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대통령 취임] 산업·민주세대 화해로 국익 키운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일성(一聲)은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로 정리된다. 자율과 화합에 바탕을 둔 성장과 풍요를 국정의 목표로 제시했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민의(民意)이기도 하다. 이 대통령은 새 정부를 산업화,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 시대의 정부로 규정함으로써 이념을 넘어 국익 우선의 실용노선을 철저히 견지해 나갈 뜻임을 거듭 천명했다.
이 대통령 취임사의 키워드가 ‘실용’이라면, 핵심가치는 시장과 자율, 창의다. 시장경제에 바탕한 자유민주주의의 철학을 충실하게 담았다.10년만에 이뤄진 보수진영으로의 정권교체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하면서 기업과 교육 등 민간 부문의 자율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국정기조를 택했다.
A4용지 24쪽 분량의 길고 긴 취임사 가운데 이 대통령은 선진화와 경제 살리기를 강조하는 데 8쪽을 할애했다.‘선진’이란 단어만 15차례,‘기업’을 14차례,‘경제’를 11차례 언급했다. 이명박 국정의 무게중심이 경제 성장에 있음을 말해준다.‘능동적·예방적 복지’와 삶의 질 개선, 일자리 창출도 강조했다. 기업을 앞세운 경제성장의 과실을 사회 각 부문에 골고루 배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교육 개혁과 과학기술 증진, 환경대책 강화 등을 통해 선진화 시대의 글로벌 역량을 키워나갈 뜻도 강조했다. 반면 역점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는 한차례도 언급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의 취임사는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취임사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과거사에 있어서 노 전 대통령은 “반칙과 특권이 용납되는 시대는 끝나야 한다.”는 말로 왜곡된 과거사 정리를 강조했다.
반면 이 대통령은 지난 60년을 “독립 선열과 산업 근로자, 민주화 청년들의 위대한 이야기”라며 시대와 계층의 화해를 강조했다. 대북정책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사의 상당 분량을 북핵 해결과 평화번영정책을 강조하며 남북문제를 국정의 최우선 순위에 뒀다.
이와 달리 이 대통령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 것”이라며 1쪽 분량으로 간략히 언급하는데 그쳤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우리 민족끼리’로 상징되는 남북 주도의 한반도 정책을 강조했다면 이명박 정부는 대외정책의 큰 틀 속에서 주고받기식의 실리적 대북정책을 추진할 것임을 천명한 것이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정치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부문에서도 실용과 변화를 강조했다.
이념 논쟁이나 탁상공론이 아닌, 국가의 발전방향과 실천 대안을 제시하는 실용정치로 거듭나길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정치의 근본은 국민을 편안하게 하고 살맛나게 하는 데 있으나 정치가 국민의 그런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변화를 주문했다.
그러면서 “소모적인 정치관행과 과감하게 결별해야 한다. 국민의 뜻을 받들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생산적인 일을 챙겨야 한다.”고 변화의 방향도 함께 제시했다. 대선후보 시절부터 ‘정치 공간’인 여의도와 물리적 거리를 둔 행보를 보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대통령은 기존 관행에 젖은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선진 일류국가 달성을 위한 명실상부한 실용정치를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누누이 지적해온 당리당략과 정쟁, 지분챙기기에 몰두하는 ‘여의도식 정치’를 생산적이고 실용적인 정치풍토로 바꾸자는 의지도 함께 나타냈다.
무조건적인 비판과 발목잡기가 아니라 대화와 상생의 정치, 네거티브가 아닌 포지티브의 정치를 펴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정치철학이다. 그는 취임사에서 여와 야를 넘어 대화의 문을 열고 언제든지 국회와 소통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경제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살리기가 ‘존재의 이유’임을 분명히 했다. 침체에 빠진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을 급선무로 선정한 이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분배’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 대통령은 투자 활성화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철폐해 기업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게 경제살리기의 핵심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 일환으로 이명박 정부는 금산분리와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재계에서 꾸준히 요구해 온 각종 규제를 개혁하고 완화해 투자 여건을 활성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또 빠른 시일 내에 단계별 이행방안을 담은 구체적인 ‘규제개혁 로드맵’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경제살리기의 한 축인 노동계에도 경제살리기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노(勞)와 사(使)는 기업이라는 수레를 움직이는 두 바퀴로 어느 하나가 제 몫을 못하면 수레가 넘어진다. 과격한 투쟁은 결국 자멸을 가져온다.”며 서로에 대해 한걸음씩 다가섬으로써 ‘투쟁의 시대’를 끝내고 ‘동반의 시대’를 열어 나가자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적극적인 시장개방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그는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국부를 늘려가야 한다.”면서 “개방에 취약한 부문, 특히 농어민들이 걱정이 많은데 대응책 마련에 정부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외교·안보
이명박 대통령은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실용을 강조했다. 국익과 번영을 위해 대한민국의 국제적 역할을 요구하기도 했다. 남북관계 역시 실용주의에 입각해 ‘비핵·개방 3000구상’을 추진할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특히 미국과의 관계를 강조하며 “전통적 우호관계를 미래지향적 동맹관계로 발전, 강화시키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일본, 중국, 러시아와 고루 협력 관계를 강화해 동아시아 평화와 공동번영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친미적이니, 친중적이니 하는 이념적 가치를 떠나 미국이든 중국이든 실용적 시각으로 접근하겠다는 뜻이다.
남북관계에서는 “이념의 잣대가 아니라 실용의 잣대로 풀겠다.”고 말해 통일을 향한 방법론의 변화를 시사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관계에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는 언급이나 “국제사회와 협력해 10년 안에 북한 주민 소득 3000달러에 이르도록 하겠다.”는 내용은 이와 같은 맥락이다.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언제든 만나서 가슴을 열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해 상징적 행사가 아니라 상생을 위한 실질적 만남이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한상우기자 cacao@seoul.co.kr
■복지·교육
성장중심의 경제 정책을 주창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25일 취임사에서는 반대 여론을 의식한 듯 복지와 교육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비중을 두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국가가 적극 나서는 능동적·예방적 복지를 통해 낙오자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과거처럼 부자와 대기업만의 일방통행식 성장이 아니라 서민과 중소기업도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맛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특히 여성복지 분야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양성평등 정책을 추진해 시민권과 사회권 확장에 힘쓰고 더 많은 여성이 의사결정의 지위에 오를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발족 초기부터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교육분야에 대한 비전도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교육선진국의 첫 번째 실천방안으로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관치의 상징인 교육부 통폐합 등 정부 차원에서 교육 제도 개선에 앞장서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 영어공교육 정상화 방안과 대입 자율화 정책을 포함한 교육 제도 전반의 대대적인 변화를 이끌겠다고 약속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