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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시민 20%는 자가용 집에 모셔만 둔다

    서울시민 20%는 자가용 집에 모셔만 둔다

    월 24만 8000원 앉아서 지출 “대중교통보다 출퇴근 힘들어 돌발 상황·주말여행 때 필요” 서울시민 5명 중 1명은 자가용 승용차를 집 앞에 세워 두고 거의 타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차량 가치의 하락과 세금·보험료 지출 등 고정적으로 한 달 평균 25만원 정도를 앉아서 버린다. 평균보다 차를 적게 타거나 주말에만 쓰는 사람들도 5명 중 2명꼴이다. 많은 사람들이 차량 보유를 통해 ‘앉아서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차량 보유 대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서울시민을 기준으로 차량 보유의 경제학을 분석해 봤다. 6일 서울연구원의 ‘승용차 소유와 이동 특성을 고려한 교통 수요 관리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시민 1000명을 설문조사(2015년 4월)한 결과 205명(20.5%)은 승용차를 집 앞에 세워 놓고 거의 타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들은 고정비용으로 월평균 24만 8000원, 1년에 297만 6000원을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민의 택시 평균 이동 거리(6㎞·요금 5800원)를 기준으로 할 때 한 달에 택시를 43차례 이용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이 돈이면 ‘용산역~경복궁’ 구간(6.16㎞)을 주중 매일(20일) 택시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주중·주말 모두 평균 이용 횟수보다 자가용 승용차를 적게 이용하는 사람은 1000명 중 223명(22.3%)이었다. 주말에만 이용하는 사람은 199명(19.9%)이었다.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사람은 주중에만 운행하는 84명(8.4%), 주중·주말 모두 이용 횟수가 많은 289명(28.9%) 등 37.3%였다. 안기정 서울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적으로 따지면 서울시내 차량의 40% 정도인 100만대는 보유하지 않아도 되는 차량”이라며 “대중교통 수요 분산 정책, 유연근무제 등을 통해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고 혼잡통행료 등을 통해 자가용 승용차 보유 및 운행이 가계에 주는 부담을 운전자 스스로 느끼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자동차 등록 대수는 지난해 기준 256만 154대로 3년 전보다 4.9% 늘었다. 차량 운행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연료비, 주차료, 대리운전비 등이 월평균 53만 2000원에 이른다. 이를 고정비 24만 8000원과 합치면 월평균 78만원에 이른다. 실제로 서울 은평구에 사는 약사 박모(27·여)씨는 종로의 약국으로 출퇴근하기 위해 2013년 6월 중고차(1600cc)를 샀다. 하지만 출근 시간만 1시간이 넘게 걸리는 통에 지난해 9월 차를 팔았다. 그는 “차량 운행 비용이 1년에 110만원이나 들었는데 정작 대중교통보다 출퇴근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차량 보유의 경제학을 보유·운용 비용 차원에서만 논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물론 많다. 회사원 김모(28)씨는 “일주일에 한두 번 운행하지만 돌발적인 업무 상황이나 급하게 아기가 아플 때, 주말여행이나 무거운 짐을 나를 때 등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상황들이 있다”며 “월 15만원 정도의 세금과 보험료를 내는 대신 심리적 안정을 얻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장명 울산대 기계자동차공학부 교수는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3000만원 정도의 차량 구입비가 경제적 부담이 되던 시대는 지났다”면서 “1가구 2차량 경향과 중대형·외제차로 옮겨 가는 흐름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新 할마할빠 육아시대] 손주 돌보고 살림 돕고… 애보는 ‘할빠’도 늘고 있다

    [新 할마할빠 육아시대] 손주 돌보고 살림 돕고… 애보는 ‘할빠’도 늘고 있다

    딸에게 배운 대로 아침밥 차려… 손녀 학원 간 사이 취미 생활 “은퇴한 남성 우울증은 남말… 힘들지만 육아에 재미 붙여” “이제 할아버지가 문제를 내 주세요. 제가 맞혀 볼게요.” 전영철(64)씨는 지난달 23일 오전 10시 대전 유성구 전민동 집에서 ‘어린이 속담사전·수수께끼’ 책을 펴 놓고 외손녀 한서현(7)양에게 문제를 냈다. 아이와 눈을 마주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항상 칭찬을 해 주죠. 할아버지도 정말 몰랐는데 서현이는 아는구나 하는 거예요. 그래야 아이도 재미있어 하고 성취감을 느낄수 있어요.” 이날 아침 식사는 딸에게 배운 에그 스크램블로 해결했다. 6년째 손녀를 돌봤기 때문에 요리 실력도 제법 늘었다. “에그 스크램블은 우유와 달걀만 있으면 간편하게 만들 수 있죠. 그래도 서현이가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서인지 두부나 나물도 잘 먹습니다. 편식은 안 해요.” 지방의 한 대학에서 VR게임개발과 교수를 했던 전씨는 2010년 명예퇴직을 했다. 2009년 손녀가 태어나면서 그의 노후는 자연스레 손녀 육아로 이어졌다. “어떤 사람은 나이 먹어서까지 자식에게 희생당한다고 하는데, 저는 제가 먼저 애를 봐주겠다고 한 겁니다. 아이 부모가 바쁘니까 퇴근 때까지 봐주면 손녀딸 정서 발달에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죠.” 유치원을 다닐 때는 오후 시간만 봐주지만 서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 이날은 온종일 함께 있었다. 오전 11시 간식 시간이 되자 전씨는 부엌에서 사과를 가져왔다. 손녀가 먹기 쉽게 강판에 사과를 갈아 주는 사이에 서현이는 할아버지에 대한 질문 공세를 이어 갔다. “할아버지, 사과가 끝에 조금만 남으면 어떻게 해요?”, “그럼 집게를 가져와서 집어도 되는 거예요?” 첫 외출지는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관평도서관이었다. 이곳에서 서현이는 1시간 동안 독서를 이어 갔다. 전씨는 서현이에게 독서 습관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했다. “맞벌이 부부가 아이를 키우면 어른 중심이 되기 쉬워요.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일찍 자’와 같은 말을 하죠. 저는 새벽 1시에도 책을 읽어 달라면 읽어 줘요. 같이 늦잠 자면 되니까. 생활 리듬을 아이에게 맞추는 거죠.” 도서관 인근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서현이가 2년째 다니고 있는 미술학원에 오후 1시 30분에 도착했다. 곧이어 옆에 있는 피아노 학원까지 다녀오면 3시간 정도가 휴식 시간이다. 전씨는 서현이의 학원 종료 시간에 맞춰 휴대전화 알람을 설정했다. 인근의 카페에서 책을 보며 휴식을 취하거나 운동을 하는 시간이다. “아이를 잠시 보면 즐겁지만 하루 종일 함께하면 스트레스가 생기죠. 양육 도중에 자기 시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는 이 시간을 활용해 6년째 육아일기를 인터넷 블로그에 올리며 ‘격대교육’(隔代敎育·조부모의 손주 양육)의 노하우를 전파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격대교육이 오바마를 만들었다’, ‘내가 살아온 인생, 네가 살아갈 인생’ 등 책도 2권 썼다.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던 전씨에게 아이의 피아노 학원에서 수업이 끝나기 30분 전 전화가 걸려왔다. 교사는 서현이가 눈이 가렵다고 한다면서 안과를 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이렇게 당장 곁으로 가는 것도 할아버지니까 가능한 거 아니겠어요?” 인근 안과에서 알레르기 안약을 처방받은 서현이는 최근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은 블록방으로 향했다. 오후 5시쯤 전씨는 서현이 엄마에게서 아이를 데리러 오겠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이 엄마가 오면 취침 시간까지는 휴식이죠. 남자들이 은퇴하고 나면 심한 경우 우울증까지 온다는데 저는 그럴 틈이 없네요. 힘들어도 아이 키우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전씨는 마음의 여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조부모는 어디까지나 보조 양육자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부모 양육은 아이와 부모의 유대감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멈춰야 합니다. 언제나 서현이에게 저녁 시간은 ‘부모와의 시간’이라고 부르고, 휴가도 가족끼리 가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그래픽 김예원 기자 yean811@seoul.co.kr
  • 그 많던 폭주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폭주족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서울 영등포경찰서 교통범죄수사팀 소속 수사관 2명은 지난달 29일 밤 10시부터 다음날인 1일 새벽 6시까지 오토바이 폭주족 단속을 위해 여의나루역 주변 한강공원을 지켰다. ●3·1절 폭주 9년 새 1163 → 221건으로 하지만 8시간 동안 폭주족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과거에 3·1절이나 광복절이 광란의 오토바이 질주로 얼룩지는 10~20대 폭주족의 축제와도 같았던 적이 있었다. 한강 둔치는 그들의 집결지였다. 도로를 차지한 채 차들을 위협하며 위험한 곡예 운전을 해댔다. 경찰은 오토바이 검거용 그물까지 동원해 국경일이면 1000명 이상의 폭주족을 적발하곤 했다. 하지만 폭주족이 이제는 사실상 사라졌다. 경찰의 대대적인 단속 및 처벌 강화도 주요한 이유지만 우선적으로 오토바이가 ‘멋의 상징’에서 ‘알바의 상징’으로 바뀌면서 그들의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이다. 경찰청이 3·1절을 맞아 오토바이 폭주 사범을 단속한 결과 공동 위험 행위, 불법 개조, 무면허 등의 혐의로 221건을 적발했다고 2일 밝혔다. 9년 전인 2007년 3·1절에 1163건을 적발한 것과 비교하면 5분의1도 안 된다. 입건된 건수는 같은 기간 48건에서 33건으로 감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예전에는 폭주족이 워낙 많아 중대한 잘못을 한 경우에만 입건했는데 최근에는 모든 불법 행위에 대해 처벌을 하기 때문에 입건 건수는 상대적으로 덜 줄었다”고 설명했다. 올 3·1절에는 과거와 같은 수십명의 집단 폭주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부분 오토바이 2대를 4명이 나눠 타고 굉음을 유발하며 운행하는 수준이었다. 경찰은 “10대들을 중심으로 청소년들은 더이상 오토바이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날 폭주족을 단속한 경찰관은 “정우성 주연의 영화 ‘비트’(1997년)를 통해 ‘오토바이는 반항’이라는 공식이 있었는데 지금은 단순한 취미나 레저 수단 이상으로 인식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불황에 배달 청소년 크게 줄어 김지석(59) 전국이륜문화개선운동본부 회장은 “폭주족 문화는 사회에 대한 반항을 상징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요즘 10대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그런 스트레스를 푸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과거에 폭주족의 상당수를 차지했던 배달 청소년들도 불황으로 수가 크게 줄었다.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사장이 직접 배달을 하거나 배달업체를 이용하는 경우가 늘어서다. ●경찰 체계적 단속·압수도 한몫 경찰의 단속도 주효했다. 폭주족의 인터넷 동호회 카페 등을 통해 서울 여의나루역 한강공원·뚝섬 유원지, 부산의 해운대·광안리 해수욕장, 인천 부평역, 대구 호림로 등을 집중 단속했다. 현장 검거 방식을 버리고 고성능 카메라로 번호판 등을 촬영한 뒤 사후 검거로 전환했다. 경찰 관계자는 “폭주를 즐기는 청소년들은 오토바이를 자기 분신처럼 여기기 때문에 입건보다 오토바이 압수에 더 큰 타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는 청소년들의 오토바이 폭주보다 경기 일산 자유로, 인천 영종고속도로 등지에서 발생하는 성인들의 외제차 폭주가 더 골칫거리”라고 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新 할마할빠 육아시대] “조부모 육아가 아이의 문제 행동 줄여”

    2~5세 영유아 36명 심층 관찰… 맞벌이 부모 육아보다 정서 안정 “20년간 어린이집 교사를 하면서 조부모가 키운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더 버릇도 없고 의존성도 높다고 믿었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조부모와 함께 자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문제 되는 행동을 적게 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서울 양천구 A어린이집 최복경(42) 원장은 대학원 석사논문을 쓰기 위해 2014년 9월부터 2개월간 2~5세 영유아 원생 36명에 대한 ‘행동 관찰일지’를 기록했다. 36명 중 21명은 조부모가 돌봐주지 않는 맞벌이 부부의 아이들이었고, 15명은 조부모가 보살펴주는 맞벌이 부부 아이들이었다. 최 원장은 이 2개 그룹을 대상으로 ▲기본 생활습관 ▲의사 소통 ▲사회정서 발달 등을 비교 관찰했다. 규칙 지키기, 청결, 식사 태도 등 기본 생활습관의 경우 맞벌이 부모 육아그룹은 21명 중 24%(5명)에서 문제행동이 나타났다. 반면 조부모 육아그룹에서는 15명 중 1명만 문제행동을 일으켰다. 최 원장은 “부모 육아그룹의 아이는 혼자 있을 때 식사 시간에 집중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물건을 챙기지 못했고, 신발 신기나 옷 입기를 할 때 어른들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며 “아이 스스로 행동하도록 여유롭게 기다리는 조부모와 달리 항상 시간에 쫓기는 맞벌이 부부는 무엇이든 빠르게 해주기에 바빠 아이의 자립심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사 소통에서도 맞벌이 부모 육아그룹의 아이는 단어만으로 의사를 표현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21명 중 4명으로 5분의1을 차지했다. 조부모 육아그룹에서는 15명 중 1명만 말을 더듬었다. 그는 “젊은 엄마들은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입해 아이가 생각을 밝힐 기회가 적지만, 시간적 여유가 더 있고 느긋한 조부모들은 아이와 같은 눈높이에서 대화를 하려는 특성이 좀더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사회정서 발달 측면에서도 맞벌이 부모 육아그룹은 21명 중 4명에게서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거나 집중하지 못해 몸을 꼬는 등 행동이 나타났다. 조부모 육아그룹은 이런 경우가 2명이었다. 최 원장은 조부모 육아와 맞벌이 부모 육아는 정서적 안정감 때문에 차이가 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육 경험이 있는 조부모의 보살핌은 일하는 아이의 부모들을 안정시키는 효과도 있어 아이가 세상에 대해 신뢰감을 쌓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미래 36회·꿈 31회 언급… 올해도 감동없는 졸업축사

    미래 36회·꿈 31회 언급… 올해도 감동없는 졸업축사

    “미래는 여러분의 몫” 상투적 표현 반복… 총장들 직원이 쓴 추상적인 글 읽기만 윤제균 영화감독 등 외빈 축사는 눈길… 美 총장·명사들의 ‘감동 연설’과 대조 대학 졸업식은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출발점이다. 학교를 떠나는 제자들에게 우리나라 대학 총장들은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해줄까. 26일 서울신문이 건국대, 고려대, 동국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숙명여대, 연세대, 중앙대, 한국외대, 한양대(가나다 순) 등 주요 대학 10곳의 올해 졸업식 총장 축사를 분석한 결과 ‘미래를 개척’, ‘미래를 지향’, ‘미래를 향해 도약’ 등 ‘미래’라는 단어가 36회로 가장 많이 쓰였다. ‘꿈’(31회), ‘노력’(24회), ‘도전’(19회), ‘성공’(16회), ‘목표’(13회), ‘최선’(9회)이 그 뒤를 이었다. 이 단어들은 ‘명확한 꿈과 목표’, ‘꿈을 실현하기 위해 더 노력’,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도전’ 등의 표현에 활용됐다. 상당수 축사가 “사랑하는 졸업생 여러분”으로 시작해 “미래는 여러분의 몫이다”로 끝났다. 이렇다 보니 총장 축사들이 너무 단조롭고 획일적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한 사립대 교수는 “상당수 총장들이 직원이 써 준 축사를 그대로 읽는다”며 “자신의 경험과 정성이 빠져 있는데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교수는 “‘취업이 어렵지만 도전하라’는 말을 빼고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운 상황도 대학마다 축사들이 비슷하게 나오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총장 축사에 비해 외빈들의 축사는 좀더 눈길을 끈다. 건축설계회사 팀하스의 하형록(59) 회장은 26일 서울대 졸업식에서 심장 이식수술을 2차례나 받았던 자신의 경험을 소개했다. 그는 “나보다 급한 여성에게 심장을 양보했더니 두 번만 심장이식을 받을 수 있는 법적 제한의 예외규정을 적용받아 앞으로 한 번 더 이식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자신을 희생하고 양보하는 삶에 성공이 따른다”고 말했다. 영화감독 윤제균(47)씨는 지난 25일 고려대 졸업식에서 1000자의 짧지만 의미 있는 연설로 화제가 됐다. 그는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잘 아는 ‘주제파악’이 필요하다”며 “언젠가 기회는 반드시 온다”고 졸업생을 격려했다.이에 비해 미국 대학의 총장 축사는 좀더 다채롭고 독특한 편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예일대 피터 살로베이 총장은 지난해 졸업식에서 “여러분 삶의 목표는 간단하다. 세계를 발전시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 드류 길핀 파우스트 총장은 “개인만을 위하는 ‘셀카 시대’를 살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프린스턴대 크리스토퍼 아이스그루버 총장은 이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앨런 튜링의 삶을 소개하며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것이 프린스턴의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서울대 공부벌레들과 생활… 외교관의 꿈 꼭 이룰것 같아”

    “서울대 공부벌레들과 생활… 외교관의 꿈 꼭 이룰것 같아”

    “한국도 몽골처럼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더라고요. 서울대에서 공부한다면 외교관의 꿈을 꼭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26일 열리는 서울대 제70회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하게 된 몽골인 유학생 오강바야르(24·정치외교학부 4학년). 그는 “한국의 공부벌레들과 정신없이 생활하다 보니 어느새 졸업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3년 고려인 3세 홍야나(26·여) 이후 외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졸업생 대표 연설을 하게 된 오강바야르는 2010년 서울대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서울대와 인연을 맺었다. 몽골에 있는 외국어중·고교에 다닌 것이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다. “몽골은 면적이 한국의 7배에 이르지만 인구는 300만명밖에 안 돼요. 위로는 러시아, 아래로는 중국과 이웃하고 있으니 외교가 중요할 수밖에 없죠.” 유학생들은 교내외 활동에 소극적이기 쉽지만 오강바야르는 2011년 9월 서울대에 정식 입학한 이후 더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섰다. 2013년 8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해비탯(주거빈곤 퇴치사업) 봉사를 벌였고 지난해 12월에는 중국에서 사막화 문제를 살피기도 했다. 2014년 3월부터 서울대 외국인 학생회 회장을 지낸 그는 인권차별을 겪는 유학생과 인권센터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졸업 후 잠시 고향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내년에 국내에서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인 그에게 휴식 시간은 길지 않다. 그는 “한국으로 오는 몽골 친구들에게 따뜻한 선배가 되는 것도 제 목표”라며 한국과 몽골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생각나눔] 온라인 중고거래 가격 간섭하는 업체

    대학생 A(26)씨는 지난 17일 사놓고 포장을 뜯지도 않은 얼굴 마사지팩을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인 ‘중고나라’에 팔기 위해 5만원에 내놓았다. 앰플에 든 화장품을 얼굴에 바른 후 고무로 만든 팩을 붙이는 제품이었다. 지난해 2월 중고나라에서 6만원에 구입한 후 1년이 지난 탓에 나름대로 싼 가격에 처분하려 했다. 그런데 판매글을 작성한 지 1분여 만에 해당 마사지팩 회사 직원이 “귀하께서 판매하시려는 제품의 중고 판매가를 더 높여 달라”는 댓글을 올렸다. 그 직원은 “새 제품이나 마찬가지인데, 중고시장에서 실제 소비자가격보다 너무 싸게 판매되면 일선 판매점들의 항의가 많이 들어온다”고 했다. 그는 “인터넷 최저가인 6만원으로 가격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해당 제품은 일반 화장품 가게보다 피부관리실이나 미용실 등에 주로 유통되며 8만원이 정가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소비자 “새 제품 비싸게 팔면서 참견” 하지만 이 직원이 실수를 해서 ‘비밀댓글’이 아닌 ‘공개댓글’로 글이 오르면서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커졌다. 네티즌들은 “중고물품 값을 정하는 것은 판매하려는 사람의 자유”, “화장품 가격에 가뜩이나 거품이 많은데,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은 문제” 등의 글을 올렸다. ●업체 “개인 판매자 가장한 장사꾼 많다” 이에 대해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엄연히 오프라인 매장에서 유통되는 제품인 만큼 정상적인 상행위가 가능하도록 최저가 기준을 지켜 달라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업사원들이 거래처에 납품하는 가격이 5만원”이라며 “개인 판매자를 가장해 중고장터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파는 경우도 있어 중고나라나 오픈마켓 가격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다른 화장품 업체 직원은 “수시로 중고가격을 파악하고 비밀쪽지를 보내 가격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도 저도 안되면 아예 우리가 돈을 내고 해당 물품을 사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소비자원 “자유로운 가격 책정이 원칙” 한국소비자원에서 소비자 소송 지원을 하는 고정욱 변호사는 “중고물품은 소비자가 값을 정해 자유롭게 판매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소비자들이 제조 및 유통업체의 요구를 받아들일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입학에 웃고 입학금엔 울고

    입학에 웃고 입학금엔 울고

    법적 근거없어 산정근거도 안 밝혀 “등록금보다 가파른 인상” 한숨 사립대 “입학 경비로만 쓰진 않아” “등록금만 300만원이 넘는데, 입학금이라고 91만원이 더 나왔더라구요. 입학식을 하고 학생증 만드는 데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드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됐죠.” 지난해 경희대에 입학한 이모(25)씨는 22일 “서울대에 들어간 친구는 입학금이 17만원도 안 되는데, 사립대와 국립대 간 등록금 차이를 감안해도 5배나 비싼 입학금은 너무하다”고 말했다. 전국 대학 중 입학금이 가장 비싼 학교는 고려대로, 올해 103만 1000원이었다. 이어 동국대 102만 4000원, 한국외대 99만 8000원, 연세대 98만 5000원, 중앙대 98만원, 한양대 97만 7000원, 성균관대 94만 4000원 등 순이었다. 반면 서울대 16만 9000원을 비롯해 서울시립대 9만 2000원 등 국공립 대학은 크게 낮았다.시민단체인 청년참여연대는 이날 ‘입학금 정보공개청구 보고서’를 통해 대학들이 입학금의 산정 근거와 집행 내역을 밝히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청년참여연대는 “조사 대상 34개 대학 중 산정 근거가 있다고 밝힌 곳은 한 군데도 없었고 세부 지출 내역을 밝힌 6곳 중 사립대는 한신대뿐이었다”고 했다. 청년참여연대 관계자는 “대학은 입학 실비에 근거해 입학금이 집행되도록 기준을 세우고, 교육부는 입학금 산정과 관련해 세부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칙적으로 대학은 고등교육법에 따라 별도로 입학금 산정 근거나 지출 내역을 밝힐 의무는 없다. 하지만,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13년 교육부에 입학금 징수 근거 및 집행 세부 지침을 마련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대학들은 ‘입학금’이라는 이름 때문에 공연한 오해가 생겼다는 입장이다. 많은 대학 관계자들이 “입학금은 동호회의 가입비와 같은 성격으로, 총수입금으로 편입해 일반 대학재정으로 쓰는 돈”이라고 했다. 고려대 측은 “입학금은 입학에 관한 경비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며 교직원 인건비, 시설비 등 전반적인 학교 운영에 사용되는 재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사립대 교직원은 “과거에는 입학금을 입학과 관련한 행정비용으로만 썼지만 물가 상승에 따라 금액을 올리면서 등록금의 일부가 됐다”며 “입학금 인상은 등록금에 비해 학생 반발이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빠르게 많이 오른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총선 앞두고 서울대 강의 접은 정운찬

    총선 앞두고 서울대 강의 접은 정운찬

    4월 총선을 앞두고 야권이 영입 경쟁을 벌여 온 정운찬(69) 전 총리가 서울대에 폐강 의사를 밝힌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서울대 경제학부 관계자는 이날 “정 전 총리가 이번 1학기에 ‘산업경제 세미나’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오늘 폐강 절차를 물으며 수업을 접겠다는 의사를 밝혀 왔다”고 말했다. 정 전 총리는 폐강 이유를 자세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정계에 입문하려는 게 아니겠냐는 분석이 많다. 그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양측으로부터 정치 참여를 권유받았지만 가타부타 확답을 하지 않았다. 한편 정 전 총리는 23일 국회에서 국민의당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공정성장, 동반성장 그리고 경제민주화’를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토닥토닥 힘내” 낯선 이의 위로, 읽는 이의 힐링

    “토닥토닥 힘내” 낯선 이의 위로, 읽는 이의 힐링

    위로를 해 주기도, 위로를 받기도 힘든 세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경쟁 상대요, 지친 사람들이다. 학업 성적을 놓고 예민해져 있는 친구들, 승진으로 경쟁하는 직장 동료들, 팍팍한 살림살이에 아이 키우느라 힘든 아내와 남편들. 하지만 이럴수록 짧은 위로 한마디가 절실해진다. 다행히 사람들이 낯선 누군가를 위로하고 또 위로받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마음이 담긴 위로를 전하는데, 서로 얼굴을 모르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지친 삶을 보듬어 줄, 바로 그 ‘위로 한마디’를 들려주는 힐링의 공간들로 떠나 봤다. 지난 3일 저녁 지하철 4호선 이수역 부근의 작은 공간에서 피아노 소리가 흘러나왔다. 언뜻 포장마차처럼 보이는 한 평(3.3㎡) 정도의 공간에는 테이블 하나와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퇴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 사이로 여대생 이모(21)씨가 쭈뼛쭈뼛 들어와 앉더니 펜을 들었다. 이씨는 ‘오늘도 두렵고 힘든 하루를 버텨 낸 당신이 자랑스럽습니다. 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낸 것만 같아도 당신이 주인공인 이야기의 내용은 정말 멋졌어요’라고 적었다. 그는 금방 적은 이 엽서를 놓아 두고 앞서 다른 사람이 먼저 써 둔 엽서를 들고 자리를 떴다. 5분쯤 지나자 30대 남성이 들어와 엽서에 글을 적은 뒤 앞서 이씨가 남겨 둔 엽서를 들고 갔다. ‘쌈드림’으로 불리는 이곳의 주인 최현우(31)씨는 “4년째 응원 엽서 릴레이를 하고 있는데, 그동안 낯선 사람에게 위로를 하고 위로를 받은 사람들이 5000여명 정도 된다”며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각박한 세상에 다른 사람과 나누는 위로 한 줄에서 삶의 의미를 얻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했다. “2013년에 우리 쌈드림을 찾은 30대 트랜스젠더 여성은 ‘당신은 존재만으로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입니다’라는 누군가의 엽서를 마주하고 30분간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더군요. 부모도 모른 채 고아원에서 자라면서 보육교사에게 성폭행까지 당했다더군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로해 준 게 처음이라고 했어요.” 7년째 고시공부를 하던 남학생은 ‘할 수 있다’는 네 글자가 적힌 엽서를 들고 힘을 얻었다. 대학생 딸과 산책을 하던 엄마는 ‘당신을 위한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부드럽고 넓은 존재’라는 글귀로 누군가에게 힘을 주었다. 최씨의 당초 구상은 대입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에 지친 노량진 수험생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20~30대만 참여할 것이라는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70대 남성도 “노인정에서 자식 문제로 힘들어하는 다른 노인이 생각난다”며 글을 남겼고, 초등학생도 이곳을 찾아 “잘될 거야”라는 응원 메시지를 남겼다. 그는 1200여장의 엽서를 복사해 간직하고 있다. 최근에는 사당역, 이수역, 여의도 한강공원 등을 순회하고 오는 4월에는 청계천에도 쌈드림을 설치할 생각이다. 최씨는 자신이 수집한 위로 문구 중 가장 감동적인 것들은 빔프로젝터로 건물 외벽에 비춰 준다. 그는 ‘응원의 벽’이라고 이름 붙였다. ‘당신으로 인해 행복이 시작되었고 감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힘내’ 등 그다지 특별한 문구들은 아니다. 하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동작구와 함께 지난해 11월 동작구의회 건물 외벽에 문구들을 띄웠고, 지난 3일에는 서울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안에도 선을 보였다. 경복궁역에서 위로 문구들을 봤다는 직장인 김모(44)씨는 “20년 넘게 서울 생활을 하고 있는데 길거리에서 따뜻한 위로의 글을 보기는 처음”이라며 “거창한 문장이 아니어서 더 공감이 됐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이 써 놓은 글귀를 통해 위로를 받는 공간은 주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음이 울적해지면 마포대교를 찾는다는 이모(40)씨는 “자살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가드레일에 적어 놓은 것인데 고민이 있을 때 읽으며 건너면 마음이 편해진다”며 “‘조금 늦는다고 속상해하지 마’, ‘‘인생의 정답이란… 없습니다’ 같은 문장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위로 문구를 담아 시청 건물 정면에 내거는 대형 간판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관광 가이드에게 의미를 물어보며 사진을 찍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지난해 말 ‘토닥토닥’이라는 문구에 이어 현재는 ‘올해는 당신입니다’라는 글귀가 내걸려 있다. 직장인 최모(47)씨는 “대학 시절 도서관이나 화장실에 적혀 있던 위로의 낙서 문구들이 떠오른다”며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따뜻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관악구도 2011년부터 지금까지 25편의 위로 문구를 게시하고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시인 도종환), ‘태양에 임자 있나요. 가슴에 품은 사람이 임자지요’(소설가 이외수),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시인 최영미) 등이다. 올해에는 시인 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번만 더 날자꾸나’를 붙였다. 벽화마을에서도 좋은 문구들을 만날 수 있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벽화에는 ‘천천히 가도 괜찮아. 길만 제대로 알고 있다면’이라는 문구가 예쁜 꽃과 함께 적혀 있다. 직장인 김모(29·여)씨는 “지난해 갔던 전주 한옥마을의 한 카페 앞에서 ‘당신이 날리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당신의 옥상에서’라는 문구를 보았다”며 “옆에 있는 종이비행기 그림과 함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젊은이들이 주로 가입한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 ‘어라운드’의 진화는 온라인의 ‘위로 열풍’이 오프라인으로 확산된 경우다. 100만명 이상이 가입했고, 익명으로 짧은 글을 공유하되 악플이 아닌 선한 내용으로 소통하는 게 이 앱의 핵심이다. 여기에는 ‘달콤쪽지’라는 코너가 있다. 짧은 응원글을 적은 메모지를 버스 정류장, 지하철역, 전동차 내부, 아파트 엘리베이터 등 공공장소에 붙여 놓는 식이다. 메모지에 달콤쪽지라는 문구와 함께 붙인 날짜와 시간, 내용을 넣는다. 지난 3일 오전 5시 20분 한 버스 안에 붙은 달콤쪽지에는 ‘널 위한 하루야 힘내! 그리고 오늘도 수고했어요’라고 적혀 있었다. 수도권에서 출발해 전국으로 퍼졌다. 위로를 받고 싶은 누군가를 위해 지하철역 및 대학교 사물함을 빌려 위로 문구와 함께 과자나 초콜릿 등을 놓아 둔 뒤 비밀번호를 앱에서 공유하는 ‘달콤창고’도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달콤쪽지를 붙인다는 김민정(24·여)씨는 “쪽지를 붙인 후 다음날 쪽지가 없어진 것을 보면 나 자신이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위로의 본질은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익명성을 전제로 한 단순한 글귀라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데 큰 효과를 낸다”며 “‘너 얼마나 힘들었니’ 같은 말은 언뜻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실제 위로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커다란 울림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학과 김석호 교수는 “위로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거나 설명하기에 앞서 내가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며 “키워드 중심의 핵심적이고 쉬운 내용들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하지만 위로마저 가장 가까운 가족에 의해서가 아니라 익명의 누군가에게 받아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건물 입주’ 갈등 격화…상인들 총궐기 발대식

    노량진수산시장 ‘현대화 건물 입주’ 갈등 격화…상인들 총궐기 발대식

    300여명 집회…경찰과 몸싸움도 수협, 철제 기둥으로 주차타워 폐쇄 완공 4개월째 입주한 상인 ‘0명’…새달 15일 입주 시한 앞두고 충돌 “바지락 사러 왔는데, 아지매 어디 갔어요?” “데모하러 갔어. 오늘은 만나기 힘들어.” 15일 오전 9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수산시장의 한 점포를 찾은 손님의 질문에 원래 장사를 하는 아내와 아들 대신 가게를 지키던 김모(72)씨가 말했다. 이날 노량진수산시장에 문을 연 점포는 절반도 안 됐다. 불을 켠 집들도 비닐천막으로 생선 판매대를 덮은 채 그냥 자리만 지키는 수준이었다. “작년 10월에 이 옆에다 새로 수산시장 건물을 지었는데, 상점은 좁고 임대료는 비싸서 4개월째 아무도 안 가. 오늘 본격적으로 데모를 시작하는 거야.” 실제로 이날 오전 10시부터 수산시장 현대화 건물 정문 앞에서 시장 상인 300여명(경찰 추산)이 참여한 ‘전통시장 사수 총궐기 발대식’이 열렸다. 새 건물에 입주하지 않겠다는 상인들의 반발은 6개월째다. 상인 박모(58)씨는 “새 건물은 천장이 낮고 칸막이도 있어서 수산시장이 아니라 동네 마트 같다”고 했다. 다른 상인은 “영업 면적이 현재 약 11㎡(3.3평)에서 4.9㎡(1.5평)로 줄어 수족관은커녕 냉장고도 못 놓는다”며 “목이 가장 좋은 매장의 월세는 현재 50만원에서 71만원으로 뛰게 된다”고 한숨 쉬며 말했다. 전날 오후 시장을 관리하는 수협중앙회에서 상인들이 차량을 주차하는 주차타워을 철제 기둥으로 폐쇄하면서 상인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상인 최모(43·여)씨는 “상인들의 영업을 방해하려는 수협의 행동이 도를 넘어섰다”며 “주차장에 딸린 현금인출기도 정전을 핑계로 문을 닫아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협 관계자는 “주차타워 노후화로 콘크리트 박리현상이 일어나 안전 문제 때문에 폐쇄했다”며 “가게 면적도 옛 시장과 새 건물 모두 1.5평으로 같으며 그간 상인들이 통로를 무단으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월세도 1.5평에 대해서만 받고 있다”고 했다. 당초 낮 12시까지 끝낼 예정이던 집회는 오후 2시까지 이어졌다. 수협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는 상인들과 이를 막으려는 경찰들 사이에 몸싸움이 빚어졌고, 일부 상인들은 망치를 이용해 주차장을 막아선 철제 기둥을 부수기도 했다. 현재 새 건물에 입주한 상인은 한 명도 없다. 수협은 지난달 15일까지 상인들과 임대차 계약을 마무리하고 지난달 말까지 입주를 마치려 했지만 상인들의 반발로 3월 15일로 새 건물의 입주 시점을 늦춘 상태다. 이를 위해 수협은 새 건물의 매장 자리를 정하는 온라인 추첨을 지난 10일부터 시작해 19일까지 진행한다. ‘생존권 쟁취’라고 적힌 붉은색 조끼를 입은 상인들은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늦은 점심을 청했다. 그사이로 수협이 내보내는 방송이 들려왔다. “추첨에 응하지 않을 경우 오는 3월 16일부터는 현재 시장은 철거되므로 영업점을 잃게 됩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외제차 ‘무법 경주’… 사고 뒤엔 보험사기

    외제차 ‘무법 경주’… 사고 뒤엔 보험사기

    터널서 사고나자 서로 모르는 척… 단순사고로 7800만원 보험 타내 블랙박스 제출 거부하다 ‘덜미’ 지난해 8월 14일 오후 11시 서울~춘천 고속도로의 경기 남양주 톨게이트 앞에 외제차 6대가 자동차 경주를 위해 모여들었다. 토익 강사 강모(32·여)씨의 인피니티 g37c, 회사원 이모(33)씨의 BMW 320d, 자영업자 김모(30)씨의 벤츠 C클래스 AMG, 회사원 문모(35)씨의 폭스바겐 골프, 웨딩업체 대표 이모(34)씨의 미니쿠퍼 컨트리맨, 학원 강사 박모(34)씨의 BMW X3 등이었다. 6명은 수입 자동차 운전자 동호회에서 만난 사이로 스마트폰 ‘단톡방’(집단 채팅방)을 이용한 경주 참가자 모집을 통해 만났다. 6명은 제한 속도가 시속 100㎞인 도로를 시속 200㎞ 이상으로 내달렸다. 지그재그 운행과 ‘칼치기’(급차선 변경)를 반복하며 주변 운전자들을 위협했다. 가평 송산터널 2~3㎞ 앞에서 6대의 차량에 추월당한 김모(40)씨는 “굉음을 내며 순식간에 지나가는 것을 보며 레이싱을 하는 것 같아 경찰에 신고했다”면서 “그러다 관계없는 차들까지 공연히 피해를 볼 것 같았다”고 말했다. 이들을 목격한 지 1분쯤 지난 오후 11시 55분쯤 김씨는 송산터널을 지나다 6대의 차량 중 3대가 사고로 서 있는 것을 목격했다. 회사원 이씨의 BMW가 앞서가던 자영업자 김씨의 벤츠를 들이받았고, 그 충격으로 벤츠가 토익 강사 강씨의 인피니티에 부딪혔다. 블랙박스 확인 결과 사고는 터널 안이 정체 상태였던 것을 모르고 달리던 이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해 일어났다. 당시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사건을 처리했다. 사고 운전자 3명이 서로 모르는 사이로, 우연하게 사고가 났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이씨 등은 보험사에도 단순 사고로 신고해 수리비 명목으로 7800여만원을 받아냈다. 자동자보험 약관상 경주를 하다 일어난 사고는 보험 처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사실대로 말했다면 보험금은 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보험사 측은 블랙박스 제출을 거부하는 운전자들을 의심했고, 경찰에 수사를 요청해 사건의 전말을 밝혀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6명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사고가 난 후 보험을 거짓으로 신고한 3명에게 사기 혐의를 추가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들은 과속은 인정했지만 경주를 한 것은 부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불법 레이싱이 주로 열리던 자유로나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단속이 강화되자 서울~춘천고속도로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14일의 선물… 온라인 실속女와 편의점 선호男

    편의점 등 오프라인 판매량, 밸런타인데이 < 화이트데이 DIY 용품 많은 온라인 매출, 밸런타인데이 > 화이트데이 대학생 최선홍(22)씨는 올해 화이트데이에 여자 친구에게 2만원짜리 초콜릿 선물을 할 생각이다. “학교 앞에 있는 대형 편의점에서 고를 예정인데요. 좀 비싼 것을 사야 포장이 고급스럽던데요. 그래도 밸런타인데이에 받는 선물보단 비싼 걸 사줘야겠죠?” 남성이 여성에 비해 선물을 통한 애정 공세를 더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통념이 적어도 밸런타인데이 및 화이트데이에는 딱 들어맞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하는 3월 14일 화이트데이의 유통업체 매출이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하는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남자가 손해라는 결론은 성급하다. 초콜릿 재료를 파는 인터넷 상점이나 수공예 초콜릿 학원의 수강생은 여성이 많기 때문이다. 11일 유통업체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지난해 화이트데이 때의 초콜릿, 사탕 등 관련 상품 매출이 한달 전 밸런타인데이 때의 1.3배에 이른 것으로 집계됐다. 2014년에는 배율이 1.6배에 달했다. 편의점 CU의 경우 2012~2014년 화이트데이의 매출이 밸런타인데이의 2배 이상이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4년째 편의점을 운영하는 황모(48)씨는 “실제 물건을 팔아 보면 3월 14일 남자 손님이 더 많아 주문량도 훨씬 더 늘어난다”며 “올해는 밸런타인데이가 일요일인 데다 설 연휴까지 겹쳐 그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GS리테일 관계자는 “여성들은 알뜰하고 실속 있는 소비를 원하는 반면 남성들은 크고 화려한 선물을 선호한다”고 이유를 분석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여성들의 활동이 훨씬 더 적극적이다. 인터파크의 경우 지난해 밸런타인데이 매출이 화이트데이의 1.3배에 달했다. 업체 관계자는 “최근에는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을 직접 만들어 주는 여성들이 늘었다”며 “초콜릿 재료 등 스스로 만드는 제품(DIY)이 온라인에 많기 때문에 여성들이 배송 기간까지 고려해 밸런타인데이 1~2주 전에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8만~10만원의 수업료를 내고 초콜릿 만들기를 배우는 여성들도 있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의 수제 초콜릿 전문점 관계자는 “하루 8명씩 수업을 하는데 2월 초순, 중순에는 모두 예약이 차 있다”며 “여성들이 직접 만드는 선물은 유통업계의 매출로 잡히지 않아 정확한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상당한 규모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밸런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성향도 나타난다. 신세계백화점이 최근 3년간 밸런타인데이 기간 초콜릿 매출 비중을 조사한 결과 남성이 구매한 비중이 2013년 14%에서 지난해에는 31%로 늘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밸런타인데이·화이트데이>
  • 똑똑한 내비·길어진 휴일·늘어난 도로… 다들 덜 막혔대요

    똑똑한 내비·길어진 휴일·늘어난 도로… 다들 덜 막혔대요

    고속도 통행 첫 500만대 넘었지만 설 당일 서울~부산 5시간 20분 명절 때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차량은 꾸준히 늘어나지만 귀성·귀경길은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다. ‘서울~부산 12시간’, ‘서울~강릉 10시간’과 같은 끔찍한 상황은 사실상 옛날이야기가 됐다. 실제로 올해 서울~부산 구간은 피크타임에도 5시간대면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과거 심할 때에 비하면 소요시간이 절반 이하로 줄어든 셈이다. 전문가들은 내비게이션·스마트폰 등 정보통신(IT) 기기의 영향,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역(逆)귀성, 수도권 인구 증가로 인한 장거리 이동 감소, 대체휴일제 시행, KTX 이용 확대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10일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년 전인 1996년 설 당일(2월 19일) 차를 이용해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갈 경우 요금소 기준으로 최대 12시간이 걸렸다. 이것이 10년 전인 2006년(1월 29일)에는 8시간으로 줄었다. 올해 설 당일인 8일에는 5시간 20분이 공식 최장시간 기록이었다. 도로공사 관계자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0일에도 부산에서 서울까지 길어야 5시간 30분 정도였다”고 전했다. 막바지 귀경 행렬로 일부 구간에서 정체가 빚어지긴 했어도 평소 주말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해마다 고속도로 차량 운행이 급격히 늘고 있는데도 소요시간은 오히려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설 당일 고속도로 통행량은 2006년 365만 4233대에서 올해 503만 8962대로, 10년 새 38% 증가했다. 설 당일 통행량이 500만대가 넘은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귀성·귀경길에 여유가 생긴 주된 이유로는 역귀성, 짧아진 고향 체류 기간, IT 기기 이용, 도로망 확충 등이 꼽힌다. 통상 부모가 설을 쇠러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역귀성은 2004년 15.2%에서 2014년 22.9%로 늘어났다. 또 1박 2일간만 고향에 머무는 경우도 2004년 22.2%에서 2016년 27.8%로 증가했다. 서울에서 충남 공주로 내려간 김모(33)씨는 “지난 7일 휴대전화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니 밤 12시를 넘어서 차가 거의 안 막힌다는 결과가 나왔다”며 “아무래도 명절에는 차가 안 막히는 시간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명절의 고속도로 통행량이 다른 주말에 비해 크게 늘지 않는 것도 체감 혼잡이 완화된 이유 중 하나다. 올해 설 연휴 직전 주말인 1월 30~31일의 하루 평균 고속도로 통행량은 359만 379대였고 설 연휴 3일(2월 7~9일)의 하루 평균 고속도로 통행량은 418만 849대였다. 설 연휴 통행량이 직전 주말 대비 16.4% 증가에 그친 것이다. 주말에 100만대가 운행했다면 설에는 116만 4000대가 다녔다는 의미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할 때 2014년은 25.3%, 2015년은 23.6%로 올해보다 차이가 훨씬 컸다. 주말에 100만대가 운행할 때 설에 각각 125만 3000대, 123만 6000대나 몰렸다는 뜻이다. 오승훈 경기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고향에 머무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설 당일 이동하는 경우가 늘어난 반면 대체휴일제가 시행되는 등 휴일이 길어지면서 교통량이 분산되는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빠른 속도의 KTX가 수송을 분담하는 것도 도로가 덜 막히는 이유 중 하나다. 설 연휴 기간의 철도이용객 수는 2006년 227만명에서 지난해 267만명으로 17.6% 증가했다. 수도권에서 영호남 등 거리가 먼 곳으로 이동하는 사람도 줄고 있다. 성홍모 한국교통연구원 박사는 “수도권 인구가 예전에 비해 크게 늘어난 데다 부모의 별세 등으로 고향에 갈 이유가 없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장거리 이동 차량이 줄어든 것이 전체 교통 혼잡 완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분석했다. 실제 설 연휴기간 중 수도권 안에서 이동하는 차량은 2004년 전체의 20.6%에서 2014년 28.5%로 늘어났다. 최양원 영산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대구~부산 간 민자고속도로와 같이 전국적으로 도로망이 확충되면서 교통량이 분산된 것도 주된 요인”이라며 “이에 더해 라디오가 거의 유일한 수단이었던 예전과 달리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등을 이용해 막히는 길을 피해 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휠체어 앉아서 공부만… 불평등 문제 풀고파”

    “휠체어 앉아서 공부만… 불평등 문제 풀고파”

    “장애보다 힘들었던 건 편견” “고등학교 2학년 때 하루에 20시간 정도 휠체어에 앉아 공부만 했더니 엉덩이에 욕창이 생겼죠. 하지만 치료하는 시간도 아까웠어요.” 교통사고를 당해 장애1급(하지마비) 판정을 받고도 올해 입시에서 서울대 경제학과에 합격한 윤혁진(20·김해외고)씨는 16년 전 사고를 당한 순간을 희미하게 기억했다. “다섯 살 때인 2000년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골목을 건너는데 트럭이 와서 저를 쳤어요.” 그날 이후 윤씨는 1년간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았고 평생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입시를 준비하면서 고통은 더 심해졌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척추측만증이 악화된 탓이다. “요통도 문제지만 장기들이 제 기능을 못하니까 소화도 안 되고 호흡도 힘들었어요. 포기하는 게 어떠냐는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기 싫었습니다.” 2009년 허리가 더이상 휘지 않도록 척추를 묶어 두는 수술을 했지만 고통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윤씨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장애보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었다. “초등학교 체험학습이나 문화 활동, 여행까지 거의 모든 활동에 제약을 받았어요. 아무래도 제가 함께 가면 누군가 신경을 써야 하고 이동 시간도 길어질 테니까요. 친구들과 추억을 쌓지 못한 게 가장 아쉽죠.” 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했지만 윤씨 부모는 아들을 챙기느라 하루에 다섯 차례씩 학교에 와야 했다.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가족과 서울로 이사한 윤씨는 “장애를 갖고 난 이후 사회복지에도 관심이 갔지만 결국 그것도 경제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며 “경제학을 이용해 불평등의 문제를 풀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체류자 억류 가능성… 철수해야” “입주기업 피해 회복 어려울 것”

    10일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결정에 시민사회단체들은 진보와 보수 등 지향하는 이념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보수 성향의 단체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내며 한층 더 효과적인 제재 방안을 요구했다. 김도연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팀장은 “정부가 개성공단에 경제적인 지원을 많이 하고 있고, 그 돈이 북한 정권의 미사일 개발이나 핵실험에 쓰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정부의 결정을 반겼다. 그는 “공단에 체류하는 우리 국민들의 억류 가능성이 항상 염려돼 왔다”며 “이번 사건이 아니었더라도 하루속히 철수해야 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영훈 한국자유총연맹 경주지회장은 “북한의 반복적인 행태를 감안할 때 예전처럼 잠시 폐쇄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경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며 “공단을 영구 폐쇄하는 등의 방법이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 성향의 평화네트워크 정욱식 대표는 “공단 가동을 중단하면 북한이 경제적인 피해를 입긴 하겠지만 중국 등 다른 외국 기업을 유치하거나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입주한 한국 기업은 피해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미현 참여연대 평화국제팀장은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한 경제협력 수단이 다 막혀 있는 상황”이라면서 “개성공단은 북한과 대화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상주하고 있는 직원들과 연락을 취하고 가족들을 안심시키느라 분주했다. 한 입주기업 관계자는 “정부 발표 이후 개성에 있는 직원들에게 공장 가동 중단 사실을 알리고 긴급 대책을 세우고 있다”며 “불안해하고 있을 가족들에게는 상주 직원들이 직접 연락을 취해 안심시킬 예정”이라고 전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폭행 피해 가출했는데 ‘집으로’만 돌려보낸다

    폭행 피해 가출했는데 ‘집으로’만 돌려보낸다

    ① 중학교는 관리 책임 없어 ② 폭력 조사 않고 부모 인계 ③ 경찰·기관 협업 잘 안 돼 지난해 3월 목사인 아버지에게 5시간을 내리 맞은 부천 여중생 이모양은 가녀린 숨이 끊어지고, 이후 11개월 동안 작은방에서 미라 상태가 될 때까지 학교의 관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가출 청소년’이기 때문이었다. 현재 우리 교육 당국은 가출 청소년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호해야 할지에 대한 변변한 매뉴얼 하나 없다. 또 학대를 피해 가출했던 이양을 아무 정황도 모르는 상태에서 다시 학대의 현장인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 과정에서 관련 기관 간 협업 시스템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시스템이 제대로 됐더라면 막을 수 있었을 열세 살 아이의 소중한 생명. 이양의 사망에서 드러난 가출 청소년 관리 시스템의 세 가지 문제점을 짚어 봤다. ●“가출한 학생이에요. 부모가 경찰에 가출 신고를 했는데 학교에서 더이상 뭘 어떻게 하나요.” 숨진 이양에 대한 관리를 학교와 교육 당국이 좀더 철저히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이양이 다녔던 중학교 관계자에게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가출 학생을 관리하는 매뉴얼이 없으니 학교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뜻이다. 현재 각급 학교들은 학생이 가출할 경우 일단 ‘장기 결석자’로 처리할 뿐이다. 가출 청소년을 학교로 데려오기 위한 매뉴얼은 없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25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7일 이상 출석하지 않으면 학교는 보호자에게 2회 이상 독촉한 뒤 교육지원청장(교육장)에게 보고를 하도록 돼 있다. 그것만 하면 다른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 그나마 초등학생의 경우는 학교가 교육지원청장뿐 아니라 읍·면·동장에게 통보하도록 돼 있다. 이 경우 지방자치단체에도 장기 결석 학생에 대해 관리 책임이 생긴다. 하지만 중학교는 그마저도 없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가출 청소년에 대한 학교의 매뉴얼은 없다”며 “교육장에게 보고하는 기준인 ‘정당한 사유’에 대한 판단도 대부분 교사의 재량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같은 가출이라도 이유가 분명하면 교육장에게 보고하지 않는다. 그 판단은 순전히 교사의 몫이다. 이양이 다니던 A중학교가 교육장에게 보고를 하지 않은 것도 이양의 가출이 부모 차원에서 인지되고 관리되고 있다는 오판 때문이었다. 이양의 부모가 직접 경찰에 가출 신고를 했다는 사실을 지나치게 믿었던 것이다. 박윤조 성균관대 아동청소년발달증진센터 연구원은 “학교는 단순히 학생의 출결 상황만 확인하고 가출 청소년들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관심이 없고 살필 의무도 없는 상황”이라며 “학교가 가출 청소년을 돌보려는 의무와 의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학교든 기관이든 가출 청소년을 찾으면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만 한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오승윤 팀장은 “이양이 가출했을 때 초등학교 담임교사가 이양을 찾아서 한 조치는 지옥 같은 집으로 아이를 돌려보낸 것”이라며 “아이의 사정이나 가정폭력 등 여부를 따지기 전에 먼저 보호자에게 인계하고 집으로 보내는 시스템은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는 부모가 가출 신고를 하면 경찰은 해당 청소년을 ‘실종 아동 프로파일링 시스템’에 등록한다. 경찰은 가출 청소년을 찾으면 부모에게 인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길거리의 가출 청소년 중에는 부모의 학대와 폭행이 무서워 노숙을 마다 않는 경우도 많다. 가출 청소년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신림역 인근에서 만난 최모(15·가출 6개월)군은 “아빠라는 사람이 초등학교 때는 주먹으로 때리더니 언젠가부터 일주일에 한 번은 쇠파이프를 휘두르곤 했다”며 “영하 20도라도 밖에서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서울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 관계자는 “가출 청소년을 찾으면 경찰은 집에 보내기 전에 청소년지원단체와 상담하도록 주선해 이들의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며 “기본적으로 가정폭력을 의심하고 학생 본인의 의지를 묻는 단계를 가출 청소년 관리 시스템에 포함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학교, 경찰, 청소년 지원센터 간 협업이 되지 않아 가출 청소년을 다시 학교에 적응하도록 하기가 힘들다.” 가정폭력으로 집을 떠난 청소년을 찾으면 다시 학교에 적응하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있느냐고 묻자 여성가족부 학교밖청소년지원과 김숙자 과장이 전한 답이다. 가출 청소년을 상담하고 교육하는 기관으로 교육부 산하 ‘위(WEE)센터’와 여가부 산하 ‘학교밖지원센터’가 있다. 하지만 기관 간에 정보 공유가 어렵고, 학교와 정보도 단절돼 있다. 학생 본인이 개인 정보 제공에 대해 동의해야만 센터에서 안내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밖지원센터 관계자는 “학교나 가정에서 센터로 인계해 주지 않으면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지난달 부천 초등학생 폭행치사·시신 유기 사건 이후 장기 결석 아동 관리 매뉴얼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가출 청소년에 대한 규정을 따로 둘 계획은 없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경찰이나 지자체의 도움 없이 가출 청소년에 대해 조사하기는 어렵다”며 “가출 학생에 대해 체계적으로 파악이 안 되다 보니 관리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딸 죽은 다음날 태연히 강의·설교… ‘두 얼굴의 목사’

    딸 죽은 다음날 태연히 강의·설교… ‘두 얼굴의 목사’

    딸을 폭행하고 시신을 집에 방치한 혐의로 3일 경찰에 체포된 이모(47)씨는 ‘두 얼굴의 목사’였다. 전날 자신에게 5시간 동안 맞은 딸이 사망한 것을 확인하고도 대학에 나가 태연하게 강의를 하고, 자신이 담임목사로 있는 경기 부천의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부천의 이씨 집 앞에서 만난 이웃 주민 정모씨는 “불과 몇 개월 전에 부부가 호프집에서 같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을 봤는데 꽤 다정해 보였다”면서 “하지만 이씨가 평소에 집과 대학을 오가는 모습만 봤을 뿐 별달리 이웃과의 교류는 없었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은 “부부가 함께 다니는 모습은 자주 봤지만 자녀들과 함께 있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며 “자녀 없이 단둘이서만 사는 줄 알았다”고 했다. 이씨는 A신학대 겸임교수로 2014년부터 1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 왔다. 지난해 2학기까지 그는 대학에서 기초 헬라어(고대 그리스어)를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학교에서 그는 ‘공부에 빠진 사람’으로 통했다. 주변에서 “학문적으로 잘난 척을 너무 한다”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로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의 대학 동창인 김모씨는 “매일 저녁 9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했을 정도로 성실했고 사교성도 좋아 전임교수와 잘 지냈다”며 “지난주에도 교수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는데 이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씨는 친구에게도 사적인 얘기는 극도로 삼갔다. 동창 김씨는 “기사를 보고서야 그 친구에게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학생들에게 자주 밥을 사 주고 강의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평가가 꽤 좋았던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가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부천의 작은 교회는 이날 문이 굳게 잠겨 있었다. 이곳에서는 평일 오후 8시, 일요일 오전 11시·오후 1시, 수요일 오후 8시, 금요일 오후 8시에 기도와 예배가 이뤄졌다. 한 교인은 “3년간 이 목사의 설교를 들었는데 교훈이 되는 얘기가 많았다”며 “(딸이 죽은 후에도) 일요일 오전 예배가 끝나면 교인과 함께 도시락이나 김밥을 사다 먹는 친근한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1995년 국내에서 유명 신학대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에서 기독교 역사와 관련한 정기 세미나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등 왕성한 학술 활동을 했다. 2013년에는 기초 헬라어 관련 책을 출간하고, 종교 관련 서적을 번역하기도 했다. 딸이 사망한 지난해 3월 이후에도 똑같은 일상을 유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에는 대학 교회에서 ‘신앙인의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예배를 주관했고, 지난해 12월에는 같은 대학 교수들과 함께 종교 관련 번역서를 출간했다. 큰딸은 현재 독일에서 유학 중이고, 큰아들은 고등학교 1학년 때 가출해 지방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北예술단 구경 왔더니… 20분 공연 후 1시간 상조 홍보

    ‘노인만 출입’ 공짜 티켓으로 유인 서울시 소유 건물서 버젓이 영업 모처럼 나들이에 나선 최갑진(71·여)씨의 손에는 ‘북한 예술단 순회공연’ 무료 초대권이 쥐여 있었다. 나흘 전 집(서울 관악구 인헌동) 앞 버스정류장에서 주운 초대권 안에는 북한 배우들의 사진이 인쇄돼 있었다. “공짜로 보여 준다니까 왔지. 사은품은 며느리 주면 좋아하겠지?” 하지만 3시간 뒤 다시 사당역 앞에서 만난 최씨의 얼굴에선 더이상 설렘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사람을 속이면 되겠어? 알고 보니 다 장사꾼들이고 사기꾼들이잖아.” 최씨는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리고 지하철역으로 들어갔다. 가슴에 품은 장미무늬 칼은 불쾌함과 맞바꾼 유일한 소득이었다. 1일 오전 9시 30분 예술단 공연이 열리기 30분 전인데도 관악구 남현동 서울시교통문화교육원 대강당 앞은 60~70대 노인들로 북적였다. 행사 관계자는 노인들을 상냥하게 안내하면서 학생들은 출입을 못하게 막았다. 이유를 따져 묻자 “주의사항에 다 적어 놨다”는 말만 돌아왔다. 실제 초대권 뒤편엔 ‘어린 자녀 및 학생 입장 불가’라는 글씨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분홍 저고리에 검은 치마, 머리에 꽃단장을 한 무용수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공연은 20분도 채 안 돼 끝났고, 곧바로 상조회사의 홍보 담당자가 등장했다. “우리 아버님, 어머님들 다 같이 돈 모아서 동남아 크루즈 여행 한번 가시죠. 한 달에 만원씩만 내시면 장례비용이 다 해결되니까….” 1시간 가까이 상조 서비스를 설명했고, 돈을 납입한 후 상조서비스를 받지 않으면 동남아 크루즈 여행을 갈 수 있다고 홍보했다. 29만원짜리 건강목걸이도 판매했다. 일부 참석자들은 북한 공연단에 대관을 해준 교통문화교육원 측에 항의를 했다. 한 70대 남성은 “서울시 건물이라고 해서 믿었더니 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교육원은 서울시 소유지만 민간에 위탁해 운영한다. 교육원 관계자는 “4년 전부터 매년 1~2차례 상조상품 판매가 진행되고 있지만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 대관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공연 주관사가 대관료로 지불한 돈은 162만원이다. 오는 6일에는 서초구 양재동에서 공연단 이름은 ‘평양 진달래 예술단’으로 약간 다르지만 같은 업체가 주관하는 공연이 열린다. 이렇듯 한동안 잠잠했던 상조업체들의 ‘떴다방’식 영업이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메뚜기식 공연이어서 적발이 힘들 뿐 아니라 현행법에 이들을 제재할 근거도 거의 없어 딱히 조치를 취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뻥 뚫린 인천공항] 인력·비용 줄이려고 만든 자동심사대… ‘밀입국 통로’로 전락

    [뻥 뚫린 인천공항] 인력·비용 줄이려고 만든 자동심사대… ‘밀입국 통로’로 전락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관문인 인천국제공항에 최근 보안 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31일 허술한 시설 및 인력 관리와 보안 의식 약화 등이 겹쳐진 탓이라고 진단했다. 우선 지적되는 것이 허술한 시설 문제다. 지난 21일 새벽 일본에서 인천공항을 거쳐 중국으로 가던 30대 중국인 부부가 공항 3층 면세구역을 통해 3번 출국장까지 빠져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4분 남짓이었다. 닫혀 있어야 할 공항 상주직원 전용 출입문은 자동으로 열렸고 보안구역과 일반구역을 나누는 최종 출입문도 9분가량 흔들어 대자 잠금장치 나사못이 뽑혔다. 또 다른 문제는 밀입국자들이 공항을 빠져나가는 사이 보안 경비요원의 제지를 한 번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출국장의 보안요원은 정중앙에서 근무하라는 수칙을 어기고 구석에서 자리를 지키다가 이들을 놓쳤다. 지난 29일 공항 보안구역을 뚫고 나간 20대 베트남인 사건도 보안 시스템의 문제점을 보여 준다. 그는 이날 오전 7시 24분쯤 공항 2층 입국장에서 자동 입국심사대 스크린도어를 강제로 열고 나갔다. 사람의 힘만으로 열렸다는 것도 문제지만 강제 개방했을 때 경보음이 울려도 이를 제지할 근무자가 없었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운영 시간은 아니었지만 보안경비 근무자를 배치하지 않아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상광 안동과학대 항공보안과 교수는 “인력을 줄이고자 자동 입국심사대를 만들었다면 대비책으로 항시 감독할 수 있는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고 항상 관찰했어야 한다”며 “입국 시간이 아니라고 인력을 배치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인천공항의 보안인력은 줄잡아 2000명이 넘지만 용역업체 중심의 관리에 따른 인력들의 책임감 부족과 기강 해이의 문제가 효율성과 안전성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가 경비·보안 업무를 민간업체에 용역을 준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한다. 공항 여객터미널 면세구역과 검색장 등 보안 지대의 경비·보안은 공개입찰을 통해 선정된 업체 3곳이 나눠 맡고 있다. 이 업체가 뽑은 인력이 인천공항으로 파견돼 근무하는 형식이다. 대부분이 계약직이고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허술한 근무 기강과 높은 이직률 등은 국정감사 때마다 논란이 돼 왔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보안요원은 “비정규직이다 보니 업무에 대한 자부심, 책임감이 많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라면서 “제대로 된 처우도 못 받는데 누가 필요 이상으로 일을 하겠느냐”고 털어놨다. 정윤식 경운대 항공운항과 교수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보안 업무를 용역업체에 맡기는 게 과연 타당한지의 문제로 귀결된다”며 “용역업체에 맡기면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고려하지 않은 ‘낙하산’ 인사가 한몫했다는 지적도 있다. 2013년 6월 인천공항공사 사장으로 임명된 정창수 전 국토교통부 1차관은 취임한 지 10개월도 안 돼 강원도지사에 출마한다며 사퇴했다. 다음으로 취임한 박완수 전 창원시장도 지난해 말 4·13 총선 출마를 위해 사직했다. 다행히 지난 29일 정일영 전 교통안전공단 이사장이 사장에 내정됐지만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이었다. 최연철 한서대 항공학부 교수는 “최근에 임명된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전문성이 부족해 세심하게 관리·감독을 해야 할 부분을 건드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임기 중간에 떠나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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