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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남북 한가위 이산가족 상봉 합의 “이번엔 꼭…” 희망 찾는 사람들

    [단독] 남북 한가위 이산가족 상봉 합의 “이번엔 꼭…” 희망 찾는 사람들

    남북이 25일 추석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하면서 많은 이산가족들이 감격의 재회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이산가족 중 생존자는 6만 6000여명에 이른다. 64년 전 북에 두고 온 딸을 단 한시도 잊지 못했던 김윤희(90·여)씨와 조카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온 최은범(81)씨의 사연을 들어봤다. ■두살배기 딸 두고 온 김윤희 할머니의 눈물 “딸 생일 나만 아는데… 죽기 전 사랑 다 줬으면”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아무리 추워도 내가 너를 꽁꽁 싸서 꼭 안고 내려오는 건데….” 25일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만난 김윤희(90) 할머니는 1·4 후퇴 때 두 살 난 어린 딸이 감기라도 걸릴까 집에 두고 남쪽으로 온 것이 평생 한으로 남았다고 했다.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할머니가 살던 개성은 남한 땅이었다. 그래서 곧 다시 돌아갈 수 있을 줄만 알았다. 칭얼대는 딸을 친정어머니 품에 안기고선 아들 손을 붙잡고 돌아선 게 긴 이별의 시작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날 아침 남북 협상 타결로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될 거란 소식을 듣자마자 할머니는 대한적십자사에 전화를 걸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결심한 첫 이산가족 상봉 신청이었다. 김 할머니는 “헛된 기대만 품다 실망하게 될 것 같아 그동안 시도조차 안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안 될 걸 알면서도 용기를 냈다”고 했다. 김 할머니에게 둘째 딸 최봉미씨는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였던 김 할머니는 일 욕심이 많은 ‘커리어 우먼’이었다. 아이들에게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 남편과의 불화로 그 어린 딸에게 충분한 사랑도 주지 못한 것 같아 더욱 한스럽다고 했다. “임신했을 때 입덧이 너무 심해 음식을 거의 못 먹어서 그런지 봉미가 어릴 때부터 마르고 머리숱도 적었어요. 바쁘다고 제대로 젖도 못 먹인 게 이날까지 후회로 남아요.” 김 할머니는 30여 년 전 주영숙 전 덕성여대 총장의 개인 작품전에 갔다가 딸을 똑 닮은 청동소녀상을 구입했다. 그 후로 동상을 볕 잘 드는 창가에 세워두고 ‘봉미’라고 부르며 지낸다. 그러나 소녀상 ‘봉미’를 볼 때마다 그처럼 포동포동하고 예쁘지 못했던 딸 봉미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외려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월남 후 서울 중앙여중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다. 제자들 하나하나를 고향에 두고 온 딸이라 생각하고 가르쳤다. 그 진심이 닿았던 걸까. 머리가 하얗게 센 제자들이 아직도 은사님을 찾아온다. 그러나 김 할머니는 딸의 생사도 모른 채 자신만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 감사 인사를 받을 때마다 남모를 죄책감에 시달렸다. 딸을 만나게 되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할머니는 “그냥 생사만 확인해도 더 바랄 게 없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2월 15일이 딸 생일인데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 매년 기념하지도 않고 조용히 지나가요. 이제 나까지 저 세상 가면 누가 기억해 줄까요. 죽기 전에 만나 지금껏 주지 못한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이 한이 좀 덜어질까요.”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부모님과 이별한 최은범 할아버지의 슬픔 “복권보다 힘든 만남… 실향민 목마름 못 채워” “이산가족 상봉이 재개된다니 기쁘지요. 그런데 마냥 반갑다가도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북에 남겨둔 조카를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려온 최은범(81)씨는 25일 남북 협상 타결 소식을 듣고도 그다지 들뜬 표정은 아니었다. 2000년부터 이뤄진 이산가족 상봉을 쭉 지켜봐 온 그는 남북 간 상봉 합의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60년 넘게 흩어진 가족이 만나는 일은 실향민들에게는 가뭄에 단비처럼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너무나 미미해요.” 지금까지 해온 상봉 방식대로 남북이 매년 100명씩 가족을 주고받는다고 해도 최씨에게 조카와의 만남은 여전히 먼일이다. “우리 사이에서 가족을 만나는 건 복권에 당첨되는 것보다 힘들다고 해요. 기왕에 서로 합의한 것 이번에는 판을 좀 더 키우면 좋겠네요.” 최씨가 고향인 함경북도 성진을 떠나 남으로 내려온 것은 1948년 11월이었다. 먼저 남한에 내려가 있던 형수가 가족들을 데려가겠다며 칼바람을 뚫고 고향으로 찾아온 날이 7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그렇게 생생할 수가 없다. “갓 돌이 지난 딸을 업고 제기동에서부터 그 먼 길을 왔어요. 기차를 타면 아직도 38선 건널 수 있다면서.” 하지만 최씨의 부모는 선조들의 묘소를 지키겠다며 열네 살 아들과 막내딸만을 기차에 실어 보냈다. 이별의 시작이었지만 그게 영원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어머니가 12월에 서울에 한 번 오셨는데 북에 남겨놓은 외손녀가 불쌍하다며 다시 올라갔어요. 우리가 말릴까 봐 가족들이 자는 새벽에 몰래 가셨더라고. 이게 1949년 봄이에요.” 그로부터 1년 뒤 전쟁이 터졌다. 최씨가 찾고 있는 가족은 어머니의 외손녀로, 자신의 조카인 최봉숙씨다. “만나게 되면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맙다며 꼭 안아줘야지. 그리고 물어봐야죠. 우리 아버지, 어머니 어떻게 지내셨는지… 고향 땅에 묻혀 계시다면 그래도 행복할 것 같아요.” 그는 명절이 되면 고향 생각이 더 간절하다. “추석에 달밤을 맞으면 내 고향에서도 누군가 같은 달을 보겠지 생각합니다. 그럴 때 자식들한테 더 북쪽 얘기를 하지. 안 하면 까먹으니까.” 최씨는 자신이 태어난 집, 주변 텃밭을 거닐며 살아보는 것이 남은 소원이라고 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의 남북 양측 실무자들에 진심을 담은 당부의 말을 남겼다. “이건 이념을 따질 일도 아니고 손익을 계산할 문제도 아니에요. 절박하고 아주 긴급한 문제라고요. 이점만 명심하고 일을 하면 좋을 거 같아요.”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태풍 ‘고니’ 북상… 오늘 강원·영남 최대 300㎜ 비

    태풍 ‘고니’ 북상… 오늘 강원·영남 최대 300㎜ 비

    제15호 태풍 고니가 북상하면서 25일부터 전국이 흐리고 비가 올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태풍의 진로와 가까운 강원도와 경상남북도, 제주도를 중심으로 시간당 30㎜ 이상의 강한 비가 예상된다. 기상청은 이 지역에는 26일까지 최대 300㎜의 호우가, 서울과 경기, 충청도에는 10~40㎜의 비가 올 것으로 예측했다. 24일 오후 3시 현재 고니는 중심기압 940헥토파스칼(hPa), 최대풍속 47㎧의 강한 중형급 태풍으로 서귀포 남쪽 약 600㎞ 부근해상에서 시속 40㎞의 속도로 북상하고 있다. 기상청은 고니가 25일 오후 3시쯤에는 부산 남동쪽 140㎞ 부근을 통과하고 26일 오전 3시쯤에는 울릉도 서남서쪽 70㎞ 부근까지 접근해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25일 오후 3시를 기점으로 태풍의 강도가 ‘매우 강’에서 ‘강’으로 약해지고 최대풍속도 40㎧로 다소 약화될 전망이다. 기상청은 태풍이 우리나라 남쪽 해상을 지날 것으로 예상되면서 24일 밤부터 남해 동부 먼 바다에, 25일에는 제주도와 경상남북도, 강원도 일부까지 태풍 예비특보를 확대할 방침이다. 24일 제주도를 시작으로 내려진 호우 예비 특보도 25일 전남 일부 시·군과 강원 영동지역 일부에 각각 발효된다. 국민안전처는 고니가 25일부터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24일 오후 3시를 기준으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비상근무 수위를 2단계로 강화했다. 앞서 23일 안전처는 고니 대비 중대본을 가동하고 비상 1단계 근무를 시작한 바 있다. 안전처 관계자는 “고니가 올해 우리나라 육상에 영향을 미치는 첫 태풍으로 강한 바람과 많은 비를 동반할 것”이라고 말했다. 26일에는 전국이 대체로 흐리고 비가 오다가 아침에 서울, 경기를 시작으로 대부분 비가 그칠 것으로 보인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中동포 체불·교통사고… 중국어로 도와요”

    “中동포 체불·교통사고… 중국어로 도와요”

    “중국 동포들은 법적인 문제라고 하면 무조건 어려워하거든요.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서울대 법과대학 일반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조선족 유학생 첸링시안(29·여)은 지난달부터 서울남부지법에서 중국어 민원 상담관으로 일하고 있다. 한국어와 한국법에 익숙하지 않은 중국인과 중국 동포들에게 법률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주된 일은 억울한 사람들의 사정을 듣고 법원 행정절차에 필요한 서류 작성을 돕는 일이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중국인 왕양(23·여), 자오칭(31·여)도 지난 4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수당을 받기는 하지만 사실상 무료 봉사나 다름없다. 세 사람 중 유일하게 조선족인 첸은 “하루에 반드시 3명 정도는 상담을 하러 온다”면서 “임금 체불부터 이혼, 폭행, 교통사고에 이르기까지 상담 분야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그도 임금 체불의 피해를 본 경험이 있어 선뜻 법률 상담에 나서게 됐다고 한다. “2008년 중국어학원에서 일을 했는데 끝내 월급 80만원을 받지 못하고 일을 관둬야 했어요. 조선족에게는 이런 일이 아주 많이 일어나요. 결국 혼자서 화만 내다가 포기하고 말죠.” 중국 톈진에서 2년간 변호사 활동을 하다 유학을 온 자오는 “상담 업무를 하며 한국의 법 절차에 대해 오히려 더 많이 배우게 된다”고 말했다. 왕은 “같은 중국인이 상담을 해 주니 더욱 신뢰를 하는 것 같다”며 “상담 자체가 이제 기쁨이자 보람이 됐다”고 밝혔다. 서울남부지법 관할 지역인 영등포구와 구로구에 중국 동포들이 밀집해 살고 있어 세 사람의 활동은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첸은 “홍보가 더 이뤄져 많은 분이 우리의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면서 “원래 계획은 연말까지만 하는 거였는데 반응이 좋아 내년에도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세 아이 엄마·일란성 쌍둥이… 신임 경찰 2918명 탄생

    “엄마 같고 때론 누나, 언니 같은 경찰이 되겠다.” 14일 충북 충주시 중앙경찰학교를 졸업하며 경찰로 첫발을 내딛는 ‘미세스 캅’ 김현(34·여) 순경의 포부다. 김 순경은 결혼과 육아로 포기했던 경찰관의 꿈을 10년 만에 뒤늦게 이뤘다. 10살·6살 두 딸과 7살 아들을 키우며 수험 생활을 병행해 당당히 합격한 억척 아줌마 순경이기도 하다. 이날 열린 283기 신임 경찰 졸업식에서는 다양한 경력과 사연을 가진 새내기 경찰관들이 주목받았다. 이홍욱(26) 순경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경찰. 이 순경의 할아버지는 1997년 마산 동부경찰서에서 은퇴했고, 부친은 현재 울산 중부경찰서 성안파출소 경위로 재직하고 있다. 임한빛·한샘(24) 순경은 일란성 쌍둥이로, 같은 초·중·고교 출신에 이어 같은 대학의 같은 과를 졸업하고 경찰관 시험에도 동시에 합격했다. 쌍둥이 순경은 첫 부임지마저 경기지방경찰청 7기동대로 같다. 진아람(30·여) 순경은 동생 진가람(27·여) 순경에 이어 ‘자매 경찰관’이 됐고, 대한민국 아카펠라 대회 은상과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거리의 악사’ 대상 등을 받은 보컬트레이너 겸 음악가 이서영(33)씨도 순경이 됐다. 이날 졸업장을 받은 신임 경찰은 일반 2478명과 경찰행정학과 특채 250명, 전·의경 특채 190명 등 총 2918명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광복70주년] “통일국가 만드는 게 후손들이 할 일”

    [광복70주년] “통일국가 만드는 게 후손들이 할 일”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편에 섰던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1880~1953)의 외손자 오이시 스스무(80)씨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광복 70주년 인사를 남겼다. 그는 “한국의 광복 7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도 “축하에 이어 가장 먼저 드는 소회는 한반도 분단에 대한 슬픔”이라고 전했다. 그도 우리나라 독립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2004년 건국훈장을 받은 할아버지처럼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오이시는 “통일국가가 되는 것이 독립운동에 목숨을 아끼지 않은 분들에게 드리는 최대의 공양(供養)”이라는 표현을 쓰며 남북한 통일을 기원했다. 이어 아베 신조 정부의 수정주의 역사관에 대해 “진실을 부정하려는 자세는 정당하지도 않고 국제정치적 관점에서도 현명하지 않아 보인다”고 날 선 비판을 했다.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진 지 얼마 안 될 무렵 직접 한국을 찾아 수요집회에 참석했다는 오이시는 “나는 위안부에 끌려간 여성의 불행을 인식하며 고노 담화를 지지한다”는 말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위로했다. 최근 친일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박근령씨를 언급하기도 한 그는 “한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지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죄는 한국의 요구가 아닌 일본의 자발적 행위일 때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로 일본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1980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평론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한 오이시는 ‘후세 다쓰지와 조선’ 등 4권의 책을 쓰며 역사 속에 묻힌 후세 변호사의 삶을 되살려 왔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광복70주년] 톰킨스 등 7명 한국친우회 통해 독립 지지

    [광복70주년] 톰킨스 등 7명 한국친우회 통해 독립 지지

    올해 광복 70주년을 맞아 정부가 독립유공자로 새롭게 포상한 257명에는 외국인이 10명 포함돼 있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조선 독립에 기여한 공적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외국인은 총 67명으로 늘어났다. 이번에 새로 선정된 10명 중에서도 ‘큰 인물’이 적지 않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미국인 플로이드 톰킨스 목사가 그렇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 선생은 톰킨스 목사를 가리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무장된 군인 몇 개 연대와도 맞먹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홍선표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원은 13일 “톰킨스는 미국 21개 지역에 퍼져 조선을 알리고 독립을 위한 여론 형성에 나선 한국친우회의 초대 회장이었다”며 “조선이 지도에도 없고 한민족은 없는 사람 취급을 받던 당시 미국과 전 세계를 상대로 한 선전 외교 활동의 선봉에 있었다”고 말했다. 조지 노리스와 셸던 스펜서 등 미국인 6명도 한국친우회를 통해 일제의 식민 통치를 비판한 인물들로 이번에 독립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1942년부터 한미협회 회장을 지내며 임시정부의 승인을 촉구하는 글을 뉴욕포스트에 게재한 제임스 크롬웰, 1906년 런던트리뷴에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알린 더글러스 스토리도 각각 건국포장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프랑스인으로는 유일하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루이 마랭은 파리에 한국친우회를 만들어 일제의 인권유린을 고발한 공이 인정됐다. 기존의 외국인 서훈자도 다시 주목받고 있다. 30명에게만 수여된 ‘최고 훈격’인 대한민국장 서훈자 중에서도 외국인이 5명이나 된다. 중국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쑨원과 장제스 대만 총통, 그의 부인 쑹메이링 여사, 중국 정치가인 천궈푸와 혁명가인 천치메이 등 5명으로 항일을 위해 조선인 독립운동가들과 힘을 합친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과거 대통령장에 추서됐던 인물로 영국인 어니스트 베델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 이름 ‘배설’로 잘 알려진 그는 1904년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를 창간해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는 등 항일 언론 활동을 벌인 상징적 인물이다. 하지만 67명의 외국인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들은 한국인 유공자들이 매월 받는 보훈급여나 교육·의료·취업 혜택은 받지 못한다. 따라서 외국인 독립유공자들에게는 일종의 ‘명예훈장’만이 주어진 셈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광복70주년] 안중근 작사작곡 ‘옥중가’ 첫 공개

    “만주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교대 잠이 편안하여 누가 자며 콩둔 밥이 맛이 있어 누가 먹겠나. 때려라 부숴라 왜놈들 죽여라.”(옥중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뤼순 감옥에 갇힌 안중근 의사가 이듬해 사형 집행을 당하기 전까지 직접 작사·작곡해 부르며 울분을 달랜 옥중가가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노동은 중앙대 명예교수는 13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가와 항일가, 혁명가 등 일제강점기에 나온 항일 노래를 모아 언론에 공개했다. 노 교수가 새로 발굴한 노래에는 안 의사의 옥중가 외에 민족시인 김여제가 지은 ‘흥사단 단가’, 상하이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에 발표된 ‘독립군가’ 등 100여곡이 포함됐다. 노 교수와 민족문제연구소는 동학혁명 시기부터 1945년 해방을 맞을 때까지의 노래를 연대별로 정리한 최초의 항일 노래집인 ‘항일음악 350곡’을 발간할 예정이다. 노 교수는 “민족을 지키고 독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부른 모든 음악은 ‘항일노래’라고 불러야 한다”며 “연구도, 소개도 거의 안 된 사회주의 진영의 노래를 정리한 것이 ‘항일음악 350곡’의 의의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광복70주년] 안중근 작사작곡 ‘옥중가’ 첫 공개

    “만주땅 시베리아 넓은 들판에 동에 갔다 서에 번쩍 이내 신세야. 교대 잠이 편안하여 누가 자며 콩둔 밥이 맛이 있어 누가 먹겠나. 때려라 부숴라 왜놈들 죽여라.”(옥중가)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뤼순 감옥에 갇힌 안중근 의사가 이듬해 사형 집행을 당하기 전까지 직접 작사·작곡해 부르며 울분을 달랜 옥중가가 국내에 처음 공개됐다. 노동은 중앙대 명예교수는 13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독립가와 항일가, 혁명가 등 일제강점기에 나온 항일 노래를 모아 언론에 공개했다. 노 교수가 새로 발굴한 노래에는 안 의사의 옥중가 외에 민족시인 김여제가 지은 ‘흥사단 단가’, 상하이 임시정부가 발간한 ‘독립신문’에 발표된 ‘독립군가’ 등 100여곡이 포함됐다. 노 교수와 민족문제연구소는 동학혁명 시기부터 1945년 해방을 맞을 때까지의 노래를 연대별로 정리한 최초의 항일 노래집인 ‘항일음악 350곡’을 발간할 예정이다. 노 교수는 “민족을 지키고 독립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부른 모든 음악은 ‘항일노래’라고 불러야 한다”며 “연구도, 소개도 거의 안 된 사회주의 진영의 노래를 정리한 것이 ‘항일음악 350곡’의 의의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부러진 야구방망이 폐기 않고 재활용…수익금 후원”

    “부러진 야구방망이 폐기 않고 재활용…수익금 후원”

    “TV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보다가 부러지는 배트는 어떻게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알아봤더니 우리나라는 거의 재활용이 안 되는데 일본에서는 젓가락이나 구두 주걱 같은 생활용품으로 재활용하고 있다는 거예요.” 부러진 배트를 ‘업사이클링’(버려지는 제품에 디자인을 더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 부활시켜 사회공헌에 나선 학생들이 있다. 고려대 학생들의 ‘비스퀘어드’(B²). 조진현(24)씨는 비스퀘어드의 대표다. 5명으로 이뤄진 비스퀘어드는 지난해 12월부터 서울시내 고등학교, 대학교 야구부로부터 부러진 배트를 공급받아 연필꽂이, 명함꽂이, 클립홀더 등 사무용품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생산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안승필(22)씨는 11일 “한 달에 모이는 배트는 300개 정도 되고 배트 하나당 많게는 4~5개까지 제품이 만들어진다”고 했다. 판매 수익으로 야구 배트를 사서 신생 야구팀에 후원한다. 고교 야구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이 비스퀘어드의 목표다. 첫 번째 지원 팀은 창단한 지 1년이 채 안 된 동두천의 신흥고 야구부다. 비스퀘어드 팀과 작업을 시작한 목공예가 박기영(44)씨는 “학생들과 함께 좋은 일도 하고 목공예가로서 활동도 계속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어 “야구 배트들은 단풍나무로 만들어지는데 변형이 적은 고급 소재이기 때문에 각종 제품을 만들기에 적합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단독] [생각나눔] “50년 독립운동… 증손까지 보상을” “국가유공자는 자녀까지만 주는데…”

    [단독] [생각나눔] “50년 독립운동… 증손까지 보상을” “국가유공자는 자녀까지만 주는데…”

    “제 고조할아버지가 그 유명한 남강 선생입니다. 우리나라가 제일 어려울 때 가진 재산 다 털어서 오산학교 세웠던…. 그게 1907년이니까 100년도 넘었네요.” 이기대(61)씨의 목소리엔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의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남강 이승훈(1864~1930) 선생은 3·1운동을 이끈 민족대표 33명 중 한 명이자 1만 3000여명 독립유공자 중 단 30명만 추서받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후손인 이씨는 국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관련 법이 보상 및 지원 대상 유족의 범위를 ‘독립유공자의 손자·손녀까지’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에 따라 보상받을 수 있는 가장 아래 후손인 남강 선생의 손자, 즉 이씨의 할아버지는 이미 50여년 전인 1960년대 초에 별세했다. 1961년 국가보훈처의 전신인 군사원호청이 세워진 이후인 1965년부터 독립유공자 지원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남강 선생의 후손들은 사실상 보상에서 완전히 배제된 셈이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보상 내용을 담은 ‘독립유공자예우에 관한 법률’이 유족의 범위를 손자·손녀까지로 제한해 후손들에 대한 예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훈처는 ‘독립운동 기간’을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1895년)을 기점으로 1945년 8월 14일까지 50년으로 본다. 일제강점기 초반에 활동한 독립운동가 후손의 경우 현재는 거의 증손 혹은 고손까지 대(代)가 내려온 상황이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된 임예환 선생의 증손자 임종선(55)씨도 후손 지원이 끊긴 사례다. 임씨는 “198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보상이 뚝 끊겼다”면서 “한창 나라가 힘들 때는 힘들다고 보상을 못 받았고 지금은 자격이 안 돼 못 받는다”고 말했다. 민족대표 33인유족회에 따르면 현재 손자녀로서 보상을 받고 있는 민족대표의 후손은 6~7명에 불과하다. 홍영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3년 유족 범위를 증손자녀로 확대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국회 내에서 계류 중이다. 다른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행법은 국가유공자의 유족 범위를 자녀로 한정하고 있는데, 독립유공자의 경우 이미 ‘예외적’으로 손자녀까지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추가 인정은 불가하다는 것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유족 지원은 본인이 생존했다고 볼 때 부양해야 할 가족에 대한 것인데 통상 이는 손자녀까지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일본이나 대만에서도 국가유공자 유족의 범위를 최대 손자까지로 제한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증손자녀까지 유족 범위를 확대할 경우 수급 대상자가 급증할 수 있고 재정 소요가 커질 것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제기도 나온다. 실제 홍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한 국회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증손자녀가 유족에 포함될 경우 2014~2018년 추가적으로 480억원이 투입될 것으로 예측됐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걷히지 않는 대학가 ‘성적 거품’

    서울대가 학점이 우수한 최우등 졸업생에게 주는 ‘숨마 쿰 라우데’(summa cum laude), 즉 최우수상과 우수상의 수상 비율을 제한하기로 했다. 서울대는 올 2학기 졸업자부터 현행 만점 4.3점 기준으로 평균학점 3.9점 이상이면 최우등상을, 3.6점 이상이면 우등상을 일괄적으로 수여하던 방식에서 최우등상은 상위 10%, 우등상은 상위 30%에게만 주기로 개선한다고 9일 밝혔다. ●내년부터 최우수상 상위 10%만 수여 서울대는 ‘최고의 국립대’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취업·진학 등을 위해 학점을 후하게 주는 ‘학점 인플레’ 현상이 유독 심각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우등 졸업생 비율이 해마다 늘어 2011년 34%에서 올해는 45%로 급증했다. 졸업생의 절반 가까이 우등상을 받는 셈이다. 실제로 올 2월 학사 졸업생 2541명 중 최우등상은 363명, 우등상은 780명으로 전체 수상자가 1143명에 달했다. ●‘학점 세탁’ 재수강 제도도 개선 추진 서울대가 내년 2월 졸업자부터는 성적 우수자 비율을 제한한다고 했지만, 이 역시 전체 졸업자의 상위 30%까지는 수상하게 돼 인플레 현상을 해소하는 데는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서울대 전체 전공과목 수강생 중 51.8%가 A학점을 받았다. 이는 강원 동해의 한중대(54.2%), 전남 광양의 한려대(52.1%) 다음으로 세 번째 높은 비율이다. 서울대 관계자는 “학점 인플레 현상을 방치하면 학생들이 학점을 잘 주는 강의만 찾게 되고 결국 학부 교육이 왜곡된다”며 “우등상 비율 제한뿐만 아니라 2학기부터 재수강 제도 등의 개선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광복회회장 ‘대통령 하사금’ 1억 유용 잡음

    지난 5월 11일 제20대 회장 선거가 치러진 서울 여의도 광복회 정기총회장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독립기념관장과 국가보훈처장을 지낸 박유철(77) 회장이 이날 제19대에 이어 4년 임기의 회장직 재선에 성공했지만, 박 회장 지지파와 반대파 간에 몸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논란이 됐던 이른바 ‘대통령 하사금’ 유용 의혹이 경찰 수사로 이어지면서 광복회 내부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6일 광복회 등에 따르면 광복회는 대통령으로부터 매년 2~3차례(설, 추석, 호국보훈의달 등) 1000만원씩 연간 2000만~3000만원을 발전기금으로 받아 왔다. 2011년 광복회장에 취임한 후 박 회장이 받은 돈은 총 1억원이다. 하지만 이 돈의 사용처가 정기총회 결산보고서에서 누락되면서 박 회장에 반대하는 세력의 집중적인 타깃이 됐다. 이후 박 회장 반대파는 경찰에 진정을 제기했고 경찰은 의혹이 있다고 보고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경찰은 최근 박 회장에게 출석을 통보했지만 박 회장은 오는 15일 광복 70주년 행사를 마친 후 조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박 회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광복회 내부 관계자는 “발전기금은 이전까지는 기부금 대장에 기재하고 지출 내역을 관리해 왔지만 박 회장 취임 후에는 본인이 직접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이날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전직 광복회 간부들이 근거 없는 음해로 공격하고 있다”면서 “해마다 1000만원씩 꼬박꼬박 장학재단에 출연했고 나머지 돈은 정부 예산 지원이 안 되는 광복회 자체 사업 등에 투명하게 집행했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한국 ‘마르크스 경제학 거두’ 떠나다

    한국 ‘마르크스 경제학 거두’ 떠나다

    ‘마르크스 경제학의 거두’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지난달 31일 별세했다. 73세. 김 교수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국내 최초로 완역한 인물로, 마르크스주의 연구의 태두로 꼽힌다. 2일 지인들에 따르면 김 교수는 지난달 24일 아들을 만나기 위해 미국으로 갔으며 같은 달 31일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미국에서 장례를 치른 뒤 다음 주말쯤 김 교수의 시신을 한국으로 옮길 예정이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2년 뒤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1969년부터 1975년까지 한국외환은행에서 근무했다. 김 교수는 학문의 길을 걷기 위해 런던대 대학원 경제학과에 연구생으로 들어갔다. 1982년 마르크스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귀국해 한신대 무역학과 부교수,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지냈다. 1989년 2월 서울대 교수가 될 때에는 기존 교수진의 반대가 심해 임용이 무산될 뻔했지만 마르크스 경제학을 배우고 싶다는 학생들의 바람이 워낙 강해 결국 모교에 둥지를 틀 수 있었다. 같은 해 3월 ‘자본론’ 1권을 출간한 뒤 다음달에 2권, 그 다음해에 3권을 연달아 발표했다. 당시 자본론은 금서였다. 김 교수는 저서에서 “잡아가려면 잡아가 보라는 마음으로 자본론을 출판했다”고 술회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도 번역해 좌우 학문적 균형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자들은 김 교수를 ‘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을 통해 발견하고 이를 통해 대안을 모색하려 평생을 바친 학자’였다고 평가했다. 특히 마르크스주의를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았으며 주변 지인들과 술 한 잔 나누며 대화하기를 즐겼다고 떠올렸다. 최갑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김 교수는 마르크스의 가르침을 변화하는 자본주의 현실에 맞춰 재해석하려고 연구한 스승이었다”고 기억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단속 비웃는 검색형 전단

    단속 비웃는 검색형 전단

    지난달 28일 밤 서울 관악구 신림역 인근의 번화가. 길바닥에 정체불명의 전단들이 어지럽게 흩뿌려져 있다. 명함 크기의 전단에는 상호명이나 전화번호가 없고, 업소의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검은색 바탕에 빨간 글씨로 ‘감옥’ 혹은 흰 글씨로 ‘강간X’, ‘잘하는 X 공짜’ 등 무슨 뜻인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쓰여 있다. 같은 시간 서울 송파구 신천역 부근. 신체 부위를 노출한 여성 사진들과 ‘장소 선택 후 연락’, ‘최상의 서비스’ 등 성매매를 암시하는 문구가 인쇄된 전단들이 보도를 덮고 있다. 헬멧을 쓴 오토바이 운전자들이 손바닥만 한 종이들을 위로 뿌리며 지나간다. 유사 성행위 업소인 ‘샤워방’ 전단. 하지만 전화번호는 앞자리 ‘010’만 인쇄돼 있고 이후 8자리 번호는 펜으로 쓰여 있다. 수시로 다른 전화번호로 바꿔 적기 위해 인쇄지의 해당 칸을 공란으로 비워 둔 것이다. 경찰이 전화번호를 정지시켜도 기존에 인쇄해 놓은 전단을 폐기하지 않고 계속 쓰기 위해서다. 손으로 쓴 전단의 경우 실제 누가 쓴 것인지 입증이 어려워 행정조치를 피할 수 있다는 점도 업자들의 계산에 들어 있다. ●손으로 전화번호 쓰고 수시로 교체 정부와 경찰 단속망을 피하기 위한 성매매·도박·유흥업소 전단이 범람하고 있다. 서울 강남·선릉·마포·공덕역 인근 등 오피스텔 밀집 지역의 경우 온라인 정보뿐 아니라 길거리 광고물이 넘쳐 나고 있다. 특히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말부터 길거리 유해 전단에 기재된 전화번호들에 대해 통신사 이용 정지 조치를 강화하면서 당국과의 ‘숨바꼭질’이 한층 심해졌다. ●명함 번호 이용 정지 조치에 새 수법 2일 여가부에 따르면 성매매를 알선·암시하는 문구와 전화번호, 장소 정보, 인터넷주소 등을 게재하거나 특정한 광고 내용 없이 남녀 사진 등을 표시한 선전물은 모두 ‘청소년 유해 매체물’로 지정돼 있다. 청소년보호법상 일반인들이 통행하는 장소에 청소년 유해 매체물에 해당하는 옥외광고물(전단, 간판, 입간판, 현수막 등)을 설치하거나 배포하면 징역 2년 이하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무차별 노출’ 수준이다. 단속 관계자는 “전단 내 연락처 대부분이 대포폰이다 보니 이용이 정지돼도 다른 번호를 쓴다”면서 “인쇄물에 연락처를 기재하지 않고 상호명만 실어 스마트폰 검색을 통해 업소를 찾아오게 만드는 ‘검색형 전단’ 형태도 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경찰의 성매매 등 불법 광고 단속 실적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3년 811건이던 불법 전단 적발 건수가 지난해엔 373건으로 줄었다. 마구 뿌려지는 불법 전단의 현장 적발이 한층 어려워진 탓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매일 잠복근무를 하지 않는 이상 불법 전단 살포를 현장에서 적발하기는 어렵다”며 “광고물에 성매매를 암시하는 글자와 사진이 있다고 해도 실제 현장 증거가 없이는 성매매특별법을 적용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8150명 손도장’ 태극기 광복 70주년 기념합니다

    ‘8150명 손도장’ 태극기 광복 70주년 기념합니다

    광복 70주년인 올해 8월 15일을 기념해 8150명의 손바닥 도장이 찍힌 대형 태극기가 서울 하늘에 휘날린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오른쪽) 성신여대 교수와 한글 캘리그래피스트로 활동 중인 배우 조달환(왼쪽)씨는 광복절 당일 아침에 서울 서초구 양재IC 부근의 높이 50m 국기 게양대에 대형 태극기를 건다고 31일 밝혔다. 서 교수는 가로 12m, 세로 8m의 대형 천 위에 우리 국민과 재외동포, 외국인 등 8150명의 손바닥 도장을 찍어 안중근 의사의 항일 독립 정신 계승을 형상화한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서 교수는 이날 “우리 수도인 서울 진입로에 태극기를 게양해 광복 70년을 기념하고 싶었다”며 “특히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는 왼손 약지 첫 마디가 잘려 나간 안중근 의사의 독립 정신이 담긴 ‘단지동맹’(斷指同盟)을 상징하는 손도장으로 채워 완성한다”고 설명했다. 전국의 국민들이 왼손 약지 부분에 페인트를 묻혀 태극기 위에 손도장을 찍게 된다. 또 4괘 부분에는 윤봉길, 이봉창 등 독립운동가 50여명의 이름을 한글로 써 넣기로 했다. 한글 글씨 작업은 조씨가 맡는다. 서 교수는 “태극기를 6등분해 세계에 퍼져 있는 재외동포와 유학생들도 손바닥 도장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라며 “태극기를 올바로 이해하고 쉽게 그릴 수 있도록 동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배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전광판을 통해 태극기를 홍보해 왔다. 재능 기부에 나선 조씨도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떠올리며 한 글자 한 글자에 혼을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딱 걸렸네”… 통영대전道 무주구간 적발 1위

    “딱 걸렸네”… 통영대전道 무주구간 적발 1위

    지난해 가장 많은 무인카메라 단속이 이뤄진 고속도로 구간은 전북 무주 인근의 통영대전고속도로 상행선 163.5㎞ 지점으로 하루 평균 151건의 위반 차량이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간으로는 5만 5000여건에 달했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유대운 의원이 31일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통계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고속도로 무인단속카메라에 적발된 건수는 총 97만 1657건이었다. 이에 따라 부과된 과태료는 5464억원에 달했다. 이 중 통영대전고속도로 대전 방향 163.5㎞ 지점의 단속이 5만 5155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이어 5만 1423건을 기록한 대구포항고속도로 대구 기점 3.8㎞ 지점과 5만 726건의 위반이 발생한 호남고속도로 순천 방향 30㎞ 지점이 뒤를 이었다. 적발 사유로는 ‘구간 단속’ 구간에서의 속도 위반이 가장 많았다. 무인단속카메라 단속 건수 상위 20곳 중 7개 지점이 구간 단속으로 과속을 잡아내는 곳이었다. 내비게이션 장착이 일반화되면서 단속 구간을 알고 순간 속도를 줄이는 운전자가 늘었지만 구간 단속 지점에서는 그런 ‘꼼수’가 통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단속 건수가 두 번째로 많은 대구포항고속도로 대구 방향 3.8㎞ 지점의 경우 6.7㎞ 지점까지 단속 구간으로 지정돼 위반자들을 적발하고 있다. 유 의원은 “운전자들이 통상 차로 사이를 달리거나 ‘1차로만 피하면 안 찍히겠지’ 하는 생각을 하지만 최근 차로별 카메라 설치가 늘면서 낭패를 보기 쉽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지방 주소’ 서울 격리자 260명 지원 떠넘기기

    ‘지방 주소’ 서울 격리자 260명 지원 떠넘기기

    서울시와 보건복지부가 서로 책임을 떠밀면서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격리자 가운데 일부가 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지난 5월 30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했다가 14일간 격리된 1558명 가운데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지방인 사람들은 긴급생계비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서울시는 지난 27일 메르스 확산 초기 서울시가 격리를 결정한 개포동 총회 참석자들에 대해 국비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복지부는 정부 기준에 따른 격리자가 아니라며 지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시는 자체 예산으로 1558명 중 주민등록상 주소지가 서울인 1298명에 대해서는 생계비 지원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서울에 거주하고 있지만 주소지가 지방인 총회 참석자 260명은 긴급생계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다. 통상 메르스 격리자의 경우 주소지에 상관없이 긴급생계비 지원을 받고 있지만 개포동 총회 참석자만 예외가 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 개포동 재건축조합 총회에 참석했다 격리된 1558명은 정부의 긴급생계비 지원 대상의 기준이 될 수 있는 메르스 통합정보시스템(PHIS)에도 등록돼 있지 않다. 총회 참석자로 주소지가 대구인 권모(30)씨는 “얼마 전 서울 강남구청에서 40만원을 준다고 해 통장 사본까지 제출했는데 돌연 주소지가 대구여서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었다”며 “서울시나 복지부 모두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경기도 측은 이날 서울신문의 문제 제기에 주소지가 경기도인 214명에 대해서는 지원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260명 중 나머지 46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서울시는 긴급생계비를 관할 지자체에서 먼저 지원하고 정부에서 돌려받으면 된다는 입장이고, 복지부는 총회 참석자가 지원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다. 각 지자체도 서울시가 보낸 격리자 명단만으로는 지원이 곤란하다는 것이어서 그야말로 메르스 지원 행정도 제각각이다. 정부는 메르스 입원·격리자 전원에 대해 가구 구성원 수에 따라 긴급생계비를 최소 40만 9000원(1인 가구)에서 110만 5600원(4인 가구 기준)까지 지원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메르스 종식 선언] “끝났다고요? 일상은 꿈도 못 꿔요”

    윤정희(30·여·가명)씨는 메르스가 맹위를 떨치던 지난달 17일 엄마를 잃었다. 5월 19일 대상포진으로 경기 평택성모병원에 들렀다 메르스에 감염된 어머니는 홀로 격리병동에서 숨을 거뒀다. 어머니가 숨지기 닷새 전 자가 격리 조치에서 해제된 윤씨는 끝내 임종을 지키지 못한 게 한으로 남았다. ●“왜 대처가 그렇게 늦었는지 의아하다” 분통 “기자들이 찍어 신문에 나온 사진 속 엄마의 모습이 생전 마지막일 줄은 진짜 몰랐어요.” 28일 서울신문과 만난 윤씨는 이제 눈물도 마른 듯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우리 가족은 아직도 메르스에 묶여 있어요. 집안에 우울과 침묵뿐인 상황이 너무나 견디기 힘드네요.” 윤씨는 어머니가 메르스를 이겨 낼 줄 알았다. 평소 건강했기 때문이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병원에서 위독하다고 했어요. 산소를 못 받아들이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그럼 가족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나게 해 줘야 했던 것 아닌가요.” 숨을 거둔 어머니와의 마지막 만남은 두꺼운 방진복을 입은 채 영안실에서 이뤄졌다. “한 명만 영안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식구들을 가로막아 울다 울다 결국 아버지랑 둘이 들어갔어요. 보호 장갑을 낀 손으로 엄마의 손을 어루만지면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그 말만 했어요.” ●“어머니 돌아가셨는데… 정부 사과해야” 윤씨 어머니는 장례업체들에도 냉대를 당했다. 메르스 사망자라는 이유로 장례식마저 거부당했다. “무슨 질병으로 돌아가셨냐고 묻더라고요. 메르스라고 하니까, 그러면 안 된다고 전화를 끊어 버리고….” 결국 어머니는 사망 당일 화장해 그날 저녁 평택의 한 추모공원에 안장됐다. 윤씨가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에 그 하루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정부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밉다’는 말만 반복하던 그녀는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했다. “아직도 저는 어떻게 엄마가 감염됐는지도 모르고, 대처가 왜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유가족한테 사과도 없었어요.” 메르스는 끝났지만 윤씨는 여전히 진실을 알지 못하고 그 누구로부터 따뜻한 위로도 받지 못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노년층 ‘욱 범죄’ 심상찮다

    노년층 ‘욱 범죄’ 심상찮다

    #1. 지난해 2월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한 다세대주택 건물 주인 강모(74·여)씨는 불이 난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검 결과 강씨 뒷머리와 얼굴에서 둔기로 맞은 흔적과 멍 자국이 발견됐다. 범인은 강씨와 친하게 지내던 세입자 박모(75)씨였다. 박씨는 “평소 강씨가 나를 무시했고 사건 당일에도 내게 욕설을 퍼부었다”며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다. #2. 올해 2월 경기 화성. 70대 남성이 엽총으로 80대 친형 부부를 총으로 살해한 후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현장에 출동한 파출소장도 노인이 쏜 총에 맞아 숨지는 비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피의자는 종종 형을 찾아가 “돈을 달라”며 행패를 부렸다. ‘노인 범죄’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 생계형 절도가 많았지만 최근 들어 살인, 강간, 방화, 강도 등 강력 범죄가 두드러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4일 경북 상주에서 할머니 2명이 숨진 이른바 ‘농약 사이다’ 음독 사건의 피의자도 80대 여성이다. 27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04년 전체에서 3.3%에 불과했던 노인 범죄율(60대 이상)은 2013년 7%로 두 배 넘게 늘었다. 사회 구조가 고령화가 가속화되며 노인 인구가 자체가 늘었다는 게 1차적 분석이다. 하지만 눈에 띄는 것은 강력 범죄마저 덩달아 늘었다는 점이다. 4대 범죄(강도·살인·강간·방화)의 경우 2009년 837명에서 2013년 1699명으로 200% 이상 급증했다. 경찰 관계자는 “노인들의 강력 범죄들 중 계획적 범행도 있지만 대부분 쌓이고 쌓인 분노가 우발적으로 터지며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박현식 호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가족과 사회로부터 느끼는 소외감이 분노로 표출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산업화를 일군 노인 세대는 자신이 부모에게 한 만큼 자식세대에게 기대하지만 사회적 분위기는 바뀌었다”며 “가족, 사회로부터 소외받는데다 돈까지 없으니 자포자기 상태가 되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를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빈곤으로 인한 소외, 은퇴 후 박탈감 등을 노인 범죄 배후에 도사린 정서로 꼽았다. 특히 국내 노인 빈곤율은 2013년 기준 48.0%로 전체 연령의 빈곤율(13.7%)보다 3.5배나 높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2.6%의 4배 수준이다. 강덕지 전 국과수 범죄심리과장은 “죄명은 전부 달라도 범죄 요인은 대부분 밥 먹고 사는 문제와 성적 욕구로 귀결된다”며 “특히 노인범죄는 더 단순한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우발적으로 일으키는 경향이 짙어진다”라고 말했다. 노인들이 피해자가 되거나 같은 가족 내 가해자가 되는 존속폭행과 살인 등도 경제적 문제가 주요인이라는 지적이다. 곽대훈 충남대 과학수사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은퇴 후 충분한 연금을 받지 않는 이상 자녀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갈등이 커지면 존속 폭행이나 친족 살해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노인 일자리 창출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상균 백석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노인 일자리들 대부분이 대단히 저임금 노동이고, 그로 인한 경제적 빈곤이 오히려 박탈감을 불러와 범죄 요인이 될 수 있다”며 “노인들이 전문성을 살려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박 교수는 “노인이라는 존재를 우리 사회에 생산적인 동력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가진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서울대 소유 문화재 24만여점 법인화 4년 만에 문화재청으로

    서울대가 소장 중인 문화재급 사료(史料) 24만여점의 소유권이 문화재청으로 넘어간다. 26일 서울대와 문화재청에 따르면 서울대 규장각과 박물관, 중앙도서관에 있는 문화재 24만여점의 소유권을 문화재청이 넘겨받기로 합의했다. 이 중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 국보 7000여점과 대동여지도 등 150여점의 보물도 포함됐다. 그동안 두 기관은 국보급 등 문화재의 소유권을 놓고 첨예한 갈등을 벌여 왔지만 사실상 법인화가 갈림길이 됐다. 현행 서울대법 22조는 운영에 필요한 기존의 국유재산은 국가가 서울대에 무상 양도하기로 규정했지만 문화재는 그 대상에서 제외됐다. 서울대가 2011년 12월 법인화가 된 후 문화재청으로 양도하지 않기 위해 4년 가까이 버텨온 셈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소장은 “서울대가 더이상 국가기관이 아닌 만큼 문화재를 소유할 명분이 없다”고 일축했다. 이와 관련, 서울대 관계자는 “위탁관리를 하는 사료의 활용 범위에 대한 협약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밝혀 진통이 남아 있음을 예고했다. 협약서는 5년마다 갱신하게 돼 있는데 문화재청이 교육, 연구 이외의 목적으로 문화재가 활용된다고 판단하면 관리권을 해지할 수 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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