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배수진과 지지율/진경호 논설위원
1위 없음,2위 토니 블레어,3위 고이즈미 준이치로,4위 조지 W 부시,5위 고르바초프.2003년 말 정치부 기자들이 한 주간지 설문조사에서 꼽은,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해외 지도자 순서다. 무엇이 닮았을까. 여러 요소를 축약하면 대략 개혁성과 힘, 즉 추진력이 꼽힌다.
이 글의 주인공이자, 세계에서 노 대통령과 두번째로 많이 닮았다는 고이즈미 총리. 센세이셔널리즘과 비타협적 리더십, 파격, 말솜씨, 솔직함 등이 비슷하다는 그가 정치생명을 건 한판 승부를 시작했다. 우정민영화법이 참의원에서 부결되자 공언한 대로 중의원을 해산했고, 정치판을 총선 정국으로 바꿔버렸다. 상대는 일본의 오랜 파벌정치다.
총선 정국을 맞아 40%를 밑돌던 그의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상승한 우리나라의 탄핵정국을 보는 듯하다. 왜 두 지도자는 탄핵과 중의원 해산의 위기국면을 맞았고, 이런 위기에서 지지율이 오르는 까닭은 또 뭘까. 무엇보다 기존 정치세력과의 타협보다 민심을 직접 상대하는 리더십을 지닌 점이 눈에 띈다. 도쿄신문의 야마모토 서울지국장은 고이즈미의 지지율 상승 이유를 국민들의 개혁의지에서 찾았다.“고이즈미는 ‘대통령식 총리’로 불릴 정도로, 파벌간 타협을 거부하고 제 뜻을 관철하려 든다.”며 “이 때문에 자민당내에서는 반발이 많지만 국민들은 그의 개혁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본전문가인 김재호 연세대 교수도 “고이즈미 총리의 지지도가 낮았던 것도 파벌정치에 발목이 잡혀 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동의했다. 한마디로 개혁추진의 대안부재론이 선거 국면에서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다.
링컨과 드골, 처칠 등 근·현대사에서 기존질서를 깨는데 자신의 정치생명을 걸고, 결국 집권에 성공한 지도자는 무수하다. 지난달만 해도 11년간 재임하며 유럽 최장수를 기록 중인 융커 룩셈부르크 총리가 ‘퇴진’이라는 카드로 유럽연합(EU)헌법안 국민투표를 승리로 이끌었다. 역사에서 배수진은 절체절명의 위기 때 등장한다. 그러나 최고지도자의 승부수가 잦다는 건 그만큼 나라가 불안하고, 국민들은 그만큼 피곤하다는 얘기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