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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광숙
    2025-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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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붉은 작가들/최광숙 논설위원

    붉은 색은 중국을 상징하는 색이다. 세계 미술시장에 붉은 옷을 입은 작가들이 등장한 지 꽤 됐다. 1989년 천안문 사태 이후 주목받기 시작한 중국의 현대미술작가들은 이제 세계 미술시장에서 ‘블루칩’으로 대접받고 있다. 장샤오강·웨민쥔·쩡판즈 등의 작품은 경매시장에 나오기만 하면 고가에 팔려 나간다. 독특한 조형성과 유머러스한 사회풍자 등 예술적인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미술시장에서 중국인들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중국 미술의 위상이 높아진 측면도 있다. 미술 시장을 넘어 문학계에도 중국 작가들이 약진하고 있다. 영화 ‘붉은 수수밭’의 원작자인 소설가 모옌이 그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중국 국적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문화대혁명 등 자신이 경험한 중국 현대사의 격변을 다양한 인간의 삶 속에서 풀어놓는 이야기꾼으로 평가받아 왔다.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의 모옌(莫言)을 필명으로 쓸 만큼 그는 글을 쓰는 데만 천착해온 인물이다. 중국 문단의 저력 있는 작가들의 작품은 한국에서도 인기몰이 중이다. 1996년 중국 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는 출간되자마자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정도다. 가난한 노동자가 자신의 피를 팔아 살아가는 인생 역정을 때론 눈물나게, 때론 경쾌하게 그려나가는 스토리 텔링이 대단하다. ‘붉은 수수밭’과 함께 장이머우 감독의 또 다른 영화 ‘홍등’의 원작자인 소설가 쑤퉁의 작품들도 중국은 물론 한국에서 잘 팔린다. 옌롄커도 폭발력 있는 작가다. 반체제 성향이 강해 그의 최신 장편 ‘사서’(四書)는 중국에서 출판이 거부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출판됐다. 그는 얼마 전 모옌과 함께 가장 강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혔던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중·일 간의 영토분쟁과 관련해 “값싼 술(민족주의)에 취해 영혼이 오가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며 냉정을 촉구하자 “지식인들의 대화가 영토분쟁에 한 잔의 냉차가 될 수 있다.”며 화답했던 이다. 국공합작과 문화대혁명, 개혁과 개방 등 굴곡진 중국 근·현대사를 뚫고 나온 중국 작가들이 이제 미술에 이어 문학 분야에서도 그 역량을 펼치고 있다. 사실 우리 작가들도 식민 지배와 분단, 6·25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과정 등 중국 못지않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왔다. 세계적인 예술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을 갖추었으니, 이제 작가들이 분발하는 일만 남았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꼴찌들의 반란/최광숙 논설위원

    소설가 박완서는 다들 일등에게 관심을 보일 때 꼴찌를 응원했다. 어느 날 우연히 마라톤을 보고서다. 그는 수필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었지만, 그는 환호 없이 달리는 사람이 위대해 보였다.”며 꼴찌 마라토너에게 환성을 질렀다. 요즘 꼴찌들의 유쾌한 반란들이 줄을 잇고 있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를 받은 존 거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일본의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iPS세포 연구소장의 인생 스토리는 꼴찌들의 쾌거사(史)다. 거던 교수는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15세 때 받은 생물과목 꼴찌 성적표”라고 했다. 당시 교사로부터 “과학자를 꿈꾸는 것은 완전히 시간낭비”라는 말을 듣고 그는 과학자의 꿈을 접고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내 생물학 연구에 몰두했다. 야마나카 교수는 의사였지만 수술을 못해 연구로 방향을 틀면서 인생 역전을 이뤄낸 인물이다. 첫 수술에서 10분이면 끝날 수술을 1시간이 넘도록 끝내지 못해 수술대 위에 오른 친구에게 사과를 했을 정도다. 유전자 연구로 진로를 바꾼 이후에도 좌절은 계속됐지만 “아홉번 실패하지 않는다면 한번의 성공도 얻을 수 없다.”며 연구에 매진했다. 영화 ‘피에타’로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김기덕 감독 역시 한국 영화계에서는 ‘이단아’였다. 스스로 ‘열등감을 먹고 자란 괴물’이라고 할 만큼, 그는 초졸 학력으로 청계천에서 철공 등으로 일하며 밑바닥 생활을 했다. ‘강남 스타일’로 한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싸이 역시 “가수가 아니면 ‘루저’(실패자)로 살았을 것”이라고 할 만큼 우등생의 삶과는 거리가 먼 ‘날라리’였다. 이런 꼴찌들의 반란이 가능했던 건 무엇보다 그들이 어떤 경우든 결코 좌절하지 않고 꿈을 향해 달렸다는 것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꼴찌는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꼴찌들에게 기회를 주는 사회인가, 아닌가일 뿐이다.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도약하고, 각 분야에서 창의로운 인재들을 키우려면 패자부활전이 가능한 사회, 꼴찌를 배려하는 교육 시스템을 갖춘 사회가 돼야 한다. 한번 실패로 꼬인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한다면 그 사회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지금은 밑바닥 꼴찌이지만 유쾌한 도전과 반전으로 새로운 역사를 쓸 미래의 인재들을 짓밟아서야 될 말인가. 우리나라가 노벨상을 받는 그날은 아무래도 꼴찌들에게도 수 많은 기회가 활짝 열려 있는 때일 것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광장] 이명박 특검과 클린턴 특검/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명박 특검과 클린턴 특검/최광숙 논설위원

    이명박 대통령은 고심 끝에 내곡동 사저 부지 의혹을 수사할 특별검사로 이광범 변호사를 임명했다. 청와대는 그동안 민주통합당이 추천한 김형태·이광범 변호사의 진보성향이 부담스러운 듯 재추천을 요구했다가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게 돌아가자 결국 두 사람 중 상대적으로 ‘야성’(野性)이 덜하다고 판단했는지 이 변호사를 특별검사로 선택했다. 특별검사 논란을 보면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특검이 생각나는 것은 왜 일까? 한국과 미국은 정치·문화적으로 판이하지만 두 특검이 묘하게도 닮았기 때문이다. 첫째, 두 특검 모두 대통령이나 직계 가족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같다. 둘째, 이들 특검이 ‘부동산’문제에서 출발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클린턴의 특검은 결국 섹스 스캔들로 귀착이 되긴 했지만, 처음에는 클린턴이 아칸소 주지사 시절 세운 화이트워터 부동산 개발회사의 토지거래 사기사건 의혹, 이른바 ‘화이트워터 게이트’를 다루기 위해 도입됐다. 셋째, 특별검사로 임명된 이들이 모두 대통령과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것도 일치한다. 1994년 8월 화이트워터 게이트를 수사하기 위해 특별검사로 임명된 케네스 스타 검사는 당초 수사의 목적 달성이 여의치 않자 클린턴의 지저분한 욕정을 까발리는 것으로 선회했다. 마침내 스타 검사는 클린턴으로부터 르윈스키와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고해성사까지 받아내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듯했다. 하지만 미국민들 사이에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특별검사의 독선을 지켜보면서 특검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스타 검사가 무려 4년 동안 4000만 달러라는 막대한 세금을 쓰고도 내놓은 특검의 결과물이 한편의 포르노물이 아니냐는 반론도 강하게 제기됐다. 더구나 클린턴과 당적이 다른 골수 공화당원 출신인 스타 검사는 클린턴의 은밀한 개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다. 그러다 보니 극우 보수세력의 대변자로서 클린턴을 대통령직에서 몰아내려 했다는 비판까지 받았다. 공화당은 1998년 말 치러진 의회의 중간선거에서 클린턴의 여성 스캔들을 최대한 활용하려 했으나 정작 중간선거 결과는 공화당의 패배로 끝났고, 클린턴에 대한 탄핵도 결국 무산됐다. ‘클린턴 특검’을 계기로 미국은 1979년 제정됐던 ‘특별검사법’을 1999년 6월 폐기했다. ‘워터게이트’ 특검으로 닉슨 대통령을 미 역사상 최초로 임기 도중에 물러나도록 하는 공을 세웠지만 점차 실효성과 정파성, 예산낭비 등 순기능보다 역기능이 많다는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타 검사 자신도 청문회에서 특검제 폐지를 주장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결국 법에 의거해 대통령이 임명하던 특별검사는 검찰청 내부규정으로 검찰총장이 임명토록 변경되면서 권한과 위상이 대폭 축소됐다. ‘이명박 특검’은 검찰의 부실 수사에서 비롯됐다. 수사를 총괄·지휘한 최교일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자의 물음에 “대통령 일가에 부담돼 (청와대 실무자를)기소하지 않았다.”고 답할 정도니 국민 입장에서는 오죽하겠는가. 국민 다수는 검찰이 사건의 핵심인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를 서면조사하는 데 그치는 등 처음부터 의혹을 제대로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갖지 않았다는 의문을 품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 특검이 대선을 앞두고 자칫 정쟁 차원으로 흘러간다면 그 또한 바람직하지 않다. 특검은 무엇보다 진실 규명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혹여 정치권이 이번 특검을 대선에 활용하려고 한다면 앞서 ‘클린턴 특검’에서 봤듯이 오히려 역풍이 불 수도 있다. 검찰처럼 겉으로는 사법적 정의를 외치면서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수사를 한다면 특검제에 대한 무용론에 힘이 실릴 수도 있다. 이번에 임명된 이 특별검사는 “정치적 고려 없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역할은 특정 정파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국민이 궁금해하는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어야 한다.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새내기 사원/최광숙 논설위원

    최근 공과금을 내러 은행에 갔다. 왠지 은행 창구 직원의 손놀림이 서툴러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몇 차례나 반복한 끝에 공과금의 총액을 내가 미리 계산해 간 금액과 맞췄다. 가만 보니 계산기 사용만 서투른 게 아니다. 공과금을 처리하는 절차 자체를 몰라 허둥지둥했다. 급기야 옆 창구의 선배 여직원이 등장해 친절하게 그의 일을 도왔다. 그 여직원의 ‘지원 사격’ 덕분에 그나마 일이 수월하게 끝났다. 그러고 보니 그의 창구 앞에 ‘새내기 신입직원입니다.’라고 적힌 작은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 닭의 뒤를 졸졸 따르는 노란 병아리가 그려진 그림에는 ‘열심히 배워 더욱 큰 서비스로 모시겠다.’는 굳은 다짐도 적혀 있다. 작고 귀여운 그 병아리 그림을 보는 순간, 일처리가 늦어져 슬슬 나려던 짜증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래, 나도 일을 잘 못해 선배들을 피곤하게 했던 새내기 기자 시절이 있었지.” 싶었다. 더구나 그는 취직하기 어려운 요즘 은행이라는 좋은 직장에 자리 잡은 능력있는 청년일 것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브라우니/최광숙 논설위원

    어느 날 조카 녀석이 품 안에서 작은 강아지 인형을 꺼내더니 식탁 위에 올려 놓는다. 그러고는 “브라우니, 이모 물어 물어!”라고 소리친다. KBS의 ‘개그콘서트’에서 정 여사가 몇 년이나 쓰던 물건을 갖고 와 환불을 요구하며 생떼를 쓰다가 궁지에 몰리면 늘 “브라우니, 물어!”라고 외치는 것을 보고 흉내를 내는 것이다. 요즘 강아지 인형 브라우니의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더니 어느새 조카의 친구가 됐나 보다. 조카는 집에서도 학교 숙제하라고 자기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 자기 방으로 가 위풍당당하게 브라우니를 대동하고서는 “엄마, 물어 물어!”라고 소리를 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광화문 지하도 작은 가게에도 브라우니 인형을 판다. 장난꾸러기 조카든 뻔뻔한 정 여사든 어느 주인님이 무슨 소리를 외쳐도 브라우니는 싫은 내색 하지 않고 묵묵히 미소만 짓는다. 누가 뭐래도 들은 척도 안 하고 평상심을 유지하며 천진난만하게 웃는 브라우니. 만약 브라우니가 사람이라면 거의 경지에 오른 도인(道人)이리라.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전국노래자랑/최광숙 논설위원

    한때 KBS의 ‘전국노래자랑’을 열심히 보던 시절이 있었다.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서 TV를 틀면 흘러 나오는 ‘딩동댕동~’. 사회자 송해씨가 힘차게 ‘전국노래자랑’을 외치면서 시작되는 이 프로그램의 힘은 전국의 숨은 노래꾼들이 실력을 겨루는 노래 경연에 있지 않다. 매주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그 지역 민심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민생 탐방’에 있지 않나 싶다. 송씨와 출연자들의 꾸밈없는 대화 속에서 각 지역의 특산물과 지역 주민들의 관심사는 무엇인지, 그들의 살림살이는 어떤지 등 민심을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후보들이 여러 지역을 방문해 민심을 경청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이 프로그램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파고들어가 그들을 무대 위에서 춤추고 노래 부르게 하며 ‘위로의 한마당’을 펼칠 수 있을까. ‘전국노래자랑’은 지난 1980년 11월 9일 첫 방송된 이래 지금까지 32년째다. 일본 NHK의 노래자랑 프로그램 ‘노도지만’의 아류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이제 국민에게 웃음과 노래를 선사하는 진정한 국민 힐링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했다. 무대장치나 진행이 좀 촌스러우면 어떠랴. 뚝배기보다 장맛이라고, 구수한 그것이 오히려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든다. 누가 뭐라 해도 이 프로그램의 일등공신은 송씨다. 1988년 5월부터 진행을 맡은 후 1994년 개인 사정으로 물러나고 다른 이로 교체됐지만 시청자들의 외면과 항의로 6개월 만인 그해 10월 송씨는 다시 복귀했다. 그의 노련하고 재치 있는 입담은 2003년 평양 모란봉공원에서 진행된 ‘전국노래자랑’에서 한껏 진가가 발휘됐다. 평양의 얼음장 같던 객석 분위기를 웃음바다로 만들 정도였다고 한다. 요즘 주부들의 로망은 ‘송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86세라고는 믿기지 않는 체력에, 그 나이에 ‘영원한 현역’으로 왕성한 직업활동을 하는 것이 부러워 자기 남편들도 송해처럼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22일 방송 리허설을 진행하다 컨디션 이상을 호소해 녹화에 불참했다고 한다. 이유인즉, 이미 지난해 85세의 나이로 최고령 콘서트를 열며 세계 기네스 기록에 도전했던 그가 올해도 추석 연휴 단독 콘서트 개최를 계획하면서 무리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송씨가 하루빨리 쾌유해 무대를 빛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젠 송해 없는 ‘전국노래자랑’은 상상할 수 없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동네 책방/최광숙 논설위원

    책을 사는 일은 남편 몫이다. 책을 좋아해 괜찮은 신간이 나왔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산다. 그러니 읽고 싶은 책을 살라치면 그 책은 이미 집 책꽂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 나로선 책을 살 기회가 별로 없는 셈이다. 남편은 책을 오래전부터 인터넷으로 구입한다. 오프라인 서점보다 할인폭이 크고, 집으로 배달해 주니 편해서다. 그런데 최근 주말에 급히 봐야 할 책이 있어 집을 나섰다. 이사온 지 2년 정도 되지만 동네에서 책을 산 적이 없어 이리저리 헤맸지만 결국 못 찾았다. 못 찾은 것이 아니라 아예 없었다. 동네 책방이 사라진다는 얘기를 들어도 그런가 했는데 이날 직접 실감하고 나니 이래서 되겠나 싶다. 그 소식을 들은 여동생이 그런다. 자기 동네에 책방 하나가 있는데 문 닫을까봐 종종 이용한다고 했다. 아이들 교재 등을 살 때 멀리 가기 어려워 동네 책방이 꼭 필요하기에 일부러 그곳에 가서 책을 산단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동네 책방,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 문제만 심각한 게 아니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김기덕 감독/최광숙 논설위원

    올해 베네치아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을 최근 영화진흥위원회 주최로 열린 축하연에서 만났다. 축하 인사를 건네고, 같이 사진도 한 장 찍었다. 이날 그는 많은 이들의 따뜻한 성원에 기분이 좋은지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돌면서 술잔을 기울이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그의 창작 영화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아리랑’을 보고서다. 자신을 배신했다는 후배 감독 등을 향한 날 선 비판과 원색적인 욕설을 담은 이 다큐멘터리를 같이 본 가족들은 그를 ‘치사하다’고 했지만 난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후배한테 배신당해 속상하고 분노에 찬 자신을, 술자리가 아닌 다큐멘터리 속에 풀어 놓을 생각을 하다니…. 못난 자신까지 기꺼이 제물로 삼아 영화를 찍는 그를 보면서 치열함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상업영화가 대세인 영화계에서 드물게 예술영화로 승부를 걸고 있다. 앞으로도 흔들리지 말고 영화계의 ‘독립군’으로 남길 바라는 마음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생로병사(生病死)/최광숙 논설위원

    병원에 가면 노인들을 많이 보게 된다. 나이 들면 어쩔 수 없이 병이 나고, 병이 나면 병원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임을 깨닫게 된다. 옷차림새를 보나 풍기는 분위기로 봐도 높은 벼슬을 지낸 듯한 노인들도 병원에는 혼자가 아니라 자식들과 함께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러는 바쁜 아들 대신 며느리가 오는 경우도 종종 본다. 병원 수속을 밟아주는 등 수발을 들기 위해서일 게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로병사’라는 네 글자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최고 권력자도 재벌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이 가야 하는 그 길이 ‘생로병사’가 아닐까 싶다. 왕의 아들로 태어나 부귀영화를 다 누릴 수 있는 데도 이를 마다하고 부처님이 출가한 이유도 생로병사에 대한 근원적인 의문 때문이라 하지 않던가. 하지만 요즘 늙어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병원에 갔다 오면 열심히, 긍정적인 마음으로 운동하며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병원이 내게 주는 진짜 ‘약’은 그것이리라.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노인과 어르신/최광숙 논설위원

    미국 뉴욕에 사는 할머니 스트릭랜드는 한 슈퍼에서 17년간 일했다. 80세인 그는 그동안 회사로부터 ‘최고 판매자상’을 받을 정도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으나 얼마 전 해고되었다고 한다. 회사에 24센트(300~400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에 발끈한 할머니는 “24센트의 경제적 손실이 해고 사유가 아니라 나이가 든 고령 노동자를 해고하려고 한다.”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80세 노인이 노동자의 권리를 찾겠다고 법적 투쟁에 나선 것이다. 요즘 노인은 예전의 노인이 아니다. 91세의 할아버지와 74세의 할머니가 식스팩을 자랑하며 세계 최고령 보디빌더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세상이다. 지난해 6월 향년 104세로 별세한 미국의 최고령 연방판사 브라운은 죽기 3개월 전까지 재판을 진행했다고 한다. 1962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시절 연방 지방판사로 임명된 그는 지난해 어떻게 은퇴할 것이냐는 질문에 “죽어서 물러날 것”이라고 농담을 던졌는데, 이는 현실이 됐다. 과거 노인 하면 나이가 든 늙은 사람을 뜻했다. 신체적으로나 심리적인 면에서 기능이 손실되고, 사회·경제적으로도 노동현장에서 은퇴해 역할과 소득을 상실했다고 봤다. 나이로는 보통 65세 이상을 노인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미국 미네소타주 의학협회에서는 노인을 이렇게 정의한다. 자신을 늙었고, 배울 만큼 배웠고,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고 느낄 때라고 한다. ‘이 나이에 그깟 일은 뭐해.’라고 생각하거나,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젊은이들의 활동에 아무런 관심이 없을 때, 좋았던 과거 시절을 그리워할 때 노인이라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노인의 정의도 이렇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가 ‘노인’ 명칭을 ‘어르신’으로 바꿔 사용하기로 했다. 모든 공문서와 공식행사 등에서 어르신이라는 말을 쓰기로 했다는 것이다. 노인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한 첫 조치라고 한다. 어르신 하면 왠지 지혜와 연륜을 가진 어른이라는 뜻이 풍겨져 듣기에 좋을 수 있다. 하지만 어디 명칭 하나로 노인들이 존경받거나 대접이 달라질 수 있겠는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인들의 소득수준은 OECD 30여개국 중 최하위 수준이라고 한다. 요즘 노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뉴욕의 할머니처럼 일자리라고 한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시혜 차원에서 베풀어 주는 무상복지도, 어르신이라고 폼나게 불러주는 ‘립 서비스’도 아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도시의 진화/최광숙 논설위원

    도심에 점차 조형미를 갖춘 빌딩이 늘어나는 것 같다. 과거엔 단순히 공간 점유에만 급급하던 것만 같던 빌딩이 이제는 창조적이고도 미적인 감각을 뽐내는 건축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최근 새로 지은 서울시 청사만 해도 외관을 보면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하지만 과연 그런 빌딩들이 이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것일까? 살고 있는 동네에 작은 공원이 있다. 예전에 기차가 쌩쌩 다니던 기찻길을 예쁜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이곳에는 밤 늦도록 마을 사람들로 붐벼 공원 전체가 동네 사랑방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집안에 있는 것보다 바깥 바람이 솔솔 부는 공원이 더위를 피하기 좋다 보니 동네 이웃들이 하나 둘 공원에 모여 든 것이다. 며칠 전 광화문 빌딩 숲 사이 손바닥만 한 공원에서 점심 시간을 이용해 열린 조촐한 음악회를 봤다. 성악가의 멋진 노래는 잠시나마 일에 지친 샐러리맨들을 위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진짜 진화하는 도시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냄비 할머니/최광숙 논설위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만나는 할머니가 있다. 그 할머니의 손에는 늘 냄비가 들려 있다. 어느 날은 생선 조림을 담았는지 비릿한 냄새가 나고, 언젠가는 두 손으로 냄비를 잘 받쳐 든 것을 보니 국이 담긴 것 같았다. 허리도 잘 못 펴는 70대 할머니가 이리저리 냄비를 들고 다니는 사연이 궁금했다. 여쭤 봤더니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딸네 집으로 가는 길이란다. 딸과 사위가 장사를 하는데 아침 일찍 나갔다가 늦게 들어와 뭘 해먹을 시간이 없어 반찬을 만들어 나른다는 것이다. 냄비째 냉장고에 넣어 두면 딸네 가족이 챙겨 먹는다고 한다. 먹다가 남겨 놓으면 음식이 상할까봐 도로 가져올 때도 있단다. 한 할아버지는 직장 다니는 딸을 대신해 어린 외손주를 종일 돌본다. 아침에 외손주를 유아원에 데려가는 일도 그 할아버지의 몫이다. 놀이터에서는 외손주가 넘어질세라 자전거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그들을 보면서 마음속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자식들 출가시켜 놓고도 끝없이 이어지는 부모의 헌신적인 사랑. 자식들이 그걸 알려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공자의 ‘강남스타일 삶’/최광숙 논설위원

    귀족 가문 출신인 도스토옙스키가 평생 쓴 편지의 3분의2는 돈을 꾸어달라고 사정하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가 쓴 소설은 하나같이 출판사로부터 선불을 받아 마감에 쫓기며 쓴 것이란다. 석영중 고려대 교수는 ‘도스토옙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라는 책에서 “주인공이 돈을 위해 전당포 노파를 죽이는 것으로 시작되는 소설 ‘죄와 벌’ 등은 모두 ‘돈의 코드’로 읽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당대 최고의 작가이던 그가 왜 항상 빚 독촉에 시달렸을까? 한때는 도박에 빠졌고, 돈이 생기는 대로 펑펑 썼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시골의 초라한 역에서 객사했지만 평생 가난과 거리가 멀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넓은 영지와 저작권을 놓고 사회 환원 문제를 부인과 다퉈야 했던 부자였다. 간디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지만 항상 3등칸 열차만 탔다. 또 양과 소젖에 비해 가격이 싼 염소젖만 마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 염소는 비싼 비누로 매일 목욕을 했고, 사료값도 엄청 많이 들었다고 한다. 간디가 자신이 세운 공동체 아슈람에서 추종자들과 함께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후원자들 덕분이다. 간디의 후계자이던 여류 시인 나이두는 “간디에게 청빈한 삶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나라 전체로 볼 때 어마어마한 재산이 들었다.”고 말했다. 생전에 단 한 점의 그림을 판 고흐나 악성 베토벤 등은 평생 가난과 싸우며 고독하게 살았다. 그러기에 흔히 사상가, 문인, 예술가의 삶은 가난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간디처럼 귀족가문의 ‘엄친아’들도 적지 않다. 간디 등의 청빈한 삶은 지긋지긋한 가난의 산물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것이었다. 최근 중국의 한 30대 칼럼니스트는 ‘공자는 가난하지 않았다’라는 책에서 “공자·맹자가 고급 주택에 살았고 경제적으로 윤택했다.”고 썼다. 공자가 위나라 관학에서 받은 연봉은 좁쌀 90t이었다고 한다. 280명이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집도 3칸이긴 했지만 대지가 2만여㎡로 거의 농장 수준인 호화주택이었다. 맹자는 경제적으로 더 풍요로워 제나라에서 좁쌀 1만 5000t을 연봉으로 받았다. 그를 흠모한 송과 설나라 임금으로부터 어마어마한 황금 덩어리도 받았다고 한다. 성인 군자의 반열에 오른 이들이라면 더욱 궁핍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뒤집어지는 순간이다. 유가는 결코 물질을 경시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어떤 방법으로 부를 이룰지 그것이 문제일 뿐.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광장] 안철수 제2의 정몽준 될까/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안철수 제2의 정몽준 될까/최광숙 논설위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대선 출마 선언이 임박해지면서 야권 후보 단일화 방식에 관심이 쏠린다. 결국 안 원장과 민주통합당 후보 중 한 사람을 후보로 내세우기 위한 방식을 정해야 하는데 누가 한쪽을 지지하지 않는 한 여론조사로 판가름나지 않을까 싶다. 안 원장이 창당을 하든 무소속 후보로 있든 마지막에는 민주당 후보와 경선을 치러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여론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안 원장이 전국을 누비는 지역순회 경선을 받아들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여론조사를 하게 되면 안 원장의 우세를 점치는 이들이 많다. 최근 민주당 지지층을 대상으로 한 야당 단일후보 선호도 조사만 봐도 안 원장이 현재 민주당 경선 선두주자인 문재인 후보보다 10% 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대통령-문재인 총리’ 후보체제를 더 선호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 여론조사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담하기 어렵다고 본다. 일반적 예상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안철수 총리’ 후보라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민주당은 ‘선거의 달인’들이 잔뜩 포진한 집단이다. 반면 안 원장은 어떤 형태로 지지세력을 규합할지 모르겠지만 거대 정당에 비하면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2002년 대선 때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승리한 전력이 있다. 당시 여론조사에서는 정 후보의 지지율이 더 높았는데도 말이다. 민주당은 그 이후에도 총선 경선, 대표 경선, 대통령 후보 경선 등 당내 각종 선거를 통해 여론조사를 다루는 노하우를 착실히 쌓아 왔다. 2002년 노 후보 캠프에서 단일화 여론조사 일을 했던 한 인사는 “여론조사를 시작도 하기 전에 우리는 이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가 노 후보 지지층이 많은 화이트 칼라 고학력층이 집에 있는 주말 이틀간 실시된 것이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표본 선정 기준으로 나이·성별·지역 등이 거론되었는데, 결과적으로 ‘계층’이라는 기준이 암암리에 추가돼 노 후보가 이길 판세가 만들어졌다는 설명이다. 이 정도야 안 원장 측이 최고 여론조사 전문가들을 기용한다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론조사에 열정적으로 응할 조직이 있는가 여부는 다른 문제다. 비록 일반 국민 지지율은 높을지 몰라도 충성스러운 조직이 아니라 모래알 같이 흩어져 있는 지지자들을 가진 안 원장은 막상 ‘실전’에서 불리할 수 있다. 지난 6월 민주당 대표 경선에서 목격했듯 김한길 후보는 ‘당심’ ‘민심’ 모두에서 앞섰지만 친노(親) 성향의 사람들이 모바일 투표에서 이해찬 후보에 몰표를 던지는 바람에 쓴잔을 마셔야 했다. 친노그룹의 핵심인 문 후보 뒤에는 선거전문가 이해찬 대표가 버티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는 2002년 노 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노 후보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주역이다. 지난 6월 대표 경선에서도 패색이 짙어진 선거를 막판에 역전시키기도 했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한 친노세력은 문 후보를 위해 수많은 실전경험과 조직력, 결속력으로 총력전을 펼칠 것이다. 2002년 대선에서 정 후보 측근이던 가수 김흥국씨는 ‘김흥국의 우끼는 어록’이란 책에서 단일화 여론조사에 대해 “민주당이 모든 조직을 가동했고 거기에 ‘노사모’가 똘똘 뭉쳐 여론조사에 적절히 대응한 결과였다.”고 회고했다. 민주당은 몇 시에 여론조사를 할 예정이니 조사원에게 응답하기 위해 일반전화가 있는 곳에 자리를 잡고 있으라고 지시할 정도로 철저히 대비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의 ‘함정’을 감안하면, 안 원장은 야권 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민심과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안 원장은 “사회에 긍정적 발전 도구로 쓰인다면 정치를 감당할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의 진정성과는 별도로 그는 우리 사회가 아닌 민주당의 도구로 쓰일 수도 있는 것이다.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지하 운동권/최광숙 논설위원

    요즘 ‘지하 운동권’ 세력들을 만난다. 군부독재 시절 암약하던 민주화 투사들이 아니다. 말 그대로 지하 거리를 걸으며 운동하는 이들이다. 왜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걷냐고? 음지를 지향해서가 아니라 날씨 때문이다. 여름이면 더위를, 겨울이면 추위를 피할 수 있어 좋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침수만 안 되면 걸을 수 있다. 지난해 겨울부터 지하도 운동권에 합류했는데, 운동화를 챙겨 신고 걷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 회사 인근 시청역 지하도에서 을지로 4가까지 갔다 오면 40분 정도 걸리니 걷기에 적당하다. 지하 세상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울의 거리를 소개하는 최첨단 디지털 안내판과 가게들도 있지만 옛날식 다방도 있다. 무더위가 한창일 때도 그 다방엔 지난해 겨울의 크리스마스 장식물이 여전히 매달려 있었으니 ‘8월의 크리스마스’가 따로 없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여 있는 듯한 지하도에서 운동하는 게 헬스클럽 기계 위에서 달리는 것보다 내겐 훨씬 낫다. 단조롭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메밀국수/최광숙 논설위원

    몇년 전 소설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이효석의 고향, 강원도 봉평에 간 적이 있다. 이효석 문학관과 허브 농장을 방문한 뒤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메밀국수, 일명 막국수를 잘한다는 한 식당이었다. 자극적이지 않고 구수하면서도 소박한 막국수였다. 메밀전병과 시원한 김치국물에 말아놓은 메밀묵사발도 일품이었다. 최근 메밀국수를 먹었다. 메밀의 효능을 다룬 방송을 보고서다. 그걸 본 이들이 많아서인지 회사 내에서도 메밀이 화제가 올랐고, 말이 나온 김에 먹자며 다음 날 점심 메뉴로 메밀국수가 정해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메밀국수 집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일찍 갔기에 망정이지 길게 늘어선 줄에서 한참을 기다릴 뻔했다. 그 집의 유명세도 있겠지만 방송의 위력이지 싶다. 아니, 그보다 이왕이면 몸에 좋은 음식을 찾는 건강 열풍이 그 집에도 불어온 것 같다. 그 대열에 합류한 내 모습을 보면서 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이젠 음식을 먹어도 맛보다 건강을 먼저 염두에 두는 나이에 접어든 것만 같아서….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공직자와 골프/최광숙 논설위원

    노무현 정부 시절 ‘실세 총리’로 불리던 이해찬 총리가 한방에 날아간 것은 바로 골프 파동 때문이다. 노 대통령과 매일 통화하고 인사권까지 행사하던 그였지만 철도 파업 첫날인 2006년 3월 1일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자 궁지에 몰렸다. 그는 공보수석을 통해 “사려 깊지 못한 처신으로 국민에게 걱정을 끼쳤다.”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스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그후 한 인터뷰에서 “세상에 총리가 골프 쳤다고 나가라는 데가 어디 있느냐.”라며 억울해했다. 역대 정권 중 가장 공직자들의 골프에 관대했던 노 정권 시절 대통령과 권력을 나눠 가졌다던 이 총리가 골프 문제로 물러난 것은 아이러니라 하겠다. 그와 함께 골프를 쳤던 이기우 전 교육부차관도 취임한 지 43일 만에 역대 최단명 교육부차관이라는 기록을 남기고 퇴임해야 했다. 골프사(史)를 보면 골프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골프 금지령’이라고 한다. 1457년 스코틀랜드의 국왕 제임스 2세는 의회의 법령을 통해 골프 금지령을 내렸다. 잉글랜드와의 전쟁에서 참패한 뒤 국민들에게 인기가 있던 골프가 궁술 훈련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골프는 여전히 성행했고, 결국 40여년 만에 골프금지령은 폐지됐다. 김영삼 정부 시절 골프 금지령이 공직사회에 처음 내려졌다. 김 대통령이 골프를 잘 못 친 이유도 있지만 골프를 즐겼던 과거 군 출신 대통령들과 차별화하자고 했던 것이다. 당시 골프가 사치스러운 운동으로 여겨졌던 만큼 김 대통령 스스로 “돈 한푼 받지 않겠다.”며 선언한 ‘깨끗한 정치’를 공직사회에도 실현시키고자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공무원들의 기강을 잡겠다며 종종 골프 금지령이 내려졌지만, 접대 골프가 아니라 내 돈 내고 치는 거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이규형 주중대사를 비롯한 주중대사관 직원 40여명이 지난 15일 광복절에 골프를 즐긴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고 있다. 장성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 데다 한·중·일 외교 갈등이 첨예하게 빚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업무에 소홀한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요즘 세상이 변해 공직자가 주말에 골프를 친다고 누가 뭐랄 사람은 없다. 골프의 대중화 시대임을 감안했을 때다. 하지만 순국선열들을 기리는 국경일이나 수해나 산불 등으로 국민들이 수심에 잠긴 시점에 골프채를 휘두르는 공직자가 있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인간사 모든 일은 때가 적절해야 하는 법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회사가 좋아/최광숙 논설위원

    친한 교수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방학이라 집에서 지낼 수 있어 부럽다고 했더니만 아니란다. 너무 더워 매일 학교에 나온다고 했다. 에어컨 나오는 학교가 제일 시원해서란다. 더운 집에서 가족들과 부딪치느니 차라리 학교에서 책을 보는 게 훨씬 좋다고 했다. 그 말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달 초 여행을 가기 어려운 상황이어서 할 수 없이 집에서 휴가를 보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여름에 강하다고 자부했는데 올여름 여지없이 무너졌다. 열대야에 잠을 설치기 일쑤고, 낮에도 땀이 줄줄 흘러 주체를 못했다. 몇번이고 찬물을 뒤집어써도 그때뿐이다. 집에 에어컨이 없어 선풍기를 돌리니 그럴 수밖에…. 에어컨을 쐬면 감기에 잘 걸려 그동안 에어컨 없이도 잘 지냈는데 올여름 그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다. 너무 더우니 휴가고 뭐고 회사가 그리웠다. 요즘 집보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회사가 좋다는 이들을 여럿 봤다. 회사에서 일하는 게 그리 좋다는 것을 올 무더위가 일깨워준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재활용/최광숙 논설위원

    아파트 경비실 옆에 작은 쉼터가 있다. 이곳을 지나치다 보면 늘 의자가 눈에 들어온다. 당초 있던 긴 벤치 3개 말고도 벤치 옆에 나란히 의자 두개가 있다. 하나는 식탁이나 거실에서 사용하던 1인용 의자다. 또 하나는 아주 귀여운, 파란색 빛이 도는 어린이용 휴식 의자다. 누군가 버린 것 같은데 주워다 멋지게 꾸며놨다. 한 친한 공무원은 귀한 외동딸에게 중고 장터에서 산 5000원짜리 원피스도 입힌다(물론 제값 주고 산 옷들도 있지만). 아이가 쑥쑥 커서 작아진 옷은 친지나 수위 아저씨의 손녀딸에게 넘긴다고 한다. 여동생도 친구 아들이 입던 옷을 물려받아 조카에게 입힌다. 몇 년 전 미국으로 연수를 갔을 때 숟가락까지 남이 쓰던 것을 사용했다. 중고 물품 사이트가 많아서 원하는 물건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품목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하니 굳이 새 살림을 장만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사소한 물건이라도 재활용하는 지혜, 나눔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 더욱 좋은 것 아닌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주도(酒道)/최광숙 논설위원

    술꾼 시인 천상병은 늘 술을 찬미했다. “저녁 어스름은 가난한 시인(詩人)의 보람, 몽롱하다는 것은 장엄(莊嚴)하다.”(시 ‘주막에서’), “인생은 고해(苦海), 그 괴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술뿐이다.”(시 ‘술’)라고 읊었다. 술에서 자유로운 문인들이 있으랴만은 그가 얼마나 술을 좋아했는지, 한국 문단의 최고 기인 김관식의 집에서 책들을 훔쳐 헌책방에 팔아 술값을 내곤 했다고 한다. 월탄 박종화를 ‘박군’이라고 낮춰 부르던 김관식 역시 술을 좋아해 못다 마신 됫병 소주를 옆에 두고 시멘트 포대가 깔린 방에서 37세에 요절했다. 그렇지만 애주가이던 시인 조지훈은 ‘주도유단’(酒道有段)을 통해 술에도 급(9급)이 있고, 단(9단)이 있다며 주도(酒道)를 설파했다. “술을 마시면 누구나 영웅호걸이 되고 위인 현사(賢士)도 안중에 없는 법”이라면서 “술 먹고 부리는 주정에도 교양이 있다. ”고 자신의 술 철학을 폈다. 조선 시대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아들 학유가 폭음을 한다는 소식에 편지를 썼다.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다.”며 “얼굴빛이 붉은 귀신 같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자들이야 무슨 정취가 있겠느냐.”고 아들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 내는 잘못된 행동은 모두 술에서 비롯된다.”고 술 경계령을 내렸던 것이다. 조선 시대에는 나라에서 술 먹는 법도를 정해 향교나 서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쳤다고 한다. 세종대왕이 주나라 예법을 바탕으로 만든 ‘향음주례’(鄕飮酒禮)가 바로 그것이다. 의복을 단정히 하고 끝까지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아야, 즉 깍듯이 예의를 갖춰 술을 마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주폭(酒暴)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강릉시는 경포대에서 술을 못 마시게 해 전국에서 처음으로 백사장 음주 규제를 시행했다. 그 뒤 해변의 술판이 사라지고 쓰레기도 대폭 줄었다고 한다. 강만수 산은금융그룹 회장이 최근 ‘KDB 선비 술 문화 5계명’을 사내에 선포해 화제가 되고 있다. ‘술잔은 돌리지 말라.’, ‘취하지 말고 즐겨라.’, ‘저녁에는 1차로 끝내라.’ 등 다섯 가지 내용이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다. 유난히 술에 대해 관대했던 우리 사회. 풍류로 받아들여진 잘못된 술 문화가 이제는 도를 넘어 성폭행 등 각종 범죄로 이어지고 있다. 술과 단절하자며 곳곳에서 나오는 자성의 움직임들이 누구보다 여성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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