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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꽃을 말하다

    영원한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핀 아름다운 꽃들이 화폭에 고스란히 담겼다. 예성화랑은 3일부터 6월20일까지 프랑스 원로작가들의 작품으로 ‘프랑스 인기 작가 6인전’을 꾸몄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꽃, 그 아름다움에 대하여’이다.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화가들의 작품을 전문적으로 다뤄 온 예성화랑은 그동안 피카소전, 미로전, 샤갈전 등을 열어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전시회에 참가한 작가들은 베르날드 뷔페, 베르날드 카트랑, 앙드레 코타보, 앙드레 브라질리에, 질 고리티, 폴 아이즈피리 등 6명. 이들은 각자의 개성으로 꽃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있다. 아이즈피리의 ‘꽃’은 분홍빛 화병에 담긴 다양한 꽃들이 동화적으로 그려진 반구상적인 작품이다. 프랑스 전통의 감각과 선명한 색채가 돋보인다. 고흐의 색처럼 강렬하지도 않고, 키슬링의 색처럼 진하거나 무겁지도 않다.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동양의 감성이 묻어나는 작품도 있다. 카트랑의 작품 ‘겨울’은 눈꽃송이를 연상시키는 하얀 꽃들을 여백의 미를 살리면서 표현하고 있다. 동양 정신과 문화를 사랑하는 그의 예술 세계가 색채, 공간배치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뷔페의 ‘장미꽃’은 노란색 바탕에 작가 특유의 날카로운 선과 부드러운 빨간 장미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그는 1974년도에 최연소 미술아카데미 회원에 선정되고 퐁피두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한 프랑스화단의 원로중의 원로다.(02)738-3639.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따뜻한 웃음 속 차가운 이성이 ‘번뜩’

    ‘벚꽃속에 매달린 비키니 수영복’‘뚱뚱한 핑크빛 소파’‘TV앵커의 연결성 없는 뉴스전달’‘방황하는 종이로봇’ 젊은 작가들의 톡톡 튀는 감각적인 작품들이 한자리에서 만났다. 쌍용그룹이 운영하는 성곡미술관(관장 박문순)이 개관 10주년을 맞아 마련한 특별한 전시회에서다. 지난달 29일부터 오는 6월 5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성곡미술관이 지난 10년간의 한국현대미술의 현장을 돌아보는 기획전이다. 주제는 ‘쿨 앤드 웜(Cool & warm)’. 미술속에 담겨진 두 가지의 표정 즉 따뜻하고(감성) 차가운(이성) 얼굴이 어떻게 함께 조화를 이루는지를 보여주자는 의도에서 마련됐다. 지난 95년 쌍용그룹의 창업자 김성곤 회장의 자택인 종로구 신문로에 지어진 성곡미술관은 지난 10여년간 젊은 작가 발굴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유명 대가를 중심으로 작품 거래 등이 이뤄지는 기존의 화단에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활동 무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다. 이번 기획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범, 김수자, 김영진, 이기봉, 심재현 등 중견작가 19명의 작품을 선보인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1층에서 3층까지 이들의 작품을 둘러보다 보면 우선 ‘유머’가 느껴져서 좋다. 물론 ‘따뜻한’ 웃음속에 감춰진 ‘차가운’ 이성의 메시지도 함께 전달된다. 페미니스트로 유명한 윤석남씨의 ‘살찐 소파의 기억’은 기형적인 모습의 소파가 세상을 등진 채 유리구슬 방에 놓여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날씬하지도 예쁘지도 않은 여자들의 소외감을 그려 외모 지상주의의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황규태씨의 ‘큰일났다, 봄이 왔다’에도 ‘봄 바람’나고 싶은 감성이 절로 느껴 진다. 삼청동 감사원의 뒤뜰에 활짝 핀 벚꽃 사진 사이에 살짝 걸려 있는 샌들과 스카프, 모자들이 이를 말해준다. 임신한 망치 등의 작품을 통해 실재하지 않는 존재를 만들어 낸 김범씨는 이번에는 방송 앵커의 뉴스 내용을 중간에서 토막낸 뒤 다른 내용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으로 정보의 왜곡, 허구성을 꼬집고 있다. 안규철씨의 쓰레기들로 만들어진 ‘쓰레기 로봇’과 윤영석씨의 하나의 공에 두 개의 농구 골대 있는 오브제 ‘맹목연습’도 눈길을 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신정아 학예연구실장은 “현대미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면서 “전시회를 통해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바로 느낄 수 있도록 해 현대미술이 난해하지만은 않다는 사실 즉 ‘쿨’하면서 ‘웜’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02)737-7650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옛집기행/글 이용한 사진 심병우·이용한

    ‘옛집기행’(웅진 펴냄)은 흙과 바람, 초목속에서 태어난 우리 서민 옛집에 대한 이야기다. 시인 이용한씨가 사진가 심병우씨와 함께 1997년부터 2004년까지 8년 동안 이제는 사라져 가는 이 땅의 옛집을 찾아 발로 뛰어 담은 우리 주거문화의 생생한 기록이다. 울릉도의 토막집에서 전남의 외딴 섬 도초도 초가집까지, 강원도 오대산의 너와집에서 제주도의 띠집까지 서민들 삶의 터전이 334컷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들은 8년 동안 다리품을 팔며 전국을 누비고 다니는 동안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전남 영광군 묘량면 효동마을의 초가와 전남 신안군 도초도에 있던 20여채의 초가 살림채가 단 한 채도 남지 않고 사라지는 참담한 현실을 맞닥뜨려야 했다. 이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초가는 모두 420여채 안팎. 이 가운데 25채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민속마을에서 볼 수 있는 초가다. 띠집은 전국적으로 40여채 남아 있다. 너와집은 6채, 돌너와집은 5채, 굴피집은 3채, 투막집은 4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우리 조상들의 주거 문화가 단순히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라 굴뚝새와 굼벵이 등 주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어울림의 공간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씨는 “옛집들은 따로 자연을 들이지 않고 자연 속으로 들어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했지만 지금 우리들은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 있다.”고 말했다.1만 7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⑪ ‘COMPOSITION’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⑪ ‘COMPOSITION’

    피에르 술라주作. 석판화.88.9×68.6㎝.1988 작가 술라주(1919∼)는 프랑스 로데에서 출생한 전후 작가 중 가장 유명한 유럽작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독학으로 그림을 그리다 1939년 파리로 나와 초기에는 세잔이나 피카소의 작품에서 큐비즘(입체파)의 영향을 받기도 했으나 1946년부터 순수한 추상양식을 창조해 나간 인물이다. 이 작품은 큰 붓을 이용해 속도감과 운동감을 살렸다. 정지된 선이지만 강하게 움직이는 역동성을 보여줘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느낌을 전달해 준다.88올림픽 공식대표 판화로서의 이미지가 물씬 묻어 나온다. 그의 작품은 ‘얼룩’이라는 뜻의 프랑스어 tache에서 유래된 타시즘(Tachisme)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점이나 선을 작가의 직관적이고 임의적인 거대한 붓놀림을 통해 리듬감과 긴장감을 주는 식이다. 검고 굵은 직선이 교차하는 힘찬 화면 구성이 특징이다. 작품에서 여러 색깔을 사용하지 않고 청색·검은색 등 단 몇 가지의 색으로만 표현해 화면이 간결하고 자유롭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기 간 2005년 5월7일(토)까지 (전시기간 중 무휴, 전시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장 소 서울신문사 서울갤러리 전관(한국프레스센터 1층) ●입장료 성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단체접수 및 문의 서울신문사 (02-2000-9752)
  • 하버드 VS 서울대/장미정 지음

    “서울대 강의 진도는 너무 느려요. 심지어 어떤 수업은 매일 같은 강의를 받는다는 느낌이에요.” 미국 최고의 명문대 하버드 2학년을 마치고 2004년 1학기동안 서울대 교환학생으로 공부한 장미정(21)씨. 그는 서울대에서의 캠퍼스 생활을 통해 느낀 점을 ‘하버드 VS 서울대’(답게 펴냄)라는 책으로 펴냈다. 현재 우리나라 공교육의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고 대학 개혁의 필요성이 역설되는 시점에서 나온 그의 책은 교육 당국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이 책을 쓰면서 남의 학교에 와서 흉만 보고 간다.”는 부담도 느꼈지만 “한국을 사랑하고, 서울대가 세계 최고의 대학으로 인정받는 학교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펜을 들었다.”고 말했다. 나아가 한국의 대학들이 훌륭한 학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변화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하루에 배울걸 일주일동안 배워 그가 체험한 미국 최고의 명문대 하버드와 한국 최고의 명문대 서울대의 차이는 무엇일까? 미정이는 하버드에서는 너무 바빠 친구와 밥 한끼 먹는 약속도 지키기 어려웠지만 서울대에서는 자유시간이 너무 많아 놀랐다고 했다.“술자리도 자주 가고, 영화도 보고, 돌아다니면서 먹고…. 너무 놀아서 지칠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미정이는 서울대에서 시간이 많은 이유로 ‘느린’ 강의 진도를 꼽았다. “하루에 배울 수 있는 내용을 일주일 동안 배운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반면 하버드에서는 수업진도가 너무 빨라 공부할 것을 조금이라도 미루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학생들 사이 숙제 베끼는 문화도 만연 또 서울대는 기본적으로 ‘공부량’을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버드 교양수업의 경우 교과서보다는 ‘소스북’이라는 참고서적을 매주 읽기 ‘숙제’로 낸다고 했다.“숙제의 양이 수업마다 달라서 50∼100쪽이나 되고 논문이나 신문기사도 읽어야 한다.”고 했다. 미정이는 “서울대에서 한학기 동안 수업을 위해 읽은 책을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하버드 교양수업에서 보름 동안 읽은 양과 비슷하다.”고 비교했다. 미정이는 특히 숙제를 베끼는 문화에 대해 학생들의 태도도 문제이지만 1시간만 답을 베껴서 숙제를 제출한 학생이 5시간을 투자해서 숙제를 한 학생과 똑같은 점수를 받게 되는 현실을 비판했다. 표절에 대한 규칙이 엄격하고 공정하게 지켜진다면 한국 사회의 부정부패를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버드생들이 여름방학을 통해서 인생의 진로를 찾으려고 노력하지만 서울대생들은 장기 유럽 여행을 가는 친구들이 많다면서 한국에서는 유럽 여행 가는 것이 대학교때 꼭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로 여기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기억했다. 지난 2004년 영국의 ‘더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상위 200개 대학에서 119위를 한 서울대의 현주소가 미정이의 체험속에서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9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⑩ ‘HEXA5’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⑩ ‘HEXA5’

    ‘빅토르 바자렐리’ 作. 스크린프린트 75.×100㎝.1988 바자렐리(1908∼1997)는 헝가리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한 화가이자 조각가, 그래픽 아티스트이다. 시각적으로 움직임을 느끼게 해주는 옵아트(Otical Art)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그는 수학적으로 계산된 기하학적 형태의 색채로 작품을 구성, 착시로 인한 시각효과와 움직임을 느끼게 하는 옵아트 양식을 확립했다. 이번 ‘HEXA5’ 작품도 마찬가지로 옵아트 스타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주황과 녹색, 파랑과 녹색, 보라와 분홍색 등 서로 어울리는 다양한 배색을 이용해 기하학적인 형태의 다섯가지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마치 나무상자 같은 모습인데, 어떤 것은 한쪽 귀퉁이가 잘려나간 것과 같은 모양이고 어떤 것은 나무 상자 안에 또 다른 나무상자를 담고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런 기하학적인 다양한 형태를 통해 그는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공간은 맑고 투명한 원근법적 색채효과를 대비시켜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묘한 조화를 이루기도 한다. 그는 이러한 2차원적인 조형과 색채로 현혹적인 입체감을 표시해 차가운 추상을 대표한다. 그의 색채연구와 시각적 효과는 다른 현대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기 간 2005년 5월7일(토)까지 (전시기간 중 무휴, 전시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장 소 서울신문사 서울갤러리 전관(한국프레스센터 1층) ●입장료 성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단체접수 및 문의 서울신문사 (02-2000-9752)
  •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⑨ ‘THE OBSCURE MAN’

    [본사 주최 ‘세계 거장 판화대전’ 지상갤러리] ⑨ ‘THE OBSCURE MAN’

    루피노 타마요(1899∼1991)는 멕시코의 국보급 작가다. 혁명을 소재로 한 벽화로 유명한 리얼리즘계의 디에고 리베라, 시케이로스, 오로스코 등과 함께 멕시코의 4대 거장으로 손꼽힌다. 그의 작품은 리베라 등 3명과 달리 추상적이다. 또 작품의 소재나 색채를 보면 인디오의 전통이 잘 나타나 가장 멕시코적인 화가로도 평가받고 있다. 그의 ‘THE OBSCURE MAN’(모호한 남자) 작품은 제목에서 보듯이 팔을 든 남자의 형상이 어렴풋하게, 명료하지 않게 나타난다. 그 뒤에 마치 다른 한 남자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그 남자가 사라져 가는 듯한 모습 같기도 하다. 안개속에 있는 듯한 이 남자의 형태도 어린이가 그린 것처럼 최소한의 선을 이용해 단순하다. 바탕 색깔인 주황빛은 멕시코의 강렬한 태양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타마요의 작품 스타일을 보면 아즈텍, 마야, 잉카문명에 나타난 고대 멕시코의 미의식을 현대 조형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단순한 선으로 그려진 인물이나 동물형상에 강렬하면서도 억제된 색채를 넣어 신비롭고 주술적이며 초자연적인 힘을 느끼게 한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기 간 2005년 5월7일(토)까지(전시기간 중 무휴, 전시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장 소 서울신문사 서울갤러리 전관(한국프레스센터 1층) ●입장료 성인 5000원, 초중고생 3000원 ●단체접수 및 문의 서울신문사(02-2000-9752)
  • [클릭이슈] 법정 간 이중섭 위작 논란

    [클릭이슈] 법정 간 이중섭 위작 논란

    이중섭 화백 유작의 진위여부를 놓고 유족과 한국미술감정협회간의 법정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이 화백의 아들 태성(56)씨가 25일 부친의 작품에 대해 가짜 의혹을 제기한 한국미술감정협회 관계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를 하자 한국미술감정협회측도 26일 태성씨와 이 화백의 작품을 경매한 서울옥션 등을 상대로 무고죄로 고발하겠다고 맞대응을 하고 나섰다. 감정협회 최명윤 감정위원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누가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이중섭 화백을 제대로 지키겠다는 차원에서 태성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을 무고죄로 검찰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번 기회에 누가 이중섭화백을 폄하하고 있는지 밝혀질 것”이라고 밝혔다. ●엇갈리는 양측 입장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월 한국근현대미술품 경매를 앞두고 서울옥션측이 ‘물고기와 아이’의 감정을 의뢰하자 감정협회가 위작판정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서울옥션측은 경매를 단행했고 감정협회는 “서명이나 필선이 이중섭 화백의 것이 아니다.”고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유족들은 “50년 이상 소장해온 것”이라고 맞섰고 감정협회는 “가짜 작품을 가지고 박수근 화백의 가족들에게 접근, 전시회를 갖자고 제의한 조직들이 있다.”며 배후 세력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고서점에서 이중섭 화백 그림 뭉텅이로 사 이런 논란속에 ‘이중섭 50주기 기념 미발표작 전시준비위원회’를 이끄는 김용수씨가 자신이 소장중인 이중섭 그림 650여점 가운데 50여점을 25일 공개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인 김씨는 “유족을 통해 가짜 그림을 유통시켰다.”고 감정협회가 지목한 인물이다. 김씨는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이중섭의 수채화, 연필 드로잉, 은지화 등 50여점을 내놓고 나머지 작품은 은행금고에 보관중이라며 ‘진품’임을 강조했다. 김씨는 “70년대 초반 인사동의 한 고서점에서 고서 사는 기분으로 뭉텅이로 구입했다.”며 “당시 이중섭의 그림이 그렇게 비싸고 중요한 것인지 몰랐기에 그런 값에 그만한 양을 산 것”이라며 이중섭 그림의 소장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김씨는 유족이 50년간 소장한 작품과 김씨 소장품이 흡사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중섭의 그림은 똑같은 것이 많아 내가 일본에 가서 유족에게 그림을 보였을 때 그들도 놀라는 눈치였다.”고 했다. 감정협회가 김씨의 소장품 대부분이 가짜고 현재 경매와 화랑가에 나도는 이중섭 그림의 출처가 김씨라는 의견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중섭·박수근 화백 전시회 제의받은 화랑도 있어 강남의 A화랑은 지난해 가을 대구에 산다는 한 남자로부터 “이중섭 화백과 박수근 화백을 포함해 대가들의 그림 1000여점을 갖고 있다.”면서 “전시회가 끝나면 이중섭 화백이나 박수근 화백의 그림 한 점을 주겠다.”는 솔깃한 전시회 제의를 받았다. 이 화랑 사장은 26일 기자와 만나 “전시회에 드는 비용이 2000여만원인데 전시회가 끝난 뒤 적어도 수억원 정도 하는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거져 주겠다고 해 의아하게 생각해 화랑협회로부터 감정서를 받고 전시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후 그 남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미술시장 위축시킬까 걱정 미술계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은 “이중섭 화백의 작품 자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몇십점, 몇백점의 작품들이 나타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일부 화가는 똑같은 작품을 그리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예술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진짜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이번 유작의 진위 공방은 결과적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미술시장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술평론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값비싼 작품을 거래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기회에 제3의 감정반을 새로 구성, 이 화백 작품의 진위를 반드시 가려내자.”고 제안했다. 또 이번 사건이 검찰 소송으로까지 비화됐지만 양측의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오리무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미술감정이라는 것이 ‘과학감정’보다 ‘안목감정’이 더 중요한 예술분야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할 때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술 감정전문가는 40∼50명 정도. 이 가운데 권위 있는 감정가는 5명 안팎으로 손꼽을 만큼 적다. 그러다 보니 가짜 그림을 제도적으로 양산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미술계는 열악한 환경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화랑협회에서 지난 2002년 4000만∼5000만원의 예산을 투입, 작가 200여명의 작품 1만 5000여점을 데이터베이스(DB)화한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지난 82년부터 2001년까지 주로 감정의뢰가 들어온 작품과 화가들을 중심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최 교수는 “화랑협회의 자체 예산이 부족해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DB화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그마저 다 완성하지 못한 상태”라며 “정부 지원과 국가차원의 통합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 작가들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감정, 평론등의 분야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⑦-한라건설·성우그룹

    한라건설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한라그룹을 살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재기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풀무질에 매진하고 있는 주인공은 정인영(85) 전 한라건설 명예회장의 차남인 정몽원(50) 회장이다. 한라는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의 바로 아래 동생인 정인영 한라그룹 전 명예회장이 황무지에서 일궈낸 그룹이다. 형님과 함께 현대건설 초석을 다지는 동시에 독자적으로 창업했다. 소비재·경공업 제품보다는 장치산업 중심으로 키웠고 21개 계열사를 거느리면서 재계 12위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했던 기업 집단이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계열사끼리 상호출자·지급보증이 족쇄로 작용, 그룹 전체가 한꺼번에 쓰러지는 운명을 맞게 되면서 계열사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현재는 한라건설이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다. 한라건설은 연간 매출 규모 8000억원 규모인 중견업체로 자회사도 없다. 그래서 한라건설은 한라그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정 회장의 직책도 ‘한라건설 회장’이고, 정 명예회장 직책도 ‘한라건설 명예회장’이다. ●미군 공병대 일감 현대건설 연결 정 명예회장은 동아일보 신문기자 출신이다.14세에 무작정 상경, 야간 YMCA야간 영어과 2년을 다닌 뒤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학으로 아오야마(靑山)학원대학 야간 영어과 2학년을 중퇴하고 귀국, 동아일보에 둥지를 틀었다. 운명은 한국전쟁이 갈라놓았다. 외신부 기자였던 그는 형과 둘이서 피란길에 올랐다. 대구에서 한 일간지 편집일을 했고, 형은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부산까지 내려간 두 형제는 두 끼 먹을 밥값밖에 없어 유일한 재산이던 손목시계를 잡히기 위해 전당포를 들렀다가 미군 사령부 통역 모집 광고를 접했다. ‘왕 회장’은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동생이 미군 통역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인영이가 통역으로 취직하면 미군 식당에서 나오는 빵부스러기를 가져와도 먹는 것은 해결될 것이라면서 통역 취직을 했다.”고 회고했다. 자서전은 “아우가 공사라도 해서 밥을 먹어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공병대 장교 통역을 자원했는데 일이 뜻대로 잘 풀렸고, 공병대 일감을 현대건설에 연결해 줬다.”고 적고 있다. 이것이 현대건설이 미군 공사를 휩쓸면서 기업을 키울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이를 인연으로 정 명예회장은 1951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61∼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맡아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진 장본인이다. 휴전 이후에는 국내 공사 수주에도 적극 나선다. 그러나 공사를 잘못 수주하는 바람에 미군 공사에서 알뜰하게 벌어들인 돈을 몽땅 털어넣고도 모자라 ‘왕 회장’은 자신의 집과 동생, 매제(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85) 집까지 팔아 공사비를 충당했지만 엄청난 적자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57년 한강 인도교 공사를 수주,40%의 이익을 거두면서 ‘건설 5인조’에 들어갈 만큼 성장했다. 그 뒤 해외건설 시장에 진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자신감과 경쟁력을 기르고 ‘세계속의 현대건설’로 성장하는 데 한 축을 맡았다. ●현대양행에서 출발, 중공업에 치중 한라그룹은 정 명예회장이 1962년에 세운 현대양행에서 출발한다. 이 때는 정 명예회장이 ‘왕 회장’과 함께 현대건설의 초석을 다질 때였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건설 사장으로 일하면서도 “부존자원 없는 나라에서 중공업 개발 없이는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없다.”면서 62년 경기도 군포에 독자적으로 세운 기업이 바로 현대양행이다. 그는 76년 현대건설 사장직을 내놓았지만 현대양행은 80년 정부의 산업합리화 조치에 따라 포기해야 했고, 대신 중공업을 중심으로 그룹을 구성하게 됐다. 단일 공장으로 최대 규모인 130만평 부지에 창원종합기계공장(현 두산중공업)을 건설해 주위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후 시멘트와 건설, 조선소, 제지, 자동차 부품, 중장비 등을 생산하는 기업을 잇따라 설립하면서 한라는 장치산업 중심의 그룹으로 우뚝 섰다.96년에는 자산 6조 2000억원, 매출 5조 3000억원, 종업원 2만여명이 딸려 있는 재계 12위의 대기업 군으로 성장했다. 주력 기업은 만도기계, 한라중공업,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었다. 정 명예회장은 그룹을 키우는 동안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 말이 있다.“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완수하는 것이야말로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까이서 그를 본 사람들은 유별난 ‘독서광’이라고 말한다. 출장길이나 차안에서도 영자 신문은 물론이고 경제경영 관련 책이 손에서 떠나질 않았다.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캐내 읽을 정도였다. 집무실에서도 불편한 손으로 영어단어를 외우고 돋보기를 들이대면서까지 셰익스피어전집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정신력도 대단했다. 중풍으로 쓰러진 뒤에도 의지를 갖고 치료를 받았으며, 경영에 소홀하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휠체어의 부도옹’‘오뚝이 기업인’‘프런티어 기업인’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명예회장 자신이 왕성하게 활동하였던 터라 2세에게는 계열사 사장을 맡기는 것으로 족했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휠체어를 타고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웠고 경영권을 2세에게 물려주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 ●재계 12위그룹, 건설이 명맥 유지 96년 말 한라그룹의 상황은 다른 대기업 집단과 특별히 다르지 않았다. 계열사간 상호 출자와 지급보증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96년 말 한라의 경영상태는 부채비율이 현상유지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극도로 악화됐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만도기계는 수익성이 높고 지주회사 성격을 지녔다. 역시 자동차 부품 회사인 한라공조와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이 흑자를 기록했다. 반면 주력기업에 속했던 한라중공업은 적자를 면치 못했다. 중공업을 뺀 수익성이 좋은 3개 주력사는 다른 계열사의 지급보증과 채무를 떠안아야 했고 특히 중공업에 발목이 잡혔다.8000억원 이상이 투자된 삼호공단 조성 및 조선소, 플랜트 공장 건설이 뒤따랐다. 이 때 시작된 자금난이 그룹 부도의 단초를 제공했다고 보아도 된다.96년 조선소가 가동되기는 했으나 막대한 투자비를 일시에 회수하지 못하고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룹 총수도 전셋집, 기업의 사회적 책임 충실 한라그룹이 쓰러질 때는 정몽원 회장 체제였다.97년 1월 회장에 취임하자마자 구조조정을 단행했지만 외환위기 파고 때문에 자신의 뜻을 펼쳐보지 못하고 그룹 해체라는 상황을 맞게 됐다. 외환위기라는 복병을 만나는 바람에 아버지가 공격적으로 펼쳤던 사업을 추스르기에도 바빴다. 결국 정 회장은 어려운 결단을 내린다. 우량 회사와 적자 회사를 가릴 것 없이 모든 계열사를 매각하거나 청산 절차에 들어갔다. 기업인으로서 사회적·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자신의 집은 물론 명예회장의 집까지 팔아치우면서까지 모든 것을 버렸다. 재계 12위 그룹 총수였던 명예회장은 지금 전셋집에서 살고 있다. 잘 나가던 만도기계, 한라건설, 한라시멘트 등을 팔고 싶어도 중공업에 서준 지급보증 때문에 매각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발상의 전환을 했다. 외국자본을 들여와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방안을 찾던 중 미국계 투자은행 로스차일드가 10억달러 정도를 투자, 주력 업체를 살리는 프로그램을 내놓았고 이를 따랐다.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했다. 기아나 한보 등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많은 종업원들을 거리로 내몰았지만 한라는 종업원을 그대로 유지했다. 부도 이후에도 생산성이 올라갔고 기업가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매각된 계열사들이 곧바로 정상을 되찾고 우량 기업으로 태어나는 계기가 됐다. ●그룹 경영권 차남에게 지명 정 명예회장의 장남 몽국(52)씨는 89년부터 92년까지 한라그룹 부회장을 맡았다. 그러나 94년 말 정 명예회장은 경영능력을 인정받은 차남을 그룹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형 몽국씨는 95년 초부터 그룹 경영에서 물러나 미국으로 유학갔다. 한때 배달학원(한라대학교)이사장을 맡고 부인 이광희(51) 여사가 총장을 맡기도 했다. 정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2남으로 고려대 상대를 졸업하고 지난 7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기 시작했다.89년 만도기계 사장을 거쳐 92년 한라그룹 부회장으로 부친과 함께 한라를 키웠다. 차남 몽원씨가 그룹 회장에 취임한 이후 형제간에 약간의 갈등도 있었다.2003년 형 몽국씨는 자신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 그룹 기획실에서 임의 처분했다며 민형사고소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형사건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민사건은 형제간의 원만한 화해로 ‘왕자의 난’을 비켜갔다. 전문 경영인으로는 김홍두 사장이 있다.78년 한라 공채로 입사,96년 관리 분야 부사장에 올랐다.2003년 이후 사장을 맡고 있다. 한라그룹의 부침을 지켜본 몇 안되는 사람으로 판단이 빠르고 부지런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단조로운 혼맥, 독실한 기독교 집안 한라그룹의 혼맥은 다른 현대가처럼 얽혀있거나 거물급이 눈에 띄지 않는다.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색다른 맛이 없다. 결혼은 자유로웠고 상대 집안도 평범했다. 몽원 회장의 어머니인 고 김월계 여사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자연히 두 형제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다. 중매쟁이도 교회였다. 두 형제가 모두 교회에서 만나 결혼했다. 장남 몽국씨는 이광희 여사와 만나 연애 결혼을 했다. 평범한 가정으로 알려졌다. 동생 정 회장도 역시 교회에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홍인화(48) 여사를 만났다. 홍여사는 TBC아나운서 출신이다. 장인·장모가 약사였고 굳이 따지자면 장모가 서상목 전 국회의원 누나다. 정 회장은 최근 다니던 교회 장로로 취임했다. 명예회장도 늦게 교회를 나왔고, 몸이 불편한 관계로 최근에는 집에서 가족 예배를 드리곤 한다. chani@seoul.co.kr ■ 성우그룹 성우그룹의 모태는 현대시멘트다. 1970년 1월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인 정순영(83) 당시 현대건설 부사장이 현대건설에서 떨어져 나온 현대시멘트㈜ 사장을 맡으면서 성우그룹의 역사는 출발한다. 당시는 성우그룹이 아닌 현대시멘트라는 단일 회사였다. 현대 방계가 대부분 그렇듯이 성우그룹도 ‘왕 회장’이 덩치가 커진 현대건설의 일부 사업을 떼어주면서 시작됐다. 경제개발 호재를 안고 있을 때라서 출발은 순조로웠다. 현대건설이 국내 시장과 해외시장에서 뿌리를 내릴 즈음이라서 분가도 쉬웠다. 성우그룹이라는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부터다. 성우리조트를 설립하고 사옥을 현재의 서울 서초동으로 옮기면서부터다. ●그룹 우산 키우기 미미 정순영 당시 현대시멘트 사장은 5년 동안 시멘트 단일 품목에만 손을 댔다. 그러다가 75년 현대종합금속을 세워 그룹의 덩치를 키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룹의 위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추가 사업 영역을 넓히기 위해 고심하던 끝에 찾은 것이 자동차 부품산업이었고,87년 성우오토모티브를 설립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자동차 산업 발전 추세를 따른 것이다. 그러나 그룹 우산을 제대로 펴기 시작한 것은 현대시멘트를 독립 운영하기 시작한지 20여년이 지나면서부터다.95년에 성우종합레저를 설립, 강원도 둔내에 대규모 레저시설을 짓기 시작했다. 같은 해 사옥을 지금의 서울 잠원동에서 서초동으로 옮겼다. 이 때부터 ‘성우그룹’이 통용되기 시작했다.92년에는 성우종합건설을,96년에는 성우전자를 잇따라 그룹사로 편입시켰다. 그러나 시멘트와 자동차 부품사, 건설을 뺀 다른 업체들의 경영실적은 영 신통치 않았다. 몇몇 업체는 부도를 맞기도 했고 그룹 위상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결국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다른 그룹보다 경영권 이양작업을 서둘러 진행했다. ●경영권 이양, 순조롭게 마무리 정 명예회장은 2세들에게 외국 유학을 다녀온 뒤 일찍부터 경영수업을 받도록 했다. 주로 시멘트를 거치도록 했다. 다만 딸과 사위들은 성우그룹 경영과 거리를 두었다. 장녀도 사위가 먼저 세상을 떴지만 단지 현대시멘트 고문으로 있다가 최근 별세했다. 차녀도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사위 역시 개인사업을 한다. 경영권은 97년 1월에 이전됐다. 경영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잡음이 거의 없었다. 정 명예회장은 가급적 자식들이 경영 수업을 받을 때 맡았던 분야를 떼어주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단순 주식분배 차원이 아닌 전공을 찾아 맡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계열분리가 이뤄지도록 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장남 몽선씨에게 그룹의 주력 기업이던 현대시멘트를 잇도록 했다. 자신과 정 회장이 오랫동안 경영에 참여했던 분야다. 현대시멘트는 시멘트 사업부와 성우리조트를 개발·운영하는 레저사업부를 포함하고 있다. 현재 국내 시장 점유율 3∼4위를 지키고 있다. 성우종합건설도 장남의 몫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일반 건설사처럼 민간 공사 수주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자체 공사와 관계사 공사를 벌일 정도다. 신생 회사 성우이컴도 정 회장이 지휘한다. 골프장 관리·운영 전문 업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4월에는 형제간 계열 분리도 마쳤다. 주력기업인 현대시멘트는 부실기업인 성우전자 성우정보통신 성우캐피탈 등 3개사를 계열사에서 제외해버렸다. 정몽훈(46) 성우전자 회장이 지분을 갖고 있던 회사다. 이로써 형제간 지분정리까지 마치게 됐다. 둘째아들 몽석(47) 회장은 현대종합금속을 받았다. 포항 공장에서 용접봉과 카바이트를 만들어내는 회사다. 현재는 용접봉만 생산한다. 울산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많은 양을 납품한다. 3남 몽훈 회장은 성우전자, 성우캐피탈을 넘겨받았다. 그러나 사실상 경영에서 물러서 있다. 막내 몽용(44) 회장은 88년 성우오토모티브와 현대 에너셀을 맡아 왕성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로 자동차 부품생산업체를 물려받았다. 오토모티브는 자동차 시트, 알루미늄 휠 등을 생산하는 회사. 포항공장에서 자동차용 주물을 생산,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다. 충주공장에서는 자동차 알루미늄 휠을 전문적으로 만들어내고 있다. 시트 생산 부문은 지난해 말 현대자동차 계열사에 매각했다. 에너셀은 자동차용 배터리 생산업체다.㈜성우는 육상 시멘트 화물 운송 회사다.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우그룹 혼맥 현대가의 혼맥이 그렇듯이 성우그룹에도 특별히 튀는 집안이 없다. 그런데도 성우그룹은 혼맥이 드러나는 것을 극구 꺼린다. 혼맥이 비치는 자체를 싫어한다. 장남인 현대시멘트 몽선 회장과 결혼한 김미희 여사(작고)는 집안이 학교 교장 선생님이었다. 장남 결혼을 시키면서 말 그대로 평범한 교육자 집안과 사돈을 맺었다. 장인 김태휴씨는 뒤에 현대성우리조트 고문을 지냈다. 김수진 서울대 교수, 차연택 현대백화점약국 대표, 최동일 연세산부인과원장, 정 회장, 전동진 경원대 교수 등이 동서지간이다. 하지만 김 여사는 93년 10월 태릉 아이스링크 선수 대기실에서 둘째딸과 함께 불의의 화재사고를 당했다. 이때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이 전용기를 내주어 일본 행림대학 병원으로 후송, 치료를 받았으나 아깝게도 함께 세상을 달리했다. 이를 계기로 사업상 앙금이 있던 왕 회장과 조중훈 회장이 화해하는 계기가 돼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혼한 진영심(36) 여사 역시 평범한 집안으로 알려졌다. 둘째아들 현대종합금속 몽석 회장 처가도 대구에서 작은 기업을 하던 평범한 집안이라는 정도밖에 알려지지 않고 있다. 셋째 몽훈 성우전자 회장의 장인은 직업군인이었다. 장성으로 예편한 뒤 공기업 임원으로 근무했다는 정도만 알려진다. 하지만 넷째 몽용 성우오토모티브 회장의 결혼 때는 좀 다르다. 잘 알려진 로열 패밀리 가운데 하나인 인촌 김성수가와 사돈을 맺는다. 몽용 회장의 장인이 체육계 원로인 김상겸 박사다. 김 박사는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의 막내아들이다. 한국 체육 발전에 평생을 바친 전 고려대 명예교수이며 지난해 별세했다. 김 박사는 대한체육회 부회장과 대한스키협회회장, 나가노동계올림픽 한국선수단장, 고려대 사범대학장 등을 지냈다. 장녀, 차녀도 평범한 집안과 결혼했다. 그룹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전문 경영인 전문 경영인은 많지 않다. 직접 경영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김희대(44)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 대표이사 부사장은 정 회장의 매제. 미국 하트포드대학원 경영·경제학과를 졸업한 유학파.88년 현대시멘트에 입사, 총괄 부사장을 거쳐 올 1월부터 대표이사 부사장을 맡고 있다. 성우리조트는 엄준섭(53·부사장) 본부장이 정 회장을 돕고 있다. 성우이컴 김연문(55) 대표이사 사장은 연세대 경영학과를 나와 74년 입사해 경리파트를 맡으면서 명예회장과 정 회장을 지근에서 보좌했다.2001년 부사장에 오른 뒤 2002년부터 이컴 대표이사 사장을 맡아 골프장 개발 운영업을 이끌고 있는 전문 경영인이다. chan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여성전용 매장 오픈 女心 사로잡을 계획”

    “여성전용 매장 오픈 女心 사로잡을 계획”

    “불황과 청년 실업으로 지친 이들에게 ‘청바지 정신’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지난 1월 취임한 리바이스 코리아 조형래(46)사장은 21일 서울 조선호텔에서 취임후 첫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리바이스는 150년 전통의 청바지 회사다. 조 사장은 “국내 진(jean)시장에서는 여성용이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업계에서는 처음으로 여성 전용매장을 도입해 여성 시장 공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명동 등 여성전용 매장 3곳을 열고 2008년까지 매장 수를 15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평소 사무실에서도 청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근무하는 조 사장은 이날 간담회에도 이같은 자사제품을 입고 몸소 체험 마케팅에 나섰다. 리바이스코리아는 여성 공략을 위해 이미 지난달 여성라인 전문 디자인실을 개설했다. 청바지 뒷주머니에 보석 장식 등 튀는 디자인으로 일본 시장에서 인기를 끈 여성 전용 청바지 브랜드 ‘리바이스 레이디 스타일’도 상반기 중에 선보일 계획이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박물관 마케팅’ 뜬다

    ‘박물관 마케팅’ 뜬다

    기업들이 ‘박물관 마케팅’으로 고객층의 저변을 넓히고 있다. 박물관 운영은 기업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고객들과의 ‘만남의 광장’을 마련할 수 있어 기업들이 점차 자사의 업종과 관련된 박물관 운영을 늘려가는 추세다. ●해태제과 ‘과자박물관’ 건립 나서 해태제과는 국내 처음으로 ‘과자박물관’ 건립을 추진중이다. 올해 안에 서울 용산구 남영동 본사 사무실 1∼3층 600여평에 ‘과자 박물관’을 완공한다는 계획 아래 현재 ‘박물관 프로젝트팀’을 가동하고있다. 아직 청사진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과자가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보여 주고 옛 우리 과자들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등 과자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밀 계획이다. 주변에서는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사장의 부인 육명희 고문이 박물관장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태제과 관계자는 “크라운제과가 해태제과를 인수하면서 과자업계 강자로 거듭나기 위한 새로운 기업 홍보 차원에서 박물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평양 국내 첫 ‘차박물관’ 운영 태평양은 제주도에 국내 최초로 ‘차 박물관’인 ‘오 설록 뮤지엄’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박물관은 동·서양,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문화공간이자 자연친화적인 휴식공간이다. 신혼부부 등 30만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 제주도의 대표적인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특히 지난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잔 150여 점이 전시된 ‘잔 갤러리’까지 박물관안에 새로 마련해 인기를 끌고 있다. ●포스코 自社유래 담은 역사관 건립 포스코도 2003년 포항시에 포스코의 역사와 정신, 기업문화, 비전을 담은 포스코 ‘역사관’을 건립했다. 전시면적 600평 규모의 역사관을 둘러보면 철강 불모지에서 30여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 유수의 경쟁력 있는 철강회사로 성장한 포스코의 성공 스토리를 볼 수 있다. 서울 포스코 빌딩에 있는 ‘스틸 갤러리’도 포스코의 명물이다. 현재와 미래의 핵심소재로서의 철강의 모습을 보여주는 갤러리에서는 일반 전시회도 유치, 포스코 방문객뿐 아니라 초·중학교 학생들의 체험학습 공간으로 떠올랐다. 우리은행도 지난해 은행사 박물관을 개관했다. 한국 근대 은행의 역사를 민족자본 은행 탄생에서부터 식민지 시대, 한국전쟁 시기, 경제개발기, 금융변혁기의 은행에 이르기까지 100여년의 역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도록 했다.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지하 1층에 마련된 박물관에는 고려시대 개성 상인들이 창안한 우리나라 고유의 장부정리 방법인 송도사개치부법에 따라 정리한 일기, 우리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 설립청원서 등 희귀사료 200여점 등과 전 세계에서 수집한 저금통 500여점이 전시돼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신세계 명품아웃렛사업 진출

    신세계가 세계 아웃렛 선두주자인 미국 첼시그룹과 손잡고 명품아웃렛 사업에 진출한다. 신세계는 19일 증권거래소를 통해 첼시그룹과 한국에서 프리미엄 아웃렛 개발을 위한 합작법인 ㈜신세계첼시 설립 계약에 서명했다고 공시했다.㈜신세계첼시는 ㈜신세계,㈜신세계인터내셔날 등 신세계측과 첼시 양측이 각각 50%의 지분을 갖는다. 또 신세계는 합작사 설립 운영과 점포 개발 등의 노하우를, 첼시는 임대와 디자인·마케팅·영업 노하우를 각각 제공해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로 했다. 명품아웃렛은 고가의 명품 재고물량을 저렴한 값에 판매하는 대규모 매장이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脫 샐러리맨’ 창업 성공전략

    ‘脫 샐러리맨’ 창업 성공전략

    ‘탈 샐러리맨’ 행렬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평생 직장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자발적으로 명예퇴직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다.‘자의반 타의반’으로 실직자들이 바로 내 사업을 하자며 창업시장에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초보자인 이들이 불황기 창업에 성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잘못하면 퇴직금까지도 날릴 수 있다. 사전에 충분히 교육을 받고, 치밀하게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창업전문가들은 충고한다. 퇴직자들의 창업성공 전략을 살펴본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에서 치킨전문점 사장으로 경기 의왕시 오전동에서 ‘핫썬베이크치킨’(www.hotsun.co.kr)을 운영하고 있는 이종필(31)씨는 대학원 졸업 후 인테리어 회사에 4년간 근무하다 지난해 하반기 퇴사하고 11월 창업했다. 근무 여건이나 수입 등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직장에 미련을 두는 것보다 하루빨리 독립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다. 이씨는 점포부터 구하고 업종을 선택한 경우다. 의왕시 오전동 신도시 아파트 단지내 상가를 1억 4000만원을 주고 샀다.7평 남짓한 규모로 작은 테이블 2개 정도 놓을 수 있는 공간이지만 주변에 수천가구의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 배달 전문으로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배달 전문 치킨집을 물색하다 최근 기름에 튀기지 않는 치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핫썬베이크치킨을 선택했다. 이씨는 “웰빙 바람 때문에 기름을 쓰지 않고 요리한 치킨이 점점 더 인기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계안에 닭을 조각내 넣기만 하면 3단계에 걸쳐 자동으로 구워지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창업이 가능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점포비를 제외하고 추가로 들어간 창업비용은 3000만원. 개업 후 6개월째인 현재 수입은 월 평균 매출 1500만원에 순이익 600만∼700만원. 직장 생활을 하다가 뛰어든 첫 사업임을 감안하면 순조롭게 굴러가는 편이다. 이씨가 말하는 탈 샐러리맨 창업의 성공 포인트는 성실성과 부지런함이다. 그는 “직장 생활과 달리 쉬는 날이 거의 없고 근무 시간도 일정하지 않아 몸이 힘든 만큼 꾀를 부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매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 발굴도 중요하다. 그는 현재 새벽 1시까지 영업을 해서 쏠쏠한 배달 수익을 올리고 있다. 쿠폰 10개를 모으면 치킨 한 마리를 서비스하는 쿠폰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씨는 “앞으로 서울 번화가에 대형 점포를 내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벤처 전문경영인에서 비즈니스센터 사장으로 소호 사업자들에게 사무실을 임대해 주고 사업 운영을 도와주는 비즈니스 센터 프랜차이즈 ‘르호봇’(www.ibusiness.co.kr) 역삼점 이명우(49)씨는 오랜 직장 생활 경험을 살려 창업에 성공한 케이스. 그는 대기업에서 10년, 중소기업에서 5년간 근무하고 직접 무역회사를 설립해 5년간 운영했으며 정보기술(IT) 관련 벤처회사에서 전문경영인으로 2년 정도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퇴직 후 두 번의 기업운영이 실패로 끝나면서 2003년 말 비즈니스센터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특별한 창업 아이템을 찾지 못하고 있는 화이트칼라 출신들이 자신의 경험을 살려 운영하기에 적합한 업종이다. 고수익을 내는 데는 한계가 있지만 또 다른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사무공간만을 제공하는 재임대 사업으로 운영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씨는 “직장 생활과 사업 경험을 두루 살려 소호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컨설팅한다면 입주자들을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역삼센터의 경우 1년5개월째에 접어드는 지금까지 입주율이 8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이씨가 입주자들에게 세세한 사업운영 방법에서부터 영업, 세무, 업체간 업무연계 알선 등 다양한 컨설팅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창업비용은 124평의 임대보증금을 포함해 총 3억원이 들었다. 현재 월 평균 순익은 700만원선이다. 그는 “향후 유망 소호 사업체를 발굴, 영업력을 지원하거나 동업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창업 정보는 어디서 전국 60개 센터를 갖고 있는 소상공인센터(www.sbdc.or.kr)는 비용 부담이 적기 때문에 초보 창업자들이 한번 찾아볼 만하다. 창업정보, 개별상담, 분야별 창업교육, 자금정보, 창업 컨설팅 등 대부분의 서비스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정부정책 자료와 지방자치단체의 창업지원 자료도 얻을 수 있다. 여성 창업자의 경우 한국여성경제인협회(www.womanbiz.or.kr)의 창업강좌가 유용하다. 파티플래너나 소량수입업 등 분야별 창업교육과 프리젠테이션 기법, 리더십 등 창업자 자질 향상을 위한 강좌도 정기적으로 마련되고 있다. 서울여성발전센터(womancenter.seoul.go.kr)도 서울지역 5개 센터에서 창업프로그램이나 직업교육 등 창업지원을 한다. 한국프랜차이즈협회(www.ikfa.or.kr)나 한국프랜차이즈경제인협회(www.kfa21.or.kr) 등에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창업컨설팅 업체들에서도 창업설명회 및 교육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인터넷 창업을 고려하면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업체의 창업교육에 참가해볼 만하다. 옥션(www.auction.co.kr)은 교육센터를 설치해 정기적으로 신규 판매자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있다. 인터파크 오픈마켓(www.interpark.com)은 매주 수요일마다 판매자 교육을 실시한다. 이밖에 1∼2개월 간격으로 열리는 창업박람회에 참석, 최신 정보를 꾸준히 체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63) 회장이 이끌고 있다. 9남매(8남 1녀) 가운데 작고한 몽필씨를 제외하면 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두번째 ‘큰 형님’이지만 MK(몽구),MH(몽헌),MJ(몽준) 등 이른바 3M으로 불리는 화려한 다른 형제들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원래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처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이래저래 세간에서 멀어진 ‘황태자’가 됐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친의 후광으로만 생각하지 못할 정 회장의 ‘몫’이 있다. 역시 ‘왕 회장’의 아들답게 때로는 부친과의 담판을 통해 새 사업을 추진하고, 때로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경영상의 문제들을 다른 형제들과 대화로 풀어내며 회사를 일궈왔다. 그가 1974년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를 맡을 당시 회사는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건설의 외곽 지원업체에 불과했다. 개발시대에 쭉쭉 뻗어나가던 현대건설이 진출하는 국내외 현장에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하고 동부이촌동 등 6개의 금강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던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은 현재 주력사업인 백화점외에 홈쇼핑, 지역케이블 방송사업 등 계열사 20개를 거느린 유통그룹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매출이 5조 2500억원, 영업이익은 3300억원에 이른다. ●부친 설득해 한강가에 세운 명품백화점 현대백화점 사람들은 정 회장을 사실상의 창업자라고 말한다. 다른 형제들이야 자동차, 중공업 등 부친이나 삼촌들이 키워온 중후장대한 기업을 물려 받았지만 정 회장의 출발은 그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한 임원은 “기껏해야 현대건설의 하청업체 수준이었던 회사가 그룹사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지으면서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의 모태가 된 압구정 본점을 짓고 그 이후 이윤을 남겨 1988년 무역점을 짓고 또 다른 백화점을 문여는 등 새 점포가 늘어나면서 지금의 그룹사로 발전된 것이라는 얘기다. 70년대 중반 이후 압구정동은 대규모 현대아파트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건축법상 근린상가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했다. 당시 현대아파트의 건설주체인 한국도시개발(현대산업개발)은 롯데, 신세계 등 유통업체에 백화점 진출 의사를 타진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아파트만 덩그러니 서 있고 배나무 밭으로 황량했던 이 곳은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누가 봐도 백화점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현대가 백화점 사업에 성공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던 기업인이 있을 정도였다. 이 때 정 회장은 백화점 진출 의사를 밝혔다. 예상대로 그룹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다.“현대가 유통경험이 없는 데다 아파트 단지 배후에 한강이 흐르고 백화점 옆에 고가도로(동호대교 연결)가 가로지르는 등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일본 도쿄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 후다코다마가와점의 성공을 예로 들며 부친을 적극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백화점은 현대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강이 흐르고 부촌에 자리잡고 있어 입지 여건이 비슷했다. 정 회장은 청운동 본가를 찾아가 사업 보고서를 보이며 백화점 사업을 고집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왕 회장도 아들의 집념 어린 설득에 결국 사업 참여를 결심했다. 현대가에서는 이를 두고 “몽근이한테도 이런 사업에 대한 의지와 추진력이 있었느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때 정 회장의 뚝심이 발휘된다. 다른 유통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하며 신규 출점을 주저하고 저가 정책을 추진할 때 정 회장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정책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98년 부도위기에 놓인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신촌점으로, 울산 주리원 백화점 2곳을 인수해 울산점으로 탄생시키고, 서울 천호점도 문 열었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상품을 앞세워 ‘명품 백화점’임을 일반에 각인시키며 고급화 전략을 폈다. 이같은 정 회장의 역발상 기조에 대해 당시 유통의 흐름을 거슬렀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런 정 회장의 정면 돌파형 리더십이 현대백화점의 성공 기반이 됐다고 평가한다. ●삼국지 꿰뚫는 ‘리틀 왕회장’ 정 회장의 이런 일면은 평소 삼국지 등 각종 전략 서적을 즐겨 읽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신규 백화점 출점후 임원들과 갖는 자리에서 ‘적벽대전’ 등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들을 즐겨 인용한다. 중국 삼국시대 양쯔강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위나라 조조가 오나라의 손권, 촉나라의 유비 연합군과 치른 전투 내용을 줄줄이 꿰며 승전 전략을 소개한다. 현대백화점의 한 임원은 “정 회장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이름과 전투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한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형상이다. 골격이 큰 몸집에 굳게 다문 입, 솥뚜껑처럼 큰 손과 발은 여지없이 현대가의 혈통을 지닌 남자임을 보여준다. 나이 들면서 얼굴에 돋아나는 검버섯과 걸음걸이를 보면 부친인 왕 회장과 흡사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세간에는 한때 ‘건강 이상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매일 오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내에 있는 백화점 본사 4층 회장실에 출근, 굵직한 사업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서울 시내 6개 백화점과 중동점 등 7개 백화점 가운데 하루에 2∼3군데의 백화점을 순시하는 이른바 ‘점 순회’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점포당 30분 정도 걸린다. 비슷한 시간대에 항상 나타나는 정 회장을 보고 매장 직원들이 인사하면 “어잇!”하며 꼭 화답을 한다.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니 직원들도 정 회장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매장을 지나다 고객들을 만나면 먼저 지나가도록 자신은 비켜 서는 서비스 정신도 몸에 배었다. 정 회장의 현장 중시 스타일도 부친과 닮은 꼴이다. 백화점 신축 공사 현장에는 늘 그의 발걸음이 닿는다. 공사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안전모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왕 회장’을 보는 듯하다고 현대백화점 맨들을 말한다. 그는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대화로 풀 것을 강조한다. 한번은 건설 현장에서 이뤄진 브리핑 도중 간부들간에 이견이 생기자 정 회장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함께 반영되는 것이 최선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투박한 외모와 달리 자상한 편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얘기한다. 백화점을 둘러보아도 상품이 진열돼 있는 멋진 매장보다 주차장, 식품 작업장 등 구석진 곳을 먼저 찾는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봉투에 넣지도 않고 자신의 지갑에서 20만∼30만원씩 꺼내 “소주에 삼겹살이나 하라.”며 격려금을 건넨다. 다음날 이들을 만나면 “회식 잘 했냐.”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정 회장 생일에는 시내 모음식점에서 전·현직 임원들을 초청,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날 정 회장 부부는 물론 장남 지선씨 부부도 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또 ‘주차장 제일론’을 갖고 있다. 임원들이 상품과 서비스, 매장 환경을 중요시한다면 정 회장은 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설은 주차장”임을 내세운다. 현대백화점 목동점·미아점의 주차장 진입로 폭이 다른 백화점과 비교해 훨씬 넓은 것은 여성 고객들을 위해서다. 주차장 하나에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라.”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는 셈이다. ●황산덕가(家) 손녀 며느리로 맞아 경복고,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평사원으로 있던 우경숙(54)씨와 결혼, 슬하에 지선(33), 교선(31) 등 2남을 뒀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여성스러우면서도 야무진 외모에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의 우씨를 내심 며느리감으로 점찍었다는 후문이다. 우씨의 친정은 평범한 집안으로 부친은 우호식 전 현대그룹 고문이다. 우씨는 중앙여고를 졸업했다. 장남 지선씨는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대가 3세들이 대부분 미국 유학파이듯 그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촌형제들 가운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외아들 의선(35)씨와 가깝다. 아무래도 지선씨가 손아래 동생이다보니 의선씨로부터 사업상 조언을 받는다는 후문이다. 사업외에 여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다. 지선씨는 고교 동창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황서림씨와 2001년 10월 정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결혼, 장남 창덕(1)군을 두고 있다. 서림씨는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로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성격이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좋아 선후배와 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지난 97년 삼성문화재단이 선정한 문화예술인재로 뽑혀 장학금을 받으며 미국 뉴욕대에서 미술관 경영을 전공했다.99년부터 1년간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뉴욕 근대미술관 뉴미디어 부서에서 부지배인을 맡았고,2000년 3월부터 5개월 동안 세계적인 일본 멀티미디어 작가 마리코 모리의 스튜디오 조교를 지냈다.2000년 7월부터 뉴미디어와 교육 인터넷사이트에서 웹 프로듀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지선씨는 서림씨를 처음 보는 순간 아내로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 밝고 쾌활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서림씨 역시 정 부회장의 과묵하고 남자다운 면이 좋았다고 한다. 교선씨는 경복고, 외국어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아델파이대에서 경영학석사를 땄다. 대학시절 청바지와 면티를 입고 다니는 등 소탈하게 생활해 같은 학과 친구들조차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현대가의 3세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다.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에 따르면 지갑에 돈도 별로 없이 구내식당에서 밥먹고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통학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했다. 부드러운 성격에 논리도 갖춰 친구들 사이에 이견이 생기면 중재역할을 맡곤 했다. 한때 미대 진학을 고려 했을 정도로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2녀 중 장녀인 승원(30)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승원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치과대에 다녔던 재원이다. 교선씨와 승원씨는 학교가 같은 미국 뉴욕에 있어 유학시절 자연스럽게 1년6개월 정도 사귀었다. 현대가와 사돈을 맺은 허 부회장은 32년간 스프링과 차량 시트 등 자동차 소재의 국산화에 앞장선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의 오너겸 전문경영인이다. 연 매출 3600억원 정도다. ●현대백화점 이끄는 파워 엘리트 하원만 현대백화점사장은 1978년 입사해 기획·관리·영업·구매·마케팅 등 백화점 업무를 두루 거쳐 2003년 1월 현대백화점 사장에 오른 백화점통이다.“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생활문화를 제안하는 곳”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다른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현대백화점’을 새 전략으로 내걸고 있다 부드러운 외모이지만 승부욕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이다.“음식재료나 요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식품 책임자를 할 수 있냐.”며 지난해 식품 책임자 전원을 요리학원에 다니게 했다. 또 여성 심리를 모르고는 유통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여성 심리를 알 수 있는 책 읽기와 ‘엄마를 잡아라’나 ‘왓 위민 원트’와 같은 영화 감상도 권하는 섬세한 스타일이다. 지난해 백화점협회장으로 취임, 일본백화점협회와의 68년 만의 교류방문 등을 펼치고 있다. 경청호 현대백화점 기획조정본부 사장은 영업·관리·기획 등 백화점의 주요 포스트를 두루 거쳤다.2003년 부사장을 달고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지원실장을 맡아오다 지난 1월 경영지원실의 기능과 역할이 대폭 강화되면서 기획조정본부 사장을 맡고 있다. 기획조정본부는 그룹내 투자·인사 등 주요 핵심 업무를 조정, 통합하는 조직으로 다른 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유통업계 불황 타개를 위해 구조조정의 중추적 역할을 맡기도 했다. 회사내 권위, 형식, 온정주의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 사장은 평소 메모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기억력이 비상해 보고하는 임직원들이 땀을 흘릴 정도다. 열가지 사안을 한가지로 압축해 신속정확히 처리하는 업무방식과 건강 및 체력관리 등 자기관리가 워낙 치밀해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간부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는 회식자리에서는 위트나 유머로 웃음바다를 만들곤 해 인간적 매력도 있다는 평이다. 김태석 현대백화점 H&S·현대푸드시스템 사장은 78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경리·회계·재무 등 관리 및 지원업무를 거쳤다. 지난해 말까지 백화점 영업본부장직을 맡다가 올부터 현대백화점H&S와 현대푸드시스템의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은 일, 생활 모든 면에서 폭이 넓은 CEO이다. 특히 진솔한 대화를 통한 친화력있는 리더십이 돋보인다.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다룬 ‘대망’을 임직원들의 필독서로 권한다. 김 사장은 임직원들이 자기 업무에 자긍심을 가질 것과 직무에 필요한 다양한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는 등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광균(부사장) 한국물류 대표는 74년 현대그룹에 입사, 현대백화점 천호점장·무역센터점장·현대백화점 H&S 대표이사를 거쳤다. 낙후된 물류 시스템을 바꿔 유통 경쟁력을 높이는 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백의 머리와 걸쭉한 목소리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오랜 지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홍성원(부사장) 현대홈쇼핑 대표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출신으로 ‘열린 CEO’라는 의견수렴 제도를 운영, 현대홈쇼핑의 무형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으며, 홈쇼핑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일 새벽 집 근처 산 바위에 앉아 하는 명상으로 하루를 연다. 명상에서 얻은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표현한 일일쪽지를 이메일 형태로 아침마다 전직원에게 보내 새로운 업무 활력을 제공한다. 최신 유행가도 따라 부르고 패션 감각을 갖고 있으며 젊은 직원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bori@seoul.co.kr ■ 장남은 백화점, 차남은 H&S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후계 구도는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정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두 아들에게 백화점 관련 주식을 증여하며 자신의 지분을 계속 축소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장남 지선(33)씨는 현대백화점 지분 15.72%에 현대푸드시스템의 현대백화점 지분 4.3%를 더해 사실상 20.02%의 백화점 지분을 확보, 최대 주주가 됐다. 차남 교선(31)씨도 지난해 처음으로 부친으로부터 현대백화점 H&S의 주식 56만주(10%)를 증여받아 2대 주주가 됐다. 지선씨는 현대백화점, 교선씨는 현대백화점 H&S로 형제간에 경영권 관할이 가시화된 것이다. 현대백화점 H&S는 여행사 현대드림투어와 기업들의 명절 선물사업을 하는 백화점 특수판매 회사로 이뤄져 있다. 지선씨는 2001년 현대백화점 기획실장(이사)으로 기획·인사·재무·조직관리 등 핵심 업무를 두루 맡아왔다.2003년에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 직함을 달면서 지선씨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던 백화점 경영에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백화점 등 계열사들을 세차례에 나눠 한달에 한번씩 경영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계열사의 투자·인사는 물론 업무 조정·통합 역할까지 진두지휘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여전히 경영수업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정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걸쳐 부회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선씨는 부회장이 되자 마자 어려움에 처했다. 경기침체로 백화점 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현대백화점은 다른 유통업체와 달리 할인점이 없는 사업구조와 신규사업 진출 부진으로 미래 성장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 부회장은 최근 회사의 미래성장 엔진 발굴에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다.“유통이든 유통이 아니든 수익을 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신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회사 역량 강화를 위해 외부 자문도 구하라.”는 제안도 했다. 그렇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구름도 끼고 햇볕도 드는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또 지난 1월 조직개편을 단행, 기존의 경영지원실을 기획조정본부로 승격시키며 조직 장악에 나섰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매칭그랜트’제도 도입을 지시하기도 했다. 임직원이 매달 봉급에서 일정 금액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면 회사에서도 그만큼의 금액을 출연해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하는 이 제도는 유통업계에서는 처음 시도됐다. 정 부회장은 사내에서 “과묵하면서도 매우 꼼꼼하고 생각이 깊다.”는 평을 듣는다. 주요 회의에서도 다른 임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에 소신껏 자기 의견을 제시한다. 소수의견이라도 타당성이 있으면 흔쾌히 수용하고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합리적인 스타일이다. 정 부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는다. 올해 계열사별 신년 업무 브리핑 이후 간부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아버님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스타일로 나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웬만해서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다. 동생 교선씨는 지난해 1월 경영지원실 산하 경영관리팀장(부장)을 맡은 데 이어 올해 기획조정본부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 수업을 하고 있다. 일을 배우는 단계여서인지 매사에 열심이다. 형 지선씨보다 선이 굵고 상당히 활동적인 성격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들 형제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사 사무실 4층에서 나란히 근무하고 있다. bori@seoul.co.kr ■ ’숨은 실세’ 우경숙 고문 정몽근 회장의 부인 우경숙(54) 고문은 현대가의 다른 며느리들과 달리 회사 경영에 참여한 활동파다. 현대가의 딸과 며느리들이 대부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로 소리없이 문밖 출입을 했던 집안 분위기를 감안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훗날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것과도 사뭇 다르다. 우 고문은 사실 정 회장과 결혼후 현대가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남편을 내조하는 전형적인 주부에 머물렀다. ●비서실 근무하다 며느리 낙점 현대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현대가에 시집와서인지 우 고문은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셨다고 한다. 본격적인 백화점 사업을 하기 전인 70년대 후반 울산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시절, 우 고문은 수시로 울산 방어진 수산시장에서 ‘참전복’을 공수해 청운동 본가로 보냈다.“정말 복 덩어리 음식이 참전복인 만큼 어른들 건강에 좋다.”며 살이 통통한 자연산만 고집했다. 잘 익은 제철 과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가정사에만 신경쓰던 당시 우 고문의 대외 활동이래야 1985년 백화점사업을 시작하기 전 서울 압구정동 본사의 작은 건물 직원식당에서 창립기념일 등에 참석하는 수준이었다. 우 고문은 회사 행사에서 시어머니인 변중석 여사와 함께 임직원들에게 직접 떡과 과일 등을 담아주는 일을 했다고 당시 직원들을 기억한다. 그러던 우 고문은 백화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96년까지 우고문은 상무 직급을 달고 현대백화점의 신상품 개발 담당 업무를 맡았다. 유통업계 후발주자인 현대백화점으로서는 롯데, 신세계백화점과 경쟁하기 위해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절실했던 시기다. 그래서 백화점 PB(자체브랜드)개발에 주력했다. 상품개발부 직원 30여명과 함께 그가 개발한 자체브랜드는 ‘시그너스’‘벨라지’‘아르모니아’ 등이다. 특히 아르모니아는 강남의 전문직 여성들 사이에 한때 붐을 일으킬 정도로 히트를 쳤다. 96년에는 전세계에 10개의 매장만 운영할 정도로 신규 매장 출점에 까다로운 이탈리아 하이패션 브랜드 ‘지비에르돈나’를 압구정점에 유치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 유치 수완도 당시 상품개발 부문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로부터 우 고문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패션을 보는 안목과 미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을 들었다. 계절에 앞서 주력 상품을 고르는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내놓아 담당 바이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틈틈이 집에서 그리는 서양화 실력은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나면 미술전이나 각종 전시회를 찾는 것도 우 고문의 패션 센스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그는 최근 몇년사이 점포수 확대와 홈쇼핑 등 사업 다각화가 이뤄지고, 현대백화점이 현대백화점 H&S와 분할되는 과정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계열사간 투자, 인사에 관한 업무조정 및 중재가 필요한 시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역할이 부각됐던 것이다. 때문에 그룹 안팎에서는 ‘우씨’집안에서 백화점 경영을 섭정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3년 장남인 지선씨가 그룹 부회장을 맡으면서 우 고문에게 쏠리던 시선은 상당 부분 거두어졌다. 온화한 성품이지만 장남의 후계구도를 굳히는 과정에서 우 고문의 역할이 다소 과장되면서 실제 이미지와는 다르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두 아들이 경영에 적극 참여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 사무실을 두고 이곳에서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백화점 분위기도 살핀다. 가끔 백화점 영업이나 환경에 대해 세심한 조언을 해 매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다.500평 규모의 현대백화점 본점 옥상을 잔디공원으로 바꿔 고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토록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지난해부터 백화점 직원과 협력사원이 함께 하는 지역 사회단체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우 고문이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100년 내다보고 ‘브랜드 마케팅’ 해야”

    “기업들은 100년 이상 시장에서 살아 남을 수 있도록 브랜드 마케팅을 펼쳐야 합니다.” 한국마케팅연구원 김정남 원장은 14일 “세계 기업은 지금 제품 판매를 위한 치열한 브랜드 마케팅을 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40년 역사의 사단법인 한국마케팅연구원을 이끄는 김 원장은 성균관대 경영학과 교수로 각 기업에 브랜드 가치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브랜드 마케팅 전도사’다. 김 원장은 “기업 제품의 품질 가치와 기업의 기대 능력 등을 담고 있는 브랜드는 마케팅의 대명사”라고 정의한 뒤 “정보 홍수시대 고객들은 브랜드로 제품을 선택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국내 기업의 브랜드 마케팅 수준에 많은 우려를 나타냈다.“삼성과 같은 곳을 빼고는 우리 기업들의 브랜드 마케팅 실력은 유치원 수준”이라는 것이 그의 평가다. 삼성은 가전제품 브랜드를 ‘하우젠’으로 하는 등 삼성이라는 타이틀마저 버리고 마케팅을 할 정도이지만 다른 기업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의 시점에서 제품을 팔려고만 마케팅을 할 것이 아니라 10년을 내다보고,10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광고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현재의 브랜드 마케팅은 철저히 기업 중심의 마케팅”이라며 “점차 개인화되는 고객들의 참여를 이끄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기업이 눈앞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고객을 기만하는 마케팅은 오래 갈 수 없다.”며 “좋은 소재를 쓰고 생활에 풍요로움을 주는, 즉 인간을 위한 철학이 담긴 마케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기업들은 제품을 만들 때 원가중심으로 접근하는 등 이익을 극대화하는데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기업과 국민, 나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제품을 만들고 브랜드 마케팅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제자리걸음’ 초코파이값

    “초코파이 값은 왜 안오르지?” ‘국민 과자’인 초코파이 값이 수십년간 물가상승률 정도로 오르지 않는 이유를 두고 궁금증을 더하고 있다. 오리온이 1974년 초코파이를 첫 출시할 때 가격은 50원. 당시 졸업식이나 입학식과 같은 특별한 행사가 끝나면 먹던 고급 외식 메뉴이던 자장면 가격도 50원이었다. 간식거리 과자 한 개와 식사 한 끼 값이 같았다. 30년이 지난 지금 자장면은 3000원 이상으로 적어도 60배로 상승했다. 반면 초코파이는 200원으로 4배 올라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초코파이 매출 규모는 첫 출시했던 해에 10억원을 올린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 860억원(국내 매출)을 기록, 86배에 달하는 성장을 했다. 특히 2003년에는 제과업계에서 단일 품목 사상 처음으로 누적 매출이 1조원을 넘어서는 기록도 달성했다. 초코파이의 인기는 중국·러시아 등 해외시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미 유사 초코파이가 나온 지 오래이고, 러시아에서도 영국·이탈리아의 제과업계에서 초코파이를 겨냥해 비슷한 제품을 출시하기도 했다. 오리온측은 초코파이가 ‘글로벌 과자’로 거듭났지만 가격 유지책을 아직껏 견지하고 있다. 파이개발팀 문영복 팀장은 “초코파이가 싸다고 하지만 전국민에게 사랑받는 제품이고 통계청이 정하는 생활물가지수 산정기준 품목이어서 값을 쉽게 올릴 수 없다.”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어 “원가 압력도 많이 받고 있지만 국민의 성원을 감안, 생산 효율성을 높이는 등의 방법으로 극복하고 있다.”면서 “실제 가치는 현 가격의 3∼4배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동남아로 사업 확장 글로벌 홈쇼핑 도약” GS홈쇼핑 강말길 부회장

    LG홈쇼핑은 사명을 GS홈쇼핑으로 변경하고 ‘글로벌 홈쇼핑 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GS홈쇼핑 대표이사 강말길 부회장은 11일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사명변경과 CI교체작업은 단순히 이름 바꾸기 차원이 아니다.”면서 “회사 혁신의 계기로 삼아 세계 1등 홈쇼핑 기업이 되겠다.”고 밝혔다. 국내 대표적인 유통전문 경영인인 강 부회장은 “현재 대기업의 상품 판매는 오프라인과의 충돌, 방송비용 등을 감안하면 별 이익이 없다.”면서 “활로를 찾지 못하는 중소기업의 제품이 장벽없이 홈쇼핑에 쉽게 입점할 수 있도록 절차를 정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초창기 홈쇼핑업계의 성장률이 30∼50%로 초고속 성장했지만 주고객층인 30대 중상류층 주부들은 홈쇼핑 시장에서 이탈해 나갔다.”면서 “앞으로 ‘품질경영’에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강 부회장은 특히 “지난 1일 중국 충칭시에서 방송을 시작한 충칭 GS쇼핑에 3년간 1500만달러를 투자하고 중국내 다른 도시나 동남아시아 등지로 홈쇼핑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⑤- 현대중공업

    #1982년 5월 19일 ‘기업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고의 날일 것 같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이날 현대그룹 계열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고,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인 현대중공업 사장에 그를 앉히는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이때가 그의 나이 31세. 현대그룹 후계구도에서 형들보다 한발 늦게 출발한 몽준씨가 가장 먼저 부친에게 인정받은 비결은 뭘까. 고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창립 25주년 행사에서 그 배경을 자세하게 풀어놓았다.“어떻게 보면 파격적이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저서 ‘기업경영이념’을 읽어보면 우리나라의 어떤 젊은 경영진보다 확실히, 모든 것을 잘 분별해서 회사를 끌고 나갈 겁니다. 우리 아이들간에도 서열이 굉장히 낮기 때문에 가족회의를 열어 몽준 사장이 충분히 직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결정을 했습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이에 앞서 몽준씨가 미국 MIT 석사학위 논문을 보완한 경영서적 ‘기업경영이념’ 서문을 읽고 “정말 잘 썼다.”며 “사장 자리에 앉아도 될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몽준씨는 훗날 가장 아끼는 그의 저서로 ‘기업경영이념’을 꼽으면서 “서문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곁들이기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부친에게 기업가로서의 자질을 인정받았던 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2002년 12월 18일 ‘정치인’ 정몽준씨에게 생애 최악의 날일지 모른다. 그는 이날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와의 공조 파기를 선언, 사실상 ‘백의종군’의 첫 발을 내디뎠다. 정권의 공동 주인으로 향후 5년간 막강한 정치적 실세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마다한 셈이다. 이 때가 ‘하늘의 뜻을 알수 있다’는 지천명(知天命)을 갓 지난 나이(51)였다. ●아버지에게 바가지 씌운 아들 정몽준(54). 현대가(家)의 여섯번째 아들.5선의 중진 의원. 대한축구협회 회장. 자산규모 재계 9위(지난해·공기업 제외)인 현대중공업의 대주주(지분 10.80%). 국내 재벌가에서 정 의원만큼이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도 드물다. 일각에서는 “잘난 집안에 태어나 순탄하게 성장한 대가”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평가한다. 정 의원은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는 부산에서 3년 가량 살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충초등학교와 중앙중·고교를 거쳐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그의 초등학교 동기 동창이다. 그는 초·중학교 시절 놀기를 좋아하고, 장난이 심했다고 한다. 중학교 담임 선생이었던 임환씨는 “몽준이는 놀기를 좋아해 친구들과 수업을 빼먹고 야외로 놀러갔다가 종아리를 맞기도 했다.”면서 “전혀 부잣집 티를 내지 않았으며, 학교 도서관을 지을 때 시멘트 1만포대를 지원받은 뒤에야 비로소 아버지가 고 정 명예회장임을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정 의원의 학생시절 별명은 ‘꺼벙이’다. 큰 키에 소탈하고, 겸손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부친한테는 다른 형제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스스럼없이 대하곤 했다. 부친에게 ‘바가지’ 씌운 일화 한 토막.1970년대 초반 어느 날.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잔 쏘겠다며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오랜만에 접하는 생음악과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에 흥에 겨워했다. 자리가 파할 무렵,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1차는 제가 샀으니,2차는 아버지가 사시라.”고 제안했다. 고 정 명예회장도 유쾌한 기분으로 흔쾌히 응했다.2차 행선지는 정 의원이 정한 강남의 한 술집. 그러나 2차가 끝나고 계산서를 받은 정 명예회장은 술값에 놀랐다. 먹은 것에 비해 족히 여섯배의 술값이 청구됐기 때문. 그렇다고 재벌 회장이 술값을 놓고 시비를 걸기도 뭐했지만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성격 탓에 종업원에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드님이 전에 드셨던 외상 술값까지 계산하라고 해서 그렇게 됐습니다.”“허허 이것 참….”고 정 명예회장은 아들에게 된통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 의원은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서울대에 진학했다. 고 정 명예회장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울산으로 변형윤, 이현재 교수 등 당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초청해 크게 ‘한턱’을 냈다. 고 정 명예회장은 “우리 몽준이가 혹시 사무착오로 합격한 것 아니냐.”고 농담을 하면서 우리 아들을 잘 지도해 달라고 수차례 부탁했다고 한다. 현대 고위 관계자가 밝힌 허물없는 부자관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일화는 이렇다.“한번은 고 정 명예회장이 아들들과 골프를 치는데 티샷을 하고는 먼저 그냥 걸어갔습니다. 다른 아들들은 머뭇거리다 채를 들고 뒤따라 가는데 유독 정 의원만 얼른 공을 놓고 티샷을 했죠. 그러자 고 정 명예회장이 ‘저놈∼.’하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아내 자랑하는 ‘팔불출’ “나는 나의 아내가 고맙고, 때로는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친구들은 종종 내가 대통령 감이라기보다 내 아내가 ‘퍼스트 레이디’ 감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아내는 바쁜 나의 생활을 잘 이해해 주고, 조용히 내조를 하는 스타일이다. 아내는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싫어한다. 밖으로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정 의원이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밝힌 부인 김영명(49)씨에 대한 평이다. 정 의원은 1978년 여름 넷째 형수(이행자·고 정몽우 현대알루미늄 회장 부인)의 중매로 영명씨를 미국에서 만났다. 당시 두 사람의 첫 인상은 이랬다. 영명씨는 “우선 키(정몽준 182㎝·김영명 174㎝)가 커서 좋았어요. 제 키가 큰 편이라 어머니가 ‘너는 키 큰 신랑감이 없으면 시집도 못 갈거다.’고 곧잘 농담을 하곤 했어요. 첫 인상은 나이 차이가 다섯살이나 나서 그런지 듬직했어요. 믿고 의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재벌가 사람답지 않게 소탈한 것도 좋았고요.” 정 의원은 “약속 장소에 나갔는 데 키 큰 여자들이 쭉 지나가기에 미국 사람들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모두 나에게 오더라고요.”고 당시 상황을 이렇게 술회했다. 이들은 틈틈히 테니스를 치며 1년 가량 연애끝에 잠시 귀국해 서울 정동교회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영명씨는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2남4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부친의 외교관 활동 덕분에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17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살았다. 미국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미술사를 공부했다. 웨슬리대학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상원의원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전통의 명문 대학이다. 영명씨는 외교관인 부친을 닮아 사교성이 뛰어나다.‘88 서울올림픽’ 유치전에서는 고 정 명예회장을 현장에서 보좌했고,1992년 대선 때는 변중석 여사를 대신해 시아버지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2002 월드컵’ 유치 과정에서는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 부인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내기도 하고, 행사장에서는 미소와 화술로 친분을 쌓기도 했다.‘미스 스마일월드컵’이라는 애칭은 이 때 얻었다. 이 때문인지 정 의원의 부인 자랑은 유별나다.‘김영명이 없으면 오늘의 정몽준도 없다.’는 우스갯말이 떠돌 정도다. 그의 저서 ‘꿈은 이루어진다’에서 계속되는 자랑 하나.“아내는 나보다 영어를 훨씬 잘한다. 유머를 곁들인 자연스러운 영어는 외국에서 처음 만나는 손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곧잘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곤 한다. 그동안 4남매를 키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내는 아이들이 크자, 뜻있는 분들과 함께 우리의 ‘옛’것을 ‘올’바로 알자라는 의미를 가진 ‘예올회’를 만들어 문화재 보존사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영명씨가 밝힌 애처가 해프닝은 이렇다.“첫 아이를 가졌을 때였어요. 입덧이 심했던 제가 걱정스러웠던지 남편은 며느리들만 모인 자리에 와서는 제게 ‘밥 먹었니.’하고 묻는 거예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그 한마디 때문에 남편은 ‘애처가’라는 별명을 얻었죠. 그 꼬리표는 지금까지 따라 다닙니다.” 그도 신혼 초에 시아버지인 고 정 명예회장에게 혼이 났다고 한다.“철부지 며느리 시절, 저는 식사 중에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데 불쑥 끼어들어 참견을 하곤 했어요. 아버님이 어느 날 저에게 ‘밥 먹을 때 말을 많이 안하는 게 좋은 거다.’며 조용히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자녀는 2남2녀. 장남인 기선(23)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올 초 아버지의 뒤를 이어 ROTC 장교로 임관했다. 장녀 남이(22)씨는 연세대를 휴학하고, 현재 미국 서던 캘리포니아 유니버시티에 유학 중이다. 차녀 선이(19)씨도 미국 디어필드 아카데미에 다니고 있다. 막내 예선(9)군은 경기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다. 영명씨는 늦둥이인 막내 임신과 관련해 병원에서 무안당한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임신해서 병원에 가면 의사가 초음파 검사를 하잖아요. 한번은 의사가 ‘아들이 없으세요. 왜 이렇게 애를 많이 낳으세요.’라고 물어 난감한 적이 있었어요.” 시중에는 예선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축구 예선전이 한창일 때 태어나서 이름을 예선이라고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 의원은 최근 ‘예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의미와 돌림자 ‘선’을 합쳐 예선으로 지었다고 밝혔다. ●정치인 정몽준 “내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자 한 것은 11대 국회의원 선거 때였고,1984년 12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출마하려고 했다. 그런데 전두환 전 대통령이 내가 나가면 여당 의원이 떨어진다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그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공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는 생각은 내가 지금까지 흔들림없이 지켜온 가장 기본적인 정치철학이다.”정 의원이 밝힌 정치 입문의 배경이다.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은 5선의 중진 의원으로 확실한 입지를 구축했다. 한때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반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본 정치인 정 의원은 어떨까. 지난 대선기간 내내 일정한 거리를 유지했던 정 회장도 ‘피’는 어쩔 수 없었던지 그 속내를 내보인 적이 있었다.“몽준 의원은 우리 형제들 가운데 제일 똑똑하고 잘 생겼다. 미국 MIT 대학원도 졸업하고, 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잘 치렀다.” 그러나 정 회장은 이 발언 이후 정치권으로부터 호된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정치인 정 의원의 평판은 극과 극을 달린다. 일각에서는 직선적이고 엄격하다고 지적한다. 그를 보좌했던 비서관의 얘기다.“정 의원은 성격이 급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다.”정 의원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자신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쪽에서는 합리적이고 매너가 깨끗하다는 평이다.“정 의원은 서구식 매너가 몸에 배어 있다. 직원들이 떠나는 차에 인사를 하면 ‘왜 차에다 대고 절을 하느냐. 하지 말라.’고 말린다. 또 비서를 시키지 않고 직접 자신이 동료 의원에게 전화를 한다.”며 다른 전직 비서관이 전했다. ●현대중공업의 핵심 브레인 민계식(63) 현대중공업 부회장은 가장 부지런한 CEO, 백발의 마라토너 CEO로 불린다. 아침 6시 출근, 새벽 2시 퇴근하는 일과를 20년째 이어오고 있다. 비서를 퇴근시키고 저녁 6시부터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새벽까지 사업구상이나 신제품 개발 계획에 열중한다. 그의 이런 노력은 국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에 150편의 논문을 발표토록 했으며,48건의 국내 및 국제특허를 보유토록 했다. 우주항공학 및 조선공학(석사), 해양공학(박사) 등을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전문지식은 현대중공업의 연구개발(R&D) 부문을 업그레이드시켜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민 부회장은 또 60대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건강을 과시하고 있다. 그의 최고기록은 2시간 23분 48초. 비록 20대 초반 시절에 일궈낸 기록이지만 지금도 2시간대의 기록을 내고 있다.42.195㎞의 완주기록도 100회를 넘었다. 유관홍(60) 현대중공업 사장은 그룹내에서 경영 합리화의 귀재로 통한다.1999년 침체에 빠진 현대중공업 건설장비부문의 사업본부장을 맡아 세계 각지를 직접 뛰는 영업활동을 전개, 직원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활력을 불어넣기도 했다. 그 결과 만성적자였던 건설장비 부문을 2001년 국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는 국내 1위의 건설장비 업체로 탈바꿈시켰고, 중국시장 점유율 25%를 기록하는 중국 최대의 건설장비 공장으로 성장시켰다. 그의 이런 경영능력을 두고 지난해 6월 미국의 권위있는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유 사장을 ‘기업회생 전문가’라고 평했다. 이연재(63)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은 1976년 현대중공업 간부로 입사한 이래 30년간 조선과 해양플랜트의 해외영업 부문에서 일해 왔다.1999년 부도 위기에 처했던 옛 한라중공업을 현대중공업이 위탁경영하면서 대표이사로 선임돼 흐트러진 조직을 안정시켰다. 단기간에 70여척의 선박을 수주했으며, 중단된 사원 복지향상에도 노력을 기울여 사원아파트와 스포츠문화센터 등을 조성했다. 파산 직전까지 이르렀던 회사를 2001년부터 4년 연속 흑자경영을 실현하고 있다. 최길선(59) 현대미포조선 사장은 평사원으로 입사해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최 사장은 설계·생산·기획 등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조선 현장에서 33년을 보낸 최고의 조선전문 경영인이다.‘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원칙아래 내실을 강조한다. 최 사장은 올해 슬로건을 ‘창사 30주년, 새로운 도약의 해’로 선포하고, 선박 60척 생산체제 구축을 마련하는 등 제 2도약을 위한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현대중공업 탄생 일화 ‘옥스퍼드 박사가 낳은 현대중공업’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평소에 즐겨 썼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곳이 현대중공업의 설립 신화다. 그야말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고 정 명예회장의 ‘원맨쇼’였다. 고 정 명예회장은 1971년 조선소 차관 도입을 위해 영국 런던의 바클레이즈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듣도 보지도 못한 한국의 작은 회사가 언감생심 어딜 넘보는 것이냐.’는 바클레이즈 은행의 태도에 기가 질렸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기댄 곳은 당시 기술협조 계약을 맺은 영국의 A&P 애플도어 엔지니어링사. 그는 500원짜리 지폐로 애플도어사의 롱바톰 회장을 감동시켰다.“이것은 한국 지폐입니다. 여기 그려진 것이 거북선이죠. 한국은 이미 1500년대에 이런 철갑선을 만든 실적과 잠재력을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조선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게 1800년대이니 한국은 무려 300년이나 앞선 셈입니다.” 그는 롱바톰 회장의 도움으로 바클레이즈 은행 부총재를 만났다. 그러나 콧대 높은 영국 은행의 부총재를 설득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옥스퍼드 박사’ 일화는 여기서 나왔다. 고 정 명예회장은 ‘전공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임기응변으로 “어제 제가 이 사업계획서를 들고 옥스퍼드대학에 갔더니 한번 들쳐보고 바로 그 자리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를 주더군요.”라고 말했다. ‘옥스퍼드 유머’에 부총재는 껄껄 웃으며 “옥스퍼드대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이런 사업계획서는 못 만들거요.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훌륭합니다. 당신의 전공은 유머 같소. 우리 은행은 당신의 유머와 함께 이 사업계획서를 수출보증국으로 보내겠소.” 고 정 명예회장은 ‘거북선 지폐’와 ‘옥스퍼드 박사’로 바클레이즈 은행 벽을 넘었지만, 아직 영국 수출보증기구(ECGD) 총재의 보증을 받아야 하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그러나 이것도 울산의 초라한 백사장 사진 한장 들고 그리스 선사인 ‘선 엔터프라이즈’사의 리바노스 회장을 설득, 선박을 수주 계약함으로써 무사히 통과했다. 이로써 세계 조선 역사상 최초로 조선소 건설과 선박 건조가 동시에 진행하는 신화가 나오게 됐다. 고 정 명예회장과 리바노스 회장이 당시 맺은 인연은 지금도 대(代)를 이어 지속되고 있다. golders@seoul.co.kr ■ MJ 처가의 ‘화려한 혼맥’ 정몽준 의원의 처가인 고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가계도를 보면 한국 상류사회의 ‘족보’를 엿볼 수 있다. 슬하에 2남 4녀를 둔 고 김 장관과 송두만(83) 여사는 자식교육 뿐 아니라 혼사까지 성공한 케이스. 자녀 모두 외교관 출신인 부친의 영향으로 영어와 일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다. 특히 장녀인 영애(60)씨와 차녀인 영숙(59)씨는 일본 최고의 여성 사립명문인 세이신대학을 졸업했다. 장남인 대영(57)씨는 미국의 암허스트대학을 졸업했으며, 차남인 민영(51)씨는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땄다. 자녀 가운데 재계 가문으로 시집간 이는 삼녀인 영자(55)씨와 막내인 영명(49)씨. 영자씨는 GS그룹의 허씨가인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과 결혼했다. 허 회장의 형제로는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과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이 있다. 또 허창수(57) GS그룹 회장과는 사촌간이다. 허 회장의 부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한 축을 맡았던 고 허준구 LG건설 명예회장의 맏형이다. 고 허 명예회장은 일찌감치 삼성물산의 창립멤버로 참여,LG 구씨가와 손잡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영명씨는 정몽준 의원과 1979년 결혼, 현대가의 일원이 됐다. 이로써 고 김 장관의 집안은 국내 대재벌인 삼성과 현대,LG,GS가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 차녀인 영숙씨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낸 손원일 제독의 장남인 손명원(64)씨와 결혼했다. 손씨는 30대 초반에 ‘손컨설팅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으며 현대미포조선과 쌍용자동차, 맥슨전자에서 CEO(최고경영자)를 역임했다. 그는 현재 스카이웍스솔루션 코리아 고문이다. 장녀인 영애씨는 자수성가한 국제 금융계의 거물급 인사로 미국 모건스탠리의 부사장이다. 남편인 최융호(62)씨는 해양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제너럴 마리타임 사장이다. 장남인 대영씨는 부친인 고 김 전 장관의 아호(海吾)를 딴 해오실업을 경영하고 있으며, 차남인 민영씨는 한국외국어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부인인 정다미(44)씨도 명지대 교수다. 김 전 장관의 집안은 또 언론계와도 각별하다. 손녀 사위들이 언론계에 몸담고 있다. 셋째 사위인 허 회장의 장녀인 유정(31)씨는 조선일보 방상훈 사장의 아들인 준오(31)씨와 결혼했다. 둘째 사위인 손 고문의 차녀인 정희(31)씨는 1999년 헤럴드미디어 사장인 홍정욱(35)씨와 화촉을 밝혔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직원건강 회사의 힘”

    ‘직원 건강이 회사 발전’ 직원들의 건강을 챙기는 기업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인재 육성은 물론 직원 건강 또한 중요 자산이란 판단에서다. 회사내 헬스시설은 최고급이고, 건강펀드까지 운영하는 기업도 있다. 두산그룹은 5일 서울 을지로6가 두산타워 지하 2층에 최고급 시설을 갖춘 피트니스클럽(320평)을 개설했다. 사원 건강을 위해 무려 20억원을 투자했다.100여대의 최신식 운동기구가 비치돼 있고, 요가와 필라테스, 킥복싱을 할 수 있는 그룹 엑서사이즈룸도 있다.“글로벌 인재는 건강도 최고여야 한다.”는 박용오 회장의 지론이 반영됐다. 태평양은 고지혈증 등 성인병 예방을 위해 이달부터 직원을 대상으로 그린다이어트 펀드를 모집하고 있다. 체중·체지방 감량을 하려는 직원은 신체검사를 통해 목표 감량치를 정한 뒤 펀드가입 신청서를 작성한다.6개월후 목표 체중으로 감량하면 성공한 것으로 인정한다. 성공하면 가입액 5만원은 되돌려주고 회사에서는 백화점상품권(10만원권)과 꽃배달도 해줄 계획이다. 포스코도 본사에 한방의료실을 운영, 직원들의 호응이 무척 좋다. 스트레스 등으로 고생하는 직원들에게 침과 쑥뜸을 해주고 어깨결림 등의 환자에게는 간단한 마사지도 해준다. 최근 들어 업무에 지친 직원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해방둥이 식품업계 당찬 비전

    ‘해방둥이’식품업계가 최근 기업 비전 선포식을 갖는 등 신발끈을 다시 매고 있다. 해태제과와 삼립식품은 똑같이 오는 10월 창립 60주년을 맞는다. 과자업계와 제빵업계에서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두 업체가 최근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활발한 경영활동을 펼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부도로 ‘주인’이 바뀌는 등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오랜 역사에 걸맞은 이름값을 하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1945년 민족 자본과 기술로 세운 국내 최초의 식품회사인 ‘해태제과 합명회사’는 과자업계의 산 증인. 지난 97년 부도로 외국자본에 인수됐다가 재기에 성공하면서 다시 지난 1월 크라운제과로 넘어와 새길을 걷고 있다. 해태제과는 최근 ‘뉴 스타트 플랜’비전 달성 결의대회를 갖고 국내 제과업계의 리딩 기업이 될 것을 다짐했다. 뉴 스타트 플랜은 2010년 매출 1조원, 영업이익 1000억원을 달성 한다는 야심찬 계획. 이를 위해 주력 부문인 제과·아이스크림·냉동사업을 강화하고, 신규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장할 방침이다. 윤영달 사장은 “제과업계 최초로 동북아 지역 최고의 기업으로 발돋움할 야심 찬 계획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1945년 서울 을지로에서 ‘삼미당’제과점으로 출발한 삼립식품은 외환위기로 법정관리 고비를 겪기도 했으나 2002년 법정관리 종결 및 파리크라상과 합병, 제2의 전성기를 향해 달리고 있다. 삼립식품도 최근 2010년 초일류 종합식품기업으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빵에만 매달리지 않고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이달 중 통합브랜드 ‘해솔원’을 런칭할 예정이다. 자연의 맛과 향을 담아 전한다는 의미의 해솔원은 면류 등 냉장, 냉동제품에 두루 사용될 것이라는 것이 회사측의 설명이다. 올해 중국 등 해외 진출에도 힘을 쏟기로 했다. 정통 일본식 우동전문점 사누끼보레와 고품격 베이커리인 썬메리 직영점을 확대하고 가맹점 사업도 추진하는 등 외식사업에도 적극 나서기로 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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