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진경호
    2025-10-1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739
  • [길섶에서] 얼음/진경호 논설위원

    햇볕보다 운(運)이 더 센 날, 학교를 마치고 헉헉대며 집에 가면 얼음이 있었다. “와, 얼음이다~” 엄마가 시장 얼음가게에서 머리통만 한 얼음덩어리 하나를 사다 놓으신 것이다. 곁엔 얼음덩어리 두 배만 한 수박도 한 통…. 엄마는 얼음에다 과일칼을 대곤 홍두깨로 콩콩 두드리며 얼음을 쪼갰다. “내가 해볼게~” 얼음은 이리저리 튀고, 튄 얼음을 주워 먹는 손길은 부산스러웠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 커다란 양푼에 썬 수박과 깬 얼음을 섞어 넣고는 동생과 마주 앉아 숟가락으로 퍼먹는 건 여름날 놓칠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별미였다. 냉장고에서 꺼낸 얼음을 전동빙수기에 넣어 갈고, 여기에 단팥, 우유, 연유 등을 얹어 팥빙수를 만들다 문득 광화문 교보생명의 글판에 실린 파블로 네루다의 시구가 떠오른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 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빙수를 한가득 머금은 입이 아리다 싶더니 금세 눈이 시리다. 한입 가득 얼음덩어리 물고 “와~”하며 마냥 행복했던 그 아인 어디 있을까. 비가 오나. 창밖이 뿌옇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한국 스포츠, 멘털의 진화/진경호 논설위원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시간과 대상의 흐름에 동화되고 일치되어 지금 하는 일에 푹 빠져 있는 상태…. 베스트셀러 ‘몰입’의 저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내린 이 ‘몰입’의 정의는 청나라 말 사학자 왕국유(王國維)가 묘사한 무아지경(無我之境)의 형상과 흡사하다. 왕국유는 “사물로써 사물을 보니 무엇이 자신이며 무엇이 사물인지 알지 못한다”는 말로 무아의 경지를 그렸다. 자신을 버림으로써 그 무엇과 하나가 되고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수양의 경지를 말한다. 누구든 좇고 싶으나 아무나 이룰 수 없는 경지이기도 하다. 정신력이 강조되는 현대 스포츠에서도 골프는 미세한 심리적 변화가 승부를 가르는 대표적 멘털 스포츠로 꼽힌다.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기술 20%, 정신력 80%”라고 했다는 골프황제 잭 니클라우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살아 있는 전설’ 타이거 우즈의 외도 스캔들 이후 성적만 봐도 골프에서 차지하는 정신력의 비중을 알 수 있다. 미 LPGA 메이저 대회 3연속 우승의 쾌거를 이룬 박인비의 정신력이 새삼 화제다. 미 LPGA 63년 만의 위업이라는 의미를 넘어 시즌 5승 중 3승을 역전으로 일궈내는 등 평소 보여준 흔들리지 않는 그의 정신력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골프칼럼니스트 수전 웨일리가 “아름다움 그 자체다. 마치 흐르는 물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다”고 극찬했고, 전 세계 1위 청야니가 “박인비라면 4m 이내는 무조건 컨시드(퍼트 간주)를 줘도 된다”고 했을 만큼 퍼팅에서 보여준 그의 부동심(不動心)은 이미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박인비가 지난 5년 동안 심리 상담을 해온 멘털 코치 조수경 서울시립대 교수는 박인비의 성공 요인으로 ‘회복 탄력성’을 꼽았다. 조금 전 실수를 바로 잊고 다음 샷에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했다. 부정을 긍정으로 순식간에 바꿔 버린다고 했다. 즐길 줄 모르면 나올 수 없는 마인드다. 박인비 스스로도 “정말 즐겁기 때문에 골프를 한다”고 했다. 피겨여왕 김연아, 한국 수영의 간판 박태환과 같은 버전이다. 1970년대 한국 스포츠의 정신력은 ‘악으로! 깡으로!’가 전부였다. 이회택·차범근의 축구가 그랬고, 홍수환의 권투가 그랬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분명 한국 스포츠는 달라졌다.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을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을 이기지 못한다(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요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고 했다. 이겨야 즐거운 게 아니라, 즐겨야 이긴다. 한국 스포츠 멘털의 진화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대북정책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조언/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북정책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조언/진경호 논설위원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시인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통찰은 흔히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로 치환된다. 동물의 세계가 그렇듯 개인과 사회, 나라 또한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고 변화를 슬기롭게 헤쳐 가느냐로 존망과 성쇠가 갈린다. 멀리서 찾을 것 없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60년 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국과 1인당 국내총생산(GDP) 720달러의 최빈국으로 남북이 갈린 한반도가 살아 있는 증거다. 우리는 변화를 탔고, 그들은 거부했다. 강한 자가 됐고, 멸종위기종이 됐다. 한반도 분단사에서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기록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훗날 분단사의 한 꼭짓점으로 남을 가능성을 담은 몇 가지 흐름이 지금 한반도를 휘감고 있다. 북한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이던 중국이 변하고 있고, 29세 김정은의 리더십은 여전히 성글다. 고립된 북의 경제는 좀처럼 기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응축된 변혁 에너지가 한반도의 유동성을 한껏 높이고 있다. 하기에 달렸다. 행운이 준비와 기회의 소산이듯, 이런 흐름에 앞으로 어떻게 조응하느냐가 성패를 가를 것이다. 500년 전 약육강식의 격랑에 휩싸인 이탈리아 반도에서 조국 피렌체를 살리려 외교의 최일선에 섰던 마키아벨리가 지금 한반도를 들여다본다면 박 대통령에게 몇 가지를 당부할 듯싶다. 무엇보다 어설픈 승리 말고, 확실한 승리를 추구하라는 말을 할 듯하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는 보복하려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는 감히 엄두를 못 낸다. 인간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짓밟아 뭉개야 한다”고 했다. 거칠기 짝이 없는 언사지만, 섣부른 타협을 경계하고 확고한 원칙을 추구하라는 말이다. 박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관통하는 정책기조와 궤를 같이하는 만큼 마키아벨리가 중언부언할 까닭은 없어 보인다. 귀담아들을 대목은 다음일 것이다. “공명정대는 분명 칭찬받을 일이나, 위대한 업적을 남긴 군주는 인간을 혼동시키는 데 능숙했다.” 성실과 신뢰에 더해 책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원칙을 앞세우되 능수능란한 전술로 뒤를 받쳐야 외교가 완성된다는 얘기다. 오는 27일 박 대통령이 시험대에 선다. 시진핑 중국 주석과 마주 앉아 자신의 외교력을 대내외에 펼쳐보이게 된다. 과거와 달라졌다지만 북한만 바라보다 살짝 돌아앉은 데 불과한 중국이다. 박 대통령과의 친분이 두텁다지만 시 주석 홀로 외교정책 방향을 결정할 수 없는 집단지도체제의 중국이다. 몸집만큼이나 한발 한발 움직이는 게 더디다. 회담은 어렵지 않겠으나, 회담 이후 한반도 상황은 그래서 쉽지 않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남북 대화를 위한 중국의 역할을 당부할 것이고, 시 주석은 조속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상호 노력을 주문할 것이다. 이 두 목소리는 적어도 회담장에서만큼은 조화와 균형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정작 회담 이후의 한반도는 다를 듯하다. 남북대화보다 6자회담 재개를 둘러싼 신경전으로 요동칠 공산이 크다. “대화를 위한 대화는 안 된다”고 선을 그은 박 대통령을 향해 6자회담 참여를 요구하는 중국의 목소리는 점차 커질 것이다. 경제 제재 완화를 바라는 북한이 이에 가세하면서 북한을 향한 지금의 한·미·중 3각 압박 전선이 한·중 정상회담 이후 흐트러지는 역설적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 제휴란 자신을 강하게 할 때만 의미가 있다고 마키아벨리는 말했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확대하는 회담을 넘어 우리가 한반도의 주도권을 확고히 하는 회담이 돼야 한다. 단호한 북핵 불용(不容) 의지와 함께 한반도 해법에 있어서 남북 대화가 제1과제라는 목소리가 시 주석의 입에서 나오도록 해야 한다. 사자도 되고, 여우도 되라고 했다. 그게 도태 위기의 북을 상대하는 남을 위한 마키아벨리의 처방이다. 열흘 뒤 박 대통령은 자신의 외교력을 입증해야 한다. jade@seoul.co.kr
  • [길섶에서] 새벽 4시의 힘/진경호 논설위원

    얼마 전 아내와 새벽기도를 다니면서부터 그는 모든 게 바뀌었다고 했다. 새벽기도가 안겨주는 마음의 안식을 말하나 했건만 그의 말은 달랐다. 새벽기도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고, 밤 11시엔 잠자리에 들어야 했으며, 밤 10시까지는 귀가해야 했다고 했다. 이를 위해 밖에서 먹는 저녁은 가급적 술을 줄이고 한자리에서 끝낸다고 했다. 새벽 4시 기상이 다음과 그 다음 일상을 조금씩 바꾸고, ‘밤문화’를 없애고, 이것이 모여 하루하루가 통째로 바뀌는, 이 생생한 ‘나비효과’의 체험을 그는 사뭇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하긴 부처님도 새벽 4시에 일어났다지 않던가. 새벽 5시까지 선정(禪定)에 들어 열반의 지복을 누리고, 다시 한 시간 대자비의 깊은 선정에 들어 세상 모든 유정(有情)들에게 자비를 보냈다지 않던가. 오랜만에 만난 이 새누리당 중진의원의 동안(童顔)은 더 맑아져 있었다. 꾸준히 해온 운동에다 새벽 기상이 정치(定置)한 일상이 안겨준 선물인 듯싶었다. 형식은 분명 내용을 지배하는 모양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아저씨 폭주족/진경호 논설위원

    슈퍼모델을 부인으로 둔 부자 우디(존 트래볼타 분)와 치과의사인 더그, 아내의 바가지에 눌려 사는 바비, 그리고 여자친구 하나 없는 소심남 더들리…. 이들 중년 4명의 유일한 낙은 주말에 오토바이를 타고 근교로 나갔다 오는 일이다. 일상으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가 바이크였던 것이다. 콜레스테롤 때문에 맘껏 먹지 못하는 더그와 하루아침에 파산을 맞은 우디는 어느 날 바비, 더들리와 의기투합해 근교가 아닌 훨씬 먼 곳, 뉴멕시코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아내도, 자식도, 일상도 훌훌 벗어던지고 거침없이 도로를 질주하던 이들은 그러나 얼마 못 가 작은 마을의 술집에서 진짜 폭주족 갱단과 마주치게 되고, 이들과 얽히면서 뒤죽박죽의 수렁 속으로 빠져든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유행어를 떠올리게 하는 코믹 로드무비 ‘와일드 호그스’(Wild Hogs, 2007년)의 줄거리다. 의사, 건축가,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 잘나가는 30~40대 전문직 폭주족 9명이 최근 경찰에 입건됐다. 인터넷 동호회원인 이들은 ‘슈퍼 바이크’로 불리는 이탈리아제 듀카티를 몰고 나와 서울 사당동에서 경기도 이천까지 내달리며 지그재그 운전, 대열 잇기, 횡렬 주행, 진로 방해 등 별별 ‘쇼’를 펼쳐 보였다고 한다. 이들로 인해 곁을 지나던 일반 운전자들이 얼마나 가슴을 졸였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10대 폭주족들이 자취를 감춰 가던 터에 아저씨 폭주족이라니, 음원 시장 등 사회 각 부문별로 도드라지고 있는 중년의 반란이 이제 폭주족으로까지 이어졌나 싶어 실소가 나온다. 수렵시대 수컷의 질주 본능이 현대 남성들의 유전자에도 내장돼 있다고 보면 스피드를 즐기는 남성들을 이해 못 할 바 아니다. ‘폭풍의 계절’에 갇힌 사춘기 10대 폭주족들의 반항심과 탈출욕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하지만 이들 중년 폭주족 9명의 심리는 수컷의 질주욕이나, 청소년의 반항, 그리고 보통의 중년 찌질남들의 탈출욕과는 좀 다른 듯하다. 과시욕, 그리고 지배욕이 흠씬 묻어난다. 하긴 그조차 수컷의 본능이라면 본능이겠으나. 뉴멕시코를 향해 바이크에 올라탄 우디 등 4명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휴대전화 던져버리기였다. 젊은 체 게바라는 고물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홀로 대륙을 누빈 끝에 혁명의 역사를 썼다. 나머지 8명이 없었다면 이천은커녕 동네 근처나 맴돌고 말았을, 찌질한 중년 폭주족 9명에게 자유를 향한 갈망이나 역사와 마주 서는 담대함은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1대 가격이 2400만원이라던가. 듀카티가 아깝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이별/진경호 논설위원

    아내가 차를 떠나 보냈다. 초등학교 입학식에 태우고 간 큰아이가 어엿한 대학생이 됐으니 10년 넘게 아내와 함께했던 녀석이다. 그 차로 아내는 회사를 다녔고, 두 아이를 학교로, 학원으로 실어날랐다. 집이 서너 번 바뀌는 동안에도 녀석은 아내 곁을 떠날 줄 몰랐다. 아내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오랜 세월을 달리면서도 큰 사고 한번 내지 않았던 ‘충신’이기도 했다. 몸집이 커진 아이들의 성화와 점점 기름을 더 먹는 것 같다는 아내의 푸념이 부쩍 잦아졌다 싶던 어느날 아내는 돌연 녀석과의 결별을 선언했고, 둘의 이별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지인의 손에 끌려 녀석이 집을 떠나던 날, 아내는 훌쩍였다. “이상하지. 꼭 무슨 사람 떠나보내는 것 같아….” 한데 이런 아내의 감상도 잠시, 녀석은 그냥 떠나지 않았다. 지인에게 넘기는 과정에서 그동안 깜빡했던 속도위반, 주차위반 과태료가 무더기로 나왔다. “아니, 이놈은 무슨 딱지를 이렇게도 많이 뗐대?” 아내는 남 얘기하듯 목청을 높였다. 아내의 ‘일방적 퇴출’을 녀석은 그렇게 복수했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윤창중’에 담긴 아비튀스(Habitus)/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윤창중’에 담긴 아비튀스(Habitus)/진경호 논설위원

    젊고 잘생긴 존 F 케네디는 섹스 중독자였다. 윌리엄 라이딩스 2세 등은 저서 ‘위대한 대통령, 끔찍한 대통령’을 통해 케네디가 아름다운 아내 재클린을 곁에 두고도 수백명의 여성들과 관계를 가졌다고 썼다. 심지어 마피아의 여자를 건드렸다가 대통령 신분에 갱단의 협박을 받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후임 린든 존슨 대통령도 만만치 않았던 듯하다. 백악관 직원들 가운데서 ‘섹스 파트너’를 간택했고, 이들 중 5명이 그의 ‘애첩’으로 지냈다고 한다. 빌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은 이런 백악관의 ‘전통과 문화’를 뿌리로 두고 있다. ‘여자들과 시간을 보내다 남는 시간에 총리를 한다’는 이탈리아 전 총리 베를루스코니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최고권력의 성추문은 미국을 넘어 서구 전반의 전통인가도 싶다. 국가 정상의 성추문이 차고 넘치는 나라들이고, 이로 인해 물러난 정상이 없는 나라들이다. 정상외교 현장에서의 성추문이라는 희대의 사건을 일으킨 청와대 전 대변인 윤창중이 ‘문화적 차이’를 언급했다. “문화적 차이로 인해 그 가이드에게 제가 상처를 입혔다면 거듭 이해해 달라”고 했다. TV로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의 이 한마디로 한국은 엉덩이를 콱 움켜쥐는 걸 허리를 턱 친다고 표현하는 나라, 젊은 여성을 위로하고 격려할 때는 엉덩이를 콱 움켜쥐는 나라가 됐다. 자기가 무슨 옷을 걸치고 있었는지조차 분간 못하는 인사의 불민한 언사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 적어도 성추문 대통령을 단 한명도 갖고 있지 않은 나라이건만, 대체 미국과 어떤 문화적 차이를 안고 있다고 온 국민의 양식까지 팔아넘겨 가며 제 살 구멍을 찾는지 며칠 밤낮을 보내고도 분이 삭질 않는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없다. 고급문화를 누릴 만한 환경 속에서 자랐기에 클래식을 즐기게 됐을 뿐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갈파한 ‘아비튀스’(Habitus)의 개념이다. 사회 구조와 그 안에서의 계급적 지위에 의해 개인의 문화적 취향과 소비 성향 등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 엇비슷한 사회적 지위나 교육 환경, 재산 등을 지닌 사람들이 공유하게 되는 집합적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이 바로 아비튀스다. 윤창중은 제 부끄러움을 덮으려 ‘성 문화의 차이’를 들먹였겠으나, 부르디외가 윤창중을 봤다면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아비튀스, 경조부박한 계급 문화의 차이를 찾아냈을 것이다. 비행기 여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라면상무’, 아버지뻘 대리점주에게 폭언을 일삼은 남양유업 영업대리, 주차 시비 끝에 호텔 지배인을 폭행한 제과업체 회장에게서 묻어나는 우리 사회의 비루한 갑을(甲乙) 문화의 단면을, 한 줌의 권력에 취해 제 본분을 망각한 윤창중에게서도 목도했을 것이다. 거친 표현으로 남을 공격하던 ‘논객’(이라고 동의하진 않지만)에게 어느날 돌연 날아든 보은(報恩)의 완장을 주체하지 못한, 아비튀스의 혼란에 빠진 윤창중을 봤을 듯싶다. 윤창중의 혼란은 그의 행동 궤적 전반에서 드러난다. 많은 증언에 따르면 청와대에서 그는 다른 ‘완장’들과 섞이지 못했다. 기자들로부터 외면당했고,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날아간 워싱턴에서도 겉돌았다. 힘은 뻗치는데 이를 알아주는 사람도, 받아주는 사람도 없으니 전화 한 통으로 움직일 수 있는 나이 어린 여성인턴을 불러 호텔 술집을 찾는 초라한 대변인을 택했다. 부산스럽다. 윤창중의 든든한 백이 돼 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비난이 그칠 줄 모른다. 지휘책임을 가린다, 공직기강을 다잡는다 하며 출구 찾기에도 여념이 없다. 필요한 일들이고, 거쳐야 할 고통이다. 그러나 한두 명 내치고, 정상외교 매뉴얼을 새로 갖춘들 제2, 제3의 윤창중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어 보인다. 비루한 갑(甲)의 횡포에 허덕이는 오늘의 빈약한 사회적 자본을 그냥 놔두고는 말이다. 윤창중은 문화적 차이를 제대로 보여줬다. jade@seoul.co.kr
  • [길섶에서] 바다이슬/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을 빙 두른 간이장터에서 녀석들을 만났다. 이제 막 꺾꽂이를 끝냈을, 주먹만 한 크기의 녀석들은 수백개의 화분에 담겨 다닥다닥 붙어 앉은 채 서울로 처음 소풍 온 산골 아이들처럼 살랑바람에 마냥 조잘대고 있었다. 그 앙증맞은 푸르름에 마음을 빼앗겨 지갑을 열었고, 세 녀석(화분)을 들고 왔다. 사무실은 그 어떤 방향제도 따르지 못할 자연의 향으로 금세 덮였다. 학명 ‘Rosmarinus’, 라틴어 ‘Ros’(이슬)와 ‘Marinus’(바다)를 합쳐 ‘바다 이슬’이란 멋진 이름을 갖고 있는 녀석들, 로즈메리. 한데 이놈들, 키우는 게 만만치가 않다. 매일 일광욕 시켜주고, 바람도 쐬어주고, 말도 건네야 한단다. 하루만 딴짓 해도 결별, 죽는단다. 볕을 좇아 복도 끝 창가로 옮겨 나르는 일과가 생겼다. “아니, 머리를 맑게 해주고, 살균·소독 작용도 하는데, 그 정도도 못해 줘요?” 글을 쓰는 동안 노트북을 훔쳐보던 녀석들이 한마디 하는 듯하다. 향기 나는 중년에 이르지 못한 처지 아니던가. 녀석들의 향기라도 탐할밖에…. ‘아냐 그럴리가~, 내 어찌 그 정도도 못하겠니?’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비즈니스석 처세학/진경호 논설위원

    중진급 정치인 L씨는 오랜 공직 생활을 하면서 종종 곤혹스러운 상황 하나에 부닥쳤다고 한다. 국제선 비행기 비즈니스석에서의 풍경이다. 해외여행이 잦았던 그는 늘상은 아니지만 자주 기장과 승무원들로부터 단체인사를 받곤 했던 모양. “기장 아무갭니다. ○○까지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한데 정작 L씨는 ‘편안히 모시겠다’는 인사를 받는 순간부터 불편해진다고 했다. 비즈니스석의 기류가 곧바로 썰렁해지더라는 것. 나름대로 각계에서 힘깨나 쓸 법한 주위 승객들의 눈초리가 금세 돌변하더라는 것이다. ‘위기’를 넘기기 위해 그가 터득한 요령은 두 배로 인사하기다. 기내 인사를 받자마자 주위 승객들에게 ‘아무개인데 같이 가게 돼서 반갑다’며 허리 숙여 인사해야 그나마 찬 공기가 풀리더라고 했다. 대기업 임원이 승무원에게 ‘행패’를 부린 끝에 회사를 잃고, 인터넷에서 ‘라면상무’라고 놀림당하는 걸 보면 비즈니스석은 지뢰밭이 분명하지 싶다. 두 배 이상 삯을 주고 거기에 앉을 형편이 못 되는 처지로서 걱정할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길섶에서] 대문사진 심리학/진경호 논설위원

    카카오톡과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대문사진’은 대개 다섯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자기 얼굴 사진과 가족 사진, 풍경이나 사물 사진, 그리고 연예인 사진을 내건 경우와 아예 아무런 사진도 없는 경우다. 미술심리치료를 업으로 둔 지인이 대문사진에 담긴 심리를 들려줬다. 자신의 얼굴을 내건 사람은 자의식과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라고 했다. 변화하는 자신을 보며 만족해하고, 남들이 이를 알아주길 바란다고 한다. 아이들 사진을 내건 경우는 누구나 짐작하듯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케이스. 그러나 사진 속 웃음이 꼭 현실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토를 달았다. 풍경이나 사물에는 자신의 상황이 암시돼 있다. 타인들과 거리를 두면서 넌지시 자기 상황을 알리는 셈이다. 연예인을 내건 사람은 심리적 사춘기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아예 사진을 내걸지 않는 경우는 자기 보호의 심리가 유독 강한 케이스. 지인은 나루터에 고즈넉이 앉아 있는 자신을 내걸었다.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람을 건네주는 뱃사공이 아닐까 싶다”면서….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종군기자들은 춤만 추고 갔다/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종군기자들은 춤만 추고 갔다/진경호 논설위원

    싸이가 신곡 ‘젠틀맨’을 내놓은 지난 13일 밤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엔 그의 열혈팬들만 있었던 게 아니다. ‘전쟁이 임박한 한반도’를 취재하라는 지시에 따라 한국에 급파된 외신기자들이 여럿 있었다. CNN과 ABC, 폭스뉴스 등 미국 방송들은 물론 영국의 뉴스전문채널 ITN, 중동의 알자지라 방송에서부터 저 멀리 스웨덴의 기자까지 죄다 몰려 나왔다. 문 닫힌 파주 남북출입사무소도 찍고, 비무장지대(DMZ) 철책 너머도 찍고, 광화문에서 시민 인터뷰도 했건만 전쟁의 낌새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던 판에 저마다 본사로부터 ‘기왕 갔으니 싸이 공연을 취재하라’는 황당(?)한 지시를 받아들고 찾은 기자들이다. 어색함도 잠시, 이들은 곧바로 뜨거운 현장의 열기에 녹아들었다고 한 외신기자는 전했다. 몇몇은 아예 웃통을 벗어젖히고 시건방춤을 따라 추며 환호했다고 한다. 북 미사일도, 김정은도, 자신이 왜 한국에 왔는지도 그 순간엔 다 잊었을 테고, 종군기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비장감을 안고 왔을 이들은 결국 그날 밤 이런 기사를 써 보냈다. “세계의 시선이 김정은의 평양이 아니라 싸이의 서울에 몰리고 있다.”(인디펜던트) “김정은이 싸이를 질투할 것 같다.”(CNN) 싸이 공연의 타이틀이 ‘해프닝’이었다던가. 아마도 이들에겐 그날 자신들이 목도한 한반도가 통째로 ‘해프닝’이었을 것이다. ‘전쟁 개시자’라는 미 NBC 전쟁 전문기자 리처드 엥겔까지 날아든 마당에 수만명이 싸이 춤에 맞춰 ‘알랑가 몰라, 알랑가 몰라~’ 흥얼대다니, 한국인들이야말로 알 길 없는 족속이었을 듯싶다. 배 좀 나오고 눈 좀 째졌다고 싸이와 김정은을 구분 못하고, 그 연장선에서 영국 가디언이 서슴없이 ‘싸이와 김정은의 공통점’을 따져보고, 김정은의 말춤 패러디를 수백 가지 쏟아내는 한반도 밖의 눈으로, 60년의 분단사를 헤쳐오며 쌓은 한국인들의 ‘평정심’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눈을 빌리지 않더라도 정녕 한국은 달라졌다. 1983년 이웅평 대위가 미그기를 몰고 귀순했을 때, 그 11년 뒤 1차 북핵 위기가 닥치고 김일성이 죽었을 때, 온 나라는 라면을 사재느라 정신을 못 차렸다. 그 뒤로도 라면은 몇 차례 더 동이 났다. 그러나 북이 3차 핵실험 이후 연일 ‘말폭탄’을 터뜨리며 협박해 온 지난 두 달 동안, 우린 라면도 생수도 쟁여 놓지 않았다. 계속된 자극에 순치됐을 수도 있다. 총체적 국력차에 따른 자신감, 군과 정부에 대한 믿음도 있을 듯하다. 먹고사느라 겨를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바탕은 하나일 것이다. 이젠 고등학생만 돼도 북의 행태를 알 만큼 아는, 한층 성숙해진 우리의 대북 인식이다. 안보 불감증이 도를 넘었다고 개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북의 허튼 위협에 우리가 흔들렸다면, 결과는 대책 없는 양보나 물리적 충돌로 이어졌을 것이다. ‘코리아 리스크’는 현실이 되고, 금융시장을 필두로 경제는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김정은이 바라던 상황으로 내달았을 것이다. 우리도 모르게 세계 각지의 전쟁기자들이 몰려들었다 떠난, 그 위중한 일주일을 보내고 남북 간에 ‘대화’가 오가기 시작했다. 머지않아 미국이 김정일의 숨은 돈을 찾아내 묶으면 북이 펄쩍 뛰며 다시 반발하겠지만 일촉즉발의 고비는 넘기는 듯하다. 의연한 자세로 한국이 위기를 헤쳐가고 있는 것이다. 핵과 미사일 카드를 그렇게 흔들었건만 눈길을 받기는커녕 한반도의 2대 광대로 꼽히다니, ‘최고 존엄’의 심사가 꽤 틀어졌을 법도 하지만 어떤가. 선대와 달리 그래도 김정은 제1국방위원장은 젊은 피 아닌가. 걸맞게 뭔가 좀 달라야 하지 않겠나. 라이벌 싸이가 주먹이 아니라 우스꽝스러운 춤과 노래 하나로 전 세계를 흔들고 있는 걸 지금 보고 있지 않나. 흘러간 미국의 농구선수를 부를 게 아니라 깔끔하게 “싸이씨, 평양에 한번 오라”고 하는 건 어떤가. 세상은 그렇게 뒤집는 것 아닌가. jade@seoul.co.kr
  • [씨줄날줄] 투견(鬪犬)/진경호 논설위원

    쭈글쭈글한 큰 얼굴에 아래 송곳니는 입 밖으로 턱 삐져나오고, 다리는 있는 듯 없는 듯 작달막한, 그래서 못생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개가 영국을 원산지로 둔 불독(bulldog)이다. 한데 지금은 한낱 애완견으로 전락(?)한 이 불독은 ‘황소’(bull)와 ‘개’(dog)를 합쳐놓은 이름이 말해주듯 한때 황소와 맞서 싸웠던 ‘왕년(往年)의 추억’을 지니고 있다. 중세 유럽 때 사람들이 황소와 개를 싸움 붙이고 황소에 맞서 개가 얼마나 오래 싸우는지를 놓고 돈을 걸었는데, 이 싸움판에 끌려나간 개가 불독이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불독의 습성은 이 싸움판에서 생겼다고 한다. 물었다가 자칫 놓치면 황소 뿔에 받히거나 밟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절박감이 낳은 슬픈 생존 본능인 셈이다. 황소와 맞서 싸우던 대표적인 또 하나의 개는 미국의 핏불테리어(pit bull terrier)다. 말 그대로 ‘황소를 물어뜯어 구멍을 내는 개’다. 불독과 테리어를 교배해 만든 종으로 불테리어, 스태퍼드셔테리어, 마스티프, 불리구타, 코카시안 오브차카 등과 함께 서양의 대표적 투견으로 사랑(?)받고 희생돼 왔다. 고대부터 활약했을 이 서양의 투견들은 1835년 영국의 동물보호법 제정 이후 대부분 새로운 운명을 맞는다. 투견이 불법화되면서 ‘용도폐기’될 위기에 놓였으나 숱한 교배를 통해 몸집을 줄여 애완견으로 살아남거나, 사냥개와 목축견으로 전업(?)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과 달리 지금도 상대를 물어뜯고 싸워 이겨야만 살아남는 운명을 진 투견도 있다. 일본의 도사견이다. 12세기 막부(幕府)체제부터 투견의 전통을 이어온 일본은 지금도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투견을 합법화하고 있는 나라다. 마스티프를 개종해 만든 도사견은 물어뜯는 힘(치악력)이 235㎏에 이를 정도로 강해 현존하는 최고의 투견으로 꼽힌다. 1970년대 서울 삼청공원 등에서 버젓이 벌어진 투견판을 도사견이 휩쓸었던 우리의 투견사만 봐도 도사견의 사나움을 알 법하다. 경찰이 투견도박사이트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일본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투견을 매일 5~6개의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고, 여기에 네티즌들이 베팅하는 방식으로 도박이 이뤄졌다고 한다. 1만 2000년 전, 인간이 던져준 먹이를 받아먹으며 주저앉은 늑대로부터 시작된 개에게 있어서 여전히 가장 큰 재앙은 아무래도 인간이지 싶다. 제 욕망에 따라 주머니 속에 들어갈 치와와를 만들고, 성대를 잘라내고, 늑대를 죽이는 도사를 만든 인간, 개들이 흘리는 피를 보면서 돈을 걸고 따고 잃는 우리 말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이상한 나라, 대한민국/진경호 논설위원

    이 나라가 ‘이상한 나라’임을 입증하는 증언들이 인터넷을 달군 적이 있다. 대개 이런 것들이다. ‘억척스러운 유대인들을 하루아침에 게으름뱅이로 전락시킨 엄청난 생활력의 종족’ ‘월드컵에서 1승도 못하다 갑자기 4강까지 후딱 해치우곤 그것도 다 운이라며 시큰둥해하는 속 넓은 종족’ ‘해마다 태풍과 싸우면서도 다 잊어버리고 다음 해에도 또 피해를 입는, 대자연과 맞짱 뜨는 종족’…. ‘한국인만 모르는 것’도 있다. 한국이 얼마나 잘사는지, 한국이 얼마나 위험한 분단국인지, 중국과 일본이 얼마나 두려운 나라인지 한국인만 모른다는 것이다. 우리만 모르는 이상한 한국은 얼마 전 또 한 번 면모를 드러냈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자 인터넷엔 ‘그럼 어떤 주식을 사야 하느냐’는 질문이 후드득 쏟아졌다. 보통 강심장들이 아니다. 이런 경이로운 평정심(?)은 60년 분단체제에서 쌓은 내성(耐性)과 더불어 한 가지 믿음에서 잉태됐을 것이다. 설령 북한이 무모한 짓을 벌이더라도 우리 군이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라는 믿음, 정부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한데 이런 믿음이 얼마나 근거 박약의 것인지를 보여주는 일이 지금 펼쳐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지 오늘로 엿새가 됐지만 정부는 아직도 유고 상태다. 국무총리만 있고 17개 부처 장관은 없다.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열흘 넘게 이어질 판이다. 6·25 이후 최대의 안보위기라는데, 정작 안보 트로이카라 할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국방장관·국정원장은 보이질 않는다. 이상한 나라의 정부로 손색이 없다. 북한이 허튼짓을 하지 않고, 다른 돌발상황도 일어나지 않는 요행에 지금 5000만 국민이 의지하는 정부가 기대어 있다. 앞으로 5년 갈 정부인데 그깟 20일 남짓 두 정부든, 무정부든 그게 뭐 그리 대수냐는 통 큰 국민도 적지 않겠다 싶다. 하나 정말 그럴까. 위기 상황에 직면했을 때 벌어질 지휘체계의 혼란은 그냥 어찌어찌 될 것 같은 국운에 맡긴다 치자. 향후 5년을 이어갈 정부의 정책 근간은 어쩔 셈인가. 저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5월까지 펼쳐질 정상외교의 전략은 어떻게 짜고, 박근혜 정부와 미국·중국·일본과의 관계 설정은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130조원에 이르는 추가 복지 재원은 어디서 뽑아낼 것인가. 당장 정부 역량을 총결집해도 시간이 모자랄 사안들이다. 어쩔 셈인가. 잠깐 미국을 들여다보자. 정권 인수인계의 산실인 대통령직인수위는 당선 직후 꾸려진다. 이를 위해 후보들은 선거운동 조직과 별개로 정부인수 사전준비 조직을 대선 3~6개월 전부터 가동해 당선에 대비한다. 레이건은 무려 8개월 전에 꾸렸다. 정권 인수기간이 70여일로 우리보다 일주일 남짓 길지만 그런 사전 준비 덕에 인수의 속도는 훨씬 빠르고 체계적이다. 당선 직후 인수위가 정책을 설계하는 동안 당선인은 백악관 비서실장을 임명하고 정부 각료 인선에 나선다. 각 후보에 대한 사전검증엔 백악관과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공직자윤리위 등이 총동원된다. 현미경 검증을 거친 터라 정작 의회 인사청문에 오를 때면 털어서 먼지 날 구석이 그다지 남질 않는다. 당선 보름이 넘어서야 인수위를 꾸리고, 나홀로 인선 끝에 다시 보름이 더 지나서야 총리 후보를 지명하고, 두 달이 다 되어서야 장관 후보를 지명한 박근혜 인수위와는 크게 대비된다. 계주의 승패는 바통을 넘겨받을 때 결정된다. 1~2시간마다 교대하는 전방의 초병도 10분 전엔 정위치한다. 박근혜 정부의 개문발차(開門發車)는 일차적으로 ‘준비된 대통령’의 준비 안 된 인사와 정부조직개편을 놓고 드잡이에 여념이 없는 국회 탓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정부 이양에 대한 우리의 법과 제도, 정치문화가 아직도 허점투성이인 까닭이다. 구멍 뚫린 박근혜 정부 출범을 교훈 삼아 정부와 여야는 정부 이양과정 전반을 정비해야 한다. 5년 뒤에도 이상한 정부로 출발해선 정말 곤란하다. jade@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주례/진경호 논설위원

    지인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아차!’ 싶은 얘기를 들었다. 한 대학 선배 왈, “벌써 결혼식 주례석에 여섯 번 섰다”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에 걸맞은 인품도 갖췄고, 나이도 하늘의 뜻을 헤아릴 법한 터이니 주례 여섯 번이 어찌 무릎까지 칠 일인가 싶겠지만, 그는 ‘여성’이었다. 여성 주례! 주례 하면 으레 머리 벗겨진 남성이라는 통념의 포로가 된 나와 달리 선배는 이미 6년 전 마흔여덟의 나이에 또 다른 금녀의 벽을 깨고 나섰던 것이다. 아니, 선배를 주례석에 세우며 이 사회의 통념을 주저 없이 깨부순 6쌍의 젊은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인터넷을 뒤졌다. 내가 얼마나 시대에 뒤떨어진 인간인지, 내가 아는 것보다 세상이 얼마나 더 빨리 변화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주례를 섰다는 기사가 있고, 다른 몇몇 여성들 이름도 보였다. 그러나 흔치는 않았다. 혼례 사이트에도 여성 주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허물어지기 시작했으나 아직은 공고한 벽 하나를 찾았다. 우리가 또 넘어야 할 산이 앞에 있다. 설레는 일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기부의 진화/진경호 논설위원

    지구촌 70억 인구가 대·소변에 사용하는 물의 양은 얼마나 될까.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참고할 사례는 있다. 미국 환경보호국(EPA) 조사 결과 미국 전체 가정이 용변에 쓰고 버리는 물이 연간 1조 6000억ℓ로 파악됐다.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 마이애미 3개 도시의 1년치 물 소비량과 맞먹는다고 한다. 여기에 오물 정화 비용까지 따지면 실로 엄청난 돈이 미국인의 ‘배설비용’으로 줄줄 새고 있는 셈이다. ‘똥값’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선 똥이 돈이다. 성인 1명의 하루 배설량은 대략 1메가줄의 에너지를 지닌다. 1t짜리 승용차가 시속 160㎞로 달리다 벽에 부딪혔을 때의 에너지다. 열량으론 269㎉다. 200㎖짜리 우유 2팩을 웃돈다. 유기비료나 재처리 연료로 사용할 수 있지만 빈민국들에서처럼 아무렇게나 버려지면 온갖 질병의 온상이 된다. 쓰임에 따라 돈이 되기도, 돈이 들기도 한다. 2011년 빌 게이츠가 26억 달러를 쾌척한 ‘21세기형 화장실 프로젝트’는 이런 배설비용의 역설에서 출발했다. 변변한 하수구나 오물처리시설도 없는 가난한 나라의 가정에 빵 대신 대·소변 재처리가 가능한 변기를 보급하기로 한 것이다. 태양광 발전 등 첨단기술이 필요해 언뜻 무모해 보이지만 미래학자들은 실현 가능한 일로 본다. 이미 미국 내 8개 대학이 관련 연구에 나섰다. 기부가 진화하고 있다. 가진 자가 없는 자의 굶주림을 덜어주는 시혜적 자선은 옛일이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용, 돈에다 첨단기술과 전문인력을 함께 투입해 질병·재앙 그리고 사회 부조리 등 지구촌 인류를 위협하는 도전에 조직적으로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게이츠가 엊그제 18억 달러를 내놓은 소아마비 퇴치운동과 말라리아 백신 개발 운동도 이런 지속가능한 인류를 위한 투자들이다. 사회적 기업 지원에 나선 이베이 초대사장 제프 스콜, 개발도상국의 교육·의료서비스 혁신사업을 벌이고 있는 인포스페이스 설립자 나빈 자인 등 숱한 젊은 기업가들도 이미 이 대열에 서 있다. 수단의 이동통신업계 거물 모 이브라힘은 아프리카의 민주화를 위해 임기를 마치고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아프리카 지도자에게 500만 달러와 평생 1년에 20만 달러씩 지급하는 ‘아프리카 리더십상’을 내걸었다. 정보기술(IT) 혁명이 만들어낸 ‘테크노 기부’의 대표적 유형들이다. 광화문 ‘사랑의 온도계’가 100도를 훌쩍 넘어섰다. 한껏 박수를 보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IT기술의 첨병이라는 우리는 언제쯤 ‘테크노 기부’의 사례를 꼽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이름을 자랑스레 칼럼에 담을 수 있을까.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2월 25일 밤 놓아야 할 것들/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2월 25일 밤 놓아야 할 것들/진경호 논설위원

    그날 밤이 어떤지는 김대중 자서전에 나와 있다. “…청와대에 밤이 왔다. 나를 그토록 핍박했던 역대 집권자들이 머무르던 곳. 깊이 생각했다. 그들은 과연 여기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내는 방이 너무 넓어서 놀라는 눈치였다. 그것을 불편해하고 있었다. 70대의 우리 부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1998년 2월 25일, 정권교체의 새 역사를 쓴 날 15대 대통령 김대중은 청와대에서의 첫 밤을 그렇게 적었다. 멀리 박정희가 있었고, 전두환·노태우가 있었고, 바로 그제 자신의 영원한 맞수 김영삼이 밤새 뒤척였을 그 침실에서, 김대중은 헤쳐온 날들과 헤쳐갈 날들이 뒤엉킨 군무(群舞)에 그만 잠을 잃었다. 한 달 뒤면 ‘김대중을 그토록 핍박했던 집권자’의 딸이, 어린 시절 격동의 18년을 보냈고, 끝내 부모를 모두 빼앗아간 청와대에 들어선다. 아버지가 비운을 맞았던 만 61세의 나이로, 33년 4개월 전까지 아버지가 있었던 침소로 들어선다. 어떠할까. 질곡의 정치사와 개인사를 씨줄과 날줄로 엮어 품은 그가 2013년 2월 25일 밤 홀로 대면할 상념은 무엇일까. 누구에게 견줘야 어림할 수 있을까. ‘잘살아보세….’ 그 밤 박근혜를 짓누를 상념의 무게를 헤아릴 수는 없으나, 그 끝자락에 움켜쥘 단어는 아마도 이 유업(遺業)일 것이다. 제 식대로밖에 모르는 북한과, 결이 거친 대외경제와, 숨이 가쁜 민생과, 이젠 DNA로 유전되는 것만 같은 지역과 이념의 강파른 대치를 풀고, 묶고, 바로 세우겠노라 다짐하며 신발끈을 동여맬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김영삼은 ‘개핵’(개혁)을 외치며 내달렸고, ‘선상님’ 김대중은 만기친람(萬機親覽)이 뭔지를 몸소 내보였다. 노무현은 정체 모를 ‘그들’과 내내 싸웠고, 이명박은 전봇대 숫자까지 챙겼다.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 청와대의 봄은 다시 오지 않았다. 겨울이 끝나면 다시 가을, 겨울이 됐다. 자식 문제로, 측근 비리로, 실정으로 몇 번씩들 머리를 숙였다. 1년도 못 돼 노무현 비서실의 민정수석 문재인은 이빨이 10개나 빠졌고, 이명박 청와대의 ‘얼리버드’들은 새벽 5시면 집을 나서야 했지만, 청와대의 5년차는 늘 한숨으로 채워졌다. 독주(獨奏)의 끝은 항상 그랬다. ‘선거의 여왕’이 성공한 대통령을 보장하지 않는다. 아니, 성취는 그 자체로 독배(毒杯)다. 그 앞에 서면 누구든 작아지고 하명을 기다리며 시립(侍立)하게 만드는 박근혜이고 보면 전임 누구보다 많은 독배에 둘러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벌써 그런 징후들이 감지된다. 정부 조직개편안의 밀실 탄생이 그 증좌의 하나다. 잡음을 막겠다며 밀실을 택했고, 공론은 없이 통보만 있었다. ‘나를 따르라’ 식의 박정희형 리더십이 어른댄다. 윤창중 대변인을 낳은 ‘나홀로 인사’와, 완장을 찬 그가 ‘나만 기자다’라고 외치며 인수위와 기자실 사이의 쪽길을 홀로 내달리는 과유불급의 행태도 박근혜의 앞날을 걱정케 한다. 5·16 쿠데타 이후 우리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고, 결과가 과정을 지배하는 역사를 헤쳐왔다. “나처럼 불행한 군인은 다시 없어야 한다”고 박정희는 말했지만, 그가 이룬 고도성장은 목적과 결과가 수단과 과정을 지배하는 가치 왜곡을 초래했다. 갖은 양태의 선거 부정을 저지른 통합진보당의 이정희가 고개 빳빳이 들고 “박근혜 떨어뜨리려고 나왔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멀리 보면 이런 결과지상주의의 잔재다. 전도된 가치를 바로잡는 5년이 돼야 한다. 그 어떤 목적도 수단을 지배할 수 없다는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한다. 독선과 독주의 리더십으로 새드엔딩을 자초한 대한민국 권력의 불행한 역사를 끊는 5년이 돼야 한다. 남은 한 달 인수위 과정이 이를 준비할 마지막 기회다. 2월 25일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 반세기 이 나라에 환희와 눈물을 안겨준 박정희와 마주선다. 제의(祭儀)의 밤이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홀로 설 시간이다. 부친이 이루지 못한 화해와 포용의 새 날을 여는 아침을 맞기 바란다. jade@seoul.co.kr
  • [씨줄날줄] 잔도(棧道)/진경호 논설위원

    잔도(棧道)란 깎아지른 벼랑에 나무를 얼기설기 엮거나 바위를 깎아 만든 길을 뜻한다. 중국 황산을 3.2㎞에 걸쳐 둘러친 잔도는 만드는 데만 21년 걸렸다니, 그 옛날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낭떠러지에 매달려 잔도를 만들고 오가다 목숨을 잃었을지 짐작도 어렵다. 중국 전국시대, 기원전 3세기 후반 때 얘기다. 중원을 평정하고 초나라를 세운 항우가 유방을 지금의 쓰촨(四川)성 지역인 한중(漢中)을 다스릴 한왕(漢王)에 책봉했다. 말이 책봉이지 자신에게 맞서 천하의 패권을 넘보던 유방을 변방의 오지로 내쫓은 셈이다. 항우의 위세에 눌린 유방은 입도 뻥긋 못한 채 길을 떠났고, 도착해서는 책사 장량의 말에 따라 곧바로 자신이 지나온 잔도를 모두 불태워 없앴다. 중원으로 돌아갈 길을 끊어 달아나는 군사들의 퇴로를 막고, 자신이 더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님을 항우에게 내보인 것이다. 그렇게 항우를 안심시킨 유방은 훗날 대장군 한신의 계략에 따라 잔도를 다시 만드는 척하며 항우의 군사를 한쪽으로 몰아넣은 다음 멀리 돌아가는 옛길을 택해 군사를 일으키고 초·한 전쟁 4년의 서막을 열게 된다. 정비석이 소설로 재구성한 ‘초한지’에 나오는 이 잔도의 고사를 민주통합당 김영환 의원이 얼마 전 꺼냈다. 18대 대선 패배의 충격에 신음하던 며칠 전 ‘친노(親)의 잔도를 불태우라’는 장문의 격문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렸다. 중도 성향의 그는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를 졌다. 이제라도 친노의 잔도를 불태우라.”고 촉구했다. 5년 전 스스로를 ‘폐족’이라 했던 친노 세력이 다시 당을 장악하고 대선의 전면에 섰던 게 대선 패배의 핵심 요인 중 하나였다며, 친노 세력의 ‘유폐’를 요구했다. 돌이켜보면 지난 대선은 숱한 잔도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힌 전장이었다. 그 천길 벼랑에서 누구는 잔도를 끊었고, 누구는 지켰다. 박근혜는 비례대표 의원직을 던지며 정계 은퇴의 배수진을 쳤다. 잔도를 끊었다. 문재인은 주위의 애끓는 요구에도 지역구(부산 사상) 의원직을 끝내 고수했다. “돌아갈 다리를 불살랐다.”는 안철수도 잔도만큼은 놔뒀던 모양. 문재인 옆자리에 걸터앉는 둥 마는 둥 하다 미국으로 떠나 “정치는 계속하겠다고 했다.”는 말로 잔도의 존재를 분명히 했다. 이정희는 보수표를 있는 대로 끌어내고는 27억원을 챙겨 예정(?)해 놓은 잔도에 올랐다. 선거는 끝났고, 52대 48, 2030대 5060으로 나뉜 국민들만 남았다. 이들 사이에 잔도가 보이질 않는다. ‘대통합’의 함성만 아득할 뿐.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서울광장] 대동단결, 그 저주의 메타포/진경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대동단결, 그 저주의 메타포/진경호 논설위원

    18대 대선에선 의미 있는 진동(振動)이 하나 있다. 야권 후보 단일화라는 매머드 이벤트에 가린 탓에 별 이목을 끌진 못했으나 동교동과 상도동이 굴곡진 한국 정치사의 또 한 능선을 넘은 것이다. 한화갑, 한광옥, 김경재, 안동선. 1960~1970년대 ‘타도 박정희’를 외치며 김대중을 좇아 싸웠고 국민의 정부에서 영욕을 맛봤던 그들이 박정희의 딸 곁에 섰다. 한 손으론 군부독재, 또 다른 손으론 동교동과 맞서 싸웠던 김영삼의 수족 김덕룡은 김대중을 승계했다는 노무현의 비서실장 문재인에게로 갔다. 이젠 내리막 어느 중턱에서 낙조를 바라보며 쉴 법도 하건만, 대체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그들은 그렇게 또 비탈에 섰다. 역사의 화해라고도 하고, 늦깎이 철새들의 때 잊은 노욕이라고도 한다. 조건 없는 화해이길 바라지만 그렇지 않은들 숱한 정치놀음에 익숙해진 처지로 크게 마음 상할 일도 없다. 그들이 박근혜, 문재인에게 요구한 게 있는지, 약속을 받았다면 그게 뭔지, 다가올 시간이 말해줄 그 답을 지금 알 길도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동교동과 상도동의 크로스오버가 상징하는 화해와 연대의 메타포(은유·隱喩), 배척이다. 박정희와의 화해보다 노무현·친노에 대한 배격이고, 문재인과의 연대보다 박근혜·친박에 대한 거부다. 누가 좋아서가 아니라 누가 싫어서 그들은 힘겹게 걸음을 뗐다. 이번 대선에 담긴 부정과 배격의 진정한 메타포는 그러나 이들이 아니다. 대선정국 1년을 관통한 ‘안철수’다. 낡은 질서, 앙시앵레짐에 대한 거부, 기성 세대에 대한 젊은 세대의 배격이 ‘안철수 현상’을 낳았고, 집권세력에 대한 실권세력의 부정이 안철수를 키웠다. 그리고 갖은 수사로 띄웠지만 결국은 밟고 올라설 발판으로 상대를 삼으려 했을 뿐인 배타의 정치공학이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절름발이로 만들었다. 아마도 두 사람은 ‘강자와 연대하면 결국 이용만 당할 뿐’이라는 마키아벨리의 잠언을 몰랐던 듯하다. 문재인은 안철수를 몰랐고, 안철수는 문재인과 민주통합당은 물론 제 자신과 ‘안철수 현상’ 자체를 몰랐던 듯하다. 그리고 세상은, “영혼을 팔지 않았다.”고 했다가 불과 사흘 뒤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자처하고는 문재인 지원 행보에 나서고도 “문재인을 지지한다.”는 말을 더는 하지 않는, 형용모순의 안철수를 아주 몰랐던 듯하다. 누구는 절대 안 된다는 부정과 배격의 메타포에 가려, 누가 왜 돼야 하는지를 우리는 까맣게 잊었다. 박근혜는 절대 안 되기에 비(非)박근혜는 문재인-안철수의 플레이오프를 마다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돼도 ‘노무현과 그들’은 결코 안 되기에 정파와 지역을 뛰어넘는 월경과 전향을 주저하지 않았다. 민주화 25년에 유례가 없이 보수와 진보가 제각각 타도를 외치며 대동단결하는 사이, 18대 대선은 이제 정치에 관심 없거나 안철수에 실망한 약간의 소수를 빼고는 제3의 완충지대가 실종된 채 단 하나의 대치전선만 남게 됐다. “아무개를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는 군소후보의 핏빛 발언에 섬뜩한 분노를 느끼는 자와 대리만족의 쾌감을 느끼는 자만 존재하는 극한 대치의 진영 대결만이 남았다. 아마도 새 대통령은 득표율 50%를 넘길 것이다. 1987년 개헌 이후 5명의 대통령 누구도 밟아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출발선이다. 축복이다. 그러나 또한 저주다. 그저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을 뿐인 게 아니라 똘똘 뭉쳐 결사적으로 거부한 절반을 끌어안고 가야 한다. ‘100% 대한민국’이나 ‘새정치 국민연대’ 같은 레토릭만으론 헤쳐갈 수 없는 도전이다. 노태우는 12%, 김영삼은 6%, 김대중은 27%, 그리고 노무현은 24%의 지지율(한국갤럽 조사)로 임기를 끝냈다. 현재 지지율 23%인 현 대통령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을 듯하다. 일주일 뒤 축복과 저주를 한데 거머쥐고 탄생할 새 대통령에게 미리 묻는다. 당신은 이 전례 없는 대동단결에 담긴 분열을 이겨낼 수 있는가. 5년 뒤 퇴임 때 더 큰 박수를 받을 자신이 있는가. 그 무거운 통합의 책무를 아는가. jade@seoul.co.kr
  • [길섶에서] 어떤 대화/진경호 논설위원

    모든 운동이 그렇듯 웨이트 트레이닝에서도 자세가 중요하다. 바벨이든, 덤벨이든 올바른 자세로 사용해야 부상도 막고, 원하는 체형도 만든다. 자세를 바르게 하면 운동이고, 그렇지 못하면 노동이다. 한데 자세라고 해서 꼭 한 가지는 아니다. 까닭에 트레이너들의 도움말이 종종 상충되기도 한다. A는 팔꿈치를 허리에 붙이라 하고, B는 45도 벌리라는 식이다. 사실 다 이유가 있는 것이고 둘 다 정답이다. 이들의 친절에 보답하느라 A 앞에선 팔꿈치를 붙이고 B가 보이면 슬그머니 벌리면서 장단을 맞추지만 운동이 어디 한둘인가. 프레스에다 스쿼트, 친업 등등을 섞다 보면 헷갈린다. A 앞에서 벌리고 B 옆에서 붙이고…. 또 타박을 받는다. 이런저런 장단에 맞춰 그렇게 몇 년 끙끙거리다 보니 몸 곳곳에 그 흔적이 살짝 묻어나는 듯도 싶다. 말 안 듣기로는 부하직원이나 자식 못지않지만, 그래도 내 몸뚱이 아닌가.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말을 걸면, 못 이기는 척 대꾸를 한다. 움츠러드는 겨울로 간다. 내 몸과 대화할 시간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씨줄날줄] 데이지 걸/진경호 논설위원

    “원~, 투~, 스리~,…세븐~, 음…식스~” 네 살 쯤 돼 보이는 금발 주근깨 소녀가 햇살 가득한 들판에서 데이지 꽃잎을 따내며 숫자를 센다. 마지막 꽃잎을 떼며 ‘텐’을 세는 순간 어디선가 금속성 음성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카메라는 아이의 해맑은 검은 눈동자 속으로 한 걸음씩 들어선다. 텐, 나인, 에잇, 세븐’ 마지막 카운트 ‘제로~!’가 불리는 순간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화면은 핵폭탄이 만들어낸 거대한 구름으로 뒤덮인다. 미국 대선 역사에서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선거광고의 전설’로 남은 TV선거광고 ‘데이지 걸’의 줄거리다. 이 광고로 민주당 린든 존슨 대통령은 소련에 대한 핵 공격을 지지하던 배리 골드워터 공화당 후보를 잠재우고 1964년 재선에 성공했다. 이미지 정치를 선도하는 미국에선 이런 유의 선거광고 무용담이 차고 넘친다. 1987년 대선 때 조지 H W 부시 공화당 후보의 ‘윌리 호튼 광고’, 이른바 죄수 광고도 그 예다. 살인 혐의로 복역 중인 윌리 호튼이 주말 휴가를 얻어 교도소를 나와서는 백인 커플을 납치, 남성을 살해하고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을 다룬 이 광고로 부시 공화당 후보는 ‘죄수 주말휴가제’를 시행하고 있는 매사추세츠주 지사 마이클 듀카키스 민주당 후보를 공격했고, 결국 17% 포인트의 지지율 격차를 따라잡았다. 새누리당 박근혜·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60초 전쟁’이 시작됐다. 첫 TV광고에서 박 후보는 2006년 지방선거 때 일어난 면도칼 테러를, 문 후보는 자택에서 가족과 보내는 일상을 소재로 삼았다. 전쟁을 방불케 하는 미 대선 광고에 비해 너무나 ‘착한’ 광고들이다. 버락 오바마가 4억 달러, 밋 롬니가 5억 달러를 이번 대선 선거광고에 쏟아부은 미국과 비용 100억원, 횟수 30회로 엄격히 제한돼 있는 우리의 선거광고 위력이 같을 수는 없다. 다만 미국은 선거광고를 직접 유권자들에게 들이대는 반면 우리는 선거광고를 뉴스화해 인터넷으로 퍼뜨리고, 이를 통해 다수 유권자들을 파고드는 방식을 쓴다는 점에서 그 간극은 비용차보다는 훨씬 작을 듯하다. 어차피 유권자란 복잡한 현상을 어떻게든 간단하게 정리하는 인지 균형의 심리기제를 타고난 존재다. 이리저리 재다가도 결국 ‘노무현의 눈물’, ‘이명박의 국밥’ 하나로 고민을 끝내는 존재이기도 하다. ‘감성적 결단’이 1%의 지지율 차이를 만들어 낸다면 박빙의 선거는 판이 바뀐다. 좋은 광고가 좋은 대통령을 만드는 건 아니다. 미 대선사가 말해준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