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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예의/최광숙 논설위원

    얼마 전 문자를 보낸다는 게 엉뚱하게 다른 사람한테 보냈나 보다. 답이 오길 “교수님이세요?”란다. 아차 실수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잘못 보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다시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아닙니다. 수고하세요~”라고 답변이 왔다. 익명의 상황이니 ‘무시’해도 되건만 이렇게 친절한 응답을 받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보통 전화를 잘못 걸면 십중팔구 받는 사람은 ‘쌩’ 하니 찬바람이 분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수화기를 내려놓기 일쑤다. 무슨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냉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럴 때면 수화기 너머 말 한마디 따뜻하게 못 건네는 이의 각박함이 전해져 씁쓸하다. 그런 이에 비하면 문자 한 통이라도 성심껏 응대하는 이는 틀림없이 예의 바른 사람이리라. 요즘 메르스 사태를 보면서 예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최근 자택 격리자가 많은 일행과 함께 버스를 타고 지방까지 가 골프를 쳤다고 한다. 자신만 아는 이기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예(禮)라는 것은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과 같은 단순한 예절이 아니다. 나 아닌 타인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길 줄 아는 태도가 진정한 예의 아니겠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공포감/최광숙 논설위원

    2009년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할 때다. 고열, 기침에 식은땀도 흘렸다. 신종플루 증상을 찾아보니 ‘딱’이다 싶을 정도로 일치했다. 더구나 당시 신종플루의 진원지로 알려진 멕시코에 다녀온 직후라 내심 “먼 타국에서 외롭게 죽는구나” 하는 마음마저 들었다. 미국 연수 시절이라 말이 잘 통하는 한국인 의사가 있는 병원부터 전화 예약했다. 그런데 몇 분 뒤 간호사가 진료가 어렵다고 했다. 멕시코를 다녀왔다고 하니 아무래도 진료를 거부한 듯했다. 그러고 나니 진짜 신종플루 환자로 확진된 양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 후 혹여나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것을 우려해 마스크를 썼다. 방 한 칸 좁은 아파트에서도 따로 식기류를 사용하고 식사하는 등 나름 격리를 자청했다. 나중에 큰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은 결과 신종플루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병명도 없이 갱년기 증상일 수 있다는 의사의 막연한 추정만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음의 병’이지 싶다. 병에 대한 걱정이 죽음에 대한 공포감으로 증폭되면서 스스로 ‘환자입네’ 했던 것 같다. 요즘 메르스 걱정이 많은데 대비는 해야지만 이럴수록 평정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조문(弔問)/최광숙 논설위원

    모친상을 당한 지인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조문과 따뜻한 위로에 감사하다는 내용이다. 사진 한 장도 첨부됐다. 삐뚤빼뚤 글씨체가 마치 초등학생이 쓴 듯한 ‘가을’이라는 제목의 시(詩)다. ‘단풍을 보면 가을이 온다/오곡이 익으면 가을이 온다/추석이 오면 가을이 온다/겨울이 오면 가을은 간다’ 일상의 언어로 가을이 오고 감을, 아니 세월이 지나감을 담백하게 그려 낸 이 시구 옆에는 단풍잎이 붙여져 있다. 이 시는 지인의 어머니가 93세 되던 해 가을 힘든 재활 과정에서 떨리는 손으로 쓰신 것이라고 한다. 평소 유려한 필력과 단아한 글씨체는 잃어버리셨지만 당시 심경을 담아 한 글자씩 힘들게 쓰신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를 여의고 한없는 슬픔에 잠긴 아들의 마음이 어머니의 시 한 수로 절절하게 표현된 것 같아 마음이 먹먹해졌다. 문상 시 잘 아는 고인이야 이런저런 마음이 들지만 지인의 가족상일 때는 사실 망자(亡者)보다는 유가족에 대한 예의에 더 신경 쓰기 마련이다. 그러니 고인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게 된다. 하지만 이번 문자 한 통으로 잘 모르는 고인에 대한 진정한 조문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만화의 진화/최광숙 논설위원

    조카가 유치원 다닐 때 일이다. 한글을 깨치더니 만화에 재미를 붙였다. 어느 날 만화로 된 그리스·로마신화를 보고 싶어 하는 눈치기에 물어봤다. “그거 만화 아니냐?” “만화인데 공부가 돼요.” 어린 것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만화가 ‘공부’가 된다고 말할까 싶어 그날로 만화 전집 20권을 사 줬다. 여섯 살 어린아이도 눈치챈 만화에 대한 어른들의 편견. 요즘 부모들이 자녀들이 게임에 열중하는 것을 걱정하듯 나의 어린 시절에는 만화 금지령이 내려졌었다. 만화는 시험 성적을 떨어뜨리는 주범으로 취급받으며 금서나 다름없었다. 그러니 나 역시 어머니 몰래 만화방을 들락거릴 수밖에 없었다. 만화방에 가서도 혹여나 들킬까봐 가슴이 콩닥콩닥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만화는 이제 영화로,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세상이다. 한류 문화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각시탈’ ‘식객’ 등을 그린 만화가 허영만씨의 전시회장을 찾아 각종 지원을 약속했다고 한다. 오락용에서 출발한 만화가 학습용을 거쳐 문화 정책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한 것을 보면서 만화 애호가로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난(蘭)/최광숙 논설위원

    요즘 거실이 환해졌다. 분홍빛 서양란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면서다. 이 난은 지난해 봄 마트에 갔다가 우연히 산 것이다. 예로부터 난은 청초함과 은은한 향기로 ‘꽃 중의 귀족’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난은 기르기가 워낙 어려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선비의 ‘인격 수양’의 한 방편이라고 할 만큼 인내와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너무 습해도 안 되고 건조해도 안 되고, 밝은 햇빛도 피해야 하니 어린아이 키우는 정성이 따로 없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 집 난은 그게 아니다. 지난해 꽃을 피운 후에는 초라한 행색으로 변했기에 별 마음을 두지 않았다. 그렇다고 버리기는 아까워 다른 화분에 물을 줄 때 곁다리로 물을 뿌려 주곤 했다. 그랬더니 기대도 하지 않던 난이 올해 함초롬하게 다시 피어난 것이다. 그것도 꽃망울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서양란은 동양란과 달리 재배 등이 좀 수월하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돌보지 않은 악조건에도 지난해보다 더 화사한 꽃을 피워 낸 것을 보니 놀랍다. 꽃의 귀족이 아니라 평민으로 내려앉았다 싶기도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의 힘을 키워 내는 모습에는 저절로 감탄하게 된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광장] 메르켈 외교, 박근혜 외교/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메르켈 외교, 박근혜 외교/최광숙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연배가 비슷한 데다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이공계 출신이어서 종종 닮은꼴 지도자로 비교된다. 하지만 국제 무대에 드러나는 외교 스타일을 보면 딴판이다. 메르켈이 소신 있으면서도 유연하게 실리를 취하는 반면 박 대통령은 앞뒤가 꽉 막힌 듯한 행보로 외교적 고립을 자초한다는 평을 듣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최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 기념 행사에 서방 국가 정상으로는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항의로 러시아 방문을 보이콧했다. 사실 메르켈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공공연하게 서로를 물어뜯는 앙숙으로 묘사될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다. 메르켈에게 먼저 ‘악동’ 짓을 한 것은 푸틴이다. 2006년 메르켈의 총리 취임 후 첫 러시아 방문 시 푸틴이 내민 선물은 개 인형이었다. 개에게 물린 이후 개 공포증이 있는 메르켈에게는 부적절한 선물임을 푸틴이 모를 리 없었다. 이듬해 푸틴은 메르켈과의 정상회담장에 자신의 애견을 풀어 놓았다. 갑자기 나타난 이 검은 개는 메르켈에게 다가와 킁킁 냄새를 맡고 발을 핥았다. 메르켈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두 다리를 바짝 끌어당겨야 했고, 푸틴은 이를 느긋하게 바라보았다. 특히 회담에서 푸틴은 호통을 치거나 거칠게 구는 등 마치 KGB 장교처럼 행동하곤 해 메르켈을 경악하게 했다고 한다. 이러니 메르켈이 푸틴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메르켈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외교 현안을 다루기 위해 푸틴을 결코 멀리하지 않았다. 다른 정상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자주 통화했다. 올 들어 3번 정상회담, 16차례 전화통화를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크게 악화된 지난해는 4번 정상회담과 34번의 전화통화가 있었다. 이번 메르켈의 러시아 외교가 돋보인 것은 명분과 실리를 다 얻는 전략적인 행보 때문이다. 메르켈은 지난 11일 푸틴과 2차 세계대전 무명용사 묘를 헌화하는 것으로 전범국으로서의 과거사 반성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전날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가지 않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사태 개입으로 5000명 이상 숨진 상황에서 러시아군의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메르켈은 푸틴과의 회담에서는 우크라니아 사태의 해결을 촉구함으로써 유럽의 문제 해결에 독일이 중재자 역할을 맡고 있음을 전 세계에 보여 줬다. 과거사와 외교 현안을 철저히 분리 대응하는 실리 외교를 펼친 것이다. 반면 박 대통령은 과거사에만 ‘올인’하고 다른 것은 고려하지 않는 원리주의적 방식을 취했다. 지난해 3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 전 아베 총리가 한국어로 인사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을 때 무뚝뚝한 표정으로 외면했다. 2013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에서도 바로 옆에 앉은 아베와 눈길 한번 나누지 않았다. 아베가 박 대통령을 향해 고개를 돌리면 하늘을 쳐다보며 ‘투명인간’ 취급했다. 이런 박근혜식 ‘얼음외교’는 누가 봐도 결례로 비춰진다. 뒤늦게 정부가 과거사와 경제·외교는 분리 대응한다지만 이미 대일 외교에서 우리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친 상태다. 그렇다고 미국·중국과 더 친해진 것도 아니다. 미국과 중국이 각각 주도하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를 놓고 눈치만 보다가 결국 두 나라 모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이 사이 미·일은 신밀월 시대를 활짝 열며 갈수록 밀착되고, 과거사로 아베를 멀리하던 중국도 일본과 손을 잡았다. 한국만 외로운 ‘섬’처럼 외교적 고립 위기에 몰리고 있다. 메르켈의 거침없으면서도 실리를 취하는 외교 행보는 독일이 유럽의 최대 경제국이기에 가능한 측면이 있지만 메르켈 개인의 외교 능력도 크게 작용했다. 그동안 세계 외교무대에서 미국·프랑스에 비하면 변방에 머물던 독일의 위상은 메르켈의 등극 이후 높아졌다. 강국에 둘러싸인 우리는 더더욱 인근 국가들과 연대하며 국익을 챙기는 실리 외교를 펼쳐야 한다. 지도자의 외교력에 따라 국가의 위상만이 아니라 국가의 흥망성쇠까지도 달렸는지 모른다.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헌옷을 새옷으로/최광숙 논설위원

    옷 사러 다니는 것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 백화점이라도 한번 가게 되면 눈에 띄는 것은 가격이 비싸고, 그렇다고 후줄근한 옷에는 선뜻 손이 안 간다. 싸고 좋은 품질의 옷을 사러 다리품을 팔 생각도 없으니 이래저래 옷 사기를 포기하고 멋 내기도 접는다. 돈도 돈이지만 패션에 대한 열정이 없으면 정말 힘든 게 옷 쇼핑이다. 요즘 옷장 안 입지 않는 옷들의 ‘재생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디자인은 구식이지만 버리기는 아까워 빛을 못 보던 천덕꾸러기들에게 얼마 안 되는 수선비로 새 생명을 불어 넣고 있다. 마침 동네에서 솜씨 좋은 옷 수선 집을 찾아낸 덕분이다. 60대 부부가 함께 옷 수선을 하는데 과거 의상실을 경영한 이들이라 자부심이 대단하다. 특히 아저씨가 그렇다. 수선한 옷이 마음에 들어 인사라도 하면 “부산 광복동에서 옷 만들던 사람이야. 우습게 보지 마쇼” 한다. 의상실 주인으로 옷을 만들다가 남이 지은 옷을 수선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눈치다. 그래서 칭찬도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도 보기 좋다. 남들은 현역에서 은퇴할 나이에 부부가 알콩달콩 함께 일하는 모습이….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팁 줄 돈이 없어서/최광숙 논설위원

    식당에서 밥 먹고 나오면 팁을 안 준다. 하지만 누군가 몸을 열심히 움직여서 나를 위해 봉사한다면 그럴 때는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하지만 안 줘도 그만이니 먼저 팁을 줄까 말까를 망설이게 된다. 주기로 결정해도 다음 고민이 남아 있다. 얼마를 줄까? 그럴 때면 일본의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코미디언인 기타노 다케시의 얘기가 떠오른다. 그가 어느 날 스승인 후카미에게 초밥을 먹자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안가.”, “왜요?”, “팁 줄 돈이 없어.” 다케시의 스승은 초밥집에 가면 주인 한 사람, 젊은 종업원 두 사람에게 각각 팁으로 1만엔씩을 줬다고 한다. 초밥값이 1만엔이니 4만엔이 있어야 초밥을 먹을 수 있다. 그런데 팁을 줄 여건이 안 되면 밥을 먹으러 안 갔단다. 팁도 직접 주지 않고 지갑을 다케시한테 건네주면서 주게 했다고 한다. 그것도 자신이 가게를 나간 뒤 그렇게 하라고 했다. 면전에서 고맙다는 인사를 듣기 싫어서다. 팁 없어 밥집 못 가는 후카미를 누군가는 ‘폼생폼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제자는 ‘멋있는 어른’이라고 존경했다. 요즘 살기가 각박해서인지 그런 어른 찾기가 쉽지 않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잠 못 이루는 밤/최광숙 논설위원

    미국 뉴욕에서의 연수 시절 좋아하는 오페라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많은 오페라 중 푸치니의 ‘투란도트’가 요즘 생각난다. 아니 거기에서 나오는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자꾸 머릿속을 맴돈다. 세계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불러서 더욱 유명해지고, 영국의 무명 휴대전화 세일즈맨이던 폴 포츠를 일약 스타로 만든 노래다. 공주도 아닌 내가 왜?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잦아서다.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잠깐 깨면 잠이란 녀석을 다시 붙잡기가 쉽지 않다. 그렇게 잠을 설치고 나면 그날 하루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아 곤혹스러워진다. 젊은 시절에 잠은 베개만 베면 찾아왔지 나 잡아 봐라 하고 도망가는 존재가 아니었다. 늘 잠자는 시간이 부족했지 잠이 안 온다는 이야기는 사치스런 불평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지금 주변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젊은 사람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중년들은 갱년기 증상 중 하나로, 노인들은 노화 현상과 정서적 불안으로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 있다. 성완종 리스트에 관련된 인사들은 또 다른 이유들로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게임 안부/최광숙 논설위원

    갑자기 카톡 메시지가 늘었다. 자주 연락하는 지인에서부터 그동안 연락이 뜸해 소식이 궁금했던 지인으로부터도 메시지를 받았다. 내게 특별한 안부를 물을 일이 생긴 것도 아니다. 메시지 문안대로라면 순전히 ‘신규 캐릭터 ○○○’ 덕분이다. 평소에 게임을 즐기지 않고 관심도 없지만 이번만큼은 전과 달리 눈길이 갔다. 간간이 게임 메시지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 공습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주위에 물어보니 카톡에서 새로 나온 캐릭터 게임이란다. 호기심에 처음으로 게임 설치를 해 보았다. 파일 업데이트, 이것저것 사전 단계를 거쳐 겨우 게임에 접근했지만 게임에 문외한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내게는 너무 낯설기만 한 신세계다. 메시지를 보낸 지인들은 안부를 묻는 게 아니라 게임을 위해 단지 내 이름이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들 휴대전화에 내 이름이, 내 휴대전화에 그들의 이름이 저장돼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게임 속 새로운 세상을 엿보고, 과거 알던 지인들을 다시 기억할 추억의 시간을 갖는다. 휴대전화 속 게임이 지인들의 안부를 전해 주는 세상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게임 안부/최광숙 논설위원

    갑자기 카톡 메시지가 늘었다. 자주 연락하는 지인에서부터 그동안 연락이 뜸해 소식이 궁금했던 지인으로부터도 메시지를 받았다. 내게 특별한 안부를 물을 일이 생긴 것도 아니다. 메시지 문안대로라면 순전히 ‘신규 캐릭터 ○○○’ 덕분이다. 평소에 게임을 즐기지 않고 관심도 없지만 이번만큼은 전과 달리 눈길이 갔다. 간간이 게임 메시지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 공습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주위에 물어보니 카톡에서 새로 나온 캐릭터 게임이란다. 호기심에 처음으로 게임 설치를 해 보았다. 파일 업데이트, 이것저것 사전 단계를 거쳐 겨우 게임에 접근했지만 게임에 문외한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내게는 너무 낯설기만 한 신세계다. 메시지를 보낸 지인들은 안부를 묻는 게 아니라 게임을 위해 단지 내 이름이 필요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그들 휴대전화에 내 이름이, 내 휴대전화에 그들의 이름이 저장돼 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나마 게임 속 새로운 세상을 엿보고, 과거 알던 지인들을 다시 기억할 추억의 시간을 갖는다. 휴대전화 속 게임이 지인들의 안부를 전해 주는 세상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푸드 트럭 위 첼로 공연/최광숙 논설위원

    주말에 집 근처 벼룩시장을 찾았다가 어디선가 첼로의 선율이 들렸다. 처음에는 누군가 음반을 틀어놓았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라이브다. 첼리스트는 대학 선배와 함께 작은 트럭에서 과일 주스 등을 팔고 있는 한 대학생이다. 그는 취미로 배운 솜씨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엘가의 ‘사랑의 인사’ 등을 꽤 능숙하게 연주했다. 공연 무대가 상상을 초월한다. 트럭 지붕을 개조해 평평하게 무대로 꾸몄다. 공중에 붕 떠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연주하는 모습이 차를 타고 가다가 멈춰 아름다운 숲 속에서 연주를 했다는 첼리스트 요요마를 떠올리게 했다. 대학생인 그들은 두 달 전 창업했다고 한다. 중고 트럭 300만원 등 모두 600만원이 들었단다. 수업 없는 날이나 주말에 트럭을 끌고 여기저기 다닌단다. “이거 불법이에요.” 주스를 내어주는 환한 표정 뒤로 고민이 비쳤다. 정부가 규제개혁의 시범 사례로 선전하던 푸드 트럭이 아직도 손발이 묶여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은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사람을 많이 만나고 부모님께 손 안 벌려 좋다”고 했다. 힘들지만 밝고 힘차게 자신의 삶을 개척하는 젊은이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리퍼트 대사의 경호/최광숙 논설위원

    처음에는 덩치 큰 이가 여러 사람에 둘러싸여 있어 누군지 알아보지 못했다. 출근길 광화문에서 만난 이는 다름 아닌 김기종씨로부터 습격당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였다. 귀에 리시버를 꽂은 건장한 체격의 경호원들이 앞뒤, 좌우에 마름모꼴 모양으로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한 사람은 리퍼트 대사 바로 옆에서 근접경호를 하면서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비서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모두 5명의 경호원이 그를 보호하는 모양새다. 경찰에 물어보니 경호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가 그런 마름모꼴이라고 한다. 사건 이전에는 경호원 없이 애견을 데리고 다니던 그의 모습을 봐온 터라 그 모습이 안돼 보였다. 사실 우리나라 고위공직자들이 5분 걸으면 되는 곳을 빙 둘러서 관용차를 타고 다니는 것을 많이 봐 왔다. 걸으면 마치 체통이 떨어지는 양하는 고관대작의 모습이 보기 좋을 리 없다. 거기에 비하면 사고 트라우마도 있을 법한 리퍼트 대사가 비록 경호원과 함께하기는 하지만 계속 ‘도보 출근’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니 신선하기까지 하다. 평범한 ‘서울시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그의 모습을 오랫동안 보고 싶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햇살이 밝아서/최광숙 논설위원

    ‘햇살이 밝아서 햇살이 아주 따뜻해서 ~ 괜찮았어’. 얼마 전 한 방송사 오디션 프로에서 정승환과 수지가 듀엣으로 부른 가요 ‘대낮에 한 이별’의 한 대목이다. 8년 전에 발표된 이 곡을 최근에야 접하고 자주 흥얼거린다. 메마른 일상에 찾아온 ‘햇살’ 같은 노래라고나 할까. 마음을 촉촉하게 하는 부드러운 멜로디도 그렇지만, 이별을 하는 연인들의 애틋한 마음을 마침 하늘을 가득 메운 햇살이 감싸주었다는 가사가 마음을 아련하게 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쓴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혹독한 감옥 생활에도 자살하지 않은 것은 ‘햇볕’ 덕분이라고 했다. “겨울 독방에서 만난 신문지만 한 햇볕을 무릎 위에 받고 있을 때의 따스함은 살아 있음의 어떤 절정이었다”는 것이다. 통혁당 사건으로 20여년간 감옥살이를 한 지식인의 처절한 고통을 이겨내게 한 것도, 이별에 ‘죽을 것 같아서 숨도 못 쉰다’는 젊은 연인의 마음을 다잡아 준 것도 햇살이다. 실제로 햇볕이 우울한 마음을 치료해준다는 보고서도 있다. 그러나 햇살은 오늘도 무심히 세상을 비추지만 마음 깊이 따뜻함을 느끼는 것은 순전히 내 몫이리라.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봄을 찾다/최광숙 논설위원

    얼마 전 한창 벚꽃이 필 무렵의 일이다. 오랜 봄 감기가 다소 누그러질 때였는데 마침 남쪽 지방에서 벚꽃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남아 있어 나들이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마침 여의도 벚꽃축제에 참여한 이들의 환한 표정과 함께 활짝 핀 벚꽃을 방송에서 보고 나니 봄마중하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다. 꿩 대신 닭이라고 집 인근 공원에 갔다. 기차가 다니던 폐선 부지에 만든 공원인데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어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아! 오랜만에 가 본 공원은 그야말로 벚꽃 천지였다. 하얀 벚꽃 터널 사이로 연인과 가족 단위 상춘객들이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중국의 시 ‘봄을 찾다’(尋春)가 떠올랐다. ‘하루 종일 봄을 찾아 다녀도 봄을 보지 못하고/짚신이 다 닳도록 언덕 위 구름만 밟고 다녔네/지쳐 돌아와 우연히 매화나무 밑을 지나는데/봄은 이미 매화 가지 위에 한껏 와 있었네’ 봄을 찾아 멀리 헤매다가 결국 못 찾고 돌아왔는데 집 뜰안에 봄이 와 있더라는 내용이다. 어디 먼 곳에서 찾는 것이 봄뿐일까. 기쁨도, 희망도, 행복도 결코 멀리서 찾을 일이 아니거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나훈아와 나운하/최광숙 논설위원

    보통 진짜는 좋고, 가짜는 나쁘다고 생각한다. 진짜는 참이고, 가짜는 거짓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가끔 방송에서 유명 가수의 흉내를 내며 살아가는 모창 가수들을 보면 가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아닐까 여겼다. 누구나 스타가 될 수는 없는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말투, 몸짓, 머리 스타일까지 온통 원조 가수를 흉내 내는 삶이 다소 비루하게 보인 것은 나만일까. 얼마 전 나훈아 모창 가수 경력 40년 나운하의 삶을 다룬 프로를 봤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운하씨. 그래도 무대 위의 운하씨는 최정상의 훈아씨와 비교하면 갈 길이 멀어 보였다. 하지만 운하씨의 삶까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남편을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는 부인, 무명 가수 아빠의 일본 무대 진출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인 아들과 딸과 사위, 귀여운 손자들…. 환갑의 나이에 자식들을 다 독립시키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달리는 멋진 남자가 운하씨였다. 이혼 소송으로 세간의 이목을 받기도 하는 진짜 훈아씨가 가짜 운하씨를 부러워할 인생이지 싶다. 삶에서 진짜와 가짜는 없다. 누구나 진짜의 삶을 살아갈 뿐.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씨줄날줄] 메르켈과 아베의 국가이성/최광숙 논설위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91년 독일 통일 후 첫 조각에서 여성청소년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첫 외국 방문지로 선택한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다. 총리가 된 후 더욱 이스라엘을 챙겼다. 총리 재임 첫 7년 동안 이스라엘을 방문한 횟수만 네 번이다. 이렇듯 메르켈의 외교정치에서 이스라엘은 유럽연합과 미국에 비견할 정도로 중요하다. 이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과 관련한 독일의 역사적 부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도 화답했다. 히브리대학에서 메르켈에게 명예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2008년 3월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맞아 이스라엘 의회는 총리로는 처음으로 메르켈에게 연설하도록 기회를 줬다. 국가원수들만 불러 연설을 듣는 관행을 메르켈을 위해 과감히 깬 것이다. 독일에 있는 유대인 공동체도 ‘레오 백’이라는 상을 수여했다. 이 상은 독일유대교중앙위원회가 독일 유대인을 위해 공헌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2007년 9월 메르켈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나 이전의 모든 독일 총리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독일의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의무로 여겼다. 나 역시 이런 특별한 역사적 책임을 명확하게 인정한다. 그것은 독일의 ‘국가이성’에 속한다”고 말했다. 슈테판 코르넬리우스가 쓴 메르켈의 전기 ‘위기의 시대 메르켈의 시대’에서 저자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은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를 빼고는 독일을 논할 수 없다’는 역사관에서 출발해 나치에 대한 반성은 물론 나아가 독일에 이스라엘의 안전과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정치적 임무를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이성은 국가의 임무에 담긴 정치적 합리성이라고 설명했다. ‘국가이성’(國家理性)은 프랑스어인 ‘레종 데타’(raison dEtat)를 번역한 말로 이미 로마시대에 사용됐다. 고대에서 국가이성이라는 관념은 위정자 개인의 경험에 입각하는 정치기술로서 인정되었지만 중세는 교회가 사회의 질서와 규범을 지배하던 때라 국가는 독자적인 존재 이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다가 국가이성이 현실의 정치나 정치학에 도입되어 확립된 것은 마키아벨리 때이다. 르네상스 지식인 마키아벨리는 국가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국가는 정치가의 도덕적 규범과 같은 개인 윤리가 아닌 국가이성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훗날 히틀러의 무차별 정복이나 유대인의 학살 등을 정당화하는 데 잘못 활용되기도 했다. 일부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비도덕적인 행위를 합리화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오는 8월 종전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담화에서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사죄의 표현을 담지 않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점차 히틀러를 닮아가는 듯한 아베는 메르켈의 국가이성이 뭔지나 알고 있는지….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서울광장] 경제 표방한 문재인, 클린턴 경제학을 배워라/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경제 표방한 문재인, 클린턴 경제학을 배워라/최광숙 논설위원

    ‘성완종 리스트’ 파문으로 여권은 쑥대밭 분위기다. 리스트에 담긴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이미 여권의 도덕성은 더이상 추락할 것이 없어 보인다. 이런 메가톤급 풍랑 속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공무원연금 개혁이 좌초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박근혜 정부가 하는 일마다 실망스럽다고 돌아선 지지층들이 그나마 손뼉 치는 것은 공무원연금 개혁이다. 매년 적자폭이 늘어나는 공무원연금은 국가부채 악화의 블랙홀이다. 장기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를 짓누르는 국가 부채는 1211조 2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93조 3000억원이나 늘어났다. 눈여겨볼 점은 부채 증가분의 절반이 넘는 47조 3000억원이 공무원과 군인연금 적자 보전에 쓰였다는 것이다. 공무원연금의 누적적자를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나라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국회 연설에서 경제를 강조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과거 야당의 단골 메뉴인 ‘복지’ 타령 대신 ‘경제와 성장’을 강조한 것은 대권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 해도 제대로 ‘어젠다’를 잡은 것이기에 조심스럽게나마 그의 정치를 기대하게 된다. 문 대표가 경제를 화두로 삼은 것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를 대선 슬로건으로 내세워 보수 공화당 정권 12년을 끝낸 이가 바로 클린턴이다. 보수 새누리당 집권 10년, 경기 침체 등의 우리 정치경제 상황이 클린턴이 대통령에 도전할 당시 미국과 비슷하다. 그러니 문 대표가 클린턴의 길을 밟는 것은 선거 전략상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그가 진짜 클린턴을 롤모델로 삼을 생각이라면 ‘클린턴의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길 바란다. 문 대표가 주장하는 ‘소득주도 성장론’은 각종 성장론의 백화점식 나열이라는 인상을 줄뿐더러 지금 우리 경제 발등의 불인 국가 부채 문제, 그중 핵심인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해서는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3년 2월 취임한 클린턴은 전임자로부터 적자투성이의 가계부를 물려받았다. 1981~1992년 사이 미국의 국가 부채는 무려 4배 증가했고, 1992년 재정 적자는 사상 최고 수준인 2900억 달러에 이르렀다. 클린턴이 이미 취임 전 고향 아칸소주의 리틀록에서 ‘미키의 연수회’라는 경제회의를 잇따라 열고, 재정 적자를 줄이는 것이 경제 회생의 급선무라는 결론을 내린 이유다. 이러한 방향 전환으로 나온 것이 1993년 8월 취임 후 처음 의회에 제출한 ‘미국을 위한 변화의 비전’으로 이름 붙여진 예산안이다. 나라 재정을 건전하게 하기 위해 3280억 달러의 세입 증가, 3290억 달러의 지출 삭감, 460억 달러의 이자 부담 경감 등으로 모두 4670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감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한마디로 국민에게 세금을 더 걷고 정부는 돈을 덜 써 재정 적자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국민의 표와 인기를 먹고사는 정치인으로서는 자살행위나 다름없는 내용이었다.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도 반대로 돌아섰지만, 그는 백악관에 비상상황실을 가동하며 상하원 의원들을 일일이 접촉해 천신만고 끝에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정치적 대가는 컸다. 취임 당시 58%였던 지지율이 곧바로 46%로 떨어졌다. 세금 인상 여파로 1994년 선거에서 클린턴의 민주당은 상하원 모두 참패했다. 하지만 클린턴의 결단으로 미국은 1998~2000년 3년간 연방재정수지 흑자를 기록하고, 50년 만에 균형재정을 달성했다. 재정 적자 감축은 경기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애초 예상과 달리 이자율 인하와 기업의 설비투자 촉진으로 이어져 경기 호황을 가져왔다. 재정 흑자로 인한 여유분은 연금제도 확충에 사용돼 연금도 내실화됐다. 클린턴이 역대 미 대통령 중 가장 뛰어난 경제 대통령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 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표가 떨어지는 것을 알면서도 세금·재정 개혁을 강행했듯이 문 대표도 제1야당 대표로서 진심으로 우리 경제를 걱정한다면 공무원연금 개혁처럼 어려운 현안에 대해 국민에게 고통 분담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책임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의 경제론은 인기만 얻으려는 포퓰리즘 정책이거나, 국민을 속이는 공허한 수사에 그칠 것이다. bori@seoul.co.kr
  • [길섶에서] 좌고우면/최광숙 논설위원

    ‘좌고우면’(左顧右眄)은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한다는 뜻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이리저리 생각하면서 앞뒤를 재고 망설이는 태도를 말한다. 요즘 이 단어가 유행어가 될 듯하다. ‘성완종 리스트’ 수사를 맡은 문무일 특별수사팀장은 그제 첫 브리핑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겠다”면서 좌고우면이라는 말을 네 차례나 사용했다. 강한 수사 의지를 밝힌 셈이다.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이 말을 검찰이 여러 차례 반복한 이유는 뭘까. 정치권이나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수사하는 것은 검찰 수사의 기본이다. 굳이 그 기본을 강조한 것을 보면 검찰 입장에서 이것저것 고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반증(反證)일 수 있다. 온 국민의 시선이 쏠려 있는 데다 리스트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박근혜 정권의 핵심부에 포진하고 있는 ‘살아 있는 권력’이기 때문일 게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도 “좌고우면하지 말고 국민만 보고 수사하라”고 검찰에 성역 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좌고우면과 비슷한 우리 속담으로 ‘망설이는 호랑이는 벌만도 못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 검찰은 호랑이가 되느냐, 벌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길섶에서] 민심/최광숙 논설위원

    지난 주말 집 인근 공원의 정자 쉼터에서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 두 분이 정자에 앉더니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본의 아니게 그들의 대화를 듣게 됐다. “죽으려는 사람이 돈 준 것 거짓말 하겠어?” “우리는 (선거 때) 설렁탕 한 그릇 잘못 얻어먹어도 수십 배 물어내는데, 몇억씩 받는 정치인들은 뭐야?” “박근혜 정부는 초반에는 세월호 때문에 아무것도 못 하더니, 이제 이 건은 어떻게 할 건가.” 자살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에 대한 얘기였다. 그들은 공무원연금과 복지 등에 대해서도 20여분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흔히 보는 평범한 할아버지들이었지만, 웬만한 신문 정치면 해설을 꿰뚫는 분석이었다. 요즘 방송의 시사 프로그램을 보면 정치평론가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들의 수준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았다. 군사독재 시대 등을 거치면서 온 국민이 준정치평론가가 됐다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다. 정치권이나 검찰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 민초들은 정확하게 그들의 속셈까지도 알아챌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네 할아버지들도 이젠 뉴스 뒤의 진실이 뭔지를 알고 있는 세상이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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