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 교과서 갈등 해법 전문가 좌담
일본의 왜곡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야기된 한·일간 갈등과 감정의 앙금이 좀처럼 해소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있다.대한매일은 16일 ‘가깝지만 먼 이웃’ 한·일 두 나라 사이에 야기된 이 어려운 숙제를 풀고 바람직한 선린의길을 모색하기 위해 긴급 좌담을 마련했다.좌담에는 일본교과서 왜곡 대책반 부반장인 임성준(任晟準)외교통상부차관보,일본정치 전문가인 박한규(朴漢圭)경희대 교수,기시 도시로(岸俊郞) 전 NHK 서울지국장 등이 참석했다.참석자들은 다양한 갈등해소책을 제시했으나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 없이 일본이 21세기의 진정한 세계의 지도적 국가가 될 수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임성준 차관보 일본 정부의 교과서 검정결과가 발표되기전부터 우리 정부는 왜곡된 기술이 포함될 수 있음을 예상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현재 정부차원의 교과서왜곡 대책반이 구성돼 정밀분석중입니다. 초기 정부대응이미온적이라는 일부 지적이 있는데 정부는 이 문제가 나올때부터 역사인식의 문제는 한·일관계의 근본에 대한 문제라 생각, 대단히 중시하고 대응책을 마련해왔습니다.
■박한규 교수 정부의 초기대응이 미온적이었습니다.지난98년의 파트너십 공동선언에서 근거해 미온적으로 대처한것입니다.기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21세기 진정한 동반자 관계는 없습니다.처음에 강경한 대응을 하지 못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는 우를 범한 것 같습니다.
■기시 도시로 전 지국장 한국측이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있고 한국 정부가 목표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에는 세가지 논점이 필요합니다.첫째,교과서 어느부분이 왜곡됐는지가 명백해야 합니다. 어느 것이 왜곡이고 삭제·축소인지 밝혀주십시오.두번째,일본 정부를 상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 모임’) 등 우익집단,아니면 일반 일본인들을 상대로 할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임 차관보 5∼6명의 전문가들이 분석한 결과가 20일쯤나오면 왜곡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정부는 이를 국내 역사학계와 ‘역사편찬위원회’ 등의 재평가를 거치도록 해 객관성과 합리성을 부여할 방침입니다.
‘새 모임’의 교과서는 일제의 아시아 침략을 ‘진출’로 바꿨습니다.기업들이 해외에 영업망을 넓히는 것을 진출이라 하는데 제국주의 진출을 기업의 해외진출과 같이쓸 수는 없습니다.반면 ‘침략’이란 단어는 새 교과서에없습니다.군대 위안부 문제는 여성의 존엄성을 짓밟고 인격을 파멸시킨 중대한 문제입니다.이에 대해서는 검정을통과한 8개 교과서 중 5개가 언급이 없습니다.과거에 있었는데 이번에 없으므로 명백한 ‘삭제’입니다.
■박 교수 민간학자들은 문제의 교과서가 일제의 침략과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미화했다고 봅니다.
첫째,한·일합방에 대해 찬성하는 조선 내의 일부 목소리가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당시 이완용 일파의 처신을 확대과장,한·일합방에 대해 양국이 합의한 것처럼 해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두번째 식민지 개발론입니다.철도를 놓고 관개시설을 정비하고 토지조사를 했다고 하는데이는 개발이 아니라 경제수탈을 위해서였습니다.세번째 군대위안부 문제입니다.이는 역사적 문제이면서인도주의적문제입니다.일본이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태평양 전쟁 당시 수많은 고통과 피해 속에서 살아온 위안부의 실체를 없애는 것입니다.
■기시 전지국장 진보파의 대표적 학자인 와다 하루키 교수가 한 기고문에서 ‘새 모임’의 교과서가 137곳을 수정당한 것은 ‘새 모임’의 패배라고 지적했습니다.문제의교과서가 검정을 거쳐 많은 수정을 받았음을 알아야 합니다.상당부분 개선된 교과서에 대해서 아직도 시정해야겠다고 주장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판단도 필요합니다.
■임 차관보 역사가 왜곡된 교과서를 정부가 인정했다는점에서 일본 정부가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우리는 교과서 왜곡에 있어서 82년과 86년,두 차례 뼈아픈 경험이 있습니다.당시에는 사회당과 교원노조 등 일본 내 진보세력이 상당히 있었습니다.이념은 달랐지만 교과서 문제에서뜻을 같이해 일본 내에서도 문제를 제기하고 아시아 여러나라가 힘을 합쳐 수정했습니다.이들이 힘을 잃어가면서일본의 전후처리과정에 의문을 품은 보수우파세력이 힘을얻고 있습니다.
■기시 전지국장90년대는 일본인에게 ‘잃어버린 10년’입니다.경제적 침체와 정치적 혼란 사이에서 목적을 잃고떠돌고 있습니다.
일본 내에서는 좌·우파가 양립했습니다.전후 미국의 정책은 좌파가 힘을 얻게 되어있지만 천황의 존재를 인정,우파의 존재도 가능해졌습니다.미국의 모순된 정책 때문에좌·우파가 양립하면서 일본이 왜 아시아를 침략할 수 밖에 없었고 책임은 누가 져야하는가에 대한 ‘사고 정지’가 50년간 계속됐습니다.
좌·우파는 각각 10%에 불과합니다.80% 일반 일본인들은‘잃어버린 10년’ 사이에 일본과 일본인의 정체성에 대한의문과 모색을 시작했습니다.이 가운데 우파의 주장이 호감을 얻었습니다.우리가 과거 역사에 잘못은 있지만 죄인같은 비판을 받아야 하는가죠.한국이 도덕적인 공격을 계속하면 일반 국민들이 오히려 새 모임의 주장에 경도되지나 않을까 우려됩니다.
■임 차관보 일본의 보수우경화는 세계평화에 지장을 초래하지만 않는다면 우리 정부로서는 간섭할 사항이 아닙니다.일본 내에 양식있고 건전한 국민들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본의 우경화와 관련,자민당의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정조회장이 “주한미군이 공격받으면 한반도에 자위대를파병한다”는 위험한 발언이 대단히 경솔하고 유감스러운발언이지만 일단 지켜보고 있습니다.
■박 교수 교과서 왜곡이나 일본 군사대국화 등 우익 주장이 또다시 아시아에서의 안정과 평화를 깨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임 차관보 어느 나라든지 자존심이 있고 자국의 역사는자국이 만들어가는 겁니다.단 객관적인 역사를 왜곡하는것은 미래지향에 걸림돌이 됩니다.미래를 담당할 젊은 세대들의 교과서에 그런 문제가 담기는 것이 중요한 문제입니다.
■기시 전지국장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의 재수정을 요구해서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질까요.검정이란 행정행위는 일단끝났습니다.2003년에 쓰일 내년도의 교과서 검정에 이번결과를 충분히 반영하라고 하는 것은 가능합니다.검정을다시 요구할 법률적 근거가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임 차관보 검정을 통과한 뒤 사실의 오류가 있거나 사정의 변경에 있어서 문부대신이 집필자에게 수정을 권고하는조항이 있습니다. 침략을 진출이라 쓴 것은 명백한 오류입니다.이를 근거로 수정을 요구할 것입니다.
■기시 전지국장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재수정 여지가 없다고 하고 자민당 총재 후보 4명도 같은 입장이라 양국간의 접점이 보이지 않습니다.어떤 경우든 이 문제가 외교문제로 비화돼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박교수 동감입니다.양국간에는 2002년 월드컵,대북 문제등 협력이 필요한 사안이 많습니다.이를 위해서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합니다.일본 정부가 재수정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항의할 권리가 있습니다.반면 교과서 문제를 다른 외교수단과 연계하는 것은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시 전지국장 98년 파트너십 이후 양국의 민간교류가급속도로 늘고 있습니다.전후 세대는 한국을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습니다.한국을 친구로 인식한 뒤 위안부 문제 등과거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국사람의 감정과 아픔을 알게되면 일본은 바뀌기 시작합니다.
■임 차관보 한국은 피해자로서 아픔의 깊이가 다릅니다.
현재 양국이 미래를 향해 나가는데 교과서 문제가 나와 우리 국민의 상심과 분노가 큽니다.‘과거사에 대한 반성을잊지 않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행동이 필요합니다.
정리 진경호 전경하기자 lark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