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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책 쓰기/최광숙 논설위원

    인물 평전을 좋아한다. 세상사 돌아가는 얘기보다 한 사람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것이 더 흥미로울 때가 있다. 평전을 고를 때 주로 외국인들이 쓴 책들을 고른다. 주변 몇 사람의 얘기를 듣고 일방적인 관점에서 쓴 우리네 평전은 마치 날림공사를 보듯 부실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몇달 전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이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은 과학 저널리스트인 저자가 10년에 걸쳐 수백명을 1000여 시간 인터뷰해 엮어낸 것이다. 그녀가 책 후기에서 고맙다고 언급한 이들만 무려 220여명(너무 많은 숫자여서 일일이 세어 보는 데도 한참 걸렸다)이나 된다. 책을 쓰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스티브 잡스의 전기를 쓴 윌터 아이작슨만 해도 잡스를 2년에 걸쳐 40여 차례 직접 인터뷰하고 그 주변 인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를 싫어하는 이들도 만나 잡스 스스로도 모를 잡스의 내면 세계까지 적었다. 평생 그런, 제대로 된 책 한 권이라도 쓸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북한판 소녀시대/최광숙 논설위원

    지금 대중문화계는 가히 걸 그룹의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녀시대, 원더걸스, 티아라, 카라…. 아시아를 훌쩍 뛰어넘어 유럽까지 뒤흔드는 K팝의 열기를 선도하는 중심축이다. 우리 걸 그룹 역사를 되돌아보면 펄 시스터즈의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한다. 배인순·배인숙 자매로 결성된 펄 시스터즈가 ‘커피 한잔’ ‘님아’ 등을 부를 때 가요계는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고 한다. 미니스커트나 나팔바지를 입고 열정적으로 노래하고 춤추는 그들은 분명히 달랐다. 과거 가수들이 오디오 시대를 걸어갔다면 그들은 대중들에게 눈까지 즐겁게 하는 비디오 시대를 열어 보인 것이다. 걸 그룹으로는 드물게 가수왕까지 등극하며 1960, 70년대 가요계를 평정했다. 배인순씨가 1976년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과 결혼하면서 그룹은 해체됐다.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걸 그룹은 1930년대 일본 강점기 조선악극단에서 활동한 저고리 시스터라고 한다.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 ‘오빠는 풍각쟁이야’의 박향림 등 당대 최고 여가수 4명이 팀으로 일본 공연도 했다. 하지만 음반까지 냈던 공식 걸 그룹은 김시스터즈다. 이난영씨가 딸과 조카를 훈련시켜 만든 그룹이다. 1959년 미국에 진출, 우리나라 가수로 최초로 빌 보드 차트 7위까지 오를 정도로 활약이 눈부셨다. 2009년 원더걸스의 미국 진출보다 무려 50년이나 빠른 셈이다. 펄 시스터즈 이후 바니걸스, 서울시스터즈, 희자매 등 바야흐로 걸 그룹의 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1980년대 걸 그룹은 다소 침체기를 겪다가 1990년대 SES, 핑클 등 기획사의 철저한 기획으로 탄생한 현재의 걸 그룹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최근 인천 부평아트센터에서는 걸 그룹 80년 역사를 되돌아보는 전시회가 열릴 정도로 요즘 걸 그룹은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북한 전문매체 뉴포커스는 최근 북한에도 소녀시대와 같은 미모의 여성 위문 공연단이 있다고 소개했다. 우리의 걸 그룹과는 다르지만 북한 군인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구성됐다고 한다. 공연단은 일반 군인을 위한 공연단과 대외선전을 위한 특별 공연단으로 나뉜다. 특별공연단원들은 외모가 출중한 여성들로 화려한 복장과 화장으로 북한 군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고 한다. 역시 어떤 형태의 걸 그룹이든 시대와 체제를 초월해 대중들의 사랑을 받나 보다. 우리 소녀시대들이 북한 땅에서 공연을 한다면 주민들의 반응은 어떨까. 자못 궁금하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광장] 종북좌파의 국회 ‘진지’ 구축 막아야 한다/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종북좌파의 국회 ‘진지’ 구축 막아야 한다/최광숙 논설위원

    얼마 전 모임에 갔더니만 누군가 “참해 보이는 얼굴과 말솜씨에 국민도 속고, 당원도 속았다.”고 했다.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를 두고 한 말이다. 2008년 통합진보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에 입당할 때만 해도 “노동자·농민이 당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고 앞으로 그 기반이 흔들림 없이 유지돼야 한다.”고 ‘순수한’(?) 열정을 발산하던 그를 떠올린다면 그럴 만하다. 그러나 그는 당권파가 주도한 비례대표 경선 부정과 폭력 사태에 대해 이상한 궤변을 일삼다 대표직을 내놓아야만 했다. 국민들의 판단이 잘못돼서 속은 게 아니다. 학력고사 수석·서울법대 졸업·인권변호사 출신의 머리 좋은 그가 영악한 ‘두 얼굴’로 국민을 철저히 속인 거다. 지금 보니 통합진보당의 기반은 당권자들이고, 노동자·농민은 들러리일 뿐이다. 오죽하면 대표적 진보성향의 최장집 교수도 당권파를 “민중과는 별로 관계없는 중산층 급진주의자들”이라고 했겠는가. 이 전 대표는 평소 ‘내 마음과 같은 그녀’라는 별칭으로 불리길 좋아했다고 한다. 사람들의 마음이 서로 다르지 않고, 같은 마음으로 살았으면 해서란다. 그래서 자신의 에세이집 제목도 ‘내 마음과 같은 그녀’로 했으리라. 하지만 이번에 알고 보니 오로지 당권파의 마음만 헤아렸던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통합진보당을 제외한 어느 당도 당원을 주권자로 여기고 거기에 맞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한 말도 빈말이었다. 그 말이 진정이었다면 대다수 당원들의 뜻에 따라 부정 경선으로 당선된 이석기·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를 주저앉혔어야 했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도 이제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때도 있었지만 이젠 자신이 진보 분열의 중심 인물로 몰락했다. 이정희를 비롯해 이석기·김재연 등 당권파는 애국가도 부르지 않고 북한핵·북한의 3대 세습 등의 문제에 대해 반대한다고 딱 부러지게 답을 하지 않는다. “종북(從北)보다 종미(從美)가 더 문제”라는 발언까지 서슴지 않으니 종북 의혹을 받을 수밖에. 당의 최대 주주인 민주노총이 지지를 철회하면서까지 의원직 사퇴를 압박해도 끄떡도 않는다. 그들은 국회라는 제도권 정치에 거점을 마련해 ‘진지전’(陣地戰)을 전개하려는 생각일 게다. 당권파 6명이 곧 국회에 진출한다면 그야말로 그들은 그곳에서 온갖 특권을 행사하며, 과거 음습한 곳에서 암약하며 어렵게 팠던 진지가 아니라 이제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또 다른 진지를 구축하기 위한 갖가지 시도를 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 공산당 창설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폭력혁명적 투쟁에 못지않게 이데올로기적 투쟁에 비중을 뒀다. 제정 러시아같이 낙후된 곳에서는 사회체제를 한 방에 뒤집어업는 ‘기동전’(機動戰)이 필요하지만, 사회가 어느 정도 발전한 곳에서는 언론·교육·대중문화 등 여러 사회 영역에서 혁명의 가치관과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기 위해 각자의 참호에 숨어 ‘기동전’을 전개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치 참여를 강조했다. 이정희의 변신 못지않게 놀라운 것은 폭력 현장에 등장한 ‘소년병’들이다. 1970~80년대 군사 독재 타도를 외치던 시절인 양 과격한 행동을 하는 그들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도 진지전 개념으로 보면 해석이 가능하다. 진보의 탈을 쓰고 과거 활동했던 극렬 좌파가 여전히 대학가에서 독자적 ‘진지’를 구축하고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재생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대안학교’라는 간판을 달고 종북 성향이 두드러져 보이는 교육을 하는 전남 강진의 ‘늦봄문익환학교’도 교육계에서의 ‘진지’ 구축의 일환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찌 청소년들의 졸업식에 북에서 보낸 축사가 울려퍼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어렵게 쌓아 온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는 종북 세력의 진지 구축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작은 키/최광숙 논설위원

    남들은 키가 작다고들 하지만 다행인지 키에 대해 별로 고민해 본 적이 없다. 예전에 “키가 작지 않아요?”하고 어머니께 물어보면 늘 “작은 키는 아니다.”라고 하셨다. 자식 기를 죽이지 않으려 하셨던 속 깊은 말씀인 줄 뻔히 알면서도 그런 어머니의 긍정적인 마음을 배웠다. 2007년 금강산 육로 관광이 열리면서 취재차 북한 방문길에 나선 적이 있다. 강원도 고성을 지나 군사분계선을 관광버스로 통과했는데 곳곳에 총을 들고 서 있는 북한 군인을 만났다. 언뜻 보기에 초등학생 아이들이 실물 모양의 큰 장난감 총을 들고 있는 줄 착각할 정도로 키가 작고 체격도 왜소했다. 다소 까무잡잡한 얼굴을 봐도 아직 험난한 일을 하기에는 너무 앳되었다. 그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얼마 전 북한 남성의 평균 키가 남한보다 8㎝가량 작다는 조사 결과를 봤다. 배 곯는 북한의 참상을 아는지라 그리 놀랄 통계가 아니었다. 조상의 뿌리가 같건만 이러다가 남북한 주민들의 DNA 자체가 달라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힐러리의 민낯/최광숙 논설위원

    몇년 전 아침 생방송을 위해 이른 새벽 방송국에 도착한 한 여성 국회의원을 보고 방송 스태프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머리 손질은 물론 화장까지 완벽하게 하고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면 다른 출연자들의 경우 부스스한 머리에 세수만 하고 나와 방송국에서 화장하고 머리를 드라이한다고 한다. 평소 강단 있고 깐깐한 성격으로 알려진 한 중진 여성의원은 의원회관 집무실에 헤어 세트기를 두고 직접 머리를 매만진다고 한다. 여성 정치인에게 외모는 경쟁력이다. 전문성·정치력 외에 호감 가는 이미지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자 한다. 나아가 패션 등을 통해 대중에게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메르켈 독일 총리만 하더라도 총리로 당선되었을 당시에는 ‘동독 출신의 시골뜨기’로 불렸지만 이젠 깔끔한 화장과 헤어스타일, 패션으로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여성이라는 숙명 때문에 여성 정치인들은 ‘패션의 정치학’의 범주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미국 영부인들의 패션이 늘 화제가 되는 것도 패션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읽고자 하는 대중들이 있어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부인 미셸은 지난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의 방미 때 입은 붉은 색 이브닝 드레스가 영국 출신 알렉산더 매퀸의 작품으로 알려지면서 “영부인이 과연 미국의 고용 문제를 생각이나 하나.”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후 미셸은 미국 디자이너의 옷을 선택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영부인 시절 단발·커트 등 다양한 헤어 스타일을 선보였다. 변호사 출신답지 않게 “백악관에서 가장 중시한 것은 헤어스타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할 정도로 이미지에 신경을 썼다. 그런 그가 최근 인도 공식 행사에서 화장을 하지 않고 입술만 살짝 바른 채 검은 뿔테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미지보다 업무에 집중하는 국무장관의 모습을 보여 줬다.”고 평가했다. 패션을 버리고 일을 택했다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힐러리의 이런 이미지 변신을 2016년 대선을 겨냥한 포석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지난 총선 때 작가 공지영씨가 투표장에 서 있는 자신의 생얼을 공개하자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가 “투표를 독려한다고 올린 공씨의 생얼을 보고 토할 뻔했다.”고 말해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연예인의 민낯은 순수 미인인지 여부를 보여주지만 정치적 행동을 하는 이들의 민낯은 정치적 해석을 낳을 뿐인 이 현실을 어찌 봐야 하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동네 빵집/최광숙 논설위원

    어릴 적 고향에 ‘우미당’이라는 빵집이 있었다. 작은 도시였지만 나름의 시내 번화가 한복판에 위치한 그 빵집은 늘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가끔 빵을 사러 가면 지금과 달리 하얀 종이 봉지에 담아 줬다. 그 종이 봉지에 묻어나는 빵의 촉촉한 숨결만으로도 입안에 군침이 돌 정도로 그 집 빵은 특별했다. 초등학교 시절 어린이날 그곳의 단팥빵·곰보빵과 함께 요구르트를 나눠줬는데, 그땐 그게 그렇게 맛있었다. 그 추억 때문에 지금도 단팥빵을 좋아한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인가 ‘독일 베이커리’ 같은 영어 간판을 내건 빵집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만 그 집도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프랜차이즈 빵집이 막 태동하던 시기이지 싶다. 집 근처에 작은 빵집 하나가 있다. 그곳을 지나칠 때면 늘 고향의 빵집이 생각난다. 프랜차이즈 빵집 홍수 속에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동네 빵집. 천연 효모로 발효시킨 식빵 등 다른 곳에서 찾기 어려운 빵 맛이 그 비결인 것 같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눈치/최광숙 논설위원

    노무현 정부 시절 평소 국무회의에서 아는 척하며 말하길 좋아하던 한 국무위원이 어느 날부터인가 말을 아꼈다. 대통령 대신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고건 총리가 물러나고 이해찬 총리가 새로 임명되고 나서다. 권력의 세계를 누구보다 잘 알던 그는 그날부터 ‘실세’ 이해찬 총리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보통 눈치 하면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또는 주어진 상황을 때에 맞게 알아차리는 능력’을 말한다. 일찍이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한국의 사회·문화를 파헤친 저서 ‘흙속에 저 바람속에’에서 우리 민족을 눈치가 발달한 민족으로 적고 있다. 그는 눈치를 “단순한 센스가 아니라 언제나 약자가 강자의 마음을 살피는 기미”라고 했다. 원리·원칙과 논리가 통하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에서는 없어서 안 될 지혜라고. 공직사회에서 공무원들은 장관의 눈치를 보고, 장관은 대통령의 눈치를 본다. 소신 있게 일을 처리하는 것보다 윗사람의 의중을 파악하고, 심기를 잘 살펴야 일이 잘된다고 믿고, 실제 그렇기도 하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었던 장학로씨가 하루에 두번이나 점심을 먹으면서 기업들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여기저기서 대통령의 눈치를 살피기 위해 ‘문고리 권력’을 챙기려다 보니 생긴 일이다. 직장에서 출세하기 위해 윗사람의 눈치를 본다면 그것은 ‘권력형 눈치’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는 이대호 선수가 과거 한 방송에 나와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눈치 9단”이라고 스스로 밝혔는데, 그렇다면 ‘생계형 눈치’일 게다. ‘눈치만 빠르면 절간에서도 새우젓을 얻어 먹는다.’는 우리 속담은 생계형 눈치의 무한 생활력을 보여주는 사례이지 싶다. 마음 아픈 눈치도 있다. 지난해 가톨릭대 연구팀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왕따(학교폭력)를 경험한 청소년들의 뇌 구조를 보면 타인의 표정과 심리를 살피는, 즉 남들 눈치 보는 영역이 크게 활성화돼 있다고 한다. 최근 새누리당의 비박(非朴) 진영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리더십을 공격하는 발언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김태호 의원이 “새누리에는 눈치 주는 사람과 눈치 보는 사람만 있다.”고 포문을 열더니, 김문수 경기도지사도 “전부 박 위원장의 눈치를 살피면서 ‘박심(朴心) 살피기’에 몰두한다.”고 날을 세웠다. 정권을 재창출하겠다고 나선 여당에서 ‘눈치’에 정치 운명을 맡긴다면, 바라보는 국민이 서글퍼진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혁신의 레이디 가가/최광숙 논설위원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는 데뷔 초 언론과 학부모들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마이 웨이’를 부른 프랭크 시내트라의 감미로운 스탠더드 팝이 대세일 때 그는 두 다리를 쫙 벌리거나 엉덩이를 과하게 흔들어대는 춤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듯 TV 카메라는 그의 공연 내내 상반신만 보여줬다고 한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은 그의 로큰롤을 통해 욕망을 분출하고자 했고, 이는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의미했다. 일찍이 프레슬리가 보여줬듯이 ‘나는 가수다’에 나온 가수들처럼 노래만 잘한다고 통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팝의 여왕’ 마돈나도 노래 실력 외에 특유의 섹시한 모습과 충격적인 퍼포먼스로 무대를 휘어잡는 엔터테이너로 등극했다. 1980~1990년대 소비문화에 기묘하게 편승한 그녀는 파격적인 헤어스타일에 속옷 차림으로 불타는 십자가 앞에서 흑인 성직자와 키스하는 식의 무대 연출로 의도된 논란거리를 만들었다. 노골적인 성적 행위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에 당시 교황은 종교단체와 일반 대중들에게 마돈나의 콘서트에 참석하지 말라는 극단적 처방까지 내렸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공연이 섹시 코드에 머물렀다고 보면 오산이다. 가톨릭 교회로부터 강요된 죄의식, 사회를 지배하는 규칙, 남성의 권위 등 기존 가치에 맞서 ‘너 자신을 표현하라.’고 외쳤던 것이다. 지난 27일 내한 공연을 가진 레이디 가가도 마돈나의 계보를 잇는 가수다. 생고기 드레스와 40㎝가 넘는 아찔한 ‘킬힐’과 같은 기괴한 패션과 퍼포먼스에 머물지 않는다. 전 세계 팬들에 영향력을 미치는 ‘소셜테이너’이자 엔터테이너다. 재단을 만들어 학교 폭력 추방과 동성애자 옹호, 에이즈 퇴치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권익 보호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일부 기독교 단체는 공연을 앞두고 기독교 모독·음란성을 내세워 공연 취소를 요구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번 공연도 팬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멋진 무대였다고 한다. 실제 말을 타고 무대를 돌며 노래를 부르고, 자신을 푸줏간 고깃덩어리로 묘사한 퍼포먼스 등은 관객들을 확 끌어당겼다고 한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는 마돈나가 수년간에 걸쳐 정상을 달린 것은 그녀가 해마다 자신을 혁신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레이디 가가의 공연도 마찬가지다. 패션이든, 음악이든, 무대예술이든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혁신이 26세 젊은 여가수를 ‘마더 몬스터’(Mother Monster)로 만든 것 아닐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수학여행/최광숙 논설위원

    요즘 삼청동 길이 예전과 달리 붐빈다. 봄나들이 온 상춘객을 실은 버스가 경복궁 앞을 꽉 막고 있어서다. 벚꽃이 한창인 봄과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에는 늘 있는 일이다. 택시에 갇혀 갑갑해하는데 고교생 무리들이 눈에 띈다. 멀리 지방서 서울로 수학여행을 왔는지 선생님들이 부는 호루라기에 맞춰 삼삼오오 걷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잠시 고교 때 경주로 수학여행 갔던 일이 떠올랐다. 불국사의 석가탑·다보탑, 첨성대 등 문화재나 유적지를 둘러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의 일들이 더 기억속에 살아 있다. 호시탐탐 일탈을 꿈꾸는 여고생들인지라 깜깜한 터널을 지나칠 때면 인기 있는 총각 선생님들을 상대로 점퍼를 뒤집어씌우고 마구 때리며 애정(?)을 표시하곤 했다. 경복궁을 찾은 학생들이 어떤 추억을 만들어 갈지 궁금해진다. 그들에겐 꽃의 아름다움도, 문화 유적지도 눈에 크게 안 들어 올 수 있다. 가까운 친구들과 선생님과의 추억이 더 소중할 나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 딸의 결혼식/최광숙 논설위원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르윈스키와의 관계를 미국 국민 앞에 고백하던 날. 이들 부부의 이혼설이 난무했지만 그 위기감을 가라앉힌 것은 바로 외동딸 첼시였다. 이들 부부가 한가운데 첼시를 놓고 나란히 휴가지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외동딸은 클린턴 가족의 균형을 유지하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첼시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스캔들로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감정은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말하는 등 어머니인 힐러리를 닮아서인지 독립적이고도 진취적인 여성으로 컸다. 부모와 함께 백악관에 입성할 때만 해도 치아 교정기를 끼고 웃던 첼시가 2010년 왕실 못지않은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자 미국민들 일부는 삐딱한 시선을 보냈지만 대부분 “자격이 있다.”며 축하했다고 한다. 10대 시절 음주 등으로 말썽을 부리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쌍둥이 딸 제나가 2008년 어엿한 여성으로 거듭나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에서 소박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딸의 결혼식 날만은 평범한 신부의 아버지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시집 가는 딸 이상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최고 권력자들의 모습은 여느 친정아버지와 다를 바 없다. ‘뚱보’ 클린턴 전 대통령이 딸의 결혼식에 맞춰 다이어트를 한 것만 봐도 대통령들 역시 ‘딸바보’임에 틀림없다. 노태우·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딸과 아들의 혼사를 다 치렀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위와 며느리 모두 재벌가에서 맞아 권력과 돈의 결합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딸 소영씨와 아들 재헌씨 둘 다 청와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불과 40여일 만에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를 연이어 결혼시켰는데 청와대가 아닌 장소를 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가 다음 달 대통령 취임식 이후 한국인 사위를 맞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막내딸 예카테리나가 윤종구 전 해군제독의 차남 준원씨와 곧 결혼할 것이라는 소식이다. 준원씨는 러시아 모스크바 한국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한 아버지를 따라 모스크바의 한 국제학교에 다니던 중 예카테리나를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윤 전 제독은 “부모 모르게 결혼할 정도로 아들을 키우지 않았다.”며 결혼설을 일축했다. 이번에 두번째로 불거진 푸틴 딸의 결혼 소식도 그야말로 물거품으로 끝나는지 관심이 쏠린다. 러시아 최고 권력자 일가와의 혼인은 그리 순탄치 않은가 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평범한 진리/최광숙 논설위원

    아침 출근 길에 이번 총선에서 국회의원이 된 동네 지역구 당선자를 만났다. 선거가 끝난 지 6일이 지났는데도 그는 선거 유세 때 입던 점퍼 차림새다. 평소 아는 사이도 아닌데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 당선된 뒤에도 몸을 낮춰 인사를 하는 그를 보면서 진심으로 당선 축하를 해 줬다. 사실 그를 본 게 처음은 아니다. 선거 오래전부터 동네를 돌아다니며 인사하는 것을 봤다. 동네 슈퍼 앞이나 목욕탕 앞 땅바닥 여기저기 그의 명함이 굴러다니는 것을 본 것도 여러 차례다. 선거 기간 지하철역 앞에서 그의 부인도 몇번 마주쳤다. 반면 그와 경쟁을 했던 상대당 후보들은 여태껏 얼굴 한번 마주친 적이 없다. 결국 승리는 열심히 하는 사람에게 돌아갔다. 조직이 강하니, 바람이 부니 뭐니 해도 답은 예나 지금이나, 또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부지런히 지역을 누비고 다니는 사람을 결코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그 평범한 진리를 잊어버리는 순간 낙선은 피할 수 없는 함정이 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전업주부 논쟁/최광숙 논설위원

    ‘순종적인 아내’(Stepford wife)와 ‘일하는 엄마’(Working mom)의 대결. 지난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존 매케인 공화당 대선 후보의 부인 신디는 완벽한 가정 주부로,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 부인 미셸은 일하는 엄마의 이미지로 승부수를 띄웠다. 그 과정에서 미셸은 말실수를 하긴 했지만 유권자로부터 더 많은 호감도를 얻어냈다. 미국 대선 때면 대선 후보뿐 아니라 예비 퍼스트 레이디를 놓고도 비교 분석하는 기사가 많이 나온다. 대체로 공화당 후보 부인들의 경우 부시가의 여인들인 바버라·로라 부시를 비롯해 신디처럼 전업주부가 많다. 부유한 남편이나 아버지를 둔 덕분에 굳이 일하지 않아도 됐다. 반면 민주당 후보 부인들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와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처럼 일하는 여성들이 꽤 있다. 최근 민주당의 여성 전략가 힐러리 로젠이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부인 앤 롬니가 “평생 단 하루도 일을 해 본 적이 없다.”면서 “이 나라 대다수 여성들이 직면하는 경제 문제를 겪어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앤은 트위터까지 개설해 “어머니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금전적으로 힘들지 않았지만 다섯 아들을 키우는 일은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응수했다. 1992년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의 부인 힐러리 클린턴이 “나도 전업주부로 집에서 쿠키를 굽고 차를 마실 수 있다.”고 말해 전업주부 비하 논란을 겪은 것처럼, 이번에도 로젠의 발언 파장은 컸다. 백악관 등 민주당 내에서조차 비난에 직면하자 결국 로젠은 공식 사과했다. 남성적 관점이나 가정과 직장에서 힘겹게 일하는 슈퍼맘 입장에서는 전업주부를 남편과 자녀들 뒷바라지나 하는 것으로 평가절하할 수 있다. 하지만 점차 주부를 가정의 최고 경영자 등 전문직종으로 보자는 의견이 대세다. 얼마 전 주부 노동의 가치를 환산해 연봉을 계산한 통계가 나온 적이 있다. 삼성증권은 국내 법원 판결내용과 통계청 등의 자료를 분석해 일당 6만 5000원으로 연봉 2500만원을, CJ 홈쇼핑은 3400만원을 책정했다. 미국의 경우 어머니라는 직업을 가정부·보육교사·요리사·운전기사·심리상담사 등 10개 직업을 합친 것으로 보고 약 1억 3000만원의 연봉으로 매겼다. 우리 대학생들의 70.2%가 ‘남성 전업주부에 대해 긍적적’이라는 설문조사가 있다. 전통적인 남성관이 허물어지는 추세다. 이제 누가 가정에서 일하는가는 논쟁거리가 아니다. 선택의 문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여배우의 얼굴/최광숙 논설위원

    미국 여배우 메릴 스트립은 얼마 전 대처 영국 총리의 일대기를 그린 ‘철의 여인’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두번째로 거머쥐었다. 그는 맡는 배역마다 주인공과 완벽한 합체(合體)가 되는 몇 안 되는 실력파 여배우다. 그런 그도 데뷔 초에는 평범한 얼굴 때문에 수차례 오디션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영화 ‘킹콩’ 오디션에서 감독이 그가 못 알아들을 줄 알고 이탈리아로 “왜 저런 못생긴 애를 데려온 거야.”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의 못난 얼굴은 독이 아니라 약이 됐다. 하지만 여배우들에게 요구되는 첫번째 덕목은 바로 미모다. 예쁘지 않은 여배우들은 외면받기 일쑤다. 여배우들이 성형수술에 매달리는 이유다. 최근 미모의 할리우드 여배우 애슐리 저드가 미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를 통렬히 비판하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히트’ ‘하이 크라잉’ 등으로 세계 최고의 섹시 여성 스타로 꼽혔던 그는 예전과 달리 부은 자신의 얼굴을 놓고 언론이 ‘몸매 관리 실패’ ‘성형 수술 후유증’과 같은 각종 추측을 쏟아내자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한 인터넷 매체에 기고를 통해 “축농증 치료를 위해 복용하는 약물 부작용으로 얼굴이 부은 것”이라며 “드라마 속 평범한 여성의 역할을 맡았는데도 날씬하고 주름 없는 여성의 이미지에 맞춰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여성의 외모에 대한 사회적 집착으로 인해 여성의 능력에 대한 진지한 평가와 일터에서 여성이 처한 불평등한 조건에 대한 고민은 설 자리가 없다.”며 남성 중심적 사고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내 얼굴이 논란거리가 되는 것 자체가 미국의 토론 수준이 얼마나 낮은 것인지 보여주는 것”이라며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정식 토론을 제안했다. 미국에서 외모지상주의(외모차별주의)를 뜻하는 ‘루키즘’(lookism)이 신(新)인종주의라는 주장이 법정과 학계에서 제기된 바 있다. 지난해 미국의 한 여성은 고용주가 “네가 예쁘면 더 좋아할 텐데.”라고 말해 스트레스로 회사를 그만뒀다며 고용주를 고소했다. 외모와 소득의 상관관계를 연구해 온 대니얼 해머메시 미국 텍사스대 경제학 교수는 “얼굴이 평균보다 잘생긴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모다 평생 2억 5000만원을 더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미인경제학’을 주장하기도 했다. 하버드대 석사 출신의 ‘개념 여배우’가 제기한 문제, 우리나라에서도 진지하게 논의해 봤으면 한다. 인품과 능력이 아닌 외모로 차별하는 사회가 어디 미국뿐이겠는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검색과 사색 사이/최광숙 논설위원

    바야흐로 ‘검색의 시대’다. 컴퓨터 앞에 앉으면 온통 검색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 그리도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다. 일과 관련된 정보 검색도 있지만 맛집이나 인기짱 연예인의 프로필까지 뭐든지 친절하게 알려주는 컴퓨터에 매달린다. 컴퓨터도 모자라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도 연신 두드린다. 어른과 아이 구분이 없고, 때와 장소도 따로 없다. 늦은 시간 지하철을 타도 승객 대부분의 손과 눈은 모니터를 향해 있다. 필자도 TV를 보다가 궁금한 사안이 생기면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스마트폰의 인터넷 창을 열어 검색하는 데 시간을 보내곤 한다. 얼마 전 만난 한 전직 고위 관료는 “다들 검색하느라, 정작 사색은 하지 않는다.”고 걱정했다. 검색과 사색, 단 한 글자 차이인데 차원이 전혀 다르다. 손과 눈에 의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봄날 막 피기 시작한 개나리를 보면서도 검색에만 매달린다면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광장]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에 주목하는 이유/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에 주목하는 이유/최광숙 논설위원

    요즘 민간인 불법 사찰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이 검사보다 낫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어찌 입막음용으로 받은 5000만원 돈다발을 휴대전화로 찍었다가 검찰 모르게 공개할 생각을 했는지 놀랍다는 것이다. 그가 찍은 돈뭉치는 듣도 보도 못한 ‘관봉’ 형태로, 윗선 은폐 시도의 완벽한 물증이 됐고 검찰 수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고 있다. 뒤통수를 맞은 검찰은 뒤늦게 돈다발의 출처를 찾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이 모든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믿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2년 전 민간인 사찰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당시 검찰이 제대로 수사만 했더라도 지금 총선 선거판을 뒤흔들 정도의 ‘빅 이슈’로 떠오르지 않았을 것이다. 당초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주도해 일을 저질렀지만, 검찰의 부실 수사로 결과적으로 사건 당사자들 사이에 증거인멸·무마용 돈뭉치가 오가는 등 부패와 불법의 판을 더 키운 측면이 없지 않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번 사건만 봐도 권력 앞에만 서면 검찰의 사정 칼날이 한없이 무뎌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검찰은 ‘권력을 감시하고 개인을 보호’하는 법치의 실천 주체다. 하지만 우리 검찰은 ‘권력을 비호’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것 같다.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로도 유명하다. 2002년 부패방지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는 검찰 간부 L씨가 인사청탁 명목으로 검찰 고위간부 K에게 3000여만원 상당의 이란산 고급카펫을 건넸다는 제보를 받아 관련 자료까지 확보해 검찰에 넘겼지만 흐지부지 끝났다. 수사를 맡은 검찰이 고급 카펫을 170만원짜리 싸구려 중국산 카펫이라고 주장했고, 결국 전·현직 검찰 간부들은 불구속 기소 처리됐다. 일반 형사사건의 경우 예외 없이 사건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데도 검찰은 부방위의 수사자료 열람조차 거부했다. 이 모든 것은 검찰이 독점적으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이번 수사를 지켜보면서 검찰을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검찰 스스로 변신하는 게 최선이지만 그러지 못하면 외부에서 충격을 주는 수밖에 없다. 요즘 ‘상설 특검제’나 ‘고위공직자비리 수사처’(고비처)를 만들자는 얘기가 고개를 드는 이유다. 민주통합당과 진보진영에서 더 목소리를 높인다고 보수진영에서 반대만 할 일은 아니다. 지난 2002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가 고비처 설립을 주장했고,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상설특검제를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상설특검제의 경우 그동안 특검이 별 소득이 없었던 것에 비춰 보면 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지 미지수다. 국회에서 옷로비 사건, 삼성 비자금, BBK 등 8차례에 걸쳐 특검을 하면서 107억원의 혈세를 썼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 그렇다면, 검찰과 다른 별도의 사정기구를 둔다면 고비처가 올바른 방향이 될 수 있다. 고위공직자 비리 척결과 검찰 견제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점에서도 매력적이다. 고비처에 대해서는 지난 10여년 동안 간헐적이나마 논의가 끊이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등 고비처 설치가 가시권에 드는 듯했으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반발로 국회 법사위 심의조차 보류되면서 무산됐다. 그후 ‘스폰서 검사’ 논란 시 등 몇 차례 논의가 있었으나 진전을 보지 못했다. 왜 이리 검찰 개혁은 험난한가. 바로 검찰과 국회가 걸림돌이다. 검찰은 독점적 수사권을 나눠 갖지 않으려 조직차원에서 저항하며 전방위 로비를 펼치고 있다. 국회의원들 또한 자신들이 대통령 측근과 친인척, 차관급 이상 고위 공직자들과 함께 고비처의 수사대상에 포함되는 것을 내심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 4·11 총선이 끝나면 19대 국회가 새로 출범한다. 새 국회에서는 우리 사회의 오래 묵은 숙제 중 하나인 고비처 설치에 대한 본격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마음은 쓰기 나름/최광숙 논설위원

    요즘 삭막한 세상이라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일상에서 마주치던 이들과의 짧은 만남에서 행복 바이러스가 전해지기도 한다. 지하철을 타면 으레 한적한 노약자 칸에 가게 된다. 자리가 비어 있어도 서서 간다. 가끔 가방을 올려 놓긴 해도 앉지는 않는다. 간혹 젊은이들이 앉았다가 노인들한테 혼나는 것을 몇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씀씀이가 넉넉하신 어른들은 굳이 앉으라고 권한다. 며칠 전 책을 보던 한 할머니가 올려다보면서 자리를 가리키며 굳이 앉으란다. 돋보기 너머 눈짓이 너무 다정해 마음이 환해졌다. 다른 할머니도 “사실 젊은이들이 일하느라 더 힘들지. 우리 노인들이야 놀잖아.”라며 거든다. 앉아서 졸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얼마나 힘들까 안쓰럽다는 것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도 해석이 다르다. 어떤 노인들은 자리를 지키려 젊은이들이 조는 척한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 할머니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바라봤던 것이다. 참, 마음이란 게 쓰기 나름인 것 같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친절한 전화/최광숙 논설위원

    얼마 전 신문 칼럼 필진 중 한 분에게 전화를 했다. 저쪽에서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고 한다. 혹 잘못 전화를 걸었나 싶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구 아니냐고 묻자 맞단다. 교수님이 그렇게 친절하게 전화를 받아 놀랐다고 하자, 오랫동안 공직에 있어 몸에 밴 것 같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고위 공직자들은 ‘갑(甲)중의 갑’이라고 불린다. 그런 만큼 친절이 그리 몸에 밴 사람들이 아니다. 그 또한 중앙 부처에서 차관까지 지냈으니 직접 전화를 받기보다 비서 등을 통해 받는 것이 더욱 익숙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그의 친절함은 인품에서 비롯된 것이지 싶다. 직업상 전화를 많이 걸고 많이 받지만 보험사 등의 콜센터 안내원이 아니라면 그런 상냥한 전화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들 무엇이 그리 바쁜지 잠시의 전화 통화에도 짜증이 묻어난다. 몇분의 시간도 타인에게 내주는 것에 인색하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전화 한 통화로 남들을 기분 좋게 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도 없지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빛나는 이류/최광숙 논설위원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어느 세계에나 일류, 이류, 삼류는 있기 마련이다. 누구나 일류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여성들이 열광하는 명품 백도 다 일류 상품을 들면 자기 인생이 일류로 비춰질까 하는 속내가 깔려 있다. 일류를 지향해 살기에도, 그렇다고 깡그리 무시하고 살기에도 우리 삶은 너무 복잡하다. 최근 한 방송에서 배우 차인표씨가 연기력에 있어 스스로 이류라고 해 놀랐다. “누구나 최민식·송강호처럼 되기는 어렵다. 나 같은 이류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톱스타이면서 자신의 약점을 흔쾌히 인정하는 모습에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력도 없으면서 일류인 척하는 이들에 비해 그는 그야말로 ‘쿨’했다. 딸 둘을 입양하고, 가난한 어린이와 탈북자들을 돕는 그의 사연을 들으니 진정성이 느껴졌다. 어쭙잖은 일부 연예인 소셜테이너와는 사뭇 달랐다. 사실 그의 연기는 별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가치를 열심히 실천하는 일류 스타임에 틀림없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스칸디 대디/최광숙 논설위원

    “부지런할 근(勤), 검소할 검(儉), 이 두 글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 더 나은 것이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정약용은 전남 강진에서 18년간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두 아들인 학연과 학유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가 벼슬해 너희들에게 물려줄 밭뙈기를 장만하지 못했으나 이 두 글자를 정신적 부적(符籍)으로 마음에 지녀 살면 가난을 벗어날 수 있다.”고 아들들에게 가르쳤다. 다산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아버지로서 자식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삶의 지침을 일일이 제시하고자 했다. 어찌나 자식들 교육에 신경을 썼는지는 아내가 보낸 빛 바랜 치마폭을 잘라 4첩의 서책 ‘하피첩’(霞皮帖)을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여기에 아들들에게 필요한 훈계와 당부를 적어 보냈다. 시집 가는 딸에게는 치마 한 폭에 ‘매조도’를 그려 보내기도 했다. 다산의 애틋하고도 속 깊은 부정(父情)이 여실히 드러난다고 하겠다. 자녀 양육에 있어 부모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 자식을 가르치는 일은 어머니의 몫이었다. 그러나 요즘 자신의 딸을 각별히 아끼는 ‘딸바보’ 아빠들이 전 세계 각지에 넘쳐나는 것을 보면 아버지의 자식 사랑은 어머니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두 딸을 가진 오바마 미국 대통령만 봐도 그렇다. 2009년 눈이 많이 내려 학교가 문을 닫자 그는 이 정도 눈에 문을 닫느냐고 학교 당국자들을 힐책하고 다음 날 둘째 딸이 다니는 학교까지 방문한, 교육열에 불타는 아빠다. 지난해 말에는 딸들에게 페이스북 금지령을 내려 “딸들의 아빠인 오바마도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들었다. “딸들이 얼굴도 모르는 이들과 사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게 이유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부모들 사이에 ‘스칸디나비아식 자녀 양육법’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더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아시아식의 엄격한 자녀 교육을 하는 ‘타이거 맘’(호랑이 엄마)은 이제 지고, 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의 ‘스칸디 대디’(스칸디나비아 아빠)가 뜨고 있다는 것이다. 스칸디나비아식 양육법의 핵심은 바로 아버지들의 적극적인 양육 참여다. 부모가 가정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아이와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다. 그들의 양육법 10가지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부모가 자녀를 위한다고 해도 나머지 가족이 아이에게 맞춰 주는 방식은 안 된다.’는 지적이다. 매사에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가는 우리네 가정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초등교 입학/최광숙 논설위원

    조카 두 명이 이번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막내 오빠네 늦둥이와 여동생네 막내다. 집에서 하는 짓들을 보면 영락없는 어린애들. 제대로 학교 생활에 적응할 수 있으려나 걱정이 앞선다. 궁금해하던 차에 휴대전화로 사진을 보내왔다. 학교 강당에서 열린 입학식에 수많은 애들 틈에 서 있는 오빠네 조카를 보니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다. 다행히 한눈 팔지 않고 선생님을 향해 눈길이 꽂혀 있다. 교실 의자에 앉아 있는 여동생네 조카는 약간 얼떨떨한 표정이다. 가방도 교실바닥에 내려놓지 않고, 여전히 어깨에 메고 있는 것으로 봐 긴장한 것 같다. 엄마를 향한 눈빛에는 “어디 가지 말고 내 곁에 있어.”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여동생은 벌써부터 점심시간 밥 푸러 가고, 학부모 연수모임에 참석하는 등 학교에 들락날락하고 있다. 학교에서 엄마와 마주치면 씩 웃어주는 아들이 하루빨리 학교 생활에 연착륙하라는 뜻일 게다. 이제 새로운 세계에 첫발을 내디딘 조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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