 권해 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광장] 박원순시장 이젠 시민운동가 아니다/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박원순시장 이젠 시민운동가 아니다/최광숙 논설위원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정치나 행정을 업(業)으로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치·행정분야에서는 ‘아웃사이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거대한 서울시를 이끄는, 인사이더 중의 인사이더가 됐다. 아웃사이더 입장에서 정부 정책 등을 비판하기는 쉽다. 어떤 현안에, 어떤 문제 제기에도 책임이 뒤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인사이더가 되면 다르다. 주인된 자세로 책임 행정·책임 정치를 펴야 한다.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해결하고, 이해관계자의 충돌을 슬기롭게 풀어내야 한다. 아웃사이더가 관료사회에 들어오면 자칫 아마추어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말을 많이 한다. 박 시장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당부하고 싶다. 첫째, 하루빨리 위치 전환하라. ‘을’(乙)의 위치에서 ‘갑’(甲)이 됐는데도 스스로 여전히 ‘을’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줘야 하고, 비판받는 위치에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둘째, 균형 감각을 갖춰라. 어떤 정책이든 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갖는다. 밖에서 부정적으로만 보던 편향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갖고 정책을 대해야 정책 실패를 줄일 수 있다. 시민단체 출신으로 현 정부에서 중앙부처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시민단체 투사인 양 행동하는 바람에 청와대 등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적이 있다. 셋째, 공조직을 무력화하지 마라. 시민단체 출신들이 의외로 대화·소통에 약하다고 한다. 공조직의 수장인데도 담당 공무원의 의견을 무시한 채 자신의 의견이 최선이고, 그것을 밀고 나가는 것이 소신이라고 믿는다. 그러니 조직의 자원이 골고루 배분되지 않고,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만 자원이 쏠린다. 박 시장이 법적 권한 기구도 아닌 정책 자문단에 예산안 짜기와 같은 중요 정책결정을 맡긴다는데, 이는 기존의 서울시 공무원들을 불신한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것이자 나아가 그 조직을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넷째, 공무원을 불신하지 마라. 공무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들을 제치고 갈 수는 없다. 기존 조직과 융화돼 그들의 저항 없이 함께 가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다. 과거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초 공직 개혁을 한다고 칼을 내뽑았으나 대부분은 임기 중반쯤 되면 학계나 시민사회 출신보다 검증된 행정관료 중심으로 청와대 진용을 재정비한 것은 그래도 일을 시켜보면 공무원이 더 낫기 때문이다. 다섯째, 조직을 사유화하지 마라. 공조직에서 훈련되지 않은 이들이 갖는 공통점은 자신이 장(長)이 됐다고 자기 마음대로 인사하고, 정책을 만들고, 예산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고 한다. 인사·정책·예산 모두 법과 규정에 따라야 한다. 여섯째, 민원과 정책 제안을 구분하라. 박 시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올라온 제안 등에 바로 답한다는데, 신선해 보일지 몰라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민심을 광범위하게 청취하는 것은 좋지만 걸러지는 장치 없이 응답하면 정책 혼선 등을 초래할 수 있다. 정부 부처에서 대변인을 두고 정리된 부처 입장을 밝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청와대도 ARS 전화로 정책 제언 등을 받지만 99% 이상이 민원성 내용이라고 한다. 김광웅 서울대 명예교수는 저서 ‘서울대 리더십 강의’에서 “실패한 리더 가운데 조직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이가 많은데, 나만 똑똑하고 나만 잘나면 조직이 자신을 뒷받침할 것이라고 생각해서다.”고 지적했다. 박 시장도 거대 조직과 공직 사회를 무시하는 오류에서 벗어나야 성공한 시장이 될 수 있다. 박 시장이 시민운동을 할 때와 다른 행보를 한다고 결코 ‘변절’이 아니다. 관료사회의 패러다임을 빨리 익혀 시행착오나 정책 실패를 줄여 예산·행정력의 낭비를 막는 것이 시민을 위한 길이다. 그러려면 과거 지도자들이 성공신화에 빠져 독단적인 국정 운영을 한 것을 반면교사 삼아 자신의 성공적인 시민운동 경험에 대한 과도한 확신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한복의 딜레마/최광숙 논설위원

    한복, 선 고운 우리 옷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이들을 보면 그 자태에 탄성을 짓게 마련이다. 그러나 막상 한복 입을 일이 생기면 고민이다. 새로 맞출까 말까 생각이 복잡해진다. 우선 값이 만만찮다. 큰돈 주고 마련한 한복을 입을 일이 거의 없다는 것도 부담을 준다. 결혼 같은 집안의 대소사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니 몇 년에 한번 입을까 말까한 한복의 실용성을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갖고 있는 한복을 입으려고 생각도 했으나 색깔이 영 예쁘지 않다. 결국 이런저런 사연 끝에 최근 한복을 맞췄다. 고모가 추레한 한복으로 가기는 좀 그런 것 같다는 주변 여론을 반영해서다. 한복은 선도 중요하지만 색(色)을 어떻게 쓰느냐가 생명이다. 이리저리 저고리와 치마, 고름 등의 색깔을 맞추어 본 끝에 어렵사리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막상 옷을 찾고 보니 뭔가 아쉽다. 다시 소맷동과 고름 등을 손봐야 할 상황이다. 잘 지켜야 할 우리 옷이건만 잔칫날 한복 하나 짓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린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성공의 징표/최광숙 논설위원

    여기저기서 성공 스토리와 성공의 처세술이 쏟아진다. 성공이 삶의 목표인 양 하루종일 뛰어다니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뭐가 성공이냐고 묻는다면 무지갯빛이 아닐까. 저마다 가슴에 서로 다른 성공을 꿈꾸며 산다. 그냥 잘되는 것이라고 하면 뜻은 통한다. 그 잘되는 것도 재산, 권력, 명예 등 어느 것 하나 꼬집어 그것을 이뤄야 성공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예전에 사석에서 한 공직자가 한 말이 있다. 두 가지를 직접 안 하면 성공했다는 것이다. 운전을 안 하고, 외국어를 할 줄 알아도 통역사를 대동하면 그 범주에 든다는 것이다. 운전기사를 두고, 외국인을 만나도 한 나라(회사나 조직)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일부러 통역을 두고 상대방과 대화를 나눈다면 분명 잘나가는 이들일 것이다. 그때 그 공직자는 자신이 모시는 장관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 싶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남는다. 누구나 꿈꾸는 성공을 ‘행복’이라는 말로 바꾸고 싶다. 행복해야 진정 성공한 사람 아닐까. 행복을 향해 달리자.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벼룩시장/최광숙 논설위원

    그날 근사한 자동차 한 대 뽑고, 옷 사고, 돈을 팍팍 썼다. 빨간 장난감 자동차는 500원, 원피스와 청 재킷은 1만 5000원, 영어 동화책은 1000원에 3권. 그래봐야 2만원도 안 된다. 최근 아파트에서 열린 벼룩시장에서다. 며칠간 안내방송을 하기에 뭐 살 것이 있나 살짝 마음이 설레며 기다렸던, 아파트 부녀회가 마련한 행사다. 인사도 없이 지내던 이웃들이 흥정을 하며 꽤 가까워 보인다. 쓰던 물건을 가지고 나온 꼬마들도 어깨에 돈지갑까지 둘러메고 물건을 파는 데 제법 신이 났다. 엄마들도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서 헌옷가지 등을 들고 나온 것 같다. 미국에서 머물 때 살림살이 일체를 벼룩시장이나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샀다. 딱 1년 살면서 새 물건을 사자니 아깝고, 귀국 시 짐이 되는 것이 귀찮아서였다. 이번 주말 조카들이 오면 벼룩시장에서 산 물건들을 선물하려고 한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에서부터 페트병으로 뭘 만들고, 이면지를 연습장으로 쓰는 등 ‘재활용’ 교육을 받아선지 그런 선물에 익숙해서 좋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월가의 금권정치/최광숙 논설위원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전·현직 비서실장 둘 다 월가 출신이다. 백악관 깊숙이 요직을 꿰찰 정도로 월가의 정치적 영향력은 대단하다. 현 시카고 시장인 램 이매뉴얼은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오바마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의 고문을 지내다 영부인 힐러리의 눈 밖에 나면서 백악관을 떠나 투자은행가로 둥지를 튼 곳이 바로 월가다. ‘신의 조직’이라 불리는, 유대인 압력단체인 유대인공공정책위원회(AIPAC)의 핵심인물인 그는 지난 대선에서 월가를 움직이는 유대인 인맥을 십분 발휘해 오바마의 선거자금 모금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의 후임인 윌리엄 데일리 현 비서실장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상무장관을 지냈는데, JP모건 체이스 회장 출신의 전형적인 월가맨이다. 이매뉴얼이 지난 대선자금 모금책이라면, 데일리는 2012년 오바마의 재선 가도에서 월가 돈줄을 끌어들일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다. 취임 초기 금융위기의 진앙지인 월가에서 국민혈세로 보너스 잔치를 벌이자 ‘살찐 고양이’로 질타하며 월가 개혁에 야심차게 나섰던 오바마도 결코 월가의 ‘금권정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월가의 금융개혁을 주도한 엘리자베스 워런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를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7월 소비자금융보호청장에 내정했지만 좌절된 것은 월가에 무릎 꿇은, 수모를 당한 것과 진배없다. 사실 미국은 민주당·공화당 정부 가릴 것 없이 경제 부처 핵심에는 월가 출신이나 친월가맨들이 포진하는 ‘월스트리트 정부’다. 클린턴 정부의 재무장관 로버트 루빈과 부시 정부의 헨리 폴슨 모두 월가의 대표적인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의 CEO를 지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바마 정부의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월가맨이라고 하면 펄쩍 뛰지만 루빈의 제자라는 점에서는 친월가맨이다. 최근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는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대가 월가의 금융기업들이 막대한 후원금으로 정치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치후원금 백서를 내는 워싱턴의 책임정치센터(CRP) 분석 결과, 월가의 금융기업들이 1998~2008년 50억 달러(약 5조 7000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상·하원의원 등에게 후원금으로 냈다고 한다. 그야말로 ‘돈으로 의원들을 사는 현실’이 통계로 고스란히 드러난다. 우리의 청목회 사건도 금권정치의 산물인데 남 흉볼 처지가 못되는 것 같다. 돈 앞에는 권력도 고개를 숙이는 게 세상사인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뉴욕의 가을/최광숙 논설위원

    뉴욕은 참 매력적인 도시다. 그러니 외국인들이 많이 찾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다르다. 땅덩어리가 워낙 넓다 보니미국 벽촌에서 구경 온 이들이 더 많다. 뉴욕은 계절이 없다. 일년 내내 사람들로 활기차다. 그래도 얼마간 뉴욕에서 살아본 경험으로는 가을이 제일이지 싶다. 센트럴파크에 가면 단풍이 물든 진짜 가을이 있다. 배우 멕 라이언의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와 리처드 기어의 ‘뉴욕의 가을’을 통해서도 많은 이들이 뉴욕의 가을이 얼마나 멋진지를 느꼈을 것이다. 한국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잔디밭에 누워 가을 하늘을 쳐다보면 세상 부러울 것이 없다는 느낌이 차오른다. 다만 금싸라기 땅 뉴욕 맨해튼에 어마어마한 공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한없이 부럽다. 뉴욕에서는 센트럴파크에 인접한 아파트가 비싸다. 번화한 도시에서 녹색 공간의 가치가 반영된 것이다. 최근 뉴욕이 월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뉴욕의 가을 하늘을 가르고 있는 분노의 함성에 마음이 씁쓸해진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분유 한숟가락/최광숙 논설위원

    그땐 그랬다. 우유가 귀하다 보니 갓난쟁이 동생들의 분유를 늘 노리곤 했다. 어머니가 안 보는 한순간을 포착해 몰래 한 숟가락씩 분유를 입에 탈탈 털어넣었다. 가루라서 잘못 먹으면 목이 콱 메기 때문에 입안에 살살 풀어서 잘 먹는 요령도 자연 터득했다. 어머니 모유가 모자라 일찍이 나에게도 분유를 먹을 기회가 왔었지만 모유 맛에 길들여졌던 내가 버티는 바람에 나는 분유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당시에는 우유 자체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다. 깡통에 든 분유도 꽤나 비쌌던 것 같다. 요즘에야 흔하디흔한 병 우유나 종이팩 우유도 없었다. 가끔 시골 목장에서 갓 짜온, 따끈한 우유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우유였다. 우유병도 없어 코카콜라병에 담아 팔았으니 옛날 얘기다. 한 우유 회사가 곧 우유값을 10% 가까이 올린다는 기사를 봤다. 우유값 인상 얘기만 들어도 예전에 어머니가 동생들 분유값을 걱정하던 일과 우유 훔쳐 먹던 일이 눈앞에 떠오른다. 어린아이들의 생명줄인 우유값은 늘 그자리였으면 좋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패밀리 가이(Family Guy)/최광숙 논설위원

    클린턴 미국 행정부에서 국무부 명대변인이던 제임스 루빈은 2000년 4월 말 공직에서 물러났다. “아이 양육을 위해서”였다. 브리핑룸에서 만나 결혼한 CNN방송 기자 아만포(현 ABC 앵커)가 아이를 낳자 직장을 던진 것이다. 런던 특파원이던 부인과 살기 위해 런던으로 이사까지 했는데, 외신들은 아만포가 “최고의 보모를 구했다.”고 전했다. 외국에서는 정·관계 고위직 인사들이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며 권력을 포기하고 가정으로 돌아간 경우가 적지 않다. 팀 피셔 전 호주 부총리는 1999년 자폐증이 있는 다섯 살 장남을 돌보겠다며 공직에서 물러났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도 재임 중이던 2000년 넷째 아이를 낳자 부인과 아기를 돌보기 위해 6주간의 출산 휴가를 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부인이 출산을 했다고 남성들이 단 하루라도 휴가를 내면 “당신이 애를 낳았냐?”고 상사로부터 핀잔을 받던 한국과 비교하면 달라도 너무 다른 문화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 ‘가족’(family)은 이미 정치 영역에 들어온 핫 이슈다. 원래 ‘가족의 가치’는 공화당이 선점한 어젠다이지만 지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이던 오바마 대통령도 부인, 두 딸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먹는 장면 등을 보이며 단란한 가정을 연출한 것도 다 표를 위해서였다. 2004년 대선 후보자로 거론됐던 존 에드워드 상원의원은 혼외정사 문제로 사실상 정계에서 퇴출당한 상황이다. 하지만 성공한 이들이 패밀리 가이일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면 적절한 시간과 에너지 분배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타계한 스티브 잡스도 워커홀릭으로,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혁신적인 제품으로 기업을 일구고 세상을 놀라게 했지만 정작 가정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생애 마지막에 전기 집필을 허락한 이유에 대해 “나는 아이들 곁에 늘 함께하지 못했다. 아빠가 왜 그래야 했는지 아이들이 이해하고, 아빠가 무엇을 했는지 알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의 아내 로런은 남편을 떠나 보낸 날 “공적 인생에서 스티브는 선지자였지만 사적인 삶에서는 가족을 아끼는 남자였다.”는 글을 남겼다고 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 스티브가 선택한 최고의 지향점은 패밀리 가이였던 것 같다. 뛰어난 천재들이 자신의 가족을 희생하는 덕분에 지구촌 가족들의 삶은 더 풍요로워졌다는 사실을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푸틴과 재벌/최광숙 논설위원

    “당장 그 보좌관을 청와대에서 내보내라.” 전두환 전 대통령은 뒤늦게 재벌가 패밀리가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으로 일하는 것을 알고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재벌가 일원이 경제 정책을 비롯한 국정 전반에 대해 모든 보고를 받는 비서실장의 측근으로 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 전 대통령의 뜻이었다는 게 당시 비서실장을 지낸 인사의 회고다. 최고 권력자와 재벌의 관계는 변화무쌍한 것 같다. 가까워 특혜를 보기도 하고, 눈 밖에 나면 끝장나기도 한다. 전두환 정권 때 ‘왕자표 고무신’으로 출발했던 국제그룹이 공중분해된 것도 사실 ‘괘씸죄’에 걸린 것이라는 게 재계의 정설인 것을 보면 그렇다. 당시 재계에서는 “영부인이 하는 일에 소홀했다.” “대통령 주최 만찬에 양정모 회장이 폭설로 늦게 참석했다가 밉보였다.”는 등 소문이 떠돌았다. 정권에 밉보여 재벌이 해체된 경우라면 러시아를 빼놓을 수 없다. 푸틴 대통령은 당선 이후 ‘올리가리히’로 불리던 신흥재벌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기업·재산을 빼앗긴 신흥재벌 베레조프스키와 구진스키 등은 영국 등으로 아예 도망을 가야 했다. 한때 ‘세계 최대 갑부’로 통하던 석유회사 유코스의 호도르코프스키 전 회장은 워낙 푸틴에게 찍혀 회사도 날리고, 횡령 등의 혐의로 13년의 징역형을 받고 현재 시베리아 감옥에 있다. 그들은 옐친 시절 정경유착으로 국영기업이던 원유·가스·광물 등 국가 기간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의 도움으로 대통령이 된 푸틴이지만 그는 막대한 재력을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을 눈 감아주지 않았다. 서방국가에서는 그런 그를 정적을 과감히 제거하고 언론을 탄압하는, 잔인한 권위주의 폭군으로 여겼지만 러시아 국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옛 소련 붕괴 후 정치적·경제적 혼란에 빠진 러시아를 ‘강한 러시아’로 키웠던 푸틴의 반재벌 행보는 총리 시절에도 이어져 국민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던 것이다. 2009년 6월 푸틴 총리는 금융위기로 3개월째 조업을 중단하고 임금을 체불한 공장을 찾아가 공장 소유주인 러시아 최고 부호 데리파스카에게 “(공장 재가동을 위한) 합의서에 서명하라.”고 소리치며 합의문과 펜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푸틴 앞에서 벌벌 떨며 서명하던 재벌의 모습은 TV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자본주의 국가의 지도자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약자의 편에 선 것으로 비춰지는 그 모습에서 신선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시심(詩心)/최광숙 논설위원

    며칠 전 한 중년 남성이 내 눈에 들어왔다. 한참 서서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다. 어깨 너머로 봤더니 지하철 승강장 앞 보호문에 붙은 시(詩) 한편을 자신의 서류 봉투 뒷면에 베끼고 있는 것 아닌가. 남들의 눈길을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시 한편을 다 옮겨 적어서인지 후다닥 자리를 뜬다. 그가 떠난 자리의 시가 궁금해졌다. “떠난 사람은 돌아와도, 떠난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내용의 ‘물망초’라는 시다. 한번 화살 시위를 벗어난 사랑을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속에는 잔잔한 울림이 생긴다. 어긋난 사랑도 인연이 깊으면 다시 이어질 수도 있는데…. 연어처럼 결국 고향의 품으로 돌아오는 사랑도 봤기에 그 시가 나한테는 그리 공감을 주지 못했다. 그래도 그 시가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짧디짧은 두 문장의 시 한편이 지나가는 행인의 발길을 잡았다는 점이다. 한편의 시가 일상에 매몰될 법한 메마른 중년 남성의 마음을 붙들어 맬 수 있었던 사실이 가을을 잊고 있었던 내 가슴을 파고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노안(老眼)/최광숙 논설위원

    흰머리가 늘면서 눈도 나이 들었다는 신호를 보낸다. 가까운 글씨가 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안경 렌즈를 바꾸러 갔더니 주인이 다목적 렌즈를 권한다. 평소 근시 안경이지만 가까운 글씨를 보면 원시 안경으로 자동으로 바뀐단다. 눈이 새로운 렌즈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를 들어 사양했다. 내심 ‘돋보기’ 렌즈를 끼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리라. 얼마나 더 버틸지는 모르겠으나 책이나 신문을 볼 때마다 안경을 벗고 봐야 글씨가 잘 보이니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지하철에서 신문을 볼 때면 머리에 안경을 선글라스처럼 올려 놓고 봐야 하니 “나, 나이 들었소.” 하고 티 내는 것 같아 영 부담스럽다. 어디선가 노안이 오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글을 읽었다. 나이 들면 눈앞의 작은 일에 신경쓰지 말고, 크게 보라는 뜻이란다. 나이 들어서까지 사소한 일에 시시콜콜 옳으니 그르니 하면 그처럼 민망한 일도 없으리. 지혜와 여유로움, 너그러움을 노안이 주는 위안으로 삼아야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토란 농사/최광숙 논설위원

    해가 어둑어둑해지면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오셨다. 아침 일찍 집을 나가셨다가 저녁이 돼야 귀가하시는, 반복되는 그 일상은 돌아가시기 몇 달 전까지 계속됐다. 도시락까지 싸가지고 다니셨는데, 어머니의 그런 일과는 예전에 살던 우면산 자락의 공터를 일궈 농사를 지으면서부터다. 처음 고추밭을 일구시더니 자신감을 얻으셨는지 점차 영역을 넓혀 나갔다. 산 아래의 한 사찰 인근 텃밭에는 토란과 상추·쑥갓 등을 심었고, 등산로 입구에는 고구마까지 심었다. 특히 토란밭을 아끼셨는데, 밭 둘레에 작은 돌을 쌓아 예쁘게 꾸몄다. 쓸모없던 땅뙈기가 어머니의 부지런한 손길로 나날이 꽃밭처럼 변신하는 과정은 놀랍기만 했다. 어머니가 토란 농사를 하기 전에는 커다란 연잎 모양의 토란을 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 달걀 모양의 토란으로 국도 끓이지만 토란 줄기는 잘 말렸다가 육개장을 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가을철 토란을 볼 때면 농사일에 푹 빠졌던 어머니가 더욱 생각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철가방/최광숙 논설위원

    1895년 10월 일제에 의해 명성황후가 시해된 직후 경복궁. 홀로 남겨진 고종황제는 궁내의 친일파 세력이 자신마저 독살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철가방’이다. 미국인 선교사들이 궁 밖에서 만든 음식을 양철통에 담아 자물쇠에 채워 가져간 것이다. 당초 나무로 만들어졌다는 중국집 짜장면 배달 가방인 철가방은 지금의 모습을 갖춘 이후에도 무한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소설가 김훈씨는 버려진 철가방을 주워다 원고지나 취재수첩을 놓는, 간이 서가로 쓰고 있다고 한다. 개그맨 전유성씨가 경북 청도에 문을 연 코미디 전용극장은 짜장면, 짬뽕, 소주병 조형물로 장식된 철가방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도 철가방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배달의 기수 ‘철가방맨’들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라고도 말하기 어려울 정도의 열악한 노동환경에 처한 그들의 철가방에는 그래서 처절한 아픔과 슬픈 사연들이 배어 있다. 철가방 인생이 빚어낸 감동의 스토리가 유독 가슴 절절한 이유이기도 하다. 고려대 앞 중국집에서 일하던 김대중씨. 짜장면을 시키면 짬뽕 국물도 주는 고객감동 서비스로, 그는 예전에 ‘고려대 철가방 번개’로 명성을 날렸다. 요즘 ‘태풍이 불어도 철가방은 달린다’는 주제로 대학 등에서 스타강사로 활약 중이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얼마나 열의를 갖고 하는가에 따라 일의 승패가 좌우된다.”고 굳게 믿은 그였기에 희망의 전도사로 거듭날 수 있었다. 최근 또 한 명의 철가방맨이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 한 달 70만원 벌이임에도,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들을 후원하던 ‘철가방 아저씨’ 김우수(54)씨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창문도, 화장실도 없는 1.5평의 고시원 쪽방에 살면서도 작지만 큰 이웃사랑을 펼쳤던 삶이기에 그를 향한 추모의 물결이 넘실댄다. 보험금마저 어린이재단 앞으로 남긴 그의 충만한 삶.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나 7세 때 고아원에 맡겨졌고,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돌았지만 불우 어린이들을 후원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했다. 그의 삶이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사회의 보살핌을 받아야 마땅했던 그가 오히려 사랑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외로운 삶이었지만, 그의 마음속은 우리보다 훨씬 풍요로웠는지도 모른다. 책상 위에 놓여진, 그가 후원했던 어린이들 사진을 보면 말이다. 그가 세상에 전해준 사랑의 온기가 식지 않고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따뜻한 의사/최광숙 논설위원

    누군가 편작(扁鵲)에게 “당신은 의술에 있어서 신(神)”이라고 하자 편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의술에 있어 자신의 큰형이 가장 뛰어나고, 둘째형이 그 다음이며, 자신이 꼴찌라고 했다. 하지만 돈은 자신이 가장 많이 벌고, 그 다음 둘째형, 그 다음은 의술이 가장 뛰어난 큰형이라고 했다. 이유인즉 큰형은 사람들이 병이 나지 않도록 했고, 둘째형은 작은 병이 큰 병이 되지 않도록 했고, 자신은 큰 병이 되어야 이를 발견하고 고친다는 것이다. 중국 주나라 때 전설적인 명의인 편작. 괵나라 태자의 급환을 고쳐 죽음에서 되살려낸 편작이건만 자신을 하잘것없는 의사로 낮췄다. 과연 천하의 명의다운 태도다. 편작의 지적처럼 의사도 다 똑같은 의사가 아니다. 실력이 출중한 의사가 있는가 하면, 돈벌이에 급급한 의사도 없지 않다. 실력 있는 의사도 능력만 뛰어난 이가 있는가 하면, 인품까지 갖춘 의사도 있다. 지금 병원에도 서비스 개념이 도입돼 의사들도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친절하지 않은 의사들이 여전히 많은 것이 사실이다. 1993년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연세의료원이 도입한 ‘환자의 권리장전’에서 ‘모든 환자는 인간으로서의 관심과 존경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내용을 첫째 항목으로 명시한 것도 환자들 위에 ‘군림’하는 의사들을 향한 메시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고 이태석 신부가 지난해 선종 이후에도 여전히 우리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펼쳤던 인술(仁術) 때문이다. 그는 진흙과 대나무로 움막 진료소를 만들어 하루 200~300명의 환자를 돌본, 가난한 이들의 따뜻한 의사였다. 최근 한 미국의 80대 환자가 시카고대 병원에 “앞으로 환자와 소통하는 의사를 많이 배출해 달라.”는 취지로 480억원을 쾌척했다. 담당 의사가 최선을 다해 자신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환자의 눈높이에 맞춰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태도에 감동 받았다는 것이다. 담당 의사인 시글러 박사는 “의사가 치료과정에서 질병에만 관심을 두고 환자들을 소외시키고 있다.”며 “의사와 환자들의 소통이 원활할 때 치료 효과가 커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픈 것도 서러운데 ‘아랫것’처럼 환자를 대하는 의사들의 거만하고 무례한 태도를 병원에서 한번쯤 경험했다면 정말 공감하는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의사의 따뜻한 위로와 격려, 그 자체가 의술이다. 성적 순이 아닌 인성(人性)이 꼭 필요한 직업이 바로 의사라는 사실을 의사들만 모르는 것은 아닐는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파스칼의 신학논쟁, 정의를 되묻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인간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표현했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 그가 33세의 젊은 날 격렬한 신학 논쟁에 열정적으로 가담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안혜련 옮김, 나남 펴냄)는 명상록 ‘팡세’에 이은 파스칼의 또 다른 역작이다. 17세기 프랑스에서 제주이트(이냐시오 데 로욜라가 만든 예수회에 소속된 사제들)와 장세니스트(네덜란드 신학자 얀센의 사상을 추종하는 사람들) 간 신학 논쟁이 한창일 때 편지 형식으로 예수회 신부들의 도덕적 해이를 질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당시 우월적 위치에 있던 예수회 신부들이 설파한 도덕 지침인 ‘결의론’, 즉 무엇이 죄가 되고 안 되는지에 대한 모호한 기준을 비판한다. 나아가 무엇이 거짓과 구별되는 진실과 정의인지를 말하고자 한다. 그렇기에 책은 단순한 신약 관련 논쟁서가 아니다. 언뜻 보면 이 책은 신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비롯한 몇 가지 기독교 교리에 관한 이견에서 출발하였기에 신약서로 읽히기 쉬운 함정이 있다. 그 함정을 훌쩍 뛰어넘는다면 350년 전 파스칼이 세상에 던진 ‘진실과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담론과 만날 수 있다. 실질적으로 정치적, 종교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의가 아닌 힘이라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그는 ‘힘 없는 정의의 무력함’을 절실하게 느끼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믿음을 여전히 보여준다. 그가 예수회 신부에게 “진리가 여러분 편이라면, 진리는 여러분을 위해 싸울 것이고, 여러분을 위해 승리할 것이다. 여러분의 적이 누구든 진리는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설파한 것도 그 때문이다. 책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또 다른 중요한 부분은 이 책이 프랑스 산문 문학의 정수라는 점이다. 파스칼과 동시대를 산 라퐁텐은 물론 볼테르조차 인정했듯이 책은 비판적 이성과 날카로운 감성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작품의 배경에는 신의 은총과 인간의 자유의지, 장세니즘과 제주이트, 17세기 프랑스 절대왕정 체제와 프롱드 난, 18세기 프랑스 대혁명에까지 맥이 닿아 있는 정신사의 한 가닥 등 흥미롭고 복합적인 여러 사슬이 얽혀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2만 5000원.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눈썹 문신/최광숙 논설위원

    한때 여성들의 눈썹 문신이 유행이었다. 시골 할머니들까지 숯검댕이처럼 눈썹 문신을 했다. 보통 문신은 성형외과에서 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목욕탕·미용실에서 은밀히 이뤄지곤 했다. 나 또한 예전에 목욕탕에서 눈썹 문신을 권유받곤 했다. “눈썹 꼬리만 살짝 그리면 예쁘겠다.”고 유혹했지만 거절했다. 눈썹 없는 모나리자도 그리 아름다운데 나 정도야 ‘양반’이지 하는 마음보다는 뭔가 얼굴에 손대는 것이 싫었다. 까맣게 갈매기 눈썹만이 얼굴에 동동 떠 있는 것 같은 문신이 ‘억지 춘향’ 같아서다.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이가 늘어서인지 요즘 눈썹 문신을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화장에도 자연주의 바람이 불어서 가급적 성형 분위기를 안 내려고 한다. 그런데 거꾸로 뒤늦게 남성들 사이에 눈썹 문신 바람이 부나 보다. 최근 한 정치인도 눈썹 문신을 했다고 한다. 혹여나 남성들이 선 굵고 강한 눈썹이 ‘대운’(大運)을 불러들인다는 속설을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광장] 이젠 청춘들을 보듬을 때다/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젠 청춘들을 보듬을 때다/최광숙 논설위원

    누구나 한번쯤 깜깜한 긴 터널의 한복판에 갇힌 적이 있을 거다. 차가 앞뒤로 꽉 막혀 옴짝달싹할 수 없는 답답함. 언제 뚫릴지 기약없음이 더 힘들기만 하다. 언제 햇빛을 볼 수 있으려나…. 지금 우리 젊은 청춘(靑春)들이 처한 상황이 딱 그래 보인다. “청춘!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렌다.”는 ‘청춘예찬’이 무색하기만 한 그들이다. 생활고에, 비싼 등록금에, 아르바이트에 허덕이다 어렵사리 대학을 졸업해도 기다리는 것은 취업난. 그걸 뚫고 나가도 비정규직 인생일 뿐. 88만원짜리 비정규직 일자리도 못 구해 결혼도 못하고, 결혼해도 출산하기 겁난다는 가여운 청춘들이 부지기수다. 그래서 그런가. 유독 이 시대에 ‘청춘’이 난무한다. ‘청춘 콘서트’에 열광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책이 날개돋친 듯 팔려 나간다. ‘힘내라 청춘’ ‘열혈청춘’ ‘청춘불패’ ‘청춘 문학기행’…. 출판계만 하더라도 청춘이 대세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이나 연애, 뭐하나 되는 일이 없는 29세 백수인 철수. 전자제품처럼 성능을 따져 값을 매기는 이 사회, 낙오자들의 삶을 그린 소설 ‘철수 사용설명서’와 같은 ‘루저 문학’까지 등장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등장 닷새만에 대권후보로 훌쩍 떠오른 것도,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의 책이 8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한 것도, 아름다운 청춘을 잃어버린 청춘들의 성원에서 비롯됐다. 젊은이들의 응원에 나섰던 두 교수가 아이로니컬하게도 그들 덕에 스타가 된 이 세상. ‘청춘의 멘토’로 불리는 안 교수가 일으킨 안풍(安風)을 놓고 한창 정치공학적인 분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그 바람의 정체를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망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강남좌파냐 아니냐.”는 등 순전히 여의도 시각으로만 이를 바라본다면 이 시대 허덕이는 청춘들의 문제를 또다시 외면하는 우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춘 콘서트’는 청년들을 향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였다.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짓눌려 어깨를 펴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돕고 용기를 불어넣고 싶었다.”는 안 교수의 말이 ‘청춘 콘서트’의 본질이 아닐까 싶다. 그 알맹이가 빠진 채 ‘안철수 현상’을 논하고, 그의 거취를 좇아 정치권의 지형만을 그리는 세태가 안타깝기만 하다. 김 교수 역시 불투명한 미래를 품고 힘들게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꿈과 도전을 외쳤다. “책이 예상외로 많이 팔리는 것을 보면서 짠하고 안타깝다.”는 김 교수의 소회에 우리 청춘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두 교수가 ‘누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혹자는 “과거 세대들도 어렵고 힘든 ‘맨발의 청춘’ 시절을 보냈다. 지금만 그런 게 아니다.”고 할지 모르겠다. 틀린 말이 아니다.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배고픔의 가난을 이기고자, 민주화 운동의 물결 속에 젊음을 다 빼앗긴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고난을 뚫고 나오면 기회는 있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을 했고, 월세방에서 시작한 결혼 생활이지만 방 한칸 내 집을 마련하고, 아이들을 낳아 힘겹지만 학교 보내고, 어렵사리 할 것은 다했다. 하지만 지금 청년 세대들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이미 치워진, 출구가 없어진 세상에 놓여졌다. 더 이상 정부가 청년 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희망과 도전을 꿈꿀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와 정치권은 말로만 청년 문제를 떠들었지 그들의 현실에 진정 가슴 아파한 적이 있던가. 뼈아프게 반성해야 한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펴낸 ‘2011 고용전망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전체 고용은 금융위기 이전 수준으로 회복돼 가고 있으나 올 1분기 청년 고용은 3년 전보다 5.4%나 감소했다. 청년층이 무너지면 우리의 미래도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허약한 청년층으로 이 나라가 강한 체력을 가질 수는 없는 법이다. 청년 세대들을 보듬는 실질적인 대책이 하루빨리 나와야 할 때다.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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