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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경호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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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통섭(統攝)/ 진경호 논설위원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발명’으로 선정한 미 스탠퍼드대 김상배 연구원의 ‘끈적이 로봇’에는 ‘통섭(統攝·consilience)’의 개념이 녹아 있다. 로봇공학에다 도마뱀에 대한 생태연구가 합쳐져 이런 도마뱀 로봇이 탄생한 것이다. 일반에게는 아직 낯설지만 학계나 산업현장에선 제법 오래전부터 활용해 온 개념이 이 ‘통섭’이다. 국립국어연구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통섭을 ‘전체를 도맡아 다스림’이라고 풀이했다. 미 하버드대 생물학과 교수 에드워드 윌슨의 베스트셀러를 지난해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가 우리말로 펴내면서 널리 쓰기 시작한 말이다.‘사물에 널리 통한다.’라는 ‘통섭(通涉)’의 뜻도 담아 ‘지식과 학문을 통합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것’이 지금 회자되는 통섭의 개념이다. 지난 20세기가 학문의 분화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학문의 통합 시대, 즉 갈래갈래 나뉜 학문을 엮어 한 차원 높은 지식으로 승화시키는 제2의 르네상스 시대라는 것이 통섭론자들의 지론이다. 통섭의 움직임은 학계와 산업계 곳곳에서 활발하다. 이화여대가 올해 ‘통섭원’이라는 연구소를 열었고, 서울대도 범학문통합연구소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인문과학과 자연과학, 예술을 엮어 새로운 상상력의 거대 지평을 열겠다.”라는 것이 이장무 서울대 총장의 포부다. 삼성은 미래기술연구회에 유수의 자연·사회과학·공학 학자들을 참여시키고,LG전자는 이화여대 통섭원과 정기모임을 갖기로 했다. 방송·통신의 융합이나 휴대인터넷(와이브로), 인터넷TV(IPTV), 윈도비스타 등 컨버전스(융합) 신산업들의 잇단 출현도 넓게 보면 통섭의 한 단면이다. 통섭의 전제는 다름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 있다. 종교와 과학이, 예술과 기술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가치를 존중할 때 새로운 학문과 기술의 지평이 열린다. 안타깝게도 이 통섭의 시대에 여전히 눈 감고 귀 막은 영역이 정치다. 이념 대립은 종교의 벽보다 공고하고, 정파간 대립은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제로섬 게임의 틀에 갇혀 있다. 허울 좋은 ‘통합’도 몸집 불리기의 깃발로 전락했다. 통섭의 정치가 절실하다. 우리 정치가 끝내 눈을 뜨지 않는다면 21세기조차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선거실패학/진경호 논설위원

    대선에 관한 한 한나라당은 두 가지 ‘공포의 추억’을 갖고 있다.‘2%포인트’와 ‘선거전 2개월’이다. 지난 두 차례 대선을 한나라당은 1.6%포인트(15대)와 2.3%포인트의 득표율 차로 잃었다.15대 대선땐 10월 DJ비자금 폭로에 따른 역풍으로,16대 땐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의 광풍으로 추격의 불씨를 꺼뜨리고 말았다. 김형오 원내대표의 탄식처럼 4년 10개월을 이기고 2개월을 진 것이다.2%의 벽이 태산처럼 높고,2개월이 2년만큼이나 긴 것이 한나라당인 셈이다. 변변한 후보도 없고, 지지율도 바닥인 열린우리당이 믿는 구석도 여기에 있다. 이른바 ‘5% 승부론’이다. 지역과 이념으로 양분된 구도에서 승부는 어차피 5%포인트 이내로 갈리며, 반(反)한나라당 연대만 이루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다. 근거가 없지 않다. 지난 5·31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당선자를 싹쓸이했지만 득표율은 53.8%였다. 지난 2002년 6월 민선3기 지방선거의 52.1%와 차이가 없다. 한나라당이 얻을 최대치이며, 따라서 추격의 여지가 충분하다는 분석이다. 대선에서 패할 때마다 한나라당엔 갖가지 패인 분석들이 쏟아졌다.2002년 대선 직후 김문수 당시 선대본부장은 “화초(이회창)가 잡초(노무현)에 졌다.”고 했고, 박관용 전 의장은 “시대에 졌다.”며 당의 관료적 경직성과 폐쇄성을 질타했다. 그러나 숱한 패인분석에도 불구, 한나라당은 끝내 한 번도 공식 대선패인백서를 내지 않았다. 최근 한나라당에 ‘이회창 실패학’을 되새기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고 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측은 ‘이회창 실패요인 100선’ 같은 리스트까지 만들 생각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선두주자로서,‘제2의 이회창’이 돼선 안된다는 절박감이 엿보인다. 선거패배를 반면교사로 삼겠다는 선거실패학이라 하겠다. 실패학엔 이른바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큰 사고 전에 경미한 사고 29건이 일어나고, 이보다 더 경미한 300건의 사고가 선행된다는,1:29:300의 법칙이다. 대선을 1년 앞둔 지금 패배의 조짐을 찾자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숱하게 널렸다고 하겠다. 관건은 실천이다. 누가 더 많은 패배요인을 찾아내느냐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예방하느냐가 요체인 것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대선법칙/진경호 논설위원

    54차례 치러진 미국 대선엔 그 오랜 역사만큼이나 많은 징크스가 있다. 그리고 선거 때면 후보뿐 아니라 징크스끼리도 싸운다. 2004년 조지 부시와 존 케리의 대결에서도 징크스들은 운명의 결전을 벌였고, 명암이 갈렸다. 이 가운데서도 80년 전통(?)을 자랑하던 ‘레드스킨스 징크스’의 패배가 극적이다. 미식축구팀 레드스킨스가 대선 직전 마지막 홈경기를 지면 집권당이 패한다는 이 징크스는 1936년 루스벨트 대통령 재선 이후 2000년까지 17차례 대선에서 모두 적중했으나,2004년 부시의 승리로 18연승에 실패했다.10월 주가가 0.5%포인트 이상 떨어지면 집권당이 지는 ‘10월 주가 징크스’도 1904년 이후 이어온 6연승을 마감했다. 반면 ‘전시(戰時)대통령 불패론’은 1812년 이후 6차례 모두 적중했고,‘청소년 설문조사’도 당선자 예측에 성공해 1956년 이후 13전12승의 승률을 기록했다. 역사가 짧은 우리 정치에도 몇차례 대선을 관통한 ‘법칙’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연합후보 필승론’이다.3당 합당의 김영삼,DJP연합의 김대중, 후보단일화의 노무현 등 지난 세 차례 대선 모두 다른 정치세력과 손 잡은 후보가 이겼다. 이는 충청도에서 이겨야 대권을 쥔다는 ‘지역연합 필승론’으로도 연결된다.1992년엔 영남과 충청의 ‘동부연합’이,1997년엔 호남과 충청의 ‘서부연합’이 승리했다.2002년에도 민주당이 JP(김종필)의 공백을 행정수도 이전 공약으로 메워 이겼다. ‘서울시장 선거가 대선주자의 무덤’이란 말도 있다. 당선되면 이명박, 고건 전 시장처럼 대선주자 반열에 오르지만 떨어지면 정계은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1995년 박찬종,1998년 최병렬,2002년 김민석씨가 예다. 최근엔 ‘대선 1년 전 지지율 1위 후보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괴담’이 정가에 나돈다.1997년의 박찬종,2002년의 이회창 후보를 이르는 말로, 이명박 전 서울시장으로선 펄쩍 뛸 일이다. 하나 그만큼 우리 정치의 가변성이 높은 건 사실이라 하겠다. 경선후보의 탈당과 후보연대, 정계개편 등 온갖 변수들이 뒤엉키면서 대선 직전까지 후보 지지율이 춤춰 온 것이 우리 정치다. 대선 1년 전 선두가 당선되든, 무조건 떨어지든 이제 우리도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대선법칙을 가질 때도 됐으련만….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대통령 퇴직보험은 없다/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통령 퇴직보험은 없다/진경호 논설위원

    노무현이 늦은 밤 차를 몰고 가다 벼랑에서 굴렀다. 이튿날 이를 발견한 주민이 노무현을 양지녘에 잘 묻어 주었다. 사고조사를 나온 경찰이 물었다.“그가 죽은 건 확인했습니까.” 주민 왈,“그게 글쎄…자기는 안 죽었다고 하는데 대체 믿을 수가 있어야죠.” 인터넷을 떠도는 이 노무현 유머의 코드는 불신이다. 그것도 극도의 증오가 응축된 불신이다. 한데 많은 사람이 웃는다.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일주일 뒤면 12월19일,‘바보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된 지 4년이 된다. 그 사이 국민 10명 중 9명이 그를 등졌다. 바보는 사라졌고,TV광고에 비쳤던 그의 눈물은 진작 말랐다. 많은 사람이 노 대통령과 그의 말을 믿지 않는다. 심지어 ‘의도적 양극화 심화론’이 버젓이 나도는 지경이다. 참여정부가 양극화 해소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반한나라당 표 결집을 위해 의도적으로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몇몇 멀쩡한 대학교수들까지 동의한다니 불신의 양태도 정상이 아니다. 노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것도 반미정서를 증폭시켜 진보세력의 입지를 넓히려는 속셈이라는 주장도 있다. 국민의 ‘노무현 읽기’는 이렇게 비비 꼬이고 궁폐해져 버렸다. 책임은 노 대통령에게 있다. 지역구도 극복의 전사(戰士)라는 그의 입에서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 나오고, 해마다 한두번씩 대통령직을 던질 듯한 말이 끊이지 않았다. 자주를 내세운 전시작전권 환수도 뒤늦게 보니 미국이 가져가라 던진 것이었다. 얼마 전 호주 발언만 해도 그렇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못 이뤄 대가를 받고 있다면서도 숙제는 정치권으로 넘겼다. 지역구도를 문제삼다 대연정을 내놓듯 진단과 처방이 따로 간다. 그의 생각이 뭔지 종잡을 수가 없다. 변호사 시절 이런 모호한 화술로 재미 좀 봤을지 모르나 대통령 노무현에겐 자신을 못 믿을 사람으로 만드는 독소일 뿐이다. 노대통령 집권 5년차에 접어드는 우리 정치의 화두는 대선, 정계개편, 그리고 ‘노 대통령의 퇴임 후’ 등 세가지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의 거취는 정계개편과 직결되고, 대선의 방향과 질로 이어질 사안이다. 그런데도 그의 거취는 지금 가장 가변적이고 불투명한 변수로 남아 있다. 노 대통령 스스로 그리 만든다. 낙향을 얘기하다 정치·언론 개혁의 사명을 말한다. 국회의장직을 엿보는 말을 농처럼 꺼낸 적도 있다. 그는 이런 모호함이 레임덕에 놓인 자기를 지켜줄 상책이라 보는지 모른다. 베일 뒤에서 퇴임 후 자신을 옹호할 정당을 확보하고, 안 되면 직접 국회의원이라도 돼 자신을 변호할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정치사엔 그런 전직 대통령의 ‘보험’이 없다. 어떤 정치세력도 퇴임 대통령을 보호하지 않는다. 전두환 노태우, 심지어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조차 예외가 아니다. 전직을 지켜줄 사람은 오직 현직의 자신과 민심뿐이다.1년 남았다. 못 믿을 대통령으로 끝나지 않겠다면 무엇보다 정치권에다 퇴직보험을 들겠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퇴임 뒤는 물론 남은 임기에도 정치를 끊고 국정에만 전념하겠다고 또렷이 말하고 실천해야 한다. 네가 뭘 하면 나도 뭘 하겠다는 흥정은 그만 접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발 정국 혼란을 줄이고, 잃은 민심을 차곡차곡 되쌓는 길이다. 그것이 퇴직보험이다. 재임 중 잃은 민심을 퇴임한 뒤 찾을 수는 없다. 노 전 대통령의 10년, 노 대통령의 1년에 달렸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대통령의 잠/진경호 논설위원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잠만 잔 대통령’이라는 오명을 지닌 인물이 30대 대통령 캘빈 쿨리지다.1923년부터 1929년까지 재임하는 동안 하루 평균 11시간을 잤다니 동서고금의 지도자 가운데 잠에 관한 한 달인이라고 하겠다. 부통령으로 있다가 전임 워런 하딩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새벽 2시에 부랴부랴 취임식을 갖고는 다시 3시간 더 잤다는 그다. 회의 중에 졸다 구설수에 오른 일도 적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당시 그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은 비교적 높았다고 한다. 그가 많이 잤기 때문은 결코 아니겠으나 대공황을 앞둔 1920년대 중반 미국 경제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을 구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전·현직 대통령들로부터 부쩍 잠을 못 잔다는 소리가 잦아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준비 안 된 사람이 대통령이 돼 나라가 이 꼴이 됐다. 밤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는 이보다 일주일 앞서 “최고책임자가 횡설수설하니 잠이 안 온다.”고 불면을 호소한 바 있다. 정작 염려스러운 일은 노무현 대통령의 불면이다. 지난 5월 민주평통 미주지역 자문회의에 참석해 “잠 못 이루는 시애틀의 밤뿐 아니라 잠 못 이루는 청와대의 밤도 있다.”고 했다.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에 따르면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에 노 대통령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토로한 적도 있다고 한다. 최근 청와대를 방문한 여권 인사는 새벽 3시까지 노 대통령이 깨어 있다가 새벽 5시30분에 집무실에 나오는 경우가 잦다고 전했다. 수면장애는 피로는 물론 집중력 저하, 짜증, 망상, 공격성 증가 등을 불러온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절반이 재임 때 수면장애와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시달렸다는 듀크대 메디컬센터의 연구보고서가 올 초 발표된 바 있다. 대통령의 정신질환과 국정운영의 상관관계까지 밝히진 않았으나 긍정적으로 작용할 리는 만무하다. 지난해 신임 사무관 특강에서 “긴장과 피로는 잠으로 푼다. 잠이 피로회복에 제일 좋은 것 같다.”고 한 노 대통령이다. 그가 잠을 못 자면 국민도 편히 잘 수 없다. 장세동 전 경호실장이 정립(?)했다는 ‘심기경호’를 청와대 비서실이 흘려듣기만 해선 안 될 듯하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순천만 철새/진경호 논설위원

    출근길 신호등까지 세고야마는 습벽은 가랑비 뿌리는 순천만 갈대 습지의 서정 앞에서도 돋았습니다.“습지 면적이 얼마나 됩니까? 겨울철새는 몇 마리고요? 흑두루미는요?” 서울서 내려와 습지에서 생활한 지 10년 된 보트주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갯벌만 653만평이고 겨울철새는 2만 9000마리 정도 됩니다. 흑두루미는 200마리 정도고요.” 세계에서 몇번째로 큰 습지니, 연안 습지로는 람사협약에 첫번째로 가입했느니, 천연기념물 19종이 사느니, 갯벌의 가치가 몇백억이니…. 숫자는 습지를 오가는 배가 5척이라는 것까지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런 순천만의 생태는 분명 보호할 가치가 크다는 어쭙잖은 결론이 따랐습니다. 알래스카 청둥오리에겐 그저 따뜻한 겨울 쉼터요, 시베리아 왜가리에겐 먹거리 풍성한 여름별장일 뿐인데 말이죠. 자연을 숫자로 재고 보호할 가치를 따지느라 그땐 보지 못했습니다. 푸드득 박차고 날아오른 흰뺨갈매기가 흘겨 봤을, 모터보트 위의 제 모습 말입니다. 신문에 이런 기사가 있네요.‘습지를 누비는 관광보트의 굉음 때문에 순천만 철새들이 쉬지 못한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3金 1昌/진경호 논설위원

    프랑스와 한국 정치에 공통점 한가지가 있다. 대통령에다 총리가 있고, 대통령 임기가 5년이며, 대선이 열리는 해가 같다는 것이다. 우리처럼 프랑스도 2002년에 대선이 있었고, 내년에 대선(4월)을 치른다. 한데 최근 프랑스 정국에 우리와의 공통점 하나가 추가됐다. 정계복귀다. 주인공은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2002년 대선 때 좌파진영의 분열로 장마리 르펜 국민전선 후보에게 밀려 3위로 탈락한 뒤 정계은퇴를 선언했다가 최근 사회당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하는 것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비록 낮은 지지율에 밀려 중도사퇴했으나 그의 정치적 영향력은 작지 않다. 그런 그가 22일 ‘세골리즘 돌풍’의 주역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킹’ 대신 ‘킹메이커’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정치활동을 재개했다. 총리를 역임했고,2002년 대선에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뒤 은퇴했다가 지방선거를 전후로 정치행보를 재개한 것 등 조스팽의 행보와 흡사하다.‘창’은 지난 20일 창원에서의 강연에서 “좌파정권이 다시 집권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며 사실상 공개적인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선 “정치활동이라고 봐도 좋다.”고 했다.30일 연세대 강연, 다음달 5일 ‘한나라포럼’강연 등 줄지어 ‘강연정치’ 일정을 잡아놓고도 있다. ‘돌아온 창’에 따라붙는 물음표는 그의 역할이다. 한나라당 대선후보를 지원할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 안팎의 대체적 전망이지만, 스스로 대권 3수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된다. 본인도 “정치를 떠난 만큼 ‘킹이 되려 하느냐, 킹메이커가 되려 하느냐.’는 질문은 말아달라.”고 여운을 남기고 있다. 이미 정치행보에 나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도 얼마전 “대선에서 전국을 누비며 나름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무산된 김영삼 전 대통령과의 회동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누구도 국민의 명을 받은 바 없건만 이들 모두 ‘구국의 전사’를 외친다. 국민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차기 대선은 전·현직 대통령과 전직 대선후보가 총출동한 ‘1노3김1창(昌)’의 대전(大戰)으로 가고 있다. 국민 노릇도 쉽지가 않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빛 바랜 정부혁신 노트/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빛 바랜 정부혁신 노트/진경호 논설위원

    어쩌다 인천국제공항을 찾으면 왠지 모를 가벼운 유쾌함을 느끼곤 했다. 새로 지은 첨단공항의 쾌적함이야 눈에 보이는 것이고, 낯선 여행이 안겨주는 설렘 또한 인천공항만의 선물은 아닐 터였다. 그럼 뭘까….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이 물음의 답을 비로소 엊그제 찾아간 정부혁신 우수사례 발표 현장에서 얻었다. 세계 어느 공항보다도 짧은 출입국 수속 시간에 유쾌함의 비밀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행사는 정부혁신 4년을 평가하고, 그 결실을 처음 수확하는 자리였다. 영예의 ‘정부 톱 브랜드’로 선정된 법무부의 ‘KISS’는 왜 정부 혁신이 필요한지를 새삼 일깨워준다. 국가의 첫 인상이 출입국 심사에 좌우되는 점에 착안, 법무부 출입국관리국은 지난 1년여 각고의 노력 끝에 11분 23초가 걸리던 내국인 출국심사를 7분 6초로,31분 26초 걸리던 외국인 입국심사를 17분 26초로 줄였다. 출국심사를 4분여 줄인 것이 뭐 대단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라진 4분’엔 승객정보사전분석시스템 등 첨단기술과 관계자들의 땀방울이 응축돼 있다. 국제공항협회(ACI)가 올해 인천공항을 세계 최우수 공항으로 선정한 것도 이런 노력을 평가한 때문이다.“한 달에 고작 두세번 집에 들어가면서도 내가 힘들어야 국민이 편하다는 생각으로 버텼다.”는 출입국관리국 직원 K씨의 눈물 어린 수상 소감에는 국민을 고객으로 받들겠다는 일선 공무원의 반듯한 자세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앉은 새의 방귀도 감시한다.’는 환경부의 굴뚝원격감시시스템 ‘CleanSYS’나 소방청의 안전서비스 ‘U-119’ 등 다른 기관의 혁신브랜드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공무원들의 숨은 노력에도 불구, 수확기를 맞은 정부 혁신은 국민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지난달 여론조사에서 국민 10명 중 9명이 정부혁신의 내용조차 모른다고 답했다. 한 지인은 “쓸데없이 무슨 혁신행사냐. 그 돈으로 불우이웃이나 도우라고 하라.”고 쏘아붙였다. 치솟는 집값, 날로 벌어지는 소득격차, 취업난, 불안불안한 안보 등으로 인한 지지율 10%대의 참여정부 낙제 성적표 앞에서 정부의 혁신 노트는 그 빛을 잃었다. 엊그제 행사도 공무원들만 있었을 뿐 국민은 없었다.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이 묵묵히 혁신에 힘써 온 공직사회마저 외면받게 한 것이다. 지난 7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광주에서 열린 지역혁신박람회에 한나라당 소속 시·도지사들이 감히(?) 대거 불참한 것도 이런 불신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부 주장처럼 혁신은 국민이 체감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지금 정부혁신에 대한 국민의 야박한 평가에는 시차 이상의 요인이 존재한다. 바로 정부혁신에 붙은 ‘참여정부 산(産)’이라는 라벨이다. 고위공무원단제, 공직개방, 정책품질관리 등 정부부문 개혁에 많은 성과가 있었으나 돌아선 민심은 참여정부가 무슨 짓을 해도 미운 지경에 다다른 것이다. 참여정부가 연말부터 혁신 성과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로 했다고 한다. 정권의 잘잘못은 물론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는 다음 정권에서 국민들이 할 몫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 해도 소비자의 신뢰를 잃은 라벨을 붙여서는 팔 수가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혁신에 대한 평가를 국민 몫으로 남겨두길 바란다. 진정 혁신이 지속되길 원한다면 참여정부 스스로 혁신을 놓아줘야 한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훈장/진경호 논설위원

    현대사회에서 훈장(勳章)의 가치가 극대화된 공간은 전쟁이다. 희생의 대상이 전쟁이고, 그 희생의 대가가 훈장이다. 작가 이외수의 등단작 ‘훈장’에서 아버지는 그런 전장에서 잘려나간 한쪽 팔의 대가로 훈장을 받고, 이 훈장을 매일 닦고 또 닦으면서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부르는 것으로 생을 보낸다. 그런 ‘아버지의 훈장’을 작가 이병주는 “아이로니컬한 난센스이며, 이에 집착할 때 (인생은) 비극보다 슬픈 희극이 된다.”고 했다. 그 아버지에게 호국의 대가인 이 훈장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넘어가면 또 다른 가치가 된다. 동생 진석(원빈 분)을 하루빨리 전쟁터에서 빼내려 진태(장동건 분)는 국방군이든 인민군이든 전쟁영웅이 돼 훈장을 받아야 했고 결국 목숨을 던진다. 호국 대신 전쟁으로부터의 탈출을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훈장이든, 진태의 훈장이든 희생의 상징이며, 덧이 있고 없음을 떠나 희생으로 피운 꽃일 것이다. 상훈법 제2조가 규정한 ‘훈장 받을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나 우방국민으로서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자’다. 올해 8779명 등 정부 수립 이후 43만 8800명이 훈장을 받았다. 대통령 부부와 외국 원수 부부에게만 수여되는 최고훈장 무궁화대훈장부터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산업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등 훈장 종류만도 11개에 이른다. 무궁화대훈장을 빼고 각 훈장마다 5개 등급이 있으니 총 훈장 수는 무려 51개나 된다. 훈장은 받을 때보다 거부하거나 치탈, 즉 빼앗길 때 의미를 지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3월 정부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 공로로 받은 태극무공훈장 등 10여개의 훈장을 취소한 것이 한 예다. 올 2월엔 영화배우 최민식씨가 스크린쿼터 축소에 항의하는 뜻으로, 그리고 최근엔 지방의 한 정년퇴직 교사가 무너진 교육현실을 자책하며 서훈을 거부하기도 했다. 8·31 부동산 대책 ‘유공 공무원’ 30여명에게 수여한 훈·포장을 취소하라는 여론이 거세다. 이들의 훈장이 폭등한 집값에 주저앉은 서민들의 눈물 위에 핀 꽃으로 남아선 절대 안 될 일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자살예고/진경호 논설위원

    “선생님. 제발 저를 찾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잊지 말아주세요.” 일본 여류문학상 수상작가 이나바 마유미의 단편에서 절름발이 중학생 이토 다쿠로는 이지메(집단 괴롭힘)를 견디다 못해 가출한다. 그러곤 엄마와 선생님, 자기를 괴롭힌 가나이, 마쓰오카, 모치즈키, 야마다, 그리고 친구 미야모토에게 편지를 남긴다. 이지메가 너무 고통스러워 떠나지만 그런 자신을 절대 잊지는 말아달라고, 엄마와 선생님에게 눈물로 호소한다. 이토가 그 뒤 생을 어찌했는지는 모르겠으나 10년이 지난 지금 제2, 제3의 이토가 남긴 편지와 잇단 ‘이지메 자살’로 일본 열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지난 7일 문부성에 자살을 예고하는 이지메 피해학생의 편지가 날아들고 닷새 뒤 사회 각계의 애끓는 호소에도 불구, 두 명의 중학생이 목숨을 끊었다. 교내 이지메 실태를 숨겼던 한 초등학교 교장도 목숨을 끊었다. 자살예고와 모방 자살이 연쇄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1968년 미국자살학협회를 세운 슈나이드먼은 “자살자의 80%는 죽기 전에 어떤 형태로든 그 신호(signal)를 보낸다.”고 했다. 다수의 자살이 실제로 죽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살려고 주변에 애타게 구원을 호소하는 몸짓인 것이다.‘생명의 전화’는 그 80%의 신호가 자기만의 공간, 즉 방이나 일기장, 홈피, 편지, 문자메시지 등에 남겨진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1만 401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불명예를 차지한 우리다. 적어도 그들의 80%,1만 1200명은 자살을 예고했고, 그런 그들에게 주변에서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비극은 없었을 수 있다. 최근 고려대 행동과학연구소 주최 자살예방세미나에서 고려대 강선보 교수가 뉴욕의 한 여교사 얘기를 소개했다. 반 학생들에게 일일이 ‘당신은 내게 특별한 사람입니다’라는 리본을 달아주었고, 건너건너 전해진 그 파란리본이 자살을 결심한 한 아이를 살렸다. 자살관련 사이트만 270여개에 이르는 이 ‘자살 권하는 사회’에서 자살을 청소년 사망원인 1위에서 끌어내리려면 지금 당장 우리 가슴에 파란리본을 달고 ‘특별한 당신’을 찾아 나서야 한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청계천의 낮과 밤/ 진경호 논설위원

    집과 회사가 가까워 종종 찾는 청계천은 위안입니다. 수다스러운 개울이 일상에서 멍든 가슴을 간지럽히고, 결국은 피식 웃게 합니다. 청계천이 한여름 도심의 기온을 조금 낮춘다는데 시시콜콜한 일로 훅 달아오른 체온을 떨어뜨리는 효과는 더 큽니다. 한데 이 청계천의 낮과 밤 표정이 언제부턴가 달라졌습니다. 낮엔 주변의 직장인과 관광객, 그리고 어르신들이 세대 구분 없이 뒤섞여 거닙니다만 밤엔 어림없습니다.10∼20대 연인들이 점령(?)합니다. 조명 은은하죠, 적당히 컴컴하죠, 분위기 잡아주는 풀섶 있죠…. 마음의 틈새를 비집기엔 제격인 겝니다. 세대별로 이용시간대를 정해 놓은 것도 아니건만 청계천은 이렇게 해높이에 맞춰 직장인의 휴식터에서 가족의 산책길로, 다시 연인의 공간으로 탈바꿈합니다. 시간이 좀 필요할까요. 세대 구분 없이 늦은 밤에도 10대 연인,60대 부부가 따로 또 같이 뒤섞여 거니는 청계천 풍경을 보려면 말이죠. 하긴 갈 곳 없는 어르신들이 온종일 갇혀 있는, 건너편 을씨년한 종묘공원보단 그래도 한결 숨통이 트이긴 합니다만….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물러난 대통령, 물러날 대통령/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물러난 대통령, 물러날 대통령/진경호 논설위원

    열린우리당이 정치공황적 정계개편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전·현직 대통령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8년 만에 정치고향 목포를 찾아 ‘목포의 눈물’을 합창했다. 전남도청에선 ‘무호남 무국가’(호남이 없으면 나라가 없다)라는 충무공의 말을 방명록에 남겼다.“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은 ‘난 정치를 하지만 여러분은 정치행위로 보지 말라.’는 얘기로 들린다.“여당의 비극은 분당에서 비롯됐다.”고도 했다. 비극은 끝내야 하고, 따라서 국민 뜻을 어기고 나간 사람들은 민주당으로 돌아가라는 논리가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럴 뜻이 없어 보인다. 민주당과의 통합신당을 주장하는 천정배 의원에게 “전당대회에서 누가 옳은지 겨뤄보자.”고 선을 그었다. 왼팔이라는 안희정씨는 지방을 돌며 노사모 재건을 외친다. 지난 8월엔 노 대통령이 노사모 회원들을 청와대로 초청,“노사모의 대선 승리는 역사에 남을 일”이라며 ‘어게인 2002’를 다짐했다고 한다. 두 전·현직 대통령의 이중주는 분명 4년 전 참여정부의 문을 열 때의 앙상블이 아니다. 사실 노 대통령에게 ‘DJ와 호남’은 극복의 대상이었다.1995년 DJ의 정계복귀 때 그는 ‘3김정치 청산’을 외치며 1년여간 저항했다. 자신이 몸 담은 ‘국민통합추진회의’가 와해되면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것은 그에게 ‘3김정치’에 대한 굴복이었을지 모른다. 영남 출신인 그는 그럼에도 ‘호남당’을 택했다. 지역구도와는 끝내 타협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자신의 열린우리당이 퇴임 대통령의 흡인력에 의해 도로 호남당으로 회귀하는 상황은 좌시하지 못할 일 같기도 하다. 따라서 두 사람의 갈등은 얼핏 지역정치 극복을 둘러싼 신·구세력의 대립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연 이것뿐일까. 여권, 특히 친노(親盧)진영에선 얼마 전부터 몇가지 대선 시나리오가 나돌았다. 그 하나가 ‘열린우리당 분당-민주당과의 재통합’이다. 열린우리당내 비노·반노 진영이 가세한 민주당과 친노진영의 열린우리당이 일정 시점까지 각개약진하다 대선 직전 ‘민주·호남+개혁’의 재통합을 단행, 시너지를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여기에 오픈프라이머리라는 국민참여경선제가 가미되면 2002년 정몽준 의원과의 후보단일화 못지않은 드라마가 연출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각본대로라면 지금 노 대통령과 DJ의 대치는 이를 위한 전주곡일 뿐이다.‘DJP연합’,‘노-정 후보단일화’ 등 반 한나라당 연대의 위력은 지난 두차례 대선에서 입증됐다. 민심이 등 돌린 상황에서 여권이 승리를 기대할 거의 유일한 카드가 이 시나리오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정치가 아니라 정치공학일 뿐이다. 가객 한대수가 최근 낸 앨범에 ‘대통령’이라는 곡이 있다.‘┽내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난 지극히 사랑할거야. 국민들은 양호하게 잘 살고, 여자들은 기뻐서 웃을거야’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행복의 나라’로 가자고 선동(?)하며 민중의 목마름을 호소하던 그는 정작 민주화된 지금을 ‘슬픈 시대’라고 했다. 극과 극의 파워게임 세상이라는 것이다. 진짜 갈등이든, 고도의 전략이든 전·현직 대통령의 충돌은 국민을 더 피곤하게 할 뿐이다. 지금 정권이 그렇듯 다음 정권도 국민과 다음 정치세력의 몫이다. 물러난 대통령과 물러날 대통령은 권력 승계의 정치생태적 욕망을 버려야 한다. 국민들은 더이상 ‘정치 9단’들을 원치 않는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샤먼(厦門)의 서러운 야경/ 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샤먼(厦門)의 서러운 야경/ 진경호 논설위원

    중국 동남쪽 푸젠(福建)성의 항구도시 샤먼(厦門)의 밤은 화려하다. 초고층 빌딩숲이 휘황찬란한 불빛들을 칭칭 휘감은 채 중국내 6위 규모의 이 미항을 밤새 밝혔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과 함께 중국 안에서 맨 먼저 빗장을 열었고, 지난 28년간 연평균 18%라는 경이적인 속도로 커왔다. 불과 200여㎞ 떨어진 타이완과는 하루 20여차례 비행기와 여객선이 오가고 항구 옆 청과물도매시장에는 타이완의 비싼 과일들이 넘친다. 지난해에만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 1700만명이 인구 200만명의 이 도시를 찾았다.1인당 주민소득도 6000달러를 넘었다. 샤먼과 성도 푸저우를 품고 있는 푸젠성의 표정도 풍성하다.1980년대초 타이완의 40분의 1에 불과하던 주민소득이 4분의 1 수준으로 따라붙었다. 그런데도 이들은 여전히 배고파했다. 고도성장의 단맛은 외국자본에 대한 갈증만 더 키워 놓았다. 예솽위 푸젠성 부성장은 1시간이 넘는 환영사 대부분을 교역과 투자 확대를 호소하는 데 썼다. 왕쿵룽 중국 상무부 아주국장은 400억달러가 넘는 대한(對韓) 무역적자를 어떻게 줄일지보다 1100억달러를 넘어선 양국 교역량을 어떻게 더 늘릴 것인지에 관심을 쏟았다. 그들의 4대 수출국,2대 수입국으로 자리한 한국이지만 그들은 성에 안 찼다. 베이징에서 샤먼까지 중국 연안도시들을 따라 내려가는 일주일간 호텔방 TV에선 시시각각 미 CNN의 북핵 관련 뉴스들이 쏟아졌다.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들도 연일 북핵소식을 주요기사로 내보냈다. 탕자쉬안 국무위원과 중국 외교 당국자들의 북핵 발걸음도 분주했다. 갈 길 바쁜 이 중국인들에게 50년 혈맹 북한은 지금 어떤 존재일까. 베이징과 평양을 오가는 항공편수는 북·중 관계의 오늘을 말해준다. 중국측 항공편은 완전히 끊겼고, 일주일에 고작 세차례 고려민항만이 오간다. 그나마 이용객도 80%가 남쪽 사람들이다. 하루 546차례 1만 2000명의 한국인이 중국을 드나드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양국 간에 늘어난 것은 국경 철조망과 검문검색뿐이다. 중국에서조차 북녘은 이미 외딴섬인 것이다.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핵 해법을 묻는 질문에 두 가지 답을 내놨다.“미국에 달렸다.”와 “북핵의 책임이 미국에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많다는 점을 주목한다.”이다. 북핵 해법을 미국이 내놔야 한다는 얘기다. 한반도 전문가인 진링파 중국국제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중국은 해법이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북핵에 담긴 것은 미국에 대한 사랑일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관계개선에 대한 북한의 절박감을 미국이 갈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 힘을 키우던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넘어 이제 주변 정세에 적극 목소리를 내는 후진타오의 유소작위(有所作爲)로 접어든 중국에 북핵은 해결의 대상이 아니라 미국에 맞서 자신의 몸집을 달아보는 저울이 됐다. 두 강대국의 새로운 패권경쟁의 복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말한 저 ‘가난한 동생’이 초라한 핵무기를 움켜쥔 채 악다구니를 쓰고 있는 것이다. 당장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북한의 모든 문제가 풀릴 수 있을까. 미국과 중국의 몸짓,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그저 허둥대기 바쁜 남쪽의 ‘힘 없는 형’의 안쓰러운 모습은 고개를 젓게 한다. 샤먼의 화려한 야경이 점점 섬뜩해진다.(중국 샤먼에서)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조령모개/진경호 논설위원

    조령모개(朝令暮改)의 역사는 유구하다.‘사기(史記)’는 전한(前漢)시대, 즉 기원전 2세기 문제(文帝)의 어사대부 조조가 이 말을 썼다고 전한다. 관청의 잦은 부역 때문에 백성들이 도탄에 빠졌다며 아침에 내린 영(令)을 저녁에 거두는 식의 나라 운영을 바꿀 것을 상소했다고 한다. 정부의 잦은 정책변화가 민중을 고달프게 하기는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우리 정치에서 정치인의 말바꾸기는 따로 사례를 정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일상화돼 있는 게 현실이다. 여자의 변신이 무죄라지만 정치인의 말바꾸기도 무죄라는 판결도 있다.2001년 DJP연합과 관련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서울지법 민사합의10부는 “유동적 정치현실에 따른 공약 파기가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줄 수 있으나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인과관계는 없다.”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래서일까. 참여정부 들어 정치권의 말바꾸기 논란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이름깨나 알려진 여야 정치인들 상당수가 말바꾸기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다. 노무현 대통령만 해도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반대를 엊그제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말로 뒤집었다. 열린우리당이 엊그제 조령모개의 백미를 선보였다. 대선후보 선출 방식으로 이른바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국민경선제 도입을 선언한 것이다. 인물을 좇는 과거 정치를 끝내자며 민주당을 뛰쳐 나와서는 결국 인물을 좇는 제도를 뽑아든 꼴이다. 이는 사실상 열린우리당이 창당 근거이자 개혁의 상징으로 내세웠던 기간당원제의 용도 폐기를 뜻한다. 정당의 존립이유인 정권 창출 과정에서 기간당원의 권리를 배제-비당원과 동등하게-하고 기간당원 정당이랄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당의 오픈 프라이머리 TF팀 간사 백원우 의원은 “(국민경선제를 도입해도)당원의 참여가 가장 높을 것”이라고 했다.‘당직은 당원에게, 공직은 국민에게’라는 기치 아래 지지율 높은 후보를 뽑겠다고 택한 국민경선제의 취지와 부닥치는 발언이다. DJ에 따르면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고, 찰스 다윈은 “강한 생물이 아니라 변화에 적응하는 생물이 살아남는다.”고 했다. 적자생존의 법칙을 터득한(?) 열린우리당의 변신은 그래서 무죄인가?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오 보/ 진경호 논설위원

    미 뉴스위크지가 지난 5월 흥미로운 기사를 실었다.20년전 자신들이 보도한 ‘40세 대졸 백인 미혼여성의 결혼 확률이 테러범에게 죽는 것보다 낮다’는 기사가 오보라는 내용과 함께 당시 기사가 다룬 ‘노처녀’ 11명 중 8명이 결혼한 근황을 소개한 것이다. 유난스럽다 싶은 이 기사에는 오보(誤報)에 대한 미국 언론의 위기의식이 담겨 있다. 지난 몇 년간 잇단 오보로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은 유력지들이 ‘오보와의 전쟁’에 나섰고, 뉴스위크 기사도 이런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다. 고의든 과실이든 오보로 몸살을 앓기는 나라 안팎이 비슷하다. 미국만 해도 지난해 부시 대통령의 군복무 특혜의혹 오보로 CBS 간판앵커 댄 래더가 물러났다.1981년 8세 마약중독 소년의 생활을 그려 퓰리처상까지 받은 워싱턴포스트의 ‘지미의 세계’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날조기사’로 남아 있다. 뉴욕타임스는 2003년 창간 152년 최악의 오점이라는 ‘제이슨 블레어 기사조작 사건’을 겪었다. 우리의 경우 언론환경이 달라 이런 한탕주의식 날조기사는 비교적 적다. 그러나 사실확인에 소홀한 ‘카더라’식 인용보도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특히 무절제한 외신 인용은 고질적인 병폐다.1992년 김일성 주석의 신년사를 사회주의 패배 선언으로 해석한 일본 교도통신 보도를 여과없이 국내 언론이 인용, 법석을 떤 적이 있다.14년이 지난 지금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북한 미사일 발사만 해도 국내 언론은 오보 여부를 따질 겨를도 없이 일본 언론을 좇기 바빴다. 중동 문제를 서방언론에 의존해 바라보는 문제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제는 전직 미 국무부 관리가 가상해서 작성한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의 발언을 각 언론사가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촌극을 빚었다. 한 언론사의 1차 오보에 마감시간에 쫓긴 각 언론사들이 제대로 사실확인을 거치지 않은 채 앞다퉈 보도한 결과다. 16세기 마르틴 루터가 신문을 ‘거짓말(Lugenie)’이라고 한 것을 보면 오보의 역사는 근대 언론의 역사에 버금간다 하겠다. 지난달 한국기자협회 설문에 응한 기자 300명의 45%가 ‘신뢰하는 언론이 없다.’고 답했다. 자기부정 단계에 다다른 언론 불신의 시대다. 낙종보다 오보가 두려울 때 답이 보일 것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작전 없는 전시작전권 논란/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작전 없는 전시작전권 논란/진경호 논설위원

    전시작전통제권 논란이 혼란스럽다. 미국으로부터 되찾는 것인지, 미국이 돌려주는 것인지, 즉 환수인지 이양인지부터 헷갈린다.‘군사주권 회복을 통한 자주독립’처럼도 들리고,‘자주와 안보를 맞바꾸는 위험한 도박’ 같기도 하다. 여야는 물론 전문가라는 전·현직 외교관과 군 장성들끼리도 갑론을박이니, 필부들로선 뭐가 정답인지 알 길이 없다. 작통권 논란이 불 붙으면서 여권이 뽑아든 키워드는 ‘자주’였다. 한데 미국이 “2012년까지 갈 것 뭐 있느냐.2009년에 가져가라.”고 하는 바람에 이 호방한(?) 기치는 속된 말로 김이 새버렸다. 안보 불안을 내세워 반발하던 한나라당과 보수진영도 머쓱해졌다. 미국이 가져가라는 판에 정부만 붙들고 되찾지 말라고 하는 처지가 영 군색하다. 그런데도 정치판은 미국은 제쳐둔 채 좁은 울타리 안에서 자주냐, 안보냐를 놓고 치고받는데 여념이 없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들 눈을 멀게 하고 국론을 쪼개기로 작심한 모습들이다. 조만간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가 열리고, 여기서 작통권 이양(환수) 계획이 마련된다. 그동안 양국간 실무협의에서 마련된 얼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한·미가 풀어야 할 의문과 과제가 너무나 많다. 우선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GPR)계획과 주한미군 재배치, 한·미 연합사 작통권 이양의 삼각관계를 명쾌히 정리하고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전초기지로 전락하고, 주한미군은 남한에 기지를 둔 세계 기동군의 일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미국이 한국에 작통권을 넘겨준 뒤 유럽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같은 동북아사령부를 구성, 한국과 일본을 그 아래 두려 한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 가능성도 제기된다. 주한미군 감축을 통해 미 지상군의 피해 부담을 줄임으로써 선제공격의 여지를 충분히 확보하려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틈만 나면 ‘우리 민족끼리’와 ‘미제 축출’을 주장하는 북한이 작통권 환수를 비난하고 있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2012년까지 목표한 매년 9% 이상의 국방비 증액이 과연 가능한지, 목표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안보공백은 어떻게 메울지도 답해야 한다. 참여정부 들어 경제성장률은 4% 안팎에 그쳐왔다. 반면 내년부터 복지부문의 예산비중은 지금의 25%에서 더 확대될 예정이다. 국방예산 증가의 여지가 그만큼 좁다. 매년 7% 성장이라는 대선공약조차 못 지킨 정부가 어떻게 다음 정권의 국방비 지출을 장담하는지부터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미가 다툴 문제로 여야가 다퉈서는 안된다. 작통권 환수를 놓고 대선에서의 유불리나 따지며 주판을 튕기는 한 최후의 웃음은 미국의 몫일 뿐이다. 작통권 환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이미 현실임을 여야가 직시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더 이상 미국에다 작통권을 넘기지 말라고 조를 일이 아니다. 열린우리당도 ‘자주의 찬가’를 그만 접어야 한다. 환수인지, 이양인지부터 제대로 따지고 미국이 쉽사리 이양하는 목적을 다시 살펴야 한다. 이로 인해 변화할 동북아의 안보정세를 내다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안보 주권이 다른 형태로 침해되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초당적인 대미(對美) 작전이 필요하다. 국회 특위를 만들고 정부와 함께 작전권 환수를 위한 작전회의를 시작하라.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인계철선/진경호 논설위원

    한·미의 혈맹관계를 상징해 온 인계철선(引繼鐵線,tripwire)은 사실 두 나라의 오랜 논란거리이기도 했다.6·25직후 이승만 정권이 주한 미2사단을 의정부와 문산 등 휴전선 최전방에 붙들어 둔 뒤로 두 나라는 정권을 바꿔가며 주한미군의 이 ‘방패막이’ 역할을 두고 신경전을 벌여왔다. 인계철선 존폐의 1차 분수령은 1969년 미국이 닉슨 독트린과 함께 주한미군 감축계획을 내놓으며 찾아왔다. 박정희 정권의 반발 속에 1971년 주한미군 1만 8000명 감축이 이뤄졌고, 판문점 주변을 제외한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 방위임무가 처음으로 한국군으로 이양된 것이다. 당시 미군은 DMZ내 유일하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 1개 중대를 남겨둔다.5년 뒤 8·18 도끼만행 사건으로 희생된 아더 보니파스 대위의 이름이 붙게 된 ‘보니파스 중대’로, 당시 사건을 겪으면서 미 국방부가 처음 공식적으로 이 중대를 ‘인계철선’으로 불렀다. 한국전 자동개입을 뜻하는 상징이면서 한편으론 미군이 한국 안보의 볼모가 돼 있다는 미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이 이 ‘인계철선’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 뒤로 30년 가까이 대북억지력과 한·미 혈맹을 상징하던 인계철선의 의미는 그러나 21세기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근본적 변화를 맞는다. 네오콘을 중심으로 대북 선제공격론이 고개를 들면서 휴전선의 미군이 대북 방패 역할뿐 아니라 미국의 대북 선제공격을 가로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2003년 해외미군 재편(GPR)에 따른 주한미군 재배치 추진과 함께 이 걸림돌 제거에 팔을 걷어붙였다. 리언 러포트 주한미사령관이 “인계철선이란 용어는 주한미군에 대한 모욕”이라고 하더니 곧바로 미 국방부가 “미국인이 먼저 피를 흘려야 한다는 불공정한 말”이라며 인계철선이란 용어의 폐기를 한국에 공식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미 의회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우방의 군대를 인계철선으로 쓰자는 주장은 옳지 않다.”고 했다. 한국의 ‘자주’와 미국의 ‘GPR’의 교차점에 서서 마침내 양국이 ‘인계철선’ 폐기를 공언한 셈이다. 인계철선은 이제 역사의 문으로 들어선 듯하다. 한·미 동맹의 새 틀을 과제로 남겨둔 채….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후유증/진경호 논설위원

    몇 달 전 지인이 큰 수술을 받았다. 병원의 난데없는 ‘통보’에 철렁 내려앉은 마음으로 수술대에 올랐고, 다행히 수술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약간의 후유증이 남긴 했지만 예전의 건강도 되찾았다. 한데 최근 만난 그의 표정이 영 밝지가 않았다.“주위의 시선이 전 같지가 않아. 술 먹자는 얘기도 줄었고…, 야근이라도 하려치면 몸 괜찮냐는 얘기부터 쏟아지고…힘든 일도 안 맡기는 거 같고. 난 정말 괜찮은데 말이지. 생각해서 하는 말들이겠지만 부담스러워. 공연히 위축되고 말이야.” 풀 죽은 그를 보면서 사고로 2년 가까이 조금 불편한 몸으로 지내야 했던 몇 해 전 기억이 떠올라 피식 웃었다. 반 년에 한 번씩 네 차례 수술을 받았던 당시 두 가지 말이 귀에 박혔다. 마지막 수술을 앞두고 듣던 “또 수술해?”와 멀쩡해진 뒤로도 몇 년을 따라다닌 “이젠 괜찮아?”이다. 무슨 조화인지 그 위로의 말들은 ‘또 병가 내는 거야?’와 ‘이제 일 좀 하지.’로 둔갑해 내 귀를 때렸었다. 몸이 다치면 마음이 닫힌다. 그 마음이 다시 열릴 때까지 조금은 센스있는 주위의 배려가 필요할 듯하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자주마케팅, 안보마케팅/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자주마케팅, 안보마케팅/진경호 논설위원

    노무현 대통령이 이념 대립에 따른 국정운영의 어려움을 토로한 적이 있다.“정부는 차선을 바꿔봤자 2차선 아니면 3차선이다. 그런데 FTA에 대해선 왼쪽에서 (총탄이)날아오고, 전시작전통제권에 대해선 오른쪽에서 날아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힘들다. 도와달라.”고 오찬을 함께하던 언론사 간부들에게 말했다. 열린우리당 김근태 의장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먹고사는 문제에 전념하겠다.”며 ‘경제뉴딜’ 카드를 뽑아들자 안팎에서 난리가 났다.“그럴바엔 아예 한나라당으로 가라.”는 원색적 비난이 당내 친노 진영에서 터져 나왔다. 밖에서도 청와대가 재계인사 사면건의에 제동을 걸었다. 한명숙 총리는 “참여정부 정책의 골간을 흔들어선 안 된다.”고 김 의장의 허리춤을 붙들었다. 노 대통령의 ‘좌파적 신자유주의’는 사실 ‘비 오는 달밤 검은 백마를 타고’와 같은 형용모순의 수사(修辭)다. 열린우리당의 ‘실용주의’도 여권이 처한 이념적 딜레마의 다른 표현이다. 왼쪽으로 가자니 민노당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자니 한나라당이 버티고 있다. 좌우의 틈바구니에서 지지층을 넓히려니 이건 왼쪽, 저건 오른쪽 하며 좌충우돌하는 것으로 비친다. 이런 딱한(?) 처지와 비교하면 한나라당은 복 받았다. 후방(보수)을 공략 당할 염려가 없다. 마음껏 전방(중도)으로 내달려도 무방하다. 그런데도 이 당은 한 차선이라도 왼쪽으로 옮기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주춤거리기 일쑤다. 아니 왼쪽 차선이 텅 비었는데도 자꾸 오른쪽 차선만 기웃거린다. 전시작전통제권 논란이 그 격이다. 작통권을 미국으로부터 환수하는 차원이라면, 즉 우리가 선택할 문제라면 그 시점을 놓고 여야가 공방을 벌일 논거도 있다. 자주다, 안보다 하고 여야가 색깔을 드러내며 싸워도 딱히 떼 놓을 이유가 없다. 하나 미국이 우리 정부의 계획보다 앞당겨 2009년에 가져가라고 하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여야는 쟁점부터 바꿔야 한다. 특히 한나라당의 자세 변화가 필요하다. 가져가라는 미국을 제쳐두고 우리 정부에다가만 목청을 높이는 것은 번지수를 잘못 찾는 꼴이다. 국민들의 안보불안 심리에 편승하려는 안보마케팅 전략으로 비칠 뿐이다. 작통권 문제가 전략적 유연성 확보와 관련한 지구촌 미군 재편과 맞물려 있음을 여나 야 모두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한쪽은 미국이 가져가라는 작통권에 ‘자주’를 덧씌우고, 한쪽에선 ‘동맹 붕괴’라는 또 다른 포장지로 둘둘 말고 있다. 정치공학적으로도 이 싸움은 여권에 유리하다. 우군인 진보 진영을 결집시키는 효과가 크다. 반면 한나라당으로선 보수색을 키움으로써 중도 진영의 이탈을 감수해야 할 공산이 크다. 게다가 다음달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작통권 환수 로드맵이 마련되면 한나라당은 아예 공세의 타깃을 잃을 수도 있다. 당리 차원에서라도 한나라당은 작통권의 타깃을 환수시점 대신 안보공백과 비용부담을 줄이는 쪽으로 잡아야 한다. 상호방위조약 유지와 유사시 증원군 파견 등 양국이 합의한 4대 원칙의 구속력을 보장할 대안까지 제시한다면 40%대 지지율이 부끄럽지 않은 정당이라고 하겠다. 현대정치의 승패는 누가 먼저 상대의 전통의제를 내 것으로 만드느냐에 달렸음을 클린턴의 선거참모 딕 모리스는 갈파했다. 오른쪽에 웅크리고 앉은 ‘반응 정당’으로는 국민 과반의 지지를 얻기 어려움을 깨달아야 한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영수회담/진경호 논설위원

    ‘칠회칠배(七會七背)’. 칠종칠금(七縱七擒)에 빗댄 이 말은 국민의 정부가 끝나갈 무렵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진영에서 나왔다. 김대중(DJ) 대통령과 7차례 영수회담을 가졌으나 모두 뒤통수를 맞았다며 극도의 배신감을 드러낸 말이다.2001년 10월 두 사람의 마지막 영수회담 표정을 한 언론인은 이렇게 전한다.“이 총재는 쌍심지를 켠 채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DJ는 ‘저 친구가 대통령이 되면 내 여생은 없다.’고 결심했다.” DJ로 하여금 여생을 걱정케 한 말이 무엇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비리로 구속된 DJ의 두 아들 문제가 논의되지 않았겠느냐는 추정만 있을 뿐이다. 아무튼 국민의 정부 시절 영수회담은 이처럼 거칠었다. 막힌 정국을 풀기보다 여야 대치를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반면 권위주의 정권 시절 영수회담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1990년 3당 합당 등 정국의 거대한 물줄기가 이 영수회담에서 결정됐고, 정국에 훈풍이 부는 경우가 잦았다. 모두가 1인 정당, 보스정치 시대의 산물이다.1975년 영수회담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내 신세가 저 (창밖의)새와 같다.’고 한숨 지었고,‘대통령 오래 할 생각 없다.’는 말을 김영삼 신민당 총재는 비밀에 부쳤다.(김영삼 회고록) 2년 뒤 박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가진 이철승 민주당 대표는 훗날 “피차 쓰라린 경험에서 우러나온 각별한 인간관계를 얘기했다.”고 회고했다. 짐짓 인간적 정리와 낭만정치에 대한 향수를 담은 회고담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영수, 즉 몇몇 우두머리에 의해 우리 정치가 지배돼 왔음을 드러내는 부끄러운 고백이기도 하다. 그 ‘인간적 정리’ 뒤에 담긴 흑막도 알 길이 없다. 참여정부 들어 영수회담이 사라졌다. 지난해 대연정 논란의 와중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와 단 한차례 열렸을 뿐이다. 영수회담의 쇠락은 정치 발전의 징표다.1인 지배에서 벗어나 시스템에 의한 정치라는 긍정적 요소를 지닌다. 다만 조건이 있다. 영수회담에 버금갈 다각도의 소통이 필요하다. 전시작전권과 관련한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의 영수회담 제의를 여권이 일축했다.“대통령 면담을 신청하라.”는 여권의 일갈에 정치발전이라는 평가가 머쓱해진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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