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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경하
    2025-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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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광장] 공직자 재산공개, 데이터로 내놓아라/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공직자 재산공개, 데이터로 내놓아라/전경하 논설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으로 근무할 때 땅 투기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A씨는 퇴직한 2017년 재산신고를 두 번 했다. 2016년 말 기준 신고와 퇴직한 7월까지의 변동 신고다. 재산등록 의무자에서 퇴직한 공직자는 퇴직일로부터 두 달 안에 재산변동을 신고해야 하고 이 내용은 한 달 뒤 공개된다. A씨는 2017년 세종시 연기면 눌왕리에서 논 2455㎡를 5억 1940만원에 배우자 명의로 샀다고 신고했고 이 내용은 그해 11월 3일 관보에 실렸다. 주말농장은 1000㎡ 미만으로 허용됐을 뿐인데 4년 동안 왜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 공직자가 땅이나 아파트 등 부동산을 사고판 내용은 관보나 공보의 재산공개에 있다. 공직자의 땅 투기는 A씨 사례처럼 몇 년 전 일어난 일이 많다. 과거 재산공개를 찾아 개발 예정지의 땅을 샀는지를 확인해서 투기 여부를 조사할 수 있다. 말은 쉽지만 자료 내려받기, 대조 등 단순작업에 시간을 오래 들여야 한다. 재산공개가 데이터로 쓰이는 것은 원하지 않거나 데이터화에 관심이 없는 탓이다. 1981년 시작된 공직자 재산등록은 1993년부터 대중에게 공개됐다. 이후 거의 30년 동안 매년 3월 말쯤 행정·입법·사법부의 고위 공직자 재산이 공개된다. 공개대상 인원은 꾸준히 늘어 올해 국회의원 298명과 국회 1급 이상 공직자 37명, 고위 법관 144명, 1급 이상 청와대·정부 고위 관리와 광역자치단체장·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1885명 등의 재산이 관보에 공개됐다. 광역자치단체의 공직유관단체장과 기초자치단체 의원의 재산내역은 광역 지자체 공보에 실린다. 서울시공직자윤리위원회가 지난 25일 시보를 통해 자치구 의원 417명,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등 공직유관단체장 16명의 재산을 공개한 것이 그 예다. 공직자윤리법은 ‘관보 또는 공보에 게재해 공개한다’고 돼 있다.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보기 편한 PDF파일로 제공하는데 PDF는 검색이나 정렬 등이 어렵다.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분석해서 기사를 써야 하는 기자들이 꾸준히 검색과 분류 등이 쉬운 엑셀 또는 CSV파일로 공개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마이동풍이었다. 결국 일부 언론은 자체 프로그램을 개발해 PDF를 데이터 형식으로 바꾼 뒤 분석해서 기사를 쓴다. 재산신고 당사자는 데이터를 냈는데 정부 등이 이를 모아서 데이터 추출이 바로 되지 않는 형태로 제공하고, 활용하려는 사람은 원래 데이터로 바꾸는 도돌이표 상황이 매년 반복된다. ‘디지털 강국’, ‘디지털 뉴딜’이라는 구호가 쑥스럽다. 부동산 투기는 해당 지역 주민이 훨씬 잘 찾는다. 반도체클러스터가 조성되는 경기 용인 원삼면 주민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부동산 투기가 보도된 이후 주민통합대책위를 구성해 LH 직원 30명이 투기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대책위는 한 달 동안 2017~2019년 원삼면 일대 토지 거래명세 600건을 조사했다.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발본색원하겠다면, 정부는 최소 10년치 재산공개 자료를 분석 가능한 데이터로 만들어 공개하라. 재산공개는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경질에서 봤듯이 정확한 주소와 금액을 담고 있다. 투기를 조사하는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가 국민에게 신고하는 시민정신을 요청할 때는 그 정도 노력은 해야 염치가 있는 거다. 정확하고 접근이 쉬운 정보가 있어야 시민의 공직 감시가 더 큰 효과를 발휘한다. 사실관계에 기반한 정보는 공유될수록 더 큰 효과를 가져온다. 재산공개 주체의 자세도 따져 봐야 한다. 정부는 올해 재산 총액 순위, 주요 증감자를 추려냈고 설명회도 했다. 대법원은 보도자료만 냈지만 재산총액과 증감액을 담은 엑셀을 제공했다. 서울시는 공직유관단체장 16명과 재산총액 상위 기초자치단체 의원 20명이 담긴 보도자료를 냈다. 국회는 총액과 재산 증감을 구간별로 나눠 해당 인원 숫자만 적은 보도자료를 냈다. 총액이나 증감액 순위를 알려면 국회공직자윤리위원회가 낸 850여쪽의 공보를 일일이 뒤지거나 다른 파일로 전환해야 했다.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가 가장 불성실한 자료를 제공했다. 관보나 공보는 ‘국민에게 널리 알릴 사항을 편찬해 발행하는’ 문서다. ‘널리 알린다’는 의미가 눈으로 보고 끝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공직자윤리법 등 관련 법령을 고쳐 재산의 분석이 쉬운 데이터로 줘야 한다. 공직자의 부동산 투기를 감시한다고 새로운 기관을 만들거나 실무직 공무원들까지 재산을 등록하도록 하기 전에 ‘있는 자료’부터 제대로 쓸 궁리를 하는 것이 순리다. lark3@seoul.co.kr
  • [씨줄날줄] 역사 왜곡 드라마/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역사 왜곡 드라마/전경하 논설위원

    “본 드라마의 인물, 사건, 구체적인 시기 등은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며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방송 2회 만에 폐지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방송 앞부분에 내보낸 자막이다. 역사적 사실과 무관하다면 이름은 물론 관계 설정도 달랐어야 한다. 하지만 ‘조선구마사’는 조선 시대 태조-태종-세종의 이름과 관계도를 그대로 가져왔다. 그리고 사실을 정반대로 비틀었다. 성군 세종은 목조부터 태종에 이르기까지의 행적을 노래한 ‘용비어천가’를 지었다. ‘조선구마사’ 속 세종은 왕자였던 충녕대군 시절 호위무사에게 “6대조인 목조께서도 기생 때문에 삼척으로 야반도주하셨던 분이셨다. 그 피가 어디 가겠느냐”라고 한다. ‘조선구마사’의 작가는 ‘철인왕후’에서 “조선왕조실록도 한낱 찌라시네”라는 대사로 논란을 일으킨 작가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국보인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종묘제례악을 폄하한 ‘철인왕후’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행정지도를 받았다. ‘조선구마사’에서는 중국풍 인테리어의 공간에서 중국 음식과 술을 한복 입은 기생이 대접하는 장면이 나온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호응하는 듯한 드라마를 참아낼 시청자는 별로 없다. ‘조선구마사’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싶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원용하면 인물과 관계 설정 등을 무에서 만들지 않아도 돼 시간이 절약되는 이점이 있다. 편한 만큼 책임이 따른다. 물론 창작물이니 창작의 자유도 있다. 하지만 그 자유가 역사적 사실관계를 원하는 대로 비틀어 쓸 수 있는 방종을 뜻하지 않는다. 혼자 보지 않는 한 보는 사람에 대한 폭력일 뿐이다. 출연 배우들은 지난 17일 온라인으로 열린 설명회에서 ‘실존 인물에 기반한 허구’라는 점을 강조했다. 허구라면 내용이 역사 왜곡과 폄하로 이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이제 한국 드라마는 한국인만 보지 않는다. 한류 바람을 타고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서도 즐겨 본다. 외국인이 역사적 인물이 정반대로 왜곡된 드라마를 보면서 이를 현실과 다르다고 생각하길 바라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드라마에 빠진 우리도 헷갈려 하지 않나. 제작진이 검증을 강화하고 방심위가 심의를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방심위는 사후 제재이니 제작진의 역사의식이 더욱 중요하다. 더군다나 방심위는 지금 개점휴업 상태다. 임기 3년의 4기 방심위가 지난 1월 29일 임기가 끝났지만 5기 방심위는 아직 구성되지 않았다. ‘조선구마사’ 사건은 창작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점을 시청자의 힘으로 증명한 사건이다. 제작진의 설명대로 ‘사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액션물’이어도 지켜야 할 정도는 있다. lark3@seoul.co.kr
  • [길섶에서] 약 잘못 준 약국/전경하 논설위원

    병원 처방전으로 아들 약을 샀다. 집에 와서 보니 처방전은 물론 약 봉투에도 1회 복용분이 4가지 알약 한 알씩으로 돼 있는데 담겨 있는 1회 복용분엔 멀미약이 두 알씩 있었다. 대신 소염진통제가 없었다. 조제 실수였다. 다행히 약국이 집에서 그리 멀지 않아 다음날 약국에 가서 항의하고 약을 다시 받았다. 멀리서도 환자가 오는 큰 병원 옆에 있는 약국이라서 그런지 서비스 정신은 없었다. 처음 간 날 대화는 환자 이름 한마디였다. 조제 실수가 확인되고 나서야 ‘죄송합니다’라고 말할 뿐 그리 놀라거나 미안해하지 않았다. 안 먹었으니까. 약을 받아 오면 처방전이나 약 봉투와 비교해서 먹은 적이 있었던가. 아들이 고3이라 어떤 약인가 확인하다 발견했다. 환자보관용과 약국제출용이 짝이라는 처방전을 두 장 받은 적도 별로 없다. 약국제출용만 줘서 약국에 내면 끝이었다. 알아서 줄 것이라고 믿었으니까. 약국을 믿지 말고, 약이 맞나 확인해야겠다. 요즘은 복약지도를 위해 약 봉투에 약 사진과 설명이 있다. 환자가 확인해야 할 책임도 생긴 셈이다. 동네 주민이 아닌 뜨내기손님을 상대하는, 큰 병원 덕에 장사가 기본으로 되는 약국일수록 조심해야겠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도, 보건소도 그런 약국일수록 더 잘 감독해야 한다.
  • [전경하의 시시콜콜]코로나이혼

    코로나19가 유행했던 지난해에 만들어진 단어 중에 ‘코로나이혼’(Covidivorce)이 있다. ‘코로나’(Covid)와 ‘이혼’(Divorce)을 합친 단어다. 코로나19로 인한 강제적 ‘집콕’으로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갈등이 쌓여 이혼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라는 예측에서 나왔다. 평균적 답은 ‘아니오’다. 통계청이 18일 발표한 ‘2020년 혼인·이혼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 건수는 10만 6500건으로 전년보다 4300건(3.9%) 줄었다. 김수영 통계청 인구동향과장은 “코로나로 외출을 자제한다거나 법원 휴정이 권고되는 등의 이유로 이혼 신청 처리 절차가 길어지며 (이혼) 감소에 영향을 준 부분도 있는 듯하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이혼하고픈 마음이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면접상담 중 이혼 상담 비중이 29.0%로 2018년(22.4%), 2019년(25.3%)에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이혼이 봇물처럼 터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미국이나 영국도 상황이 비슷하다. 미국 볼링그린주립대 인구통계학 연구센터가 플로리다 등 5개 주의 이혼 건수를 분석한 결과 미국 전역의 이혼 건수가 전년(100만건) 대비 19만건 줄어든 것으로 추산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이혼에 따른 비용이나 건강에 대한 불확신 등이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통계청이 지난해 부부 300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자 기혼자의 0.6%, 여자 기혼자의 1.1%가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다. 2017~2019년까지 남자 기혼자의 2.5%, 여자 기혼자의 5.6%가 이혼을 고려하고 있다고 답한 것보다 떨어진 수치다. 경제적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운 부자들은 예외다. 미국의 온라인 법률서비스 리걸템플릿은 코로나19로 인한 이동제한 조치 이후 이혼 법률대리인 신청이 전년 대비 34% 늘었다고 한다. 영국의 로펌 스토위도 이혼 상담 건수가 41% 늘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고액 자산가들이 해외 여행 등으로 외도를 하는데 해외 여행길이 막힌 것이 한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오랜 혼인기간도 예외 조건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혼인 지속기간이 20년 이상인 ‘황혼이혼’은 3만 9700건으로 전년보다 3.2% 늘었다. 혼인 지속기간이 30년 이상인 경우만 따지면 10.8%가 늘어난 1만 6600건이다. 황혼이혼을 하는 부부들은 대부분 자녀들이 성인이기 때문에 불확실성이 많이 줄어든다. 한 70대 지인은 서류 제출, 법원 출석 등이 번거롭다며 서울 근교에서 텃밭을 가꾸며 졸혼을 즐기고 있다. 부부가 서로 잔소리 안하고 어쩌다 만나다 보니 편하다는데 그는 아마도 1인 가구로 잡힐 것이다. 황혼이혼과 졸혼, 비슷하면서 다른 두 현상이 1인 가구의 급증을 가져오는 모양이다. lark3@seoul.co.kr
  • [씨줄날줄] 뉴욕증권거래소(NYSE)/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뉴욕증권거래소(NYSE)/전경하 논설위원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는 1611년 세워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거래소다. 1602년 세워진 동인도회사의 지분을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사고팔고 이를 중개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거래소가 만들어졌다. 당시 증권거래소 건물은 지금은 콘서트홀, 전시장 등으로 쓰인다.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1792년 증권 중개업자와 상인 24명이 뉴욕 월가 68번지에 모여 증권거래법 및 수수료율에 대해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됐다. 암스테르담 거래소보다 100년 이상 늦었지만 지금은 상장사들의 주가를 더한 시가총액이 가장 큰 거래소다. 지난해 말 기준 시가총액이 26조 달러로 2위인 미국 나스닥과 3위인 중국 상하이 증권거래소를 합친 금액과 비슷하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6시에 끝나는 NYSE의 다우존스산업지수 등 주요 주가는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국가의 주가에 영향을 미친다. 세계 자본 거래의 3분의1이 NYSE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기업이 아니어도 NYSE에 상장한다. 중국 인터넷기업 알리바바가 2014년 NYSE에 상장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국내 기업 중에는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포스코, 한국전력, KB금융지주, KT, LG디스플레이, SK텔레콤 등 8개가 상장돼 있다. 이들은 국내에서 발행된 주식을 담보로 주식예탁증서(DR)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상장됐다. 지난 11일(현지시간) NYSE에 상장된 쿠팡은 국내에서 발행된 주식이 없고, 미국 델라웨어주에 본사를 둔 기업이라 기업공개(IPO) 방식을 택했다. IPO는 기관투자자들의 수요 예측 등을 통해 공모가가 정해진다. 쿠팡의 공모가는 35달러였지만 상장 첫날인 11일 종가는 40.71%(14.25달러) 오른 49.25달러, 12일 종가는 1.58% 내린 48.47달러였다. 12일 시가총액은 872억 4600만 달러(약 99조 2000억원)로 100조원에 못 미치지만 국내 기업 중 2위인 SK하이닉스와 비슷한 규모다. 국내 주식은 오르거나 떨어져도 상하 제한폭 30% 범위 안에서 움직이지만 NYSE나 다른 주요국 증시는 제한폭이 없다. 그래서 쿠팡은 상장 첫날 장중 한때 공모가보다 80% 이상 오르기도 했다. 쿠팡은 아직 적자이지만 투자자들은 성장 가능성을 높이 산 셈이다. 쿠팡은 ‘로켓 배송’으로 통한다. 쿠팡의 주가 상승도 로켓을 닮았다. 문제는 하락할 경우다. 쿠팡의 시장은 아직 한국뿐이고, 지난 1년 사이 쿠팡에서 배송을 담당하는 노동자 ‘쿠팡맨’ 8명이 사망했다. 쿠팡 주가가 떨어지더라도 로켓이 아닌 ‘거북이’가 되는 요건은 쿠팡맨들의 노동 여건에 달려 있다. 요즘 투자자들은 사회적 책임투자에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lark3@seoul.co.kr
  • [길섶에서] ‘공유주방’/전경하 논설위원

    어쩌다 대형마트에 가면 눈앞에 펼쳐진 ‘밥상’ 앞에서 한참을 망설인다. 소고기뭇국, 부대찌개 등 여러 재료가 들어간 국 요리는 물론 냄새 때문에 집에서 하기 꺼려지는 생선구이나 조림 등도 데우기만 하는 완전조리 형태로 팔린다. 호기심 삼아, 그리고 편하니까 브랜드를, 메뉴를 바꿔서 사곤 했다. 열 개 중 하나나 성공했을까. 표준화된 입맛에 맞췄을 텐데 습관이나 기호가 제각각인 아들들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어른이라면 그래도 먹을 텐데, 아들들은 타박만 했다. 그럼 잔반처리반이 되기 일쑤다. 반조리 형태도 시도했지만 결과는 아주 조금 나아졌을 뿐이다. 가정간편식이 성공했다면 맛집도, 유명 요리사도 없겠지. 그래도 가정간편식 코너에서 ‘저 제품은 어떨까’라는 유혹을 떨칠 수 없다. 그렇게 주방일을 줄이는 꿈을 꾼다. 코로나19 이전 ‘키친 클로징’이란 말이 유행했다. 수십년간 가족 식사를 챙겨 왔던 주부가 주방에서 은퇴하거나, 바쁜 현대인이 배달음식이나 가정간편식 등을 이용해 주방공간을 최소화하는 경향을 뜻했다. 코로나19로 ‘집콕’이 대세가 되면서 주방은 다시 살아났다. 이제 그 주방이 가족 모두 참여하는 ‘공유주방’이 되길 꿈꾼다. 미성년자는 예외겠지만. lark3@seoul.co.kr
  • [전경하의 시시콜콜] 지자체 금고

    다음달 1일부터 경기도 금고은행이 농협·신한은행에서 농협·국민은행으로 바뀐다. 4년의 금고약정기간이 이달 말로 끝남에 따라 지난해 12월 경기도가 금고지정심의위원회를 열고 결정한 결과다. 제1금고인 농협은행은 일반회계와 지역개발기금 등 18개 기금을, 제2금고인 국민은행은 광역교통시설특별회계 등 10개 특별회계와 재난관리기금 등 6개 기금을 맡는다. 경기도 금고는 38조원 규모로 제1금고인 농협이 30조원을 관리한다. 지자체 금고는 2개까지 가능하며 약정기간은 최대 4년이다. 지자체 금고가 되면 보통 조 단위 규모의 세입과 세출을 관리한다. 거의 무이자로 운용할 수 있는 자금이 확보되며 우량고객으로 평가받는 공무원과 가족, 산하단체 임직원들도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은행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며 안정적인 환경에서 상품 판매 등 공격적인 영업을 할 수 있다.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각종 사업에 우선 참여 기회가 주어진다. 지자체 금고 선정이 2012년 공개입찰로 바뀌면서 결정 기준은 행정안전부의 예규로 정해져있다. 100점 만점에 금융기관의 대내외적 신용도 및 재무구조의 안정성(25점), 자치단체에 대한 대출 및 예금금리(17점), 지역주민이용 편의성(18점), 금고업무 관리능력(22점), 지역사회 기여 및 자치단체와 협력사업(7점), 지역 특수성 등을 고려해 자치단체 조례 또는 규칙으로 정하는 사항(11점) 등이다. 지자체 금고를 노릴 정도의 은행들이다 보니 당락을 결정하는 변수는 지역사회 기여 항목이다. 대표적인 예가 2018년 서울시 금고 입찰이다. 서울시는 금고 운영기간이 그해 말로 끝날 예정이라 사업자 입찰 공고를 냈는데 처음으로 30조원 규모의 일반·특별회계예산 관리를 맡는 제1금고와 2조원 규모의 기금 관리를 맡는 제2금고를 나눴다. 그 결과 제1금고 운영자가 우리은행에서 신한은행으로 104년만에 바뀌었다. 당시 신한은행은 4년간 협력사업비 3050억원, 우리은행은 1000억원을 제시했다. 3050억원이 전부가 아니었다. 금융감독원이 지난달 신한은행에 내린 제재안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서울시에 금고운영을 위한 전산시스템 구축비용으로 1000억원을 제시했다. 금감원은 이 가운데 393억원은 “금고 운영 계약을 이행하는데 필요하지 않은 사항으로, 서울시에 제공한 재산상 이익에 해당한다”며 과태료 21억원을 부과했다. 지자체 금고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고 지방은행들이 상대적으로 경쟁에 취약해지면서 행정안전부와 금융위원회는 2019년 관련 제도를 강화했다. 협력사업비 배점을 줄이고, 특정 이용자에게 제공된 재산상 이익 뿐만 아니라 제공이 확정된 금액까지 더해 10억원이 넘으면 공시하도록 하고, 협력사업비가 은행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을 초과하거나 전년 대비 20% 이상 증액되면 행안부에 보고하도록 했다. 전북, 강원, 충북, 대전, 경기 고양시, 경남 창원시 등의 지자체 금고 약정기간이 올해 끝난다. 기존 은행의 수성이냐 도전하는 은행의 탈환이냐가 올해도 계속된다. 은행들이 협력사업비를 얼마 제시할 지 지켜봐야겠다. 논설위원 lark3@seoul.co.kr
  • [서울광장] 관치금융이 낳은 고연봉 은행원/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관치금융이 낳은 고연봉 은행원/전경하 논설위원

    매년 3월 말이면 12월 결산법인의 지난해 사업보고서가 공개된다. 가장 큰 관심은 직원의 평균 연봉이다. 성과급 논쟁이 일었던 올해는 더욱 그렇다. 기준은 1억원이다. 이 기준에 드는 기업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정보기술(IT) 기업과 국민·하나은행 등 은행이다. 삼성전자 등은 세계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며 혁신하는 제조업이다. 반면 은행들은 정부 인허가에 기반해 사업하는 금융업이다. 국내 은행이 세계적 수준으로 경쟁하며 혁신한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기준 3만 1000달러(약 3700만원) 수준이다. 미국은 6만 5000달러, 일본은 4만 달러다. 세 나라의 은행원 연봉은 비슷하다. 우리나라 은행원은 경제 규모 등에 비해 더 많은 연봉을 받는다. 무엇이 뛰어날까. 외환위기로 통폐합을 겪은 뒤 은행은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매년 연봉을 3∼7%가량 올렸다. 물가상승률은 물론 정부가 제시한 공공부문 인상률을 웃돌았다.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일이 몰린 직원에 대한 배려였다. 정부는 2009년 신입 행원의 연봉을 3년 삭감하는 강수를 뒀다. 금융위기 직후였고 신입 행원의 연봉이 다른 나라에 비해 2배 이상 많았던 탓이다. 이 조치는 2011년 이후 순차적으로 원상복귀되면서 무효화됐다.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경영진들이 노조와의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금융권에는 ‘4대 천왕’인 강만수 산업금융지주회장, 이팔성 우리금융지주회장, 어윤대 KB금융지주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회장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 출신으로 홍기택 산업금융지주회장,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이광구 우리은행장 등이 임명됐다. 노조는 CEO 취임에 앞서 ‘길들이기’ 투쟁을 했고 CEO는 노조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취임했다. 어느 한 은행에 적용된 복지는 회사 간 비교를 통해 노조 힘을 빌려 다른 은행으로 퍼졌다. 은행 노조는 힘이 세다. 은행 노조 출신의 이용득 전 국회의원, 김영주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 그 위상을 보여 준다. 조합원 10만명, 다른 업종에 비해 많은 연봉에다 업(業)의 특성상 꼬박꼬박 내는 조합비 등이 그 이유다. 권력이 지명한 경영진, 국회의원·장관 등을 배출한 노조 등이 어울려 정부가 은행에 이런저런 요구를 하면 “너무한다”면서도 수용하는 구조가 된다. 은행이 성과급 등을 지급하는 ‘돈줄’은 예금금리와 대출금리의 차이라는 예대마진이다. 정부는 한때 ‘땅 짚고 헤엄치는’ 예대마진에 기반한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대체투자 등 비이자 부문의 수익을 높이라고 권했다. 그 결과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데도 고령층에 원금 보장된다고 판 펀드가 일으킨 사회적 물의, 해외 현장 실사도 없이 투자한 해외 부동산펀드 손실 등이다. 국내 은행은 경쟁력이 있는 걸까. 중국 탓에 홍콩의 금융허브 위상이 흔들리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런던의 위상에 금이 갈 때 금융허브 기능의 일부라도 가져올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노무현 정권 당시 ‘동북아금융허브’라는 비전 제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성과주의 도입 등을 통한 은행의 효율화 시도 등과 같은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은행을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강화, 한국형 뉴딜 등에서 정책사업의 자금줄로 쓰는 데 만족할 모양이다. 은행은 꾸준히 성과급을 지급해 왔다지만, 최근 논란이 된 성과급은 코로나19로 인한 대출 급증 덕도 있다. 가뜩이나 후하다고 평가받던 명예퇴직 조건도 나아졌다. 소상공인 등을 돕기 위한 원리금 상환유예가 지난해 9월 말에서 올 3월 말, 그리고 올 9월 말까지 다시 연장된다. 이 기간 동안 어떤 부실이 어떻게 발생할지 모른다. 은행들이 빌려준 돈을 떼일 가능성에 대비한 대손충당금을 예년보다는 많이 쌓아 두고 있다지만 충분할지는 미지수다. 원리금 상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은행 경영이 어렵다며 예대마진을 늘릴지를 지켜봐야 한다. 은행이 힘들다고 1인당 GDP의 2배 이상 받는 은행원의 연봉은 물론 명예퇴직금 등을 주기 위한 부담을 국민이 1원이라도 나눠 질 이유가 없다. 이미 외환위기 당시 은행권에 86조 9000억원, 비은행권에 79조 4000억원 등 총 168조 7000억원의 공적자금, 즉 세금이 들어갔다. 공적자금 회수율은 지난해 말 기준 69.5%이다. 공적자금 회수는 계속 진행 중이지만 100% 회수될 수 없다. lark3@seoul.co.kr
  • [씨줄날줄] 비트코인/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비트코인/전경하 논설위원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익명의 개발자(또는 개발자 집단)가 2009년 1월 세상에 내놓은 암호화폐다. 암호화폐는 실물이 없이 네트워크로 연결된 가상공간에서 전자적 형태로만 존재한다. 암호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은 컴퓨터 연산 작업으로 이뤄지는 ‘채굴’을 통해 2140년까지 2100만개가 공급되도록 프로그램화돼 있다. 지금까지 1900만개가량이 채굴됐는데 채굴량은 4년마다 절반씩 줄어든다. 비트코인은 발급이나 관리의 주체가 없다. 미 달러화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원화는 한국은행 등 각국의 중앙은행이 발급해 법적으로 화폐 기능을 부여하고 통화량 등을 관리하지만 탈(脫)중앙화가 목표인 비트코인은 프로그램이 일정 규칙에 따라 공급할 뿐이다. 수요가 아닌 규칙에 따른 공급이니 수요가 폭증하면 가격이 뛴다. 2011년 1달러였던 비트코인은 지난해 6월 1만 달러, 12월 4만 달러, 지난 16일 5만 달러를 돌파했다. 국내에서도 비트코인은 지난 20일 6500만원을 넘어섰다. 비트코인 광풍에 기름을 부은 사람은 전기차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였다. 머스크는 지난 1일 “(친구가 비트코인을 소개한) 8년 전 비트코인을 샀어야 했다. 비트코인이 전통적 금융가 사람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머스크는 비트코인이 5만 달러를 넘자 20일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가격은 높은 것 같다”고 물러섰다. 이더리움은 암호화폐 2위다. 암호화폐는 실소유주를 알기 어려운 익명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도박, 불법 거래 등에 자주 쓰인다. 미 재무장관 재닛 옐런은 지난달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많은 암호화폐가 주로 불법 금융에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사용을 줄이고 돈세탁이 이뤄지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2011년 문을 연 뒤 2013년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폐쇄된 전자상거래 업체 실크로드는 비트코인을 매개로 마약 거래를 중개했던 것으로 보도됐다. 국가정보원은 2017년 4월과 9월 900억원어치가 사라진 암호화폐 거래소 야피존과 코인이즈의 해킹이 북한 해커 집단의 소행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암호화폐 투자 수익에 세금을 매기고, 규제를 강화하는 나라도 있겠지만 조세회피처처럼 관련 규제를 완화해 투자자를 모으려는 나라도 있을 것이다. 투자에 국경이 없는 상황이 비트코인에는 더 잘 맞을 수도 있다. 비트코인 투자가 투기인가에 대한 논쟁은 진행 중이다. 답은 비트코인에 대한 세상의 기대가 어떻게 변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실체가 없는 세상의 기대에 기반한 투자라는 점이 실물이 없는 암호화폐와 닮았다.
  • [길섶에서] 공항 앓이/전경하 논설위원

    버스를 타고 가다가 김포공항으로 내리는 비행기를 봤다. 1년 전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보던 비행기였는데 보는 순간 여러 추억들이 떠올랐다. 비행기로 여행 갈 때 가장 좋은 순간 중 하나는 탑승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항공권을 발권하고 수하물을 부치고 활주로에 대기 중인 비행기를 바라보는 시간 말이다. 다른 할 일이 없으니 그 시간이 마냥 여유스럽고 다음 일정에 대한 설렘도 있다. 당분간 그런 여유를 즐길 일이 거의 없다. 언제 외국에 가기 위해 공항에 갈 수 있을지 기약도 없다. 1년에 여러 번 외국에 가기 위해 공항에 간 사람들에게는 안 가는 상황이 아니라 못 가는 상황이 참기 어려운 모양이다. 그래서 목적지 없는 비행기를 타고 기내식을 먹고, 기내 면세 쇼핑을 한다. 이런 체험을 하기에는 돈과 시간이 조금 아깝다. 그냥 공항에 가야겠다. 공항 직원이 이용객보다 훨씬 많아 한적한 그곳에서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고 주변 구경을 하다 올까 싶다. 여행 갈 때는 몰랐지만 공항은 잘 지어진 건축물이었다. 아님 어쩌다 나오는 ‘땡처리’ 국내 항공권을 사서 다른 도시에 여행 삼아 갔다올까 싶다. 땡처리를 하다 보니 기차요금보다도 훨씬 싼 항공권이 종종 나온다. ‘공항 앓이’를 하고 있다. lark3@seoul.co.kr
  • [길섶에서] ‘사법도시’/전경하 논설위원

    어쩌다 평일 퇴근 시간 무렵, 교대역 근처에서 출발해 서초역을 지나 내방역을 간다. 서초역까지는 차를 타고 가나 걸어가나 걸리는 시간이 비슷하다. 지하철을 타면 고속터미널역까지 가서 7호선으로 갈아타는, 한참 돌아가는 거리다. 서초역을 지나 서리풀터널만 지나면 내방역이라 늘 어떻게 갈까 고민한다. ‘서초역까지만 참자’라는 생각으로 택시를 타고 주변을 보면 대법원, 서울중앙지법, 고검, 대검 등이 있고 ‘법무법인’ 간판이 많이 보인다. 말 그대로 법조타운이다. 느리게 가는 차 안에서 종종 2016년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터뷰에서 세종시를 ‘사법도시’로 추진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회한이 남는다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사법부는 행정부나 국회 그리고 청와대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맞다. 행정부는 청와대는 물론 국회, 관련 인사들과 수시로 만나 협의해야 한다. 그래서 ‘길 국장’, ‘길 과장’이 있다. ‘사법도시’를 지금이라도 추진할 수 있을까. ‘공공기관 지방이전 시즌2’가 아니라 사법부 일부가 옮겨가는 것은 안 되는 걸까. ‘검찰개혁’, ‘사법개혁’이라는 말을 많이 하면서 물리적 이전은 왜 언급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사자들과 주변 상인들은 펄쩍 뛸 일이겠지만. lark3@seoul.co.kr
  • [씨줄날줄] 헌트 형제의 은(銀) 투기/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헌트 형제의 은(銀) 투기/전경하 논설위원

    투자업계에서 1980년 3월 27일은 ‘은의 목요일’이라 불린다. 은 선물 가격이 전 거래일보다 50% 이상 떨어져 온스(28g)당 10달러대가 되면서 금융시장 전체가 흔들린 탓이다. 1년 전만 해도 5달러였던 은은 텍사스의 석유재벌인 해롤드슨 헌트의 두 아들 넬슨과 윌리엄 헌트가 현물과 선물을 가리지 않고 사들이면서 그해 1월 50달러까지 치솟았다. 헌트 형제는 은을 담보로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려 다시 은을 사들였다. 이들이 사들인 은은 당시 세계 공급량의 절반 수준이었다. 귀금속업체 티파니가 헌트 형제의 은 매집을 비판하는 광고를 뉴욕타임스에 실었을 정도다. 헌트 형제의 투기는 규제 당국의 제동으로 실패했다. 뉴욕상품거래소(NYMEX)는 개인의 선물 계약 보유한도와 은의 담보 비율을 줄였다. 은값도 내려 선물계약을 위한 증거금이 더 필요했다. 증거금을 제때 내지 못해 선물계약이 반대매매를 당했고 시장은 폭락했다. 헌트 형제는 파산했다. 은은 산업 수요가 많은 금속이다. 이런 까닭에 ‘투자의 귀재’라는 워런 버핏은 미국 정부가 은화 제조를 중지한 1964년 이후부터 은을 샀다. 버핏의 회사인 버크셔 해서웨이는 1998년 연례보고서에서야 1억 270만 온스를 샀다고 밝혔다. 수요가 공급을 초과했다고 봤기 때문이다. 버핏이 산 은괴는 런던에 보관돼 있다. 런던의 은 현물시장에서는 연간 생산량(10억 온스)의 절반가량이 하루에 거래된다. 은값이 다시 출렁였다. 지난 1일(현지시간) NYMEX에서 3월 인도분이 전 거래일보다 9.3% 급등해 2013년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2일은 10.3% 급락했다. 비디오게임 유통업체 ‘게임스톱’을 공매도한 헤지펀드에 이긴 개인투자자들의 토론방인 ‘월스트리트베츠’(WSB)에 은을 집중 매수하자는 글이 올라와 호응을 얻었기 때문이다. 은값이 급등하자 거래소를 운영하는 CME그룹은 2일부터 선물 계약 증거금을 18% 올렸다. 게임스톱 사태는 ‘기울어진 운동장’인 공매도 시장에 경종을 울렸다. 주가 적정성 여부는 별개다. 게임스톱은 지난해 적자였고 주가는 1월 초 20달러가 안 됐다. 지난 1월 27일 347.51달러로 치솟았지만, 2일에는 전날보다 60% 폭락한 90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금융시장의 ‘골리앗’인 헤지펀드를 ‘다윗’인 개인투자자가 굴복시켰던 것은 대상이 주식이어서 가능했다. WSB에서 은이 언급됐다는 소식에 헌트 형제가 생각났다. 은은 제조업체들이 위험회피 차원에서 선물 계약을 많이 한다. 당국은 시장의 쏠림이 심하다 싶으면 규제를 강화한다. 시장은 열정만으로 돌아가지 않고, 나보다 더 비싸게 살 ‘더 바보’가 늘 있지도 않다. lark3@seoul.co.kr
  • [씨줄날줄] ‘건강가족’ 유감/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건강가족’ 유감/전경하 논설위원

    2005년부터 시행된 건강가족기본법은 가족을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사회의 기본 단위’로 정의했다. 그해는 50년간 지속돼 온 호주제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 민법의 가족 규정이 바뀐 놀라운 해였다. ‘호주의 배우자, 혈족과 그 배우자 기타 본법의 규정에 의하여 그 가(家)에 입적한 자’라던 민법의 가족 범위를 ‘배우자, 직계혈족, 형제자매’ 등으로 규정해 ‘호주’라는 규정을 삭제했다. 이 가족의 정의와 범위가 다시 변화할 조짐이다. 여성가족부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서 현행 결혼제도 밖에 있는 비혼이나 동거하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인정해 정부의 혜택이나 지원의 범주 안으로 끌어안겠다고 한다. 오늘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비대면 공청회도 연다. 통계청에 따르면 ‘부부와 미혼자녀’ 가구 비중은 2005년 42.1%였지만 2019년 29.8%로 줄었다. 1인 가구는 같은 기간 동안 20.0%에서 30.2%로 늘어나 전체 가구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1인 가구는 실제 혼자 사는 것일까, 혼자 산다고 등록한 것일까. 통계청은 2008년부터 2년마다 가족, 생활환경 등에 대한 국민의 생각을 조사한다.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는 질문에 동의한 비율은 2008년 42.3%였다. ‘비혼동거’에 동의하는 비율은 2018년 56.4%로 처음 절반을 넘었고 지난해 59.7%였다.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비혼출산’에 동의하는 비율도 2008년 21.5%에서 지난해 30.7%로 높아졌다. 비혼 동거나 가구의 개념은 젊은 남녀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고령화가 심화되면서 사별이나 이혼한 뒤 혼인하지 않고 동거하는 노인의 비중도 늘어났다. 평균연령 68세인 여배우 4명이 나오는 TV 프로그램 ‘같이 삽시다’ 시즌3가 다음달 방송되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동거하는 노인은 서로에게 가족일까 아닐까. 여성부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세우기 전에 ‘건강가정기본계획’을 ‘가정기본계획’으로 바꿔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5년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개념을 도출시키는 ‘건강가정기본법’을 다른 기본법과 같이 중립적인 법률 명칭으로 바꾸고, 가족 및 가정의 정의 또한 다양한 형태를 수용하도록 정비하라고 권고했다. 법이나 정책은 보수적이기 십상이지만 시대 변화를 반영하려는 노력은 꾸준히 해야 한다. 가족의 변화에 대해 눈감고 있다가 변화에 떠밀려 가족제도 자체가 위기에 봉착한 상황이다. 사회의 기본 단위인 가족을 어떻게 정의하고 지원할지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진지하게 제대로 진행돼야 한다.
  • [길섶에서] 5인 이상 모임/전경하 논설위원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된 것은 지난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였다. 그때부터 “우리가 몇 명이더라” 하고 약속을 확인할 때마다 인원수를 셌다. 모임은 주로 5명은 넘지만 10명 안팎이었다. 친밀하면서도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 숫자가 10명 안팎인 모양이다. 해가 바뀌어서도 1월 한 달 내내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되니 12월과 1월의 송구영신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어쩌다 저녁에 4명이 모여도 오후 8시 30분이 지나면 식당에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이야기를 서둘러 끝낸다. “날짜 바뀐 것에 불과한데 뭘 유난스럽게 챙기나” 하면서도 이런저런 모임을 했던 예년이 그립다. 알게 모르게 모임에서 흥을 얻었구나 싶다. 오랜 세월 만났으니 특정 사안에 대한 서로의 생각들을 어렴풋이 안다. 그래도 각자 살고 있는 환경이 다르니 낯선 경험과 생각들이 쏟아져 나온다. 거기에 박장대소를 하기도, 탄성을 내뱉기도, 공감을 표하기도 한다. 몇 명인지 세지 않고, 언제 끝내야 할지 걱정 없이 왁자지껄 떠들고 싶다. 모임에 대한 제한이 풀리는 날, 단골집에 몰려가 진탕 먹고 마시고 떠들어야겠다. 그때까지 단골집이 버텨 주길 바랄 뿐이다. lark3@seoul.co.kr
  • [서울광장] 치솟는 코스피, 뭘 해야 하나/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치솟는 코스피, 뭘 해야 하나/전경하 논설위원

    지난해 상반기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한창일 때 고등학생 아들은 주식계좌를 텄다. 몇 년 전 내 계좌로 사둔 종목들을 옮기고 본인이 주식매매를 시작했다. 새로 산 종목의 주가수익비율(PER) 등을 물었고 아들 휴대전화의 주식투자방 문자는 지웠다. 본인이 공부하고 판단해 돈을 벌고 잃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식 투자를 하겠다고 할 때부터 강조했던 원칙이다. 쌍둥이 형의 성과를 본 동생도 얼마 전 투자하겠단다. “어떤 기업?”이라는 물음 이후 대화는 끊겼다. 한번 더 물어본다면 인덱스 투자를 권할까 싶은데 말이 없다. 코스피가 3000을 넘으면서 주식 투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 전직 금융관료는 가족들 사이에서 면목을 잃었다. 지난해 상반기 주식을 정리하고 보유 현금을 늘렸고, 형제들도 따라 했다. 하반기에 치솟는 주가를 바라보기만 하다 공모주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익은 났지만 공모주다 보니 액수는 크지 않다. 모 금융기관 수장도 지난해 주식 관련 자산을 처분했다가 얼마 전 다시 투자를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인한 지금 상황이 낯설듯 외국인이나 기관투자가가 아닌 개인투자자 ‘동학개미’가 만들어 낸 상승장이 낯설다. 그동안 ‘동전주’, ‘잡주’ 등에 주로 투자해 손실을 입었던 개인투자자들이 이번 상승장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차, 네이버 등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대형주를 사들이면서 코스피를 밀어 올리고 있다. 주식 투자를 시작할지, 지금의 투자 규모를 늘릴지, 주식을 팔아 이익을 실현할지라는 투자 상황에 따른 고민이 코스피가 출렁거릴수록 커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금융사들은 자산의 부동산 쏠림 현상을 우려해 왔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구의 자산은 76%가 실물자산이고 실물자산의 94%가 부동산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부동산 쏠림이 심하다. 금융자산 투자가 늘고, 개인투자자들이 증시의 한 축으로 자리잡는 것은 언젠가 이뤄져야 할 일이다. 다만 너무 빠른 속도에 내용이 부실해질 가능성이 커져서 걱정들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8일 코스피 3000 돌파에 대해 “우리 경제와 기업 실적이 회복세를 보이는 것에 크게 기인한다”면서도 “불안감과 기대감이 교차하고 있다”고 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5일 범금융 신년인사회에서 “부채 수준이 높고 금융·실물 간 괴리가 확대된 상황에서는 자그마한 충격에도 시장이 크게 흔들릴 수 있으므로 금융 시스템의 취약 부문을 보다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당국으로서는 해야 할 말이지만 개인투자자들에게 이 말이 얼마나 받아들여졌을까. 전문가들은 몇 번의 고비가 찾아올 것이라고 한다. 영원히 오르기만 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3월에 공매도 금지가 풀릴 수 있고, 12월 결산법인의 지난해 실적도 3월에 발표된다. 미국의 금리를 결정해 전 세계 자금 흐름의 방향을 결정하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공개시장운영위원회(FOMC)도 꾸준히 열린다. 이런 일정 외에도 기업마다 각종 계약이 있고 중요시되는 지표가 다르다. 하루 몇 만개씩 주식계좌가 개설되면서 증권사 콜센터에는 주식매매 등에 따른 자금 흐름을 이해하지 못해 직원을 당황케 하는 전화도 걸려오고 있다. 은행 예적금에만 익숙했던 투자자들에게 주식은 완전히 딴 세계다. 정부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증권사들과 협조해 연령대별, 투자경험별 다양한 교육 콘덴츠를 만들고 이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공급하는 일이다. 투자는 자신의 책임하에서 감당할 수준으로 이뤄져야 한다고들 말한다. 맞는 말이지만 지키기는 어렵다. ‘주식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주식에 투자할 때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했다. 기업을 보고 나서 주가를 봐야 하지만 종종 거꾸로 본다. 그러다 작전 세력의 주가 조작 등에 휩쓸려 낭패를 보기도 한다. 금융 당국은 지난해 10월 불법·불건전행위 집중대응단을 만들고 불공정 거래에 대한 조사 처벌을 강화한다고 했다. 제재 사례, 투자 유의사항 등도 나왔다. ‘허위 사실 유포로 주가가 급등하자 주식 매도 차익 실현’이 불공정 거래와 관련한 대표적 문구다. 투자자 피해와 관련해선 이런 문구를 찾기 어렵다. 가끔 피해 사례와 규모가 언급되면 작전세력에 당하는 일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을 것 같다. 버핏의 말처럼 “썰물이 빠져나갈 때 누가 벌거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 우리 모두 제대로 된 ‘수영복’을 입고 또 입도록 유도하자. lark3@seoul.co.kr
  • [길섶에서] 안 보이는 노동/전경하 논설위원

    살고 있는 아파트의 평일 오전 8시쯤이면 ‘세탁~ 세탁~’ 하는 소리가 들렸다. 출근이 늦은 날은 그 소리에 문을 열고 세탁소 아저씨를 불러 드라이할 세탁물을 맡겼다. 때론 맡겼던 세탁물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19가 대규모로 퍼지면서 얼굴을 마주하기도, 현금을 주고받기도 꺼려졌다. 어쩌다 주말에 늦잠이라도 자다가 벨 소리에 깨어나 세탁물을 받기도 싫었다. 어물쩍대다가 철 지난 세탁물이 쌓여 갔다. 얼마 전부터 세탁 애플리케이션(앱)을 스마트폰에 내려받아 자기 전 문 앞에 내놓고, 이틀 정도 지나 돌려받는다. 수거와 배송이 자고 있을 때 이뤄지지만 카카오톡으로 알려주니 전보다 편하다. 카드를 등록하고, 가끔 쿠폰할인도 받으니 세탁에 드는 돈이 줄었다. 이렇게 돈과 편리함을 좇아 누군가의 낮일이 새벽 노동으로 옮겨 갔다. ‘세탁’이라는 소리도, ‘세탁소입니다’라며 벨을 누르는 사람도 잊혔다. 배달시킨 물건이 문 앞에 와 있으면 가끔 거기에 들인 노동을 잊는다. 온라인 주문서를 들고 매장을 돌며 물건을 담아 포장하고, 차에 실어 배달하고 문 앞에 놓을 때까지 분명히 사람이 일했는데 물건만 보인다. 보이지 않는 노동이라도 그 가치를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lark3@seoul.co.kr
  • [씨줄날줄] 배민앱 10년/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배민앱 10년/전경하 논설위원

    국내 음식배달 애플리케이션(앱)의 첫 타자는 2010년 4월 스타트업체 스토니키즈가 출시한 ‘배달통’이다. 그해 6월 우아한형제의 ‘배달의민족’(배민)도 나왔다. 현재 배달앱 시장에서 2위인 ‘요기요’는 독일계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의 국내 자회사(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가 2012년에 세웠다. DH는 2014년 배달통 최대주주가 됐다. 요기요와 배달통은 합병하지 않고 각자 운영체제를 유지했다. ‘배민ㆍ요기요ㆍ배달통’의 상위 3사 구조는 고착됐다. 다른 기업들이 그동안 배달앱 시장에 도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한 전자상거래업체(소셜커머스) 티몬은 2014년 전국에 깔린 유통망과 고객 데이터를 기반으로 음식배달 서비스에 진출했지만 6개월 만에 철수했다. 세계적 플랫폼인 ‘우버이츠’도 2017년 진출했으나 2년 만인 지난해 10월 철수했다. 배민과 요기요 등에 밀려 적정 가맹점 확보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8월 ‘1주문 1배달’을 내세우며 서비스를 시작한 ‘쿠팡이츠’의 성공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어제 DH가 배민을 인수하려면 6개월 내에 요기요를 팔라고 조건부 승인을 내렸다. 쿠팡이츠에 대해 “충분한 경쟁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쿠팡이 ‘로켓배송’으로 성장했지만 상품판매와 음식배달은 과정이 전혀 다르다는 판단이다. 음식의 특수성 탓에 상품배달에 비해 진입장벽이 높다. 이런 까닭에 네이버와 카카오가 자체 플랫폼을 통해 음식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1%에도 못 미친다. DH가 배민과 요기요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배달앱 시장이 독과점 체제가 돼 수수료 인상, 배달 편의성 감소 등이 발생할까 우려한다. 음식점과 배달기사 입장도 비슷할 것이다. 공정위의 어제 발표 자료에는 배민과 요기요가 상대방보다 점유율이 높은 지역에서는 주문 건당 쿠폰할인을 덜 제공했고, 기업결합이 추진된 이후인 올해 쿠팡이츠가 약진했지만 배민과 요기요의 수수료율은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올랐다고 지적했다. 배민과 요기요가 합병하면 경쟁이 제한된다는 직접적인 증거이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이 흘러 현재 배달앱을 이용하는 음식점은 35만개, 배달기사는 12만명, 월 이용자는 2700만명으로 추산된다. 공유주방 규제가 완화되고 배달만 하는 음식점도 늘어나 공유주방시장도 생겨났다. 공정위는 DH가 외국에서 공유주방사업을 하고 있어 경쟁 제한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DH가 공정위의 명령을 받아들여 요기요를 팔기로 했다니 소비자는 다행이다.
  • [길섶에서] ‘집콕’의 진화/전경하 논설위원

    올 상반기 코로나19가 퍼질 때는 어쩌다 재택근무를 했다. 고2인 쌍둥이 아들은 올해 원격수업을 한 날이 등교한 날의 몇 배 이상이다. 재택근무와 원격수업이 겹치면 아들들은 보호대상임을 자처했다. ‘하면 눈에 안 띄고 안 하면 눈에 확 띄는’ 집안일을 하면서 집은 깨끗해졌지만 피로도는 높아졌다. 출퇴근에 드는 시간과 바꾼 셈이다. 해서 이런저런 약속을 잡아 시차출퇴근 겸 외출을 했다. 안타깝게도 3차 대유행인 요즘은 대부분 집콕이다. 인간은 상황에 적응한다더니 요령이 늘어간다. 있는 공간은 변화가 없는데 특정 상황에 대한 스위치를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그러다 보니 아들을 향한 잔소리가 줄었다. 하루를 몽땅, 그것도 며칠 이상을 ‘집돌이’, ‘집순이’로 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집에서 모든 활동을 하니 집이 지금보다 컸으면 싶다. 겹치는 공간이 줄어들고 여유 공간이 있을 테니까. 요즘 청약에서 중대형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는 데는 코로나19 영향도 있을 것이다. 당분간 집을 옮길 수 없으니 잘 안 쓰는 물건을 정리하면서 공간을 넓히는 수밖에. 집안일이 집안정리로 엉뚱하게 방향을 틀었다. 중대형 아파트와 미니멀리즘에 대한 욕구에 동시에 휩싸이는 ‘웃픈’ 상황이 됐다. lark3@seoul.co.kr
  • [씨줄날줄] 실손보험의 변화/전경하 논설위원

    [씨줄날줄] 실손보험의 변화/전경하 논설위원

    “실손보험 있으세요?” 병원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실손보험이 있으면 발을 삐었을 때는 체외충격파치료가, 담에 걸렸다면 도수치료가 권장된다. 한 번에 몇 만원인데 여러 번 치료받아야 하기 때문에 부담스럽지만 실손보험에 가입돼 있다면 보험사가 내므로 환자에게 큰 부담은 아니다. 실손보험은 지난해 말 기준 3800만명이 가입돼 있지만 어느 시기에 가입했는지에 따라 환자가 부담할 비용이 다르다. 실손보험이 국내에 처음 출시된 것은 1999년이다. 2009년 10월 이전까지 팔린 ‘1세대’ 실손(구실손)은 각 보험사가 자체 상품을 만들어 팔았다. 입원치료 등의 자기부담금은 없고 통원치료는 자기부담금(5000원)을 제외하고 계약금액 한도에서 지급됐다. 자기부담금의 부재는 과잉진료의 원인으로 위험손해율이 급상승했다. 위험손해율이란 계약자가 낸 보험료 중에서 사업운영비를 제외한 위험보험료 대비 보험금 지급액 비율이다. 위험손해율이 100%를 넘으면 가입자가 낸 보험료보다 받아 간 보험금이 더 많다는 뜻이다. 이에 보험사마다 제각각이던 약관을 통일하고 자기부담금을 10~20%로 정한 ‘2세대’ 실손(표준화실손)이 2009년 10월부터 팔렸다. 자기부담금 수준을 높였지만, 위험손해율은 역시 급상승했다.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비급여’ 치료를 받는 경우가 늘어나서다. 2017년 4월 비급여로 치료받는 도수, 자기공명영상(MRI), 주사 등을 특약으로 분리하고 자기부담금은 20%로 높인 ‘3세대’ 실손(신실손)까지 나왔다. 1세대 실손에서 3세대 실손으로 오면서 보험료 갱신주기는 3년 또는 5년→3년→1년으로 짧아졌다. 실손보험은 계속 개선됐지만 위험손해율도 계속 올라 보험료도 오른다. 2세대 실손과 3세대 실손 판매사들은 최근 가입자들에게 내년 1월에 보험료가 20% 이상 오를 수 있다고 예고했다. 1세대 실손 갱신시기는 내년 4월이니 가입자 모두 보험료를 더 내야 한다. ‘문재인 케어’ 실행으로 건강보험 적용이 확대되면 실손보험금 지출이 줄어드는 반사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실상은 정반대였다. 점점 더 발달하는 의료장비나 기술이 건강보험 영역으로 흡수되기에는 시간이 걸리는 반면 환자들은 빨리 나을 수 있다는 의료진의 말을 듣고 비급여 선택을 늘렸기 때문이다. 의학적 효과도 있었지만 플라세보(위약) 효과도 있지 않았을까. 내년 7월 비급여 의료 이용량과 보험료를 연계한 4세대 실손이 나온다. 실손보험 초기부터 비급여 이용에 대한 고민은 왜 없었을까 궁금하다. 실손보험의 변화는 의료진과 환자의 욕심 탓도 있지만 의료수가가 낮은 탓도 있다. lark3@seoul.co.kr
  • [서울광장] 특고의 고용·산재보험 논란에 대하여/전경하 논설위원

    [서울광장] 특고의 고용·산재보험 논란에 대하여/전경하 논설위원

    일산·분당 등 1기 신도시가 자리를 잡던 2000년 전후, 대형마트에서 볼 수 있는 주말 쇼핑 풍경 중 하나가 부부의 말다툼이었다. 출퇴근 거리가 멀어 주말만이라도 푹 쉬고 싶은 남편과 ‘운전수’ 겸 ‘짐꾼’이 있을 때 일주일의 장보기를 하려는 아내의 실랑이다. 이런 풍경은 사라지고 있다. 배달이 사회화, 산업화된 덕분이다. 온라인쇼핑이 활성화되면서 배달의 편의성을 안 소비자들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여기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이동 자제 등이 겹치면서 배달 서비스가 사회를 지탱하는 필수기능이 됐다. 배달 관련 필수노동자에 대한 보호책 마련은 완성 직전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2019년 전면개정되면서 올 1월부터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의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를 하도록 규정됐다. 특고는 근로자와 자영업자의 중간지대에 있는 노동자로, 약 250만명으로 추산된다. 산업안전보건법은 작업 환경의 안전을 주로 다룬다. 특고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다만 노동자가 적용제외 신청을 하면 가입하지 않는다. 산재보험료는 고용주가 전액 부담하는데 특고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절반씩 낸다. 보험료 등의 문제로 노동자가 적용제외를 신청하기도 하지만 사업주가 이를 강제하기도 한다. 그래서 특고 중 산재보험 적용 대상은 16%에 불과하다. 특고는 근로자가 아니기 때문에 고용보험 가입 자체가 안 된다. 지난 9일 국회를 통과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고용보험 가입 요건을 ‘근로자’에서 ‘근로자 등’으로 넓혔고,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은 적용제외 신청 사유를 출산·업무상 재해로 인해 한 달 이상 휴업하는 경우로 한정시켰다. 내년 하반기가 되면 배달노동자도 고용·산재보험에 가입하게 된다. 재계는 당연히 반대지만 반대 사유 중 타당한 의견도 있다. 특고에는 보험설계사 43만명, 불도저·굴삭기 등 27종의 건설기계 자차기사 25만명, 골프장 캐디 3만명, 대출·신용카드 모집인 2만명도 포함돼 있다. 특고 관련 개정안 통과의 원동력이 된 필수노동자에 해당하는 택배 노동자는 5만명, 퀵서비스 등 배달기사는 8만명이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도 대면 업무가 불가피한 90만명의 돌봄 노동자, 4만명의 환경미화원 등에 대한 대책은 걸음마 단계 수준이다. ‘전 국민 고용보험’이라는 명제에 휘둘려 필수노동자 보호지원이 뒷전으로 밀렸다. 특고의 절반이 넘는 직종은 필수노동자가 아니며 다양한 직종이 포함돼 있는데도 동일한 잣대로 도매금 개정안을 밀어붙였다. 국회는 지난 2일 내년 예산안을 통과시키면서 특고와 기존 근로자의 실업급여 계정을 분리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기존 근로자는 월급의 0.8%(사업주 0.8% 포함 총 1.6%)를 실업급여 계정으로 낸다. 정부안은 근로자와 특고를 분리하지 않고 실업급여 계정을 통합 운영하는 것이다. 특고는 소득 감소로 인한 자발적 이직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지만 근로자는 비자발적 이직이어야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특고는 더 많은 소득을 위한 이직이 활발한 편인데 이에 따른 실업급여 재원을 근로자가 몇 년 안에 떠안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실제 고용노동부가 국회에 고용보험법 개정안과 함께 제출한 특고 고용보험 재정추계에 따르면 2025년부터 적자다. 공무원이 실업급여 보험료를 낸다면 과연 이 안을 마련했을까 싶다. 공무원은 고용·산재보험 대상이 아니다. 특고는 사업주와의 계약 관계로 일이 발생하는 준(準)고용 관계다. 보험료 부담까지 더해지면 사업주는 디지털화 등을 가속화해 고용을 줄일 것이다. 실제 보험설계사, 대출·신용카드 모집인 등은 디지털화로 꾸준히 줄고 있다. 특고의 일괄적 보험 적용으로 고용이 줄어들 것이라는 재계의 경고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고용충격이 온 사실에서 본 것처럼 고용시장은 정책을 실험하는 곳이 아니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듯 조심스럽게 하나씩 풀어나가야 하는 영역이다. 법률 개정안은 통과됐고 여기에 맞춘 시행령 개정이 남았다. 정부는 시행령에서 실업급여 보험료율 등을 정하도록 했다. 의무가입 대상의 단계적 확대, 실업급여 계정 분리 등이 시행령에 담겨야 한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시행령만은 현실에 대한 분석과 이해관계 당사자와의 논의 등을 통해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명분은 이상적일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lark3@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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