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아픔 씻은 희망음자리표
“기타, 드럼을 한참 치다 보면 누군가를 미워하던 마음이 저도 모르게 풀려 버립니다. 이게 음악의 힘일까요?”
26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의 JY실용음악학원. 기타로 ‘아침이슬’을 연주하던 정하늘(14·숭문중 2)군은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기막히게 연주해 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겉보기에는 여느 또래와 다름없이 밝은 모습이지만, 정군은 학교 폭력의 피해 당사자이다. 지난해 7월부터 학교 친구들에게 놀림을 당했다. 가해 학생은 (부모님이 멀쩡히 계신 정군에게)‘너 엄마, 아빠 안 계시지?’라며 툭툭 치고, 시비를 걸기 일쑤였다. 급기야 9월에는 교실에 앉아 있던 정군의 가슴팍을 세게 때렸다.
정군은 결국 117 학교폭력신고센터에 손을 내밀었다. 가해 학생은 정군이 선처를 호소해 간신히 징계를 면했다. 사건 처리과정을 지켜본 서울 마포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SPO) 송준한 경위는 정군에게 기타를 쥐어 줬다. 군악대 출신으로 1994년 경찰 입직 전까지 10년간 밴드 활동을 했던 송 경위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음악의 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마포경찰서는 지난해 11월 JY실용음악학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올해부터 불우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료 음악레슨을 하는 ‘심통이’(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었다. 정군은 그렇게 ‘심통이’의 첫 단원이 됐다. 송 경위는 정군을 비롯해 관내 중·고교생 16명을 각 학교나 지역아동센터 추천을 받아 모집했다.
기타의 매력에 빠지기 시작한 정군은 “스트레스도 풀리고,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정군과 함께 ‘심통이’ 단원으로 드럼 레슨을 받는 박병훈(가명·18·고3)군은 필리핀 출신 어머니를 둔 다문화 가정 자녀다. 박군은 “남들과 다른 외모 탓에 중2 때까지 학교에서 엄청 괴롭힘을 당했다”며 “당한 만큼 돌려줘야 된다고 생각해 친구들을 향해 물건을 집어던지는 일이 잦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요즘에는 괴롭힘을 당하진 않지만 드럼을 칠 때마다 뭔가 가슴속 응어리졌던 감정들이 날아가는 기분”이라고 덧붙였다.
매주 한두 번씩 기타나 드럼, 피아노, 보컬 등을 가르치는 ‘심통이’ 수업은 실용음악학원 소속 교사 5명의 ‘재능기부’로 진행된다. 정군과 박군은 다음달이면 ‘서울청소년음악봉사단’의 일원이 된다. 이 실용음악학원 학생들과 졸업생, 교사들로 꾸려진 봉사단은 지난해 2월부터 마포노인복지센터와 마포종합사회복지관 등을 정기 방문해 소외받은 이웃들에게 연주를 들려주고 있다.
원장 박제연(45·여)씨는 “저소득·다문화 가정 자녀나 가슴속 응어리를 풀 곳이 필요한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에게 음악과 봉사활동을 통해 ‘나 혼자만 버려진 게 아니구나’란 걸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