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벽 허물기’ 매머드 IB 나온다
내년부터 금융투자사(현 증권사)는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 등의 업무에도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자영업자 등 일반투자자도 위험 회피 목적으로 금융투자사와의 장외파생상품 거래가 가능하다. 주식위탁매매, 펀드판매 등 특정 업무에만 주력하는 회사도 대거 생긴다. 금융위원회는 6일 이같은 내용의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 시행령을 입법예고했다고 밝혔다. 자통법은 시행령과 함께 내년 2월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일단 ‘춘추전국시대´로
시행령에 따르면 자본시장 관련 업무를 할 수 있는 인가·등록 기준이 현재 26개에서 42개로 늘어난다. 펀드 중에서도 증권(주식·채권) 펀드만 운용할 경우 현재는 자기자본이 100억원이지만 앞으로는 40억원만 있으면 된다. 이밖에 자기자본 10억∼50억원이면 펀드판매만 하는 회사를 설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반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주식위탁매매업 회사는 자기자본 10억원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전문투자자를 대상으로 할 때는 5억원이면 가능하다. 적은 돈을 들여 다양한 형태의 금융투자사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종합증권업, 선물업, 집합투자업(자산운용), 신탁업, 투자일임업, 투자자문업 등 6개 업무를 모두 할 수 있는 이른바 IB(투자은행)의 자기자본 한도는 2000억원이다.
기준 세분화로 다양한 금융투자사가 생기면 기존 허가증(라이선스)에 붙는 프리미엄은 완전히 사라진다. 홍영만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은 “소규모 특화·전문화된 금융투자사 창업이 활성화돼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특히 주식거래 중개만 하는 증권위탁매매업은 자기자본이 10억원밖에 들지 않아 회사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날 전망이다. 현재 증권사 수익의 60%를 차지하는 수수료 수입이 줄어들면 대형사들은 다른 수익원 발굴에 집중하게 된다.
●IB, 규제 대폭 완화
금융투자사는 IPO,M&A는 물론 채권 인수 때도 단기 대출을 해줄 수 있고, 채권 발행 때는 지급보증도 가능해진다. 앞으로는 외국계나 은행 등 대출기관을 끼지 않고도 큰 돈이 필요한 M&A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자기자본만으로 해야 하고 계열사에 대한 지원은 안 된다. 단기대출이나 지급보증은 영업용순자본비율(NCR·영업용순자본/총위험액)을 떨어뜨린다. 대형 M&A를 하려면 자기자본이 많이 필요하다. 최근 증권사들이 자본확충 노력을 벌이는 것도 이같은 까닭이다.
장외파생상품거래를 위한 NCR도 300%에서 200%로 낮췄다.3년 뒤에는 이것마저 없어진다. 장외파생상품 거래 대상도 종전에는 전문투자자에만 국한됐지만, 앞으로는 위험 회피 목적의 일반인도 포함된다. 예컨대 과수원을 운영하는 사람이 과일값 폭락에 대비해 파생상품 거래를 할 수 있다. 종전에는 특정인을 위한 사모펀드에만 허용됐던 성과보수의 경우, 환매가 금지되고 성과가 미진하면 보수를 적게 받기로 한 펀드에 한해서 허용된다.
●일각선 “투자자보호 미흡” 지적도
수익률 등 펀드의 비교공시 대상에 운용·판매보수와 판매수수료도 추가된다. 투자자들이 쉽게 수수료를 비교,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지분을 5% 이상 보유했을 때 보고해야 하는 기간이 결제일 기준 5일 이내에서 계약체결일 기준 5일 이내로 앞당겨진다.
자통법 시행으로 업종간 칸막이는 허물어지지만 이에 따른 문제점도 적지 않다. 한 회사 안에서 다양한 업무를 하면서 투자자간 이해가 충돌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금융을 담당하는 부서는 다른 부서와 정보교류, 임직원 겸직, 사무실 공간과 전산설비 공동 이용 등을 할 수 없도록 했다. 고유재산(회사 돈)을 운용하는 분야도 해당된다. 고유계정 자산이 2조원 이상이거나 고객 돈인 운용재산이 6조원 이상이면 사외이사와 감사위원회를 둬야 하고, 증권사 임원도 은행처럼 일정 수준 이상 조치를 받으면 취임을 못하도록 했다.
회사 유지 기준을 처음으로 명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입 때 요구되는 자기자본을 70% 이상 유지해야 한다. 미달할 경우 1년간 유예기간을 주고 충족시키지 못하면 인가·등록이 취소된다. 최대주주가 5억원 이상 벌금형을 받아서도 안 된다. 증권업계에서는 시행령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반응이다. 자산운용협회 김철배 이사는 “진입과 영업규제를 완화, 창의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도록 해줬다.”고 평가했다. 외국계 증권사 임원도 “업계 요구를 최대한 많이 반영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겸영에 따른 투자자간 이해상충 방지에 대한 보호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