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주현진
    2025-08-24
    검색기록 지우기
  • 손성진
    2025-08-2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776
  • [바이오산업 현재와 미래] “BT발전방향 정부가 선도해야”

    “생명공학 분야에 대한 시각은 한껏 새로워졌지만 아직도 이 업종을 발전시키기 위한 제반 준비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국내 최초의 생명공학(BT) 코스닥 상장 벤처기업인 마크로젠 박현석(44) 사장의 지적이다.●BT전문분석가 많아야 투자 늘어 이 회사는 신규 물질 생산, 신약 개발, 생물체간 비교 분석 등에 이용할 수 있도록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한편 유전자 이상을 진단할 수 있는 DNA칩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올해 매출 100억원 돌파를 목표로 삼을 만큼 잘나가는 국내 대표 바이오 벤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생명공학 발전을 위해선 아직도 개선되어야 할 기본 문제들이 많다고 말한다. 그는 “연구와 개발이 주축인 생명공학 분야에 사람들이 선뜻 투자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발표된 사업에 대해 정확하게 옥석을 가려줄 수 있는 전문 애널리스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장기를 새로 만들어 교체하고, 광우병에 걸리지 않는 소를 만드는 등 꿈같은 이야기를 실현시키는 분야가 생명공학인 만큼 연구가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려면 투자자들을 모을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필요하다.그러나 아직 국내에는 생명공학 분야와 관련된 전문 애널리스트들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생명공학 관련 전문 애널리스트들이 대거 양산되기 위해서는 국내 생명공학에 대한 발전 방향을 정부가 지정해 이끌어 가야 한다고 강조한다.‘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사용해야 생명공학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연구·사업모델 검증시스템 필요 예컨대 2000년대 들어 생명공학 분야의 양대 화두가 게놈과 복제라고 한다면 이같은 특정 분야를 발전 부문으로 지정, 집중적인 연구·개발이 이뤄지도록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인간 생명 연장에 대한 혁명을 실현시킬 수 있는 생명공학 분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쏟아지는 연구와 사업 모델에 대한 검증을 할 수 있는 전문 시스템부터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면서 “이같은 요건들이 충족될 때 비로소 생명공학이 발전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투자가 많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롯데그룹(1)-신격호 회장家

    신격호 롯데 회장은 빚을 몸속의 열에 비유하곤 한다. “몸에 열이 오르면 병이 나고 심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과다한 차입금은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잘하지도 못하는 업종에 빚을 내 사업을 벌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죄를 짓는 일이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과다한 차입경영이 논란이 되고 있는 요즘, 신 회장의 말은 울림이 크다. 일각에서는 “껌 팔아 부자됐다.”며 롯데의 국가경제 기여도를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기여도가 높다는 삼성·현대·LG 등이 저마다 골칫덩이 자식 한두 개 때문에 국가경제에 고통을 줄 때도 롯데는 어느 계열사 하나 그런 곳이 없었다.“실패하더라도 빚을 돌려줄 수 있는 범위에서만 투자한다.”는 신 회장의 무차입 경영 덕분이다. 롯데그룹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말 현재 70.3%. 삼성(50.0%) 다음으로 재무구조가 튼실하다. 단돈 83엔을 들고 일본땅에 건너가 ‘조센징 장사꾼’이라는 멸시를 받아가며 부(富)를 일군 신 회장. 그렇게해서 번 돈으로 고국에서 다시 기업을 일으킨 그는 한·일 양국에 사업체를 갖고 있지만 지금껏 과실송금을 한번도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번 돈은 고스란히 한국에 재투자하고 있다. 고(故) 정주영 현대 창업주가 중후장대 기간산업을,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경박단소 첨단산업을 일으켰다면, 신 회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서비스산업을 개척한 선구자다. 몇 안되는 생존 창업주인 그는 여든을 훌쩍 넘긴 지금에도 여전히 서울과 도쿄를 오가며 ‘셔틀경영’을 하고 있다. ●또다른 이름 시게미쓰상 그는 홀수달에는 신격호, 짝수달에는 시게미쓰 다케오(重光武雄)가 된다. 홀수달에는 한국에서, 짝수달에는 일본에서 일한다. 그의 셔틀경영이 언제쯤 시작됐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주위에서는 모국 투자가 시작된 1960년대 말부터라고 짐작한다. 벌써 30년째다. 월말이 되면 수행원도 없이 혼자 공항에 나가 훌쩍 비행기를 탄다. 생활철학인 거화취실(去華就實·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추구)이 엿보이는 단면이다. 한국에 머무를 때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을 쓴다. 집무실 겸 숙소다. 외출은 거의 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바로 옆의 롯데백화점 매장을 둘러보는 정도다. 올빼미족에게 반가운 얘기 한가지. 신 회장은 창업주 총수로는 드물게 ‘새벽형 인간’이 아니다. 오전 8시쯤 일어나 9시에 호텔방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임원들은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말수가 적다. 칭찬에도 인색하다.“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이 지론”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완벽주의자다. 타고난 내성적 성격에 오랜 일본생활까지 겹쳐 웬만해서는 ‘혼네’(속내)를 내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때로 냉정하다는 얘기도 듣는다. 둘째아들인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결단코 자상한 분은 아니다.”라고 했을 정도다. 언론에도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단돈 83엔 들고 일본으로 신 회장은 1922년-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랐다-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나와 경남도립 종축장에 기수보로 취직했지만 “박봉의 삶이 싫어” 1941년 일본행 관부연락선을 탔다. 이 때가 열아홉살.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 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돈이 모이면 헌책방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작가 지망생의 꿈은 오래 가지 못했다. 문학으로는 먹고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야 했다. 와세다고등공업학교(현 와세다대 이학부) 화학과에 입학했다. 일본 패전의 기색이 짙어가던 1944년 어느날, 조선인 청년의 성실성을 평소 눈여겨보던 한 일본인 노인이 “커팅오일(기계를 갈고 자르는 선반용 기름) 사업을 해보라.”며 선뜻 6만엔을 내놓았다. 그러나 첫 사업체는 공습을 맞아 완전히 불타버렸다.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친구들은 “귀국선을 타자.”고 종용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고는 살 수 없는 게 그였다. 빚을 갚으려면 돈을 벌어야 했다.1946년 5월 도쿄 스기나미구(區)의 낡은 창고에 가마솥을 내걸었다. 그럴 듯한 간판(히카리특수화학연구소)도 달았다. 커팅오일을 응용해 만든 비누와 크림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1년반만에 노인에게 진 빚을 모두 갚았다. 내친 김에 비누를 만들던 가마솥과 국수를 뽑아내던 기계로 껌을 만들었다. 또다시 대박. 신주쿠 허허벌판에 종업원 10명의 주식회사 롯데가 탄생했다. 껌회사에 소설 여주인공(‘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샬로테) 이름을 붙인 발상이 생뚱맞아 보이지만, 못다한 문학청년의 꿈은 그렇게 해서 다소 풀렸다.1948년 6월28일의 일이다. 신 회장은 훗날 “롯데라는 이름은 내 일생일대의 최대수확이자 최고의 선택”이라며 흡족해했다. 그가 1967년 한국에 롯데제과를 설립했을 때, 일각에서는 “고국에 대한 첫 투자가 겨우 소비재 사업이냐.”며 비판했다. 신 회장은 이렇게 항변한다.“한·일 수교로 모국 투자길이 열리자 당시 정부는 내게 종합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했다. 그래서 후지제철소(현 신일본제철)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까지 만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정부가 갑자기 태도를 바꿔 직접 제철소(포항제철)를 짓겠다고 했다.” 어찌됐든 그렇게 ‘성공한 재일교포 사업가’로 고국에 진출한 그는 한국롯데를 국내 재계서열 5위의 ‘유통 명가’로 키워냈다. 지난해 말 현재 자산 29조 7000억원, 계열사수 41개, 종업원수 3만 5000명이다. 일본롯데에 비교도 안됐던 매출액(26조원)은 7대3 규모로 역전됐다. ●일본인 아내와 재혼 신 회장은 조혼 풍습에 따라 1940년 둔기리의 고향처녀(노순화)와 결혼했다. 신혼생활은 신 회장의 일본행 가출로 1년여만에 끝났다. 노 여사는 남편의 금의환향을 끝내 보지 못하고 1951년 29살에 요절했다. 신주쿠 허허벌판에서 일본 1위의 껌업체 하리스와 10년 상전(商戰)을 벌이는 동안, 신 회장에게 큰 힘이 돼준 이는 1952년 재혼한 일본인 아내 다케모리 하쓰코(竹森初子·78)씨였다. 결혼후 남편성을 따 시게미쓰로 바꿨다. 당시 일본 외무성 대신의 여동생이었다. 경영에 일절 참여하지 않는 시게미쓰 여사는 성품이 온화하다는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우리말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한다. 신 회장은 노 여사와의 사이에 맏딸 영자씨를, 시게미쓰 여사와의 사이에 동주·동빈 두 아들을 두었다. 롯데가의 한 인사는 “동주와 동빈이는 일본에서 나고 자라 집안에서는 히로유키, 아키오라는 일본이름으로 더 친숙하게 불렸다.”고 전했다. ●백화점 주역 신영자 부사장 모녀 신 회장의 맏딸 영자(63)씨는 롯데쇼핑 총괄 부사장 겸 호텔롯데 면세점 총괄 부사장을 맡고 있다. 부산여고와 이화여대 가정학과를 나왔다. 유통업계의 라이벌 이명희 신세계 회장과는 대학 동창이다. 지난해 말 롯데면세점 모델인 ‘욘사마’ 배용준씨의 사진전에 직접 참석했을 만큼 회사일에 적극적이다. 유통 사업가답게 의상과 화장이 화려하다. 다소 깐깐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새어머니인 시게미쓰 여사와는 팔짱을 끼고 다닐 정도로 사이가 좋다. 1967년 장오식 전 선학알미늄 회장과 결혼해 1남3녀를 두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가장 눈에 띄는 자녀 혼사는 막내딸 정안(31)씨. 지난해 5월 영국계 로펌 클리포드&챈스의 이승환(37) 변호사와 결혼했다. 이 변호사는 한국케이블TV 대구방송 회장과 영남일보 주필을 지낸 이종명씨의 아들.‘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의 회원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 지만씨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잡화 바이어(차장)로 일하던 정안씨는 결혼후 휴직, 남편과 함께 해외에 머무르고 있다. 친구 소개로 이 변호사를 만나 2년간 연애했다. 주례는 시아버지의 절친한 ‘지기’ 한완상 한성대 총장이 맡았다. 한 총장과 이 전 회장은 미국으로 정치적 망명을 함께 하기도 했다. 신 부사장이 사업적으로 가장 의지하는 이는 둘째딸 선윤(34)씨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를 나와 97년 롯데쇼핑에 입사, 올해 초 이사로 승진했다. 명품관 ‘에비뉴엘’ 개관의 일등공신이다. 외할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고 호리호리하다. 성격도 소탈해 직원들 사이에 평이 좋다. 인테리어 회사 사장과 결혼했으나 지금은 독신이다. 외아들 재영(38)씨는 롯데에 포장지를 납품하는 인쇄업체 ‘재영상공’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맏딸 혜선(36)씨는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선윤씨처럼 독신이다. ●일본롯데 이끄는 큰아들 동주 동주(51)씨는 일본롯데 부사장이다. 결혼이 다소 늦었다. 서른여덟살이던 92년 3월 서울 잠실 롯데호텔에서 재미교포 사업가 조덕만씨의 둘째딸 은주(41)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은 동주씨가 일본롯데의 미국법인 지사장으로 발령나면서. 아버지를 닮아 내성적인 그는 의외로 열살 연하의 거래처 여직원에게는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가 주례를 본 두 사람의 결혼식은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됐다. 아들(정훈·12)만 하나다. 현재 일본에 살고 있는 동주씨는 아오야마(靑山)학원과 같은 대학원에서 경영공학을 전공했다. 롯데와 무관한 미쓰비시 상사에서 10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87년 한국롯데에 입사했다.“순수하고 학자 같다.”는 게 주위의 공통된 평가다. ●한국롯데 이끄는 둘째아들 동빈 동빈(50)씨는 형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역시 형이 다닌 아오야마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고, 미국 컬럼비아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았다.88년 일본 롯데상사의 이사로 롯데에 합류하기까지,8년을 다른 회사(노무라증권)에서 일한 것도 형과 같다. 한국무대에 데뷔한 것은 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를 맡으면서. 증권사에 오래 있어서인지 수치에 매우 밝다.97년 2월 한국롯데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이중국적자이던 그는 한국생활을 시작하면서 일본 국적을 정리했다. 처음엔 우리말이 서툴렀으나 지금은 발음이 조금 어색할 뿐, 대화를 주고받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와인을 즐기지만 폭탄주는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문학 기질을 이어받아 사석에서 가끔 괴테의 시를 영어로 읊기도 한다. 이승엽 프로야구 선수가 뛰고 있는 일본 롯데 지바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도 맡고 있다. 세간에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으나 집안 인사의 얘기는 다소 다르다.“형인 동주보다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실제 적극적인 성격은 아니다. 원래 신씨 집안 남자들이 활달한 편은 못된다.” ●한·일 넘나든 현해탄 혼맥 롯데가는 물론 재벌가를 통틀어 화려한 혼맥의 정수로 꼽히는 게 동빈씨의 결혼이다.85년 형보다 먼저 일본에서 다섯시간에 걸친 일본전통 혼례식을 치렀다. 신부는 일본의 대형 건설사 다이세이의 오고 요시마사 부회장의 둘째딸 마나미(眞奈美·46)씨. 일본 귀족학교인 가쿠슈잉(학습원)을 졸업한 재원이다. 일본황실의 며느리감 후보로도 거론됐다. 후쿠다 다케오 전 일본 총리가 중매를 서고 주례까지 맡았다. 결혼식에 나카소네 당시 총리를 비롯해 전·현직 일본 총리가 세 명이나 참석해 한·일 양국에서 떠들썩한 화제가 됐다. 마나미씨를 만나본 한 인사는 “평범하고 참한 인상”이라고 전했다. 아들 유열(19)군과 규미(17)·승은(13) 두 딸을 두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은 일본에 살고 있다. 한달에 두세번 신 부회장이 일본으로 건너간다. 신 회장이 ‘셔틀 기업경영’을 하고 있다면, 신 부회장은 ‘셔틀 가족경영’인 셈. 수행원 없이 다니는 것은 부자(父子)가 똑같다. ●남다른 고향사랑과 초고층 건물에의 꿈 해마다 5월이면 신 회장은 울산시 울주군 둔기리 호숫가의 너른 잔디밭에서 사재를 들여 잔치를 벌인다.69년 대암댐 건설로 고향마을이 물에 잠기자 전국에 흩어진 고향사람들을 수소문,1971년 5월 돼지머리에 막걸리를 기울인 것이 시초가 됐다. 이후 지금껏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모임 이름도 고향에서 따 ‘둔기회’라고 지었다. 처음엔 수십명이던 회원수가 아들·며느리·손자의 가세로 지금은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고향 못지 않게 신 회장에게는 애틋한 대상이 있다. 파리 에펠탑 같은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여든살이 되던 해인 2002년,112층 건물 청사진을 내보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언제까지나 고궁만 보여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교통영향 평가 등에 걸려 지금껏 삽도 떠보지 못했다. 신 회장은 ‘건설통’ 서울시장에게 기대를 걸며 초고층 건물을 재추진하고 있다. ●유통명가 떠받치는 롯데맨들 롯데에는 사장단 회의가 따로 없다. 지난해 신설된 정책본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계열사간 조정자 역할을 한다. 호텔롯데 소속의 김병일(62) 사장이 신동빈 부회장(본부장)을 도와 부본부장을 맡고 있다.73년 호텔롯데 경리부장으로 입사해 81년 그룹 기획조정실 이사를 시작으로 20년 이상 신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신 회장 부자의 심중을 가장 정확히 읽어낸다는 핵심참모다. 짧은 스포츠형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 그룹 내 손꼽히는 재무전무가로 말수가 적다. 그룹의 모태인 롯데제과는 경리분야에서 20년 잔뼈가 굵은 한수길(64) 사장이 맡고 있다. 자일리톨껌 등 ‘연타석 홈런’으로 경영성과를 끌어올렸다. 호텔롯데와 롯데쇼핑은 삼성 출신의 장경작(62) 사장과 ‘젊은’ 이인원(58) 사장이 각각 이끌고 있다. 신세계백화점과 조선호텔 사장을 지낸 장 사장은 올 2월 롯데맨으로 변신했다. 수익사업의 귀재라는 수식어를 달고다닌다. 평균 연령이 60대인 롯데 경영진 사이에 드물게 50대인 이 사장은 97년 CEO(최고경영자)로 파격 발탁돼 8년간 장수하고 있다. 관리·영업·매입 등 백화점 3대 요직을 모두 거쳤다. 의심나면 끝까지 파헤친다. 할인점 업계 최초로 중소기업 박람회를 연 롯데마트 이철우(62) 사장과 정통 엔지니어 출신으로 현대석유화학 인수 주역인 호남석유화학 이영일(64) 사장도 눈에 띈다. 신 회장의 가족 가운데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이는 친동생인 신준호(64) 롯데햄·우유 부회장과 5촌조카 신동인(59) 롯데자이언츠 구단주 대행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지금의 롯데를 일구는데 일조했으나 지금은 한발 물러나 있다. 음료업계 최초로 순 매출액 1조원 돌파의 대기록을 세운 롯데칠성음료 이종원(61) 대표이사 부사장, 스피드 경영으로 유명한 롯데건설 이창배(58) 대표이사 부사장, 워커홀릭(일중독자)으로 불리는 롯데삼강 이광훈(57) 대표이사 전무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롯데맨이다. 황각규(51) 롯데쇼핑 상무와 강현구(45) 롯데닷컴 상무 등은 신 부회장의 관심사업을 보좌하고 있다. ●“평창면옥에 해답이 있다” 이철우 사장의 회고다. “잠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백화점을 짓기는 했는데 신세계의 세 배인 드넓은 매장을 채울 일이 걱정이었다. 회장님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타박하시더니 평창면옥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했다.” 당시 서울 평창동에 있던 평창면옥은 5000원짜리 밥맛이 워낙 좋아 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사람들이 왜 굳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곳까지 가겠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상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꼭 필요하고 훌륭한 상품을 만들면 문제는 절로 해결되기 마련이다.” 신 회장의 이 얘기는 지금도 롯데 임직원들 사이에 자주 회자된다. hyun@seoul.co.kr ■ 절친했던 신격호·정주영 회장 신격호 회장은 생전의 정주영(왕회장) 현대 창업주와 절친했다. 왕회장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직접 추도사를 쓰기도 했다. 신 회장이 일곱살 아래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의 인생 역정은 매우 닮았다. 우선 대가족의 장남이다. 신 회장은 동생이 9명, 왕회장은 7명이다. 중농·빈농의 아들로 농사규모는 달랐지만 식솔이 워낙 많아 삶이 퍽퍽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공 신화의 시작이 가출이라는 것도 같다. 두 사람 모두 열아홉살 때 “앞이 안보인다.”며 집을 뛰쳐나왔다. 사업 시작후 최대의 시련도 ‘불’이었다. 신 회장은 처음 차린 커팅오일 공장이 불에 몽땅 타버려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왕회장도 첫 사업인 자동차수리공장이 불에 타는 바람에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신 회장은 이 때문에 지금도 임직원들에게 자나깨나 불조심을 외친다. 롯데호텔 준공 때 멀쩡한 새 건물의 복도 천장을 뜯게 한 뒤 손전등으로 직접 방화 장치를 확인한 일화는 유명하다. 공교롭게도 죽을 고비도 한차례씩 넘겼다. 여든이 다 될 때까지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던 신 회장은 언젠가 밤길에 귀가하다가 트럭과 정면으로 부딪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왕회장도 새벽에 울산공장을 시찰하러 직접 운전하고 가다가 차가 바닷물에 빠져 죽을뻔 했다. 발상도 기발하다. 신 회장은 풍선껌에 대나무 대롱을 함께 포장해 장난감처럼 불 수 있게 했다. 왕회장은 겨울 골프에 빨간 골프공을 도입한 주인공이다. 이 유명한 빨간공 일화를 남긴 1970년 초봄 라운딩의 동반자가 바로 신 회장이었다. 신 회장은 훗날 “폭설이 내려 (하얀 골프공을 찾을 수 없는 만큼)의당 약속이 취소된 것으로 여겨 하마터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고 회고했다. M&A(인수합병)보다는 직접 공장말뚝 박기를 즐겼던 것이나 귀향잔치(둔기회·소떼방북)를 벌인 점도 똑같다. 다만, 신 회장은 언제나 소리가 나지 않았고 왕회장은 늘 요란했다. 대선 출마 등 말년에 한눈을 판 왕회장과 달리 신 회장이 사업에만 전념하는 것도 결정적 차이다. hyun@seoul.co.kr ■ 신동빈 부회장 ‘큰어머니’ 제사 해마다 직접 지내 지난달 21일 저녁 서울 성북동 신영자 롯데쇼핑 부사장의 자택. 검정 옷차림의 신씨가문 후손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 날은 종손인 신격호 회장의 첫 부인 노순화 여사의 기일이었다. 신동빈 부회장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어머니’의 제사를 주관했다. 누나인 신 부사장은 말없이 ‘생모’의 제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여느 재벌가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신 회장이 재혼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얻은 동빈씨는 한국에 정착한 이후 노 여사의 제사를 꼬박꼬박 지내고 있다. 집안에서나, 그룹에서나,‘후계자’로서의 입지를 빠르게 굳혀가고 있는 모습이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후계구도와 관련해 “정해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언급을 회피하던 그룹측은 이제 공공연하게 “후계구도 작업은 끝났다.”고 단언한다. 신 부회장이 일본인 아내를 맞은 점 등을 들어 일본롯데를, 신동주 일본롯데 부사장이 장남인 점 등을 들어 한국롯데를 맡을 것이라는 분석이 한때 유력했지만 현재로서는 뒤집힌 셈이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10월 신설된 정책본부의 장(長)을 맡으면서 후계자 논란을 확실하게 잠재웠다. 재계는 “그룹 대권을 둘째아들에게 넘기겠다.”는 신 회장의 의지로 해석했다. 신 부회장은 온라인쇼핑몰·편의점 사업 등에서 이렇다할 실적을 내지 못했지만,KP케피칼·현대석유화학 등을 성공적으로 인수함으로써 아버지의 신임을 굳혔다. 현장을 중시하는 것은 아버지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다. 지난 4월에는 롯데마트 금천점에 불쑥 나타나 한 시간 동안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현장에서 지시한 내용은 나중에 꼭 확인한다. 상장(6개사)에 인색한 기업 문화와 보수적인 토양을 어떻게 바꿔나갈지 주목된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SK그룹·하나銀 ‘밀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김승유 하나은행 이사회 의장의 관계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카드사 합작법인 설립을 논의중인 SK텔레콤과 하나은행의 밀월관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SK그룹이 자사 50개 계열사 3만여 임직원은 물론 그 가족들에 대해서도 발급하고 있는 ‘SK멤버스’란 이름의 하나은행 신용카드 이용자가 7월 현재 총 3만 3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다른 그룹에도 이같은 멤버스 신용카드를 발급한 적이 있지만 호응이 이렇게 높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고 말했다. 예컨대 2만 2000여명의 정규직을 둔 두산그룹에 대해서도 연회비를 면제하는 조건으로 지난해부터 두산그룹 신용카드를 발급하고 있지만 최근까지 실적은 7000여명 정도다. SK그룹측은 “올해 상반기 ‘SK멤버스’란 이름의 하나은행 신용카드 발급에 대한 공지를 내보냈다.”면서 “SK주유소에서 ℓ당 100원, 직영주유소에서 ℓ당 120원 할인 등 혜택이 좋아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이 카드는 최고급인 ‘플래티늄’급으로 가족을 제외한 임·직원의 연회비인 12만원은 계열사별로 회사가 대신 내준다. 일반인을 상대로 BC와 SK가 제휴해 만든 ‘플래티늄’ 카드의 경우 SK주유소 할인 혜택은 ℓ당 25원 정도이지만 ‘SK멤버스’의 경우 이 보다 혜택이 4∼5배가량 큰 것. 이밖에 국내 왕복 항공권,1일 무료 숙박 이용권 등 혜택도 다양하다. 이에 앞서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서린동에 있는 SK본사 건물에 국민은행이 철수하고 하나은행이 지점을 냈다. 현재 1800만 가입자를 가진 SK텔레콤의 카드사 합작법인 파트너 자리를 놓고 신용카드 부문에서는 마이너인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의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하나은행은 SK네트웍스 사태 해결 과정에서 주채권은행으로서 지원을 아끼지 않은 유대관계를 강점으로 세우고 있다. 특히 소버린이 SK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을 위협할 때에도 백기사로 나서 SK주식을 매입한 바 있다. 반면 신한은행은 카드 회원수나 매출 규모면에서 자사(692만명·11조 3060억원)가 하나은행(211만명·매출액 1조 9000억원)을 앞지른다고 강조한다. SK그룹 관계자는 “하나은행 신용카드 발급에 대해 SK가 연회비 등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이는 우리가 추진중인 카드사 합작법인 설립 파트너로 하나은행을 확정했다는 뜻은 아니다.”면서 “하나은행 이외에 모든 은행과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말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외국인 관광객 유치 세계 1위업체 될터”

    “외국인 관광객 유치 세계 1위업체 될터”

    “일본 현지인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일본인을 국내 관광객으로 유치해야 할 때입니다.” 국내 여행사 중 일본인 관광객을 가장 많이 유치하고 있는 포커스투어즈 김영규(43) 사장의 구상이다. 이 여행사는 지난해 국내 외국인 관광 업계 최초로 매출 2000만달러를 돌파하며 창업 8년 만에 1위에 등극, 업계 세대교체를 선도하고 있다. 그는 업계에서 ‘상품 개발의 달인’으로 통한다.1987년 코오롱여행사 공채 1기로 출발한 그는 89년 고려증권 관광사업부 동경지사장을 맡으면서 일본인 관광객의 한국 유치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일명 ‘기생 관광’이 주류를 이루던 때다. 그는 국내 머물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우연히 접한 일명 ‘때 마사지’에 만족해하는 것을 보고 92년부터 미용관광 상품을 대거 개발했다. 같은 해에 김연자 등의 일본인 팬클럽 회원들을 상대로 유치 활동을 벌여 한류스타 마케팅을 여행업계에 일찍이 도입하기도 했다. 97년 IMF 경제위기와 함께 당시 근무하던 동양고속 여행사업부가 정리되면서 포커스투어즈를 창업했다.2개월이면 신발 밑창이 닳을 만큼 일본에 있는 여행사들을 상대로 열심히 판촉 활동을 벌였다고 회상한다. 2000년에는 동대문 야간쇼핑 상품을, 지난해에는 ‘겨울연가’ 상품을 필두로 각종 한류 열풍과 연계된 프로그램들로 끊임없이 인기몰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올 들어 방영된 MBC 미니시리즈 ‘슬픈연가’에 3억원을 협찬, 투자에 나서기도 했다. 관광상품 개발은 국내 여행의 질적 향상에 기여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이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 부문 세계 1위로 자리매김하는 게 그의 목표다. 이를 위해 현재 일본에 있는 5개 지사 이외에 올해 중국·동남아 등에 지사를 확대한다. 여유있는 50대 실버 계층을 겨냥한 상품 개발이 과제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 동남아 등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면서 “도쿄와 비슷한 수준의 높은 국내 호텔 가격이 이들과의 경쟁에서 가장 큰 애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이병철은 용병형… 정주영은 불도저형”

    “미국에는 미국식 경영이 있다면 한국에는 한국식 경영이 있어야 합니다. 그동안 여러 선진국을 흉내내 왔고 뇌물, 청탁 등 기업 스캔들로 얼룩져 왔지만 이제는 훌륭한 최고경영자(CEO)들을 통해 우리의 유교적 자본주의를 더욱 발전시켜야 합니다.” 한국CEO 연구포럼 연구위원장이자 저명한 CEO 칼럼니스트인 이해익 리즈경영컨설팅 대표의 지적이다.그는 국내 CEO들에 대한 비판과 칭찬을 통해 이 시대 CEO들에게 필요한 덕목을 담은 ‘대한민국 CEO 10계명’이라는 저서를 최근 출간했다. 10계명으로는 ‘인재(人才)를 품는 인재(人材)가 되라, 품질을 경영하라, 가격을 경영하라, 일자리를 만들어라, 투명성을 우선하라, 반기업 정서를 극복하라, 농부를 본(本)삼아라, 욘사마를 벤치마킹하라, 마부가 되라, 날쌘 경영을 하라’등 모두 경영 화두들이다. 책에는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를 비롯, 기라성 같은 CEO들의 스타일을 분석해 냈다.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을 용병형으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불도저형, 반면교사형으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유한양행 유일한 박사는 공익형으로 분류해 놨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사랑·친근감 “가족처럼 다가간다”

    차 부품, 중공업, 화학, 정보기술(IT) 등 소비자가 아닌 기업을 대상으로 장사하는 기업들이 일반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광고를 내보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족, 전문가 등 고유의 이미지를 통해 대중에게 바짝 다가서는 데 전력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휴머니티’를 주제로 하는 광고를 신문에 집행하고 있다. 예컨대 현대중공업의 ‘아빠가 만든 배’편에는 ‘우리 아빤 세상에서 가장 멋진 배를 만들어요.’라는 카피와 함께 여자아이가 자신이 스케치북에 그린 ‘아빠가 만든 배’ 그림을 들고 자랑스럽게 웃고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다. 자동차 부품 기업인 현대모비스의 경우 흰 가운을 입은 한 연구원이 결단을 내리기 위해 고민하는 얼굴 사진을 배경으로 쓰고 있다.‘수만번의 생각, 수천번의 고민, 수백번의 노력-부품을 생각하기 전에 안전과 행복을 먼저 생각합니다.’라고 쓰여 있다. 포스코는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입니다.’라는 광고 캠페인을 통해 차가운 성질의 철을 생산하는 자사의 이미지를 따뜻하게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이 회사는 ‘믿음직한 기업·친근한 기업·존경받는 기업’이란 이미지를 전하기 위해 지난 2000년부터 ‘철이 없다면….’편을 시작으로 꾸준히 기업이미지 광고를 하고 있다.최근 집행되는 신문 광고에는 아이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파란 하늘 아래 깡통을 화분으로 재활용해 밝게 웃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배경 사진이다. 카피에는 ‘작은 캔에 담긴 희망이 있어 내일은 더 맑음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재활용을 강조해 환경친화적인 기업 이미지도 쌓는다는 전략이다. 종합 IT솔루션 업체인 LG CNS의 ‘엄마 사랑’ 편은 감성적인 접근을 시도한다.‘엄마 사랑은 보여도 비타민은 안보여요.’라는 메인카피를 통해 이 세상을 편리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기업들을 지원하는 자사의 기술을 표현하고 있다. 삼성코닝정밀유리는 오페라공연을 보러온 듯한 차림의 미녀가 LCD TV모니터를 망원경으로 이용해 보고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쓴다. 특히 ‘당신의 LCD TV, 당신의 휴대폰, 당신의 노트북…. 모양은 달라도 디지털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는 삼성코닝정밀유리에서 시작됩니다.’라는 카피를 통해 일상 생활 속에 자사의 핵심 기술이 녹아 있음을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가 기업의 자산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소비자들의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로 남을 것인지가 기업들의 고민이 됐다.”면서 “기업들을 상대로 하는 기업들 사이에서도 이미지 광고가 부쩍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2)-2세 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2)-2세 경영

    한진 조씨가(家)의 2세들이 창업주 고 조중훈 회장의 그늘에서 벗어난 지 3년.4형제의 ‘홀로서기’가 정착된 가운데 이제는 선친이 다져놓은 반석에서 세계 일류 수송기업을 향해 달리고 있다. 지난 3년간 2세들의 경영 성적표는 ‘기업은 물려 받는 것이 아니라 가꾸어 나간다는 것’임을 증명해준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도 “전문경영인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이라고 말한다. ●조중훈 회장의 자식 교육 고 조 회장은 자식들에게 인성에서는 검소와 성실을, 일에서는 프로를 강조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자식들을 엄격하게 교육 시켰지만, 때론 애틋한 부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선진 지식을 습득하도록 조기 유학을 보내 자식들에게 전문가의 길을 걷도록 했다. “미국 유학 시절 때입니다. 부친은 틈틈이 자신의 육성이 담긴 테이프를 저에게 보내 격려를 했었습니다. 힘들 때마다 부친의 자식 사랑을 확인하면서 큰 힘을 얻은 거죠. 그리고 저도 1주일에 한번씩 아버지께 편지를 썼죠. 부친은 ‘훌륭한 경영자가 되기 이전에 훌륭한 인간이 되어라.’,‘현재의 조건에서 행복을 찾아라. 행복은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다.’를 가르치곤 했었습니다.”(조양호 회장) 조양호 회장과 부친과의 일화 한 토막. 조 회장이 유럽여행을 떠날 때 부친은 궁색하지 않도록 3000달러를 경비로 줬다. 조 회장이 여행을 끝내고 홍콩에서 부친을 만났을 때, 그는 부친이 건네준 돈의 절반인 1500달러을 돌려드렸다. 그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다니며 1∼2달러짜리 값싼 여인숙에서 잠을 잤다고 한다. 이후 부친은 조 회장의 검소한 생활과 관리 능력을 신뢰하게 되었단다. 말은 안 했지만 장남의 됨됨이와 장차 그룹의 후계자로서 자질을 테스트했던 것이다. ●4형제의 소그룹 독립경영 “4형제 모두 대한항공에서 경영수업을 시작했지만, 선친(고 조중훈 회장)께서는 자식들의 전공과 성격 등을 감안해 주요 계열사를 맡기신 것 같습니다. 항공은 그룹의 주력 업종이고, 전문 기술의 이해가 필요한 만큼 공대 출신인 제가 맡게 됐고, 둘째(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는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데다 성격도 걸걸해서 건설·중공업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셨죠. 또 국제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한 해운쪽은 사교적인 셋째가 적성에 맞을 것으로 보셨고, 막내는 금융분야 공부를 죽 해왔으니 그룹의 금융을 책임지도록 하셨습니다. 선친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이같은 밑그림을 그려놓고, 자식들을 관련 계열사에서 꾸준히 트레이닝을 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4형제가 각각 항공과 중공업, 해운, 금융을 맡게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진그룹은 2002년 조중훈 회장의 별세 이후 4형제간 ‘독립 경영’을 정착시켰다. 그룹 후계구도를 일찌감치 ‘교통 정리’한 데다 확실한 계열 분리를 위해서는 독립경영이 선결돼야 한다는 4형제간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 한진 주요 계열사의 ‘성적표’는 독립경영의 성과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세계적인 항공사 독일 루프트한자의 19년 아성을 깨고, 화물수송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한진중공업은 국내 조선업체들이 적자에 허덕이던 지난해 367억원의 흑자를 기록했으며, 한진해운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경영성과를 올렸다. 메리츠증권은 동양화재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진은 올해 창립 60돌을 맞아 계열사간 지분 정리를 마무리짓고, 확실한 ‘홀로서기’에 나설 전망이다. 한진중공업은 사실상 그룹으로부터 계열 분리가 마무리됐으며, 금융(동양화재)은 지난 3월 계열 분리를 끝냈다. 4형제의 독립 경영이 자리잡으면서 계열사간 의존 관계도 시나브로 엷어지고 있다. 대한항공과 한진해운은 주보험 거래처를 조정호 회장이 수장인 동양화재에서 다른 대형 보험사로 옮겼으며,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이끄는 한일레저는 한일 컨트리클럽내에 있던 대한항공 광고판을 철수시켰다. 또 금융계열사인 한불종합금융은 사무실을 서울 중구 해운센터에서 인근 파이낸스센터로 옮겼다. ●항공 전문가 조양호 회장 “회장님의 ‘러브레터’ 받았습니까.”,“이번주에는 두번이나 받았습니다.”대한항공 임원 사이에 오가는 아침 대화 가운데 하나다. 한 임원의 설명이다.“조 회장께서 해외 출장이 잦다 보니 업무를 주로 온라인으로 처리하는데, 좀 부족하거나 따로 지시할 내용이 있으면 담당 임원에게 이메일을 보내요. 임원들은 이를 회장님의 ‘러브레터’라고 부릅니다. 조 회장께서 워낙 전문가이다 보니 내용이 아플 때가 많죠.”이어 “모언론사 기자가 국내 그룹 회장들의 인터넷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늦은 밤에 질문서를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조 회장은 본인 메일을 확인한 뒤,‘이런 질문은 홍보실에 문의하십시오.’라고 메시지를 보낸 모양이에요. 그 기자가 회장들로부터 되받은 유일한 메일이었고,30분만에 답장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조양호(56) 대한항공 회장은 늦은 밤에도 노트북을 열어 회사 현황을 파악하고, 결재도 한다. 의문 나는 사항은 담당 임원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로 질문을 한다. 직원들도 이제는 회장이 밤중에 결재한 서류를 보아도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조 회장은 국제 항공업계에서 알아주는 거물급 인사다.2000년 출범한 세계적 항공동맹체 ‘스카이팀’ 결성 과정에서 잘 드러난다. 그가 미국 델타항공의 레오뮬린 회장과 의기 투합해 결성키로 한 ‘스카이팀’은 당시 참여항공사 문제로 난관에 부딪쳤다. 조 회장은 평소 친분이 두터운 에어프랑스와 알리탈리아의 최고경영자(CEO)를 집요하게 설득, 결국 ‘스카이팀’에 참여토록 했다. 그가 일궈놓은 스카이팀은 이제 국제 항공동맹체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그는 또 30년간 대한한공에서 잔뼈가 굵은 항공 전문경영인이다. 영업·정비·전산·자재·인사·총무 등 항공사 경영에 필수적인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전문경영인에게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되, 경영의 잘잘못을 지적하는 경영인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항공사 경영은 제조업과 달라 전문적인 경영 능력없이 권위만을 앞세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는 특수한 업종입니다. 저는 조종사들과 전문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경비행기를 직접 조종할 수 있는 훈련도 받았습니다.” 조 회장이 2003년 그룹 회장에 취임하면서 임직원에게 던진 첫 일성은 ‘세계 최고의 종합 물류기업’이었다. 이를 위해 2010년까지 항공 여객운송 세계 10위, 항공 화물운송 세계 1위, 해상운송 세계 3위, 국내 육운 1위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그는 인하대 공대를 거쳐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출신이다. ●선 굵은 조남호 회장 조남호(54) 한진중공업 회장은 4형제 가운데 가장 선이 굵은 경영스타일을 보여준다. 직원에게 많은 권한을 위임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도 철저히 따진다. 경영진이 일일히 챙기다 보면 실무 책임자의 활동 폭이 좁아지고, 책임감있는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1995년 인천 영종도의 남측방조제 건설 에피소드는 그의 스타일을 엿볼 수 있다. 한진은 당시 최대의 국책사업이었던 인천국제공항 공사에 남측방조제를 맡았다.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유속이 빨라 물막이공사 진행이 지지부진했다. 급히 대안을 찾아야 할 상황이었다. 또 북측방조제 공사는 경험많은 국내 굴지의 건설사가 맡은 터라 서로 자존심을 걸고 공기단축에 매달렸다. 이 때 조 회장(당시 부회장)은 현장 책임자를 직접 방문,“현장을 말아 먹든 말든 모든 권한은 당신에게 있다. 당신을 믿으니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꼭 해내리라 믿는다.”며 전권을 위임했다. 그 결과 여러 개의 바위로 5t이상의 돌망태를 만들어 쌓아나가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공사를 조속히 끝냈다. 더구나 경쟁사의 북측방조제 완공보다 간발의 차이로 일찍 끝내 업계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준공식 날 헬기를 타고 현장에 도착한 조 부회장은 현장 책임자와 만나자마자 뜨거운 포옹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조 회장은 국내에서 경복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해외 근무경험은 풍부하다. 선친에게도 필요하면 바른 말을 했고, 부하 직원을 포용하는 스타일이다. 조 회장은 1971년 입사, 네덜란드와 중동, 동남아 등에서 근무하며 해외 건설사업의 개척자 역할을 담당했다. ●‘국제통’ 조수호 회장 조수호(51) 회장은 해운업계의 ‘국제통’으로 통한다.1991년 우리나라가 국제해사기구(IMO)의 상임이사국 가입을 위해 발벗고 나설 때, 정부가 그를 로비스트(?)로 낙점할 정도였다.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내며, 세계 곳곳에 지인들을 심어 놓은 조 회장이 적격 인물로 판단됐기 때문이다. 조 회장은 각국 대표를 일일이 찾아 다니며 협력을 요청, 결국 이사국 선임을 이뤄냈으며,93년에는 IMO이사국 연임에 공헌하기도 했다. 그는 딸만 둘이다. 딸들을 위해 주방에서 요리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대놓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조 회장은 해운업계의 ‘페미니스트’로 불린다. 여성은 배에 태우지 않는다는 해운업계의 금기를 깨고, 한진해운은 1995년 국내 최초로 12명의 여성 해기사(항해사, 기관사)를 선발했다. 또 1997년에는 여성주재원을 파견했으며,2000년에는 최초의 여성 일등항해사를 배출했다. 특히 대졸 신입사원 가운데 여성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 조 회장은 미국 남가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대한항공에 입사했다.85년 한진해운 상무를 시작으로 10년만인 94년 사장으로 취임했으며,2003년 7월 회장직에 올랐다. 그는 20년간 해운업 ‘한 우물’만 판 전문경영인이다. 한진해운은 컨테이너선과 LNG선 등 150여척의 선박과 전세계 53개의 항로를 운영, 연간 1억t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는 국내 최대의 선사다. 지난해 매출액 6조 2000억원, 순이익 6457억원을 기록했다. ●금융그룹 시동 건 조정호 회장 98년 한진투자증권(현 메리츠증권)의 재무구조는 최악이었다.9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으며, 자기자본은 411억원으로 퇴출 위기에 몰렸다. 이를 반전시킨 주인공이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이다. 당시 조 회장은 푸르덴셜증권 자회사인 PAMA(푸르덴셜에셋매니즈먼트아시아)로부터 510억원의 외자 유치에 성공한 뒤,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듬해에 순이익 753억원, 자기자본 2156억원으로 불려놓았다. 외자 유치에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PAMA 코리아 대표인 김한 사장의 도움이 컸다. 이 인연으로 김 사장은 2003년 메리츠증권 부회장으로 스카우트된다. 김 부회장은 “메리츠증권과 PAMA를 결혼시킨 중매쟁이로서 맡은 역할을 다하기 위해 메리츠증권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나서기를 꺼려한다. 그러나 발동이 걸리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 지난해 ‘우수영업직원 격려행사’에 참석했던 조 회장은 직원들에게 직접 만든 ‘드라큐라주(포도주 폭탄주)’를 돌리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었다. 또 무대에 나가 자신의 18번곡을 멋지게 부르기도 했다. 조 회장은 최근 PAMA의 메리츠증권 지분 인수를 진두지휘하며,‘금융그룹’을 향한 시동을 걸고 있다. 지분 인수에 성공하면 동양화재를 정점으로 메리츠증권과 기존 한불종합금융을 아우르는 자산규모 3조원대의 중견 금융그룹을 이끌게 된다. 조 회장은 남가주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스위스 IMD 경영학 석사 출신이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하다. ●조씨가 3세는 ‘공부중’ 조씨가 3세들은 이제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이들이 많다. 유독 중매 결혼이 많았던 조씨가에서 3세 결혼은 어떻게 될까.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 얘기다. “부모가 하라고 해서 요즘 젊은 애들이 그대로 따릅니까. 중매든, 연애든 사람만 좋으면 저는 반대할 생각 없습니다. 시대도 옛날하고 많이 달라지지 않았습니까.” 조 회장과 이명희(56)씨는 장녀 현아(31)씨와 장남 원태(29)씨, 차녀 현민(22)씨 등 1남2녀를 두고 있다. 현아씨는 99년 미국 코넬대학에서 호텔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현재 대한항공의 호텔기판사업본부 기내판매팀장을 맡고 있다. 활달한 성격에 국제적 감각이 뛰어나며, 항공업무 전반에 대해 해박하다는 평이다. 원태씨는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부팀장(차장)으로 일하다가 지난달 미국 남가주대 MBA(경영학 석사)를 밟기 위해 출국했다. 본격적인 경영수업에 앞서 능력을 더 키우는 것이 낫겠다는 조 회장의 판단에서다. 조 회장은 “능력과 관심이 있다면 모를까, 자식이라는 이유로 경영에 참여시키지는 않겠다.”면서 “전문가적인 자질을 지녀야 한다.”고 밝혔다. 인하대 경영학과 출신인 조 차장은 합리적 사고에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하다. 막내 현민씨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연애 결혼한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과 김영혜(54)씨는 1남1녀를 두고 있다. 장남 원국(29)씨와 장녀 민희(25)씨는 현재 미국 유학 중이다. 조수호 한진해운 회장의 2세들은 현재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 조 회장의 부인인 최은영(43)씨가 롯데가 출신으로 일본에 적지 않은 일가 친척이 있기 때문이다. 장녀 유경(19)씨와 차녀 유홍(17)씨 등이 있다.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과 구명진(41)씨는 1남2녀를 두고 있다. 장녀 효재(16)양은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원기(13)군은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떠났다. 막내 효리(4)양이 있다. ●한진그룹의 대표 CEO 이종희(63) 대한항공 총괄 사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CEO다. 경상도 사투리가 무뚝뚝하기보다 사근사근할 정도다. 그러나 78년 항공사에서 가장 바쁜 자리인 영업스케줄 과장 시절에는 5년간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할 정도로 독종 기질이 다분하다. 이 사장은 대한항공 공채 1기 출신으로 정비·자재·기획·영업 등을 두루 거쳤다. 겉보기에는 소탈한 전문경영인으로 보이지만 업무만큼은 빈틈이 없다는 평이다. 매달 책 3권 이상을 읽을 정도로 독서파이기도 하다. 대구 출신으로 대구상고와 단국대 경영학과, 연세대 경영대학원을 나왔다. 김정웅(63) 한진중공업 건설부문 사장은 실무형 리더로 1993년부터 국가 최대의 국책사업인 인천국제공항 건설 현장소장과 총괄본부장을 맡아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쳤다. 인하대 토목과를 졸업했다. 홍순익(59) 한진중공업 조선부문 사장은 국내 조선 1번지에서 출발한 한진중공업을 세계 조선기술 센터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이다. 홍 사장은 서울고를 거쳐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나왔다.70년 대한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에 입사한 뒤, 외국계 회사에서 수석 엔지니어와 동종 대형업체의 조선소장, 미국선급협회(ABS) 부사장을 역임했으며,2001년 다시 조선 현장에 복귀한 정통 조선맨이다. 박정원(60) 한진해운 사장의 집무실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직원들 중 누구라도 할 이야기가 있으면 언제든 올라오라는 뜻에서다. 그는 평사원 출신 CEO로서 포용력과 리더십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직원들의 생각을 직접 듣기 위해 평사원 및 특정 부서와 호프타임을 자주 갖는다. 서울 출신으로 중동고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했다. 김한(51) 메리츠증권 부회장은 글로벌 마인드와 감각을 갖춘 CEO다. 서울대와 미국 예일대 MBA 출신이다. golders@seoul.co.kr ■ 조씨 부자의 ‘사진 사랑’ 항공사의 수장으로서 숱한 해외 여행 때문일까. 고 조중훈 회장과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취미는 똑같이 사진 촬영이다. 솜씨도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선 프로급이다. 일만큼이나 취미도 극성스러운 것이 부자간 닮은 꼴이다. 고 조 전 회장은 공식 업무에서 벗어나면 카메라를 메고 낯선 땅 이곳저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이국의 풍물과 사람사는 모습 등을 카메라에 담았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찍은 사진들을 1985년 ‘이집트 고대문화 사진 전시회’에 내놓았다. 또 그의 사진 작품이 수만 점에 달해 한때는 개인 사진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고 조 회장은 사진 취미에 대해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유별난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자주 해외에 나가는 사업 특성과도 무관치 않습니다. 여기에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그 많은 감동과 경이를 많은 분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장남인 조 회장의 사진 실력도 이미 재계에서 유명하다. 그는 해외 출장에서 찍은 작품으로 달력을 제작,4년째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고 있다. 취미 활동을 비즈니스로도 활용하는 조 회장이 처음 사진을 찍게 된 계기는 중학교 때 부친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로 받으면서다. 조 회장은 부친을 따라 여행을 자주 다녔는데, 부친이 항상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사진 촬영을 하는 것을 보면서 사진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해외 출장 때면 디지털카메라와 캠코더를 분신처럼 꼭 챙긴다. 그리고 노트북에 작품을 담아 놓은 뒤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들을 지인들에게 직접 메일로 보내준다. 그가 사진 촬영에 이렇게 빠지는 데는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의지대로 잘 표현할 수 있고, 간직할 수 있다는 점과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넓은 세상을 작은 렌즈에 담아 낸다는 점을 꼽았다. 그도 부친만큼이나 취미에 열성적이다. 평소 국내외 사진 전문잡지를 보면서 마음에 드는 것은 스크랩을 해뒀다가, 작품 활동에 참고한다. 또 사진 전문가와 만날 기회가 있으면 미진한 부분을 곧잘 묻기도 한다. 바쁜 해외 출장 중에도 차량으로 이동하다 차창 밖의 멋진 풍광이 눈에 들어오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차를 세워 촬영을 할 정도다. 조 회장은 “해외에 예정된 행사보다 하루나 이틀 정도 일찍 출발해 사진을 찍기 위해 도시 주변을 돌아다닌다.”면서 “사진은 잠시 잊었던 삶의 소중한 순간과 기억을 되살려주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golders@seoul.co.kr ■ 대한항공의 ‘화물 수송사’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로부터 어제 연락이 왔는데, 대한항공이 지난해 항공화물 수송 부문에서 세계 1위를 차지했다고 해요. 이번주에 공식 발표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동북아 물류중심기지 건설에 대한항공이 일조를 했다는 점에서 뿌듯합니다.” 지난달 29일 서울 서소문 KAL빌딩에서 만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상기된 표정으로 이같이 밝혔다. 당시에는 아직 공식 발표된 내용이 아니라서 그런지,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지만 대한항공 창사 36년만에 세계 항공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자부심은 도드라져 보였다. 그러나 대한항공이 세계 항공화물 수송 분야에서 톱이 되기까지 우여곡절과 애환도 적지 않았다. 대한항공이 화물사업을 시작한 것은 민영화 2년 후인 1971년 4월. 서울∼일본 도쿄∼미국 LA를 잇는 태평양 노선에 화물기를 처음으로 취항하게 된 것. 한·미 항공협정을 개정할 정도로 어렵게 노선을 취득했지만 막상 실어나를 화물이 없는 상황이 터졌다. 시도도 못하고 주저앉을 수 없다는 심정에서 당시 대미 수출품의 대부분이 가발인 점을 착안, 직원들에게 가발 수출업체를 찾아 나서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러나 가발업체 대부분이 소규모 중소기업으로 찾는 것조차 힘들었다. 다행히 수출조합을 방문해 주소를 얻고, 복덕방에서 위치를 알아냈지만 또 다른 걸림돌이 있었다. 이제 막 출발한 대한항공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았던 것. 결국 애국심에 호소하며 설득전까지 치러가며 겨우 승낙을 받았다. 또 당시 해외 비즈니스맨들이 주로 이용하던 조선호텔 프런트를 찾아 숙박부를 뒤져가며, 접촉에 나서기도 했다. 이런 고생끝에 대한항공의 첫 화물기는 휴항없이 태평양을 건너게 됐다. 대한항공의 항공화물 변천사는 우리나라의 산업 발달사와 맥을 같이 한다.1970년대 초반에는 가발과 스웨터 등이 화물의 주종을 이뤘으며,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에는 모피류와 전자제품,1990년대에는 전자제품과 의류 등이 시장을 주도했다. 최근에는 반도체와 휴대전화,LCD 등 고가의 IT제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휴대전화만을 위한 전세기가 인도에 운항한 적도 있다. 대한항공은 또 별난 특수화물을 수송한 경험도 많다.1983년 11월에는 B747화물기로 서울대공원에 수용될 동물 418마리(54t)를 미국 댈러스에서 서울까지 수송,‘현대판 노아의 방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또 핵연료와 탱크, 헬리콥터 등 다른 항공사들이 좀처럼 수송할 수 없는 특수화물을 실어나른 경험도 쌓았다.94년에는 89마리의 미국산 말을 제주로 수송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경주마들을 실어 나르고 있으며, 무역전시장(COEX)내에 개장된 아쿠아리움(대형수족관)에 전시될 상어 35마리 등 희귀 어류들을 호주로부터 운송한 적도 있다. 또 운송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악어 72마리를 성공적으로 수송하기도 했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기네스 팰트로 빈폴 모델로

    제일모직이 할리우드 톱스타 기네스 팰트로(33)를 자사 캐주얼 의류 브랜드 빈폴(Bean Pole) 모델로 내세워 글로벌 브랜드 도약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광고는 다음주 영국 런던에서 촬영돼 가을부터 볼 수 있다. 한편 남자 모델로는 MBC 수·목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주가를 올리고 있는 미국 배우 다니엘 헤니(26)를 선정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싸이월드 “사이좋은 세상 만들어요”

    싸이월드 “사이좋은 세상 만들어요”

    인터넷 업계에 사회공헌 물결이 일고 있다. 상품 판매액 중 일부를 후원금으로 내거나 전액 기부, 후원자 연결, 후원모임 결성 등 방식도 다양하다. 가장 눈에 띄는 곳은 SK커뮤니케이션즈가 운영하는 싸이월드의 ‘사이좋은 세상’. 개인 친목 중심의 장을 공익 활동의 무대로 사용하는 데다 후원금을 모으기 위한 제품도 싸이월드가 직접 제작해 판매 전액을 기부한다. ‘사이좋은 세상’에는 아동, 노인, 청소년, 환경 등 130여 사회단체가 각각의 미니홈피를 마련해 자신들의 공헌 활동을 소개하고 여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를 신청하면 된다. 지난 5월 시작됐으며 하루 평균 100여명의 개인과 단체가 연결된다. 싸이월드의 주요 수익원이기도 한 스킨 등 아이템을 사회공헌용으로 별도 제작, 그 판매금 전액을 해당 단체에 주기 때문에 봉사가 어렵다면 금전 기부만도 가능하다. 포털부문 1위 업체인 네이버도 인터넷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아름다운재단과 손잡고 기부 서비스인 ‘해피 빈’을 이달 중 오픈할 예정이다. 온라인장터 G마켓은 ‘후원쇼핑’을 통해 복지재단 등에 보낼 적립금을 모은다.G마켓의 판매자들이 특정 상품 판매액 중 일정액을 원하는 사회단체로 보내겠다고 정하기 때문에 소비자는 그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쇼핑도 하고 사회단체 후원도 함께 한다. 지난달부터 시작해 일 평균 120만원이 적립되고 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이통시장 점유율 52.3% SKT, 2년더 유지하기로

    SK텔레콤이 시장점유율 자율준수 기간을 2년 더 연장한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6일 기자 간담회를 갖고 “SK텔레콤의 시장점유율을 오는 2007년 말까지 52.3% 이내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김 사장은 지난해 5월 올해 말까지 이 점유율을 지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52.3%는 신세기통신과의 합병인가 직전인 지난 2001년 말 당시의 점유율이다. 그는 “이동통신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한 만큼 가입자 유치 경쟁으로는 더 이상 성장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서 “통신시장도 블루오션으로 가자는 취지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신 통신업계 선두업체로서 IT분야의 신성장동력 창출에 전념하겠다고 강조했다. 김 사장은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에 멜론,GXG, 모바일 싸이월드 등 서비스를 출시해 무선데이터 사업을 강화했고 1000억원 규모의 영화·음악 관련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종합엔터테인먼트 업체인 IHQ와 YBM서울음반의 지분 인수를 통해 WCDMA(광대역코드분할다중접속), 위성DMB(이동멀티미디어방송) 등을 위한 콘텐츠 확보를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실적목표 달성 여부에 대한 질문에서 “시장경쟁 상황은 KT의 무선 재판매가 관건인데 마케팅 비용을 매출액의 18% 수준에 맞추겠다는 약속도 이에 달려 있다.”면서 “조직 분리 등 KT 재판매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정통부 우정사업본부 첫 여성 부이사관 탄생

    우정사업부문에 첫 여성 부이사관(3급)이 탄생했다. 5일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 김혜영(45) 국제사업과장은 최근 정통부 인사에서 부이사관으로 승진, 지난 1994년 정통부 출범 이후 최고위급 간부에 오른 여성 공무원이 됐다.1884년 우정사업본부 효시인 우정총국이 개국한 지 121년 만에 등장한 우정부문의 최고위직 여성 간부이기도 하다. 부산대 영문학과(78학번)를 졸업,1983년 한 해에만 특별 시행된 외국어 특채 고시에 합격해 체신부 국제우체국 업무과장으로 우정부문에 발을 들여놓았다.정보통신협력국, 국제협력관실 등 국제기구와 대외협력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1990년에는 국비로 미국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도 받았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고객만족·시장개척 의사결정 지원”

    “관료 출신으로 월급쟁이 임원 사장까지 조직에서 맡을 수 있는 역할들을 두루 경험했습니다. 이번엔 그룹의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연구소장 역할을 맡게 됐습니다.” 재벌 2세와 벤처창업자들이 투자해 만든 이업종교류회인 ‘V소사이어티’의 초대 CEO를 맡아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이형승(42)씨가 지난 1일 CJ경영연구소장으로 색다른 변신을 시도했다. 지난 2003년 초 출범한 이 연구소에는 10여명의 석·박사급 컨설팅 전문인력들이 그룹내 의사결정을 지원하고 있다. 그의 경력은 다채롭다. 서울대 농경제학과(82학번) 출신으로 행정고시(29회)에 합격한 뒤 99년 2월 재정경제부 서기관에서 삼성증권 이사로 자리를 옮기며 공무원이 민간기업에 진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공무원 시절에는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그는 “V소사이어티에서 활동하면서 고객만족, 조직문화, 글로벌시장 개척 등 기업인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었다.”면서 “그 간접 경험들을 바탕으로 업그레이드를 준비하는 CJ그룹의 의사결정을 돕는데 일조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몇년간 개인 사업도 시도했다. 조직의 보상과 평가 등을 자문하는 ‘브이휴먼컨설팅’과 인터넷전문은행업을 하려던 ‘V뱅크컨설팅’ 등을 2년간 직접 운영했으나 지난해 모두 정리했다. 이후 법무법인 선명,SR그룹 등에서 고문으로 일해오다 CJ측으로부터 연구소장 제의를 받고 이달부터 출근하고 있다. 그의 경력이 지향하는 종착점이 궁금했다.“나이들어 학교나 공직 쪽에서 지금까지의 경험들을 활용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재계 인사이드] 재벌 2~3세 ‘외식사업 경쟁’

    재벌들이 운영하는 패밀리 레스토랑 업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이달 들어 1800만 가입자를 가진 SK텔레콤과의 제휴 관계가 속속 새로워지면서 지각변동마저 점쳐지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동양그룹 고 이양구 회장의 차녀인 오리온그룹의 엔터테인먼트 부문 총괄 이화경(49) 사장이 운영하는 패리밀 레스토랑 ‘베니건스’는 7일까지 350명을 신규 채용한다. 업계 매출 3위를 달리고 있지만 7월부터 업계 1위인 ‘아웃백스테이크’가 SK텔레콤과 결별하고 자사와 제휴(SK텔레콤 가입자 20% 할인)가 시작돼 약진의 기회로 삼고 있다. 현재 24개 점포에서 연말까지 30개 점포로 확장한다. 이 사장은 롸이즈온이란 별도 법인을 세워 ‘베니건스’이외에 ‘미스터 차우’란 중국 음식점 체인도 운영중이다. 남충우(61) 타워호텔 회장 장녀인 남수정(37)씨가 운영하는 외식 브랜드인 썬앳푸드 계열의 ‘토니로마스’와 ‘스파게티아’도 이달부터 SK텔레콤과의 제휴가 이뤄져 매출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밖에 ‘메드포갈릭’ 등 신규 브랜드도 계속 히트치고 있어 연말까지 총 8개 매장을 추가 오픈할 예정. 현 매장수는 총 47개. 사보이호텔 3세 조현식(37) ㈜사보이F&B사장이 운영하는 패밀리 레스토랑 ‘카후나빌’도 이달부터 SK텔레콤 할인 연합 전선에 들어왔다. 사보이측은 “연내 80억원을 투자해 부산 등 국내 2곳에 추가 출점하고, 카후나빌의 아시아지역 프랜차이즈 권한자로서 중국에도 진출한다.”고 밝혔다. 롯데와 CJ의 행보도 적극적이다. 패밀리레스토랑 브랜드 2위인 ‘TGI프라이데이즈’는 현재 35개인 매장을 연말까지 44개로 확대한다.SK텔레콤과 2년째 제휴한 만큼 추가 할인행사도 벌인다. 빕스, 한쿡 등 7개 외식 브랜드를 가진 CJ푸드빌은 지난해까지 총 84개이던 매장을 연말까지 119개로 늘린다. 패밀리레스토랑 ‘마르쉐’를 운영하는 신희호(47) ㈜아모제 사장은 아미가 호텔 신철호(55) 사장의 동생. 지난해 2월 시작한 퓨전 오무라이스 전문점 ‘오므토토마토’를 연내 4개 추가 오픈한다. 이밖에도 재벌 2∼3세들의 외식 사업은 활발하다. 남양유업 홍두병 명예회장의 셋째아들 홍명식(45) 사장은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에 있는 퓨전 베트남 식당 ‘미세스마이’ 2호점을 이달중 홍대에 낸다. 또 서울파이낸스센터 지하와 서초·대치 3곳에서 회전 초밥 전문점 ‘사까나야’도 운영중이다.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의 둘째동생 구자학(75) 회장이 이끄는 아워홈은 지난해부터 SK그룹이 운영하던 서울파이낸스센터내 이끼이끼, 싱카이, 메짜루나 등 비즈니스 레스토랑 5곳을 인수해 운영중이다. 이밖에 돈가스 체인 ‘사보텐’ 10개,GS트윈타워와 GS타워 등에 11개 레스토랑을 운영중이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SKT·KTF·LGT 슬로건·서비스등 각양각색

    이동통신업체들의 광고 전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서비스 내역, 공익 캠페인 등 각종 주제를 통해 자기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어 눈길을 끈다.●브랜드 자신감…SK텔레콤 바캉스철을 맞아 ‘자동로밍은 여행 필수품’이란 주제의 광고를 TV와 신문에 내보내고 있다. 차별화된 서비스를 강조하기 위한 ‘SK텔레콤을 쓴다는 것’ 캠페인의 하나이다. 이통 3사 중 유일하게 자신의 휴대전화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가 쓸 수 있는 서비스 특성을 부각하기 위해 ‘이제 해외로밍은 비즈니스맨의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바캉스 패션의 한 젊은 여성이 한 손에는 짐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환하게 웃는 사진을 배경으로 ‘해외에서도 내 휴대폰 내 번호 그대로-SK텔레콤 자동로밍!’이라고 적고 있다. 기업 이미지편은 자사가 후원한 영화 ‘말아톤’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23)씨를 모델로 내세웠다. 정보통신 기술로 미래의 희망을 만들어 나가는 SK텔레콤의 비전을 배씨의 모습과 동일시시킨다는 의도다. 역시 TV와 신문에서 공동 집행중이다.●사회공헌에 앞장…KTF 국내 최대 정보통신 그룹인 KT의 자회사인 KTF 광고는 유독 공익캠페인이 많은 게 특징이다. 특히 선천성 면역결핍증이 있어 이른바 ‘유리공주’란 별명을 가진 신원경(7) 어린이를 등장시킨 기업이미지 신문 광고를 꾸준히 내보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광고 모델이 되는 게 꿈인 이 어린이의 소원을 KTF가 들어준 것으로 유리공주의 개념과 대비시켜 ‘희망만은 절대 깨지지 않는다.’는 카피를 넣은 것이 인상적이다. 이밖에 ‘올바른 휴대전화 문화의 정착’을 주제로 벌이는 ‘모티켓’ 캠페인 광고는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의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에티켓을 지키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에 앞서 ‘독도의 날’ 제정으로 일본에 대한 국민 감정이 악화됐던 지난 4월에는 ‘일본 휴대전화가 되는 곳은 일본 땅이고, 한국 휴대전화가 되는 곳은 한국 땅입니다.’라는 시의성있는 광고를 집행해 갈채를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KTF가 후원하는 무명의 김주연 선수가 미국 LPGA US 여자오픈 골프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이 선수가 트로피에 키스하는 사진을 담은 광고를 게재하고 있다.‘세상에 주인공 아닌 사람은 없다.’라는 문구를 통해 무명의 선수를 발굴해 키운 자사의 성과를 부각시키고 있다.●경쟁력을 알려라…LG텔레콤 LG텔레콤은 저렴한 가격을 제시한 새로운 요금제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하나하나 쓸모있게’라는 슬로건과 함께 ‘LaLaLa 요금프로젝트’ 캠페인을 벌이면서 주말 평일 구분없는 무료 요금제, 해외 통화료가 최저인 국제전화 00388 등을 알리고 있다. 특히 국내 최초로 MP3플레이어가 장착된 휴대전화기를 제공했던 점을 내세우며, 자사 고객들이 쓸 수 있는 단말기인 ‘캔유폰’ 광고도 집행중이다.‘국내 최대 LCD화면의 LG텔레콤 캔유 와이드 폰은 생생함이 와이드’란 제목을 달았다. TV광고와 함께 진행되는 이 신문 광고는 링 위에서 한 레슬링 선수가 다른 선수를 멀리 던졌으나 그 선수가 보이지 않는데, 알고 보니 더 넓어진 LCD 화면 저 끝까지 선수가 던져졌기 때문이란 설정을 담고 있다.‘크기도 PDP 스타일, 화질도 PDP 스타일, 소리도 PDP 스타일’이란 제품 특성을 부각하고 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애니콜 연속 톱브랜드

    ‘부동의 1위…애니콜’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브랜드인 ‘애니콜’이 지난 1·4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국내 100대 브랜드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다.3일 브랜드가치 평가 전문기관인 ‘브랜드스톡’(www.brandstock.co.kr)이 발표한 2005년 2분기 100대 브랜드에서 ‘애니콜’은 937점을 받아 1위에 올랐다. 이어 SK텔레콤의 이동통신서비스 브랜드인 ‘스피드 010’(919점)과 현대차의 ‘쏘나타’(914점)가 2위,3위를 차지했다. 이마트는 1단계, 나이키는 2단계 상승하며 각각 4위와 5위를 기록했고 KTF,BMW, 에버랜드, 코카콜라, 참이슬 등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새로 입성한 브랜드는 아파트 브랜드 자이(66위), 스타벅스(74위), 롯데캐슬(77위) 등 모두 10개다. 여름철로 진입하면서 관련 브랜드가 강세였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아파트와 가전 브랜드들도 상승세를 보였다. 전통 브랜드와 수입차 브랜드는 전반적인 부진을 기록했다. 조사 결과는 브랜드스톡이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16개 업종,160여개 품목의 대표 브랜드 561개를 대상으로 평가한 지수를 근거로 이뤄졌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SK “행복캠페인 김장훈과 함께”

    SK그룹은 자원봉사 활성화를 위해 전개중인 자사의 ‘행복캠페인’의 10번째 모델로 가수 김장훈(38)씨를 선정했다고 3일 밝혔다. 행복캠페인이란 SK그룹 홈페이지를 통해 평소 자원봉사에 적극적인 인물을 추천받은 뒤 활동 경력을 평가해 자원봉사 활동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선정된 모델과 해당 모델의 후원 활동 내용은 SK그룹의 기업이미지를 위한 인쇄 광고로도 제작, 활용된다. SK그룹에 따르면 김씨는 1998년부터 부천 소재 고아원 새소망의 집과 성남의 결식아동 급식 및 교육단체 푸른학교를 꾸준히 후원해 왔다. 특히 2001년에는 일산 불우 청소년을 위한 교회설립에 앨범 계약금과 수익금 9억원에 사재 3억원을 합쳐 총 12억원을 기부했다. 또 공연 때마다 항상 좌석의 1%를 장애우를 위해 비워두는 것으로도 유명하다.SK그룹은 “김장훈씨의 경우 가수로서보다 평범한 이웃으로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펼쳐왔다는 점을 높이 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인터넷실명제 Yes

    인터넷 실명제 도입의 당위론을 주장하는 의견이 많아지면서 실명제 시행에 힘이 실리고 있다. 포털 자체 조사에서 반대 의견보다 찬성쪽이 지지를 얻고 있는 가운데 정보통신부도 실명제 도입을 전제로 각종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3일 포털업계에 따르면 야후가 네티즌들을 상대로 인터넷 실명제 도입에 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이날 오후 현재 1629명 가운데 응답자의 80%인 1304명이 찬성한 반면 반대한 네티즌은 19%(298명)에 그쳤다. 포털 네이버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5%가 인터넷실명제 도입에 찬성했다. 반대 입장을 보인 네티즌은 32%에 그쳤다. 드림위즈에서도 찬성 57%, 반대 37%로 역시 찬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근 사이버 폭력이 기승을 부리면서 인터넷상 인권침해, 명예훼손, 욕설 등의 부작용이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반영한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 진대제 정통부 장관도 지난 6월 공개적으로 실명제 도입의 필요성을 거론한 바 있다. 정통부 나봉하 인터넷 정책과장은 “지난 1월 불거진 ‘연예인 X파일’부터 최근의 ‘트위스트 김’‘개똥녀’ 등 사건을 보면 인터넷 명예훼손에 따른 피해자들의 정신적 충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면서 “이들의 고통은 표현의 자유란 명목으로 희생될 수 없는 절박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실명 게시판만 운용하도록 하는 법을 제정하거나 실명 게시판 운영 사업자에게 각종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등 여러 형태의 실명제 도입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경찰청에 접수된 각종 사이버 범죄신고 건수는 지난 2002년 11만 8868건에 불과했으나 2003년 16만 5119건,2004년 20만건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피해까지 감안하면 실제 신고 건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포털업계는 여전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업계는 최근 정통부가 충남 천안 정보통신공무원교육원에서 인터넷 실명제를 주제로 가진 토론회에서 익명과 실명을 구분해야 한다며 실명제 도입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석종훈 다음커뮤니케이션 부사장은 “실명제를 실시한다고 해서 우려하는 문제가 일거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사이버 테러나 명예훼손을 당한 사람이 피해 사실을 알리고 중재할 수 있는 기관을 만들어 피해 확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진호 인터넷기업협회장도 “온라인상에서 실명 공간과 익명 공간의 구분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면서 “실명제와 익명제는 선택의 문제로 남겨둬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 실명제 도입은 대세로서 어떤 형태로든 도입될 것”이라면서 “인터넷이 지금처럼 성장한 이유는 익명성 덕분인 만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할 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1) 창업 趙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한진그룹 (1) 창업 趙회장 일가

    “당신, 이야기(베트콩 습격으로 한진직원 5명 사망) 들었소? 내 두말도 안하겠소! 우리 운전수들 군인 출신이오. 방어용으로만 할 테니 M16을 지급해 주시오.”(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 “너 미쳤냐? 어떻게 민간인에게 군대 소총을 나눠주라는 거야.”(찰스 마이어 꾸이년지구 사령관) “돈 벌러 와서 죽을 수는 없지, 우리도 방어는 해야 할 거 아냐.”(조 전 부회장) “미스터 조, 이건 사이공 사령부도 모르는 일이오. 당신과 나만 아는 일이오, 알겠소?그리고 절대 먼저 쏘지 마시오.”(마이어 사령관)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이 자서전에서 밝힌 이 대화는 한진이 사지인 베트남 정글에서 어떻게 달러를 벌었는지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해방둥이’ 한진이 ‘수송보국’의 길을 걸은 지 60년. 이런 피와 땀들이 모여 오늘날 육·해·공을 아우르는 ‘세상의 길’을 개척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길라잡이’에는 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이 서있었다. 길이 있는 곳에 ‘한(韓)민족의 전진(進)’, 한진이 있다며 전장으로, 바다로, 하늘로, 수송 외길을 걸어온 고 조 회장. 이 때문에 한진그룹의 23개 계열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5대양 6대주에서 한민족의 영토를 세계로 넓히고 있다. ●전장에서 성장한 한진 “형님이 경제시찰단의 일원으로 베트남에 갈 때입니다. 돈 될 만한 사업이 있을 것으로 확신했던 중훈 형은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베트남 꾸이년지역의 풍경에서 바로 사업 아이디어를 찾아냈습니다. 항만을 보니, 화물이 꽉 찬 배가 50척이 몰려 있더라는 것입니다. 단순히 그것만 본 것이 아니라 배들이 짐을 실은 채 마냥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죠. 순간적으로 상황을 파악한 형님은 갑자기 창문에서 휙 돌아앉아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고 합디다. 다른 사장들이 쳐다볼까 싶어 큰 일이라고 생각한 거죠.”조 전 부회장은 한진의 베트남사업 첫발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진의 화물수송사업은 전후방이 없었던 베트남에서 당연히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고 조 회장은 빗발치는 전장을 오가며, 뚝심과 오기로 밀어붙였다. 베트콩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고, 직원들이 공포에 떨 때는 사기를 높이기 위해 직접 수송 차량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그런 고생끝에 주어진 과실은 너무나 달콤했다. 한진이 1966년부터 5년간 베트남에서 벌어들인 달러는 무려 1억 5000만달러. 당시 한국은행이 보유한 가용외화가 5000만달러 남짓이었으니, 한진이 베트남에서 얼마나 많은 돈을 벌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진은 베트남 특수로 당당히 재벌 반열에 들어선다. 고 조 회장은 67년 7월 자본금 2억원으로 대진해운을 설립했고, 그해 9월에는 삼성물산으로부터 동양화재를 5억 7000만원에 인수했다. 또 68년 2월에는 한국공항,8월에는 건설회사인 한일개발(현 한진중공업)을 세웠다. 이어 인하대학교도 인수했다. ●부실기업 대한항공공사 인수 고 조 회장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위기이자 도전을 맞이한다. 다름아닌 항공사업이었다. “청와대로부터 호출이 왔었습니다. 어느 정도 짐작가는 내용이었죠.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과 이후락 비서실장, 김성곤 공화당 의원 등이 수시로 드나들면서 만년 적자 공기업인 대한항공공사 인수를 독촉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형한테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도 불안해서 저도 형님과 같이 청와대에 따라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뿐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 국적기를 타고 해외 나들이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게 소망이라는데 형님이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조 전 부회장) 고 조 회장은 결국 69년 ‘말 많고 탈 많았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했다. 항공공사는 당시 프로펠러기 7대와 제트기 1대를 보유했지만, 전체 좌석수는 점보기 1대보다 적었다. 또 27억원의 부채는 감당키 어려운 것이었다. 이 때문에 임원들은 ‘베트남에서 목숨 걸고 번 돈을 부실 항공사에 모두 쏟아붓게 됐다.’며 크게 우려했다. 그러나 고 조 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국제선 개척으로 이를 헤쳐나갔다. 그리고 36년 후 대한항공은 화물수송 세계 1위, 보유 항공기 113대, 매출 7조 2000억원(지난해)이라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창업주에겐 은퇴란 없다” 트럭 한 대로 국내 최대의 운수그룹을 일군 고 조 회장은 팔순의 나이에도 명예회장으로 물러나지 않고, 현장을 챙길 정도로 노익장을 과시했던 정열적인 경영자였다. 그가 모언론 인터뷰에서 “창업주에게 은퇴란 없다.”고 한 말은 그의 성격과 일 욕심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고 조 회장은 또 ‘남이 닦아놓은 길을 뒤쫓으며 훼방하는 얌체사업’을 싫어했다. 모르는 사업에 뛰어들어 ‘문어발식’ 확장도 자제했다.‘낚싯대를 열개, 스무개 걸쳐 놓는다고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게 아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그는 모르는 사업을 하기보다 수송 전문화에 더 집중했다. 주변에서 ‘돈 버는’ 무역회사를 만들자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고 조 회장은 그때마다 “우리가 무역회사를 하면 많은 무역회사들이 우리의 경쟁자가 될 텐데 그들이 우리 비행기를 타고 우리에게 화물을 맡기겠느냐.”며 반대했다고 한다. 그는 1920년 부친 조명희옹과 모친 태천즙 여사의 4남4녀 가운데 둘째로 태어났다. 부친은 집안을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뚝딱거리고 어질러 놓기를 좋아했던 둘째아들에게 ‘동(動)과 정(靜)이 조화를 이룬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정석(靜石)’이란 아호를 지어주었다고 한다. 고 조 회장은 45년 광복 직후 인천에서 한진상사를 설립, 수송 외길의 첫발을 내디뎠다. 고만 고만하던 한진상사가 두각을 낸 것은 56년 미군부대 화물 수송을 맡으면서다. 이때 맺은 미군과의 인연은 한진 성장의 든든한 ‘우군’이 됐다. ●“찰리 조, 보따리 좀 싸봐” 조중건(영어명 찰리) 전 부회장은 창업주인 고 조 회장의 동생이라기보다 사업 동반자이자, 유능한 참모였다. 조 전 부회장은 통역과 포병장교로 6·25 전쟁에 참전한 뒤, 미국 버클리대학에서 수송학을 전공했다. 59년에 귀국한 그는 바로 한진에 합류했다. 조 전 부회장의 본격적인 활약은 베트남 전쟁에서 발휘됐다. 고 조 회장이 1965년 베트남을 시찰한 뒤, 조 전 부회장에게 이렇게 말했다.“니가 가서 보따리 좀 싸봐.”이 말은 한번 기획을 잘 해서 사업으로 만들어 보라는 ‘조 브러더스(중훈·중건 형제)’의 은어였다. 조 전 부회장은 미군 인맥을 활용해 중장비 조달 등의 악조건을 뚫고 베트남 꾸이년항의 미군 용역과 수송작업을 따냈다. 계약금액은 790만달러. 조 전 부회장의 설명이다.“베트남 수송사업을 돌아볼 때 그것은 참으로 100년만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사업이었다.” 조 전 부회장은 또 고 조 회장을 도와 70∼80년대 대한항공의 성장사를 주도했다. 국제노선 개척을 위해 당시 소련과 중국 등 적국까지 넘나들며, 대한민국의 하늘을 넓혀 놓았다. 항공노선과 관련된 에피소드 한토막. 그는 88년 서울올림픽 선수단 수송을 위한 부정기 항공 노선을 뚫기 위해 혈혈단신 모스크바로 날아갔다. 구소련 국영 아에로플로트 항공사 사장과 항공청 장관, 체육부 장관을 만나 설득에 들어갔지만, 요지부동이었다. 하루는 그들이 조 전 부회장을 한 궁전의 깊숙한 곳으로 안내하더니, 약속이라도 한 듯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사우나탕과 보드카로 조 전 부회장의 진을 빼기 시작했다. 수십번 반복된 행동으로 조 전 부회장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정신력으로 계속 버티며, 협상을 주도해 나갔다. 동이 틀 무렵 조 전 부회장은 그들의 수장으로부터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 고 조 회장의 막내동생인 조중식(70) 전 한일개발(현 한진중공업) 부회장은 미국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한 뒤 한진에 입사했다. 당시 새로운 건축공법인 H-빔 공법으로 서울 소공동 KAL빌딩 설계 및 시공을 했으며, 중동 특수 때 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 많은 공사를 따내기도 했다. ●조씨가, 명망가로 사통팔달 한진 조씨가의 혼맥은 명망가 집안이 두루 포함돼 있다. 관·재·학·법조계 등으로 폭넓게 뻗어있다. 또 연애 결혼보다 유난히 중매 결혼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창업주인 고 조 회장은 1944년 집안 어른의 중매로 평범한 집안의 김정일(82) 여사와 결혼했지만, 그의 동생들과 자녀들은 당대의 유력 인사의 자녀를 배필로 맞았다. 고 조 회장과 김 여사는 슬하에 4남 1녀(현숙·양호·남호·수호·정호)를 뒀다. 장녀인 조현숙(60)씨는 68년 숙부인 조 전 부회장의 중매로 당시 엘리트 법조인인 이태희(65·현 법무법인 광장 대표변호사) 서울지방법원 판사와 인연을 맺었다. 이 변호사는 흥아타이어 감사를 지냈던 이상묵씨의 장남으로 서울대 법대와 미국 하버드대 법학박사 출신이다. 조양호(56) 대한항공 회장은 73년 이재철 전 교통부 차관의 장녀인 명희(56)씨를 부인으로 맞이했다. 이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 고 조 회장과 이 전 차관이 한 모임에서 아들·딸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다가 인연이 돼 사돈간이 됐다. 조 회장 얘기다.“양가에서 혼담이 오가던 중에 장모님이 예비 사위 얼굴을 보기 위해 집을 찾아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 사진을 보고 흡족하셨던 모양입니다. 군제대 후에 바로 결혼하게 됐습니다.” 당시 양가의 통혼은 운수기업과 주무부처인 교통부의 고위층 집안이 맺어졌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조 회장의 장인인 이 전 차관은 76년 공직에서 물러난 이후 인하대와 국민대, 중앙대 총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계 인사로 활약했다. 조남호(54) 한진중공업 회장은 김원규 전 교육감의 차녀인 영혜(54)씨와 우연히 테니스코트에서 만나 결혼에 성공한 케이스. 형제들 가운데 유일하게 연애결혼에 성공했다. 조양호 회장은 “다른 형제는 해외에서 공부하다 보니 집안에서 혼사를 챙겼지만 둘째는 국내에서 대학을 나오다 보니, 주변 친구들의 도움으로 연애를 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조수호(51) 한진해운 회장은 조씨가가 국내 재벌가와 혈연으로 얽혀지는 첫번째 다리를 놨다. 조 회장의 처가가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집안이기 때문이다. 부인인 최은영(43)씨의 모친이 신 회장의 넷째 여동생인 신정숙 여사다. 신 여사의 남편은 최현열 전 NK그룹 회장이다.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은 87년 구자학 아워홈 회장의 차녀인 명진(41)씨와 혼인했다. 이 결혼으로 한진 조씨가는 재계 혼맥의 주류로 편입된다. 장인인 구 회장이 LG 구씨가이기 때문이다. 또 삼성 이씨가와도 바로 연결된다. 구 회장의 부인인 이숙희 여사가 고 이병철 삼성 회장의 차녀다. ●방계 혼맥도 장관 사돈 많아 고 조 회장의 형제자매 혼맥도 전직 장관 가문부터 평범한 집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조중건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상실 전 상공은행장의 3녀인 영학(68)씨와 결혼해 1남 3녀를 뒀다. 장남인 진호(43)씨는 이종남 전 감사원장의 장녀인 경아(35)씨와 인연을 맺었다. 장녀인 윤정(41)씨는 이동원 전 외무부 장관의 장남 정훈(44)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쌍둥이인 주은(38)씨는 미혼, 주연(38)씨는 김태효(38) 성균관대 교수와 결혼했다. 조씨 가문의 장자인 고 조중렬 전 한일개발 부회장은 최학희(80) 여사와 결혼,2남 1녀를 뒀다. 장손인 조지호(57) 한양대 교수는 이병호 전 상공부 장관의 장녀 숙희(56)씨와 혼례를 올렸다. 차남 건호(53)씨는 재미동포인 윤주덕 내과의사의 딸 영태(51)씨를 아내로 맞았으며, 장녀인 인숙(59)씨는 문영호(66) 전 동부제일병원 내과과장과 혼인했다. 영호씨의 부친은 제일은행 이사를 지낸 문재관씨다. 고 조 회장의 첫째 여동생인 조정옥(82) 여사는 전윤진(89) 전 동양화재 감사와 인연을 맺었으며, 둘째 여동생 조정원(80) 여사는 박두진(78)씨와 혼례를 치렀다. 셋째인 조도원(77) 여사는 박태원(79) 전 한국과학기술원 이사장과 결혼했으며, 막내인 조경숙(75) 여사는 재미교포 외과의사인 박소회(78)씨에게 시집갔다. 고 조 회장의 막내 남동생인 조중식 전 한일개발 부회장은 교육자 집안 출신인 김복수(68)씨를 아내로 맞았다. golders@seoul.co.kr ■ “떠날때는 ‘쿨’ 하게” ‘2인자’ 조중건, 조카 경영권승계 앞두고 야인으로 역사적으로 2인자의 삶은 불행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1인자를 향한 욕심이 화(禍)를 불러들인 탓이었다. 반면 드물게 성공한 2인자는 맺고 끊음이 명확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은 이런 점에서 성공한 2인자로 분류할 수 있다. 그는 1996년 조카들의 경영권 승계가 마무리될 시점에 미련없이 대한항공을 나와 야인으로 돌아갔다. 오너가(家)의 일원이기보다 전문경영인으로서 행동했으며, 나아가고 물러날 때를 알았던 것이다. 1인자에 대한 욕심은 없었을까. 조 전 부회장이 한때 하와이에 머무는 것을 놓고 일각에서는 형제간의 ‘힘겨루기’로 보는 견해도 있었다. 또 조 전 부회장이 일정 기간 대한항공의 ‘수장’을 맡다가 장조카인 조양호 대한항공 사장(현 회장)에게 물려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한진그룹의 일부 계열사를 받을 것으로 판단한 이도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세간의 예측과 달리 조 전 부회장은 모든 것을 훌훌 털고 하와이로 떠났다. 조 전 부회장은 훗날 이같이 전했다.“형제간이라도 언젠가 헤어질 거면 기분좋게 헤어지고 싶었다. 조카들의 앞길을 막는 것은 보기가 안 좋았다. 또 한국에 있으면 언론 인터뷰를 하게 되고, 이 때문에 본의 아니게 형(고 조중훈 회장)에게 누를 끼칠까봐 신경이 쓰였다.”시쳇말로 어차피 헤어질 거면 ‘쿨하게’ 떠나고 싶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96년 초 작은아버지께서 물러나시기를 원하셨다.”면서 “선친도 그동안 숙부께서 고생하셨던 것을 잘 아셨던 만큼 섭섭지 않게 해드렸다.”고 설명했다. 그럼 조 전 부회장이 생각한 2인자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혔다.“형이 대한항공의 ‘선장’이었다면, 나는 ‘일등항해사’였다. 선장은 모름지기 새로운 곳을 향한 모험심과 카리스마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 배를 움직이는 것은 일등항해사다.2인자는 항상 해결사 역할을 해야만 했다. 성공확률은 거의 50% 이하였다.” 그는 그렇다고 무조건 ‘예스맨’이 2인자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조 전 부회장은 고 조 회장이 정부로부터 부실기업을 인수할 때마다 형에게 수없이 대들었다.“형, 하지 마시오. 밑빠진 독에 물붓기요.”그러나 조 전 부회장도 끝내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최단 기간에 부실 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고 조 회장이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이를 현실화하는 것은 언제나 조 전 부회장의 몫이었다. 그는 그 고통을 이렇게 표현했다.“전면에 나선 총수가 그저 ‘이러 저러하니, 알아서 만들어봐.’라고 화두만 획 던질 뿐일 경우가 많다. 물론 1인자에게는 1인자의 고뇌가 있다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을 처리하는 입장에서는 작은 일 하나 때문에 며칠을 헤매야 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는 그럼에도 2인자의 삶이 만족스러웠다고 회고했다.“2인자들은 1인자가 꾸는 꿈에 덩달아 취해 열정을 다해 일하는 존재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형은 육·해·공의 종합물류 기업이라는 꿈을 내게 보여줬다.” golders@seoul.co.kr ■ 역대 정권과의 인연 1999년 4월20일,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한항공에 대한 고강도 제재 의사를 내비쳤다. 민간기업에 대한 청와대의 이같은 조치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빌미를 제공한 것은 대한항공. 대한항공기의 잇단 사고가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는 것이 당시의 분위기였다. 더구나 국적항공사의 항공 사고는 국가 이미지에 미치는 악영향이 적지 않았다. 한진그룹 조씨가(家)로서는 처음으로 맞는 정권과의 갈등이었다. 한진 조씨가와 역대 정권과의 인연은 ‘극과 극’을 달린다는 점에서 국내 여느 재벌가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박정희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가 우호적 관계였다면, 김대중 정권때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고 조 회장은 국적항공사 대표라는 신분과 특유의 사교성, 부지런함 덕분에 역대 정권의 핵심 인사와 적지 않은 친분을 쌓았다. 이 때문에 사업상 ‘손해본 장사’도 많았다. 고 조 회장은 리스크를 떠안으면서도 정권이 요청한 부실기업을 잇따라 인수했다. 대한항공공사(현 대한항공)를 비롯해 대한선주(현 한진해운과 합병), 조선공사(현 한진중공업)를 떠안았다. 동시에 미국, 일본, 프랑스 등 해외 인맥을 활용, 민간 차원의 외교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또 30여년간 한진그룹의 ‘2인자’였던 조중건(73) 전 대한항공 부회장도 과거 군경력을 바탕으로 폭넓은 인맥을 구축했다. 그렇다고 인맥을 활용해 특혜를 누린 것은 아니었다. 그가 자서전에서 밝힌 대목이다. “1953년부터 2년간 미국 포병학교 교관 생활로 400여명의 기간 장교들과 많은 인맥을 형성할 수 있었다.(중략)나는 박정희 대통령과 매우 친근한 관계였고 나를 친아우처럼 아껴주셨고, 가끔 당시 혁명 주체들이 내 형(조중훈 회장) 집에서 모여 회의를 했다. 만약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이권과 청탁으로 돈을 긁어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나 형은 그런 방식으로 돈을 버는 것은 신기루와 같다고 여겼다.” 그러나 98년 DJ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씨가는 서서히 ‘쓴맛’을 보기 시작한다. 대통령 전세기의 경쟁 입찰제 도입은 그 신호탄이었다. 이어 국세청 조사인력 240여명이 동원된 3개월간의 한진그룹 세무조사는 조씨가를 무척 당혹스럽게 했다. 이처럼 DJ정권이 대한항공에 대해 강하게 ‘칼자루’를 휘두른 이유는 뭘까.1차적으로 DJ정권 출범 이후 크고 작은 대한항공측의 사고 탓이었다. 대한항공의 문제는 기업뿐 아니라 국가 이미지 훼손이라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었다. 여기에 과거 조씨가가 보인 ‘반DJ 행보’도 일부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세무조사 이후 대한항공은 노선권 배분 차별 등 정부로부터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 그러나 법보다 감정을 앞세운 정부의 무리수도 적지 않았다. 사법부는 대한항공이 잇따라 제기한 노선 배분 소송에서 정부 결정을 뒤엎는 판결을 속속 내렸다. golders@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디자인·제품 정말 베꼈나

    제과업계 1·2위인 롯데제과와 오리온이 또다시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양사는 법적 다툼을 대외에 공개하지 않기로 하는 이른바 ‘신사 협정’까지 맺고 있을 정도로 잦은 마찰을 빚고 있다. 1일 서울서부지법에 따르면 롯데제과는 지난 5월 오리온이 출시한 쿠키인 ‘마로니에’의 포장 디자인이 자사 제품 ‘마가렛트’와 비슷해 소비자에게 혼동을 줄 수 있다며 더이상 이 디자인으로 제품을 내놓지 못하게 해달라고 법원에 ‘부정경쟁행위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롯데제과측은 “롯데의 ‘마가렛트’ 포장 디자인이 유명해 오리온이 이를 그대로 모방한 유사 제품을 내놓아 혼동의 여지가 있다.”면서 “내용물의 생김새까지 비슷하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리온측은 “롯데의 주장과 달리 제품 디자인 전면의 색상과 삽입된 그림에서 명백한 차이가 있다.”면서 “제품 모든 면에 ‘오리온’ 등 상표가 명확히 표기돼 있어 혼동의 여지가 없다.”고 반박했다. 롯데와 오리온의 법정 분쟁 연혁을 보면 롯데의 일방적인 승리가 대부분이다. 첫 분쟁은 1991년 ‘후라보노 껌’에서 시작됐다. 먼저 출시한 오리온이 롯데가 자사 상표를 모방했다며 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후라보노’가 껌 원료를 표기하는 보통명사라며 롯데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어진 ‘초코파이’ 분쟁도 같은 논리로 롯데가 이겼다.1997년 오리온이 롯데제과의 상표등록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지만 당시 대법원 재판부는 “초코파이는 상표 보다 초콜릿을 바른 과자류를 지칭하는 것”이라며 롯데 편을 들어주었다.1974년 오리온이 ‘초코파이’를 냈고 5년 후 롯데제과가 첫 글자만 바꾼 ‘롯데 쵸코파이’를 내놓은 바 있다. 가장 최근 결론난 분쟁은 ‘자이리톨껌’이다. 롯데제과는 지난 2001년 오리온이 자사 자이리톨껌이 더 안전하다는 취지의 광고를 낸 것은 문제가 있다며 해당 광고를 금지해 달라고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나아가 롯데제과는 2003년 자사의 ‘자이리톨껌’과 오리온의 ‘자이리톨껌’의 봉지형 용기 디자인이 소비자에게 혼동을 준다며 오리온이 해당용기의 제품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한편 오리온은 롯데가 자사 제품 ‘포카칩’과 이름이 비슷한 ‘포칸’을 판매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상표 이용금지 신청을 냈고, 현재 사건은 심리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식·음료 업계에서 비슷한 내용, 포장, 이름 등의 제품이 나오는 것은 다반사다.”면서 “그러나 아무리 잘 따라 만들어도 아류 제품은 장수 제품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말했다.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100만원대 보급형 로봇 내년 하반기부터 상용화

    100만원대 보급형 로봇 내년 하반기부터 상용화

    인터넷과 연결돼 집안에서 청소, 오락, 경비 등을 수행할 수 있는 100만원대의 보급형 로봇이 내년 하반기부터 상용화된다.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은 29일 정통부에서 열린 ‘정보기술(IT) 기반 지능형 서비스 로봇 개발 중간성과 보고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로봇 모델 개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시판 중인 청소 로봇은 자체 지능이 내장된 ‘독자형’이지만 내년에 나오는 ‘국민형 URC 로봇’은 두뇌가 인터넷 네트워크에 있다. 때문에 지능을 높이기 위해 별도의 고가 장비를 설치할 필요가 없어 성능 대비 가격 인하 가능성이 높다. 정통부는 이날 행사에서 현재 개발 중인 URC 로봇 6종을 공개, 인터넷과 연결돼 날씨와 개인 일정을 알려주고 e메일에 감정을 실어 읽어주는 등의 기능을 선보였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